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
질리언 크로스 지음, 닐 패커 그림, 윤영 옮김, 호메로스 원작, 장은수 해설 / 더숲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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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숲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리뷰입니다

<일리아스 :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 호메로스 / 질리언 크로스 / 장은수 / 윤영 / 더숲 (2026)

[My Review MMCCCXXIX / 더숲 1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여덟 번째 리뷰는 서양 문학의 첫걸음 <일리아스>다. 서양 고전문학을 시작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호메로스가 쓴 두 책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서양의 어린이들은 이 책을 정말 두고 두고 읽고 공부하게 된다. 자신들의 '정신'을 떠받치는 두 기둥 가운데 하나인 '헬레니즘'의 원류인 그리스문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고전 카테고리이지만, 이걸 우리가 '그대로'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의 '정서'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리아스>의 주요 내용이 '트로이아 전쟁'이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근본을 '전쟁'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쟁이긴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는 전쟁은 '부정적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그렇다고 서양인들이 전쟁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평화'를 사랑한다면서도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결코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이 '피지배'적인 위치에 놓이면 안정적이어도 못마땅해 한다. 이를 뭉뚱그려서 '명예'라고 말한다. 이 책 <일리아스>에는 바로 서양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쟁''명예'가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일리아스 :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 관점 포인트 : 호메로스가 쓴 원전 <일리아스>를 읽고자 하면 어려운 점이 두 가지다. 첫째는 벽돌책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분량'이고, 둘째는 고대의 언어를 '현대어'로 옮기는 것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나 고대 그리스어로 '색채''풍경'을 묘사한 대목은 현대인들이 언뜻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꽤나 많다. 심지어 바다를 묘사할 때도 '와인빛'이라고 하는데, 이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할 수 있으려면 '깊이가 깊어서 짙푸른 바다'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전한다. 그래서 단순한 정경묘사인데도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군과 트로이아군이 바다에서 치열하게 싸워서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거나 태양빛이 작렬한 오후가 지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데,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바닷빛깔을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표현했다고 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기준이 바로 '번역'이다. 기본적으로 '서양문화'에 이해가 깊지 않은 이가 번역을 하게 되면 이런 평범한 정경조차 아주 심각한 '오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의 기본적인 줄거리조차 엉망으로 이어나갈 위험이 한가득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원전 번역'한 질리언 크로스라는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0년 넘게 아동 및 청소년 도서를 집필한 영국 대표 작가이면서, 옥스퍼드와 서식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세련된 문체로 호메로스를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아주 잘 간추린 작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이 책은 아동과 청소년에게 읽힐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리아스>다. 하지만 질리언 크로스의 책을 '우리말'로 다시 한 번 '번역의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굳이 '아동용'이나 '청소년용'으로 한정하고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겐 애초에 '서양의 고전'이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부제가 딱 맞다. 성인 독자라하더라도 호메로스를 처음 듣는 이가 대다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리아스>의 원전을 빠삭하게 다 읽은 독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여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처음 접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먼저 일독한 뒤에 '원전'을 즐기거나,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딧세이>를 감상하길 권한다. 그러면 서양 고전이라는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고, 가벼운 마음으로 서양 문학의 원류를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책 내용으로 들어가 본다.

사실 <일리아스>의 주요 내용은 아가멤논에게 브리세이아를 빼앗긴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해서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레스를 죽인 트로이아의 명장 헥토르를 죽이고, 헥토르의 시신을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에게 전달하고 헥토르의 장례식을 엄숙히 치루는 것까지다. 허나 널리 알려진 줄거리는 '황금사과'의 주인을 가르는 파리스의 선택으로 시작해서 '트로이 목마'가 등장해서 그리스연합군이 대승을 거두는 장면까지 다루는 내용으로 요약해 놓은 줄거리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트로이아 전쟁'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까닭은 '트로이아 전쟁'에 대한 대서사시를 호메로스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작가가 전체 내용의 일부분씩 나눠서 '연작'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온전하게 남겨진 두 작품이 바로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전체 줄거리가 온전히 남아 있지 않고 '일부분'만 남겨져 전해졌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 일부분마저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껴넣어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일리아스>의 주제는 '전쟁''명예'라고 말했다. 전쟁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미녀 헬레네가 젊고 건장한 미소년 파리스가 아프로디테 여신의 '보답'으로 둘은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파리스가 살고 있는 트로이아로 헬레네가 따라갔기 때문에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을 말한다. 아니 두 남녀의 사랑이 왜 전쟁으로 촉발되었단 말인가? 그건 헬레네가 '유부녀'였기 때문이고, 그것도 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헬레네를 '납치(?)'해간 파리스는 트로이아 왕국의 둘째 왕자였기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었던 것이다. 무슨 전쟁이 장난도 아니고 '여자 한 명'이 발발원인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건 다름 아니라 '명예'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변심한 여자를 다시 빼앗아오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자기 아내를 빼앗긴 '치욕'을 만회하기 위해서 벌인 전쟁이란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국가간의 전쟁이 고작 그런 이유로 벌어질까 싶지만,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도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해서 당당하게(?) 빼앗은 전리품인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 브리세이아'를 총사령관인 아가멤놈이 가로챈 것에 '분노'하고 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서양 문학의 근원이라 일컫는 <일리아스>의 골자가 바로 '명예'이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고작 '자기 몫'을 정당히 받지 못하고 손해를 보거나, 심지어 빼앗기면 무시무시한 '분노'를 뿜어내고, 그로 인해 '전쟁'까지 불사하는 것이 주제인 셈이다. 우리네 관점으로 살펴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님이라도 날 버리고 떠나는 것까지는 막지 않고, 그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나 나라고 원망하는 것이 고작인 우리에게 '전쟁'이 그렇게 쉽게 벌어지는 것이 이해될 리 없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명예'가 손상되면 죽음을 건 '결투'를 벌이는 것이 일상이고, 명예를 잃는 것을 '사는 것'보다 더 높은 순위로 삼고 있다. 어찌 하나 뿐인 생명을 두고, 그보다 더 높은 가치를 놓을 수 있는 것일까? 이들에게 삶은 '명예,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서양인들은 생각보다 뒤늦게 발전했다. 중세까지 그들의 삶은 정말 보잘 것이 없었고, 르네상스 이후에 '인본주의'에 눈을 뜨면서 자신들의 고대문화가 현재의 삶보다 더 찬란했음을 눈 떴던 것이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서구 사회가 점점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점차 유럽을 넘어 세계로 힘의 영향력을 떨치게 되었다. 이른바 '근대화'를 이룩한 것이다. 이렇게 되찾은 '과거의 영광'을 증명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역사'라는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서양 문명이 세계의 근원임을 찾기에 혈안이 된다. 그리고 결국 찾게 된다. 바로 헤로도토스와 호메로스를 비롯한 '역사''서사'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들이 과거에 얼마나 찬란한 문명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온갖 이론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오늘날 '서양중심사상' 이른바 '백인우월주의'에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기존의 역사와 서사를 더 크고 화려하게 부풀리기를 시작한다. 바로 '죽음의 미학'이다. 다름 아닌, 죽음마저 아름답게 만드는 서사, '명예'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웅에 이런 서사를 덧입히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트로이아 전쟁'은 무려 10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그리스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지중해 전역에 방대한 '폴리스(도시국가)'를 구축하고, 폴리스를 거점으로 강력한 해상무역을 실시해 성장해 나간다. 그런데 '트로이아'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해서 지금의 튀르키에 서쪽을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일대를 장악하고 성장해나갔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리스는 해상무역으로 독차지했던 이점을 새로운 경쟁국에게 모두 빼앗길 판이다. 그러던 참에 그리스인들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는 것을 빌미로 트로이아로 몰려 갔고, 그 전쟁이 무려 10년이나 이어졌다는 것이다. 말이 10년이지 수백 척의 배를 몰고 가서 '트로이아 해변'을 애워싸고 장장 10년 동안 농성을 한 것이다. 트로이아는 거대한 성벽으로 보호 받고 있었기 때문에 무려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고, 전쟁을 벌인 쪽이나 막은 쪽이나 정말이지 독종(?)이 아닐 수 없다.

