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이원복 / 김영사 (2024)

[My Review MMCXCVI / 김영사 3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다섯 번째 리뷰는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학습만화계의 원조' 이원복 교수가 쓴 <먼나라 이웃나라>의 최신개정판(2024) 가운데 1권인 '네덜란드 편'이다. 이번 개정판의 가장 큰 특징은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의 현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인도의 IT강국이지만 너무 큰 빈부 격차'를 다룬 것이다. 그간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고려원미디어'에서 초판을 찍은 이후 93년과 95년에 두 번의 '개정판'을 낸 이후, 2000년에 출판사를 '김영사'로 옮기고서 새롭개 출간을 냈고, '21세기(2008)', '새로 만든(2012)',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2018)',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2024)'라는 조금씩 다른 타이틀을 달고서 꾸준히 출간을 하였다. 그러니 2026년 현재 만 40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10대에 이 책 초판을 읽었던 학생이 벌써 50대를 훌쩍 넘긴 세월을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한결같은 이름으로 계속 출간해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6권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24권으로 확장했으며, '유럽'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 '아시아', '아메리카'까지 전세계에 걸친 그야말로 '먼나라 이웃나라' 모두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어린이 세계사 입문서적으로 탄탄하게 자리매김을 하였다. 서론은 이쯤하고 본격적인 책내용으로 몰입을 해보련다.

<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관점 포인트 : 초판 때부터 의아한 부분은 왜 1권이 '네덜란드'냐 하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특별히 '유럽'을 대표하는 나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도 아니며, 우리의 기억속에 네달란드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작 '풍차'와 '튤립'이 고작이고, 2002년 이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이후 '히딩크 감독의 나라'로 기억할 뿐인 네덜란드가 하필이면 가장 먼저 만나는 유럽의 나라냐는 말이다. 이런 의문은 책을 넘기면 더욱 확고해진다. 왜냐면 책의 절반 가량이 '유럽사 전반'에 대한 내용으로 나열되어 있고, '네덜란드'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절반 이후부터 짤막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이 고작해야 전체 분량의 '절반'뿐이란 말이다. 이는 '초판'때부터 현재 최신 '개정증보판'까지 여전하다.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한 독자들의 지적도 상당하다. 어차피 '각 나라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독 '네덜란드 편'에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개괄적인 설명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이 부분을 확실히 개정해서 '각 나라별'로 조금씩 더 할애를 하고, '네덜란드 편'은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으로 좀더 충실하게 꾸며달라는 요구 말이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다.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조금씩 '내용수정'이 가미되거나 삭제되긴 하지만 첫 시작의 '이 부분'만큼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막상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으로 충실히 보충을 하려해도 그만큼 할 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서문'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애초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집필한 의도도 '유럽의 선진 모델'을 우리 어린 독자들에게 선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피치 못하게 '유럽사 전반'에 대한 개괄적 내용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거란 말이다. 그런 까닭으로 <먼나라 이웃나라>의 시작은 큰 변화 없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듯 싶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이 '유럽사 전반'에 관한 내용이 <먼나라 이웃나라>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한 점이 없지 않다. 우리가 '서양사'로 국한된 관점으로 '개론(서문)'을 읽을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발자취'를 최대한 간추려 본다는 관점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일단 서구사회의 역사를 살펴본 뒤 대략적으로 이해를 한 뒤에 '각 나라별'로 그 이해한 내용을 맞춰보면 일종의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서로 비교분석하면서 읽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밑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된 뒤에는 얼마든지 '자기만의 관점'으로 독서를 할 수 있을테니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단 말이다.

