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혜문 지음 / 금강초롱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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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궤'반환, 문정왕후 어보 반환, 응답하라 오바마 프로젝트 성공 ...... 하나의 문화재를 반환 받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는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이땅에 다시 모셔왔다. 그리고,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라는 책은 문화재 반환을 위한 그의 노력과 결실, 실패와 좌절, 산적한 과제를 그의 호소력있는 필체로 써내려갔다. 팟케스트를 통해서 그의 강의를 많이 들었지만,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흘러 넘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그가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왜? 자신의 모든 것을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에 쏟아붓고 있는 것일까??


  혜문스님이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혜문스님이 어느 비구니 스님의 개인차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흥국사 지장전에 있어야할 탱화 두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혜문 스님은 그 탱화가 밀반출된 탱화임을 알았고, 그 탱화를 회수했다. 그런데, 여론은 옳은 일을 한 혜문 스님을 칭찬하지 않았다. '문중 어른의 약점을 캐내 까발린 하극상'이라며 여론은 그를 매몰차게 나무랐다.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오히려 몰매를 맞는 억울한 일이 벌어졌다. 정의가 힘을 갖지 못해 비열한자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것보다 서글픈일이 없다. 혜문 스님은 그 서글품을 안고 도망치듯이 일본에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만났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되찾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어떤이는 시련에 용기를 잃고 좌절한다. 어떤이는 시련을 딛고 일어선다. 혜문 스님은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오히려 그 시련이 그를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이라는 숭고한 가시밭기를 가도록했다. 우리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시련에 좌절하기 보다는 그 시련이 나를 더 크게 만들수 있다. 그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그 시련으로 부터 교훈을 얻어 삶의 밑거름으로 삼는다면 말이다. 

  문정왕후 어보를 환수한 혜문 스님은 대한제국 국새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그런데, 반환 받기로 한 국새를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가져오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작전명 '응답하라 오바바'이다. 어짜피 반환받을 것이면 형식이 뭐가 중하겠는가! 굳이 오바마 대통령을 자극할 필요가있을까? 이러한 회의 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에 대해서 혜문 스님은 강대국들에게 짓밟힌 민족적 자존심, 상처받은 민족혼을 치유하기 위해사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문화제 반환운동사에서 세계사적 사례를 만듦으로해서 제3세계 국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큰 뜻을 밝히다. 역시, 혜문 스님은 달랐다. 단순히 우리 것을 되찾겠다는 일차원적 생각에서 머무르지 않고, 상처받은 민족의 역사를 보듬고, 강대국의 군화발에 위축된 제3세계 국가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하고 있다. 그가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사명감에 다시금 감탄을 한다. 

  그의 문화재 반환 운동은 반드시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쿠라 컬렉션 반환 소송에서 그는 승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법정에서 이겨야만 이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강단있는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자신의 노력이 뒷날 누군가의 길이 될 것이라 믿으며 묵묵히 문화재 반환 소송을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금 당장 결실을 맺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혜문 스님의 뒤를 따르는 뜻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추진하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혜문 스님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수만은 없다. 혜문 스님은 명성황후를 살혜한 히젠도를 환수하려하고 잇다. 히젠도 환수 위원회 발대식 사진에는 "국치의 상징, 히젠도를 즉가 폐기하라."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히젠도가 본래 우리것이라면 '환수'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그러나 히젠도는 우리것이 아니기에 '환수'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부적합하다. 

  또한, '즉각 폐기'하라는 글귀도 이해할 수 없다. , '국치의 상징'이기에 '즉각 폐기'해야할까? 오히려 히젠도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증거이기에 폐기 보다는 보존하면서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학습교재로 사용해야하지 않을까? 



