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6 : 사랑은 마음을 휘젓는 요술 지팡이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 글, 김현민 그림, 이고은 자문 / 아울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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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6 : 사랑은 마음을 휘젓는 요술 지팡이>  정재승 / 정재은 / 아울북 (2025)

[My Review MMCLXXVII / 아울북 43번째 리뷰]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여섯 번째 리뷰는 정재승 과학자의 <인간 탐구 보고서 16>이다. 이번 주제는 바로 '사랑'인데, 사랑에 빠진 지구인들의 뇌 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낱낱히 밝혀내고 있다. 뭐, '모태 솔로'인 나는 사랑을 아직 모르... 쿨럭쿨럭 암튼, 요즘에는 중딩은 너무 늦고 초등 땐 너무 뻔하고, 어린이집에서 뽀뽀를 마스터한다는 MZ들의 사랑이야기에 또 한 번 놀랄 뿐이다. 그럼 정재승 과학자가 풀어내는 '사랑에 관한 뇌과학 이야기'를 지금 풀어보겠다.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16>의 관전 포인트 :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어디서' 느낄까? 나 어릴 적만해도 '마음'이 느낀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배웠다. 그럼 '마음'의 위치는 어디쯤? 아마도 옛날 사람들은 '심장, 어디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왜냐면 사랑에 빠지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 네근반 점점 빨리 뛰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최신 뇌과학에서는 사랑은 '뇌의 작용'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랑에 빠지면 상대 앞에서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빨리 뛰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심하면 두 눈에 비친 상대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보이는 '이상 증세'를 보이는데, 그게 바로 '뇌속에서 호르몬 파티'가 한창 벌어지기 때문이란다. 호르몬은 '신경 전달 물질'로도 불리는데, 쾌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이성을 마비시켜 콩깍지에 씌어버리는 '페닐에틸아민', 아무 이유 없이도 히죽히죽 웃게 만드는 '엔도르핀', 몸 여기저기를 흥분시키고 떨리게 만드는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우리의 뇌속에서 대환장 파티의 향연이 펼쳐지게 되면, 이를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심리적 안정감을 유도하는 '세로토닌'의 분비량은 줄어들게 되는데, 그런 까닭에 사랑에 빠진 사람은 하루종일 사랑의 대상만 떠올리게 만드는 상태가 진정되지 않고 오래 지속한다고 한다. 이렇게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해야 우리의 몸에 '상태 이상', 또는 '이상 증세'가 나타나게 되므로 우리 몸속의 혈액의 흐름만 담당하는 '심장'이 아닌 '뇌'에서 작용한 덕분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누가 사랑에 빠진 것일까? 놀랍게도 등장인물 거의 모두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동안 몰래 '비밀 연애'를 즐기던(?) 대호와 하나 커플은 '공개 연애'를 선언했고, 하나의 남동생 최고도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서도 '동물'을 귀여워하는 최고가 좋다며 고백을 한 여자아이와 갑작스런 연애를 시작한다. 거기다 대호의 형인 웹툰 작가(백수) 루이도 영화관 알바를 소개시켜준 오래된 여자 동창과 분위기 좋은 데이트를 한 뒤에 곧바로 '사귀자'는 사랑고백을 했고, 하나의 할머니 친구인 '반짝이 여사'도 남편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옛이야기를 들려 준다. 허나 '사랑의 유효기간'은 고작해야 3년 뿐이라는 사실! 이때 사랑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신경 전달 물질은 바로 '옥시토신'인데, 이 신경 전달 물질은 찐 사랑을 할 때만 분비된다. 그러나 옥시토신의 효과는 결코 '지속적'이지 않다. 첫 눈에 반했을 때 가장 많이 분비된 뒤로부터 '옥시토신의 효과'는 점점 떨어지며 감정이 무뎌지게 된다고 한다. 마치 첫 아이스크림은 정말 맛있지만, 두개, 세개, ... 열개, 스무개를 먹게 되면 점점 맛난 줄 모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계속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렇게 오랜 연인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옥시토신의 효과'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무덤덤한 감정 상태가 되어도 사랑하는 연인과 오랜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다고 한다. 첫 눈에 반해서 콩깍지 제대로 낀 상태로 결혼까지 했지만, 아이를 낳고도 오순도순 옥신각신 지지고 볶는 일을 겪은 뒤에도 인생의 황혼기까지 평생 살아갈 수 있는 연인은 바로 '옥시토신 분비'를 상당량 경험한 커플만이 백년해로를 하게 된다고 한다.

반면에 이별했을 때 느끼는 아픔 역시 '신경 전달 물질' 때문이란다. 이별한 상태에서도 헤어진 연인 사진을 보게 되면 '사랑했던 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바로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이고, 몸을 흥분시키는 '노르에피네프린' 또한 다시 분비되지만, 헤어진 사실을 깨닫고 다시 화나고 슬퍼지게 되는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코르티솔'이 엄청 분비되기 때문이란다. 바로 기분을 좋게 하는 '도파민'과 몸을 흥분시키는 '노르에피네프린'과 상반되는 작용을 하는 '코르티솔'이 헤어진 아픔과 슬픔 때문에 폭발적으로 분비되고,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이 우리 뇌속에서 소용돌이를 치면서 스트레스가 쌓여 고열과 통증 등의 증상이 우리 몸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란다. 심장이 아프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은 바로 이런 '상반된 신경 전달 물질'이 우리 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란다. 이 때의 고통은 '뜨거운 물체'를 피부에 닿게 해서 생기는 화상이 생기기 직전과 같은 고통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토닥토닥 다독여주며 달래주길 바란다. 엄청 아플테니까 말이다.

