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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의 천일야화 2 - 아무도 이 섬을 벗어날 수 없다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평점 :
<천일야화>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마신'이 등장한다. 그래서 마신의 특징을 이해하면 '천일야화'속의 이야기에 더욱 매료될 수 있다. 1권에서 등장한 마신은 '이프리트'였는데, 보통은 불을 다루는 정령으로 곧잘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이는 게임속에서 구현된 모습이고, 대다수의 설화속에서는 여성을 납치했다가 영웅에게 당하는 캐릭으로 많이 등장하는 마신이다. 그래서 능력치는 그닥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지니 계열'의 이프리트로 등장할 경우엔 꽤 강력한 마신으로 등장하기도 하며, 인간으로 변신할 때는 불에 탄듯한 새까만 피부색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래서 아랍권에서는 '이프리트'를 '아프리카인'을 가리킬 때 쓰기도 했단다. 한편, '지니 계열의 마신'중에 '마리드'는 가장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푸른색을 띠고 있다고 한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속 '지니'가 바로 가장 강력한 '마리드 계열'의 마신이었던 셈이다.
2권에서 등장하는 마신은 '구울'이다. 널리 알려진 바로는 '썩은 시체를 먹는 식인귀'로 알려져 있어 '좀비'와 같은 종류로 알려져 있으나, 구울이 살아있는 사람을 물었다고 해서 전염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좀비'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사실, 좀비도 '죽은 시체'가 아닌 것처럼 구울도 '죽은 귀신'이 아니라 '격이 높은 악마'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구울을 완전히 죽이기 위해선 드라큘라처럼 '은십자가'를 심장에 꽂아야만 하는 것처럼 구울도 '정해진 무기(시미터-중동에서 널리 쓰이는 휘어져 있는 칼)'로만 심장을 정확히 꿰뚫어야만 죽일 수 있단다. 또한 구울은 변신능력도 있기에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는데, 남성 구울은 털이 많고 시커멓게 등장하기도 하지만, 여성 구울은 매우 아름다운 미녀로 곧잘 등장한다고 한다. 이처럼 구울은 꽤나 잘 생기고 능력도 뛰어난 마신인데, 시체나 뜯어먹는 식인귀로 곧잘 등장해서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고도 한다.
2권의 핵심적인 줄거리가 바로 '구울과 벙어리소녀의 사랑이야기'다. 이 이야기속에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서도 다시 살아나게 되면 더욱 뛰어난 능력을 갖춰나가는 모습으로 '구울'을 묘사했는데, 마지막 단계로 치명상을 극복하면 '백발귀'가 되어 불사의 마신이 된다고 설정하였다. 한편, 샤리아르 왕에게 이야기 치료를 계속하는 세라쟈드는 '인면어', 다시 말해, 사람의 얼굴을 한 물고기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꿈속에서 '인면어'가 잡힌 호수로 일행이 모험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인어와 맞닥뜨리게 된다.
