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전쟁 - 말을 상대로 한 보이지 않는 전쟁, 말과 앎 사이의 무한한 가짜 회로를 파헤친다
이희재 지음 / 궁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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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난 이후, 나는 더이상 책의 읽기 전의 내가 아니다. 단순히 번역을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지적하는 책으로 생각하고 책을 펼쳐든 순간! 이 책은 나의 상식을 가차없이 박살내버렸다. 때로는 혼란스러웠다.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 남다른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의 자존심은 땅바닥에 내평겨쳐졌다. 그리고 세계사를 다시 공부하고, 역사관을 재정립하라는 강력한 망치가 나의 머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초강력 태풍이 대지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생명들이 다시 꿈틀 거리듯이, '번역전쟁'이 할키고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한번 넓어진 시야와 가치관은 나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과연 '번역전쟁'은 나에게 어떠한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을까?

 

1. 언어가 사유를 지배한다.

  언어는 사유를 지배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결정한다. '포플리즘'을 '인끼 영합주의'로 번역할 것인가? '서민주의'로 번역할 것인가? '포플리즘'에는 두 의미가 다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에서는 '포플리즘'을 인끼 영합주의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사실 남아메리카의 페론정권을 비롯해서 진보적인 정권에서 실시하는 정책들을 '포플리즘'으로 매도하고 그들의 정책 때문에 남아메리카의 여러나라 경제가 혼란에 빠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차베스 정권을 비롯하여, 페론 정권에서 실시한 정책들은 '서민주의' 정책이었고 경제를 망친 것은 그들이 들어서기 전에 정권을 잡았던 독재자들과 그들이 정권에서 물러난 이후에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독자자들 이었다.

  이희재는 '민영화'라는 말과 '사유화'라는 말 중에서 어느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가? 라는 물을 제기한다. 사실 남아메리카를 비롯해서 아프리카의 여러 진보적 정권에서 추진한 '서민주의 정책'들을 '인끼 영합주의'라고 매도하면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들이 추진했던 경제정책은 '사유화'였다. 그리고 그들은 '민영화'라고 외쳤다. 현명한 시민이라면, '민영화'라 쓰고, '사유화'라고 읽어야한다. '인기 영합주의'와 '서민주의'와의 대결, '민영화'와 '사유화'의 대결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었다. 이 세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떠한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었다.

  공자의 정명사상이 떠오른다. 자로가 공자에게 위나라 군주가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을 먼저하실지를 물었다. 공자가 가장 먼저하려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자는 놀랍게도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라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공자는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리에 맞지 않고,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으며, 일을 이룰 수 없으며 예악이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이 공정할 수 없으며, 형벌이 공정하지 않으면, 백성이 손발조차 둘 곳이 없게된다. 그래서 군자는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말이 있게 되고 말이 있으면 반드시 실천하게 된다.(君子於其所不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라고 했다. 어떠한 사람과 일에 정확한 말을 사용해야함을 이미 2천여년전에 공자가 말하고 있다. 지금의 세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부당한 용어를 사용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세력들과의 기나긴 싸움을 하는 시기이다.

