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증보판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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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편 2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증보판>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25)

[My Review MMCLXXXIII / 인물과사상사 3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의 열두 번째 리뷰는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다. 40년대는 1권에 이어 2권으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앞서도 언급했지만 마음이 무겁고 심란해 진다. 오랜 식민침탈으로 지치고 고통 받던 민중을 도탄에서 구원해줘야 할 민족지도자들이 사분오열이 되어서 이데올로기 대립만 일삼다 끝내는 '조국의 분단'하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 전쟁'까지 발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과연 민족지도자라고 지칭해도 괜찮을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딴에는 혼란한 해방정국에서 그들도 할 도리는 다 한 듯 보인다. 첨예하게 찢기고 갈라선 마당에 이를 봉합하고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초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탓'만 하고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남탓'을 아니 할 수도 없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누구탓'을 해야 하는 걸까?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관점 포인트 : 민족지도자 가운데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김구와 이승만의 대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적어도 47년 12월까지는 둘은 한 배를 타고 있었단다. 그런데 '장덕수 암살사건'을 계기로 둘은 갈라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장덕수는 누군가? 동아일보 초대 주필로 해방 이후부터 열렬한 한국민주당의 이승만 지지자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죽자 한국독립당의 김구가 살인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이전까지 한민당과 한독당은 서로 합당까지 할 의사를 보이며 타진을 보고 있었는데, 김구가 '장덕수 암살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자 이승만에게 경찰의 수사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했는데, 이승만이 이를 거절한 것이 둘 사이가 틀어진 계기라는 것이다.

이승만과 김구의 통합을 불만스럽게 지켜보던 '한민당'은 이 사건을 결정적 호재로 활용하였고, 김구는 그럼에도 '합당'을 추진했기 때문에 한민당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것이다. 암튼 이 사건을 계기로 김구는 한민당과 척을 지게 되었고, 김구를 중심으로 한 '한독당'은 극우노선을 버리고 좌우를 초월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해방 직후에 김구가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김일성의 좌파, 이승만의 우파, 이를 통합하려는 김구의 모습은 45년이 아닌 47년에나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방직후'부터 줄곧 좌우를 초월한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우사 김규식'뿐이었다고 본단다. 그런데 김규식보다 김구가 진정한 민족주의자로 떠오른 것은 '이승만의 입김'이 그만큼 셌다는 반증인 셈이다.

이듬해인 48년 4월 3일 새벽 2시는 '제주 4·3 항쟁'을 떠올려야 한다. 30여 만명의 제주도민 가운데 3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이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아직까지도 정확한 희생자 수를 알지 못해 8만 명, 10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애초에 빨갱이라고 파악된 최대 숫자는 500명이었단다. 그런데 어떻게 3만 명의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경찰은 제주도민들의 조직적인 폭동진압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오와 죄상을 은폐하기 위해서' 일부 주민들의 폭동을 오히려 조장하고, 확대하려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경찰들이 폭도를 가장하며 민가를 방화하고 다니가도 했단다. 이 사건을 통칭해서 '오라리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제주도민들의 분노를 돋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게 되자. 경비대 총사령부 소속 제11연대는 제주에서 '무차별 체포작전'이 벌어졌고, 이른바 '레드 헌트' 작전이 시작되었다. 미군정 보고서는 군대, 경찰, 우익 청년단체의 토벌을 이렇게 부른 것이다. 이승만의 학살 지시를 미군정이 '사냥'으로 명명한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같은 편'끼리 싸우는 것도 학살하러 가는 것을 문명국이라고 자처한 미국이 이렇게 명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를 지시한 이승만도 미친 놈이긴 마찬가지다.

허나 이 사건이 밝혀진 것은 '현재의 시점'이다. 당시 남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화두는 '김구와 김규식의 방북 문제'였다. 5·10 총선거를 앞두고 김구는 남북 단일국가를 만들기 위해 애썼지만, 이승만은 '남한 단독국가'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5·10 총선거는 남한 단독선거로 치뤄졌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정부는 수립(8월15일) 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수립(9월9일) 되었다. 이로써 미군과 소련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공포되며 우리 민족의 숙제였던 '친일파 처단'이 시작되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친일파를 비판하면 '빨갱이'라는 소리가 나돌게 되었다. 당시 경찰의 100%가 친일파로 채워졌기 때문이고, 이들이 활개를 치니 치안은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염원이었기에 막을 수 없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경찰의 노고를 생각해서 그들을 처단한다는 것은 신중히 생각할 문제'라면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반민법'을 반대한 명분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반민법'에 대단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단다.

48년 10월에도 제주도에선 학살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진압군'을 투입하기 위해 여수와 순천에 집결했는데, 그 진실을 알게 된 국군은 한순간에 학살 명령에 불복하고 '반란군'으로 돌변했다. 이들의 항명은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죄 없는 양민을 학살하는데 자신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가장 인간적인 항명이었다. 그러니 이승만 정권은 인간이길 포기했다. 이승만은 이들을 '공산당 괴뢰의 지령을 받은 불순분자'로 낙인 찍고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뿔뿔이 흩어진 '반란군'을 색출하기 위해 '손가락총'이 동원되기도 했단다. 반란군이 민가에 숨어들자 누군가 "저 사람이 반란군이다"라는 손가락질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총을 발사해 즉결처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망자만 2600명이다. 여수에서만 3400여 가옥이 불탔으며, 이재민은 2만 명이 넘게 발생했단다. 여순 사건에는 '소령 박정희'도 체포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관동군에서 광복군으로 변신했던 그는 좌익(남로당)에서 우익으로 또 한 번 변신을 꿈꾸며 여순 반란 사건에 연루된 군인들을 색출하는 수사에 적극 협력하며 살아남았다고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남로당원들'을 다 털어놓은 것이다. 결국 박정희는 사형을 구형받았지만, 관동군 선배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기적처럼 살아남게 되었다고 한다. 한 때 자신의 동료를 팔아넘긴 공로를 인정받아서 말이다. 암튼 '여순 사건'으로 인해 이승만 정권은 확실한 '반공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49년 6월 26일 일요일 경교장 2층 거실에서 김구는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암살 당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딱 1년 뒤인 50년 6월 25일 일요일에 북한은 남침을 했다. 38도선을 베고 누워서라도 조국의 통일을 염원했던 백범이 스러졌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김구 암살을 지시한 이승만은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여의치 않자 연일 '북진통일'을 외치며 미국을 자극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회답은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의 방어 포기 선언이었다. 이 선언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김일성은 소련 스탈린의 지령을 받아 대대적인 '남침'을 감행한다.

