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운 일본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강태웅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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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를 즐기거나 일본 제품을 사용하면 일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비난받기도 했지요.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을 즐긴다고 하여 일본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꼭 이탈리아를 좋아해서 피자나 스파게티를 먹는 것은 아니니까요. 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한일 간 문제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277~278쪽)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리우는 일본. 일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들이 우리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때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혹은 우리에게 큰 우려와 고민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특히 36년간의 일제강점기가 우리에게 준 어려움과 아픔은 현재의 한일관계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 채로 우리의 현재를 규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증오와 고통어린 그것입니다. 특히 과거사에 대하여 일본이 내보이는 태도는, 독일의 그것과 비교되면서 전향적인 양국 관계로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일본의 지정학적인 관계 때문에라도, 우리는 일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세대가 바뀌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적인 교류가 더욱더 활발해지는 양상을 보이면서, 다양한 방식의 인적/물적 교류가 더더욱 무르익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책의 모토처럼, 일본에 대한 다이제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습니다. 일본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책은, 이어령 교수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나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부터 하여, 표절 시비에 얽혔던 전여옥 씨의 [일본은 없다]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서현섭 씨의 [일본은 있다] 같은 책들이 꽤나 큰 영향력을 끼친 바 있습니다. 일본과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일본 문화에 대한 담론을 담은 책들도 심심찮게 보이는 듯하고, 일본 작가들의 책도 다양한 경로로 번역되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이만큼 가까운 일본]은 역사부터, 지리, 문화, 정치, 경제, 한일관계까지, 깊지는 않지만 폭넓게 일본 전반에 대하여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저자가 가진 일본에 대한 확고한 입장 - 일본인 스스로 전쟁의 피해자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해자였음을 명확하게 인정하는 것 - 을 통해서, 우리가 일본에 대하여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어줍니다. 일본과 일본인 스스로는 과거와 화해하고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 의해서 물적/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주변국가들의 상채기는 아직도 아물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에게 고통을 제공하고 있는데, 일본 스스로의 피해를 이제 다 돌아보았다면, 자신의 주변국들이 자신들에게 받은 상처를 명확하게 직시하고 가해의 사실에 대하여 명확한 언어로 사과의 뜻을 밝히고 그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일본의 문화, 일본 사람들에게 느끼는 호의나 호감에 대해서는 불편해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으로 받아들이는 - 저자의 표현대로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것과 이탈리아를 좋아하는 것은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이므로 - 자세를 취하고, 일본이 가진 여러 면에 대하여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책은 총 다섯 장 - 역사, 지리, 정치/경제/사회, 생활/문화, 한일 관계 -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2단원에 일본의 지리/기후 등의 자연환경과 