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순의 천일야화 6 - 알라여,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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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대단원이다. 방대한 <천일야화>를 단 6권으로 끝마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이 책은 원작을 고스란히 옮긴 책이 아니라 또 다른 '순수창작'이기에 6권으로 충분할 것이다. 허나 양영순이 담은 감동만큼은 6권으로 부족할 것이 틀림없다. 웹툰이 아니라 소설이었다면 그 두배로도 다 담을 수 없는 대서사일테니 말이다. 20여 년 전만해도 일본만화의 홍수속에서 우리 국산만화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처지였다. '명함을 내놓는다'는 표현조차 일본식 표현이니 할말조차 없었을 것이다. 허나 이제는 'K-웹툰'이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만화왕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마저 '한국 웹툰'은 대세를 거머쥐고 있으니 말이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에서 아이어맨이 로키에게 말한 대사가 있다. "우리에겐 헐크가 있다"고 말이다. 그 말마따나 "우리에겐 양영순이 있다"로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천일야화>는 대작이었다. 근데...안타깝게도 양영순은 '다작'을 하지 않았다.

 

  물론, '다작'이 대문호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닐 것이다. 일본 <파이브스타 스토리>를 봐도 그렇다. 아직도 '완결'을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1년에 한 편은커녕 10년에 1~2권을 쓸까 말까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독자들은 그렇지가 않다. 좋은 작품을 만날 때마다 그보다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하고 또 기대할 뿐이다. 더구나 <천일야화>가 꼴랑 6권으로 종결을 한 뒤에 허탈감은 더했을 것이다. 충분히 더 우려먹을 수도 있었을 것을 하고 말이다. 그 때문인지 양영순의 <덴마>는 가히 '스페이스 오디세이'라고 불릴만큼 긴 이야기를 담았다. <천일야화>도 그처럼 길게 연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암튼, 대단원의 도입부는 전편에 이어 '한 가지에서 꽃이 피면 다른 가지에서는 꽃이 지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 리뷰에선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그동안 스포 다 해놓고 뭔짓이냐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판매중'인 이 만화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마지막 이야기가 궁금해 미치겠다면 직접 읽어보시는 것도 최상의 선택일 것이다.

 

  양영순의 작화기법은 '가질 수 없기에 더 가지고 싶다'는 모순적인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는 것 같다. <천일야화> 1권부터 쭉 살펴보면, 이야기들이 모두 '극적인 감동'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어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욕구'를 내비치는 순간 영원하고 완벽할 것만 같았던 것들이 허무러지고 사라져버리는 '허무감'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생명, 당장 죽음을 마주했을 때에는 '살아남기만' 하면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린다고 해도 행복할 것이라 여겼건만, 막상 살고나면 빼앗기도 싶지 않고 싶은 법이다. 사랑은 어떤가?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숭고한 것이라 여기지만 내 사랑이 아니면 다른 이의 사랑은 그저 '입담화'에 오르내릴 천박한 추문에 불과하다. 희생은 고귀한 것이라 여기면서도 자기 자신은 절대 희생의 대상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고, 권력 또한 누리면 누릴수록 애초의 투명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고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 것인지 오래되면 될수록 감추고 또 감추어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장소'에서 이루어지며, 나중에 밝혀질 때는 죄다 추악한 흉물에, 코를 쥐어잡는 악취가 진동할 뿐이다. 그런데도 양영순과 만나면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감동 스토리'로 변모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진실과 마주할 때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서 수긍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러한 감동적인 스토리도 자꾸 반복되다보면 식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너무나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느낌이 팍 오기 때문이다. 마지막 6권의 이야기도 그렇다. 쌍둥이 중 한 쪽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한 쪽이 날마다 '생명의 주문'을 외워줘야만 한다. 하지만 애초에는 그럴 일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쌍둥이는 태어날 때부터 선별되어 '서로의 존재'를 모르도록 키워졌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한 쌍둥이가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서 그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비밀을 알아낸 쌍둥이를 죽여버린다. 그럼 남은 쌍둥이도 저절로 죽게 될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잔혹한 이야기로 진행되면 그저 끔찍한 이야기에 불과할테니 한가닥 살 수 있는 희망을 심어놓았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외워야 할 방대한 주문을 하루종일 '읽는 것'이 일상이었던 한쪽의 눈을 멀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눈이 먼 쌍둥이 형제는 이 사실을 모르는 남은 형제를 살리기 위해 그 긴 주문을 통째로 외워버렸다. 그리고 장님이 되어 시장 한구석에서 구걸을 하면서도 형제를 살리기 위해서 주문을 외우며 살아간다. 원래는 자신이 살고 다른 형제가 죽을 운명이었음이 너무도 미안해서 말이다. 그렇게 뻔뻔한 삶을 살아갈 운명이 너무도 죄스러웠기에 말이다. 그리고 두 형제가 나중에 마주치게 된다. 서로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말이다.

