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산책 6권 -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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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6권 :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LXXXIX / 인물과사상사 3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여덟 번째 리뷰는 균형 잡힌 역사서술가 강준만 교수의 <한국 근대사 산책 6권>이다. 그를 균형 잡힌 역사서술가로 소개한 까닭은 그가 쓴 책들에서 '좌표'를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시선을 '날것 그대로' 담담하게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을 뿐,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나름 '객관적인 서술자'로 남으려 무던하게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좋았다. 아무래도 '한 쪽의 관점'에 서게 되면 '다른 쪽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어떤지 전혀 알 수 없는데, 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다보면 그 양쪽의 관점을 모두 관찰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단 말이다. 거기에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한 해석'을 가미하고 있기에 조금 더 '객관적인 해석'으로 이해하기에도 무척 좋았다. 물론 이런 두루뭉술한 문장을 싫어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제 막 역사에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사 산책 6권> 관점 포인트 : <한국 근대사 산책> 시리즈는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부터 5권까지는 '개화기 시대'를 다루었고, 6권부터 10권까지는 '일제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6권은 흔히 '일제강점기'라 불리는 우리 역사가 암울했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일제시대는 크게 셋으로 나누곤 한다. '무단통치기', '문화통치기', 그리고 '민족말살기'로 말이다. 그 가운데 6권은 '한일 강제 병합'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까지 약 10년 간을 다루고 있다. 바로 위에서 열거한 '무단통치기'에 해당한다.

'무단통치기'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통치속에 숨조차 제대로 살기 힘든 시기였다. 일제의 헌병과 순사 들은 조선인이라면 아무나 붙잡아 공개적으로 '태형'을 하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조선인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제맛(!)이라면서 문명인이 된 일본제국인이 미개한 조선인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쓰는데, 더럽고 어리석은 조선인은 일본인의 선심을 제대로 해야리지도 못하니 때려서라도 '문명개화'를 시켜주겠으니 감사히 쳐맞으라는 식이었다. 이런 무자비한 통치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만에 하나라도 조선인이 똘똘 뭉쳐서 저항이라도 할까봐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전체 인구수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1910년대 당시 한국은 여러 모로 일본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강제 병합을 당한 직후였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나라 잃은 처지'로 전락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러니 기가 죽어 있을 수밖에 없고 일본의 무단통치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한국 민중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제의 통치가 좋은 방식인지, 나쁜 방식인지조차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는 처지였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조선 때에도 '수탈' 당했고, 대한제국 때도 '수탈' 당했으며, 이제 나라를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수탈' 당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교육이라도 제대로 받고 있었다면 '누구'에게 수탈을 당했고, 그렇게 수탈 당한만큼 '정책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배워서 알아서 분노라도 했겠지만, 그런 기본적인 권리조차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는 민중들에게 무엇에 대한 분노를 할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이놈에게 빼앗기나 저놈에게 빼앗기나 '빼앗긴 놈'은 그저 불쌍한 처지일 뿐, 변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1910년부터 1919년까지 일제가 악착같이 수탈해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우리 민중들도 뭔가 다른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1919년 3월에 벌어진 '3·1 만세 혁명'이 그랬다. 인간 대접 받지 못하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얻어 터지고, 기름 짜듯 쥐어짜이면서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가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우리 편이 뺏어갈 때와 남의 편이 뺏어갈 때의 차이를 느끼게 된 것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겪으며 배우는 통에 뼈에 사무칠 정도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건 바로 '자존심'을 짓밟힌 것이다. 우리 편이 빼앗아갈 때는 나중에 또 빼앗아가기 위해서라도 자존심을 짓밟지 않았고 주위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이겨낼 '여력'이라도 남겨두고 빼앗아갔다. 그런데 일제가 '수탈'을 할 때에는 인정사정 봐주질 않았다. 그들은 늘 '합법'이라는 허울 좋은 말과 함께 토지와 쌀 등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탈탈 털어 갔고, 수탈 당한 민중이 죽든지 살아남든지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저들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 악착같이 빼앗아갔다.

이런 경험을 강제로 당하면서 우리 민족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건 바로 '안간힘'이었다. 고통이나 위기를 겪으면서도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힘이었다. 일본놈들이 빼앗아가면서 무식해서 빼앗긴다고 하니 악착같이 학교에 가서 배우려 들었다. 미개해서 수탈을 당한다고 하면 그 잘난 문명이란 것을 배우려 들었다. 더러운 조센징이란 소리를 들으면 깨끗하고 청결하려 애썼다. 그렇다. 이게 바로 우리가 지닌 힘이었다. 오늘날 전세계가 주목하는 '한국문화에 관한 열풍'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가지려는 악착같은 성정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우리 것'이 없더라도 언젠간 그것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도록 묵묵히 참고 이겨내며 결국 가질 수 있도록 안간힘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불과 100여 년 뒤에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고, 다른 이들을 이끌어갈 선도국가가 되었다. 이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저력이다.

