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막내의 교복 블라우스 2장, 하는 김에 큰딸의 셔츠 3장까지 다림질을 했다. 다림질을 끝내고 주방 씽크대 위에 어질러진 것들을 정리하는 동안 카푸치노를 잊고 있었다. 저녁으로 소고기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산 카푸치노는 거실 테이블 위에서 차갑게 식어버렸다. 난 식어버린 커피도 잘 마시므로 별로 개의치 않았다. 


거실에 앉아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카푸치노를 마셨다. 식은 커피도 잘 마시지만 식어서 다 내려앉은 카푸치노의 거품은 좀 볼썽 사나웠다. 12시가 넘었고, 월요일엔 아들이 6시 반에 일어나 나가야 하므로 나도 일찍 자려고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눈이 말똥말똥, 정신이 생생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앉았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는데, 책이나 더 읽자. 


2시를 넘어가도 좀처럼 잠이 찾아오지 않았다. 밤늦은 시간에 마신 카푸치노 탓일까. 예전엔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커피를 마시든 잠을 자고 못자고는 상관이 없었는데, 나의 수면과 각성은 카페인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게 안되나보다. 몸이 카페인에게 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새벽 3시쯤엔 시집, 김사인 시인의 <가만히 좋아하는>을 펼쳤다. 봄밤이니까 '봄밤'을 읽고 자야지. 시 '봄밤'을 펼쳐 읽었다. 그런데 어, 내가 왜 이러지. 웃는데 눈물이 나는 건 뭐야. 처음 읽는 시도 아닌데, 뭐 이런 경우가...


 

추적추적한 봄밤에 이런 시는 너무 따뜻하고 정겹다. 술 한 잔 마시고 불콰해진 낯으로 고단한 삶 따위 뭐 대단키나 하냐는 듯이, 끌어당기는 소매 뒤로 쓸쓸함을 감추고 호기를 부리는 봄밤. 그 투박하고 서글픈 정서가 진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때까지도 저녁에 먹은 소고기는 오랜 시골마을 터줏대감 어르신처럼 내 뱃속에 근엄하게 좌정하고 있었고, 내 위는 엄한 할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앉아 불편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 같았다. 카페인은 오래도록 막강하게 각성의 힘을 유지하고 있었고 내 마음은 시 하나에 무너져 어두컴컴한 거실 스탠드 조명 아래서 주책맞게 눈물이나 찔끔대고 있었으니... 참으로 길고 힘든 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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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8-03-20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오랜만이라 반가워서 덧글 남겨요. 막내가 벌써 교복입는 중학생인가요?@@

섬사이 2018-03-21 11:47   좋아요 0 | URL
아,순오기님, 반가워요.
여전히 책에 대한 열정 가득히, 잘 지내고 계시죠?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고 쑥스럽다 하고 있었는데,
반겨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막내는 올해 중학생이 되었어요.
사춘기와의 대격돌을 각오하며 지내고 있어요. 하하하.

순오기 2018-03-2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렇게 오랜만에 소식 들으면 친정식구를 만난 듯 기뻐요.^^ 셋째니까 사춘기의 대격돌도 내공으로 슬기롭게 잘 넘기실 듯...♥

섬사이 2018-03-22 22:01   좋아요 0 | URL
친정식구처럼 반갑다고 하시니 마음이 덩달아 포근합니다.
(이참에 ‘언니‘로 모실까요? ^^)
사춘기 대격돌 쯤이야, 뭐 귀엽게 봐줘야지요.
자주 뵈어요. 순오기님.
 

