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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천 년 넘어 새로워진 이야기 너머학교 고전교실 15
장동석 지음, 홍선주 그림, 나관중 원작 / 너머학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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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학교 고전교실 15] <삼국지 : 천 년 넘어 새로워진 이야기> 장동석 / 나관중 / 너머학교 (2021)

[My Review MMCCXCII / 너머학교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스물한 번째 리뷰는 어째서 이렇게나 사랑받는 것인지 궁금증을 풀어주는 <삼국지 : 천 년 넘어 새로워진 이야기>다. 2026년 한 해는 <삼국지>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목표를 잡았다. 안다. 이미 시중에 널리고 널린게 <삼국지>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 계속 묻게 된다. <삼국지>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 이유는 해마다 바뀌었다. 매번 '연례행사'처럼 새해가 되면 '소설 삼국지' 10권을 뚝딱 읽어대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면 매년 읽고 또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읽고 난 뒤의 '감상'이 달라졌다는 말인데, 심지어 '읽었던 책'인데도, 똑같은 '이문열책'이고, '고우영책'인데도 새삼 다른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보자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걸 미루고 미루다가 26년 올해를 '시작'으로 잡았다. 더 미룰 이유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지>와 관련된 책들을 이책 저책 마구잡이로 읽다보니 뭔가 감이 잡히기도 하다. 그걸 쓰려고 한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 : 천 년 넘어 새로워진 이야기> 관점 포인트 : 이 책은 '너머학교 고전교실'이라고 21세기를 살아갈 십대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고전읽기를 권장하기 위해서 출간되었다. 읽어보니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담겨 있고, 고전을 읽고 떠올릴 수 있는 '문제의식'까지 짚어보는 유익한 책이었다. 이 책이 그 시리즈의 15번째 책인데, 기회가 되면 전 시리즈를 다 읽고 리뷰하면 좋을 듯 싶다. 암튼 <삼국지>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나게 풀이해준 것이 가장 눈에 띄었다. 아직 <삼국지>를 접하지 못한 청소년이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고 '소설 삼국지'를 읽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소설 삼국지', 흔히 말하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대부분 10권 분량에 해당하는 방대한 스토리로 인해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읽기도 전에 포기하고 마는 고전 중의 고전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삼국지>를 읽다가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확실하고 친절한 '네비게이션'이 필수인 셈이다. 적어도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만이라도 익숙해질 정도로 '소개'를 해주는 책이 먼저 선행되어야 그 방대한 이야기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방법이 또 하나 있는데, 청소년들이 <삼국지>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고, 제대로 된 호기심을 갖기 위해서 '게임 삼국지'를 먼저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게임을 즐기다보면 자연스럽게 외우려 들지 않아도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천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낯익게 된다. 그렇게 등장인물들과 친숙해진 뒤에 '소설'을 읽으면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테니 훌륭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 삼국지'를 즐기다가 <삼국지> 매니아가 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고대 중국사'를 전공하는 사학자가 되거나 '작가'로 데뷔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만큼 매력 만점인 고전이니 부담갖지 말고 즐기듯 재미나게 <삼국지>를 즐기길 바란다.

그럼 이 책을 읽으면서 놓치지 말아야할 '주제'는 무엇일까? 사실 <삼국지>를 읽으면서 누구를 '주인공'으로 삼아 읽느냐에 따라 느낌도 완연히 달라진다. 조조를 주인공을 본다면 '실리'를 중점에 둘 수 있고, 유비를 주인공으로 본다면 '도덕'을 중점에 둘 수 있다. 조조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따위를 가리지 않았기에 '실리추구'하는 면에서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며, 실제 역사에서도 '조조'는 실리를 효율적으로 추가한 덕분에 삼국 가운데 가장 강력한 '위나라'를 만드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반면에 유비는 '도덕'적 명분을 무엇보다 내세웠기 때문에 굉장히 우유부단하고 유약하게 보이지만, 그 덕분에 유비가 내딛는 발걸음에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당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비의 행보'는 다른 이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귀감이 되었고, 그것으로 유비는 '촉한의 황제'까지 오르게 된다. 어떤가? 조조와 유비는 서로 다른 방법이지만 모두 '한 나라의 왕'이 되는 똑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뿐만 아니라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에 따라 서로 다른 '관점'을 엿볼 수 있고, 그것에 따른 결과가 '성공'한 이도 있고, '실패'한 이도 있었기에 <삼국지>는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로도 유명한 책이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에 어떤 '주제'로 읽으면 청소년들에게 좋단 말인가?

