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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들의 수첩 - 수학이 여자의 것이었을 때
이다솔 지음, 갈로아 그림 / 들녘 / 2019년 12월
평점 :
<수학이 여자의 것이었을 때 숙녀들의 수첩> 이다솔, 갈로아 / 들녁 (2019) [영제 : The Ladi's Diary : or, Woman's Almanack]
[My Review MMCLXXIII / 들녁 8번째 리뷰]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두 번째 리뷰다. 늘 쓰던 리뷰지만 이렇게 격을 맞춰서 쓰려니 막상 어색하기 짝이 없다. 좀더 자유분방하게 쓰는 것이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구독자'도 늘리고 조금이라도 '수익'을 얻기 위해서 뭔가 활로를 찾아야하겠기에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련다. 이번 책은 인문교양을 쌓을 수 있는 '웹툰 만화'책이다. 우리들에게 '곤충박사(현재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지는 모르겠다)'로 널리 알려진 김도윤(갈로아)가 <수학동아>라는 잡지에 연재하던 기획물인데, 이렇게 단행본으로도 나왔었다. 평소에도 갈로아의 책은 즐겨 읽었는데 이런 책이 있었는 줄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많이 게을러진 게 분명하다. 좀 더 부지런을 떨자는 차원에서 2026년 1월의 [이달의 작가 2 : 갈로아]를 선정하려 한다.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평소 한 달에 20여 편의 리뷰를 써왔기에 [이달의 작가]가 딱 한 명일리는 없다. 많게는 20도 넘을 수 있으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즐겨주시면 좋겠다. 어차피 리뷰 쓰는 나만 죽어라하고 쓰면 되는 거니까..쿨럭쿨럭
<숙녀들의 수첩> 줄거리 : 엘리 캠벨이라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영국 사회를 그리고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 엘리라는 소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수학' 공부였다. 아니 여자아이가 수학을 좋아한다고? '특이한 여자 아이'네 싶다면 이 책의 기획의도를 제대로 짚었다. 요즘의 상식으로는 여자는 수학을 좋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18세기 영국에는 <숙녀들의 수첩>이라는 '수학잡지'가 꽤나 유행을 했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여성'이 주요 독자층이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18세기에는 '수학'이 여성들의 교양이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사회에서도 '여성'에게 수학을 잘하기를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사실(fact)이었다.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현대사회에서 여성에게 '수학'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럼 왜 오늘날에는 여성들이 수학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이런 의문점을 갖고서 이 책의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소녀 엘리는 <숙녀들의 수첩> 편집장의 조수가 되어 허드렛일을 도와주게 된다. 평소에도 좋아하던 '수학잡지'를 직접 만드는데 참여하게 된 것에 기쁨을 누리던 던 순간에 엘리는 또 하나의 기쁨과 만나게 된다. 바로 '여성 수학자'이자 '최초의 여성 수학교수'인 마리에 아녜시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둘은 함께 <숙녀들의 수첩>을 만드는데 참여하게 된다. 그러면서 엘리를 중심으로 <숙녀들의 수첩>이 만들어지게 되는 일련의 과정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물론 그러는 중간중간에 인류 역사에 위대한 '여성 위인'들도 탐방할 수 있고, <두뇌는 평등하다>(론다 쉬빈저, 서해문집, 2007)라는 책과 비교분석한 내용이 첨가되면서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수학자나 과학자 가운데 여성이 절대적으로 소수일 수밖에 없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짚고 있다.
<숙녀들의 수첩> 관점 포인트 : 앞서 언급한 18세기에는 여성들에게 수학이 권장되었는데, 19세기 이후에는 왜 여성들에게 수학이 기피 대상이 되었는가 라는 의문을 푸는 것이다. 그럼 먼저 18세기에는 왜 여성들에게 수학이 권장되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건 다들 아시다시피 여성의 '사회진출'이 원천적으로 가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진출이 막혀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 당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었는데 왜 여성들에게 수학공부를 권장했던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기함할 정도로 놀랐던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교육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수학공부를 권장했다는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 남성들이 좋아했던 여성상은 '현모양처'였다. 지혜롭고 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성에게 순종적인 여성상 말이다. 이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옛날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집안에서 예쁘게 꾸미고 탱자탱자 놀고 먹지만 말고 밖에서 뼛골 빠지게 일을 하는 남성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여성에게 '지혜로움', '현명함', 이런 것들을 요구했고, 집안 살림부터 남편 사업의 손익계산을 하는 일이라도 덜어주는 차원에서 여성들에게 '수학공부'를 장려했더란 말이다. 결국 사회진출을 위한 공부는 허락할 수 없지만 '내조의 여왕(!)'이 되기 위한 공부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다는 심보에서 18세기에 여성들의 수학공부를 장려했던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숙녀들의 수첩>이란 '수학잡지'는 무려 130여 년동안 꾸준히 팔려 나갔더란다.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황에서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남성들 못지 않은 성취욕구가 왕성한 여성들 사이에서 <숙녀들의 수첩>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고, 어차피 사회진출도 하지 못하겠지만 '똑똑한 여성'을 마다 하지 않던 남성들도 <숙녀들의 수첩>에 대해서 일부분이지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다. 오늘날의 수학이나 과학이 '전부'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기획되고 있는 점이 여성들이 수학이나 과학을 싫어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숙녀들의 수첩>이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성의 관심사'를 수학문제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수학문제'라고 하면 로켓의 발사속도를 구하고, 야구나 축구 경기의 승률을 구하는 문제가 전부인데, <숙녀들의 수첩>에는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로맨스'나 '사랑'에 관한 수학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수학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둘은 파티장에서 처음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을 하고 결혼을 약속했다. 그리고 남자가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여자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여자의 완고한 아버지는 결혼 허락을 하지 않으셨고, 슬픔에 빠진 남자는 허탈한 마음으로 여자의 집을 홀로 떠나게 되었다. 그 뒤 여자는 아빠에게 울면서 매달렸고 여자가 슬퍼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진 아버지는 결혼 승낙을 하게 되었다. 여자는 기쁜 마음에 얼른 남자를 뒤쫓아가려 했지만, 남자는 이륜 마차를 타고 1시간에 4Km/s의 속도로 떠난 뒤였다. 여자는 서둘러서 사륜 마차를 빌려서 30분에 5Km/s의 속도로 달린다면 여자는 얼마의 돈을 준비하면 충분할까? 단, 사륜 마차를 빌리는 값은 기본 요금이 10페니이고, 1Km당 3페니다.