일본의 인문환경, 아울러 주변국과의 갈등과 마찰에 대한 사항이 나오므로 6학년 담임 선생님이면 어렵지 않게 일독하고 2학기를 맞이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아울러, 이후에 나올 시리즈들도 기대하도록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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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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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불현듯, 세월호에서 스러져갔던 학생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참사 당시 많은 이들이 더 안타까와했던 것은, 그 많은 학생들이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하면 가지고 있는 일탈, 반항, 탈주, 이런 이미지들이 참사 당시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채, 그 학생들은 그 곳에서 잘못된 지시에 정확하게 참여하고 그렇게 스러져갔던 것입니다.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청소년에 대한 이미지, '젊은이'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고정관념들. 과연 그런 것들이 청년들에 대한 적확한 이해 속에서 나온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청년에 대한 몰이해가 기성세대에 의해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현상 속에서, 이미 기성세대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저의 경우에도 제가 가진 고정관념들을 깨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일본 사회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우선 저자의 나이가 흥미롭습니다. 1985년생인데, 아무래도 젊은이가 쓴 '젊은이론'이라는 것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젊은이들이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참 힘이 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어른들의 야유이겠지요. '너희도 더 커서 경험해보면 생각이 달라질거야'. 굉장한 폭력이자, 젊은이들의 삶과 선택에 대한 야유라고 할 수 있지요. 젊은이들의 삶이 어른들의 말 한 마디에 무너지는 것. 그러한 현상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책은 묘하게 계속 우리나라와 일본이 오버랩됩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한 20년은 앞섰던 나라 - 도쿄 올림픽은 1964년, 서울 올림픽은 1988년 - 일본. 그 일본이 1990년대부터 장기불황에 돌입하여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장기불황의 전초가 보이는 상황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이 닥친 상황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닥친 상황과 엇비슷합니다. 가장 어두운데, 여명이 오리라는 기대는 전혀 되지 않는, 그냥 가장 어두운 그 상황. 젊은이들이 행복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 최고의 상황이니까, 젊은이들은 만족하고 있으며, 그래서 젊은이들의 행복지수가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상황인식.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불행은 앞으로 10년, 20년 뒤, 지금의 젊은이가 더이상 젊은이가 아니게 된다면 격차로써 드러날 것이라는 저자의 예언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20대의 젊은이들은, 프리터 족으로 살던, 번듯한 대기업에 취업을 하던, 큰 격차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받는 급여는 어쨌든, 프리터 족이든 대기업 신입사원이든 비슷할테니까요. 그러다가... 그들이 20년 더 그런 인생을 지속해가면, 더이상 젊은이가 아닌 시절이 오면, 그 때부터 격차가 벌어지겠지요. 지금의 젊은이들의 불행은, 더이상 그들이 젊은이가 아닐 때에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현상의 개선은 요원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자는 일본 인구 '1억명 모두가 젊은이가 되는 사회'라고 지금을 진단합니다. 기술의 발달이, 정보의 확산이, 젊은이가 선취할 수 있는 것들을 모든 인구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점차로 젊은이가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내세울 수 있는 카드도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아니,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못한 상황이라고 봐야겠지요. 일본이 가진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노인 세대를 부양해야할 몫까지 짊어져야하니까요. 


