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에서 나온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이라는 책이 있다. 옛이야기 그림책들을 조목조목 비교하고 살펴서 구전된 옛이야기의 화소들을 지나치게 생략하거나 변형하지 않고 잘 담아냈는지, 글과 그림이 서로 소통하며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는지 등등을 분석해 놓은 책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옛이야기 그림책들이 활발하게 출판되고 있지만, 어떤 그림책이 제대로 된 그림책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았는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꽤 분명하고 확실한 기준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야기를 다루면서 오누이가 똥이 마렵다고 둘러대면서 호랑이로부터 도망치는 대목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다. 이 대목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지혜와 용기로 호랑이와 맞서 처음으로 이기는 통쾌한 대목'이라면서 '옛사람들의 이야기철학, 삶의 지혜, 해학을 잘 느낄 수' 있으며 '공포와 웃음이 교차하는, 긴장미와 골계미가 절묘하게 배합된 대목'이라는 것이다 . 

그러면서 '똥 마렵다고 둘러대는 대목'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대부분에서 생략되어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그 대목이 들어간 그림책으로 시공주니어 본이 유일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글과 그림의 부조화, '옛이야기 보여주기'와 '옛이야기 들려주기'의 차이가 낳은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호랑이는 절대 악'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림에서 해학과 익살을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송수정이 그렸어야 할 그림은 달아나는 오누이의 겁먹은 표정이 아니라 어수룩한 호랑이와 기 싸움을 벌이는 오누이의 침착하고 당찬 표정이다. 그림으로 표현해야 할 분위기는 오누이의 마음속에 자리한 거대한 공포가 아니라 오누이와 호랑이가 벌이는 기 싸움을 어른들의 구수하고 익살스러운 입말로 들으면서 아이들이 느꼈을 이야기판의 분위기다.'라고 꼬집고 있다. 
  
반면에 국민서관 본 <해님달님>'글과 그림이 조화를 잘 이룬 책, 글과 그림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책'으로 분석하고 있다. '생략과 압축의 묘미를 잘 살려서 그림이나 글에 놀라울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다'고 하면서 '송재찬의 간결한 글과 디테일을 생략하고 민화기법을 응용한 이종미의 호랑이 그림은 하나로 잘 어울린다'고 칭찬한다.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이 2009년 말에 출간되었는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를 다룬 부분은 <창비어린이> 2007년 봄호에 실렸던 글이다.  아마 그래서 2007년 이후에 나온 그림책들이 이 글에서 논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2009년 3월에 출간된 <해와 달이 된 오누이>(김성민 글,그림/사계절)가 이 책에서 다뤄지지 못한 것이 좀 아쉽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여우누이>도 같은 작가의 책인데, 사실 난 이 작가의 판화그림이 으스스하면서도 나름 귀염성이 보여서 좀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튼 이 그림책은 '똥이 마렵다고 둘러대는 대목'이 간결한 글로 들어 있을 뿐 아니라 국민서관 본에도 다른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그림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기 손가락' 모티브까지도 담겨 있다.   

'아기 손가락' 모티브는 호랑이가 집안으로 들어와 오누이의 젖먹이동생을  안고 가서 잡아 먹는데 '오도독 오도독'소리를 듣고 오누이가 "엄마, 뭐 먹우?" 하니까 "부잣집에서 콩 볶은 거 줘서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오누이가 '우리도 좀 주우.'하니까 아기 손가락을 던져주는 부분이다. 원래 구전설화에서 오누이가 호랑이로부터 도망가려고 결심하는 것은 치마 밑으로 삐죽 비어져나온 호랑이 꼬리를 봐서가 아니라 호랑이가 던져준 아기 손가락을 보고서라고 한다. 이 그림책에서는 호랑이가 아기를 잡아먹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고 다만 호랑이가 포대기에 싸인 젖먹이를 안고 가는 장면만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한 가지 더 눈에 띈 것은 오누이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나서 팔과 다리를 내어주는 장면이다. 대부분의 그림책에서 너무 잔인해서 그런지 이 장면을 아예 생략해버린 책들도 있고 아니면 이 장면을 글로만 이야기하고 지나가는데 이 책은 그림으로도 표현해 놓았다.  

 

 
이 장면은 엄마가 이미 팔다리를 호랑이게 주고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호랑이를 만난 것이다. 팔을 잃고 헐렁한 저고리 소매와 어머니를 잡아먹으려고 껑충 달려드는 호랑이의 모습이 잘 표현된 것 같다. 하지만 어른들의 생각으로는 끔찍하게 상상되는 이 장면이 생각보다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물론 엄마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충격일 수 있지만 그 점에 대해서 위 책의 저자는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어머니의 몸이 조금씩 해체되는 과정은 매우 제의적이다. 오누이가 빛을 발하는 해와 달로 탄생하기 위해서 어머니가 자신의 목숨을 어둠의 제물로 바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중략).... 그렇기에 어머니의 몸이 잘려나가는 과정을 어린 영유아에게 들려주지는 못하더라도 유년기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들려줄 필요가 있다.'  

시공주니어 본에서 오누이의 겁에 질린 표정과 크게 과장되게 그려진 호랑이가 문제가 되었었는데 이 그림책에선 어떨까.

