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역사 기행 - 한반도에서 시베리아까지, 5천 년 초원 문명을 걷다
강인욱 지음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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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바이칼호! 알타이산맥! 이라는 단어를 들은 당신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의 머릿 속에는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의 잃어버린 고향 알타이! 아득히 머나먼 고향 바이탈호, 우리의 사랑이 묻어 있는 곳 유라시아! 이러한 나의 생각은 명확한 근거가 있기에 생성된 것은 아니다. 명확한 근거가 있지도 않으면서 나는 왜? 이러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을까? 그래서 '유라시아 역사 기행'이라는 책을 꺼내들었다. 유라시아는, 바이칼호는, 알타이 산맥은 우리의 잃어버린 아득한 고향일까?

 

1. 유라시아의 관점에서 한국문화를 보자!

  학부시절, 동양사를 전공하신 교수님들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있다. '한국사를 전공한 사람들의 견해는 시야가 너무 좁다!' 한예로, 몽골이 강화도를 건너지 못해서 강화도를 점령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너무도 이해되지 않는 주장이란다. 몽골에 입장에서 남송 정벌이 우선이었고 고려는 남송과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서 비주력부대를 보냈을 뿐이다. 고려 본토를 공격해서 강화도 정권이 스스로 항복하기를 유도했을 뿐이다. 동양사 전공 교수님의 견해는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야를 한반도에서 동아시아로, 다시 세계로 확대해야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는 동양과 서양으로 확대될뿐이었다. 우리 민족이 많은 교류를 해왔던 북방의 초원으로 시야를 확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은 한국사를 이야기하다가 단편적으로 유라시아를 언급하는 수준을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한반도에서 시베리아와 알타이 산맥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역사를 알시 쉬운 문체와 다양한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도를 곁들였다면 이해하기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한국사를 이해하는 시야를 확실히 넓혀주었다. 특히 한국의 세형동검을 이해하기 위해서 북방유목민족의 모습을 살피는 부분을 읽을 때는 전율을 느끼기 까지 했다.

  요즘, 세계화 시대, 지구촌 이라는 말이 일상화되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시대는 이미 아득히 먼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다. 파지릭 지역의 무덤과 신라의 적석목곽분은 너무도 형태가 유사하다. 수천킬로미터의 공간적 시간적 차이를 건너 뛰어서 문화를 공유하는 모습에서 한반도가 세계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국의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순방 외교를 펼치듯이, 한반도의 적석목곽분와 세형동검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유라시아 유목민들의 문화를 살펴봐야한다. 세계화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 말타기의 비극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를 아는가? 하늘을 날며 악당을 물리치는 그가 말에서 떨어져 전신마비라는 비극적 상황에 처했다. 물론, 그는 불굴의 신념으로 전신마비와 싸웠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말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커다란 불행을 선물하기도 한다. 안장없이 말을 타는 스키타이 인들 중에, 성불구자가 많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말에 재갈을 물리고, 말을 전투에 이용하면서 말은 인간에게 가공할 힘을 전쟁터에서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그 달콤한 유혹은 성적 불구라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다.  인간의 쾌락중에서 성적쾌락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함에도 이를 느낄 수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물론, 성적 욕망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면 고통스럽지도 않을 수 있겠지만.... 

  자손을 낳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인데, 이들은 어떻게 이를 충족시켰을까? 그들은 출산과 양육을 분리했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기를 많이 낳고 아기가 없는 사람들이 이를 입양해서 양육했다. 파지릭 고분에서 다양한 인종들, 심지어는 백인들의 유골이 발견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말이 인간에게 선사한 두얼굴의 선물을 인간은 거부할 수 없었다.

 

3. '부여계 기마 민족설'의 진실은?

  흔히들 우리민족의 뿌리는 북방의 기마민족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자랑스러워한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하고 한다. 그런데 이책의 저자는 '인더스문명에서 처럼 드라마틱한 정복 근거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신라와 가야의 성장 동력은 새로운 문화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이할 수 있었던 사회 자체 역량에 있다고 강변한다. 역사적 사료의 강력한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고학적 유사성을 근거로 북방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지배층을 교체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가 어려운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신화를 살펴보면 그 가능성을 전면 부인할수도 없다. 단군신화의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더던지, 주목이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우고, 온조가 남하하여 백제를 세우고, 하늘에서 내려온 상자 속 알에서 김수로가 나왔다는 신화는 북방의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지배층을 이루었을 가능성을 암시해준다. 저자 강인욱의 주장이 많은 설득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마 민족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4. 중국의 동북공정의 그림자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어디일까? 대학시절 서교수는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시기에 다시 쌓은 것이고, 원래는 평양까지 이어졌다고 동양사시간에 학부생에게 강의했다. 박근혜정부시기 국정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한 서교수의 주장을 이책의 저자 강인욱은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반박한다. 제스산 일대 발굴, 갈석공 유적 발굴을 통해서 산해관이 만리장성의 끝이라는 사실이 발혀진 것이다. 중국측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만리장성을 연장해서 이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중국정부의 역사창조작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 철저한 사료비판과 고고학 자료를 통한 엄정한 역사연구가 절실함이 밀려온다.

  그런데, 강인욱은 '중국인이 멸시하던 이민족을 자신의 조상과 연결'시키는 모습을 '오랑캐의 문화를 잘 이용하는자가 결국 중원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 단정한다. 이에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한다. 중국은 동북3성 지역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삼는 동북공정 이외에도, 베트남 북부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삼는 남방공정, 베트남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삼는 서남공정, 몽골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를 만드는 북방공정을 하고 있다. 현재 중국땅에서 일어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이뤄지는 이들 공정(프로잭트)들은 중국의 역사 만들기 프로잭트이다. 그래서 예전에서는 오랑캐로 멸시하던 이민족들을 이제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자신들의 조상과 연결시키고 있다. 강인욱은 이를 유념해야할 것이다.

 

5. 보석보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보낸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아 편지와 함께 관에 넣어둔 사실을 아는가? 바로 이응태 묘에 얽힌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야기이다. 남편에 대한 절절한 사랑 편지가 이응태묘에서 발견되었고, 이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특히 이응태 부인의 편지는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나또한 수업시간에 이응태 부인의 편지를 활용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만 유명한 편지로 알고 있었던 이응태 부인의 편지가 고고학 잡지 <앤티퀴티>에 표지 장식으로 실렸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금은 보석이 사랑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돈에 눈이 어두워서 사랑을 버리고 떠나는 남자 혹은 여자에 대한 복수를 그린 드라마와 영화가 한때 인끼를 얻었던 적이 있다. 물질만능의 시대에 부부사이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매우 쉽다. 물질 만능의 시대이기에 진정한 사랑 이야기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연못속의 진흙탕 속에서 핀 연꽃이 더욱 아름다워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혼에 조건을 따지고, 사랑보다는 직업과 재산을 먼저 따지는 요즘 세태가 심화될 수록, 이응태 부인의 편지는 우리에게 더 많은 울림을 줄 것이다.이응태 부인의 편지가 더 많은 울림을 주지 않을 정도로 우리사회가 물질만능의 세태에서 벗어나길 바래본다.