 

  한편, 조카와 숙부 사이의 칼부림도 '외세의 침략'이라는 대위기 속에서 일단락이 되고 만다. 아무리 원수같은 사이라하더라도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우면 힘을 합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나 내전이 길었던 탓에 외세의 침략에 철저히 대비할 수는 없었다. 마치 어부지리처럼 막강한 군사력 앞에 허물어지고 만 셈이다. 허나 샤리아르의 왕비가 아니었던 세라자드는 살아남았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은 전쟁통 속에서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스포는 안 한다고 했지만, 궁금하게는 만들어야겠기에 짤막하게나마 적어 보았다.

 

  <천일야화>는 그저 그런 야한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아름다운 미녀가 등장하고 강력한 마신이 등장하는 후끈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결코 야릇한 이야기만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교훈적인 이야기'만도 아니다. 잘못된 선입견에 빠져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는 임금이 등장하긴 하지만, 임금의 무능을 탓하지 않고 누구라도 한 번 들으면 바로 깨달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스스로 잘못을 깨치고 올바르고 현명한 군주로 되돌아오시라고 매일밤 드리는 기도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문'은 무려 1001일만에 성취가 되었다 무려 삼 년만에 말이다. 이 정도라면 간신히 '서당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찌 한 나라의 임금이 '서당개'에 비유될 수 있겠느냐고 코웃음을 치곤 했었는데, 지금은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서당개보다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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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의 천일야화 5 - 마신 사냥꾼의 눈물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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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천일야화>는 '액자식 구성'으로 짜여 있다. 다시 말해, '이야기속에 이야기'가 흘러가는 형식인데, 그 구조가 워낙 방대하다보니 원래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 도식적으로 설명하자면, 'A'라는 세라자드가 샤리아르 왕에게 들려주는 현실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B'라는 상상속 이야기가 "빠빠어웨이~"라면서 진행된다. 그러다 그 이야기 속에서 또다시 등장인물이 나타나 'C'라는 "원스어펀어타임~"이라며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도 반복되는 구조다보니 [A-B-C-B-B'-B-C-C'-A…] 등등 어느 이야기가 원래의 이야기인지 헷갈릴지경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결국엔 다시 세라자드가 샤리아르 왕에게 들려주는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오니,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해서, <양영순의 천일야화>도 결국엔 '현실의 이야기'인 세라자드와 샤리아르 왕의 스토리에 집중하면 된다.

 

  그런 까닭에 5권의 이야기는 샤리아르 왕과 세라자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왕국은 거센 반란의 서막이 펼쳐지고 말이다. 한마디로 뒤숭숭하단 말이다. 샤리아르 왕은 그 반란의 기미를 알아채고 '주동자'를 색출하게 되고, 반란의 중심이 된 귀족들은 샤리아르 왕이 계속 폭군으로 행세하지 않은 것이 불만족스운 상황이다. 세라자드의 '이야기 치료' 덕분인지 샤리아르 왕의 폭정이 멈춰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족들은 총리대신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반란을 진행시키려다 발빠른 총리대신의 움직임 때문에 오히려 '역습'을 당해 자신들이 죽을 위기에 처해버렸다. 총리대신이 귀족들의 반란을 꼰지르(?)고서 자신의 안위를 보살피려 했는데, 그 발빠른 조치로 인해 오히려 세라자드의 아버지인 대장군까지 반란혐의에 엮여서 죽을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아직까지 샤리아르 왕은 세라자드가 '대장군의 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데...