나오는 글 : 이런 뇌과학적 사실들을 밝혀내면 뭐가 좋은 걸까? 단순히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서 '신경 전달 물질'을 인간의 뇌안에서만 생성하는 것이 아닌 '외부'에서 만든 인공 물질을 복용하게 되면 우리 몸에 나타나는 '이상 증세'를 완화시켜주거나 반대로 '강화시켜'주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시기상조다. 자칫 우리 뇌속에서 적당량이 분비되어 '정상'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외부에서 강제로 '신경 전달 물질'을 인위적으로 주입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신경 전달 물질'과 같은 것은 충분한 '임상 시험'을 거치고 난 다음에 위험성이나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만든 다음에 사용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위에는 알게 모르게 '마음의 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을 하는 원인이 바로 '뇌속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적당량으로 적절하게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아주 획기적일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감정이 풍부한 지구인이 아닌 '이성적인 외계인들'은 사랑에 빠지질 않았다. 귀염둥이 아싸의 겉모습으로 변신을 하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던 '호리호리 행성의 외계인' 도됴리는 자신의 외모에 반해서 사랑고백을 하는 다섯 명의 여자 아이와 모두 '오케이'를 하는 바람에 바람둥이로 찍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젤리족 외계인'들의 지구 침공이 곧 임박했다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주름 개선 치료까지 포기하고 지구행 우주선에 탑승한 '보스'도 곧 도착한다고 한다. 그밖의 외계인들도 각자 나름의 이유 때문에 지구를 향하고 있다는데, 과연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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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개정증보판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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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개정증보판>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25)

[My Review MMCLXXVI / 인물과사상사 30번째 리뷰]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다섯 번째 리뷰다. 재작년부터 읽고 있는 '강준만 교수'의 <역사 산책 시리즈>를 올해도 이어서 리뷰하련다. 그래서 26년 1월 [이달의 작가 3 : 강준만]이다. 한 달 안에 다 읽을 순 없겠지만, 최대한 부지런히 읽고 쓰려 한다. 역사리뷰에서 중요한 것은 '시대 흐름'을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리뷰는 좀 다르다. 시간의 흐름대로 리뷰를 하면 좋겠지만 좀 뒤죽박죽으로 쓰곤 한다. 현대사 쓰다가 고대사를 읽기도 하고, 근대사 읽다가 중세사에 꽂히는 좀 이상한 리뷰어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내 역사리뷰는 시대 흐름을 따르지 않고 '의식의 흐름'을 따르려고 한다. 뭐, 쉽게 말하면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리뷰하겠단 말이다. 그러다 시리즈를 거의 다 읽었을 때즈음에는 '강준만의 <역사 산책>'의 내용을 다 훑어보았으므로 다시금 차분히 '시대 흐름'대로 리뷰를 정리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 양반이 워낙 책을 많이 펴내신 관계로 다 읽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중간중간에 '또 다른 책 리뷰'도 쌓이고 밀리다보면 어쩔 수가 없어서 그런다. 모쪼록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을 애독(?)해주시는 극소수의 독자분들께 너른 양해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 만큼은 약속 드리겠다. 내 리뷰는 언젠간 반드시 쓴다는 것을 말이다. 단지 에둘러 돌아다니다가 좀 늦을 뿐..쿨럭쿨럭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의 관전 포인트 : 60년대편 1권과 2권에 걸쳐서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서 자세히 풀어놓고 있다. 애초에 3권 분량으로 1960년부터 1969년까지 풀어놓았는데, 그 가운데 '쿠데타'에 관한 부분만 두 권에 걸쳐 거의 '한 권 분량'으로 다뤘다. 이것만 봐도 '박정희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5·16 군사쿠데타'이고, 이를 제대로 정립하지 않고서 '박정희 정부'를 논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5·16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

내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때만 해도 '5·16 혁명'이라 배웠다. 교실의 칠판 위에는 '태극기'와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의 사진이 걸려 있던 때였다. 그 어릴 적에 기억나는 것이라곤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내용 딸랑 하나 뿐이었다. 우리 나라의 민주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4·19 혁명과 5·16 혁명이 있는데, 둘 중에 더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5·16 혁명이라고 말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위인이라고 말이다. 그리곤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앵무새처럼 외운 듯 한자 한자 힘주어 말씀하시곤 다른 말씀에는 말을 아끼신 듯 더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가장 중요한 위인이라고 말씀하시고서는 그에 대한 '근거'나 '이유'를 말씀하셔야 하는데 말이다. 지금에서야 당시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지만 '그 이상의 거짓말'을 늘어놓지는 못하신 듯 싶었다. 하긴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이 80년대였다. 누가 '진실'을 감히 말할 수 있었겠는가. 비록 79년에 박정희가 서거하였고, 80년에 전두환이 탈취하듯 집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엄혹한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그저 쉬쉬할 뿐이었으리라.

그래도 난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수업중에는 늘 박정희와 전두환이 훌륭하신 분이라고 해놓고는 그 뒤에 당연히 따라 붙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시는 선생님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다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해서 썩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조금 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으셨던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선 뒤였다. 물론 87년 6월 혁명이 있고난 뒤였다. 그나마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니 조금 더 말씀하실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수업중에 사회시간이나 국사시간에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대한 부분은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학년말 고사를 볼 때에는 늘 시간에 쫓기듯 '일제강점기'를 휘뚜루마뚜루 넘기시더니 45년에 해방되었고, 50년에 전쟁이 일어나 우리 나라가 참 힘들게 살았다는 말씀으로 대부분 수업을 마치셨다. 이승만 정부나 박정희 정부에 대한 평가는 초중고를 통틀어서 단 한 번도 수업 받은 바가 없을 정도였다.