나가는 글 : 우리 청소년들이 <삼국지>를 읽으면서 깨우쳤으면 하는 바람은 바로 '인간 본성'이다. 조조는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을 했단다. 엄청난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범한 말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몰염치'하고 '비열한 속내'까지 다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조조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야심' 가득한 인물이었다. 조조는 집안이 '환관 출신'이라는 비천한 가문인 탓에 후한말 '십상시의 난' 이래 소위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나 고관대작을 지낸 명문가들에게 홀대와 천대를 받던 어린 시절을 겪었다. 그때문에 말썽도 많이 부리고 혼도 많이 나긴 했지만, 커가면서 점점 커지는 '야심'만큼이나 '의협심'도 강해서 영웅이 할 법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렇게 조조는 '실리추구'를 함에 있어서 남들이 쉬이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재능을 선보였던 것이다. 이런 재능에 반해서 '조조'를 따르는 인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조조는 '대의명분'이나 '도덕적 양심' 따위보다 실리추구에 열심이었기에, 조조 주변에는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출세를 위해서 조조의 편에 섰고, 조조도 분명한 '신상필벌'로 재능을 발휘한 휘하 장수들에게 아낌없이 선물을 주었으며, 반대로 실패를 했더라도 만회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용서하며 더 큰 일을 도모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조조에게는 '발작버튼'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가져야 마땅한 것을 남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면 치졸할 정도로 잔인하게 '대학살'을 저지르곤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여백사 사건''서주 대학살'이다. 여백사 사건은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뒤에 도망가다 진궁의 도움을 받고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는데, 도망가던 길에 우연히 만난 아버지 조숭의 옛친구 '여백사'를 만나 하룻밤 묵어가는 호의를 받았는데, 간밤에 조조와 진궁은 여백사의 일가족을 모두 죽이고 도망길에 올랐던 것이다. 까닭인즉슨, 의로운 일을 하다가 도망을 하는 조조에게 후한 대접을 하기 위해 '돼지'를 잡으려던 것을 오해한 조조와 진궁이 돼지를 잡던 노비 뿐만 아니라 온집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나중에야 밧줄에 묶여있는 돼지를 보고서 조조와 진궁은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가 무엇인지 깨달았지만, 동탁에게 쫓기는 신세인 탓에 그대로 떠나려 한다. 마침맞게 옛친구의 아들인 조조에게 대접하기 위해 술을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다. 여백사는 조조가 서둘러 떠나려는 것을 보고 아쉬움이 앞섰지만, 조조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여백사'를 죽여버리고 그 자리를 떠난다. 진궁이 무슨 짓이냐며 추궁을 하지만, 조조는 태연하게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거나 비웃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이런 조조의 '본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조조가 반동탁연합군을 따라 동탁을 토벌하러 갔다가 실패로 끝나자 '연주'로 내려가 근거지로 삼고 세력 확대를 나섰는데,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조조가 다스리는 곳을 향해 오다가 서주에 이르렀을 때 서주 태수 도겸이 조조와 친해지기 위해서 후한 대접을 하고 값비싼 선물까지 한보따리 선사하고 환송해주었는데, 호위를 맡겼던 장패가 옛날 '황건적 버릇'을 잊지 못하고 값비싼 재물을 탐내서, 그만 조조의 아버지를 죽이고 달아났다. 그러자 조조는 이 모든 비극이 '도겸 탓'이라며 서주를 총공격한다. 그리고 마주친 백성들까지 모조리 때려죽이고 마는데 이게 바로 '서주 대학살'이었다. 이때 얼마나 많은 백성들을 죽였는지 시체로 산을 이루고, 핏물로 강이 넘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 조조는 왜 이렇게 '분노'했던 것일까? 분노조절장애가 있거나 사이코였을까? 아니다. 조조는 분명한 이유를 들어서 '서주 대학살'을 감행했다. 그건 도겸이 유비에게 '서주'를 꽁으로 준 것에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애초에 서주는 조조가 찜콩한 지역이었는데, 그걸 돗자리나 짜서 내다팔던 유비에게 홀라당 빼앗기다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던 것이다. 그래서 핑계를 댄 것이 '아버지의 복수'다. 그런데 조숭을 살해한 범인은 '도겸'이 아니라 '장패'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조조는 장패에게 시비를 걸고 복수를 가하면 그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조는 이참에 '서주'까지 세력 확장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 '서주 대학살'을 저지른 것이다. 여기엔 또 하나의 이유가 담겨 있다. 서주의 백성들이 '유비'를 맹목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그 '배신감'과 더불어서 '질투심'이 폭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가? '인간 본성'을 파악하면서 <삼국지>를 읽으니 더 깊이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 책에는 '조조'에 대한 풀이보다 '유비'에 관한 인물에 대한 풀이가 훨씬 더 많다. 유비, 관우, 장비, 조운, 그리고 제갈량까지 <삼국지>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의 풀이를 읽고, 그들이 지닌 '인간 본성'은 무엇이었을지 파악하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주 훌륭한 지혜를 평생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 담긴 지혜는 그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지 않은가. <삼국지>를 읽으면 고전에서만 찾을 수 있는 따끈한 지혜까지 함께 소장할 수 있을 것이다.

#리뷰 #너머학교 #장동석 #인간본성 #고전독서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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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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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이원복 / 김영사 (2024)

[My Review MMCXCVI / 김영사 3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다섯 번째 리뷰는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학습만화계의 원조' 이원복 교수가 쓴 <먼나라 이웃나라>의 최신개정판(2024) 가운데 1권인 '네덜란드 편'이다. 이번 개정판의 가장 큰 특징은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의 현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인도의 IT강국이지만 너무 큰 빈부 격차'를 다룬 것이다. 그간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고려원미디어'에서 초판을 찍은 이후 93년과 95년에 두 번의 '개정판'을 낸 이후, 2000년에 출판사를 '김영사'로 옮기고서 새롭개 출간을 냈고, '21세기(2008)', '새로 만든(2012)',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2018)',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2024)'라는 조금씩 다른 타이틀을 달고서 꾸준히 출간을 하였다. 그러니 2026년 현재 만 40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10대에 이 책 초판을 읽었던 학생이 벌써 50대를 훌쩍 넘긴 세월을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한결같은 이름으로 계속 출간해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6권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24권으로 확장했으며, '유럽'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 '아시아', '아메리카'까지 전세계에 걸친 그야말로 '먼나라 이웃나라' 모두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어린이 세계사 입문서적으로 탄탄하게 자리매김을 하였다. 서론은 이쯤하고 본격적인 책내용으로 몰입을 해보련다.