우리나라의 청년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장년 세대로써 미래세대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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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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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사IN]이라는 잡지의 창간독자입니다. 물론 그 전부터 보아왔던 것은 아니구요. 우연찮게 PD수첩을 통해 시사저널 사태에 관련된 탐사보도를 본 후, 마침 [시사IN] 창간 당시에 큰 결심(!)을 하고 정기구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한겨레21]과 [한겨레(신문)]까지 정기구독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까닭에 저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에 대한 내부고발로써의 양심선언에 대한 자세한 탐사보도를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수능을 치룬 연후라서 신문과는 그닥 크게 가까이 지내던 시기가 아니었던지라, 그 추이를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참 우연한 기회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김용철 변호사께서 이번에 사회평론社를 통해 [삼성을 생각한다(이하, 생각)]라는 책을 한 권 출간하셨더군요.


사회평론社의 책 중에서 기억나는 책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 (이하, 여러분!)] 라는 책입니다. 전 국토를 들었다 놨다 했던 황우석 박사 및 연구팀이 가지고 있었던 윤리적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던 PD수첩 방송의 전후를, 당시 담당PD였던 한학수 씨가 직접 기록한 [여러분!]은, 2007년 10월 수능을 준비하는 와중에 읽으면서 제게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던 기억이 있는 책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김용철 변호사의 [생각]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여러분!]과 비교해보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생각]은, [여러분!]과는 다른 색깔의 책입니다. [여러분!]이 저자의 열정을 저널리즘으로 잘 세팅한 책이라면, [생각]은 저자의 체념을 지루하게 늘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께서 책을 맛깔나게 쓰시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나왔던 이야기가 마치 처음 나온 이야기인양 또 나오는 부분도 몇 부분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이게 사실일까 싶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덜 정제되어 투박하게 튀어나오기도 해서 읽는 중간중간에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기가막히는 부분이 워낙에 많은데, 책을 조곤조곤 쓰셨다면 그 놀라움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을 이야기들이, 자주 거칠게 튀어나와서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에 담긴 저자의 진술이 모두 사실이라면, 삼성그룹은 참 큰 실수를 하고 있는 집단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자의 진술을 - 기억이라는 것의 불완전성을 생각한다면 약간의 오차는 있겠지만 - 신뢰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자가 진술한 삼성그룹 내부에서의 지난 10여년간 벌어졌던 상식 외의 일들이, 실은 최근 2년간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보여진 삼성그룹과 관련한 다양한 사건들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무거운 죄를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결국은 사면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생각]은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를 삼성그룹이라는 소위 '초일류글로벌그룹'의 옳지 못한 행태를 통해 거칠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와 삼성그룹이 하고 있는 커다란 실수는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할 때, 그것은 바로 염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당한 노력 없이 가진 자가 염치없이 그것을 행사하고, 가진 자가 되기 위해 염치없는 짓을 하고, 가진 자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염치불구하고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들이 두꺼운 책 한가득 적혀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1997년, 우리는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대통령을 두지 않기 위해 투표했다고 말입니다. 가진 자의 도덕적 책무를 강조하던 이 사회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에 정반대의 선택을 하였습니다. 10년간 이 사회는 사회구성원의 윤리적 행동을 묵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입니다.

윤리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력한 자가 자신의 댓가를 받지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댓가를 충분히 거두지 못한 이들과 댓가를 나눌 수 있는 것. 즉,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가짐을 어루만지는 것이 바로 윤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됨이고, 인간이 살아내야할 이치인 것이죠.
 

한국 사회와 삼성그룹은, 당연히 해야할 바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죠.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저는, 바르게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잘 사는 것(well-living)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만 잘 사는 것(well-buying)에 그치는 저간의 사회의 모습이 두렵고 섬뜩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저는 예비교사이기도 합니다. 교단에 섰을 때, 제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벌써부터 겁이 납니다.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겠군요. 지금 제 뒤에서 잠들어있는 제 따놈들에게, 과연 저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부유하게 사는 것보다 가치있는 일이란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설령, 말했다고 치고, 제 아이들이 커서 제게,

'그딴 식의 가르침때문에 제가 도태된 것 아닙니까?'라고 따져묻는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생각]을 읽으면서, [여러분!]을 읽을 때와는 다른, 암담한 기분을 느꼈던 이유는 바로, 황우석 박사 사태때와는 다르게, 삼성그룹이 저지른 여러 행태에 대해서는 사회가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수익과 미래수익의 현실감일 수도 있지만...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이 말은 마치, '박정희 정권이 민주화를 지연시켰지만, 결국 경제성장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라는 말과 같습니다.

삼성그룹이 망해도 대한민국은 망할지 안 망할지 알 수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이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이미 사회 전체가 잘먹고 잘살게 된 2010년에, 우리는 '더' 잘먹고 잘살기위한 욕망들로 가득찬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염치가 없어지는거죠. 온 사회가 부(富)의 축적과 행사를 가장 큰 가치로 이루는 이 땅.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죠.