  혜문 스님은 이 시대의 안용복이 되어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 고분분투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청하여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불만 가득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 이모교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토히로부미가 대출해간 규장각도서를 반환하기 위해서 서울대에서 한일이 없다고 따가운 질문을 기자가 했다. 이에 대해서 이모 교수는 '한일 협정'과 예산 타령을 하며 민간은 '감정적'이라고 질타했다. 나태한 소위 명문대 교수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무엇무엇 '때문에'할 수 없다는 말보다 무엇무엇 '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옳기에 우리는 간다는 시민 단체의 뜨거운 감정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혜문 스님은 그 뜨거움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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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 - 쓰기에도 근력이 필요하다
이수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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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라는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아름다운 표지 때문이다. 동화같은 몽환적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답게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저자의 말이 귓가에 들리는듯했다. 

  저자는 치유로서 글쓰기를 한 사람이다. 대인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책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 고통의 긴 터널을 뚫고 '외로움을 마주하는 자세'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리고 '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는 자신이 어떻게 그 긴 터널을 뚫고 글을 썼는지를 고백한 고백서이자, 글쓰기 안내서이다.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책을 좋아하는 이수아 작가의 성격이 나와 닮았다. 물론, 이수아 작가가 그 증상이 더욱 심각해 보인다. 그 고통이 심했기에 고통에서 벗어나려 책을 붙잡고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리고 두권의 책을 낳았다.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프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치열하게 발버둥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이수아 작가가 글쓰기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쓰기에도 근력이 필요하다.' 이 말을 이수아 작가는 여러번 강조한다. 그녀는 매일 빠듯한 시간을 쪼개며 글쓰기에 매진하며 천여편이 넘는 에세이를 창작했다. 그녀는 한권의 책을 출간하기까지 수많은 글을 쓰면서 근력을 기르고 있었다. 많은 글쓰기 책들이 강조하는 글쓰기 비법이있다. 


일단 쓰라! 

쓰고 나서 고쳐라! 


  이수아 작가는 이를 실천했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서 나답게 살기 위한 길을 걷게 되었다. 공지영작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서 사형수들의 수기를 여러편 읽었다. 그러면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범죄에 반성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수기가 중반을 넘기자,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론부에서는 반성과 후회를 적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게 해준다. 감정의 분출이 끝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글쓴이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병이 치유의 단계에 접어든다. 

  이수아 작가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대인공포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고쳤다. 글쓰기 근력을 길러서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책일기와 글쓰기는 그녀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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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04-05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많이 좋아하면 결국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 ㅎㅎㅎ

강나루 2023-04-05 21: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는데, 책읽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멋진 일이지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4-05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게 해준다는 말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간혹 감정이 상하는 경우에 간단한 일기 같은 것을 쓰면서 안좋았던 감정들이 어느정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랬던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나루 2023-04-07 13:02   좋아요 2 | URL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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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엘의 '1984'와 대비되는 미래사회를 그린 소설 '멋진 신세계'의 모습은 멋지지 않았다. 가족도 고통도 없다.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하는 사람도 없으며, 가족 때문에 상처받을 사람도 없다. 물론, 가족으로 인해서 생기는 행복감과 푸근함도 없다. 대신 '소마'라는 해롭지 않은 마약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조건 반사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를 통제하며 자신의 계급에 맞는 일을 즐겁게해낸다. 1932년에 출간된 이 책은 콘베어밸트로 대표되는 대량생산 자본주의의 극단적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다. 소설 속 미래사회에서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사회와 공산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상 사회에 대한 민낯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민낯도 보였다.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국가는 세 계급으로 구성된다. '수호자 중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통치자와 전사 계급에 해당하는 수호자, 평민 계급인 생산자가 그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지도층인 '알파', 증산층 '베타', 하류층 '감마', 단순 노동을 담당하는 '델타''엡실론' 계급으로 나뉜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사회보다 계급이 보다 세분화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가족을 이루지 않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영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지 않는다. 플라톤이 우수한 남성과 우수한 여성이 성교하도록 유도하고, 열등집단이나 장애아는 유기되어 죽도록 방치했다면, '멋진 신세계'는 태아 때부터 영양 공급을 조절하여 우수한 계급과 열등한 계급을 조절한다. 이렇게 생산된 사람들은 고통이 스며들 때마다 소마를 마시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히 따른다. 플라톤이 상상한 이상 국가를 '멋진 신세계'는 첨단 과학과 이성의 힘으로 보다 구체화하고 보다 안정된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대공황이 불어닥친 1929년을 지나 아직도 대공황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대공황을 겪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1932년에 출간된 '멋진 신세계'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의 이름 '버나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을 만든 '마르크스'에서 가져온 듯하며, 그와 잠시 교제했던 '레니나''레닌'의 여성화 표현으로 보인다. 주인공 마르크스는 멋진 신세계의 모습에 의문을 품으며 레니나와 함께 야만인 사회에 가서 ''이라는 야만인을 데려온다. 포디즘이 지배하고 있는 미래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마르크스였다. 그리고 그에 의해서 ''이라는 야만인이 멋진 신세계에 돌풍을 일으킨다.