자, 이야기는 다시 소설속으로 돌아간다. 아킬레우스가 분노한 것은 바로 전쟁이 9년째에 접어들면서다. 9년동안 싸웠던 기록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전황이 이어졌는지 잘 모른다. 암튼 두 나라는 서로 결정적인 치명타를 받지 않고 '대치중'이었으며, 9년째에 접어들면서 무적을 자랑하는 아킬레우스가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앞서 얘기한 명예를 실추당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리스연합군은 패전에 패전을 거듭한다. 이를 틈타 트로이아군의 명장 헥토르는 그리스연합군의 맹장들을 하나하나씩 꺾으면서 '기선제압'에 성공했고, 급기야 그리스연합군이 머물고 있는 해안가까지 내몰리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참전'을 요구하지만, 여전히 명예를 되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직접 공격받지 않는 한 참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파트로클레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와 뮈르미돈 전사들을 빌려 '대신' 참전하기로 한다. 그러다 파트로클레스는 헥토르에게 일격을 당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이 아킬레우스를 또다시 '분노'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그 분노의 방향이 아가멤논이 아니라 헥토르였다. 하나는 '전리품'을 빼앗긴 분노였지만, 다른 하나는 평생를 함께한 '우정'을 잃은 분노였다. 다른 관점에서는 '사랑'을 빼앗긴 분노였다. 자신이 9년동안 원치 않은 전쟁에 끌려온 보상으로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 브리세이아를 향한 사랑이었지만, '동성애'가 일상이었던 그리스 사회에서 어릴 적부터 평생을 함께한 '친구'이자 '제자'였던 파트로클레스를 향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예도 잃고 사랑도 잃은 아킬레우스는 하늘이 떠나가라 '노여움'을 뿜어낸다.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화답한 신들도 아킬레우스의 승리를 노래하며 응원하게 된다. 그 결과 트로이아를 단단히 지키던 단 하나의 명장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분노 앞에 죽음을 맞이한다. 장장 9년동안 이어진 전쟁이 하루 아침에 바뀌게 된다. 이 뒷이야기는 헥토르의 죽음 이후 나가서 싸울 힘을 잃은 트로이아는 단단한 성벽에 의지해 1년간 더 버티지만, 꾀주머니 오디세우스에 의해 '트로이 목마'를 남겨두고 그리스연합군이 물러가자 승리한 줄로 착각한 트로이아인들은 '트로이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가고, 밤새 축제를 벌이지만 목마 안에 감춰있던 그리스군이 성벽의 문을 활짝 열자 그리스군이 성안으로 물밀듯이 몰려들어 성을 함락하고 그리스연합군이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일단락이 된다.

나가는 글 : 결국 <일리아스>는 '침략전쟁'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고전 문학의 원류'라는 반열에 올려두고 숭배(?)할 까닭이 있을까? 아무리 실제 역사를 기록한 '인류 최초의 대서사시'라는 타이틀을 걸어둔다고 해도 결국 '침략'하고 '파괴'했다는 기록일 뿐인데 말이다. 어렵고 힘든 전쟁에서 끝내 승리를 거뒀기에 더 영광스럽게 여길 사람들은 결국 '그리스인'이고, '유럽인'이며, 넓게 봐도 '서양인(백인)'만의 영광이다. 이걸 우리가 꼭 읽어야 할 반열에 올려야 할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말한다. <일리아스>에서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지만 '헥토르'도 함께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아킬레우스는 '반신반인의 존재'로 불사의 몸을 가졌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슨 절대 질 수 없는 '무적'이며, '승리'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에 반해 헥토르는 '필사의 몸'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전투를 벌이면서도 '최전선'에서 앞장서서 싸우지 않고, 몸을 사리며 뒤로 물러서는 비겁한(?) 모습도 보인다. 신들마저 헥토르에게 당부할 정도다. 전투에서 승리할 '운명'이지만 필사의 몸으로 헥토르가 앞장서서 싸운다면 죽을 수도 있으니 몸을 사리라고 말이다. 이렇게 헥토르는 너무도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이렇게 <일리아스>는 필사와 불사의 대결을 보여준다. 결국 불사가 승리할 수밖에 없지만 필사도 불사 못지 않게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피할 수 없는 '신의 분노'와 같다. 그런데도 그런 신들의 분노에 맞서 '인간의 몸', 다시 말해 '필사의 몸'으로 당당히 맞서 싸우는 대서사시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건 서양인들이 말한 '서구우월주의'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애초에 <일리아스>에 그런 '우월주의'따윈 없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의 위대한 서사시'가 펼쳐진 것이다. 승리의 영광은 '신의 몫'일지라도 승리보다 더 값진 '명예'를 건진 것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헥토르'였던 것이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바로 '헥토르의 시신'을 되찾으러 간 프리아모스 왕의 간절한 요청이었다. 헥토르를 비롯해서 수많은 아들을 죽인 '살인자의 손'에 입을 맞추며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아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모습에서 인간이 신(운명)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침략자'의 야만적인 행위 앞에서 '문명''교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문명국을 침략한 '야만적인 모습'을 반성하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리아스>는 신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을 멈추고 이제 인간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자는 '반전의 대서사시'인 셈이다. 신들 앞에 인간은 미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인간은 '신의 분노' 앞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며 끝까지 '명예'를 지키고, '인간답게' 살고자, 다시 말해 '필사의 존재답게' 살고자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일리아스>의 진짜 주인공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헥토르다. 명예롭게 죽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불사의 존재들에게 명예란 그저 '손해'를 따지고 '자존심'을 되찾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필사의 존재에게 명예란 감히 '하나 뿐인 목숨'과도 맞바꿔서 지켜야 할 '불굴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승리 따위는 신들에게 양보하더라도 패배한 인간이 치욕스런 삶을 구차하게 연명하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며, 너희가 진정한 승리자라면 패배자에게도 능욕을 안겨주지 않고 '명예'를 지킬 수 있게 해달라는 당당한 요구인 셈이다. 프리아모스 왕의 이런 모습은 아킬레우스에게 무한한 감명을 주게 된다. 그래서 헥토르의 시신을 정중히 되돌려주고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룰 수 있도록 안배해준 것이다. 자신이 치졸하게 명예를 따지고 분노를 참지 못하는 바람에 잃은 것이 무엇인지 상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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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7 - 서촉을 정벌하라 이희재 삼국지 7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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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7 : 서촉을 정벌하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III / 휴머니스트 5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일곱 번째 리뷰는 유비가 방통의 도움을 받아 입촉에 성공하는 <이희재 삼국지 7>이다. 주유의 죽음에 이어, 이번에는 '방통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주유가 제갈량을 시기하다가 죽음을 재촉했다면 방통은 제갈량을 질투하다가 죽음을 앞당겼다고 소설 <삼국지>에서는 전하고 있다. 바로 방통이 입촉을 하는 와중에 '유비가 타던 말(적로)'로 바꿔 타는 바람에 유장군의 매복 작전 때 방통이 유비 대신 '저격'을 받아 죽었고, 마침맞게 그 장소가 '낙봉파'였던 탓에 봉추(봉황의 새끼)라 불리던 방통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이번에 해보려 한다. 자, '책사편' 방통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희재 삼국지 7> 관점 포인트 : 7권의 시작은 조조 vs 마초의 전투로 시작한다.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던 마초와 한수가 조조를 장안까지 밀어붙이지만, 아직 조조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초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초반에 조조군은 당황하지만, 흙담에 물을 부어 '얼음 성벽'을 하룻밤만에 쌓아올리며 마초의 기병을 막아낼 수 있는 '방어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조조는 '가후의 꾀'를 수락하며 마초와 한수를 '이간질' 시키는 계략을 꾸미게 된다. 천하무적의 기량을 뽐내던 마초였지만 아직 젊고 혈기만 넘쳤던 탓에 '한수와의 동맹'을 헌신짝처럼 갖다 버리고 끝내 조조의 반격을 받고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가후는 책사 가운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계략에 정말 능통했다.