 

  작고 가벼운 책이다. 누구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한반도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길을 따라서 문화교류의 광활한 역사를 알려주는 의미 있는 책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광활한 교류의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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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권력 인간 - 인류의 고전과 문제작, 전 세계를 뒤흔든 극적인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정승민 지음 / 눌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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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팟캐스트 '일당백'의 애청자이다. 청소를 하거나 운전을 하면서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 특히 저자 정승민이 출연한 팟캐스트는 거의 빼놓치 않고 듣고 있다. 특유의 깊이있는 설명에 빠져들 수밖에 없기에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 '매불쑈' 등도 같이 들었다. 그가 '역사, 권력, 인간'이라는 책을 썼다기에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교수님이 조근조근 강의해주시는 듯한 내용이 맘에 드는 책이다. 책 속의 내용도 대부분 그가 참여했던 팟캐스트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정승민은 이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1. 영웅에 대한 정승민의 생각?

  "영웅은 결국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누군가에게 넘기려는 집단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아닐까요"-정승민-

  위기의 시대는 영웅을 필요로한다. 일제에 의해서 국권을 강탈당하던 시기, 신채호와 박은식 선생은 영운전기를 썼다. 영웅 전기를 읽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영웅이 되어서,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원해달라는 염워에서 영웅전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한명의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개인이 있어야한다. 그 영웅을 뒷받침 해줄수 있는 수많은 민중이 있어야, 한명의 영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있기 위해서는 그를 믿고 따랐던 다수의 백성들이 있어야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가장 건전한 사회는 한명의 영웅에 의지하는 사회가 아닌, 다수의 현명한 개개인이 집단의 일을 현명하게 연대하며 해결할때 만들어 진다. 이명박근혜시기에 영웅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한명의 영웅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다. 다수의 깨어있는 시민들의 합작품이다. 영웅의 출현을 기원하기 보다는 우리 개개인 모두가 사회에 주인의식을 갖는 깨어있는 주인이 되어야할 때이다.

 

2. 정승민님! 동의하지 않습니다!!

  작가 정승민은 권력이라는 프리즘으로 11개의 주제를 살펴보고 있다. 작가가 북콘써트에서 밝혔듯이, 원래 쓰던 책이 잘 쓰여지지 않아, 주제를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역사, 권력, 인간'이라는 책의 전채를 관통하는 주제와 작가가 하려는 말이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책들 곳곳에서 열설가의 웅변조의 말들이 많아 정승민의 주장을 한번은 의심하면서 읽게된다. 그중에서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정승민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설명하면서 "여론의 지지를 업은 정책은 잘못하더라도 바로 수정" 가능하다며, 여론의 지지를 얻는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영삼 정권시기의 대북정책이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며, 정승민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김영삼은 여론의 눈치를 많이 살핀 대통령이다. 특히 대북정책을 펼때는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특히 조,중,동이라는 보수신문의 논조에 귀를 기울였다. 대북정책은 여론의 동향에 따라서 갈지자 행보를 했고,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은 좌초했다. 여론을 중시한다는 말은 일면 옳은 면도 있으나, 여론을 절대시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더 옳다. 여론은 때에 따라서 변한다. 북한에 대한 동포의식과 6.25시기 적으로 싸웠다는 의식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여론이 갈지자 행보를 하는 것은 어쪄면 당연한 일이다. 이때,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중심을 잡고, 원대한 마스터플랜을 머릿속에 그리며, 대북정책을 했어야했다. 더욱이, 그 여론이 몇몇 보수 언론이 주장하는 여론이라면 조심했어야했다.

  둘째, 정승민은 러시아가 중국의 부상으로 영토 양쪽 끝에서 압박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나의 상식과 상반된다. 트럼프 정권의 성립 이후만 보더라도 미국의 패권에 대해서 러시아와 중국이 가까워지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 중국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미국대 중국, 러시아의 대립구도로 보는 것이 지금의 국제정세를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셋째, 정승민은 닉슨을 인간성부터 나쁜 폭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전에 원자탄을 쓸려했다."라는 서술은 믿을 수없었다. 닉슨은 "닉슨 독트린"을 통해서 데탕트시대를 열어 졌힌 사람이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도 발을 빼려 노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며, 정승민의 주장은 믿을 수없다. 물론, 닉슨의 부하들의 전횡은 잘못된 것이며, 그것까지 미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세상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다. 어쩌면 절대악과 차악의 싸움일 수도 있다. 닉슨을 낙마시킨 세력에 FBI 2인자인 마크펠트 부국장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FBI를 개혁하려다가 오히려, FBI에 되치기를 당했으며, 그 뒤에는 군산복합체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노암 촘스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절대악과 차악의 싸움에서 차악이 실패한 사건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넷째, 트럼프와 레이건은 닮은꼴이다.?? 정승민은 트럼프와 레이건이 공통점이 너무도 많다며 다양한 사례를 든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다르다. 트럼프는 레이건보다는 닉슨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본다. 트럼프와 닉슨은 군산복합체 세력에 대항해서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쟁에서 발을 빼고 있다. 닉슨이 닉슨 독트린을 통해서 데탕트 시대를 열과 핑퐁외교를 통해서 중국과 수교하는 엄청난 일을 했다. 그에 반해서 트럼프는 서아시아에서 미군을 빼고 서아시아 자체가 스스로 방위를 하라고 한다. 또한 북한의 핵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해서 주한미군의 철수까지 노리고 있다. 닉슨과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핵심 브레인은 키신져이다. 트럼프의 외교고문으로 닉슨 대통령 시기 핑퐁외교를 주도했던 그가 다시한번 트럼프의 브레인이 되어 군산복합체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닉슨이 군산복합체 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트럼프는 과연 군산복합체 세력의 반격을 이겨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3. 정승민씨, 옥의 티가 보여요.

  팟캐스트에서 정승민의 모습은 만물 박사이다. 특월한 식견과 다방면에 많은 지식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책에는 옥의 티가 많이 보인다. 그중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번째, "백마를 타고 눈덮인 (알프스)산을 넘는 나폴레옹"은 거짓이다. 정승민은 나폴레옹을 설명하면서 백마를 타고 알프스산을 넘는 다비드의 그림이 사실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가장 앞장서서 알프스산을 넘지 않았다. 병사들이 먼저하고 자신은 나귀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 혁명화가 다비드는 영웅을 만들어 냈다. 백마를 타고 가장 먼저 알프스산을 넘는 영웅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프랑스인이 원하는 영웅을 만들었다. 정승민이 다비드 그림의 허와 실을 지적했다면 더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알자스 로렌 지역 사람들은 독일인에 가깝다. 정승민은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수업'을 예로 들며,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설명한다. 그런데,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의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해서 씌여진책이며, 알자스-로렌 지역은 사용하는 말은 독일어에 가깝고, 인종도 독일인에 가깝다는 사실을 정승민은 지적하지 않았다. 이 부분까지 지적했다면,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보다 심도있게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셋째, "순자는 유가에 뿌리를 두지만 성악설을 주장한 일종의 마이너"가 아닙니다. 정승민은 순자를 유가에서 마이너라고 말한다. 그러나 순자는 제나라의 직하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하버드대학 총장이다. 유학의 정통성은 맹자가 아니라, 순자에게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리학이 절대화되면서 순자를 마이너 취급하지만, 중국의 경우 양명학을 많이 연구하고 있다. 조선의 교조적 성리학 사상에 근거해서 순자를 '유가의 마이너'라고 말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가 낮아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탁월한 강의 실력과 박식함을 알기 때문에....

