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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평점 :
며칠 전 탄핵이 인용되었을 때의 일이다.
로비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던 할머니 한 분이 '그래도 불쌍하고 안 된다'며 혀를 끌끌 차시더니 이내 눈물 바람을 하셨다.
그걸 본 중년 남성이 할머니를 향하여,
'길거리에서 그런 말 하시면 몰매 맞을 수 있으니, 어서 곧장 집으로 가시라'고 하였다.
중국 동포들을 대상으로 무슨 강의를 하는 남편은 '오늘은 닭먹는 날'이라고 했다가,
수강생 한 명이 '지금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거냐?'고 항의를 하길래,
강의를 재밌게 하기 위한 워밍업이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단다.
지극히 당연한 사안을 두고 이렇게 양가적 감정이 존재할 수 있다니 어찌 생각하면 아이러니컬 하지만,
그런 다양함이 공존하는 곳이 세상이니,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다.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책을 보는 기준도 다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의 취향이 재미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같다면, 이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기계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30쪽)
알라딘 서재,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지 싶은데 분명 나와는 다른 입장들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것들로 묶였을때는 알라디너라는 소속감이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 다른 입장인데도 한데 뭉뚱그리면 버겁다.
이럴땐 '냅둬, 이대로 살다 죽게~(,.)'라고 하며 내 '스스로' 를 '따'(스.따.)시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버린다.
혼자일때는 소속을 그리워하고, 더불어 있을 때는 그런 식으로 일탈을 꿈꾼다.
어찌되었건, 알라딘 서재 이곳에 적을 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독서인을 꿈꿀 것이다.
나도 독서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동안의 통계 자료를 찾아보니 책을 소장하는데 열을 올리는 장서인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서재활동을 시작한건 2010년 5월10일 '책의날 기념 10문 10답' 이벤트부터니까 얼추 7년이 되어간다.
1년에 한100권정도 읽는 내가 그동안 알라딘을 통해 사들인 책은 1964권,
거기다가 이런 저런 이벤트에 당첨되거나, 선물받은 책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책을 읽는데 목적을 둔게 아니라, 장서에 목숨을 건 꼴이다.
그렇다고 장서를 염두에 두고 책을 들였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가지고 있고, 읽은 책들이 '오래된 새책'의 목록과 많이 겹치는 걸 보면,
저자가 권하는 책들이 소장 가치만 있는 책들로 편향되기 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연배들에게 두루 읽혔던 책들이라고 조심스럽게 유추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나니 '독서만담'과 맞물려서 저자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만담 때는 유머코드 때문에 간과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본인도 책 속에서 생각을 깊고 넓직하게 펼쳐내고 있으며,
자신이 고르고 읽고 소장하는 책들을 자기주도적으로 관리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책을 고르고 읽고 소장하는 방법들을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함으로써,
소장한 책들의 격을 올린다.
책이 안 읽히고 안 팔리는 시대라고 체념하고 방관하지 않고,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외의 출판 영업, 마케팅, 홍보, 광고 등에까지 적극적이다.
똑똑하지만 얍삽하지 않다.
책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인간적인 냄새, 적당한 온기, 따뜻함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오래된 새책'이란 절판본이지만 독자들에게 꾸준히 회자되어 재출간 되는 책들을 말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고, 출판 시장이 얼어 붙은 세태이지만,
책이 절판되어 사라지는 것도, 재출간되는 것도, 상당한 부분 독자의 몫이라고 얘기한다.
나 또한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책들을 개정판으로 읽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오래된 새책'의 형태이다.
이 책은 나온지가 좀 되었다.(초판 1쇄 2011년 9월23일, 초판2쇄 11월10일)
그 무렵 절판본이어서 어렵게 구해야 했던 많은 책들이 재출간되었고,
책 속의 내용들도 사실 여부가 바뀐 것도 있다.
사진집 '천장' 같은 경우도 그때는 '천장'이라는 풍습을 담은 유일한 책이었겠지만,
지금은 더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저자의 책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 저자가 짱 멋져보였던 순간이 있었다.
ㆍㆍㆍㆍㆍㆍ그 책은 어찌됐든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활용되어져야 했다. 날개가 필요한 것은 새만은 아닌 것 같다. 책도 날개가 필요하며 항상 읽혀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다지 열성적이지는 않지만 어찌됐든 나에게 필요가 없고, 반복해서 읽거나 참고할 책이 아니라면 인커넷 카페 등의 책 나눔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59쪽)
'우물있는집'에서 나온 《괴테자서전》을 읽고 소장하는 이유는 순전히 아름답고 고급스러우면서도 튼튼한 장정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국내에서 출간된 책 중에서 가장 장정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 중의 하나다.(85쪽)
책의 자태와 위용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나와 닮았다.
이 책의 끝부분 '책 수집가를 위한 변명'을 보게 되면, 내 속에 들어왔었나 싶게 나랑 일치하는 구석이 있다.
책의 가장 큰 기능이 '장식'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할 때 내 서재에 꽂힌 책들을 바라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안정을 찾게 된다. 이것은 단지 책이 지적 욕구의 충족이나 학문적 필요로만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다.(255쪽)
저자 자신이 좋아서 책을 읽고 또 수집하고 하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꼼꼼하고 착실하게 책을 소개하고 권해주면 읽지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말이다.
'독서만담'때도 느낀 것이지만 독서처방사 같은 직업이 있다면 명품 처방으로 이름을 날릴 것 같다.
파릇파릇한 떡잎이나 새싹도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을 중년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이렇게 궁금해 보기는 처음이다.
건필을 기원한다, 고 했다가 글로만 한정시키는 것 같아 아쉬워 이렇게 바꿔본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