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의 교육 - 키로파에디아 현대지성 클래식 51
크세노폰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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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로파에디아' , 키루스의 교육이라는 제목은 참으로 낯설다. 교육관련 서가에 꽃혀 있어야할 책이 최고의 리더십 서적으로 소개되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책의 목차를 보고서 이 책의 제목이 적절한지에 관한 의문은 더 깊어졌다. 키루스 대왕의 일대기를 서술한 평전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렇다면, 크세노폰은 왜? '키루스 대왕의 일대기'라는 제목을 쓰지 않고, '키루스의 교육'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아마도, 키루스 대왕의 일대기를 통해서 그의 리더십을 배우라는 의도에서 이러한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키루스 대왕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1. 베풀어라! 그러면 더 차오를 것이다!

키루스는 12살까지 페르시아의 강건한 교육 속에서 자랐다. 그는 어머니 만다네를 따라 메디아의 왕 아스티아게스의 궁전에 간다. 탁월한 말솜씨로 키루스는 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의 마음을 훔친다. 아스티아게스가 키루스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은 키루스의 행동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 상으로 받은 음식을 키루스는 할아버지를 모시는 시종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이를 통해서 할아버지의 마음뿐만 아니라 메디아의 궁전을 돌보는 시종들의 마음까지 얻는다. 이것은 키루스가 서아시아를 통일하는 기본바탕이 되었다.

많은 수확물을 얻고 싶다면 봄철, 밭에 많은 씨앗을 뿌려야한다. 어린 키루스는 이를 알았다. 그래서 정복전쟁을 수행하면서 얻은 수많은 전리품을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에게 나눠주었다. 황금을 창고에 넣고 도둑으로부터 자신의 보물을 지키려 고뇌하기보다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의 마음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물을 그들이 잘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었다. 키루스는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베풀고 사랑을 나눠주면 상대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며 은혜를 갚기도한다. 그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아브라다타스와 판테에아의 사랑 이야기이다. 정복지에서 키루스의 군대에 짓밟히지 않으려 노력한 판테이야는 키루스의 배려로 사랑하는 아브라다타스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당신이 키루스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녀의 남편 아브라다타스는 자신이 키루스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차를 몰고 이집트 병사의 팔랑크스 대형에 돌진했다가 장렬히 전사한다. 그리고 그녀도 남편과 한벌의 외투로 덮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한다. 키루스의 베품에 아브라다타스와 판테이야는 둘의 목숨으로 보답했다.

항우가 유방과의 대결에서 실패한 것도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나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방보다 지략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사람이 없었던 이유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주먹세계를 주름잡았던 김두한도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을 따르는 어깨들에게 아낌 없이 나눠주었다. 어느 세계에서나 리더는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눌줄 알아야한다. 그것이 황금일 수도 있고 마음 일수도 있다.

 

2. 타인의 말을 맹신하지 말라! 자신이 직접 진실을 듣고 해석하라!

영화 '파묘'에서 신세대 무녀가 등장한다. 과학문명의 시대에 살면서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속인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명문대학을 나온 지식이들이 점술사의 말을 믿고 손에 왕자를 세겨 넣는다던지, 점술사가 하는 말을 그대로 실행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한다. 우리 사회에 속물들의 행태를 미리 알았는지 키루스의 아버지 캄비세스는 출정하는 키루스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반드시 네 자신이 신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직접 보고 신들이 들려주는 것을 직접들어서 신들의 뜻을 알아야한다. (중략) 예언자들이 신들의 징조가 보여주는 의미와 다른 것을 말해 너를 속이려할 때는 흔들려서는 안된다." -50

 

자신의 지혜를 믿고 자신의 눈과 귀로 진실을 보고 들어서 자신의 판단력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한다. 신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시대! 신의 뜻을 전달하는 제사장의 권위가 막강했던 그 시대에 이미 캄비세스는 아들에게 타인의 눈으로 진실을 보려하지 말고 자신의 지혜와 판단력을 믿고 진실을 직접 보고 들으라 말하고 있다. 이는 무속에 메달리는 일부 정치인들과 일부 연예계 인사, 그리고 무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무지목매한 시민들에게 들려주는 따뜻한 경종이다.

 

3. 천하를 먼저 근심하고 앞장서라!

