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막내 개똥이는 친구와 어울려 뛰어놀기를 좋아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울려 뛰어놀 친구들이 줄어들고, 그만큼  밖에서 노는 시간도 줄어든다. (아이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특히 여자 아이들은...?)

뜨거운 여름, 바싹바싹 다가오는 방학!! 집에서 혼자 놀기가 고역인 우리 막내 개똥이가 걱정이라 고심 끝에 몇 가지를 마련했다.

 

 

맨처음 장만한 것은 보드게임.  집에는 젠가를 비롯해 도둑잡기, 할리갈리, 다빈치코드, 카르카손, 인생게임.. 등이 있지만 새로운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루미큐브와 젬블로를 구입했다.  지금까지 구입했던 보드게임 중에 가장 성공한 것 같다. 큰애들도 재미있어 하고 심지어, 남편까지 가담해서 서너판의 게임을 이어가기도 했으니까.

개똥이는 젬블로보다 루미큐브를 더 부담없이 즐기는 것 같다. 게임규칙이 좀 복잡하지만 일단 숙지하고 게임을 시작하면 운이 많이 작용하는 게임이라 특별히 집중해서 머리를 써야 하는 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젬블로는 게임규칙은 간단하지만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야 하는데, 큰애들과 남편은 젬블로를 더 재미있어한다. 나도 젬블로가 조금 더 재미있다.

장마가 시작되거나 아니면 폭염으로 나가 놀기 어려울 때에는 개똥이랑 내가 같이 즐기기 좋을 것 같다.

 

 

  

 

지난 페이퍼에서 소개한 적 있는 햇빛공방 덕분에 개똥이는 7살 무렵부터 바늘을 잡았다. 그렇다고 바느질을 해서 뭘 만들었다는 건 아니고 그냥 자투리 천에 자기 맘대로 홈질을 해대는 수준이었다. 큰애들 어렸을 때에는 바늘을 잡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식겁해 못하게 말렸었는데, 셋째에 이르고 보니 바늘을 잡고 뭘 하겠다고 해도 그냥 '그래, 해봐라~'하게 된다.

저 책은 얼마 전에 알라딘에서 반값할인이벤트를 하는 걸 보고 9,900원에 얼른 구입했다.  배송된 책을 살펴보니 열살 개똥이가 하기에 무리가 없어 보여 마음에 들었다. 책이 배송된 날 학교에서 돌아와 마침 놀 친구가 없어 심심해하는 개똥이에게 이 책을 꺼내주니 반색을 했다. 플라스틱 안전바늘이랑 실, 단추, 펠트천을 비롯한 약간의 천 등등이 착한 부록으로 들어있어서 당장 바느질을 시작하고싶은 의욕을 부채질하니 성격 급한 우리 개똥이는 참지 못하고 뭘 만들까 고민 시작. 

우선 플라스틱 안전바늘로 홈질, 감침질, 박음질을 연습한 다음 (책 안에 구멍 뽕뽕 뜷린 바느질 연습용 페이지가 있다), 개똥이는 '다용도 주머니' 만들기에 도전했다. 마침 집에 예전에 가방 만들고 남은 천이 있어서 꺼내주고 책 뒤에 있는 도안을 오려주었더니, 개똥이는 서둘러 실 골라 오고 바늘이며 시침핀을 챙겨 꺼내왔다.  몇 번 실이 엉키고 마주 댄 양면이 어긋나 애써 박음질한 것을 뜯어내고 다시 하기도 했지만 우리 딸의 번듯한 첫 바느질 작품이 탄생했다.

 

 

작품완성으로 자신감이 붙은 개똥이는 방학 동안 책에 나와 있는 공룡인형과 부엉이 인형을 22개 만들어서 반친구들 전체에게 선물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이번 주말에 당장 펠트천을 사러가잔다. 음. 어쩐지 이 손바느질 책 한 권만으로도 여름방학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알라딘 반값 이벤트에 부응해서 개똥이를 위해 장만한 또다른 책들이다. 이 책에 대한 개똥이의 반응도 매우 뜨거운 편.  큰딸까지 가세해서 책을 펼쳐놓고 개똥이랑 둘이서 한 쪽씩 맡아 여백을 채우기 바쁘다.  두 책의 내용은 비슷한데 <그림으로 상상력 키우기>는 그리기 활동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내 멋대로 미술놀이>는 그리기, 오리기, 접기 등등의 활동이 골고루 들어가 있다. 개똥이는 자기는 오리기는 귀찮다며 <그림으로 상상력 키우기>만 갖고 <내 멋대로 미술놀이>는 친구에게 선물했다.

