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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왕의 사회학 -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
최종렬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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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가, [복학왕]이라는 웹툰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방대 재학생, 졸업생, 졸업생의 부모 29명을 인터뷰한 후 이를 분석한 책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서사적 인터뷰’를 들 수 있을 듯 합니다. 비록 사회학과 재학생/졸업생으로 특정되었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이 책의 인터뷰이들은 과거와 현재의 자신에 대해 두텁게 진술함으로써 2, 30대 청년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렇게 들여다 본 삶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세대 대립 담론과는 조금 다른 양태를 띄고 있지 않는가 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 지점입니다. 이는 2, 30대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 수도권 중심의 해석이며, 지방의 삶은 조금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지점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사는 곳이며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의 중심으로써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수도권의 삶 또한 과대대표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 지방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젊은이의 삶을 분석하는 것은 제대로 된 결론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저자는 건네는 듯 합니다.

지방 젊은이의 살아가는 방식을 저자는 ‘성찰적 겸연쩍음’이라는 단어로 정리하는 듯 합니다. 보수주의적 가족주의 아래에서, 지방의 젊은이들은 선호의 언어를 쫓기보다는 가족주의의 언어를 쫓으며, 유사가족적 문화를 제공하는 대학이나 반 대학 성격의 집단으로 구성된 가족적 공동체 안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데 익숙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습속은 계속 회귀적이며 이는 안온함과 평안함을 제공하는 자리가 되어줍니다.

저자의 걱정은 아마도, 이러한 삶이 대를 이어갈수록 결국 이들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려 갈 것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수주의적 가족주의 아래에서 가족 공동체를 이루며 가부장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지방대 재학생/졸업생의 아버지는, 그러나 수도권 중심의 경제 질서 아래에서 외벌이로는 가정을 꾸려나갈 수 없음을 뼈져리게 실감합니다. 결국 가부장적 인식 아래에서 돌봄노동을 전담하던 어머니는 가계를 위해 가정 바깥에서 경제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돌봄노동과 경제활동을 함께 하는 ‘가모장’적 삶을 영위하며 가정의 교육에 대해 믿음이라는 이름의 방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보수주의적 가족주의 아래에서 형성된 가족 공동체는 결국, 이러한 부모의 희생과 헌신(과 방임) 아래에서 성장한 자녀들을 품게 되면서 이들에게 경제적인 지지대가 되어주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서 지방대 재학생과 졸업생은 홀로서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지방에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줄 시스템이 빈약합니다. 선호의 언어를 쫓는 지방대 졸업생은 더 나은 성취(와 경제적 자립)를 위해 수도권으로 상경하지만, 이의 실패는 결국 다시 가족 공동체로의 회귀와 공고한 경제 공동체 - 그러나 그 기반은 한없이 취약한 - 안에서 지지받는 삶으로 귀결됩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 책에서의 저자는 서사적 인터뷰를 최대한 정제된 목소리로 간추려 분석하지만, 이 책의 부제처럼 결국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목소리로 점점 커져만 갈 것입니다.

이를 단순히 세대 담론으로 해석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 책은 따라서 이 이야기들 이후의 과제를 스스로에게 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커져만 가는 수도권과 지방의 괴리는 결국, 어느 시점에서 파열음을 내며 주저 앉을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서울에서 나서 자라고 생활해 온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하였고, 그러나 감히 이런 거대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엄두도 낼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저자 혹은 이러한 문제 상황을 이어받은 다음 책 혹은 저작물을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의미있는 독서가 되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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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 생활문화사 : 1950년대 - 삐라 줍고 댄스홀 가고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홍석률 외 지음, 김성보 외 기획 / 창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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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런 책들을 많이 만나게 되네요. 하나의 주제 아래 다른 저자의 글들. 영화로 따지면 옴니버스 영화인가요?

이런 책들의 장점이라면 세세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혼자서는 얻지 못할 지면을 얻어,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식견을 드러낼 수 있고, 그것을 독자들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겠지만, 단점은, 과연 독자들이 전문가의 세세함을 필요로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있겠지요.