 

4. 풀리지 않는 의문! JFK를 암살한 세력은 누구인가?

  존 F 케네디! 그의 죽음을 파헤친 영화 <<JFK>>를 고등학생 시기에 보았다. 그때 영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도 원인이겠지만, 미국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이며, 민주주의의 모범적인 국가라는 고정관념이 영화의 이해를 어렵게 한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계사에 대한 지식을 쌓고 미국을 움직이는 군산복합체 세력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영화 <<JFK>>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그가 보여준 침착함. 전쟁을 하자는 강경파를 억누르며, 소련과 대화를 통해서 평화를 지키려했던 케네디! 베트남 전쟁에서도 발을 빼려는 모습이 보이자, 군산복합체 세력은 마피아 세력과 손을 잡고 케네디를 암살한다. 와스퍼라는 주류에 들지 못하는 비주류 대통령으로 겪어야하는 고통을 생각하니, 불현듯 고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둘다  비주류 대통령으로 남다른 업적을 남겼지만, 비운에 목숨을 잃어야했다.

  권선징악! 선은 반드시 이기고 악은 반드시 징벌을 받는다는 진리는 만화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악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이 반드시 패배하는 것도 아니다. 노자는 天地不仁(천지불인)이라하지 않았던가! 하늘과 땅은 어질지 못하다. 태풍이 인간의 사정을 봐가면서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 선과 악 중에서 어느 것이라도 승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선이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단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라는 값진 결실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촛불을 들었듯이, 선이 이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존 F 케네디의 죽음은 우리에게 선이 이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만한 댓가를 치뤄야함을 말하고 있다.

 

 

  많은 팟캐스트에서 작가 정승민의 열혈팬으로 자처했다.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 선생이 말한 글쓰기 방법이 떠올랏다. 역사나 전기류를 쓸때는 적당한 예화와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곁들여 써야만이 이해가 쉽고 재미있다는 다산의 글쓰기 방법을 정승민은 채득하지 못한 것 같다. 열설조, 강의조의 글들과 작가의 원론적인 설명은 이책의 흡입력을 떨어뜨렸다. 첫술에 배부르랴! 정승민이 대중에게 단독으로 내놓은 첫번째 작품이라 부족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 앞으로 정승민의 더 숙성된 책들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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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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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발 하라리! 그가 우리에게 21가지 제언을 했다. 그의 제언들은 대부분 정확한 정답을 던져주기 보다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었다. 마치 현명한 교사와 부모가 학생과 자녀의 질문에 정답을 가르쳐주기 보다 스스로 더 많은 탐구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질문으로 되받아치는 듯했다. 그의 책은 쉬우면서도 한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발 하라리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직업이 사라진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전에서 이세돌이 무참히 패배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시대가 다가왔음을 충격적으로 느꼈다. 터미네이터를 떠올리며,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지구를 멸망시킬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커다란 혼란이 우리들 머릿속에 불어닥쳤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멸종시킨다는 설정이 다소 과장된 상상이라면, 인공지능 시대가 나의 직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추정은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직업이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유발하라는 기본소득을 하나의 대안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육아와 같은 새로운 일자리를 발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의 이 주장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자를 중심에둔, 인간중심의 정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노동에 인간이 종속된 사회가 아니라, 어쩌면 인류가 그토록 원했던 '노동으로 부터의 해방'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겪어보지 못한 '노동 없는 시대'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노동으로 부터의 버림받음'으로 느끼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패러다임에 우리가 두려움만 먼저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노동 없음은 축복일 수도 있다. 하라리가 예로 들고 있는 초정통파 유대교 남성의 약 50%는 일을 하지 않으며, 성경공부와 종교의식 수행을 하면서 살고 있다. 공부하면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백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말했던가? 노동이 사라지고, 노동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하는 시대가 사라지고, 진정한 '백수의 시대'가 도래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백수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백수로서의 창조성'을 우리는 지니고 있는가? 고미숙이 말하듯이, 연암과 그의 친구들이 펼쳤던 백수의 향연! 그 백수의 향연은 새로운 창조성의 발현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듯이 우리의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100년후, 어떠한 삶이 펼쳐질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맞이하면서 두려워하기 보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며 새로운 창조성으로 전지구적 관점으로 새시대를 준비해보자.

 

2. 지구적관점에서 생각하라!

  우리 세계는 '문명의 충돌'을 겪고 있는가? 아니면 '문명의 교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유행하면서 이슬람 문명과 크리스트교 문명을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해왔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교류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는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단일 문명 내 형제들끼리의 투쟁"이라고 단언한다. 우리 지구문명은 서로 다른 것 보다는 같은 것이 많다. 형제가 서로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많듯이, 우리 지구문명안에 이슬람문명을 비롯한 기독교 문명, 불교 문명 등의 다양한 문명이 있고, 이들은 형제라 주장한다. 갈등이냐 교류냐는 패러다임을 뛰어 넘어 '지구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라는 하라리의 주장은 탁월한 생각이다. 그가 말하고 있는 '민족', '국가'의 패러다임으로는 환경문제, 핵문제와 같은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이, '민족'이라는 상상의 관념은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지구라는 행성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종교'는 어떠한가? 유발 하라리는 '종교는 민족주의의 시녀'라고 단언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사랑과 자비, 평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종교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자국의 영광을 위해서 타국을 무참히도 도륙하는데 봉사한다. 유발 하라리는 극우 기독교인의 가짜뉴스 또한 과감히 비판한다.

  지구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은 아직도 '민족'과 '종교'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이 너무도 멀어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민족'과 '종교'의 좁은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유발 하라리는 "당신의 종교, 이데올로기, 세계관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나요? 무엇을 잘못했지요?" 라고 물으라고 한다. 이 물음에 심각한 잘못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하라리는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말한다. 극우 기독교인들이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하나라고 주장하는 현실은 '종교가 민족주의의 시녀'라는 하라리의 주장이 가슴이 와닿게 한다. 극우 종교인들이 나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한다면, 나는 유발 하라리의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당신의 종교는 인류에게 저지른 해악을 말할 수 있는지를....

 

3. 모든 것에는 댓가를 지불해야한다.