  이희재는 강력히 이러한 현실을 비판한다. '극우'라는 개념은 자민족 자국민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타국민, 타민족을 증오하는 일본의 재특회와 같은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한국의 '극우'라고 불리는 사람은 친일 반민족 세력으로 자국민을 죽이고 타국에 아부하는 세력이라며, 그들을 '극우'라고 불러서는 안된다고 일갈한다. 또한, 한국의 언론들은 대자본의 자유와 안전을 지상과제로 생각하는 금융 족벌 세력들의 편에서서 원/달러 환율 약세라는 부정적 표현을 사용해서 철저히 대기업 위주의 생각을 하도록 한다고 지적한다. 공자가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이름을 바로 잡는 일을 가장 먼저하겠다고 말했듯이, 이희재는 금융재벌들의 편에선 잘못된 말들을 바로 잡으려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2. 현대사를 바로 보는 키워드 '금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역사관'이라한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을 대학시절 많이들었다. 저자 이희재는 '금융재벌' 즉, '금벌'이라는 키워드로 현대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영국은 신사국이 아니라 금벌국이라고 주장하며, '1, 2차 세계 대전의 전범은 영국'이라고 주장한다. 처음 이주장을 읽었을 때, 기존 학계의 통설과 너무도 달랐기에 무척 당혹스러웠다. 미국이 군산 복합체 국가이며, 전쟁을 필요로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 군산 복합체, 아니 '금벌'의 뿌리가 근대 영국으로 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이희재는 한발자국 더 나가서, '금벌'은 미국도 장악했다고 주장한다. '금벌'들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으며, 이들은 주기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에 저항하는 지도자들은 철저히 제거된다고 주장한다. 소련과의 군축협상을 추진하며 화해와 평화를 추구했던 스웨덴의 팔메 대통령이 1986년 8월 28일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암살당했으며, 소련과 평화 공존을 추구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델레스에서 암살되었다. 심지어는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가 미국 민주주의가 우뚝서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 알고 있는 워터게이트 사건도 '닉슨 독트린'과 '베트남 철수'를 추진하여 평화 정착을 위해서 노력하던 닉슨 대통령을 낙마시키기 위한 금권세력의 검은 그림자였다. 가공할 금권세력의 힘앞에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금벌세력들은 언론도 장악했다. 서구의 진보지라 자청하는 신문조차도 금벌의 이익에 봉사한다. 서구 금벌들이 장악하던 자원들을 푸틴이 국유화하고, 서구의 금벌세력에 대항하려하자, 푸틴을 악마로 그리고 있다. 오히려 진실을 말하고 있는 'RT'라는 언론사를 푸틴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무시한다. 이희재가 들려주는 '금벌'이라는 키워드로 본 현대 세계는 충격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희재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될 것인지를 고민했다. 내가 알고 있는 '군산복합체'라는 개념과 '세계의 큰손 유대인 자본'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이희재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 결과 '금벌' 이라는 키워드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희재는 말한다. "언론을 맹신하면 악의 세력에게 박수를 배내기 십상'이라고.... 한국의 조,중,동만을 보고서, 한국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 처럼, '금벌' 중심의 세계관으로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럼, '금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예는 없을까?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개인의 씨앗 교환을 금지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할까?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는 '위험 작물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씨앗 교환을 금하고, 자립 공동체인 '에덴 동산'에 경찰 특공대를 난입시켰다. 소비를 미덕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 자본가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려는 '금벌'의 나라! 그곳에서는 소비를 하지 않고 자립하여 스스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살려는 개인들을 위험한 존재로 보고 있다.

  이희재가 주장하는 '금벌'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두번째 예로 '인턴'과 '팁'이라는 용어를 들 수 있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사회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인턴'이라는 제도가 '무급 노동'을 강요당하고, 자본가들의 인건비 절약을 위한 제도로 이용되고 있다.  유럽의 '레스토랑'에서는 써빙을 보는 사람에게 업주가 월급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손님의 팁으로 먹고 산다. '팁'이라는 제도는 사업주의 노동비를 절감하기 위한 제가 된지 오래다. '금벌'의 이익을 무한대로 증대하려는 무서운 신자유주의 사회 곳곳에서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기 보다는 '열정 패이'라는 명목으로 착취를 강요당하고 있다. '매너'가 남을 끌어 안으려는 예법이라면, '에티켓'은 신흥 부르주아지를 차별하려는 구 귀족들의 배제 예법에서 나온 것이다. '매너'가 사라지고, '에티켓'이 자리잡은 무서운 신자유주의 사회! 금벌 사회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3. 사막을 건너는 방법