물론,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될 점은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서구 사회의 우월성'을 뒷받침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는 서양이 전세계를 석권하고 점령하다시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약소하고 빈곤한 나라의 처지에서는 '서구사회의 뛰어남'을 하루빨리 배우고 익혀서 그들의 발전상을 따라잡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허나 지금의 우리를 보라. 21세기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자 강대국으로 초일류국가로 발돋움했다. 그런데도 저물어가는 '서구사회의 현주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우러러 보는 식으로 '그들만의 세계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단언컨대 절대로 그렇게 공부해서는 안 된다.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유독 '유럽사'에 포커스를 맞추고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공부하는 까닭은 그것이 인류 보편적인 방법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현재의 유럽 등 서구사회 언론은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상을 극찬하면서도 그 유래가 자신들의 민주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들면서, 자신들은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처럼 발전시키지 못했는데, 대한민국은 자신들이 만든 '민주주의'를 교과서처럼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을 보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발전된 민주주의 모습을 보면서 그 원조격인 서구 사회를 찬양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민주주의는 '서구식'이 아닌 '한국식'이었다는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기원은 그들에게 있으나 우리의 실정에 맞게, 우리의 필요에 맞게 뜯어고쳐 '한국식'으로 만들었더니 전세계적으로 귀감이 되고 '교과서'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는 식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세계사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역사가 설명하기 쉽게 되어 있으니 차용해서 배울 뿐이다. 허나 그들의 방식이 우리에게 꼭 맞지는 않으니 '한국식'으로 바꿔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네덜란드'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이 있을까? 네덜란드는 주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도 당당히 실력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며, 살기 어려운 자연환경에 굴하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도 살기 좋은 터전을 일구며 살았다는 점을 배울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네덜란드 사람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저항 정신'과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살기 좋은 터전으로 일구어 바다를 통해 전세계와 무역을 하여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한 '개척 정신'을 배워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는 서유럽에 위치해 있으면서 북쪽으로 영국, 남쪽으로 프랑스, 그리고 동쪽으로는 독일을 접하고 있다. 이런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와 더불어서 '베네룩스 3국'이라 불릴 정도로 작고 조막만한 나라일 뿐이다. 그런 탓에 네덜란드는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와 약탈속에서 크게 번영하지 못하고 '속국'으로 지내야 하는 시일이 더 길었다. 하지만 '30년 전쟁' 이후 네덜란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아 '신교의 나라(믿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로 당당히 인정받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허나 기쁨도 잠시 주변 강대국이 오랫동안 점거하고 있던 동안 사회문화적으로 '다름'이 역력했던 남부의 벨기에 지방은 따로 독립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벨기에는 언어도 '프랑스어'를 썼고, 종교도 '가톨릭(구교)'을 쓰는 이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 쟁취한 독립인데 따로 분리독립을 시켜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내전'에 돌입했지만, 결국 갈라서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현재의 네덜란드가 탄생했다.

이런 불굴의 저항 정신이 강했던 네덜란드이기에 척박한 자연환경도 쉽게 굴하지 않고 '바다'였던 곳을 '육지'로 바꾸는 '간척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전체 영토의 2/3가 바닷물 높이보다 더 낮은 땅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좁고 척박한 땅에서 안주하며 살기보다 일찍부터 인접한 바다를 통해서 더 넓은 곳으로 진출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영국과 함께 깨부순 뒤에는 '해상무역'을 발판 삼아 전세계에 식민지를 만들기보다 '무역거점'을 확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더구나 종교도 가톨릭이 아니라 신교였기 때문에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자랑으로 삼을만한 유구한 역사도 없었기에 '자기 것'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한 생각으로 손익계산에 빠른 '경제적 사고방식'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 상인은 전세계를 식민지로 삼으려 들었던 포르투갈과 대영제국과는 달리 전세계 바다를 누비며 '상업활동'에 매진한 것이 부를 쌓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러한 유연하고 실리적인 사고방식은 네덜란드가 '안락사'나 '성매매', '마약' 등에 대한 '합법화'를 시도하는 것을 봐도 꽤나 진취적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첨예한 사안을 '실용적인 사고방식'으로 불법으로 간주하여 드는 천문학적 사회비용을 '합법화'하여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쓰자는데 국민적 선택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특히 마약 합법화는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구입하려 불법을 자행하고 급기야 범죄까지 저지르는 일이 늘어나자 차라리 국가가 합법적으로 '마약 관리'를 하고 싼값에 제공을 하면 마약을 구입하는데 음성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 '양성화'가 되어 마약중독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할 수 있어 '마약 중독'까지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계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네덜란드의 이런 '실용화 정책'은 오늘에 이르러 모두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약중독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안락사나 성매매도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악의적이고 변칙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점차 늘어나고 말이다. 하지만 비록 실패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더라도 네덜란드의 이런 '실용주의 노선'은 개선을 통해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렇게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네덜란드의 무한한 장점일 것이다.