한편 조조가 서량까지 세력을 넓히니 '한중'에 머물고 있던 장로는 언제 조조가 공격해올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렇다고 조조에게 순순히 항복할 수는 없어 스스로 '한녕왕'을 자처하며 서촉의 유장을 공격해서 영토 확장을 꾀한다. 이 소식을 접한 유장은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하려 했고 '장송'을 보내 장로를 제압해줄 것을 부탁하려 했다. 허나 장송은 유장이 너무 무능한 탓에 서촉의 백성들이 한낱 장로 따위에게 벌벌 떨면서 살고 있다고 한탄하며, 이 참에 '나라의 주인'을 바꾸려는 마음을 품었다. 허나 장송은 못 생겼고 말투도 싸가지가 없다며 조조에게 냉대를 받고 몽둥이 찜질까지 당하고 쫓겨난다. 그렇게 쫓겨난 장송은 유비에게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고서 유비에게 '서촉땅'을 갖다 바치려 한다.

어릴 적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장송이란 인물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나라가 약소국이고, 주인이 무능하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다른이에게 홀랑 넘겨버리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 온당치 못한 짓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매국노'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유장과 유비가 '한 집안'이고, 조조와도 '한족'으로 동포라 할지라도 엄연히 '나라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다. 장송의 공식 직함조차 '유장의 신하'가 아니겠는가. 물론 유장이 '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장송이 충성을 받치던 '주인'이었고, 주인이 싫었으면 장송이 배반을 하고 떠나면 그뿐이지, '서촉의 백성'을 위해서 유장을 내쫓고 다른 지배자에게 영토를 내어주려 한다는 것은 쉬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송이 맨 처음 찾아간 이는 '조조'였다. 조조에게 서촉을 넘겼더라면 그야말로 '역적'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격이었다. 그런데도 나관중은 이를 그대로 소설 <삼국지>에 차용했다. 나중에는 '정통' 유비에게 넘겨준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어릴 적에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터라 '장송'이 더욱 밉보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장송은 달가운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사 <삼국지>에서조차 장송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유비에게 호의적이었다가 유장에게 들통이 나자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사실을 두고 안타까워할 정도다. 아무리 유장이 무능했다지만 이런 평가가 온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도 5, 60년대 진짜 못 살던 시절에 '대통령이 무능한 탓'을 들어 이웃나라 지도자에게 나라를 홀랑 넘겨 버리는 꼴을 보고도 괜찮다고 평가할 것인가? 그런 식이라면 이완용도 '매국노'가 아니게 될 것이다.

암튼 이런 논란조차 '유비의 입촉'을 열망하는 독자팬들에게는 그닥 무의미할 것이다. 이때 유비의 책사로 활약한 인물이 바로 봉추 방통이다. 일찍이 수경선생 사마휘가 유비에게 "복룡과 봉추 가운데 한 명만 곁에 둘 수 있다면 천하를 경영할 수 있다"고 얘기한 바로 그 봉추란 말이다. 한 명만으로도 천하를 얻을 지경인데, 유비는 복룡과 봉추 둘을 모두 얻었다. 그런데도 왜 유비는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을까?

나가는 글 : 솔직히 제갈량도 그렇지만 방통도 너무 후한 평가를 받은 편이다. 천하를 경영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인재라는 평가에는 제갈량과 방통이 아직 '20대 젊은이'였기 때문에 미래에 펼치게 될 역량까지 미리 끌어다 평가를 한 경향이 강하다. 두 사람이 유비의 품에서 내놓은 계책이란 것이 고작해서 '천하삼분지계'라는 아직 이루지 못한 청사진 한 장이었고, 적벽대전에서 주유의 계책을 돕는 '연환계'를 내놓고 유비에게 형주를 차지할 수 있는 유리한 판을 짠 것이 실적의 전부였다. 학창시절에 아무리 '영재''천재'니 소리를 들으며 우수한 학업성적을 달성했더라도 어쩔 수 없이 '실전경험 미숙한 학생'일 뿐이다. 냉험한 프로의 세계에서는 '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방통은 이제 막 유비의 '부군사' 직책을 받았기에 실적을 올리려고 부던히도 애를 쓰던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유비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제갈량'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방통으로 하여금 '고용불안정'을 실감하게 했을 것이다. 속된 말로 "너, 실적도 없고, 실력도 없으면 짜를 거야!"라는 말을 듣는 처지였단 말이다.

그런데 방통은 제갈량과 달리 '유비와 궁합'이 너무 맞지 않았다. 제갈량도 삼고초려 끝에 유비를 모시는 신하가 되었지만, 초기엔 뭐 하나 제갈량 '뜻대로' 유비가 따르는 것이 없었다. 천하삼분지계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방책을 눈 앞에 두고도 마다하는 유비를 제갈량은 답답해 했다. 그럼에도 제갈량은 '또 다른 방책'을 내어 유비의 취향에 딱 맞는 방책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비는 이게 맘에 들었던 것이다. 헌데 방통은 자신의 '뜻대로' 따르지 않고 미적거리는 유비를 한심해 했다. 왜 쉬운 길을 두고 어렵고 험한 길을 가려고 하느냐면서 말이다. 그래서 유비가 고를 수 있게 '상책, 중책, 하책'을 내놓고 유비에게 선택하도록 했다. 제갈량하고는 다른 방식이었다. 제갈량은 자신의 실력을 굳이 뽐내지 않고, 이 방법은 어떠냐? 저 방법은 어떠냐? 그런 요런 방법도 있다면서 유비의 마음에 흡족할 때까지 방법을 무한정(?) 제시하다가도 정말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에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유비로 하여금 "무조건 이 방법대로 따르십시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라며 밀어붙이는 강단도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방통은 자기 실력을 뽐내는데 주력을 하면서 먼저 "방통이 추려낸 방책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 주공께선 고르기만 하십쇼"라면서 유비에게 다른 방법은 없으니 셋 중 하나를 고르라는 '강요'를 했던 것이다. 물론 방통이 선보인 방법들은 하나 같이 명쾌하고, 어느 방법을 골라도 반드시 '결과'를 낼 수 있는 훌륭한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방통의 재주가 굉장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재확인 시켜주었다. 하지만 이 방법들이 뛰어난 것은 알지만 '유비의 마음'에 흡족한 것이 하나도 없을 때가 문제였던 것이다. 유비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까지 완벽한 방법을 선호하는 욕심쟁이(?)였는데, 방통은 이런 난세에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까지 완벽해야 하는 욕심을 부리다니 과욕이 너무 심하다며 간접적이나마 유비에게 핀잔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비는 유비는 유장과 전쟁을 치뤄야 하는 상황에서 '난감한 상황'에 빠질 때마다 방통이 옆에 있는데도 제갈량을 찾곤 했다.