똥 마렵다고 둘러대고 오누이가 도망치는 장면이다. 판화라서 절제된 색을 썼기 때문인지 이 그림책의 그림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톤으로 되어있다. 요란한 색으로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를 확대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도망가는 오누이의 표정에서도 경계심은 느껴지지만 공포를 담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앞 그림 속 호랑이의 모습도 아둔해보이고 이야기 내용과는 다르게 그렇게 사납거나 무서워보이진 않는다. 오누이가 꾀를 잘 쓰면 어수룩 속아 넘어갈 수도 있을만큼 헛점도 있어 맹수 호랑이라는 정체성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골탕 먹여도 좋을만큼 만만해보이기도 한다.  
이만하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운 이야기라 그림에서까지 공포를 표현할 필요는 없다는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의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호랑이를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가 숨은 오누이의 모습이다. (왼쪽 그림에서 오누이 부분을 좀 더 크게 찍은 것이 오른쪽 그림이다) 어린 누이동생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지고 있고 곁에 앉은 오빠의 얼굴엔 살짝 근심이 묻어난다. 나무 밑에서 올려다보며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냐고 묻는 호랑이는 충분히 멍청해보인다.   

글도 간결하다. 나쁜호랑이, 가여운 오누이 어쩌구 하는 구구절절 너저분한 설명도 없고 단순하고 깔끔하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만약 이 책이 2007년 이전에 나왔다면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에 분명 좋은 예로 소개되었을 것 같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야기가 새롭게 패러디된 그림책도 있다.  <호랑이 잡는 도깨비>라는 책인데 '이형진의 옛이야기'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제목에서 눈치를 챈 분들이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인간과 호랑이의 입장이 바뀐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탐욕스러웠던 호랑이는 이제 피해자가 되고, 호랑이에게 쫓겼던 인간은 호랑이를 사냥하는 가해자, '인간'이라는 이름의 도깨비가 된다. 마을잔치를 도우러 간 엄마 호랑이가 '갑자기 튀어나와 번갯불 한 방'으로 목숨을 앗아가는 도깨비에게 희생당한다. 엄마 호랑이 가죽을 얻은 도깨비는 어린 호랑이 가죽도 얻기 위해 오누이가 있는 호랑이 집을 엄마 호랑이처럼 꾸미고 찾아간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구전설화처럼 인간도깨비는 젖먹이 아기 호랑이를 먼저 해친다. 이것을 본 누이 호랑이가 오빠 호랑이를 다그쳐 썰매를 타고 호수로 달아난다.
 

 

 

 

 

 


하지만 대나무를 갈라서 타고 오는 인간도깨비에게 잡힐 것 같아지자 누이 호랑이가 하늘님께 살려달라고 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호수의 얼음이 갈라지면서 호랑이 오누이는 차가운 호수에 빠져 죽고 인간도깨비는 허둥지둥 호숫가로 몸을 피해 도망간다. 죽은 호랑이 오누이는 하늘로 올라가 하늘님을 만나 억울함을 따지는데 하늘님은 '목소리는 들렸지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단다'하면서 해와 달을 만들기로 한다. 원래의 이야기처럼  게으름뱅이 오빠는 해가 되고 바지런한 누이는 달이 되는데, 오누이가 환생해서 만들어진 해와 달은 단순히 빛을 밝히는 기능에 머무는 게 아니라 호랑이 잡는 도깨비를 감시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빗대어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인간의 오만과 잔인함을 꾸짖는 내용이라서, 어쩌면 하늘의 해와 달도 이미 오래전에 호랑이 편으로 마음을 돌렸을 것 같기도 해서 가슴 뜨끔거리며 불편해지는 책이었지만 그 내용이 담고 있는 경고의 메시지는 의미있게 다가왔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원래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는 달리 부지런하고 영리한 누이와 게으르고 둔한 오빠가 등장한다는 것인데, 아마 옛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주체적인 여성상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이 좀 거칠고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겨서 익살과 해학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는 점 (인간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니 익살과 해학은 어울리지 않을 법도 하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해와 달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연상시키는 바람에 좀 뜬금없었다는 점이 좀 아쉽다. 너무 어린 아이들에겐 적당하지 않을 것 같고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를 충분히 알고 좀 심각하고 진지한 고통의 패러디를 소화할 수 있을 만한 적어도 초등이상이 읽는 게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 하면 떠오르는 책이 하나 더 있다. 우리의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이담 그림/보리)다.  

'권정생 선생님이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라는 부제가 따라 붙은 이 책은 30년 전 6.25 때 죽은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의 영혼이 전쟁과 분단에 대하여 나누는 이야기가 우울하고 어둡다.  그리고 이 그림책 속에 들어있는 '해와 달이 결코 될 수 없었던 오누이 이야기'는 가장 슬프고 비극적이고 무섭다. 이 이야기에서는 호랑이가 두 마리 등장한다. 두 마리가 함께 엄마를 잡아먹고 오누이가 있는 집으로 향한다. 앞문과 뒷문에 각자 자리를 잡고 서로 자기가 진짜 엄마라며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장면은 등골이 오싹하도록 으스스하며 긴장감이 극으로 치닫는다.

 

 

 

 

 

 

아이들은 서로 이쪽이 진짜 엄마라며 싸우다가 앞문 뒷문을 다 열어버리고 만다. 기다리고 있던 호랑이는 아이 하나씩을 물고 사라진다. 구해주는 하느님도 없고, 구전설화에서 볼 수 있는 익살과 해학도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힘을 모으는 방법,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을 선택하지 못 한다. 절대 강자인데다가 음흉스러운 호랑이를 당해내지 못 한다.   

 

 

 

 

 



이 이야기는 민족분단의 비극에 대한 은유다. 그림책 속 오푼돌이 아저씨의 가슴에서 30년 동안 흐르고 있는 피의 근원적 상처를 보여주고 전쟁으로 죽어 이 땅을 떠돌고 있는 아픈 영혼들을 위한 구슬픈 진혼곡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을 읽다보면 이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서늘해져 온다. 유난하게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시끄러운 요즘의 작태를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지. 갑자기 산처럼 든든한 분들이 그리워진다. 그립지만 다시 뵐 수 없는 분들이 너무 많아졌다.  

