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즈음부터 우리집에 TV가 없다. TV가 사라진지 3주가 되었는데, 큰애들 둘은 TV가 있으나 없으나 별 상관을 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 노트북이 있으니까, 자기 방에서 노트북으로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아, 아니다. 가끔 아들녀석이 TV를 아쉬워한다. 얼마전 자기 용돈을 털어서 산 PS4를 하고 싶은데 TV가 없어서 못한다나 뭐라나.

막내가 가장 심심해 한다. 날이 추워져서 나가 놀기도 마땅치 않고, 해도 일찍 지고, 게다가 점점 같이 놀 친구가 없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점점 바빠지고 있다.  친구 만나게 해주려고 학원 보낸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만, 막내는 일주일에 두 번 영어 교습을 받으러 가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든다. 자기는 자유가 중요하다나..  암튼, TV가 없어서 더욱 심심해진 막내가 요 며칠 책을 잡고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어느 분이 아이들 책 읽기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TV가 켜지면 책은 멀어진다'고 했었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이었나 보다.

요즘 우리 막내가 읽고 있는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지가 골라 빌려온 책인데 하나같이 비문학 책들이다. 어려서도 옛이야기를 읽어주면 시큰둥하고, 도감류를 좋아하더니.. 우리 막내는 비문학파였나 보다. 큰딸은 그런 동생을 보고 자기랑 똑같다며 신기해 한다.  

 

12월 13일 쯤에 서울역사박물관에 차출되어 나갔던 우리집 TV 2대가 다시 돌아온다. 남편의 회사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2014 서울사진축제 서울 視 . 공간의 탄생의 시행을 맡았고, 전시에 TV가 필요해지자 우리집 TV까지 갖고 나간 것이다. 전시는 12월 13일에 끝나고 우리집 TV도 돌아올 텐데, 그것도 한 대는 더 큰 것으로 바뀌어 올지도 모르는데, 난 지금 이 상태가 맘에 든다.  책 읽는 우리 막내의 모습을 더 오래 보고 싶다.

 

**

 

오늘 2학년 아이들 책놀이교실을 하러 도서관에 갔다.

한 아이가 시간보다 일찍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내 나이를 묻길래,

"나, 나이 많은데?" 했더니,

"정말요? 우리 아빠보다 많아요?" 한다.

"아마 그럴걸?"

"우리 아빠가 서른 여덟살인데... 그럼 마흔도 넘었어요?"

"그럼, 당연하지."

"정말요?"

아이가 놀란 듯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막 웃기 시작했다.

"OO야, 너 유진 샘 알지?" (큰딸은 도서관에서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여러 프로그램에서 봉사하며 선생님을 했었다)

"네."

"유진 샘이 대학생인 것도 알지?"

"네"

"대학생이면 나이가 몇이야?"
"스물도 넘었죠."

"그래, 근데 유진 샘이 내 딸이잖아."

"어? 정말 그러네? 그럼 마흔도 훨씬 넘었겠네!"

하더니만 아예 책상에 벌렁 누워서 크게 웃어댔다. 뭐가 그렇게 웃길까? 아마 아이에게는 자기 아빠가 굉장히 크고 나이 많은 어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할머니' 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지고 볶고 하며 책놀이교실을 함께 했던 선생님이 아빠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하긴 나도 내가 이 나이에 이르렀다는 게 신기하고 어이없고 이상하긴 하다. 그래서 아이랑 같이 웃었다.

 

***

 

남편이 5년만에 노트북을 바꿨다. 음.. 얇고, 가볍고, 마음에 든다. 내 마음에 든다고 내 저렴한 노트북과 바꿔주지는 않을 게 뻔하니까 별 관심 없는 척 했다. 흥!  조금만 일찍 바꿨으면 내가 노트북을 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난 인터넷 되고 한글이랑 엑셀이랑 파워포인트만 돌아가면 돼서 5년 중고 노트북이라도 괜찮았는데.. 아깝다. 막내가 남편이 쓰던 노트북을 탐내고 있는데, 어림없는 소리! 라고 단칼에 잘랐다. TV도 돌아오는데, 고물이라도 노트북까지 있으면 책은 영영 안녕~ 이 되어버릴 게 너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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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4-12-0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에 TV좀 없으면 좋겠어요.
근데 저희집은 애들보다 신랑이 더 좋아해서 아마 그런일이 없을거에요-_-
나의 나이가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될수 있다는게 저도 재있네요.ㅎㅎ

무스탕 2014-12-05 13:09   좋아요 0 | URL
어제 밤에 북플로 댓글을 적었는데 비밀댓글로 저장이 됐네요?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_-a
그래서 제 맘에 비밀스러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비밀해제 ^^

