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뿔.

아우마메와 덴고와 우시카와가 각각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이 밑면이다.  그 밑면의 각 꼭짓점에서 맨 위의 꼭짓점을 향해 뻗어가는 모서리를 차례차례 더듬어가면 단단한 구조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세 옆면마다 후카에리, 고마쓰, 다마루, 리더, 스킨헤드와 포니테일, 노부인, NHK수금원이었던 덴고의 아버지, 요양원의 간호사들, 아유미 같은 인물들이 좌표 위에 찍혀있는 점처럼 포진해있다.  1Q84를 읽는 내내 나는 아주아주 단단한 밀도와 강도를 가진, 모서리가 날카롭게 빛나는 삼각뿔을 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차하는 순간 그 날카로운 모서리에 베일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소설에서 스토리는 참으로 중요한 요소이지만 글쎄,,  1Q84의 이야기 줄거리를 간단하게 축약해 말한다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만큼 이야기의 얼개 사이를 촘촘하게 메우고 있는 작가의 생각과 의미들이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 필요해.  말로는 잘 설명이 안 되지만,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  우리는 그 뭔가에 제대로 설명을 달기 위해 살아가는 그런 면이 있어.  난  그렇게 생각해.    (2권 440쪽)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책을 잠시 덮고 내 안의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을 찾아갔다.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피아노 건반을 그리고 있던 나를 오랜만에 만났다.  지금 누군가가 "그 때, 네가 운동장 흙바닥에 돌멩이로 피아노 건반을 그리고 있었을 때 하늘에 달이 두 개였어."라고 말한다면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1984년으로 돌아왔다. 아오마메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곳은 이미 그 1Q84년이 아니다. 원래의 1984년의 세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렇게 간단히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올까. 예전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통로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리더는 죽기 전에 그렇게 단언하지 않았는가.

  혹시 이곳은 또 하나의 다른 장소인 게 아닐까. 우리는 하나의 서로 다른 세계에서 또 하나의 다른, 제삼의 세계로 이동했을 뿐인 게 아닐까. 타이거가 오른편이 아니라 왼편의 옆얼굴을 상냥하게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세계로. 그리고 그곳에서는 새로운 수수께끼와 새로운 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3권 729쪽)

 

 

 

지나간 시간을 더듬다보면 꿈같은 시간들이 있다.  과연 현실이었을까, 내가 정말 그 때 그 속에 있었던 게 맞나, 싶은 시간들.  어떤 통로를 통해 나는 그 때와는 다른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져가고 싶은 소중한 것'만 챙기고 많은 것들과 이별한 채 사나운 칼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고속도로 비상계단을 맨발로 올라 지금 여기 이 시간으로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그 때의 시간은 지금의 시간과 차원이 다른 세계인 것처럼 느껴진다. 「1Q84」는 그런 생각과 느낌들을 불러왔다.

 

'1Q84'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그 의문이 풀렸다는 게 가장 개운한 일이지만 아오마메가 정의한 '1Q84'보다는 덴고가 은유적으로 말한 '고양이 마을'이 훨씬 마음에 와 닿았다.  아오마메가 '1Q84'라고 명명하고 덴고가 '고양이 마을'로 설명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열 살에 아오마메와 덴고가 서로의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이 된 후 이십 년이 흘러 두 개의 달 아래 미끄럼틀 위에서 만나기 전 덴고는 잠시 망설인다.

 

그곳에 있는 아오마메는 정말 내가 찾아헤매던 그 아유마메일까.  그리고 이곳에 있는 나는 정말 아오마메가 찾아 헤매던 가와나 덴고일까.  (3권 667쪽)

 

 