방통은 이런 유비에게 '고용불안정'을 느끼고 조급하게 성도의 관문인 '낙성 공략'을 밀어붙인다. 그러다 끝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1년 동안 길어진 낙성 공략 도중 '빗나간 화살'에 맞고 죽고 만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낙봉파'에서 장임의 기습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나오지만 방통이 죽은 곳은 낙봉파가 아니었다. 방통은 가진 실력에 채 펴보기도 전에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만약 방통의 목숨이 더 길어 '형주'는 제갈량이 막고, '서촉'은 방통이 경영했더라면, 조조는 한중을 넘지 못했을 것이고, 손권은 형주를 영원히 갖지 못해 '천하삼분지계'는 더욱 완벽하게 자리 매김 했을 것이고, 비교적 젊은 무장이었던 장비와 조운, 그리고 마초, 위연 등이 강한 군사를 키워내서 조조와 손권의 영토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방식을 썼더라면 '촉한'에게도 천하통일의 기회는 충분히 주어줬을 것이니 어찌 '방통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지 않겠는가.

결국 촉한이 빨리 망한 까닭은 '인재 부족' 때문이었다. 서촉이 험준한 지형으로 '방어'에는 유리했지만, 교류나 교역에 있어서 매우 불리한 '지리 조건'을 갖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보니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결과를 낳았고, '형주'처럼 뛰어난 인재가 많이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형주라고 '중원'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제갈량이나 방통, 서서 같은 인물이 형주에 몰려 있었던 까닭은 하북지역에 '서주대학살', '관도대전' 등 전쟁같은 나날이 연이어 벌어져서 수많은 인재들이 난리통에서 벗어나 비교적 평안한 형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조가 최종 승자가 되어 '중원 일대'가 평온해지니 형주조차 인재가 모여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유비는 서촉을 차지했지만, '방통의 죽음'으로 인재 부족을 느꼈고, 유장의 신하들 가운데 법정, 맹달 등 쓸만한 인재를 몇몇 챙기고 나니 더는 인재가 모여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사망하고, 복수를 다짐한 장비와 유비도 뒤를 이어 사라지고, 늙은 장수들이었던 황충과 엄안마저 차례차례 사망하고, 제갈량조차 '출사표'를 던지고 1차 북벌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마속의 결정적 실수로 인해 가정을 배앗기고 북벌에 실패하고 만다. 결국 다시 힘을 모아 북벌을 도모하지만, 조운과 마초마저 하나둘 운명을 달리하니, 촉한에는 '구인난'에 시달리다 명장을 다 잃고 끝내 '강유'만 남아 싸우다 멸망하고 만 셈이다. 만약 방통이 죽지 않고 '입촉'에 성공했다면, 유비의 대성공 소식을 듣고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방통의 죽음 이후에 제갈량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다 '과로사'를 하고 말았고, 유비마저 죽고 나니 아무리 위기 상황에 처해도 좀처럼 '배신자'가 없이 탄탄하던 유비진영이었는데, 곳곳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음에 계속.

#리뷰 #에세이 #이희재삼국지 #휴머니스트 #책사편 #방통 #낙봉파 #서촉공략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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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6 - 적벽대전, 전략 대 계략 이희재 삼국지 6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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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6>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II / 휴머니스트 5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여섯 번째 리뷰는 적벽대전의 승리와 맞바꾼 주유의 운명을 담은 <이희재 삼국지 6>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은 '제갈량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 전투는 '조조군 vs 손권군'이 거의 다한다. 그런데도 적벽대전이 조조의 대참패로 끝나고 난 뒤에 기억에 남는 것은 딱 하나 뿐이다. '제갈량의 동남풍'이다. 사실상 조조의 100만 대군을 손권의 10만 군사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전략은 '화공'인 것이 맞지만, 그 화공으로 조조군을 궤멸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동남풍'이었다는 걸 너무나도 강조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손권군을 이끄는 대도독 주유는 입만 열면 "제갈량을 죽여야 한다"고 되뇌인다. 같은 편인데도 그런 까닭은 너무나도 똑똑하고, 기상이변(?)까지 마음대로 만들 재주를 가진 자가 '내 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너무나도 치졸하고 유치찬란하다. 어린아이의 투정 같지 않느냔 말이다. 천하의 주유를 이런 식으로 묘사한 까닭은 앞서 장비와 마찬가지로 '촉한정통론' 탓이 크다. 오직 유비를 정통으로 꿰어 맞추려다보니 상대적으로 손권측의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깍아내린 것이다. 그럼 좀 더 주유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보자.

<이희재 삼국지 6> 관점 포인트 :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의 갭은 1000년이 훌쩍 넘는다. 후한 말의 역사를 진나라의 진수가 저술하고, 송나라의 배송지가 주석을 달고, 명나라 초기에 나관중이 소설로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관중이 참고한 것은 단순히 정사 <삼국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소설 속의 인물은 '캐릭터'가 생생해야 했기 때문에 선악의 구도를 극명하게 구성해야 했고, 오랑캐에게 오랫동안 핍박을 받은 '한족의 설움'을 달래고 '한족의 위대함'을 재정립하기 위해 '한족의 영웅'을 되살려야 했고, 그렇게 영웅으로 되살아난 인물이 바로 '한고조 유방'이었다. 그렇게 유방을 꼭 빼닮은 '유비'를 정통으로 삼고 영웅으로 만들 필요가 생기니 자연스레 '조조'는 악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조조도 '한족'이며 역사속에선 '진짜 승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소설속에서도 조조가 기틀을 마련한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위상을 드러낸다. 하지만 조씨 황제가 무너뜨린 것은 '촉한'뿐이었고, '동오'에는 여전히 손씨 황제가 건재했다. 결국 동오를 멸망시킨 것은 사마씨가 세운 '진나라'였다. 그만큼 동오도 강력한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었고, 솔직히 촉한보다는 훨씬 강했다. 그런데 유비를 정통으로 세운 '촉한정통론'을 강조하려다보니 '악인 조조' 일당이 천하통일을 빙자해서 온갖 역적질을 다해야 했고, '무능 손권' 일당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도 없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조조 vs 손권의 대결은 팽팽하게 묘사된다. 그게 '역사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촉한과 싸울 때만 이상하리만치 '너프(성능 하향)'를 당하게 된다. 이게 소설 <삼국지>가 감추고 있는 진실이자, '촉한정통론의 실체'다.