나가는 글 : 사실 100년 전에도 일본은 한국의 이런 저력을 감지하고 있었다. 저들이 앞선 문명과 기술, 경제력을 내세워서 세계 침략을 하면서도 유독 '한국'을 악착같이 짓밟으려 했던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저들이 잘나서 '못한 한국인'을 함부로 죽이고 때리고 빼앗고 있는데도 한국인은 순순히 순응하기보다는 '저항'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지금 당장 '소의 힘줄(일명 '소좃매')' 끝에 납과 같은 무거운 추를 매달아 공공연한 장소에서 엉덩이를 발랑 까놓고 살점이 터져나가도록 매질을 하면서도 한국인들은 비명을 지르고 숨이 넘어가면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당장은 무서움에 벌벌 떨고 두려움에 꽁꽁 숨었지만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어 떳떳하고 당당하니 저들이 나쁜 놈이다. 그러니 저들을 압도할 실력을 기르자. 그래서 본때를 보여주자'하는 오기와 독기로 똘똘 뭉치게 만든 것이다.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상대와 대적하면서도 '도덕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하면서 말이다. 비겁한 반칙으로는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철저히 실력을 쌓으려 '안간힘'을 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안간힘은 신통하게도 먹혀 들었다.

당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서양인들도 의아했던 점이 있었단다. 덩치만 보면 일본인은 왜소하고, 한국인은 키도 크고 덩치도 큰데, 쬐끄만 일본인이 덩치 큰 한국인을 매질하고 수탈하는 장면을 보면서 말이다. 더구나 외모적으로도 일본인은 꾀죄죄했고, 한국인은 새하얗고 준수했단다. 그런데도 일본인에게 억압 당하고 수탈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는 소회를 밝히는 이들도 많았단다. 하지만 아시아 최초의 근대화에 성공하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었다. 그런데 그들의 성정이 원래부터 '야만'스러운 탓에 잘난 자부심과 만나 '폭력적인 방식'의 통치 수단을 삼고 식민경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무단통치'가 한국인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저들이 '인류애'를 발휘하여 저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명개화'를 우리에게 좋은 의도를 품고 친절하게 이끌어주었다면 우리는 더욱 잘 되어서 이웃나라 간에 더욱 시니지 효과를 발휘하며 전세계에 동아시아 문화를 널리 퍼뜨리는데 엄청난 성과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우리를 너무 만만히 봤고, 너무 함부로 대했으며, 우리가 가진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로 하여금 복수심에 불타는 '경쟁심'만 자극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곁눈질로만 배워서 저들이 자랑하는 문명을 따라잡을 위력을 갖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불과 100년 만에 우리는 따라잡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앞서 나갈 것이며, 저들은 왜 뒤쳐지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호되게 당할 일만 남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바는 '일제시대'를 암울하게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분명 그들은 우리를 억눌렀고 털었으며 짓밟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눌리고 털리고 밟히면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들여온 '신문물'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일본제국을 위해서 들여온 모든 것들을 '눈여겨' 보면서 무섭도록 배워갔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을 위한 학교를 만들었으면 일본 학생 100명 당 한국 학생 10명 뿐이었다고 해도, '전교 1등'은 한국 학생이었고, 일본인을 위한 기업을 만들었어도 일본 근로자 월급은 100원이었다면 한국 근로자는 60원만 받았어도, 그 돈을 알뜰살뜰하게 쓰며 '공부'하는데 썼고, '독립'하는데 썼다. 그렇게 못먹고 못살면서도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자하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차'가 들어오고, '영화관'이 들어오면 직접 타보고 관람하면서 흥을 내며 살아갔다. 단지 타고 보면서 즐기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비록 지금은 '남의 것'이지만 결국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읽혔다.

그래서 앞으로 '일제시대'를 암울한 기분으로만 공부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친일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식한 한국을 깨우쳐주려 식민통치를 무릅쓴(?) 일본제국의 호의에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는 엉터리 해석을, 난 할 생각이 없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한마디로 '빵점'이다.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야욕'만 가득 담은 못난 방식이었고, 자격지심에 더 삐뚫어진 탐욕으로 점철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일제시대에 일본인에 의해 벌어진 일들을 호평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일제의 억압과 수탈과 고문 속에서도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고 숱한 위기에 처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한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이토록 빠른 시일에 '선진국'이 되고, '선도국가'가 되어 전세계인이 '한국문화'를 아낌없이 칭송하게 만든 위대한 발자취를 다시금 되돌아보기 위한 역사공부를 하려 한다. 이런 다짐을 하게 된 것도 역시 '균형 잡힌 역사서술자'의 도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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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14 : 예술의 역사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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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14 : 예술의 역사>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5)

