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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새 연못의 마녀 ㅣ 시공 청소년 문학 14
엘리자베스 조지 스피어 지음, 이주희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조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작년 가을 쯤이던가, 학예회를 하는데 장기자랑으로 동화구연을 한다길래
뭘 하나 하고 봤더니 <헨젤과 그레텔>로 단순한 구연동화가 아니라 배경을 동생이 직접 그려
한 장씩 넘겨가며 실감나게 보여주는 그런 기획이었다.
전지에 각 장면을 담아 모두 12장의 그림을 그렸는데 대충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나도 동원되어
배경을 칠해주고 중요 부분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그때 제일 잘 된 캐릭터가 바로 마녀였는데, 충혈된 눈에 뾰족 모자, 검은 옷, 긴 손톱과 지팡이가
항상 따라다녔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마녀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에게 항상 무슨 책을 추천해줄까 고민하면서 둘러보는 신간 코너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마녀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도 있지만 한 때는 -그러니까 내가 아주 어리던 날에-
나는 내가 누군가에 의해 '마녀'로 몰릴까봐 겁을 냈던 기억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과 행동이 다르고 사고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녀'라는 굴레를 씌운다는 걸 알았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집안에서 혼자 책 읽기를 좋아했던 나를 누군가는
그렇게 마녀처럼 봤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어린 날로 돌아가게 만든 책.
1687년 바베이도스에서 코네티컷으로 떠나온 어린 숙녀 키트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일한 혈육인 이모를 찾아왔지만 그들을 지배하는 청교도적인 삶에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살아가게 된다. 사촌인 주디스와 머시, 무뚝뚝한 이모부와 잿빛으로 변해버린
아름다웠던 이모 틈에서 우울함에 잠겨 있을 때 구원병처럼 다가온 해나.
남들이 마녀라고 부르며 가까이하길 꺼렸던 퀘이커 교도인 그녀, 그리고 가족들에게 버림받다시피한
프루던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가끔씩 만나는 돌핀호 선장의 아들 내트와 행복을 조금씩 맛본다.
마을의 부잣집 도련님인 윌리엄에게 구애를 받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던 중
돌림병으로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마녀사냥이 시작되었고
해나를 위험으로부터 지켜내지만, 도리어 키트가 마녀로 몰려 재판을 받게 된다.
그녀를 마녀로 지목했던 굿와이프 크러프의 남편의 연설이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나는 평생 글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아들이 있었다면 글을 배우도록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새 나라이니, 여자도 남자만큼 글을 읽는 게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읽을 줄 알면 마녀 같은 어리석은 일 말고도 생각할 게 생기겠지요."
그렇다. 읽을 줄 알면 생각할 게 많아진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대부분 읽을줄 안다. 생각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옛날 청교도들과는 많이 다른데 왜 요즘에도 마녀사냥이 이루어지는 걸까?
우리는 지금도 어떤 일에 책임자를 찾아내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비로소 만족을 한다.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나든지 간에 누군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언제쯤이면 진정으로 남을 희생자로 요구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해결을 할 수 있을까?
제대로 생각할 줄 아는 법을 배우면, 더 이상 마녀 사냥은 없을 지도 모른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마녀는 넘쳐나기를, 마녀사냥은 이제 그치기를!
*청소년 문고라고 되어 있지만, 초등학교 6학년도 무난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