주유는 '정사'의 기록에도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야사'에는 "하늘은 주유를 낳고 어찌하여 또 공명을 낳았는가"라는 한탄을 남기고 35세의 젋은 나이에 비명횡사했다고 전해진다. 주유의 집안은 원술의 휘하에서 직책을 얻어 지냈는데, 손견이 원술 밑에서 활약을 하자 손견의 아들 손책과 주유가 '같은 나이'라 두 집안이 뜻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손견이 죽고 손책이 원술 밑에서 개고생을 하다 '전국옥새'를 담보로 강동땅을 휘젓고 다닐 때 손책군에 합류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손책이 '소패왕'으로 불리며 강하지역 여강땅을 점령할 때에 주유도 함께 했는데, 이때 대교, 소교와 인연을 맺어 함께 혼인을 하며 '주랑'이라 불렸다고 한다. 손책이 일찍 죽고 손권이 새로운 주군이 되자 주유는 충성을 맹세하는데, 손권은 그런 주유를 형님으로 깎듯이 모셨다고 한다. 그 뒤에 '적벽대전'이 발발하자 주유는 대도독에 임명되어 유비군과 동맹을 맺고 조조의 100만 대군과 맞짱을 뜨게 된다.

사실 적벽대전에서 유비군의 활약은 거의 없다. 실제 전투도 조조군과 손권군이 도맡아서 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사에 유비의 군사도 주유와 힘을 합쳐 조조군을 무찌르는데 한 몫 했다고 적혀 있지만, 뚜렷한 전공은 없고, 다만 주유가 3만 군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유비가 "너무 적다"며 핀잔을 주자 주유는 "잘 보기나 하라"며 조조의 수군과 맞서 싸워 크게 승리하는 대목이 전할 뿐이다. 결국 유비손권연합군은 그냥 '손권군'이라고 불러도 틀릴 것이 없을 정도로 유비군의 형세가 미약할 뿐이다. 더구나 결정타를 먹인 '화공 작전'도 황개가 짠 것이며, 때마침 '동남풍'이 휘몰아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다고 전하지만, 실상 전투에서 조조군이 패배한 결정타는 '전염병(풍토병)'이 돌아 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사 기록에도 '조조군 진영에 전염병이 돌았다'라고 분명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자, 이렇게 보면 유비군은 전염병과 화공에 크게 일격을 당하고 패퇴하는 조조군의 뒤를 쫓은 것이 전부다. 제갈량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시피 할 정도다. 그런데도 소설 <삼국지>는 노숙의 초청을 받아 제갈량이 '조조의 100만 대군'에 쫄아서 항복을 하려는 손권과 오나라 신하들에게 부끄럼을 주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을 지경으로 '쪽팔리게' 만들고, 손권조차 미적지근하게 전쟁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제갈량의 '따끔한 훈계' 한 방으로 오나라는 조조와 맞서 싸우게 만들었다고 서술했다. 여기서 제갈량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수많은 닭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 화려하게 돋보이는 '고고한 두루미'였다. 제갈량의 트레이드 마크가 '순백의 학창의'였던 것이 역사적 고증이었을까? 아니다. 소설 <삼국지>가 창조해낸 '캐릭터'가 십중팔구 틀림 없을 것이다. 더구나 '10만 개의 화살'을 하루아침에 만드는 것이나 '주유의 속사정'을 일일이 간파하고 꿰뚫어보는 대목들, 그리고 대망의 하일라이트는 '동남풍'을 불게 만드는 명장면 등등 모두 소설 속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갈량이 아무 재주도 없는 인물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가 쓴 '출사표'가 제갈량의 시작이자 끝일 정도로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인치고 '출사표'를 읽고, 그의 우국충정을 의심하지 않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섯 차례의 원정은 모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함이었다. 그런데도 제갈량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적벽대전'이라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나가는 글 : 주유가 미치고 팔짝 뛸 내용은 적벽대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난 뒤에 벌어진 '남군(강릉) 공방전'이다. 여기서 주유는 '형주땅'을 하나도 얻지 못하고, 모조리 유비에게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주유는 유비와 함께 조조군의 잔당(조인)을 물리치고 형주땅을 사이좋게(?) 노나 먹는다. 근데 유비측이 손권에게 부탁을 해서 '4개의 군'을 마저 빌리고 그대로 눌러 앉아버렸기 때문이다. 되돌려줄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이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유비가 형주 빌리듯 하다'라는 말이다. 돌려 줄 듯 하지만 끝내 돌려 받지 못할 때 쓰는 말이지만, 애초에 '갚을 생각도 하지 않는 못된 놈'에게 더 많이 쓰이는 말이다. 유비가 딱 그랬다. 이런 괘씸한(?) 유비를 혼쭐 내려 주유는 군사까지 동원하기도 하고, 동오로 꼬여와서 달아나지 못하게 만들려 획책까지 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 주유가 연이은 실수를 한 것 가운데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휘하에 머물던 '방통'을 유비에게 내어준 것이다. 이는 유비에게 서촉땅을 갖게 해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만 늘어놓지만, 이보다 앞서서 주유의 '천하이분지계'가 있었다. 주유만의 독창적인 '청사진'은 아니었고, 노숙도 이와 같은 제안을 손권에게 내놓고, 손권이 승낙한 바 있다. 암튼 주유도 '형주땅'을 발판 삼아 조조가 차지한 '장강 이북'은 내어주고 '장강 이남'과 더불어서 천혜의 자연방어벽과 풍족한 곡창지대를 품고 있는 '서촉땅'을 복속하여 천하를 조조와 둘로 나눠 갖고 용쟁호투의 대결을 벌이자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래서 주유는 '형주 공방전'을 고집하며 유비를 압박했건만 끝내 목표달성을 하지 못하고 요절하고 만 것이다. 이걸 달성하지 못한 이유도 '방통'을 품지 못한 주유의 고집불통이 단단히 한 몫 한 셈이고 말이다. 방통을 끝내 내친 까닭도 '못생겼다'는 이유 뿐이었다. 물론 방통도 오나라 땅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터라 내심 유비에게 가려고 작정한 탓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래저래 아쉬운 것은 주유 뿐이다. 하지만 주유가 말했다는 "하늘은 주유를 낳고 어찌하여 또 공명을 낳았는가"라는 말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유가 감히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주유와 공명은 '지혜 대결'을 나눌 만한 일면식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형주 공방전'에서 '책사 대결'을 벌이긴 했지만, 겨우 한 번 진 것 때문에 이렇게 통탄스런 말을 늘어놓을 까닭이 있었을까? 이런 말을 늘어놓을 정도면 평생을 두고 경쟁을 한 '라이벌' 사이에서만 어울리는 말이고,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분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패배로 이런 말을 할 징도면 대단히 억울한 상황이었어야 할테고 말이다. 이래저래 주유는 대단한 실력은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주유가 정말 실력이 없었을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주랑이 젊었을 때 보여준 활약이 너무 크다. 35세에 사망했기 때문에 평생을 젊은이로 살았지만, 적어도 '적벽대전'까지는 주유는 대활약을 한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인 주유의 활약상은 좀 치졸해 보인다. '천하이분지계'라는 거창한 국가비젼까지 보여준 것에 비하면 실제로 벌인 작전이 큰 그릇에 걸맞지 않은 '속임수'로 점철되었고,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해서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것 같은 쓸쓸한 뒤안길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주유는 운발을 초년에 다 썼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희재 삼국지> 후반은 '책사편'으로 리뷰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다음에 계속.

