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 함께 걷는 교육
이병민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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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80시간 가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하버드대학의 로저 브라운에서 시작된 (중략)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어 습득을 시작한다. 그리고 만 1세를 지나고 만 2세를 지나 만 3세가 되면서 폭발적으로 언어 습득이 빨라지다가 만 4세가 되면 거의 자신의 모국어를 완성하게 된다. 이때 아이들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언어 소리에 노출되며 이 언어를 사용하는 주변 사람들과 간단없는 상호작용 및 교류를 한다. 이를 만약 아이가 만 4년 동안 깨어 있는 시간에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언어로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그 시간은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고 산출될 수 있을 것이다.


8시간×365일×4년=11,680시간


8시간은 아이가 하루 평균 깨어 있는 시간으로 언어로 소통한 시간이다. 그렇게 365일, 4년을 계산하면 11,680시간이 나온다.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 만 4세가 될 때까지 적어도 이 정도의 언어 노출을 경험한다. 이 정도의 시간이 한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자신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면, 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자신의 추가적인 언어로 만드는 데 적어도 이 정도의 노출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237~238쪽)


11,680시간 정도가 지나면, 아이들은 모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11,680시간,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요?


11,680시간은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생각해보면 시간의 양을 실감할 수 있다. 만약 하루 8시간의 영어 노출을 4시간으로 줄인다면, 11,680시간을 채우는 데 8년이 필요하다. 이 4시간을 2시간으로 줄인다면, 11,680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16년이 필요하다. 다시 2시간을 하루 1시간으로 줄이면 같은 시간을 채우는데 32년이 걸린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적어도 하루에 1시간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어를 사용하고 듣고 말해도 11,680시간을 채우는 데 무려 32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엄청난 기간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이만큼 엄청난 양의 언어에 노출되는 것이다. (239쪽) 


월화수목금토일, 매일매일 쉬지 않고 네 시간 씩,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노출된다면, 아마도 8년 정도면 영어를 모국어처럼은 아니겠지만, 모국어와 유사하게 사용할 정도는 되겠군요. 


그런데 저자는 단순한 언어 환경에의 노출이 영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말을 배우려면 아이는 인간세계에 태어나서 실제로 말을 하는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 즉 인간의 언어 세계에 살아야 하며 아이의 주변에 언어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야 한다. (중략)

그런데 이런 언어 환경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어울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TV, 카세트테이프, CD-ROM, 비디오만 듣고 본다고 말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말을 하는 인간과 접촉하고 교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서 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 언어 습득도 정상적이지 않다. 인간은 부모와 형제, 그리고 주변 또래들과의 소통과 어울림, 놀이를 통한 상호교류를 통해 말을 배운다. (130쪽) 


그렇게 말하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청각장애인이었다. 그 아이는 태어나서 3년 6개월이 될 때까지 TV만 보면서 생활했다. 물론 부모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정상적인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언어 입력을 받지 못했다. 이 아이의 언어 발달은 정상적이었을까? 불행히도 정상적 언어 발달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아이를 유아원에 보내서 어른이나 또래 아이들과 6개월 정도 어울리게 하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유사한 정상적인 언어 발달을 보였다. 아이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은 오빠와 달리 정상적인 언어 발달을 보여줄까? 동생은 정상적이었다. 이유는 바로 오빠 때문이다. 오빠와 접촉하고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아이는 정상적인 언어 발달을 보여주었다. (130~131쪽) 