섬사이 2014-12-07 09:10   좋아요 0 | URL
저희집도 신랑이 TV를 너무 사랑해요.
집에 들어오면 TV부터 켜고 TV소리가 일상의 늘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는 걸 좋아해요. ㅠ.ㅠ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0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아이들에게 독서의 시간을 돌려주고 싶은데 노트북, 스마트폰, TV를 다 없애기에는 제가 결단력 부족입니다! ^^;;
막내가 비문학을 좋아한다니 정말 놀랍고(!) 신기하네요. 저희 아이 둘은 엄마가 책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것과는 너무 상관없이 책들을 안좋아해서요. 반작용일까요?ㅎㅎ

섬사이 2014-12-07 09:13   좋아요 0 | URL
저도 결단력 부족이에요.
스마트폰과 노트북은 고딩 졸업 전에는 안되는 게 우리집 원칙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TV는.... 특히나 남편이 TV시청을 즐기는 편이라서요.
막내가 책읽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책읽기보다는 나가서 노는 걸 훨씬 더 좋아해서 책은 어쩌다 가끔, 심심할 때만 읽어요. ^^

다락방 2014-12-0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문학을 즐겨 읽는 어린이라니. 크- 뭔가 아우라가 느껴지네요. 멋져요! >.<

섬사이 2014-12-07 09:19   좋아요 0 | URL
그거, 좀 문제있는 거 아닐까요?
아이는 천성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비문학이라니!!!!!
저는 좀 의아하고 당황스러웠거든요.
아이가 읽는 비문학이라는 게 주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책인데요,
이야기에서 길어올릴 수 있는 수천수만가지 의미와 재미와 상징과 가치들에 아이가 충분히 젖지 못하고 자랄까 봐서요.


순오기 2014-12-0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가 켜지면 어른이 나도 책을 안 읽어요. 혼자 있으니 밤에는 사람소리가 그리운지 TV를 켜게 되고...ㅠ
다행히 오늘은 지금까지 TV를 안 켰는데....이제 켜보려고요.ㅋㅋ

아이들이 가늠하는 나이가 많다는 건 자기 부모 기준이겠구나 싶어서 나도 막 웃었네요.
그럼 애들에게 나는 할머니로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흰머리 더 보이기 전에 코팅 한번 더 해야지...

비문학을 보는 막내가 넘 부러운대요. 우린 애들 다 타고난 문과생이라 비문학분야는 수능에서도 약하던걸요.ㅜ

섬사이 2014-12-07 16:4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도 그래요. TV는 정말 막강한 힘을 가졌어요!!!
흰머리는... 저도 오늘 염색을 해야 하나...하고 있던 참이에요. ^^
 

 

 

12월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12월이 되자마자 추위가 득달같이 몰아쳤다.

아이들은 그 추위 속으로 걸어나가 학교를 갔고, 남편은 출근했다. 나는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들 추위를 무릅쓰고 자기 일을 하러 갔는데, 나 혼자 보일러까지 틀고 따뜻한 집안에 있기는 양심에 걸려서

보일러를 끄고 옷을 껴입고 수면양말을 찾아 신고 따뜻한 커피를 끓이고 내내 굴 속에 들어간 겨울 곰처럼 지냈다.

얼마나 좋을까. 겨울이 오기 전에 잔뜩 먹고 피둥피둥 살이 찐 다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겨우내내 따뜻한 굴 속에서 잠을 잔다면. 그리고 피둥피둥 쪘던 살은 다 말끔히 사라지고, 잠을 충분히 자서 피곤도 말끔히 사라진 밝고 건강한 얼굴로 새로 봄을 맞이한다면.

해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난 곰을 부러워했다.  추위 앞에서 끈질기게 곰을 꿈꾸는 걸 보면 나는 웅녀의 직계후손인 게 틀림없다는 생각도 했다.

 

**

 

12월이 된지 3일째. 오후에 눈발이 날렸지만 추위는 누그러졌다.  자료조사를 위해 구립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연체되어 반납해야 했고, 목요일 문학교실에서 쓸 책을 대출해야했다. '문학교실'보다는 '책놀이교실'이라는 명패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수업(?)을 위해 눈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 3권을 골랐다.

 

 

 

 

 

 

 

 

 

 

 

 

 

<눈 결정체는 어떻게 생겼을까요?>는 과학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글도 적당하고 아름다운 눈 결정 사진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용감한 아이린>과 <눈 내리는 하굣길>에서 눈은 아이들이 극복해야할 재난으로 등장한다. <용감한 아이린>에서 아이린은 엄마가 만든 드레스를 공작부인에게 전달해야하고, <눈 내리는 하굣길>에 나오는 꼬마 유이는 우산도 장갑도 없이 쏟아지는 큰눈을 뚫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둘 다 아이의 용기를 보여주는 책이다. 아이들에게는 <용감한 아이린>보다는 <눈 내리는 하굣길>이 더 공감하기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3월에 시작한 책놀이교실은 중간에 그만 두는 아이 하나 없이 계속되었고, 이제 12월 4회차 활동만 남아있다. 내년에는 책놀이교실을 원래 맡아 하시던 분이 돌아올 예정이라 난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 책놀이 선생님이다. 그만둬야 하는 게 아쉽냐고 묻는다면.. 글쎄.. 별로.. 아이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건 다행이지만, 아이들의 책 읽기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서질 않기 때문이다.

