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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평점 :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양 사나이.
이 이름을 들으면 절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접했던 과거로 돌아간다. 아주 오래된 과거로.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등장했던 양 사나이. 한 때 그는 하루키의 페르소나로도 알려졌었다. 왜 하필이면 양 사나이인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당시 하루키의 세계란 게 개연성이 딱히 요구되는 건 아니어서 그런 질문은 개똥지빠귀에게 왜 하필 개똥지빠귀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그냥 그런 것으로 넘어갔다.
어쨌든 아틀라스처럼 독특한 하루키의 소설 세계를 떠받치는 것만 같던 양사나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키의 소설에서 시나브로 사라져갔다. 최근엔 꽤 보기 힘들었는데 어느날 보니 문득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란 책이 나와 있었다. 그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내 입에선 무심결에 ‘오오!’하는 감탄사가 나오고 말았다. 한 번은 꼭 다시 만나고 싶었던 그리운 존재였기에.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는 제목대로 양 사나이가 주인공이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단 한 번도 주연인 적이 없었던 그가 여기서 비로소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 양사나이는 지금 크리스마스를 얼마 안 앞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양사나이 협회로부터 다가올 성 양(양사나이들에게 예수 같은 존재라 생각하면 된다.)의 승천일(성 양은 12월 24일 구덩이에 빠져 유명을 달리했다.)을 기념하여 그를 기릴 음악을 작곡할 작곡가로 선정되었는데 슬럼프에라도 빠져버린 것인지 도저히 작곡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양박사를 만나고 그에게서 자신이 12월 24일 구멍이 뚫린 도넛을 먹는 바람에 더이상 양사나이가 될 수 없는 저주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다.
“저주에 걸리면 양 사나이는 이미 양 사나이가 아닌 거야. 자네가 양 사나이 음악을 작곡할 수 없는 이유는 거기 있다고. 응.”(p. 23)
그러나 낙담은 금물. 양박사가 저주를 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크리스마스 오전 1시 16분에 성 양이 빠진 구덩이와 똑같은 직경과 깊이의 구덩이를 파서 거기로 떨어지면 된다는 것이다. 이미 양 사나이 협회에서 의뢰비를 받아 밀린 월세로 지불해버린 양 사나이는 구덩이를 파서 저주를 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양 사나이가 판 구덩이는 양 사나이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세계로 그를 데려가고 마는데…
하루키가 갑자기 과거의 양 사나이가 그리워져 이 책을 쓴 건 아니었다. 이 책의 발행년도를 찾아보니 1985년이다. 어떤 이들에겐 하루키의 최고작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발표되었던 바로 그 해다. 이걸 염두에 두고 읽으면 왜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에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고 그게 또 하나의 구덩이로 연결되는지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세계가 그리 다르지 않는 까닭이다. 기본 얼개가 비슷한만큼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비슷할 것이라 하는 추정도 가능하다. 여기서 긴 말을 쓸 순 없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그렇기도 하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하루키가 하고자 했던 말을 양 사나이가 성 양이 빠진 구덩이의 직경과 깊이를 100분의 1로 줄여서 팠던 것(저주를 풀기 위해서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양 박사는 말했다.)처럼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만큼 진지하다거나 무거운 건 아니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우일의 일러스트 때문에 그림책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양을 쫓는 모험’의 성공으로 양을 중심으로 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열심히 정립해 나가던 무렵에 나온만큼 초기 하루키 모습이 그리웠던 분들에겐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나 역시 지금의 하루키 보다 그 때의 하루키를 더 좋아하기에 더 즐겁게 읽었음을 마지막으로 밝혀둔다.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