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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평점 :
<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 / 김경원 / 다산초당 (2017)
[My Review MMCXLIX / 다산초당 3번째 리뷰]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도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것은 딱 질색하더니 급기야 복잡한 것조차 생각하기 싫어해서 단순하고 간단한 것만 찾으려 한다. 그런데도 단군 이래 가장 '스펙'이 높은 젊은이들은 대학진학률도 전세계적으로 최상위권인 까닭에 무식한 것은 참지 않는다. 단순하고 간단한데 '유식'하게 보이려면 방법은 딱 하나 뿐이다. 바로 '요점정리', '핵심정리'를 딱 해서 단박에 알아듣게 만드는, 쉽게 말해 '원포인트 레슨'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참으로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어떤 학문이든 '딱 한 마디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으려면, 그 학문에 정통해야 하고, 통달해야 한다. 정말이지 빠삭해야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든, '핵심'을 찌르든 할 것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힘들고 어렵고, 복잡한 것은 딱 질색이므로 아주 쉽게 딱 한 마디로 알아 들을 수 있게...암튼 무지 쉽게 초고수의 능력을 갖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바람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요즘에는 '가능'하다. 어떤 분야든지 그쪽에서 통달한 누군가가 나와서 '초심자'도 단박에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요점'만 딱 짚어서, '핵심'사항만 콕 찔러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진정한 능력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독서' 분야에서 그런 능력자가 되길 희망하는데 아직은 '도전정신'만 가득할 뿐이다. '실력'도 없이 무턱대고 '다독'만 하고 있는 그런 초심 모드로 말이다. 암튼, 철학 분야에도 그런 유형의 책들이 즐비한 요즘이다. 이 책도 그런 의도로 출간되었고 말이다. 지은이는 '하타케야마 소'라는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치철학과를 전공한 '철학 강사'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좋아하는 모양으로 주요 저서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철학 입문>이란 책을 펴냈다고 한다.
'생각하는 힘'이란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유명한 말 가운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의 뜻도 알고 있는가? 대부분 잘 모를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실제로 한 말은 "네 무지(無知)를 알라"는 말을 했고, 풀이를 하면, '네가 모르는 것이 있음을 깨달아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니 '당신도 모르는 것이 있어'라는 말이 뭐가 그리 대단한 '진리'라는 것일까? 직설적으로 뜻풀이를 하자면,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되 물으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그리스 시민들에게 찾아가 '문답법'을 실시했다고 한다. 전쟁영웅인 장군에게 찾아가 '용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최고의 부자에게 찾아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단다. 그리고 장군은 "그거라면 내가 잘 알고 있지. 용기란 적을 앞에 두고서 두려움 없이 맞서 싸우는 것이오"라고 당당히 말했단다. 한편 부자는 "아, 행복 말인가. 그거야 말로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지. 행복은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이라네"라고 자신있게 말했단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되물었다. "그럼 '작전상 후퇴'를 하고 전쟁에서 승리를 한 장수가 있다면 용기가 없는 거겠군요?", "그럼 진정한 친구를 갖고 싶은 사람은 얼마를 주고 사면 행복할 수 있소이까?" 이런 대답하기 곤란한 고약한(?) 질문이 몇 번 오가다 보면 용감한 장군이라도, 그리스 최고의 부자라도 '할 말이 없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때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이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것이오"라고 꾸중을 하면서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오"라고 대답하자, 성이 난 장군과 부자는 "그럼 소크라테스, 당신은 잘 아시오?"라고 성질을 내면서 물으니, 소크라테스는 "나도 모르니 질문을 한 것 아니겠소. 나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을 하는 현명함을 깨우쳤다오. 그리고 끝없이 배움의 자세로 공부할 따름이오"라고 능청스럽게 말을 하니, 그리스 시민 가운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얄밉고 제거해버리고 싶은 '1순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청년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다니니 정치인들이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웠고, '사형판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죄목은 '신을 믿지 않음(무신론)', '청년들에게 불온한 사상(문답법)을 전파함' 등을 내세워서 말이다. 똑똑한 사람이 잘난 체까지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권력'을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암튼, 생각하는 힘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이리 길게 했다. 그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뻔한 답이지만 다름 아닌 '철학'이다. 이 책도 그런 의도에서 출간되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공부를 하지 않는지는 너무 유명해서 두 말 하면 입 아플 정도다. 대학진학률도 50%를 겨우 넘기고, 만화책이 아니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정부는 교과서조차 '만화책'으로 오해를 할 정도로 온통 그림투성이고, 교육용 영상자료도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집중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의 독서인구가 정말 많다고 자랑을 하지만,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고 있는 책도 대부분 '만화책' 아니면 '대중잡지'라고 한다. 나 어릴 적에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지 알고 있느냐면서 제발 책 좀 읽으라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는데, 요즘의 일본은 그때의 일본과는 사뭇 다른 모양이다. 하긴 우리 나라 젊은이들도 책을 들고 다니는 이들은 많지 않지만,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즐겨 읽어서 그렇지 '독서인구'가 예전에 비해서 정말 많이 늘긴 늘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철학책'은 과연 얼마나 읽을까? 요즘엔 정말 드물 것이다. 그렇다고 철학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철학책'을 읽지는 않는다. '너튜브' 같은 동영상 강의를 통해서 아주 쉽게 설명이 되어 있는 것을 더 많이 즐겨본다. 요즘 '인문교양'을 다룬 동영상 강좌가 정말 많으니, 굳이 힘들게 책을 읽는 이들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중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과 같은 재밌는 철학책이 나온 것이다. 재밌으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책 말이다.
