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유빈이랑 구립도서관에 들러서 그림책을 고르다가 <방귀소녀 우차차>(오토모 야스오 글,그림/한림출판사)라는 책을 발견했다.  우리 옛이야기 중 '방귀 잘 뀌는 며느리'라는 이야기가 있고, 지난 해였나?  <방귀쟁이 며느리>(신세정 글,그림/사계절)를 더욱 재미있게 읽은 터라 궁금증이 발동해서 그 자리에서 유빈이랑 읽고는 대출해왔다.   

표지부터 비교해보면 <방귀소녀 우차차>는 돛단배를 타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가르며 당당하게 나아가는 그림이다.  마치 방귀소녀 우차차를 호위하듯 앞서가는 돌고래 두 마리와 배 주변을 날고 있는 새도 세 마리 보인다.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는 따위의 감정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방귀쟁이 며느리>는 우리 민화 어디쯤에서 빼다 박은 게 아닐까 싶을만큼 옛스러운 그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우리 옛그림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아하, 이 그림은 누구의 무슨 그림과 비슷하구나!'라고 말하진 못해도 어쩐지 눈에 익은 그림들이다.  표지 그림은 가채를 올려 한껏 멋을 낸 아리따운 여인이 살짝 웃음지며 오른 손에 종을 들고 흔드는 모습이다.  주변엔 아리따운 꽃들이 흐드러지고 왼쪽 구석엔 하얀 학도 한마리 날아가고 있는데,,  저렇게 종을 딸랑딸랑 흔들며 눈웃음까지 흘리면서 "자, 조심하세요~~ 저, 가스 분출할 거예요~~"라고 애교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표지에서만큼은 두 책 모두 좀 민망하고 창피한 "방귀"라는 생리작용을 꽤 자신있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뭐, 방귀쟁이 며느리가 위풍당당함에 있어서는 방귀소녀 우차차에 한 수 밀리고 있는 감이 없지 않지만 말이다.

 

 

 

 

 

  

그건 아마도  우차차와 며느리가 놓여 있는 배경적 특성 때문인 것 같다.  방귀쟁이 며느리의 경우 우리가 다 알다시피 여성들이 규방의 도리와 칠거지악 등등의 사슬에 묶여 있던 조선시대 어디쯤이 그 배경이다.  어려서부터 '방귀를 참말로 잘 뀌'는 사실을 비밀로 단속하며 자라야 했던 주인공은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와 신랑 앞에서 몸을 베베 꼬아가며 얼굴이 누렇게 뜨고 일그러지도록 방귀를 참고 또 참는다.  며느리가 방귀 참는 대목의 그림을 보면서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며느리의 그런 사정을 듣고는 "방귀를 참으면 쓰간디? 뀌어라, 뀌어"하며 흔쾌하게 방귀를 허했던 시부모는 며느리의 과격한 방귀 한 방을 맞고는 그만 친정으로 쫓아내기에 이른다.  (시부모가 가스 분출을 허락했다고 또 굳이 당장에 그 앞에서 방귀를 뀔 건 또 뭐람?? ) 
며느리의 센 방귀가 그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친정으로 쫓겨가던 길에 높다란 나무에 열린 청실배를 방귀를 날려서 따주고 비단과 놋그릇을 얻고 나서다.  그 비단과 놋그릇으로 풍비박산난 집안을 부유하고 풍족하게 다시 일으켜 세운 후에야 며느리는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수줍은 듯 베시시 웃으면서 생리작용으로 인한 민생고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결국 며느리의 위대한 방귀는 딱 거기서 멈춘다.  남자네 집안을 부유하게 일으켜 세운 선에서, 딱 거기서.  사회정의 실현이나 공공의 적을 무찌르는 데까지는 근처에도 못가고, 그저 조신한 조선시대 규수의 방귀 극복기 쯤에서 멈추고 더 나아가지를 못한다.

그에 비하면 '방귀 소녀 우차차'는 훨씬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시간적 배경이야 '옛날 아주 먼 옛날'이니 그게 '방귀쟁이 며느리'가 살던 때보다 앞선 때인지 뒤선 때인지야 알 수 없지만 뭐, 공간이 다른 바에야 시간적 배경의 앞뒤를 따지는 게 별 의미가 없지, 싶다.  우차차가 태어나 자라나는 곳은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포라포라 섬'이고 '조개와 물고기가 산더미처럼 잡히는 풍요로운 곳'이며 '나무에는 달콤한 열매가 가득 열리고, 사람들은 모두 즐겁게 살'아가는, 그야말로 지친 현대 도시인들이 꿈꾸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가무잡잡하고 두루뭉실한 사람들의 모습도 남태평양이나 아니면 필리핀이나 말레이지아 부근 어디쯤의 작은 섬을 떠올리게 한다.  방귀쟁이 며느리에 비하면 얼마나 건강하고 자연과 밀착한 배경인가!!! 그래서인지 태어나자마자 첫울음과 함께 방귀를 터트렸다고 포라포라 섬의 말로 '방귀'란 뜻의 '우차차'란 이름을 얻는 장면에서도 구김이나 조롱의 느낌이 전혀 없다.  방귀쟁이 며느리가 별당 안에서 자기의 방귀를 1급 기밀사항 쯤으로 입단속을 해야 했던 것과는 참 천지차이다.   
그래서일까?  우차차는 자기가 가진 남다른 능력을 일찌감치 발휘하기 시작한다.  숲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멧돼지를 날려버리고(그것도 자신있게 엉덩이를 든 자세로), 바다 속에 뛰어들어 방귀로 참치 떼를 잡고...  마침내 평화로운 마을을 위협하는 존재 -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타나서 아이 하나를 잡아가던 괴물 -을 물리친다.   