<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관점 포인트 : 초판 때부터 의아한 부분은 왜 1권이 '네덜란드'냐 하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특별히 '유럽'을 대표하는 나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도 아니며, 우리의 기억속에 네달란드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작 '풍차'와 '튤립'이 고작이고, 2002년 이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이후 '히딩크 감독의 나라'로 기억할 뿐인 네덜란드가 하필이면 가장 먼저 만나는 유럽의 나라냐는 말이다. 이런 의문은 책을 넘기면 더욱 확고해진다. 왜냐면 책의 절반 가량이 '유럽사 전반'에 대한 내용으로 나열되어 있고, '네덜란드'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절반 이후부터 짤막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이 고작해야 전체 분량의 '절반'뿐이란 말이다. 이는 '초판'때부터 현재 최신 '개정증보판'까지 여전하다.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한 독자들의 지적도 상당하다. 어차피 '각 나라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독 '네덜란드 편'에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개괄적인 설명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이 부분을 확실히 개정해서 '각 나라별'로 조금씩 더 할애를 하고, '네덜란드 편'은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으로 좀더 충실하게 꾸며달라는 요구 말이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다.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조금씩 '내용수정'이 가미되거나 삭제되긴 하지만 첫 시작의 '이 부분'만큼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막상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으로 충실히 보충을 하려해도 그만큼 할 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서문'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애초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집필한 의도도 '유럽의 선진 모델'을 우리 어린 독자들에게 선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피치 못하게 '유럽사 전반'에 대한 개괄적 내용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거란 말이다. 그런 까닭으로 <먼나라 이웃나라>의 시작은 큰 변화 없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듯 싶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이 '유럽사 전반'에 관한 내용이 <먼나라 이웃나라>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한 점이 없지 않다. 우리가 '서양사'로 국한된 관점으로 '개론(서문)'을 읽을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발자취'를 최대한 간추려 본다는 관점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일단 서구사회의 역사를 살펴본 뒤 대략적으로 이해를 한 뒤에 '각 나라별'로 그 이해한 내용을 맞춰보면 일종의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서로 비교분석하면서 읽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밑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된 뒤에는 얼마든지 '자기만의 관점'으로 독서를 할 수 있을테니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단 말이다.

물론,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될 점은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서구 사회의 우월성'을 뒷받침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는 서양이 전세계를 석권하고 점령하다시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약소하고 빈곤한 나라의 처지에서는 '서구사회의 뛰어남'을 하루빨리 배우고 익혀서 그들의 발전상을 따라잡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허나 지금의 우리를 보라. 21세기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자 강대국으로 초일류국가로 발돋움했다. 그런데도 저물어가는 '서구사회의 현주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우러러 보는 식으로 '그들만의 세계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단언컨대 절대로 그렇게 공부해서는 안 된다.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유독 '유럽사'에 포커스를 맞추고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공부하는 까닭은 그것이 인류 보편적인 방법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현재의 유럽 등 서구사회 언론은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상을 극찬하면서도 그 유래가 자신들의 민주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들면서, 자신들은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처럼 발전시키지 못했는데, 대한민국은 자신들이 만든 '민주주의'를 교과서처럼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을 보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발전된 민주주의 모습을 보면서 그 원조격인 서구 사회를 찬양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민주주의는 '서구식'이 아닌 '한국식'이었다는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기원은 그들에게 있으나 우리의 실정에 맞게, 우리의 필요에 맞게 뜯어고쳐 '한국식'으로 만들었더니 전세계적으로 귀감이 되고 '교과서'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는 식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세계사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역사가 설명하기 쉽게 되어 있으니 차용해서 배울 뿐이다. 허나 그들의 방식이 우리에게 꼭 맞지는 않으니 '한국식'으로 바꿔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네덜란드'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이 있을까? 네덜란드는 주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도 당당히 실력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며, 살기 어려운 자연환경에 굴하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도 살기 좋은 터전을 일구며 살았다는 점을 배울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네덜란드 사람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저항 정신'과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살기 좋은 터전으로 일구어 바다를 통해 전세계와 무역을 하여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한 '개척 정신'을 배워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는 서유럽에 위치해 있으면서 북쪽으로 영국, 남쪽으로 프랑스, 그리고 동쪽으로는 독일을 접하고 있다. 이런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와 더불어서 '베네룩스 3국'이라 불릴 정도로 작고 조막만한 나라일 뿐이다. 그런 탓에 네덜란드는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와 약탈속에서 크게 번영하지 못하고 '속국'으로 지내야 하는 시일이 더 길었다. 하지만 '30년 전쟁' 이후 네덜란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아 '신교의 나라(믿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로 당당히 인정받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허나 기쁨도 잠시 주변 강대국이 오랫동안 점거하고 있던 동안 사회문화적으로 '다름'이 역력했던 남부의 벨기에 지방은 따로 독립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벨기에는 언어도 '프랑스어'를 썼고, 종교도 '가톨릭(구교)'을 쓰는 이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 쟁취한 독립인데 따로 분리독립을 시켜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내전'에 돌입했지만, 결국 갈라서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현재의 네덜란드가 탄생했다.

