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영도 단편선 : 에소릴의 드래곤, 샹파이의 광부들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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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는, 어느 때까지는 '이영도'라는 키워드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가장 많았더랬습니다. 자칭, 타칭, 이영도 씨의 팬인지라, 관련 포스팅이 많았던 탓이 크겠지요. 벌써 4년하고도 7개월이 지났지만,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념판' 출간 때 대충 추려보니 A4로 120여장 분량이 되는 글들을 이래저래 썼더랬습니다. 잡담부터 비평글까지... 정말 많은 글을 썼고, 또 그만큼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 분이 바로 이영도 씨이죠.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지난 2005년에 [피를 마시는 새]의 출간이 이루어진 후에는, 중간에 [드래곤 라자]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썼던 [그림자 자국] 말고는 후속작이 나오지 않는다는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독자들은 이런저런 추측을 앞세우고 있는데, 그렇게 나오는 이야기로는, 하이텔이 없어진 후에 연재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 길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런 표면적인 핑계를 앞서 두고는 계속 연재를 구상하는데 작품의 전개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어쨌든, 작가 자신이 이야기하는 바는 아무 것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작품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을 듯 싶기도 합니다. 

 

한편, 독자로서는, 혹여 이제는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지지 않았나, 라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입니다. 독자이니, 작가가 작품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쓸데없는 곳까지 그 염려가 더해지는 법이며, 그러다보니 이제 작품으로 더이상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라는 우려에까지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영도 씨는, [드래곤 라자]-[퓨처 워커]-[그림자 자국]과 [눈물을 마시는 새]-[피를 마시는 새]로 이어지는 두 곳의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오버 더 호라이즌]-[오버 더 네뷸러]-[오버 더 미스트]로 이어지는 정말 매력적인 세계도 하나 가지고 있으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세계인 일곱 선장과 일곱 하이마스터들의 세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깃감이 떨어져서 이야기를 쓰지 못할 일은 없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카쉬냅 백작 더스번 경 칼파랑(과 사란디테)의 이야기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밑으로는 당연히 이야기의 내용이 있으므로, 혹여라도 아직 이야기를 읽지 않았는데, 그 이야기의 추이 혹은 결말을 알기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이 밑으로 스크롤바를 내리시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단... [에소릴의 드래곤]은 딱히 무슨 반전이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런 판단은 독자 개개인에 따라 다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꾸벅)

 

 

 

 

 

 

 

 

이 이야기는 에소릴의 드래곤인 란세델리암이 나리메 공주를 납치하면서 시작됩니다.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왕의 기수이자 왕국의 기사인 카쉬냅 백작 더스번 경이 곡괭이 한 자루 비켜들고는 말 한 마리 거느리지 않고 홀홀단신 공주의 구출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 더스번 경은 오만가지 추문(!)을 안고 사는 천하의 무뢰배입니다. 팔비노 교의 성녀를 겁탈했으며, 평민에게는 귀족이라는 이유로, 귀족에게는 귀족 알기를 우습게 안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며, 반란을 처리한 후에 그 수급을 나리메 공주에게 덩그러니 보내버리는, 그러나 싸움은 또 그렇게 잘 할 수 없어서 연전연승 이기지 못하는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리메 공주는, 란세델리암에게, '나는 더스번 경의 트로피가 되고 싶지 않다'고 강변하면서, 놓아달라고 애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실은 사란디테와 조빈의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름달을 보면 (여자) 늑대 인간으로 변하는 사란디테와 (남자) 사슴 인간으로 변하는 조빈. 그리고, 그 둘은 필연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조빈은 그 사랑이 변할까봐, 그 사랑이 거짓일까봐 겁을 내며 사란디테를 떠나려 하고, 사란디테는 그 사랑에 빠져 그의 상대가 누구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사랑 자체에 몰입하고 목매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더스번 경과 사란디테는 란세델리암에게 잡혀 있는 나리메 공주와 조빈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의기투합 - 응? - 해서 함께 에소릴에 잠입하고, 그 무시무시한 소문과는 다르게, 더스번 경과 사란디테는 드래곤 몰래 공주와 조빈이 잡힌 공간까지 가서 그 둘을 구출해내기 직전에 이르릅니다. 