당,연,히,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두 방귀 중에서 난 우차차의 방귀에 한 표를 던진다.  우차차가 살아가는 그 건강한 배경이 너무 부럽기 때문이다.  괴물을 물리쳐달라고 온 마을 사람들이 감자를 찌고, 굽고, 튀겨가며 우차차의 방귀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그에 호응하여 '구운 감자 88개, 찐 감자 99개, 튀긴 감자 100개 하고도 1개 더'를 먹어치우는 우차차의 씩씩한 먹성을 보고 있노라면 온갖 격식과 허례에 빠져버린 우리의 답답한 모습이 우차차의 방귀보다 더 웃기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아직도 '방귀쟁이 며느리'처럼 산다.  며느리 방귀처럼 세지도 않으면서 아직도 내 방귀는 부끄럽고, 민망하고, 숨기고 싶은 비밀이다.  아무도 모르게, 되도록이면 소리도 냄새도 없이 살짝 나와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방귀'에 대한 우스개 소리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면 뭐,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편하게 말 트고 지내는 사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방귀를 트고 지내는 사이라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방귀까지 트고 지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  음,,,  결혼한지 17년을 넘어가는데도 남편 앞에서 뀌는 방귀도 아직 떳떳하고 당당하지 못한 내 주변머리로 무슨.....
얼마 전 TV의 한 토크 프로그램에 박성광이 나와서 신봉선이 개그맨 선후배와 동료 앞에서 방귀를 거침없이 뀔 뿐아니라 심지어 방귀로 장난을 친다며 폭로(?)하던 것이 생각났다.  신봉선은 녹화가 끝나고 나서는 어땠을지 몰라도 그 자리에선 그냥 실실 웃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TV를 보던 나는 '어떻게 그럴 수가!!'하는 뜨악함과 뭔가 금기가 깨지는 현장을 목격하는 듯한 개운함(?)을 동시에 맛보았다.
쓰다보니,,  뭐야, 결론은?  난 '방귀쟁이 며느리'고 신봉선은 '방귀소녀 우차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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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9-1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댓글 창이 열려 있네요! 방귀쟁이 며느리는 그림이 너무 시원해서 좋았어요. 방귀쟁이 우차차의 더 큰 개운함도 궁금하네요. 신봉선이 그랬군요!

섬사이 2009-09-14 21:25   좋아요 0 | URL
하하, 날씨가 서늘해지니까 썰렁한 서재가 어쩐지 좀 흉하다 싶기도 하고,, 어차피 찾아오실 분들도 별로 없을 것 같아서,, 댓글 창을 열어두었어요.
마노아님이 첫 댓글을 써주시네요. ^^

순오기 2009-09-1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댓글이 열렸으니 섬사이님께 가는 바닷길 같아요.^^
말보다 방귀 트는 사이는 흔치 않겠죠? 신봉선 짱이네요~~ㅋㅋ
우차차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어요.

섬사이 2009-09-15 22:03   좋아요 0 | URL
그리 반가워해주시니 급죄송스런 마음이.. ^^;;
방귀소녀 우차차, 저도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는데
유빈이도 저도 재미나게 읽었어요.
덕분에 방귀쟁이 며느리를 다시 꺼내놓고 비교해보는 재미까지 얻었죠.
 

첫아이 유진이는 "공주"에 대해 시큰둥한 아이였다.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핑크'와 '공주'에 열광한다는데, 유진이는 그런 면을 보이지 않았다.  털털하고 간혹은 무신경하다 싶을만큼 '예쁜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늦둥이 막내딸 유빈이는 그래서 내게 더 당혹스러웠나보다.  '분홍'에 집착하고 '공주', 그것도 디즈니표 공주에 심취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책고르미에서 '공주'를 키워드로 한 책들을 조사해 오는 과제를 내게 맡긴 건, 순전히 유빈이 탓이었다. 덕분에 그림책 속의 다양한 '공주'들을 찾아보는 기회를 얻었다.  뭐,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썩 개운하지도 않았다.   전통적인 '공주' 이미지를 벗어던진 대표 그림책을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종이봉지 공주>를 꼽지 않을까.  내 개인적으로도 꽤 마음에 드는 그림책이지만 사실 유빈이의 반응은 좀 시큰둥하다.  유빈이가 상상하는 공주는 화려한 드레스에 멋진 왕관을 쓰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아리따운 모습인데 종이봉지 하나를 덜렁 걸치고 용과 싸우러가는 흐트러진 단발머리의 종이봉지 공주의 모습은 아마 받아들이기가 힘든 모양이다.   

