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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ㅣ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평점 :
철학자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강신주이다. 한 동안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를 잠시 잊고 지냈다. 그런데, 텔레비젼에 다시 모습을 보인 그는 너무도 병약해져 있었다. 건장한 체격에 자신감 넘치는 강한 목소리의 철학자는 노쇠하여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병자의 모습이었다.순간 나의 머릿 속에는 강신주가 혹시 불치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만족할만한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내가 무관심했던 사이에 강신주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무척 궁금했다. 불교방송에 나와서는 책을 쓰느라 무리한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 되지 않았다. 아니, 책을 쓴다고 그렇게 병약해진다는 것이 말이되는가? 그때,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분명, 강신주가 병약해진 이유가 쓰여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제목만 본다면, 강신주가 삶을 포기하려했다가, 어떠한 계기로 삶을 되찾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펼쳐 보았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내가 강신주의 낚시질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신주가 나를 속이려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나는 그가 정한 제목에 낚였다. 5권의 책을 쓰려고 동시에 집필을 시작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단다. 정신이 몸을 이끌었던 시간이 지나가고, 이제는 몸의 말을 들어야하는 상황이 되었단다. '철학 vs 철학'이라는 엄청난 두께의 책을 쓴 그가, 이제는 무척 두꺼운 책을 동시에 5권을 집필하려는 욕심을 부리다가 몸이 병약해졌다. 강신주의 몸도 나이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다. 강신주는 병약해짐으로써 노인의 쇠약함을 이해하게 되었다며 쇠약해짐으로서 얻은 장점을 말하기도 했다. 철학자는 불행속에서도 철학적 사유를 잃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목도했다. 이렇게 나의 상상력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들었지만, 그덕에 이책을 열심히 읽었다.
강신주는 자본주의를 싫어한다. 아니, 격멸한다. 그는 "하늘은 더불어 있는 것이지 누가 소유하는 공간이 아니에요."(35쪽)라며 자본주의의 기본인 '소유'를 배격한다. 유현준 교수는 '공유'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밝혔다. 반면 강신주는 공유를 좋아한다. 철학자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건축가의 차이는 '공유'라는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지점에서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사는 대동 세상을 꿈꾸는 강신주! 반면, 자본주의 시대에 뿌리박은 유현준! 우리는 어느 쪽 삶을 살아가야할까?
이상은 '공유'로 대표되는 대동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은 '사유'에 기반한 자본주의 사상에 뿌리 내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공유지의 비극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번 대선에서 보수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우리 사회가 '공유' 보다는 '사유'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공공 임대 주택을 지어 청년 주택난을 해결하겠다는 이재명 후보의 공약에 많은 사람들이 난색을 표명했다. 작은 평수라도 내것을 원하지, 임대 주택에 왜 사는가! 라며 열변을 토하는 민주당 지지자를 보기 까지 했다. 우리 사회는 뼈 속까지 자본주의 체제에 물들어있다. 우리의 진보 세력들이 욕망에 충실한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이상으로 국민을 이끌려했다. 우리사회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를 원한다. 그것이 이번 대선 결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가 파괴하지 않고 남겨둔 마지막 공동체"(193쪽) 가족!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이제 자본주의는 가족에게까지 파고든다. 어쩌면 이제 신자유주의는 최후의 보루인 가족도 해체할것이다.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예전에는 가족 내에서 해결하던 일들이 이제는 시장에 맡겨질 것이다. 자본주의 편리성과 맞물려 이는 너무도 급속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한 자본주의의 무서운 질주를 지적하며, 자본주의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
억압 구조(명령하는 자와 명령을 듣는 자의 구조)의 전복!!, 신자유주의와 벤담적 사유의 전복!! 핏대를 세우며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강신주! 그는 페미니즘도 벤담적 사유론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강한 비판을 한다. 나로서는 강신주의 급진적 주장이 버겁기만하다. 그렇다면, 억압구조의 전복, 신자유주의와 벤담적 사유의 전복을 통해서 강신주는 어떠한 사회를 만들려고하는가? 그리고 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강신주는 강하게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지만,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는 못했다. 아니, 다른 책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만으로는 강신주의 이상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과 실현 방법을 알 수 없다. 강신주의 과격한 주장을 읽으며, 자본주의를 전복시킨 후, 그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붕괴시키면, 인류의 삶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지 않은가?
4차 산업혁명과 기후 위기에 대한 강신주의 생각은 무엇일까? 강신주는'바둑판을 뒤엎어라.'(133쪽)라고 말한다. 바둑을 잘두는 전문가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며, 판을 뒤집으라고 강신주는 강변한다. 전문가를 양산하는 체제 속에서는 실업자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즉, 하나 밖에 못하는 전문가가 되지 말라고 강신주는 주장한다. 이어령 교수가 말과 경쟁하지 말고 말에 올라타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강신주는 판을 뒤집어 엎으라고 한다. 역시 강신주의 해법은 더 과격하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서 채식주의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 강신주는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도 살생을 하지 않는 다는 착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족적이지 않기에 살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채시주의자에게 식물을 먹는 것은 살생이 아닌가?라며 채식주의자를 비난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살생을 하려 노력'하는 채식주의자를 비난하지 말것을 당부한다. 그렇다. 채식주의자도 살생을 하지 않느냐며 비난하지 말자. 그들은 최소한의 살생을하려 노력하는 자이다.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생명을 빼앗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존재이다.
오랜만에 강신주의 책을 만났다. 이번책은 과거 강신주의 책을 정리하는 느낌의 책이다. 그리고 강신주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무척이나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비판의 수준을 넘어선다. 예전 같으면 강신주의 주장에 많은 공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변했다. 강신주의 주장에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한예로 면접장에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합격을 위해서 좋아한다고 말해야하는 세상을 강신주는 비판한다. 당당하게 카프카를 좋아한다고 말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나는 카프카를 그토록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카프카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라고 조언하고 싶다. 크리에이터가 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현실에서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현명한 처세술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