북송의 명재상 범중엄은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나중에 즐기리라.(先憂後樂)'라고 하였다. 리더는 만민 위에 군림하며 편안함에 취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미리 다가올 환란에 대비하는 존재이다.

 

"통치자는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점에서 신민들과 달라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미리 내다보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에 누구보다 앞장선다는 점에서 달라야한다."-32

 

키루스는 노빌레스 오빌리쥐를 실천하는 자가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 처럼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국민의 안전과 나라 경제의 건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몇수 앞을 내다보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한다.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특권의식을 집어 던지고 솔선수범하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한다. 이러한 모습은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어 위기를 모두가 함께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는 과연 그런 리더가 있는가? 벤츠나 50억 퇴직금, 명품백을 강한자가 받으면 무죄이고, 약한자가 받으면 강력범죄인 세상이 아닌지 묻고 싶다.

 

4. 현명해져라!

리더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한다. 최고 의사결정자의 경우,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한다. 특히 훌륭한 참모진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에는 리더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한다. 아시리아 정복 전쟁에 나서면서 키루스는 병사들에게 세세하게 지시한다. 책을 읽는 동안 키루스 대왕이 이 모든 것을 다 섭렵하고 세세하게 지시한 것이 실제로 가능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키루스 대왕은 전쟁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통치 제도를 만들어 제국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탁월한 리더이다.

 

"통치자가 신민들보다 더 현명해 보이는 것보다 그들을 복종시키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60

 

그렇다! 현명한 키루스 대왕의 명령에 누가 불복종하겠는가! 백성들이 키루스를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추대를 받아 메디아인의 지도자, 히르카니아인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서아시아를 통일했다. 사보이아 공국의 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모든 국가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Every nation gets the government it deserves)”라고 말했다. 페르시아인들은 강건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페르시아인은 소변보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남몰래 소변을 본다. 그것은 운동을 열심히하여 땀으로 수분을 배출해야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소변을 본다는 것은 운동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이럴 정도로 강건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에 페르시아인은 키루스 대왕을 지도자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키루스와 같은 리더를 가지고 있는가? 대통령이 경제를 잘 안다고 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있다. 유시민 작가는 A급 밑에는 A급 혹은 B이 모이지만, C급 밑에는 절대 A급 인물이 모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탐욕에 눈이 멀어 현명한 리더를 뽑을 눈을 갖지 못한 우리는 현명함을 먼저 갖추려 노력해야한다. 국민이 현명해질때만이 현명한 리더를 볼 수 있고, 리더를 현명하게 만들 수 있다.

 

5. 나의 사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고 행동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라는 속담이 있다. 선의에서 한 일이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키루스는 메디아아의 왕 키악사레스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여 페르시아군을 이끌고 아시리아군을 패퇴시켰다. 많은 연합군을 이끌고 수많은 성채를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디아의 왕 키악사레스는 키루스를 외면하며 눈물을 흘렸다. 당황한 키루스는 야자나무 밑으로 가서 키악사레스의 진심을 들었다.

 

"누군가가 너의 아내에게 잘해주어서 너의 아내가 너보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너는 그 사람이 네 아내에게 잘해준 것을 기뻐하겠느냐?"-246

 

메디아의 왕 키악사레스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아시리아를 격파하고 적의 성채와 보물을 빼앗아 키악사레스에게 주었지만, 이것이 키악사레스에게는 '왕이 될 자격도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조가 이순신 장군을 미워한 것도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두어 백성들이 이순신 장군을 찬양할수록, 선조에게는 자신이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행위로 느꼈을 것이다. 선의로한 일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를 현명한 리더라면 예측해야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도 대비해야한다.

 

키루스와 같은 훌륭한 리더가 세운 페르시아 제국도 초기의 강건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국의 풍부한 자원과 안락함에 취해서 사치와 향락, 권력 암투 속에서 서서히 병들고 있었다. 크세노폰이 이 책을 쓰고 있던 시기의 페르시아 제국은 키루스 대제 시기의 페르시아가 아니었다. 결국, 100여년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공격에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외부의 충격이 있기 전에 내부가 썩어들어가고 있었으니 페르시아 제국은 알렉산드로스가 몰고온 충격을 버텨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외부의 충격이 언제 불어닥쳐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내부는 키루스 대왕의 페르시아의 상황인가? 아니면, 크세노폰이 본 곪아가고 있는 페르시아인가?