#리뷰 #에세이 #이희재삼국지 #휴머니스트 #책사편 #주유 #천하이분지계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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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5 - 세 번 찾아 공명을 얻다 이희재 삼국지 5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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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5 : 세 번 찾아 공명을 얻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I / 휴머니스트 5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다섯 번째 리뷰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기만 하다 드디어 날개를 달고 훨훨 날게 된 유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희재 삼국지 5>다. 조조와 원소의 대격돌, 관도대전이 한창일 때 유비는 흩어졌던 관우, 장비와 해후한 뒤에 '여남'을 중심으로 주변 세력을 규합하게 된다. 조자룡을 비롯해서 주창, 관평, 그리고 유벽 등이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의 뒤통수(허도)를 공격한다. 하지만 조조는 이마저도 단단히 대비를 해놓았고, 명장 조인의 공격에 유벽은 죽고, 유비는 겨우 살아남아 다시 도망길에 오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유표의 영지인 '형주'다. 과연 형주에서 유비는 어떤 일과 조우하게 될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5> 관점 포인트 : 소설의 주인공은 '유비'지만, 역사의 주인공은 '조조'다. 그런 까닭에 소설 <삼국지>의 줄거리는 '조조의 관점'에서 큰 줄기가 흐르고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유비가 형주에 막 도착했을 때에는 '관도대전'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승부도 어느 쪽으로 판가름이 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누가 승자가 되든, 하북을 다 먹은 승자의 다음 목표는 손권이 다스리는 동오다. 그런데 하북에서 강동까지 곧바로 내려오기에는 버겁다. 더구나 100만 대군을 이끌고 내려갈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육로'보다 수월한 '수로'를 택하는 것이 정석이다. 당시에는 황하와 장강을 잇는 '대운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는 전쟁을 마치고 정비하는 시간 동안에 '형주 공략'에 나섰던 것이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조조의 정비 시간'에 형주에 머물고 있던 유비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비는 가는 곳마다 '원래의 주인'을 파멸시키거나 '한 주인'을 오래 섬긴 적도 없었기에 유표의 아내 채륵과 처남 채모는 유비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반대가 심했고, 심지어 여차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내면서 실제로 죽이려는 모의 또한 수차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심 받고 있는 처지에서 유비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저 허송세월 놀고 먹는 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비육지탄'이 아니겠는가?

그러던 유비에게 '수경선생'이라 불리는 사마휘와 우연히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수경선생에게서 유비에겐 든든한 팔다리가 되어줄 인재는 많지만, '머리'가 되어줄 책사가 부족하다며 '복룡''봉추' 가운데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가질 수 있다는 조언을 듣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조조와 여러 번 싸우면서 느끼는 점이었지만 관우, 장비 같은 '만인지적'의 장수를 두고도 전략에서 밀리고 계략에 빠져서 이렇다할 성과도 얻지 못하고 패배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유비는 그 날 이후로 복룡과 봉추를 만나는 기대를 품고 부푼 꿈을 꾸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인연이 바로 '서서'다. 비록 그 인연은 짧았지만 유비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조조에겐 곽가와 순욱, 원소에겐 전풍과 저수, 손권에겐 주유와 노숙 등의 책사가 있어 일찍부터 세력을 확장하고 전략과 내정을 두루 살피는 인재를 활용해서 단단히 득을 보았다. 심지어 동탁에겐 이유, 여포에겐 진궁이 있어 화려한 전공을 거두고 일시적이나마 '든든한 뒷배'가 되어 동탁과 여포가 화려한 비상을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런데 유비에겐 이제서야 '서서'라는 날개를 얻고 활기차게 날아오르려 했다. 유비의 기분이 얼마나 째졌을까? 허나 조조의 책사 정욱 때문에 서서는 사기를 당하고 유비의 품을 떠나 조조의 새장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유비의 상심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그 유명한 '삼고초려' 고사가 등장한다. 정사 <삼국지>에는 고작 딱 한 줄,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갔다'는 기록이 전부이지만, 나관중은 딱 이 한 문장을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고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유비는 제갈량에게서 '천하삼분지계'라는 지혜를 얻게 된다. 조조가 북쪽을, 손권이 남쪽을, 그리고 유비가 서쪽을 차지하고 '정족지세'를 유지하는 것이 현재 유비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유비는 부풀어오르는 야심을 시작도 하지 못하고 눈물부터 쏟아낸다. 제갈량의 지혜에서 나온 계책이, 유비에게는 형주의 '유표'와 익주의 '유장'이라는 황실사람으로부터 땅을 빼앗으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런 유비의 눈물에도 제갈량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천문지리를 살펴보니 유표의 목숨은 그리 길지 않고, 유장은 백성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 유비가 굳이 빼앗지 않아도 그 땅이 유비에게 저절로 굴러들어올 것이라며 안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삼고초려' 직후에 유표의 건강 악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유표는 유비에게 '형주'를 맡아달라 부탁하지만 유비는 감히 받을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한다. 유표에겐 두 아들이 있고, 유표의 유지는 당연히 두 아들 가운데 한 명이 이어받아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러자 유표는 두 아들 가운데 누굴 '후계자'로 삼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이 역시 장남 유기여야 한다고 단칼에 답한다. 허나 이 얘기를 유표의 아내가 들었고, 처남이 채모가 누이가 낳은 아들인 '유종'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유기'를 죽이려 든다. 이에 유기는 유비를 찾고 제갈량에게 지혜를 얻어 '강하'로 몸을 피신하지만, 때마침 조조가 '정비 시간'을 마치고 형주를 집어 삼키기 위해 병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약 유비가 유표의 유지를 이어받아 '형주'를 받아 직접 다스렸다면 어땠을까? 물론 유비 홀로 조조의 100만 대군을 상대할 수는 없었겠지만, 제갈량은 손권에게 동맹을 요구하며 함께 싸워 승리했을 것이다. 제갈량의 머릿속에는 이미 조조군을 상대할 대비책이 다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신야와 번성 등이 있는 '장강 이북'은 조조의 수중에 들어갔겠지만, '장강 이남'에 있는 양양과 강릉, 그리고 강하를 거점으로 '수전'에 약한 조조를 충분히 괴롭히며 조조의 100만 대군을 야금야금 깎아먹으며 조조가 제풀에 지치게 만드는 방법을 써서 승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손권도 주유와 황개 등을 앞세워서 남양과 수춘을 공략하며 조조를 충분히 괴롭히고 더 나아가 서주땅까지 빼앗게 된다면 절대 손해보는 일은 없었기에 유비와 동맹을 맺고 열심히 싸웠을 것이다. 그 뒤에 유비는 세력을 정비하고 서쪽의 익주를 다스리는 유장을 대신하여 파촉과 한중까지 아우르게 된다면 '천하삼분지계'는 완성이 되고, 완벽한 '정족지세'를 이루어 한 황실의 부활과 부흥을 장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비가 '형주'를 마다하는 바람에 일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비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애초에 가진 것이 없었기에 빈털털이 유비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 '도덕적 우월감' 말이다. 유비는 하는 일마다 '인의'를 앞세웠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옹고집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런 유비의 장점은 백성들에게 잘 먹혔다. 그래서 유비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살기 좋은 세상이 왔다며 좋아했고, 유비를 '성군'으로 높여 부르길 그치질 않았다. 그래서 조조가 유비가 있는 '신야'로 쳐들어왔을 때 신야의 백성들은 조조가 아닌 유비를 따르기로 작정하고, 조조군의 칼날을 피해 신야를 버리고 번성으로 집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조조가 도겸에게 복수한다며 '서주대학살'을 벌인 전례가 있었기에 더 확신에 찬 백성들의 행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번성에서 잠시 목숨을 부지한 백성들은 이번에 조조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또다시 유비를 따라 양양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대로라면 유비는 조조의 공세를 피할 길이 없고, 유비의 적은 병력으로는 따르는 백성을 모두 살릴 방법도 없다. 그래서 제갈량도 여러 차례 '따르는 백성'을 내버리고 속히 양양으로 가서 '유종'으로부터 양양을 빼앗아 조조의 대군을 상대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런 와중에도 유비는 백성을 버리지 않았고, 유종에게서 양양을 빼앗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다 했다. 왜냐면 이것이 유비에게 유일한 장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묘하게도 먹히는 방법이었다. 단, 목숨이 붙어있으면 말이다.

