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간의 옷 - 2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My Review MMVII / 열린책들 20번째 리뷰] 노통브의 책들을 '관통'하고 있다. 원래는 '독파'하려고 했으나, 지금 그녀의 책들을 2~3권씩 동시다발적으로 읽어재끼고 있는데, 내가 그녀의 책들을 10여 년 전에 읽다가 그만 두었는지 이제 막 기억이 떠올랐기에 '관통'하려고 든 것이다. 긴 말 할 것도 없이 노통브의 책들은 '흥미, 그 이상의 것이 없다'는 것이 그 당시의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주 자극적인 소재들로 어그로를 잔뜩 끌어모은 뒤에 살인, 강간, 정신병 같은 것들로도 모자라서 온갖 '그로테스크(기괴한, 괴상망측한)'한 것들만 잔뜩 늘어놓고 나서야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짖궂은 작가였기 때문이다. 이건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물론 노통브의 소설들이 '읽을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면 그녀의 소설엔 '기발함'도 동시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발상의 전환'을 끌어내는데 천재적인 솜씨를 지닌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녀의 전공분야인 '언어학'적으로는 천재가 맞고 말이다. 그러나 절대 친절하지는 않다. 그 천재적인 솜씨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조곤조곤 알려주면 좋으련만, 그걸 굳이 살인자 캐릭터나 끔찍한 범죄자의 말과 행동에다가 교묘하게 숨겨두고 독자들로 하여금 직접 찾게 만들곤 한다. 그렇다고 굉장한 '추리소설'을 쓴 것도 아니어서 읽는데 '몰입감' 따위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그녀의 주특기는 '말장난(언어유희)'이 전부인 탓에 추리를 하기 위한 '단서'에 대한 암시나 복선 따위를 대놓고 제시해 놓았기에 그녀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은 대개 '뒷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예측까지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결론이 뻔한 이야기어도 '읽을 가치'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로테스크함으로 치덕치덕 잔뜩 발라놓은 탓에 '두 번'은 읽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 책도 10여 년 전에 '읽다가 만 책'이라는 것을 중간쯤 읽고 나서야 기억에 떠올랐다. 그래서 미리 말하지만 별로 강추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취향이 독특하다고 자부하시는 분들이라면 도전할 만도 하겠지만 말이다.
<시간의 옷>의 기발함은 '폼페이가 사라진 날'이 서기 79년이 아니라 서기 2579년이라고 주장하는 26세기 서방국 집권자 중 한 사람이자, 자칭 '미남'이라고 불리는 셀시우스(맞다! 우리가 온도 단위로 부르는 '섭씨'의 원래 이름이다)가 수술을 받기 위해 마취를 한 '아멜리 노통브(맞다! 작가 본인이다)'가 1995년에서 '타임슬립(?)'을 해서 26세기 어느 날, 어떤 방에서 마주친 미남(?)과의 대화록이다. 여기에 그로테스크함은 그녀가 수술대 위에 올랐다가 깨어보니 26세기인 2580년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책을 다 덮고 나면 <시간의 옷>이란 소설은 다 뻥이란 소리다. 그런데도 온갖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대담이 오고 간다. 한마디로 궤변의 장광설만이 전부란 소리다. 이 얼마나 그로테스크하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녀의 '입담'만큼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마주하고서 오직 '입씨름'만으로 무사귀환(?)할 수 있었다. 논리정연함이 단 1도 없는데, 그녀는 논리정연하게 '셀시우스'라는 자칭 '천재적 미남(?)'과의 논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서, 그녀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루어낸다. 실질적으로는 '죽은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기에,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생환'을 한 셈이고, 죽음으로 내몰고 간 저승사자와의 논쟁에서 이겨냄으로써 저승사자의 버림(?)을 받고 다시 살아나게 된다.
결국, 그녀는 수술대 위에서 마취되었다가 마취가 풀려서 깨어난 것에 불과한데도 그녀는 그동안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그 생생한 기억 때문에 오히려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정상적인 독자라면 이렇게 읽는 것이 맞다. 그런데 오컬트적이고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든 독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셀시우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묵시록>의 예언처럼 다가올 것이다. 그 말들에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지력을 발휘할 대목이라도 있는 듯이 탐욕스럽게 주워담기를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미래 시대의 비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게 또 별것 아니다. 90년대 쓰여진 소설이라서, '세기말'에 예측한 약 600년 뒤의 미래 모습이 전혀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우리는 무엇을 경험했던가. 경제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를 겪었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최악의 '기후재앙'을 맞고 있으며, 대체에너지는커녕 '화석연료'를 끊지 못해서 지구는 불과 100년 뒤에는 회생불능의 지구환경을 맞이할 것으로 과학자들이 전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고작 '핵전쟁'으로 인해서 지구가 작살이 나고서야 온 인류가 반성을 하고 '완전재생가능에너지'만으로 겨우겨우 어둠을 밝히는 정도로 살고 있다고? 그러는 자칭 미남씨는 '화산폭발'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정도로 에너지를 펑펑 쓰면서 말이다. 뭐, 어느 정도 앞뒤 맥락이 맞는 뻥을 쳐야 '읽을 맛'이라도 날 것이 아닌가?
결론만 말하자면, 노통브의 책 가운데 이 책은 최악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현재는 '절판' 상태다. 그래도 노통브의 책들은 이번 기회에 전작을 완독할 예정이다. 아직 십여 권 정도...많이 남았다. 천재 소설가의 민낯은 궁금하지 않지만, 그녀의 유명세, 그 진위를 파악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듯 싶다. 적어도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