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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가든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6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표제작이자 첫 단편이기도 한 '로즈가든'의 화자 히로시는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데뷔작인 '얼굴에 흩날리는 비'에서 자살했던 바로 그 미로의 남편이다.
작품이 시작되면 그는 인도네시아의 마하캄 강을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면서 롤링스톤즈의 'SATISFACTION'이나 'STREET FIGHTING MAN' 같은 노래들을 떠 올린다. 이 노래들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눈치채셨겠지만 히로시가 그 노래들을 떠올리는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그 노래들의 울림이 히로시가 딛고 있는 보트 바닥이 물결 따라 출렁일 때 마다 전해오는 '둥둥' 튀는 듯한 고동 소리를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울림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네 번째, 그러니까 가장 마지막 단편인 '사랑의 터널' 그 마지막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는 게 흥미롭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 미로는 아래로 차들이 지나가는 다리 위에 서 있는데 거기서 미로는 차들이 지나갈 때 다리 위로 전해져 오는 울림을 듣는 것이다. 소설은 이렇게 끝맺는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땅속의 어두운 울림을 똑똑히 듣고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P.218)
어찌보면, 일종의 수미쌍관 구조랄까...
그렇게, 네 개의 단편이 모인 '로즈가든'은 하나의 울림으로 묶인다.
수미쌍관은 그야말로 작위적 구성이므로 여기에 기리노 나쓰오의 의도가 들어갔다면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그러니까, 그녀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단편집 자체가 독자들에게 하나의 울림이 되기를..., 미로가 들으려 귀 기울였던 바로 그 '어둠의 울림'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나쓰오의 바람은 네 개의 작품이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바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네 개의 작품 모두 들려오는 '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로즈가든'에서 히로시는 강물의 출렁거림과 함께 롤링스톤즈의 노래를 듣고 두 번째 '표류하는 영혼'에서 미로는 '퇴마사야.'라는 관리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다음의 '혼자두지 말아요'에서는 '원숭이다'라는 말을 듣고 마지막 '사랑의 터널'에서는 '여자라서 다행이네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나쓰오가 이 단편들에서 '청각'이란 감각을 특권화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해진다. 사실 이러한 '들음'에의 강조는 무라노 미로 시리즈가 여타 다른 사립탐정물들과 차별되는 특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단편집 '로즈가든'에서는 그 특징을 더욱 더 강조한다. 시작도 그렇지만 무라노 미로가 결정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소리'가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니 어떤 단편에서는 오히려 무라노 미로가 가진 '시각'의 무용성을 강조하고 있기 까지 하다. 여기에서 보듯이 나쓰오가 이 '로즈가든' 자체를 들려주기 위한 하나의 울림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왜 여기서 유독 그것을 강조하는 것일까? 언제나 그랬듯이 내게 나쓰오에 대한 리뷰는 이렇게 의문으로 시작된다.
'듣는 것'은 '보는 것'과 다르다. '보는 것'은 능동적 행위이나 '듣는 것'은 지극히 수동적인 행위이다. 외부의 소리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엄습'이며 아무리 귀를 막아도 그 틈입을 막을 수 없는 '속절없음'이다. 소설의 시작을 여는 소리들은 늘 느닷없이 주인공들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언제나 매의 밭톱이 먹이를 채 가듯 무라노 미로를 정해진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 소리들이 발현된 그 곳으로 블랙홀 처럼 미로를 빨아들인다. 소리에 의해 미로는 그 세계에 갇히며 그렇게 한 번 포획되면 더 이상 그 세계에서 달아날 수 없다. 그건 미로의 죽은 남편 히로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히로시를 무라노 미로의 세계에 가두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건 바로 미로의 '말'이었다. 그렇게 듣게되자 히로시는 무라노 미로의 '로즈가든'에서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고 오로지 죽음 만이 그 유일한 탈출구가 되었다. 그렇게 '로즈가든'의 소리들은 한 존재 전부를 바꾼다. 그런데 거기엔 그 어떤 주체의 의지도 개입되지 못한다. 지극히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청각'의 특성상 당연하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야말로 사이렌의 노래소리이다. 이미 들은 이상 그에게 남은 것은 그저 끌려감 밖에는 없는 것이다.
나쓰오가 이 단편집을 하나의 울림으로 만드려고 했을 때 그녀가 바랬던 것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로즈가든' 자체가 독자들에게 사이렌의 노래소리가 되는 것. 그렇게 저항할 수 없게 무라노 미로라는 존재의 무저갱과도 같은 심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 왜? 그건 아마도 무라노 미로를 이해시키고 싶은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건,
나쓰오가 이 단편집에서 유독 '들음'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보면 드러나는데, 그건 바로 우리들이 무라노 미로에게 있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미로는 왜 그렇게 자신과 대적하는 어둠에게 그토록 끌리는가 하는 것. 바로 그 어둠에로의 매혹이 온전히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들음'과 너무 유사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둘은 모두 주체의 역량을 가볍게 넘어서서 완전히 사로잡아 버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 둘 앞에서 주체는 오로지 '속절없음'의 무기력한 포즈만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카메라 렌즈에 사로잡힌 모든 피사체가 그러듯이 그렇게 둘다 불가항력적이다.
이러한 매혹과 '들음'의 유사성에서 우리는 나쓰오가 이렇게 '울림'이 간직한 지극히 수동적인 경험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우리가 그토록 미로에 대해 궁금하게 여겼던 그 어둠의 '매혹'을 설명하려 함을 암시받게 되는데 바로 이것을 통해서 나쓰오가 '로즈가든'을 하나의 울림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바로 무라노 미로의 내면 속으로 인도하는 것임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로는 어쩌다 그렇게 불가항력적으로 어둠에 매혹될 수 밖에 없게 되었을까? 바로 거기에 대한 미로의 내면으로의 여행 혹은 그것을 통한 나쓰오의 대답 혹은 변호가 바로 이 '로즈가든'이라 할 수 있다.