내부그룹, 외부그룹, 확장그룹


과연 우리나라는 부모, 형제, 그리고 주변 또래들과의 소통과 어울림, 놀이를 통한 상호교류를 해 나가면서 영어라는 언어를 습득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자는 카츠루라는 학자의 영어권 분류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카츠루에 의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크게 세 개 권역, 즉,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내부그룹과,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외부그룹, 그리고 그렇지 않은 확장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확장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지도 않고 있고,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의 경험도 없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내부그룹도, 외부그룹도 아닙니다. 그런데 확장그룹에 속한 여타의 나라들처럼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아닙니다. 확장그룹에 속하는 국가 중에서, 어떤 나라들은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핀란드 등을, 모국어를 가지고 있으면서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 경험도 없는데도 영어를 더 잘 사용하는 국가로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확장그룹 중에서 영어를 잘 사용하는 위의 국가들은 주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인구 규모가 중소 규모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중소 규모의 국가들은 경제적인 필요상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환경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중소 규모의 국가들은, 의외로 다민족 국가들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여러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추가적으로 배우기에 크게 거부감이 없는 환경이라는 말이죠. 저자는 국어로 플레이시어(네덜란드어의 변종)와 프랑스어, 그리고 독일어를 배우는 벨기에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영어를 하나 더 배우는 것은 필요를 자극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중소 규모의 국가들은, 그들의 경제적 필요를 위해서 영어를 배우기도 한다고 봅니다. 영어권 영화의 경우, 중소 규모 국가에서는 자국민의 시청을 위해 굳이 영어를 사용한 영화를 더빙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합니다. 그냥 영어로 방송하던지, 혹은 자막 처리를 하던지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말이지요. 우리나라처럼 인구 5천만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면, 마치 스페인처럼, 굳이 영어를 배우지 않더라도 생활하는데 크게 어려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만한 여러가지 경제성이 충족되지만, 핀란드 같은 나라는 5백만의 전체 인구보다 더 많은 6백만의 한해 관광객을 맞이하다보면 영어라는 언어가 그렇게 무시할만한 규모는 아니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영어를 통해 세계화/국제화에 더 가까와져야 할텐데, 우리나라도 중소규모 국가들처럼 영어가 일상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다른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모국어 혹은 제2국어로 사용하는 내부그룹이나 외부그룹의 경우, 우리 생각처럼 영어에 목매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퀘벡 주의 경우에는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영어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를 제2국어로 사용하는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 케냐, 우간다 같은 나라들이 영어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고 있지도 않습니다. 국제화/세계화라는 키워드가, 수출을 주로 하는 무역국가인 우리나라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이 영어를 모든 국민이 잘 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자가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 대한 욕망, 엘리트를 향한 욕망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도, 영어를 사용할만한 여건이 만만찮은데도 영어를 향한 욕망이 넘실대고 있는 것일까요?


세계적으로 영어의 내부그룹을 제외하면 여기저기서 목격되는 일반적인 현상은 영어는 소수 엘리트들의 언어라는 점이다. 영어가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외부그룹인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필리핀이나 인도를 비롯해서 거의 세계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백 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이지만 그 나라 대학생들이 영어를 더 잘 하려고 얼마나 무진 애를 쓰는지 모른다. 영어가 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는 이런 나라에서도 영어를 둘러싼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어가 엘리트들의 언어이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욕망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원어민들이 대량으로 우리나라에 유입되고 그들이 전체 인구의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 그들과 우리가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전체 또는 대다수 한국인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이중언어로 사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은 인류의 언어 접촉이나 교육의 역사에서 볼 때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117쪽) 


저자의 진단은, 영어에 대한 욕망이 결국 엘리트를 위한 욕망이 투사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실제로 영어로 대화하거나 영어를 사용한(118쪽)' 경험을 가지기에 너무나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렇게 영어를 향한 욕망이 넘실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입니다. 


실은 그렇습니다. 저만해도, 영어로 대화한 경험은 손에 꼽을 지경입니다. 학교에서나 영어로 대화할 기회가 있었지, 특별하게 비즈니스때문에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영어로 말하고 들을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얼마 사용하지도 않을 영어를, 온 나라가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서 배우려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질문을 "내가 오늘 이것을 꼭 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주제가 있으세요?"라고 바꾸면 "우리 애가 영어를 굉장히 잘했으면 좋겠다. 그 노하우를 듣고 싶다."는 대답이 바로 돌아온다. 나는 다시 묻는다.

"다른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자녀가 영어를 얼마만큼 잘했으면 좋겠는지, 영어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누가 한 번 말씀해주세요."

"자유로운 의사소통……."

"자유로운 의사소통! 좋은 얘기예요. 그런데 자유로운 의사소통이라는 게 도대체 구체적으로 뭘 얘기하는 거에요?"

"외국인하고 만났을 때, 영어를 써야 할 때, 그 때 자유롭게……."

"영어를 써야 할 때가 어떤 상황이에요? 해외여행 가서 면세점 가서 물건 살 때?"

"뭐든지……."

