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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산다는 것 - 삶의 끝에서 헤닝 만켈이 던진 마지막 질문
헤닝 만켈 지음, 이수연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1월
평점 :
그는 66세에 암진단을 받고 67세에 타계하였다.
난 그의 죽음이 좀 놀라웠는데,
66세여도 그렇지만, 67세라고 해도 죽음을 맞이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이기 때문이었다.
옛날과 다르게 의학이 발달하였고 여러가지 치료방법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운명 앞에서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이 엄중하게 다가왔다.
진단은 아주 분명했다. 상태는 심각했다. 불치 상태인 듯했다. 나는 허탈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집에 돌아가 마지막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냐고. 의사가 대답했다. "옛날 같으면 그랬겠죠. 하지만 요즘엔 여러 치료방법이 있습니다."(17쪽)
그의 소설들을 다 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것은 읽은 것이었고,
어떤 것은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거나, 읽었으되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이순신이 선조에게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고 했던 심정으로 그의 소설들을 아껴 읽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가졌지만,
소극적으로라도 미니멀 라이프에 동참하게 된 것은,
일본의 지진 같은 대참사를 만나게 된다든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죽을 병을 발견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건 순서가 없다고,
갑작스런 죽음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을때,
그때는 자신의 상태에 집중하느라고 주변을 정리할 수 없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헤벌레 벌려놓은 채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은 2015년 헤닝만켈이 암진단을 받은 이후에 쓰여졌다는데,
그는 죽음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과거 어린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돌아갈 추억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소설들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그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제 목소리를 낼 줄 안다.
개인적으로 박용하의 '오빈리 일기'나 '시인일기' 따위에 열광했던 이유가 시인적 감수성 때문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맨날 맥주나 까먹은 알콜리즘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르지만,
내겐 그러한 것들이 사회적 문제들을 향하여 섬세하게 깨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고,
그건 곧 소신이라고 읽혔다.
그는 암에게서 신경을 돌리기 위해 독서, 명화 감상, 음악 감상을 택한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암은 아니고 비교하기도 민망한 노안이지만, 책을 읽으면 눈이 쉬이 피로해져서 괴로웠었다.
가지고 있는 책의 몸집을 줄이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내 책상 위에는 항상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항상 좋아했던 작가들의 책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일체의 새로운 것, 모르는 것을 소화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탐험을 하듯 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이리저리 헤매기만 했다. 한 쪽을 읽으면 거기에 쓰인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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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을 펼지자 단어들의 문이 다시 열렸다. 내가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이었다. 내가 예전에, 아마도 각각 다른 여러 상황에서 읽었던 글들은 여전히 언제나처럼 효과가 있었다. 나는 열심히 책을 읽었고 그렇게 암에게서 생각을 돌릴 수 있었다.(188쪽)
그는 2015년 10월 5일 월요일 이른 아침, 잠에서 깨지 못한 채 67세 나이로 영면하기까지 '사람으로 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책 속엔 이런 구절도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묻기를 포기하거나 중단하고, 마치 더이상 알고 싶거나 궁금한 것이 없는 듯이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는 일상을 이어나간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이미 질문을 그만두고, 어떤 사람들은 늙어서까지 고집스럽게 묻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결국엔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움츠리며 철학적 사고를 포기하게 된다.이해가 된다. 지구상에 사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 대다수에게 사고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사치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통탄스러운 불평등에 속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럴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서 세계인권선언에 들어가야 한다.(285쪽)
이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울고나서는 카타르시스에 이른 것 마냥 훌훌 떨어내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버리거나 비우는게 아니라,
말 할 수 없는 작은 입자들로 변화해 자연의 일부로 스며드는 경험이다.
이렇게 지연의 일부로 스며드는 그런 것이라면,
죽음이 두렵기는 하지만 나이듦의 연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이걸 헤닝 만켈은 '죽음을 감추면 결국엔 삶도 이해할 수 없다'(317쪽)는 말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