 

***

 

알라딘 북플. 앱을 깔까 말까.. 고민하다가 깔지 않기로 했다. 난 이 서재 하나면 충분한 것 같았다. 이 서재 하나도 잘 가꿔가기가 쉽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또, SNS가 좀 피곤하달까..

심지어 나는 요즘 '묵묵부답', 이 네 글자로 된 낱말이 꽤 매력적으로 느껴질만큼 카톡으로 말하기가 싫어졌다. 그러니 지금 내 상황을 고려해볼 때, 북플은 무리다.

책으로 모이는 그 세상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겨울동안은 굴 속에서 잠자는 겨울곰처럼 조용히 있어야겠다.

봄이 되면 또 모르겠다. 굴 속에서 기어나와 소근소근 도란도란 들리는 말소리를 따라 북플을 시작할지도.

겨울동안 굴 속에서 읽어볼까 하고 책장에서 뽑아놓은 책은,

 

 

 

 

 

 

 

 

 

 

 

 

 

 

 

책장 속에서 오랫동안 묵히고 묵힌 겨울곰 같은 책들.

어렵고 무거워 보이는 책들. 읽다가 졸며 자며... 읽기에 딱 좋은?

너무 재미있는 책은 겨울곰의 잠에 방해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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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을 다 읽고 이제 7권도 거의 다 읽어간다.  읽을수록 점점 효원을 응원하는 마음이 커지고 있다. 청순가련형의 강실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데, 글쎄.. 뭐랄까... '청순'까지는 매력일지 몰라도 '가련'에 이르면 답답해지곤 하는 것이다.

 

 

강실이의 눈귀에서 시름없이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춘복이는 그 눈물에 제 뺨을 대고, 울컥울컥 눈물을 토해 냈다.

그래, 그리움을 버리자.

내가 그를 그리워할 자격을 잃어버리자.

평생에 다시 못 올 그리움, 부질없는 이 그리움을 버리고, 오라버니를 놓아드리자. 내가 이대도록 애오라지 오라버니 그리워하고 있으면 끝내는 그 사람을 원망하게 되리라. 허나 어이하면 이 그리움을 버릴 수가 있으리. 나는 정녕 아무런 방도를 모르니, 오직 자격을 잃어버리자. 자격을 잃으면 이제 다시는 기다리지 않겠지.

기다릴 수 없겠지.

강실이는 언제인가.

차라리 내가 죽어 나를 놓으리이까.

배갯머리 흥건히 젖도록 울던 날을 돌이키며, 다시금 시름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하였다.

얼어붙은 몸이 녹으니 눈물로 흐르는 것일까.

강실이는 춘복이에게 창백한 몸을 맡긴 채 하염없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다.    (6권 110~111쪽)

 

 

차라리 강모를 죽도록 원망하고, 그 원망을 힘으로 삼아 강실이가 독해지고 강해졌으면 좋겠다.  한 번 걸려 넘어진 돌부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 더더욱 더 깊은 절망 속으로 자꾸만 무기력하게 빠져들어가는 강실이가, 이제 측은하다 못해 왜 이러고 사나 싶은 거다. 물론 매안 이씨 문중의 법도와 체통이 엄중하다 해도, 그래도, 그래도 저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살릴 궁리도 안 하고, 결국은 자기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당시의 시대상황과 강실이의 처지를 짐작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저 일이 벌어질 때 강실이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기력이 다 빠진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정말 꼭 저렇게까지 되도록 자기 자신에게 내내 모질고 잔인해야 했을까. 강모는 강실이가 자기 전 존재를 무너뜨려도 될만큼 그렇게 대단한 인물도 아니고, 오히려 옆에 있으면 뒷통수 한 대 때려주고 똑바로 살라고 한 마디 버럭 소리쳐주고 싶은 그런 인물인데.

 

강실이도 자신의 처지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답답하고 가련하겠지만, 그건 효원도 마찬가지. 강모와 강실이의 관계를 알아버린 효원의 마음에는 노여움과 모멸감이 불같이 일어난다. 효원인들 자신의 처지가 기막히지 않겠는가. 물론 강실이는 들켰다가는 덕석말이 몰매 곤장에 가족이 모두 마을에서 쫓겨날 처지니까 효원보다 더 막막하다 할 수 있겠지만, 효원의 분노와 배신감도 감당키 힘들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그러니 감당키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는 두 여자의 태도가 비교되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강실이가 감정적인 소모가 크고 무력하게 까무룩히 그 상황에 더욱 빠져드는 데 비해서 효원은 어린 아들 철재의 앞날을 그려보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더욱 강하게, 더욱 의연하게 이 일을 넘기리라, 하고.  

 

수모.

