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원하는 책이 없는지라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
신방도서관이라고, 굉장히 근사한 외관에 책도 많이 있는데다
도서관 앞 전경도 꽤 아름다워 이용객이 많다고 소문난 곳이다.
강아지 산책 땜시 그 앞에 간 적은 있었어도 책 빌리러 간 적은 처음인데,
1층 사무실에 가서 "대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자
한 여자분이 "2층에 가서 하시면 됩니다"라고 한다.
그 말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내가 서운했던 건
"아니 날 몰라보다니!"였다.
내가 이렇게 바람이 든 건 최근 몇 년간 도서관에 강연을 나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도서관은 물론이고 광주나 부산기장, 대전 등등
전국의 도서관에서 강연요청이 오는데,
강의하러 갈 때마다 직원 분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유, 이렇게 와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처음엔 이런 말들에 전혀 현혹되지 않았다.
간혹 우쭐한 마음이 들 때마다 "저건 그냥 예의상 한 말이야. 정신차려 민아!"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는데
계속 듣다보니 마음이 점점 풀어진다.
게다가 다음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더 버티기가 어려웠다.
2017년 1월, 창원의 모 도서관, 운영회의.
위원1: 올해 도서관 특강 연자를 정해야 하는데요, 누가 좋겠어요.
위원2: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설민석 선생과 서민을 부르면 좋겠습니다.
위원1: (한숨을 쉬며) 부르면 좋지요. 근데 그분들이 부르면 온답니까?
위원3: 저....제가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나머지 위원들이 반신반의하며 위원3을 바라봤지만
위원3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내가 처음 방송에 나가던 21년 전-3개월만에 잘렸다-
그녀는 몇 안되는 나의 팬을 자처했고,
옷도 보내주는 등 내게 고맙게 해준 적이 있으니까.
게다가 난 그분한테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게 없어서,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
위원3의 연락에 난 흔쾌히 그러마고 했고,
5월달에 그 도서관에 가서 강의를 하고 왔다.
어릴 적 은혜를 갚은 스토리인데다
잠시나마 설민석과 동급으로 취급되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좀 자만하기 시작했던 게 말이다.
그러니 신방도서관의 직원이 날 몰라준 게 서운할 수밖에.
2층에 올라갔더니 남자 직원 셋이 앉아 있었다.
원래 내가 기대한 반응,
직원: 아니, 서민선생님이 저희 도서관에 오시다니! 영광입니다.
나: 별말씀을요. 부끄럽습니다 (속으론 흐흐흐)
직원: 이 동네 사시나봐요?
나: 네, 6년 전에 이사왔습니다.
직원: 아, 몰랐습니다. 그러시면 저희 도서관에서 언제 강연이나 한번...
나: 그럼요, 저희 동네인데 부르면 기꺼이 가야죠.
하지만 대출카드를 만드는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은 날 알아보지 못했고,
근처를 오간 도서관 이용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빌려서 나가는데, 도서관 벽에 신방도서관 특강에 관한 포스터가 붙어 있다.
"강사 누구누구, 금요일 10시반부터 강의...."
도서관을 나가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흥, 나보다 안유명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