나가는 글 :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유럽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우파적 성향'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혁명'을 주도하는 진보적 정치구호가 강성할 때도 있고, 경제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우파'적 경향도 보이지만, 성장한 만큼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좌파'적 경향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으면서 이런 경향들이 빈번하게 바뀌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진보'와 '좌파'를 나쁘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이 책에서도 은연중에 보수와 우파가 옳고, 진보와 좌파는 나쁘다는 취지로 설명하는 대목이 간간히 보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것들은 엄연히 '유럽의 상황'에 따른 평가일 뿐, 대한민국 정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 독자들이 읽을 때에는 '유럽의 상황'으로 인지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현 상황'으로 이입을 하여 잘못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어른인 학부모도 함께 읽는 책이다보니 이원복 교수의 개인적인 '정치색'으로 잘못 이해하고 이 책의 평가를 단정짓고 매도하는 일도 잣다.

물론, 이는 이원복 교수의 책임을 먼저 물을 수밖에 없다. 만화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너무 복잡한 현실상황을 '도식적'으로 욱여 넣다보니 그런 오해를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시절 그 당시의 '유럽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자칫 오해할 수도 있는 대목을 독자들이 현명하게 해석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프랑스 혁명 같은 것을 '좌파세력들의 난동'으로 치부하고 왕의 목까지 잘라내는 극악무도한 세력의 준동으로 매도하고 '혁명의 주역'인 제3신분(부르주아)의 사람들을 무지렁이들이 감히 국가최고책임자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는 바람에 나라꼴을 우습게 만들고 급기야 외국의 침략까지 불러일으켜서 나라를 망하게 만든 망국의 원흉으로 해석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무지렁이들을 통솔해서 프랑스를 구해낸 나폴레옹의 등장을 '영웅화'하는 어리석음으로 잘못 확대해석할 수도 있다. 나폴레옹이 외국이 프랑스를 침략하는 위기에서 재주를 발휘해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나폴레옹에 대한 프랑스인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대한민국에 빗댄다면 '박정희'를 영웅화하는 것과 매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라면 나폴레옹이 위대한 영웅이 되어야 맞는데 왜 프랑스인들은 나폴레옹을 낮게 평가하는 것인지 제대로 된 배경지식이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이런 부연설명이 좀 약한 편이다. 그래서 어린 독자를 의아하게 만들고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유럽 국가들은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 경제, 외교, 문화, 안보, 군사 등 여러 면에서 '대한민국의 협조'를 바라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없으면 유럽은 망한다'는 논리로까지 해석할 수 있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유럽 각국은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한국과 손을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단 말이다. 심지어 콧대 높던 유럽의 수장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까지 대한민국을 국빈 대우를 하며 서로 모시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유럽 각국이 대한민국에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40년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유럽을 공부하기 위해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필연적이다. 망했다가도 흥하고, 흥하더라도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유럽이 엉망이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잘 나가던 유럽이 왜 망했으며, 망했을 때 유럽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살아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잘나가고 있더라도 언제든지 하루 아침에 폭망할 수도 있다. 불과 1년여 전에도 폭망할 뻔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기적처럼 다시 회생하고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바야흐로 선도국가로 세계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서라도 여러 나라의 '국가경영방식'에 대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자의 특권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왕자의 특권>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 문학세계사 (2009) [원제: Le Fait du Prince(2008)]

[My Review MMCXCV / 문학세계사 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네 번째 리뷰는 벨기에 국적이지만 '프랑스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프랑스 문학'으로 취급 받는 아멜리 노통브의 열일곱 번째(공식발표상) 소설인 <왕자의 특권>이다. 그동안 내가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한 십여 권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 아닌가 싶다. 왜냐면 그녀의 소설이 특징인 '적(敵)'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막무가내로 미워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답답하고 갑갑스러기만 한 '억지'도 없었다. 그저 두 남녀가 등장했고 아주 비싼 '샴페인'을 홀짝이며 마시며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전개시킬 뿐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아멜리 팬들은 '그녀만의 맛'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그저 밋밋한 소설이라는 평도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좋았다.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기까지한 '저속한 표현'이 거의 없기에 '로맨스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감미로운 감상에 젖어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로맨스 소설'도 퍽 좋아하는 편이다. 언젠가 꼭 시간을 할애해서 <로맨스 소설>(특집)을 다뤄야겠다. 조만간 찾아갈 것이다.