당시 어른들도 이승만은 나쁜놈이라고 말하고, 박정희는 대단한 분이라고 말씀하시곤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분위기였다. 왜 그랬을까?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을 읽으며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퍽 힘든 일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당시의 세태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우리 속담이 있었는데, 어린아이들도 다들 알고 있던 속담이었다. 바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 말이다. '항상 말조심해야 한다'는 평범한 뜻이지만, 그 속에 뼈 아픈 진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바로 밤낮으로 '독재정부'가 철통 같이 국민들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시대에는 '진실과 거짓'을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독재정부의 권력' 찬동하면 바른말이 되었고, 반동하거나 부정하기라도 하면 나쁜말이 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병신이 되어 나온다는 끔찍한 진실이 감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박정희 정부 때 만들어진 '중앙정보부(일명 '중정')'는 절대로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었고, 실제로도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러면 처음에 물었던 질문에 유추가 가능해진다. 5·16이 '혁명'이었다면 박정희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무도한 '군사쿠데타'였고, 권력을 차지해서 '부정부패'를 일삼았기 때문에 그 추악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 '중정' 따위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다. 박정희 군사독재를 국민들이 찬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박정희를 열렬히 환호했고, 권력을 잡도록 용인했으며, 그가 장기집권을 할 때에도 좋다고 응원했다. 그건 박정희를 '국정혼란을 막아낸 영웅이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박정희 정부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전 정부였던 '이승만 정부'가 너무나도 무능했던 덕을 크게 보았다. 우리 국민들은 그 모진 세월을 다 보내고 4·19 혁명으로 겨우 빛을 되찾나 싶었는데, 이후에 들어선 '장면 내각'도 그닥 신통치 못했기 때문이다. 나라꼴은 이승만과 자유당의 부정부패로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이를 해결하고 문제를 타개할 '장면 내각'은 혼란을 멈추기는커녕 더욱 부채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실제로 '장면 내각'이 들어선 뒤에 전국적인 시위는 점차 하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애초에 민주주의라는 것이 시끌벅적한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여야의 논쟁과 다툼은 오직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서 벌일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더 좋은 정책, 더 나은 행정으로, 어려워진 나라꼴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여념이 없었다고 평가한다면 '장면 내각'은 좋은 점수를 줄 수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왜냐면 이승만과 자유당이 너무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자유당이 망쳐놓은 국정을 다시 잘 세우고 있던 '장면 내각'이 왜이리 욕을 먹었던 것일까? 그건 바로 '부정부패'로 재물을 쌓아올린 비리 정치인과 이를 감싸주는 대가로 부정하고 부패한 정치인을 옹호하던 '언론의 무능함' 때문이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있어서는 안 되는 '두 존재'가 서로 합작을 하고서 '장면 내각'을 망치는데 아주 열일을 하고 있던 것이다. 이러니 국민들은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데, 정치인과 언론인이 협작을 해서 국민들이 열불이 날 만한 기사들만 쏟아내고, 조금이라도 올바르고 정직하게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오명을 뒤집어 씌워서 바른 정치를 하지 못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장면 내각의 리더십 부재'였다. 앞선 리뷰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장면은 '정치인'이 되기에 너무 청렴결백하고 순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천주교 신부님으로 딱 어울릴 사람이었지, 때론 욕을 먹더라도 정치 생명을 걸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전혀 없는 순딩순딩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전국이 시위로 들썩이고 부패한 정치인과 언론인이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묵살한 채 '협잡'을 하고 있을 때에도 묵묵하게 자기 '개인적인 삶'을 청빈하게 맑고 깨끗하게 지킬 뿐이었다고 한다. 정치는 더러운 곳에 두 발을 담고서라도 화려한 꽃을 피워내는 '연꽃'처럼 해내야 하는데, 장면은 더러운 곳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혼자만 맑고 깨끗한 채 했던 것이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이런 정치인이 정말 좋았겠지만, 6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은 '노땡큐'였던 정치인이었다. 이게 4·19 혁명 이후의 대한민국 현주소였다.

이제 전국민은 '장면 내각의 무능함'을 실감하게 된다. 독야청청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굶주린 배를 쥐어 뜯는 국민들의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말이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바로 '박정희'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처럼 '혁명군'은 무능한 장면 내각을 '접수'하고서, 나라를 '병영국가'로 탈바꿈 하려 했다. 모든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고 여차하면 '전쟁'도 불사할 강한 정신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내겠다는 '포장'을 하고서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일시적인 정치혼란이 정리되면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하겠다고 장면 총리와 약속하기까지 했다. 그 약속을 헌 신짝처럼 내던지는 데에 1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들은 '박정희'에 열광했다. 모든 문제를 군사적으로 신속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감탄을 할 정도였단다. 벌 줄 놈 벌주고 혼낼 놈 혼내주는 모습을 연출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차츰차츰 '군사기지'처럼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학생들에겐 '혁명공약'을 외우도록 시켰고, 그런 공약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국민들을 솎아내기 위한 '감시'도 활발히 벌였다. 순진무구한 학생들은 이웃들 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까지도 '혁명공약'대로 하지 않았다며 밀고(!)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박정희 정부에 반동하고 부정하는 것을 넘어 '몸에 좋은 쓴말'과도 같은 충언까지 발본색원하듯 잡아들여 '중정'에서 처리했다.

나가는 글 : 물론, 박정희 정부의 공과를 이와 같은 '일부분'만 놓고서 평가를 내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다 알고 있는 사실들 아닌가? 그 당시 국민들은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기에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겠지만, 오늘날에는 '알 것'은 다 알 수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 사람들이 '무능한 이전 정부에 대한 반감'에 의해 "박정희 정부가 차라리 낫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박정희 정부'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한 때는 '세뇌' 당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고도 '윤어게인'을 외치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다. 그건 바로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심리 때문이었다. 흔히 '사이비 종교'나 '음모론'에 빠진 사람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런 비논리적인 일이 왜 벌어지는가 분석해보면 '그게 마음 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게 왜 마음 편한지에도 '이유'가 없다. 그냥 편한 것이다. 매우 비논리적이다. 하지만 비논리적인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다가가면 그냥 '불편'할 뿐이다. 굳이 입 아프게 대꾸를 할 필요도 없는 셈이고, 그게 가장 좋은 '상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런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다수일 때다. 저들이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릴 때를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저들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행하는 짓을 보라. 그들의 궤변은 또한 어땠던가. 저들은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직 준엄한 법심판만이 해결책일 것이다. 이걸 지금의 대한민국이 해내야 한다는, 아니 반드시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만 더 굳어진다. 지금은 이 책을 이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리뷰하고 있지만, 조만간 총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리뷰를 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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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5 : 소용돌이치는 사춘기의 뇌 (특대호)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 글, 김현민 그림, 이고은 자문 / 아울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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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5 : 소용돌이치는 사춘기의 뇌 (특대호)>  정재승 / 정재은 / 아울북 (2024)