야만인 ''이 본 멋진 신세계는 새로운 지옥이었다. 촉감 영화를 보며 쾌락의 절정에 이르며, 파트너를 건너뛰며 새로운 쾌락을 즐긴다. 무료함을 느낀다면 소마를 마신다. 멋진 신세계는 포드탄신일을 기념하며 공동체 찬가를 부른다. 콘베어밸트에서 필요한 제품을 대량생산하듯, '런던 중앙 인공 부화 조건 반사 양육소'에서 쌍둥이들을 대량생산한다. 아기들에게는 조건 반사 훈련과 수면시 교육법을 통해서 자신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본능적으로 수행하도록 한다. 그들은 늙음과 죽음도 모른다. 호르몬제와 소마 덕분에 60세까지 젊음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죽는다. 그들에게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 아니다. 가족이 없으니 애도해줄 사람도 없다. 야만인 ''은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울분을 터트린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D 사이의 C이다.'라고 말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멋진 신세계는 B (Birth, 탄생)D (Death, 죽음)를 빼앗아 갔다. 그로인해서 C (Choice, 선택)도 할 수 없게 했다. 죽음을 직면하지 못한 신세계인들은 각성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직면한 야만인 ''은 각성했다. 그리고 소마 배급을 받는 그들에게 달려가 각성하라고 울부짖으며 몸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소마 배급을 받으려 늘어선 인간들을 보면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인간들이 생각났다. 교주가 예수라고 세뇌 시키고 가스라이팅을 통해서 복종을 주입시킨다. 아름다운 그녀들이 교주를 위해서 나체로 교주를 영접한다. 교주가 원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교주의 방에 밀어 넣는 신도들의 모습에서 멋진 신세계가 보였다. 수면시 교육법과 조건 반사 훈련으로 본능적으로 복종하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멋진 신세계와 사이비 교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행복해하는 불쌍한 신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야만인 ''은 총통 무스타파 몬드와 만난다. 재미있는 것은 총통의 이름이 '무스타파'라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시기, 갈리폴리전투에서 오스만제국을 구한 전쟁 영웅이자,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수립하며 튀르키예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이 총통의 이름이라니! 총통 무스타파는 논리적으로 야만인 ''과 대화한다. 그리고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

이 부분이 이 책의 하일라이트이다. 완벽한 쾌락이 주어진 사회에서 스스로 '불행해질 권리'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가? 성공만이 행복을 약속하며, 돈이 곧 성공을 뜻한다고 주입시키는 우리사회에서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는 사람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다큐멘터리에 열광하는 수많은 남성들을 바라보며,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 길이 사실은 모두 불행해지는 집단체면의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혹은 그것을 알지만, 선듯 야만인 ''처럼, 자연을 선택한 '자연인'처럼 선택지에 없는 새로운 길을 걷지 못한다. 닭장에 갖힌 닭은 닭장에 불만을 품지 않고 맛있는 사료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혹시, 우리는 집단 체면에 걸려 현대 물질 문명의 닭장에 갖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닭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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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 - 디지털 시대,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존 카우치.제이슨 타운 지음, 김영선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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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라는 책은 곧 닥칠 미래 학교에 대한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대비해서 꼭 읽기를 권하기에 읽기시작한 책이다. 도전기반학습, 메이커 운동, 코딩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을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없다. 왜일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쳇GPT가 나오기 전이다. 개학 준비를 하는라, 개학후 3월의 고단함을 견디느라 이 책을 마져읽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서야 책을 마져읽으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책을 중간정도 읽을 때 쳇GPT가 세상을 요란 스럽게 했다. 이 책도 구시대 책이 되어버렸다. 저자가 "기술이 우리를 위해 일하도록 해야한다."(265쪽)라며 기술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하는지를 안내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많이 변했다. 코딩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우리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코딩해줄테니 말이다. 