저녁에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 가서 소고기를 잔뜩 구워먹었다. 남편은 소고기랑 같이 맥주와 소주를 마셨다. 평소에는 맥주만 두 병정도 마시는데, 오늘은 소주까지 시켜서 소맥을 만들어 마셨다. 그러고는 기분이 좋은지 오다가 파리바게트에서 빵을 사주고, 집근처 카페에서 카푸치노도 사줬다. 아이들에게는 생과일주스를 사줬다


살금살금 비가 오고 있었다. 매화나무엔 작게 꽃망울이 맺혀서 얼핏 보면 빗방울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봄이 왔다. 아마 어딘가에는 벌써 민들레가 피었을 거다. 작년 314,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첫 민들레와 딱 눈이 마주쳤었다. (난 매년 첫 민들레를 본 날을 기록해 놓는다.) 그보다 4일이 더 지났고, 오늘 비가 내리니 잘하면 이번 주 안으로 민들레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벙긋 좋아졌다. 이렇게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건 뱃속에 든든한 소고기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배속 중간쯤에 소고기가 걸쳐져 있다. 뱃속에 있는 든든한 소고기를 느끼면서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 조금 읽었다. 뭔가 소고기를 잔뜩 구워먹고 온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소고기를 구워먹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알라딘 서재에 다시 또 오랜만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정말 어쩌다 한 번씩 글을 올린 적이 있지만 제대로(?) 리뷰를 올리거나 한 건 거의 4년만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나는 작은 마을공간에서 1년간 일을 했고,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 공간은 실무자로서는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지만 이용자이자 활동가로 보낸 시간은 거의 10년인지라 일을 그만두고 나니 허전함이 밀려왔고, 그건 마치 헤어진 첫사랑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나를 다시 재정비해야 했다. 10년의 인연을 이어왔던 공간, 또 그 공간의 사람들과 연이 끊어지는 허전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덧 내 나이가 재정비가 필요한 나이에 이르러 있었다. 뭐랄까. 지금까지 살아오던 시간과 다른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자리잡고 비켜주지 않았다. 대단한 일을 준비한다는 게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앞으로 뭐하며 살면 좋을지가 난감했다.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잘 읽히지도 않았다. 글을 쓴다는 건 더 어려웠다. 생각이 붕붕 떠다니기만 했다. 붕붕 떠다니는 생각을 잠재우려고 손바느질도 하고, 도예공방을 다니며 그릇을 빚고, 사계절 내내 온갖 과일청을 만들었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 일년 동안은 그렇게 손을 움직여서 생각과 말을 지우고 싶었다. 그건 마치 낙서로 가득찬 칠판을 깨끗이 지우는 것과 비슷했다. 


이제야 깨끗이 지워진 칠판을 마주한 느낌이다. 다시 칠판에 새로운 걸 써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의자에 앉아 빈 칠판을 바라보며 뭘할까 궁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단은 다시 책을 읽고, 어색한 리뷰를 써보기로 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적는 조용한 시간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중이다. 


봄비가 내리고, 내 배는 든든한 소고기를 품고 있으니 책 읽기에 더없이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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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3-1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자주 만나요, 섬사이님! :)

섬사이 2018-03-19 13:54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다락방님의 응원이라니, 든든합니다!

라로 2018-03-19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 님!! 많이 반갑네요~~~!^^ 저도 섬사이 님이 알라딘에 자리를 빈 그정도 왔다갔다 했는데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아침! 저는 예전 나비에요. ^^*
잎으로 지주 만나요~~~!!

섬사이 2018-03-19 14:02   좋아요 0 | URL
아, 나비님!! 나비님, 아니 라로님도 한동안 알라딘에 뜸하셨군요.
하하, 어쩐지 학교에 혼자 지각한 줄 알고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같이 지각한 친구가 있어서
혼자 교실 문 열고 들어가지 않게 돼서 덜 뻘쭘해 다행이다,
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네, 앞으로 자주 만나요.
 

 

지난 토요일 서울시청 앞 광장. 겨울방학에 들어선 막내와 막내의 친구를 데리고 스케이트를 타러 다녀왔다. 재작년 겨울에 막내랑 막내 친구들이 다함께 스케이트 강습을 받으면서 서울시청광장 스케이트장과 안면(?)을 텄다. 인터넷으로 예매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1시간에 1000원이라는 착한 이용료와 스케이트와 헬맷까지 무료대여 해주는 친절함, 그리고 매점과 카페를 갖춘 세심함이 무척 매력적이라서 막내가 가자고 조르면 안된다고 거절하기가 어렵다.  