나가는 글 : 우리 민중의 염원은 명료했다. 일제의 탄압도 견뎌내며 모진 목숨을 건진 민중이었기에 '잘 살아보자'는 목적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런 민중들의 단 하나의 염원을 '민족지도자'들은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물론 '신탁통치'를 모의한 미국과 소련을 원망하는 것도 맞고, 패전국 일본이 받아 마땅한 '분단'이란 형벌을 한국이 대신 받게 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일본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도 맞는 말이다. 허나 우리 민중의 염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우리 민중을 '자신들의 정권 탈취'에 이용해 먹으려는 속셈만 가득했다는 점에서 용서가 쉽지 않다. 그들도 나름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속에서 열심히 할 만큼 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우리가 반만 년의 문화민족이고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본을 먼저 보여줄 수는 없었느냔 말이다. 만약 우리 민족지도자들이 이렇게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한국역사'에 무지한 미국과 소련도 감명을 받아 신탁통치안을 거둬들이고, 저들의 '군사정부의 만행'도 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에 '만약'은 없다. 우리는 40년대 해방정국에서 그런 '부조리한 모습'을 보였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다. 이대로 원망만 늘어놓을 것인가? 지난 과거는 어쩔 수 없다. 잘났든 못났든 '우리'가 저지른 행위이고, 그 결과에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처절한 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40년대에 우리가 한 일 가운데 잘 한 것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못난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간다면 분명 더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아프고 슬픈 역사를 견뎌내고 이렇게나 우뚝 바로 섰다고 말이다. 이런 고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낸 모습이 더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더욱더 '우리 역사'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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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증보판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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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증보판>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25)

[My Review MMCLXXXII / 인물과사상사 3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한 번째 리뷰다. 역사적 흐름에 따라 리뷰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책 <한국 현대사 산책>과 더불어 <한국 근대사 산책>이 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진득하니 처음부터 나아가지 못하고 '메뚜기 한 철' 인듯 이리저리 뜀뛰기를 하게 만든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기회를 봐서 <미국사 산책>까지 한꺼번에 시대적 흐름에 맞춰 왔다갔다하며 읽으려 한다. 뭐, 책이 많아지긴 하겠지만 어차피 다 읽을 책인데 뭣을 먼저 읽든 뭔 상관이겠는가 말이다. 앞선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의식의 흐름'에 따라 리뷰를 할 작정이다. 많은 양해를 바라고 언제가 되었든 꼭 리뷰를 하겠다는 다짐을 밝혀둔다. 1940년대다.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무겁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관점 포인트 : 8·15 해방을 맞이한 순간 조선의 민중들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21세기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무조건 항복이라는 대목에서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니며 감격에 겨운 환호를 질렀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 기록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36년간의 일제의 엄혹한 감시와 탄압에 지친 조선민중들은 별로 보급되어 있지 않은 라디오 소리를 직접 듣지도 못했고, 대다수 들리는 소문에 '해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숨죽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도리어 긴장한 것은 조선반도 내에 머물고 있던 '일본군과 경찰'을 비롯한 일본인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조선인들이 일왕의 무조건 항복 소식을 듣고 '폭도'로 돌변해서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당장은 조선인들이 얼떨떨해하며 눈치만 보고 있지만, 그 옛날 3·1 만세를 불렀을 때처럼 들불처럼 번져나가며 조국의 독립 소식에 들떠 철천지 원수 같은 자신들을 용서치 않을 거라며 지레짐작으로 벌벌 떨고 있었고,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조선민중들이 '일본인 학살'을 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하루가 지나자 해방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부르며 감격에 겨워했지만, 일본인들이 걱정한 폭동과 학살은 전혀 없었다. 도리어 일본 본토에서 패망소식을 접한 일본인이 분풀이로 조선인들을 린치하여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었다.

이게 뭘 의미할까? 십수 년 전만해도 이런 분위기를 '우리가 못 났기 때문'에 나라 잃은 설움에 슬퍼할 줄만 알았지 분노할 줄도 몰랐노라고 자학적인 해석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러니 21세기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라.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강대한 힘을 가졌다고 남의 나라를 침공하는 역사를 갖지 않은 세계사적으로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나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간 다른 나라의 침략에 시달리면서도 '복수'를 꿈꾸지 않고, 강성한 힘을 자랑할 때에도 '정복국가'를 꾀하지 않으며 평화와 번영을 노래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의 실체임을 여실히 확인하는 순간인 것이다. 우리는 새 시대를 맞아 이러한 역사전통을 자랑스러워 할 만하다.