이 문장을 조심 바꿔본다.  '그곳에 있는 너는 정말 내가 찾아헤매던 그 너일까.  그리고 이곳에 있는 나는 정말 너가 찾아 헤매던 나일까.'  아오마메와 덴고의 만남은 확실히 모험이었을 것이다.  만남에 대한 희망, 의미있는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그간 '손바닥으로 소중히 감싸서 바람으로부터 지켜온 작은 불꽃이'고 그것은 '현실의 난폭한 바람을 받으면 훅 하고 간단히 꺼져버릴지도' 모르는 거니까. 나는 작은 불꽃을 지키는 편이고 실망을 두려워하는 부류다.  그래서 아오마메와 덴고의 용기있는 만남을, 오랫동안 간절하게 기다려왔던 그 아름다운 만남의 장면을 감동하며 지켜보았다.  말없이 손을 마주잡고 감은 눈을 뜨지 못한 채 '마음을 두는 법을, 풍경을 바라보는 법을, 언어를 선택하는 법을, 호흡하는 법을, 몸을 움직이는 법을, 이제부터 하나하나 조정하고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3권 676쪽)'고 생각하는 덴고를 벅찬 마음으로 보았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둘이 함께 고양이 마을을 떠났지만 우리는 영영 떠나지 못하거나 혹은 함께 떠나지 못하고 서로 다른 통로를 거쳐 각각의 다른 세상으로 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간다.  많은 것을 견디고 많은 것을 겪으면서.

 

우리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아오마메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이 세계에는 아마도 이 세계 나름의 위협이 있고, 위험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 나름의 수많은 수수께끼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어두운 길을 우리는 앞으로 수없이 더듬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괜찮다.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자. 나는 이곳에서 이제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단 하나뿐인 달을 가진 이 세계에 발을 딛고 머무는 것이다.  (3권 740쪽)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고나니까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하루키는 이 소설을 어떻게 키운 것일까.  이 소설의 맨처음 씨앗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하루는, 일주일은 어떻게 흘러갈까.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하루키는 얼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였을까.  하루키의 가슴, 혹은 머리는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어떤 그만의 비법으로 이렇게 촘촘하고 치밀하고 단단한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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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었다. 몇 해 전부터 유명세를 탔던 소설이다. 누군가 추리소설이라고 그랬다. 난 추리소설이랑 잘 안맞아, 하고 서점에서든 인터넷에서든 자주 마주치던 이 책을 외면하고 지냈다. 누군가 아주 재미있다고 그랬다.  그 '재미'를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더 읽고 싶지 않아졌다. 재미있는 건 좋지만 재미밖에 없을까봐 꺼렸다.

얼마 전에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딸아이를 기다리다가 이 책을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도구로 삼아볼까 싶은 마음으로 서가에서 뽑았다.  그러다가 집에까지 데려왔다.

이런 책을 추리소설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믿지 말아야 했다.  나에게 추리소설이란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을 단서와 증거를 따라가며 해결하는 얼개를 가진 소설이다.  이 소설도 단서를 찾고 퍼즐을 맞추듯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겐 그것보다 인간의 내면을 후벼파는 이야기로 읽혔다.  추리소설도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겠지만 이 책은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사건보다 사람쪽에 더 기울어져 있다는 거다.

아주 재미있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도 듣지 말아야 했다. 재미있다기보다는 아팠고, 그 아픈 이야기가 분노의 질주처럼 전개돼서 나는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숨이 가빳다. 다 읽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니까 거친 길을 온몸에 힘을 주고 엉덩이가 아프도록 달리다가 차에서 내린 기분이었다. 

남성적 이야기라 더 그런건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도 거의 남성이고 여성이라곤 그나마 비중있는 인물이 악착같은 김은주나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던 문하영 정도니까.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덩치좋은 남자들 사이를 정신없이 헤매고 다닌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에 휘말려서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기에는 좋았지만 이야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없었던 것 같은, 혹은 LTE급 속도감에 음미할 시간이 부족했던 느낌이다. 책을 읽다가 잠시 호흡을 멈추고 음미할 부분을 찾을 새도 없이 숨차게 읽고 끝낸 느낌.  그게 좀 아쉽다.  소설 한 권을 두고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걸까?  그래도 '흡!'하고 숨이 멎는 결정적 한 줄을 발견하는 것도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인데 말이다.  

 

그래도 사건을 풀어가는 핵심인물 승환과 서원이 잠수에 능하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길 수 있었더랬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떠올랐고.

사건이 해결되는 장소가 등대마을에 있는 등대 안이라는 것도. 어둠 속으로 길게 하얗게 찰나의 빛선을 긋는 등대는 그 본연의 목적성 때문에 서원이 한솔등 쌍둥이 소나무에 묶여 정신을 잃었을 때 세령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환상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진실은 빛선이 지나며 보여주는 찰나의 장면처럼 간파하기가 쉽지 않은 거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조금 느리게 다시 읽어봐야 하는 걸까?  ............. 뭐,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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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다.

