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삼국지 - 최태성의 삼국지 고전 특강 ㅣ 최소한의 교양 수업
최태성 지음, 이성원 감수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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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삼국지 : 최태성의 삼국지 고전 특강> 최태성 / 프런트페이지 (2025)

[My Review MMCCCLX / 프런트페이지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아홉 번째 리뷰는 '소설 삼국지'를 읽는 가장 쉬운 공식을 일러주는 <최소한의 삼국지>다. 최태성의 한국사 특강을 듣고 본 수강생만 무려 7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일타 강사'라고 소개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런 최태성이 이번에는 '소설 삼국지'를 꺼내 들었다. 일단 최태성이라는 '네임벨류'만으로도 기대치가 샘 솟는다. 허나 너무 쉬운 강의가 독이 되었을까나? 대한민국에 '삼국지 매니아'가 너무 많은 탓에, 이 책이 고수들에게는 그닥 와닿지 않는, 너무 '기초'적인 설명이라 아쉬움도 컸다. 허나 제목에도 적혀 있다. <최소한의 삼국지>라고 말이다. 그럼 '소설 삼국지'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공식을 살펴보러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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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삼국지> 관점 포인트 :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적 기초 교양은 <삼국지>로 통한다. 그만큼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가 조선 중기 16세기에 소개되었다고 하니 무려 400여 년간 인기몰이를 해온 것이다. 우리 민중들이 즐겨 듣던 '판소리 열두 마당'에도 '적벽가'가 널리 불렸을 정도로 그 인기는 꾸준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다시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대신 '소설'보다는 '유튜브' 등에 짧은 쇼츠를 통해서 다채로운 '삼국지 강의'가 선보이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쇼츠를 비롯한 동영상 강의만 보다보면 '깊이'가 부족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10권짜리 장편대하소설을 읽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고 말이다. 그래서 출판계가 꺼내든 것이 다름 아닌 '한 권짜리' <삼국지>다. 이 책 <최소한의 삼국지>도 그 일환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무려 '최태성'이다. 이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무한히 높아질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 부문 '일타 강사'로 소문난 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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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책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소설 삼국지'에 빠삭한 독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본 공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삼국지 3대 대전'으로 초집중 요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이 그것이다. 왜 이 세 차례의 전쟁이 '소설 삼국지'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공식일까? 물론 엄청 큰 규모로 벌어진 전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소설 삼국지'는 그냥 허구적인 내용으로 창작한 소설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이해가 쉬운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중점적으로 봐야할 대목이 무엇일까? 바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해야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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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 좀 해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을 아무리 외워봐야 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관 관계'부터 사건의 앞과 뒤에 벌어진 '인과 관계'와 '결말 연계'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역사공부가 즐거워지고 성적도 쑥쑥 오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일타 강사'들은 그저 달달 외우는 공식만 알려주지 않는다. 그 공식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주면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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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최소한의 삼국지>를 다시 보자. 왜 '관도대전'이 중요할까? 단순히 조조와 원소가 싸워서 조조가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7만 조조군 vs 70만 원소군'이라고 보면 조금 이해가 쉬워진다. 그리고 조조가 '어떻게' 10배 차이를 극복하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는지 이해하면 '소설 삼국지' 초반에 벌어지는 여러 군웅들의 치열한 싸움이 이해되고, 관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조조가 어떤 결과와 이득을 챙겼는지 분석 가능하면 '인문학적 교양'이 쌓인 것이고, 일상 대화에서도 '관도대전'과 비슷한 국제뉴스가 나오면 국제정세의 판도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진짜 교양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애초에 조조가 원소를 승리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냐면 객관적인 전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수 vs 다수'의 싸움에서 소수가 대승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관도대전'은 그 유명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승리의 비결이 같기 때문이다. 작은 소년이 거인을 상대로 승리한 비결은 '힘의 대결'이 아니라 '지략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슬링어(돌팔매)'라는 무기로 거인을 제압했던 것이다. 단순히 돌을 잘 던졌다가 아니라 '적재적소'에 급소를 찌르고 아군의 빈틈을 솔직히 '인정'하고 적군의 빈틈을 전력을 다해 몰아부친 결과 70만이었던 원소군은 고작 7만에 불과한 조조군에 완패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군은 원소군의 숨통을 조여 완전히 전멸시키고 '하북의 진정한 주인'으로 일어섰다. 그 결과 조조는 '중원'의 참주인이 되었고, 명실상부한 황제보다 더 황제 같은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관도대전의 승자'가 된 조조는 더는 자신의 암살시도 같은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황제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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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적벽대전'을 살펴보자. 황제처럼 군림하게 된 조조가 남쪽을 정벌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래서 강동의 손권을 치기 위해 먼저 '강동의 길목'에 해당하는 형주땅을 차지하려 들었다. 그런데 마침맞게 그곳에 '유비'가 있었다. 그래서 첫 시작을 유비가 지키고 있는 '신야'부터 조지고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웬걸 유비가 달라졌다. 조인을 상대로 가뿐히 승리해버린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유비에게 '책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서서' 말이다. 그간 유비에게는 변변한 책사가 없어서 서주나 여남 등 '거점'이 생겨도 지켜내지 못해 지리멸렬 했었는데, 서서라는 책사가 생기자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유비에게 책사를 빼앗으려 했다. 그렇게 서서를 잃은 유비는 망연자실 했지만, 삼고초려를 통해서 '제갈량'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천하삼분지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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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하삼분지계'가 '적벽대전'의 앞과 뒤를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촉오 삼국이 형성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적벽대전'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적벽대전 직전과 직후를 살펴보면, 유비에겐 여전히 '거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대전 이후에 '형주땅'을 차지하고, 나아가 '익주땅'까지 꿀꺽하여 촉한의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그게 바로 '천하삼분지계'의 묘미였고, '제갈량의 대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하나의 묘미는 '적벽대전'에서 실제로 전투를 벌인 것은 '100만 조조군 vs 10만 손권군'이란 사실이다. 유비는 직접적인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고서 '유기의 영지'였던 강하에 틀어박혀 있다가 조조군이 적벽에서 대패를 하고 퇴각하는 길목인 '화용도'에서 조조군을 뒤쫓아 전리품을 챙겨 이득을 보았던 것이다. 