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플라톤의 대화편 - 개정판
플라톤 지음, 최명관 옮김 / 창 / 2008년 6월
평점 :
서양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사실은 그가 하지 않은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법철학'이라나는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한다."라고 쓴 것이 마치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와전되었다. 그래서, 초,중,고등학교에서 윤리 선생님을 비롯한 수 많은 선생님들이 소크라테스의 말이라며 '악법도 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관성이되었다.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며 독약을 먹었다."는 내용이 준법사례로 적절하지 않다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들었을까? 그래서 '플라톤의 대화편'을 집어들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기까지의 일련의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들로 이 책을 구성했다. 그래서 '플라톤의 대화편'은 크게 5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첫번째 에우튀프론은 '경건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가 에우튀프론과 경건에 대해서 대화를 한 내용을 서술했다. 그러나, 첫번째 장에 에우튀프론을 배치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기 전에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그리스 청년들을 일깨워주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서 배치한 글이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에게 "자네 일로 알고 생각해 주게, 그런 전제 아래 자네가 약속한 대로 나를 잘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말이야.(25쪽)"라고 말하며 대화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긴다. 그러나 대화의 주도권은 사실 소크라테스가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치밀한 계산 아래 에우튀프론에게 질문을 하고 스스로 대답하도록 한다. 에우튀프론이 스스로 진실을 말하게 함으로써 소크라테스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게 했으며 이를 통해서 소크라테스의 의견에 동의하도록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설득의 심리학’을 알고 있었다. 타인의 생각을 바꾸게 하려면 진실을 가르쳐 주기 보다는 스스로 진실을 말하도록 해야한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나로서는 문답법으로 학생을 깨우치는 것이 얼마나 큰 내공이있어야하며, 얼마나 큰 인내가 있어야하는지 잘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내공이 느껴진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일본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고 번역했기에 아직도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일본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일 때 자신에게 알맞게 오역을 했다. 천황중심의 전체주의 국가 일본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 서구의 양심 있는 사상을 왜곡해서 들여왔다. 결국, '소크라테스의 변론'도 '변명'이라 오역했다. 국가가 시키는 일을 거부하고, 국가와 당당히 맞서며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행동과 말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는 변명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은 '변론'이라고 번역해야 타당하다.
소크라테스가 살고자 했다면 충분히 살 수 있었다. '크리톤'에서 친구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살리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탈옥하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만약 그가 살고자 했다면 유죄판결을 받고 나서 자신이 받을 죄값으로 "프로타네이온에서 향응을 받는 것 이상 어울리는 것이 없습니다."(79쪽)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공을 세운자나, 올림피아의 우승자를 위한 잔치가 벌어지는 프로타이네온에서 향응을 베풀어 달라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많은 그리스인이 반대표를 던졌다. 소크라테스는 보통 사람들이 살고자 발버둥치는 것과는 달리 죽음과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이를 통해서 아테네의 재판 결과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악법도 법이다.'라며 법에 순응하는자가 아니라, 법을 뛰어 넘은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죽음과 맞서려한 초인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왜?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왜? 그는 죽음과 맞서려했을까? 그 이유를 나는 세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장자'라는 책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시집을 가기 싫어했던 처자가 시집을 가고 나서는 너무도 좋아서 친정으로 돌아가기를 싫어한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장자는 이에 빗대어 ‘우리의 죽음도 이러하지 않겠는가?’라며 질문을 던진다. 장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서양의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이다.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혜가 없으면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죽음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죽음은 사람에게 가장 큰 선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죽음이 가장 큰 해악임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무서워합니다.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비난받을 만한 무지가 아니겠습니까?"(65쪽)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파이돈'에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는 죽음으로서 여러 위인들과 만나서 철학적 대화를 나눌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가보지 않았기에 두려워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죽음이 오히려 행복한 일일 수도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추론을 통해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오히려 기쁘게 죽음에 다가갔다.
둘째, 완벽한 철학적 사유를 하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다. 소크라테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즉, 그는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지 않고 영혼과 육체를 분리될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영혼은 육체를 떠나될 수 있는 대로 육체와 상관하지 않을 때, 육체적 감각이나 욕망을 전혀 갖지 않고 참으로 존재하고자 추구할 때 가장 잘 사유하게 되는 거야."-파이돈, 129쪽
영혼이 육체를 떠나 육체와 상관하지 않을 때 가장 잘 사유할 수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수 있으며,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될 때에야 비로소 가장 잘 사유할 수 있다는 극단적 사고에 이르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육체를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한다.