나가는 글 : 제갈량은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주군으로 모신 유비에게 '천하'를 안겨드리겠다는데도, 유비는 이 방법도 싫다, 저 방법도 싫다며 '퇴짜'만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제갈량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지금까지 유비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만큼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도덕적 우월감'이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도 유비를 따르겠다고 결심한 대목이 바로 유비가 내세운 진심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그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워서 천하를 다스리도록 작전을 변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조의 파상 공격에 겨우 몸만 살아남은 유비 세력은 '조조의 다음 목표'인 동오를 구하기 위해서 '동맹 결성'에 올인하게 된다. 제갈량은 '동맹'이란 이름을 빌어서 조조와 손권을 서로 싸우게 만들고, 그 틈을 타서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고, 이를 밑천으로 파촉땅까지 접수한 뒤에 천하대권을 차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그 첫걸음은 바로 '적벽대전'이다.

일명 조조와 손권의 힘을 서로 빼고 빼앗기게 만들고 유비는 '어부지리'로 형주도 먹고, 익주도 먹겠다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이 적벽대전도 정사 <삼국지>에는 간략하게 적혀 있다. 조조의 대군이 '풍토병'에 시달리다 손권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후퇴했다고 말이다. 그 어디에도 '동남풍'이 불고 '화공'으로 수많은 배들이 장강의 물속으로 가라앉고 수십 만의 병사들이 물고기 밥이 되었다는 기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모두 나관중의 수려한 묘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팩트가 아니라고 '적벽대전'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은 제갈량과 주유의 지략 싸움에 흥미를 느끼며 '전쟁'이라는 참극 속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흥미진진한 대결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두고 '중국인들의 허언증'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비판을 넘어 비난거리를 제공하는 면도 없지 않지만,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서 이 대목이 재미없고, 내용과 결말이 뻔해서 진부하다는 독자는 찾기 힘들다. 심지어 소설 <삼국지>를 읽고 난 뒤에 정사 <삼국지>를 읽으면 머릿속에서 다채롭고 수려한 서사가 펼쳐지기 때문에 그 힘든 '완독'을 해내는 원동력을 얻기도 한다. 이게 소설이 가진 진정한 힘이기도 하다. 허구로 쓰여진 글에 불과하지만 '상상력'에 날개를 달게 해주고, '지혜'를 외우는 것이 아닌 깨달아서 써먹을 수 있게 해주는 등 온갖 '마법'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21세기에도 '고전소설'을 읽고, 감동을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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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4 - 관도에서 갈린 운명 이희재 삼국지 4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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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4 : 관도에서 갈린 운명>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 / 휴머니스트 5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네 번째 리뷰는 조조와 원소가 운명의 대결을 벌이는 가운데 유비 삼형제는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하며 떠돌이 생활을 면치 못하는 <이희재 삼국지 4>다. 진수의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비교하며 읽으며 '팩트 체크'를 하는 것은 이제 한물 갔다. 소설 <삼국지>를 읽으며 역사 공부가 가능한지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AI 인공지능으로 언제든 '검색'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는데, 누가 그 방대한 분량을 일일이 따지며 읽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이젠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별개의 감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소설을 읽고 '역사'에 관심을 높이고, 역사를 읽으며 '소설'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삼국지>를 헤아릴 수 없이 읽은 나이가 되자 둘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더 무의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4> 관점 포인트 : 조조의 품에서 벗어난 간신히 벗어난 유비는 서주에서 세력을 정비하며 '원술의 북상'을 기다렸다 끝장을 낸다. 그렇게 원술은 한껏 욕심을 부려 '황제'가 되었지만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렇게 여포에 이어 또 한 명의 영웅이 사그라들며 서서히 '관도대전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서주에서 모처럼 '재기'를 도모하던 유비가 조조군에 괴멸 당하며 삼형제가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었다. 조조 입장에서 유비가 원소와 손을 잡고 양방향에서 협공을 당하는 것이 가장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조는 여포 토벌 당시에 서주의 백성들이 유비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렇기에 유비가 서주에 뿌리를 탄탄하게 내리고 세력을 강하게 키우기 전에 짓밟아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그런 까닭에 유비가 재정비를 하기도 전에 조조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유비를 공략하기 바빴다. 조조로서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려 원정을 나섰을 때 '본진'에 해당하는 허도를 원소가 찌르기라도 하면 조조는 꼼짝없이 대군을 회군해서 허도를 지키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비도 이를 간파하고 원소에게 동맹을 제안하고, 조조가 서주 공략에 나서면 허도를 공격해주십사 요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소는 그릇이 작은 인물이었다. 천기를 읽어내는 재주가 없어서 고작 '귀염둥이 셋째 원상이 고뿔에 걸렸다'는 이유를 대며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만다. 유비가 조조의 대군을 서주에 묶어둔 사이에 원소가 70만 대군을 이끌고 허도를 공략해서 헌제를 가로챌 수만 있었다면, 천하를 차지한 것은 조조가 아니라 원소였을텐데 말이다. 암튼 원소는 그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고 만다.

덕분에 유비는 죽을 맛이다. 조조는 인재가 많고 유비는 동원할 수 있는 군사 수가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장비는 단 한 번의 기습공격 실패로 '피트 아웃' 당하고, 유비는 원소 진영으로 '피트 인' 했으며, 관우는 유비의 처와 식솔을 데리고 '하비성'에서 옴싹달짝할 수 없는 곤궁한 처지에 몰리고 만다. 여기서 조조는 '인재 욕심'을 부려서 관우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관우는 다시 '유비의 품'으로 가버리고 만다. 소설에서는 이 대목에서 '오관육참장'이니 '단기천리'니 하면서 관우의 명성을 드높이지만 '정사'에는 없는 '허구적 묘사'에 불과하다. 관우가 안량과 문추를 단 칼에 죽였다는 내용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문추를 죽인 기록은 있지만, 안량과 맞대결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관중은 왜 이렇게 관우를 띄워 주었는가? 이유는 딱 하나다.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유비를 낙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비와 의형제를 맺은 관우와 장비의 '분량'을 늘일 수밖에 없었고, 기왕 늘이는 것이라면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띵호와~ 아니겠는가. 그래서 호뢰관에서 화웅과 대결할 때에도 관우는 조조가 권하는 술 한 잔조차 "이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가져오겠다"는 명대사를 남긴 것이다. 이 역시 '정사'에는 없는 기록이다. 애초에 반동탁연합군에 '공손찬'이 참가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그러니 아무런 지위가 없던 유비가 '공손찬 소속의 별군'으로 참가했다는 묘사조차 믿기 힘든 대목이다. 그래서 반동탁연합군이 동탁군과 싸워서 빛나는 전공을 세운 군웅은 '손견'이 유일하다. 그러니 여포를 상대로 유비 삼형제가 나서서 대등하게 싸웠다는 내용조차 '사실'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소설 <삼국지>는 '그 자체'로 즐기면 될 뿐이다. 기왕 유비가 주인공이니 악당 조조가 천하를 차지하고 온갖 패악질을 다할 때, 착한 영웅 유비가 나서서 조조를 혼쭐 내줬다는 내용에 심취해서 읽으면 그 뿐이다. 왜냐면 고전소설 나름의 '주제''교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조와 원소의 운명을 가르는 '관도대전' 와중에도 유비와 관우, 장비, 심지어 조자룡까지 등장하여 이야기를 맛깔나게 진행시키는 것이다. 이런 맛깔난 '진행'이 아니라면 아무리 '관도대전'이라고 할지라도 지나치게 진지하고 지루할 따름이다. 진수의 <삼국지>가 그렇다.

