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동화 - 고민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우에사카 도루 지음, 방승조 그림, 장윤정 옮김 / 나무한그루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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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전에 대한 재해석이 진행되고 있다. '선녀와 나뭇꾼'은 선녀의 입장에서는 여성 납치 결혼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효녀 심청'은 효를 이용한 인신매매와 살인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같은 책이라하더라도 시대에 따라서,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서 달리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반전동화'를 선택했다.

 

1. '토끼와 거북이'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선

  '토끼와 거북이'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동화이다. 노력이 중시되는 산업화 시대에 알맞은 동화인다. 그런데, '토끼와 거북이'는 많은 재해석이 가능한 동화이다. 이 책의 저자 우에사카 도루는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토끼가 거북이만을 보고 달린데 반해서, 거북이는 목표지점을 보고 달린 차이가 있다. 이 동화의 교훈은 '목표를 주시하라', '본질을 확실히 파악하라'라이다. 이것이 우에사카 도루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해석도 산업화시대의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해석이라는 느낌이 든다.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목표지점만을 보며 열심히 달리라는 말은 산업화시대에 딱 어울린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른 해석이 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반전 동화이다. 토끼는 거북이를 사랑했다. 항상 패배를하며 어깨가 축쳐진 거북이를 위해서 토끼는 경주를 제안한다. 경주가 시작되고 얼마후, 한참 뒤쳐진 거북이를 위해서 토끼는 낯잠을 자는 척한다. 거북이가 결승선에 다다를때쯤, 토끼는 일어난 허겁지겁 뛰었다. 그리고 거북이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 뒤따라 결승선을 통과했다. 승리에 기뻐하는 거북이를 보면서 토끼는 기뿜의 눈물을 토끼몰래 흘린다. 거북이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배려하는 토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재해석이다. 진정한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하는 이 반전동화가 가슴에 와 닿는다.

 

2. '개미와 베짱이'를 달리해석해보기.

  '개미와 베짱이'도 산업화 시대에 알맞은 동화이다. 열심히 노동해서 생산량을 늘려야한다는 자본가의 관점이 녹아있다. 우에사카 도루는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즐기는 베짱이 모두를 이룰 수 있는 '소득을 계속 창출해 낼 수 있는 기술의 습득'과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해석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에사카 도루가 주로 경제인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영향으로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동화를 해석하다보니 한계점이 분명히 보인다.

  개미는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이며, 베짱이는 지금의 욜로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개미의 삶을 권장했다. 그러나, 고도성장이 멈춘 현실에서 개미의 삶을 강요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젊은이가 얼마나될까? 열심히 준비한다고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베짱이와 같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문화 예술 산업을 발전시킨다. 굳이 BTS를 예로들 필요도 없다. 새로운 산업의 먹거리가 된, 문화 예술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베짱이와 같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필요하다. 이것이 나의 관점이다.

  우에사카 도루는 '저축만이 능사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일본인은 죽을 때에 평균 약3천만엔의 유산을 남긴다."고하니, 일본인의 개미근성은 놀랍기만하다. 그러나, 모으기만하고 쓰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의 어머니 세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만취해서 세간살이를 부수어도 어머니는 남편을 달래며 가정을 지켰다. 남편이 떠나고 난 후에도 어머니는 모아 놓은 돈을 쓰시지 못한다. 평생을 힘들게 살아오면서 만약을 대비해야한다는 그분들의 "교훈"을 벗어던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무도 소비를 잘하는 자녀세대의 모습을 바라보며 훈계하는 어머니를 보며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지 아득함이 든다.

 

3. '지푸라기 백만장자' 읽기

  한국에 좁쌀 하나로 정승집 딸과 결혼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일본에도 지푸라기 하나로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한 이야기가 있다. 이 동화를 통해서 우에사카 도루는 "장기적인 계획 없이도 화려한 직업 경력을 쌓다."라는 교훈을 이끌어 낸다.

  성공하는 길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준비하고 경로를 밟아 성공하는 경우이다. 보통 우리가 성공을 하려면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들 생각한다. 대부분의 성공관련 서적들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두번째는 하루하루를 열심히하는 방법이다. 치밀한 계획과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덧 높은 자리에 이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사실 나의 인생을 보더라도 청소년시절 나의 꿈은 역사학자였다. 그러나 나의 인생은 역사학자로 귀착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니, 역사 교사라는 직업을 얻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할지라도 현실은 냉혹하다. 수많은 변수들 사이에서 새로운 경로 수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에사카 도루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적어도 목표는 설정해야하지않을까? 배가 항구를 출발했는데, 목표가 없다면, 표류할 수밖에 없다.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절차와 경로는 때에 따라서 수정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인생을 사는 방법일 것이다.

 

  '반전동화'는 간단히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다. 우에사카 도루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내용도 많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기뿜도 만만치 않다. 우리 동화라고 알고 있었던 '금도끼 은도끼'는 외국 동화였으며, '혹부리 영감'은 일본 동화였다.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오늘!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동화를 읽으면서도 이 동화의 국적을 따져야만할까? 동화를 통해서 새로운 배움을 얻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에사카 도루의 글귀에서 가장 동의하기 힘든 구절이 있다.

 

  "유전자를 분석해봐도 일본인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데, 보수적 성향이 강할 수록 배타적이 되기 쉽다."-45쪽

 

  '유전자를 분석'해서 어떻게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를 알 수 있는가? 우에사카 도루의 주장데로라면, 사람은 태어나면서 보수와 진보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단 말인가? 과학을 가장한 매우 편협한 선입견을 보면서, 저자의 수준에 한숨을 내쉰다. 새로운 관점에서, 다른 시선으로 동화를 해석한다는 이 책의 취지가 이 글귀 하나로 심각하게 퇴색했다. 우에사카 도루의 글귀에서 '우생학'과 '진화론'이라는 과학을 이용해서, 아프리카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은 백인 제국주의 국가와 '사회적으로 열등한 자'는 '독일인을 위해서 죽어야한다.'는 히틀러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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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참 우리 고전 5
박제가 지음, 안대회 옮김 / 돌베개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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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이 혁명보다 힘들다."라는 말이 있다. 혁명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작업이라면, 변혁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하기 때문이다. '초정'이라는 박제가의 호에서 알 수 있듯이, 박제가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굴원처럼 왕에게 나라를 변혁할 방안을 제시하여 새로운 시대를 만들려 했다. 굴원에게 어리석은 회왕이 있었다면, 박제가에게는 명철한 정조라는 군주가 있었다. 어찌보면 서얼 출신인 그가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될 수 있었던 것도 정조라는 성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가 농업을 권장하고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을 내리자, 박제가는 자신의 『북학의』를 다듬어 정조에게 바쳤다(1798년). 중국을 모델로 조선을 변혁시키려했던 혁명가 박제가는 얼마나 가슴이 부풀어 올랐을까? 철인군주 정조에 의해서 조선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니라 기대했을 것이다. 박제가가 만들고자했던 새로운 조선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1.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

박제가의 『북학의』에 그려진 조선의 모습은 너무도 참담하다. 굳이 중국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조선의 현실은 너무도 궁벽했다.