 

 

ps. 이 책에는 "제우스신에게 맹세하건데', '헤스티아신에게 맹세하건데' 등의 관용구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우스나 헤스티아는 그리스의 신이아닌가? 서아시아 지역에서 과연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크세노폰의 각색일까? 아니면 그리스의 12신이 서아시아에서도 널리 믿어진 것일까? 아시는 분이 조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ps. 이 책에는 "제우스신에게 맹세하건데', '헤스티아신에게 맹세하건데' 등의 관용구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우스나 헤스티아는 그리스의 신이아닌가? 서아시아 지역에서 과연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크세노폰의 각색일까? 아니면 그리스의 12신이 서아시아에서도 널리 믿어진 것일까? 아시는 분이 조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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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양장)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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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를 말하는 '아비투스'라는 단어를 알기 전까지 그러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단지 고루한 상류층의 문화가 있을 뿐이고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라는 책을 읽자, 기존에는 보이지 않았던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자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존재하지만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던 아비투스!! 

  

  이 책은 아비투스를 설명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순간 미래가 결정되는 점박이 하이에나를 예로든다. 왕자와 공주로 태어나는 세끼는 안전하게 보호받고 더 좋은 먹이를 안전하게 많이 먹고, 상류층의 전형적인 행동방식을 배운다. 아들들은 우두머리 암컷을 유혹하는 방법을 일찍이 터특하기에 경쟁자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번식한다.

  우리 인간의 세계도 점박이 하이에나와 같다. 상류층 부모로부터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물려받은 자녀는 보다 쉽게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흡수하여 상류층의 삶을 누리며 여유롭게 살아간다. 하류층의 아비투스를 물려받은 자녀는 치열하게 노력하여 계층 상승을 노리지만 상류층 자녀보다 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며, 때로는 상류층 아비투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것에 익숙해져라(Life is no fair, Get used to it)" 빌게이츠의 말이다. 그렇다!! 세상은 불공평했다. 어느 아비투스를 체득하느냐가 우리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 물론, 이 책에서는 상류층 아비투스를 소개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책은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자본을 소개한다. 이러한 자본에 따라서 하류층 아비투스에서부터 상류층 아비투스가 결정된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문화자본이다. 

  교사 발령을 받고 많은 소개팅을 했다. 그때 가장 당황스러운 장소는 햄버거 가게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주문을 받고 햄버거를 쟁반에 담아 소개팅녀와 식사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식사 후 쟁반과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와 대화에 집중하기 보다는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이 공간을 떠날때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탐색했다. 물론, 소개팅이 잘 진행될리는 없었다. 

  시골에서 자라서 햄버거를 먹을 기회도 없었으며, 햄버거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서민의 문화자본조차 없었다. 평범한 중류층 여성과의 데이트 조차도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나의 문화자본은 너무도 심각하게 부족했다!! 이러한 내가 임용고사를 통과해서 교사가 되었더라도 쉽게 중류층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던 이유는 나의 문화자본이 너무도 터무니 없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면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이라는 책에 소개된 청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는 풍부한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서민의 문화자본이 없기에 퇴위 이후의 삶이 쉽지는 않았지만, 푸이가 만주국 강덕제로 즉위하는 것을 지켜본 외국인은 푸이에게서 기픔있는 모습을 보앗다고 전한다. 찌질해 보였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푸이는 청나라 최상위츠의 문화 자본을 풍족하게 갖고 있었다. 그것이 못난 푸이를 기픔엤게 보이게했다. 아비투스의 힘은 정말 강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니체가 말한 '아모르파티'를 달리 해석하게 되었다. 부르디외는 "주어진 상황과 계급에 순응하는 태도"를 아모르파티라고 말했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름다운 말은 곧 네 운명에 순응하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아비투스에 순응하며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도전을 멈춰야할까? 운명에 순응한다면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처럼 계층 상승을 위해서 과잉교육열에 학생들이 혹사당하지 않아도 된다.


  "위로 올라가는 문을 열려면 최소한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한다." (128쪽)


  학벌 사회, 입시문제를 지적하며 외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외국의 최상류층은 자녀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자녀의 생존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세련된 아비투스를 얻기 위해서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고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해서 최상류층들은 자녀 교육에 올인한다. 