"뭐든지!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네요. 예를 들어서 유엔 같은 데서 연설을 할 수도 있고, 미국 CBS 방송국 기자나 ABC 방송국 기자하고 한국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인터뷰도 하고, 그런 걸 잘할 수 있는 정도, 그런 거에요?"

"상황이 되면……."

그렇다. 그런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일반적인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영어에 대한 기대치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모국어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다른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겠다는 것은 이중언어를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의 영어에 대한 기대치는 우리 사회가 이중언어 사회로 가야 함을 의미한다. (111~112쪽)


언제 어느 때나 필요한 순간에 영어로 프리 토킹을 하는 것이 영어 교육의 목적이다, 라는 이야기를, 결국 저자는 '이중언어 사회'에 대한 욕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영어를 항상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나라인데, 1년에 한 시간도 영어를 말할 기회를 애써서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가지지 않을 수 있는 나라에 살면서, 영어로 프리 토킹을 언제 어느 때나 필요한 순간에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가 영어도 모국어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말 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의 앞에서도 인용한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사례를, 저자는 책의 다른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다. 어떤 아이가 영어 교육용 CD-ROM을 가지고 놀았다. 게임, 이야기,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유아용 영어 CD-ROM이었다. 아이가 이것을 한참 가지고 놀더니 엄마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Follow me'가 뭔지 알아?" 엄마가 궁금해서 아이에게 물었따. "그래. 그 뜻이 뭐야?"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응, '이리 와 봐. 내가 뭐 보여줄게'야." 엄마는 아이에게 CD-ROM을 보여주면 뭔가 영어를 많이 배우겠지 하는 욕심에 그것을 가지고 놀게 했는데, 아이가 2시간짜리 영어 교육용 CD-ROM에서 익힌 영어 표현은 "Follow me."였다. 그리고 그 뜻을 "이리 와 봐. 내가 뭐 보여줄게."로 이해했다. 엄마는 아이가 뭘 보고 그렇게 말했는지 궁금했다. Follow me라니, 그 뜻은 원래 "나를 따라와."라는 말인데 보여주긴 뭘 보여준다는 것인가?

유아를 위한 영어 CD-ROM에는 분명 follow me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 밖에도 수많은 영어 표현이 있었다. 그런데 왜 아이는 그 표현만 배웠을까? CD-ROM 속 상황은 이랬다. 컴퓨터 화면에 애니메이션으로 남자아이가 등장하고, 그 아이가 거북이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Follow me."라고 말하면서 어디론가 간다. 그 장면과 follow me 표현이 아마도 기막히게 잘 조합이 되어 아이에게 이해가 되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것이 그 아이가 2시간 정도의 유아용 영어 CD-ROM을 수없이 가지고 놀면서 익힌 영어 표현의 전부라는 사실이다. 그 표현 외엔 거의 배운 것이 없다. 그 CD-Rom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어 표현은 그 아이에게 무의미한 자연의 소리, 즉 의미와 상황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단순한 소리에 다름없었다. (152쪽) 


단순하게 오랜 시간 영어 환경에 노출한다고 해서 영어 활용 능력이 늘지 않는다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호 교류 속에서 영어 환경에 노출되도록 해야하고, 그러려면, 우리나라도 이중언어 사회로 가야만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겠지요. 그리고 그 능숙한 사용으로 말미암아 엘리트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충족이 되겠지요. 


그래서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 - 속칭,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저자는 그 표현이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일컫고 있습니다 - 부터 영어를 향한 욕망은 넘실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자연스러운 영어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영어를 조금 더 잘 구사하는 수준에 이르를 수 있겠지요. 



어마어마한 영어 사교육, 그러나 그 성공 여부는


그러나 그 성공 여부도 실은 불투명합니다. 저자는 소위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와 어린아이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원어민 강사: What day is it today?

아이들: Sunny.

원어민 강사: No, what day is it today? What day is it today?

아이들: It's Tuesday.

원어민 강사: Sunday, Monday, Tuesday, Wednesday, Tuursday, Friday, Saturday.