 

나리메 공주가 더스번 경을 오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만 않았다면, 조빈이 사랑에 비겁하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네 사람은 몰래 에소릴을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조빈은 사랑에 비겁하다 못해, 사람에게도 비겁합니다. 란세델리암의 설득에 실패하고 결국 잡아먹힐 지경이 되자, '몰래 다녀간 사람이 있다'라고 드래곤에게 꼰지릅니다. 명목은, 나리메 공주를 잡아먹으려는 드래곤의 시선을 뺏아보려는 처량한 시도이지만... 결국은 사랑도 배신하고 사람도 배신하는 그런 짐승같은 행동입니다. 나리메 공주는

 

'너는 후식이야.'

 

라고 그런 비겁함에 일갈합니다.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조건을 따지고 형편을 재며 상황을 살피는 그런 것과는 정 반대의 그런 것입니다. 사랑은 조건도, 형편도, 상황도, 그 어떤 것이라고 극복할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연인에 대한 사랑이 그런 것이며, 자녀에 대한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사랑에는 경중이 없습니다. 나의 사랑의 양은, 실은 조건과 형편과 상황에 따라 그 모양이 조금씩 달라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양은 변함 없습니다. 덜 사랑하는가 더 사랑하는가는 없습니다. 사랑하는가, 아닌가만 있을 뿐이죠. 조빈은 사란디테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조빈은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않았기에, 사란디테는 조빈과 함께 보낸 나날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조빈을 구하기 위해 그 험한 에소릴까지, 그 극악무도한 더스번 경과 함께 잠입하게 되지만, 실은 사란디테도 조빈에게 속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조빈은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사람을 배신합니다. 사랑할 수 없다고 버리는 것은 짐승이나 할 짓입니다. 우리 사람은, 비록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버리지는 않습니다. 혹시라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인 것이죠. 금수만도 못하다, 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입니다. 작가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하지만, 혹여라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면, 존중하기라도 하라는 것이죠. 나리메 공주는 그랬고, 조빈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더스번 경은 사란디테의 맹목적인 사랑 - 대상과 공명하지 않고 사랑 자체에만 몰입해 있는 - 의 원인이, 사란디테가 스스로를 응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조언합니다. 실은, 사란디테도 조빈과 같은 부류였다는 것이죠. 사랑을 배신하는 것과, 사랑을 맹신하는 것은, 결국 사랑의 상대편에 대해서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이야기라고 봐야겠죠. 결국 사란디테는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길 바라게 됩니다. 그래서 에소릴의 드래곤에게 승리한 댓가로, 사란디테는 월장석을 선택하게 됩니다. 사랑의 또다른 주체인 상대편을 쳐다보려면, 사랑의 주체인 나를 먼저 똑바로 쳐다볼 수 있어야겠죠. 그 모습이 아무리 형편없고 똑바로 응시하기에는 너무 힘든 모습일지라도 말입니다. 

 

우리의 사랑에는 월장석이 필요합니다. 나의 또다른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쳐다볼 수 있어야 하는 그런 매개물 말이죠. 누구나에게 그런 월장석 같은 것이 한 번 쯤은 있을 것입니다. 그 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아마 사란디테처럼 더스번 경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얻게 될 것입니다. 

 

더스번 경은 나리메 공주를, 사란디테는 월장석을 전리품으로 챙겼다면, 나리메 공주는 왜 조빈을 전리품으로 챙겼으며, 그런 조빈을 방치한 채로 그 곳을 떠나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더스번 경의 트로피 양보욕을 충족시켜 주면서도, 자신은 그런 '짐승'과 함께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라고 하면 작가의 생각을 맞게 읽은 것일까요? 하하.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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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반양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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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선 영화를 본 이야기부터 해야할 듯 하네요. 

 

