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깊이 내려간 조세핀 테이의 '나사의 회전'...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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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개인적인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조세핀 테이를 좋아한다.

 


  물론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그녀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그녀 자체'를 좋아한다. 아니 차라리 나의 이상형이라고 해야겠다. 내가 이상형을 꼽는데 있어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것은 바로 그 누구에게도 기대려 하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인데 조세핀 테이는 거기에 완벽하게 들어맞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조건으로 이상형을 꼽는 사람은 조세핀 테이의 일생을 들여다보게 되면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리라 믿는다. 조세핀 테이는 그녀의 두 번째 필명이다. 그녀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매캔토시이다.  그녀는 '조세핀 테이'라는 필명을 1936년 그녀의 두 번째 미스터리 작품 'A Shilling for Candles'을 쓰면서 사용했고 이 소설은 다음 해인 1937년,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해 'Young and Innocent'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비디오로 나온 적이 있다.) 죠세핀 테이란 이름은 그녀의 어머니 이름과 할머니의 영국식 '성'을 혼합한 것이었다. 그녀는 세 딸들 중 장녀였고 버밍엄의 앤스티 체육 전문학교에 들어갔으며(후일 그러니까 1946년 조세핀 테이는 바로 이 학교를 무대로 한 스릴러 'Miss Pym Disposes'를 쓰게된다.) 체육교사로 지내다가 아버지가 몸져 눕게 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간호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조세핀 테이는 '작은 아씨들'의 루이자 메이 올콧 처럼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연애담도 하나도 없다. 그녀의 희곡만을 골라 편찬한 바 있었던 John Gielgud 경은 테이의 연인이 1차 대전중 사망했을 것이라 추정했지만 밝혀진 것은 없다. 평소 그녀의 결혼에 대한 지론이 그녀의 대표적 캐릭터 그랜트 형사의 말을 통해 나타난 바가 있다고 한다. 그랜트는 어딘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타인을 통해서 그 충족을 구하지 않는다네. 결혼도 포함해서 말이지. 오로지 그들 스스로 그 충족을 구한단 말일세." 오로지 홀로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충만케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죠세핀 테이의 모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평생 그녀의 모토대로 살다가 삶을 마감했다. 그야말로 '독립적인 삶' 자체였다. 그녀의 전재산은 영국의 'National Trust'에 모두 기부되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작품 'A Shilling for Candles'에서 희생자로 나온 유명한 여배우도 똑같이 전재산을 'National Trust'에 기부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작품을 썼을 때 부터 이미 자신의 삶에 대한 중요한 것들을 미리 결정해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낚시와 승마를 좋아했다. 직업도 체육교사이고 보면 죠세핀 테이의 삶 전체에서 여성적인 특성이 두드러지는 면은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왠지 '고독의 우물'을 쓴 작가 '레드클리프 홀'이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나 조세핀 테이는 승마를 좋아했는데 이러한 승마에 대한 사랑은 이 작품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에서도 면면히 나타나고 있다. 단적으로 주인공 변호사인 로버트가 자신은 형사사건에 그리 밝지 못하여 유능한 형사 전문 변호사 케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하지만 로버트는 케빈이 과연 자신이 맡고 있는 의뢰인 샤프 모녀를 믿어줄지 확신할 수 없다. 로버트는 케빈과 샤프 모녀를 직접 만나게 하는데 케빈은 로버트의 우려와는 달리 샤프 모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흔쾌히 사건을 맡는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자네 마녀들이 마음에 들었어. (...) 찰리 메러디스의 동생이라니 참 별일이 다 있지. 최고였다고, 그 영감. 인류 역사상 대략 단 하나뿐인 정직한 말 장수가 아닐까. 그 조랑말을 생각하면 내 정말 한시도 고마움을 잊어본 적이 없다네. 소년이 어떤 말을 처음 갖는지는 아주 중요하거든. 평생을 좌우한단 말이지. 말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까지. 소년과 좋은 말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와 우정엔..." (p.291)

 