효원은 이 엄청나고 뜻밖인 상황에 깊은 수모를 느끼고 있었다.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나서 연기에 이르러 한 사람의 아내된 후, 그와 더불어 오손도손 크고 작은 일을 의논하며, 자식을 낳고 훈육하여, 그 또한 장성하면 새 둥지를 이루도록 합심하는 부부 일상이, 첫날밤 첫 자리 처음부터 거부당한 근원이 바로 거기 있었단 말인가. 

단순히 일시 정욕이 아니라 근원적인 마음의 바탕을 그곳에 두고, 싹 틔워 둥치를 이루며 제 존재를 부비어 어우러지고 싶었던 사람이, 거기 있었단 말인가.  (6권 198쪽)

 

누가 더 불행한 걸까. 비록 강모의 마음을 얻고 사랑을 받았지만 비극의 구덩이에 빠지고 만 강실일까, 강모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수모를 견디며 강모의 안사람으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효원일까.  강모가 그만한 가치나 있는 사람일까. 꽤 괜찮고 멋진 여자 둘이 남자 하나 잘못 만나서 불행해져 버린 이야기가 이 <혼불>이라는 책의 고갱이는 아니지만 자꾸 신경쓰이고 마음이 가고 조마조마하다.

 

고꾸라진 자리에 꼬챙이 없으면 그저 일진 사나운 것을 탓하며 손바닥이나 쓰라리게 씻기고 말 일이지만, 독팍에 걸려 앞으로 어푸러진 그 자리에 불행히도 칼끝이 거꾸로 박혀 있어, 찔린 살이 벌어지고 붉은 피 선지로 엉기며, 멍든 가슴을 깊이 버힌다면.

내가 무슨 장사여서 비명을 참을 수 있으리.

효원은 칼끝이 살을 찌르며 파고들어 뼈에 미치는 소리를 들었다.

참혹하다.

허나, 한번 넘어졌다고 주저앉아 썩으랴.

앉은 자리에 곰이 피게 꼼짝 않고 탄식만 하고 있으랴.

누가 와서 일어켜 주기 바라며 좌우를 둘러보고, 어루만질 손길만 기다리다 앉은뱅이가 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설령 앙가슴의 붉은 살이 다 벌어져 너덜너덜 넝마처럼 펄럭이고, 뼈다귀 허옇게 드러나 시린 바람에 마른다 할지라도, 박힌 칼날 꼬챙이를 맨손으로 뽑아 내고, 나는 가야 한다.

만일 그 칼날 뽑히지 않고 죄 없는 두 손만 베인다면.

가슴에 칼 박은 이대로 일어서야지.

(중략)

허나, 위로는 필요없다.

선병자.

같은 병 겪어 본 사람 그 누구의 고언도 나는 마다하리라.

하늘 아래 나 같은 이, 단 한 사람도 없다 할지라도, 나는 다만 나 혼자서 내 하늘을 이고, 우러러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으리라.

어금니가 썩어도 나는 결코 이 일로 입을 벌리어 탄식하지 않으리.

비록 나 혼자서 홀로이 나 자신에게 이르는 말일지라도, 이 일을 두 번 다시 되뇌어 곱씹지 않으리라.

내, 아무런들 이만한 일로 굽은 다리 못 펴고, 이만한 일로 넘어져서, 갈 길 먼 가슴을 상할 것이냐.

이 앞으로 내가 세상을 살아갈 때 오직 나를 지탱하고 의지해야 할 곳은 나의 속, 나의 가슴, 나의 머리, 나의 중심뿐일 것이어늘, 지금 다 써 버리고, 지금 다 내주어 썩여 버린다면 내 어찌 살아가리.

(중략)

내 결단코 저 속으로 얼크러들지는 않으리라.

이만큼에 서서, 저 오리무중, 아득하고 짙은 안개 자욱한 남의 마을로 나는 들어가지 않겠다.

그것은 너희들의 것이겠지.

나는 다만 너희들의 그 안개 바깥으로 밀려나, 낯설게 떨어져서 무참히 고개 돌리고 있지만, 그렇지만, 나는 몸을 솟구치리라.

안개와 먹구름에 나도 같이 휘감기어 뒤얽히면, 가도 가도 길은 보이지 않을 터이지만, 논도랑인지 갈대밭인지 모르고 허방을 길로 삼아 움퍽 짐퍽 진흙투성이로 헤매겠지만, 나는 너희들의 울녘에서 떨어져 나오리라.

그리고 나를 들어올리겠으니.

검은 구름과 안개 속에 있을 때는 습하고 암담하여 젖은 몸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지라 숨조자 막힐 터이나, 보다 높은 곳으로 솟아오르면, 홀연 구름머리 테를 벗고 솟구칠 때, 그곳에서 청천의 푸른 하늘이 궁창 그대로 끝닿은 데 없이 드리워져 있지 않겠는가.

장막 한 겹에 불과한 이 운무에 생애를 걸지 마라.