그 뒤에 찾아온 주유를 속여서 '남군성'을 차지하고, 강릉과 양양까지 유비의 영지로 차지한 뒤에 영릉, 장사, 계양, 무릉까지 확장시켜 '형주땅'의 주인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이렇게 싸움은 조조와 손권이 하고, 이득은 유비가 차지하는 것이 '적벽대전'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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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릉대전'은 왜 일어났을까? 적벽대전에서 유비가 모든 것을 날로 먹은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손유동맹'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관우의 실책'이 한 몫했고, 포로로 붙잡힌 관우를 손권이 '죽임'으로써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그래서 조조와 맞서기 위해서 동맹을 맺은 유비와 손권은 자중지란을 일으켰고, 그대로 '이릉대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1년이 지나도록 싸움은 장기전으로 들어갔는데, 초반에는 유비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유비의 분노가 컸던 덕분이고 손권쪽에 주유와 여몽 사망 이후에 변변한 인재가 없었던 탓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다 '육손'이란 약관의 총대장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수세에 몰리던 손권군이 패배하지 않고 '수성'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활발했던 초반의 승리와 달리 전투도 없이 서로 대치하는 상태로 오랜 시일이 지나자 먼저 지친 쪽은 대군을 거느린 유비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순간의 실책으로 유비군은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숲속으로 '영채'를 옮기고 일자로 길다란 '장사진'을 펼치자 육손은 드디어 때가 왔다며 '화공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장사진을 펼친 유비군의 측면을 노려 '소수 병력'으로 '대병력'을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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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최소한의 삼국지>는 이렇게 '3대 대전'의 맥락을 한 눈에 파악하게 해줌으로써 방대하고 길고 긴 '소설 삼국지'를 독파하는데 든든한 '지렛대'가 될 수 있는 만능열쇠를 쥐어 준다. 그러면서 최태성은 하나 더 던져준다. '소설 삼국지'를 읽는 키워드로 '절제'를 꼽은 것이다. 한마디로 '참고 견디는 자가 끝내 승리를 거둔다'는 진리를 풀어준 것이다. 3대 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군을 몰고온 관도대전의 원소군, 적벽대전의 조조군, 이릉대전의 유비군은 결국 패배했다. 그리고 반대로 소수였던 조조군, 손권군(주유), 손권군(육손)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만약 소수의 열세인데도 참지 못하고 맞붙었다면 결국 패배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잘 참고, 잘 버티고, 잘 극복해준 덕분에 끝끝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고, 이후에 벌어진 '판도'에서 유리한 이점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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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를 읽다 보면, 3대 대전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비도 어려움과 고난을 잘 버티고 극복한 결과 '촉한의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지 않은가. 그래서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가 생기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한 눈에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을 논하지 말라"다. 이는 단순한 횟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포인트'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소설 삼국지'를 열 번 읽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줄거리만 달달 외울 뿐, 사건와 인물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읽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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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소설 삼국지'를 몰라도 상관이 없다. 보통 10권의 분량이고, 한 권에 300쪽이면 무려 3000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하루에 한 권씩 읽어도 열흘이나 걸리고, 사흘에 한 권씩 읽어도 한 달 내내 읽어야 한다. 뭐, 재미가 있으니 그렇게 읽어내는 분들도 많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걸 세 번이나 읽으라면 석 달 내내 '소설 삼국지'만 들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충 100일 동안 읽게 될텐데 할 수 있겠는가? 웅녀도 삼칠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이 되었으니 굳은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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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무려 2000년 전에 벌어진 이야기를 왜 현재의 우리가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답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소설 삼국지'에 엄청 많은 지혜가 담겨 있다하더라도 해묵은 정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소설 삼국지'는 여성을 폄하하고 남성들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등 오늘날의 올바른 젠더 가치관에도 어긋나는 불편한(?) 내용이 가득하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수천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하는 일이라고는 '전쟁'과 '사기' 등 남의 등을 치는 등 '속임수'가 판을 치고, 서로 뺏고 뺏기는 '도덕불감증'이 여실한 내용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부정적인 내용이 가득한 책인데도 '필독서'라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고 또 읽어야 할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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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맞는 말이다. '소설 삼국지'는 요즘의 정서와 가치관이 추구하는 '올바름'과는 거리가 먼 축에 끼인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는다. 부정적인 내용일망정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의 국제정세를 보면 정말이지 '혼돈, 그 자체'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팍스 아메리카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마치 후한말 황제가 무능해서 환관들이 국정농단을 벌여 세상이 문란해지고 백성들의 삶이 고달퍼지자 여기저기 난이 일어나고,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해서 천하가 뒤바뀌는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의 실수'는 계속 똑같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힘에 의한 평화는 힘이 부재하는 순간 깨어지기 마련이다. 황제의 권한이 강하면 국가는 안정되겠지만 반대가 되면 국가는 어지러워지기 마련이다. 오늘날에도 미국이 강했기에 평화가 지속될 수 있었는데, 그 반대가 되니 평화가 깨어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무능한 지도자'가 똥뽈을 차는 순간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과연 이런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영웅의 등장'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영웅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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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설 삼국지'가 예언서는 아니기에 일대일 대응하듯 매칭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속고 속이는 계책과 뺏고 뺏기는 전쟁이 한가득 펼쳐지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지혜와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필독서'로서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방대한 소설이라 읽기를 망설이고 있다면, 이 책 <최소한의 삼국지>가 대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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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의 아이들 3 - ‘온새미로의 서’를 찾아서 ㅣ 이슬라의 아이들 3
양수련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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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신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이슬라의 아이들 3 : 온새미로의 서를 찾아서> 양수련 / 책이라는신화 (2026)