 

  한편,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세라자드는 샤리아르 왕에게 이야기 치료를 계속하게 된다. 이번 이야기는 '마신사냥꾼'에 관한 이야기다. 같은 한 그루의 나무에서 한 쪽에 꽃이 피면 다른 쪽에선 꽃이 지는 나라에 '유진'이라는 마신사냥꾼 이야기 말이다. 마신사냥꾼이란 사람과 마신의 혼종으로 마신과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생식능력'은 잃어버린 독고다이 스타일의 캐릭이다. 원래의 <천일야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양영순이 창조한 캐릭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유진은 마신사냥꾼으로 살아왔으나 가족이 누군지도 모르고 혹독한 훈련을 거쳐 '마라이카의 갑옷'을 입은 채 사냥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감찰대원의 쌍둥이 형을 살해하는 일을 저질러 그 동생인 감찰대원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는데, 유진의 죗값을 심판하기 위해 재판장까지 호송하는 임무를 하필이면 그 감찰대원이 맡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은 범죄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범죄자가 친형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을 아는 감찰대원이다. 이 두 사람만이 떠나는 먼 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 살인범과 '동행'이라니...아무리 '법의 수호자'라 하더라도 개인적인 감정까지 추스르며 정의의 심판에 기대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어정쩡한 분위기 속에 둘의 여정은 이어지는데, 호송 도중에 사건이 발생한다. 유진이 범죄자인만큼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산 일도 많았을 터, 호송 도중에 사사로운 심판을 내리겠다며 유진을 살해하려는 무리들이 습격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으라는 유진은 죽지 않고 호송을 맡은 감찰대원이 독에 중독되어 죽을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감독자가 사라지니 유진은 도망가면 그뿐이겠지만, 만일을 위해서 유진의 목에 둘러놓은 '마신뱀'은 감찰대원의 사념에 의해 주문이 걸어져 있었기 때문에 감찰대원이 죽게 되면 유진도 목졸려 죽게 될 판인 셈이다. 그렇기에 유진은 목숨을 걸고 감찰대원을 살려야만 했다. 그렇게 사흘거리의 목적지를 쓰러진 감찰대원을 업고 뛰어 '신의(神醫) 만초'를 찾아 감찰대원을 살려내고 만다.

 