이런 불굴의 저항 정신이 강했던 네덜란드이기에 척박한 자연환경도 쉽게 굴하지 않고 '바다'였던 곳을 '육지'로 바꾸는 '간척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전체 영토의 2/3가 바닷물 높이보다 더 낮은 땅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좁고 척박한 땅에서 안주하며 살기보다 일찍부터 인접한 바다를 통해서 더 넓은 곳으로 진출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영국과 함께 깨부순 뒤에는 '해상무역'을 발판 삼아 전세계에 식민지를 만들기보다 '무역거점'을 확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더구나 종교도 가톨릭이 아니라 신교였기 때문에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자랑으로 삼을만한 유구한 역사도 없었기에 '자기 것'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한 생각으로 손익계산에 빠른 '경제적 사고방식'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 상인은 전세계를 식민지로 삼으려 들었던 포르투갈과 대영제국과는 달리 전세계 바다를 누비며 '상업활동'에 매진한 것이 부를 쌓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러한 유연하고 실리적인 사고방식은 네덜란드가 '안락사'나 '성매매', '마약' 등에 대한 '합법화'를 시도하는 것을 봐도 꽤나 진취적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첨예한 사안을 '실용적인 사고방식'으로 불법으로 간주하여 드는 천문학적 사회비용을 '합법화'하여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쓰자는데 국민적 선택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특히 마약 합법화는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구입하려 불법을 자행하고 급기야 범죄까지 저지르는 일이 늘어나자 차라리 국가가 합법적으로 '마약 관리'를 하고 싼값에 제공을 하면 마약을 구입하는데 음성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 '양성화'가 되어 마약중독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할 수 있어 '마약 중독'까지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계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네덜란드의 이런 '실용화 정책'은 오늘에 이르러 모두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약중독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안락사나 성매매도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악의적이고 변칙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점차 늘어나고 말이다. 하지만 비록 실패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더라도 네덜란드의 이런 '실용주의 노선'은 개선을 통해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렇게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네덜란드의 무한한 장점일 것이다.

나가는 글 :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유럽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우파적 성향'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혁명'을 주도하는 진보적 정치구호가 강성할 때도 있고, 경제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우파'적 경향도 보이지만, 성장한 만큼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좌파'적 경향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으면서 이런 경향들이 빈번하게 바뀌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진보'와 '좌파'를 나쁘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이 책에서도 은연중에 보수와 우파가 옳고, 진보와 좌파는 나쁘다는 취지로 설명하는 대목이 간간히 보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것들은 엄연히 '유럽의 상황'에 따른 평가일 뿐, 대한민국 정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 독자들이 읽을 때에는 '유럽의 상황'으로 인지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현 상황'으로 이입을 하여 잘못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어른인 학부모도 함께 읽는 책이다보니 이원복 교수의 개인적인 '정치색'으로 잘못 이해하고 이 책의 평가를 단정짓고 매도하는 일도 잣다.

물론, 이는 이원복 교수의 책임을 먼저 물을 수밖에 없다. 만화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너무 복잡한 현실상황을 '도식적'으로 욱여 넣다보니 그런 오해를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시절 그 당시의 '유럽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자칫 오해할 수도 있는 대목을 독자들이 현명하게 해석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프랑스 혁명 같은 것을 '좌파세력들의 난동'으로 치부하고 왕의 목까지 잘라내는 극악무도한 세력의 준동으로 매도하고 '혁명의 주역'인 제3신분(부르주아)의 사람들을 무지렁이들이 감히 국가최고책임자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는 바람에 나라꼴을 우습게 만들고 급기야 외국의 침략까지 불러일으켜서 나라를 망하게 만든 망국의 원흉으로 해석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무지렁이들을 통솔해서 프랑스를 구해낸 나폴레옹의 등장을 '영웅화'하는 어리석음으로 잘못 확대해석할 수도 있다. 나폴레옹이 외국이 프랑스를 침략하는 위기에서 재주를 발휘해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나폴레옹에 대한 프랑스인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대한민국에 빗댄다면 '박정희'를 영웅화하는 것과 매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라면 나폴레옹이 위대한 영웅이 되어야 맞는데 왜 프랑스인들은 나폴레옹을 낮게 평가하는 것인지 제대로 된 배경지식이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이런 부연설명이 좀 약한 편이다. 그래서 어린 독자를 의아하게 만들고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유럽 국가들은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 경제, 외교, 문화, 안보, 군사 등 여러 면에서 '대한민국의 협조'를 바라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없으면 유럽은 망한다'는 논리로까지 해석할 수 있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유럽 각국은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한국과 손을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단 말이다. 심지어 콧대 높던 유럽의 수장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까지 대한민국을 국빈 대우를 하며 서로 모시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유럽 각국이 대한민국에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40년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유럽을 공부하기 위해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필연적이다. 망했다가도 흥하고, 흥하더라도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유럽이 엉망이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잘 나가던 유럽이 왜 망했으며, 망했을 때 유럽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살아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잘나가고 있더라도 언제든지 하루 아침에 폭망할 수도 있다. 불과 1년여 전에도 폭망할 뻔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기적처럼 다시 회생하고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바야흐로 선도국가로 세계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서라도 여러 나라의 '국가경영방식'에 대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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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 어디까지 왔나?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7
이완 맥레쉬 지음, 박미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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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7 : 에너지 위기, 어디까지 왔나?>  이완 맥레쉬 / 박미용 / 내인생의책 (2012) [원제 : Energy Crisis (2005)]

[My Review MMCLVIII / 내인생의책 14번째 리뷰]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있다. 산업을 발전시키면 경제가 더 커지고, 더 활발해지기 때문에 더 풍요롭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바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더 효율이 높은 에너지를 속속 찾아냈다. 석탄에서, 석유로, 석유에서 핵분열로, 핵분열에서 핵융합으로. 우리는 첨단기술을 개발하면서 아주 효율이 높은 에너지를 찾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경제규모를 더욱 키우며 더 잘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다. 기존의 에너지원으로 쓰던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쓴 탓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기후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태워서 대기중에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메테인 등)'의 농도가 짙어져서 지구가 점점 뜨거워진 것이다. 그로 인해 '해수면 상승', '이상기온', '허리케인' 등등 단순한 자연재해로만 볼 수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자주 포착되었고, 그로 인한 피해가 심각할 정도가 되었다.