원어민 강사와 아이들:  Sunday, Monday, Tuesday, Wednesday, Tuursday, Friday, Saturday. (167~168쪽)


저자는 이런 형태의 상호 교류가 '영어 수업이지, 일상의 자연스러운 영어 대화 환경이 아니(168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수백만원을 들여서 이렇게 영어를 투입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은 인위적이고, 따라서 영어가 학습되는 형태로 아이들에게 투입되며, 그렇기 때문에 일상의 자연스러운 영어 대화 환경에서는 도저히 써먹을 수 없는 영어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덧붙여볼까 합니다. 제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영어 강사 선생님은, EBS에 출강하시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시고 석사 과정까지 이수하셨던, 국내에서 동시 통역사로 활동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한 학기 내내 영어로 수업을 하셨는데 - 죽을 뻔 했네요 - 제일 마지막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한국어로 - 그래서 제가 알아듣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죠 - 해주셨습니다. 남편이 미국 유학 갔을 때, 자신도 따라갔었는데, 한국에서 동시 통역도 했고 학위도 있어서 영어에 큰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미국에 가서는 한동안 바깥에를 나가지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바깥에 나가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매일매일 집에서 TV만 보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 석 달 쯤 지나니 현지의 영어가 익숙해지기 시작해서 조금씩 활동하기 시작하셨다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맞추어진 영어입니다. 항상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을 보면 조금 덜 빠르게 말하죠. 마치 우리가 외국인들하고 한국어로 소통할 때 조금 천천히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위의 예시처럼 배운 어린이들이, 조금 더 낫게 영어 사용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일상적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영어는 아닙니다. 그것은, 영어 학습 환경 속에서 잘 훈련된 것일 뿐. 수학으로 말하면, 유형 문제는 잘 풀지만, 응용 문제는 잘 풀 수 없는 그런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일이 다 풀린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G20 정상회의를 준비한 이창용 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G20 정상회의 준비를 위해 해외 유학을 다녀왔거나 해외에서 직업을 가진 민간인을 채용했는데, 정부 일이라는게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당연한 말이다. 말만 유창하다고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나름의 경쟁력을 가지려면 우리 문화,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 행정 경험,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런 바탕이 없이 말만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07쪽) 


아이들이 무엇을 해야할 것입니까. 벌써부터 일주일에 사흘, 닷새씩, 영어 '학습'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내 연구실에 두 명의 학생이 찾아왔다. 한 학생은 중학생이고 다른 학생은 고등학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 네 살 때 엄마와 함께 미국에 가서 로스앤젤레스에서 1년, 그리고 워싱턴 D.C. 근교에서 1년 정도 유치원을 다녔다. 중학교 2학년인 다른 아이는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도 없었고,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을 다닌 경험도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 학생은 그 시절의 기억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물론 그 학생이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그 학생은 항상 "엄마가 그랬어요."라는 식으로 말했다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쯤에 그는 한국에 돌아왔고, 돌아온 이후에 영어는 다른 아이들처럼 배웠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그렇게 영어에 흥미를 가지고 깊이 공부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한편 중학교 2학년 학생은 국내에서 영어를 배운 경험만 갖고 있었다. 조기에 영어를 배운 경험도 없었다.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약간의 영어 사교육을 받았고 영어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영어에 아주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현재 그 두 학생의 영어 능력이 궁금하여 영어로 몇 분씩 인터뷰를 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중학교 2학년 아이의 영어 능력이 어린 시절 초등학교 입학 전에 미국에서 2~3년 살면서 미국 유치원을 다닌 아이보다 훨씬 나았다. 이는 충분히 설명이 되고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175쪽) 


영어의 투입 시기가 빠를 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영어를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영어를 잘 하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또 다른 주장입니다. 차라리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휘를 배우는 것은 오히려 지적으로 훨씬 성숙한 어른들이 잘 배우고, 문장의 구조나 형식에 대한 이해나 습득도 아주 나이 어린 어린이들보다 인지적으로 성숙한 어린이가 더 잘 배운다. 발음은 어릴수록 낫다는 결과가 있지만, 그것도 언제가 결정적 시기인지 명확하지 않다. 즉, 말을 배울 수 있는 것은 한 시기가 아니라 여러 시기가 있고 그런 시기도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민감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결론이다. (145쪽)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 위해 다양한 근거로 책의 3분의 1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어를 배우는 데 나이는 수많은 여러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영어를 배우는 데 교육 시간, 노출, 나이, 동기, 언어 습득 재능, 모국어, 다국어 사회 환경 등 수많은 변수가 있다.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영어 습득에 있어 '나이'보다 노출의 양이나 시간과 같은 변수가 더 중요하다 때문에 만약 우리 아이가 영어 원어민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 하루 빨리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 아이가 평생 영어로 먹고살고, 미국에 가서 대통령은 못 되지만 주지사라도 한번 하고 싶다면, 하루라도 빨리 미국행 비행기를 태워 보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잊고 철저하게 미국인이 되는 것만이 길이다.  (201쪽)