  허나 유진의 목숨은 또다시 위협을 받게 되니, 더 무시무시한 암살자가 유진의 목숨을 해하려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죄 짓고는 못사는 법이다. 암튼 암살자는 끝내 유진의 행방을 찾아냈고, 유진의 목숨은 경각에 달하고야 말았다. 허나 유진은 '불사의 몸'을 지닌 마라이카의 갑옷을 문신으로 새겼기 때문에 웬만한 공격으로는 죽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 암살자는 복수를 다짐하며 유진이 죽을 수밖에 없는 '무기(?)'를 가지고 왔는데, 그 무기가 바로 6권에서 등장한다. 기대하시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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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의 천일야화 4 - 하렘의 여왕을 기억하라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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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눈은 '지니(정령)에게 홀린 자'라는 뜻을 지녔는데, 이 책에서는 인간의 몸에 들러붙어 정기를 빼앗는 마신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거꾸로 마신의 몸에 인간이 스스로 들러붙는다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단다. 이때 완전하게 합일이 되면 마신의 힘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불완전할 경우에는 마신이 깨어나서 마신의 본성대로 인간을 잡아먹게 된단다. 이렇게 마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융합시킨 경우를 '역마주눈'이라고 부른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바로 스스로 '역마주눈'이 되어 반드시 지켜야만 할 소중한 사람이 생긴 자의 최후가 밝혀진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나일 땐 불완전하였다가 둘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전하게 되는 아름다운 일체를 보통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혹은 어느 한 쪽의 사랑이 더 큰 경우이거나 말이다. 그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채로 사랑을 하면 언젠간 한쪽이 지치고 나가떨어질 것이 뻔하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번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비록 그것이 삶을 송두리채 앗아가는 비극일지라도 사랑이었기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랑을 말이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격투사'다. 바로 역마주눈이 되어 끝없이 싸움터에서 목숨을 건 격투를 벌여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내가 있다. 그 사내에게 돈이 필요한 까닭은 한 노예소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 소녀를 노예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 사내는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격투에 나선다. 그리고 비록 패배하더라도 '파이트머니'는 받을 수 있기에 소녀에게 사줄 진주목걸이를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할 때까지 계속 격투에 참가한다. 지고 또 지고, 또 졌지만 끝내 진주목걸이를 사서 소녀에게 건내줄 수 있었다. 비록 '모조품'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사내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아비가 도박으로 큰 빚을 지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자 엄마는 남편이 진 빚을 갚기 위해 노예처럼 일을 해야 했다. 결국 남편이 진 빚을 다 갚았지만 아비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엄마도 몸을 혹사 당한 탓에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병에 걸리고 말았지만, 소년은 아픈 엄마에게 치료약이라도 얻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만다. 사람을 죽이라는 청부를 받은 것이다. 그것도 온가족이 보는 앞에서 '한 남자'를 찔러 죽이라고 말이다. 소년은 차마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지만, 아픈 엄마를 떠올리자 마음을 다잡고 죽여야할 남자를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그 남자의 아내와 아직 어린 아들딸이 다 보는 앞에서 말이다. 사내는 그때 한 소녀가 자신의 아비를 찔러죽이는 사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돌아왔는데도 약을 먹은 엄마는 기력이 다해 죽고 만다. 사내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어느 덧 청년으로 자란 사내는 아무런 의지도 목적도 없이 그저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는 것이 더 편한 탓인지 사내는 의미없는 싸움을 이어나가는 격투사가 되어 있었다. 그날도 사내는 피투성이가 된 채 두들겨맞고 누워 있었다. 그때 노예소녀가 사내 앞에 나타나 시중을 든다. 첫 눈에 사랑에 빠진 걸까? 사내는 소녀의 시중을 받으며 처음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힘겨운 나날을 지낸다. 그러다 노예소녀의 목에 값비싼 진주목걸이를 보게 되었다. 사내는 소녀에게 물었다. 그 진주목걸이가 좋으냐고 말이다. 소녀는 돈 많아 보이는 남자가 선물로 주었다고 지나가듯 말할 뿐이었다. 그날로 사내는 돈을 마련하려 격투에 나섰다. 지고, 지고, 또 지고...한 번이라도 이기면 진주목걸이를 살만한 돈을 마련하련만, 사내는 별볼일 없는 실력이었던지라 계속 질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모은 돈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진주목걸이를 사서 소녀에게 건내주었다. 이거랑 그 목걸이랑 바꾸자면서 말이다. 노예소녀는 한눈에 '모조품'이란걸 알았지만 그자리에서 목걸이를 바꿔 걸었다. 사내는 두들겨 맞아 퉁퉁 부은 눈에 웃음을 걸고서 쓰려지듯 잠에 빠졌다.

 