인어는 매우 아름다운 종족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상반신이 사람의 모습인데 반해서 하반신이 물고기라서 성격이 매우 포악한 종족에 속한다. 더구나 뱃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선원들을 꼬여낸 뒤에 물속으로 끌어들여 잡아먹는 '식인습성'까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인어를 만났을 때에는 절대 '외모'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하며, 애초에 다가가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인면어가 살고 있는 호수에 도착한 왕의 일행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사람이 인면어로 변하는 까닭이 궁금했을 뿐인데,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인어떼가 왕이 몰고온 배들을 선착장에서 멀리 빼앗아가 가버리고, 자신의 형제를 죽인 '뭍에 사는 마신'을 잡아오는 조건으로 배를 온전히 되돌려주겠다고 협박을 받게 된다. 그때 마을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 생존자라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는데, 느닷없이 인어형제를 죽인 '마신'을 잡아오라니...그런데 마침맞게 생존자인 '노파'를 찾게 되었고, 그 노파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구울'이라는 마신을 잡아달라고 왕에게 요청한다. 이래저래 왕의 일행은 '구울'을 잡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구울을 잡기 위해선 창으로 정확히 심장을 꿰뚫어야만 하는데, 만약 심장에서 비켜나게 되면 단박에 죽이지 못하게 되고, 다시 치유가 되어 살아나게 되면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 마신으로 거듭나게 된다고 한다. 이 마을사람들과 인어까지 죽인 구울은 이미 여러번 죽다 살아나서 꽤나 강력한 마신이 되었고, 만약 한 번만 더 죽다 살아나게되면 '백발귀'가 되어 불사의 몸을 갖게 된단다.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한편, 구울은 말 못하는 소녀와 함께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 소녀는 이미 병색이 짙어져서 오래 살지 못할 듯 싶다. 그런데 병든 소녀를 치료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구울이었다. 마을사람들을 몰살시킬 정도로 사악한 구울이 어찌하여 벙어리소녀는 애뜻하게 보살피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구울과 소녀는 서로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서로를 살려준 사이였고, 그렇게 둘은 모두의 미움을 받으며 외따로 살고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사랑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구울은 마신이라는 이유로 배척을 받으며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고, 벙어리소녀도 마을사람들에게 '벙어리'라는 이유만으로 도둑이란 누명을 쓰고 '변명'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모진 매질을 맞아야 했더랬다. 그렇게 천대를 받던 벙어리소녀를 겁탈하려다 구울에게 죽임을 당한 두 사내가 있었는데,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노파가 바로 그 사내들의 엄마였던 것이다. 노파는 자신의 아들이 소녀를 겁탈하려던 것도 다 알았지만, 그조차 '천박한 소녀'의 잘못으로 누명을 씌우고 자신의 아들들을 살리고자 소녀를 죽여서 입막음하려던 것을 구울이 발견하고 구해줬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소녀를 죽일 수 없게 되자 노파는 '인어의 피'를 구해 마을 우물에 뿌려 마을사람들을 다치게 만들었고, 그 독을 푼 것이 바로 '구울의 짓'이었다며 마을사람들을 부추겨서 구울과 소녀를 한꺼번에 죽이려 들었던 것이다. 왕의 식탁에 오를 뻔한 '인면어'는 바로 그렇게 우물에 인어의 피가 뿌려져서 갈증을 참지 못하고 독이 든 우물을 마시고 '인면어'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고 말이다.
이렇게나 복잡한 사연의 '원흉'은 다름아닌 노파의 이기적인 복수심 때문이었다. 왕은 그 사실을 밝혀내고 노파에게 벌을 주려 했으나, 그러자니 구울의 분노가 무서웠고, 구울도 노파를 죽이고자 했으나 병든 소녀를 살리기 위해선 왕의 일행과 함께 큰 도시로 가야 살릴 희망이 있었으며, 그러자니 인어에게 빼앗긴 배를 되찾아야만 했고, 배를 되찾으려면 인어형제를 죽인 '구울'을 산채로 잡아가야만 했다. 그런 까닭으로 구울은 소녀를 살리기 위해 왕의 일행에게 붙잡혀서 인어에게 재물로 받치게 되었다. 순순히 재물이 된 구울이 사라지자 노파는 자신의 아들의 원수인 소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인어의 독'이 든 물을 마시려는 극악한 짓을 벌인다. 다행히 왕의 일행이 먼저 그 꾐을 알아채고 소녀를 위기에서 구해내지만, 이미 구울이 인어의 재물이 되어 호수속으로 던져진 사실을 알고서 그 독이 든 우물을 마시고 '인면어'가 되어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불사의 몸'이 된 구울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너무 슬프고도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샤리아르 왕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을까? 사랑에 배신을 당했다는 이유로 무참하게 처녀들을 하룻밤 사이에 참살해버린 무도한 폭군이 이미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샤리아르는 과연 진정한 사랑에 눈을 떠서 세라쟈드를 살려내고 정식으로 새왕비로 맞아들이게 될까? 양영순의 <천일야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원작에 충실한 이야기를 끌어낼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줄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