[My Review MMCLXXXVIII / 돌핀북 1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일곱 번째 리뷰는 어린이들의 지적대화를 위해 생각을 깊고 넓게 해주는 교양책 <채사장의 지대넓얕 14>다. 그동안 '역사', '경제', '과학', '철학'을 다루었고 이번에는 '예술'을 다뤄볼 차례다. 흔히 예술은 '음악', '미술', '체육' 영역으로 나누지만 이 책에서는 '미술사', 특히 '서양미술사'를 다뤘다. 사실 '서양미술사'에 관해서는 에른스트 H. 곰브리치가 쓴 같은 제목의 <서양미술사>(예경, 2003)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어른들도 읽기 힘든 '700여 쪽의 벽돌책'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어린이가 직접 읽기에는 다소 무리일 수 있겠다. 그래서 채사장은 이 책의 내용을 어린이들도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듯 싶다. 물론 책 내용이 완전 똑같지는 않다. 채사장의 독특한 '지식 분류법'인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가 이 책에서도 훨씬 더 이해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채사장의 지대넓얕 14> 관점 포인트 : 미술을 바라보는 입장은 엄청 다양하다. 하지만 크게 고대 '고전주의', 근대 '낭만주의', 그리고 '현대 미술'로 나누곤 한다. 채사장은 이를 각각 순서대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그리고 '회의주의'로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구분했고 말이다. 왜냐면 '고전주의'는 핵심 가치로 이성, 질서, 조화, 균형, 비례 등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흔들림 없는 진리를 추구하듯 미술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근대 이후에는 미술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감성, 개성, 상상력, 주관성 따위를 핵심 가치의 우위를 두었다. 그래서 고전적인 아름다움과는 달리 '낭만적 아름다움'을 아주 잘 표현했고, 채사장은 이를 '상대주의'로 구분했던 것이다.

물론, 미술에서 절대주의, 상대주의로 완벽하게 구분할 명확한 경계는 없다. 왜냐면 아름다움의 '경계'는 명확히 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성이고 조화롭고 비례가 딱 맞는 균형적인 아름다움과 각자의 개성과 주관에 따른 남다른 감성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 아름다움을 구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에서 절대적 아름다움을 논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균형미'와 '조화미'를 띠는 작품은 절대주의로, '개성적'이고 '감성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작품은 상대주의로 채사장은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현대 미술은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며 '일정한 틀'에 구애받지 않고 초월적인 자유로움을 미술에 나타냈기 때문에 '회의주의'라고 구분했다. 그런 까닭에 현대 미술은 엄청 어렵다. 하나의 작품을 이해했을지라도 '또 다른 작품'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이런 현대 미술의 장르를 따로 구분하며 나름대로 '해석'을 하려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 그래서 현대 미술을 이해하려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정도로 난해하기도 한데,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추구한 미술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부담 없이 미술(예술)을 즐기면 그뿐이라는 자세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결국 미술은 '보여지기' 위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니 '봐주는 이'가 없는 미술은 미술이 아닐 뿐만 아니라 미술의 가치를 논할 수 없다는 정도의 수준에서 미술 감상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해석하기'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 미술은 '~하기 나름'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비전문가가 엉터리로 해석하는 것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겠지만, 미술 전문가의 해석만이 '모범답안'이라는 얘기도 절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암튼 '현대 미술'에 대해서는 이 책 '15권'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글 : 14권에서는 예술의 역사 가운데 절대주의에 해당하는 미술을 주로 다뤘다. 이집트 미술과 중세 미술도 예술의 흐름상 설명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이집트와 중세의 미술은 '아름다움'은 떨어지는 대신 미술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 충실한 예술을 드높였기 때문이다. 이집트 벽화는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리기'에 충실했고, 중세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성서의 내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리기'에 철저한 방식으로 그렸던 것이다. 그렇기에 얼핏 보면 '초등학생 솜씨'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찬찬히 뜯어보면 그속에 '내용전달'에 충실한 메시지가 오롯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셈이다. 그로 인해서 '아름다움'은 배제되었다.

그래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미술은 '그리스·로마 미술'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조화미, 균형미, 비례미, 어느 것 하나 빠질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림의 주체는 다름 아닌 '인간'이다. 그리는 대상이 '신'이나 다른 '상상의 산물'일지라도 결국은 '인간의 모습'을 본떠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집트 미술에서 한층 더 발전된 모습처럼 보이는 까닭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중세시대로 접어들면서 '신 중심'으로 미술을 표현하면서 인간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말았다. 오로지 신을 찬양하는 것에 올인하는 바람에 말이다. 그러다 '르네상스시대'를 맞으며 미술계는 다시 '인간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를 '문예부흥운동'이라고 부른 까닭도 다름 아니라 '그리스·로마시대'처럼 인간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다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니, 이를 '인본주의'라고도 부른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동시대에 살면서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런 예술이 부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금융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고, 그 부로 '권력'을 사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수많은 재주 많은 예술가를 후원하여 자신의 가문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었던 점에서 절대적인 위업을 남기기도 했다. 그 가문이 바로 '메디치 가문'이다. 르네상스 예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던 까닭도 바로 메디치 가의 막대한 후원금이 있었기에 재주는 많지만 '재료 살 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가난한 예술가들을 오직 실력 하나만 보고 아낌없이 투자(!)한 덕분이었다. 그런 까닭에 르네상스의 문예부흥은 메디치 가문의 막대한 후원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미켈란젤로도 모두 메디치 가의 후원 덕분에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예술적 재능을 꽃 피웠으며, 그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르네상스시대의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도 지적 탐구를 해볼 가치가 있지만,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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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와 함께하는 10대를 위한 교양 수업 1 - 유성호 교수님이 들려주는 법의학 이야기 서울대 교수와 함께하는 10대를 위한 교양 수업 1
유성호.박여운 지음, 신병근 그림 / 아울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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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와 함께하는 10대를 위한 교양 수업 1 : 유성호 교수님이 들려주는 법의학 이야기> 유성호, 박여운 / 아울북 (2023)