'로즈가든'이 처음 말했던 대로 하나의 울림이라면 이 단편집 자체는 오히려 '진혼곡'에 가깝다고 해야 하리라. 왜냐하면 이번의 단편집을 끝으로 우리는 무라노 미로와 별 다른 이변이 없는 한 영영 이별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팬인 나로서는 '로즈가든'은 더없이 슬픈 작품이기도 하다. 때문에 난 그것을 아주 오래도록 음미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어떻게든 지연시키려고 드는 게 인간의 정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무라노 미로 시리즈 중 가장 마지막으로 나왔지만 사실 여기에 실린 네 작품은 모두 미로의 데뷔작 '얼굴에 흩날리는 비'와 두번째 작품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사이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그러니까 1993년과 1995년에 걸쳐서 발표된 작품들이다. 하지만 발표시기야 어쨌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우리는 지금 미로와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있고 그래서 그 멀어져 가는 등을 바라보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이 '로즈가든' 자체가 '가시는 걸음 걸음... 그 뒤편에 무성하게 뿌려주는 장미 꽃잎들과도 같이...' 수고한 그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그 넋이 어떠한 존재였는지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진혼곡으로 여겨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울림인데...
어리석은 고집이라고 해도 좋지만 난 정말로 나쓰오가 이 단편집을 그러한 '진혼곡'의 형태로 만들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난 그것을 무엇보다도 단편들의 제목에서 확인한다. '로즈가든' '표류하는 영혼' '혼자두지 말아요' '사랑의 터널' 이 모두가 사실은 노래 제목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에서 직접 밝히지는 않으나 아마도 소설의 분위기를 이루는데 영감을 주었고 그렇게 하나의 바탕이 된 노래를 내 개인적으로 살펴본다면 바로 이 노래들이 아닐까 한다.
1. 로즈가든
2. 표류하는 영혼
3. 혼자 두지 말아요
4. 사랑의 터널
말하자면 '로즈가든'은 무라노 미로를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컨셉트(concept)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컨셉트 앨범이란 하나의 주제를 위해 노래들이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는 앨범을 말한다. 그렇게 나쓰오가 선곡한 이 네 개의 단편들은 별개이지 않으며 왜 무라노 미로가 어둠에 매혹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차례로 조금씩 나아가면서 알려주고 있다. '로즈가든'은 히로시의 미로에 대한 매혹을 빌어 미로의 어둠의 매혹을 설명해주며 '표류하는 영혼'에서는 왜 미로가 어둠 - 보다 정확히는 경계 너머의 것 -에 매혹될 수 밖에 없는지 미로가 속해있는 세상의 속성 - 도처에 넘쳐나는 악의들-을 통해 말해준다. 그리고 '혼자 두지 말아요'에서는 그러한 악의로 가득찬 세상 그러면서도 피아를 식별하기 어려운 경계들의 혼란 속에서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왜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지 느끼게 만들고 마지막 '사랑의 터널'에서는 미로가 경계의 저 편, 어둠 혹은 괴물을 그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이렇게 말했지만 '로즈가든'은 굳이 미로의 헤아리기 어려운 심연을 탐사하기 위한 지도 같은 것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실 미로의 어둠에 대한 매혹은 그녀의 또 다른 작품 '그로테스크'나 '아웃'으로도 연결된다. 그렇게 이 '로즈가든'은 나쓰오가 그녀의 작품세계에 있어 또 다른 중추라 할 만한 왜 '괴물성(아임 소리 마마 같은)'에 집착하게 되는지도 보여준다. 그러니까 그녀의 작품 세계를 떠 받치고 있는 두 개의 헤르메스 기둥 중 하나인 '여성의 괴물화(욕망을 어떠한 사회적 제약에도 굴하지 않고 발현시킨다는 의미에서 - 그것은 최근에 나온 '도쿄섬'에서까지 이어지는데 -)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지 그 근원적 이유가 드러나 있는 것이다.
'소녀'에서 '괴물'까지!
그렇게 '로즈가든'은 여성들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이 하나에다 집약하고 있다. '로즈가든'은 남성에게 포획된 존재에서 끝내 남성적 그 사회 바깥에서 머무르면서 오히려 공포의 존재로 되어가는 과정의 함축이자 바로 그 사회의 제약에서 해방되어 마음껏 자아의 욕망을 발산하는 것이야 말로 여성의 진정한 구원이라는 나쓰오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어둠의 선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야말로 무라노 미로는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응축된 절대 영도의 존재이며 그래서 왜 미로가 나쓰오의 페르소나이고 그녀의 모든 작품 가운데 단연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지 다시금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단편집은 나쓰오의 어둠에 매혹된 이들이라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작품이며 출간 사정이야 어쨌든 무라노 미로 시리즈중 가장 마지막에 읽어야 그 맛이 더욱 잘 살아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내내 말하지만 이 단편집은 그야말로 미로를 위해 바쳐진 네 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진혼곡 앨범이니까 말이다. 때문에 나 역시도 이미 유령이 되어버린 히로시가 롤링스톤즈 노래를 떠올렸듯이 이 단편집을 모두 읽고 났을 때 어쩔 수 없이 롤링스톤즈의 노래를 떠올렸다. 물론 같은 노래는 아니고 그들의 68년 앨범 '거지들의 만찬'에 첫번째 트랙으로 실렸던 'SYMPATHY FOR THE DEVIL'이었다. 어쩌면 이 단편집을 위한 사운드 트랙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