큰딸은 중학교 영어교과서에 종이봉지 공주가 실렸다면서 반가워하기도 했는데, (딸아이의 중학교적 영어교과서는 '디딤돌"꺼였다) 사춘기에 들어선 딸이 오히려 종이봉지 공주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하긴 다섯 살의 유빈이가 종이봉지 공주 이야기의 의미와 묘미를, 그 속 시원함을 알기를 바란다는 건 무리다.   

 그렇담, 유빈이가 열광했던 공주 그림책을 되짚어 보는 게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유빈이가 맨처음 좋아했던, 그래서 자꾸만 읽어달라고 조르던 그림책은 <공주님과 드레스>라는 그림책이다.   
너무 좋아해서 결국은 중고샵에 나온 책을 구입했었다.  파스타 궁전의 공주가 생일날 입을 드레스를 고르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등의 색깔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음 장을 넘기면 나올 드레스의 색깔을 배경에서 떠있거나 날아가는 풍선의 색깔로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아이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결국 입을만한 드레스를 찾지 못한 공주는 잠옷차림으로 파티에 참석한다.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공주에게 선물한 것은? 
눈치빠른 사람들은 알아챘겠지만, 바로 무지개 빛 리본이 너울거리는 아름다운 드레스다. 
유빈이가 두 세살 무렵에 즐겨 읽었던, 추억의 그림책이다.   

 

<난 드레스 입을 거야>는 <공주님과 드레스>보다 조금 늦게 만난 그림책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도 결국 '옷'을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간다.  멋쟁이 엘레에트 공주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싶지만 엄마는 날씨가 춥다면서 두꺼운 양말, 멜빵바지, 낙타털 외투, 에스키모 털신, 모양빠지는 모자와 목도리를 입힌다.  잔뜩 골이 난 공주는 사촌을 만나고, 엄마가 입혀준 옷들을 이용해서 눈밭에서 신나게 논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어른과 꿈과 상상을 중요시 하는 아이의 미묘한 갈등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아이는 아이만의 세계속에서 어른이 고집하는 실용의 가치관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고 당당하다.     

유빈이는 거의 매일 어깨에 보자기를 두르고 왕관을 쓰고, 요술봉을 들고, 반짝이는 구두까지 신고서 자기가 공주님이라고 상상하는 놀이를 한다.  친구까지 불러서 그러고 노는 걸 보면 아무리 내딸이지만 가관이다.  이 책 속의 아이는 정말 공주가 될 수 있는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는다.  그런데 그 교육이라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 
이건 뭐, 고시패스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 보인다.  아이의 공주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건지, 대견스럽게도 아이는 그 어렵고 고된 과정을 이겨내고 드디어 공주가 된다.  마지막으로 어떤 공주가 될 것인지 이름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데 아이의 선택은? 
유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공주'가 된 게 너무 좋아서 엄마아빠 곁을 호로롱 날아가 버리지나 않을지..   

 

아마 유빈이가 가장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공주책인 것 같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 이 그림책 속 주인공은 공주의 신분이 아니다.  그냥 '핑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핑크공주'라는 별명을 얻은 아이다.  표지에 그려진 아이를 보면 꼭 유빈이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 아이와 참 많이 닮아 있다. 
비오는 날 엄마가 만들어주신 핑크빛 컵케이크를 먹고 온몸이, 심지어 눈물까지도 핑크색으로 변해버린 아이.  엄마아빠는 걱정이 태산인데, 이 아이는 너무 신나고 즐겁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  아이는 엄마아빠의 말씀을 안듣고 핑크빛 컵케이크를 몰래 먹었다가 아예 빨강색으로 변하고 만다.  이아이가 다시 제대로 자기 색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맨 뒤의 의외의 반전도 즐겁다.   

 

빨간색 표지에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만큼의 길고 긴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공주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찰랑찰랑한 긴 생머리는 '여성'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기호가 아닐까..  공주는 긴 머리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웠지만 왕은 '공주의 머리가 이 나라의 보물'이며 '길수록 좋은 거'라고 말한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땐 공주가 스스로 자기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기를 바랐는데, 공주는 그보다 가출을 먼저 감행한다.  얽매인 공주이기보다 자유스러운 서커스 단원이 되기를 선택한 긴머리 공주에게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공주의 긴 머리를 서커스 남자가 잘라주는 것도 좀 그렇고, 이왕이면 좀 더 시원하게 짧은 스타일로 잘라주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이 책에서는 긴 머리가 '속박', '굴레' 등의 의미로 쓰였지만 여자 아이들의 로망인 긴 생머리를 가지고 상상놀이를 하는 책도 있다.  공주가 나오는 책은 아니지만 말이다.
 <긴머리 공주>의 표지에서는 둥글게 말린 검은 머리 가운데에 공주가 갇혀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고 어딘지 어둡고 우울해보이지만 <내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이라는 책에서는 둥글게 말린 머리 모양은 똑같은데 아이가 밖에 그려져 있고 표지 색깔도 환해서 그런지 가볍고 경쾌해 보인다.  표지 느낌 그대로 내용도 즐겁다.  이 책 속 아이의 기다란 머리는 빨래줄이 되기도 하고 새들이 둥지를 트는 나무가 되기도 하고, 낚시줄처럼 드리우기도 하고...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뭐, <내 멋대로 공주>도 당연히 유빈이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공주치고 너무 씩씩하고 좀 엽기발랄한 구석이 있어서겠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독자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고나 할까..  애완동물을 키우며 혼자서 살기를 바랐던 공주, 그리고 혼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결말.  공주가 아름다운데다 부자여서 결혼하고 싶어하는 왕자들은 공주가 시키는 일을 척척 해내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준다.  단 한 명, 공주가 내는 모든 과제를 척척 해결한 뺀질왕자의 마지막에서 킥킥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게, 참 좋았다. 결혼은, 멋진 남자는, 여자들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말씀.  