미루어 짐작컨대 이런 책은 기획 과정에서 대체적인 윤곽을 그리고 저자를 섭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다른 옴니버스 류의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인데, 그렇기에 조금은 통사적인 관점이 공유되어야 할 듯 싶은데, 그런 부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즉, 따로 보면 인상적인 글들이 있으나, 그래서 결국 1950년대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독후 정리를 해보면 모호하다는?

물론, 1950년대를 두루두루 보여주겠다는 것이 기획 의도라면 뭐 이해는 되지만, 적어도 현대 생활사 및 문화사를 10년 단위로 세세하게 다루는 책을 구매하는 독자라면, 뭔가 시대를 관통하는 기획자의 의도를 알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요? 서문은 약간은 불친절하고, 각각의 글은 자신의 견해는 잘 드러나지만 그것이 하나로 엮인다는 느낌은 좀 덜한, 그런 독서가 되었네요.

물론, 시리즈이니 뒷권도 읽긴 하겠지만, 전반적으로 해당 시기를 조망하기 위한 독자를 위한 책은 아니라는 판단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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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운 일본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강태웅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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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를 즐기거나 일본 제품을 사용하면 일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비난받기도 했지요.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을 즐긴다고 하여 일본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꼭 이탈리아를 좋아해서 피자나 스파게티를 먹는 것은 아니니까요. 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한일 간 문제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277~278쪽)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리우는 일본. 일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들이 우리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때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혹은 우리에게 큰 우려와 고민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특히 36년간의 일제강점기가 우리에게 준 어려움과 아픔은 현재의 한일관계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 채로 우리의 현재를 규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증오와 고통어린 그것입니다. 특히 과거사에 대하여 일본이 내보이는 태도는, 독일의 그것과 비교되면서 전향적인 양국 관계로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일본의 지정학적인 관계 때문에라도, 우리는 일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세대가 바뀌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적인 교류가 더욱더 활발해지는 양상을 보이면서, 다양한 방식의 인적/물적 교류가 더더욱 무르익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책의 모토처럼, 일본에 대한 다이제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습니다. 일본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책은, 이어령 교수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나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부터 하여, 표절 시비에 얽혔던 전여옥 씨의 [일본은 없다]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서현섭 씨의 [일본은 있다] 같은 책들이 꽤나 큰 영향력을 끼친 바 있습니다. 일본과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일본 문화에 대한 담론을 담은 책들도 심심찮게 보이는 듯하고, 일본 작가들의 책도 다양한 경로로 번역되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이만큼 가까운 일본]은 역사부터, 지리, 문화, 정치, 경제, 한일관계까지, 깊지는 않지만 폭넓게 일본 전반에 대하여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저자가 가진 일본에 대한 확고한 입장 - 일본인 스스로 전쟁의 피해자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해자였음을 명확하게 인정하는 것 - 을 통해서, 우리가 일본에 대하여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어줍니다. 