 

"중국의 백성들은 대개가 비단옷을 입고 담요에서 잠을 자며, 침상이나 탁자를 구비해 놓고 산다. 농사를 짓는 자조차도 옷을 벗지 않고 가죽신을 신으며, 정강이에 전대를 차고서 밭에서 소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 시골의 농부들은 한해에 무명옷 한 벌도 얻어 입지 못한다. 남자나 여자나 태어난 이래 침구가 무엇인지 구경조차 못하고, 이불 대신 멍석을 깔고 그 곳에서 아들과 손자를 기른다. 아이들은 10세 전후가 될 때까지 겨울도 없고 여름도 없이 벌거숭이로 다닌다. 그러니 이 천지 사이에 가죽신이니 보선이니 하는 것이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한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 -「농잠총론」, 265쪽

 

풍족한 삶을 사는 중국의 백성에 비해서 조선의 백성은 너무도 헐벗고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박제가는 궁핍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중국의 기술을 배울 것을 강조한다. 박제가가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강조한 것이 '수레'의 사용이다. 조선은 수레를 사용하지 않고 가마를 사용한다. 말을 이용하기 보다는 인력을 사용한다. 기껏해야 나귀를 기른다고 하더라도 나귀를 위해서 사람이 먹는 음식의 배를 나귀에게 먹여야하며, 주인이 외출하는 곳이 없으면 나귀의 힘을 이용하지도 못한다. 박제가는 이를 "짐승을 데려다가 사람을 먹이는 꼴"이라 지적한다. 고구려와 고려시대에 걸쳐서 우리에게는 강력한 기병이 있었다. 수레를 사용하고 말을 타고 다녔다. 그런데, 조선왕조에 들어서서 말과 수레가 사라지고 가마가 등장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조선왕조의 퇴행은 수레와 말에서만 한정되지 않는다.

중국이 벽돌로 다리를 만드는데 비해서 조선은 나무로 다리를 만들었다.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하중을 견디지 못할 까봐 백성들이 물속에 들어가 다리기둥을 잡고 서 있었야 했으며, 실제로 다리가 무너져 사람과 말이 시대에 나뒹굴기도 했다. 분명 고구려에서는 평양의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었다. 그런데, 검약을 미덕으로 숭상하는 성리학을 국교로 삼은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많은 것이 뒷걸음질쳤다. 상공업을 말업이라며 천시한 조선왕조에서 상업과 수공업이 발전할 수 없었다. 지배자들의 잘못된 선택은 조선왕조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석굴암을 만들고, 세계 최초 금속활자를 만든 우리 민족의 과학기술은 제대로 된 다리 하나 만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박제가는 조선의 상업과 과학기술, 백성의 생활모습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를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은 배움은 과거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견문은 조선의 강역을 넘어보지 못하였다. (중략) 그래서 점차 세련되고 우와한 문명세계로부터 자신을 차단시켜버린다."-「골동품과 서화」, 128쪽

 

활발한 대외 교류를 하기 보다는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라고 얕잡아보면서 우물안 개구리로 전락한 조선은 좁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결국, 조선의 발전은 더딜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우리의 울타리를 넓히거나, 과감하게 울타리를 뛰어 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큰 세계를 보지 못하다. 날로 새로워지고 나 자신의 시야를 확대하려는 끊임 없는 노력이 있을 때만이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다. 18세기 조선을 살았던 박제가는 울부짖고 있었다. 시야를 넓혀라, 날로 새로워져야한다고 말이다.

 

2. 변혁의 열망이 지나쳐, 우리의 장점을 못보다.

박제가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자가 있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가'있다며, 서얼인 자신의 울분을 토로한다. 그리고 그 울분은 적서의 차별이 없는 중국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문물이 조선보다 앞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의 문물 못지 않게 우리 것의 장점이 있다. 박제가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한국사 수업을 통해서, 우리가 금속활자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좋은 먹과 '천년지'라고 불리는 조선의 종이, 그리고 훌륭한 활자 제조술이라는 3박자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박제가는 조선의 종이는 그림과 글시 쓰기에 부적당하며, 조선의 먹은 한해가 지나면 광택이 없어지고, 다시 한해가 지나면 갈 수도 없다고 비판한다. 이에 비해서 중국의 먹은 오래 쓸수록 더욱 가치가 있고, 중국의 종이는 규격이 일정하여 낭비가 없고 그림과 글씨를 쓰기에 좋다고 평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맥궁'이라 부르는 우리의 자랑인 '활'은 사정거리가 200보에 이른다. 이에 비해서 중국 활은 사정거리가 60~70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박제가는 우리의 활은 비가 오면 사용할 수 없는 반면에 중국의 활은 건조하거나 습기가 있어도 변형이 없다며 중국활이 훌륭하다고 평한다. 이렇게 박제가는 우리가 자랑하는 우리의 특산품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중국 물건의 훌륭함을 아낌없이 칭찬한다.

박제가의 중국에 대한 지나친 찬양은 '중국어 전용론'으로 까지 발전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가깝게 접경하고 있고 글자의 소리가 중국의 그것과 대략 같다. 그러므로 온 나라 사람이 본래 사용하는 말을 버린다고 해도 불가할 이치는 없다. 이렇게 본래 사용하는 말을 버린 다음에야 오랑캐라는 모욕적인 글자로 부리는 신세를 면할 수가 있다. 그리고 수천리 동국이 저절로 주 · 한 · 당 · 송의 풍기가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 어찌 크게 상쾌한 일이 아닌가?" -「한어」, 107쪽

 

중국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동경이 우리의 말을 버리고 중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과거에 논쟁이 되었던 "영어 전용론"을 연상케하는 주장이다. 박제가의 주장을 따른다면, 세계의 패권이 미국에게 있는 지금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세계의 패권이 다시 중국으로 간다면 모국어를 "중국어"로 바꿔야할 것이다. 그리한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 민족을 말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과도한 중국에 대한 동경이 우리를 문화적 종속국으로 만들자는 주장으로 발전한 셈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지킬 수 있는 방도는 없을까? 그 해답을 '화성'에서 찾을 수 있다.