<왕자의 특권> 관점 포인트 : 아무리 로맨스 소설 같은 감미로운 느낌을 선사하더라도 아멜리 노통브는 어딜 가지 않는다. 첫 소절부터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왕자의 특권>에서는 '자기 집에 방문한 사람이 심장마비 따위로 갑자기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자신은 곧바로 택시를 불러 '시체'를 싣고 병원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한다. 느닷없는 이런 질문에 왜 '경찰'이나 '119 구급대'를 부르지 않느냐고 반문을 던지니,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무죄가 밝혀지기 전까지 '경찰'이 신고한 사람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구금을 하거나 수사를 핑계로 '현장'을 통제할 것이고, '용의자'로 지목된 당신은 수사를 빌미로 시달림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렇기에 가장 깔끔한 방법은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사망'했다는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며칠 뒤, 이 집 앞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며 전화 한 통화만 할 수 있게 부탁드린다고 방문한 사람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전화를 걸고 "여보세요"를 말하는 순간 그 자리에 쓰러져 죽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주인공인 밥티스트는 깜짝 놀랐지만, 곧 침착하게 쓰러진 남자를 흔들면서 깨우려 시도했다. 하지만 죽은 것이 분명했다. 심장이 멎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밥티스트는 침착하게 며칠 전에 한 대화를 떠올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 '택시'를 부르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쓰러진 남자의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을 확인한다. 올라프 질더. 그 사람의 이름이었다. 국적은 스웨덴. 그런데 묘하게도 그의 나이와 밥티스트의 나이가 똑같았다. 그러고보니 눈 색깔도, 머리카락 색깔도, 그리고 키도 똑같았다. 다른 것이라곤 '덩치(체격)'뿐이었다. 올라프가 밥티스트보다 더 뚱뚱하고 건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갑에 1000유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주소는 베르사유...이런 걸 확인하다가 그만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밥티스트는 뒤늦게나마 '경찰'에 신고하고, '119 구급대'를 부를까 하다가 자신이 너무 늦장을 부린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기에도 적절한 타이밍은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신분'을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은 자의 신분'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산 자의 신분'은 이렇게 쓰러져 죽은 이에게 주고서 서로의 삶을 맞바꾸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집에서 썩어버린 시체가 발견된다면 '밥티스트'가 자연스럽게 죽은 것으로 될테니 덩치가 좀 차이가 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고장난 차'가 있다는 곳으로 나가보니 차도 고급 차량이었다. '재규어' 말이다. 밥티스트..아니, 올라프는 그 차를 타고서 '자기 집'인 베르사유로 떠났다.

그러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올라프가 자신의 집 초인종을 누른 이유가 다름 아닌 '자동차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고장난 차를 자신이 직접 몰고 있다. 하지만 고장난 차치고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만 달렸다. 뭔가 찜찜했지만, 베르사유에 도착해서 올라프의 집을 확인하니 그런 찜찜함도 단박에 사라졌다. 집이 '호텔 별장'만큼이나 호화로웠기 때문이다. 밥티스트..아니 '올라프'는 자신의 집에 당당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집주인답게 주방 식탁에 차려져 있던 음식을 자연스럽게 주워 먹기 시작했다. 한참을 맛나게 먹고 있는데 주방에 아름다운 금발 미녀가 들어왔다. 올라프는 깜짝 놀랐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음식을 씹었다. 금발 미녀는 그런 올라프를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샴페인'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다보니, 그 금발 미녀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였던 것이다. 정확히는 '올라프의 아내'였지만 말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으리으리한 집안에서 단 둘만이 거주를 하게 된다. 과연 신분을 바꿔치기한 것은 '신의 한 수'였을까?