[My Review MMCLXXXVII / 아울북 4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여섯 번째 리뷰는 <서울대 교수와 함께하는 10대를 위한 교양 수업 1 : 유성호 교수님이 들려주는 법의학 이야기>란..헥헥..'어린이 교양수업' 시리즈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정보는 '서울대'가 보이고, '교양수업'이란 단어도 보이며, '법의학'이란 명칭도 눈에 띈다. 일단 어린이책 가운데 '서울대'가 추구하는 바는 자명하다. 일단 '학업'에 도움이 되는 책이란 얘기다. 학부모들의 눈이 번쩍 뜨이는 단어다. 하지만 '교양수업'이라는 단어 때문에 망설여진다. 왜냐면 실질적인 '내신성적'이나 '대입수능'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그리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의학'이라는 명칭은 호불호가 갈리는 대목일 것이다. 일단 단언컨대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과는 아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에게는 좀 다를 것이다. 미드 <CSI 과학수사대>를 즐겨 본 어린 친구라면 관심이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를 종합하면, 이 책은 어린 친구들이 '호기심'에 학부모들에게 졸라서 사달라고 할 책일 가능성이 높고, 학부모는 '서울대'라는 제목을 보고서 마뜩찮은 점이 없지 않지만 기꺼이 지갑을 열어서 사줄 책일 것이다. 그럼 논술쌤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아이들에게 여러 갈래의 '학문의 길'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진학상담용책'으로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권할 가능성이 높고, 자녀의 진학상담을 요청받았을 때 '고급정보'를 얻기 위해서 논술쌤이 직접 읽어볼 가능성이 높은 책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온라인 서점에서 '상식/교양' 부문에서 높은 순위에 오른 시리즈이기도 하다. 그럼 책속으로 들어가보자.

<10대를 위한 교양 수업 1 : 법의학> 관점 포인트 : 서울대 유성호 교수님은 SBS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문역할'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서울대 교양강의 가운데 가장 수강하기 힘들다는 인기 강의인 '죽음의 과학적 이해'라는 교양 강의를 맡고 있는 교수님으로도 유명하다. 강의 제목에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 사회가 '죽음'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아지는 분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 '자살률'이 높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죽음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왜냐면 '삶과 죽음'은 따로 생각할 수 없을만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 방식도 '태어나는 것은 내맘대로 할 수 없지만 죽는 것은 최선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란 전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죽음'을 검색하는 연령이 60대 이상이 아닌 20~30대 젊은 층에게 더 많이 검색한다는 사실로 입증 되었단다. 그런 의미에서 '법의학'은 죽은 사람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 의사라는 점에서 점점 인지도를 넓히고 있는 학문이란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에 '법의학자'는 그리 많지 않단다. 법의학과를 물려줄(?) 제자가 없어서 난감한 교수들도 있을 정도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 때문에 '법의학 전공'을 선택한 분이 바로 서울대 유성호 교수님이라고 한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서 '자신이 갈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일종의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라도 현재에는 꽤 만족한 삶을 살고 있으니 결코 후회는 없다고 한다. 이런 유성호 교수님의 노력(?) 덕분에 현재는 국내 유명 대학에 '법의학과'가 개설되어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먼저, 법의학을 전공하려면 '의과대학'에 진학을 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의 '의대생'과 같이 6년을 공부하고 졸업한 뒤, 전공 학과를 정하고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의 실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임상 의사'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데 최종적으로 법의학자로 진로를 정한다면 '레지던트 과정'에서 '병리학'을 공부하고, 병리학 전문의가 된 뒤, 법의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 된다. 우리 나라에는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건국대, 연세대, 경북대 등 6곳에 '법의학 대학원'이 있고, 이 대학원에서 '부검'과 같은 실무 경험을 쌓은 뒤에 법의학자가 될 수 있단다. 치과 의사는 '법치의학자'가 될 수 있고 말이다. 법의학자와 다른 점은 '법치의학자'는 병원에서 치과 의사로 일을 하면서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란다.