[My Review MMCLXXV / 아울북 42번째 리뷰]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박> 네 번째 리뷰다. 이 책의 시리즈는 벌써 15번째이지만 아직도 끝맺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즌 1을 10권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시즌 2로 새로 시작하였고, 아마도 20권까지는 순항을 하지 않을까 예상을 해본다. 그럼 거기서 이야기를 종지부 낼까? 글쎄, 이 책이 '어린이 뇌과학 프로젝트'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쉬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왜냐면 아직도 '뇌과학 분야'는 미지의 영역이 많기 때문이다. 탐구할 것도 많고 응용할 수 있는 학문도 엄청나게 많다. 아직까지도 '인간의 뇌'는 정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심리학'에서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기 위해 '꿈(무의식)'을 들여다보다가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보기도 했다가 가장 최근에는 '뇌과학'과 운명적인 만남을 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기 위해 지금은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이번 책은 바로 우리 '청소년들의 사춘기'를 탐구하고 있다. 그럼 잘 따라오기 바란다.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5>의 줄거리 : 흔히 청소년의 마음상태를 '질풍노도의 시기'로 정의 내리곤 한다. 그만큼 청소년 시기에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심하게 흔들리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2차 성징'이라고 하는 몸의 변화가 청소년들의 심리 상태를 더욱 들쑥날쑥하게 만들곤 한다. 몸 여기저기에서 털이 자라기 시작하고, 목소리도 점점 어른스러워져서 깜짝 놀라게 된다. 이런 몸의 변화를 초기에는 눈치 채지 못하다가 어느날 문득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을 때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몸의 변화와는 다르게 '마음의 변화'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게 느껴진다. 여전히 철딱서니 없고 아무 생각도 없고 어딘지 모르게 덜 떨어진 행동을 하는 것이 영락없는 '어린이'와 다를 바가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동성 친구'보다 '이성 친구'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이유를 알 수 없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경험을 하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불안감에 벌벌 떨 것까지는 없지만, 그런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하면 당혹감에 버럭 화를 내기도 하면서 '심한 감정 변화'에 자신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그렇지만 딱히 놀랐다는 티를 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우리의 주인공들인 '생선파' 가운데 한 명이었던 갈치가 '가출'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벼르고 별렀던 '유명 메이커의 새 신발'을 엄마는 갈치의 속마음도 몰라주고 또 다시 '공부 잘하는 형'에게 주고 말았다. 그동안 한 집안에서 비교 당하며 설움을 당했던 갈치는 이번 만큼은 참지 않았다. 그래서 가출을 한 것이다. 하지만 치밀한 준비를 하고 가출한 것도 아니기에 수중에 돈 한 푼도 없는 신세가 눈 깜짝할 사이에 되고 말았다. 이런 섣부른 행동을 곧바로 후회하고 다시 집에 들어갈까 생각도 했지만, 또 다시 '비교당하기'를 당할 것이 뻔했기에 친구인 '대호'네 집으로 무작정 가고 말았다. 물론 대호의 형 루이(웹툰작가)가 갈치 몰래 갈치네 엄마에게 자신의 집에서 며칠 동안 데리고 있겠다고 연락을 했고 말이다. 그렇게 갈치의 무전취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대호도 학원 딸 하나와 사귀게 되면서 열심히 공부하던 모드에게 다시 예전처럼 '생선파'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바빠졌다.

자, 이렇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놀던 가락이 있었기에 중학생이 되자 더욱 활개를 치며 신 나게 놀러 다니게 되는데, 이런 '생선파의 모습'을 또래 아이들에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나의 친구의 눈에 '불량배'처럼 노는 대호의 모습을 보고 하나에게 남몰래 귀띔을 해주게 되었다. 바로 '뒷담화'다. 하나는 새롭게 사귀게(?) 된 대호가 그런 불량학생이라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뒺담화를 듣게 되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는 대호의 뒤를 밟게 되었고, 뒤를 밟은 뒤에 알게 된 사실은 대호가 생각 밖으로 '정의로운 멋쟁이 영웅'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오해를 풀게 된 하나와 대호는 더욱 사이가 돈독해질 것도 같았지만, 학교에서 모둠 활동을 하면서 하나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타입의 '모둠원'과 짝이 지어지면서 엄청난 사건을 겪게 된다. 서로 마음이 전혀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모둠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아니 '최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도데체 무엇일까?

나가는 글 :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외계인의 눈으로 바라본 지구인'이란 제목의 관찰보고서다. 그래서 제목도 <인간 탐구 보고서>인 것이다. 그 가운데 한 보고서는 '감정이 들쑥날쑥한 사춘기 지구인들'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사춘기의 특징'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이다. 한마디로 '내 마음 나도 몰라'인데 어느 누가 '사춘기'를 정의 내릴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당신이라면 자기 내면을 되돌아보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자주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즘 어른들은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을 향해 '중2병'이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다. 사춘기 시절의 갈팡질팡 들쑥날쑥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질병'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그럼 '중2병'이니 그냥 냅둬야 하는 것일까? 사춘기에는 치료약도 없고, 오직 '시간'만이 흐르고 흐른 뒤에 저절로 치유되길 바라야 되는 걸까? 사춘기는 '인생의 황금기'이자, 평생 동안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가치관 형성'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어찌 그냥 흘러만 가도록 냅둘 수 있겠는가 말이다. 심지어 100여 년 전에는 15살 쯤이면 '시집/장가' 갈 나이였고, '어른 대접'을 해줬으며, 심지어 '부모'가 되어서 자녀도 한둘 기르고 있었을 나이다. 그런 나이인데 허송세월하며 '중2병' 타령하며 빈둥빈둥 거릴 것인가?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기왕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몸'의 변화에 맞춰서 '마음'도 한껏 성장할 준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럼 청소년 사춘기 시절에 어떻게 몸과 마음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