 

올해는 스케이트가 새 것으로 교체되어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를 신기며 더욱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참 좋았고. 게다가 아이들이 그새 또 훌쩍 자라서 이제 지켜보거나 따라다닐 필요가 없어서,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동안 나는 스케이트장이 보이도록 전면 유리로 만들어진 카페에 들어가 카푸치노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스케이트 장 카페에서 읽은 책은 이승우의 <오래된 일기>였다.

 

 

  

 

 

 

 

 

 

 

 

 

 

 

 

내가 읽은 이승우의 첫 책이다. 다락방님 서재에서 이승우라는 소설가에 대한 칭찬글을  읽은 기억이 있어서 도서관 서가의 책들을 둘러보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주저하지 않고 빌려왔다. 소설은 침울하고 무겁고 칼칼하고 쓸쓸했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일상을, 그리고 그 일상의 무심한 몸짓과 언어에 담긴 마음을, 참 예리하게 잡아내는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뜻밖의 일이 불쑥 끼어들어 삶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해버리곤 한다. 끼어든 것들이 삶을 이룬다. 아니, 애초에 삶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찍 끼어드느냐 늦게 끼어드느냐 하는 문제만 있을 뿐이다. 끼어드는 것이 없으면 삶도 없다.

(18쪽)

 

나는 하나마나한 말을 했다. 어떤 말을 해도 하나마나한 말이 되고 마는 상황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마나한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아니, 어떤 말을 해도 하나마나한 말이 되고 마는 상황이야말로 정말로 하나마나한 말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24쪽)

 

이 책에 들어있는 첫 단편 <오래된 일기>에서 만난 문장들이다. 어찌보면 말장난스럽기도 한 이 문장들에게 나는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끔 생각지도 않았던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서 내 일상을 휘젓고 흔들어 놓는 바람에 짜증이 나거나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결국엔 그런 것들이 성장시키기도 하고 곤두박질치게 하면서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나는 '꼭 필요한' 말보다 '하나마나 한' 말을 더 많이 하고 산다. 썰렁한 농담, 예의상의 인사치레, 영혼없는 맞장구, 혹은 과잉반응의 말들. 하지만 그런 말들이 '꼭 필요한' 말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불필요한'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부분 상황이 그런 말들을 요구했으니까.  한마디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고, 내 삶이지만, 내 삶도 세상만큼이나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떼어내서 하루씩 삶을 연명하는 거랍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내놓아야 하는 거지요. 그것이 인생이에요. 떼어낼 것이 없어지면 삶도 멈추는 거겠지요. (91쪽)

 

내 맘대로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 하고 피식 웃었다. 내 삶이지만 살기 위해 떼어놓아야 하는 삶이 있는 거다. 그래서 내 삶을 통째로 다 내 맘대로 쓸 수가 없다. 때론 내가 쓸 수 있는 삶에 비해, 떼어놓아야 할 몫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삶을 어디에, 누구에게 떼어놓았을까,

 

인생이 얼마나 통속인지 보라고, 아무리 외로운 척해도 통속을 넘어갈 수 없는 게 인생이라니까. (126쪽)

 

이 사람의 소설에 끌리는 이유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이 쓴 이야기에는 외로운 사람의 쓸쓸한 삶이 참 많이 등장하는데, 등장하는 인물들마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이 작가는 '척'하지 말란다. 그래봤자 통속이고 신파라고, 그런데 그말이 더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프고, 그래서 또 더 통속같고 신파같고.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소주잔 기울여주지 않고는 못베길 것 같은 심정이 되고 만다. 비록 나처럼 술 한 잔 못 마시는 사람이라고 해도.

요즘은 소설에 마음이 끌린다. 알기 위한 책 읽기에는 좀 시들해졌고, 느낌 있는 책들에 대한 욕심이 커진 것 같다. 한동안은 좋은 소설들을 찾아 읽고 싶다.