'법의관'도 법의학자와 하는 일은 비슷하다. 우리 나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일하는 법의학자를 법의관이라 부르는데, 법의학자는 연구와 강의를 더 많이 하고, 법의관은 국과수에서 수사에 필요한 부검을 더 많이 하는 차이점이 있다. 의대나 의학전문대학원을 가지 않고도 '법의학' 관련 일을 할 수도 있다. '검시조사관'이나 '법의간호사'가 있는데, 검시조사관은 '의료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뒤 '경찰청', '국방부', 그리고 '국과수'에서 과학 수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단다. '법의간호사'는 '간호사 면허' 취득한 뒤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얻어야 한다. 그 뒤에 '법의간호사 자격증 시험'을 치르면 법의간호사가 될 수 있단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 센터'에서 일하거나 '경찰'이나 '국과수'의 과학 수사 요원, 검시조사관으로 활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법의학자는 미국 드라마 <CSI>에서처럼 '과학수사대'의 일원으로 활약할 수 있는 걸까? 아쉽게도 우리 나라 법의학자는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수사관'처럼 활약할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드라마 <싸인>에서처럼 법정에서 필요한 의학 증거를 밝혀내서 사건의 결과를 뒤집는 결정적 한 방을 통쾌하게 날리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단다. 물론 법정에서 살인사건의 범죄자가 째려보는 와중에 '증언'을 하는 살풍경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더구나 죽은 시체를 '부검'하는 일을 직접해야 하기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법의학자가 되면 좋은 점도 있을까? 유성호 교수님 말씀으로는 "법의학자는 죽은 사람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 의사입니다"라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사망한 사람은 죽은 뒤에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몸 속에 '자신이 죽은 원인(死因)'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법의학자는 '부검'을 통해서 사인을 밝혀내어 이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과 까닭까지 모두 밝혀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1987년 서울대 박종철 군이 군사독재의 추악한 면모를 낱낱이 밝혀낼 수 있었던 것도 모진 고문으로 죽임을 당한 박종철 군의 몸을 '부검'한 덕분이었단다. 당시 경찰은 박종철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사인을 밝혔지만, 당시 중앙대 병원 오연상 의사에게 사망 진단서를 발급하라고 강요 했음에도, 오연상은 침착하게 자신이 직접 죽은 걸 목격하거나 진료기록도 없으니 쓸 수 없다고 말했단다. 그러자 경찰은 '사체 검안서'라도 작성하라고 하자 오연상 의사는 자신이 본대로 '사인은 익사 추정, 사망 종류는 불상(알 수 없음)'이라고 기록하며 부검을 해야 한다고 요청했단다. 그래서 박종철의 시신은 국과수 황적준 법의관에게 인계되었는데, 경찰이 빨리 장례식을 치르고 시신을 화장하려 '사인을 심장 쇼크사'로 발표하라고 독촉했음에도 침착하게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고 부검 감정서에 기록했기 때문에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세상에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오연수 의사와 황적준 법의관이 '죽은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폭력적인 경찰의 권력에 움츠러들어 '진실 은폐'를 했더라면 6월 항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시 폭력 경찰들이 얼마나 지능적으로 고문을 했는지 겉으로는 상처가 거의 없었지만 부검을 하고 몸속을 들여다보자 '가슴과 목에 선 모양으로 피멍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가는 글 : 우리는 '죽음'과 관련해서 쉬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간다. 죽음은 긍정적인 면은 없고 부정적 이미지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당히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른 바 '안락사' 같이 고통스런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고통 없이 편안한 죽음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사는 것을 '웰빙'이라 한다면 잘 죽는 것은 '웰 다잉'이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다. 드라마 같은 데에서는 '죽는 장면'을 연출할 때 사랑하는 연인의 품에서 고개를 떨구거나 손을 늘어뜨리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며, 병원에서 심장박동이 멈추는 삐~하는 소리와 함께 가족들이 다같이 오열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실제 죽음'과 상당한 차이가 있단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수많은 의사와 의료기구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비명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사투'를 벌이다 고통에 겨워 겨우 숨이 넘어가는 일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통을 알고 있는 이들은 자신은 죽을 때 '잠자듯 고통없이 편하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좀 더 너그럽고 관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자살'을 권장하거나 방조하자는 이야기가 아님을 밝혀둔다. 죽음에 대해서 인지하자는 것은 '죽음'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잘 사는 삶'을 조명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에 달린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잘 살고 잘 죽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웰빙과 웰다잉은 '반대말'이 아니라 '같은말'일 것이다. 죽음에 대해 관심을 높이면 그만큼 '삶의 질'도 더 높일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차원에서 '법의학자'가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더 잘 들려주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적어도 우리는 끔찍한 사고로 일어난 범죄를 단속할 수도 있고,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는 법의학자가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공헌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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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민이 합니다 : 이재명의 인생과 정치철학
이재명 지음 / 오마이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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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민이 합니다 : 이재명의 인생과 정치철학> 이재명 / 오마이북 (2025)

[My Review MMCLXXXVI / 오마이북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다섯 번째 리뷰는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의 정치철학'이 담겨 있는 책, <결국 국민이 합니다>다. 이 책은 2025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만큼 큰 인기를 끌었는데, 보통 현직 대통령에 오르고 나면 대통령 관련 책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는 수순을 밟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을 둘러싼 주변 강국들의 움직임이 수상하고, 세계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요동을 치는 불안한 현실속에 이 책만큼 크게 주목 받아 마땅한 것은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현직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봐야 할 책이란 말이다. 그리고 '꼭' 따져봐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물인지 말이다. 우리 나라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워낙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또 다시 윤석열' 같은 종자가 그 자리에 있으면 나라꼴이 거덜나기 십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몸소 체험한 '사실'이지 않는가 말이다. 꼴랑 임기 3년만에 나라꼴을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는가 보란 말이다. 또 다시 이런 바르지 못한 대통령을 자리에 올린다면 우리 국민은 그야말로 '생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말이다. 우리 국민이 '주인'으로서 큰 깨우침을 얻어야 한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이 '쓸만한 도구'인지, '잘 뽑은 머슴'인지 파헤쳐 보자.