바로 '롤 모델 찾기'다. 자기 주위에 본받고 싶은 어른이 있다면, 그 어른이 하는 말과 행동을 따라해보면 어떨까? 학교 선생님도 좋고,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좋다. 또는 <위인전>을 읽기에도 딱 좋은 시기다. 인류의 공영과 발전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의 생애를 살펴보고 따라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물론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라면 엄마, 아빠도 훌륭한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런 주위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고 장단점을 비교분석해보는 것도 좋다. 세상에 완벽하게 똑같은 사람은 없다. 이는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가치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위인이 지닌 '가치관'이라고 하더라도 나와 맞지 않고, 더 훌륭한 가치관이 떠올랐다면 더 좋은 쪽으로 '가치관'을 형성해가는 것이 백 번 옳은 일이다. 단, 독단적인 고집을 부려 '독불장군'처럼 굴지는 말길 바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말 좋은 '생각(가치관)'이라고 할지라도 상대에게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소년기에 형성된 가치관은 아직 '완성형'도 아니다. 그러니 가치관도 '갈고 닦는' 연마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갈고 닦은 가치관을 또래 친구들에게 선보여 주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진짜 멋진 가치관이라면 혼자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니 말이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을테니 '수정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말이다. 이처럼 사춘기를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을 것이다. 이 책에도 또 다른 방법에 대한 귀띔이 있을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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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생존 게임 주권인가 종속인가 - 대한민국 AI 3대 강국 선언, 소버린 AI로 기술 주권의 미래를 그리다
변형균 지음 / 한빛미디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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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생존 게임 주권인가 종속인가 : 대한민국 AI 3대 강국 선언, 소버린 AI로 기술 주권의 미래를 그리다>  변형균 / 한빛미디어 (2025)

[My Review MMCLXXIV / 한빛미디어 2번째 리뷰]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세 번째 리뷰다. 최근 들어서 부쩍 AI 관련 소식이 많아지고 있다.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알파고' 덕분에 확실히 기선제압을 하더니 오픈AI가 내놓은 '챗GPT'로 인해 AI는 이제 먼 미래의 가상이 아닌 '기정사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 증거로 젠슨 황의 '엔비디아' 주가가 들썩이면서 전 세계가 'AI 주권'을 놓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만 봐도 확실히 그렇다. 그래서 26년 새해에는 <AI 관련서적>을 [올해의 테마 1]로 잡아 다가올 2030년 미래를 대비하고자 한다. 이미 작년부터 몇 권의 관련 책을 리뷰했지만, 지금 현재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듯 출간되고 있다. 지금 눈여겨 보지 않으면 미래에는 손 쓸 틈조차 없을 것이다.

<주권인가 종속인가>의 줄거리 : 책 제목에 이미 다 나와 있다. 참으로 친절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읽어보면 더욱 그렇다. AI에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독자가 읽더라도 까막눈이 될 걱정이 없을 정도로 '자세하고 쉬운 설명'이 덧붙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유형의 책이 불편한 점이 있다. 바로 '깨알 같은 글자'로 전체를 도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가 갈수록 '노안'이 오는 것인지 글자가 작은 책들은 조금씩 기피하게 된다. 그래도 읽으면 어렵지 않은 내용이기에 술술 읽어갈 수 있었다. 자, 이제 책 내용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AI 강국에 속해 있단다. 세계 순위로만 봐도 11위에 올라섰다.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쟁쟁한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뒤쳐지지 않고 나름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국뽕이 차오르는 걸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국뽕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고 저자는 방점을 찍는다. 왜냐면 AI 기술의 특징 상 1위가 아니면 그 아래 순위 국가들은 '종속'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현재 11위라고해서 안심할 단계가 전혀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전 세계 1위로 거듭날 수 있는가?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아니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장한다. 왜냐면 대한민국 경제력과 기술력으로 전 세계를 다 꺾어누르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더불어서 현재 1위인 미국의 기술력에 1/10도 미치지 못하는 기술력으로 따라잡기에는 너무나 버겁기 때문이다. 이런 난제를 뚫고 실현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냉철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100%가 가능하더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건 또 왜 안 되냐면, 우리가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AI'를 만들면 다른 나라가 우리 것을 쓰지 않게 되어 결국 폐쇄적인 AI만 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개방'이 되어 있는, 그러면서도 '통제력'을 발휘해서 다른 강대국에게 종속되거나 휘둘리지 않을 당당함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란다.

<주권인가 종속인가> 관전 포인트 : 그렇다면 어쩌면 좋을까? AI 기술력을 첨단으로 갖추되 너무 무리해서 기술력을 확보하려 들지 말아야 한단다. 또한, 기술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결국 다른 나라의 것을 '빌려 쓰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으니 결국 주권을 잃고 종속하게 된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AI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력 향상'이 급하지만, 단순히 '기술력'만 향상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기술력'만 높게 되면 다른 나라들의 견제가 심해지고, 우리 스스로도 갈라파고스화가 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기술력'을 높임과 동시에 '효율성'도 함께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AI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바로 '소버린 AI'를 말한다. 이것은 '한국판 챗GPT'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완성하고, 효율을 높이게 되면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AI 3대 강국'에 올라설 수 있다고 한다.