   로버트도 그리 생각했지만 케빈은 그 좋은 말을 정직하게 자신에게 판매해 준 그 찰리 메러디스의 동생이라면 누구를 납치한다는 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에 대한 신뢰가 인간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것은 오랫동안 승마를 하면서 말과의 관계를 다져온 조세핀 테이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이며 케빈의 고백은 사실 테이 자신의 말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이렇게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사실 죠세핀 테이의 자전적인 모습이 많이 나타나 있다. 특히 여주인공 매리언 샤프는 그야말로 죠세핀 테이의 페르소나라고 할 만한데, 스포일러상 여기서 그걸 자세히 밝힐 수 없는 게 안타깝지만 아마도 조세핀 테이의 실제 모습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어보면, 왜 매리언 샤프를 죠세핀 테이의 페르소나라고 말하는지 저절로 이해가 갈 것이라 생각한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1951년 영화화되었다. 왼족이 로버트 가운데가 매리언 그리고 오른쪽이 샤프 부인이다. 영화는 유투브로 감상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말 그대로 프랜차이즈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어느날 로버트에게 그 저택에 살고 있는 메리언 샤프가 전화로 의뢰를 해 온다. 평소 마을에서 은근히 기피되고 있던 모녀로 부터 뜻밗의 의뢰인지라 로버트는 사실 내켜하지 않는다. 더구나 의뢰하는 건 또한 자기들로서는 전혀 일면식이 없는 한 소녀가 자기들 모녀가 그녀를 납치하고 가혹행위를 했다고 고발한 사건이었다. 로버트는 형사전문이 아니라서 다른 변호사에게 넘기려고 하지만 매리언의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한 마을에 사는 친구로서 진지하게 도움을 구하는 거라는 말에 그만 응낙하고 만다. 매리언의 저택에서 테이의 대표적 캐릭터이자 '시간의 딸'에서 안락탐정의 전형을 보여준 형사 '그랜트'를 만나 사건의 전모를 전해 듣는다.(사실 테이의 소설에 익숙한 사람은 그랜트의 등장과 더불어 그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조연에 그친다. 테이가 그랜트를 등장시켰으면서도 조연에 머무르게 하는 건 이 소설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중요하다. 하지만 그랜트의 의미를 말하려면 아무래도 스포일러를 언급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이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이럴 때 마다 미스터리 리뷰로써의 한계를 절감하지만 어쩌겠는가 미스터리는 어디까지는 읽는 자의 즐거움이 그 첫째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열 여섯이 되는 베티 케인이라는 소녀가 샤프 모녀가 차로 자신을 납치하고 가정부로 삼는 것에 저항하는 그녀를 가혹하게 학대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정확히 프랜차이즈 저택의 모습을 묘사했고 그 내부까지 묘사했기 때문에 경찰도 직접 수사에 나선 것이다. 샤프 모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베티 케인이라는 소녀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가 되는 미스터리는 바로 이것이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소녀의 고발은 정말 고발일까 아니면 무고일까? 소설은 이것을 주된 줄기로 해서 하나하나 가지들을 새로 돋아나간다. 테이는 이 소설의 사건을 18세기에 영국에서 실제 있었던 엘리자베스 케닝 유괴 사건에서 가져왔는데 그 때 케닝은 한 집시무리가 자신을 납치했다고 고발하는 바람에 그 집시 무리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는데도 안그래도 집시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로 부터 어마어마하게 박해를 받았다. 여기서 드러나듯, 엘리자베스 케닝 사건에서의 핵심은 바로 '마녀사냥'이다. 별다른 증거가 없는데도 평소 경원시 되던 존재에 대한 무분별한 비이성적 증오가 핵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테이는 하필이면 왜 그 사건을 모델로 가져온 것일까? 그것은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이 나온 시기를 알면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이 소설은 1948년에 나왔다. 그러니까 2차대전이 끝나고 난지 얼마 안된 시점, 그러니까 파시즘이 가져온 그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 피해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그 시점에 나온 것이다. 2차대전이 가져온 가장 커다란 비극. 나치에 의해서 6백만명 넘게 유태인이 학살당한 것은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쓴다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말했을 만큼 전세계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어마어마한 사람들은 모두 '유태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처형을 당했다. 테이는 아마 거기서 집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억울하게 당해야했던 엘리자베스 케닝 사건을 떠올렸던 것이 틀림없다. 테이는 확인했던 것이다. 나치가 초래한 비극은 어떤 특수한 시점에 일어난 유일한 사건이 아니라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그래서 그녀는 아마도 그것을 알리고 경고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한 파시즘은 언제 또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만일 이렇다면 조세핀 테이는 정말 현명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로부터 정말 얼마되지 않아서 우리는 미국에서 '매카시즘'이라는 또 하나의 마녀사냥식 파시즘을 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조세핀 테이가 '프랜차이즈 저택'을 주 무대로 삼는 것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프랜차이즈' 자체가 마녀사냥과 관련하여 사람들 뇌리에 불러일으키는 그것이다. 그건 바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다. 그 때 드레퓌스는 독일과 내통했다는 간첩 혐의에 대해 따로 진범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그것을 무시하고 끝까지 그에 대한 재판을 강행했는데 그 이유는 다른 이유는 없고 오로지 드레퓌스가 유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회에 만연된 유태인 혐오증 때문에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드레퓌스는 마구잡이로 박해를 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마녀사냥'식 몰아대기. 다시 말 해 원래 혐오하고 있던 자에게 '마녀'의 가면을 씌워 전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배척하고 폭력까지 가하는 무분별한 증오, 파시즘이 보여주었던 그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증오를 독자들에게 떠올리기 위하여 죠세핀 테이는 '프랜차이즈 저택'을 주 무대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죠지 4세(영화 '죠지왕의 광기'의 그 죠지를 말한다.)의 섭정 시대 유행했으나 그 후 빅토리아 양식에 밀려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진 '프랜차이즈' 양식으로 지은 저택을 내세워 그와 똑같이 샤프 모녀가  마치 집시나 유태인 처럼 사회에서 고립적이며 열악한 위치를 가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것은 로버트가 매리언의 전화를 받고 그 프랜차이즈 저택으로 가는 장면에서 놀랍도록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테이는 로버트가 프랜차이즈 저택으로 가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는데 거기서 흥미로운 것은 테이가 유독 대립관계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먼저 '신'거리에서 마주보고 있는 말을 부리는 가게와 자동차 정비소를 통해 대립 관계를 은연중에 보여주더니 좀 더 나가서는 아예 로버트와 프랜차이즈가 있는 전원적인 밀퍼드와  맞닿은 도시적인 라버러와의 대조를 통해 그 대립적인 관계를 재차 확인한다. 문제는 말도 밀퍼드도 그 대립관계에서 열악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말은 시대에 뒤쳐짐을 의미하고 밀퍼드는 프랜차이즈가 현재 있는 곳을 의미한다. 그렇게 프랜차이즈 저택은 열악한 밀퍼드에서 더욱 열악한 자리에 있으며 그들이 그렇게 고립되고 열악한 이유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시대에 뒤쳐진 존재들이라는 사람들의 근거없는 인상 때문이다. 라버러 사람들에게 밀퍼드가 그렇게 인식되어 기피되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프랑스의 아트락 그룹 '샤일록(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그 '샤일록'이다.)의 데뷔 앨범 LP 커버와 같이 찍어 보았다. 커버에 소설 속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둥근 창문이 보인다. 여기에서 보듯이 둥근창문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양식인 것 같다.