<결국 국민이 합니다> 관점 포인트 : 제목부터 눈 여겨 보자. '결국 국민이 한다'고 한다. 무엇을 국민이 한다는 건지 빠져 있는 제목이다. 그걸 책속에서 찾으면 된다. 사실 몇 장 넘기지 않아도 '정답'은 나와 있다. '정치'가 정답이다. 흔히 우리 나라는 '대의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을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하고, 그 선출된 '정치인'이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해서 '정치전문가'로써 정치를 잘 이끌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허나 이재명은 그건 엉터리라고 말한다. 정치가가 '정치'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국민'이 정치를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헌법상, 정치인이 정치를 이끄는 것은 '비정상'이고, 국민이 정치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정상'이란 말이다. 왜냐면 주권자는 국민이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몰랐던 것은 아닌데, 왜 국민이 정치를 직접하지 못하게 '정치인'들이 앞장 서서 막아서는 일이 잦았던 것일까? 무언가 잘못 되었고, 이걸 바로 잡겠다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이재명이란 얘기가 이 책의 골자다.

지난해 6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 임기 만 1년차도 되지 않았는데 수차례 '정상회담'에 참석하여 내노라하는 강대국들을 상대로 외교성과를 거둬 들이며 대한민국이 마주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이며 수많은 국민들을 안도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막혔던 수출길을 뚫고, 코스피 4800선(26년 1월 18일 현재)을 훌쩍 넘기면서 대한민국 경제에 숨통을 틔우고 희망을 심어주었다. 물론, 대북 노선이 '불통'이 되고 있고, 국제정세도 전쟁과 시위로 인해 몸살을 앓으면서 위기감은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는 상황이고, 치솟은 집값과 물가와 환율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경제적 불안감도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위기가 대한민국을 안팎으로 휘감고 있었는데도 아무 것도 하지 않던 '윤석열 씨'와 대조해보면 천당과 지옥의 차이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하늘이 도왔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트럼프의 '관세 압박'이 물 밀듯이 밀려올 때 '윤석열 씨'가 비상계엄을 하지 않고, '탄핵'도 당하지 않고, 윤석열 정권이 그대로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트럼프가 '미중 갈등'의 해결책으로 동맹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처럼 '백기 항복'을 하고 고율의 관세 협상에 그대로 싸인을 했더라면 어땠을 것 같은가? 더구나 미일이 암묵적인 합의를 하고서 '대한민국'을 호구로 보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금을 내노라고 강요했을 때, 협상은커녕 저항도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빼앗기고 말았다면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으냔 말이다. 거기다 '혐중'을 내세워서 중국 시진핑과의 관계도 엉망진창이었는데 트럼프 행정부를 믿고서 '반중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였더라면, 대한민국은 미국 안보를 위한 '항공모함 신세'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총알받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또한, 일본 다카이치 총리 이후 '중일 갈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격상 되었을 때, '한미일 공조'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울 국민의힘 정당의 정치공세에 대한민국이 '중일 전쟁' 한복판에서 끼어들어 대신 두들겨맞는 꼴로 전락할 뻔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를 '이재명 대통령'이라는 카드 한 장으로 모두 돌려막기 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트럼프도, 중국 시진핑도, 일본 다카이치도, 이제는 '대한민국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격으로 서로들 친하게 지내려하고 굽신거리는 모습도 모두 '이재명 대통령의 업적'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단한 외교적 성과를 거뒀으니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절대 복종'하며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하고, 달라면 달라는대로 다 주는 '독재자'가 되겠다고 표방했는가? 아니면, 그에 준하는 '야심'이라도 포착했는가? 물론 이제 임기 1년차를 지냈을 뿐이니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더 투명한 '국정'을 운영하며, 국민과 소통하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되려 문제는 '지난 윤석열 정권의 내란잔당세력들'이 저지르고 있다. 윤석열이 '임명'한 잔당들이 아직도 '버티기'를 하면서 온갖 딴죽과 훼방을 놓으며 윤석열 감싸기 모드에 들어가서 도통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침대 축구'를 한다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조희대 사법부는 '내란 감싸기'에 여념이 없고, 나머지 잔당들은 먼 비전을 내세우며 '윤석열 사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정도다. 도무지 반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족속들이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바로 '내란 잔당'을 발본색원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그럼, 이제 정치를 '이재명 정부'에게 모두 맡기고 국민들은 안심하고 딴짓을 해도 괜찮은 걸까?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한다. 끝까지 '이재명 정부'가 딴짓을 하지 않고 임기를 다할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그걸 함축해서 적은 놓은 말이 바로 '결국 국민이 합니다'라는 말의 참뜻이다. 지금 이재명이 해놓은 국내외적 성과는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면 누구라도 마땅히 해야 할 성과인 것이다. 이재명이 특별해서가 절대 아니란 말이다. 이재명이 이렇게 빛나는 위업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주권자 국민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란 얘기다. 그리고 국민들이 '정치인'을 더 잘 감시할 수 있도록 모든 국정은 '공개'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았다. 이재명은 이걸 실천으로 옮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정치인들'도 모두 그렇게 하고, 스스로 '국민들의 감시'를 받을 수 있도록 투명한 정치를 하면 된다.