 피터지게 7가지 자본을 획득하여 1퍼센트의 상류층 사회에 진입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일까? 차라리 그러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각자의 삶의 의미에 따라서 선택하면 될 일이지만, 나에게는 상류층 사회에 진입하는 도전이 더 가치있어보이는 것은 왜일까?

  

  책장을 덮고 7가지 자본 중에서 한국 사회에서 중시여기는 자본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단연 경제자본이다. 경제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 지식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입시과열이 발생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도 상류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왜곡된 지식자본 축적과 물질만능에 빠져 경제자본 축적을 위해서 영끌해서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를 하기 때문이 아닌가? 나의 자녀에게 7가지 자본을 골고루 축적하도록 하여 최상위 계층으로 상승시키고자하는 열망이 책을 읽는 불타올랐다. 그러나, 책장을 덮자, 그것이 자녀를 행복하게 하는 일일지에는 의문이들었다. 자녀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려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 7가지 자본을 획득하는 이유가 최상위 계층으로 계층 상승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라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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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윤대석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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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국에는 박정희와 김일성 그리고 기시노부스케가 있었다. 그들은 만주에서 만주군으로 항일빨치산으로 만주경영의 실질적 책임자로 살았다. 광복후에는 남한과 북한, 일본의 최고 지위에 까지 올랐다. 만주국은 동아시아 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만주국에 대해서 우리는 잘알지 못한다. 이 책은 그 만주국을 키메라에 비유하며 우리에게 그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만주국은 오족협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다섯민족인 화합하며 공존하는 이상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상은 일본의 새로운 식민지일 뿐이었다. 중국인 관료와 일본인 관료의 급료차이는 물론이고, 생도들의 생활 차별도 심각했다. 


  "군관학교 생도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절반씩 차지하고 있었다. 커리큘럼, 교재 등은 똑같았지만 생활에 대한 대우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있었다. 복장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본인 생도는 위에서 아래까지 전부•신품이었지만 중국인 생도는 외출복 외에는 대부분이 낡은 것이었다.
침구와 그 외 생활용품도 복장과 마찬가지로 일본인 생도는 새것, 중국인 생도는 낡은 것이었다.
식사에도 차별이 있었다. 일본인 생도는 주식으로 쌀밥, 반찬은 영양이풍부한 것을 먹었다. 중국인 생도의 식사는 고량뿐으로, 그것도 말과 소에게 먹이는 사료용의 붉은 고량이었다. 그때 위병이나 위궤양에 걸린생도들은 사십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것이 ‘민족적 억압‘이 드러난 한 사례임은 명백하다 - P310

  

 오족협화는 허상이었고, 실제 생활에서는 야마토인의 우월성과 타민족에 대한 차별과 무시가 일상화되었다. 땅을 일본인에게 헐값에 강제 매각당하는 중국인과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겨울에 일본인에게 집을 빼앗기는 조선인들의 모습에서 오족협화라는 슬로건은 타민족 압살로 바뀌어야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모든 것을 빼앗겨서 한겨울에 알몸으로 살아가는 중국인 아이! 아버지는 강제 노동에 끌려가서 생사를 모른다! 저자는 아마도 군사 진지 구축에 동원되어 비밀유지를 이유로 학살당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것이 오족협화의 진실이었다. 

  오족협화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만주국 황제의 자리에 오른 푸이는 그 자리에 만족했을까? 비루한 푸이! 일본의 침략주의에 기대어 청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야심도 있었겠지만, 그는 꼭두각시 제국의 꼭두각시 황제였다. 만주국의 관료는 일본인들이 장악했다. 국방은 일본제국에 의탁했다. 만주국에는 헌법조차 없었다. 푸이의 비루함의 극치는 일본천황과 같은 지위를 획득하려 청나라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포기하고 일본의 아메타라스오오카미를 제사지내는 것으로 정점을 찍는다. 신토를 국교로 삼으며 일본천황에 기대어 강력한 지위를 얻어려했던 푸이는 꼭두각시에서 벗어나 꼭두각시 공연자가 되려했다. 그러나, 그는 꼭두각시를 벗어날 수없었다. 청조를 부흥시키겠다는 그가 청조를 부정하고 일본인이 되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느 학자는 만주국을 동아시아의 인큐베이터라 말했다고한다. 만주국은 일본제국의 각종 정책 실험장으로 활용되었으며, 일본 관리는 만주국 관리로 파견되었고 일본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실험을 일본에 다시 펼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만주국의 경제 정책을 비롯한 각종 정책은 1945년 이후에도 시행된다. 