일본과 일본인 스스로는 과거와 화해하고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 의해서 물적/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주변국가들의 상채기는 아직도 아물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에게 고통을 제공하고 있는데, 일본 스스로의 피해를 이제 다 돌아보았다면, 자신의 주변국들이 자신들에게 받은 상처를 명확하게 직시하고 가해의 사실에 대하여 명확한 언어로 사과의 뜻을 밝히고 그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일본의 문화, 일본 사람들에게 느끼는 호의나 호감에 대해서는 불편해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으로 받아들이는 - 저자의 표현대로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것과 이탈리아를 좋아하는 것은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이므로 - 자세를 취하고, 일본이 가진 여러 면에 대하여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책은 총 다섯 장 - 역사, 지리, 정치/경제/사회, 생활/문화, 한일 관계 -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2단원에 일본의 지리/기후 등의 자연환경과 일본의 인문환경, 아울러 주변국과의 갈등과 마찰에 대한 사항이 나오므로 6학년 담임 선생님이면 어렵지 않게 일독하고 2학기를 맞이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아울러, 이후에 나올 시리즈들도 기대하도록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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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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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불현듯, 세월호에서 스러져갔던 학생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참사 당시 많은 이들이 더 안타까와했던 것은, 그 많은 학생들이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하면 가지고 있는 일탈, 반항, 탈주, 이런 이미지들이 참사 당시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채, 그 학생들은 그 곳에서 잘못된 지시에 정확하게 참여하고 그렇게 스러져갔던 것입니다.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청소년에 대한 이미지, '젊은이'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고정관념들. 과연 그런 것들이 청년들에 대한 적확한 이해 속에서 나온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청년에 대한 몰이해가 기성세대에 의해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현상 속에서, 이미 기성세대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저의 경우에도 제가 가진 고정관념들을 깨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일본 사회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우선 저자의 나이가 흥미롭습니다. 1985년생인데, 아무래도 젊은이가 쓴 '젊은이론'이라는 것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젊은이들이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참 힘이 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어른들의 야유이겠지요. '너희도 더 커서 경험해보면 생각이 달라질거야'. 굉장한 폭력이자, 젊은이들의 삶과 선택에 대한 야유라고 할 수 있지요. 젊은이들의 삶이 어른들의 말 한 마디에 무너지는 것. 그러한 현상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책은 묘하게 계속 우리나라와 일본이 오버랩됩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한 20년은 앞섰던 나라 - 도쿄 올림픽은 1964년, 서울 올림픽은 1988년 - 일본. 그 일본이 1990년대부터 장기불황에 돌입하여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장기불황의 전초가 보이는 상황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이 닥친 상황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닥친 상황과 엇비슷합니다. 가장 어두운데, 여명이 오리라는 기대는 전혀 되지 않는, 그냥 가장 어두운 그 상황. 젊은이들이 행복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 최고의 상황이니까, 젊은이들은 만족하고 있으며, 그래서 젊은이들의 행복지수가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상황인식.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불행은 앞으로 10년, 20년 뒤, 지금의 젊은이가 더이상 젊은이가 아니게 된다면 격차로써 드러날 것이라는 저자의 예언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20대의 젊은이들은, 프리터 족으로 살던, 번듯한 대기업에 취업을 하던, 큰 격차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받는 급여는 어쨌든, 프리터 족이든 대기업 신입사원이든 비슷할테니까요. 그러다가... 그들이 20년 더 그런 인생을 지속해가면, 더이상 젊은이가 아닌 시절이 오면, 그 때부터 격차가 벌어지겠지요. 지금의 젊은이들의 불행은, 더이상 그들이 젊은이가 아닐 때에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현상의 개선은 요원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자는 일본 인구 '1억명 모두가 젊은이가 되는 사회'라고 지금을 진단합니다. 기술의 발달이, 정보의 확산이, 젊은이가 선취할 수 있는 것들을 모든 인구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점차로 젊은이가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내세울 수 있는 카드도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아니,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못한 상황이라고 봐야겠지요. 일본이 가진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노인 세대를 부양해야할 몫까지 짊어져야하니까요. 