 로렌 차일드의 작품.  유빈이가 읽기엔 글밥이 너무 많은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는데 의외로 꽤 집중하며 들었던 책이다.  심지어 도서관에 반납하지 말라고 졸라서 대출기간을 연장했던... 유빈이는 이 책보다 먼저 한림출판사에서 나온 같은 제목의 그림책을 읽었었다.  한림에는 미안하지만 별로였다.  뭔가 많이 빠뜨린 것 같은 맹숭맹숭함과 이유모를 반감은 공주의 캐릭터를 잘 살리지 못했던 탓인 것 같다.  로렌차일드의 <공주님과 완두콩>은 공주의 인물이 더 잘 살아있어서인지 이야기에 집중하고 이해하기가 더 수월했다.  그런데 로렌 차일드, 너무 다작하고 계신 건 아닌지?  팝업북이나 플랩북 스타일로 여러권이 다다닥! 계속 나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뭐, 그림책의 질만 떨어지지 않는다면야 독자에게는 행복이지만 말이다.   

  

무척 즐겁게 읽었던 그림책이다.  목수가 되기 위해 왕궁을 뛰쳐 나온 아빠 덕분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폴리나 공주의 이야기다.  공주시절이 그리운 폴리나는 자신의 신분회복을 위해 드류퍼트 왕자와 결혼하려고 한다.  신부감을 뽑는 과정에서 우연히 '피자'를 만들게 된 폴리나는 그 어려운 과제를 무사통과하고도 왕자의 신부가 되기를 거부하고 피자 가게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자아실현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코믹하게 풀어가고 있어서 아이와 재밌게 읽었을 뿐 아니라 도서관 책고르미 모임에서 소개하자 모두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책이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맨발,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있는 가난한 공주가 등장한다.  일단 화려한 색깔이 유빈이의 시선을 확 잡아 끄는데 성공.  그런데 핑크에 눈이 먼 우리 유빈이는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둘째 공주가 제일 예쁘다네.. 이궁.   제대로 들은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다.  좀 더 큰 다음에 다시 읽어줘야 할 듯.  엄마인 내가 너무 닥치는대로 들이대고 있는 건 아닐까, 잠시 반성하게 만든 그림책이 되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사과씨처럼 작은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 더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공주라고 꼭 금발머리에 휘황찬란한 장신구를 두르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건 아니라는 것,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만이라도 유빈이가 알아주면 좋으련만.   


 서양의 공주들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동양의 공주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줘야하지 않을까 하던차에 발견한 그림책 투란도트.  그림이 신비스럽긴 한데 좀 어두워서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참 재미있게 읽었다.  (적어도 7세 이상은 되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유빈이에겐 읽어주지도 않았다) 
서양의 공주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묘한 매력의 차가운 공주 투란도트.  결국은 사랑이야기지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잔혹의 카리스마가 압권이다.   


 

 

 유일하게 찾아낸 우리 공주님.  솔직히 좀 놀라웠다.  바보와 울보의 환상적인 결합인 온달과 평강공주도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뛰어넘는 비극적 결말의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도 있고, 입가에 웃음이 번지게 만들만한 서동과 선화공주도 있건만,,, 게다가 요즘 뜨고 있는 덕만공주까지..  그런데!!!  볼만한 그림책이 없단 말이다!!!
그나마 바리공주가 신화적 인물이라 아마 그림책으로 만들기가 좋았나보다.  다른 공주님들은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다보니 손대기가 어려웠나?  어쨌든 참 아쉬웠다. 
바리공주도 고어체 분위기가 풍기는 글로 쓰여있어서 아주 어린 아이들이 읽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다.  고어체 풍의 글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  좀 읽기가 어색어렵긴 하지만 어릴 때 고전문학 특유의 뉘앙스를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더랬다.   그림책에서 우리 공주님의 멋진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인어공주.  유빈이는 인어공주를 디즈니 DVD로 처음 만났다.  모두 알다시피 디즈니 인어공주는 해피엔딩이라 보고 난 뒤 산뜻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유빈이와 함께 보면서 어쩐지 찜찜함을 느꼈더랬다.  내가 어릴 적, 동화책에서 인어공주를 처음 읽고는 그 비극적 결말에 대해 어린 나이에도 얼마나 심란하고 아쉽고 속상했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제대로 된 인어공주 이야기를 꼭 읽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고른 책이 바로 첫번째 그림책.   유명한 작가 리즈베트 츠베르거의 그림으로 나온 한림출판사의 책이 있는데, 난 이 그림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운명의 인어공주의 저 파리한 모습이라니...다섯 살 유빈이에게 읽어주기엔 글밥이 조금 길었는데, 뭐, 큰 무리는 없었다.  유빈이도 아무말 없긴 했지만 디즈니 인어공주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느끼지 않았을까? 