박제가는 벽돌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우리도 벽돌을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특히 우리의 성은 돌로 만든 석성이 대부분이며, 해자도 없고, 토성의 경우 높이가 빈약하다고 비판한다. 반면에 중국의 성은 벽돌로 만들어 일정한 규격으로, 원하는 성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각 나라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건축물을 만든다. 진흙이 많은 중국은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탑과 집과 성을 만든다. 반면, 우리는 화강암을 쪼아서 성을 만들고 탑을 만든다. 진흙을 구하기가 중국보다 힘든 조선이 벽돌을 굽는다면 그 많은 나무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조선 후기 온돌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조선의 산에서 서서히 나무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만약 벽돌을 구워 성을 만들고 집을 짓는다면 조선의 산림파괴는 더욱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이 딜레마를 정조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석성은 강하지만 돌 하나가 빠지면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 반면 벽돌은 돌에 비해 약하지만, 벽돌 일부가 파괴되었다고 성 전체가 붕괴되지는 않는다. 벽돌과 돌의 장단점을 잘 살려 쌓은 성이 바로 정조가 정약용에게 설계하도록한 '화성'이다. 중국의 문물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중국의 문물과 우리의 문물의 장점과 단점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그 장점을 살려서 "화성"을 쌓았다. 박제가에게는 정조와 같은 식견이 필요했다. 거센 바람에 휘둘리기 보다는 그 바람을 타고 자유로이 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이 박제가에게는 필요했다.

 

3. 변혁은 지금도 필요하다.

박제가가 중국에 다녀온 후, 많은 조선 선비들이 박제가에게 중국에 대해서 물었다. 박제가는 그가 본 중국 문물의 우수성을 침이 마르도록 말한다. 박제가의 말을 들은 조선 선비들은 "모두 망연자실하여" 박제가의 말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그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청 나라는 오랑캐의 나라'라는 비판과 경멸의 말들이었을 것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조선은 '정신 승리'를 도모한다. 그 '정신 승리'가 조선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일정부분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신 승리'가 조선을 중국보다 발전시키지는 못한다. 어디 까지나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조선 선비들의 현실도피의 방법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조선 선비의 "확증편향"은 너무도 뿌리 깊었다.

박제가는 "병오년 정월에 올린 소회(丙午所懷)"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조에게 올린다. 조선을 변혁시킬 천재일우의 기회라 생각했다. 박제가의 개혁안을 받아줄 군주가 있으니, 조선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현재 천하는, 동으로는 일본으로부터 서쪽으로는 서장, 남쪽으로는 과왜, 북쪽으로는 할하에 이르기까지 전쟁 먼지가 일지 않은 지 거의 2백년입니다. 이것은 지난 역사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에 온힘을 다하여 국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에 변고라도 발생할 때 우리도 더불어 우환이 발생할 것입니다."-208쪽

 

편안한 때, 위태한 때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환란을 당할 수밖에 없다.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당한다는 박제가의 경고를 정조는 받아들였을까? 정조는 "여러 조목으로 진술한 내용을 보고서 네 식견과 취향을 볼 수 있었다."라는 비답을 내렸다.

그가 제시한 개혁안은 참으로 혁명적이다. 청렴결백한 선비를 고결한 선비라 칭찬하는 조선사회에서 박제가는 놀고 먹는 사족들을 처리할 방법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밑천을 빌려주어서라도 장사를 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한발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는 반드시 검소함으로 인해 쇠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에는 비단을 짜는 베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소비를 통해서 생산을 늘리자고 과감히 주장한다.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조선 사회의 관념에 정면 대결을 하는 발상이었다. 그는 조선 사회에 혁명적 사고의 전환을 요구했다. 이를 통해서 조선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싶었다.

박제가의 사상이 시대를 앞서 갔다는 사실은 서양 선교사를 초빙하자는 주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의 흠천감에서 역서를 만드는 서양 사람들은 모두 기하학에 밝고 이용후생의 학문과 기술에 정통하다고 들었습니다. 국가에서 관상감의 한 부서의 비용으로 그 사람들을 초빙하여 관상감에 근무하게 하고, 나라의 우수한 인재를 그들에게 보내 천문 과 그 운행 (중략) 방법을 학습하도록 조치하십시오." 202쪽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주장했다.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 지식인이 등장하기 이전에 조선의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에 의해서 서양 선교사를 초빙해서 그들의 기술을 배우자고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조선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주장을 박제가가 왕에게 제시했지만, 정조는 박제가의 주장을 따르지 않았다. 조선 사회는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정조조차도 그러했다. 시인 한유가 말했듯이, 천리마는 언제나 있다. 단지 천리마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기에 천리마는 보통 말들 사이에서 늙어갈 뿐이다. 박제가라는 천리마는 그렇게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를까? 청을 오랑캐라 부르며 얕잡아 보았던 조선 지식인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볼 수 있다. G2로 도약하며 '대국굴기'를 외치는 지금의 중국을 아직도 싸구려 물건을 만드는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은 달에 우주선을 보내고, 달 뒷면을 탐사하게까지 했다. 핀테크를 비롯해서 안면인식 기술, 첨단 무기, 5G 기술이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미 올랐다. 싸구려 물건을 만드는 나라에서 최첨단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로 도약하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우리가 가르쳐주어야하는 미개한 나라가 아니다. 이제 우리가 중국에게서 배워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어디 중국뿐이랴!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기술 강자는 존재할 수 없다. 항상 주위를 살펴보며, 나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배울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갖춰야한다. 태평한 시기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박제가의 경고를 기억하며, 날마다 새로워져야한다.

 

1778년 연경에서 돌아온 후, 3개월 만에 경기도 바닷가 마을에서 박제가는 『북학의』를 완성한다. 당시 그의 날이 29세였다. 그후, 그는 이 책을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조선을 새롭게 변혁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시대는 그의 변혁을 용납하지 않았다. 초나라 굴원이 기울어져가는 조국을 보면서 울분을 참지 못해 돌을 끌어안고 호수에 몸을 던졌듯이, 박제가도 사돈인 윤가기의 옥사에 연류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국경지대인 종성에 유배된다. 함경도의 이원을 지나며 박제가는 정조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시한수를 짓는다.