다행히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핵발전소'를 가동하면 지구의 기후변화에 영향를 끼치지 않는 청정에너지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핵에너지는 절대로 '청정에너지'가 아니었다. 2011년 3월 11일에 일본 동부해안을 강타한 '동일본 대지진'은 엄청난 강진이었고, 지진으로 인한 피해도 상당했지만, 그보다는 해안가를 휩쓸고 지나간 '쓰나미(지진해일)'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보았다. 그 피해 가운데 가장 심각했던 것은 바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인한 방사능 유출로 인해 후쿠시마 인근 지역의 주민은 전부 소개시키고 피해보상을 하고 있으며,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일본정부가 2025년인 지금까지도 '복구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핵발전소 가동'이 얼마만큼 큰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긴 1986년에 단순 조작 실수로 인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와 비슷한 양상이다. 체르노빌 지역 역시 지금까지 방사능 누출로 인한 '접근금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러-우 전쟁'으로 인해 전장으로 변한 상태지만 말이다. 암튼, 한때 '청정에너지'로 불렸던 핵에너지는 '방사능 유출'이 발생하면 그 즉시 엄청난 피해를 주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청정에너지' 지위를 박탈 당했다. 또한 핵에너지는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라는 것으로도 '좋은 에너지'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일단 전세계적으로 '우라늄 매장량'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재처리 과정'을 거치면 '플루토늄' 등으로 재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꽤 효율적인 에너지 자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너지 '생산 단가'는 매우 낮은 편인데 반해서 '핵에너지'를 뽑아 쓰고 남은 쓰레기 처리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이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서 땅속 깊이 200미터 이상으로 파고 들어야 하고, 그리고 5미터가 넘는 콘크리트 벽으로 완벽히 감싸서 '방사능'이 조금이라도 누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깔끔하게 폐기해야 하는데 드는 비용이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핵발전소의 '사용기한'이 보통 20년 정도인데, 이 사용기한이 넘은 핵발전소를 정지하고, 폐기하는데 드는 비용 또한 엄청나다는 점에서 '핵에너지'는 절대 효율이 좋은 에너지도 아니며, 전혀 위험하지 않은 '안전한 에너지'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래서 위험한 핵에너지를 대신해서 값싸고 깨끗한 '청정에너지'로 '천연가스'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천연가스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메테인의 양이 현저히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화석연료'인 까닭에 온실가스 배출에서 완전 자유롭지는 않다. 그럼 온실가스 배출을 전혀 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는 무엇일까? 바로 '재생에너지'다. 재생에너지의 장점은 자연에서 얻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자연환경을 파괴하지도 않고, 훼손시키지도 않으며, 가장 중요한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서 전세계는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해서 제품을 생산하기도 약속하는 'RE100'을 2040년에는 완벽하게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만약 재생에너지가 아닌 재래식 화석에너지를 이용해서 만든 제품에는 엄청난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방식으로 '무역상품'에서 저절로 퇴출되게 만들겠다고 한다. 그래서 전세계가 '재생에너지'를 강제로 쓰게 된다면 '기후위기'를 잘 극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는중이다. 물론, 그런 실효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 중론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쓰고 '화석에너지'는 점차 줄여나가겠다는 의도가 명백히 보이기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적극 지지하고 싶긴 하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는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을까? 실제로 태양광에너지를 모으는 장치에서 '화재 발생' 빈도가 빈번한 것이 사실이고, 바람에너지를 활용하는 '풍력 발전기'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을 뿐더러, 원하는만큼 많은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발전소를 촘촘히 여러 개를 설치해야 하는 문제점도 있을 뿐더러, 자연경관을 해치기도 하고, 엄청 빨리 도는 바람개비(날개) 때문에 애꿎은 새들이 부딪혀서 죽는 일이 굉장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풍력발전소는 고장도 자주 일어난다는 단점이 가장 크다. 또, 수력발전소나 조력발전소, 조석발전소 등은 조그만 규모로 만들었을 때에는 '여러 개'를 만든다는 조건 하에 꽤 효율이 높은 '재생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 효과만점이란다. 그런데 이런 발전소를 수십 개 만들 수 있도록 허가받는 일이 더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규모가 작으면 정부의 관점에서 별로 실익이 없기 때문에 '댐 건설 규모'를 자꾸 키워서 크게 만들려고 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대규모 공사가 되기 때문에 건설 쪽의 경기부양에도 효과가 크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키우기 위해서 '건설되는 댐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잡기 십상이다. 그런데 큰 댐을 만들게 되면 '환경 파괴'가 그만큼 커지게 된다. 또한 '자연생태'에도 악영향을 끼쳐서 '물길'이 막히거나 달라져서 자연지형이 바뀌는 것으로 시작해서 댐 안쪽에 엄청난 양의 '토사물'이 쌓이게 되면 '고인물'이 썩듯 댐 주변에 악취가 발생하고, 오염도 쉽게 발생하게 되어서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큰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또 '수몰지역'이 넓어지게 되면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도 강제로 떠나야 하고, 그 지역의 모든 것이 '물속'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를 낳게 되는 단점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가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지구환경도 되살리는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장점만 가지고 있는 '청정에너지'는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당장 '기후 위기'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이점이 있기에 관심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를 적극 사용하게 되면 우리가 그간 걱정하고 우려했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에너지 위기'가 사라지게 되는 걸까? 지속 가능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기술을 확보하면 일단 큰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재생에너지로 혜택을 보는 나라는 선진국과 강대국 들 뿐이고, 개발도상국으로 불리는 후진국과 약소국 들에게는 오히려 상황이 더욱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생에너지'를 100% 쓸 수 있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선진국과 첨단기술력을 갖춘 강대국 들은 자신들의 부를 아낌없이 투자해서 더욱 효율 높은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빈곤한 후진국과 첨단기술을 갖지 못한 약소국 들은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들에게 '기술력'도 사오고, '제품'도 사다 쓸 수밖에 없어서 양극화는 더욱더 심해질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후진국과 약소국 들은 '재생에너지 원천기술'을 갖기 위해 R&D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전국민의 허리띠를 졸라매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허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렇게 세계는 더욱 불공정해지고, 불평등해진 탓에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과 혼란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