얼마 전에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 부부를 생포한 것을 자랑삼아 떠벌리며 '자국의 강대한 힘'을 보였노라며 '함부로 까불면 다친다(FAFO)'는 포스터까지 제작해서 유포하는 일을 벌였다. 이런 미국이 '정상국가'인 것처럼 보이는가? 물론 아직까지도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델타포스 대원들이 벌인 활약상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으며 미국의 위대한(?) 힘을 여실히 증명해냈다. 그런데 왜 침공한 것이냔 말이다.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베네수엘라가 '악질적인 행위'를 했느냔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베네수엘라가 자국의 석유자원을 '대중국 수출품목'에 넣어놨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베네수엘라의 석유자원을 독차지하는 만행을 저지른 셈이다. 이를 두고서 미국 대통령은 베네수엘라가 안정될 때까지 미국이 대신 통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게 미국이 '약소국'을 대하는 방식이다.

다시 1945년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미군정에 의한 '남한의 처지'가 딱 그러했다. 해방의 감격을 기뻐할 틈도 없이 일본에 주둔해 있던 '태평양함대 소속의 군대'가 한국의 남쪽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제를 물러나게 한 '해방군'으로 미군을 환영했으나 미국의 속내는 우리를 '적'으로 간주한 '점령군' 행세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독립의 그날이 오면 시행하려 했던 '건준'과 '임정'을 차례로 무시하며 38선 이남의 땅에서는 오직 '미군정'만이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선언하며 적진지를 점령하듯 무례하게 진압해버린 것이다. 얼마나 무례했냐고? 한 통역관의 증언에 따르면 '호텔 벨보이'로 보이는 소년이 두 손 가득 간식거리를 싸들고 호텔방에서 나와 로비로 뛰어가고 있는데, 미군 장교는 아무런 말도 없이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어 소년의 손을 향해 총알을 발사해 손목만 남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그러자 한국인 통역관이 깜짝 놀라며 왜 그랬냐고 물으니, 그 미군 장교가 하는 말은 "영락없이 호텔방의 물건을 훔쳐서 달아나는 것처럼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통역관이 경악을 한 것은 미군 장교의 표정이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태평하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고 한다. 도둑놈을 혼내준 것 뿐인데 왜 그러냐는 의아한 제스쳐와 함께 말이다.

이게 미국의 실재였다. 훗날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그때의 증언을 한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한국에 대해서 무지했던 탓"이라며 자신들의 실수(?)였다고 말할 뿐이다. 과연 실수였을까? 실제로 미국이 남한에 미군정을 세우고 통치할 때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보고는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한국인을 대할 거면서 '일본인을 대처하는 법'이란 미군 교본을 들고 왔을 정도라고 한다. 미군의 눈에는 한국인이 '야만인', '비문명인'이었을 뿐이었다. 더 웃긴 건 구한말 선교사로 왔던 미국의 목사들이 그들이 한 경험담을 들춰봤다는데, 그 기록에조차 '한국인은 게으르고 더러운 미개인'이라는 구절만 가득했단다. 이런 잘못된 기록을 기초해서 한국인을 차별하는데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고 하니 미국인이 얼마나 멍청한 족속들인지 알만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미국의 적이었던 '일본인'에 대해서는 세심한 연구(국화와 칼)까지 해서 적국이지만 '문명인'을 대하듯 존경까지 표했던 미국인들이었는데, 어째서 일본의 야만적인 식민침탈의 희생국가였던 '한국'에 대해서는 무지로 일관했더란 말인가? 그건 답이 뻔하다. 그들은 오로지 '힘의 논리'만을 정의로 생각하는 '문명의 탈'을 쓴 야만적 본성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꺼내 보였던 것이다. 이런 미국을 우리가 '혈맹' 어쩌구 하면서 떠받들어야 할까? 대한민국도 강대국이 되어 약소국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내비쳐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미당 서정주는 해방의 '그날'을 도둑처럼 찾아왔다고 표현했다. 비단 미당만의 표현이 아니었다. 당시 독립을 염원했던 운동가들도 대부분 이런 식의 감회를 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느닷없이 찾아온 해방을 맞이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뒤늦은 준비태세에 돌입했지만, 앞서 말했듯 미국의 야만이 우리의 염원을 바람대로 해주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내 치안 상황을 자국의 군인들만으로 하기에 버겁다고 여겨서 '친일 경찰' 출신을 찾아내어 해결하려고만 들었다. 왜 그들이었을까? 미군정 당시 '공식 공용어'는 영어였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이들은 일제치하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친일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외국어'를 할 줄 알았고, 미군정에서는 이들의 '협력(!)'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금력'이었다. 조금이라도 뇌물을 건내주고 말이 통하는 '친일파'들을 주요 요직에 내리꽂으면서 해방정국에서 친일파는 '살길'을 찾아나선 것이다.

친일파들은 미군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좌우를 따질 것도 없이 '정치인'이라면 정치자금이 필요할 테니 자신들이 착복한 자금을 마음껏 쓰라고 용돈을 챙겨주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그나마 '좌파 정치인'들은 얄짤 없었다. 이들은 입만 열면 '친일파 척결'을 부르짖었기 때문에 친일파들은 '우파 정치인들'에게 매달리며 자신들의 살길을 도모했다. 이때 느즈막히 귀국한 이승만이 친일파들에겐 봉이었다. 미군정의 하지 중장도 이승만을 환대했다. 영어로 말이 통하고, 맥아더가 '반공주의자'라는 보증도 섰으며, 미국 유학출신의 '박사'가 아니었느냔 말이다. 물론 그 박사 학위로 꼴랑 '1년'만에 딴 출처 불분명한 학위였지만, 당시 한국인 가운데 '미국 박사 학위'까지 딴 사람이 귀할 때였으니 그거라도 어디였을까? 그래서 하지 중장은 이승만을 환대하고, 그의 목소리를 전국에 전파타게 해주면서 나름의 구심점으로 삼으려 했다. 이에 이승만은 "나를 따르시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기며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한편, 중국 중경(충칭)에 있던 임시정부세력은 뭐하고 있었을까? 미군정은 임정 출신 요인들에게 '개인자격'으로 귀국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김구를 비롯한 선발대가 귀국비행기에 올랐는데, 이승만의 소개를 받아 하지 중장과 인사를 나눴고 이승만은 김구를 "스튜(고깃국)에 꼭 필요한 소금"이라는 수식어로 소개했다고 한다. 이에 하지 중장도 흔쾌히 환대를 했다는데, 오래 가지는 않았다. 사사건건 미군정과 임정이 부딪혔기 때문이다.