  호주를 여행하던 일본인이 GPS를 믿고 가다가 바다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본인은 GPS가 시키는데로 운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알고리즘에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이다. 알고리즘의 주인이 되지 못한 인간의 비참함을 미리본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모습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패하지 않는 결정을 위해서 알고리즘을 이용할 것이고, 실패를 두려워할 수록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갈 것이다. 교육의 관점에서 본다면, 실패는 학습의 한과정이다. 불필요해보이는 실패가 사실은 학습을 위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장자가 말한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 없음의 쓰임을 인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미래교육이 알고리즘의 노예에서 벗어나, 알고리즘의 주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실패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아야한다. 물론, 실패의 경험이 자산이 될 수 있으려면,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로 우리사회가 변모해야한다.

  모든 것에는 댓가가 필요하다. '디지털 독재', '커지는 불평등' 속에서 컴퓨터는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된다. 반면 인간은 다운그래드되고 있다.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실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컴퓨터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어령 교수는 말과 경쟁하려하지 말고, 말에 올라타라 강조한다. AI와 경쟁하려하지 말고 AI에 올라타라한다. 알고리즘과 컴퓨터에 올라탈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면, 미래사회는 축복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재앙일 것이다.

  미래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갖추어야할 또다른 조건에는 무엇이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믿을 만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만큼의 돈을 지불해야한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있다. 이에 못지 않게 가짜 정보도 범람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믿을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한다.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한다. 중요한 이슈라면 그것에 관한 과학적 문헌들을 찾아 읽는 노력도 필요하다. 공짜 무가지에 현혹되어 수구신문을 구독했던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수구 신문은 아직도 살아남아 한국사회를 뒷걸음질치게했다. 진실한 언론에 돈을 지불하고 구독하고,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덧 이 사회의 꼰데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공짜 이메일 서비스와 동영상의 댓가로 '개인정보'를 내주는 것을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 비유하고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화려한 구슬과 싸구려 담요를 댓가로 주고 온나라를 넘겨 받은 일화이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 아프리카 원주민들 처럼 화려한 구슬에 현혹되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정보를 팔아 넘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메일 써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 각종 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서 나의 개인정보를 제공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대사회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않는 자연인으로 살라는 말인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4. 종교의 허구성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일침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이 있다. 사피엔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창조론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는 유대교를 믿고 있는가? 자신의 지식과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의 종교가 불일치할때, 유발 하라리는 어떠한 사고를 할까? 이 책에 비친 유발 하라리는 종교를 사실로 믿지 않는다. 하나의 믿음일 뿐이다. 심지어 시온주의자들이 "땅없는 사람의 사람 없는 땅으로의 귀환"을 비판하기 까지 한다. 유대인인 그가,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그가, 이스라엘 탄생의 원천인 시온주의를 비판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한국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뿌리를 부정하는 말을 한다면, 대중으로 부터 몰매를 맞을 것이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다고 그가 유대교의 효용성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부인권 사상'이 진실이 아니지만, 천부인권에 대한 믿임이 인류를 행복하게 했다는 사실을 그는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경전 내용이 진실이라 믿지는 않지만, 경전을 믿음으로써 유대인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실에는 유발 하라리는 동의할 것이다.

  유대교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태도는 종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데까지 나아간다. 단지 합리화하는 도구라 말한다. '종교는 개인의 온순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뻔뻔한 집단적 오만함을 뒤섞는다.' 아울러 '언제나 자신을 극도로 낮춘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신의 이름을 활용해서 신도들 위에 군림한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결혼이 금지되어 있는 종교에서 결혼 사실이 문제가 되고, 교회를 세습하고, 잦은 성추문으로 몸살을 알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유발하라리의 지적은 참으로 날카롭다.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조심하자. 종교의 탈을 쓰고 신도 위에 군림하며 신도의 고혈을 빨아 먹으며 종교에 기생한는 자들을 조심하자.아울러,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신'이라면 섬길 수 있으나, '분노를 유발하는 신'이라면 우리는 그 신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맹목적으로 특정 종교를 믿는 신도들에게 유발 하라리는 깊이 있는 경고를 하고 있다.

 

5. 유발 하라리! 그의 창조성의 원천은?

  유발 하라리! 그의 창조성의 원천은 무엇일까? 한국에 번역된 그의 책들을 모두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화두였다. 내가 생각하는 혹은 하라리가 밝히 창조성의 근원을 탐구해보자.

  유발 하라리와 미셸 푸코의 공통점을 아는가?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둘은 동성애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두사람을 고통스럽게 했지만, 남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었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등의 엄청난 저작들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금기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의 저작들은 철학을 넘어 역사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창조의 영감을 주었다. 유발 하라리도 20대에 방황을 했다고 한다. 타인과 다른 자신을 보면서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이다. 결국 타인과 다른 자신을 긍정하면서 남들이 긍정하는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보게되었다. 그의 명저 '사피엔스'는 이러한 고통의 산물이었다. 전병근 번역자는 유발 하라리가 '동성애'에 대해서 하나의 주제로 다루지 않은 점이 놀랍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자신이 동성애자이기에 겪었던 방황을 끝마친 것으로 보인다. 끝나버린 방황 때문에 하나의 장을 할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리라. 방황을 마치고 유발 하라리에게는 나와 다른 남을 긍정하고, 남과 다른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 창조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윤활류였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 자신이 말하는 창조성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는 '비파사나'라는 명상법을 창조성의 원천으로 제시한다. 진리를 알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있을때,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비파사나'라는 명상법은 집중력의 비결이라 말한다. 아울러, 명상을 통한 자기 관찰의 필요성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미래 기술 사회의 도래를 논하면서 전통적인 불교 명상의 효용성을 강조한점이 무척 흥미롭다. 문화재지킴이 혜문 스님이 책을 읽으면 모두 기억하는 비결을 참선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고용히 자신의 내명을 들여다보는 명상이 인간의 뇌를 집중시킨다는 사실이 놀랍다. 유발 하라리는 하루에 2시간씩 비파사나를 하며, 일년에 한두달 정도는 비파사나를 하기 위해서 수련에 들어간다고 한다. 나도 이제부터 명상을 통한 정신탐구, 자기애해를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겠다.

 

6. 사피엔스를 위한 제언

  사피엔스가 침팬치보다 나은 점이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도덕성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라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침팬치 사회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 침팬치를 우두머리 침팬치가 거두는 모습이 관찰된다. 승자독식의 시대, 노블레스 오빌리쥐가 지켜지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비추어 본다면, 침팬치는 보다 도덕적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사피엔스가 특별한 이유는 첫째,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 믿기 때문이다. 종교, 민족, 이데올로기가 그러한 것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어떠한 믿음을 공유하는가가 우리사회를 바꿀수 있다는 말이된다. 과연 21세기를 준비하는 한국사회는 어떠한 믿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승자독식의 신회를 믿으며, 약자를 짓밟는 자들을 위한 믿음을 공유할 것인가? 분단을 고착화시켜, 전쟁의 위험속에 살도록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를 고수할 것인가? 평화와 사랑을 위한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21세기를 위한 한국사회의 준비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대규모로 함께 사고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이다. 뉴턴이 자신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올려다 보았을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사피엔스의 문명은 어느 특출한 사피엔스 개인의 결과물이 아니다.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다.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공유해야할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깨어있는 개개인이 함께 우리사회를 깨어있게하는 담론을 만들어가야한다. 특정 보수 언론이, 특정 보수 세력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한다.