"모든 쾌락과 고통은 못과도 같아서, 영혼을 육체에다 넣어 결부시켜 마침내 육체와 닮게 하여 육체가 옳다고 하는 것을 같이 하기에 이르도록 하기 때문이지. 그리고는 육체와 어울려 똑같은 습성을 가지게 되어 세상을 하직할 때에 절대로 깨끗해지는 법이 없고 하데스에 깨끗이 갈 수 없으며 언제나 육체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지."- 파이돈, 162쪽
영혼이 육체와 어울려 똑같은 습성을 가지게 되면 절대로 깨끗해지는 법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소크라테스는 육체를 더러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영혼은 깨끗한 것이고, 육체와 어울려 똑같은 습성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눈과 귀와 같은 신체 감각을 통해서 얻는 정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눈이나 귀나 아니 온 신체는 영혼과 관계하여 영혼이 진리와 지혜를 얻는 것을 방해한다고 보고, 가능한 한 이런 것과 관계를 끊고 이런 것에서 벗어난 사람이야말로 참 존재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파이돈, 130쪽
신체가 진리와 지혜를 얻는 것을 방해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라틴어 아식스(ASICS)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현대 뇌과학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로만 보더라도 정신과 육체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즉, 신체의 특정 부분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부분을 담당하는 뇌영역이 퇴화한다. 반면 새로운 운동을 배우면 뇌에서 운동을 담당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
영혼과 육체는 분리할 수 없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임에도 소크라테스는 이원론적 사고관에 빠져 영혼은 고귀한 것이고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한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육체라는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보다 자유로운 철학을 하기 위해서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셋째, 불의에 맞서는 투사로서 당당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철학자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유약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절대군주에 비하면 철학자는 약한자 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힘이 없다고, 그의 정신 세계마져 유약하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오판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시민으로서 전쟁터에 나가서 싸운 경험이 있는 전사이기도 했다. 그는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였으며, 위대한 철학자였다. 그는 자신을 고발한 자와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한 배심원들에게 아킬레우스를 예로들며 영웅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지키며 배심원들과 자신을 고발한 자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심지어는 "저는 몇번 죽음을 당한다해도 다른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67쪽)라며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협박한다 하더라도 자신은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인다.
"저는 투옥이나 사형을 두려워하여 옳지 않은 일을 제안하고 있는 여러분 편이 되느니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법률과 정의의 편을 들어야 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소크라테스의 변론, 71쪽
"여러분, 어려운 것은 죽음을 면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비열함을 면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비열함을 죽음보다 발이 빠르니까요."-소크라테스의 변론, 83쪽
훌륭한 전사는 전쟁터에서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듯이, 옳은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고발하고, 유죄를 선고한 그들에게 소크라테스는 목숨을 구걸할 의사가 없었다.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부러질 지언정 굽히지 않는 당당함으로 그들과 대결했다. 죽음 앞에서 당당한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죽음이 나를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철학을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려 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가지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 오다카 도모오는 '법철학'이라나는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한다."라고 적었을까? 1930년대 일본은 전체주의 광풍이 휩쓸고 있을 때였다. 국가가 결정하며 질문을 하지 않고 따라야했다. 집단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소크라테스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죽음 조차도 나의 신념을 꺽을 수 없다는 당당한 모습을 보인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면 전체주의 국가 일본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소크라테스의 본뜻을 무시하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논리를 만들어 냈으며,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오역했다. 그들에게는 국가의 명령에 저항한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변명'으로 들려야만했다.
그리고 이 논리를 받아들인 독재자들은 교과서에 이 논리를 그대로 옮기며 자신들이 만든 악법을 충실히 따르라고 국민들에게 세뇌했다. 특히 도덕 교과서에서 윤리 교과서에서 반복해서 가르쳤다. 교과서에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내용이 삭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독재자들의 논리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불쌍한 노예들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저승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땅을 치며 통탄할 것이다.
크리톤이 감옥에서 편히 잠자고 있는 소크라테스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다. '파이돈'편에서 당당히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는 편히 저세상으로 간다. 그런데, 갑자기 '향연'이 이어진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는 상관 없는 에로스에 대해서 아가콘의 집에서 연설을 하고 토론을 했다. 매우 낯설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상관없는 '향연'을 맨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에우튀프론'이 재판을 받으러 가는 도중에 에우튀프론을 만나 경건에 대해서 대화하면서 소크라테스가 어떠한 방식으로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깨우쳤는지를 보여주었고,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통해서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받는 것이 부당함이 서술되었다며, '크리톤'을 통해서 탈옥을 거부하며 당당히 죽음을 맞이할 준비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파이돈'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그의 마지막 모습을 독자에게 전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향연'이 펼쳐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플라톤이 '향연'을 맨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소크라테스가 철학적으로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돋보이기 위함으로 보인다. 특히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얼마나 찬양했던가! 아마도 이는 플라톤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내용이 보태어졌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당당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죽었으나 그는 영원히 인류의 가슴속에 살아남았다. 플라톤의 가슴 속에서 살아남아 아리스토텔레스로 그 생명력은 이어졌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죽더라도 어떻게 죽음을 맞아하는가에 따라서 그는 우리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수도 있고, 잠시 타올랐다 꺼지는 촛불처럼 사라지는 존재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고발한 자들과 유죄를 선고한 배심원들에게 당당히 맞섬으로써,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해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우리가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소크라테스를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행동이며, 우리 스스로를 독재자의 노예로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스스로 노예의 길을 선택하는 자보다 어리석은 자는 없다. 나는 말하고 싶다.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 그 누구도 당신을 노예로 삼을 수 없도록, 지혜의 횃불을 들고 깨어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