 

일요일에는 막내랑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스무디가 먹고 싶다는 막내를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 이디야에 들어갔다. 막내는 딸기요거트플랫치노를, 나는 밀크티를 주문했다. 요즘 커피는 하루 한 두 잔 정도로 줄였는데, 또 뭔가 마시고 싶을 땐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집에서는 우유를 끓이고 어쩌고 하기 귀찮아서 끓는 물 조금에 홍차 티백을 진하게 우리고, 꿀을 좀 넣고, 그냥 우유를 부어 마신다. 카페에서 밀크티를 주문하면 진짜 홍차를 우려내서 만들어주지 않고 밀크티 파우더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달고, 뒷맛이 깔끔하지 않다. 그래서 이디야에서 밀크티를 주문하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티백이, 들어있다. 우리 아파트 단지 옆 '8월'이라는, 작지만 예쁜 카페에서 끓여주는 밀크티(여기는 티백 말고 홍차잎을 용기에 담아 우려준다)  다음으로, 파우더를 쓰지 않는 밀크티를 주는 카페는 이디야가 두번째다.  뭐, 카페를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니까 좀 더 잘 찾아보면 몇 군데 더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탐탐과 커피빈, 카페베네 그리고 공차는 파우더 밀크티였던 걸로 기억한다.

버스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밀크티의 유혹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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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12-31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마셨던 밀크티는 대부분 다 파우더~~~.ㅠㅠ 너무 달죠~~~.
차잎으로 우려내 만든 밀크티 먹고 싶네요~~~. 티백도 말고~~~.^^

2015-01-01 0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조용히 지나갔다.

옆지기는 일 때문에 부산에 갔다가 크리스마스 새벽에 산타처럼 조용히 들어왔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에 잠든 막내 머리맡에 선물을 놔주고, 또 이렇게 한 해가 가는구나 싶어서 뒤숭숭.

이불 속에 들어가서 <감각의 박물학>을 읽다가, 들어오는 옆지기랑 몇 마디 나누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감각의 박물학>을 읽는 도중에 해가 바뀔 것 같다.

이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으며 읽는 책이 되겠구나.

 

 

이브에 문학교실 마지막 쫑파티를 했다. 명색이 '문학교실'인데 그 이름에 걸맞는 이벤트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리집에 있는 책들 중에 몇 권 골라서 책나눔 이벤트를 했다. 도서관 곳곳에 쪽지를 숨겨두고 보물찾기처럼 쪽지를 찾아오면, 쪽지에 적힌 숫자에 해당하는 책을 선물로 주었는데, 역시 아이들은 책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게다가 시즌이 시즌인만큼 아이들은 학원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열리는 마켓데이며 파티에 참석하느라 스케줄이 바빴다.

문학교실 쫑파티 하는 날에도 영어학원에서 파티를 마치고 온 아이, 문학교실 파티 끝나면 교회 파티에 갈 아이, 이미 선물을 가방 가득 받아서 들고 온 아이.. 준비한 피자도 과자도 음료도 과일도.. 시큰둥.. 아이들은 이제 파티도 시시하다.

얘들은 무슨 재미로 사나.... 싶었는데, 그래도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고, 가위바위보 몇 번에 즐거워하고, 실뜨기 대결을 벌이며 으쓱해 하고, 찾아온 보물쪽지 모아서 번갈아 다시 숨겨놓고 찾는 놀이를 하며 진지하게 집중했다.(나눠줄 보물도 다 떨어졌는데!!)