  이러한 사피엔스의 능력은 그들을 지구별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허구를 진실로 믿고, 집단으로 사고하는 무시무시한 사피엔스의 질주를 막을 수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우주와 삶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관찰'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민족', '국가', '정의'가 인간을 고통스럽게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고통'을 직면하는 것이다. 좌와 우라는 도그마에 갖힌, '일베'들이 세월호 피해자들이 단식투쟁하는 현장에서 '폭식 투쟁'을 한적이 있다. 그들은 자식잃은 고통으로 시름하고 있는 이웃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기 보다는 이웃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자. 그것이 허구적 이야기의 노예가 되어 폭주하는 우리에게 냉정한 진실을 보게할 수 있다.

 

 

이제 유발 하라리 중독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의 책이 나오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얇지 않은 두께의 책을 미친듯이 읽으면서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려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길 기대한다. 이번 책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혁명적인 지식은 권력의 중심에서 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라는 말은 고 신영복 교수의 '변방에서'를 떠오르게했고, 세계 권력의 중심부에 있지 않은 한국이 새로운 창조성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했다. 또한 새로운 종이 출현할 수도 있는 현실에서 하라리는 나노기술 등의 조작으로 자신을 업그래이드하는 일에 섣불리 도전하지 않겠다고 한다. 새로운 종이 실패할 수도 있다. 지름길이 황천길일수도 있는 법이다. 새로운 21세기!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새로운 사회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며, 새로운 기술의 주인이 되기 위한 능력을 길러 놓아야한다. 그러나 섣불리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다가 불행한 결과를 자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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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0-14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교수의 변방에서, 하라리의 탈중심주의 공감합니다.
정희진의 탈식민주의도 떠오르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강나루 2018-10-14 19: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석학들의 공통된 의견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붕붕툐툐 2018-10-14 2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너무 읽고 싶은 책이라 스포 당하고 싶지 않아서 글을 읽지 못했어요~ ㅋㅋ
책 읽고 와서 이 글 읽을게요:)

강나루 2018-10-14 21:34   좋아요 0 | URL
^&^
하라리의 매력에 빠지셨군요
천천히 읽으세요~~
 
제프스터디 영어명언 100강 - 나를 위한 하루 10분 영어 선물 제프스터디 시리즈
Jeff 지음 / 길벗이지톡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서양의 '논어'를 읽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영어 명언 읽기'가 이제 두번째 권을 마치게됐다. 다양한 서적중에서 원어민의 목소리와 제프강사의 강의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영어명언100강'을 선택했다. 하루에 한문장씩 읽고,6번씩 쓰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아울러 영어 공부도 덤으로 해보았다. 'when you have faults, do not fear to abandon them.-Confucius-'이 명언이 공자의 어떠한 말을 옮겨 놓은지 알겠는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이다. 허물이 있다면, 고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을 영어로는 이렇게 옮길 수 있다는 재미도 주는 책이다.

 

1. The greater danger for most of us lies not in setting our aim too high and falling short; but in setting our aim too low and achieving ou mark.(michelangelo,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목표를 높게 정하고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너무 낮게 잡고 그것에 안주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를 높게 잡아라, 대통령을 목표로 삼으면 하다못해 군수라도 하지 않겠니?'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다. 그때는 그말이 설득력있게 들렸다. 미켈란젤로도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씀과 비슷한 말을 한다. 그러나, 과연 거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나에게 의미있을까? 실패도 학습된다. 너무 높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를 학습하게 되고, 결국은 좌절하게된다. 교육학에서는 '성공경험'을 중시여긴다. 학생에게 알맞은 적당한 난이도, 즉, 그학생의 능력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문제를 학생 스스로 해결하도록해서, 성공의경험을 높이도록 해야한다. 목표를 거대하게 잡으라는 위대한 미켈란젤로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러한 능력이 충분히 있는 미켈란젤로에게 알맞은 말이다. 위인의 말이라할지라도 나에게 맞는 명언인지 생각해보게한다.

 

2. The best way to change the world is to change yourself -Anonymous-(세상을 바꾸는 최고의 방법은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한다. 혁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조차도, 자신의 삶을 혁명하는 사람은 드물다. 혁명은 우리 주변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자신도 혁명하지 못하면서 어찌 세상을 혁명하겠는가? 안희정 전지사를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많이든다. 차기 대권후보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었던 그가, 스스로를 혁명하지 못했기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려서부터 혁명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혁명하지 목하고 다시 일어설수 없는 길로 가고 말았다. 스스로를 혁명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으며,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의 '문명의 붕괴'라는 책이 생각난다. 문명이 붕괴하는 요인 6가지를 제시하고 지구상의 다양한 문명이 붕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의 탁월성은 그러한 사례와 원인 제시에서 그치지않고, 문명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 문명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바꾸어야하고, 기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개인이라 말한다. 깨어있는 개개인이 모여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깨어있는 개개인이 스스로를 혁명해야 사회는 변화한다.

 

3. The future depends on what we do in the present. -Mahatma Gandhi-(바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곧 우리의 미래이다.)

  미래를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라! 간디가 외치고 있는 듯이 나의 귓가를 쟁쟁하게 울리는 명언이다. 나는 우리반 사물함과 책상에 이 명언을 적어서 붙여 놓았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에게 오늘을 뜻 깊게 살라는 의미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명언은 의역보다는 직역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의역은 '바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곧 우리의 미래이다.'이지만, 직역은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이다. '현재란 과거의 연장이요, 미래란 현재가 쌓여서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직역이 더 절실하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과거, 현재, 미래! 이러한 분절적 사고를 극복하고, 과거는 오래된 오늘이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현재라는 사실을 하는 연속적 사고의 중요성이 느껴지는 명언이다.

 

4. Success is never permanent, and failure is never final. -Mike Ditka-(성공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황금기를 살고 있는 자와 인생의 바닥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명언이다. 인생의 황금기에 겸손하며, 주변에 인덕을 배풀어 덕을 쌓고, 인생의 바닥에서도 아직 게임을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게해준다. 그러나, 이 명언이 한국사회에서 유효하려면, '승자독식의 사회',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라는 오명부터 씻어야한다. 한번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지며, 한번 패배한자가 재기할 수 없는 사회라면 성공의 오만과 실패의 좌절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성공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언이 한국사회에서 유효한 명언이되길 바래본다.