옛이야기의 화소들을 확인하고 그 화소들이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지 파헤치고,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보여주는 이야기가 되었을 때 그림과 글이 아이들 마음에 어떻게 가닿을지 세심하게 살피는 것은 나처럼 평범한 독자가 할 수 있는 몫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옛이야기 그림책들이 좀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착각하는 일 없이 다시 확인하고 점검해서 그 가치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야 그 견고한 바탕 위에서 더 훌륭한 패러디가, 현대에 맞게 재해석된 이야기들이 쌓여갈 수 있는 게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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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2-10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이달의 당선작으로 강력 추천해요.
그림책 공부가 정말 필요한데 이 책을 선물로 받았으면서 여직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어요.ㅜㅜ

섬사이 2010-12-10 17:13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 그렇게까지 마구 칭찬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옛이야기와 어린이책>, 재미있었어요.
외국 그림책에 대한 논의들은 이루어지는 편인데
사실 옛이야기 그림책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쵸?

토토랑 2010-12-1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하나 밖에 못하는게 아쉬울 정도에요~ 잘 보았습니다.

섬사이 2010-12-10 17:1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토토랑님.^^

마녀고양이 2010-12-13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섬사이님.

페이퍼를 열심히 읽다보니, 조금 무서워져 버렸습니다.
몇년 전에 <그림 동화>를 뒤집어서 해석한 책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그런 비슷한 느낌인데여. ㅠㅠ. 으아, 아기 손가락.

하지만, 굉장히 흥미롭고 새로운 사실에 대한 페이퍼 잘 보았습니다.

섬사이 2010-12-14 10:2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반가워요.
이것 참, 차려진 게 변변하지 않은 서재라
반가우면서도 좀 민망하고 그러네요. ^^;;
아무튼 정말 고맙습니다.
(이 부끄러움은 뭐지???)
 

 지난 번에 독서모임에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었다. 그러고 나니 뭔가 괴테의 문학작품으로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아서 집에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어 들었다. 사실은 <괴테와의 대화>라는 책을 읽어볼까 했는데 워낙 분량이 많은 책이라 기권. 

중고등학생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을 때는 사랑이야기 치고 참 재미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한창 유행하던 하이틴 로맨스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에 비하면 베르테르는 얼마나 초라했던가.  

이 나이에 다시 읽으려니 나의 풋풋했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살짝 감개가 무량해지는 듯하기도 했는데, 여전히 베르테르의 매력은 느껴지지 않고 점점 "베르테르는 오버쟁이~"라는 느낌만 확실하게 다가왔다. 질풍노도문학을 이끌었던 괴테의 낭만주의적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게 독서모임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슬픔'은 제대로 못느끼고 베르테르의 '오버'가 좀 안타깝기는 했다. 미안하지만 나 같아도 베르테르 같은 인물은 사양이다. 뭐, 베르테르도 나를 사양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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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04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중학교때인가 국어선생님이 베르테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엄청 반해가지고 책을 읽었었는데 아주아주아주아주 지루하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읽으면 좀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지만, 그 때 읽었던 지루함이 너무 생생해서(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지루했다는 느낌만이 살아있어요) 다시 읽어볼 엄두가 안나네요.
그런데 중고등학교때 읽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분이 여기 또 계셨군요! 하핫

섬사이 2010-12-06 11:31   좋아요 0 | URL
베르테르의 안티팬이 여기 또 한 분 계셨군요! ^^

마노아 2010-12-0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학교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어요. 저는 무척 재밌었어요. 막 울면서 봤다능...
근데 지난 주에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당첨되어서 보러 갔는데, 베르테르가 롯데를 사랑했고, 그녀는 시집 갔고, 베르테르가 자살했다는 것 말고는 내용이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슬펐어요. 흑... 뮤지컬은 좋았어요. 10만원자리 좌석을 공짜로 봤다는 것이 더 흐뭇했다는 게 맞을 테지만요. ㅎㅎㅎ

섬사이 2010-12-06 11:34   좋아요 0 | URL
젊은 베르테르를 읽으면서 좀 과장된 몸짓이 오가는 연극무대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실제 연극에선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막 울면서 읽었다니, 저랑 너무 차이가 나잖아욧!^^
제가 감당하기엔 베르테르의 감정이 너무 넘쳤어요.
제 감성의 그릇이 너무 작나봐요..쩝~!!

비로그인 2010-12-04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아름다운 여인들은 죄다 결혼한 여인들이군요.

섬사이 2010-12-06 11:40   좋아요 0 | URL
헉! 그런가요?
'남자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치명적 매력이 남아있는 유부녀라...
음....
그거 좋은 거죠? 아닌가?
뭐,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지만..(그게 자랑이냐? -.-)
 

 

 

 

 

 

  

읽어줄 때마다 머리가 가려워지는 책, <엄마 머리에 이가 바글바글>. 유빈이는 이 책을 무척 재미있어 한다.  리뷰에 썼듯이 '이'라는 새로운 생물체에 대한 호기심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를 가지고 놀아보지, 뭐, 하는 생가이 들었던 것이다.  다섯 살 아이에게 갑자기 '이' 확대 사진을 보여줘서 기겁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이' 인형을 만들자고 했더니 대뜸 "어떻게?"하고 되묻는다.  글쎄... 아직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만들어야 일을 크게 벌리지 않고 손쉽게 끝날 수 있을까..  아이랑 어떻게 만들까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찾아낸 방법이다.  