[호빗 : 뜻밖의 여정 (이하, 호빗)]을 봐야겠다고 마음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랜 시절동안 환상 소설과 벗하여 살아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래곤 라자] 이후로, 여러 권의 환상 소설을 읽고, 환상 소설 작가 몇 분을 만나고, 환상 소설 독자 몇 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환상 소설에 관한 글을 써 왔던 시간이, 그 동안 영화를 꽤나 오래 보지 않고 지내왔던 저를 영화관으로 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표는 요즘 대세(!)인 IMAX 3D HFR로 보게 되었습니다. 일전에 한 번 예매했었다가, 방학을 맞이하여 바뀌어버린 밤낮 탓에 예매를 취소했었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스크린이 내려갈 듯 하다는 위기감(!)에 부랴부랴 예매하고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IMAX를 많이 추천하시는 이유가 스케일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영화의 스케일은... 원작 자체가 박력있는 장면을 많이 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크게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다툼과 알력이 주된 장면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대규모 전투 신 같은 박력이 등장하는 장면은 한 두 장면 정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래도 IMAX가 나쁘지 않은 이유, 아니, 좋다고 해야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촬영장소인 뉴질랜드의 풍광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토리 상 부수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눈 덮인 설산이 스크린 저편에 쫙, 하고 나타날 때에는 정말... 가슴까지 시리는 느낌을, 스토리와는 별개로 받을 수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3D는... 제가 그닥 시력이 좋은 탓이 아니라 - 안경을 벗으면 자막을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볼 수도 없죠 - 그리고 서든 어택같은 FPS 게임을 30분 이상하면 심한 두통과 함께 구토할만큼 시각적인 자극에 취약한 편이라, 쾌적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간혹가다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올듯한 인물들 - 고블린 왕... 어우... 불쾌... - 과 사물들 - 날아다니는 것들이 제 앞으로 날아올 때 - 을 통해, 지금 내가 3D 영화를 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지만... 굳이 3D가 아니라도 괜찮을 듯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주요 스토리 흐름에 3D의 기술적 요소는 영화를 색다르게 만드는 첨가물 정도이지, 요리의 중요한 재료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HFR은, 기본적인 영화가 1초에 24~30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장시켜, 1초에 48프레임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촬영기법이라고 합니다. 저도 기술적인 부분을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보신 분들의 평으로는 화면의 선명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그런 기술적인 요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정말 또렷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꼭 집에서 1080D 블루레이 영상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다만... 제 영화보는 자세가 워낙 삐딱한 탓에, 약간만 자세를 흐리멍텅하게 하면 바로 초점이 흐려지는 3D 영화인 탓에 영화의 4분의 1 정도는 흐리멍텅한 화면을 본 듯 합니다. 

 

결론은... 다음에 영화를 보게 될 기회가 생기면 3D는 빼고, IMAX HFR로!

 

 

(여기서부터는 영화 내용 상의 이야기이니까, 이 영화는 모닝스타가 난무하고 스포일러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할 요소는 없지만, 영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이야기를 직접 받아들이시는 부분에 익숙하신 분들께서는, 이 밑의 부분을 넘어가시면 좋을 듯 합니다. 꾸벅.)

 

 

 

영화 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 [호빗]은 책 [호빗]의 약 3분의 1 정도의 이야기까지를 다룹니다. 

 

빌보 배긴스가 골룸의 반지를 얻고, 고블린들의 소굴에 들어갔다가 탈출해서는 늑대들을 만나 위험에 빠졌다가 독수리들의 도움을 받는 부분까지를 스크린에 담았습니다. 

 

가장 거슬리는 부분들은, 원작의 부분들과 영화의 부분들이 꽤나 많이 차이가 났다는 부분입니다. 가장 크게 차이를 보였던 부분은, 책은 드워프들과 빌보 배긴스의 모험담을 유쾌하게, 까다롭고 벅찬 부분에서도 그 상쾌함이 활자 사이사이로 흐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영화는 드워프들의 숙명 - 왕국을 되찾겠다! - 이 원작과는 많이 다르기도 하고 강조되기도 하여 보는 내내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 불편함의 가장 큰 것은, 책 [호빗]은 실은 간단한 소품처럼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영화 [호빗]은 [반지의 제왕]과의 연계고리를 슬쩍슬쩍 흘리면서 스토리에 스케일을 부여하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에는 심지어 백색의 사루만과 갈라드리엘까지 나옵니다! 리벤델에 방문했던 드워프들과 빌보 배긴스의 이야기는 책에서는 편안한 안식과 휴식을 얻었던 단 여섯 페이지의 서술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복선을 암시하고 갈등을 야기하는 장면으로 비중있게 그려집니다. 영화에서 참나무방패 소린과 큰 갈등관계를 가지는 오크왕 아조그는, 책에서는 한 번 언급되는데 불과한 '고블린' 아조그일 뿐입니다. 심지어는 참나무방패 소린과 빌보 배긴스는 영화에서 큰 갈등관계에 빠지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 종족간의 기본 품성이 달라 살짝살짝 가볍게 툴툴거리는 정도인 사이인 두 사람이, 영화에서는 특히 참나무방패 소린이 빌보 배긴스를 하찮게 여기기까지 하다니요. 