  저자는 "평화주의를 이념으로 내걸고 국방을 타국에 위임하고 자신의 국토를 전략 기지로 제공한다"는 전략이 "전후 일본이 선택한 방향과 어딘가 상통하는 점이 있지 않은가?(106쪽)"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식민지 혹은 그에 상응하는 국가를 가진 국가의 국민은 식민지를 지배하는 원리에 의해 아무래도 스스로가 지배를 받게 된다.(300쪽)"라고 지적한다. 괴물과 싸우며 괴물과 닮아가듯이, 꼭두각시 만주국을 지배하며 일본은 만주국을 닮아갔다. 일본제국 없이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 만주국이 일본제국이 멸망하면서 사라졌듯이, 미국 없이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 일본이 미국의 하수인이되어 꼬리를 흔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일본의 다리밑을 기며 배를 드러내고 아양을 떠는 친일주구가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일본이 무너지면 생존할 수 있으까? 

  

ps. 번역가가 일본신 한자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여 책읽기가 무척 힘들었다. 주석이라도 제대로 달아주었다면 조금 나았으리라,...

  예를 들어 "대어심"이라는 단어는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없다. 큰 물고기의 마음이라는 설명을 빙이 할뿐이다.  또한 "착종" 처럼 잘 사용하지 않는 일본식 한자는 '혼종'으로 순화하여 번역하는 친절함을 발휘할 수는 없는지 저자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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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윤대석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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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월 9일, 5월 9일, 오호 우리나라의 치욕21개조를 승인하라고 무리하게 요구하네 - P34

2.5월 9일, 5월 9일, 국욕(國)의 고통이 얼마나 큰고한(조선)을 멸망시킨 수단을 우리에게도 사용하니우리는 결코 그처럼 되지 않으리
3.5월 9일, 5월 9일, 국욕은 반드시 씻어야 하리‘
-국치가

군관학교 생도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절반씩 차지하고 있었다. 커리큘럼, 교재 등은 똑같았지만 생활에 대한 대우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있었다. 복장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본인 생도는 위에서 아래까지 전부•신품이었지만 중국인 생도는 외출복 외에는 대부분이 낡은 것이었다.
침구와 그 외 생활용품도 복장과 마찬가지로 일본인 생도는 새것, 중국인 생도는 낡은 것이었다.
식사에도 차별이 있었다. 일본인 생도는 주식으로 쌀밥, 반찬은 영양이풍부한 것을 먹었다. 중국인 생도의 식사는 고량뿐으로, 그것도 말과 소에게 먹이는 사료용의 붉은 고량이었다. 그때 위병이나 위궤양에 걸린생도들은 사십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것이 ‘민족적 억압‘이 드러난 한 사례임은 명백하다 - P310

국무총리대신비서를 지낸 왕쯔형이 같은 방에서 근무했던 마쓰모토 마스오의 《복무수지(服務須知)》를 보고 적어두었다는 메모를 통해 그 내용을 엿볼수밖에 없다. 이 사료에는 모순도 있고 해서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는없으나, 어쨌든 거기에는 "조선민족과 한(漢)민족 사이는 소원하게 해야하지 친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양민족이 충돌했을 경우 그 시 - P311

비가 동등하다면 조선민족 편을 들고 한민족을 억누른다. 조선민족에게 잘못이 있으면 한민족과 동등하게 다루어야 한다"라는 말목 외에 각 민족의 민족성과 그에 대한 대응책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는 만계 관리에 대해 "친일파이건 반일파이건 그들의 언론, 행동, 공적·사적 생활에는 모두 주의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아니면 그 마음은 반드시 다르다‘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적혀 있었으며, 또한 "일본인을 제외한 타민족의 재산은 오로지 축소감소시켜야 할 뿐 이것을 증가시켜서는 안 된다"라고도 적혀 있었다고 한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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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세계 (양장) -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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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이상의 남성들이 많이 보는 다큐가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속의 생존경쟁에 지치고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고픈 존재들을 위한 다큐다. 내가 살고 싶은 대자연 속에 집을 짓고 자연으로부터 먹을 것을 구하면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나날들을 상상한다. "나는 자연인이다" 속의 자연과 자연인은 천국에 살고 있다. 그들을 괴롭히는 생존투쟁도 없고, 자본의 구속도 없다. 여유와 행복만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는 "나는 자연인이다" 속의 자연인들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전통사회를 소개했다. 이 책의 '전통사회'는 무리사회 혹은 부족사회를 뜻한다. 국가 성립 이전의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는 원시 부족사회를 낭만적으로 생각한다. 공동 생산 공동 분배하는 평등한 사회이며, 일정시간 사냥을 하고 여유롭게 나머지 시간을 즐기는 낭만의 시대로 생각한다.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원시 사회를 이상적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재레드 다이아몬든 교수는 낭만적 원시 부족사회는 없다고 말한다. 