문학교실 과정을 다 끝내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개운할 것 같았는데, 막상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그리 신 나지 않았다. 나름 신경쓰고 준비한 파티가 재미있지 않아서 속상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파티가 끝나고 나서 아이들과 마무리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한 게 아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많이 갖고 있는 알라딘 서재의 장서가 분들에 비하면 우리집에는 책이 많다고 볼 수는 없는데, 그런데도, 요즘 집에 있는 책들이 마음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책 사들이기에 여념이 없던 시기가 있었고, 그러다가 책에 대한 욕심을 덜어내야 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도서관을 이용했다. 요즘은 장바구니에 욕심나는 책들을 잔뜩 담아놓고서 마지막 순간 '주문하기'를 클릭하기 전 잠시 멈춤, 결국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둔 채 결제를 며칠 미루게 된다. 그렇게 며칠 미루다가 결국 주문하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보관함으로 옮겨지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거나, 삭제를 당하기도 한다. 덕분에 책이 더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가끔 집에 있는 책들을 가만히 둘러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좀 부끄럽다. 욕심에 사두고는  읽지 않은 책들이 태반인데, 그 태반의 책들이, 읽고 싶은 욕심에 산 책들이 분명한데도 더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왜 샀지?'하는 의구심이 솟아나는 책들도 여러 권 된다. 새해에는 책장을 정리해서 작고 간소하고 소박하고 단출한 서가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책을 소비하고 소유하는 나의 태도가 변한 것과 맞물려 내가 책을 왜 읽는지에 대한 의문도 마음 한 켠에 자리잡게 되었다. '왜' 읽는지에 대한 의문은 앞으로 책을 어떻게 읽을 건지에 대한 고민도 불러왔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갔을 때, 한 손에 분홍색 텀블러를 들고 서가의 책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은발의 할머니를 보았다. 서가 옆 책상에는 짙은 갈색 목도리를 두르고 회색 헌팅캡을 쓰신 은발의 할아버지가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도서관 문을 연지 얼마 안된 이른 시간이었다. 아마도 노부부는 아침을 먹고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고 나서 함께 집을 나섰겠지, 오늘은 날씨가 추우니 감기 걸리지 않게 잊지말고 목도리 둘러요, 준비하는데 뭐 그렇게 오래 걸려, 퉁명스럽게 한 마디씩 주고 받았을지도 모르지, 도서관까지 오면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하게 걸어왔는지도. 그래도 그 노부부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우리 부부로 말하자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함께 도서관에 갈 일은 없을 게 뻔하다. 옆지기는 책보다는 TV를 좋아하고,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집에서 읽는 걸 더 좋아하니까. 그래도 도서관에서 본 노부부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책을 평생의 친구로 삼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이 흔하게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렇게 늙어갔으면 좋겠고.

 

예전에는 책을 읽는 목적이 여러 가지였다면, 이제 여러 목적들을 털어내 버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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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2-28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만한 이벤트나 파티에 의도한만큼 호응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서운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워낙 깜짝 놀랄만한 사건 사고들이 거의 매일 뉴스를 터뜨리는 세상에 살다보니 우리 모두 그렇게 무감각해져가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파티를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은 아름답고 따뜻하지 않을까요? ^^
마지막줄에 여러 목적들을 털어내련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목적과 명분, 의의를 채워넣기 보다 그저 툴툴 털어내고 초심만 남겨두는...

섬사이 2014-12-28 00:23   좋아요 0 | URL
제가 책읽기에 대해 가진 첫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어릴 때 책에 대해 막연한 동경 같은 걸 갖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알라딘 서재를 시작하면서는 한때 지나치게 의욕에 불탔던 적도 있고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초심이랄 것도 없어요.
책과 내가 서로 친구가 된다면, 부담스러운 친구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

세실 2014-12-26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퇴직하고 나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 읽으려고요^^ 신랑은? 아마 심심해서 따라가지 않을까요?
책 욕심 버렸고, 정가제 되고 나서는 1회 구입에 그쳤습니다.
아이들과 집에 있는 책 한 리어카 버리고 나니 개운해요. 더 버리려고 합니다. 중고책으로 파는건 엄청 번거롭더라구요^^
우리 새해엔 더 가뿐하게 살아요^^

섬사이 2014-12-28 00:23   좋아요 0 | URL
네, 새해에는 가뿐하게요.
몸무게도 가뿐해지면 좋겠어요. ^^

순오기 2014-12-2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쏟아 무언가 열중하는 건 다 아름답다 생각해요.^^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사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고요. 노년을 아름답게 보내는 것도 어려운 과제 같고...

