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 미국을 뒤흔든 세계 교육 강국 탐사 프로젝트
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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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수학, 읽기/독해 능력,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 아이들을 따돌린 "공부 열심히 하는" 한국 학생들에 대한 기사는 많이 읽어 봤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거리낌 없이 자는' 한국 학생들에 대해서는 읽어 본 적이 없다. 급우들의 행동을 보상이라도 하듯 애릭은 더 곳꼿이 앉고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다렸다. 

그러나 선생님은 전혀 동요 없이 계속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10분밖에 되지 않는 쉬는 시간은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여학생들은 책상 위에 앉거나 뒤집어 놓은 쓰레기통 위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전화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남학생 몇몇은 연필로 책상을 드럼처럼 때리며 놀았다. 다들 교실에 자기 집 거실이나 되는 것처럼 묘하게 편안해 보였다. 

 다음 시간은 과학이었다. 다시 한 번 3분의 1은 잠을 잤다. 거의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었다. 수업 시간에 저렇게 맨날 자면서 한국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기록적인 성적을 낼 수 있었을까?

(90쪽~91쪽) 

이 책은 알라딘 사이트의 '이 주의 신간'에 소개된 책을, 소개된 내용을 본 후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 후 읽어본 책입니다.


그 주된 이유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대한 부분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처한 교육적 상황을 적은 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꼭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독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책은 '미국' 교육에 관한 책입니다. 그 단초는 PISA 시험입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시험은, OECD에서 개발한 국제시험으로, 2000년에 시작되어 지금도 그 공신력을 인정받으며 치루어지는 시험입니다. 주로 문제해결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물어보는 이 시험은, 지금까지의 유형과는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의 현재 실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세계 제 1의 강대국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의 몰락과, 핀란드, 한국의 탁월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로부터 시작하여, 언론인 신분의 저자는, 미국 교육의 문제점을, 미국에서 다른 나라 - 핀란드, 한국, 폴란드 - 로 교환 학생 신분을 가지고 공부하러 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조명하는 방식과 함께, 자신이 취재하고 조사한 이야기를 교차서술하면서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이상은 핀란드의 예입니다. 


핀란드에서는 교사가 되기 위하여 높은 수준의 자격 요건이 필요합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입학 점수가 필요하고, 예비교사로서 빠듯한 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그러한 교원의 자질은 학생들과 사회로 하여금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사는 학문적 엄격함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학생들과 사회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4쪽)


'엄격함'이란 단어는 바로 미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키워드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대간의, 인종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합니다. 그런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교육에서는 역기능의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세대간, 인종간의 다양성이 교육적 성취에 대한 다양성으로의 인정으로 전화되는 순간, 아이들은 조금 못해도 용인되어버리는 학교 문화가 조성되게 되고, 그것이 학생들의 성취를 더디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저자는 다양성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이해가, 교육의 측면에서는 배척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높은 성취를 가진 나라들이 드러내는 것처럼,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학생 성취의 기준을 제시하고, 수준 높은 교사진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미국 사회에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예는,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가 학업 부진의 이유가 되지 않음을 설명하는 예로 여겨집니다. 동구권을 지배하던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리면서 발생한 혼란으로 인해, 폴란드는 사회 전체적인 가난함 속에서 빈부격차도 벌어져 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PISA에서 미국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엄격함에 대한 키워드를 개혁의 본질 속에 심은 폴란드를 통해, 미국 사회도 그런 엄격함을 다양성의 존중에 앞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저자는 하고 싶어하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의 예는, 핀란드가 가진 이상적인 모습도, 미국이 가진 문제 투성이의 모습도 아닌, 제 3의 영역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엄격함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것들이 다 좋은 길은 아니다. 한국의 '다람쥐 쳇바퀴'는 그것이 해결한 문제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만들어 냈다. 기쁨이 없는 배움은 좋은 시험 성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회복력이 좋은 '탄력 있는 세대'를 만들어 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 식의 끊임없는 공부는 오래갈 수 없다. 한국 아이들의 그 유명한 공부에 대한 열정은 대학 입학 후 극적으로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그러나 한국의 '쳇바퀴'와 미국의 다른 여러 나라의 '바운스하우스'를 고르라면 - 말할 것도 없이 말도 되지 않는 선택 조건이지만 - 망설이면서도 나는 결국 쳇바퀴를 선택할 것 같다. 맞다. 가차 없고 과도하긴 하지만 동시에 더 정직하다는 느낌이 든다. (303쪽) 

저자는 우리나라의 사교육 시장이, 자유 경제 체제 아래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가장 극적인 예시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연 PISA의 탁월한 결과가 사교육 덕택인지에 대해서는 그 대답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자의 생각은, 미국이 핀란드의 길을 걸을 수 없다면 한국의 '쳇바퀴'도 나쁘지 않다, 정도로 정리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의 이상향은 아닌 셈이죠. 그 결과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끌리지 않는...



책을 읽은 후에, 저자가 유보한 우리나라의 현상에 대한 판단을, 저는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핀란드의 예시처럼, 좋은 시설이 교육 환경을 도와주지는 않지만, 교사의 탁월한 역량을 통해 엄격함 속에서 아이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학생들의 자유로움에 대하여 신뢰를 보내는 것이 성공적인 교육에의 결과로 드러나겠지만, 우리나라는 엄격함에 대한 면이 공교육에서는 중학교를 지나면서 점차로 축소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주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나라 교수-학습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움이 일어나야하는 학교에서 배움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핀란드와 우리나라는, 적어도 저자가 취재하고 조사한 것 만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왜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핀란드처럼 수준 높은 교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기준 아래에서 아이들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교육시키고 있는데, 핀란드와 같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배움을 자극하는 모습은 없는 것일까요?


저는, 학생들이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 험하고 거친 사회에서 자녀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학부모에 의해서 사교육이 선투입되는 상황이, 공교육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모의 그런 단정은, 끊임없는 자녀에의 의심으로 이어져, 학생들은 자신의 실력과 자신의 꿈, 자신의 목표, 자신의 가치관을 끊임없이 어른들로부터 의심받게 됩니다. 아이의 선택을 신뢰하고 아이를 믿고 아이에게 스스로의 삶을 맡길 수 있는, 하지만 '한계가 명확하고 협상이 허용되지 않는 규칙을 정해 실행에 옮기'는 '권위형 부모'(181쪽)의 모습을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아이들이 혹시라도 지식이 주는 재미를 미처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교육 바운더리 안에 있는 저는,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부모에게 돌릴 생각은 없습니다. 공교육도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실은, 세상 어디에도 문제 없는 공교육은 없습니다. 태생적으로, 공교육은 문제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해답은, 공교육도, 부모도, 아이들에게 선택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발달과 성장의 여정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공교육은 학문적이며 지식에 대한 방향성에서 만큼은 타협하지 않는 엄격함으로, 부모는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라는 분명하고 불변하는 규칙으로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지요. 



의도가 틀어진 독서가 되어버렸지만, 책을 잡은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해보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장, 다음 주에 학교에 가서, 아이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적이며 재미난 수업을 해낼 수 있도록, 지금부터, 늘상, 학문적 구조를 매일매일 머릿속에 갖추어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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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jddus2chlrh 2019-12-15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읽으면서 공감하기는 처음인거 같습니다.

하리야헌처크 2019-12-30 02: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