1. 신문지를 뭉쳐서 풀어지지 않게 테이프로 대충 두어번 돌려준다.


 

2. 모양이 잡힌 신문지 뭉치를 호일로 감싸준다.  

 

3. 다리와 더듬이를 붙여주고 얼굴을 꾸며준다.  내키면 매직으로 옷도 그려주고 스티커를 붙여서 예쁘게 꾸며준다.  

 

4. 완성 (이의 수컷과 암컷, 한 쌍이다.) 

 

 "엄마, 내 머리에 이가 생겼어!!!"  포즈~~

초간단으로 인형 두 개가 완성되었다.  바글바글하게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딸아이의 요구를 거절하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인형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고민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고.  집에 이런저런 만들기 재료(눈 스티커, 모루? 등)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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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9-12-02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 볼 좀 봐! *_*

섬사이 2009-12-03 00:07   좋아요 0 | URL
^^

마노아 2009-12-0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자기같은 피부! 아, 꽉 안아주고 싶어효!!!

섬사이 2009-12-04 11:16   좋아요 0 | URL
맨실맨실 부드럽고 따뜻하죠.
기꺼이 안아보실 기회를 드릴게요.
그런데 마노아님, 조카들 있지 않아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아기도 안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더 그 느낌을 안다니까요. ^^

꿈꾸는섬 2009-12-0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너무 멋진데요. 저희도 한번 해봐야겠어요.^^

섬사이 2009-12-05 20:34   좋아요 0 | URL
아주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심심할 때 한 번 해보시면 괜찮을 거예요. ^^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심심해하던 유빈이랑 지난 번 <천하무적 조선소방관>을 읽으며 "아이랑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걸 실천에 옮겼다.   사실 독후활동 같은 건 거의 해보질 않았는데, 유빈이는 엄마가 색다른 걸 함께 하자니까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천하무적 조선소방관>에는 인물을 표현하는 낱말이 많이 나온다.  '쫑알쫑알 시끄러운 떠꺼머리 총각, 빈둥대다 쫓겨난 마당쇠, 천하장사 돌쇠, 굴때장군 깜상, 남산골샌님, 똥퍼 아저씨, 꺽다리, 땅딸보, 꼽꼽쟁이, 느림보, 모도리, 덜렁이, 비실이, 꺼벙이, 변덕쟁이, 쌍둥이, 비렁뱅이...' 우리 말에 그 감칠나고 재미난 면모가 잘 드러나는 낱말들인 것 같다.
이 중에서 '꼽꼽쟁이'는 얼마 전에 읽은 <신기생뎐>이라는 소설에서도 나왔던 낱말이다.  '성격이 급하고 좀스러운 사람을 놀리는 말"이다.   

다섯 살 유빈이에겐 어려운 낱말이다.  포스트 잇을 잘라서 낱말을 적고, 하나씩 주면서 낱말을 설명해줬다.  그리고 그 낱말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아서 붙여주라고 했다. 

 나름 고민하면서 이름표를 하나하나 붙여줬다.  그 결과가 이렇다.



'변덕쟁이'와 '덜렁이'를 선정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꺼벙이'가 빠졌네.. ) 아이 눈에 충실하게 붙인 건데, 꽤 잘 찾아낸 것 같다.    '똥퍼 아저씨'는 아이가 가장 즐거워하는 인물 중 하나.  똥모양의 머리스타일이 아이 마음에 쏙 드나 보다.

하는김에 옛날에 쓰던 소방기구들도 찾아보자고 했다.  책 뒷편에 '남산골샌님이 들려주는 조선 소방관 이야기'에 나오는 겹복, 급수생, 도끼, 불채, 숙마긍, 장제, 철구, 수총기를 찾아보기로 하고 같은 방법으로 포스트 잇을 붙여봤다.  








 

 

  

 이것도 설명을 일일이 읽어줘야 했지만 잘 찾아낸 편이다.  수총기는 뒤에 궁궐에 불이 났을 때 등장해서 따로 붙였는데 사진으로 찍질 못했다.   

독후활동이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유빈이가 좋아하는 걸 보니 어쩌다 한 번씩은 해줘도 괜찮겠구나, 싶다.  독후활동은 '교육','학습'으로만 생각했는데 '놀기'로 생각하고 아이랑 나랑 가끔 한 번씩 '즐긴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해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책에 포스트 잇을 붙인 채 그냥 놔뒀더니 아이는 한 번씩 펼쳐 보고는 뿌듯해 한다.  자신의 성과물로 여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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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12-01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이 책이었군요, 오늘 받아본 창비어린이 겨울호 표지 그림이요.
꼽꼽쟁이는 저에게 맞는 말인 것 같아서 찔끔~ ^^

섬사이 2009-12-02 18:00   좋아요 0 | URL
창비어린이, 저는 오늘 받았어요.
정말 이 책의 그림이 표지네요. ^^
hnine님이 꼽꼽쟁이라굽쇼?
제가 느낀 바로는 '빈틈없이 야무진 사람'이라는 뜻의
모도리 같은데요. ^^
 