 

틈틈이 도서관 캠프에 가족휴가, 영어학원캠프, 품앗이모임캠프.. 4번의 캠프와 여행이 끼어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이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겠지. 혹여 좀 심심한 날이 있더라도 휴식으로 알고 참아주겠지. 그렇겠지.

 

 

 

  

 

 

나는  <혼불>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초판이 1996년. 둘째가 태어나 정신없이 육아에 전념했을 시기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10권의 대하소설을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웠는데 이제 아이에게 잔손가는 일도 줄었고, 잠시 모임이며 도서관 활동이 뜸한 시기로 접어들면서 용기를 냈다.

 

1권의 첫 장 <청사초롱>의 두 번째 페이지에서부터 난 이 작품을 쓴 최명희라는 작가가 부럽고 궁금하고 신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좋은 책을 만날 때마다 항상 드는 마음이지만, 이번에도 나는 왜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지 않았을까, 하고 나의 태만을 탓했다. 바로 이 문장들 때문이었다.

 

그저 저희끼리 손을 비비며 놀고 있는 자잘하고 맑은 소리, 강 건너 강골 이씨네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쪽 대실로 마실 나온 바람이 잠시 머무는 소리, 어디 먼 타지에서 불어와 그대로 지나가는 낯선 소리, 그러다가도 허리가 휘어질 만큼 성이 나서 잎사귀 낱낱의 푸른 날을 번뜩이며 몸을 솟구치는 소리, 그런가 하면 아무 뜻없이 심심하여 제 이파리나 흔들어 보는 소리, 그리고 달도 없는 깊은 밤 제 몸 속의 적막을 퉁소 삼아 불어 내는 한숨 소리, 그 소리에 섞여 별의 무리가 우수수 대밭에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얼마든지 들어 낼 수가 있었다.  (1권 8쪽)

 

이건 대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대숲에 이는 바람에 귀가 젖어 그것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와 몸짓을 다 눈치챌 수 있었다는 문장들 뒤에 나오는 대숲 바람에 대한 묘사들이다. 위의 저 문장들에 앞서,

 

그런데 이처럼 날씨마저 구름이 잡혀 있는데다가 잔바람이라도 이는 날에는 으레 물결 쏠리는 소리를 쏴아 내면서, 후두둑 비 쏟아지는 시늉을 대숲이 먼저 하는 것이었다. (1권 8쪽)

 

라는 표현도 나온다. 대숲에 이는 바람 하나 가지고 이처럼 다양한 표현과 문장들을 엮어내다니!!  첫 두 페이지에서 이렇게 감동시키면 앞으로 읽게 될 10권에 거는 독자의 부푼 기대를 어찌 감당하려고, 초반 문장에 이토록 치밀한 정성을 들였을까. 조심조심 문장들을 따라가며 천천히 천천히 공을 들여 읽고 싶어진다.

 

난  <혼불>로, 막내 개똥이는 바느질로 이 여름을 잊을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4-07-1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에는 혼불을 읽자고 다짐했는데 벌써 7월이고 이번 주문에서도 또 빠졌어요. 이 페이퍼 보니 자극받네요. 다음주 주문엔 혼불을 꼭 넣고 올해의 목표를 달성하겠어요. 불끈!

섬사이 2014-07-14 23:1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과 저의 공동의 목표가 생겼군요. 음, 꼭 달성해요, 우리! 불끈!!!

하늘바람 2014-08-2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정말 여름을 잊을 준비를 해야겠어요

섬사이 2014-08-20 10:4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렇죠?
어제 밤에 선풍기 닦아서 커버덮어 정리하는 꿈을 꾸었어요.
어느새 자다가 깨서 이불을 찾아 덮을만큼 여름이 물러났어요.
 