암튼, 혼란한 해방 정국에서 우리 민중들의 70%는 '사회주의'를 지지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못먹고 못살던 노동자와 농민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북쪽의 '김일성'과 남쪽의 '이승만'이 서로 반대를 외치는 상황이었다. 여운형, 박헌영, 김구, 조소앙, 김규식 등 쟁쟁한 이들은 '사회주의'를 지지했는데도 김일성과 이승만은 요지부동이었다. 김일성은 '남로당'을 뺀 자신들만으로 '공산주의국가'를 건설하려 했고, 이승만은 누가 뭐래도 남쪽에서는 자신이 대빵이라며 '자본주의국가'를 완성하겠다는 일념으로 다른 노선의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서슴지 않았다. 그나마 북쪽에서는 '좌파'가 대세였으므로 김일성을 중심으로 뭉치기 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남쪽은 상황이 달랐다. 북쪽에서 넘어온 '우파'까지 가세한 상황에서 남쪽 내부에서도 '좌우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60여 개가 넘는 정당이 만들어졌다 깨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며 정치적 혼란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낮에 총질은 기본이었고, 선거 유세라도 할라치면 깡패를 동원해서 해방놓기 일쑤였다. 특히, 청년단이 골치였다. 이들은 '순수한 목적의식'만으로도 불나방처럼 갈등의 한복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갈등봉합을 원천적으로 막아서는 일도 빈번했다.

이런 해방정국의 대혼란은 요즘의 '내란으로 인한 여야 대립' 상황과 비슷한 것일까? 특히 '보수'를 자처하는 극우정당의 행패는 '국가가 망하길 바란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상황이니 말이다. 이런 한심한 작태를 보고 있으면 그 당시 혼란은 난리도 아니었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정말이지 우리 정치는 '쿼바디스(어디로 가나이까?)'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을 듯 싶다.

나가는 글 : 1940년대 정치갈등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그 살벌했던 미군정과 소군정조차 두손 두발 다 들고 그냥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을 정도였을까? 앞서 미군정의 횡포만 언급했지만, 소군정도 다를 것은 없었다. 공산주의 군대는 어딜 가나 '거지꼴'이 기본이었던 탓에 그들이 북쪽에 진주하자 처음에는 '해방군'이라며 환영했고, 처참한 몰골을 보면서 불쌍하다, 애썼다는 마음마저 들어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런 해방군이 저지른 횡포는 '강간'과 '강도질'이었다. 밤만 되면 부녀자를 겁탈하고 대낮에도 돈 되는 것을 보면 탐욕스럽게 강탈해갔다. 특히, 손목시계가 주요 표적이었다고 한다. 소련군의 손목에 시계가 4개나 차있는데도 또 손목시계가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빼앗곤 했단다. 그리고 밤이 되면 부녀자들은 집밖으로 나가질 않았단다. 그리고 자경단을 꾸려 겁탈 당하는 부녀자들이 세숫대야 같은 것으로 큰 소리를 내면 구해주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져서 소련군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졌다고 한다. 훗날 소군정이 들어서고 제대로 된 규율이 잡힌 뒤에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고 전하는데, 한 번 당한 나쁜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북쪽에서는 33세의 젊은 지도자 '김일성'이 주목 받으면서 빠르게 안정을 잡은 반면에 남쪽에서는 혼란 그 자체였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원래 시끌벅적하는 것이라도, 미군정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너무 정치를 좋아해서 탈이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한국인 두 사람이 모이면 정당 세 개가 만들어진다'고 말할 정도였겠는가? 각각 한 명이 정당을 꾸리고, 둘이 합작해서 또 하나의 정당을 만들 정도로 한국인들은 '정치질'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니 애먼 정당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고, 많을 때에는 60여 개가 훌쩍 넘었다고 하니 무슨 진지한 토론이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겠는가? 1분씩만 발언을 해도 1시간이 훌쩍 넘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구심점이 되어야 할 이승만이나 김구, 여운형, 박헌영 등등 쟁쟁한 인물들조차 '좌우'로 나뉘어서 양보를 할 줄 몰랐고, 정치자금을 대는 '친일파'들이 제 목숨 하나 건사하겠다며 이쪽 저쪽을 가리지 않고 돈을 뿌려대니 정치는 '술집(요정)'에서 진행될 판이었다. 이 꼬락서니를 참다 못해 장준하는 "다시 태어나면 일본군 항공대에 입대해서 폭격기를 몰고와 한국정치판을 몰살시켜버리고야 말겠다"는 한맺힌 소리마저 내뱉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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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8 : 이야기 공장 뇌, 오늘도 풀가동 중!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 글, 김현민 그림, 이고은 자문 / 아울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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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8 : 이야기 공장 뇌, 오늘도 풀가동 중!> 정재승 / 정재은 / 아울북 (2025)