내 힘으로 찢을 수 없는 것이라면, 놓아버리라.

그 안 개의 구덩이에 나를 던져 무익하게 익몰하는 어리석음 대신에 나는 내 마음을 끌어올려,

벗어나리라.

이 안개보다 내 마음이 높아져야, 나는 벗어난다.

천하에 내가 되어 가지고 이만한 안개의 구렁텅이에, 언제까지 이 몸을 담고 있을 것인가.  (6권 218~221쪽)

 

이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 마음 속으로 조용히 '효원, 화이팅!'을 가만가만 외쳤다. 강모와 혼인한 게 효원의 죄라면 죄.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네 따위의 말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팔자가 여물 담은 뒤웅박일지언정 스스로 자기를 깨뜨려버리면 그건 안될 일.

 

그래, 안다. 때로는 삶보다 죽음이 따뜻할 수도 있다는 거. 죽음보다 삶이 모질 수도 있다는 거. 그래서 남의 삶, 남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단정지어 말해서는 안된다는 거. 하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는 보다 좋은 삶을 꿈꿔야 하는 거 아닌가.

 

책에는 매안 이씨 문중  일가 며느리 중 한 사람인 사리반댁이 효원을 찾아와 들려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리반댁의 이름은 '효덕'인데, 자기가 그 '효덕'이란 이름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마도 효원과 강실, 그리고 옹구네, 매안과 거멍굴과 고리배미 사람들 모두가 바라던 삶은 사리반댁의 이야기에 나오는 순덕이의 모습일 것이다.

 

 장날이면, 아껴 놓았던 물빛 치마에 흰 저고리 날아가게 차려 입고는 머리도 곱게 빗고, 만석이와 나란히 어깨를 맞대어 대문을 나서는 그들의 뒷모습에 햇살은 다사롭고 투명한 발을 내렸다.

장날, 장에 가는 심부름은 으레 이 두 사람이 맡아 했던 것이다.

안채의 심부름은 순덕이가, 사랑채 심부름은 만석이가 하였다.

그들이 다정한 걸음으로 장에 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 순덕이 팔자를 누가 당하리."
싶어졌다.

날이 저물어 어스름이 내릴 무렵이면 두 사람은 또 그렇게 나란히 돌아왔따.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양손에 각기 주렁주렁 보따리와 꿰미들을 든 채로 얼굴에는 아직도 장터거리에서 본 광경과 새로운 풍물에서 묻은 흥분이 홍조로 남아 내외마주 손짓 발짓 흥에 겨워서.

"그럴 때 순덕이 얼굴은 참 보기에 좋더라. 사람 사는 게 저런 것이지 싶고."

그래서 효덕의 모친은 효덕에게

"너는 순덕이 팔자만 닮아라."

하였던 것이다.

"순덕이가 이 세상에 오직 갖지 못한 것이 있다면, 양반 하나 뿐인데, 이미 순덕이한테는, 양반이고 아니고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였단다. 그까짓 허울이나 경계 같은 것은 무엇에도 쓸 일이 없는, 그냥 자연, 그냥 사람. 사람다이 사는 사람으로 나한테는 보이더라"

사리반댁은 이야기하며 웃었다. (6권 208~209쪽)

 

<혼불>은 뭐가 사람다운 것인지, 어떤 세상이 좋은 세상인지를 묻는 책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이자 근대화의 물꼬가 터지는 시작하는 혼란과 불안의 격변의 시기에서 허울이나 경계 없이 사람다이 살다가기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너무나 아프고 참혹하게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 읽고 있는 7권에서 뻘겋게 피를 튀기며 흐르고 있다.

 

<혼불>을 읽으면서 생긴 버릇 하나. 불쑥불쑥 전라도 사투리가 내 입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연이어 며칠을 친구들과 놀기에 바쁜 울 아들에게

"흐미, 아주 노는 데 맛들렸는 게비?"

밥 먹으라 부르는 데 밍기적대고 안오는 우리 막내에게

"빨리 와서 먹을겨, 안먹을겨!"

뭐, 이런 식이다. 날이 갈수록 증상이 좀 심해져서, <혼불>을 다 읽고 나면 한동안 표준말 가지런한 책들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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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8-2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사투리 대화체 부분 혼자 있을 때 막 소리내서 읽어보고 그래요. 근데 되게 어색해요. ㅎㅎ 아무래도 4권,5권 주문해야겠어요. 헤헷

섬사이 2014-08-22 16:17   좋아요 0 | URL
ㅎㅎ 사투리가 저에게서 아이들에게로 번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제 재활용품 분리수거하는 날이라 아들과 같이 나갔는데 울아들이
"이건 여따 넣는 겨?"하더라는. ^^

hnine 2014-08-2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는겨?' 저는 이게 충청도 사투리인줄 알았는데 전라도 사투리였군요.
토지 읽으며 경상도 사투리 친해지고, 혼불 읽으면서는 전라도 사투리 친해지고...^^
벌써 7권 읽으시네요.