우리나라의 청년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장년 세대로써 미래세대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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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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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사IN]이라는 잡지의 창간독자입니다. 물론 그 전부터 보아왔던 것은 아니구요. 우연찮게 PD수첩을 통해 시사저널 사태에 관련된 탐사보도를 본 후, 마침 [시사IN] 창간 당시에 큰 결심(!)을 하고 정기구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한겨레21]과 [한겨레(신문)]까지 정기구독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까닭에 저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에 대한 내부고발로써의 양심선언에 대한 자세한 탐사보도를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수능을 치룬 연후라서 신문과는 그닥 크게 가까이 지내던 시기가 아니었던지라, 그 추이를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참 우연한 기회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김용철 변호사께서 이번에 사회평론社를 통해 [삼성을 생각한다(이하, 생각)]라는 책을 한 권 출간하셨더군요.


사회평론社의 책 중에서 기억나는 책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 (이하, 여러분!)] 라는 책입니다. 전 국토를 들었다 놨다 했던 황우석 박사 및 연구팀이 가지고 있었던 윤리적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던 PD수첩 방송의 전후를, 당시 담당PD였던 한학수 씨가 직접 기록한 [여러분!]은, 2007년 10월 수능을 준비하는 와중에 읽으면서 제게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던 기억이 있는 책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김용철 변호사의 [생각]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여러분!]과 비교해보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생각]은, [여러분!]과는 다른 색깔의 책입니다. [여러분!]이 저자의 열정을 저널리즘으로 잘 세팅한 책이라면, [생각]은 저자의 체념을 지루하게 늘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께서 책을 맛깔나게 쓰시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나왔던 이야기가 마치 처음 나온 이야기인양 또 나오는 부분도 몇 부분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이게 사실일까 싶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덜 정제되어 투박하게 튀어나오기도 해서 읽는 중간중간에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기가막히는 부분이 워낙에 많은데, 책을 조곤조곤 쓰셨다면 그 놀라움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을 이야기들이, 자주 거칠게 튀어나와서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에 담긴 저자의 진술이 모두 사실이라면, 삼성그룹은 참 큰 실수를 하고 있는 집단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자의 진술을 - 기억이라는 것의 불완전성을 생각한다면 약간의 오차는 있겠지만 - 신뢰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자가 진술한 삼성그룹 내부에서의 지난 10여년간 벌어졌던 상식 외의 일들이, 실은 최근 2년간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보여진 삼성그룹과 관련한 다양한 사건들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무거운 죄를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결국은 사면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생각]은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를 삼성그룹이라는 소위 '초일류글로벌그룹'의 옳지 못한 행태를 통해 거칠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와 삼성그룹이 하고 있는 커다란 실수는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할 때, 그것은 바로 염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당한 노력 없이 가진 자가 염치없이 그것을 행사하고, 가진 자가 되기 위해 염치없는 짓을 하고, 가진 자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염치불구하고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들이 두꺼운 책 한가득 적혀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1997년, 우리는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대통령을 두지 않기 위해 투표했다고 말입니다. 가진 자의 도덕적 책무를 강조하던 이 사회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에 정반대의 선택을 하였습니다. 10년간 이 사회는 사회구성원의 윤리적 행동을 묵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입니다.

윤리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력한 자가 자신의 댓가를 받지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댓가를 충분히 거두지 못한 이들과 댓가를 나눌 수 있는 것. 즉,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가짐을 어루만지는 것이 바로 윤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됨이고, 인간이 살아내야할 이치인 것이죠.
 

한국 사회와 삼성그룹은, 당연히 해야할 바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죠.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저는, 바르게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잘 사는 것(well-living)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만 잘 사는 것(well-buying)에 그치는 저간의 사회의 모습이 두렵고 섬뜩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저는 예비교사이기도 합니다. 교단에 섰을 때, 제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벌써부터 겁이 납니다.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겠군요. 지금 제 뒤에서 잠들어있는 제 따놈들에게, 과연 저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부유하게 사는 것보다 가치있는 일이란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설령, 말했다고 치고, 제 아이들이 커서 제게,

'그딴 식의 가르침때문에 제가 도태된 것 아닙니까?'라고 따져묻는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생각]을 읽으면서, [여러분!]을 읽을 때와는 다른, 암담한 기분을 느꼈던 이유는 바로, 황우석 박사 사태때와는 다르게, 삼성그룹이 저지른 여러 행태에 대해서는 사회가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수익과 미래수익의 현실감일 수도 있지만...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이 말은 마치, '박정희 정권이 민주화를 지연시켰지만, 결국 경제성장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라는 말과 같습니다.

삼성그룹이 망해도 대한민국은 망할지 안 망할지 알 수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이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이미 사회 전체가 잘먹고 잘살게 된 2010년에, 우리는 '더' 잘먹고 잘살기위한 욕망들로 가득찬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염치가 없어지는거죠. 온 사회가 부(富)의 축적과 행사를 가장 큰 가치로 이루는 이 땅.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죠.

김용철 변호사의 [생각]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위의 사자성어였습니다. 이 사회는 바른 것을 향해 다시 전진할 수 있을까요? 저자의 체념이 묻어나는 책을 읽으면서, 저도 체념이 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머무를 수는 없죠. 사필귀정일테니까.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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