김용철 변호사의 [생각]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위의 사자성어였습니다. 이 사회는 바른 것을 향해 다시 전진할 수 있을까요? 저자의 체념이 묻어나는 책을 읽으면서, 저도 체념이 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머무를 수는 없죠. 사필귀정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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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후정치사 - 일본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전개 커리큘럼 현대사 2
이시카와 마쓰미 지음, 박정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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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기택 氏가 쓴 [한국 야당사]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제가 책을 샀던게 고 2땐가 그랬으니... 그 때만해도 이기택 氏가 나름대로 3김을 이을 차세대 주자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때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92년 대선 끝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은퇴 선언 이후에 이기택 氏는 민주당 당수가 되었고 명실상부한 포스트 김대중으로써의 면모를 다져나갈 찰나였지만... DJ의 정계복귀 선언으로 KT는 주저앉고 맙니다. 포스트 DJ였는데... DJ가 돌아왔으니.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꼬마 민주당도 만들고 하면서 와신상담하다가 결국 신한국당(맞을겁니다. 97년 쯤이었을테니...)으로 흘러들어갔고, 거기서도 존재감 없이 지내다가 결국 2000년도에 민국당 창당과 총선 대패로 인해 이제 흘러간 정치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름대로 5선 국회의원에 국회부의장 출신이지만, 노정객의 위치도 차지하지 못한 이기택 氏... 그가 쓴 [한국 야당사]는 정치에 일천한 제게는 꽤나 쏠쏠한 재미를 주는 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헌국회 이후의 한국 야당의 다양한 이야기들과 관련자료들이 꽤나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야당'을 대상으로 쓴 글이라서, 이념이나 정책적인 통일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5공 때까지의 이야기들이라서 요즘 읽기는 시의적절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권 교체가 거의 전무했던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 최초의 민주적 정권교체는 1997년에야 가능했죠 - 야당의 역사를 조명해보는 일은 나름대로 가치있는 시도였고, 이기택 氏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딱히 흠잡을 것도 주목할 것도 없지만 풍부한 야당 관련 자료들을 한데 묶어놓은 노고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현듯 이기택 氏의 책 [한국야당사]가 생각난 이유는, 요 며칠동안 이시카와 미스미 氏의 [일본 전후 정치사]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2004년 타계한 저자는 정치부기자로 근 40여년을 지내온 저널리스트였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기를 정치판과 정치인 사이에서 지낸 저자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저널리스트의 시각이 아니라 연대기 작가의 시각으로 풀어냅니다. 네. 책은 정말 '사실적'입니다.

각 사건에 대한 자신의 평가는 극히 배제된 채, 저자는 중요한 사건들을 중목차로 하여 간단하게 사건의 전후관계 및 일련의 추이를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와 사건의 전후를 둘러보면서 관련된 당사자가 속한 집단 및 대응되는 집단들의 반응 및 주변 집단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언뜻언뜻 자신의 견해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평가는 앞에서 쓴 것처럼 짧고 간단하게만 언급합니다.

결국 개개인의 의견보다는 정당 및 제정당의 파벌들의 반응들이 주관적 서술의 대부분인 것으로 미루어, 이 책은 일본 전후 정치사라기 보다는 일본 전후 정당사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아이러니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정당 구조에 대한 생각과 전망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이 책에서는 1955년 이후 1993년 호소가와 내각이 들어설 때까지 물경 40여년을 집권해 온 자민당 일당체제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서, 혁신계열 - 사회당 - 의 전략 부재 및 안이한 목표 설정과 대응방식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 안되는 저자의 평가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당의 섣부른 선거 목표 - 과반수 의석 확보 - 및 목표 달성 실패 이후의 무의미한 '선거 패배' 선언에 대해서, 혁신 계열의 무개념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즉, 선거 지형 상 과반 의석을 달성하기 요원한 상황에서도 일단 목표는 과반 의석으로 설정해두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비록 상당한 부분의 성과 - 의석 증가 또는 절대득표수 증가 - 를 거두더라고 무의미하게 '선거 패배'를 선언하고 서기장과 위원장이 동반 퇴진해버리는 상황에 대해서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저자는 그렇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혁신계열이 인물난을 겪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마치 2004년에 창당했던 우리나라의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반년의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주 당의장을 갈아치웠던 열우당의 모습은, 바로 일본 사회당이 걸었던 것과 같은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당과 열린우리당의 유사한 패턴을, 저는 혁신 계열 - 진보 계열 - 의 선명투쟁으로 연결해보고 싶습니다.

(소위) 보수세력이라고 하는 집단이 결여한 것중에 하나가 바로 선명투쟁입니다. 절대로 더 깨끗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보세력에게 선명성은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분배'를 이야기하는 집단의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가급적 고루고루 나누어야 할 책임을 가진 집단이 투명하지 않다면 분배의 의의는 급감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세력은 '더 깨끗한, 조금 더 깨끗한, 완전히 깨끗한'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 묻으면 버리는거죠.