  

  

 

 

 

 

 <찔레꽃 공주>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같은 이야기다.  <찔레꽃 공주>가 글밥이 적어서  어린 아이들에게 읽어주기에 좀 더 나을 것 같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묘사가 화려하고 글밥도 많아서 좀 큰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듯.  <잠 자는 숲 속의 공주>는 칼데콧 상을 수상한 크리스천 버밍엄이란 작가가 그림을 그렸는데, 무지 화려하고 예쁘다.  그 예쁨과 화려함이 지나쳐 나처럼 털털한 사람은 오히려 거부감이 들 정도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는 <찔레꽃 공주>가 더 마음에 든다.   

 

 

 

 

 

 

<백설 공주> 책이야 무지하게 많지만, 난 이 두 책만 봤다.  이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난 첫번째 책인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더 마음에 든다.  마루벌에서 나온 <일곱 난쟁이와 백설 공주>는 어쩐지 그림이 좀 무서워서...   '백설공주'하면 떠오르는 디즈니 백설공주 말고 다른 모습의 백설공주를 보여줄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  물론 유빈이는 그림책 속 백설공주를 좀 낯설어하긴 했지만 말이다.  원전에 충실하게 머리빗, 허리띠, 독사과의 과정을 차례차례 거치며 전개되는 이야기도 참 오랜만에 읽어본 셈.  그동안 왜 머리빗과 허리띠는 건너뛰고 독사과만 똑 떼어서 이야기에 집어넣는지 좀 아쉬웠던 차라.. 

<에스파냐 공주의 생일>은 청소년소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가 생각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글이 그림책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 내용이 그리 만만한 내용이 아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각으로 그려진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었고, 그 내용에서 씁쓸함이 남겨졌던 책이다. 
아름답지만 차가운 마음을 가졌다는 점에선 투란도트와 비슷하지만, 어쩐지 투란도트보다도 더 몸서리치게 차갑고 정이 붙지 않는 공주가 등장한다.  화려함과 아름다움 뒤에 도사리고 있는 차갑고 냉혹한 현실, 궁전으로 끌려와 공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 난쟁이의 비참한 최후, 그 최후를 더욱 허무하게 만드는 공주의 말 한 마디. 
아름다운 공주에 대한 환상을 깨뜨려버리는 그림책.   

 

이번엔 샤를 페로의 작품이다.  샤를 페로가 살던 1600년대에는 아버지가 딸을 넘봐도 그게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니었는지 몰라도, 왕비를 잃은 왕이 자기 딸과 결혼하려고 이성을 잃는 걸 보고 좀 당황했다.  음..  내가 너무 고리타분 보수적인 것일까?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너무 앞질러 걱정하는 걸까? 
아버지의 이성을 잃은 딸 사랑을 빼면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아이들은 아마 어른들만큼 그 께림칙한 사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공주에 대한 책들은 여전히 계속 출간 중이다.  <빗방울 공주>라든가, <말괄량이 저스티나 공주>, <노란 궁전 하품 공주> 등등의 새로운 공주들이 탄생하고 있는가 하면, 중앙출판사에서 나온 <라푼첼, 머리를 자르다>나 <신데렐라와 심술궂은 왕비>처럼 전통적인 공주이야기에 그 뒷이야기를 현대 가치관과 여성상에 맞게 새롭게 지어낸 책들도 있고 <공주백과사전>이나 <공주 박물관>처럼 사전이나 도감식의 책들도 있었다.   
 

 

 

 

 

 

 

 

  

 

 

 

 

 

 

 

 

 

 


그러나 공주책들을 찾아보면서 '우리 공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하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집류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었지만, 글쎄,,, 그나마도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책들이라 무척 아쉬웠다.  세계 여러 나라 공주들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경쟁력을 갖춘 우리 공주 이야기를 누군가가 책으로 만들어준다면, 그것도 매력적인 그림이 어울어진 그림책으로 만들어준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담인데, 유빈이에게 일본의 공주 구로다 사야코를 인터넷으로 사진을 보여줬다.    



유빈이의 그 멍한 반응이라니..   여전히, 유빈이에겐 디즈니 공주들이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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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쯤이었나?  책고르미에서 작가 공부를 하면서 크리스반 알스버그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진작 정리를 해두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노느라(?)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거다.   내가 크리스반 알스버그의 책을 처음 만난건, 그러니까 1990년 대 초쯤이 아닐까 싶다.  그 때쯤 군복무를 마친 남편이(물론 그 때는 남편이 아니었지만!) 미국 산타바바라에 사는 친구에게 한달 정도 놀러갔었다.  그 때 '선물로 그림책을 사다달라'는 내 부탁에 사다 준 책이 크리스반 알스버그의 <JUST A DREAM>(번역책으로 <이건 꿈일 뿐이야>)이었다.  그림만 보고도 환경에 대한 책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좀 거부감을 느꼈던 터라 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나 <폴라 익스프레스>, <주만지> 같은 작품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덩달아 관심을 두게 되었던 작가다.   