이 책에는 37명의 철학자가 등장해서 '철학 논쟁'을 벌인다. 고대철학에서부터 중세철학(신학)을 거쳐 근대와 현대의 철학까지 '철학사의 흐름'을 유유히 탐색하듯 매끄럽고 맛깔나게 이어지는 철학적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더구나 철학자들의 '일러스트'까지 수록되어 있어서 '초심자의 흥미'를 샘솟게 만들었다. 일러스트가 어째서 '흥미'를 끌 수 있느냐 하면, 정말이지 다들 '미남자'로 미화(美化)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추남'으로 유명한 소크레테스까지 잘 생기게 그려넣었다. 내가 가르치는 한 여고생은 "이렇게 잘 생긴 철학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책이 어렵지 않았어요"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하긴 '아이돌'이 왜 인기가 많겠는가. 힘든 군생활도 '관물대 여신'을 매일 갈아끼우며 버티...쿨럭쿨럭
이렇게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정작 '철학'에 관심을 갖게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중요한 철학 내용으로 눈길을 돌리면 '철학 논쟁'을 주제로 배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소년범죄'를 다루면서 엄벌을 줘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철학자들을 찬반으로 나누어 그 '철학자들의 대표 사상'을 근거로 삼아 한 편의 '법정드라마'처럼 공방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에 대한 기초 상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철학자들의 논쟁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우리가 법정드라마나 의학드라마를 볼 때 '전문가'라서 즐기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아주 조금의 관심만 있으면 쉽게 '철학 논쟁'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 논쟁을 읽어가면서 '철학자들의 대표 사상'에 익숙해지게 된다. '소년범죄' 논쟁에서는 엄벌을 줘야 한다는 쪽에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했고, 엄벌에 반대하는 쪽에는 역시나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과 '공자'가 등장했다. 철학에 관심이 있던 분들이라면 '양적 공리주의'와 '질적 공리주의'가 대결을 벌이면서 이상적인 공자철학과 현실적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논쟁의 보충설명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책의 내용은 그닥 어렵지 않다. 논쟁을 '대화'를 중심으로 이어나가고, '대화의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면 '논쟁적 대립'속에서 철학자들의 대표적 '철학사상'이 극명하게 대립하며 보다 뚜렷한 철학적 윤곽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초심자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다음 논쟁 주제'로 넘어가면 앞서서 이야기했던 철학사상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해질 것이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앞서 등장했던 철학자가 '1회성 등장'이 아니라 '수차례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대표철학사상'의 맥락을 반복해서 엿볼 수 있으니 눈썰미가 좋은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철학사상가들의 대표철학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철학사상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러 철학사상을 참고해서 '자기만의 가치관 형성'을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어린이 철학교육의 핵심포인트도 여기에 있다. 위대한 철학사상을 달달 암기하는 것도 좋은 공부방법이긴 하지만, A라는 철학자가 B라는 사상을 이야기했다는 것을 외운다한들 뭐에 쓸 것이냔 말이다. 옛날에는 '백과사전식 지식'을 누가 더 많이, 더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AI검색'을 통해서 아주 쉽게 해결될 사안이다. 그러니 외울 필요가 전혀 없다. 그보다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이 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모르는 것을 애써 '아는 척'하지 말고, 솔직하게 모른다고 고백하고 '배우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내 삶을 바람직하게 이끌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나는 늘 '겸손한 자세'로 하나라도 더 배움을 늘려나가야겠다. 그렇게 하면 나는 10년 뒤에 많은 것을 깨달은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해 있을 거야. 그때 내 꿈을 실현해 나가야겠다. 공자께서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하셨으니, 늘 겸손한 자세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 나도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이런 삶은 멋진 것 같아. 더욱 정진하자!...'가치관 형성'이란 이런 것일 게다. 물론 이것과 정반대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도 마주할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 남의 이익에 앞서 내 이익을 먼저 챙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손해 보는 삶은 '실패한 삶'이다. 무조건 승리하고 쟁취해서 남들보다 앞서 나가자.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약자는 강자에게 지배 당한다. 절대 뒤쳐지지 말자.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이런 삶은 정말 멋지고 신 날 것 같아!...이 둘이 만나면 어떤 논쟁을 벌일까?
사실 철학수업은 늘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막상 철학수업을 어렵게만 생각한다. 그 까닭은 '철학사상'이 매우 심오하고 어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럴 때 '자기만의 가치관'으로 철학수업을 대신하면 된다. 누구의 철학도 아닌 '자기 철학'이니 크게 준비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기 철학'을 관철시킬 수 있는 '타당한 근거'만 부지런히 찾아오면 된다. 여기서 '타당한 근거'가 바로 '철학자들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의 대표사상이 '나의 가치관'과 가장 비슷한지 찾아내면 그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철학수업은 준비완료다. 나머지는 치열한 논쟁을 할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자신감 뿜뿜하고 싶다면 '자기 가치관'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반론에도 흔들리지 않을,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로 단단히 무장하면 자연스럽게 강해진다. 그리고 그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 역시 '철학사상'에서 찾으면 된다. 찾기 어렵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