 

물론, 영화가 원작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을테지요. 모든 영화는 원작을 발판삼아 재창조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고, 심지어는 원작보다 더 나은 영화가 있기도 할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작품은 이문열 씨의 원작보다 박종원 감독의 영화가 훨씬 더 큰 임팩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호빗]의 경우에 영화의 재창조가 불편했던 이유는, 원작이 가졌던 유쾌하고 상쾌한 - 마치 호빗이라는 종족들처럼, 혹은 드워프라는 종족들처럼 - 이야기의 튀어오르는 느낌이 영화의 비장미에 그냥 묻혀버렸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골룸과 빌보 배긴스가 수수께끼 내기를 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내용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드워프들과 빌보 배긴스를 회색의 간달프가 베오른에게 소개하는 책의 장면 같은 것은 이야기를 꽤나 가볍게 진행시켜주는 장면들이고,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들이었는데, 영화 같은 경우는 기본적인 무거운 흐름에 책의 상쾌한 장면들이 얹어지는 바람에 계속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그 무거운 흐름은... 영화의 다음 편이 더 나와야 알겠지만, 지금까지는 어색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책에서 얻었던 유쾌함을 영화 속에서 많이 빼앗겨버렸다고 할까요. 어색한 갈등과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흐름은... 원작을 읽고 보았기 때문에 더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영화의 다음 편은 보겠지만, 아마 오늘 본 [호빗]의 첫 편을 영화로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호빗]의 이야기를 [반지의 제왕]처럼 만들어버리려는 시도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패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책 [호빗]은 저자인 J.R.R.톨킨이 45세때 썼던 글입니다. 기본적으로 톨킨의 세계관은 북유럽의 신화를 모티브로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가지고 2차 세계, 책에서는 '중간계 the Middle Earth'라고 명명하고 있는 곳이죠. 2차 세계는 환상 소설의 세계입니다. 현실 세계가 아닌 비현실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비현실세계가 환상 소설의 배경을 이루는 까닭은, 이야기를 하다보면 현실 배경이 아니어야 할 필요가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 배경의 이야기는 반드시 현실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현실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현실을 배경으로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환상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펼쳐 놓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2차 세계는 두 모양 중 하나입니다. 현실과 연결된 '옷장'을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현실과 전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던지. [나니아 연대 이야기]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소설은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빗] 그리고 [반지의 제왕]은 현실 세계와 전혀 연결된 고리가 없죠. '중간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따라서 현실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는 이야기를 할 때 필요한 이야기 공간입니다. 

 

[호빗]은 그런 이야기이기보다는, 조금 스케일이 큰 우화 같은 느낌입니다. 이야기는 어둡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편안한 자세로 가볍게 깔깔거리면서, 입가에 옅은 미소를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로부터 15년 뒤에 쓰여지는 [반지의 제왕]은 '절대반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간 내면의 욕망과 유혹, 그리고 강한 의지 - 혹은 신앙 - 에 대한 거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만, [호빗]은 그런 생각 없이,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사유를 이야기로부터 유추할 필요도 없고, 혹은 개인의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본연의 명암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 속에서 굳이 찾아낼 필요도 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세계(this world)가 아닌 이세계(異世界)를 들여다보면서 이세계(this world)가 주는 여러가지 짐으로부터 잠시 비켜설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책입니다. 

 

그래서 책의 부분 중에서, 위에 잠시 언급한대로, 베오른을 찾아가는 회색의 간달프와 빌보 배긴스가, 그들의 동료인 드워프 열 세 명을 소개하는 장면을 가장 유쾌하고 재미난 장면으로 꼽고 싶습니다. 회색의 간달프가 자신의 모험담을 베오른에게 이야기하면서 까탈스러운 베오른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대규모 일행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특유의 운율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영도 씨의 소설인 [퓨처 워커]에서 나오는 테페리나이스, 즉 테니스는, 이 책 [호빗]의 '골프 Golf'를 오마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영도 씨의 테페리나이스가 소설의 흐름을 방해하는 익살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톨킨도 소설의 흐름에 별 상관 없는 골프 같은 익살을 부리는 것을 보니까, 이 책 [호빗]이 참 가볍게 쓰여지고 읽혀질 수 있는 소품 같은 글이로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영도 씨의 테페리나이스가 [퓨처 워커]의 중후한 주제의식을 폄하할 정도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처럼, 톨킨의 골프도 [호빗]의 가벼움을 경박함으로 변질시키지 않을 정도로 유쾌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여세를 몰아 [반지의 제왕 (혹은, 반지의 군주)]도 영화로, 책으로 볼 예정입니다. 한 번 봤었지만, [호빗]을 바탕에 깔고 다시 본다면 더 재미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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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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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모모]를 처음 접할 때, 작가 이름이 미카엘 엔데로 번역되었었죠. 이제는 올바른 발음인 미하엘 엔데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저는 아직도 미카엘 엔데가 더 익숙하군요. 각인인가보죠.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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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환상

도대체 [모모]에 설정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버럭!)