섬사이 2014-08-29 17:05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그럼 제 입에선 그냥 되는대로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거네요. ^^
 

막내는 3학년이 되면서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모아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이라기보다는 '교습소'라고 할 수 있는 데로 영어를 배우러 다닌다. 선생님은 아마도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을 것 같은 여자 분인데 한 타임에 여자 아이 하나, 남자 아이 하나 딱 두 명씩만 받아준다. 그러다보니 아이들과 선생님의 관계가 좀 더 긴밀하고 다정하다. 선생님도 아이들을 예뻐하는 분이어서 다행히 아직까지 막내는 행복하게 영어를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월요일은 막내가 영어를 배우러 가는 날이다. 학원이 아니라서 차량운행 같은 걸 안 하고, 우리 아파트와는 좀 떨어진 다른 아파트 단지까지 가야하는 터라 데려다주고 끝나면 데리고 와야 한다. 어제도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막내를 데리러 갔는데 집에 오는 길에 아이가 들떠서 하는 말이, 다음 주 월요일에 영어선생님이 빕스랑 노래방에 데리고 간다고 했다는 거다. 뭐, 빕스?  아무 이유도 없이 웬 빕스? 알고 봤더니 2학기 개학을 앞두고 영어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 모두에게 빕스에서 한 턱 쏘고 노래방에 데려가서 신나게 놀게 해주려고 하신다는 거다.

"와, 너무 좋겠다. 우리 유빈이가 선생님 복이 있네. 고맙게도 선생님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냐."

그랬더니 우리 딸 하는 말이,

"응, 내가 선생님복이 있지. 엄마는 자식복이 있고."

아.. 열살 막내의 저 근자감에 난 그저 웃을 뿐.

"엄마가 자식복이 있구나. 그래, 그러네. 그럼 엄마한테 남편복은 있는 것 같아, 없는 것 같아?"

했더니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단호하게

"없어!"

푸하하하하, 출장 간 남편 돌아오면 꼭 말해줘야지.

 

 

막내가 죽을 먹으며 끙끙 앓을 때, 설빙의 팥빙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다 나으면 사주마 약속했었다.

오늘 큰딸도 오랜만에 아무 스케줄 없이 쉰다고 하길레 같이 설빙 빙수 먹으러 가자고 해서 우리집 여자들 셋이서 오랜만에 건대앞으로 외출을 했다. 주문한 블루베리 팥빙수랑 유자 인절미 토스트가 나오자 큰딸은 폰카로 사진부터 찍는다. 올여름에 먹은 팥빙수들을 사진으로 찍어 모아놓고 있다.  팥빙수의 종류도 참 각양각색으로 다양하다. 비싸긴 또 얼마나 비싼지.

인절미 토스트는 허니브래드보다는 훨씬 입맛에 맞았다. 근데 팥빙수는.. 음.. 개인적으로 투썸의 로얄밀크티빙수가 더 좋다. 올 여름 빙수를 별로 먹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딱 두 개를 놓고 비교하면 그렇다. 울 큰딸 말로는 투썸의 모히토 빙수를 내가 먹어봤어야 했다며 아쉬워한다. 한여름 더위에 지쳐서 기운없이 축 처질 때 모히토 빙수를 먹으면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기분이 든단다.

빙수와 인절미토스트를 해치우고 그냥 일어서기 아쉬워 세 모녀가 책을 꺼내 좀 읽었다. 큰딸은 어린 유빈이가 벌써부터 카페에서 책읽고 공부하는 맛을 들이면 안된다고 걱정했지만 뭐, 가끔은 시원하고 분위기 새로운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경험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하여 세 모녀가 합심해서, 설빙 한 구석에 앉아 제법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읽은 책은.

 

큰딸은 <중국신화의 이해>, 막내는 <똑똑한 만화교과서-속담>, 나는 <혼불 6>

설빙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책을 주루룩 놓고 사진을 찍으니까, 큰딸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책 사진을 왜 찍냐고 물었다. "넌 빙수 사진 왜 찍는데?"했더니 아무말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큰딸이랑, 작은딸이랑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한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오늘 그 시간에 함께 읽은 책을 사진으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오늘 먹은 빙수가 뭐였는지, 맛이 어땠는지는 잊어버리더라도 우리 셋이서 함께 조용히 책을 읽고, 책을 읽다가 "엄마, 숭늉이 뭐야?"하고 묻던 막내와, <혼불>을 읽으며 마음 속으로 효원을 응원했던 나를 기억하고 싶다. 사람들이 음식 사진을 즐겨 찍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자기가 읽고 있는 책이나 책읽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함께 공유하고,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는다면 그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알라딘에서 그러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바디샵'에 들러 티트리오일과 티트리훼이셜워시를 샀다. 아들녀석의 얼굴에 여드름이 다시 올라오고 있고, 큰딸 이마에도 뾰루지가 둘.  티트리오일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티트리오일만 사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신규회원으로 가입하고 티트리훼이셜워시까지 구입하면 만원 할인이라는 말에 두 개를 사들고 나왔다.