크리스반 알스버그는 1949년 6월 18일에 미국 미시건주의 작은 시골마을 그랜드 래피즈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버터와 치즈를 가공하는 낙농장을 운영하셨는데, 그 때 크리스 반 알스버그가 살던 집은 버지니아 리버튼의 <작은 집 이야기>에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집이었다.  그 후 크리스가 세 살 무렵, 변두리에 있는 새 집으로 이사를 해서 초등학교 6학년 무렵까지 살았는데 주변에 들판과 강, 연못 등이 있어서 피라미나 개구리를 잡기도 하고, 밤에는 반딧불을 보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다음에 이사한 집은 튜더 스타일의 오래된 벽돌집이었는데, 길가의 느릅나무 가로수가 거대하게 자라서 가지가 반대편 도로에 닿을 만큼 장관을 이루어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폴라 익스프레스>에 그 가로수 길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고 한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고등학교 때 미술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다.  미술보다는 수학과 과학에 재능을 보이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당시에는 미시건 주립대에서 입학담당관이 나와서 우수한 학생들을 면담하고 그 자리에서 입학을 허가하기도 했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도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지원학과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입학담당관의 책상 위에 있는 학부목록에서 'college of A & D'라고 쓰여있는 걸 보고 입학담당관에게 그게 뭐냐고 물었다.  입학담당관은 건축과 디자인 학부라고 대답해 주었고, 크리스는 그 학부에 들어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학담당관은 크리스가 미술 수강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크리스는 자기가 사실은 토요일에 학교 미술 수업보다 더 나은 레슨을 받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다행히(?) 크리스 반 알스버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1967년은 미술학부에서 포트폴리오를 요구하지 않고 입학을 허가했던 마지막해였고, 입학담당관을 멋지게 속인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미시건 주립대 미술학부에 입학할 수가 있었다. 매우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인 결정이었던 셈.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서 조각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로드 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작업실을 차리고  전시회도 몇 차례 열었다.  1975년에 같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초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있는 리사 모리슨과 결혼을 했는데 아내 리사는 크리스 반 알스버그를 그림책 작가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리사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림책을 이용하곤 했는데, 남편의 드로잉을 보고는 이야기책의 그림을 그려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을 뿐 아니라 보스턴의 한 편집자에게 크리스의 드로잉을 보여주면서 그림책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결혼 후 늦게, 1991년에 첫딸 소피아가 태어났고, 1995년에 둘째딸 애나가 태어났다. 아버지가 되기 전까지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크리스는 딸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코로 리코더를 불어 간단한 멜로디를 연주해주는 재미있는 아빠가 되었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자기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뭐냐고 물으면 "My Next One"이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더 나아질 거라는 가능성에 희망을 두고 있는 작가라는 뜻일게다.  그래서인지 2006년도에 나온 <프로버디티!>를 보면 그림의 양감이나 질감이 훨씬 풍부해진 느낌이 든다.   

그의 작품 중에는 흑백 톤을 가진 그림책과 색를 쓴 그림책이 섞여 있다.  그 이유는 어떤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머릿 속에 그려지는데, 그 이미지가  흑백으로 떠오르느냐 컬러로 떠오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는지는 크리스 반 알스버그 본인도 모르시겠단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책을 읽다보면 그가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그 경계가 모호해서 교묘하게 섞이는 그 부분에서 미스터리한 색채가 강한 그의 이야기가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판타지에 성격이 강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대단히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데, 이는 낯선 판타지가 독자에게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란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그림책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크리스의 첫작품인 <압둘 가사지의 정원>에 나오는 불테리어 종의 '프리츠'라는 개다.  이후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이 '프리츠'를 찾아 볼 수가 있다.  어떤 작품에선 액자의 사진으로, 또 다른 작품에선 소품으로, 장난감으로, 아주 다양하게 등장한다.    
<압둘 가사지의 정원>을 만들 당시 처남의 개 '윈스턴'을 모델로 했는데, 이 개와 크리스의 사이가 아주 각별했던 모양이다.  마치 조카같았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불행히도 윈스턴은 아직 강아지 티를 벗지 못했을 때 사고로 죽고 말았고, 이후 크리스는 그의 첫작품에 모델이 되어 주었던 공로를 기리며 모든 작품에 불테리어 종 하얀 개를 그려넣고 있다.  
그의 작품을 모조리 늘어놓고 모든 작품에서 "프리츠찾기" 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나는 특히 <장난꾸러기 개미 두 마리>라는 책에서 찾느라 꽤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작품은 1979년 <압둘 가사지의 정원>에서 2006년 <프로버디티!>까지 총 20권의 책이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4권이 번역되어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 가장 당황스러웠던 책은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란 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1월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판되었다.  그 책은 탄생에서부터 미스터리한 배경을 안고 있다.  미국에선 아이들의 글쓰기 교재로도 쓰인다는데, 정말 웬만한 상상력 없이는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1982년 <주만지>, 1985년 <북극으로 가는 기차>로 칼데콧 상을 받았고, 1980년 <압둘 가사지의 정원>으로 칼데콧 아너상을 받았다.    