늘 강렬한 시작을 꿈꾸는 저의, 두 번째 서평입니다. 갑자기, 불현듯, [모모]에는 설정이 없다는, 아니,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그 <설정>이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지의 군주]와 같은 치밀하고 세부적인 설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검도 마법도 없는, 단지 현실과 대비된 몽환적인 환상이 있을 뿐입니다.

설정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는 이들에게, 미하엘 - 미카엘이 더 익숙한데 말이죠 - 엔데는 훌륭한 현대 환상 소설의 전범이 됩니다.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익숙함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소위 순수 소설의 방식인 듯 하지만, 회색 신사들과 호라 박사의 보이지 않는 대립의 비현실은 우리에게 환상의 또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들어가면서

간단한 일화 하나.

이 책을 모 인터넷서점에서 36.5% 할인가격으로 주문했습니다. 5천 7백원. 그리고, 그 인터넷서점 자체 포인트와 OK 캐시백 포인트 적립금을 사용했습니다. 마이너스 5천 2백원.

책값이 5백원 들었습니다. (파안대소)

그리고 손에 집어든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 용이더군요. (긁적a) 과연 이 글을 초/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까?


주제 : 시간을 아끼는 것이, 진실로 시간을 아끼는 것인가?

진실과 사실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갭이 있다더군요. 진실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 주관성으로 승부하는 것이고, 사실은 의미 없는 모양 그대로의 객관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사실> 어마어마한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효율적인 시간의 관리를 위해서 우리는 필요없는 부분의 시간을 지우고 더 발전적이고 능률적인 곳에 시간을 써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 이치에 맞고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가령, 제가 홈페이지와 웹진에 쏟는 하루 약 두 시간 여의 시간을 법학전공책을 보면서 보낸다면, 아마도 저는 회사에서 사랑받고 혹시 고시를 패스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것이 행복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고려하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나를 얼마나 풍요롭고 안락하게 할 수 있는가...

이 글 [모모]에서는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이 나옵니다. 회색 신사들은, <계약>을 통해서 사람들의 시간을 양도 - 실은 강탈 - 받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시간의 꽃이 회색신사들의 냉동고 속에 보관되면서 회색 신사들에게 생명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양도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회색 신사들에게 저축하겠다는 의사의 표시가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을 <속입니다>. 효율적인 시간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 것으로. 자투리 시간을 없애고 생산적인 활동에 매진하면, 그들은 부유하게 되고 결국은 행복해질 것이라는...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그 사실을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효율성과 생산성은 끝도 없는 효율과 생산을 부릅니다. 사람들은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목적지에 도달해야 비로소 웃으면서 뒤돌아볼 수 있는데, 그래야 행복한데, 목적지가 보이지 않기에 사람들은 목적지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달려가야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비효율적이고 낭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잠깐 서서 뒤를 돌아다보라, 고. 그 순간, 우리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폐인... 밤새 동기들과 놀고 물마시고 - 개인적으로 술을 못하는지라... 혼자 물을 술마시듯; - 새벽녘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난 참 폐인처럼 사는구나라는 <사실>의 인식과,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진실>의 느낌이고, 그것이 바로 [모모]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행복이 아닐까요?


형식 - 몽환적 환상

[모모]는 우리가 자주 봐오던 형식적인 설정이 없습니다. 검과 마법도 없습니다. 톨킨의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실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미하엘 엔데> 류의 글을 찾아보기는 힘겹습니다. 고작해야 김하인 씨의 [즈무와 12세계] 정도의 글 - 그나마도 4권에서 멈춰섰죠...

