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EBS에서 하는 <까칠남녀>에 출연했었다.
여성의 권리에 더 방점이 찍힌 프로인데다
그 프로에서 내가 했던 역할이 거의 무조건적인 여성 옹호였기에,
난 많은 안티팬을 거느리게 됐다.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9월이 됐을 때 난 그 프로를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고,
피디에게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 능력보다 날 더 높이 쳐준 피디는 “그런 게 어딨냐”면서 나를 붙잡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마음이 참 고맙다.
후임자가 없다고 푸념하던 피디는
손아람이라는, 팩트와 논리로 무장한 명석한 남성패널을 후임으로 앉혔고,
덕분에 <까칠남녀>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프로가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프로를 죽자고 욕하는 세력들은
아무도 안보는 시청자게시판을 점령한 채 “까칠남녀 폐지”를 외쳤다.
누가 이런 발언을 했는데 이게 교육방송이 할 짓이냐, 당장 폐지하라,
패널 중 한명은 이런 사람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 폐지하라.
결국 그 뜻이 이루어진 건 12월에 방영된 성소수자 특집이었다.
인기프로 <아는 형님>의 포맷을 따와 성소수자에게 궁금한 것들을
패널들이 묻는 형식으로 구성한 그 회차는
재미와 유익함을 모두 갖춘 수작이었다 (그래서 난 다시보기로 결제한 14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물론 이건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일 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가 훨씬 많았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비난글은 평상시보다 수십배 늘어났고,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시위가 시작됐다.
학부모 연대라는 곳, 개신교 단체, 나중에는 애국보수 단체까지 가세해
EBS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패널 중 한명인 은하선이 잘렸고, 여기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손아람과 이현재. 손희정이 가세하면서
결국 <까칠남녀>는 시즌1 종료를 앞두고 없어지고 만다.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감은 담당피디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셌다.


 

 

 

 

 

 

 

 

월요일 밤 11시 35분부터 방영되는 이 프로가

그 시간에 잠자기 바쁠 아이들 교육에 얼마나 큰 지장을 초래했는지 난 모르겠다.
그들은 프로가 음란하다고 말하지만, 그 회차 어디에서도 난 음란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프로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그들의 말에도 동의가 안된다.
사회학자 오찬호가 쓴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의 역사가 무구하다는 뜻은
그렇게 박해를 한다고 해서 (동성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방증한다.
어느 사회에나 동성애자는...특정 비율로 존재한다. 통계상 동성애자의 비율은 9-11% 사이이다....
동성애를 인정한 나라에서 동성애자가 범람한 사실은 없다. (110쪽)]
다시 말해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에 더 가깝다는 얘기,
하지만 동성애 반대자들에게 이런 팩트를 제시하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것이,
그들은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어떤 주장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EBS 반대집회에 나온 목사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목사: 여러분, 까칠남녀 봤나요?
일동: 안봤어요.
목사: 잘하셨어요. 그런 프로 보면 안되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해당 회차도 보지 않은 채 거리로 나왔다는 얘기,
그러면서도 추위를 무릅쓰고 반대집회에 나온 맹목이 무섭다.
이런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저들이 일으키는 소동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진작 그만둔 것이 좀 미안하다.
피디와 제작진, 그리고 패널들이 마음고생하는데
난 한발 떨어진 곳에서 이 사태를 관망만 하고 있는 것이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게시판에 있는 다음 글이 날 웃게 만든다.

 

 

애들아, 욕하기 전에 최소한 방송은 보고 욕하는 게 도리란다.

나, 9월에 그만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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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5 0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8-01-2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말씀감사합니다 근데 이건 전혀상처가 안돼용 전지금 관망자인걸요 열시미할게요

2018-01-25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8-01-25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윗님 긴말씀감사합니다 님의견존중합니다 다만 이런 건 있어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이 남들 눈을의식해 이성애자처럼 행동 하고 결혼까지 한다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동성애자 가 다시 이성애로 전환 된 사례가 있는지는 처음 알았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雨香 2018-01-26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칠남녀를 종종 봤는데요. 이처럼 젠더에 대해 교육적인 프로그램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가만히 냅둘까라는 걱정도... 그래도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출연진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초보 입장에서 잘 조율한 박미선님, 적당히 욕먹을 위치에 선 정영진님, 여전사 같았던 은하선님, 그리고 서민 님이 감초같은 역할을 하셨는데.... ㅠㅠ

마태우스 2018-02-17 13:18   좋아요 1 | URL
저는 좀 부족한 점이 많았죠. 제가 그만둔 뒤 나온 손아람 작가님이 역할을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비난여론에 결국...ㅠㅠ 아쉽네요.

moonnight 2018-01-28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소수자 특집편을 보고, 드디어 이런 프로그램이 방영되는구나 뿌듯했는데 ㅠㅠ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 답답해요.ㅠㅠ

마태우스 2018-02-17 13:17   좋아요 0 | URL
그죠. 최소한 보고 비판했으면 좋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