  한예로,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에게 머슼켓총과 군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감자가 전해지자 대규모 머스켓 전쟁이 발발했다. 피지섬에도 머스켓 총이 전해지자 폭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평화로운 원시 부족사회는 환상이다. 그들 사회는 절대! 평화롭지 않았다. 부족간의 전쟁이 빈발했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은 한정된 식량을 두고 더욱 치열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작은 전투에 총이 전래되자 대규모 전쟁으로 발전했다. 평화로운 무리사회 혹은 부족사회는 없었다.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향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직접 가보지도 않은 원시시대를 원시 공산사회로 미화했고, 루소는 평화로운 원시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자유를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서 사회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원시 부족사회에서 생활하던 사람이 현대인에 의해서 발견되어지자, 그들은 원시 부족사회의 삶을 청산하고 문명사회에 적응하려했다. 왜일까?

  부족전쟁이 식민 정부의 강압적인 개입으로 종식되자 부족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부족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를 인구비율로 비교해보면, 현대 전쟁의 사망자 비율보다 부족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비율이 많다. 잦은 부족전쟁은 부족사회보다 현대 문명사회를 더 행복하게 여기게하는 주된 이유이다. 그래서, 뉴기니 고원지대의 아위야나족 남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삶이 더 나아졌다. .... 아침에 일어나 화살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없이 집에서 나와 소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20쪽


  국가가 없다면 개인은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국가를 탄생시켰다는 홉스의 지적은 자연상태를 평화로운 상태로 가정한 로크나 루소보다 더 현실적이고 타당했다. 폭력의 독점은 개인간의 폭력을 줄였다. 그러하기에 혼란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제3세계 민중들은 독재자에게도 복종했던 것이다.

  원시 부족사회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번째로 관계 획복에 촛점을 맞춘 사법체계를 들 수있다. 학교 현장에서 학폭이 법정에 까지 가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하고 고말을 남발하는 학부모도 있다. 모든 것을 '법대로 처리'하려는 얄팍한 생각은 우리의 현실을 팍팍하게 말들고 있다. 학교폭력이 벌어지면 해당 사안을 처벌에 촛점을 맞춰 진행하다보니,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관계회복은 이뤄지지 않는 비극이 발생한다. 

  부족사회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뉴기니에서는 사법적 처리도 이뤄지지만, 관계 회복을 위한 가해자의 노력과 피해자의 용서가 선행된다.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지적했듯이, 관계회복에 촛점을 맞춘 부족사회의 전통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사법적 처리와 함께 피해자가 원한다면 관계회복을 위한 절차를 사법부가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특히, 학교 현장에서 학폭사안에 대해서는 상담교사의 도움아래 관계회복절차라 이뤄지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둘째, 전통적인 뉴기니 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멀리한다. 마푸크는 재봉틀을 사서 부족민의 찢어진 옷을 수선해서 돈을 벌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친척들이 마푸크의 이기심을 나무랐다. 옷은 무료수선하고, 마푸크의 결혼식때 신부값을 지원하는 다른 방식으로 댓가를 지불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사례를 한가지 더 들자면, 뉴브리튼 섬의 카울룽족 아이들은 바나나 먹여주기 놀이를 한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놀이를 하며자란 카울룽족 아이들은 이기심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더 중요시한다. 