이게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과거의 냉전시대처럼 현시점에 자유진영의 미국과 공산진영의 중국이 대립하는 구도로 짜여진다면, 대한민국은 제3진영의 우두머리를 차지하고, 미국이나 중국에게 종속되기 싫은 나라들을 포섭해서 전 세계의 견제와 조율을 할 수 있는 나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과 달리 '제국주의의 역사', 다시 말해, '침략의 역사'를 갖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편도, 중국편도, 모두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까지 갖추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언급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상황만 봐도 전세계는 대한민국에 '러브 콜'을 보내는 까닭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이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또 있다. 대한민국이 완벽한 AI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먼저 천문학적 개발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이다. 파운데이션(기초)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유지 보수하는 비용이 막대하게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짐작컨대 수조 원 단위로 들 것이라고 한다. 거기다 막대한 투자 자본도 꾸준히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재를 채용할 비용까지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더 큰 문제인데 '높은 실패 위험'을 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투자라는 것이 그렇다. 모 아니면 도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술 개발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는데 그럴수록 투자 비용은 점점 더 막대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과연 대한민국 기술력에 대한 신뢰도가 이런 막대한 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꾸준히 안정적일 수 있을까?

이런 엄청난 단점에도 'AI 주권 확보'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고, 성공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남의 기술'을 빌려 쓰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당장은 비용을 절감하고 '가성비'가 높아보일지 몰라도, 남의 기술력에 의존한 대가를 톡톡히 치뤄야 할 것이다. 이는 '식량 주권'으로 대체해서 상상을 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세 가지 필수 요소로 '의, 식, 주'를 꼽지만, 옷과 집이 없어도 생존을 하고 자립을 하는데 시간적 여유를 벌 수 있지만, '식량 주권'을 잃어버리고 당장 남의 나라 식량을 꾸어오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면 당장 굶어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식량 주권'을 잃어버렸기에 다른 나라가 담합을 하고 '식량'을 엄청 높은 가격으로 올려도 울며 겨자 먹는 격으로 비싼 값을 치루고 사올 수밖에 없다. 먹지 못하면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AI 미래사회'가 바로 그렇다. 국산 AI가 성능이 좋지 못하면 높은 성능의 AI를 가진 나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나라가 '사용료'를 올리면 어쩔 수 없이 부르는대로 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AI 주권'을 잃은 상태에서 화재로 인해 데이터센터 같은 곳이 사라져버리게 되면 'AI 기술'에 의지하던 시스템이 하루 아침에 망가져서 모든 업무를 '수동'을 해야 하는 대혼란을 맞게 될 것이다. 물론 나와 같이 '컴퓨터'조차 구경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경험한 세대는 그런 상황이 와도 어찌어찌 해볼 궁리라도 할 수 있겠지만, 태어나면서부터 'AI 기술력'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세대들은 당장 멈춰버린 스마트폰을 부시면서 분노를 금치 못할 것이다. 뭐, 사람은 나름 답답함을 견딜 수 있을지라도 '국가시스템'이 AI에 의해서 운용되다가 하루 아침에 '수작업'으로 대체하게 된다면 그 혼란을 어찌 수습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런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면 'AI 시대'에는 국가경쟁력이 삽시간에 한참 뒤처져서 다시는 회복불가능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 끔찍한 일은 'AI 통제권'을 빼앗긴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남의 소스를 빌려다 쓰고 있을 때, '우리의 현실'에 맞게 고쳐쓰려고 해도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의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 사사건건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며, '허가'를 해주지 않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쓸 수가 없는 상태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우리 기술로 만든 'AI 기술'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말할 것도 없이 '통제권'이 우리 손에 있으니 우리의 실정에 맞게,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소버린 AI'이란 국산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에피소드 :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소버린 AI'를 갖는 것에 만족하면 될까? 단순히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이 모델을 창조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며, 여러 기술력으로 겹겹이 쌓아나가야 한다. AI는 단순히 모델 하나 완성했다고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프라'도 구축이 잘 되어 있어야 하고, '데이터'도 차곡차곡 쌓아야 하며, AI의 두뇌에 해당하는 '모델 및 알고리즘'도 탄탄하게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거버넌스'라는 거대한 규칙과 철학으로 고성능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비전을 갖고 있어야 제대로 된 '통제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AI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 성능의 '반도체메모리'를 보유하고 있고, '인프라'도 탄탄히 갖추고 있다. 반면에 '데이터'의 국산화에 소홀히 하고 있고, '알고리즘' 기술을 개발할 인재가 부족하며, 앞으로 국산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활용할 줄 모른다면 대한민국은 2030년 즈음에 다시금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를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다행스럽게도 있다. 현재 높은 수준의 AI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성능 반도체를 우리 손으로만 만들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 세계 굴지의 AI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고가로 사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이점을 잘 활용한다면 반도체를 팔아서 생기는 수익으로 'AI 기술 개발'을 위한 비용으로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전 세계 'AI 기술 개발의 속도'를 우리가 조율할 수도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현재 11위인 우리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데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AI 인프라'가 너무 잘 깔려 있다. 그러니 우리의 기술력만 높일 수 있다면 우리는 바로 'AI 시스템'을 실생활에 접목시켜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다. 이는 인프라 구축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국가보다 훨씬 더 유리한 입장인 것이다. 여기에 바로 '국산 모델'인 소버린 AI를 우리가 갖고 우리가 상용화시킬 수 있고, 이것이 매력적이어서 다른 나라에서까지 사용하려고 몰려 들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AI 주권을 갖게 되고 AI 시대가 펼쳐질 때 날개를 단듯 훨훨 비상할 것이 틀림 없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먼저, 기술 개발 투자금을 엄청나게 확보해야만 한다. 그리고 AI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하고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국산 모델을 개발한 뒤에 곧바로 실생활에 활용해서 쓸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을 탄탄하게 하고, AI 기술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예상하고 바로 실행할 수 있도록 비전을 키워내야만 한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큰 숙제는 '막대한 비용 마련'으로 돈 문제가 선결되어야겠지만, 돈 문제는 언젠간 해결될 일이니 우리 모두가 AI에 관심을 갖고, 대한민국 정부가 AI 정책을 추진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동참해야 이 모든 숙제가 비로소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다. 이제는 가성비 운운하면서 '외국제품'을 선호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왜냐면 'AI 주권'을 잃게 되면 결국 '종속'만이 답이 될 수밖에 없고, 한 번 뒤처진 AI 기술력은 인간의 노력으로 뒤집을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종속 당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한민국에 '역전 할 실력'이나 '기회'조차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AI 기반의 한 부분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렇게나 앞서고 좋은 조건을 우리가 쥐고 있는데,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주저 앉아 '종속'되고 만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느냔 말이다. 이제라도 올인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단다. 대한민국은 언제나 성공해내는 귀감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잘 할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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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들의 수첩 - 수학이 여자의 것이었을 때
이다솔 지음, 갈로아 그림 / 들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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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여자의 것이었을 때 숙녀들의 수첩>  이다솔, 갈로아 / 들녁 (2019) [영제 : The Ladi's Diary : or, Woman's Almanack]