정말 미국인이 되라는 이야기이겠습니까.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기 위한 욕망은, 결국 영어권 '확장그룹'에 속하는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제아무리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이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 확신이기도 합니다. 



결론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일곱 가지 대안을 마련하면서, 공교육에서의 역할과 그 속에서의 교사의 자율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 경험과 제 주변의 경험 이야기를 하면서 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 사전의 표제어 옆에 있는 발음기호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학교 영어 시간에, 새로운 단원을 시작할 때는 항상 샤프를 들고 긴장된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본문을 읽어주시면, 저는 샤프로 선생님의 발음을 본문 밑에 한글로 적느라 바빴습니다. 선생님이 'I have some bread'라고 읽으시면 저는 그 밑에 '아이 해브 썸 브래드'라고 적는 식으로 말이죠. 왜냐하면... 그렇게 적어두어야 나중에 본문을 읽으라고 저를 시키면 저도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have' 옆에 있는 '[hӕv]'가 뭔지 몰라서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여름방학 때, 동네에 있는 한 달에 3만 5천원짜리 영어 학원에서 처음으로 발음기호가 뭔지, S+V 가 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영어 '학습'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였기 때문에 항상 영어 실력이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니, 모의고사에 교과서 외 지문이 나오는 것이 일상이 되다보니, 독해 스킬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되니 - 혼자 서점에 가서 독해책을 하나 샀습니다. '리딩 튜터'라는 교재가 처음 나왔을 때, 가장 기초인 1권을 샀습니다. 독서실에 앉아서, 지문을 한 번 읽고 문제를 푼 후,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지문과 풀 수 없는 문제에 절망하면서 지문에서 모르는 단어를 체크하였습니다. 거의 다 모르는 단어들이었지만 별도의 학습장에 꼼꼼히 적고 사전을 찾아가면서 뜻을 찾아 적고 외워 보았습니다. 그런 후에 다시 지문을 읽고 외운 단어를 지문의 문맥 속에서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모르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체크하고는 다음 지문으로 넘어갔습니다. 한 예닐곱줄 되는 지문을 보는데 30분 이상이 걸리더군요. 하루에 세 개씩의 지문을 보았는데, 꼬박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1달쯤 지나, 100여개의 지문이 있던 1권을 끝낼 때가 가까와오니, 지문 세 개를 보는데 두 시간이 걸리던 것이, 삼십 분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단어도, 독해 스킬도 향상된 셈이죠. 내친 김에 1권을 마치고 2권을, 2권을 마치고 3권을 보았습니다. 최상 난이도인 3권을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 결국 고등학교 1학년 11월부터 1월까지 그 석 달 동안의 제 공부가, 고 3때 수능을 보고 대학별 본고사 영어 시험을 보는 디딤돌이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대학 선배 한 사람이, 군대를 다녀와서는 토익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고시 준비를 해야하나, 취업 준비를 해야하나 갈등하다가 그냥 군대나 가자 그러면서 군대를 갔는데, 갔다 와서는 고시 쪽은 접고 취업을 준비해야겠다면서 토익 학원을 등록하더군요. 3학년 1학기 여름부터 준비했는데, 그 전에는 토익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학원에 다니면서 준비하니까 8개월 뒤에는 비로소 900점을 넘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계속 토익 시험 점수를 높여가다가 취업에 성공해서, 지금은 좋은 회사 잘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들었네요. 교사 월급보다는 뭐... 세 배 쯤 더 받는...? (쿨럭)


자녀의 영어 수준이 원어민 수준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면, 결국 영어 학습의 목표는 수능과 취직이겠지요. 그것을 위해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영어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붇는 것보다, 아이가 자라서 스스로 영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어릴 때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 특히 정서적인 부분 -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도울 수 있는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생각에 확신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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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4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리야헌처크 2017-12-24 17:53   좋아요 0 | URL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한글의 역사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4
김주원 지음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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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5월에, 민음사 패밀리 세일 당시에 구매했더랬습니다. 구매한 이유는... 6학년 국어 교과서에 훈민정음과 관련한 글들이 자주 나오기 때문입니다. 