나가는 글 : 이야기 설정 자체는 말도 안 된다. '사망사건'이 발생했는데, 경찰이 '신원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을 턱이 없고, 자신의 집안에 '낯선 사람'이 들어와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동거 생활'이 시작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억지로 껴맞춰 넣은 것이 '올라프'가 스파이나 국정원, 또는 범죄조직의 보스급 인물일 거라는 설정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집단들의 특징이 바로 '엄청난 정보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밥티스트'가 '올라프'로 바꿔치기를 했는데, 그냥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이 자연스럽게 며칠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아멜리 노통브가 '범죄스릴러' 같은 장르의 소설을 써보지 못한 탓에 '치밀함'을 갖추지 못하고 어설프게 흉내만 낸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이런 덜 치밀한 설정이 오히려 나는 좋았다. 아니 어찌 되었든 아리따운 '금발 미녀'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는 것 아닌가. 이보다 더 훌륭한 '로맨스 소설'이 어딨단 말인가? 더구나 올라프는 엄청난 부자였던듯 돈을 쓰고 또 써도 '화수분'마냥 돈이 펑펑 나왔다. 이런 행운이 가득한 곳에서 '밥티스트'와 '지그리드'..금발 미녀의 이름이다..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이어진다. 하지만 불안한 점이 없지 않다. 지그리드는 왜 '낯선 남자'인 자신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자신의 집'에 거주하게 허락하는가 말이다. 거기다 올라프가 죽기 직전에 걸었던 전화가 마음에 걸렸다. 분명 전화기 저 편에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올라프가 스파이나 국정원, 또는 범죄집단의 보스라면 '전화기 속 상대'가 자신을 죽이러 쫓아다니는 것은 아닐지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다. 소설은 급작스럽게 '로맨스'에서 '첩보물'로 바뀌며 이야기가 쏜살같이 전개된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낸 '전화기 저 편의 목소리'의 주인공과 통화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올라프..아니, 밥티스트에게 '죽지 않게 조심하라'고 경고를 한다. 가짜 올라프의 정체가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과연 밥티스트는 올라프의 아내 지그리드와 로맨스를 완성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원복 교수의 세상만사 유럽만사 - <먼나라 이웃나라> 유럽 완결 편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원복 교수의 세상만사 유럽만사 : <먼나라 이웃나라> 유럽 완결 편> 이원복 / 김영사 (2010)

[My Review MMCXCIV / 김영사 3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세 번째 리뷰는 <먼나라 이웃나라>로 유명한 만화가 이원복 교수의 <세상만사 유럽만사>라는 책이다. 이 책은 2000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짐작하셨듯이 '유럽연합(EU) 출범'에 맞춰서 유럽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출간한 책이다. 부제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이 책의 상당 부분은 <먼나라 이웃나라 : 유럽 여러 나라 편>의 내용을 발췌했다. 그런 의미에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여러 번 읽으신 독자분들은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일 수도 있지만, 딴에는 여러 편의 책 내용이 '한 권'에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봤더라도 '또 보면' 좋을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의미 말고도 이 책이 볼만한 까닭은 또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네덜란드', '프랑스', '도이칠란드', '이탈리아', '영국', '스위스', '스페인', '러시아' 등 비교적 유럽 강대국 위주로 자세히 다루고 있는 반면에 이 책은 비록 다루는 분량은 적지만 '북유럽', '동유럽', '남유럽', 그리고 '미니 국가들'까지도 촘촘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즐겨 읽으셨던 분들이라도 새롭게 알게 되는 지식들이 상당할 것이다. 나도 '오스트리아'와 '발트 3국', '폴란드',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그리스' 등등 처음 접하는 유럽의 역사에 신기함을 느낄 정도의 신선한 낯섦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80년대 어릴 적에 어렴풋이 늬우스에서 들어봤을 법한 토막지식들이 불쑥불쑥 떠올라서 더욱 집중하며 읽게 되었다.