 

5. Sometimes by losing a battle you find a new way to win the war. -Donald Trump-(어떤 때는 전투에 패배하게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당신은 아는가? 그를 어떠한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무식쟁이?', '미치광이?', '평화의 사도?', '단순한 사업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를 '곰의 탈을 쓴 영리한 여우'라고 본다. '어떤 대는 전투에 패배하게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라는 명언을 할 정도로 그는 현명하다. 그는 사업가로도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스스로를 탁월한 협상가라고 말한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트럼프가 전쟁을 일으킬지 몰라요. 전쟁이 일어나면 선생님은 무엇을 하실거에요?" 학생의 질문에 어이가 없었다.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아"라고 말하자, "트럼프는 달라요."라고 말하는 학생이 얼굴은 어두웠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고객의 마음을 읽고 주무르는 방법을 깨달은 사람이다. '블럼핑'을 잘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블럼핑'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은과 대화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겉으로는 전쟁을 말하면서 뒤로는 한국을 통해서 북한과 접촉했다. 그의 평화 프로세스는 지금도 유효하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싸우면서 한국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그는 세계에서 미군의 발을 빼고 놓고 있다. 물론 군산복합체 세력의 만만치 않은 견제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이를 슬기롭게 헤처나갈 것이다. 그는 '어떤 때는 전투에 패배하게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새로운 방법'을 아는 현명한 여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었던 길면서도 짧았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깨닫게해준 시간이었다. 물론, 친절한 제프 강사덕문에 영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덤으로 얻었다. 몰론, 몽골제국의 징기즈칸을 '원나라 황제'라고 설명한다던지, 'Our greatest glory is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것에 있다.)'라는 명언의 원문을 제시해주지 않은 아쉬움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아직도 깊은 감동과 삶의 의미를 주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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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전쟁 - 말을 상대로 한 보이지 않는 전쟁, 말과 앎 사이의 무한한 가짜 회로를 파헤친다
이희재 지음 / 궁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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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난 이후, 나는 더이상 책의 읽기 전의 내가 아니다. 단순히 번역을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지적하는 책으로 생각하고 책을 펼쳐든 순간! 이 책은 나의 상식을 가차없이 박살내버렸다. 때로는 혼란스러웠다.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 남다른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의 자존심은 땅바닥에 내평겨쳐졌다. 그리고 세계사를 다시 공부하고, 역사관을 재정립하라는 강력한 망치가 나의 머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초강력 태풍이 대지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생명들이 다시 꿈틀 거리듯이, '번역전쟁'이 할키고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한번 넓어진 시야와 가치관은 나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과연 '번역전쟁'은 나에게 어떠한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을까?

 

1. 언어가 사유를 지배한다.

  언어는 사유를 지배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결정한다. '포플리즘'을 '인끼 영합주의'로 번역할 것인가? '서민주의'로 번역할 것인가? '포플리즘'에는 두 의미가 다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에서는 '포플리즘'을 인끼 영합주의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사실 남아메리카의 페론정권을 비롯해서 진보적인 정권에서 실시하는 정책들을 '포플리즘'으로 매도하고 그들의 정책 때문에 남아메리카의 여러나라 경제가 혼란에 빠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차베스 정권을 비롯하여, 페론 정권에서 실시한 정책들은 '서민주의' 정책이었고 경제를 망친 것은 그들이 들어서기 전에 정권을 잡았던 독재자들과 그들이 정권에서 물러난 이후에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독자자들 이었다.

  이희재는 '민영화'라는 말과 '사유화'라는 말 중에서 어느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가? 라는 물을 제기한다. 사실 남아메리카를 비롯해서 아프리카의 여러 진보적 정권에서 추진한 '서민주의 정책'들을 '인끼 영합주의'라고 매도하면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들이 추진했던 경제정책은 '사유화'였다. 그리고 그들은 '민영화'라고 외쳤다. 현명한 시민이라면, '민영화'라 쓰고, '사유화'라고 읽어야한다. '인기 영합주의'와 '서민주의'와의 대결, '민영화'와 '사유화'의 대결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었다. 이 세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떠한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었다.

  공자의 정명사상이 떠오른다. 자로가 공자에게 위나라 군주가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을 먼저하실지를 물었다. 공자가 가장 먼저하려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자는 놀랍게도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라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공자는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리에 맞지 않고,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으며, 일을 이룰 수 없으며 예악이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이 공정할 수 없으며, 형벌이 공정하지 않으면, 백성이 손발조차 둘 곳이 없게된다. 그래서 군자는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말이 있게 되고 말이 있으면 반드시 실천하게 된다.(君子於其所不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라고 했다. 어떠한 사람과 일에 정확한 말을 사용해야함을 이미 2천여년전에 공자가 말하고 있다. 지금의 세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부당한 용어를 사용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세력들과의 기나긴 싸움을 하는 시기이다.

  이희재는 강력히 이러한 현실을 비판한다. '극우'라는 개념은 자민족 자국민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타국민, 타민족을 증오하는 일본의 재특회와 같은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한국의 '극우'라고 불리는 사람은 친일 반민족 세력으로 자국민을 죽이고 타국에 아부하는 세력이라며, 그들을 '극우'라고 불러서는 안된다고 일갈한다. 또한, 한국의 언론들은 대자본의 자유와 안전을 지상과제로 생각하는 금융 족벌 세력들의 편에서서 원/달러 환율 약세라는 부정적 표현을 사용해서 철저히 대기업 위주의 생각을 하도록 한다고 지적한다. 공자가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이름을 바로 잡는 일을 가장 먼저하겠다고 말했듯이, 이희재는 금융재벌들의 편에선 잘못된 말들을 바로 잡으려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2. 현대사를 바로 보는 키워드 '금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역사관'이라한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을 대학시절 많이들었다. 저자 이희재는 '금융재벌' 즉, '금벌'이라는 키워드로 현대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영국은 신사국이 아니라 금벌국이라고 주장하며, '1, 2차 세계 대전의 전범은 영국'이라고 주장한다. 처음 이주장을 읽었을 때, 기존 학계의 통설과 너무도 달랐기에 무척 당혹스러웠다. 미국이 군산 복합체 국가이며, 전쟁을 필요로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 군산 복합체, 아니 '금벌'의 뿌리가 근대 영국으로 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이희재는 한발자국 더 나가서, '금벌'은 미국도 장악했다고 주장한다. '금벌'들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으며, 이들은 주기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에 저항하는 지도자들은 철저히 제거된다고 주장한다. 소련과의 군축협상을 추진하며 화해와 평화를 추구했던 스웨덴의 팔메 대통령이 1986년 8월 28일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암살당했으며, 소련과 평화 공존을 추구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델레스에서 암살되었다. 심지어는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가 미국 민주주의가 우뚝서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 알고 있는 워터게이트 사건도 '닉슨 독트린'과 '베트남 철수'를 추진하여 평화 정착을 위해서 노력하던 닉슨 대통령을 낙마시키기 위한 금권세력의 검은 그림자였다. 가공할 금권세력의 힘앞에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금벌세력들은 언론도 장악했다. 서구의 진보지라 자청하는 신문조차도 금벌의 이익에 봉사한다. 서구 금벌들이 장악하던 자원들을 푸틴이 국유화하고, 서구의 금벌세력에 대항하려하자, 푸틴을 악마로 그리고 있다. 오히려 진실을 말하고 있는 'RT'라는 언론사를 푸틴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무시한다. 이희재가 들려주는 '금벌'이라는 키워드로 본 현대 세계는 충격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희재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될 것인지를 고민했다. 내가 알고 있는 '군산복합체'라는 개념과 '세계의 큰손 유대인 자본'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이희재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 결과 '금벌' 이라는 키워드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희재는 말한다. "언론을 맹신하면 악의 세력에게 박수를 배내기 십상'이라고.... 한국의 조,중,동만을 보고서, 한국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 처럼, '금벌' 중심의 세계관으로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럼, '금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예는 없을까?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개인의 씨앗 교환을 금지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할까?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는 '위험 작물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씨앗 교환을 금하고, 자립 공동체인 '에덴 동산'에 경찰 특공대를 난입시켰다. 소비를 미덕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 자본가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려는 '금벌'의 나라! 그곳에서는 소비를 하지 않고 자립하여 스스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살려는 개인들을 위험한 존재로 보고 있다.