찌아찌아족과 관련한 글도 있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훈민정음언해상'에 대한 설명과 그 상의 제정 까닭을 담은 글도 있습니다. 뉴스 방식으로 외국어 남용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에서 한글에 대한 정체성을 강조하는 글은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한 편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언어인 한글 -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부연하기로 하죠 - 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부분은 분명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습득하여 사용하는 한글은,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발생이라든지, 그에 대한 의문점 등을 가지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이미 잘 쓰고 있는데, 굳이 더 알아야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보니, 우리는 한글에 대한 별다른 지식에 대한 필요성이나 호기심 없이 그냥 사용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다양한 글을 통해 그러한 상황을 바꾸어보려고 하는 것이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조금 더 넓고 깊게 안 연후에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서울대 교수인 김주원 교수의 '서울대 인문강의'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강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로 자세하고 전문적인 내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훈민정음'이라는 말의 뜻은 '백성을 깨우치는 바른 소리'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훈민정음은 소리는 아닙니다. 말은 아니죠. 글입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에도 우리말은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말을 표기할 수 없는 글이 없었던게지요. 그래서 신라 시대, 설총이라는 학자는 이두문을 고안했습니다. 우리말의 발음과 같은 발음이 나는 한자를 씀으로써 우리말을 표기한 것이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자주 드는 예가 하나 있습니다. 

 I love you. 를 우리는 아이 러브 유라고 말하고 I love you. 라고 쓴다. 이 때 아이 러브 유, 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고, 이것을 I love you. 라고 쓰는 것은 글이다. 전 세계적으로 말은 3천여 종류가 있지만, 그 말을 표기할 수 있는 글을 가진 것은 50여 종류 밖에 없다. 만약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나는 너를 사랑해'를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고 nanun nourul saranghea. 라고 썼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말은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의 말을 표기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것이죠. 훈민정음은 표기수단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말은 이 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어'와 '한글'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많은 경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한글을 통해서 배운다. (15쪽) 

우리는 한국어를 먼저 배웁니다. 그 수단이 되는 것이 한글인 것이죠.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에 대한 것도 위와 같습니다. 찌아찌아족은 자신들의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표기할 글이 없으니, 한글을 이용해서 표기하기로 했다는 것이죠. 물론,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에 대해서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내용의 보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일단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은, 글로써의 한글 사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첨언하자면, 따라서 '훈민정음'이라는 명칭 자체도 글로써의 한글을 의미하는 바른 명칭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훈민정음은 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2. 

저자는 '한어 학습의 백태'라는 소제목으로, 당시 외교에 사용되었던 한어, 즉 명나라에서 사용하던 언어를 당시에 어떻게 익혔는지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영어라는 언어를 위해서 온 나라가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서 몰입하고 있지만, 조선 초기에는 명나라의 한어는 역관이라고 하는 특수한 계층에서 담당하였습니다. 모두가 그 말을 알 필요는 없었던 것이지요. 국가의 외교를 위해서 한어를 꾸준하게 학습하였던 역관들의 학습 방법, 저자는 그것을 요약하여 주고 있습니다. 


1) 외교문서 작성이 가능한 자이면 외국인도, 포로도 중용

2) 외교문서 전문가는 부친상도 제대로 못 마친다

3) 이문(한어) 전문가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4) 외국어 학습을 위해서는 우리말을 하면 안 된다

5) 외국어 학습은 기숙 학원 식으로

6) 외국어는 외국에서 배워야

7) 북경에는 못 보내니 요동에라도 보내야

8) 한어 학습을 평가하여 상벌을 줌

9) 외국어 공부는 젊을 때 해야

10) 언어만 배울 것이 아니라 교양도 쌓아야


이와 같은 내용 중에, 우리에게 의미있는 부분은 4), 5), 6) 정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이 명심해야 할 부분인 것이죠. 영어 몰입 교육이 맞느냐. 그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영어 교육이 부질없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필리핀이나 인도 같이 제 1언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영어의 숙달을  위해서는 영어만을 사용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살면서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한글을 쓰는 우리나라 사람이, 도대체 영어를 그렇게 과도하게 공부할 필요는 있으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영어의 숙달이 가능하느냐는 말이죠. 영어를 쓰고 싶으면,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로 가야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영어를 사용하면서 계속 살아야죠.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사용할 필요는 극소수입니다. 그 사람들만 숙달해도 될텐데, 우리나라는 모든 사람이 영어를 숙달하기 위해서 영어에 과도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나, 문제는 영어에 숙달된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일 것입니다. 