나는 가끔 우리 남편을 “시체놀이 하는 리모콘 대마왕”이라고 부른다. 거의 매일 12시를 넘겨 귀가하고 가끔은 밤샘작업도 해야 하는 남편은 늘 피곤하다. 그래서인지 집에 들어오면 생각을 끄고 TV를 켠다. 그게 마치 세상을 사는 유일한 낙인 것처럼. 그런 남편의 모습에 때론 화가 나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그러다 슬며시 건강이 걱정스러워지기도 한다. 남편들이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 테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참고 살아가는 부분도 분명 많을 테지만, 아이들이 아빠의 정서적 부재상태에 익숙해진 채 자라나지 않게 마음을 써주었으면 하는 욕심 아닌 욕심을 부려보게 된다. 그런 생각에서 그림책 속에 드러나 있는 아빠들을 찾아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림책 속 아빠들은 현실세계의 아빠를 반영하는 동시에 아이들의 아빠에 대한 바람을 투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우리 교육현실이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 있다는 반증이고 ‘교육’이라는 말이 흉하게 변색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제대로 돌아가는 바람직하고 건강한 사회라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아빠의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게 지극히 당연하니까. 그림책 속 아이들도 아빠의 관심을 애타게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아빠의 사랑 속에서 신나게 놀고 싶어 한다. 그림책 속 아이들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아빠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아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꿈나라로 떠나버린 아빠들   

아빠, 일어나세요 (에르하르트 디에틀 지음, 이진영 옮김, 문학동네어린이)는 우리의 일요일 아침 풍경과 너무 닮아있어서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아빠는 느긋한 아침잠에 빠져 있는데 아빠와 놀고 싶은 아이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부터 아빠를 깨운다. 귀엽고 깜찍한 아이가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는데도 아이에게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침대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아빠의 인내심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아빠를 깨워보겠다고 갖은 애를 쓰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고 나서야 아이가 궁금해진 아빠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이를 찾아다닌다. 욕실에서 아이를 찾아낸 아빠는 이제 아이와 놀아줬을까? 천만에 말씀, 아빠는 아이를 안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못 다 잔 잠을 청한다. 이 결말을 보는 순간, “음,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책이군.”하며 감탄할 뻔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의 일요일 아침 풍경과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1) 자는데 와서 아이가 법석을 떨어대면 우리집 남편은 짜증을 낸다는 점, 2) 법석을 떨던 아이가 갑자기 조용해지면 일어나기는커녕 오히려 평화로운 깊은 잠에 빠진다는 점, 3) 아빠가 더 자자고 꼬신다고 아이가 얌전히 아빠 옆에서 다시 잠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책은 잠꾸러기 아빠에 대한 아이의 최소한의 희망사항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 희망사항이 이 책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집 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 즐거워했던 것도 이 책에서 아빠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아빠, 피곤해서 아무리 잠이 많이 쏟아진다고 하더라도 저를 방해꾼으로만 여기지 말고 아빠와 놀고 싶은 제 마음을 봐 주세요. 저를 잊어버릴 정도로 잠에만 빠져있진 말아주세요.’하는 간절한 메시지. 
 

아빠 두더지의 코고는 소리 (가노도 에이코 글, 사사키 요코 그림, 지경사)는 큰아이가 어렸을 때 구입했던 책이다. 『아빠, 일어나세요』가 아이가 아빠에게 자기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희망이 깔려있다면 『아빠 두더지의 코고는 소리』는 피곤한 몸으로도 최선을 다하려는 아빠와 그런 아빠의 일을 돕다가 아빠를 더 이해하게 되는 아기 두더지가 등장한다. 가족구성원들 간의 상호 이해라는 측면에서 『아빠, 일어나세요』보다 좀 더 진일보한 그림책이라고 할까.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자기를 내어주는 일이야 부모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이며 기쁨이지만, 그래도 때로는 부모들도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속이 상하기도 하고 문득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효자가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부모입장도 헤아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니까. 이 그림책에서 두더지 아빠는 땅속 굴을 파는 일을 한다. 다람쥐의 새집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특히나 동물들의 동면기가 가까워지면 더욱 바빠진다. 곰이나 뱀, 개구리들이 겨울잠을 잘 수 있도록 집을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더지아빠에게는 다섯 명의 귀여운 장난꾸러기 아들들이 있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아이들은 아빠에게 매달려 같이 놀아달라고 떼를 쓴다. 비행기놀이 해주세요, 기차놀이 해주세요... 하지만 그 때마다 아빠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드르렁 코를 골며 곯아떨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이 꼬마 두더지들이 기특하게도 아빠 일을 돕겠다며 따라나선다. 아빠 일을 도와주는 대신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비행기 놀이를 해달라는 조건을 붙이긴 하지만. 그 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약속대로 아이들과 비행기 놀이를 시작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여느 때처럼 잠으로 빠져들고 아이들은 아빠가 코를 골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빠의 등 위에서 저희들끼리 비행기 놀이를 한다. 그러나 열심히 아빠를 도와준 아기 두더지들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라 어느새 코를 골며 잠이 들고 만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아빠 두더지와 아기 두더지들은 함께 코를 골며 꿈속에서 비행기 놀이도 하고 기차놀이도 한다.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위의 두 책 중 한 권을 골라 읽어줘야 한다면, 아마 이 책이 좀 더 읽어주기에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왜 늘 아빠는 피곤에 절어서 축 늘어져 있는지를 이 그림책이 아빠 편에서 설명해주니까.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 한 가지는 이 책 속 두더지 아빠는 바쁘고 힘들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아이들에게 표현해 주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왜 늘 지쳐있는지, 왜 집에선 잠만 자려고 하는지를 이해시키기는 쉽고도 간단하다. 아이들은 착하고 마음이 넓어서 기꺼이 자기 부모를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빠들의 피곤함이 아이와 아빠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엄마와 아내로서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뭐라 설명해주기가 참 어렵다. 아이는 아빠를 이해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아빠들은 어떤지, 아이들을 이해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바쁜 아빠들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장은수 옮김, 비룡소)는 아빠로부터 소외된 소녀 한나의 이 야기다. 내가 써놓고도 흠칫 놀랐다. ‘아빠로부터 소외’되었다니.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하지만 이 책 속에서의 한나와 아빠의 관계는 ‘소외’라는 말의 의미보다 더 끔찍할 만큼 아프게 다가온다. 그림책을 펼치다 한나의 아빠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이 아빠, 죽은 사람 같구나.’했다. 차가운 푸른 공간 안에서 창백한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아 아이와 자기 사이에 철조망처럼 신문을 펼쳐든 그 모습은 생명의 불이 모두 사그라진 사람처럼 보인 것이다. 그에 비해서 ‘나는 아직 여기 살아 있어요.’하는 표시처럼 빨간 셔츠를 입은 한나는 아빠의 곁을 맴돌지만 결국 어두운 거실 한 구석에서 자기의 외로움을 TV로 달래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아빠에게 자그마한 고릴라 인형을 선물 받은 생일날 한나에게 굉장한 일이 일어난다. 고릴라 인형이 커다란 진짜 고릴라가 되어 한나와 함께 동물원, 극장, 식당에도 가고 잔디밭에서 춤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고릴라는 한나에게 말한다. “한나야, 이제 돌아가야지? 내일 또 보자.”