 

선왕께서 개혁에 뜻을 두고 / 폐습 씻어 기강을 회복하려 하셨건만 / 퍼지던 향기 중도에 끊어졌으니 / 고통에 허덕이는 백성을 누가 소생시키나? / 신을 불러 왕안석에 비유하신 / 그 말씀 아직도 귀에 쟁쟁하구나! -「이원에서」, 281쪽

 

박제가는 실생활에 필요한 작은 것부터 중국을 본받아 개혁하려했다. 그러나, 명철한 군주 정조도 그의 개혁을 받아주지 못했다. 송나라의 개혁을 추진하다가 쓸쓸히 생을 마쳤던 왕안석에 박제가를 비유하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때가 무르익었을 때, 정조는 박제가의 곁을 떠난다. 정조가 사라진 조선은 세도정치라는 암흑 속으로 빨려든다. 정조는 박제가에게는 어버이와 같은 존재였다. 정조가 사라지자, 정조의 개혁정치를 뒷받침했던 인재들이 하나 둘 제거되기 시작했다. '위항도인'이라는 그의 또 다른 호처럼, 정조사후, 그는 ‘갈대로 만든 나룻배를 탄 도인’ 처럼 숨죽여 살아야만 했다. 박제가는 모진 고문 끝에 종성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돌아왔지만, 그 이듬해 그도 정조를 따라 이 세상을 떠난다. 박제가는 떠났지만, 박제가가 던진 화두는 아직도 유효하다. 끊임 없이 새로워지고 끊임 없이 변혁하지 않는다면, 박제가 사후 조선이 망국의 길에 접어들었듯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리라는 진리를 우리는 알아야한다. 조선시대 성리학에 경도된 어리석은 선비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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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의 성공학 - 나를 알자, 세상을 읽자 | 하나를 버리고 셋을 얻는다
이상각 지음 / 들녘미디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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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병렬독서를 한다. 장기적으로 읽는 책과 단기적으로 읽는 책을 나누어 병렬적으로 읽는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읽을 책으로 '도올 한글 중용역주'를 읽고 있다. 중용의 한구절 한구절을 읽으며 음미하는대신, "중용"을 에세이 형식으로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단기적으로 읽는 책으로 선정해서 읽기로 했다. 여러 권의 책중에서 '중용의 성공학'이 눈에 띄었다. 중용을 재미있게 이야기식으로 풀어 놓은 책으로 보였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책은 중국사 이야기들의 모음집이었다.

 

  책 제목에 '중용'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중용의 한구절을 인용해서 중국의 역사, 혹은 작가의 삶과 연관시켜 책을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에는 '중용'에 대한  깊은 설명이 없다. 단지 '중용'이라는 단어만을 가져와서 중국의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놓은 책이었다. 상당수의 내용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이었다. 심지어는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는 납득가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특히, 왕안석의 신법을 악법으로 묘사한 부분에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왕안석의 신법은, 가난한 농민과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들이다. 왕안석의 신법으로 대상인과 대지주가 이익을 빼앗겨 큰 반발이 있었음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상식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왕안석의 신법으로 일반 농민과 소상인들이 고통을 받은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왕안석은 백성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간신으로 묘사했다. 마치 토착왜구와 일베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글들을 읽으며 분노를 느껴야하는 상황과 비슷했다. 구법당의 시각에서 씌여진 역사적 기록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서술한 것은, 조중동의 신문만을 보고 우리 현대사를 기록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냈다. 역사서술의 중요성! 그중에서도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대로 갖춘자가 책을 쓰지 않으면 벌어지는 비극을 목도할 수 있었다.

  11편 '사랑의 최고 경지, 중용' 편은 19금의 내용들이 많았다. 더욱이 요즘에 이책에서 코치하는데로 했다가는 '스토커'나 '성추행범'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어보였다.

 

  "경험 많은 남자는 사랑의 속삭임과 키스를 언제나 같이한다. 애인이 거절하더라도 상관없이 자신이 의도한 바를 끝까지 관철하라, 그녀는 거절하면서 '나쁜 자식'이라는 말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진심이 아니다. 그대는 그저 그녀의 입술이 아프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295쪽

 

  남성중심의 마초적 애정관을 담고있는 이 표현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1980년대라면 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2019년 거절하는 여성에게 계속 애정표현을 했다가는 성폭행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책내용이다.

 

  책을 읽을 때는 책선택이 중요하다. 한권의 책이 엄청난 깨달음을 주고, 인생의 좌표를 바꾸기도한다. 자신이 원하는 책을 정확히 구하지 않고 읽는 책은 후회를 동반한다. 이번책은 나의 기대가 높아서인지 실망감이 높다. 그렇다고, 읽을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머리를 식힐겸, 읽기에는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모음집이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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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돈의 역사 1
홍춘욱 지음 / 로크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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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경제에 대한 이해는 필수이다. 그러나, 막상 역사적 사건을 경제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역사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팟캐스트 "신과함께"를 듣다가, 홍춘욱 작가의 '돈의 역사' 강의를 들었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에 놀랐다.  역사적 사건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할 경제사적 배경을 설명해줄 때는, 무릎을 탁치며 바로 내가 찾던 책이라 외쳤다. 서가에서 '돈의 역사'를 펼쳐들었다. 이 책은 얼마나 많은 통찰력을 나에게 선사해줄까?

 

1. 인구가 많은 것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출산율이 날로 줄어들고 있다며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인구감소는 재앙으로 인식하는 사회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과연 인구가 많은 것은 긍정적이도 적은 것은 항상 부정적일까? 이 책은 우리의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던졌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영국은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을 한 반면, 중국과 일본은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했다고 말한다. 인구가 적었던 영국은 높은 인건비를 줄이려 기술혁신에 매달려야했지만, 중국과 일본은 많은 노동력 덕분에 기술혁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값싼 노동력으로 '근면혁명'을 한다면 충분히 부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예로 19세기 일본 나고야의 노비지방에서는 1660년 1만 7825마리의 가축이 있었다. 1810년이 되자, 8104마리로 가축수가 45% 감소했다. 인구가 늘고 1인당 인건비가 줄어듦에 따라 가축 대신 사람이 경작을 했던 것이다.

