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이어트랜드
서레이 워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모든 일에 나 자신을 열외로 간주했었다. 남들이 떠들어대는 데이트와 애인과 성관계는 내게 딴 세상 이야기였다. 트리스탄이 나타나 내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기 전까지는 내가 어느 정도로 배제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나도 드디어 그들의 일원이 된 것이다.(p. 170)
외모 때문에 평생 타인과 자기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고 생각한 여자가 있다. 자신은 늘 그 선 밖에 홀로 격리된 존재라고. 그의 이름은 플럼. 현재 135kg인 그녀는 뚱뚱한 자신의 몸을 싫어한다. 그녀를 계속 살게 하는 것은 딱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우울증 치료약인 Y. 다른 하나는 날씬한 여자로 만들어주는 수술이다. 오직 그 둘에 의지하여 플럼은 오늘도 '데이지 체인' 잡지의 편집장 키티를 대신하여 키티에게 메일로 외모와 연애에 대해 상담해 오는 십대 소녀들에게 키티인 척 하면서 답변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 플럼을 미행하는 여자가 나타난다. 어디를 가든 족족 나타나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닌데, 어느 날 키티의 사무실에서 그 여자가 두고 간 책을 하나 발견한다. 바로 '다이어트 랜드 대모험'이란 책을.
그 책의 발견을 계기로 플럼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자신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세계가 갑자기 전면에 다가온 것이다. 그 세계를 만들고 이끌어 가는 사람은 베레나 뱁티스트라는 여성. 그런데 그녀의 존재는 플럼에겐 악몽이다. 플럼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선의 공포를 느껴왔다. 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 집이 1920년대의 무성 영화 시절 스타였던 머나 제이드가 살았던 집이라 그녀의 자취를 찾아 온 관광객들이 시시각각 나타나 플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로 마구 찍어댔던 것이다. 날씬한 몸이 되어 그런 시선의 공포에서 자유롭고자 플럼은 실제로 자신처럼 뚱뚱한 몸에서 아주 날씬한 몸으로 변한 여성인 뱁티스트를 TV에서 보고 그녀가 운영하는 다이어트 식단으로 살을 빼도록 도와주는 뱁티스트 프로그램 회원이 된다. 그러나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로 뱁티스트 부부가 죽고 그녀의 딸인 베레나는 전격적으로 프로그램을 취소하여 플럼이 가진 유일한 희망을 날려버린다. 그 충격으로 플럼은 폭식을 감행하게 되어 결국 오늘의 몸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베레나는 사실 현재의 고통을 가져다 준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플럼에게 베레나는 부모의 프로그램은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면서 그 때의 상처에 대해 사죄라도 할 겸, 2만 달러를 줄테니 자신이 하는 뉴 뱁티스트 프로그램을 받아 볼 것을 권한다. 그렇지 않아도 수술 비용이 부족했던 플럼은 베레나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날씬한 몸이 되면 플럼의 과거는 모조리 지워버리고 완전히 새롭개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얼리샤'라는 이름까지 새로이 지어 뉴 뱁티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한편, 미국은 여성을 성폭행한 남자들이 잔인하게 살해되고 여성을 성상품으로 만드는 기업의 고위층 자녀들이 연속적으로 납치되어 일대 혼란에 빠진다. 동일범의 소행이라 미국은 더욱 충격에 빠지는데, 사람들은 어느새 그 범인을 '제니퍼'라 부르게 된다. '제니퍼'가 처형하고 협박하는 대상은 오로지 여성의 권익을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자들 뿐이었으므로 '제니퍼'는 기존 권력에 거센 추격을 받는 한편 많은 지지를 얻기도 한다. 플럼은 그러한 제니퍼의 활동을 보며 제니퍼가 혹시 자신을 베레나와 만나게 한 리타가 아닐까 의심한다.
이처럼 원래는 여성 문제애 대해 많은 글을 썼던 칼럼니스트인 서레이 워커의 첫 소설, '다이어트 랜드'는 제목 때문에 다이어트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간 낭패를 볼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다이어트에 대한 것은 하나도 알려주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정반대의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플럼이 받게 되는 뉴 뱁티스트 프로그램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금단과 정면 대결 그리고 변신의 단계로 이루어진 '뉴 뱁티스트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적은 플럼의 소망과는 정반대로 플럼이 아니라 얼리샤를 지우는 데 있기 때문이다. 플럼에게 다이어트는 무리가 되고자 하는 갈망에서 나온 것이었다. 플럼은 비대한 몸 때문에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마저 할 수 없는 자신을 많이 비관했었다. 다른 사람이 다 하는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인데도 여기저기서 들려오거나 보여지는 자신을 비웃는 킥킥거리는 웃음, 조소어린 눈길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오직 뚱뚱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쏟아지는 조소와 경멸 속에서 플럼은 외롭고 두렵기만 했다. 다이어트는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플럼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죄는 조소와 경멸을 보낸 이들에게 있었다. 그녀는 책임지지 않아도 좋을 책임 때문에 괴로워했고, 짓지 않은 죄 때문에 힘들어했다. '뉴 뱁티스트 프로그램'은 이를테면 시선 교정이다. 외롭고 두렵다면 외롭고 두려운 이유를 똑똑히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 원인은 결코 플럼에게 있지 않다. 플럼은 오로지 피해자일 뿐이며 부당하게 당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유가 플럼에게 있지 않은데 왜 자학하는가? 베레나는 플럼이 가져야 할 것은 공포가 아니라 분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외로워 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플럼이 일원이 되고자 갈망하는 그들은 절대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뉴 뱁티스트 프로그램을 생각한다면 왜 작가가 플럼과 '제니퍼' 사건을 병행시키는 지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제니퍼'는 사회를 바꾸려는 외적인 변화를, 플럼은 내적인 변화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자가 된 생쥐가 여전히 생쥐의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고양이가 나타나면 달아나기 바쁜 옛 이야기처럼 양성 평등은 제도적 개선만으로 이뤄지진 않는다. 내적인 변화 역시 함께 이뤄질 때 그것은 보다 제대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소설에서 '제니퍼'의 부분이 제대로 매조지 되지 못하고 약간 흐지부지 된 감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래도 범죄라는 형식을 통해 진행된 것이라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그래도 좀 더 살을 더 붙여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밌는 소설이었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너무나 쉽게 희화화 되는 뚱뚱한 여자가 정말 얼마나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 고통을 너무나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기에 혹시 작가가 몸소 겪은 것을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끝까지 흥미롭게 읽게 하면서도 말하고 싶은 주제마저 놓치지 않으니, 지(知)와 정(情) 모두에서 포만감을 주는 작품이다. 띠지에 보면, '시녀 이야기'를 쓴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이 나와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와우, 맹렬하고 기막히게 재미있다.'
나도 동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