「3시의 나」, 아사오 하루밍이라는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가

1년 동안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오후 3시에 자기가 뭘 했는지를 짧게 기록해 둔 것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글의 기획이, 아이디어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그것도 막내가 이제 겨우 초등 2학년인 나같은 아줌마는

오후 3시에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 뻔해서

오히려 오전 11시쯤에 벌어지는 일들을 써야 글이 다양해질 수 있겠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궁리로 머리를 굴려보기도 했다.

 

책에 쓰여진 작가의 사는 모습이 활발하고 다양해서 젊은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읽다가 중간에 작가 소개글을 확인해보니 1966년생,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았다. 

이런 나이에도 이런 글이 나올 수 있구나,

난 나에게 다양한 무게의 추를 너무 많이 올려놓고 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내 사는 모습을 돌아보며 고민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해진다.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 읽는 기분이 든다.

40대인 내가 10대나 20대 혹은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던 30대에 써놓은 일기들을 읽으면

당시엔 힘들고 지겹게 느끼던 것들이 사랑스럽고 기특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뭐, 때론 창피하고 부끄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두툼하게 쌓인 지나온 시간의 더께가 그런 것들 마저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해줘서,

오래된 일기장을 읽고 나면  조금은 내가 대견하고 심지어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일들을 잘 견디며 살아줘서 고마워, 하는 기분이랄까.

오래된 일기같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은 지금의 내 모습에 그렇게 너그러워지고 있었다.

 

내 곁에서 따뜻한 인연이 되어준 사람들과 날카로운 상처가 되었던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는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며 '간장 끼얹는 걸 깜빡 잊은 두부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난 한번도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다.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너무 강하게 나를 휘감아서

거리를 두고 표현하고 묘사할 만큼의 여유를 챙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는 정말 작가구나, 싶었다.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넘치지 않도록 가스불을 지켜보며 조절하듯

분노와 미움을 객관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작가적 능력이 아니고 뭘까. 

일반인인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이르지 못한 경지다.

그나마 이 작가가 나보다 나이가 쬐끔 더 많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그 쬐끔의 차이 동안 과연 나는 감정의 가스불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될까?)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그 느낌을 소중히 기록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게를 자르고 있는 엄마의 손가락에 끼워진 핑거코트, 자주 가는 식당이나 카페, 상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다정하거나 의아하거나 꼴불견인 모습들, 산책하다가 발견한 네모난 유채꽃밭, 같이 사는 고양이 냥코, 

지인들과 어울려 함께 한 식사와 여행 그리고 여러가지 일과 업무들. 읽은 책들에 대한 글들이 짧지만 친근하다.

너무 친근하게 느껴져서, 얼마전 한 종교방송에서 하느님을 섬길 줄 모르는 일본 같은 국가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부르짖던 어느 성직자의 주장이 정말 이루어진다면. 이 작가가 너무 슬퍼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될 정도였다.  (물론 그 성직자의 말을 믿는 건 아니다.  TV를 보면서도 저 성직자 좀 오버한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일본에서 잘 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라면 나와는 사는 모습이 참 많이 다르겠지만

때론 우울에 빠지고, 지독한 감기로 고생하고, 무력감에 시달리고, 일에 지치고, 실수하고, 속상해하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힘을 빼고 쓴 글이라서인지 이질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내 인생이야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지금까지 살아온 모양대로 그렇게 주욱 이어가겠지만

그런 삶이라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되는 이유는

나 같은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마치 나태주 시인의 <풀꽃>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나온다. 

'수수한 것은 가까이 다가가야만 눈에 보인다.'라고.

수수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일상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다정하게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은 충동이 용솟음치게 만드는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한 건

우리의 일상은 소소할지언정 시시하지는 않다는 것.

나름 잔잔하게 빛나며 흘러가고 있다는 것.

 

음,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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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이라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이제 정말 말그대로 '노모'가 되어버린 우리 엄마와 늦둥이 귀여운 딸의 손을 잡고 봄햇살 따사로운 길을 걸어서 갔다. 손에는 작은 카네이션 꽃다발을 사들고, 아직은 연두빛 머금은 여린 풀과 나무들 사이를 지나서. 너무나 완벽하게 화사한 이런 날에는 아버지도 천천히 산책이라도 하고 싶으실 것 같았다.