작품에 대한 소개글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아무리 내일이, 아니 오늘이 일요일이라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고, 무엇보다 정신이 혼미해오기 시작한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다음에 정리하자.  그나저나 내일, 아니 오늘 아침은 뭐해서 먹나... 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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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유빈이는 '미야니시 타츠야'라는 작가의 책을 유난히 좋아한다.  처음엔 <고 녀석 맛있겠다>라는 책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게 그러니까,,,,  올해 봄이었던가, 여름이었던가..

도서관에서 발견하고는 읽어주면서 나도 벙긋거렸는데,  냉정한 먹이사슬의 고리로 연결된 아기 안킬로사우르스와 티라노사우르스 사이에서 돋아나는 끈끈한 정에 대한 이야기가 공룡계의 신파조 드라마스럽다고나 할까?  뭐,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다. 
그 이후로 도서관에 가면 유빈이가 자주 이 책을 다시 찾길래 아예 한 권을 사줬는데, 아직까지도 종종 들고와서 읽어달라고 하는 책 중 하나다.  그 땐 작가의 이름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전집물 가운데 <잠깐만, 잠깐만>이라는 책을 빌려왔을 때, 또다시 유빈이가 계속해서 읽어달라고 조르는 거였다.  스스로 자기는 예쁜 것만 좋아하는 공주병에 걸렸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유빈이가 파란 배경에 가시복어, 곰치, 가오리, 상어.. 그런 험상궂은 어류들이 등장하는 책이 좋아서 자꾸 읽어달라니 희한하다 싶었는데, 어쩐지 그림풍이 낯익어 찾아보니 허걱, <고 녀석 맛있겠다>를 쓴 작가와 같은 사람이 쓴 거였다.  

그런데 그런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개구리의 낮잠>이라는 책이다.
 개구리가 나무 위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데 사마귀, 들쥐, 도마뱀, 독수리 등등의 천적들이 잠든 개구리에게 차례로 접근한다.  적들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태평스럽게 잠들어 있는 개구리를 보고 있자면 어쩐지 긴장되고 조마조마한데, 결국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 덕분에 개운하게 무사히 잠에서 깨어난다는 이야기다.  이 작가, <잠깐만, 잠깐만>에서도 그랬지만 먹이사슬을 이용한 이야기 전개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중에서야 확인한 사실이지만 유빈이가 이 작가를 처음 만난 건 <고 녀석 맛있겠다>에서가 아니었다.  찾아보니까 훨씬 전에 <누구 똥?>이라는 책으로 먼저 만났었다.  리뷰를 찾아보니 유빈이가 22개월 무렵이었나 본데, 배변에 관련된 그림책 중에서 특히나 재미있어 한 그림책이라고 쓴 걸로 보아 그 때부터 미야니시 타츠야라는 작가에 대한 집착(?)의 징조가 있었던가 보다.

 

 

 

<내일의 나는...>은 가장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었다.  운좋게 도서관에서 찾아서 빌려왔는데, 말마따나 대박이다.  2주일 내내 매일 하루에 한 두번씩 읽어달라고 들고오더니 며칠 전부터는 아예 자기가 들고 외워서 읽는다.  물론 토시 하나 안틀리게 외우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그림책을 들여다 보면서 즐거워한다는 이야기다. 
내용은 이렇다.  햄버거는 좋아하지만 피망이랑 당근은 싫어하는 아이, 겁쟁이라서 작은 강아지도 무섭고 캄캄한 데서 혼자 자는 것도 싫고, 주사 맞는 것도 무섭고, 바닷가에 가면 무서워서 물에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아이지만 "내일의 나는.." 그 모든 걸 극복해서 멋져질 거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내일의 나는' 뭔가 멋지게 달라질거라는 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참 심심했을 텐데, 마지막 엄마가 안아주는 게 좋은 응석꾸러기인 '나'의 이야기가 하하 웃음짓게 한다. 
이 작가, 어떻게 하면 엄마랑 아이가 그림책 읽으며 함께 행복할지 다 알고 있는 걸까?  결국, 이 책도 새로 장만하고 말았다.  지금 유빈이 책꽂이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내일의 나는...>이랑 구입한 <내일의 나는...>이 나란히 꽂혀있다.  유빈이는 그걸 보고 "엄마, 이 책들 똑같이 생겨서 꼭 쌍둥이 같아."하며 흐뭇해 한다.

크리스마스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미야니시 타츠야의 크리스마스 책도 있다. 바로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란 책이다.

책의 분위기는 <고 녀석 맛있겠다>랑 비슷하다.  원수지간인 두 종 간의 따뜻한 사랑의 무드를 담았다.  <고 녀석 맛있겠다>에서 안킬로사우르스의 순진함에 티라노사우르스의 선한 인간성(?)이 살아났듯이, 여기선 꼬마 돼지들의 순진함이 못된 늑대의 성품을 착하게 돌려놓는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  그림의 분위기로는 주로 판화 기법을 쓰는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아무튼 이제 그림의 면 안에 죽죽 그은 선들, 테두리선을 무시한 색칠, 튀는 주황색, 파랑색, 초록색, 노랑색의 조합들의 어떤 그림을 보면 "이거 미야니시 타츠야 작품 아니야?" 하면서 관심을 보일만큼 친숙해지긴 했다.