책을 읽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고, 한 2년 전에 신간평가단 활동을 할 무렵 읽고 싶은 추천 신간으로 올린 적이 있던 책이고(아쉽게도 선정되지는 않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현 작가의 책이다.  이 작가가 얼마나 솔직하고 섬세하게 아이들의 세계를, 그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지를 알기 때문에 다소 도발적으로 보이는 제목이 오히려 기대감을 부추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몇 주 전에 구립도서관 3층 서가의 책꽂이 사이를 산책하듯, 책등에 적힌 제목들을 눈으로 더듬으며 걷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아, 그래, 이 책이 있었지..  다시 만난 반가움에 덥썩 꺼냈다. 책표지 가운데가 껶였었는지 하얗게 금이 간 걸로 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던 걸까? 아니면 험하게 책을 다루는 누군가에게 걸렸던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이 책이 왜 뜨지 않았을까, 였다.적어도 김려령의 『완득이』만큼은 떠야 마땅한 책인데 말이다. 구립도서관 홈페이지에 가서 검색해보니 이 책의 대출횟수는 고작 13번. 완득이를 검색해보니 도서관에 점자책으로 두 권, 그냥 글책으로 두 권이 있었는데, 두 권의 글책의 대출횟수가 각각 133회, 222회다. 아마도 마케팅의 차이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깝다!'라는 기분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세속적인 발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서서 이 책을 가지고 청춘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겠다고 나선다고 한다면 나는 "음, 그 책은 그럴만 하지."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만큼 캐릭터들도 강하고, 이야기도 탄탄하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구석구석을 잘도 그려냈으며 그리고 무척 재미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 글쓰는 재주가 없는 나는 처절한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다.  주로 너무 좋은 책을 읽었을 때 더 그렇다. 작품 자체가 그냥 막 좋은데 그걸 일일이 말로 혹은 글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아무런 의미 없는 짓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뭐라도 써보려고 했다가 결국 아무 것도 못 쓰고 넘어간 책들이 있다. 근데, 이 책이 그랬다. 리뷰를 쓰려고 했다가 포기하고 페이퍼로 돌렸다.  (2년 전에 서평도서로 선정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페이퍼로 돌리고도 한참을 헤맸고 지금도 헤매고 있다.  책은 두 번 읽었고, 밑줄긋기는 알라딘 밑줄긋기로 감당이 될 것 같지가 않아서 따로 한글파일에 12쪽에 걸쳐 컴 자판을 두들겨 댔다. 그러고도 아예 한 권을 통째로 필사 해버릴까, 생각했다. 마음에 와 닿는 몇 줄의 문장이 아니라 마음에 와닿는 복잡하고 디테일한 상황과 사건들이 대부분이라 '밑줄 긋기'의 형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얘기하든 그건, 이 책의 아주 작은 부분이 될 것이다.

 

'전두환'으로 시작되는 열일곱 나금영의 남자들 이야기는 '강동원'으로 끝을 맺지만 사실 제목 '오, 나의 남자들!'과는 달리 꼭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전두환'과 '강동원' 사이에는 160의 단신에 고운 미성을 가진 좋은 친구 '최강태진'과 동성애자 한상진 선생님, 고리타분 갑갑한 전교 1등의 선우완 오빠, 육사입학의 과업을 짊어진 금영의 오빠 나금호, 찌질하고도 찌질하고 다시 찌질한 오정우, 아버지 나성웅, 그리고 위험한 변 모씨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부러웠던 건 금영, 마루, 현지, 최강태진 4사람이 보여주는 '친구 사이'다. '친구란 어때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이 네 사람은 정말 환상적인 최고의 친구들이다. 금영이네 집이 운영하는 '한마음 노래방'에서 자주 의기투합하는 이 네 명의 아이들은 나름 확고한 노래방 예술철학을 가졌고 10대의 모든 혼란과 방황과 의문과 갈등을 노래방에 쏟아버리곤 한다. 십대 그 빛나는 시기에 이런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면 '산다는 것은 어쩌면, 뒤미처 무언가를 깨닫고 그로 인해 조금씩 외로워지는 것'(275쪽)이라고 해도 평생이 든든할 것이다.

 

노래방에 대한 우리의 세계관은 완벽하게 일치했으며 더할 수 없이 확고했다.  실력 있는 반주자와 신이 내린 목소리가 어우러진 전문가의 음악이 실용이라면, 노래방의 음악이야말로 예술 그 자체다. 잡음 섞인 반주에 불안한 음정으로 질러 대는 그 노래야 말로 100퍼센트 순수한 예술인 것이다.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실용적 음악이 아니라 오직 내 안의 나를 위한 진정한 예술이라고나 할까. (14쪽)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때 나는 음, 이 책이 별 다섯개 그 이상의 청소년 책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겠구나, 라는 걸 알았다. 노래방은 금영이 선우완과 헤어지기로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 장소이기도 하고, 금영이 저녁 8시 이후의 세계에 눈을 뜨고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루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금영이 '"서경 생과고의 명예를 드높이'려는 교장의 원대한 포부에 따라, 말하자면 스카우트된 학생'이며 강동원과 근접한 외모를 가진 선우완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렇다.