  인구가 많은 중국을 부러워했던 나로서는 상당히 경악스러운 사건이다. 인구가 많은 것은 국가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많은 노동력이 생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각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경쟁의 가속화, 그 사회에서 차지하는 개인의 가치는 하락한다는 점에서 좋게만 볼 수는 없다.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정권시기 한해에 군대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천여명을 넘겼다. 그러나 민주화되면서 한해당 몇백명 수준으로 죽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군대에서 죽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민주화'라는 사회적 배경도 있겠지만, 젊은 인구가 줄어들면서 인간 개개인이 차지하는 사회적 가치가 커진 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위기는 기회일 수 있으며, 어떠한 일이든 부정적인면에도 긍정적인면이 있을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할 것이다.

 

2. 자원이 많은 것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생님들에게 귀가 따답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우리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다.", "매장된 자원의 가지수는 많지만 양이 적다." 즉, 우리는 자원이 없기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면 살아갈 수 없다는 내용의 말을 들으며,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과연 자원이 많은 것이 축복일까?

  '돈의 역사'를 읽지 않더라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들이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식민지가 된 이유가,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자원을 빼앗기 위해서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강대국이라면 자원이 많은 것이 언제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혹시 "네덜란드병(Dutch disease)"라는 병을 들어 보았는가? "자원이 개발된 후 오히려 해당 국가의 경제가 침체되는 현상"을 네덜란드병이라고 한다. 1959년 북해에서 대규모 가스전이 발견되었다. 그후, 천연가스 수출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인 네덜란드에게 불행이 닥쳐왔다. 왜? 일까? 천연가스 수출 대금이 유입되자, 네덜란드 화폐 단위인 굴덴화의 가치가 상승했다. 그리하여1970년대들어 천연가스를 제외한 수출업체들은 해외 경쟁력을 잃게 된다. 자원의 역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천연자원이 많은 것이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펠리페2세 시기, 무적함대를 이끌며 유럽 최강의 나라로 발전했던 에스파냐가 나락으로 빠져든 이유도 설명한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금과 은이 에스파냐산 물건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에스파냐의 영광을 가져온 신대륙의 금과 은이 역설적이게도 에스파냐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인간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지'이다. 나에게 좋은 옥토를 선물하지 않은 조상을 탓하기 보다는 조상이 남겨준 황무지를 감사하며 나를 달련시켜야한다. 자원이 있다하더라도 자원을 지키고 이용한 힘이 없다면 '자원'은 불행의 씨앗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원'을 지키고 이용할 힘과 기술이 있다하더라도, 그 '자원'을 현명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불행을 불러들일 수도 있다. '돈의 역사'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3. 경상수지 흑자는 축복인가? 불행인가?

  많은 사람들이 경상수지 적자가 났다면 경제가 않좋다며 걱정한다. 그런데,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서 나의 삶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할 때 내수경기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저축보다 투자가 적다는 의미"-342쪽

 

  우리 경제의 내수시장이 침체인 이유가 경상수지 흑자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IMF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집단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사회 전반에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심이 아니라, '안정'이다. 공무원 시험의 경쟁율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도전하지 않고 안정만 추구하는 사회는 발전이 더 딜 수밖에 없다. 활력이 떨어진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러 일으키며, 모험심과 도전의식을 키워야 우리의 내수시상이 활성화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과 과감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4. 정직하면 손해볼까?

  보통 부모들은 '정직하면 손해본다.', '아이가 너무 착해 손해볼까 걱정이다.'라는 말은 한다. 냉혹한 신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정글의 법칙'을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하는듯하다. 그런데, 과연 정직하고 착하면 손해볼까? 단기적으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내 잇속만 챙기는 사람의 말로가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이는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네덜란드와 영국 등 인구도 적은 나라가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신뢰'를 얻어 국민들로 부터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데 있다."-74쪽

 

  '신뢰'는 국가의 경우 더욱 중요하다. '논어'에도 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물었을때, 공자는 가장먼저 백성을 풍족하게 먹이고 군비를 확충하고 백성에게 믿음을 얻어야한다고 말했다. 자공이 부득이하게 하나를 버려야한다면 무엇을 버려야하는지 묻자, 공자는 병사를 버리고, 다음으로는 먹을 것을 버리라 했다. 그리고는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공자의 통찰력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예에서도 들어맞았다. '신뢰'를 얻은 나라는 이를 바탕으로 군비를 조달할 수 있었지만, 국민으로 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 '프랑스'와 같은 나라는 제대로 군비를 조달할 수 없었다. 결국 프랑스가 영국에게 번번히 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신뢰'를 버리는 것은, 인생을 버리는 것과 같을 수있음을 '돈의 역사'는 말하고 있다.

 

5. 대공항은 유대계 금벌이 일으킨 사건인가?

  '화폐전쟁'이라는 책이 중국과 한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적이 있다. 유대계 금벌이 월가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금권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획책하고, 금본위제도를 무너드리기 위해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금본위제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대공항도 그들이 일으켰다고 쑹훙빙은 주장한다. '화폐전쟁'을 읽었을때, 경제학에 대한 기초지식조차 부족했던 나는 혼란을 겪었다. 이 세계는 유대계 금벌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는가?

  '돈의 역사'는 대공항의 원인을 '금본위제도'에서 찾고 있다. 금본위제도의 경직성이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떨어뜨렸고, 결국은 대공항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불황이 출현해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면, 더 높은 금리를 찾아 자금이 해외로 유출 된다. 금이 해외로 유출되면 시중 통화량이 줄고, 그 결과 중앙은행의 금리인하는 무력화 된다."-237쪽

 

   금벌세력이 '금본위제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대공항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금본위제도'의 한계 때문에 대공항이 초래되어던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대공항의 원인을 잘못 이해했을 것이다. 순간, '책을 한권만 읽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라는 생각을 했다. 한분야의 책을 한권만 읽기 보다는 관점을 달리하는 여러 분야의 책을 두루 섭렵하는 것이다. 외골수로 빠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깨달았다.

 

6. 위기가 닥치면 보다 냉철하고, 보다 단호해져라.

