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개정증보판 ㅣ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12월
평점 :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개정증보판>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25)
[My Review MMCLXXVI / 인물과사상사 30번째 리뷰]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다섯 번째 리뷰다. 재작년부터 읽고 있는 '강준만 교수'의 <역사 산책 시리즈>를 올해도 이어서 리뷰하련다. 그래서 26년 1월 [이달의 작가 3 : 강준만]이다. 한 달 안에 다 읽을 순 없겠지만, 최대한 부지런히 읽고 쓰려 한다. 역사리뷰에서 중요한 것은 '시대 흐름'을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리뷰는 좀 다르다. 시간의 흐름대로 리뷰를 하면 좋겠지만 좀 뒤죽박죽으로 쓰곤 한다. 현대사 쓰다가 고대사를 읽기도 하고, 근대사 읽다가 중세사에 꽂히는 좀 이상한 리뷰어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내 역사리뷰는 시대 흐름을 따르지 않고 '의식의 흐름'을 따르려고 한다. 뭐, 쉽게 말하면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리뷰하겠단 말이다. 그러다 시리즈를 거의 다 읽었을 때즈음에는 '강준만의 <역사 산책>'의 내용을 다 훑어보았으므로 다시금 차분히 '시대 흐름'대로 리뷰를 정리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 양반이 워낙 책을 많이 펴내신 관계로 다 읽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중간중간에 '또 다른 책 리뷰'도 쌓이고 밀리다보면 어쩔 수가 없어서 그런다. 모쪼록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을 애독(?)해주시는 극소수의 독자분들께 너른 양해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 만큼은 약속 드리겠다. 내 리뷰는 언젠간 반드시 쓴다는 것을 말이다. 단지 에둘러 돌아다니다가 좀 늦을 뿐..쿨럭쿨럭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의 관전 포인트 : 60년대편 1권과 2권에 걸쳐서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서 자세히 풀어놓고 있다. 애초에 3권 분량으로 1960년부터 1969년까지 풀어놓았는데, 그 가운데 '쿠데타'에 관한 부분만 두 권에 걸쳐 거의 '한 권 분량'으로 다뤘다. 이것만 봐도 '박정희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5·16 군사쿠데타'이고, 이를 제대로 정립하지 않고서 '박정희 정부'를 논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5·16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
내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때만 해도 '5·16 혁명'이라 배웠다. 교실의 칠판 위에는 '태극기'와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의 사진이 걸려 있던 때였다. 그 어릴 적에 기억나는 것이라곤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내용 딸랑 하나 뿐이었다. 우리 나라의 민주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4·19 혁명과 5·16 혁명이 있는데, 둘 중에 더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5·16 혁명이라고 말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위인이라고 말이다. 그리곤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앵무새처럼 외운 듯 한자 한자 힘주어 말씀하시곤 다른 말씀에는 말을 아끼신 듯 더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가장 중요한 위인이라고 말씀하시고서는 그에 대한 '근거'나 '이유'를 말씀하셔야 하는데 말이다. 지금에서야 당시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지만 '그 이상의 거짓말'을 늘어놓지는 못하신 듯 싶었다. 하긴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이 80년대였다. 누가 '진실'을 감히 말할 수 있었겠는가. 비록 79년에 박정희가 서거하였고, 80년에 전두환이 탈취하듯 집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엄혹한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그저 쉬쉬할 뿐이었으리라.
그래도 난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수업중에는 늘 박정희와 전두환이 훌륭하신 분이라고 해놓고는 그 뒤에 당연히 따라 붙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시는 선생님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다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해서 썩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조금 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으셨던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선 뒤였다. 물론 87년 6월 혁명이 있고난 뒤였다. 그나마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니 조금 더 말씀하실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수업중에 사회시간이나 국사시간에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대한 부분은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학년말 고사를 볼 때에는 늘 시간에 쫓기듯 '일제강점기'를 휘뚜루마뚜루 넘기시더니 45년에 해방되었고, 50년에 전쟁이 일어나 우리 나라가 참 힘들게 살았다는 말씀으로 대부분 수업을 마치셨다. 이승만 정부나 박정희 정부에 대한 평가는 초중고를 통틀어서 단 한 번도 수업 받은 바가 없을 정도였다.
