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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과학자 프래니 1 - 거대한 도시락 괴물 ㅣ 엽기 과학자 프래니 1
짐 벤튼 지음, 박수현 옮김 / 사파리 / 2022년 5월
평점 :
<엽기 과학자 프래니 1 : 거대한 도시락 괴물> 짐 벤튼 / 박수현 / 사파리 (2022) [개개정판: 초판 2005년] [원제 : Franny K. Stein, Mad Scientist #1: Lunch Walks Among Us (2003년)]
[My Review MMXXXIX / 사파리 4번째 리뷰] 내가 독서논술선생이 되던 해는 2005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대입수능시험에 '논술'이 적극 반영되던 시절이었고, 수시와 정시 모두 '논술'을 요구하는 대학도 많던 때였다. 심지어 '논술' 성적만으로 대학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독서논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 초등논술은 그야말로 대세였다. '아침독서캠패인'을 1993년부터 시작했던 '한우리독서논술'을 필두로 '주니어플라톤', '솔루니' 등등 논술시장은 점점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덩달아서 '어린이책'도 서점가를 강타했다. 정말 다양한 어린이책들이 즐기했고, 학부모들은 책을 고르는 것이 너무 힘들 정도로 매달 새로운 어린이책들이 수천 권씩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내 눈을 사로잡았던 책이 있었는데 바로 이 책 <엽기 과학자 프래니>(전10권) 시리즈였다. 누가 봐도 딱 고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었다. 물론 학부모들만 빼고 말이다.
유독 '어린이책'은 선택하는 사람에 따른 '편차'가 심하다. 책을 읽어야 할 어린이들은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바로 뽑아 들고 읽으려 들지만, 정작 '그 책'을 사줄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은 학부모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어린이책'이 학부모들의 '검열'에 불통을 받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학부모들은 '책 제목'에 약하다. 그래서 '초등 몇 학년이 꼭 읽어야 할'이라거나 '초등교과서에 꼭 나오는'이라는 책 제목을 보면 바로 사주는 편이다. 왜냐면 학부모들이 '그 책'을 읽지 않을 것인데, '제목, 자체'가 초등학생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적혀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러니 자신들은 안 읽어도 알만 한 내용일테고, 초등학생인 자녀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일테니 두 말 않고 지갑을 열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준 책을 순순히 읽을 '초등학생'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공부방 책꽂이에 수년 간 꽂혀 있다. 재활용 버리는 날에 거의 '새 책'으로 버려지곤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읽고 또 읽는 책'은 따로 있다. 바로 이 책 <엽기 과학자 프래니> 같은 책이다. 이런 책은 사 놓으면 무조건 '본전'은 뽑는다. 아이들이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학부모들은 또 고민에 빠진다. 분명 '이 책' 같은 책은 학교 시험에도 나오지 않을 것이며, 성적 향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 확실하며, 읽어서 정서함양에 좋을 것 같지 않은 책을 줄기차게 읽어재끼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기 때문이다. 정작 학부모들은 '이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섣불리 판단하곤 한다. 물론 읽어본 어른들도 한 말씀 하시곤 한다. "아이들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걸까요?" 정말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하긴 학부모들이 어렸을 시절에는 이따위 '어린이책'이 전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엽기적인 내용일 뿐더러 처음부터 끝까지 '괴물'만 나오는 이런 책들을 읽는 어린이는 분명 나쁜 어린이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에게 되묻겠다. 당신들은 왜 '막장드라마'를 욕하면서 계속 보고 있느냐고 말이다. 답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아무런 '교훈'도 없이 '막장'만 가득한 드라마를 실컷 욕하면서 또 보고 있는 당신을 스스로도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 궁여지책으로 '재밌다'는 한 마디만 할 것이다. 교훈적으로 아무런 이득도 없지만 그저 '재밌기' 때문에 보고 또 본다고 말이다. 어른들의 삶이 하룻동안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느냔 말이다. 그럴 때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국쌍(이준석 후보 때문에 '심한 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겠다)'에게 상소리를 날려주는 재미로 본다고 핑계를 댈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도 하룻동안 학교 가랴, 학원 가랴, 숙제 하랴, 어른 못지 않게 엄청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면서 스트레스가 엄청 쌓였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재밌는 어린이책'이 필요한 셈이다. 바로 이 책 <엽기 과학자 프래니> 같은 책들 말이다.