[My Review MMCCCLIX / 책이라는신화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여덟 번째 리뷰는 시를 빼앗아 금지시켜버린 곳에 다시 시를 찾기 위해서 '시인 중의 시인'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 펼쳐지는 <이슬라의 아이들 3>이다. 지각변동이 일어나 온세상이 모두 바다에 집어삼켜져 버린 후 '대륙'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섬'만 남아버린 시대의 이야기다. 그 섬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최적의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감성보다 이성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었고 '이슬라'라는 섬을 다스리는 카이는 섬에서 '시'를 금지시켜 버렸다. 하지만 인간에게 감성을 빼앗아버릴 수는 없는 법. 아무리 이성을 추구하더라도 '자유로운 영혼'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감성의 소유자가 바로 바다를 무대로 살아가는 오션맨 소녀 '야니'다. 야니는 이슬라에 들러 '아루'를 만나 아이들에게 시를 빼앗긴 시를 가르쳐 주었다. 그래도 금지하니 '법정'에까지 서서 시를 되찾으려 했다. 그러다 시를 금지했던 카이가 돌연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슬라를 다스려온 위대한 통치자 카이였는데 말이다. 이슬라 사람들이라면 단 하루라도 카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나 카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카이가 되기 위해서는 '카이의 혈통'을 이어받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슬라 주민들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카이가 될 사람을 물색하던 중에 오래전 이슬라를 떠났던 '12대 카이의 누나' 아모를 찾아나섰다. 힘들게 찾아 모셔왔지만 아모는 카이가 될 생각이 없다고 하는데, 그럼 누가 카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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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의 아이들 3> 관점 포인트 : 다행히 아모가 낳은 딸이 있단다. 어릴 적에 버려두고 떠난 비정한 엄마이긴 하지만, 이슬라 주민들이 그토록 '카이의 혈통'을 찾아헤매는 것이 맞다면 그 아이를 찾는 것이 시급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아모가 낳은 딸이 사실은 '오션맨 야니'였단다. 지난날 아슬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바로 그 당돌한 소녀 말이다. 그렇게 얼떨결에 야니는 '13대 카이'가 되었고, 이슬라를 다스리는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날 버리고 떠난 엄마가 '아모'라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울 일인데, 이제 고작 18살이 된 어린 나보고 '카이'가 되어 이슬라를 통치하라고??? 충격에 충격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충격에 휩싸여 멍 때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슬라를 통치해야 할 막중한 임무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막중한 임무를 어떻게 하라는 거냔 말이다. 누가 좀 가르쳐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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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건 그거고. 야니에게 닥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먼저 카이의 막중한 임무는 '최고위 주무관'에게 일단 맡기고 차근차근 하나씩 배워나가면 될 일이고, 다음으로는 평생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엄마가 다름 아닌 '아모'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그런데 친엄마인 아모가 나를 버리고 떠난 까닭이 모든 이들의 스승인 '가온'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내 엄마가 평생을 '가온의 행적'을 쫓아다녔단 말이야? 도대체 가온이 누군데? 자기가 낳은 딸조차 팽개치고 떠날 만큼 소중한 사람이냐고? 문득 야니는 '가온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평생을 그리워한 엄마가 평생을 찾아 헤맨 스승이라면 대단한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가온은 '시 중의 시, 온새미로의 서'를 썼고, 딱 그 한 편의 시 때문에 '시인 중의 시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단다. 어떻게 시 한 편으로 그런 명예를 얻을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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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야니는 '가온'을 찾아 떠나는 '가온 원정대'를 꾸리기로 결심한다. 섬 중의 섬 이슬라를 통치하는 절대자 카이의 명령으로 '가온'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을 내려도 될 일이지만, 왠지 가온에게는 그러면 안 될 일 같다. 더구나 가온은 현재 살아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조차 불가능항 상태다. 가온의 추정 나이는 170~180살 정도다. 마지막으로 가온을 실제 목격했다는 사람이 40~50년 전이고, 그 당시에 나이가 백 살이 훌쩍 넘어 보였다고 했으니 지금 추정할 수 있는 나이가 그 정도인 것이다. 가온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죽고도 남을 고령의 나이임에 틀림 없지만, 가온과 같은 '현자'들은 다른 평범한 사람의 수명보다 훨씬 길다고 한다. 현자들 가운데에는 300살을 넘게 산 사람도 있다고 하니 실낱 같은 희망이긴 하지만 충분히 찾아볼 가치는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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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카이가 이슬라 섬을 한 시도 떠날 수 없는 막중한 자리라는 것이다. 더구나 가온의 행적은 알 수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저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방법밖에 없는 셈이다. 어딘지도 모르고 언제까지일지도 모를 '긴 여정'을 떠날 것이 분명한데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카이'가 원정대의 선장이 되어 훌쩍 떠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반대하는 와중에 아모가 '조건'이 붙였다. 가온 원정대를 꾸리는 것을 허락하되 딱 100일 간만 원정하기로 말이다. 그 이상이 되면 이슬라 주민들이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불안하다면 애초에 못 가게 막으면 좋으련만 왜 허락했던 것일까? 그건 아모의 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평생을 찾아다녀도 찾지 못했던 '가온'을 딸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못다한 꿈을 딸이 대신 이루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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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가온원정대는 출항준비를 했고, 대원들도 반강제(?)적으로 모였다. 과연 이들만으로 이루어질지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이지만 말이다. 이제 곧 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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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단 한 척의 배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선택과 방황을 눈여겨 볼만 한 청소년책이다. 하는 일마다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하를 것이 더 많지만, 그 속에서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을 찾는 지혜를 배우면서 말이다. 이것을 흔히 '성장'이라고 부른다. 요즘 부모들은 소중한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대신해주고 힘들지 않도록 대비해주는 부모들이 많다. 한때는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을 '마마보이' 또는 '마마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헬리콥터맘'이라 부르면서 부모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온종일 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아이의 스케줄을 대신 챙겨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아이가 겪는 온갖 문제를 아이 스스로가 아닌 '부모의 능력'인냥 주변에 과시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심지어 군대에 간 아들을 위해서 부모가 '중대장 면담'을 신청하고 군부대안까지 영향력을 행사해서 군 기강을 흐트러뜨리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고 한다. 이건 제대로 된 '성장'이라고 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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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 지혜를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물론 실패보다는 성공을 하는 것이 더 성취감이 높고 뿌듯함도 많이 느낄 것이다. 허나 성공만 해서는 '온전한 지혜'를 익힐 수 없다. 왜냐면 그건 '반쪽짜리 지혜'이기 때문이다. 시험 문제를 풀고 난 뒤에 '맞춘 문제'와 '틀린 문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기억에 남던가? 대개 아쉽게 틀린 문제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맞춘 문제는 기억도 나지 않고 말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맞춘 문제는 '성공한 경험'이고, 틀린 문제는 '실패한 경험'이다. 만약 인생을 올백으로 살아왔다면 그건 헛된 삶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아쉽게 틀린 문제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 '실패한 경험' 덕분에 '성공한 경험'까지 더불어 기억에 되새길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왜냐면 실패한 경험을 극복하는 과정이 아이들을 한층 더 '성장'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는 정반대로 실수투성이에 패배한 경험만 가득한 아이에게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한 경험'을 갖게 해주면 그 기쁨과 환희로 인해서 삶의 희망을 갖게 되고 더욱 정진하는 '성숙'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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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부모들은 아이들을 소중히 키우고 싶다면 '성공과 실패'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두루두루 경험할 수 있게 '마당'을 펼쳐서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마당이 너무 넓어서 '모험'까지 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생명을 위협받는 '위험'까지 감수하라는 말은 아니다. 소중한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주되 아이가 맘껏 뛰어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큰 울타리를 제공해야 하라는 것이다. 결코 '방치'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아니 모험을 할 정도로 큰 마당을 마련하고 큰 울타리를 쳐놓고서 어떻게 '방치'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왜냐면 '관심'을 주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돌아와 아빠나 엄마 앞에서 쫑알쫑알 이야기할 때 바쁘다고 밀쳐내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렇다고 관심이 지나쳐서 '간섭'이 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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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들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경험'을 다 할 수도, 다 하기에도 너무 벅차기에 독서교육이라는 '간접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어떤 '직접 경험'보다 훨씬 더 좋은 경험을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간접 경험'에 한계는 없다. 또한 위험할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안전한 모험이기도 하다. 이처럼 훌륭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독서를 미루는 어리석은 짓을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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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책은 훌륭한 '독서 경험'을 쌓게 해줄 좋은 책인가? 딱 한 가지를 더 고려해봐야 한다. 남들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아이가 싫다고 하면 좋은 책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나만의 책'이 최고로 좋은 책이다. 내 취향에 맞고, 내 수준에 맞는 '나만의 책'을 쌓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모쪼록 이 책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나만의 책'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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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5 - 동탁 토벌군
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전략 삼국지 5 : 동탁 토벌군>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