이 책이 출간된 2005년 쯤에는 당장 코앞에 닥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개발'에 앞장 서는 것만으로 최선의 결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2025년이 된 지금은 심각한 '경제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가 전세계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라 '기후 위기' 같은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난 듯도 싶다. 언제 어디서 전쟁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할 때인데, '경제위기'에 이어서 난데 없이 '전쟁위기'까지 등장하면서 '기후위기'가 후순위로 밀려나는 듯한 인상마저 주는 요즘이다. 허나 가장 심각한 위기는 여전히 '기후위기'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곧 '에너지위기'이기도 하다. 인류는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서 다시 '화석연료'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면, '기후위기'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변하고 만다. 이 위기만큼은 결사적으로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경제위기'도 막고, '전쟁위기'도 막고, '기후위기'도 막기 위해서라도 '에너지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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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11 : 시공간의 비밀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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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11 : 시공간의 비밀>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4)

[My Review MMCLVII / 돌핀북 11번째 리뷰]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양자역학'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뉴턴이 '고전 물리학'을 최종 정리한 뒤에 아인슈타인이 등장해서 뉴턴을 뛰어넘는 '상대성 이론'을 밝혀내면서 '양자역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를 제공했는데, 정작 아인슈타인은 만물이 고정불변이라는 '고전 물리학'에 집착하면서, 모든 것은 예측될 뿐, 고정된 것은 없다는 양자역학(불확정성의 원리)을 끝내 부정했기 때문이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도 바로 여기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런데 난 이런 아인슈타인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왜 고전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깨버렸으면서도 어째서 '현대 물리학'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 그런데 이 책 <채사장의 지대넓얕 11>을 읽으니 드디어 이해가 되었다. 바로 토마스 쿤이 지적했던 '패러다임의 문제'였던 것이다. 과학은 혁명적으로 급변하지, 점진적으로 발전하면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 혁명은 '정치적인 권력 투쟁의 결과'처럼 일관성도 없고, 방향성도 없는 '수평적 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보를 함에 있어서도 '지체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도 바로 그 '지체현상'을 보인 것 뿐이었던 것이다. 그동안에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현대 물리학'의 문을 활짝 열고서 다른 과학자들이 다 건너갈 때, 아인슈타인 혼자만 '고전 물리학'에 남으려 했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이 책에서 '양자역학의 역사'와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을 비교분석하면서 보여주니 쉽게 이해가 되었던 셈이다. 정말이지 채사장의 인문학적 교양은 정말 범접하기 힘든 경지에 올랐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단하다 정말.

채사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은 '고전 물리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원인과 결과'가 딱 맞아떨어지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자 본격적인 '양자역학의 시대'가 열렸고, 흔히 '코페하겐 학파'로 불리는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볼프강 파울리, 막스 보른 같은 과학자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소립자의 세계를 연구하며 '현대 물리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들은 양자역학의 결과값이 확률로만 예측할 수 있을 뿐, 확정된 것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비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정리하면, 고전 물리학자들은 '절대주의'에 속하고, 현대 물리학자들은 '상대주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 이후 '양자역학'은 크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소립자를 연구하면서 '고전 물리학'의 결정론적인 세계관으로는 결코 해석할 수 없는 '미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자 수많은 과학자들은 설왕설래를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고정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는 과학자들이 그 법칙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좀처럼 그 법칙은 찾을 수 없었다. 이런 회의감이 들자 과학자들은 점점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모든 것은 정해진 것이 없고, 오직 확률로만 예측 가능할 뿐이라는 '비결정론적인 세계관'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런 세계관이 바로 '양자역학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예측이 매우 정확했기에 오늘날의 현대 기술은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정해진 것'이 없고, 관측자의 관찰만이 유일한 결정 방법이고, 관찰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저 확률에 의존해야 하는 것일까? 쉽게 말해서, 우리가 달의 존재 유무도 '관측'으로만 결정할 수 있고, 관측하지 않거나 달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달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왜냐면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뭔가 '괴리감'이 들지 않는가? 우리는 '과학'에 대한 믿음이 거의 절대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현대 과학은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확률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이따위 과학(!)'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는 '고전 과학'에 길들여진 탓이 클 것이다. 갈릴레이나 뉴턴의 시대 때만해도 우리는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은 '과학주의'에 절대적 믿음을 부여했다. 그래서 사기꾼들의 뻔한 속임수일지라도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라는 문구만 곁들였을 뿐인데도 '신뢰도'는 향상한다. 이것이 바로 '결정론적 세계관'에 길들여진 대중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양자역학)에서는 이런 맹신이 위험하게 된 것이다. 왜냐면 아직까지도 많은 대중들은 '비결정론적 세계관'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비결정론적 세계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양자역학의 결실'인 스마트폰은 거의 모두가 손에 들고 다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눈으로 보는 세상'은 사실은 전부다 '허상(가상)'에 불과하다. '실제'가 아닌 디지털 세상에 구현된 이미지와 텍스트를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허상에는 온갖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 그렇기에 스마트폰 속 세상을 절대로 '맹신'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정보를 회의적으로 비판하고, 그 가운데 자신에게 꼭 필요한 정보, 유익한 정보, 신뢰할 수 있는 정보 등을 따로 걸러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지금 쓰여 있는 '이 글'도 어떤 이의 주관적 생각일 뿐, 100% 사실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나처럼 선하고 착한 사...쿨럭쿨럭