 

노래방까지 함께 왔으니 할 만큼 했다. 내가 곡 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노래방에서 팝송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헤어질 명분으로 충분하다. (146쪽)

 

 그리고 그걸 아무 말 없이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마을버스를 타자마자 현지, 마루, 태진이에게 문자를 날렸다. 현지와 마루는 앞다투어 전화를 걸어와서 왜냐고 물었다.

 "노래방에서 팝송을 부르더라니까."

 그 말 한마디에 현지와 마루는 나의 결단을 지지해 주었다. 아, 난 정말이지 친구 복이 있다. 예술적 동반자들과는 영혼이 통한다. (148쪽)

 

그러나 씩씩하고 발랄해 보이는 이 아이들, 현지, 마루, 태진이에게도 자기만의 상처들이 있다. 금영이가 '한마음 노래방'의 8시 이후의 세계를 알고 부모님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으로 아파하며 방황할 때 마루는 택시를 타고 달려와 금영을 다독이며

 

"좋아. 우정의 총량은 비밀의 총량과 같다! 감추고 싶은 치부라면 효과는 두 배! 이 언니도 한 건 털어놓으마.. (227쪽)

 

라며 자기의 상처와 치부를 다 내놓는다. 마루의 충고는 금영이가 자신이 받은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걸 용서하는 건 아니지만, 용서할 수 없다고 해서 모든 걸 부정하고 싶진 않다.'(290쪽)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변 모씨의 활약(?)이 있기도 했지만. 현지도 어두웠던 자신의 치명적 과거를 털어놓으며 괴로워한다. 그 모든 걸 아이들은 다 나누고 이해하고 '그래도 친구'라며 흔들리지 않는다.

 

뭐, 어떻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현지를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그것이 설사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 해도 나는 내 친구 백현지를 좋아하니까. (201쪽)

 

이 책은 이 네 명의 단단한 우정을 토대로 학교와 가정과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그려나간다. 아버지 나성웅과 아들 나금호가 보여주는 세대갈등, 기성세대의 이중성과 위선, 한상진 선생님을 중심으로 아이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보여주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 찌질하고 치졸하고 비겁한 인간 군상, 위험한 사회, 무심한 공권력, 외모지상주의, 학력차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아니 견뎌내고 이루는 성장.

 

내가 여기에 뭐라고 쓰던 이 책의 아주 작은 부분이 될 거라는 짐작이 맞았다. 이 책을 제대로 그릴 수 없어서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좁은 여백으로 12쪽, 밑줄긋기 파일을 열고 그걸 읽으며 만족하는 게 나의 최선인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섬 2014-01-16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궁금해요. 저도 도서관가서 찾아봐야겠어요.
 

 

『그림책의 모든 것 』(마틴 솔즈베리, 모랙 스타일스 지음/서남희 옮김/시공아트)

 

얼마 전부터 그림책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점점 그림책을 읽는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요즘 출판되는 그림책 수준이 얼마나 높은데, 어른인 내가 읽기에도 벅찬 내용인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냐고 타박한다면 물러날 자리가 없다. 하지만 막내가 취학 전일 때와 비교해보면 전혀 읽지 않는 게 아니라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나도 덩달아 그림책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고 알라딘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덥썩 사버렸다.

 

표지에 새겨진 '그림책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역사/소재/주제/기법/출판 산업까지 그림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라는 부제가 따라붙어 있다. 판형이 좀 크긴 하지만 200쪽이 안되는 책 속에 그 많은 것들을 다 담았다고? 책을 펼치기 전부터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서남희 씨의 번역이라는 점이 조금 의심을 흐려지게 했다. 오히려 어떤 묘책으로 그 많은 내용을 이 한 권에 담았는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그랬다.