그것을 <몽환적 환상> 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모모]의 이야기는 기실,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백 년이 지난 뒤에도, [모모]의 이야기는 공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것인 듯하나, 누구에게나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마치 꿈과 같은 것이 아닐지요. 우리의 이야기인 듯하나, 실은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닌. 우리의 것이라고 믿어지나,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this) 세계로부터 탈주하여, 새로운 이(異)세계를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혹여 사람에 따라서는 틀린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그것이 몽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기어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이 여겨지는 생경한 것, [모모]는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그 지향점이 우리 눈 앞에 선하기에 이 꿈은 우리에게 아름다울 수 있고, 우리의 목적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환상 소설의 환상은, 바로 그렇게 현실을 비추고 또 드러냅니다. 이영도 씨가 자신의 책에서 썼듯이, 꿈이란 밤의 것이면서도 낮을 지향하는 것일테니까요.


인물 - 모모, 그리고 카시오페이아

물론 많은 자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모의 한결같은 귀기울임, 그리고 카시오페이아의 <30분 선견지명>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내다보면, 모모가 가진 성정을 언뜻 보이는 이를 봅니다. 타인이 자신의 입으로 모든 것을 다 토설할 때까지 기다리는, 우리는 그런 자를 지혜로운 자라고 합니다. 인간은 지극히 관계 지향적으로, 그것이 어디에서 가장 잘 드러나냐하면, 바로 <수다>라는 것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물론 과묵한 사람도 있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수다가 존재할 때, 수다(數多)한 인간들의 수다는 당연한 것이겠지요.

수다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확연하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도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듣기보다는 말하려고 하고, 읽기보다는 쓰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혜롭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타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보이기를 기다릴 줄 아는 것, 그리고 사람은 자신을 <다>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다리는 장사는 백 번 남는 장사가 됩니다. (후훗;)

모모는, 더욱더 지혜롭게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타인을 위한 것으로 돌려줍니다. 그래서 모모의 주변은 아름답지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걸음걸이를 본다면, 우리는 하나 더 배울 수 있습니다. 30분만 내다볼 줄 안다 할지라도, 사람은 자신의 걸음을 확고하게 디딜 수 있습니다. 회색 신사들의 행동을 <30분 먼저> 보기에, 거북이는 느릿느릿 걸어도 뚜벅뚜벅 걸어갈 줄 아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10년, 100년 밖을 내다보려고 안달합니까? 그렇게 먼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30분, 금새 내게로 달려오는 그 시간을 내다볼지라도 자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넘어서는 것은 과시요 과신일 뿐이죠.

게다가 뒷걸음질 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그 역설이라니! 우리는 때때로 물러서는 것이 앞을 향하는 수단이 됨을 거북이의 느릿한 그 걸음을 통해서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문학은 무엇인가?

감히, 가르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글을 통해서 배울 수 없다면 글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자기 연민과 방관자의 삶일 뿐일겝니다.

작가는 글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는 글을 읽음으로써 스스로를 가르치며, 작가에게 가르침을 되돌릴 수 있을겝니다. 그것이 문학이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모]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메마르고 성급함에 대해서, 뚜벅뚜벅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이, 실은 가장 행복한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1부 모모와 친구들
제1장 어느 커다란 도시와 작은 소녀
제2장 뛰어난 재능과 아주 평범한 싸움
제3장 폭풍 놀이와 진짜 소나기
제4장 말 없는 노인과 말을 잘 하는 청년
제5장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와 한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

2부 회색 신사들
제6장 똑 떨어지는 엉터리 계산
제7장 모모는 친구들을 찾아가고, 한 명의 적이 모모를 찾아온다
제8장 많은 꿈과 몇 가지 의혹
제9장 열리지 않은 좋은 모임과 열린 나쁜 모임
제10장 맹렬한 추격과 느긋한 도주
제11장 악당들의 모략
제12장 모모, 시간의 근원지에 가다

3부 시간의 꽃
제13장 그곳에서의 하루, 이곳에서의 한 해
제14장 너무 많은 음식과 너무 짧은 대답
제15장 기기를 다시 찾았다 잃다
제16장 풍요 속의 궁핍
제17장 크나큰 두려움과 더 큰 용기
제18장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면?
제19장 포위된 이들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제20장 뒤를 쫓던 자들을 뒤쫓기
제21장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끝

작가의 짧은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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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공주
에드거 라이스 버로우즈 지음, 최세민 옮김 / 기적의책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1. 이건 로맨스잖아?