당시 어른들도 이승만은 나쁜놈이라고 말하고, 박정희는 대단한 분이라고 말씀하시곤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분위기였다. 왜 그랬을까?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을 읽으며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퍽 힘든 일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당시의 세태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우리 속담이 있었는데, 어린아이들도 다들 알고 있던 속담이었다. 바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 말이다. '항상 말조심해야 한다'는 평범한 뜻이지만, 그 속에 뼈 아픈 진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바로 밤낮으로 '독재정부'가 철통 같이 국민들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시대에는 '진실과 거짓'을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독재정부의 권력' 찬동하면 바른말이 되었고, 반동하거나 부정하기라도 하면 나쁜말이 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병신이 되어 나온다는 끔찍한 진실이 감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박정희 정부 때 만들어진 '중앙정보부(일명 '중정')'는 절대로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었고, 실제로도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러면 처음에 물었던 질문에 유추가 가능해진다. 5·16이 '혁명'이었다면 박정희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무도한 '군사쿠데타'였고, 권력을 차지해서 '부정부패'를 일삼았기 때문에 그 추악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 '중정' 따위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다. 박정희 군사독재를 국민들이 찬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박정희를 열렬히 환호했고, 권력을 잡도록 용인했으며, 그가 장기집권을 할 때에도 좋다고 응원했다. 그건 박정희를 '국정혼란을 막아낸 영웅이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박정희 정부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전 정부였던 '이승만 정부'가 너무나도 무능했던 덕을 크게 보았다. 우리 국민들은 그 모진 세월을 다 보내고 4·19 혁명으로 겨우 빛을 되찾나 싶었는데, 이후에 들어선 '장면 내각'도 그닥 신통치 못했기 때문이다. 나라꼴은 이승만과 자유당의 부정부패로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이를 해결하고 문제를 타개할 '장면 내각'은 혼란을 멈추기는커녕 더욱 부채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실제로 '장면 내각'이 들어선 뒤에 전국적인 시위는 점차 하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애초에 민주주의라는 것이 시끌벅적한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여야의 논쟁과 다툼은 오직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서 벌일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더 좋은 정책, 더 나은 행정으로, 어려워진 나라꼴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여념이 없었다고 평가한다면 '장면 내각'은 좋은 점수를 줄 수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왜냐면 이승만과 자유당이 너무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자유당이 망쳐놓은 국정을 다시 잘 세우고 있던 '장면 내각'이 왜이리 욕을 먹었던 것일까? 그건 바로 '부정부패'로 재물을 쌓아올린 비리 정치인과 이를 감싸주는 대가로 부정하고 부패한 정치인을 옹호하던 '언론의 무능함' 때문이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있어서는 안 되는 '두 존재'가 서로 합작을 하고서 '장면 내각'을 망치는데 아주 열일을 하고 있던 것이다. 이러니 국민들은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데, 정치인과 언론인이 협작을 해서 국민들이 열불이 날 만한 기사들만 쏟아내고, 조금이라도 올바르고 정직하게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오명을 뒤집어 씌워서 바른 정치를 하지 못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장면 내각의 리더십 부재'였다. 앞선 리뷰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장면은 '정치인'이 되기에 너무 청렴결백하고 순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천주교 신부님으로 딱 어울릴 사람이었지, 때론 욕을 먹더라도 정치 생명을 걸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전혀 없는 순딩순딩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전국이 시위로 들썩이고 부패한 정치인과 언론인이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묵살한 채 '협잡'을 하고 있을 때에도 묵묵하게 자기 '개인적인 삶'을 청빈하게 맑고 깨끗하게 지킬 뿐이었다고 한다. 정치는 더러운 곳에 두 발을 담고서라도 화려한 꽃을 피워내는 '연꽃'처럼 해내야 하는데, 장면은 더러운 곳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혼자만 맑고 깨끗한 채 했던 것이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이런 정치인이 정말 좋았겠지만, 6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은 '노땡큐'였던 정치인이었다. 이게 4·19 혁명 이후의 대한민국 현주소였다.
이제 전국민은 '장면 내각의 무능함'을 실감하게 된다. 독야청청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굶주린 배를 쥐어 뜯는 국민들의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말이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바로 '박정희'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처럼 '혁명군'은 무능한 장면 내각을 '접수'하고서, 나라를 '병영국가'로 탈바꿈 하려 했다. 모든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고 여차하면 '전쟁'도 불사할 강한 정신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내겠다는 '포장'을 하고서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일시적인 정치혼란이 정리되면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하겠다고 장면 총리와 약속하기까지 했다. 그 약속을 헌 신짝처럼 내던지는 데에 1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들은 '박정희'에 열광했다. 모든 문제를 군사적으로 신속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감탄을 할 정도였단다. 벌 줄 놈 벌주고 혼낼 놈 혼내주는 모습을 연출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차츰차츰 '군사기지'처럼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학생들에겐 '혁명공약'을 외우도록 시켰고, 그런 공약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국민들을 솎아내기 위한 '감시'도 활발히 벌였다. 순진무구한 학생들은 이웃들 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까지도 '혁명공약'대로 하지 않았다며 밀고(!)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박정희 정부에 반동하고 부정하는 것을 넘어 '몸에 좋은 쓴말'과도 같은 충언까지 발본색원하듯 잡아들여 '중정'에서 처리했다.
나가는 글 : 물론, 박정희 정부의 공과를 이와 같은 '일부분'만 놓고서 평가를 내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다 알고 있는 사실들 아닌가? 그 당시 국민들은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기에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겠지만, 오늘날에는 '알 것'은 다 알 수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 사람들이 '무능한 이전 정부에 대한 반감'에 의해 "박정희 정부가 차라리 낫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박정희 정부'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한 때는 '세뇌' 당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고도 '윤어게인'을 외치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다. 그건 바로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심리 때문이었다. 흔히 '사이비 종교'나 '음모론'에 빠진 사람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런 비논리적인 일이 왜 벌어지는가 분석해보면 '그게 마음 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게 왜 마음 편한지에도 '이유'가 없다. 그냥 편한 것이다. 매우 비논리적이다. 하지만 비논리적인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다가가면 그냥 '불편'할 뿐이다. 굳이 입 아프게 대꾸를 할 필요도 없는 셈이고, 그게 가장 좋은 '상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런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다수일 때다. 저들이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릴 때를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저들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행하는 짓을 보라. 그들의 궤변은 또한 어땠던가. 저들은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직 준엄한 법심판만이 해결책일 것이다. 이걸 지금의 대한민국이 해내야 한다는, 아니 반드시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만 더 굳어진다. 지금은 이 책을 이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리뷰하고 있지만, 조만간 총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리뷰를 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