  위기가 닥쳤을때, 우왕좌왕하면서 제대로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경우를 많이 본다. 임진왜란 초기, 의주까지 몽진을 갔던 선조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위기에 냉철하면서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 리더가 불러오는 불행은 비참하다. '돈의 역사'는 '불황이 시작될 때에는 단호하게 행동하라!'라고 주문한다. 대공항이 닥쳤을 때, 단호한 대처를 하지 못한 후버가 불황을 키웠다. '버불이 붕괴될 때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돈을 풀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시기를 놓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수렁에 빠졌다.

  대공항시기 루즈밸트는 '지금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패할 기회조차 잃어 버린다.'라고 말했다. 과감한 행동이 위기의 순간에 필요하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이 시기를 얼마나 냉철한 머리로 판단하고 과감히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질 수 도 있다. 그런면에서 써프라임 모기지 사태때, 과감히 양적 완화를 단행한 오바마의 대처는 탁월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상에는 많은 책들이 있다. 어떤 책은 나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고, 어떤 책은 웃음을 전해준다. 때로는 감동을 선사하며 눈물을 흘리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선사하는 책은 드물다. '돈의 역사'는 외곡된 선입관을 제거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주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기 원하는 분들에게 이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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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상곡(夜想曲) 2019-08-15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담이지만 전쟁이라는것도 경제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나 화약과 다이너마이트가 발명된 이후로.!!!!(고대역사는 경제력과 군사력이 불일치한 시대였지만 중세시대 이후 경제력과 군사력은 같이 붙어다녀야했습니다)
 
핵과 인간 - 아인슈타인에서 김정은·트럼프·문재인까지
정욱식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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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자신이 악마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타인을 악마로 만든다. 신들의 영역에 있었던 새로운 불을 얻기 위해서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오펜하아머는 프로메테우스가 그러했듯이, 인간에게 ''이라는 불을 가져다준다. 인간은 절대무기 ''을 갖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시작한다. 나는 절대 무기를 가져도 되지만, 네가 갖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강대국의 모습을 우리는 당연시하고 있다. 핵을 갖기 위해서 미국과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북한과,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대결 속에서 한반도의 운명은 전쟁의 암운이 드리워지기도 했다. 팟캐스트 '진짜 안보'를 통해서 알게 된 정욱식 대표의 저작을 꺼내 들었다. 그의 책에는 ''의 역사가 상세하게 펼쳐져 있다. 인간은 핵을 지배할 수 있을까? 핵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그 궁금증을 풀어가 보자.

 

 

1. 절대 무기를 손에 쥔자는 난폭해진다.

갑질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때, 이를 뇌 과학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위가 높을 수록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거울뉴런이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거울뉴런이 활성화 되지 않는 모습은 '절대무기'를 가진 강대국에게서도 나타난다. 핵을 처음 손에 넣은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강경외교를 펼쳐나간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상당수의 학생들이 '우리를 괴롭힌 댓가'라고 대답한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무기를 '해방의 무기'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세계 제2위의 원폭 피해국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원폭피해자 70만명중에서 조선인 피폭자는 7만명이이다. 원폭을 맞고 즉사한 조선인 희생자는 4만명이고 생존자는 3만명이다. 이중 한반도로 돌아온 사람은 23천명이고, 7천명은 일본에 남아있다. 핵무기는 우리에게 '해방의 무기'만은 아니었다. 우리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기도 했던 무기이자, 분단의 무기이기도 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핵무기를 필요 없이 일찍 사용했다.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일본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개발한 무기의 위력을 소련에 보일 필요가 있었다. , '·소연합작전'이 펼쳐졌다면, 우리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핵무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미국의 강경외교는 시작된다.

1949년 소련이 핵을 개발 할 때까지 아니, 핵을 개발하고 나서도 미국의 강경외교는 계속된다. 핵무기라는 가공할 위력을 가진 절대무기를 상정해 놓는다면, 스탈린이 미국이 제시한 38도선 분할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6.25전쟁 당시 소련대표가 UN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난폭한 이미지의 스탈린도, 미국의 핵무기에 떨고 있었다. '절대무기'에 대한 맹신은 비극을 낳았다. 미국 CIA"북한은 철저하게 통제받는 소련의 위성국가이기 때문에 어떠한 독자적 구상을 행사할 수 없고, 전적으로 소련의 지원에 생존을 의존하고 있다."라고 오판했다. 아울러, "미국의 군사적 힘에 의해 전멸될 각오를 무릅쓸 만큼 북한도 중국도 무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6.25 전쟁 직전에 수많은 남침의 첩보가 첩보원들에 의해서 미국에 전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남침을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가 설명된다. 핵에 대한 맹신과 중국과 북한을 소련의 꼭두각시로 인식하는 미국식 오리엔탈리즘이 6.25전쟁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비극을 낳았다.

6.25 전쟁을 예상하지 못한 것보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핵무기를 다른 무기와 차별하지 않는 미국의 최고 결정권자의 생각이다.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군인 출신답게 "핵무기 사용에 따른 도덕적, 외교적 문제는 크게 고려하지 않고 군사논리에 매몰"되었다. 핵무기와 비핵무기를 차별하지 말라!! 이에 동의할 수 있는가? 경제인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자신의 수입 창출의 도구로 삼고, 공주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자신의 놀이터로 만든다. 군인이 대통령이 되면 군사 논리만을 앞세워 전쟁광이 되려한다. 그리고 그 비극은 우리 모두의 몫이된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라는 말이 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절대 무기를 손에 넣은 사람일수록 낮은 곳에 임해야 한다. 낮은 곳에서 자신보다 약하자들의 마음을 해아려야 한다. 나의 절대무기를 상대방을 겁박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2. 핵전쟁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세계