그럼 그동안에는 왜 이걸 안 했던 것일까? 주권자 국민들이 '감시'할 수 없도록 '비밀회동'을 하고, 중간에서 국정정보를 가로채 '언론브리핑'을 독점적으로 했기 때문에 '국민들'을 기만하고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권력자가 '권위 의식'만 높아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의뭉스럽게 감추기 바빴었기 때문에 주권자인 국민이 '대의정치' 속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이 이걸 속시원히 다 까발렸다. 국정의 모든 것을 '주권자'에게 속시원히 다 보여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이재명'을 칭찬해도 괜찮다. 아낌없이 박수를 쳐줘야 한다.

나가는 글 : 그럼 다 된 것일까? 이처럼 '쓸만한 도구'로, '잘 뽑은 머슴'으로 자처하는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 올렸으니 이제 만사형통하길 기원하기만 하면 될까? 대한민국 주권자라면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지금까지 봐온 '이재명'이란 사람의 '정치철학'이 참 올곧고 훌륭하며, 이제 대통령 자리에 올라 대한민국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으니 충분한 것으로 여기고 '주권자의 권리'인 정치인 감시를 철저히 하지 않고 한시라도 눈을 돌리면 또 다시 부정하고 부패한 정치인이 등장해서 대한민국을 좀 먹어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대통령 한 사람이 다 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부처의 장·차관들이 전문가도 아니면서 '대통령의 임명'으로 그 자리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물론 잘 뽑은 대통령이 어련히 알아서 좋은 사람을 임명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법무부 장관으로 윤석열을 임명한 것을 우리는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그 시기에는 적절한 인물을 임명했다 여겼지만, 그놈이 저지른 분탕질로 인해서 대한민국이 어떤 위기를 초래했는지 절대 잊으면 안 된다는 소리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참으로 훌륭한 정치철학을 마주 할 수 있다.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니라 오직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구절을 읽고 있노라면 행복에 겹다 못해 감격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겠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위인일지라도 '한 가지 단점'쯤은 다 가지고 있다. 지금 그 단점이 보이질 않는다고 해서 그냥 믿고 맡기고, 이전 정부 때보다 잘했으면 됐지 정치(인)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품으면 탈나기 십상이라는 마음으로 대충 정치를 맡겨서도 안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란 말이다. 그 잘나가던 미국조차 트럼프라는 '망나니'가 칼춤을 추고 있으니 나라가 망해버릴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이대로 트펌프가 '연임'이라도 하는 날이면 미국은 100년은커녕 10년도 못가서 망해버릴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하루 아침에 초강대국 미국이 사라지게 되면 전세계에 어떤 충격을 몰고 오겠느냔 말이다. 우리는 이런 충격까지도 철저히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또 다시 '윤석열' 같은 모지리와 '내란잔당'과 같은 불온한 세력이 활개라도 치는 날이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휩싸여 망조가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나열된 수많은 '연설문'과 '정치발언', 그리고 '정치철학'은 이재명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다. 대한민국 주권자의 목소리여야 한다. 이 땅에 다시는 불온한 세력이 국가권력을 틀어쥐고 대한민국을 나락(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들도록 바라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재명이 손수 보여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우리는 정치적 각성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주권자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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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 지하실의 미스터리 - 중학교 수학 1-1 개념이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1
권혁진 지음, 차에 그림, 김애희 감수 / 유아이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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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1 : 지하실의 미스터리> 권혁진 / 김애희 / 유아이북스 (2020)

