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를 열면 고양이가 죽는지 죽지 않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건 앎이 삶에 체화되는 방식은 아니다. 우리는 알아차린 채 다음 앎을 위해 나아가고자 하지만, 그렇게 숨가쁘게 흘러가는 앎은 결코 삶에 가 닿을 수 없다. 관용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것과, 관용의 삶을 사는 것, 관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삶이 더 중요할 것인데, 우리는 앎의 창고를 게걸스레 채우는데 삶을 소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앎이 필요한 것은, 삶을 위해서가 아닌가? 그래서 삶과 유리된 앎을 지적 ‘허영’이라고 폄훼하는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그런 것인가보다. 급한 호기심으로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고 마는 것이 아닌, 궁금함에 천천히 사유함으로써 다가서는 것.

우리는 종종 궁금해하는 것과 호기심을 같은 것으로 여긴다. 물론 두 가지 다 무관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 방식은 서로 다르다. 궁금해하는 것은 호기심과 달리 본인과 매우 밀접하게 엮여 있다. 우리는 냉철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냉철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냉철하게 궁금해할 순 없다. 호기심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늘 눈앞에 나타나는 다른 반짝이는 대상을 쫓아가겠다며 위협한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 마음은 오래도록 머문다. 호기심이 한 손에 음료를 들고 안락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발을 올려둔 것이 바로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절대로 반짝이는 대상을 쫓지 않는다. 절대로 고양이를 죽이지 않는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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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능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특정 작업만 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업이 일어나는 세계를 모델링해야 한다. 즉, 환경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적절히 행동을 변경하고 조정하면서 동작해야한다.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어야만 지능을 가진 기계라 부를 수 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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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3 (양장) - 불을 다루는 도깨비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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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분위기가 확 바뀐다. 전쟁 - 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 - 이 벌어지고, 전격전을 통해 전황을 뒤집으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3권의 주인공은 역시 주퀘도 사르마크라고 보아야 할 듯 하다. 군령자의 일원이 되어 인생에 가필의 기회를 가지게 된. 그러나 막상 인생의 정점에서 맞이한 패배를 한없이 부끄러워하던 그가, 가필하여 수정한 결과물은 덧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인생의 한 켠에 그어진 패배와 후회. 그러나 그것까지도 오롯이 하나의 총체적 인생을 만든다. 그렇다. 나를 이루는 것 중, 떼어낸 후 버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덧없는 가필에 매어달리지만, 우리는 인생의 현재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가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시간은 미래로부터 시작해 지금을 지나 과거로 흘러간다. 다가오는 미래를 맞이하려면, 현재를 머무는 과거를 흘려보내야 한다. 주퀘도 사르마크는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결국, 또 하나의 패배를 적립하였을 뿐이다. 우리는,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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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놀은 생존 자체가 최우선의 목적이 되고 있는 이 험악한 북부 땅에서 꿈을 이루려고 모여드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이 아무리 반나절 동안의 전격적인 발굴이라하더라도 이곳에 모여들기 위해 사람들이 소비해야 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또한 그들이 포기하거나 잠시 방기해 두었어야할 일들 또한 작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는 롭스 같은 자가 예외적인 경우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하루를 버티는 것이 힘든 시기일 것이다. 오레놀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지 잠시 고민했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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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2 (양장) - 숙원을 추구하는 레콘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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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전반부를 마무리짓는 권이다. 3권부터는 시기가 급격하게 건너뛴다.

1권에서 벌려둔 다양한 음모와 모략의 귀결을 찾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건의 흐름을 전망하게 하는, 1부의 마지막이라고 봐야겠다.

전작인 드래곤 라자, 폴라리스 랩소디 처럼 눈물을 마시는 새도 정치 시스템에 대한 틀을 베이스에 깔고 있다. 왕이 무엇인가. 나가의 수호자들이 자신의 여신을 감금하며 신의 힘을 함부로 빌려쓰는 것으로부터 한계선 북쪽과 남쪽의 봉건적 시스템은 급격하게 왕국의 시스템으로 전화한다. 그렇게보자면, 눈물을 마시는 왕에 대한 이야기인 이 책은, 인간의 정치제도에 대한 음모와 모략, 그리고 이상향을 다룬 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2권에서는 유료도로당이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아마도 이 유료도로당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집단으로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삶의 목적을 가지고 길을 걷는 이들의 의지를 통행료로 환원할 뿐, 걷는 길을 평가하지는 않는. 통행료를 낼 수 없는 이들의 처지를 함부로 동정하여 원칙을 훼손하진 않지만 그 길 위에서 함께 걷는 이들이 동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어찌보면 타자 님은 고대 공동체에의 이상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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