  그날 이후 소녀는 자취를 감췄다. 사내는 소녀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노예주인에게 소녀의 행방을 물었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 화가 나서 주인을 협박했지만 돌아온 것은 호위무사에게 흠씬 두들겨맞는 일 뿐이었다. 그러다 소녀가 도박장의 주인인 '검은 칼리프'에게 잡혀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사내는 소녀가 '검은 조직'의 손아귀에 잡혀갔다는 생각에 소녀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역마주눈'이 된다. 허나 형편없는 실력에 마신이 완전히 들러붙질 않았다.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에서 소녀를 찾기 위해 '검은 칼리프'가 있다는 도박장으로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그속은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도박빚을 지고 갚지 못한 사람들이 갇혀 있고, 돈을 다 갚지 못하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에는 마신들이 우굴우굴 거렸던 것이다. 사내는 그 소굴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 소녀를 잡아갔다는 '검은 칼리프'를 찾아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쎈 마신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사내는 맥을 추지 못하고 헤맬 뿐이었다. 그러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확실한 빚쟁이 하나와 만나게 된다. 비록 잠시 도박의 꾐에 빠져 이모양이지만은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아내와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간절한 남자를 말이다. 처음엔 빚쟁이 주제에 가당치도 않은 소원을 갖고 있다고 냉소했지만, 어찌어찌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사내는 남자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는 생각을 들게 되었다. 자신도 소녀를 위해서 이 모험에 뛰어든 것 아닌가. 이 남자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감옥에서 살아나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사내는 이 남자를 반드시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목숨을 건 승부 끝에 사내는 마신들을 물리치고 천신만고 끝에 남자를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남자도 자신을 위해서 목숨받쳐 싸워 자신을 가족에게 돌아가게 해주었기에 '생명의 은인'으로 대접하며 극진하게 보살핀다. 그렇게 사내는 남자의 집에서 편하게 쉬며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가장 행복해보이는 그때 남자에게 무참하게 칼로 찌르는 '소년'을 바라보게 된다. 사내는 그 장면이 낯설지 않아 당혹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자신이 구한 남자를 찔러죽인 소년은 분명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었다. 그렇게 허탈한 심정으로 다시 노예소녀의 행방을 쫓아 돌아다니다 끝내 '검은 칼리프'의 정체를 알아내고야 말았다. 검은 칼리프는 이미 죽은 지 오래이고, 그를 대신해서 '한 여자'가 검은 조직의 우두머리를 맡아 '검은 칼리프' 행세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자는 얼마 뒤에 권세가의 아내가 되어 곧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그때 '검은 칼리프'를 만나볼 수 있을테니 가보라고 한다. 사내는 '검은 칼리프'를 만나 노예소녀를 풀어달라고 간청할 생각으로 결혼식이 한창인 그곳으로 향했는데, 권세가의 아내가 될 사람이 바로 그 '노예소녀'였다. 사내는 당혹스러웠다. 자신은 '검은 칼리프'를 찾아왔는데, 그곳에서 만난 이는 결혼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이자 그토록 찾아헤맨 '노예소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현듯 자신이 소년시절 처음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던 곳에서 마주친 '소녀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자신이 무참히 파괴해버린 한 가족의 끔찍한 비극에서 마주한 눈망울을 말이다. 사내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홀로 숲으로 들어가 삶의 의지를 잃은 채 식음을 전폐하고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그순간 불완전했던 마신이 깨어나고 사내를 한 입에 먹어치웠다.

 

  세라자드의 이야기가 끝나자 샤리아르 왕은 말이 없었다. 자신의 왕국을 방문하겠다는 삼촌은 분명 '역모'가 틀림없다. 그리고 왕국 안에서는 자신에게 불만을 품었던 세력이 호응을 해서 '반란'을 일으킬 것도 틀림없다. 그런데 세라자드의 이야기속의 사내는 '믿었던 존재'가 다름 아닌 자신을 파멸시키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하지만 사내의 비극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만약 사내가 남자를 죽이지만 않았더라도 비극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샤리아르도 폭군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깊은 상처를 받아 스스로 폭군이 되고 말았다. 이제 반란은 기정사실이다. 샤리아르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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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의 천일야화 3 - 마도서의 저주, 누군가 한 명은 죽어야 한다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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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리아르 왕도 이상한 낌새를 채기 시작했다. 새로 들인 왕비들과 첫날밤을 치루고 나면 어김없이 처형을 하던 일상이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라쟈드를 처형하기는 고사하고 함께 수라를 들며 사소한 일에도 웃음보를 터트리는 자신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왕의 변화를 낌새챈 것은 총리대신도 마찬가지였다. 왕국의 처녀들을 학살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처형하던 폭군이 대장군의 딸인 세라자드는 처형하지도 않고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정탐의 보고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폭군의 모습을 쭉 유지했더라면 '반란'도 쉽게 이뤘으련만, 왕이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성군 흉내라도 내게 되면 곤란해지는 것은 반란을 주도한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조만간 샤리아르 왕을 몰아낼 방책을 서두르는 총리대신이었다.