 

거리로 나오자 큰딸이

"엄마, 외국 사람이 '더바디샵'이라는 가게 간판을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왜?"

"'바디샵'이라잖아. '바디샵'. 그냥 직역하면 '몸을 파는 가게'.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지 않아?"

아... 그런가.....? 

 

얼마전에는 코코넛오일을 사려고 인터넷을 뒤졌는데 이게 웬일? 어째 가는 데마다 품절이란다. 다행히 인터파크에는 품절표시가 뜨지 않아서 주문을 했는데 다음날  품절이 되어 배송이 불가능하다고 문자가 왔다. 코코넛오일이 대대적으로 유행인가 보다. ㅠ.ㅠ

밤에 자기 전 큰딸은 훼이셜워시로 세안하고 티트리오일을 면봉에 묻혀서 뾰루지에 톡톡 발랐다. 내일 아침에 뾰루지 상태를 봐야겠다. 정말 나아질까...?

 

 

쓰고 보니, 어쩐지 광고성 글이 된 것 같은..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하고 누가 말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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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8-20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선생님은 아이들 마음을 잘 헤아리는 참 좋으신분이네요. 통도 크시구요^^
따님의 근자감^^ 굿입니다.
인절미 토스트 먹고 싶어라~~~
제가 시간날때 즐겨하는건 투썸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버터 쿠키 먹으면서 책읽는거예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섬사이 2014-08-20 20:25   좋아요 0 | URL
네, 3학년 되어서야 제대로 정식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건데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빕스를 데려가거나 하는 이벤트 때문이 아니라 늘 세심하게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게 느껴져요.
막내의 근자감은, 종종 도가 지나쳐서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
애들 개학해서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가을 날로 하루 골라서,
저도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고 싶어요.
저희 아파트 옆에 작지만 참 괜찮은 카페가 하나 있거든요.

CREBBP 2014-08-20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디샵은 영국회사라 그런 오해는 안할 듯.

섬사이 2014-08-20 20:1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바디샵이 영국회사인 줄 몰랐어요.
어쩐지,, 티트리 오일 사려고 바디샵을 처음 가본 건데,
제품들이 모두 수입품처럼 보여서 의아했어요.
그리고, 바디샵이 몸을 파는 곳이면,
헤어샵은 머리카락이머 털뭉치를 팔고,
네일샵은 손톱 파냐? 고 하면서 웃었더랬어요. ^^
반가워요, guiness님

프레이야 2014-08-20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고성이라 하더라도 좋은걸요, 섬사이님^^

섬사이 2014-08-22 13:06   좋아요 0 | URL
쓰고 보니 이런저런 업체의 상품들이 줄줄이 들어있는 글이 되고 말았어요.
다음에 이런 글을 쓸 때는 초성만 쓰는 센스라도 발휘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쓴 거 너무 티나는 글이죠. -.-;;

라로 2014-08-22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자감,,좋은 단어 배웠어요~~.^^
유빈이가 복이 정말 많으네요!!^^

바디샵이라고 했을 때 영어를 하는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몸을 파는 가게라기 보다는
자동차 수리가게가 떠올라요. 그런 가게를 바디샵이라고 하거든요.
우리도 그런 단어가 있지 않나요??? 제 머리가 나빠서리 기억이;;;;;
근데 영어 샘 정말 통 크시다!! 저 한국에 있을 때 시간당 육만원씩이나 받았으면서 애들에게 쓴 게 없네요;;;ㅠㅠ
생각 났어요,,ㅋㅋ
제작년부터 영화볼때 경마장 광고를 했잖아요,,'말로 합시다'였나?
그런 효과를 노린 것 같아요. 더 바디샵 창업자가.ㅋ

섬사이 2014-08-22 13:12   좋아요 0 | URL
근자감, 근거없는 자신감. 딱 막내와 어울리는 말이죠. ^^
바디라고 하면 영어권 사람들은 자동차의 바디를 떠올리나 보군요.
그런 느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시간당 육만원의 영어샘은 빕스보다 더 좋은 걸 아이들에게 주셨겠지요.

라로 2014-08-23 04:07   좋아요 0 | URL
바디라고만 하면 몸이 생각나구요. 바디샵이라고 했을때 자동차수리점같은게 생각나요. 꽤 복잡하죠?ㅜㅜ
그러게 우리나가 언어가 젤 우수해요!! 정말 세종대왕 만세!!!
 

오늘 <혼불>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다.

 

부엌이 어찌 단순히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며, 먹은 그릇 설거지만 하는 곳인가. 이곳은 성소였다. 한 집안의 생,사, 화, 복의 근원이 부엌이었다. 인간이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아니면 무엇으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조왕신은 온 가족의 수명을 지켜 주고 다치거나 병들지 않게 살펴 주는 신이며, 불은 곧 재물을 뜻하는 것이라. 조왕님의 조화 여하에 따라 집안의 재운이 움직인다고 하였다.