  소련이 붕괴했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주장했다. 모두가 공산주의가 사라지면 장미빛 천국이 우리를 향해 문을 열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경쟁자가 사라진 자본주의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규제는 악으로 규정되었다. '민영화'가 '사유화'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많은 산업들을 '민영화'시키려했다. 이전에는 없었던 '비정규직', '88만원 세대'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공부방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정규직'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리석은 친구보다 현명한 적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는 '현명한 적'이 없고, '어리석은 친구'만 있다. 아직도 신자유주의의 폭주가 얼마나 우리 사회를 황폐하게 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친구들'!!  그렇다면 '어리석은 친구들'과 함께, 신자유주의라는 사막을 건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우선, '생각하자! 깨어있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프리카 북부 말리에는 투아레그 민족해방운동 조직이 있다. 알제리 정보부는 급조된 극렬 이슬람 무장 조직을 침투시켜 투아레그 민족해방운동 조직을 과격화 시켰다. 이들은 결국 민중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결국 하층부의 말단 행동대원들은 자신의 행동을 순교라 생각하며 목숨을 바치지만, 진실은 상층부의 극렬 테러리스트와 그들의 사주한 자들에 이용당한 희생양일 뿐이다. 이 책에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조직에 '금벌'이 침투시킨 공작원들이 활약하며, 그 조직들을 와해시키고, 혹은 혼란을 가중시켜 서구의 '금벌'이 아프리카의 자원을 안전하게 수탈할 수 있도록 만든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며,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려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 의해서 '순교'를 강요당할 수 있다. 스스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금벌'의 실체를 바로 보아야한다. 깨어있자! '금벌'의 실체를 바로보고, 현명하게 삶을 살아가자!

  둘째, "문명국은 시련에 처한 제 나라를 안 떠나려는 젊은이가 많은 나라"이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만약 임용고사에 떨어지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이다. 임용고사에 떨어져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조달하며 힘겹게 살아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낮아지고 있었다. 힘들때는 이민 정보를 찾았다. 결론은 '죽어도 대한민국에서 죽고 살아도 대한민국에서 살아야한다.'였다.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생존이 가능할지가 의문이었고, 내가 공부했던 '한국사'를 그곳에서는 더 이상 활용할 수도 없었다. 남들이 일궈 놓은 옥토를 탐내기 보다는, 나의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타국으로 떠나는 독립운동가가 아닌바에는 대한민국을 떠나서 살 수 없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시절에 'Hell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민가고 싶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내주변에도 많았다. 그때 '당신들 처럼 이땅을 떠나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둠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두려워서 도망친곳에 천국이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땅을 천국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 가서도 또다른 천국을 찾으려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떠나지 않으려는 비율이 타국보다 높다는 점을 떠올리며, 나의 이웃에게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자!'라고....

  셋째,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풍요를 늘리려는 소비자가 아니라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이다. "경축!! 아파트 안전진단 통과"라는 플랫카드가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 내걸렸다. 많은 사람들은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뜻이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파트가 안전하지 않기에 재건축허가가 났다는 뜻이었다. 집의 안전조차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불안전이' 축하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컬한 현실이다. 약탈적 다국적 기업과 화석연료의 한계, 신자유주의의 폭주 속에서 더 많은 부와 풍요를 얻기 위해서 소비를 장려하고 있고, 황금만능주의를 부채질하고 있다. 집값이 올라 돈을 버는 지인들을 보며서 배아파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돈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는다. 그러나 사피엔스라는 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풍요를 늘리려는 소비자가 아니라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이명박 정권시기에 야만적 황금만능주의는 용산 재개발을 막는 서민들에게 전투경찰을 투입시켰다. 전투경찰과 시민들이 죽어나갔지만, 전투경찰을 무모하게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몬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비정한 사회를 살아온 우리는 다시한번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를 수호하려는 몸부림을 쳐야한다.