[My Review MMCCCLVIII / 대현출판사 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일곱 번째 리뷰는 드디어 반동탁연합의 기치가 오르고 18제후가 군대를 모아 낙양으로 향하는 <전략 삼국지 5>다. 삼국의 '만화 삼국지'를 모두 보았다. 중국의 천웨이동 삼국지는 '유명한 인물과 사건'을 한컷 한컷에 큼직하게 그려내면서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을 했다. 그래서 세세한 설명이나 묘사는 건너 뛰고 '장면 하나'에 초집중을 해서 전체 줄거리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면서 '인상적인 장면 한 컷'만을 살려내는 식으로 진행을 하는 것이 매우 역동적이면서 인상적이었다. 반면에 한국의 고우영 삼국지는 위트와 풍자가 해학적인 해석과 어우러지면서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게 해주었고, 또한 이희재 삼국지는 소설이 아닌 만화만이 줄 수 있는 압축과 빠른 전개를 통해서 '삼국지'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매력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일본의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는 지나치게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면서 특히 '폭력적 장면'을 부각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살해 장면이 너무 많다. '한국판'으로 출간되면서 모자이크 처리를 하여 처참한 장면을 가리는 수고를 하긴 했지만, 모자이크 처리를 했음에도 어렵지 않게 연상을 할 수 있어서 하나마나한 작업이지 않았나 의심마저 들었다. 차라리 참혹한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전쟁이 왜 나쁜 것인지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려는 노력(?)이라면 감추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뻔 했을 정도다. 더구나 잔혹하게 살해 당하는 것은 언제나 '약자'뿐이었다. 나쁜 놈들을 그리 죽였다면 그러려니 싶기라도 했을 텐데, 힘 센 장수들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무기에 동강뎅강 잘려나가는 것은 힘 없는 '병졸'이나 무고한 '백성'들이었고, 더 연약한 '여자'들은 전리품 취급을 하며 이놈 저놈이 차지하려 욕심내는 대상으로 삼았다. 만화라는 '한정된 분량'을 왜 이런 묘사들로 가득 채우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것들만 좀 '삭제'하거나 '생략'하거나 '검열'이라도 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그러면 아주 얇고 다이제스트한 단행본이 되었으려나? 암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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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5> 관점 포인트 : 가까스로 동탁의 수배를 피해 고향에 도착한 조조는 그 길로 '반동탁'의 기치를 내걸고 전국 각지의 제후들에게 '격문'을 보낸다. 이에 화답한 의로운 군대들이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하더니 모두 18개 방면에서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이 가운데에는 유관장 삼형제도 있었는데, 공손찬 휘하의 장수로 합류하게 된다. 이렇게 모인 군사들이 낙양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목인 '사수관'에 다다르자 동탁군도 장수를 보내서 막아내는데 다름 아닌 '화웅'이었다. 이에 반동탁연합군에서는 '손견'이 선봉으로 나서 사수관 함락을 위해 덤벼드는데 초반에는 승기를 잡았으나 병참을 맡았던 '원술'이 제때 식량보급을 해주지 않자 굶주리게 되고 끝내 퇴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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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적장 화웅이 기세등등하게 연합군을 도발하게 되는데, 몇몇 장수가 나가보았으나 화웅을 견뎌내지 못하고 다치거나 죽임을 당했다. 이에 관우가 나서보겠다고 말하자 원소는 반가워 하지만, 이내 '듣보잡'이었던지라 어디의 누구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관우는 자신을 "유비 휘하의 동생"이라고 소개한다. 그러자 원소는 "유비는 누구냐?"고 되묻자, 공손찬이 나서며 자신과 같이 왔으나 관직은 없다고 덧붙인다. 그러자 원소는 격분하며 관직도 없는 졸병 주제에 화웅과 맞서서 싸운다면 적들이 우리 연합군을 얼마나 하찮게 보겠냐면서 당장 물러서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조조가 만류하며 자신이 있으니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니겠냐며 총대장 원소를 달래고, 관우에게는 술 한 잔을 주며 나가서 싸워라고 권한다. 관우는 그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적장 화웅에 맞서 싸우러 나간다. 이때 조조의 속마음은 '졸병'이 나가서 볼품없이 죽어도 그만이고, 반대로 이기고 돌아온다면 적들은 졸병에게 당했으니 '연합군의 기세'를 무서워할 것이라며 손해볼 것은 없다고 속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 와중에도 셈을 하고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조조였다.