 

그림책의 발달을 인쇄술의 발달과 관련지어서 설명한 것도 좋았고, 그림책 작가들이 대상연령을 미리 생각하고 책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그래서 크로스오버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그것이 그림책의 가능성을 더 열어두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새로웠다.  (그러니까 내가 읽기에도 벅찬 그림책들이 많아지는 거였구나!) 시각적 문해력과 드로잉을 통한 사고에 대한 설명,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을 '보완'과 '대위법'으로 간단하게 정리해놓은 것도 깔끔했다. 시각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텍스트와 그 자체가 그림의 요소인 텍스트 간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는 설명도 마음에 담아둘만 했다. 게다가 시원시원하게 들어가 있는 그림들은 이 딱딱한 이론서를 '읽을만한' 책으로 여기고 쉽게 다가서게 만들만큼 매력적이었다.

 

짐작한 거였지만 200쪽이 안되는 책 속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니 개론적 설명이라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그 아쉬움 속에서 이 책이 해낸 큰 역할이 있다면 연이어 그림책 이론서를 줄줄이 사게 만들었다는 것.  책이 책을 부르는 책꼬리잡기 연쇄반응이 일어나서 나는 이 책에 나오는 『그림책을 보는 눈』(마리아 니콜라예바 외 지음, 마루벌)과 『그림 읽는 아이들』(에블린 아리프, 모레그 스타일 공저, 미진사)와 『그림책론』(페리 노들먼 지음, 보림)을 내 책꽂이에 꽂아두게 되었다. 이런 책을 번역해서 출판해 주다니, 정말 고마운 출판사라고 감동하면서 신나서 주문을 했던 거다.

 

 

 

 

 

 

 

 

 

 

 

 

 

 

 

 

 

이 세 권의 책을 다 읽게 된다면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하고 기특해서 어쩔 줄 몰라할 것 같은데, 언제쯤 붙잡고 읽을 지는 나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갑자기 저 책들보다 먼저 오래전에 읽었던 마쓰이 다다시의 『어린이와 그림책』(한림출판사)을 다시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도 딱딱한 이론서를 읽고 나니까 다정한 이론서가 그리워진 모양이다. (그러면서 그렇게 급하게 주문할 게 뭐람.)

 

 

 

 

 

 

 

 

 

 

 

 

 

 

 

그러니까 결론은 그림책이 궁금한데 제법 딱딱한 내용으로 냉철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잡고 싶고,,,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금방 휘리릭 정도만 원할 경우애는 이 책을 시작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또하나 우리 그림책 연구에 대한 아쉬움이 앙금처럼 남는다.  미국의 경우 벌써 한 30년 쯤 전부터 그림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가 그림책의 출발이 좀 늦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슬슬 우리 그림책과 작가에 대한 연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직 대학 학부에도 어린이문학과 그림책에 대한 강의를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도 창작강의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말이다.  좀 더 열심히 으쌰으쌰, 응원을 보내야 하나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꼬 2013-12-0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왕,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이라는 책이 있는데, 저도 읽진 못했지만 저자들이 믿음이 가서 찜해두었어요. 섬사이님도 아실지 모르지만 저의 다짐 차원에서(?) 남겨 봅니다.

섬사이 2013-12-07 00:07   좋아요 0 | URL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은 저도 보관함에 쓰윽 넣어 두고 있어요.
아직까지 장바구니로 옮기지 못한 이유는... 음... 현존하고 있는 작가들, 게다가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가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소개하고 있을지, 믿어도 될지... 좀 망설여져서요.
하지만 네꼬님이 '저자들이 믿음이 가서'라니까 조만간 장바구니로 옮기게 될 것 같아요. ^^
 

요즘 내가 병에 걸렸나보다. 책이 잘 안 읽어지는 병이다. 그 병의 원인을 대충 알 것도 같다.

 

작년 내내  도서관 이름으로 초등학생들을 위한 추천도서목록을 뽑았다.  어린이책을 문학, 수학, 과학, 경제, 법, 역사 등등의 영역으로 나누어 많이 읽었다. '질보다 양'의 책읽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고나니까 올해는 어린이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책도 잘 읽지 않고 띵까띵까 놀다가 엉뚱하게도 그림그리기로 한동안의 시간을 보냈다.