[My Review MMCLXXXI / 아울북 4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이 벌써 10번째 리뷰를 쓰게 되었다. 리뷰는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지만 20여 년이 지난 '26년 1월 2일'에야 '창간호'를 발행하게 되었다. 그간에는 무작정 읽고 쓰는 일에만 몰입했었는데, 올해는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잡지(리뷰 플렛폼)'를 만들어보자는 기획을 떠올리게 된 결과다. 요즘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들도 많은데, '종이책'을 발행할 자신은 없어서 이렇게 '블로그 채널'을 통해서 '전자책' 개념으로 꾸준히 발행할 계획이다. 아직 시작한 지 열흘 남짓밖에 지나지 않아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은 없지만, 매달 발행을 하다보면 어느 시점에 폭발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데 왜 '월간지'일까? 이렇게 매일 리뷰를 올릴 뿐인데 말이다. 그건 '매달 말일'에 한 달 간 쓴 리뷰를 '한 눈에 찾아 볼 수 있는 하이퍼링크'로 발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한 장에서 한 달간 쓴 리뷰를 '클릭'하면 찾아가 읽을 수 있게 말이다. 아직 1월을 다 채우지 않았기에 그 월간지를 볼 수 없을 뿐이다. 이제 실제 발행일까지 20일이 남았다. 그동안 얼만큼의 리뷰를 쓸 수 있을지, 어떤 작가와 어느 장르의 책리뷰를 남길지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18> 관점 포인트 : 인간의 뇌는 단편적인 정보를 기억으로 저장하는 것보다 '이야기'로 만들어진 형태를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학창시절에 벼락치기로 암기한 교과서의 내용은 아무리 중요한 내용이었을지라도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반해서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잡담형식으로 들려준 '첫사랑 이야기'는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내용인데도 오래오래 기억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은 어린 나이일수록 이런 '이야기'를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생후 12개월부터 기억을 저장하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엄청난 양의 기억을 뇌에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기억은 크게 '감각 기억', '단기 기억', '장기 기억'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감각 정보를 아주 짧은 시간 기억하는 것을 '감각 기억'이라 하고, 그 보다 좀 더 오래 머릿속에 남길 수 있는 기억을 '단기 기억'이라 하고, 몇 분에서 몇십 년까지 오랜 시간 기억하는 것을 '장기 기억'이라 한다.

이때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돕는 학습법이 바로 '메타 인지'를 활용한 '메타 학습법'이다. 이를 테면, 강의를 들을 때 그냥 '귀'로만 듣는 것보다 '손과 입'으로 강의 내용을 숙지하며 듣는 법이 훨씬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메타 인지를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남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학습법'이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신이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으므로 학습 효과가 높을 수밖에 없으며, 남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시각, 청각, 촉각 등 여러 감각을 총 동원해서 '말과 몸짓'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으므로 더 오래 기억에 저장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메타 학습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이야기(스토리텔링)'로 전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등장인물의 상황에 따라 '감정 이입'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며 '감정 이입'까지 병행할 때 우리는 더 오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뇌는 '거울 뉴런'이 있어서 '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감정 이입'을 통해서 '자신의 일'처럼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이런 감정이 기억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공감 능력'도 기억력 향상과 연관이 깊다고 한다.

또한, 운동선수들이 주로 한다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란 것도 인간의 상상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머릿속에 떠올렸을 뿐, '실제로 한 일'이 아닌 데도 인간의 뇌는 '똑같은 경험치'를 갖게 되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까닭에 인간의 뇌는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상상하는대로' 실현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단 말이다. 운동선수들이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승리자'가 되는 상상을 떠올리고, '이기는 방법'을 상상하면서 머릿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난 뒤에 실제로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면 머릿속에서 떠올렸던 상상이 실제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뇌의 '내후각 피질'에 위치한 '격자 세포'가 활성화된 덕분이라고 하는데, 이 부위는 뇌에서 잠재 의식과 의식을 연결하고, 기억과 탐색을 담당하는 부위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승리'를 떠올리고, '이기는 장면'을 수 차례 반복하여 떠올리게 되면, 실재로도 승리하게 되는 기적같은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무서운 장면'을 떠올리고 '귀신'이 나타날 거라 두려움에 벌벌 떨면 우연히 일어난 실재 상황에서 '귀신'과 마주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고 인간의 뇌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정말 상상하던 일이 실재로 일어난다면 얼마나 깜짝 놀라겠는가?

이처럼 '상상'은 때때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 생생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을 계속할수록 똑똑해진다고 한다. 옛 어른들이 책을 많이 하면 좋다는 이야기는 괜한 이야기가 아니었던 셈이다. 책을 많이 읽은만큼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그렇게 풍부해진 상상력을 실제로 힘을 발휘하게 된다면 엄청난 일도 능히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상상이 현실에서 다 재현되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상상의 힘을 실제로 발휘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나가는 글 :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는 이야기가 너무 범람을 해서 더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도 누군가에 의해서 정말 재밌고 신선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에 열광했다가 점점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가 또 범람하게 되면 식상해했다가 또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그 신선한 충격을 만끽하며 즐거워하고 환호한다. 참 놀랍지 않은가? 이만큼 인간의 뇌는 상상력을 풀가동하면서 늘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며 탐독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공식 같은 것도 있을까? 그걸 알면 대박을 쳐서 어렵지 않게 돈방석에 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특히, AI에게 '재미난 이야기 만들어줘!'라고 명령만 하면 그럴 듯한 이야기가 뚝딱하고 나오는 세상이 되었으니 얼마나 더 재미난 이야기가 손쉽게 쏟아져 나오겠느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방법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AI가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처럼 완전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능력은 현재까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가 내놓는 이야기들은 뭐란 말인가? 그건 '이미 인간들이 써놓은 이야기'를 '나름의 틀'에 넣어서 이ㅣㄹ저리 짜깁기해서 내놓은 결과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인간 작가 못지 않은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AI가 많을지 몰라도 결국엔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의 결과만 만들어 낼 것이 뻔하다. 그렇기에 미래에 'AI 시대의 인간'은 창의적 상상력만큼은 제 것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마저 없다면 인간은 AI에게 한참 뒤쳐져 도움만 받다가 '노예'처럼 AI가 시키는 일만 하다가 평생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라는 보장도 딱히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이야기'를 즐기고 직접 만들어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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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7 : 음식, 인간의 마음을 요리하다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 글, 김현민 그림, 이고은 자문 / 아울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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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7 : 음식, 인간의 마음을 요리하다> 정재승 / 정재은 / 아울북 (2025)