 

 

 

 

 

 

 

 세핀 테이의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영문판 표지. 사건의 주무대가 되는 프랜차이즈 저택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시선 처리가 오묘하다. 분명 등장인물 누군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저택의 모습을 그린 듯 하다. 소설을 읽으시면 누군가의 시선인지 아시게 될 것.

  

  조세핀 테이가 전반부에 이렇게 안정된 일상 같지만 그 이면엔 수많은 대립관계가 은밀하게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것은 바로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 되는 로버트와 관계가 있어 중요하다. 소설은 로버트로 부터 시작한다. 그는 변호사이다. 변호사는 그의 가문 대대로 이어내려온 직업이다. 그는 그 가문의 성원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변호사가 되었다. 그렇게 그의 일상은 수백년의 세월이 집적된 견고한 것이었으며 '월, 수, 금요일에는 버터 비스킷이고 화, 목, 토요일에는 다이제스티브'로 집약되듯이 항구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견고하고 항구적으로 생각하는 일상은 사실은 그 이면에 저토록 많은 대립관계가 드리워진 것이었다. 그만큼 불안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로버트도 무의식적으로나마 이것을 알아차린다. 그는 '이것이 네가 이룬 모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일상에 대해 순간 회의감이 든다. 이 정체모를 감정으로 상념에 빠져들 때쯤 매리언에게서 도움을 구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매리언의 그 전화는 이렇게 묻는 것과 같다.