그림그리기가 마무리되어갈 무렵부터 연이어 ㄷ대학 교양교육원에 다녀야 할 일이 생겼고, 그 교양교육원 강의는 내 관심분야와 90퍼센트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들어가서 알게 되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이 교육의 끝이 어딘지 한번 끝까지 가보자 하는 오기로 그 과정도 거의 막바지로 접어들었고 아직도 뚝심있게 버티며 강의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걸 대견하다고 해야 하는지 미련하다고 해야 하는지.

 

그 결과, 질보다 양의 책읽기는 그나마 내가 갖고 있던 깊이라고까지 말할 것도 없는 그 얕은 책읽기마저도 상실하게 만들었나 보다. 휘리릭 후딱 읽는 책읽기, 깊이 들여다 보지 않고 전체적인 느낌만으로 좋다 별로다 했던 게 내게 악영향을 미친 거다.  어쩌면 성의없이 읽혀진 책들도 상처입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따뜻함이 그리워진다. 초겨울 차가운 날씨때문만은 아니다. 핑계지만 그 후로 이런저런 일에 시간과 마음을 뺏기면서 병의 증세를 더 악화시킨 꼴이다.

 

어린이책 세 권을 읽었지만 잘 안 읽어진 책에 대해서 페이퍼를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좀 고민을 했다.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니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읽은 책에 대해 몇 줄이라도 적어놓는 편이 나중에 '이렇게라도 써서 남겨두길 잘했어.'라며 다행으로 여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컴 속 하얀 공간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져오지만, 혹시라도 이리저리 고민하며 쓰다보면 책이 잘 안 읽어지는 이 병이 회복의 기미를 보일지도 모르니까 가보자.  

 

  

 

 

 

 

 

 

 

 

 

 

 

 

『왕봉식, 똥파리와 친구야』 김리리 글, 이상권 그림, 우리교육, 2003

 

'왕땅콩 갈비 게으름이 욕심쟁이'라는 긴 별명으로 불리는 우리의 왕봉식 군의 좌충우돌 이야기. 봉식이네 가족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5편의 이야기가 밝고 유쾌하다.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본 듯한 느낌이다. 누나와 형, 얄미운 여동생 사이에서 겪는 갈등과 고민, 아이다운(아이답다는 건 또 뭘까?) 생각과 솔직함들이 묻어나는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책을 덮고 나서 왜 아쉬움이 남는 걸까.

이 책의 맨 마지막 이야기 <봉식이네 가족 신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봉식이가 학교 숙제로 가족신문을 만드는데 '솔직하게, 사실 그대로' 만들어 오라는 선생님의 당부에 따라 아빠는 '화를 잘 내는 우리 아빠'로. 엄마는 '잔소리를 잘 하는 우리 엄마'로, 누나는 '나한테 가장 잘해 주는 우리 누나', 형은 '나를 무지 잘 괴롭히는 우리 형', 동생 봉순이는 '불여우에 고자질쟁이 봉순이'로 가족소개를 한다. 숙제를 마치고 봉식이가 이불 속에 들어가 눕자 스케치북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가족신문을 그렸던 쪽에서 가족들의 얼굴이 움직이며 말하기 시작한다. 가족신문 속 그림가족들이 봉식이에게 불만을 터뜨리다가 결국 반성하며 함께 '김치'하고 웃으며 이야기가 끝난다. 봉식이가 지나치게 솔직하게 가족신문을 만드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쩐지 작가가 결말을 너무 작가에게 편리하도록 해결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주인공의 상상에 이야기가 너무 많이 기댄다는 느낌이랄까. 이런 결말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김샌다.

<까미야, 봉식이 소원 좀 들어줘>나 <왕봉식, 똥파리와 친구야>도 상상의 이야기지만 <까미야, 봉식이 소원 좀 들어줘>는 어른들의 가식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고, <왕봉식, 똥파리와 친구야>도 봉식이의 자아존중감 회복과 상처치유의 과정으로서의 상상의 이야기라 거부감이 덜했다. 작가에게 편리한 사건해결방법으로서의 상상이 아니라 의미있는 판타지 쪽으로 방점을 찍을 수 있었던 거다. 맨 마지막 이야기도 그랬더라면 아쉬움이 덜했을 것이다.