유빈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책들이 모두 "미야니시 타츠야"라는 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턱이 없다.  그저 나만 "거 참, 신기하네~~"하고 있을 뿐이다. 

내게 한 작가를 눈여겨 보게 해준 유빈아, 심하게 땡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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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내가 반한 작가의 세 권의 책이다.



 

 

 

 


 

 

 

 

바로 '유은실'이라는 작가인데,
내가 읽은 세 권의 책에 쓰여진 작가 소개 글을 종합해 보면,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원래는 덕성여대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했는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아 명지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고 한다.  <창비 어린이> 2004년 겨울호에 단편 <내 이름은 백석>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에 반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고, 헌책방에서 사 모은 40여권의 린드그렌 동화책이 보물 1호라고 한다.  
서울독산초등학교 2학년 때(<우리집에 온 마고할미>의 윤이만할 때), 구구단 외우는 게 제일 싫었단다.  텃밭이나 장독대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앉아서 외로움을 달래던 생각이 많이 나는데, 식구들은 하루에 밥을 네 끼씩 먹고 놀 궁리만 했다고 한단다. 어른들 말 엿듣기를 아주 좋아했고, 단편동화, 단편소설, 단편영화 등 각종 짧은 것을 좋아한다고.  고들빼기 김치, 보랏빛, 손때 묻은 시집, 조용필 노래도 좋아한다.  사람 중에서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제일 싫고, 책받침 중에서는 19단표 책받침이 제일 무섭다나..  

이 달에 처음 만난 작가다.  책은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만나고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만나기까지 왜 이렇게 게으름을 부렸던 걸까.  도서관에서 빨리 가자고 보채는 유빈이의 성화에 약간 펄이 들어간 보랏빛 표지가 맘에 들어 서둘러 뽑아들었던 책이 바로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었다.  유빈이가 보채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책들을 꼼꼼히 살피고 몇 권을 뽑았다 다시 꽂았다 하다가 결국 자주 읽던 작가의 책 중 하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얼렁뚱땅 어쩌다 보니 만난 작가지만,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읽으며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결국 <만국기 소년>과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까지 읽어버렸다.  그러고도 난 입맛을 다신다.  언제 또 이 작가의 새 책이 나올까, 하고.. 

황선미 님의 작품을 읽으며 아이의 심리를 참 잘 그려내는 작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작가는 아이들의 ‘심리’ 그 이상의 것을 그려내는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읽다보면 반짝이는 모래알이 떠오른다.  햇빛을 받으면 예쁘게 반짝이지만 예쁘다고 손바닥으로 싹싹 문지르다보면 까끌까끌한 질감 때문에 따끔거리는 모래알 말이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만국기 소년>,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내면에서 들끓는 치열한 갈등과 고민으로 괴로워한다.  아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속 시원히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불만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서 비읍이는 이모에게 전화로 자기와 싸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엄마를 보며 ‘나를 위로할 사람은 나뿐’이라며 쓸쓸해한다.)

작가가 정말 아이들 편에 서 있구나, 아이들 마음으로 어른들 세상의 복잡하고 너저분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어른들의 기준으로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세상이 정말 힘들 것 같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서는 비읍이와 엄마 사이의 갈등과 할머니와 살고 있는 친구 지혜의 가난하고 쓸쓸한 가정환경이 비읍이가 가장 고민하고 속상해하는 문제다.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는 작가의 다른 책들에 비해 유쾌한 편이기는 하지만 주인공 윤이가 그리 밝고 명랑한 아이 같지는 않다.  간혹 가사분담의 문제로 갈등을 빚는 엄마 아빠 틈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듯 하고, 그래서인지 우락부락하고 씩씩하며 힘이 세고 일을 잘하는 마고할미(?)는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호기심을 갖고 다가가 어쩌면 의지하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만국기 소년>의 경우엔 어른의 세계가 더 리얼하게 그려진다.  아이들은 어른들 때문에 불안하고 고달프며, 어른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고 안쓰럽다고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상황 때문에 힘들고 속상하지만,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그 어려움을 묵묵하게 감내할 수밖에 없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속의 ‘그러게 언니’를 제외하면 아이를 이해해주는 어른이 눈에 띄지를 않는다.  오히려 어른을 이해하려는 아이들의 안간힘이 가슴 짠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세 권의 책들은 마음에 참 커다란 자국을 남겼다.  까끌까끌하고 따끔따끔하고 얼얼하고 욱신거린다.  아무래도 책이 가진 서정적인 힘이 참 큰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을 참 잘 대변하고 있고, 그 대변하는 말투가 참 단단하고 깔끔하고 예리하다.

앞으로도 얼렁뚱땅 우연히 좋은 작가를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길을 가다가 주은 돈으로 복권을 샀는데 제대로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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