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 요리사 박찬일의 순수 본류의 맛 기행
박찬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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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저녁 밥상머리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이윤석이 나왔다.

저질체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혼 탈출한 좀비의 모습으로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입맛이 없다면서 밥 대신 알약 하나 먹고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에게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걸 포기하겠다는 것일까 싶었었다.

아내가 얼르고 달래 한술 뜨는둥 마는둥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엔 숨겨놓았던 과자를 한가득 꺼내,

'그래, 이 맛이 바로 천상의 맛이야'

하는 표정으로 먹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혀를 끌끌거리자 같이 보던 남편이,

"엊그제까지만 해도 편의점 신상 터는 재미로 살던 니가 그러면 안되지."

하는 바람에 화들짝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슴슴하고 음식의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 좋다고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음식의 맛을 제대로 모르고 인스턴트식품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만 하더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쿡방이니 먹방이라고 하여 재빨리 음식을 만들어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익숙했던 터라,

음식이 나는 산지의 취재에서부터 시작해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품과 정성이 영겁의 시간으로만 느껴져,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고행이고 수행이 아닐까 싶었었다.

 

암튼,

박찬일은 새 책이 나왔다고 하면 무조건 들이고 보는 작가 중에 한명이다.

글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 녹아있는 사상도 건강하여,

그가 쓴 글을 읽을라치면 맛깔스런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 맛도 없고 슴슴한 사찰음식이라니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박찬일이 아니라면 누가?'라고 질문의 방향을 바꾸니,

그에게 맞춤한 질문과 답이라는 걸 알겠다.

내 이런 생각을 들여다 본듯 '여는 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시작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수도하는 이들에게 미각이 무엇이며 요리법의 고민이 무슨 사치냐고. 나도 그 말에 절반쯤 수긍하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시선은 한참 본질에서 빗나간 것이다. 만물을 알뜰히 먹는 일은 수행의 고갱이다. 들과 산, 밭에서 얻은 것들을 다듬고 갈무리하고 불(火)과 장을 입혀 요리하는 일은 가장 숭고한 수도다. 그것을 맛있게 요리해서 수도하는 이들과 대중에게 내는 일보다 더 '수도승'다운 일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 달라. 수행에는 각기 다른 방식이 있되, 일상의 수행은 하루 세 번의 끼니에서 출발한다. 왜 아니겠는가. 인간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종교 아니던가.(7쪽)

 

그러고보면 음식이라는건 여러 거창한 이유 이전에 뭔가를 살리고 제 목숨을 일구어야 하는데(17쪽),

난 이런저런 조리과정을 거친, 현란한 맛이나 뭔가 요란한 솜씨를 자랑하는 요리만을 음식과 동격으로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한번 해주시고~--;

아무 맛도 없고 슴슴한 사찰음식이라고 하여 조리과정마저 간단한 것이 아니란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격식에 좀 자유로워서 그렇게 까다롭게 가리지않는 분파도 있겠지만,

일단 육류와 더불어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 오신채를 먹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하얀 설탕처럼 가공되거나 정제된 재료를 모두 배제하기도 한단다.

 

그러고보면 사찰의 스님들만 수행을 하고 도를 닦는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숭고한 경지에 이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박찬일 이분처럼 음식과 글, 양쪽으로 도를 닦고 경지에 이른 분들도 계실테고 말이다.

 

봄철 음식인 냉이를 얘기하면서,

뭐, 김훈의 남한산성을 (안 읽은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가장 극적이고 진중한 표현으로 골라놓고선 '더 절실하고 아프다'고 한다.

묵은 눈이 갈라진 자리에 햇볕이 스몄다. 헐거워진 흙 알갱이 사이로 냉이가 올라왔다. ㆍㆍㆍㆍㆍㆍ언 땅에서 뽑아낸 냉이 뿔리는 통째로 씹으면 쌉쌀했고 국물에서는 해토머리의 흙냄새와 햇볕 냄새가 났다. 겨우내 묵은 몸속으로 냉이국물은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먼 끝을 적셨다.(17쪽)

 

봄철 명이 편에선 단식에 대해 얘기를 한다.

나와 대여섯 살 정도밖에 나이 차이가 안 나는데,

춘궁기와 보릿고개 따위를 아는지 단식에 대한 공포를 얘기한다.

나는 단식에서 공포를 떠올린다. 허기에 대해 무너지는 마음이 가엾고, 참아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 그리고 공황에 가까운 공포.(63쪽)

라는 글은 곧 이런 성찰로 이어진다.

비워서 얻는 것, 그것이 어디 단식뿐이랴. 사람들은 이 사바에서 비우지 못해 결국 죄짓고 상처입는다. 비우는 것에 대한 화두 하나를 얻는다.(64쪽)

 

이 책을 다 읽은 뒤 다시 여는 글로 가니,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박찬일 스스로 적어놓은게 보인다.

감자는 원래 하늘의 별이었다고 했던가. 그 감자가 밭에서 태어나는 순간은 여름의 초입이어야 가능하고, 토마토가 맛있는 건 미리 따지 않고 끝까지 열매에서 붉은색을 완벽하게 얻을 때이다. 맛있는 된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시절을 옹기 안에서 보내야 하며, 시금치의 뿌리는 대지의 마음과 동일하다는 것도 스님과 함께 걸으면서 얻은 교훈이었다. 뿐이랴. 미역에 제 맛이 드는 것은 시린 바람과 바닷물의 깨질 듯한 수온을 견뎌낸 선물이었다. 콩나물이 숨소리를 쌕쌕거리며 일주일을 버텨야 비로소 비리지 않고 고소한 맛을 준다는 것도 움식일 수 없는 상식이었다.(5~6쪽)

 

절밥만 맛있는건 아닐 것이다.

제철,

원 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가미를 하여,

정성스럽게 차려놓은 그런 음식이라면 다 맛이 좋지 않을까?

 

그런대로 좋았지만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사찰음식레시피23'이라고 하는데 사진도 선명하지 않고 레시피가 중간 생략이 많아 친절하지 않다.

음식을 만드는 재주가 메주인 나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읽었던 한창훈은 '그래야 구석구석 살조각까지 살뜰히 먹어진다. 나는 이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허투루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원재료를 적절히 사용하여, 이 한가지를 추가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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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1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1 14: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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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6: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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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1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4-20 16:54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아름답고, 맛있는 것이군요^^:

양철나무꾼 2017-04-21 14:41   좋아요 1 | URL
그렇게 따지면,
세월이 가는 것도 그렇고,
나이를 먹는 것도 그렇겠죠.

아름다운게 멋있기도 하고, 그리고 맛있기도한 이유인가봐요~^^

cyrus 2017-04-20 17:29   좋아요 0 | URL
감자가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자란 채소였군요.. ㅎ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4-21 14:43   좋아요 0 | URL
감자가 하늘의 별이라네요.
은하수는 하늘을 흐르는 강이고 말예요.

근데 감자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자라지 않나요?@@
쿨럭~--;

cyrus 2017-04-22 08:49   좋아요 1 | URL
네. ‘그네‘만 빼고요.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4-26 16:01   좋아요 0 | URL
놀이터에선 그네 빼면 고무줄 끊긴 빤쭈인데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