워낙 말씀이 없고 과묵했던 아버지가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이런 꽃은 뭐하러 돈 주고 사와?"하시며 저쪽 길에서 걸어오신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아쉽고 애틋하다.

 

어린 날에 죽음은 얼마나 무서웠는지, 간혹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면 '이 다음에 내가 죽어서 땅속에 들어가면 이렇게 캄캄하겠구나'하는 생각에 괜한 설움이 복받쳐 훌쩍훌쩍 울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자살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오죽하면...'하는 마음으로 죽음보다 무거웠을 삶의 고통에 대해 안쓰러워할 줄도 알게 됐고, 좋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여유도 생긴 것 같다.  그렇다고 죽음이 무섭지 않다는 건 아니고...

 

얼마 전에 어린이 책 하나를 읽었다.  『나와 그 녀석의 마지막 경주』라는 책이다.  사사키 히토미라는 일본 작가의 책인데, 알라딘에서 검색해봐도 이 작가의 책은 이 책 한 권 뿐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골랐을 때는 남자 아이들의 성장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팽팽한 경쟁과 갈등을 경험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해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그런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리 이 책 제목에 들어있는 '그 녀석'은 돌아가신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일찍 부모님을 잃은 다케시의 아버지를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두어 키워주셨고, 그래서 다케시에게는 친할아버지 할머니나 다름없는 그런 분들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를 좀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리움에 시달리며 장례를 치르고 있던 다케시에게 히사오라는 또래 남자 아이가 나타나 달리기를 하자고 한다.  그 히사오가 책 제목의 '그 녀석'이고 할아버지의 영혼이다. 

 

다케시는 달리기를 잘 하는데 학교 친구인 다쿠야에게는 매번 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케시 앞에 등장한 어린 모습의 할아버지 히사오는 다쿠야 보다도 훨씬 더 가볍고 빠르게 잘 달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아버지는 젋은 시절 지구 운동회나 역전 경기에 출전하던 달리기 선수였고  마지막 역전 경기 감독으로 팀을 일등으로 이끌고 난 다음 쓰러지셨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에 이미 몸이 불편한 상태였다.  내가 놀러가도 언제나 빙그레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 주기만 했고, 어렸을 때부터 발이 빨랐다거나,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거나, 역전 경기의 감독을 했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나, 달리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의 쑥스러운 듯한 얼굴. "다케, 느려"라고 말하면서 앞질러 갔을 때의 자랑스러운 듯한 얼굴. 달린 뒤의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 그것을 보면 히사오가, 아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달리고 싶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어. 알려고 하지도 않았어."

생각하면 할수록 뱃속이 스윽 싸늘해진다. (p.91)

 

할아버지는 다케시에게 할머니 유코에게 전해주지 못한 선물을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언젠가 건강하게 다시 걷게 되면 주려고 했던 오래 전 결혼기념일 선물이었다.

 

아버지에게 가서 알량한 카네이션을 놓아두고 온 다음 이 책이 유난스럽게 내 마음에 들어와 덜그럭거린 건 나도 다케시처럼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돌아가신 후에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쓰여진 문장을 빌어 쓴다면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에 이미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어떤 어린 시절이 있었는지, 꿈이 무엇이었는지, 해보고 싶으신 일은 없었는지, 지금 남겨진 우리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은 없는지...나도 하나도 아는 게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당신의 옛일들에 대해 아무런 말씀이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생전에 말씀을 하셨다고 한들 누가 아버지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을까. 추억은 각자의 가슴 속에서만 영롱한 빛을 낸다. 밖으로 내뱉는 순간 씁쓸해질 뿐이라는 걸 이제 나도 안다.  추억이 너무 먼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그랬을 거다. 말씀을 꺼내시는 순간 어쩌면 아버지는 더 슬퍼지셨을 거다. 당신의 소중한 기억이 TV 광고보다 관심을 끌지 못했을 테니까.