이 부엌의 아궁이에 때마다 끼니마다 붉은 불길 가득하고 솥전에는 더운 김 뿜어나는 것이나, 불 꺼진 재 써늘히 쌓여 빈 솥단지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 다 조왕신의 바른 뜻에 달린 것이었다.

효원은 정화수를 올리고 나서 아궁이 앞에 단정히 앉았다.

이때는 키녜나 돔바리나, 콩심이, 안서방네, 집안에 일하는 다른 사람 누구도 함부로 부엌을 기욱거려 들여다볼 수 없었다.

주변이 정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효원은, 강모가 이 집을 떠나 만주로 갔다는 그 말을 들은 날로부터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이 조왕에 정화수를 올린 다음에는, 갓 지어 푼 밥을 강모의 밥그릇에 담아, 조왕단의 정화수 앞에 놓았었다.

그 밥이 곧 강모였던 것이다.

먼 곳에 가서도 부디 배 곯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 따뜻한 이 밥을 식기 전에 먹기 바라는, 마음 지극한 정성이 오붓하게 담긴 밥그릇. (5권 24쪽)

 

강모는 매안의 이씨 가문의 종손. 유약하고 섬세한 성품을 가진 그는 종가집 종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너무 버겁다. 어린 나이에 효원과 혼인을 했지만 이미 마음에 둔 강실이에 대한 연민을 어쩌지 못하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리고 만다. 그리곤 강모는 도망치듯 만주로 떠나버렸다.

효원은 종가집 며느리로 시집왔지만 한번도 남편 강모의 다정한 눈빛을 받아본 적이 없고,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강모가 저리 된 게 그녀 탓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분노와 원망을 감추고 의연히 그 자리를 지키며 묵묵하게 버티는 그녀는 메말라 보였다. 노심초사하거나 애달파하는 기미가 없어 참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구나, 했는데 이 장면.

그저 지어미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메마른 의무감이 아니라 갓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빌며, 남편의 둘 데 없는 마음에서 휘몰아치는 황량한 바람을 잠재우고, 그 빈 마음을 이 따끈한 밥 한 그릇의 정성으로 채우려는 효원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저 문장을 읽고 다시 읽고.. 몇 번을 되풀이 읽었다. 자꾸만 마음에 와서 부딪치는 글. 왜 저 문장들에 마음이 끌릴까 곰곰 생각했다.

부엌이라는 공간에 대해 내가 너무 무심했더래서, 기도하는 성소의 자리로 승화된 부엌이 내게 약간의 충격과 신선함을 느끼게 한 걸까. 그 앞에서 난 반성의 의례가 필요했던 걸까.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나의 주방을, 가족들 앞에 내놓는 밥상의 무례함을 돌아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성을 위해 저 문장들을 되풀이해 읽었던 건 아니다.

 

저 문장들은 상처받고 떠난 사람들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떠난 사람들에 대해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조용히 타이르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떠난 사람들에 대한 정성어린 예를 다 한걸까. 우리는 무엇을 앞에 두고 '이것이 곧 그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먼 곳에 가서도 부디 배 곯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 따뜻한 이 밥을 식기 전에 먹기 바라는 마음, 마음 지긋한 정성이 오붓하게 담긴 밥그릇.'이라는 문장에서 억울하게 주인을 잃고 차갑게 비어있을 밥그릇들이 떠오른다. 돌아올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람 있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 밥 한 그릇만큼의 정성이 모자라 떠난 사람의 자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 정성이 있었다면 그렇게 어이없는 일들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갓 지어 푼 밥을 오붓하게 담은, 따뜻한 밥 그릇 하나씩만 마음 속에 갖고 있었다면.

 

갑자기 '착한' 밥상을 잘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정성껏 차린 따뜻하고 착한 밥상으로 우리 아이들 마음 속에 따뜻한 밥 그릇 하나씩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요리를 배우러 다녀야하는 걸까.

 

<혼불>을 천천히 천천히 읽고 있다. 어쩌면 여름이 지나도 다 못 읽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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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8-0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의 글을 읽으니 <혼불>이 다시 그리워집니다. 묘사 하나 하나가 다 곱씹어보고 싶었어요. 인용해 주신 대목도 그렇네요.

섬사이 2014-08-13 16:10   좋아요 0 | URL
다른 건 몰라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참 성실한 작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네, 저도 그리워질 것 같아요. 참 만나기 힘든 소설인 것 같아서요.

다락방 2014-08-10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막 1권을 다 읽었어요. 강모와 효원이 5권에선 이런 사연을 풀어내는군요.

섬사이 2014-08-13 16:07   좋아요 0 | URL
참 천천히 흐르는 책이에요.
책보다 더 천천히 읽고 있어요, 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