섬사이 2014-12-28 00:29   좋아요 0 | URL
마음을 쏟아 무언가에 열중하다 보면, 그 `무언가`를 뺀 나머지 것들에 무심해진다는 게 저의 문제예요.
그래서 결국 일상이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면 그 흐트러진 일상에 짜증이 나고.. ㅠㅠ
하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결국 삶을 간소화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마음을 비우는 것도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요...?
노년은.. 어렵고도 두렵고도 신비로운 과제예요.

무스탕 2014-12-2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대로 읽어야지, 읽고싶어! 그래서 사들인 책인데 읽어주지 않고 책장에 모셔 놓기만 하니 그 애들이 저를 맨날 노려보는것아 부담이기도 하고 내가 저걸 장식용으로 산건가 싶어 이젠 정말 책 구입을 신중히 하려고요.
새해에도 우리 인연 많이 쌓아요~ ^^

섬사이 2014-12-28 00:42   좋아요 0 | URL
저도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저 책들을 살 돈으로 좀 더 가치있는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적 허영심을 채우려고 책을 사들였던 건 아닐까.. 그런 자괴감이 들어 한숨이 나올 때가 있어요.
내게 의미있고 소중한 책들로만 채워진 책장 하나면 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성이 지성이랑, 크리스마스는 즐겁게 보내셨나요?
새해에는 좀 더 자주 뵐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라로 2014-12-28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위안을 받습니다. ㅎㅎ 저희는 이번에 미국으로 이사하면서 책을 많이 버릴 수밖에 없어서 마음 아픈 경험을 했지요. 그래서 그런가 책에 대한 욕심이 예전 같진 않네요~~~그런데 책뿐 어니라 다른 욕심도 예전같지 않은 것 보면 많이 늙었구나 싶어요. 멋진 노부부처럼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고 싶다정도의 꿈은 아직 가지고 있지만요~~~^^;;;

섬사이 2014-12-29 20:43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이젠 남편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라고 물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요.
특별히 먹고 싶은 건 없는데, 옆에 먹을 게 있으면 계속 먹어요.
그래서 먹고 싶은 건 없어도 살은 꾸준히 찌죠. ㅠ,ㅠ
멋진 할머니가 되는 거, 저의 노년에 대한 로망이에요.
 

추운 날씨. 버스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내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좀 애잔스럽다. 그림책 <엄마 마중>에서 추운 겨울날 전차 정거장에서 코끝이 빨개진 채로 엄마를 오래오래 기다리고 있던 꼬마 생각이 나곤 한다. 겨울 버스정류장, 추위에 어깨를 잔뜩 옴추리고 발을 동동거리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옆엔 그 꼬마가 서 있는 것 같다.  내 옆에서 나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꼬마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금방 올거야"하고 말을 걸면, 나혼자 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힘이 덜 든다.

 

왜 운전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난 운전면허도 없다고 하면 다들 좀 놀란다.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건, 내가 길눈이 어둡고 겁이 많아서다. 조수석에 앉아 차를 타고 가다가도 옆에 커다란 트럭이 지나가면 바퀴 속으로 우리차가 빨려들어갈 것만 같고, 옆에 차가 갑자기 끼어들면 운전자보다 내가 더 놀란다. 그러니 내가 운전을 하면 서울시내 교통체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 내가 지목되고, 수배령이 내려지고, 결국은 체포되어 면허는 취소되고, 서울에서 추방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운전을 하게 되면 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오직 운,전,만,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싫어서다. 바깥 풍경을 샅샅이 볼 수도 없고, 누가 내 입에 넣어주지 않으면 맛있는 걸 먹기도 힘들고, 장난을 치거나, 잠을 잘 수도 없고,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이런 이기적인 이유로 나는 운전면허따기를 포기하고 살고 있다.  그러니까 버스정류장에 서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버스를 기다리는 것쯤은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함께 기다려주는 <엄마 마중> 꼬마도 있으니까 그럭저럭 할만 하고, 게다가 너무 춥다 싶은 날이면 외출을 안하고 버텨도 된다. 전업주부의 특권이다.