이 책의 내용은 정말 별 것 없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소녀가 한 명 나오는데 아주 '귀여운 과학 소녀'다. 과학 실험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어른들도 힘들어하는 어려운 실험도 뚝딱뚝딱 거릴 짧은 시간에 척척 해내는 놀라운 천재 소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과학 소녀가 좋아하는 것은 보통의 또래 여자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예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프래니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 다르기 때문이다. 제목에 '엽기 과학자'라는 것에서 귀띔을 얻었다면 바로 맞췄다. 프래니가 귀여워하는 것은 '괴물'처럼 괴상망측한 것들이다. 박쥐나 해골 따위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하는 야구 놀이에서 '야구공' 대신에 '눈알'을 뽑아다 던지는 상상을 하는 괴짜 과학 소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괴짜 과학 소녀가 엄청난 위기 속에서 학교선생님과 친구들을 구해내는 영웅이 되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프래니는 '엽기 과학자'답게 괴물 따위를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 나타난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서 또 다른 괴물을 만들었고, 프래니가 만든 괴물이 선생님을 납치한 괴물을 물리치고 학교를 구해내자 모든 이들이 프래니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된다.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살짝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간단치 않은 '상상의 샘'을 건드릴 수 있게 된다. 바로 프래니의 멋진 상상력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서양에서는 조금 다른 모양이다.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면 영웅 대접을 곧잘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영웅'은커녕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뿐이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행동을 해야지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곧바로 특별한(?) 취급을 받기 일쑤다. 분명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고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하는 행동'은 조금이라도 다르면 안 된다. 속담에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할 정도로 '튀는 행동'은 금기시 하는 분위기다. 책 속에서 서양의 아이들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저마다 다른 '다양한 겉모습'을 갖고 있지만, '하는 행동'은 거의 비슷했다. 수업 시간에는 반듯하게 앉아서 수업에 열중해야 했고, 수업 시간인데도 '모두가 아는 내용'일거라 생각하면 궁금해도 질문을 해서는 안 되며, 점심 시간이면 모두가 똑같은 모양과 맛의 '햄샌드위치'를 꺼내서 먹고 있다. 그런데 프래니만 다르다. 수업 시간에 독특한 눈빛을 반짝이며 선생님의 수업에 열중했고, 수업 시간인데도 선생님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했으며, 점심 시간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햄샌드위치'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마녀가 끓이는 수프 같은 것에서 끈적끈적한 음식을 꺼내먹으려 했고, 번쩍번쩍 날이 바짝 선 칼에 채소와 고기를 꽂아서 화로 위에서 굽는 쇼를 펼치며 점심 한 끼를 해결하곤 했다. 반 아이들은 이런 프래니를 '친구'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건 '겉모습'일 뿐이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자. 프래니가 좋아하는 것들이 괴상망측한 모양을 한 '괴물 같은 것'일지는 몰라도 착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 그래서 프래니는 친구들이 괴로워하는 '망층한 모양새'를 바꾸어서라도 친구들을 놀래키지 않고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프래니, 자신의 모습'을 귀엽고 예쁜 스타일로 바꿀 정도였다. 물론 이런 변화는 친구들이 환영했다. 그리고 그렇게 변신(?)한 프래니와 사이좋게 놀기도 했다. 하지만 프래니는 새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고 있지만, 마음속까지 진심으로 즐겁지는 않았다. 왜냐면 그건 '자신의 본래 모습'이 아니고, 속마음까지 속이면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는 것에 힘듦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사건'이 발생했다. 친구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에서 그만 버려서는 안 되는 '공업용 쓰레기'가 포함되는 바람에 무서운 괴물 제조법이 완성(?)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어린이책이다. 어째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뛰어노는 교실 쓰레기통에서 '공업용 쓰레기'가 나올 수 있느냐고 따지지는 말자. 윤석열도 뜬금없이 계몽..쿨럭쿨럭..암튼 따지지 말자. '상상력'을 발휘해서라도 말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괴물이 바로 '게호박 괴물(일명 '게물')'이다. 그 '게물'은 끔찍한 모습과 어울리게 담임선생님을 납치해서 아주 높은 깃봉 꼭대기로 올라가버리는 나쁜 괴물이었다. 반 친구들은 오줌을 지리고 놀라서 비명을 지를 정도로 혼비백산하여 난리법석을 피웠다. 하지만 괴상망측한 것을 사랑(?)하는 프래니는 그따위 괴물의 모습을 보고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고서 나쁜 괴물을 물리칠 방법을 떠올리려 애쓴다.
