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EBS에서 하는 <까칠남녀>에 출연했었다.
여성의 권리에 더 방점이 찍힌 프로인데다
그 프로에서 내가 했던 역할이 거의 무조건적인 여성 옹호였기에,
난 많은 안티팬을 거느리게 됐다.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9월이 됐을 때 난 그 프로를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고,
피디에게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 능력보다 날 더 높이 쳐준 피디는 “그런 게 어딨냐”면서 나를 붙잡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마음이 참 고맙다.
후임자가 없다고 푸념하던 피디는
손아람이라는, 팩트와 논리로 무장한 명석한 남성패널을 후임으로 앉혔고,
덕분에 <까칠남녀>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프로가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프로를 죽자고 욕하는 세력들은
아무도 안보는 시청자게시판을 점령한 채 “까칠남녀 폐지”를 외쳤다.
누가 이런 발언을 했는데 이게 교육방송이 할 짓이냐, 당장 폐지하라,
패널 중 한명은 이런 사람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 폐지하라.
결국 그 뜻이 이루어진 건 12월에 방영된 성소수자 특집이었다.
인기프로 <아는 형님>의 포맷을 따와 성소수자에게 궁금한 것들을
패널들이 묻는 형식으로 구성한 그 회차는
재미와 유익함을 모두 갖춘 수작이었다 (그래서 난 다시보기로 결제한 14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물론 이건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일 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가 훨씬 많았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비난글은 평상시보다 수십배 늘어났고,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시위가 시작됐다.
학부모 연대라는 곳, 개신교 단체, 나중에는 애국보수 단체까지 가세해
EBS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패널 중 한명인 은하선이 잘렸고, 여기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손아람과 이현재. 손희정이 가세하면서
결국 <까칠남녀>는 시즌1 종료를 앞두고 없어지고 만다.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감은 담당피디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셌다.


 

 

 

 

 

 

 

 

월요일 밤 11시 35분부터 방영되는 이 프로가

그 시간에 잠자기 바쁠 아이들 교육에 얼마나 큰 지장을 초래했는지 난 모르겠다.
그들은 프로가 음란하다고 말하지만, 그 회차 어디에서도 난 음란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프로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그들의 말에도 동의가 안된다.
사회학자 오찬호가 쓴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의 역사가 무구하다는 뜻은
그렇게 박해를 한다고 해서 (동성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방증한다.
어느 사회에나 동성애자는...특정 비율로 존재한다. 통계상 동성애자의 비율은 9-11% 사이이다....
동성애를 인정한 나라에서 동성애자가 범람한 사실은 없다. (110쪽)]
다시 말해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에 더 가깝다는 얘기,
하지만 동성애 반대자들에게 이런 팩트를 제시하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것이,
그들은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어떤 주장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EBS 반대집회에 나온 목사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목사: 여러분, 까칠남녀 봤나요?
일동: 안봤어요.
목사: 잘하셨어요. 그런 프로 보면 안되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해당 회차도 보지 않은 채 거리로 나왔다는 얘기,
그러면서도 추위를 무릅쓰고 반대집회에 나온 맹목이 무섭다.
이런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저들이 일으키는 소동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진작 그만둔 것이 좀 미안하다.
피디와 제작진, 그리고 패널들이 마음고생하는데
난 한발 떨어진 곳에서 이 사태를 관망만 하고 있는 것이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게시판에 있는 다음 글이 날 웃게 만든다.

 

 

애들아, 욕하기 전에 최소한 방송은 보고 욕하는 게 도리란다.

나, 9월에 그만뒀거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25 0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8-01-2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말씀감사합니다 근데 이건 전혀상처가 안돼용 전지금 관망자인걸요 열시미할게요

2018-01-25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8-01-25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윗님 긴말씀감사합니다 님의견존중합니다 다만 이런 건 있어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이 남들 눈을의식해 이성애자처럼 행동 하고 결혼까지 한다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동성애자 가 다시 이성애로 전환 된 사례가 있는지는 처음 알았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雨香 2018-01-26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칠남녀를 종종 봤는데요. 이처럼 젠더에 대해 교육적인 프로그램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가만히 냅둘까라는 걱정도... 그래도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출연진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초보 입장에서 잘 조율한 박미선님, 적당히 욕먹을 위치에 선 정영진님, 여전사 같았던 은하선님, 그리고 서민 님이 감초같은 역할을 하셨는데.... ㅠㅠ