 

요즘은 친정에 가면 가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의 첫 집에 대해서, 어느 날 엄마가 선물로 주었던 플라스틱 목걸이에 대해서, 어린 시절 있었던 크고 작은 해프닝의 분명하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에 대해서 엄마에게 묻곤 한다. 언젠가 엄마마저 떠나시고 나면 내 어린 시절에 대해서 아무도 제대로 확인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섬뜩해서다. 내가 시시콜콜 캐물으면 엄마는 귀찮아하시면서도 오래된 사진첩까지 펼쳐 놓으시곤 한다.  엄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한 쪽이 아예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적도 있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죽음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갑자기 그 사람의 삶이 하나하나 궁금해지지만 정작 돌아보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놀라고 당황스럽다. 미안해지고 후회되기도 하고, 내가 사는 모습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리곤 결국엔 이기적이게도 앞으로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잘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곤 한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 등장하는 다케시 가족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러웠다.  서로서로에게 봄볕처럼 화사하고 따뜻한 기억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널 사랑하고 있어.

힘을 내.

우리가 함께라서 너무 행복해.

말만 해, 언제든 내가 도와줄게.

네가 날 이해하고 믿고 있다는 걸 잘 알아.

그런 말들이, 아니 말보다 더 강한 그런 따끈따끈하고 촉촉한 분위기가 가족 전체를 감싸고 있다고나 할까.

 

지구 대항 이어달리기도, 다쿠야와의 승부도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저 달린다. 내 발로, 바람을 가르며.

야호, 신난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신난다!'  '신난다!'  '신난다!'

몸속 깊은 곳에서 펄떡이는 숨결이 느껴진다.

'히사오....?'

그렇다, 이 느낌은 히사오의 것이다.

'내 안에 히사오가 있어!'

힘이 솟아났다.  기뻤다.  지금처럼 하면 어디까지고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히사오는 내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를 바랄 것이다.

이어달리기 바통처럼.

달리고 싶다! 웃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소망이 담겨 있다.  '별똥별' 같은 바통이다.   (p.124)

 

 

어쩌면 지금 여기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버지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혹은 소중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소망이 담긴 '별똥별' 같은 바통. 그러니 어디까지고 힘껏 달리기나 하라고, 소원을 이루라고, 보이지 않는 응원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떠난 다음 아무런 물음표도 남지 않을 수는 없을 터. 물음표가 남지 않는다면 이만큼 그립고 애틋하지도 않을 터.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떠난 다음 궁금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소식이 끊어진 친구, 헤어진 첫사랑, 돌아가신 부모님... 그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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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5-0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끔 섬사이님이 궁금해요 잘지내시지요

섬사이 2013-05-09 09:25   좋아요 0 | URL
잇힝~ 나를 궁금해해줘서 고마워요.. 하늘바람님도 잘 지내시죠?

프레이야 2013-05-0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죽음이란 건 나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이기도 하군요.^^
오랜만에 좋은 글 반가워요^^

섬사이 2013-05-14 14:07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만큼 세상에 남은 나의 기억이 흐릿해진다고 할까요.

순오기 2013-05-1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부모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많지요.ㅠ
그분들이 당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도 기회도 드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땐 너무 늦었고요.ㅠ
오랜만의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짠하네요.
앞으로 알라딘에서 자주 뵈어요, 우리~ ^^

섬사이 2013-05-14 14: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자주 서재를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왜 이리 게으름을 부리는 걸까요. ^^
 
<유아/어린이/청소년>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길고 길게, 지루하고 지루하게, 빗 속에 잠겨 있는 기분.  잠깐 나온 햇빛이 아까워 이불이며 요커버, 베개커버들을 빨아 널고 나도 팔뚝이며 얼굴이며 발, 겨드랑이, 배, 등, 무릎 등등에 곰팡이가 피었을 거야, 하며 베란다에 나가 햇빛바라기를 하며 앉아 있었다. 그런데 다시 또 비다. 꿉꿉한 기분을 달래줄 책이나 골라보자. 요즘은 책 말고 다른 거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난 내가 다시 책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1.  

 

 

 

 

 

  미야니시 타츠야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 녀석 맛있겠다>를 포함 네 권의 시리즈로 나온 책들 중 <고 녀석 맛있겠다>를 제외한 나머지 세 권이다.  미야니시 타츠야는 일곱살 딸아이의 완소 작가라서 저 세 권의 책들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내 주변에 있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 중에는 미야니시 타츠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승냥이 구의 부끄러운 비밀>같은 책은 뭐랄까, 좀 촌스러운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는 작가라서 관심을 끌 수가 없다.  세 권을 주르륵 늘어놓은 이유는, 세 권이 시리즈로 나왔으니까 하나로 쳐야 해!, 하는 막무가내 심보이기도 하고, 이 중에 하나라도 걸려라!, 하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의 간절함 때문이기도 하고.  

