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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하하하! 이거 정말 걸작이다. 간만에 아주 날 자지러지게 만드는 책을 만난 것 같다. 생각해보니 김미령 작가의 '완득이' 이후 처음이다. 마치 IQ178의 천재가 작정을 하고 글을 쓰면 얼마나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문장을 다룰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장면 전환이 드리볼을 하는 '슬램덩크'의 서태웅 만큼 빠르고 미스터리이면서도 독자의 웃음을 위해 과감히 그 규칙을 파괴하는 모습이 강백호의 리바운드 만큼이나 파격적이고 게다가 정말 웃기려고 작정하여 심어놓은 개그 코드들이 윤대협이 쏘는 3점 슛 처럼 언제 어디에서 느닷없이 날아올지 몰라 무방비한 상태에서 자지러지게 만드니 지하철에서 혹시라도 미친놈이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주위 상황을 살펴가며 접해야 하는 게 '나꼼수'만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왠지 주성치 스타일의 셜록 홈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책이 바로 '부호형사'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파프리카'처럼 SF작가로 혹은 '섬을 삼킨 돌고래'나 '최후의 끽연자' 처럼 풍자작가로 유명했던 쓰쓰이 야스타카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내어놓았던 네 개의 미스터리 소설 중 가장 처음 작품이 바로 이 '부호형사'다. 일본드라마를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이 제목이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후카다 교코 주연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로 방영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영화 '이겨라 승리호(일본 제목으론 '얏타맨')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한 섹시봄버 하면서도 한 편으론 애잔한 도론죠 히메를 완벽하게 구현했던 그 후카다 교코의 주연작이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드라마였기도 했다. 아무튼 바로 그 '부호형사'의 원작이 바로 이 소설이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설마 그 드라마에 원작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아니 행여 원작이 있더라도 그것이 미스터리 소설이었으리라고는 더욱 생각못했다. 설정과 캐릭터가 너무나 만화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혹시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보셨다면 거기 나오는 나라그룹의 외동딸 '나라'가 그대로 형사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그 나라가 오매불망 짝사랑하는 우주와 어떻게든 데이트를 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쓰듯이 미스터리 사건을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으로써 해결하는 것이다. 뭐, 간단히 예를 들자면 밀실 트릭을 알기 위해 회사를 통채로 설립한다든지 서로 적대적인 갱들이 도시에서 회합을 가지는데 감시하기 곤란하니까 최고급 호텔을 통채로 하나 빌려서 거기 묵게 만든다든지 뭐 그렇게 사건을 해결한다. 이 어찌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는 만화적인 설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이 소설을 일본의 3대 SF 작가로도 불리는 바로 그 쓰쓰이 야스타카가 썼으리라곤 더더욱 생각 못했다. 그러니 이 '부호형사'는 내 이마에 딱밤 세 대를 놓듯, 쓰리 콤보의 충격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정말 재밌다. 오로지 IQ 178의 지능을 총동원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배꼽을 잡고 웃으며 뒹굴거리게 할 목적으로 쓰여진 것만 같다. 바나나만 보면 개그 본능을 주체하지 못해 그것을 밟고 넘어지기 위해 달려가는 케로로 처럼 야스타카도 실소든 폭소든 어쨌든 웃기기 위하여 감행할 수 있는 것은 뭐든, 그것이 실험이든 파격이든 다 감행한다. 마치 MTV의 현란한 뮤직비디오 처럼 장면을 능수능란하게 전환한다든지 잘 나가다다 갑자기 독자를 향해 말을 툭 건넨다든지 얘기의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나오는 서장이라든지... 아무튼 야스타카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독자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개그 콘서트'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스터리적으로 약한 것도 아니다.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에서 보여주었던 솜씨 답게 물론 여기서도 기가 막히는 트릭이 한가지는 있다. 그것이 바로 두번째 에피소드 '밀실의 부호형사'다. 아마도 그 트릭을 풀기란 정말 꽤 곤란할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형사가(아참! 여기서 주인공 형사는 드라마처럼 여자가 아니고 남자다. 최고 재벌의 외동아들이자 헌신적으로 애정을 보내는 미모와 지성을 두루 완벽하게 소유한 약혼녀까지 있는 그야말로 전생에 은하계를 구한 남자다.) 그 트릭을 풀기 위해 회사 하나를 세워야 했던 것이 어쩐지 이해가 될 정도로 어렵다. 흥미가 있으면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이제 길어지는 무료한 밤을 위해 좋지 않을까 한다. '부호형사' 드라마 팬이라면 물론이고 간만에 한 번 웃어보고 싶은 분들 역시에게도 적극 추천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