 

  수라를 마친 샤리아르는 세라자드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복달거렸다. 세라자드가 풀어낸 이야기는 조금은 묘한 '흡혈마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흡혈귀에 관한 전설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피는 생명의 원천이고, 그 원천을 생명에너지로 삼아 쭙쭙 빨아들이는 귀신은 어쩌면 당연하니까 말이다.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영국의 소설가 브람 스토커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전해져내려오던 '드라큘 성주'의 이야기에 애뜻한 사랑이야기를 담아 공포소설의 대명사 <드라큘라>를 발표하였다. 그렇게 '드라큘라 백작'은 여인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아 흡혈을 하고, 흡혈 당한 여인도 흡혈귀가 되는 '전염의 법칙'을 만들었다. 양영순은 이에 20년간 흡혈의 욕망을 억제하면 '상급 마신'이 될 수 있다는 흡혈마신을 구상하고, 흡혈귀에게 물린 왕비가 왕을 해하고 흡혈마신에게 왕국을 통째로 넘겨버리는 이야기를 샤리아르 왕에게 들려주는 스토리 라인을 구현한다.

 

  이제 샤리아르의 운명은 어떻게 펼쳐질까? 세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 치료는 단순히 재미와 흥미를 넘어 무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점점 더 샤리아르 왕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앞 전의 이야기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절절한 이야기를 펼치더니, 이번엔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흡혈 마신과 왕비'이고, 이미 흡혈 마신에게 목덜미를 물린 왕비는 자신의 지아비인 왕을 '식물인간'처럼 만들고서 흡혈마신만을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하고 있었다. 그것도 왕궁 안에서 말이다. 샤리아르도 자신의 왕궁에서 왕비가 노예와 '그짓'을 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샤리아르의 잠자던 분노를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세자라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모험'을 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바로 왕비를 사랑한 '또 다른 남자' 이야기를 말이다. 그 남자는 현재의 국왕과 절친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자신의 친구인 '국왕'과 혼인을 한단다. 이 남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왕비는 흡혈마신을 사랑했고, 국왕의 친구는 왕비를 사랑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사랑'이 있다. 국왕의 친구를 사랑했던 '노예소녀'였다. 현 국왕과 친구를 먹는 사이였던 남자의 신분은 고귀한 귀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귀족을 사랑한 소녀는 천한 노예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소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혹독한 훈련을 하는 사타부대의 훈련원을 자처한다. 남자의 몫이었던 '입대'를 대신할 사람이 구해졌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왕비를 몰래 사랑하던 찌질한 남자는 여인의 몸으로 '호위무사'가 되어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난 무예를 갖추고서 말이다.

 

  이렇게 얽히고 설킨 사랑이야기는 다름 아닌 '짝사랑'이었다. 노예소녀는 귀족소년을, 귀족소년은 왕세자비를, 그리고 왕세자비는 노래하는 악사로 위장한 흡혈마신을 말이다. 왕세자는 왕세자비를 사랑했지만, 훗날 왕비가 된 뒤에는 왕국의 궁안에 흡혈마신을 숨겨두고 몰래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나중에 국왕에게 발각이 되자 국왕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흡혈마신을 살리기 위해 '마도서'도 훔치고 시녀들까지 피의 재물로 갖다 바치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훔친 마도서로 흡혈마신은 드디어 놀라운 힘을 얻게 되지만, 모든 사실이 밝혀지면서 흡혈마신은 정체가 들킬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정말 세라자드가 샤리아르 왕에게 이야기 치료를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인 걸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알 수 없게 되어 간다. 원작에 충실하자면, 샤리아르에게 '재미와 감동, 그리고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며 샤리아르로 하여금 살육을 멈추고 성군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하건만, 들려주는 이야기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샤리아르의 분노를 점점 부추기는 내용이 되어 간다. 혹시 '충격요법'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야기 속에서 끔찍하고 충격적인 내용을 부각시킴으로써 샤리아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반면교사'로 삼게 만들 목적으로 말이다. 허나 폭군에게 '반면교사 수법'은 득이 되기보다 독이 되기 십상이다. 불난데 부채질이고,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 붓는 격이란 말이다. 뜨겁다 못해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펄펄 끓는 곳에 섣불리 차가운 물을 부어봤자 사방으로 튀는 뜨거운 물방울에 화상을 입기 딱 좋다. 세라자드는 샤리아르 왕의 분노를 멈추게 하고, 폭군에서 성군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까? 한편, 이야기속에서 짝사랑으로 끝맺음을 한 이들은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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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의 천일야화 2 - 아무도 이 섬을 벗어날 수 없다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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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일야화>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마신'이 등장한다. 그래서 마신의 특징을 이해하면 '천일야화'속의 이야기에 더욱 매료될 수 있다. 1권에서 등장한 마신은 '이프리트'였는데, 보통은 불을 다루는 정령으로 곧잘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이는 게임속에서 구현된 모습이고, 대다수의 설화속에서는 여성을 납치했다가 영웅에게 당하는 캐릭으로 많이 등장하는 마신이다. 그래서 능력치는 그닥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지니 계열'의 이프리트로 등장할 경우엔 꽤 강력한 마신으로 등장하기도 하며, 인간으로 변신할 때는 불에 탄듯한 새까만 피부색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래서 아랍권에서는 '이프리트'를 '아프리카인'을 가리킬 때 쓰기도 했단다. 한편, '지니 계열의 마신'중에 '마리드'는 가장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푸른색을 띠고 있다고 한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속 '지니'가 바로 가장 강력한 '마리드 계열'의 마신이었던 셈이다.