마태우스 2018-02-17 13:18   좋아요 1 | URL
저는 좀 부족한 점이 많았죠. 제가 그만둔 뒤 나온 손아람 작가님이 역할을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비난여론에 결국...ㅠㅠ 아쉽네요.

moonnight 2018-01-28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소수자 특집편을 보고, 드디어 이런 프로그램이 방영되는구나 뿌듯했는데 ㅠㅠ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 답답해요.ㅠㅠ

마태우스 2018-02-17 13:17   좋아요 0 | URL
그죠. 최소한 보고 비판했으면 좋을텐데요
 

 

 

 

 

 

 

 

 

 

 

 

 

 

개 산책은 영 신경쓰이는 일이다.
공원이라고 해봤자 사람을 위한 공간인지라
개를 데리고 가는 게 영 불편했다.
개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디나 있고, 그들은 노골적으로 개에게 불쾌감을 표시하니까.
최시원 사건이 난 뒤에는 개 산책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작년 말, 천안에 강아지를 위한 공간이 생겼다.
공원의 일부에 철제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서 개들이 놀 수 있게 만든 곳으로, 
개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개들이 목줄을 매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매주 로또를 사는 게 마당이 있는 별장을 사기 위해서였는데,
집에서 십여분 거리-천안은 모든 곳이 다 십여분이긴 하다-에 개 공원이 마련됐으니
굳이 별장을 살 필요가 없어졌다. 
아내와 난 작년 말부터 시간 있을 때마다 개들을 공원에 데려가 놀게 하면서
그간 꿈꿔온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개주인들이 개똥을 잘 안치운다는 점이다.
아침 일찍 공원에 갈 때마다 전날 싼 똥들이 널려 있는데,
개똥을 치울 비닐도 비치해 놓는 등 공원 측에서 나름의 배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똥을 안치우는 인간들은 아주 많다. 
개똥은 장비의 문제가 아닌,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내와 난 개가 다섯 마리임에도 혹시 응가를 하는지 주의깊게 보다가
일이 벌어지면 잽싸게 달려가 준비된 비닐장갑으로 똥을 수거하는 반면,
일부 개주인들은 개를 놀게 한 뒤 자기는 스마트폰만 하거나 자기들끼리 수다를 떠니,
개가 똥을 싸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면적이 넓지도 않고, 따로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 판에 개똥이 계속 방치된다면
우리에게 소중한 이 공원이 오래지 않아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든다.
그래서 아내와 난, 갈 때마다 남의집 개똥을 보이는 족족 치운다.
하지만 똥은 매일같이 나오고, 바빠서 며칠 못 가기라도 하면 똥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진다.
눈이 온 엊그제, 개똥을 치우다 하도 화가 나서 눈에다 이렇게 썼다.

"개똥치워"

오늘 아침에 가보니 눈은 녹았고, 글씨는 지워졌다.
그리고 예전처럼 개똥이 나뒹군다.


이들은 아마 사람과 함께 이용하는 공간에서도 개똥을 치우지 않았을 터,
개주인들이 욕을 먹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개를 예뻐하는 사람도 남의 개똥이 더러운데,
개를 미워하는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개주인에게 개를 예뻐하는 것에 걸맞은 도덕관념이 있었다면,
최시원 사건 때 개빠들이 그렇게까지 욕을 먹지 않았으리라. 
어떻게 하면 그들의 행태를 개선시킬 수 있을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이좋아 2018-01-11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강아지 산책시킬 때 똥 치우는 건 당연한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군요..

마태우스 2018-01-13 07:41   좋아요 0 | URL
글게 말입니다 너무들 한다 싶습니다 ㅠㅠ 개 동호회 회원들끼리 모여서 개 풀어놓고 지네들끼리 이야기만 한다니까요....ㅠㅠ
 

 

 

 

 

 

 

 

 

 

 

 

 

페미니스트 홍승은은 페이스북에서 아버지를 차단했다.
그래도 핏줄은 끊을 수가 없는 법이라 가끔씩이라도 만날 수밖에 없는데,
한번은 홍승은의 카페에 아버지가 찾아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아빠: 너는 왜 자꾸 아빠 나쁜 점만 글로 쓰냐? 내가 그렇게 나쁘게만 했냐?
홍: 예전에 승희가 말대꾸한다고 쓰레기통 뒤집어서 머리에 쏟은 적도 있고, 나 잘 때 얼굴에 얼음물 부은 적도 있지.
아빠: 아 됐고, 그거 말고 내가 잘해준 것도 있잖아. 내가 요즘 창피해서 못다녀. 무슨 내가 폭력 아빠인 줄 알겠다.
홍: 아빠는 폭력아빠 맞았어. (191쪽)