한편, 손책은 장강 일대를 평정하고 '소패왕'이라는 별명답게 엄청난 활약을 한다. 하지만 조조와 원소가 한창 싸우고 있는 '관도대전'의 판세에 캐스팅보트를 선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기에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기는 노련함까지 보여줬지만, 과도한 욕심을 부리다 조조와 척을 지게 되고, 그로 인해 '사소한 원한'을 쌓은 것이 화근이 되어 자객의 습격을 받아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우길'이라는 도사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다가 끝내 자신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동오에는 손견, 손책에 이어 손권이 등장하게 된다.

나가는 글 : 결국 '관도대전'의 승패는 조조의 완승으로 끝맺게 된다. 원소는 70만 대군과 수많은 인재를 거느리고도 10만도 채 되지 않는 조조에게 패배하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후계자를 둘러싼 내홍을 겪으며 '원씨 가문'은 아예 멸족이 되다시피 역사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제 조조는 명실공히 '하북의 패자'가 되어 중원을 독차지하게 된다. 이제 남은 군웅이라고는 동오의 손권과 형주의 유표, 익주의 유장, 한중의 장로, 서량의 마등과 한수 뿐이다. 그리고 아직도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유비가 남았다.

시리즈 4권이 지나도록 유비는 '근거지'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가진 것 없는 유비의 곁에 관우와 장비, 미축, 손건, 간옹, 그리고 새로 합류한 조운, 관평, 주창 등등 점점 세를 불려나간다. 이런 유비의 행보를 보면서 '끈끈한 유대감' 밖에 남지 않은 무리라면서 '조폭 집단' 같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많다. 뭐, 나중 일이긴 하지만 관우와 장비의 죽음 때문에 유비는 '사사로운 정'을 내세워 국가간의 전쟁을 선포하는 군주답지 못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결정적 증거'라면서 '빼박 조폭'이라고 주장한다. 딴에는 그렇다. 한 나라의 수장이 '동생의 죽음'을 이유로 국가대전을 벌이며 온 국민들을 전장터로 내몰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냔 말이다. 이런 유비의 모습을 보고 '의리의 사나이' 정도면 모를까? '착한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도 유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나관중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악당으로 자리매김한 조조에 비해서도 유비의 역량은 한참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비가 세운 촉한은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망하지 않느냔 말이다. 조조, 손권, 유비 중에서도 '유비'가 가장 먼저 죽는다. 가장 일찍 죽는 '주인공'도 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관중이 살던 시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원말명초의 시기 말이다.

한족에게는 치욕스런 시대였을 것이다. 오랑캐라 불리던 '몽골족'에게 나라를 송두리채 빼앗기고 온갖 차별정책으로 유린 당했던 한이 서려있던 시절이었다. 나관중은 이런 시대를 살며 '한족 동포'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줄 필요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 한족 최고의 전성기는 언제이고, 최고의 영웅은 누구였을까? 강력한 제국으로는 당나라 태종을 꼽을 수 있겠지만, 당은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정책을 내세웠다. 물론 '한족' 중심이었기에 최강국이었다는 명분은 세울 수 있었지만, 오랑캐를 혼쭐(?) 내줄 수 있는 영웅으로는 마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족 최고'이자, '한족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한나라 유방'이 적임이었다. 그래서 유비의 외모마저 바꿔 버렸다. 유방이 귀가 컸다는 기록이 있었기에 유비의 귀도 어깨까지 내려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이 정해졌다. 한고조 유방을 꼭 닮은 '유비'로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천하 통일의 주역은 단연 '조조'였기 때문이다. 유비의 촉한은 별다른 역량도 뽐내지 못하고 제풀에 망해버렸다. 이래서는 주인공답지 못하다. 그럼 주인공이 죽고 나라가 멸망한 다음에도 길이길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정통성'이다. 비록 살아생전에 이루지는 못했지만 죽고 망한 뒤에도 오롯이 살아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정통성'을 세워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촉한정통론'이다. 비록 천하 통일한 것은 조조가 세운 '위나라'지만, 1000년 뒤 오랑캐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한족'이 되살려내야 할 나라는 '한족의 뿌리'인 한나라이고, 후한이 멸망한 뒤에는 '촉한'으로 이어지고, 그 뒤를 '송''명'이 이어간다는 정통론을 다시 세운 셈이다.

그런 남은 것은 '촉한정통론'이 옳다는 그럴 듯한 이야기가 마련되어야 했다. 역사사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으니 '소설의 허구성'을 빌어서 바꾸면 된다. 허구적 사실에 기대어 '유비 정통'을 세워려니 자연스레 '조조 역적'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날조(?)한 이야기가 바로 '여백사 사건'이다. 조조를 동탁을 암살하려 했던 의인이자 영웅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살리려고 아버지뻘 되는 사람조차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버리는 냉혈한이자 '간웅'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희생자가 생겼다. 유비를 영웅답게 만들기 위해 관우를 너무 띄워주다보니 상대적으로 '장비'는 술주정뱅이에 사고뭉치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오로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말이다. 아무리 영웅이라도 '빈틈'이 있어야 인간미가 보이는 법인데 '정통성'을 세울 인물에게 빈틈을 보이게 할 수는 없으니, '주변 인물' 가운데 한 명을 모지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게 바로 '장비'였던 것이다. 그러면 장비는 모지리가 되어도 충분(?)할 인물이었는가? 도원결의 당시에 장비는 15살로 중2병이 한창일 나이였단다. 하지만 공부도 착실하게 잘 했고, 무예도 출중했고, 계책도 잘 쓰는 팔방미인이었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술'을 마셨다는 기록 자체가 아예 없었단다. 그러니 소설 속에서 장비가 술을 마시고 실수를 저지른 기록은 전부 뻥이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뛰어나게 성공한 계략은 장비의 본래 실력이고 말이다. 그리고 장비가 한 실수로 묘사된 것들은 대부분 '유비''관우'가 했을 거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유비를 위한, 유비에 의한 '촉한정통론'을 소설 속에서 어떤 의도 썼는지 살펴보면서 읽어나가는 맛도 <삼국지>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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