 

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그림책 두 권이다.  이것도 막무가내와 요행을 바라는 간절함, 이 두 가지를 버무려 한꺼번에 올려버린다.  린드그렌의 작품 속에는 에밀이나 미오, 라스무스와 같은 귀여운 남자 아이들도 있지만 삐삐, 로냐, 리사벳, 마디타 같이 씩씩하고 활달하고 명랑하고 밝은 여자 아이들도 많다.  그 중에서 마디타와 로타, 리사벳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그림책이니 두 권 중 한 권만 선택하라는 건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이다.  
그러고 보니 미야니시 타츠야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니!!!!!   비가 더 내린다고 해도 이 그림책들과 함께라면 견딜만 하겠군!!!     

 

3.  

 서정오 선생님의 옛이야기 책이다.  서정오 선생님의 옛이야기 책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 여전히 욕심이 난다. 토토북에서 출간한 저 책은 그림이 지판화란다. 어쩐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표지에 떡하니 앉아 있는 도깨비에게서는 일본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그리고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서정오 선생님의 책들과 겹치는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이야기 다른 느낌'을 확인하는 거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서정오 선생님의 책들은 소장가치가 느껴지기도 하니까.   

 

 

 

4.  

 웅진 주니어 문학상 수상작이다. 신인작가 부문 대상 수상작이라는데 "정형화된 마녀 캐릭터를 요즘 아이들의 감각과 눈높이에 맞게 새롭게 재창조하여 아이들에게 유쾌한 상상력과 재미를 주는 작품" 이라는 책소개 글에 눈이 반짝, 귀가 솔깃해진다.  우리 어린이 문학이나 청소년 문학에서 늘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던 아쉬운 부분들이 극복되어가고 있다는 징후를 확인할 수 있을까? 배경이 프랑스라는 점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하다. 뭐랄까, 우리 나라의 영역 안에서는 상상력의 한계를 느꼈다는 표현인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소리높여 글로벌한 세계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당하는 세상에 살면서 프랑스면 어떻고, 안드로메다라면 어떠랴. 그저 그만큼 우리 작가들의 역량과 상상력과 글빨과 작품성이 범세계적으로 범우주적으로 인정받고 뻗어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러니 이 책부터 확인해 보자구!! 

  

 

5.  

 청소년들의 어두운 이야기. 가난, 성폭행, 불화, 학교폭력  기타등등 기타등등.. 을 어둡게 (이게 중요하다. 어두운 이야기를 어둡게 담았다는 거) 담은 이야기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무거워 한숨이 나오고 너무 우울해져서 기운이 쭉 빠지니까.
하지만 작가가 황선미니까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갔을지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고 한숨이 나오고 기운이 쭉 빠져버린다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확인하고 싶은 유혹은 강렬해서 이 책을 결국 이 페이퍼 안에 담는다. 적어도 뻔하지는 않겠지.
후텁지근한 7월을 더 후텁지근하게 만들어버릴 위험이 크지만 때때로 모험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기도 하니까 이 책을 받게 된다면 확 끌어안아버릴 테닷!! 용감하게!!  

 

 

 

요즘 나는 바느질을 한다. 그것도 손바느질. (발바느질도 있나? 당연히 손바느질이지!) 딸아이 가방을 하나 만들었고, 코알라로 변신 가능한 토끼 인형을 만들었고, 소파에 깔아둘 매트를 만들었고, 식탁 러너를 만들었고, 큰딸아이 방 창문에 드리울 발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일곱살 딸아이와 아들녀석의 여름이불을 만들 예정이고 소파를 커버링하고 싶어서 자주 소파를 노려보곤 한다.  그래서 책을 거의 못 읽고 있다.  반성.  바느질과 책읽기와 생활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요즘의 내 숙제다. 내가 바느질에 빠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이게 다 도서관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책에 빠지지 않고 생각도 못했던 바느질에 빠지다니~~~ 세상은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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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7-07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장마에 마음은 안 눅눅하고 뽀송하게요.^^ 제 바람입니당.
황선미를 편애하고 무조건 믿는 편이라 최근작 저 책도 기대가 되어요.
린드그렌의 그림책 두 권은 갖고 있는데 너무 좋아서 자꾸자꾸 보게 돼요.
기분좋은 그림책이에요. 그림도 내용도, 역시 린드그렌이구나 그랬어요.

