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워 1945-2005 1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 플래닛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역자 후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네요.  

   
  그러므로 정부나 기업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 유럽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또 대학생들에게도 유익한 교양서가 되리라 본다.  
   


과연... 현대 유럽에 관심이 있는 극소수의 독자를 제외한 사람들, 특히 - 저도 대학생이지만 - 과연 이 책을 대학생들이 볼 수 있을까요?
 
(반드시 사서 보았어야 하는) 이 책을 저는 저희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는데, 이 책이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로 이 책을 빌리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사정상 한 번에 읽지 못하고 1년 여라는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빌려 읽었는데, 다시 빌릴 때마다 별 어려움 없이 독서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북마크 용도의 빨간줄은 늘 제가 읽던 그 곳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요.
누군가 한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간단한 일천 삼백여 페이지의 현대 유럽사 교양서가, 사실은 교양서 이상의 취급을 받고 있다는 현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이며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책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역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현대 유럽의 역사를 비교적 '공정한' 시각으로 담으려고 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재작년에 저는 [모던 타임즈]라고 하는 책을 읽은 바가 있습니다. 예스24의 메인 페이지에 '낚여' 읽었던 그 책은, 사실 보수적인 시각으로 20세기 세계사를 평설한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는 저자의 사건 인식에 동의할 수 없고 불편한 부분이 조금 있어 다 읽은 후에도 별다른 감상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이 [포스트 워]는 저자가 최대한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면서 서술하려고 한 노력을 계속 인식하면서 독서할 수 있었습니다. 객관적이지는 않은 바, 사실 저자는 약간 냉소적인 시선으로 전후 서유럽의 이기주의와 책임 회피를 꼬집고 있으며, 동유럽의 자기기만과 체념에 대해 약간의 동정어린 시각을 배제하지 않은 비웃음을 날리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 유럽의 역사는 어찌보면 제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면서 권력의 주변부가 되어버린 옛 왕실의 처지와 처신을 보여주는 거대한 서사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유렵에서 났지만 유럽은 아닌 미국과, 유럽이었지만 유럽과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유럽이 아니게 되어버린 소련의 거대한 대립 가운데에서, 유럽 또한 두 패로 나뉘어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는 안타까운 지경에 처한 모습이 바로 현대 유럽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관통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런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의 유럽 열강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가를 열정적으로 서술한 책이 바로 이 책 [포스트 워 1945-2005]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자가 현대 유럽사에서 가장 놀랍게 평가하고 있는 부분은, 영국과 독일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삼국이 보여준 사회주의 복지국가의 모형이며, 또한 유럽연합을 위한 줄기찬 발걸음에 대한 부분입니다. 
 
저자는 현대 유럽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런 평가를 담아 에필로그로써, 홀로코스트에 임하는 제유럽의 자세 - '죽음의 집에서 - 현대 유럽의 기억에 관한 소론' - 를 차근차근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적극적 조력자였던 제유럽 국가들이, 모든 책임을 나찌에게 양보한 채 어떤 방식으로 그 책임을 회피하여왔고, 어떻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면서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면서, 저자는 유럽연합이라는 범유럽적인 국가연합기구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능동적으로 역할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책의 말미를 인용합니다.

   
  소련 시대에 널리 쓰였던 농담 얘기를 해보자. 어느 청취자가 '아르메니아 라디오'에 전화를 걸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질문 :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가능한가?" 답변 : "그렇다. 일도 아니다. 우리는 미래가 어떠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과거에 있다. 과거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중략)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아우슈비츠의 화장장으로부터 일종의 유럽을 건설해 내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기억할 수 있으려면, 오직 역사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 끔찍했던 과거의 자취와 상징으로 결합된 새로운 유럽은 놀라운 업적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유럽은 그 과거에 영원히 저당 잡혔다. 유럽인들이 이 생명선을 유지하려면 - 유럽의 과거가 유럽의 현재에 계속해서 조언하고 도덕적 목적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 세대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은 역사에 대한 응답일 수는 있지만, 절대로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저자는 홀로코스트를 통해 유럽연합이 존재해야할 목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유럽식의 사회주의 복지국가 모델과 결합하여, 저자가 끊임없이 책에서 유고슬라비아 난민과 터키의 이주노동자들과,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노동을 위해 건너온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도 지속적으로 환기해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현재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관용적 자세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사회도 단지 과거를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태도와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책은 시종일관 재미나게 읽힙니다. 다른 현대 유럽사에서 접할 수 없었던 동유럽 국가들의 모습과 사건을 잘 서술하고 있으며, 서유럽사 중에서도 무심코 흘러가버리기 쉬운 프랑코의 스페인이라든지, 좌파 공산당과 사회민주당 세력들의 부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읽기 위한 책을 이것저것 고르다보면, 첫눈에 사버리는 책이 있는 반면에, 망설이다가 그냥 빌려보는 책이 있습니다. 산 후에 읽으면서 산 것을 후회하고 안타까와 하는 책이 많은 반면에, 빌려 읽다가 너무 재미나서 차라리 사서 읽을 것을 잘못했다고 자책하면서 다음에 읽을 마음이 들면 꼭 사리라는 생각을 하는 책이 있습니다.

제게 [포스트 워 1945-2005]는, 일전의 가라타니 고진의 책 [근대문학의 종언] 이래로 근 2년만에, 다음 독서 때는 사서 읽으리라 결심한 책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책을 읽으면서 군데군데 메모해 두었던 메모장이, 저희 둘째 따놈의 만행과 함께 사라져버린데다가 오랜시간을 두고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사실입니다. 전체적인 인상 이상을 독후감상글에 담을 수 있었는데 그게 여의치 않아져버려 안타깝기 그지같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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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ㄴㅇ 2013-05-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에서 본 리뷰중에 가장 도움이 되는 리뷰네요. '모던 타임즈'와 이 책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이 리뷰를 보고 포스트워로 정했습니다. ThanksTo도 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한국어판 가격이 워낙 무시무시해서 영어판으로 구매할 생각이라 조금 아쉽습니다.

하리야헌처크 2013-05-12 16: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꾸벅)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던 타임즈]는 집에 있는데 [포스트 워 1945-2005]는 아직 구매 전이네요. 조만간 책을 구매해서 다시 읽을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