  넷째, "오늘이 내일을 바꾸고 내일이 어제를 바꿉니다."(이희재)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반면에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과거를 호출하는 이유는 오늘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이희재와 조지 오웰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들말의 공통점을 아는가? 바로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우리의 내일을 바꾸고 결국에는 우리의 과거를 바꾸게 된다. 그리고 오늘을 개혁하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과거 사실을 호출한다. 우리가 오늘! 지금 당장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바뀌게 된다. 우리의 미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늘에 있다.

  무시무시한 '금벌'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의 폭주시대를 살아가지만, 현실을 회피하기 보다는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며 오늘을 살아가자! 풍요를 늘리려는 소비자로 살기보다는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인으로 살아가자! 금벌세력의 외곡된 정보에 속아 그들의 희생양이 되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아 주인으로 살아가자! 이것이 '어리석은 친구들과' 신자유주의의 사막을 건너는 방법일 것이다.

 

4. 동의할 수 없는 이희재의 주장

  저자 이희재는 나의 상식들을 많이 깨뜨렸다.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를 인도했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첫째,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용인하라는 주장이다. 이희재는 '한국은 일본 정부 각료들이 야스쿠니 참배가 불편하더라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더나가서 '한국인 피해자이기에 오히려 대답하게 일본을 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전범은 천황의 총알받이가 된 가엾은 사람들이라는 여유를 억지로라도 가질 필요가 있지 않'냐는 주장을 한다. 탁월한 식견을 가진 이희재가 한일관계 만큼은 그러한 식견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강자의 여유는 인자함으로 보이지만, 약자의 여유는 만용일 뿐이다. 일본은 세계 경제 2,3위를 다투는 강국이다. 언제라도 재무장을 한다면 강력한 군사대국으로 침략전쟁을 펼칠 수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나라의 정치인이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한다면, 이는 일본의 침략야욕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자는 억지에 불과하다. 현재는 '우리가 과거를 호출하는 이유는 오늘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라는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면서 재무장화 팽창주의를 노골화하는 일본을 합리화하고 있다. 우리가 약자이기에 강자인 일본의 팽창주의를 좌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제2의 선조가 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이희재는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은 없었으며, 유대인 600만명이 희생되었다는 숫자는 과장된 것이라 주장한다. 팔레스타인지역에서 무고한 파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패로 '가스실'과 '유대인 600만명 희생'이라는 신화를 지키려한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기존에 읽었던 수많은 책들과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얻은 상식과 대치되는 주장이기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물론, '600만명'이라는 숫자는 통계사의 실수로 오차가 날 수는 있다. 그러나 '가스실'이 없었다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 많은 자료를 읽고 판단해야겠다.

  셋째, '김일성을 소련땅으로 불러들인 것이 일본의 반발을 고려해서'일 것이라는 주장도 동의할 수 없다. 당시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의 일원으로 만주에서 활동했다. 중국공산당과 소련 공산당이 장기적 항전의 역량을 보전하기 위해서 중국공산당이 소련땅으로 이주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일본은 노몬한 전투 패배 이후, 공격진로를 남방으로 결정한 이후이다.

  넷째, 선량한 독재자는 선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해본다. 저자 이희재는 카다피를 비롯한 많은 독재자들을 소개하며, 이들을 권좌에서 몰아낸 금벌세력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카다피의 경우, 최고 소득세율을 90%로 올리며 금벌로부터 독립을 추구했던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민주주의대 독재의 구도로 볼 것인가? 금벌대 반군벌의 대결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카다피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금벌로부터 독립하려는 선량한 독재자는 설혹 그가 장기간 집권을 했다고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 질문에 이희재는 무어라 답변할까?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완벽함을 바래서도 안된다. 또한 생각의 자유가 있기에 저자의 관점을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강요해서도 안된다. 저자 이희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면도 있지만,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5. 동북아 현실을 직시하다.

