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홍승은은 페이스북에서 아버지를 차단했다.
그래도 핏줄은 끊을 수가 없는 법이라 가끔씩이라도 만날 수밖에 없는데,
한번은 홍승은의 카페에 아버지가 찾아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아빠: 너는 왜 자꾸 아빠 나쁜 점만 글로 쓰냐? 내가 그렇게 나쁘게만 했냐?
홍: 예전에 승희가 말대꾸한다고 쓰레기통 뒤집어서 머리에 쏟은 적도 있고, 나 잘 때 얼굴에 얼음물 부은 적도 있지.
아빠: 아 됐고, 그거 말고 내가 잘해준 것도 있잖아. 내가 요즘 창피해서 못다녀. 무슨 내가 폭력 아빠인 줄 알겠다.
홍: 아빠는 폭력아빠 맞았어. (191쪽)
이 대목을 읽다 몇 년 전 생각을 했다.
한겨레신문의 명 인터뷰어 이진순님 덕분에 아버지와의 일을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날 참 미워했고, 폭력도 썼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신문에 나간 뒤 가족들 사이에선 작은 소동이 일었다.
누나와 여동생은 아버지를 나쁘게 묘사했다고 화를 냈고,
그들 때문에 신문을 본 어머니도 “내가 얼굴을 들고다닐 수 없다”고 불쾌해하셨다.
누나와 여동생이 한겨레신문사에 방문해 그 기사를 당장 내려달라고 한 건 그 하이라이트.
뒤늦게 기자한테 그 얘기를 듣곤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었다.
당시 여동생이 내게 이런 문자를 보낸 기억도 난다.
“뜨려면 니 실력으로 뜨지, 왜 아버지를 이용해서 뜨려고 해?”
당시 내가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맞았다고 얘기하느냐 마느냐는 맞은 자의 권리이며,
난 그 권리를 향유할만큼 구박을 받았다고 믿었으니까.
그렇긴 해도 내가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뷰에서 그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가 오래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그런 얘기를 못했지 않았을까.
그런데 홍승은은 아버지가 살아계신데도 그런 말을 한다.
그러고보면 홍승은은 정말 용기있는 분이다.
아직 불법으로 규정돼 있는 낙태의 경험을 책에 쓰는 것도 그 용기의 징표인 듯 싶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난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당신이 내게 큰 잘못을 했다고는 생각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을 것 같다.
아버지 입장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피해자였고, 꿈에도 당신이 폭력아빠란 생각을 못하지 않았을까.
홍승은의 아버님이 쓰신 <고슴도치>를 보면, 그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세상에 진짜 폭력적인 아버지를 못 보았구나.
...졸지에 주인공이 되었다.
페미니스트, 딸 덕분에
그래 애비를 팔아서 잘 된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