 

  2권에서 등장하는 마신은 '구울'이다. 널리 알려진 바로는 '썩은 시체를 먹는 식인귀'로 알려져 있어 '좀비'와 같은 종류로 알려져 있으나, 구울이 살아있는 사람을 물었다고 해서 전염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좀비'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사실, 좀비도 '죽은 시체'가 아닌 것처럼 구울도 '죽은 귀신'이 아니라 '격이 높은 악마'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구울을 완전히 죽이기 위해선 드라큘라처럼 '은십자가'를 심장에 꽂아야만 하는 것처럼 구울도 '정해진 무기(시미터-중동에서 널리 쓰이는 휘어져 있는 칼)'로만 심장을 정확히 꿰뚫어야만 죽일 수 있단다. 또한 구울은 변신능력도 있기에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는데, 남성 구울은 털이 많고 시커멓게 등장하기도 하지만, 여성 구울은 매우 아름다운 미녀로 곧잘 등장한다고 한다. 이처럼 구울은 꽤나 잘 생기고 능력도 뛰어난 마신인데, 시체나 뜯어먹는 식인귀로 곧잘 등장해서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고도 한다.

 

  2권의 핵심적인 줄거리가 바로 '구울과 벙어리소녀의 사랑이야기'다. 이 이야기속에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서도 다시 살아나게 되면 더욱 뛰어난 능력을 갖춰나가는 모습으로 '구울'을 묘사했는데, 마지막 단계로 치명상을 극복하면 '백발귀'가 되어 불사의 마신이 된다고 설정하였다. 한편, 샤리아르 왕에게 이야기 치료를 계속하는 세라쟈드는 '인면어', 다시 말해, 사람의 얼굴을 한 물고기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꿈속에서 '인면어'가 잡힌 호수로 일행이 모험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인어와 맞닥뜨리게 된다.

 