[My Review MMCLXXX / 아울북 4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홉 번째 리뷰다. 이번 주제는 '음식과 뇌의 연관성'이다. 과연 음식을 먹는 것과 뇌과학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먹는 건 '입'으로 먹고 '뇌'는 생각하는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식탐'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생각이 미치면 '음식과 뇌'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똑똑한 친구들은 바로 눈치 챘을 것이다. 인간이 활약하는 모든 주제는 바로 '뇌'와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뿐 아니라 인간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도 바로 '뇌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뇌과학'으로 접목시킬 수 있는 분야가 얼마쯤 될 것 같은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대세는 바로 '뇌과학'에 있다. 오죽하면 '인간의 뇌'를 흉내내는 '인공지능(AI)'를 각국에서 서로 먼저 개발하여 선점하려고 안달복달하고 있느냔 말이다. 그러니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정복해야할 주제다. 그럼 지금부터 '음식과 뇌'에 연관된 이 책의 리뷰를 시작한다.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관점 포인트 : 인간이 생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세 가지를 '의, 식, 주'라고 한다. 그런데 왜 '옷'을 맨 앞에다 둔 것일까? 옷이 먼저냐? 집이 먼저냐? 하고 따지는 것은 우선적으로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된 뒤에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식'이 맨 앞으로 와야 한다. 왜냐면 인간은 '살기 위해 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은 헷갈리기도 한다. 인간이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적어도 현대인들은 전자보다 후자의 이유로 '더 많이 먹으려' 들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기도 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기똥차게 잘 찾아먹는다. 그것은 인간의 뇌가 음식을 섭취할 때 '쾌락'을 느끼도록 발전했기 때문이란다. 이것이 인간이 오랜 굶주린 자연환경에 방치 되어 있었더라도 지금껏 생존할 수 있는 근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먹거리가 풍족한 현대에는 왜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일까? 그로 인해 '비만'이 생겼고, 비만으로 인한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며 고통 받는 요즘인데 말이다. 이는 현대인들이 배가 고프지 않는데도 먹을 것을 찾아 먹고 쾌락을 즐기다가 얻게 되는 고통인 셈이다. 심지어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이런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단다. 실제로 인간은 음식을 먹을 때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이 분비된다고 한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다. 한 번은 '입'으로 맛볼 때이고, 다른 한 번은 '위'에 음식이 닿을 때라고 한다. 보통 입에서 씹고 '목넘김'을 한 음식물이 위에서 '포만감'을 느끼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라고 한다. 특히 이 '포만감'을 느낄 때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데, 음식을 와구와구 대충 씹고 목넘김을 하게 되면 이 '포만감'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고, '포만감'을 느낄 때쯤에는 이미 배가 빵빵할 정도로 음식을 섭취한 상태가 되어서 늘 적당량 이상의 음식을 섭취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음식은 꼭꼭 씹으며 천천히 먹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뚱뚱보가 되는 것은 정말 시간문제다.

그럼 인간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가운데 뭘 가장 잘 챙겨 먹어야 할까? 건강하고 다부진 체격을 유지하고 싶다면 단연 '단백질 섭취'를 충분히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식'을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한다. 일설에는 인간이 두 발로 걷고 지능이 발달한 까닭으로 불에 충분히 익힌 고기, '육식' 덕분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지능 발달은 몰라도 '두 발 걷기'와 육식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왜냐면 인간은 지능이 충분히 발달하기 이전에 이미 '두 발 걷기'를 했고, 영장류에서 '유인원'과 '인간'의 종이 분화된 시점부터 이미 '두 발 걷기'가 인간만의 고유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최신 학계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불의 이용(호모 에렉투스)'을 하기 전부터 이미 두 발 걷기에 능숙했고,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이전부터 인간은 '두 발 걷기'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단다. 그 증거는 유인원은 '두손 두발'이 아닌 '네 손 쓰기'에 능숙하다고 보는 것이 더 적확하기 때문이란다. 이 책에서는 '육식'을 즐긴 덕분에 인간이 두 발로 걸었고, '육식'을 즐기지 않았다면 여전히 '네 발 걷기'를 하고 있을 거라고 쓰여 있는데, 어느 학설이 맞는지 좀 더 추이를 지켜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암튼, 인간은 육식을 통해서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주는 단백질 섭취를 늘릴 수 있었고, 오메가 3 지방산, 아연, 콜린, 철분, 특히 적혈구와 DNA 생성과 뇌졸중 및 염증을 예방하는 '비타민 B12'처럼 식물에서 섭취하기 힘든 영양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꼭 먹어야 할 식품이다.