  어느 학부모가 나에게 푸념섞인 말을 했다. 딸이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쳇GPT에게 자신이 원하는 컵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쳇GPT는 자신이 원하는 컵을 자신보다 더 잘 그렸다. 인공지능 컴퓨터와 인간이 경쟁해야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인공지능 컴퓨터와 경쟁하지 말고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위해서 일하도록해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인공지능과 경쟁해야하는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서 인공지능 전문가는 특이점을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김어준은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스카이넷이 출현한 것 같다며 걱정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스스로 새로운 학습하고 새로운 것을 터득한다. 그러나 인간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어떠한 원리로 새로운 사실을 터득했는지 알 수 없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공격하는 생각하기도 싫은 미래가 펼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공지능 윤리를 만들어야한다고 전문가는 말했다. 교실이 변하기 전에 우리의 미래는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우리 인류가 놓여져있다. 

  수행평가 논술 주제를 알려주자, 학생들은 쳇GPT에게 물어보겠다고 답한다. 성장을 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활동을 수행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생각을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맡기고 있다. 인간을 위해서 만든 돈이 인간을 지배해듯이, 인간을 위해서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 이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기술이 인간을 위해서 일하도록 만들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기술을 인간을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갖추어야한다. 그런데, 쳇GPT가 등장한 현시점에서 인간은 쳇GPT의 노예가 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카이넷의 노예가 되지 않고 스카이넷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 교육은 무엇을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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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 - 21세기를 움직이는 사람들 에버그린 문고 41
김용철 엮음 / 김&정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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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시절, 천안에서 하숙을 했다. 나의 방에는 텔레비젼이 없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라디오였다. 라디오를 듣던 중, 앨빈 토플러의 책을 소개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렸다. 미래를 예측하는 대가의 책들을 소개 받으며 미래 사회에 대한 그의 예측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앨빈 토플러 그의 책을 읽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앨빈 토플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래학의 대하를 떠나 보내며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나는 그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의 게으른 독서를 탓하며 그에 대한 간단한 책을 꺼내들었다. 

  앨빈 토플러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아마도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 학자로 성장하여 안락한 대학 교수 생활을 할 것이라는 상상이었다. 나는 앨빈 토플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그에 대한 이미지 많으로 그를 상상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그의 삶은 나의 상상과 전혀 달랐다. 그는 철공소에서 읽했을 정도로 사회의 밑바닥부터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기자를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웠다. 그는 학자라기 보다는 저널리스트였다. 공부는 대학에서만하는 것이 아니다. 고 신영복 교수나 솔제니친은 감옥과 수용소 생활 조차도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는 저널리스트 생활을 통해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예측했다. 기자라고 모두가 미래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도자료를 받아쓰며 광고주의 비위를 맞추면서 호위호식하는 일명 '기레기'들도 많다. 배우려하고 사색하며 깨닫는 노력을 열심히 한다면 감옥에서도 대가가 될 수 있고, 신문사 기자라 할지라도 게으르고 탐욕만 쫓는다면 인간쓰레기로 전락할 수 있다. 

 요즘 많이 쓰는 '프로슈머'라는 단어를 앨빈 토플러가 만든 용어라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그의 많은 예측이 오늘날 실현된 것이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더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자료와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인터뷰하면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그의 성실함과 통찰력은 놀랍다. 앨빈 토플러가 편히 잠들기를 바라며 그의 저서도 읽어 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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