  우리의 교육현장에서는 친구를 이겨야 내가 1등급을 맞을 수 있는 경쟁구조가 확고히 자리잡았다. 한학년에 2명 이상의 교사가 수업을 할 경우, 학생들은 타반 선생님은 힌트를 주었는데 우리는 왜? 주자 않느냐며 항의한다. 물론, 확인 결과 타반 선생님은 힌트를 제공한 적이 없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친구를 딛고 일어서야한다는 경쟁심을 가르치는 우리 교육 현실이 개탄스럽다. 함께사는 세상을 만들기 보다는 타인을 딛고 내가 일어서는 삶을 살려하지 않을지 무척이나 염려스럽다. 

  셋째, 원시 부족사회의 노인 우대문화가 부럽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노인을 우대하는 유교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사라진감이 든다. 물론, 원시 부족사회라고해서 무조건 노인을 우대했던 것은 아니다. 한정된 식량자원을 아끼기 위해서 노인을 유기하거나 죽이는 원시 부족사회도 있다. 그러나, 노인의 지식이 생존에 유용했던 원시 부족사회에서 노인은 존중받을 수밖에 없다. 

  친가에 나이드신 어머니가 있고, 처가에 연로한 장인어른이 있다. 노부모를 봉양해야하는 상황에서 여러 생각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난다.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 효를 행하라고 아내에게 강요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인 효를 강요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모를 봉양해야한다. 날로 노쇠해지며 치매 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를 어찌 모셔야할지 눈물만이 흐른다. 

  넷째, 이중언어의 중요성이다. 원주민들은 보통 4~7개의 언어를 한다. 혹은 10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원주민들도 있다. 좁은 지역에 다양한 언어가 있는 뉴기니에서 이중언어 생활은 당연한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원주민 언어를 보호하고 이중언어 생활을 하는 것이 치매를 예방할 뿐만니라 원주민집단의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자. 자신의 뿌리가 되는 언어를 무시하고 타언어를 열심히 배우자는 주장은 아니다. 


  "원주민 소수집단 중에서도 문화와 언어를 원형대로 유지한 집단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사회복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적다."-596쪽


  오스트리일리아 원주민 중에서 전통적인 부족언어를 배운 원주민은 문화적으로 단절된 원주민보다 약물을 멀리하는 경향을 띤다.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영재교육 연수를 갔을 때, 뇌과학자분이 유대인의 예를 들면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정체성을 세울 뿐만 아니라 뇌발달에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나라없는 유대인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계 금융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저력은 역사와 언어를 잃지 않으므로서 뿌리뽑힌 민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면서 또다른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 뇌발달을 위해서, 타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의 책은 언제나 우리에게 통찰력을 준다. 그래서 한국어로 번역된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의 벽돌책을 열심히 읽는지도 모른다.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는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서도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냐 협조적이냐를 따지는 건 헛수고일뿐이다. 어떤 인간 사회에나 폭력과 협조는 동시에 존재하며, 환경에 따라 하나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하다."-233쪽


  그렇다. 성선설과 성악설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교육되었고 어떤 환경이 생애 초기에 제공되었느냐에 따라서, 자원의 희소성과 위협적인 국가가 이웃하느냐 등에 따라서 폭력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고 협조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의 세계 질서는 폭력적인 인간을 만들고 있을까? 협조적인 사람을 만드록 있을까?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는 나의 마음에 심오한 화두를 던진다.







ps.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책에도 아쉽지만, 옥의 티가 있다. 


  "히틀러와 일본 조차 소련과 미국에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그와 동시에 소련과 미국을 공격했다." -205쪽


  "일본 조차" 미국에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공격했다는 재레드 다이아몬든 교수의 지적을 잘못된 것이다. 일본은 진주만 공습 때 미국에 기습 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일본의 전형적인 전쟁 수법이 이른바 '선빵필승'이다. 선전포고 없이 먼저 공격한 후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후포고라고 해야하까?

  근데, 251쪽에는 진주만 기습을 "선전포고 전에 행해졌기 때문에 미국인들에게는 기만적인 잔혹행위로 여겨졌다."고 섰다. 205쪽의 서술과 배치된다. 물론, 205쪽 서술이 잘못된 것이다.


'어제까지의 세계'에는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문장도 소개되있다. 


  "종교는 억압 받는 사람들의 한숨이고, 비참한 세계의 심장이며, 영혼없는 상황의 상황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482쪽


  종교가 구원의 사다리이기보다 민중을 착취하는 지배자의 도구 혹은 그 지배자 자체일 때 마르크스의 종교에 대한 정의는 유효하다. 현재의 한국 종교에 이 정의가 유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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