그렇다면 '채식주의'는 건강하지 못한 식단인 걸까? 그렇지는 않다. 오늘날 '비만'의 주범으로 확인된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섭취(과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육식주의'인지 '채식주의'인지는 고른 영양소를 섭취할 수만 있다면 별로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다만, 앞서 '육식'에서만 얻을 수 있는 영양소가 있다면 '영양제'와 같은 것으로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주는 관리를 한다면 채식주의자라도 건강한 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채식주의자'가 되는 까닭은 '육식'이 주는 불편한 마음 때문이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여서(도축, 도살, 사냥, 학살 등등)' 내 생명을 연장하는 부조리한 느낌에 심한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 살자'고 다른 생명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다는 고결한(?) 생활습관을 갖겠다는 다짐으로 생각하면 좋을 듯 싶다. 그러니 채식주의, 육식주의 등을 한다는 이유로 '유별난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가는 글 : 새해가 되었으니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분들도 꽤 많을 것이다. 성공을 해서 만족스런 몸매를 자랑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초기에 잠깐 빠졌다가 도로 원상복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실망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이어트는 왜 실패하는 것일까? 먹는 건 '입'으로 먹을지라도 맛을 느끼는 곳은 다름 아닌 '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는 맛'이 가장 무서운 것이고, 그 '아는 맛'을 참고 견디는 것이 힘들어서 '딱 한 입만!' 입에 넣는 순간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이성'이 멈춰버리고, 먹고 살겠다는 '본능'에 충실하게 되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이다.

아니, 딱 한 입만 먹었을 뿐인데 '다이어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이게 뇌과학적으로 분석을 하게 되면 이렇다. 뇌에 전달되는 '맛의 정보'는 20% 정도만 미각으로 전달이 되고, 80%는 '후각'으로 전달이 된다고 한다. 근데 다른 감각과 달리 '후각'은 다양한 정보를 종합하는 뇌의 '시상'이란 부분을 거치지 않고, '변연계'로 전달이 되는데, 변연계가 하는 역할이 주로 기억을 저장하고 행동과 감정, 욕망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맛을 느끼는 것과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 관여하지 않는 '본능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니 '딱 한 입만' 먹었더라도 그 맛이 촉발한 식욕까지 멈출 수는 없게 되기 때문에 결국 다이어트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살기 위해 먹는 본능'으로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던 덕분(?)이니 원망치는 말자.

대신에 가장 좋은 다이어트는 '균형 잡힌 식단'과 '건강한 식재료'로 배를 충분히 채우되, 절대 먹어선 안 될 것들이 바로 '패스트푸드'다. 이런 음식을 '정크 푸드(쓰레기 음식)'라고 부르는 까닭은 우리 몸에 전혀 건강하지 않은 '가공 첨가물'로 맛에만 충실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건강엔 나쁘고 입(맛)만 황홀하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결심했다면 일절 먹지 않기로 작정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10~15킬로그램 감량에 성공한 다음에 아주 가끔(1년에 한 번 정도) 섭취하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한다. 특히, 다이어트 할 때 절대로 피해야 할 식재료는 바로 '과한 양념(소스)'다. 우리가 '양념'에 길들여지는 까닭은 탄수화물은 '단맛', 단백질은 '감칠맛', 나트륨은 '짠맛', 그리고 몸에 나쁜 독소는 '쓴맛'으로 우리 뇌가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달달한 맛에 취하면 탄수화물을 많이 먹은 것과 다름 없이 혈당이 급상승하고, 짠맛에 길들여지면 나트륨을 과다하게 섭취하게 되면 우리 몸이 수분을 더 많이 품게 된다. 혈당스파이크가 와서 몸속 혈당이 급상승 할 때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게 되어 건강에 부담이 되고, 급하강을 할 때에는 우리 뇌가 위기의식으로 인식하고 음식(탄수화물)이 더 땡기게 된다. 또한 나트륨 섭취가 과다하면 물을 더 많이 들이키게 되고 결국 우리 몸속 수분함량이 늘어나서 결국 체중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니 다이어트를 할 때에는 음식을 꼭꼭 씹고, 채소를 많이 먹고, 곡식과 과일의 껍질까지 섭취해서 혈당이 천천히 올랐다 내려올 수 있게 해야 하고, 짜게 먹지 않고 심심할 정도로 간을 조절해야 '과식'을 부르지 않고, '물'을 많이 마셔도 몸속에 저장하지 않고 해로운 물질과 함께 배출될 수 있도록 양념을 덜 먹는 느낌으로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다이어트에서 빼놓지 않아야 할 것은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한 뒤에 우리 몸에 '근육'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근력운동'을 추가로 해줘야 한다. 운동선수처럼 심한 운동이 아니라 식사 후에는 '걷기 30분', '스쿼트 10개', '팔굽혀펴기 10개' 이상으로 우리 몸 가운데 '큰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운동으로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면 팔다리 근육이 붙고 뱃살은 쏙 들어간 균형 잡힌 몸매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식습관과 운동 습관을 기른다면 평생 잔병치레 하지 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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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13 : 철학의 두 갈래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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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13 : 철학의 두 갈래>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5)

[My Review MMCLXXIX / 돌핀북 1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여덟 번째 리뷰는 <채사장의 지대넓얕 13>이다. 지난 리뷰에서는 고전 철학과 중세 철학까지 절대, 상대, 회의, 이 '세 가지 관점'으로 철학을 비교 분석해봤다. 그럼 이어지는 근대 철학은 '어떻게' 펼쳐질까? 사실 철학을 공부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단 말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 말 한마디에 집중하다보면 전체를 놓치기 십상이고, 전체를 넓게 보다보면 우리가 기억해야할 나무들이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체적으로 어려운 것 투성이다. 이런 철학을 논리정연하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해박한 지식에 통달해야 하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것이 철학이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우리에겐 채사장이 있지 않은가. 채사장이 가는 길을 잘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철학의 실마리'를 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먼 길 떠나야 할테니 차근차근 따라오면 된다. 어려울수록 돌아가라고 하지 않던가. 서두르지 말자. 이 책이 반드시 도와줄 테니 말이다.