성공한 로맨스에 대한 경험이 있으신지요? 저는 성공한 로맨스를 경험했습니다. 물론, 결혼 생활이라는 것이 새로운 로맨스에 대한 시작이기도 하기에, 현재진행형 상태인 로맨스는 아마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 쿨럭 - 끝이 나겠지만, 어쨌든 결혼에 이르는데까지의 로맨스는 나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성공한 로맨스의 특징은, 그것이 더 이상의 시련과 갈등 그리고 고난으로 점철된 노정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성공한 로맨스를 찬찬히 잘 뜯어보면, 그 속에는 시련과 갈등 그리고 고난 따위는 없습니다. 짜릿한 스릴과 행복한 추억만 있을 뿐이죠. 마치, 선택되어 이미 그 끝에 도달한 갈림길이, 더 이상 갈림길이 아닌 행로(行路)이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드래곤라자’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죠. 갈림길을 다 걷고 뒤를 돌아다보면 더 이상 갈림길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내가 걸어온 흔적만 남아있을 뿐.

로맨스는 할 때에는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깨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싸우고 힘들게 갈등하고 맞지 않는 의견 때문에 잠시 떨어져있기도 하고... 그러나 성공한 로맨스의 뒤를 돌아다보면, 갈림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끝을 보았기 때문이죠. [화성의 공주]는 성공한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잭 카터와 데자 소리스의 되도 않는 인연,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가는 그 어이없는 과정들. 우연과 행운으로 점철된 듯한 그 무수한 이야기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연인들에게는 과장이 아닌 현실 그대로의 담담한 회고일 뿐입니다.

두 연인에게 물어보죠. 당신들이 여기까지 오는데 겪었던 그 무수한 기적은...? 기적이라뇨! 그건 우리의 사랑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입니다. 필연인게죠.


책을 다 읽고, 찌릿한 느낌이 들었던 바로 그 이유는, 두 연인이 겪었던 필연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실은, 우리, 가요의 사랑 가사나 이러저러한 드라마의 사랑 이야기에 너무 많이 노출되는 바람에, 사랑에 대한 진지하고 아릿한 감정을 고민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현실에서 얽히는 인스턴트 식의 사랑들. 작고 큰 갈등 속에서도 금새 깨어지고 갈라지는 사랑의 양태들. 그런 것들의 무수한 편린이 제 주변을 싸고 도는데, 그 속에서 내가 고구할 진실한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화성의 공주]는 이 시대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랑에 대한 환타지를 화성이라는 낮선 공간에서 엮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제게는 너무나 당연해보이고, 그들이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제 가슴속에서 불끈거립니다. 비록 그들의 이야기는 세부적이지는 않습니다. 100여년 전의 소설이라, 묘사보다는 서사에 기댄 이야기의 전개가 마치 이야기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그냥 주욱 훑어간다는 느낌, 그 생경함이 글을 읽는 내내 독자의 한 쪽 마음속에 들어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수십 차례의 전쟁을 거친 군인 잭 카터가 현대인처럼 너무 복잡하게 고민한다면, 혹은 화성의 연인인 데자 소리스가 지구인처럼 조변석개한다면 그 이야기가 더 낯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글을 읽다보면 그네들처럼 활활 타오르는 사랑 안으로 부나방처럼 뛰어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차라리 차오릅니다. 모든 염려와 걱정을 잊고, 나의 사랑을 위해서 나를 사랑에 쏟아붇는 그런 것 말입니다.

[화성의 공주]는 사랑을 이루어낸 사람이 당연히 공감할 수 있는 로맨스소설입니다.


2. 그런데 우주?

그러나 아마추어 독자가 ‘이 글은 로맨스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작가나 글의 명성이 좀 크네요. 저는 장르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만, 이 소설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시작 격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가인 에드거 R. 버로우즈는 [밀림의 왕자 타잔]으로 유명한 바로 그 작가이구요.

그러나 제게 그런 것들은 유의미한 이야기들은 아니고, 다만 우주라는 공간이 제게는 낯선 공간이라는데 주목해 봅니다. 우주라는 곳이 뭔가 큰 함의를 담고 있는 공간이 아니라, 다만 비현실적인 공간일 뿐이라는 말이죠. 요즘에야 화성이 엄연히 현실의 일부가 되고 있기는 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사람이 우주여행을 가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지만. 그러나 제게는, 그리고 작가에게는 우주가 다만 이곳이 아닌 저 곳이었을 뿐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나니아 연대 이야기]의 장롱 속이나, 혹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9와 4분의 3 플랫폼 너머의 세계 같은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화성의 공주]는 환타지의 비일상성과 상징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알레고리라고 하기에는 비약이 있겠지만... 글 속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부분은 ‘이성’과 ‘감정’의 대립과 관용이라고 여겨집니다.