  "로버트, 당신의 일상은 당신이 믿는 것 만큼 견고한가요? 우리에겐 이리도 많은 대립관계가 불안하게 놓여있는데..."

   매리언 또한 분명 로버트 처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그녀들이지만 그래도 지킬 것을 지키고만 살면 괜찮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지도 못하는 소녀에 의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들의 일상이 마구 파괴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마녀 사냥을 당하는 '마녀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테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로버트나 매리언 처럼 우리들의 일상이 견고하고 항구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아무 이유나 잘못 없이 우리의 일상은 오로지 타자의 전적인 악의만으로도 무참히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이미 드레퓌스나 파시즘을 통하여 이것을 충분히 경험했다. 테이는 일상 속에 수없이 가로놓인 대립관계를 통하여 우리네 일상이 그 대립관계를 먹이로 해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파시즘에게 얼마든지 먹음직스러운 토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바로 그 파시즘(여기서 파시즘은 아무 이유 없이 가해지는 개인이나 집단적 폭력 전체를 상징해서 쓰는 말임을 일러둔다. 즉 전적인 이기적인 악의로만 가해지는 폭력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에 의해 일상 자체 마저 느닷없이 무참히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세핀 테이는 바로 그것을 '프랜차이즈 저택'의 샤프 모녀를 통해 보여준다. 케빈을 비롯 로버트 그리고 그의 조카 네빌 마저도 샤프 모녀 특히 매리언을 직접 만나고 나서는 끌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네빌이 직접 말하듯 '그녀들은 온전히 열려있고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즉 테이의 대안은 명백하다. 우리의 일상을 언제든지 무참히 깨어버릴 수 있는 파시즘은 어디까지나 대립관계, 즉 나와 남을 결코 조화될 수 없는 '타자'로만 바라보는 그 시각에 있으므로 '샤프 모녀'처럼 스스로를 타자들에게 열려진 존재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려진 존재로 만들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테이는 소설을 통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모든 등장인물들이 '프랜차이즈 저택'에 직접 와서 그들과 함께 집 내부를 보고 나서야 그들의 편이 되는 이유이며 왜 결정적인 사건의 전환점이 되는 것이 '둥근 창문'이 되는 것인지의 이유이다.(역시나 스포일러상 자세한 언급을 피한다. 하지만 안에서 바라보는 것과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보다 죠세핀 테이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타자의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다.)

  조세핀 테이의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죽 얘기해 온 것 처럼 파시즘이 남기고 간 그 정신적 폐해와 공황 속에서 다시는 그러한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테이 스스로 생각하는 대안을 차근차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미스터리적 재미가 반감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적 재미와 테이 스스로 천착하는 주제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로버트가 매리언에 대한 짝사랑과 그의 잠재적 라이벌들에 대한 질투를 통하여 로맨스적 재미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테이의 팬으로선 작가 자신을 그대로 녹여낸 듯한 매리언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언제든 반복될 지 모르는 파시즘을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가져야 할 것에 대해 교조적이지 않고 공감가능하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낸 솜씨에는 비견될 수 없다. 죠세핀 테이가 이 책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우려는 한시적이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정말 딱 적당한 시기에 우리에게 도달한 것이다. 무분별한 판단과 성급한 비난을 하기 전에 한번쯤 지금의 나 자신은 어떠한 모습인가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도 읽어둘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해답을 해 주었다는 점에서 조세핀 테이에게 경배라도 바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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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욱 깊이 내려간 조세핀 테이의 '나사의 회전'...
    from 헤르메스님의 서재 2012-12-13 00:06 
    이럴수가! 제가 가장 사랑해마지 않는 여류 미스터리 작가인 조세핀 테이의 또 다른 스탠드 얼론 작품인 '브랫 패러'가 출간되었습니다. 작년에는 '프랜차이즈 사건'이 나와서 저를 들썩이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브랫 패러'로 또한 호들갑을 떨게 만드는군요. '브랫 패러'는 사실상 조세핀 테이의 스탠드 얼론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48년에 나온 '프랜차이즈 사건' 바로 다음 해. 그러니까 1949년에 이 작품이 세상에 나왔죠. 굳이 이 작품들을 스탠드 얼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