저는 선명투쟁이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더 깨끗해야 합니다. 완전히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명성을 정치 영역에서 구현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정치력도 갖추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에도 이르게 됩니다. 예전에 김근태 전 의원의 양심선언이 생각납니다. 정치자금 받았다고 깨끗하게 밝혔지만... 그래서 김 전 의원이 얻은게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정치력이란 자신의 더러움을 감추는 것에 대한게 아니라, 깨끗하게하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부분에서 그렇게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어떤 분들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저는 깨끗한 분들이 자신의 때묻은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자중하려는 마음 때문에 보여주는 서투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이, 열여덟 찍지마!' 라고 남사스럽게 소리지르고도 뻔뻔하게 사과 한 번 하고 제자리 지키는 이들이나, 과감하게 여기자 한 번 @#$%& 해주고도 뻔뻔하게 의원직 유지해주는 이들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다만 진보세력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좀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이 좀 많이 곁길로 샜는데, 이 책을 통해서 자민당 1당 체제 - 55년 체제 - 에 대한 모습들이 현재의 우리나라 정당구조와 상당부분 연계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가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자민당-사회당의 (1993년 이전 양당 구도 하에서의) 정치지형은 2004년의 한나라당-열린우리당의 정치지형과 유사하며, 2000년대 이후의 일본의 자민당-민주당 구조는 현재 한나라당 내부의 친이-친박 계열의 대립구도와 유사합니다. 또한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구 소련 이후의 정치권의 보수화 경향과, 이념이 아닌 정책의 차이 때문에 일본 정당이 분화하는 모습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즉, [일본 전후 정치사]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현재 정당 구조와 정치지형을 대입해 볼 만 하다는 점에서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책을 읽기에 갑갑한 부분도 있습니다. 다양한 정치인들이 등장하는데, 비슷비슷해보이는 이름들을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자민당/사회당의 파벌의 이합집산 및 파벌의 변화양상은 독서의 속도를 더디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당사를 통해 우리나라 정당의 추이를 비교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유추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안타까운 부분은, 점차로 진보세력의 영역이 축소된다는 점입니다. '분배'의 키워드를 가진 진보세력이 점차 (소위) 보수세력에게 밀리는 양상은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보수세력의 가진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일본 전후 정치사]를 읽고 난 직후의 생각이라 생각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소위) 보수세력의 키워드는 '반분배'라고 생각합니다. 즉, 분배의 반대항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세력이라는 말이죠. 어떤 주의나 이념이 아니라, 그냥 분배의 가치가 싫은 이들이 모인 집단이 보수세력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진보-보수세력이 테제-안티테제라면, 왜 진테제 - 合 - 은 없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보수세력의 안티는 테제가 빠진 안티이기 때문입니다. 즉, 분배라고 하는 뚜렷한 가치관에 대한 반대항으로써의 보수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고유한 테제가 없습니다. (소위) 보수세력의 '반분배'는 주의나 이즘이 아니라, 바로 욕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합리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저열한 욕구에 기반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래서 (소위) 보수세력 안에는 '분배'에 대한 안티테제를 가지고 기능하는 오리지널 보수가 있는 반면에, 보수의 가면을 쓴 이들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죠. 그리고 가면 쓴 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지금 여러가지 (해결되지 않는) 갈등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분배'의 키워드보다 '반분배'의 키워드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자면, 역시 소유욕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도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댄 분들이, 현재의 분배를 두려워 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공평하게 재분배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100을 가진 이들이 50을 내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6을 가진 이들이 0.1을 더 내고, 10을 가진 이들이 0.5를 더 내자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종부세죠. 그래서 그걸 모아서 0.01도 못가진 이들에게 다만 0.005라도 보태주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분배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보수가 아닙니다. 다만 '반분배'에 기댄 가짜 보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보수-혁신의 대립구도 하에서 일본의 정치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글 자체도 쉽고 간결하게 쓰여진 편이라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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