[My Review MMCLXXXV / 유아이북스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네 번째 리뷰는 '중등 수학의 개념'을 다잡을 수 있는 수학 소설책이다. 흔히 '수학 동화'로 불리고 있지만, '예비 중등을 위한 개념서'를 표방하고 있으니 '청소년 배려 차원'에서 동화보다는 조금 더 수준 높은 '소설'이라 부르는 게 나을 듯 싶다. 물론 소설 속 주인공도 '예비 중등'이고 말이다. 사실 '수학 소설책'은 이미 하나의 장르화가 되었다. 해마다 수학 개념이나 수학 기초를 잡아줄 소설책이 즐비하게 나오고 있지만, 솔직히 '재미'가 없는 경향을 띠는 편이다. 아무래도 '수학교과서'의 내용을 답습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로 꾸며졌다고 하더라도 본질은 '교과서'인 것이 금방 탄로가 나고, 이야기는 점점 '참고서'처럼 바뀌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미를 추구하다보면 소설이 아닌 '동화책'마냥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너무 심플해지는 모양새가 되어 재미 없는 딱딱한 책이 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책을 잡자마자 끝이 날 때까지 단숨에 읽게 하는 마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1> 관점 포인트 :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탐정이나 괴도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범죄수사물'을 읽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레 중등 수학의 기초와 개념이 탄탄해지는 경험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기 때문에 '추리소설'도 읽고 '수학 개념'도 잡는 마당 쓸고 돈 줍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 덕분에 '수학 동화책'도 얼마든지 재밌게 만들려면 만들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중등 수학'을 처음 접하는 예비 중등생들에게 기본 개념을 잡기 위한 첫걸음이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면 '초등수학'과 '중등수학'이 개념부터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미지수'에 관한 식도 'ㅁ'나 'ㅇ'와 같은 도형으로 수식을 만들던 초등수학이 중등수학부터는 'x'나 'y' 같은 '문자'로 수식을 만들기 때문에 처음엔 황당하고 당황스러울 수 있다. 또한, 초등수학은 '자연수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중등수학에서는 자연수를 포함한 '정수'를 넘어 '유리수''유리수가 아닌 수(일명 '무리수')'까지 범위를 넓혀서 거의 '실수 범위'까지 확장시키기 때문에 좀 더 넓은 사고력을 확장시키지 않으면 수학문제 풀이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수학을 포기하는 대열'에 낑기게 되는 불운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수학의 기초 개념을 '공교육'에서는 더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젠 '사교육'에서 기초와 개념을 다잡은 뒤에 '공교육'에서는 공부 실력을 뽐내는 기회만 제공해준다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요즘 학생들은 '사교육'이 필수가 되었다. 그런데 사교육은 기본적으로 '문제풀이'와 '공식암기'만 열을 올릴 뿐, 학생들마다 다른 학습 수준과 단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식으로 '공식'과 '풀이방식'만을 무차별적으로 강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사교육은 학생을 '절벽'에서 밀어버리고 살아 올라오는 우등생(?)만 확실히 키워주겠다는 방식이기 때문에 '내신관리'나 '대입수능'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만을 위한 수업을 빠르게 진행한다는 점에서 엄청 불친절하다. 이런 불공평한 사교육이나마 잘 적응하고 알아서 공부해준다면 정말 훌륭하고 고마운 학생인 셈이다.

그렇다면 뒤쳐진 학생들의 처지는 어떨까? 안타깝지만 결국 버림받고 홀로 극복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이 때문에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에 대한 관리와 대처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럼 이대로 수포자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다행히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굳은 학생이라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에서 종사하는 선생님들 가운데 이렇게 절실히 도움을 바라는 학생이 있다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칠 용의가 있는 훌륭한 선생님이 얼마든지 계시기 때문이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바로 내가...쿨럭쿨럭..비록 '논술쌤'이긴 하지만 어떤 과목이라도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이라면 기꺼이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서 도와줄 테니 말이다.

나가는 글 : 이 책은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중등 수학 1학년 1학기의 교과 내용을 친절하게 담고 있어서 '스토리텔링 학습'을 하듯 차례대로 읽기만 하면 저절로 중등수학의 기초와 개념을 다잡을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기 때문에 재미는 이미 보장되어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사건에서 출발한다. 단서는 오랜만에 만들어 놓은 '오믈렛'과 컴퓨터로 프린팅이 된 '편지 한 장'이 전부다. 따라서 엄마가 직접 만든 오믈렛도, 직접 쓴 편지도 아닐 수 있으며, 곧 돌아온다는 내용도 믿을 수 없다. 오히려 엄마가 납치될 가능성만 높을 뿐이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은 엄마가 사라진 의문과 함께 '할머니 집으로 가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 의문투성이다. 왜 하필 할머니 집에서 '겨울 방학'을 보내라는 것일까? 그런데 할머니 집에 도착하자 사건은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왜냐면 할머니도 집에 계시지 않고, 심지어 오랫동안 집을 비워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창밖에서 집안을 기웃거리는 수상한 그림자를 목격하게 되는데, 과연 그 수상한 그림자의 정체는 누구이고, '수학'은 언제부터 배울 수 있는 거냐는 생뚱맞은 의문이 들 때부터 책속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의심하지는 마라. 당신이 이 책을 다 읽을 때즈음이면 이미 '수학의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중등 수학에 마스터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테니 말이다. 2권의 내용을 기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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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17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삼십대 성년이 된 두 딸을 통해 느낀 교훈은 수학은 가급적 어릴 적에 기초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었어요.

異之我_또다른나 2026-01-17 21:49   좋아요 1 | URL
정말 좋은 지적이시네요. 언어영역과 마찬가지로 수리영역도 ‘조기교육‘은 필요합니다.

물론 선행학습이 아닌 ‘기초 개념 확립‘ 차원에 한정해서 말이죠. 너무 앞서서 배울 필요는 없지만 기초는 탄탄하게 말입니다. 그래야 언제든 필요할 때 ‘심화학습‘이 가능하거든요.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에서 ‘심화‘로 넘어갈 수 있는 능력 함양이거든요. 이때 학생들은 훌륭한 선생님들의 도움이 절실한데 공교육에선 찾기 힘들고 사교육에서는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고 있어서 학생들의 실력차가 ‘부모님의 경제력‘으로 판가름이 나고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