헨리 스팀슨 전쟁부 장관이 1945911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소련과의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미국의 핵 계획을 소련과 공유"할 것을 건의했다. 그는 "매우 절망적인 방식으로 비밀 군비경쟁이 야기"되는 것을 우려했다. 불행히도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절대무기를 절대로 타국과 공유하기 싫었던 미국은 절대무기의 위력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실전투입을 통해서 소련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미국의 강경외교는 소련을 자극했다. 1949829일 소련은 카자흐스탄 사막에서 핵실험에 성공했다. 절대무기를 소련이 확보하자, 미국은 절대무기의 성능을 높이기 시작했다. 소련에 대항해서 재래식 무기와 원자폭탄을 증강시키고, 수소폭탄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핵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핵의 자기 증식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핵을 가진자들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핵을 이용한 강경외교를 하자, 많은 국가들이 생존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핵개발을 시작했다. 중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핵을 보유했고, 그 숫자를 늘리고 있다. 핵도미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절대무기 핵을 이용한 강압외교가 상호 상승효과를 일으켜 핵전쟁 직전까지 갔었던 적이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그것이다. 미국이 유럽에 토르를 배치하고, 터키에는 주피터라는 핵무기를 배치하고, 쿠바에 피그만 침공작전을 개시한다. 이것이 소련을 자극한다. 자신의 턱밑에 핵무기를 배치한 상황을 소련이 가만 두고만 볼리 없다. 쿠바에 100개의 핵탄두를 배치했으며, 소련 선박을 호위하던 잠수함에는 핵 어뢰가 장착되어 있었다. 미국의 소련 포위전략은 소련을 자극했다. 소련은 다시 미국을 자극했고, 양국의 위기 의식을 상승시켜 '아마겟돈'의 문턱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전략을 중국에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은 신냉전의 위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내가 상대를 강력한 힘으로 제압하려 한다면, 상대도 생존을 위해서 강하게 몸부림 칠수밖에 없다. 도덕경36장에 "접으려면 펴주거라! 약하게 하려면 강하게 해주거라! 폐하려면 흥하게 해주거라! 뺏으려면 주거라!"라는 말이 있다. 강한 병사로서 천하를 유지할 수 없다. 상대를 약하게 하려면 강압적으로 상대를 겁박하기 보다는 상대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쥐었던 주먹을 펴게 할 수 있다. 헨리 스팀슨 전쟁부 장관이 소련과 핵개발을 공유하자고 트루먼에게 건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대강의 대결은 핵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세계를 만들었다. 절대강자가 될 것으로 믿었던 미국은 군산복합체 국가가 되었다. 군산복합체들은 절대악이 필요했다. 때로는 절대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3. 절대악이 필요한 세력들

악마가 필요한 세력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는 악마가 없다. 그러자 그들은 악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일까? 군산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네오콘들이다. 아들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나라들 중에서 이란과 북한이 현존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이두 나라 중에 한나라와 협상을 하면 다른 한나라는 미국과 극한의 대립을 한다. , 미국이 북한과 핵협상을 하는 시기에 미국은 이란의 핵 위협을 이유로 MD(미사일방어체계)를 추진한다. 만일 이란과 협상 중일 경우에는 북한을 핑계로 MD를 추진한다. 대화를 통해서 적대관계를 해소하려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적과 극한 대립을 한다면 이는 우연이 아니라고 정욱식 대표는 말한다. 그렇다. 미국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우려했던 군산복합체국가이다. 돈 먹는 하마 MD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반드시 절대악이 있어야했다. 그래야 그들의 배를 불릴 수 있다.

정욱식 대표가 정리한 한반도 핵위기의 현실은 네오콘을 비롯한 군산세력에게 '절대악'의 필요성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알려준다. 1992년 플로토늄 불일치, 2002년 우라늄 불일치로 북핵위기는 고조된다. 이두 불일치를 꺼내든 미국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좌초시킨다. 그 뒤에는 딕 체니, 폴 월포위츠, 존 볼턴, 럼스펠드가 있었다. 공화당은 클린턴행정부의 북핵협상에 비협조적이었고, W 부시 행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MD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은 악마로 존재해야했다.

 

"2008126자회담이 파탄난 데는 북한이 약속, 즉 핵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다. (중략) 그러나 분명한 점은 당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쪽은 한·미양국이었다는 것이다."-468

 

한국과 미국의 강경파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중 네오콘에게 북한은 악의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한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위해서.... 힘 있는 자들이 악마를 만드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한반도 평화를 원치 않는 그들을 직시할 수 있어야, 우리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

1992년 부시행정부는 제네바 합의를 무시했다. , '부시 독트린'(예방적 선제공격), MD 및 소형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중유제공 중단 암시, 제네바 합의를 무시한 고강도 사찰요구를 부시행정부는 요구하거나 천명한다. 부시행정부의 독주와 일방외교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좌초시켰다. 작가 조승연은 창세기를 인용하면서 서양은 계약에 의해서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믿으며 계약을 중시여긴다고 말했다. 이점이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부시행정부의 모습은 과연 서양인들이 계약을 중시여기는 사고를 가진 문화인인지를 의심하게 한다.

그런데!! 네오콘을 대표하는 인물, 존 볼턴에 트럼프 행정부에 있다. 조지 H.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보였고,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이었던 그는 지금 두차례의 핵위기를 이끈 인물이다. 존 볼턴을 실각시키거나 견제하지 않는다면, 한반도 프로세스를 또 좌초시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나를 엄습한다.

절대 악으로서의 북한이 필요한 시대의 종말이 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MD추진 이유가 바뀌고 있다.

 

"냉전시대 미국의 핵미전략 가운데 하나는 유라시아의 거대 국가인 중국과 소련을 이간질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냉전종식 이후 미국이 MD에 박차를 가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다시금 손을 잡기 시작했다."-307

 

미국판 이이제이 전략이 바뀌고 있다. 이러한 강경외교는 MD추진 이유를 보다 직접적으로 천명하기에 이른다.

 

"트럼프 행정부는 MD 증강의 사유로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중략) 이들 나라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창()과 방패(MD) 구축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움직임이 꿈틀 거리고 있는 것이다."-638

 

북한이 MD 구축의 핑계였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MD 구축의 이유를 러시아와 중국 때문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의 단합을 이끌어 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핵문제 해결의 새로운 징조를 볼 수 있다. 미국의 강경파에게 북한이 악마의 모습을 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 핵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이지 않을까?

 

4.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힘겨운 여정

외국인들에게 한반도는 전쟁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사실 우리는 제대로 느끼고 있지 못하지만, 한반도에는 제3차 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기가 발생했었다. 한반도 핵위기를 겪으면서 이 난해한 실타래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정권들이 미국과 어떠한 전략을 세우고, 어떻게 문제를 풀려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한반도 핵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 했던 최초의 인물은 노태우 대통령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수정권이라는 한계와 임기말의 레임덕으로 인해서 북핵문제 해결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김영삼정권시기는 클린턴 행정부의 영변 핵시설 폭격 카드가 거론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 직전의 위기 상황에 내몰렸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북폭계획에 서명하려던 1994616! 카터 전대통령과 김일성의 대화로 전쟁이 중단되었다. 무능한 김영삼 정부와 전시 작전권이 없는 한국은 이 전쟁을 막을 수 없었다. 북폭을 계획하면서도 미국에게 한반도의 평화는 안중에 없었다. 자주국방과 자주외교!! 이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작동된 시기는 김대중 정권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2006.15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한반도에 봄이 왔다. 통일이 가까워보였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이 총선을 불과 3일 앞둔 410일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발표했다. 이 결과 야당은 정상회담을 '총선용 신북풍'이라 비난했고, 남남 갈등이 가속되었다며 정욱식 대표는 발표시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총선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했다할지라도 야당은 '신북풍'이라 비난했을 것이다. 수구파에게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불리하다 판단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왔다. 그것이 옳은 길이라면 묵묵히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나아가야할 것이다.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멈추어서는 안된다.