더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냉전시대'가 저물자 초강대국 미국을 맞설 상대로 '유럽연합'을 꼽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미국의 상대로는 중국이 새로 부상을 했고, 유럽연합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대한민국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낙후'된 유럽의 현주소를 재조명할 지경에 이르렀고, 경제, 정치, 외교, 군사,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유럽의 각국이 '대한민국'에 의지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마디로 '한국이 없으면 유럽은 안 된다'는 식으로 완전히 역전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현재에도 유럽 각지에서는 '극우 정권'에 의한 혼란한 정국으로 인해 존립 자체에 위기감이 형성되고 있고, 수많은 청년들은 '일자리'와 '복지혜택'을 달라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나마 평화로운 시위도 아니어서 폭력과 방화, 강도 따위의 '2차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 극심한 사회혼란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한때 우리가 배우고 따라하고 싶었던 '모범국가'였던 유럽을 다시금 되짚어보고, 그래도 배울 점이 있으면 배우고,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 있다면 낱낱이 밝혀서 뽕을 뽑아내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출간 목적일 것이다. 비록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책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이 유럽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그럼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원복 교수의 세상만사 유럽만사> 관점 포인트 : 1차와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장터였던 '유럽'은 1945년을 기점으로 새롭게 발돋움하게 된다. 이전부터 강대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러시아 같은 나라들은 아픔과 상처를 빠르게 회복하고 정치와 경제적 안정을 통해서 탄탄하게 성장하였다. 그밖에도 베네룩스 3국이라든지,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같은 나라들도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밖의 유럽 국가들은 전장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승전국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거나, '패전의 아픔'에다가 '극심한 빈곤'까지 겹치면서 오래도록 성장은커녕 '안정'을 되찾지도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서슬퍼런 '냉전'이 휘몰아치자 유럽의 약소국들은 '두 개의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길 강요당했고, 자발적으로 선택했더라도 '미국이나 소련의 위성국가' 신세를 면치 못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똑같이 유럽 국가라고해서 모든 유럽 국가가 번영을 구가하고 부러움을 사는 '모범국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2000년 이후 새로 출범한 '유럽연합(EU)'에 여러 유럽국가들이 가입을 하면서 비록 '가상 국가'이고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강압적으로 뭉친 점이 없지 않지만, 연방국가인 '미국'과 더불어서 엄청난 '경제력'을 가진 새 국가가 등장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다. 그리고 2026년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유럽연합(EU)'는 우리가 따르고 싶고 부러워하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대한민국'을 따르고 부러워하는 나라로 인식하게 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잘 했고, 유럽은 뭘 잘못했기에 그런 것인지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유럽은 다양한 '민족' 국가다. 유럽연합이 아무리 강력하고 엄청난 경제적 파급력을 갖춘 연합체일지라도 그들은 애초에 똘똘 뭉치기에 너무 힘들고 어려운 '고유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민족끼리 '유럽'이란 대륙 안에서 수천 년 동안 지지고 볶고 싸우며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벌여왔기 때문에 이들 나라가 '하나'로 뭉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민족간의 갈등이 번져 '인종청소'로까지 확대되어 엄청난 인명살상이 일어난 것이다. 세르비아인이 알바니아인의 독립요구를 묵살하고, 이에 저항하는 알바니아인을 상대로 대학살을 자행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수백 년 간 다른 강대국들의 압제속에서 함께 저항하며 어렵사리 쟁취한 독립이었는데, 그렇게 한 나라가 된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들이 서로 융합하지 못하고, 그들끼리 전쟁을 벌일 정도로 '민족 간의 이질감'이 너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 바로 '유럽'인 것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해서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세르비아 청년도 바로 자신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굴종을 요구했기에 암살 사건을 벌인 것이다.