우리는 이제 '불확정성의 원리'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싶어도 그럴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자역학이란 과학이 발전한 세상을 잘 헤쳐나가며 살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해지게 되었다. 이 책의 다음 편이 바로 '철학'인 이유다. 참 신비롭지 않은가? 과학이 첨단을 걸을 때엔 과학자도 철학을 연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물론 절대적인 '고전 철학'이 아닌 데카르트 이후 '고정불변의 것'이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결국 세상은 '변화무쌍'한 것이 훨씬 더 많다고 깨우친 근현대 철학자들을 조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철학의 기초'를 닦은 고전 철학자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이다. 참으로 학문의 길은 멀고도 멀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부할 것이 많아지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은 절로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지는 법이다. 옛 어른들이 "공부해야지"라고 하신 말씀은 알고 보니 "겸손해져야지"라는 말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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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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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 / 김경원 / 다산초당 (2017)

[My Review MMCXLIX / 다산초당 3번째 리뷰]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도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것은 딱 질색하더니 급기야 복잡한 것조차 생각하기 싫어해서 단순하고 간단한 것만 찾으려 한다. 그런데도 단군 이래 가장 '스펙'이 높은 젊은이들은 대학진학률도 전세계적으로 최상위권인 까닭에 무식한 것은 참지 않는다. 단순하고 간단한데 '유식'하게 보이려면 방법은 딱 하나 뿐이다. 바로 '요점정리', '핵심정리'를 딱 해서 단박에 알아듣게 만드는, 쉽게 말해 '원포인트 레슨'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참으로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어떤 학문이든 '딱 한 마디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으려면, 그 학문에 정통해야 하고, 통달해야 한다. 정말이지 빠삭해야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든, '핵심'을 찌르든 할 것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힘들고 어렵고, 복잡한 것은 딱 질색이므로 아주 쉽게 딱 한 마디로 알아 들을 수 있게...암튼 무지 쉽게 초고수의 능력을 갖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바람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요즘에는 '가능'하다. 어떤 분야든지 그쪽에서 통달한 누군가가 나와서 '초심자'도 단박에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요점'만 딱 짚어서, '핵심'사항만 콕 찔러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진정한 능력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독서' 분야에서 그런 능력자가 되길 희망하는데 아직은 '도전정신'만 가득할 뿐이다. '실력'도 없이 무턱대고 '다독'만 하고 있는 그런 초심 모드로 말이다. 암튼, 철학 분야에도 그런 유형의 책들이 즐비한 요즘이다. 이 책도 그런 의도로 출간되었고 말이다. 지은이는 '하타케야마 소'라는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치철학과를 전공한 '철학 강사'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좋아하는 모양으로 주요 저서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철학 입문>이란 책을 펴냈다고 한다.

'생각하는 힘'이란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유명한 말 가운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의 뜻도 알고 있는가? 대부분 잘 모를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실제로 한 말은 "네 무지(無知)를 알라"는 말을 했고, 풀이를 하면, '네가 모르는 것이 있음을 깨달아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니 '당신도 모르는 것이 있어'라는 말이 뭐가 그리 대단한 '진리'라는 것일까? 직설적으로 뜻풀이를 하자면,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되 물으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그리스 시민들에게 찾아가 '문답법'을 실시했다고 한다. 전쟁영웅인 장군에게 찾아가 '용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최고의 부자에게 찾아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단다. 그리고 장군은 "그거라면 내가 잘 알고 있지. 용기란 적을 앞에 두고서 두려움 없이 맞서 싸우는 것이오"라고 당당히 말했단다. 한편 부자는 "아, 행복 말인가. 그거야 말로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지. 행복은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이라네"라고 자신있게 말했단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되물었다. "그럼 '작전상 후퇴'를 하고 전쟁에서 승리를 한 장수가 있다면 용기가 없는 거겠군요?", "그럼 진정한 친구를 갖고 싶은 사람은 얼마를 주고 사면 행복할 수 있소이까?" 이런 대답하기 곤란한 고약한(?) 질문이 몇 번 오가다 보면 용감한 장군이라도, 그리스 최고의 부자라도 '할 말이 없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때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이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것이오"라고 꾸중을 하면서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오"라고 대답하자, 성이 난 장군과 부자는 "그럼 소크라테스, 당신은 잘 아시오?"라고 성질을 내면서 물으니, 소크라테스는 "나도 모르니 질문을 한 것 아니겠소. 나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을 하는 현명함을 깨우쳤다오. 그리고 끝없이 배움의 자세로 공부할 따름이오"라고 능청스럽게 말을 하니, 그리스 시민 가운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얄밉고 제거해버리고 싶은 '1순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청년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다니니 정치인들이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웠고, '사형판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죄목은 '신을 믿지 않음(무신론)', '청년들에게 불온한 사상(문답법)을 전파함' 등을 내세워서 말이다. 똑똑한 사람이 잘난 체까지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권력'을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암튼, 생각하는 힘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이리 길게 했다. 그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뻔한 답이지만 다름 아닌 '철학'이다. 이 책도 그런 의도에서 출간되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공부를 하지 않는지는 너무 유명해서 두 말 하면 입 아플 정도다. 대학진학률도 50%를 겨우 넘기고, 만화책이 아니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정부는 교과서조차 '만화책'으로 오해를 할 정도로 온통 그림투성이고, 교육용 영상자료도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집중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의 독서인구가 정말 많다고 자랑을 하지만,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고 있는 책도 대부분 '만화책' 아니면 '대중잡지'라고 한다. 나 어릴 적에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지 알고 있느냐면서 제발 책 좀 읽으라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는데, 요즘의 일본은 그때의 일본과는 사뭇 다른 모양이다. 하긴 우리 나라 젊은이들도 책을 들고 다니는 이들은 많지 않지만,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즐겨 읽어서 그렇지 '독서인구'가 예전에 비해서 정말 많이 늘긴 늘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철학책'은 과연 얼마나 읽을까? 요즘엔 정말 드물 것이다. 그렇다고 철학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철학책'을 읽지는 않는다. '너튜브' 같은 동영상 강의를 통해서 아주 쉽게 설명이 되어 있는 것을 더 많이 즐겨본다. 요즘 '인문교양'을 다룬 동영상 강좌가 정말 많으니, 굳이 힘들게 책을 읽는 이들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중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과 같은 재밌는 철학책이 나온 것이다. 재밌으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책 말이다.