  인어는 매우 아름다운 종족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상반신이 사람의 모습인데 반해서 하반신이 물고기라서 성격이 매우 포악한 종족에 속한다. 더구나 뱃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선원들을 꼬여낸 뒤에 물속으로 끌어들여 잡아먹는 '식인습성'까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인어를 만났을 때에는 절대 '외모'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하며, 애초에 다가가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인면어가 살고 있는 호수에 도착한 왕의 일행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사람이 인면어로 변하는 까닭이 궁금했을 뿐인데,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인어떼가 왕이 몰고온 배들을 선착장에서 멀리 빼앗아가 가버리고, 자신의 형제를 죽인 '뭍에 사는 마신'을 잡아오는 조건으로 배를 온전히 되돌려주겠다고 협박을 받게 된다. 그때 마을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 생존자라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는데, 느닷없이 인어형제를 죽인 '마신'을 잡아오라니...그런데 마침맞게 생존자인 '노파'를 찾게 되었고, 그 노파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구울'이라는 마신을 잡아달라고 왕에게 요청한다. 이래저래 왕의 일행은 '구울'을 잡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구울을 잡기 위해선 창으로 정확히 심장을 꿰뚫어야만 하는데, 만약 심장에서 비켜나게 되면 단박에 죽이지 못하게 되고, 다시 치유가 되어 살아나게 되면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 마신으로 거듭나게 된다고 한다. 이 마을사람들과 인어까지 죽인 구울은 이미 여러번 죽다 살아나서 꽤나 강력한 마신이 되었고, 만약 한 번만 더 죽다 살아나게되면 '백발귀'가 되어 불사의 몸을 갖게 된단다.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한편, 구울은 말 못하는 소녀와 함께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 소녀는 이미 병색이 짙어져서 오래 살지 못할 듯 싶다. 그런데 병든 소녀를 치료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구울이었다. 마을사람들을 몰살시킬 정도로 사악한 구울이 어찌하여 벙어리소녀는 애뜻하게 보살피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구울과 소녀는 서로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서로를 살려준 사이였고, 그렇게 둘은 모두의 미움을 받으며 외따로 살고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사랑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구울은 마신이라는 이유로 배척을 받으며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고, 벙어리소녀도 마을사람들에게 '벙어리'라는 이유만으로 도둑이란 누명을 쓰고 '변명'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모진 매질을 맞아야 했더랬다. 그렇게 천대를 받던 벙어리소녀를 겁탈하려다 구울에게 죽임을 당한 두 사내가 있었는데,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노파가 바로 그 사내들의 엄마였던 것이다. 노파는 자신의 아들이 소녀를 겁탈하려던 것도 다 알았지만, 그조차 '천박한 소녀'의 잘못으로 누명을 씌우고 자신의 아들들을 살리고자 소녀를 죽여서 입막음하려던 것을 구울이 발견하고 구해줬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소녀를 죽일 수 없게 되자 노파는 '인어의 피'를 구해 마을 우물에 뿌려 마을사람들을 다치게 만들었고, 그 독을 푼 것이 바로 '구울의 짓'이었다며 마을사람들을 부추겨서 구울과 소녀를 한꺼번에 죽이려 들었던 것이다. 왕의 식탁에 오를 뻔한 '인면어'는 바로 그렇게 우물에 인어의 피가 뿌려져서 갈증을 참지 못하고 독이 든 우물을 마시고 '인면어'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고 말이다.

 

  이렇게나 복잡한 사연의 '원흉'은 다름아닌 노파의 이기적인 복수심 때문이었다. 왕은 그 사실을 밝혀내고 노파에게 벌을 주려 했으나, 그러자니 구울의 분노가 무서웠고, 구울도 노파를 죽이고자 했으나 병든 소녀를 살리기 위해선 왕의 일행과 함께 큰 도시로 가야 살릴 희망이 있었으며, 그러자니 인어에게 빼앗긴 배를 되찾아야만 했고, 배를 되찾으려면 인어형제를 죽인 '구울'을 산채로 잡아가야만 했다. 그런 까닭으로 구울은 소녀를 살리기 위해 왕의 일행에게 붙잡혀서 인어에게 재물로 받치게 되었다. 순순히 재물이 된 구울이 사라지자 노파는 자신의 아들의 원수인 소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인어의 독'이 든 물을 마시려는 극악한 짓을 벌인다. 다행히 왕의 일행이 먼저 그 꾐을 알아채고 소녀를 위기에서 구해내지만, 이미 구울이 인어의 재물이 되어 호수속으로 던져진 사실을 알고서 그 독이 든 우물을 마시고 '인면어'가 되어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불사의 몸'이 된 구울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너무 슬프고도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샤리아르 왕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을까? 사랑에 배신을 당했다는 이유로 무참하게 처녀들을 하룻밤 사이에 참살해버린 무도한 폭군이 이미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샤리아르는 과연 진정한 사랑에 눈을 떠서 세라쟈드를 살려내고 정식으로 새왕비로 맞아들이게 될까? 양영순의 <천일야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원작에 충실한 이야기를 끌어낼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줄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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