 

이 대목을 읽다 몇 년 전 생각을 했다.
한겨레신문의 명 인터뷰어 이진순님 덕분에 아버지와의 일을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날 참 미워했고, 폭력도 썼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신문에 나간 뒤 가족들 사이에선 작은 소동이 일었다.
누나와 여동생은 아버지를 나쁘게 묘사했다고 화를 냈고,
그들 때문에 신문을 본 어머니도 “내가 얼굴을 들고다닐 수 없다”고 불쾌해하셨다.
누나와 여동생이 한겨레신문사에 방문해 그 기사를 당장 내려달라고 한 건 그 하이라이트.
뒤늦게 기자한테 그 얘기를 듣곤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었다.
당시 여동생이 내게 이런 문자를 보낸 기억도 난다.
“뜨려면 니 실력으로 뜨지, 왜 아버지를 이용해서 뜨려고 해?”

 

당시 내가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맞았다고 얘기하느냐 마느냐는 맞은 자의 권리이며,
난 그 권리를 향유할만큼 구박을 받았다고 믿었으니까.
그렇긴 해도 내가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뷰에서 그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가 오래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그런 얘기를 못했지 않았을까.
그런데 홍승은은 아버지가 살아계신데도 그런 말을 한다.
그러고보면 홍승은은 정말 용기있는 분이다.
아직 불법으로 규정돼 있는 낙태의 경험을 책에 쓰는 것도 그 용기의 징표인 듯 싶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난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당신이 내게 큰 잘못을 했다고는 생각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을 것 같다. 
아버지 입장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피해자였고, 꿈에도 당신이 폭력아빠란 생각을 못하지 않았을까.
홍승은의 아버님이 쓰신 <고슴도치>를 보면, 그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세상에 진짜 폭력적인 아버지를 못 보았구나.
...졸지에 주인공이 되었다.
페미니스트, 딸 덕분에
그래 애비를 팔아서 잘 된다면야]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12-29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예전부터 찜해두고 있던 책이었는데 새해에 바로 사야겠어요!!

마태우스 2018-01-02 20:33   좋아요 0 | URL
아 네...유명한 책이군요. 다락방님 반갑습니다^^

마늘빵 2017-12-29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마태우스님. 요 글 보고 저도 방금 질렀네요.

마태우스 2018-01-02 20:33   좋아요 0 | URL
앗 네...후횐 안하실 겁니다. 저는 남자라서, 이런 책 보고 많이 배웁니다. 현실에서 느끼는 성차별을 알 수 있거든요

stella.K 2017-12-2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들은 자신이 어떤 폭력을 쓰는지
잘 모를 때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더구나 가부장제에선 더 그렇겠죠.
암튼 이 책 대단한 책 같습니다.
저도 기회되면 함 읽어봐야겠습니다.

마태우스 2018-01-02 20:34   좋아요 0 | URL
글게요 저도 남자라 늘 반성하며 살아야겠죠... 반갑습니다.

책읽어주는여자 2017-12-2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홍씨가 머찌단말이죠!😁

마태우스 2018-01-02 20:34   좋아요 0 | URL
아 네...홍씨가 멋지죠. ^^

재는재로 2017-12-31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마태우스 2018-01-02 20:34   좋아요 0 | URL
앗 재는재로님 이미지 없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ㅠㅠ
 

 

 

 

 

 

 

 

 

 

 

 

 

 

조그만 걸 보내주면 어마어마한 선물을 답례로 보내주는

보기드문 지인에게 내가 쓴 새 책을 보냈다.

아니나다를까, 그로부터 며칠 후 택배가 왔는데

여러가지 선물 중 하나가 스티로플 박스에 들어있는 굴이었다.

물론 난 굴을 좋아한다.

석사와 박사논문 주제가 굴에서 나온 기생충이기도 했고 (여러분, 양식굴엔 기생충 없습니다! 걱정마세요)

먹는 것도 아주 즐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그 많은 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거 일일이 껍질 다 까서 손질해야 하거든. 보관할 만한 장소도 없고 내일 해야 하는데,

너 출근하면 나 혼자 어떻게 해?"

고민하던 아내는 몇 군데 전화를 돌렸고,

아파트 사람과 전에 알던 피아노선생 등 온갖 인맥을 동원해 그 굴을 나눠줬다.