  "일본은 독립국이 아니다." 저자 이희재의 말이다. 물론, 이희재는 한국도 독립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일본과 한국을 미국이 부리는 장기알과 같은 존재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노리는 것은 일본이 한국, 중국, 러시아 같은 주변 나라들과 반목하면서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샌프란 시스코 조약에 독도를 비롯한 영토 문제를 모호하게 처리하여 분쟁의 씨앗을 남겼으며, 1955년 일본이 소련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려하자, 미국이 압력을 행사하여 협상을 결렬 시켰다. 미국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가 출범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하토야마 전 총리가 낙마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주변 이민족을 상대할 때,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견제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를 사용했다. 미국은 중국이 사용하는 전술을 동아시아에 사용하고 있다. 달리보자면, 로마가 속주를 통치할 때 사용했던, '분할하여 통치하라(Divide and rule)'라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할까? 소설가 복거일은 '핀란드화하는 한국'이라며 걱정어린 눈빛으로 한국의 외교정책을 바라보고 있다. 이희재는 핀란드화란 '러시아, 중국 같은 인접국에게 적대적 외교 국방 정책을 추구하도록 미국이 설득하거나 위협했을 때 순순히 따르지 않는 핀란드, 한국 같은 소국이 미국한테 찍혀서 듣게 되는 소리'라고 정의한다. 복거일은 한국의 핀란드화를 자주성이 훼손되는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보았으나, 이희재는 약소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추구하는 자주적 외교로 평가하고 있다. 보수의 입장에서 한국의 외교를 바라볼 것인가? 진보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핀란드화'를 나쁘게도 볼 수 있고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다.그렇다면, 핀란드의 역사가 어떠했기에 '핀란드화'라는 말이 생겼을까? 핀란드는 러시아 혁명후 벌어진 적군과 백군의 내전에 개입했다. 2차 세계대전 직전에 영국이 자신을 지켜줄 것을 믿고 소련군과 대결했다가 모스크바조약을 맺고 영토의 10%를 소련에 내어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핀란드의 외교정책에 많은 교훈을 준다. 사람이 범을 두려워하나, 범의 입장에서는 사람이 두려운 법이다. 핀란드 입장에서는 소련이 두렵지만, 소련의 입장에서는 군사적 요충지를 가지고 있는 핀란드가 두려운 법이다. 그래서 핀란드는 소련을 되도록 자극하려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토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 일변도의 종속적 외교가 아닌, 핀란드를 중심에 놓고 실리적 외교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핀란드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한국의 핀란드화'는 걱정해야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3차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남북이 대화하고 하나될 때,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에게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목도했다. 강대국의 '이이제이'에 대항 할 수 있는 우리의 외교전술은 '한국의 핀란드화' 즉, 남북의 자주적 실리외교일 것이다.

  한편에서 중립국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이희재는 '제 나라를 제 손으로 지킬 힘이 있는 나라만이 진정한 중립, 지속 가능한 중립을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조선 고종시기에 '조선 중립화론'이 유길준과 부들러에 의해서 제기됐다. 그러나 자주 국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립화 논의'나, 중립외교를 통한 조선을 지키려는 노력은 허망하게 끝났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면, 그 어떤 외교 전략도 성공하기 힘들다.

 

  이 책에는 로힝야족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지금은 미얀마 인들에게 쫓겨나 보트피플이 되어버린 로힝야족! 이들에 대한 박해를 저지르는데 이를 막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아웅산 수지 여사를 세계 언론들이 비판한다. 그러나 영국의 지배속에서 5등 국민으로 살아야했던 미얀마인은 로힝야족에게 집단 학살까지 당했다. 과거부터 뿌리 깊은 로힝야족과 미얀마 인들의 반목이 오늘의 로힝야족 사태를 만들었다. 미얀마 나쁜 나라, 로힝야족 불쌍한 종족 이라는 등식이 일방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을 이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선과 악,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보다는 다양한 시각에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식견을 이 책은 제공하고 있다. '금벌'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세계를 바라보고,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좋은 책은 새로운 독서 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책이라고 한다. '금벌'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명확히 바라보기 위해서 '화폐전쟁'이라는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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