<채사장의 지대넓얕 13>의 관점 포인트 : 고대 철학에서는 '진리란 무엇인가?'에 집중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진리'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알 수 있다고 했고, 플라톤도 '진리'는 모든 사물의 본질인 이데아를 깨달으면 알 수 있다고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도 '진리'는 뜬 구름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으니 형상과 질료가 무엇이고, 그 '변화'에 주목하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세로 넘어와서도 '진리'는 신학에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바탕으로 교부철학을 창시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주목하며 <신학대전>이란 책으로 신학을 집대성하며 스콜라철학을 완성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가 무엇인지 골똘히 연구했다.

그런데 르네상스를 맞이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오랫동안 신앙에서 빛을 찾으려 했는데, 근대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신앙(믿음)'이 아닌 '이성'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바로 '진리'를 말이다. 그런데 진리가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는 진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더 궁금해 했다. 그렇게 철학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바로 '진리는 있는가?'를 묻던 '존재론'과 '진리를 어떻게 아는가?'를 따지던 '인식론'으로 말이다. 그 가운데 먼저 '인식론'을 살펴보자. 인식론은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이 탐구의 결론은 바로 그 유명한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나뉜다. 합리론자들은 이성으로 진리를 추론할 수 있다고 했고, 경험론자들은 경험적 관찰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라는 식으로 서로 논쟁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먼저, 데카르트가 '합리론자의 대표격'으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 '생각하는 나 자신'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고 단정할 수 있다면서, 인간은 끊임없는 이성적 성찰로 인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정리했다. 그런데 '경험론자의 대표격'인 베이컨은 무릇 이성(생각)이라는 것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구체화 할 수 없다면서 단언컨대 생각에 앞서서 '경험'이 우선한다고 역설했다. 그렇지만 합리론자들은 세상의 진리를 모두 다 경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이성'만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고, 경험론자들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생각이란 막연한 상상에 불과하다며 무엇보다 참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경험'밖에 없다고 반론을 던졌다.

이렇게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옥신각신하고 있는 와중에 '독일의 칸트'는 존재론의 한 갈래인 '관념론'을 가지고 와서 둘을 종합해버렸다. 이렇게 '관념론'은 철학의 관심을 '외부의 대상'에서 진리를 찾으려던 시선을 돌려서 '인식의 주체'인 내면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만큼 칸트의 관념론은 서양 철학에서 아주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한편 진리에 대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적 논쟁과는 논외로 '회의주의'도 한 몫 단단히 했다.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등장으로 말이다. 니체는 그 유명한 말 '신은 죽었다'고 주장하면서 서구 문화의 기반이었던 그리스도교의 실체를 까발리며 실랄하게 비판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나 진리에 있지 않고,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며 실존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까지 강조할 정도였다.

정리하자면, 채사장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절대주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 그리고 진리의 존재 자체를 의심한다는 '회의주의'로 철학을 세 가지 관점으로 구분했다. 절대주의의 계보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실재론', '데카르트'로 이어지고, 상대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유명론', '베이컨'으로 이어지며, 임마누엘 칸트에 의해서 합리론과 경험론이 종합한 뒤에 헤겔과 마르크스 같은 철학자들(유물론자)이 뒤를 잇게 된다. 한편, 회의주의는 '소피스트', '쇼펜하우어', '니체', '실존주의'로 이어져서 결국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을 활짝 열게 된다. 회의주의 철학자들은 이성이나 신(믿음), 국가나 전체 따위보다 '개인'에 집중한 덕분에 다양한 사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철학자들은 대부분 '회의주의의 후예'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가는 글 : 어떤가?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철학이 조금은 쉬워 보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한다면 다행이고, 여전히 어렵다고 말하더라도 크게 실망할 것은 없다. 세상 그 누구도 철학을 마스터 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누구누구의 철학을 달달 외운 지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현대 철학의 근간은 '진리 탐구'에 있지 않다. 세상 모든 질문을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진리)'가 있기는 하겠는가 말이다. 그런 것은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이 생각하는 구석, 믿는 구석은 있기 마련이다'. 이게 현대 철학의 시작인 실존주의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면서 다름 아닌 인간이 그렇다고 말했다. 세상 모든 물질은 '쓰임'이 있는데 반해서 오직 인간만은 '쓰임' 없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이는 달리 말해서 만물이 '목적'을 띄고 만들어지는데 반해서 인간은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예를 들어서 청소기는 '청소'할 목적으로 만들었고, 망치는 '못'을 박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누구도 망치로 '청소'할 생각을 하지 않고, 청소기로 '못'을 박으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무슨 '목적'을 띄고 태어나는가? 이 아기는 '목수'를 하기 위해 태어났고, 저 아기는 '고행'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저 태어났을 뿐이다. 이렇게 '목적' 없이 태어난 인간은 '본질(목적)' 없이 태어나기(실존) 때문에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말을 한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은 '쓰임' 없이 태어났으니 스스로 '쓰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란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존재가 되려는가? 이제 철학을 공부했으니 좀 유식하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당신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고, 어떤 진리를 탐구하길 즐기며,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으로 구원하려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정답은 없다. 다만, 개인적인 이익보다 인류 공영과 발전을 위해 이바지 할 수 있는 철학이라면 확실히 좋은 철학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철학을 많이 해야 한다. 전세계가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흔들리고 있는 이때! 무엇보다 철학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달달 외우려 들지 말라. 외운 지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오직 자신만의 철학으로 뚜벅뚜벅 발자국 하나하나마다 깊숙이 새겨넣는 마음가짐하듯 걸어가야 한다. 누군가 '당신이 새긴 발자국'을 따라오는 무리가 있다면 당신이 바로 '철학자'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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