[My Review MMCLXXIII / 들녁 8번째 리뷰]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두 번째 리뷰다. 늘 쓰던 리뷰지만 이렇게 격을 맞춰서 쓰려니 막상 어색하기 짝이 없다. 좀더 자유분방하게 쓰는 것이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구독자'도 늘리고 조금이라도 '수익'을 얻기 위해서 뭔가 활로를 찾아야하겠기에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련다. 이번 책은 인문교양을 쌓을 수 있는 '웹툰 만화'책이다. 우리들에게 '곤충박사(현재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지는 모르겠다)'로 널리 알려진 김도윤(갈로아)가 <수학동아>라는 잡지에 연재하던 기획물인데, 이렇게 단행본으로도 나왔었다. 평소에도 갈로아의 책은 즐겨 읽었는데 이런 책이 있었는 줄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많이 게을러진 게 분명하다. 좀 더 부지런을 떨자는 차원에서 2026년 1월의 [이달의 작가 2 : 갈로아]를 선정하려 한다.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평소 한 달에 20여 편의 리뷰를 써왔기에 [이달의 작가]가 딱 한 명일리는 없다. 많게는 20도 넘을 수 있으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즐겨주시면 좋겠다. 어차피 리뷰 쓰는 나만 죽어라하고 쓰면 되는 거니까..쿨럭쿨럭

<숙녀들의 수첩> 줄거리 : 엘리 캠벨이라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영국 사회를 그리고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 엘리라는 소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수학' 공부였다. 아니 여자아이가 수학을 좋아한다고? '특이한 여자 아이'네 싶다면 이 책의 기획의도를 제대로 짚었다. 요즘의 상식으로는 여자는 수학을 좋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18세기 영국에는 <숙녀들의 수첩>이라는 '수학잡지'가 꽤나 유행을 했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여성'이 주요 독자층이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18세기에는 '수학'이 여성들의 교양이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사회에서도 '여성'에게 수학을 잘하기를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사실(fact)이었다.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현대사회에서 여성에게 '수학'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럼 왜 오늘날에는 여성들이 수학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이런 의문점을 갖고서 이 책의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소녀 엘리는 <숙녀들의 수첩> 편집장의 조수가 되어 허드렛일을 도와주게 된다. 평소에도 좋아하던 '수학잡지'를 직접 만드는데 참여하게 된 것에 기쁨을 누리던 던 순간에 엘리는 또 하나의 기쁨과 만나게 된다. 바로 '여성 수학자'이자 '최초의 여성 수학교수'인 마리에 아녜시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둘은 함께 <숙녀들의 수첩>을 만드는데 참여하게 된다. 그러면서 엘리를 중심으로 <숙녀들의 수첩>이 만들어지게 되는 일련의 과정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물론 그러는 중간중간에 인류 역사에 위대한 '여성 위인'들도 탐방할 수 있고, <두뇌는 평등하다>(론다 쉬빈저, 서해문집, 2007)라는 책과 비교분석한 내용이 첨가되면서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수학자나 과학자 가운데 여성이 절대적으로 소수일 수밖에 없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짚고 있다.

<숙녀들의 수첩> 관점 포인트 : 앞서 언급한 18세기에는 여성들에게 수학이 권장되었는데, 19세기 이후에는 왜 여성들에게 수학이 기피 대상이 되었는가 라는 의문을 푸는 것이다. 그럼 먼저 18세기에는 왜 여성들에게 수학이 권장되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건 다들 아시다시피 여성의 '사회진출'이 원천적으로 가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진출이 막혀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 당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었는데 왜 여성들에게 수학공부를 권장했던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기함할 정도로 놀랐던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교육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수학공부를 권장했다는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 남성들이 좋아했던 여성상은 '현모양처'였다. 지혜롭고 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성에게 순종적인 여성상 말이다. 이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옛날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집안에서 예쁘게 꾸미고 탱자탱자 놀고 먹지만 말고 밖에서 뼛골 빠지게 일을 하는 남성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여성에게 '지혜로움', '현명함', 이런 것들을 요구했고, 집안 살림부터 남편 사업의 손익계산을 하는 일이라도 덜어주는 차원에서 여성들에게 '수학공부'를 장려했더란 말이다. 결국 사회진출을 위한 공부는 허락할 수 없지만 '내조의 여왕(!)'이 되기 위한 공부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다는 심보에서 18세기에 여성들의 수학공부를 장려했던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숙녀들의 수첩>이란 '수학잡지'는 무려 130여 년동안 꾸준히 팔려 나갔더란다.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황에서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남성들 못지 않은 성취욕구가 왕성한 여성들 사이에서 <숙녀들의 수첩>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고, 어차피 사회진출도 하지 못하겠지만 '똑똑한 여성'을 마다 하지 않던 남성들도 <숙녀들의 수첩>에 대해서 일부분이지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다. 오늘날의 수학이나 과학이 '전부'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기획되고 있는 점이 여성들이 수학이나 과학을 싫어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숙녀들의 수첩>이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성의 관심사'를 수학문제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수학문제'라고 하면 로켓의 발사속도를 구하고, 야구나 축구 경기의 승률을 구하는 문제가 전부인데, <숙녀들의 수첩>에는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로맨스'나 '사랑'에 관한 수학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수학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둘은 파티장에서 처음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을 하고 결혼을 약속했다. 그리고 남자가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여자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여자의 완고한 아버지는 결혼 허락을 하지 않으셨고, 슬픔에 빠진 남자는 허탈한 마음으로 여자의 집을 홀로 떠나게 되었다. 그 뒤 여자는 아빠에게 울면서 매달렸고 여자가 슬퍼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진 아버지는 결혼 승낙을 하게 되었다. 여자는 기쁜 마음에 얼른 남자를 뒤쫓아가려 했지만, 남자는 이륜 마차를 타고 1시간에 4Km/s의 속도로 떠난 뒤였다. 여자는 서둘러서 사륜 마차를 빌려서 30분에 5Km/s의 속도로 달린다면 여자는 얼마의 돈을 준비하면 충분할까? 단, 사륜 마차를 빌리는 값은 기본 요금이 10페니이고, 1Km당 3페니다.