이 책에는 37명의 철학자가 등장해서 '철학 논쟁'을 벌인다. 고대철학에서부터 중세철학(신학)을 거쳐 근대와 현대의 철학까지 '철학사의 흐름'을 유유히 탐색하듯 매끄럽고 맛깔나게 이어지는 철학적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더구나 철학자들의 '일러스트'까지 수록되어 있어서 '초심자의 흥미'를 샘솟게 만들었다. 일러스트가 어째서 '흥미'를 끌 수 있느냐 하면, 정말이지 다들 '미남자'로 미화(美化)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추남'으로 유명한 소크레테스까지 잘 생기게 그려넣었다. 내가 가르치는 한 여고생은 "이렇게 잘 생긴 철학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책이 어렵지 않았어요"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하긴 '아이돌'이 왜 인기가 많겠는가. 힘든 군생활도 '관물대 여신'을 매일 갈아끼우며 버티...쿨럭쿨럭

이렇게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정작 '철학'에 관심을 갖게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중요한 철학 내용으로 눈길을 돌리면 '철학 논쟁'을 주제로 배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소년범죄'를 다루면서 엄벌을 줘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철학자들을 찬반으로 나누어 그 '철학자들의 대표 사상'을 근거로 삼아 한 편의 '법정드라마'처럼 공방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에 대한 기초 상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철학자들의 논쟁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우리가 법정드라마나 의학드라마를 볼 때 '전문가'라서 즐기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아주 조금의 관심만 있으면 쉽게 '철학 논쟁'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 논쟁을 읽어가면서 '철학자들의 대표 사상'에 익숙해지게 된다. '소년범죄' 논쟁에서는 엄벌을 줘야 한다는 쪽에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했고, 엄벌에 반대하는 쪽에는 역시나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과 '공자'가 등장했다. 철학에 관심이 있던 분들이라면 '양적 공리주의'와 '질적 공리주의'가 대결을 벌이면서 이상적인 공자철학과 현실적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논쟁의 보충설명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책의 내용은 그닥 어렵지 않다. 논쟁을 '대화'를 중심으로 이어나가고, '대화의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면 '논쟁적 대립'속에서 철학자들의 대표적 '철학사상'이 극명하게 대립하며 보다 뚜렷한 철학적 윤곽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초심자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다음 논쟁 주제'로 넘어가면 앞서서 이야기했던 철학사상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해질 것이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앞서 등장했던 철학자가 '1회성 등장'이 아니라 '수차례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대표철학사상'의 맥락을 반복해서 엿볼 수 있으니 눈썰미가 좋은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철학사상가들의 대표철학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철학사상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러 철학사상을 참고해서 '자기만의 가치관 형성'을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어린이 철학교육의 핵심포인트도 여기에 있다. 위대한 철학사상을 달달 암기하는 것도 좋은 공부방법이긴 하지만, A라는 철학자가 B라는 사상을 이야기했다는 것을 외운다한들 뭐에 쓸 것이냔 말이다. 옛날에는 '백과사전식 지식'을 누가 더 많이, 더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AI검색'을 통해서 아주 쉽게 해결될 사안이다. 그러니 외울 필요가 전혀 없다. 그보다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이 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모르는 것을 애써 '아는 척'하지 말고, 솔직하게 모른다고 고백하고 '배우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내 삶을 바람직하게 이끌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나는 늘 '겸손한 자세'로 하나라도 더 배움을 늘려나가야겠다. 그렇게 하면 나는 10년 뒤에 많은 것을 깨달은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해 있을 거야. 그때 내 꿈을 실현해 나가야겠다. 공자께서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하셨으니, 늘 겸손한 자세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 나도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이런 삶은 멋진 것 같아. 더욱 정진하자!...'가치관 형성'이란 이런 것일 게다. 물론 이것과 정반대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도 마주할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 남의 이익에 앞서 내 이익을 먼저 챙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손해 보는 삶은 '실패한 삶'이다. 무조건 승리하고 쟁취해서 남들보다 앞서 나가자.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약자는 강자에게 지배 당한다. 절대 뒤쳐지지 말자.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이런 삶은 정말 멋지고 신 날 것 같아!...이 둘이 만나면 어떤 논쟁을 벌일까?

사실 철학수업은 늘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막상 철학수업을 어렵게만 생각한다. 그 까닭은 '철학사상'이 매우 심오하고 어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럴 때 '자기만의 가치관'으로 철학수업을 대신하면 된다. 누구의 철학도 아닌 '자기 철학'이니 크게 준비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기 철학'을 관철시킬 수 있는 '타당한 근거'만 부지런히 찾아오면 된다. 여기서 '타당한 근거'가 바로 '철학자들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의 대표사상이 '나의 가치관'과 가장 비슷한지 찾아내면 그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철학수업은 준비완료다. 나머지는 치열한 논쟁을 할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자신감 뿜뿜하고 싶다면 '자기 가치관'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반론에도 흔들리지 않을,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로 단단히 무장하면 자연스럽게 강해진다. 그리고 그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 역시 '철학사상'에서 찾으면 된다. 찾기 어렵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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