  이희재가 주장하는 '금벌'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두번째 예로 '인턴'과 '팁'이라는 용어를 들 수 있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사회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인턴'이라는 제도가 '무급 노동'을 강요당하고, 자본가들의 인건비 절약을 위한 제도로 이용되고 있다.  유럽의 '레스토랑'에서는 써빙을 보는 사람에게 업주가 월급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손님의 팁으로 먹고 산다. '팁'이라는 제도는 사업주의 노동비를 절감하기 위한 제가 된지 오래다. '금벌'의 이익을 무한대로 증대하려는 무서운 신자유주의 사회 곳곳에서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기 보다는 '열정 패이'라는 명목으로 착취를 강요당하고 있다. '매너'가 남을 끌어 안으려는 예법이라면, '에티켓'은 신흥 부르주아지를 차별하려는 구 귀족들의 배제 예법에서 나온 것이다. '매너'가 사라지고, '에티켓'이 자리잡은 무서운 신자유주의 사회! 금벌 사회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3. 사막을 건너는 방법

  소련이 붕괴했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주장했다. 모두가 공산주의가 사라지면 장미빛 천국이 우리를 향해 문을 열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경쟁자가 사라진 자본주의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규제는 악으로 규정되었다. '민영화'가 '사유화'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많은 산업들을 '민영화'시키려했다. 이전에는 없었던 '비정규직', '88만원 세대'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공부방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정규직'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리석은 친구보다 현명한 적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는 '현명한 적'이 없고, '어리석은 친구'만 있다. 아직도 신자유주의의 폭주가 얼마나 우리 사회를 황폐하게 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친구들'!!  그렇다면 '어리석은 친구들'과 함께, 신자유주의라는 사막을 건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우선, '생각하자! 깨어있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프리카 북부 말리에는 투아레그 민족해방운동 조직이 있다. 알제리 정보부는 급조된 극렬 이슬람 무장 조직을 침투시켜 투아레그 민족해방운동 조직을 과격화 시켰다. 이들은 결국 민중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결국 하층부의 말단 행동대원들은 자신의 행동을 순교라 생각하며 목숨을 바치지만, 진실은 상층부의 극렬 테러리스트와 그들의 사주한 자들에 이용당한 희생양일 뿐이다. 이 책에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조직에 '금벌'이 침투시킨 공작원들이 활약하며, 그 조직들을 와해시키고, 혹은 혼란을 가중시켜 서구의 '금벌'이 아프리카의 자원을 안전하게 수탈할 수 있도록 만든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며,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려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 의해서 '순교'를 강요당할 수 있다. 스스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금벌'의 실체를 바로 보아야한다. 깨어있자! '금벌'의 실체를 바로보고, 현명하게 삶을 살아가자!

  둘째, "문명국은 시련에 처한 제 나라를 안 떠나려는 젊은이가 많은 나라"이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만약 임용고사에 떨어지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이다. 임용고사에 떨어져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조달하며 힘겹게 살아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낮아지고 있었다. 힘들때는 이민 정보를 찾았다. 결론은 '죽어도 대한민국에서 죽고 살아도 대한민국에서 살아야한다.'였다.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생존이 가능할지가 의문이었고, 내가 공부했던 '한국사'를 그곳에서는 더 이상 활용할 수도 없었다. 남들이 일궈 놓은 옥토를 탐내기 보다는, 나의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타국으로 떠나는 독립운동가가 아닌바에는 대한민국을 떠나서 살 수 없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시절에 'Hell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민가고 싶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내주변에도 많았다. 그때 '당신들 처럼 이땅을 떠나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둠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두려워서 도망친곳에 천국이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땅을 천국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 가서도 또다른 천국을 찾으려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떠나지 않으려는 비율이 타국보다 높다는 점을 떠올리며, 나의 이웃에게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자!'라고....

  셋째,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풍요를 늘리려는 소비자가 아니라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이다. "경축!! 아파트 안전진단 통과"라는 플랫카드가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 내걸렸다. 많은 사람들은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뜻이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파트가 안전하지 않기에 재건축허가가 났다는 뜻이었다. 집의 안전조차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불안전이' 축하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컬한 현실이다. 약탈적 다국적 기업과 화석연료의 한계, 신자유주의의 폭주 속에서 더 많은 부와 풍요를 얻기 위해서 소비를 장려하고 있고, 황금만능주의를 부채질하고 있다. 집값이 올라 돈을 버는 지인들을 보며서 배아파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돈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는다. 그러나 사피엔스라는 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풍요를 늘리려는 소비자가 아니라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이명박 정권시기에 야만적 황금만능주의는 용산 재개발을 막는 서민들에게 전투경찰을 투입시켰다. 전투경찰과 시민들이 죽어나갔지만, 전투경찰을 무모하게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몬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비정한 사회를 살아온 우리는 다시한번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를 수호하려는 몸부림을 쳐야한다.

  넷째, "오늘이 내일을 바꾸고 내일이 어제를 바꿉니다."(이희재)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반면에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과거를 호출하는 이유는 오늘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이희재와 조지 오웰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들말의 공통점을 아는가? 바로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우리의 내일을 바꾸고 결국에는 우리의 과거를 바꾸게 된다. 그리고 오늘을 개혁하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과거 사실을 호출한다. 우리가 오늘! 지금 당장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바뀌게 된다. 우리의 미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늘에 있다.

  무시무시한 '금벌'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의 폭주시대를 살아가지만, 현실을 회피하기 보다는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며 오늘을 살아가자! 풍요를 늘리려는 소비자로 살기보다는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인으로 살아가자! 금벌세력의 외곡된 정보에 속아 그들의 희생양이 되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아 주인으로 살아가자! 이것이 '어리석은 친구들과' 신자유주의의 사막을 건너는 방법일 것이다.