 

지난 금요일 아침, 도서관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 밖으로 햇빛만 보고 있으면 마치 봄 같았다. 훈훈한 바람이 불고 며칠 있으면 나무에 새싹이라도 돋을 것 같은 햇빛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고,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종종 걸음을 하고 있었다. 겨울잠 자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요 며칠동안 늘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생각을 했다. 더구나 요즘 읽고 있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라는 책에서 이런 글도 읽은 참이었다.

 

겨울에는 침묵이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 눈은 침묵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침묵인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은 눈에 점령당했고, 하늘과 땅은 순백의 침묵의 가장자리에 불과하다.

눈송이들은 허공에서 서로 만나 그 자체가 이미 침묵 속에서 하얗게 변해버린 땅 위로 함께 떨어져내린다. 침묵이 침묵을 만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길가에 묵묵히 서 있고, 인간의 말은 침묵의 눈으로 덮여 있다. 인간에게서 남아 있는 것은 그 모습뿐이다. 그 모습은 침묵의 이정표 같다. 인간은 가만히 서 있고, 그 사이를 헤치며 침묵이 나아간다. (114쪽)

 

그러니까 겨울의 제맛은 침묵이다. 인류가 겨울잠 자는 습성을 가지는 쪽으로 진화를 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 파티를 벌일 것이다. 고요하고 편안한 겨울잠을 빌어주며, 새봄에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면서, 포옹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따뜻한 담요와 푹신한 베개를 선물할지도 모른다.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겨울잠에 빠져들면 비로소 세상은 평화롭게 침묵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워질까. 사람들은 잠을 자느라 그 광경을 보지 못하겠지만, 겨울잠을 자지 않는 새와 물고기와 동물들은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인간들이 잠든 사이에 자기들만의 평화로운 시간들을 보내겠지.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사람들이 하나 둘 깨어날 것이다. 겨울잠에서 깬 사람들은 자기가 깨어났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베란다에, 지붕에, 창문에 노란색이나 분홍색 리본을 단다. 나는 겨울잠에서 깨어 베란다에 리본을 달면서 이웃 중 누가 잠에서 깨어났는지 리본을 보고 알아내려 할 것이고, 가까운 이웃집 베란다에 걸린 리본을 발견하면 반갑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를 것이다. 일찍 깨어난 사람들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기다리며 조용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면서 오랜 잠으로 허기진 배를 채울 것이다. 그렇게 봄은 진정한 의미의 축제같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다.

 

따뜻하고 행복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문득, 만약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겨울이 오기 전에 노인들은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다시 새봄을 볼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 이별의 말을 준비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죽음만큼 깊은 겨울잠에서 죽음의 세계로 쉽게 훌쩍 건너가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노인의 가족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노인이 돌아올 수 없는 아주 깊은 침묵의 세계에 빠진 것을 알고 베란다에, 창문에, 지붕에 검은 리본을 단다. 그러면 이웃 사람들은 그걸 보고 슬퍼하며 진심어린 애도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상상은 인간의 선함을 믿고 할 수 있는 상상이었다. 인간의 겨울잠에 대한 상상은 나쁜 쪽으로도 이어졌다. 누군가, 사람들이 모두 겨울잠에 빠지기를 기다리다가 나쁜 일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겨울잠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이 나쁜 짓을 할 수도 있다.  겨울이 없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잠을 잘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겨울을 기다렸다가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겨울과 여름이 반대인 북반구와 남반구는 어떨까. 결국, 인간은 겨울잠을 잘 수 있는 평화로운 족속이 못되기 때문에 그 쪽으로 진화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우리를 믿을 수 없어서.

 

결국 한겨울에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칼날같은 눈바람 속을 헤매고 다녀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구석기 시대, 혹은 그보다 전에 살던 인류의 조상들의 삶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거다.  버스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가는 길,  나는 내가 곰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면서 차가운 겨울 속을 열심히 걸었다. 곰은 물러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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