보통 환타지에 들어서는 이야기는, 일상성을 제거해야하는 것들일 때가 많습니다. 매일매일 일어나고 경험하는 일들을 말하기 위해서 환타지의 공간을 빌릴 필요는 없습니다.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이야기를 굳이 환타지의 공간 안에 펼쳐둘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환타지 속에 알레고리가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환타지는 그 곳에서만 유의미한 이야기들을 따로 가집니다.

[화성의 공주]에서는, 박약한 제 이해로는,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정이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모습이 가장 많이 보입니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라면, 누구나 한 몸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따로 분리해낼 수 없는, 그리고 늘 화합된 형태로 나타날 뿐인, 동전의 앞뒷면 같은 인간의 두 가지 중요한 성질 말입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감정이라는 단어보다 조금 더 좋은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합리성에 기반한 단어인 이성, 에 대비될 수 있는 단어나 의미가 딱히 떠오르질 않아서, 조악하나마 감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합리성의 반대항에 비합리성을 두시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야성(野性) 정도가 대비항으로 적합할 듯 하지만...)

일단 저지르고 보는 녹색인과, 한 번 고민해보는 적색인은, 우리가 무언가를 놓고 고민할 때마다 - 가령, 오늘 저녁에 라면 하나를 끓여먹고 내일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 햇살을 맞이할 것이냐, 아니면 그냥 배를 곪고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잠들지만 기분 좋은 아침밥으로 배를 채울 것이냐 같은 - 좌뇌와 우뇌 뒤에서 펑, 소리와 함께 나타나서 서로 티격태격되는 악마와 천사의 모습과 그닥 크게 차이나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대립과 관용은 글에서 줄곧 드러납니다. 마치 우리가 숨 쉬듯이 대립하고 관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글이 이쯤에서 그냥 끝난다면 별 재미가 없겠지만, 작가는 저지르기 전에 사고하는 독특한 녹색인 - 타르스 타르카스 - 과 불타는 야성으로 사랑을 향해 갈구하는 적색인 - 데자 소리스 - 의 사이에, 적색인의 몸과 녹색인의 심장을 가진 잭 카터를 두고 있습니다. 비합리적인 행동의 연속과 우연한 선택의 결과로 인해 얻게 되는 해피엔딩은, 인간이 인생을 통해서 경험하는 삶의 불합리성을 아이러니컬하게 보여주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실은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잖습니까? 뭔가 시의적절치 않은 어리석어보이는 행동을 계속 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행복을 향해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으니까요.

우주라는 공간은, 아직 신화가 현실에서 똑 부러지게 분리되지 못한 19세기 말~20세기 초엽에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상정하기에 적절한 만큼의 거리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당시의 신화가 씨줄과 날줄처럼 현실과 얽혀들어 현상의 알레고리로 읽혀졌던 바, 우주라는 공간은 그 시대의 이러한 우화성을 극복하면서도 현실에서 일정부분 거리를 두는 공간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굳이 중간계 같은 이세계(異世界)를 만들지 않아도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바를 충분히 이야기 할 만큼, 우주는 그런 정도의 거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지금은 우주가 현실의 일부분으로써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환타지의 공간보다는 조금 더 밀접하게 현실과 연결되어있는 것과는 대비해서 말입니다.


읽기 부담스러울 만큼의 긴 글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요즘 글들처럼 세련미 넘치지는 않는 글이지만, 읽고 나서 느꼈던 카타르시스는 꽤 강렬하였습니다. 글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몇 가지 정보를 더 얻은 바, 잭 카터를 주인공으로 한 몇 권의 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꼭 한 번 구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잭 카터처럼 잃어버린 10년을 갈구하지 않아도 되는 운명을 가졌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하하)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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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잔의 창조자, E.R.버로우즈의 스페이스 오페라 [화성의 공주]
    from 즈믄누리 :: 도깨비들의 巨城 2008-06-20 01:46 
    1. 이건 로맨스잖아? 성공한 로맨스에 대한 경험이 있으신지요? 저는 성공한 로맨스를 경험했습니다. 물론, 결혼 생활이라는 것이 새로운 로맨스에 대한 시작이기도 하기에, 현재진행형 상태인 로맨스는 아마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 쿨럭 - 끝이 나겠지만, 어쨌든 결혼에 이르는데까지의 로맨스는 나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성공한 로맨스의 특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