다음날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이 얘기를 했다.

"글쎄 굴이 들어와서 어쩌고 저쩌고."

어머니는 멀리서 발을 동동 구르셨다.

"아이고, 나 주면 좋았는데."

이럴 수가. 어머니가 굴을 좋아하시나?

어머니: 그럼, 나 굴 너무너무 좋아해. 나 줬으면 좋은데.

나: 그거, 껍질 다 까야 하는데요?

어머니: 그게 무슨 상관이냐. 내가 굴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갑자기 죄송했다. 아, 어머니가 굴을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난 몰랐구나. 이런 불효자 자식 같으니.

하지만 집에 있는 굴을 보내드리기 어려운 것이

택배가 배달되는 이틀간 그 굴이 상할 수도 있어서였다.

그래서 난 인터넷에서 찾은 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깐 굴 4인분(4만원)과 안깐 굴 10킬로 (2만원)를 주문했다.

굴이 다음날 온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소녀처럼 웃으셨다.

그리고 어젯밤, 본가 근처에서 일이 끝났기에 잠시 어머니 댁에 들렀다.

어머니는 매우 힘든 표정이었다.

나: 어머니, 굴 잘 드셨어요?

어머니: 말도 마라. 그것 때문에 아주 죽을 뻔했다.

나: 네???


사정은 이랬다.

굴 10킬로를 본 어머니는 그 개수에 충격을 받았고, 이걸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본가 근처에 사는 만만한 제수씨와 조금 멀리 사는 누나를 불렀다.

세시간 가까이 그들은 굴을 까고, 씻고, 양념했다.

어머니는 이 일을 자초하신 분이니 그렇다치고, 누나야 어머니 딸이니 또 그렇다 치지만,

제수씨는 굴을 까는 내내 날 원망했으리라.


여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내가 어머니 말씀에 너무 쉽게 넘어간 면도 있다.

1) TV에 해삼이 나왔을 때

엄마: 맛있겠다

나: 엄니, 해삼 좋아하세요?

엄마: 그럼, 나 해삼 너무너무너무 좋아해.

해삼 좋아하는 것도 모르는 이 불효자 아들 같으니! (이 얘기는 공저 <엄마 사랑해요>에 실렸다)

--> 해삼 사드림.


2) 어디 가서 게장 먹었다는 얘기 하니까

엄마: 게장 먹었냐. 장하다. 그거 정말 맛있지.

나: (괜히 찔려서) 엄마도 좋아하세요, 게장?

엄마: 그럼, 나 게장 너무너무 좋아해.

아, 난 불효자구나. 게장 좋아하는 것도 몰랐다니. ---> 게장 보냄


전복, 더덕, 언양불고기 등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인간이 먹는 거의 모든 음식을 "너무너무 좋아하셨다".

이런 면이 어머니를 건강하게 만들어줬고, 항암투병도 이겨낼 수 있게 한 비결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 어머니가 뭘 좋아하신다는 말에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냥 맛있는 게 있을 때 보내드리면 되니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v책한엄마_mumbooker 2017-12-23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그러게요.^^
긍정적인 면이 오늘날 교수님을 만든 건 아닌가 싶어요.

작년에 이어 올해 북플마니아 서재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쓰신 ˝서민적 글쓰기˝를 읽고 시작한 알라딘 블로그 활동입니다.
사실 올해 기대 안 했는데 된 걸 보곤 갑자기 교수님 생각이 났어요.
참-감사한 분이다-이런 생각을 했어요.

올해 교수님 책 거의 다 샀어요.
˝서민적 독서˝ ˝서민 정치˝ b급 정치(?) 등등-이상하게 사 놓으면 읽질 않는 고질병 때문에 고이 모셔두고만 있네요.^^
내년에 슬슬 읽고 평을 남겨보겠습니다.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마태우스 2017-12-26 23:59   좋아요 1 | URL
와아...제 책을 다 사셨다니 이것 참 부끄럽습니다. 내년부턴 사지 마시고, 제 서재에 주소 남겨주세요. 제가 드릴게요. 근데 제 책 덕분에 알라딘 블로그를 시작하셨다니, 제가 으쓱해지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stella.K 2017-12-24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 같으면 엄마는 먹지도 않으면서 욕심만 많다고
뭐라고 했을 것 같아요.
정말 연로해지시면 잘 못 드실까 봐 걱정되더라구요.
그래도 아직은 잘 드셔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마태님도 어머니 드시겠다면 무조건 사 드리세요.
잘 드시고, 건강하시면 좋죠.^^

마태우스 2017-12-26 23:58   좋아요 1 | URL
네..어머니한테 받은 게 너무 많은지라 앞으로는 잘 하려고 합니다! 잘 드시는 게 건강의 지름길이죠!

moonnight 2017-12-2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한 고민이셔서 막 웃었네요^^;;;


하여간에.. 서민 교수님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마태우스 2017-12-26 23:57   좋아요 0 | URL
넷 응원에 늘 감사드립니다!
 