섬사이 2011-07-09 17:30   좋아요 0 | URL
여기는 지금 햇볕이 쨍! 해요.
남부지방은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는데 말이예요.
린드그렌의 그림책 두 권을 벌써 갖고 계시군요.
안목이 남다르신 프레이야님이 좋다 하시니까 더더더 읽고 싶어져요.
비, 조심하세요~ ^^

마녀고양이 2011-07-07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느질에 빠져계시네요. 저는 언제 바느질을 했는지, 요즘 가물합니다.
바빠서 한번 넣어버리니, 다시 꺼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고 녀석 맛있겠다>는 애니메이션 개봉했던걸요? 오늘 아침 뉴스에서 소개를 보다가 한참 웃었습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에 밀려서, 하루 두번만 하더라구요. ㅠㅠ. 요즘 정말 트랜스포머가 미워집니다.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요... ㅠㅠ

서정오 선생님 책을 저도 발견하고, 한참 입맛 다시는 중입니다. 옛이야기들, 너무 사랑스러워요~

섬사이 2011-07-09 17:33   좋아요 0 | URL
바느질, 재미있기는 한데 은근 체력소모가 큰 것 같아요. ^^;;
애니메이션으로는 <고 녀석 맛나겠다>라는 제목이 붙었더라구요.
저는 그림책으로만 사랑하려고요.

네꼬 2011-07-07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는 제목과 표지가 언밸런스(!)해서 하하 웃겨 했는데, 책 소개 보니까 어째 찡할 것 같아요. 저도 미야니시 타츠야 완전 좋아하니까 한번 봐야겠어요. 저 이 페이퍼 좋아요, 섬사이님. :)

섬사이 2011-07-09 17:34   좋아요 0 | URL
네꼬님~ 네꼬님~ 네꼬님~
이 페이퍼가 네꼬님 마음에 들었다니 어깨가 으쓱해져요. ^^

2011-07-07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9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7-0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 하면 따끈한 신간을 받아보는 건 좋은데~~~~ 리뷰가 부담스러워 6기 이후 접었어요.ㅜㅜ
눅눅한 7월을 잘 넘기려면 미야니시 타츠야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 절대 동감,
물론 서정오 선생님이나 황선미 작가도 실망시키지 않을거라 공감하고요. 추천 꾸욱~~~~

그런데 도서관에서 책읽기가 아니라 바느질에 빠지게 했다고욧?^^

섬사이 2011-07-09 17:38   좋아요 0 | URL
저는 4기던가? 에 한 번 해보고는 접었었지요.
그 때랑 방법이 달라져서 한 달에 두 권만 쓰면 되더라구요.
그래서 재도전해보았죠.
신간평가단은 사실 꼭 필요한 건 아닌데, 제가 자꾸 리뷰쓰기에 느슨해지고 게으름을 부리려고 할 때
도움이 되더라구요. 억지로라도 쓰게 되니까요.

네, 도서관 때문에 바느질을 시작했어요. 덕분에 책과는 멀어졌구요. ㅠ.ㅠ

세실 2011-07-08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두운 이야기를 어둡게 담은 책 싫어해요. 요즘 읽고 있는 <두근 두근 내인생>은 어두운 이야기를 밝게 그려서 참 좋아요.

호호호 도서관에서 손바느질 책을 읽고 빠지셨을까요? 아님 손바느질 강좌를 듣고 빠지셨을까요? ㅋㅋ
작품 사진 보여주세용^*^ 그런데 손바느질이랑 퀼트랑은 다른 건가요?

섬사이 2011-07-09 17:40   좋아요 0 | URL
손바느질과 퀼트... 글쎄요.. 저도 잘...
근데, 손바느질은 손으로 바느질해서 만드는 것들을 총칭하는 거고,
퀼트는 조각천들을 가지고 홈질로 조각이불이라든가 가방같은 거 만드는 거 아닐까.. 하는 ...
손바느질 강좌를 들은 거, 맞습니다.
정확하게 예측하셨어요. ^^

2011-07-14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