​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관우는 적장 화웅의 목을 베어 돌아온다. 이에 동생 장비가 만세를 외치며 총공격을 외치지만 연합군은 아무도 장비의 외침에 화답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원소 등 다른 장수들이 그런 외침은 '졸병'이 아닌 자신들이 선창을 해야 한다며 장비를 면박줄 뿐이었다. 그러자 유비가 동생들이 예를 몰랐다며 뒤로 물러났고, 그제야 연합군은 기세 등등하게 사수관을 통과하고 호뢰관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호뢰관을 지키고 있는 적장은 여포였다. 여포의 위용 앞에 연합군은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갈 뿐이었고, 연합군은 또다시 발이 묶여 한발짝도 나아가질 못한다. 이를 보다 못한 장비가 나서서 여포와 맞서 싸우니 여포도 장비의 무력을 꺾지 못하고, 여기에 관우와 유비까지 합세해서 싸움이 붙으니 여포는 불리함을 깨닫고 도망치고 만다. 이렇게 유관장 삼형제가 큰 활약을 보이며 기세를 올리지만, 연합군은 저들이 잘나서 여포를 혼쭐낸 것처럼 자화자찬에 빠져 유관장 삼형제를 홀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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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동탁은 사수관과 호뢰관에서 연합군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자 '천도'를 계획한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낙양을 버리고 동탁의 근거지와 가까운 장안으로 천자를 잡아가려는 것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이는 모조리 죽여버리고 재산을 빼앗았다. 동탁이 함부로 그러니 아랫사람들은 어찌했겠는가? 낙양은 하루아침에 아비규환에 빠지게 되고 살육과 약탈이 벌어지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동탁은 천도를 갈 준비를 마치자 낙양에 남아 있는 것들이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고자 모조리 불태우라고 지시한다.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 아깝긴 하지만,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은 더 아깝기 때문이다. 또한 몰래 숨어서 낙양에 남으려 했던 사람들을 깡그리 불태워 죽이려는 심보에서 벌인 짓이기도 하다. 물론 궁극적인 목적은 붙잡아가는 천자에게 돌아올 명분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동탁은 정녕 악당 중에 악당이었던 것이다. 그런 동탁을 '따르고 복종하는 이들'도 쳐죽일 놈이긴 마찬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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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낙양에 도착한 연합군은 불타는 낙양을 바라보며 망연자실에 빠진다. 반동탁의 기치를 세우고 동탁을 타도하고자 애써 힘을 모았는데, 얻은 것도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조는 서둘러서 동탁의 뒤를 쫓자고 말한다. 서둘러 떠나는 동탁군이니만큼 방비가 허술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총대장 원소를 비롯해서 다른 제후들은 머뭇거린다. 그러자 조조는 혼자서 동탁의 뒤를 쫓기로 한다. 그러나 동탁은 이미 추격을 대비하고 있었고, 여포와 서영 등에게 호되게 당하고 겨우 목숨만 건져 달아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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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약육강식에 철저한 일본의 작품이라 그런지 '약자'에게 가혹한 시련을 감당케 하는 내용이 너무 많다. 70년대 '순정만화'도 이런 내용이 참 많았다. '고아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모진 시련과 고난을 다 극복한 뒤에 훌륭하게 성장한 뒤에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스토리가 정말 인기 많았던 시절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정말 모질게 구는 '악역들'은 너무 무서울 정도였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고생을 다 이겨내고 홀로 꿋꿋하게 잘 사는 것으로 끝마쳐도 충분할텐데, 마지막 마무리는 늘상 '백마 탄 왕자'가 등장해서 멋지게 성장한 여성을 가로채(?)서 철저한 가부장제의 보잘 것 없는 '아내'로 족쇄(!)를 채우는 스토리도 많았다. 마치 그런 처절한 운명이 '여자의 숙명'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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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유관장 삼형제가 바로 그런 '약자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유비 주위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못된 역할을 맡은 '악역'처럼 등장한다. 이걸 '삼국지의 재해석'이라고 해야 할까? 어릴 적에 <캔디 캔디>를 정말 재미나게 읽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 추억에 푹 빠져서 어렵게 다시 구해서 읽어보니 옛 추억이 와장창 깨져버린 경험이 있다. 만약 내가 어렸을 적에 이 책 <전략 삼국지>를 완독했던 경험이 있었더라면 '최고의 만화'였다고 한껏 추켜세웠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 이 책을 읽으니 정말 아쉬운 대목이 너무 많아서 당혹스러울 정도다.