 

 

 

『가오리가 된 민희』 이민혜 글, 유준재 그림, 문학동네, 2009 

 

봉식이와는 딴판인 민희를 만났다.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의 차이인지, 아니면 복닥복닥 여섯 식구 사이에서 다복하게 살아가는 봉식이와 (티격태격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간다고 해도) 생선가게 미혼모의 딸이라는 간극 때문인지 책의 분위기가 확 다르다. 생선가게 미혼모의 딸로 초등 고학년 사춘기 초입의 시간을 버텨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민희가 가오리로 변하는 걸 보면서. 왜 하필 가오리일까, 궁금했는데 날개처럼 펼쳐진 가오리의 지느러미로 하늘을 날아간다는 설정이 가능했고, 가오리의 납작한 형태가 공부에 대한 압박감, 비린내가 난다며 선을 긋는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과 외로움, 미혼모의 딸이라는 사회의 시선 등에 위축된 민희를 상징하기에 적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오리로 변한 채 바다로 날아가면서 기억을 하나 하나 잃어버릴 때는 '얘가 어쩌려고 이러나...'하는 심정이었다. 기억이라는 거, 추억이라는 거,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게 또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심각하게 무서워진다. 살아온 날들이 이렇다 할 사건 없이 지극히 평범해도 그렇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기억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나에 대한 기억도 분명, 나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조각들이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타인에 대한 기억도 그 사람 하나하나를 이루는 조각들이 될 것이다. 기억 하나 하나를 잃고 점점 완벽한 가오리로 변하는 민희의 모습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내 본능이 향한 곳은 바다였지만 지금 이 바다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바다는 바로 엄마였다. 포근한 물살, 향긋한 비린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물을 주는 곳, 내가 아무리 가오리이고, 가오리 서식지는 서해라고 해도 나의 본능이 좇는 바다는 그 바다가 아니었다.' (71쪽)

어쩌면 가오리로 바다를 찾아가는 민희의 여정은 미혼모로 생선가게를 하고 있는 엄마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었던 민희가 엄마와 화해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거다. 그 여정 중에 할아버지를 만나고 아이를 만나는 이야기는, 민희의 여정을 풍부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었지만 이야기 전체로 봤을 때는 오히려 산만해지는 느낌이었다는 게 좀 아쉽다.

<낙서하는 아이>와 <병아리 죽이기>는 <가오리가 된 민희>보다는 좀 더 쉽게 읽힌다.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 거라 섣불리 얘기하긴 어렵지만 이야기에 많은 의미와 가치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집 괴물 친구들』, 박효미 글, 조승연 그림, 사계절, 2013

 

이 작가의 『학교 가는 길을 개척할거야』를 읽고 내가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그 책은 아이들의 모습을, 마음을 참 잘 담아내고 있었고, 그 책을 아이에게 읽어준 엄마들은 아이들이 정말 학교가는 길을 개척할까봐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실제로 몇몇 아이는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을 개척하려고 시도했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은 개척해서는 안된다고, 차라리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을 개척하라고 엄마들이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박효미 작가가 쓴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이 나온 걸 보고 무척 반가웠다. 근데 내가 너무 기대를 크게 했나 보다.  2학년 짜리 우리 막내가 재미있게 읽는 걸 보니 그렇게 실망스러운 작품은 아닌데 말이다. 『학교 가는 길을 개척할 거야』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의 세계가,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 같았는데, 이 책에서는 뭔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안상민과 안종민은 형제다. 형제니까 당연히 다투고 싸운다. 특히 종민이에게 형의 세계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형 상민이는 종민이가 함부로 자기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선을 긋는 편이다. 어느날 형 상민이는 장롱 속에 숨어있다가 동생 종민이가 몰래 자기방에 들어와 책가방을 뒤지는 현장을 덮친다. 현장에서 붙잡힌 종민이는 형에게 괴물친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괴물들이 바로 빨간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장롱 속에서 뛰어나와 방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이비야, 상민이 방 문지방에 살면서 종민이에게 형의 잘못을 고자질하게 만드는 툴툴지아, 형 방에 있는 물건들을 몰래 몰래 가져다가 종민이 침대 밑에 숨겨놓는 누툴피피다.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게 만드는 인상적인 문장과 장면들이 있다. 괴물들의 캐릭터도 성공적이다. 그런데도 앞에서 말했듯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어린 종민이의 입을 빌려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고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음... 그게 무슨 뜻이냐면... 책이란 게 결국 작가가 하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긴 하지만 "이거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하는 티가 나서는 안되는 거 아니냐.. 뭐, 이런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독자가 종민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확 믿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이야기 속에 마음 놓고 풍덩, 빠질 수 있으니까. 근데 난 자꾸 이거 종민이가 말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던 거다.