 

4. 동의할 수 없는 이희재의 주장

  저자 이희재는 나의 상식들을 많이 깨뜨렸다.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를 인도했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첫째,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용인하라는 주장이다. 이희재는 '한국은 일본 정부 각료들이 야스쿠니 참배가 불편하더라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더나가서 '한국인 피해자이기에 오히려 대답하게 일본을 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전범은 천황의 총알받이가 된 가엾은 사람들이라는 여유를 억지로라도 가질 필요가 있지 않'냐는 주장을 한다. 탁월한 식견을 가진 이희재가 한일관계 만큼은 그러한 식견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강자의 여유는 인자함으로 보이지만, 약자의 여유는 만용일 뿐이다. 일본은 세계 경제 2,3위를 다투는 강국이다. 언제라도 재무장을 한다면 강력한 군사대국으로 침략전쟁을 펼칠 수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나라의 정치인이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한다면, 이는 일본의 침략야욕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자는 억지에 불과하다. 현재는 '우리가 과거를 호출하는 이유는 오늘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라는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면서 재무장화 팽창주의를 노골화하는 일본을 합리화하고 있다. 우리가 약자이기에 강자인 일본의 팽창주의를 좌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제2의 선조가 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이희재는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은 없었으며, 유대인 600만명이 희생되었다는 숫자는 과장된 것이라 주장한다. 팔레스타인지역에서 무고한 파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패로 '가스실'과 '유대인 600만명 희생'이라는 신화를 지키려한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기존에 읽었던 수많은 책들과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얻은 상식과 대치되는 주장이기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물론, '600만명'이라는 숫자는 통계사의 실수로 오차가 날 수는 있다. 그러나 '가스실'이 없었다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 많은 자료를 읽고 판단해야겠다.

  셋째, '김일성을 소련땅으로 불러들인 것이 일본의 반발을 고려해서'일 것이라는 주장도 동의할 수 없다. 당시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의 일원으로 만주에서 활동했다. 중국공산당과 소련 공산당이 장기적 항전의 역량을 보전하기 위해서 중국공산당이 소련땅으로 이주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일본은 노몬한 전투 패배 이후, 공격진로를 남방으로 결정한 이후이다.

  넷째, 선량한 독재자는 선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해본다. 저자 이희재는 카다피를 비롯한 많은 독재자들을 소개하며, 이들을 권좌에서 몰아낸 금벌세력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카다피의 경우, 최고 소득세율을 90%로 올리며 금벌로부터 독립을 추구했던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민주주의대 독재의 구도로 볼 것인가? 금벌대 반군벌의 대결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카다피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금벌로부터 독립하려는 선량한 독재자는 설혹 그가 장기간 집권을 했다고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 질문에 이희재는 무어라 답변할까?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완벽함을 바래서도 안된다. 또한 생각의 자유가 있기에 저자의 관점을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강요해서도 안된다. 저자 이희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면도 있지만,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5. 동북아 현실을 직시하다.

  "일본은 독립국이 아니다." 저자 이희재의 말이다. 물론, 이희재는 한국도 독립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일본과 한국을 미국이 부리는 장기알과 같은 존재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노리는 것은 일본이 한국, 중국, 러시아 같은 주변 나라들과 반목하면서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샌프란 시스코 조약에 독도를 비롯한 영토 문제를 모호하게 처리하여 분쟁의 씨앗을 남겼으며, 1955년 일본이 소련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려하자, 미국이 압력을 행사하여 협상을 결렬 시켰다. 미국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가 출범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하토야마 전 총리가 낙마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주변 이민족을 상대할 때,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견제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를 사용했다. 미국은 중국이 사용하는 전술을 동아시아에 사용하고 있다. 달리보자면, 로마가 속주를 통치할 때 사용했던, '분할하여 통치하라(Divide and rule)'라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할까? 소설가 복거일은 '핀란드화하는 한국'이라며 걱정어린 눈빛으로 한국의 외교정책을 바라보고 있다. 이희재는 핀란드화란 '러시아, 중국 같은 인접국에게 적대적 외교 국방 정책을 추구하도록 미국이 설득하거나 위협했을 때 순순히 따르지 않는 핀란드, 한국 같은 소국이 미국한테 찍혀서 듣게 되는 소리'라고 정의한다. 복거일은 한국의 핀란드화를 자주성이 훼손되는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보았으나, 이희재는 약소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추구하는 자주적 외교로 평가하고 있다. 보수의 입장에서 한국의 외교를 바라볼 것인가? 진보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핀란드화'를 나쁘게도 볼 수 있고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다.그렇다면, 핀란드의 역사가 어떠했기에 '핀란드화'라는 말이 생겼을까? 핀란드는 러시아 혁명후 벌어진 적군과 백군의 내전에 개입했다. 2차 세계대전 직전에 영국이 자신을 지켜줄 것을 믿고 소련군과 대결했다가 모스크바조약을 맺고 영토의 10%를 소련에 내어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핀란드의 외교정책에 많은 교훈을 준다. 사람이 범을 두려워하나, 범의 입장에서는 사람이 두려운 법이다. 핀란드 입장에서는 소련이 두렵지만, 소련의 입장에서는 군사적 요충지를 가지고 있는 핀란드가 두려운 법이다. 그래서 핀란드는 소련을 되도록 자극하려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토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 일변도의 종속적 외교가 아닌, 핀란드를 중심에 놓고 실리적 외교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핀란드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한국의 핀란드화'는 걱정해야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3차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남북이 대화하고 하나될 때,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에게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목도했다. 강대국의 '이이제이'에 대항 할 수 있는 우리의 외교전술은 '한국의 핀란드화' 즉, 남북의 자주적 실리외교일 것이다.

  한편에서 중립국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이희재는 '제 나라를 제 손으로 지킬 힘이 있는 나라만이 진정한 중립, 지속 가능한 중립을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조선 고종시기에 '조선 중립화론'이 유길준과 부들러에 의해서 제기됐다. 그러나 자주 국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립화 논의'나, 중립외교를 통한 조선을 지키려는 노력은 허망하게 끝났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면, 그 어떤 외교 전략도 성공하기 힘들다.

 

  이 책에는 로힝야족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지금은 미얀마 인들에게 쫓겨나 보트피플이 되어버린 로힝야족! 이들에 대한 박해를 저지르는데 이를 막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아웅산 수지 여사를 세계 언론들이 비판한다. 그러나 영국의 지배속에서 5등 국민으로 살아야했던 미얀마인은 로힝야족에게 집단 학살까지 당했다. 과거부터 뿌리 깊은 로힝야족과 미얀마 인들의 반목이 오늘의 로힝야족 사태를 만들었다. 미얀마 나쁜 나라, 로힝야족 불쌍한 종족 이라는 등식이 일방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을 이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선과 악,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보다는 다양한 시각에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식견을 이 책은 제공하고 있다. '금벌'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세계를 바라보고,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좋은 책은 새로운 독서 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책이라고 한다. '금벌'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명확히 바라보기 위해서 '화폐전쟁'이라는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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