다음 날 아침, 아빠에게 고릴라 이야기를 하러 뛰어 갔더니 어라, 아빠가 변했다. 한나처럼 빨간 셔츠를 입고는 한나를 ‘귀염둥이’라고 부르며 함께 동물원에 가자고 한다. 아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아빠 바지의 뒷주머니에 꽂힌 바나나가 그 힌트가 되지 않을까? 예전에 어디선가 앤서니 브라운에게 바나나는 ‘동심’ 또는 ‘상상력’의 상징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아빠들에게 필요한 것도 얼마간의 동심, 약간의 상상력이 아닐까. 그것이 창백한 푸른빛의 아빠를 생동감 있는 빨간 티셔츠의 젊고 활기찬 아빠로 변신시키는 비밀이 아닐까. 아빠들이여, 젊은 오빠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앤서니 브라운의 마법의 바나나를 꼭 챙기시길 부탁드린다.

아빠는 언제와(낸 그레고리 글, 캐디 맥도날드 덴톤 그림, 임정원 옮김, 파란하늘)에도 한나처럼 빨간 옷을 입은 엠버라는 소녀가 나온다. 표지의 파르스름한 배경 속에서 엠버는 새빨간 코트를 입고 한 손으로 머리를 괸 채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어쩐지 『고릴라』의 한나와 닮아있다. 자칫하면 아이들에게 아빠는 차갑고 냉정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경고인 것처럼 보였다. 다행인 것은 엠버가 한나에 비해 좀 더 밝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엠버는 ‘거의 날아가는’ 것처럼 그네를 탈 수 있고, 그림 그리기와 그림책 읽기를 좋아하고, 신발끈을 혼자서 맬 수도 있고, 눈 속에서 미끄럼타기도 잘 한다. 여러 가지로 유능하고 활달한 엠버는 경쾌한 빨간 코트와 이미지가 딱 떨어지게 잘 맞는다.

그런 엠버에게 나쁜 일이 하나 있다면 아빠가 엠버를 데리러 유치원에 늦게 오는 것이다. 강당복도에 앉아서 코트 단추를 목까지 꼭꼭 채우고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빠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기다림’이라는 거, 어른들에게도 참 힘든 일인데 4시부터 7시까지 장장 세 시간 동안의 기다림은 어린 엠버에게 너무나 가혹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기다림’이 힘든 건 기다리는 시간 동안의 지루함이나 따분함 때문이 아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유난히 더디 흐르게 마련이고, 그래서 평상시의 시간보다 몇 배는 더 길게 늘어져 버린 그 심리적 시간동안 내가 ‘기다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無用의 존재라는 느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버린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유기되어 버린 듯한 슬픔, 그리고 날 그렇게 버려둔 사람에 대한 미움까지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는 것이 기다림이 어렵고 힘든 이유일 것이다. 기다림의 인내를 배우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기는(?) 법을 배우기엔 앰버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 똑똑한 엠버는 금세 기다림의 방법 한 가지를 터득한다. 그건 ‘상상하기’다. 엠버는 상상 속에서 하늘을 날아 아빠를 홀로 달에 남겨둔다. 그러고는 늘 바쁘다, 힘들다, 피곤하다, 하면서 곁에 있는 ‘아주 중요한 사람’을 잊어버리곤 하는 세상의 아빠들에게 어서 빨리 ‘아주 중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은 사랑스런 퍼포먼스를 벌인다. 그동안 아빠는 달에서 ‘홀로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적막하고 외로운 일인지를 배우는 상상상이다.

앰버가 입고 있는 생생한 빨간빛의 코트와는 대조적으로 아빠가 입은 회색 코트와 바지, 검정 구두는 아빠가 얼마나 삭막한 잿빛 세계에서 살아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니 앰버가 아빠에게 가르쳐주려는 것은 단지 기다림만이 아니라 따스한 사랑과 관심이 살아 있는 생생한 감정의 세계까지도 포함된 건 아닐까? 그렇게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뺨을 부비고, 입을 맞추며, 미소를 나누고, 서로의 가슴에 사랑을 흘려보내는 시간이 앰버는 그리운 것일 터이다.

