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리커버 특별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지금의 알랭 드 보통을 만든 그의 사랑시리즈 3부작중 하나다. 작년에 최근작인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고 올해 리커버판으로 나온 이것을 샀다.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이 이미 50대가 되어 결혼의 온갖 맛을 알아버린 보통이 쓴 것이라면 이 책은 아직 20대 정도의 나이에 쓴 것이다. 책 내용에서도 세월이 느껴진다. 워크맨이 등장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자동차 공장 몇개를 정리해서 한국이나 말레이시아의 자동차산업을 육성하는가 그 나라전체를 먹여살린거란 말도 나온다.(2018년인 지금은 한국과 프랑스, 영국간의 경제규모는 큰 차이가 없다.)

 보통의 책 답게 연애와 관련한 날카로운 심리묘사나 재밌는 그림이나 도식으로 표현하는 사랑과 연애관계는 이 책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그리고 볼때마다 그의 연애 소설은 내가 심리책을 보는 것인지 소설책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약간 가벼운 철학책을 보는 것인지 헛갈리게 하는 맛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보통은 남자임에도 상당히 여성중심의 서술을 한다. 작가를 모르고 본다면 여성작가의 책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사랑일까에도 결핍되고 사랑에 굶주린 두 남녀가 나온다. 서로 결핍되고 굶주렸으며 성까지 다르니 그들은 당연히 끌릴 수 밖에 없다. 여자 주인공은 앨리스다. 가정환경은 불우했다. 물질적으론 나쁘지 않았고, 사업가인 아버지를 둔 덕에 국제경험이 매우 풍부하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워낙 국제적으로 크다보니 민족성이나 국적이 주는 느낌 같은 것이 부족하다. 거기에 이기적이고 자녀에 관심이 없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안정적이고 지탱해주는 것을 갈망하게 되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고,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제 겨우 24세에 불과하다.

 남자는 에릭이다. 잘생기고 몸도 좋은 편이며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은행에서 일하는 이유도 자못 놀라운데 공부를 잘해 의사가 되었지만 의사란 직업이 주는 돈벌이가 본인의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하긴 영국은 의료가 공공서비스이니 그럴지도.) 나이는 31세이며 많은 형제와 함께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상당히 말이 재치있고, 유머가 있으나 은행가라서 그런지 경쟁적 사회를 선호하는 편이며 사회적 약자의 경우 무능한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둘은 한 파티에서 만난다. 앨리스는 특유의 의존적 성격으로 자신의 연애공백기가 계속되는 것에 적지 않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고, 그 자리로 에릭이 훅 치고 들어온다. 굳이 그런게 아니어도 에릭은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조금 튕겼던 앨리스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그와 잠자리를 갖는다. 그리고 깨어나서 둘은 연애란걸 조심스레 시작한다. [서양의 일단 자고 연애를 시작하는 이런 문화는 좀처럼 적응이 안된다. 한국도 성관계가 보다 빨리졌지만 여전히 성관계는 연애 이후에 일어나는 편이다.]

 둘은 상당한 성격차이를 보이는데 앨리스는 정치적으로 좌파적이고 문학을 비롯한 책읽기를 좋아하고 다소 내성적이고 의존적인 반면, 에릭은 우파에 가깝고 책을 굳이 읽는다면 '코만도'나 군사관련 책을 읽으며 매우 외향적이고 내적인 대화들을 쓰잘데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이런 서로의 차이는 초기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피로도가 점차 쌓여간다.

 불만은 앨리스에게서 시작되고 커져나간다. 모든 일상이 앨리스보다는 에릭 중심으로 진행되며 에릭은 앨리스의 독특한 부분은 낮게 치부한다. 책을 좋아하는 것을 폄하하고, 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은 쓸데없는 분쟁으로 여기며, 골동품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앨리스는 에릭에게 의존하며 그의 이런 면들을 그져 억지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생각하고 덮어나가지만 슬슬 한계상황이 다가온다.

 그리고 뭐가 문제인지 알게하는 남자가 나타나니 바로 필립이다. 골동품을 사러가는 것을 거부한 에릭덕에 친구 수지덕에 앨리스는 필립과 골동품가게를 가게 된다. 둘은 취향이 잘 맞았고, 필립과 이야기하면 앨리스는 자신감이 살아나고 진정 자기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앨리스는 에릭에게 점차 불만을 드러내고 에릭은 위기감을 느끼고 이를 맞춰나가지만 앨리스의 이별통보를 피하지 못한다. 에릭은 거의 처음으로 사랑을 앨리스에게 말하나 모든 것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이렇게 앨리스는 자신을 알아주는 필립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이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준다면 이 책은 보다 어렸을 적 20대의 연애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기분이 들어 재밌다. 둘을 굳이 비교하자면 낭만적 연애쪽이 보다 완성도가 높고 짜임새가 있지만 같은 작가가 훨씬더 나이가 들어서 쓴 책이니 이렇게 비교하는 건 공정치 못하단 느낌이다.

 사랑에 관련한 보통의 다른 두 초기작도 보고 싶어졌다. 사랑과 연애과정, 결혼을 다루는 보통의 솜씨는 상당하다. 지금까지 본 두 책만 본다면 일종의 공식도 느껴지는데 서로 성장배경과, 유전인자부터 제법 많이 다른 두 남녀가 등장해, 서로의 다름과 비슷함으로 사랑에 빠지지만 그 다름과 비슷함으로 위기에 빠지며 그런 그들에게 다른 매력적인 남여가 등장해 다른 전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 과정을 재밌는 비유와 표현과 철학자들, 일종의 비유적 공식으로 재밌게 버무리는게 보통의 작품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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