김대중 정권의 탁월함은 '페리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페리가 이 보고서를 두고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표절"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DJ의 정책이 깊이 반영된 것이었다."-363

 

강대국을 움직여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키려했던 사람이 김대중 전대통령이다. 강대국과 대립하기 보다는 그들의 힘을 이용하여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외교의 힘이다. 김대중은 그것을 해냈다. 그러나, W 부시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한반도에는 다시 위기가 몰아닥친다. 이 위기에 직면한 사람이 노무현이었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반미 감정이 드높을 때, "반미좀하면 어떻습니까?"라는 말을 하며 대통령이 된 사람이 노무현이다. 자주외교를 바랬던 많은 사람들은 '공미형 친미주의'행보를 보인 그의 모습에서 많은 실망을 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를 한미동맹과 연계시키려했다. 네오콘의 대표적 인물 럼스펠드는 노무현 정권을 그 어느 정권과 견주어도 협조를 잘하는 친미적 정권으로 평가했다. 자주외교를 하려했으나, W 부시 정부가 한반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친미적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 현실이 노무현에 대한 측은함과 한반도인의 슬픔으로 다가왔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한반도의 위기는 가속화된다. 미국의 오바마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말도 안되는 전략으로 북핵문제를 방치했다. 여기에 이명박·박근혜정권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경인차 역할을 전혀하지 못했다. 한반도의 위기는 날로 가속되었다. 오바마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위안부 합의를 박근혜 정권에게 요구했고, 박근혜 정권은 아베와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한다. 우리에게 오바마는 '불행의 전도사'였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오바마가 한국에 왔을 때, 그를 환영하는 한국인을 보면서,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박근혜정권시기 시드배치라는 참사가 발생했다. 관계부처와의 숙의 과정 없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설득 노력없이, 76NSC국방부 장관이 없는 상태에서 안건이 통과되었고, 사드배치 발표 당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바지 수선하러 백화점에 간 상태에서 발표가 이뤄졌다. 정욱식 대표는 "마차가 말을 끈 셈"이라고 표현했다. 졸속! 엉망! 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일처리였다. 박근혜 최순실 정권의 어이없는 일처리는 결국 중국에 의한 보복으로 이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해야만 했다.

'오바마보다 트럼프가 위대하다.'라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나는 생각한다.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라는 전략 아닌 전략으로 한반도의 위기를 키웠다면, 트럼프는 기존 질서를 무시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왔다. 이를 견인해낸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다시 한번 한반도에 기회가 온 것이다.

W 부시와 트럼프라는 인물은 '미치광이 이론'에 들어맞는 인물이다. 그들이 전략을 꿰뚫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희생을 치를 수도 있다. 아이젠하워와 닉슨이 신봉한 '미친자의 이론'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위협적 인물이라고 인식시켜 자신의 의도를 관철 시키는 전략이다. '미치광이 이론'을 가장 잘 활용하는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이다. 상대국가는 물론이고 미국도, 백악관에 있는 사람들도 트럼프의 속내를 모른다. 그리고 '미치광이 이론'에 대응하는 최고의 자세는 용기, 절제, 당당함일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용기, 절제, 당당함으로 '미치광이'를 길들이고 있다. 그 결실이 아름답게 맺어지길 기대한다.

 

5. '죽음의 재'가 뿌려진 땅!!

엔화 약세로 싼값에 일본여행을 간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일본에는 '죽음의 재'가 뿌려진 땅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원자로 3개가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재는 일본 전역으로 흩뿌려졌다. 4경 베크럴의 세슘이 방출되었고, 일본땅의 70%가 방사성 세슘에 오염되었다. 후쿠시마에서 200km 이상 떨어진 도쿄의 수돗물에 세슘이 검출되었다. 도쿄보다 더 멀리 떨어진 시즈오카 일부 지역도 세슘에 오염되어 찻잎 수확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재앙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 땅을 한국인이 싼값에 여행했다. 방사능을 돈 내고 쬐고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상당히 높아진 암발생으로 인해서 혼란에 빠져야한다. 방사능의 공포로 패닉상태에 빠져야함에도 그러지 않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베신조 정권은 2013'특정지정비밀보호법'을 제정했다. 비밀을 누설한 사람은 최고 10, 비밀을 보도한 언론인은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법으로 일본의 언론을 길들였다. '암질환 등록법'을 제정하여 방사능에 관한 의학적인 데이타와 정보 공유를 불법화했다. 이를 통해서 의사들의 손발에 족쇄를 채웠다.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발표한 2017년 일본의 언론자유지수는 72위였다. 일본은 거대한 방사능 실험실이다. 죽음의 땅! 앞으로 최소 300년 길게는 4만년 이상 인간이 발을 내딛지 말아야할 땅으로 변했다. 핵이 살아있는 동안 인간은 핵과 공존할 수 없다. 후쿠시마의 공포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핵과 인간'이라는 제목에 의문을 가졌다. 무슨 의미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이 핵을 지배하여 절대적인 힘을 얻고자했고, 그로 인해서 '아마겟돈'이 가까워옴을 알게 됐다. 인간과 핵은 공존할 수 없다. 핵전쟁의 위기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의 위험도 우리를 '아마겟돈'으로 이끌고 있다. 절대 무기를 얻으려는 인간의 탐욕을 억제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말한다.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한다!! 문정인과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피터 헤이즈는 독재정권인 박정희도 은밀한 핵개발을 추진할 수 없었듯이, 오늘날 한국의 민주화와 개방성은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의 성공 가능성을 더욱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극우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칙적 이익을 위해서 핵무장을 주장하지만 이는 이룰 수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핵무장을 하려는 어리석음에 빠지기 보다는 핵없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위대한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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