실제 출제되었던 문제 유형과 유사한 문제를 재구성해봤다. 왜냐면 실제 출제문제는 오늘날의 사회관점으로 봤을 때 '여성의 인권문제'부터 시작해서 '결혼지참금'까지 담고 있기에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선하지 않은가? 요즘 나오는 수학문제집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이고, 여자아이들이 봤을 때 수학문제를 풀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요즘 나오는 수학이나 과학 문제집은 좀 참고해봄직 할 것이다. 여자는 수학을 원래부터 잘 할 수 없다고 단정지을 것이 아니라 '여자들의 관심사'에 맞게 집필을 수정하게 되면 여자도 어릴 적부터 수학에 남다른 관심을 쏟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요즘에는 '너무 남성중심적'인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곤 하니 개선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는 것이 좋을 듯도 싶다.

에피소드 : 실제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남성과 여성의 '취향'을 강요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왜 남자는 울면 안 되고, 여자는 울어도 괜찮은 것일까? 왜 남자는 파란색을 좋아해야 하고, 여자는 분홍색을 좋아해냐 하냔 말이다. 남자도 아프면 눈물이 나는 인간이긴 마찬가지고, 여자가 파란색 옷을 입어도 얼마나 예쁘냔 말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남자에게 치마를 입혀야 하고, 여자에게 무거운 짐을 들어서 애써 '평등'이라 우기는 것도 무식한 짓이긴 마찬가지다.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여장'을 해도 정말 예쁜 남성도 있는 반면, 남성보다 더 강한 '피지컬'을 가진 여성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하여 천편일률적으로 적용시키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라고 고정불변의 선입견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강요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런 고민들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오늘날의 페미니즘 논쟁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고 첨예하지만, 그런 심한 논쟁은 차치하고 진정으로 '양성평등'을 이해하고, '남녀차이'를 인정하고, '남녀차별'을 근절하려고 노력하는 여성운동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억눌린 여성'들에게 더 넓은 의미에서 사회진출을 보장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페미니즘이란 이름을 걸고 '대결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물론 최초의 여성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craft)는 그녀가 쓴 <여성의 권리 옹호>(1792)에서 여성의 교육기회와 양성평등을 주장했다. 그녀가 시초였기에 다소 과격한 주장을 폈고, 그런 까닭에 '페미니즘'은 폭력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지만, 남성 주류사회에서 여성의 동등한 인권선언을 강렬하게 인상지어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행보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전통(?)이 오늘까지도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의 행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여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더 문제라고 본다.

한편, 이 책에서 <두뇌는 평등하다>는 상당히 많이 언급되곤 한다. 그 때문에 이 책이 '어린이 독자'에게 "여자도 얼마든지 수학을 잘 할 수 있단다"는 메시지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적 사고'를 더해서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해서 우리가 해나가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개념을 확장시켜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숙녀들의 수첩>이 단순한 산수문제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삼각함수'와 '미적분' 문제까지 풀이와 정답을 실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이 잡지를 구독하던 있던 독자들의 수준이 꽤 높다는 것을 유추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잡지를 여성들만 좋아한 것이 아니라 남성들도 상당히 애독해왔던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어린 소녀들뿐만 아니라 소년들도 '수학교재'로 활용할 정도로 보편적인 수학문제를 수록하였고, 독자들이 직접 '수학문제'를 만들어서 투고하고, 그 문제의 '정답'을 맞추려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바로 이 잡지가 130여 년 동안 장기연재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런데 왜 19세기 들어서 '수학'은 여성들에게 인기 없는 학문이 되었을까?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의 발달'이 원인을 제공했단다. 바로 '해부학'과 '골상학'이 주류 과학으로 전면에 서자 '남녀의 골격 차이'가 여성이 왜 남성보다 저능한 존재인지 증명하는 '과학적 증거'로 빼박이 되었고, 그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머리'는 작고, '골반'은 큰 골격 덕분에 공부와는 적성이 맞지 않으니 애 낳고 아이 기르는 일에 전념을 하라는 식으로 사회분위기가 바뀐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는 20세기 들어서도 '기본 상식'이 되었고, 그 사이에 여성은 공부와 어울리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그냥 포기하라는 식으로 강요 아닌 강요를 요구한 셈이다. 그 덕분에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자는 수학을 못 해도 돼', '여자니까 수학을 못하는게 당연한 거 아냐'와 같은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해부학적 차이는 지능의 차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골상학'은 사이비과학으로 판명이 난 오늘에도 여전히 말이다.

이제는 '여성 인력'이 너무도 절실한 시대가 되었다. 어릴 적에 특출난 재능을 선보이는 '여성 인재'를 양성해서 유용하게 쓰는 사회가 미래를 선도하는 일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자니까 수학을 못 하는 건 당연해'라는 바보같은 말에 휘둘릴 참인가? 인간은 평등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이에 어긋나는 '상식'이 만연한다면 반드시 뜯어 고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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