​

그렇다고 이 책이 '최악'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름 '명작'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면 수많은 독자들이 지금까지도 '최고의 만화 삼국지'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꼼꼼히 다시 읽어보니 적어도 '최고'라는 수식어는 빼야겠다. 더구나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권장'할 책이라는 소개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보기에도 민망하고 지나친 느낌을 확 받는데, 어린 독자들에게 이런 걸 권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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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4 - 난세의 간웅
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전략 삼국지 4 : 난세의 간웅>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

[My Review MMCCCLVII / 대현출판사 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여섯 번째 리뷰는 치세의 충신 난세의 간웅이라 불리는 조조가 등장하는 <전략 삼국지 4>다. <삼국지>에서 조조의 첫 등장은 황건적을 토벌할 때 붉은 갑주를 두르고 화공작전을 펼쳐 적들을 일거에 소탕하는 멋진 장면으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조조와 유비의 첫 만남'이라는 것이 골자였기 때문에 휘리릭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는 '십상시의 난'이 벌어지기 전에 대장군 하진에게 원소와 함께 호위를 맡은 역할로 등장하는데, 이때도 하진과 원소가 주목을 끌뿐 조조는 조연과도 같은 역할이었다. 그래서 조조의 화려한 첫 등장은 다름 아닌 '동탁 암살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동탁 암살을 시도하기까지의 전체 과정이 담겨 있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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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4> 관점 포인트 : '십상시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동탁은 하진의 밀명을 받들어 환관들을 소탕하러 군사를 몰고 왔다. 하지만 낙양 도성안으로 곧장 들어오지 않고 근처에 진영을 세우고 대기할 뿐이었다. 그 사이에 하진이 장양 무리에게 속아 목이 베어지고 하진의 부하들이 이를 기회로 삼아 궁궐내 환관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십상시의 난'이 벌어진다. 이렇게 권력의 핵심이었던 '환관'과 '외척' 세력이 동시에 나가떨어지고, 어린 황제마저 환관 장양에게 궐밖으로 납치되어 '권력의 공백' 상태가 되자, 대기하고 있던 동탁이 그제사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연히 도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황제와 진류왕'을 호위(?)하고 들어오는 영예를 갖게 되자 낙양은 삽시간에 '동탁의 군대'에 장악되어 버리고 '동탁의 전횡'이 시작된다. 이에 비슷한 시기에 자기 군대를 끌고 도성으로 들어온 정원에 의해 동탁의 전횡(소제를 폐위하고 진류왕을 황제에 올리려는)에 반기를 들게 된다. 이에 동탁은 정원을 그 자리에서 참수하려 했지만, 정원의 뒤를 지키는 봉선 여포의 무시무시한 힘에 눌려 천하의 동탁도 꼼짝을 못하게 된다.

​

이에 동탁은 여포를 꼬드길 수 있는 방법을 꾀하자. 사위인 이숙이 나서 여포에게 '적토마'를 주고 꼬여 온다. 그냥 온 것도 아니고 양부였던 정원을 목 베어 죽이고 '개인의 영욕'을 위해서 배신한 것이었다. 이렇게 승냥이 같은 동탁에게 이리 같은 여포까지 합류하게 되니 더는 무서울 것이 없게 되고, 끝내 황제마저 갈아치우는 무시무시한 폭정을 시행한다. 이에 남아 있던 충신들은 동탁의 폭정에 하나같이 비분강개 하지만, 동탁의 군대가 무서워서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 이때 사도 왕윤이 나서서 동탁의 폭정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여러 인사들을 초빙해서 논의를 하지만, 역시나 쉽게 나서는 이가 없다. 그때 침묵을 깨고 나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조였다.