바쁜 아빠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전업주부인 나도 그림책 속 앰버의 아빠처럼 잿빛 옷을 온몸과 마음에 휘감은 채로 아이를 대한 적이 많으니까. 어른이란 게 그런가 보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합리화에 너무 능수능란한 나머지 쉽게 인정하고 고치려하질 않으니 말이다.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는 건 내가 잿빛이기 때문일 것이다. 온 세상 모든 엄마와 아빠들이 내 마음, 내 웃음, 내 다정한 눈빛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잊는 법 없이 살아가기를 빈다.   



아빠는 괴로워

아빠는 하나 아기는 열(베네딕트 게티에 지음, 조소정 옮김, 베틀북)어쩌다 아기 열을 아빠 혼자 키우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설정 자체에서 고달픔이 배어나오는 그림책이다. 열 명이나 되는 개구쟁이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워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굵은 윤곽선에 서툴게 칠한 그림이지만 지칠 줄 모르는 장난기를 지닌 아이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참 잘 드러난다. 집안일과 가족들 뒷바라지에 지친 주부들이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꿈꾸듯이 이 그림책 속 아빠도 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집과 회사를 오가야 하는 지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저녁마다 아이들 몰래 배를 만드는 아빠에게 나는 어느새 감정이입을 하고 우리 아이들은 다소 엽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재미있어 한다.

배를 완성한 아빠는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부탁하고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 고요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아빠의 모습은 그야말로 평화롭다. 그동안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열흘간의 단잠에서 깨어나 아빠가 한 일은? ‘그릇도 열 개, 스푼도 열 개’의 아침을 차린 일. 갑자기 고요한 평화가 허전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아기 양육이 주는 피곤함, 어려움, 스트레스...하지만 그 모든 걸 넘어서는 아기들에 대한 부모들의 사랑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다. 이 책이 기분 좋은 이유는 바로 그 당연한 진실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아이양육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라는 설정이 산뜻하고 참신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는 약간의 고소함(?)을 느끼며 더 즐거울 수 있다.

쉿쉿! (김춘효 지음, 백은희 그림, 비룡소)에서도 아빠의 고생담이 펼쳐진다. 엄마가 아파 몸져누운 날, 아빠는 집에서 밀린 집안일을 한다. 그림책 분위기 상 엄마가 며칠 동안 집안일을 못한 것 같고, 아마도 휴일인 어느 날 밀린 집안일을 아빠가 하는 중인 것 같다. 그림책을 펼치면 오른쪽 면에는 심심한 아이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왼쪽 면에는 글과 함께 집안일을 수행중인 아빠의 그림이 작게 나온다. 아이에게 아빠는 자꾸 “쉿,쉿!”하며 조용히 하라는데 아이의 인형들이 하나씩 뛰어나와 놀자고 하며 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다. 심심한 아이의 상상놀이겠지만, 서툰 집안일을 해내느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아빠에게는 아이를 이해해줄만한 여유가 없다. 그래도 이 아빠, 세탁기도 돌릴 줄 모르는 우리 남편에 비해서는 참 꼼꼼하고 능숙한 편이다. 설거지와 빨래는 물론이고 소파 밑까지 구석구석 청소도 열심히 한다. 아이 방에서 황소까지 튀어나오는 지경에 이르자 아이와 아빠의 팽팽한 대립구조가 펼쳐진다. 마침내 아빠의 입에선 “조용히 하랬잖아!”하는 고함이 터져 나오고 아이와 아빠는 같이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같이 그림책을 보던 유빈이는 아빠와 아이의 점층적인 대립구도를 내내 불안해하더니 아빠와 아이가 함께 울음을 터뜨리는 부분에서 웃음이 터진다. 긴장이 말끔히 해소되는 개운함을 맛보는 듯하다.

아빠는 아이를 이해하기로 한 걸까? 아이랑 같이 실컷 울고 난 아빠는 아이와 이불 속에 들어가 웃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엔 또 다른 걱정이 싹튼다. ‘어? 그럼 하다 만 집안일은 언제 할 건데?’ 하는.

『아빠는 하나 아기는 열』도 『쉿,쉿!』도 집안일에 무심한 아빠들에게 가사와 육아의 어려움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진 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는 우리가 꿈꾸는 행복의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직장일과 집안일로 지치고 힘들 때에도 결국 우리가 돌아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자리는 우리의 가정이고 아이들 곁이라는, 이 뻔하고 간단한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주지시켜 주는 것 같다. 어쨌든 아이들은 우리 부모들이 ‘견디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아닌가.


우리가 꿈꾸는 아빠

『코끼리 아빠다!』 (마이클 그레니엣 그림, 김정화 옮김, 파랑새)는 판타지다. 폴란드 출신 작가이면서 일본그림책 상을 받은 다소 특이한(?) 이력의 작가는 크레파스로 대충 칠한 듯 거칠 느낌의 그림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코끼리를 갖고 싶어 하는 유치원생 딸 키아라를 위해 스스로를 코끼리로 변신시키는 이야기는 이 세상 아이들에게 얼마나 감동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앞에서 이야기한 다른 아빠들에 대한 책과는 다르게 이 책의 아빠는 생동감 있고 아이들의 세계와 아주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코끼리가 있으면 우리 키아라가 좋아서 폴짝폴짝 뛰겠지?’하며 생각에 잠긴 아빠의 모습은 어쩐지 아이보다도 더 철없어 보이기도 한다. 커다란 코끼리가 가져다 준 의문의 상자를 받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알약과 연고들을 이용해 코끼리로 변신한 아빠. 코끼리가 되어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간 아빠를 키아라는 기뻐하며 반겨 준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키아라가 코끼리 아빠의 등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장난감 가게 앞에서 말한다. “있잖아, 저 사자, 코끼리 아빠랑 친구하면 좋을 것 같지 않아?” 이 책을 읽어주던 나는, 내가 사자가 되어야 하나, 하고 순간 고민했다. 작가는 키아라의 저 말 한 마디로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는 모든 어른들을 코끼리 아빠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코끼리 아빠의 세계는 아이의 동심과 하나가 되는 세계가 아닐까. 그게 가능한 건지는 몰라도 아이와 놀 때만큼은 아이 수준으로 내려가 함께 즐기고 노는 아빠들의 모습은 행복하고 멋져 보인다.