실제 출제되었던 문제 유형과 유사한 문제를 재구성해봤다. 왜냐면 실제 출제문제는 오늘날의 사회관점으로 봤을 때 '여성의 인권문제'부터 시작해서 '결혼지참금'까지 담고 있기에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선하지 않은가? 요즘 나오는 수학문제집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이고, 여자아이들이 봤을 때 수학문제를 풀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요즘 나오는 수학이나 과학 문제집은 좀 참고해봄직 할 것이다. 여자는 수학을 원래부터 잘 할 수 없다고 단정지을 것이 아니라 '여자들의 관심사'에 맞게 집필을 수정하게 되면 여자도 어릴 적부터 수학에 남다른 관심을 쏟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요즘에는 '너무 남성중심적'인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곤 하니 개선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는 것이 좋을 듯도 싶다.
에피소드 : 실제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남성과 여성의 '취향'을 강요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왜 남자는 울면 안 되고, 여자는 울어도 괜찮은 것일까? 왜 남자는 파란색을 좋아해야 하고, 여자는 분홍색을 좋아해냐 하냔 말이다. 남자도 아프면 눈물이 나는 인간이긴 마찬가지고, 여자가 파란색 옷을 입어도 얼마나 예쁘냔 말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남자에게 치마를 입혀야 하고, 여자에게 무거운 짐을 들어서 애써 '평등'이라 우기는 것도 무식한 짓이긴 마찬가지다.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여장'을 해도 정말 예쁜 남성도 있는 반면, 남성보다 더 강한 '피지컬'을 가진 여성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하여 천편일률적으로 적용시키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라고 고정불변의 선입견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강요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런 고민들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오늘날의 페미니즘 논쟁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고 첨예하지만, 그런 심한 논쟁은 차치하고 진정으로 '양성평등'을 이해하고, '남녀차이'를 인정하고, '남녀차별'을 근절하려고 노력하는 여성운동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억눌린 여성'들에게 더 넓은 의미에서 사회진출을 보장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페미니즘이란 이름을 걸고 '대결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물론 최초의 여성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craft)는 그녀가 쓴 <여성의 권리 옹호>(1792)에서 여성의 교육기회와 양성평등을 주장했다. 그녀가 시초였기에 다소 과격한 주장을 폈고, 그런 까닭에 '페미니즘'은 폭력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지만, 남성 주류사회에서 여성의 동등한 인권선언을 강렬하게 인상지어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행보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전통(?)이 오늘까지도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의 행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여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더 문제라고 본다.
한편, 이 책에서 <두뇌는 평등하다>는 상당히 많이 언급되곤 한다. 그 때문에 이 책이 '어린이 독자'에게 "여자도 얼마든지 수학을 잘 할 수 있단다"는 메시지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적 사고'를 더해서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해서 우리가 해나가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개념을 확장시켜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숙녀들의 수첩>이 단순한 산수문제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삼각함수'와 '미적분' 문제까지 풀이와 정답을 실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이 잡지를 구독하던 있던 독자들의 수준이 꽤 높다는 것을 유추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잡지를 여성들만 좋아한 것이 아니라 남성들도 상당히 애독해왔던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어린 소녀들뿐만 아니라 소년들도 '수학교재'로 활용할 정도로 보편적인 수학문제를 수록하였고, 독자들이 직접 '수학문제'를 만들어서 투고하고, 그 문제의 '정답'을 맞추려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바로 이 잡지가 130여 년 동안 장기연재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런데 왜 19세기 들어서 '수학'은 여성들에게 인기 없는 학문이 되었을까?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의 발달'이 원인을 제공했단다. 바로 '해부학'과 '골상학'이 주류 과학으로 전면에 서자 '남녀의 골격 차이'가 여성이 왜 남성보다 저능한 존재인지 증명하는 '과학적 증거'로 빼박이 되었고, 그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머리'는 작고, '골반'은 큰 골격 덕분에 공부와는 적성이 맞지 않으니 애 낳고 아이 기르는 일에 전념을 하라는 식으로 사회분위기가 바뀐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는 20세기 들어서도 '기본 상식'이 되었고, 그 사이에 여성은 공부와 어울리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그냥 포기하라는 식으로 강요 아닌 강요를 요구한 셈이다. 그 덕분에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자는 수학을 못 해도 돼', '여자니까 수학을 못하는게 당연한 거 아냐'와 같은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해부학적 차이는 지능의 차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골상학'은 사이비과학으로 판명이 난 오늘에도 여전히 말이다.
이제는 '여성 인력'이 너무도 절실한 시대가 되었다. 어릴 적에 특출난 재능을 선보이는 '여성 인재'를 양성해서 유용하게 쓰는 사회가 미래를 선도하는 일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자니까 수학을 못 하는 건 당연해'라는 바보같은 말에 휘둘릴 참인가? 인간은 평등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이에 어긋나는 '상식'이 만연한다면 반드시 뜯어 고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