그런데 정말 그런 괴물들이 있었던 거냐고?  그러고보니 울막내가 그 점을 어떻게 이해했을지 궁금해진다. 괴물들 이름의 독특한 느낌을 재미있어하긴 했다. 하지만 아마도 그 괴물들은 종민의 상상에서 튀어나온 괴물일 확률이 크다. 이 책에서 중요한 건, 형 상민이가 동생 종민이의 괴물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줬다는 거,  재미있게 잘 들어줬을 뿐 아니라 들으면서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안종민 방에서 나오려는데, 문지방에서 침대 밑으로 뭔가가 휙 지나갔다. 나는 얼른 엎드렸다. 그러고는 치렁치렁 늘어진 침대보를 걷어 올렸다.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는 구석지에서 뭔가 꾸무럭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냉큼 일어나 긴 자를 가져왔다. 그러곤 다시 엎드려 잡동사니를 쑤셨다.

아쉽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나는 멋쩍게 일어났다.  (93쪽)

이해가 시작되는 자리에서 괴물들은 더이상 설 자리가 없다.

 

 

 

그러고 보면 문학은 어린이문학이나 어른들문학이나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 아니면 전혀 모르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 올린 저 세 권의 어린이책도 서로서로 좀 더 잘 이해하고 살아보라고, 알고보면 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상처가 있고 고단함이 있어 그런거라고, 열띠게 말하고 있는 거다.

세 권의 책에 대해 까탈을 부려놓고 이제와 "잘 이해하고 사세요"라니, 뭔가 좀 민망한 마무리구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3-11-28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가방가~ 섬사이님!
저는 책에 대해 까탈부린 리뷰나 페이퍼가 좋아요~
사실 그렇게 쓰는 게 작가에 대한 애정이고 좋다고만 쓰는 리뷰보다 어렵다는 것도 아니까요.^^

섬사이 2013-11-28 08:33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순오기님.
내가 뭐라고 까탈을 부렸나 싶어 찜찜했는데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고마워요. ^^
 

 

 

 

 

 

 

 

 

 

 

 

 

 

『선영이, 그리고 인철이의 경우』 김소연 장편동화, 손령숙 그림, 사계절, 2009

 

엄마 아빠의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충격 받고 까칠해진 선영이와 새엄마와 아빠, 그리고 이복동생 사이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인철이의 이야기. 작품 내에서 선영이는 엄마가 구두가게 아저씨가 가깝게 지내자「사랑 손님과 어머니」와 자신의 입장을 견주어보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만큼 이 주제가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주제라는 걸 작품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하긴 늘 주제는 반복되는 거고,  뻔하게 느껴지는 주제를 얼만큼 세련되고 촘촘하고 단단하게 담아내느냐가 늘 작가가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인철이의 이야기에서 보이는 계모와 전처 자식간의 아슬아슬한 감정적 대립도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처럼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옛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니 말해 무엇하리.

 

일단 작가의 전작들, 『꽃신』,『명혜』,『남사당 조막이』에 비해 이야기가 성긴 느낌을 받았다.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의 기분은 마치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누군가 말아주는 국수를 급하게 후루룩 먹었는데 다 먹고 나도 어딘지 허전하고 속이 헛헛한 느낌이랄까.  다 먹고 난 뒤에도 입도 속도 허전해서 쩝쩝 입맛을 다시며 좀 더 먹을 게 없나 아쉬워 두리번거려지는, 그런 거 말이다.

 

아무래도 갈등과 문제들이 너무 쉽게 해결되어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족 내에서 점점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새엄마도 아빠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하던 인철이의 갈등은 새엄마가 인철이의 방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눈시울 적시는 장면 하나로 해결된다. 정말 현실에서도 그럴까? 그렇게 쉽게 오해가 풀리고, 그렇게 쉽게 용서가 되고, 그렇게 쉽게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선영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선영이나 인철이의 경우와 비슷한 입장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위로와 힘이 되는 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허기를 채워주지 못했다고 일방적으로 국수 탓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먹는 동안은 뜨끈한 국물에 한기를 녹이고 주렸던 속을 부족하게나마 달랬으니 말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떤 성찬보다도 더 훌륭한 소울푸드일지 누가 알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