 

 

 

 

 

 

 

 

 

 

 

난 못생겼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누군가가 나더러 잘생겼다고 하면 불끈 화가 난다.

그게 진심이 아니라 생각해서다.

 

이런 나도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강연을 한 곳은 강연자의 피겨를 만들어주는 독특한 관행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 피겨를 보자마자 "이건 좀 아니지 않냐!"며 절규하고 말았다.

아무리봐도 이건 실제의 나보다 더 못생겼지 않은가!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전송했더니 아내가 이런다.

 

"ㅎㅎㅎㅎㅎ 나 실물사진인 줄 알았다"

 

 

그랬다. 나랑 같이 사는, 가끔씩 "넌 못생기지 않았어"라고 위로도 하는 아내는

내가 저 피겨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난 스스로 못생겼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실제론 저거보단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남성들이 자신을 괜찮은 외모라고 생각한다던데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이 피겨를 가져가면서 이걸 어디다 쓰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지금 아내는 이 피겨를 내가 말 안들을 때 때리거나 찌르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밖에 있을 때 몸 어딘가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이런 생각을 한다.

아내가 또 내 피겨를 때리나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7-12-02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태우스 2017-12-03 13:16   좋아요 1 | URL
실물이 낫다고 한마디만 좀....^^

재는재로 2017-12-02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판의120%싱크로율한 피규어네요 속이쓰리실듯 ㅋㅋ~

마태우스 2017-12-03 13:16   좋아요 1 | URL
제가 그정도입니까.. 그럼 진짜 못생긴 거군요...ㅠㅠ

프레이야 2017-12-03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한밤에 한바탕 큰웃음 주시네요 ㅎㅎㅎㅎㅎ 절규하셨다니.

마태우스 2017-12-03 13:16   좋아요 1 | URL
이거 보시면 정말 절규하게 됩니다 ㅜㅜ

transient-guest 2017-12-03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울 나이엔 매력이 더 중요하죠 지성미가 넘치는 서민 선생님은 충분이 잘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17-12-03 13:16   좋아요 1 | URL
그럼 뭐합니까 피겨에 반영이 안되는데...ㅠㅠ

2017-12-03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4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12-03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왜 그리 생각하십니까?
분명 피규어가 더 잘 생기긴 했거든요.
실물이 더 잘 생겼다고 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거울 효과인가? 그런 게 있다잖습니까?
나 보다 더 잘 생긴 배우의 얼굴을 냉장고문에 붙여놓고
난 저 사람처럼 잘 생긴 사람이 될 거야.
그러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지 않습니까?
저 피규어를 사랑해 보세요. 마태님 거 잖아요.
분명히 마태님은 지금 보다 더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실 겁니다!

아, 그런데 써 놓고 보니까 좀...
분명 좋은 뜻인데. 왜 이렇게 됐지? 3=33=333

마태우스 2017-12-04 12:38   좋아요 0 | URL
피겨가 아니라 피규어군요 ㅜㅜ
근데 저 피규어를 아무리 봐도 사랑하게 되지 않아요 ㅠㅠ
무섭다니깐요...
도망치지 말고 제대로 된 해법을 주세요

stella.K 2017-12-04 13:57   좋아요 0 | URL
아이고, 죄송합니다.ㅠ
솔직히 그런 게 있긴하죠.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나는 용납이 안 되는 거요.
저는 분명 저 피규어 잘 나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마태우스님은 그 자체로도 좋으니까
정 좋아할 수 없다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답이 됐나요?ㅋㅠ

마태우스 2017-12-07 03:58   좋아요 0 | URL
아 네...암튼 이런 저랑 친하게 지내주는 스텔라K님, 고맙습니다^^

2017-12-06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7-12-07 03:59   좋아요 0 | URL
오옷 정말 객관적인 평가! 그죠 몸매는 제가 좀...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