​

조조는 자신이 동탁의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에 늘 동탁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다면서, 왕윤에게 날카로운 보검 칠성보도를 빌려주시면 내가 기필코 동탁을 암살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이에 왕윤은 젊은 영웅이 등장했다며 칠성보도를 아까워하지 않고 건내준다. 조조는 그 길로 동탁에게 달려가 찔러 죽이려 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성공하지 못하고 동탁에게서 달아나 버린다. 그렇게 한순간에 '도망자' 신세가 된 조조는 동탁의 수배령에 딱 걸려서 체포가 되고 감옥에 갇혀 죽기만을 기다렸는데, 그때 조조를 구해준 이가 나타났는데, 바로 '진궁'이었다. 진궁은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려 하고 나아가 한 황실을 되살릴 충의지사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현령이라는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기꺼이 조조와 함께 행동하길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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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함께 도망을 가는 도중 '여백사'라는 분의 도움을 받아 지친 심신을 풀 수 있었다. 여백사는 조조의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친구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조조와 진궁은 지친 몸을 방안에 뉘이고 삽시간에 잠이 들고 말았는데, 잠결에 칼을 갈면서 하인들이 나누는 말을 듣게 된다. "어떻게 죽일까?", "묶어서 죽이자" 이 말을 들은 조조는 모골이 송연해졌고 진궁을 급히 깨워서 그 사실을 알려주었고, 둘은 순식간에 집안에 있던 사람들 8명을 모두 죽여버리고 만다. 그렇게 한동안 참혹하게 살육을 벌이고 난 뒤에야 뒤뜰에서 꽥꽥거리며 울부짓는 돼지 한마리를 보게 된다. 그제서야 자신들이 오해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챘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였다. 조조와 진궁은 그 길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서둘러 달아났는데, 마치맞게 고개 넘어에서 술 한 동이를 나귀에 싣고 돌아오는 여백사와 마주친다. 여백사는 왜 그리 바삐 가느냐며 좋은 술을 마련했으니 마시고 가라며 붙잡지만 긴장한 조조는 쫓기는 몸이라 마음이 급해 일찍 떠난다는 변명만 남기고 떠나버린다. 그렇게 한참을 갔을 때 조조는 진궁에게 잠시 기다리라며 발걸음을 돌리더니 여백사마저 죽이고 돌아온다. 진궁은 왜 그랬냐며 따져 물었지만, 조조는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할 수는 없다"는 말로 진궁을 설득한다. 진궁은 이 말을 듣고 후회를 한다. 동탁을 암살하려 했다기에 충의지사인줄 알았는데, 간사한 영웅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허나 이미 엎지른 물이었기에 진궁은 곤히 잠든 조조를 찔러 죽이지도 못하고 지켜볼 뿐이었다.

​

그렇게 어렵사리 고향땅에 도착한 조조는 서둘러 '반동탁연합군'을 조성하기 위해 서두른다. 그러자니 엄청난 군자금이 필요했는데, 마침 고향 마을의 부자였던 '위홍'이란 사람이 있어서 군자금을 융통하려 한다. 폭정을 일삼는 동탁을 토벌하는 대의명분을 얘기했는데도 순순히 군자금을 내놓지 않으면 죽여서라도 빼앗겠다는 심보로 말이다. 허나 일이 잘 풀리려고 했는지 위홍은 선뜻 조조에게 막대한 군자금을 융통해주었고, 조조는 그 덕분에 '반동탁연합군'을 불러모을 격문을 돌리고, 자신은 '황제의 밀명'을 받아 군사를 일으킨다고 소문을 내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군대에는 '충'과 '의'라는 깃발을 세워 높이 들게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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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4권에 접어드니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며 자중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동탁의 폭정과 여포의 횡포는 여전히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로 살벌한 스케치로 그려내고 있지만, '소설 삼국지'에서도 이런 살벌한 묘사가 나온 대목이니 어쩔 수가 없다고 보여진다. 그만큼 동탁이란 '악당'을 잘 그리기 위함이니 어쩔 수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헌데 요코야마는 '조조'마저 악당을 낙인을 찍어놨다. 적어도 '헌제의 혈서'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조조도 충신으로 남고 싶어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런 '심경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을 아예 포기하고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으로만 조조를 그려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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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설 삼국지'인 요시카와 에이지의 작품속에서도 조조는 처음부터 '악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요코야마도 어쩔 수 없이 따랐을 수밖에 없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래도 요시카와의 소설이 40년대이고, 요코야마의 만화는 70년대인데 '원작'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대단히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이 21세기 대한민국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어울리지 않는 까닭은 이런 '전근대적'이고 '전형적'으로 고정된 이미지로 연출했기 때문이다. 나쁜놈을 나쁘게 그리고 악당을 악당처럼 그려낸 것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추리소설로 유명한 일본이라면 '범죄심리'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게도 '살인 동기'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악인을 그리면서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 넣지 않는다면 '앙꼬(소) 없는 찐빵'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

더구나 조조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다. 나관중이 조조라는 사실적 '역사 주인공'을 내리고, 유비라는 가상 역사적 '소설 주인공'을 내세울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더구나 '소설 삼국지'에서는 초반에는 조조를 주인공으로 삼고, 후반부는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평가하는 이가 많을 정도다. 그런데도 조조를 등장부터 '악인'으로 설정하고 변화도 없는 '전형적인 악역'으로 고정해버리면 재미는 둘째 치더라도 독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할 우려가 크다. 더구나 만화는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한정하고,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단점이 두드러지는 장르인데, 이렇게 등장인물을 단순한 구도로 표현하는 것도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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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3 - 한실의 풍운
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전략 삼국지 3 : 한실의 풍운>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