그러다 떠올린 방법은 바로 '햄으로 만든 착한 괴물'이었다. 아이들이 점심 식사로 싸온 '햄샌드위치'에서 빼낸 햄에 쓰레기통에 남아 있는 '공업용 쓰레기 찌꺼기'를 섞어서 괴물을 만들어냈는데, 프래니의 '뛰어난 바느질 솜씨'가 아주 일품이었기에 겉모습은 프래니 마음에 쏙 드는 괴상망측한 모습이었지만, 프래니의 마음을 닮아 아주 착한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괴물의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프랑켄슈타인'의 모습과 닮았다. 이제 햄과 바느질 솜씨로 만들어낸 괴물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과연 무엇으로 햄 괴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 바로 '건전지'였다. 메리 셀리가 쓴 <프랑켄슈타인>에서도 박사가 괴물에게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던가 말이다. 프래니는 천재 과학 소녀였기 때문에 그런 지식은 정말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생명력을 얻은 '햄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처럼 엄청난 괴력을 뽐내며 교실의 한 쪽 벽을 허물고 곧바로 선생님을 납치한 '게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리고서 '게물'과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선생님도 무사히 구해낸다. 그리고 프래니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환영을 받으며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정말 간단한 내용이지 않은가? 그런데 살짝 깊이 들여다보니 그 속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었던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찾아낸 것은 바로 '착한 마음씨'였다. 이 책 <엽기 과학자 프래니>가 그저그런 괴상망측한 내용만 담겨 있었다면 어린이 독자들에게 크게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프래니'의 엽기적인 행동에서 장난이 심하고 말썽만 부리는 친구가 떠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또래의 어린이들은 심한 장난과 못말리는 말썽에 '나쁜 마음'을 담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의외지만 십중팔구는 그렇다. 분명히 '악의적인 장난'과 '못된 심보'를 가진 친구들이 있긴 있지만, 대개는 '본의'가 전혀 그렇지 않은 장난과 말썽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책에서 프래니가 그런 '장난꾸러기'들의 본심을 잘 드러내어주는 장면이 많기에, 어린이 독자들이 '대리만족'을 하는 듯도 싶다. 물론 모든 장난을 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때로는 친해지고 싶은데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고 '친구들의 속마음'도 잘 몰라서 엉망진창으로 장난을 치고 못 말리는 말썽을 피우는 방법을 써먹는 친구들이 곧잘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이런 친구들을 전문용어로 '관종'이라고 부르기도..쿨럭쿨럭
암튼,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데에는 다 까닭이 있는 법이니 조금쯤은 '그 까닭'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특히나 '선생님'과 '학부모'는 이런 이해하기 힘든 메시지를 보내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이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는 짓마다 '괴짜'와 다를 바가 없지만, 그건 그저 '겉모습'일 뿐이고, '속마음'까지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착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엿볼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으로 어린이의 모든 것을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어른들이야 그런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면 안 되고, 그랬을 경우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잘 모르는 어른들은 철컹철컹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아직까지 그런 사리분별까지 잘 못하는 경우도 있을테고, 또 바람직한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을테니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먼저 다가가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난, 이 책 <엽기 과학자 프래니>를 통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랑스런 자녀와 제자 들이 때로는 '악마처럼' 느껴질 정도로 끔찍한 짓을 저지르곤 할 때마다 '참을 인'을 마음 속으로 세 번 쓰면서, 곰곰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따져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귀여운 소녀도 '박쥐'를 좋아할 수 있고, 귀여운 인형이 아니라 '다른 인형의 목을 따버리는(?) 괴물 이빨을 가진 인형'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칼릴 지브란도 말하지 않았던가. '보이는 사랑'은 정말 보잘 것 없다고 말이다. '보이지 않는 사랑'에 비한다면 말이다. 겉모습은 괴물일지라도 마음씨는 정말 착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함부로 단정 짓지 말고, 무책임하게 속단하지도 말자.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심오한 상상의 세계에서는 어떠한 것도 '가능성'으로 보아야만 할 것이니 말이다. 앞으로 <엽기 과학자 프래니>가 보여주는 상상의 세계에 살짝 주목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