10)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뉘앙스, 라는 말이 있지요. 언어 자체의 것이 아니라, 언어를 둘러싼 환경이나 배경에 대한 것입니다. 결국, 영어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는, 모두가 영어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서, 영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답게, 평상시에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는 상황에 맞추어, 어느 정도의 영어 교육 정도라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서너시간씩 붙들어두고 수십개의 영어 단어를 외우게 시키고, 실제 언어 생활에서 사용하지도 않는 문법 측면을 가르치느라 아이들을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의 가벼운 회화, 그리고 영어로 된 책들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의 조성 등, 영어의 사용을 실제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측면은 다시 이야기 할 기회가 있겠지요. 


3. 

이 책은 훈민정음과 관련된 다양한 배경 지식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편집 방법으로 시작하여 간송본과 상주본의 차이 및 의미까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상주본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호의적이지는 않습니다. 일단 해례본의 앞 여덟 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낙장도 많은 상태라 완성된 문서로써의 의미는 간송본보다 덜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간송본은, 발견 후에 책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원본에 대한 손상 - 책의 여백 부분을 잘라내는 - 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원본의 여백에 다른 책을 필사하기도 한 까닭에 책의 상태가 깔끔하지는 않지만, 책의 빠진 부분은 앞의 두 장 뿐이라, 훈민정음 창제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보는 듯 합니다. 


빠진 책 앞 두 장을,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하여 보사 - 메꾸어 넣는 - 과정을 거쳐 조악하게나마 원형을 가진 것이 간송본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상주본이 지금 이권 다툼에 휘말려서 그 위치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아쉬움이 크지만, 저자는 간송본에 큰 의미가 있음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4. 

책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록된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그 운용 원리 부분은 두고두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입니다. 


5.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단독의 작업일 것이라는 추측을 저자는 확인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의 공동작업, 또는 집현전 학사들의 작업을 세종대왕이 독려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세간의 인식이었지만, 저자의 주장 및 여러 주장들을 통하여, 현재는 세종대왕이 단독으로 구상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집현전 학사들이 그 사용을 테스트하였을 - 용비어천가, 삼강행실도 등의 편찬 - 것이라는 의견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숟가락 하나 얹는' 지도자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너무 크게 자리잡고 있는가봅니다. 세종대왕은 중국의 다양한 언어학, 철학 책을 통하여 세계의 이치와 언어 사용의 원리를 훈민정음 속에 담았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부분을 분석하여, 저자는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의 주도도 아니고, 단독으로 구상하여 창제하였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종대왕이 세째 아들이면서도 왕위에 오른 상황, 그 아버지인 태종이 거쳤던 왕권 투쟁 상황을 언급하면서, 대군의 세째 아들로 그냥 공부나 하면서 지냈을 수도 있는 왕족 한 사람이, 왕이 됨으로써 훈민정음이라는 글자 체계를 만든 것에 대한 안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역사는 위대한 한 사람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위대한 한 사람이 현재의 삶에 기여하는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은 저자의 표현대로,


훈민정음이 탄생하던 시대의 전후 사정을 독자들과 공유 

하면서


(1) 시대의 요구에 의하여, (2) 하늘이 내린 성인이자, 밤낮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세종 임금이, (3) 때마침 이루어진 송의 성리학을 받아들여 (4) 당대의 언어를 철저히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글자를 창제하고 (5)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6)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나누어 (268쪽)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상 사용하는 한국어, 그리고 한글에 대한 지식을 넓히면서, 우리의 언어 생활에 대한 자긍심과 우리의 언어를 조금 더 유의미하게 사용하려는 마음가짐을 위해서라도,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금 난해한 부분은 적당히 넘어가면서 말이죠. (하하)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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