[My Review MMCCCLVI / 대현출판사 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다섯 번째 리뷰는 개인적으로 어린이나 청소년 독자들에게 권장하기에 부족함이 많은 책이라 생각하는 <전략 삼국지 3>이다. 일본의 것이라고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나쁜 것'을 본다고해서 전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왜냐면 나 어릴 적에도 '이런 것'들을 수두룩하게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색' 가득하고 '끔찍한 장면 묘사'가 수두룩하다고 해서 절대로 보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왜' 불편하고 나쁜 것인지 그 이유를 알고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냥'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쟁'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나쁜 것이지 좋다는 얘기인가? 그게 아니라 우리가 영웅이라고 여기는 안중근과 이순신을 진정한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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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3> 관점 포인트 : 공자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삼을 만한 이가 있다고 말이다. 왜냐면 그중에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보다 못난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에게서는 분명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배우려고 노력해야 마땅한 일이고 말이다. 그런데 나보다 못난 사람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니라 '저런 못난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와 같은 뜻을 가진 사자성어로 '반면교사'가 있다. 말 그대로 '나쁜 점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이다. 이런 선생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는 그런 나쁜 선생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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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 TV방송에서는 온통 '일본 애니메이션'이 나오곤 했다. 그런 만화들은 으레 적들을 무찌르고 쳐부수고 때려잡는 '정의의 용사'가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정의의 용사가 나쁜 악당을 혼쭐 내주고 쳐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동네친구들과 함께 환호성을 외치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난 다음에는 골목길로 나가서 방금 본 장면들을 흉내내고 따라하며 '악당 역할'을 맡은 친구를 쳐부수는 시늉을 하며 놀곤 했다. 정말 재밌고 즐거운 한때였다. 그런데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어릴 적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죄다 '일본'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다. 우리 나라의 영웅들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일본의 것이었다니 말이다. 당시만해도 '왜놈 것은 무조건 나쁘다'고만 배우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분명 '한국말'을 썼는데 어떻게 일본 것이라는 거지? 하면서 궁금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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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군대를 제대하고 어른이 되니 '일본의 것'이 왜 나쁜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악당이라고해서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무조건 때려잡고 쳐부수고 잡아다 죽이면 안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만화는 때려 죽여도 아무렇지 않게 표현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좀 더 찾아보니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 '무사도' 같은 것을 '일본적인 것'이라며 숭상하는데, 이런 정신의 핵심이 '체면'을 몹시 중시하며 체면을 훼손하면 죽을 각오를 하고 체면을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기는 풍습이 일본인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자기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 발생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칼을 뽑아들고 체면을 손상시킨 당사자와 결투를 벌여야 체면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만약 체면 상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상대가 너무 강해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려서 절대 복종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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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좀 더 확장시키면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스미마셍'을 남발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의 체면을 상하게 만들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미안합니다)'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란다. 그런데 상대가 '스미마셍'을 받아주지 않으면 도리어 '내 체면'이 손상되는 일이니 나도 참지 않고 싸울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두 사람이 서로 싸우지 않으려면 한 쪽이 '스미마셍'이라고 얘기하면, 상대방도 '나 역시 당신의 체면을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라는 뜻으로 '스미마셍'이라고 대답해야 한단다. 이런 까닭으로 일본인들은 별일 아닌 것으로도 서로 '체면 존중'하는 척하며 스미마셍을 연발한다. 하지만 상대가 자기보다 '급'이 낮거나 존중해야 할 '체면'조차 없다고 판단되면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가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사무라이 계급일 때 기분이 나쁘면 칼을 뽑아들고 자기보다 낮은 사람이면 가차 없이 목숨을 빼앗아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단다. 누구도 그 일을 두고 탓하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그게 일본인들의 오래된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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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인들도 '사람'인 이상,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함부로 칼을 뽑아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해도 되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나쁜 짓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 그렇다면, 애초에 '나쁜 짓'이라 규정을 하고 나쁜 풍습을, 나쁜 사상을, 나쁜 정신을 없앴으면 될 것이 아닌가? 왜 나쁜 짓인 것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냅뒀던 것인가? 일본 헌법에서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면서 명백히 '위법'으로 규정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본의 전통사상이라면서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살인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건 좀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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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책의 내용은 '십상시의 난'이 벌어지기 직전인 '하진의 죽음'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중국 고전인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충실한 내용이지만 불필요한 '살해장면'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한 컷으로도 충분할 것을 '한장 두장'이 넘치도록 죽이고 또 죽이는 장면의 연속이다. 물론 혼란스러웠던 그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일 수 있다. 그래도 너무 과하다. 이런 식의 '일본 만화 삼국지'는 이 책 말고도 많을 것이다. 또한 이런 일본색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따라 그리는 다른 나라의 '만화 삼국지'도 분명 있을 것이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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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런 만화책은 불온하니 멀리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허나 부득이하게 봤더라도 문제는 없을 수 있다. '반면교사'로 삼고 앞으로 이런 식의 표현은 걸러서 바르게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제는 남는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그대로 모방하고 흉내내는 몰상식한 사람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 '거장의 필치로 삼국지의 매력을 가장 잘 그려냈다'는 식의 문구는 자제해애 할 것이다. 반드시 빼야 할 문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든든한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다. 일본인들에게는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인물일지라도 한국인에게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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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주장을 하면 반론으로 '안중근'도 이등박문을 죽인 테러리스트고, '이순신'도 풍신수길의 군대를 몰살시킨 잔혹한 살인마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맞다. 안중근도, 이순신도 사람을 죽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영웅이다. 왜냐면 안중근은 '동양의 평화와 모든 인류의 안녕을 위해하는 이등박문'을 죽였고, 이순신은 죄 없는 조선백성들을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들어서 함부로 아프게 하고 굶주려 죽게 만들었으며 마구잡이로 잡아가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기에 '내 나라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이다. 이들을 함부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도 구분할 줄 모르는 몰상식한 사람과 더 대화를 이어가야 하겠는가? 굳이 찍어서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는 '아둔한 경험론자'라면 대화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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