놀이터의 왕 (필리스 레이놀즈 네일러 지음, 놀라 링그터 멀론 그림, 보물창고)의 아빠는 등장하는 방법부터가 심상치 않다. 다른 아빠들과는 달리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거나 세차를 하고 있다. 가정 안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 그림책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아빠의 모습이다.

‘새미’라는 아이는 ‘놀이터의 왕’이라고 불린다. 놀이터에 온 친구들을 괴롭혀 주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새미 때문에 케빈은 하루하루가 괴롭다. 용감해지기 위해 배트맨 팬티에 스파이더맨 티셔츠에 말굽 장식의 청바지를 입어도 새미는 두려운 존재다.

놀이터에 놀러나갔던 아들 케빈이 새미의 협박에 기운이 쭉 빠진 채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아빠에게 새미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고자질을 하고 있는 거다. 아빠가 나서서 새미를 혼내달라고 은근히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그림책 속 아빠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금방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놀이터로 달려가 새미라는 아이에게 발끈,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등장부터 포스가 남달랐던 이 아빠는 아이의 말을 귀담아 들어준 뒤에 새미의 협박이 실현 불가능한 협박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해준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애정 가득한 관심을 보이며 도와주는 다정한 아빠는 아이 뿐만이 아니라 엄마 입장에서도 바라는 아빠의 모습이다. 특히 아들에 있어서는 엄마의 힘만으로는 2% 부족한 뭔가가 있는데, 아들과 통하는 남성성을 지닌 아빠의 도움이 절실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빠는 어디쯤 왔을까? (고우리 지음, 문학동네어린이)에는 퇴근길에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오실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막내 아이가 서 너 살 무렵에 좋아했던 책인데,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그림책 속 아빠의 모습에 아이도 나도 반했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 중에 하나인 아이스크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말이 나올만큼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어쩌다 아이들을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르면 무슨 맛을 고를까 고민하는 아이들의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표정이 얼마나 깜찍하고 귀여운지 모른다.

아이들의 그 깊은 고민을 이 책은 즐겁게 해결해 준다. 갖가지 아이스크림을 층층이 높이 쌓은 콘을 들고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아빠의 모습. 무너져 내릴 것처럼 휘청거리는 아이스크림. 이 책을 펴서 들여다보던 우리 막내는 아이스크림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어떤 아이스크림이 맛있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고민 끝에 “엄마, 난 이 아이스크림 먹을 거야.”하며 그림 속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늉을 하고는 행복하게 웃음 짓기도 한다.

드디어 아이가 애타게 기다리던 집으로 돌아온 아빠. 딩동~하고 초인종을 울렸는데, 아빠의 손에는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종이가방이 하나 있을 뿐이다. 아빠를 기다리던 아이는 잠들어 버렸다. 아이가 깨어나면 아빠가 사온 아이스크림이 자기가 상상했던 그 아이스크림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식탁에 가족이 모여 앉아 단란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그림이 있다. 안심이다. 현실의 아빠가 상상 속 아빠보다 좀 못해도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아이들이라 참 다행이다. 내가 엄마라는 걸, 내가 아빠라는 걸 즐기며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조금은 좋은 아빠, 좋은 엄마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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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1-3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페이퍼네요. 어디에 칼럼을 쓰니나요? 멋집니다

섬사이 2009-11-30 14:15   좋아요 0 | URL
칼럼이라니요.. 그냥 재미삼아 쓴 거예요.
멋지다고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

순오기 2009-12-0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훌륭해요. 별찜!
내가 읽은 건 두 권 뿐이네요.ㅜㅜ

섬사이 2009-12-01 18:35   좋아요 0 | URL
아빠에 관련된 그림책을 찾아보니까 그 양도 많고 굉장히 다양하더라구요.
돌아가신 아빠, 장애를 가진 아빠, 새아빠, 기러기 아빠 등등...
다 올리기도 그렇고, 몇 권만 뽑아서 글을 써봤어요.
아빠들의 사랑고백에 대해서도 쓰려다가 그만뒀답니다. ^^

토토랑 2009-12-0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멋지네요 ^^;;
저희 집에 있는건, '아빠를 어떻게 깨우지' 와 '고릴라' 뿐인데
보고싶네요

섬사이 2009-12-01 18:36   좋아요 0 | URL
가벼운 마음으로 산뜻하게 읽을 수 있는 건
<아빠, 일어나세요>, <코끼리 아빠다!>, <아빠는 어디쯤 왔을까?>인 것 같아요. <놀이터의 왕>에 나오는 아빠는 정말 멋져요. ^^

마노아 2009-12-0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아빠표 책이에요! 울 형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 권 선물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됩니다.^^ㅎㅎㅎ 좀 반성을 느낄까요? 으캬캬캬^^

섬사이 2009-12-02 18:01   좋아요 0 | URL
반성....
울 냄푠은 <돼지책>같은 건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해요.
기분 나쁜가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