둘째, 유럽은 '종교'간의 갈등이 심하다. 우리나라는 종교전쟁으로까지 번진 역사가 없기 때문에 유럽에서 벌어지는 '종교 갈등'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유럽만큼 '종교'로 인해 전쟁까지 불사한 역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먼 옛날에는 '다신교'를 믿었지만,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며 박해를 받던 '유대민족'의 종교인 '유대교'에서 일신교 사상이 퍼져나가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고, 로마제국이 동서로 갈라지면서 서로마에는 '가톨릭'이, 동로마에는 '그리스 정교'가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가톨릭이 우세하던 지역에서는 '신교(프로테스탄트)'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구교 vs 신교'로 나뉘어 본격적인 종교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이 전쟁은 '30년 전쟁'의 결말인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서 각각의 믿음을 서로 존중하기로 합의를 보고 일단락이 되었지만 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구교를 믿는 나라안에서도, 신교를 믿는 나라안에서도 '저마다의 사연'을 들면서 '종교 갈등'이 벌어졌고, 내전이 벌어지거나 믿음의 자유를 위해서 새로운 곳으로 대규모 이주를 하는 등 종교전쟁의 여파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서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더구나 '십자군 전쟁' 이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사이에는 씻을 수 없는 갈등의 골이 생겼고, 이 둘 사이에서는 오직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정의'이고, 다른 믿음은 '이교도'에 불가하니 살상을 해도 무방하다는 식으로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지면서 역시 지금까지도 툭하면 전쟁도 불사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여기에 '유대인 배척'은 유럽인들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뿌리 깊고, 갈등해소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것은 여전하다. 이런 갈등과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오직 '힘의 논리'밖에 남지 않았기에 유대교의 본산인 '이스라엘'은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꼭두각시처럼 부려먹고 있고, 유럽을 찍소리 못하게 내리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유럽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은 '힘 쎈 밉상'으로 찍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틈만 보이면 유대인들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 날 정도로 갈등은 심각하다.

셋째, 유럽은 여러 가지 잡다한 '이데올로기(사상)'의 대립으로 인해 쌓인 갈등과 반목으로 온전히 치유되기 힘들다. 한때는 '똘레랑스(관용)'를 내세우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던 유럽이었지만, 각자의 삶이 피폐해지자 다시금 '야만의 본성(?)'을 드러내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배척'하고 '살상'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대표적인 '자본주의 vs 공산주의'의 대립은 이제는 사그라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곳곳에 남아 있다. '파시즘'과 '나치즘'의 망령은 첨예한 사회갈등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스물스물 되살아나 저들이 강성했던 역사의 한 대목을 목청껏 외치며 자기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향해 '폭력행사'를 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을 전파하려던 나폴레옹도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독재자'로 탈바꿈하며 폭력을 일삼았지 않은가 말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왕의 목을 자른 '급진 공화파'들은 왕정복고를 외치는 '왕당파'와 반목하며 서로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싸움을 일삼았다.

그리고 끝으로 유럽 각국은 '영토확장'을 꾀하는 정복욕을 버리지 못해서 유럽대륙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약소국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강대국의 야욕을 막아내지 못하고 수백 년 동안 압제와 핍박을 당하다 비교적 최근에야 독립을 하고, 현재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는 바람에 갈등의 골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기감이 산재해 있다. 유럽 각국은 이런저런 핑계를 내세워서 '자국의 영토'를 조금이라도 넓히려고 해왔기 때문에, 현재에는 '국경분쟁'이 없는 유럽국가가 없을 정도다. 이에 따른 '피지배 민족'이 끝없이 저항하며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 현재까지도 벌어지고 있단다. 믿기 힘들지만 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흑해'를 둘러싼 '크림반도 소유권'이 대화로 해결되지 않자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휴전'이나 '종전'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한 세월동안 서로 뺏고 빼앗은 '영토문제'로 인해서 유럽은 지금도 '화약고'로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글 : 이 책의 내용은 '각 나라마다' 한 꼭지씩 자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나열되어 있지만, 위의 네 가지 요소로 '큰 그림'을 그리며 읽다보면 유럽 각국의 역사가 왜 그렇게 진행되어 왔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유럽의 역사를 공부할 때에는 그 나라의 '민족구성원'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파악하면 이해하기 쉽고, 그 나라 구성원들이 믿고 있는 '종교'를 파악하면 갈등의 양상이 어떻게 벌어지고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 나라의 '이데올로기' 성향이 어떤지 파악하게 되면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한 방에 정리되고, 끝으로 역사상 높으신 양반들이 벌인 '전쟁의 결과'로, 또는 '혼인'의 결과'로 '영토의 소유권'이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어느 나라에서 어떤 나라로 넘어갔는지 살펴보면, 유럽 각국이 왜 그리 싸우는 것인지 한 방에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위의 네 가지 요소가 아주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었기 때문에 한 번만 읽어도 '유럽의 모든 것'을 마스터한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즐겨 읽으시는 독자라면 '민족', '종교', '사상', '영토' '네 가지 요소'로 정리하면서 읽으면 훨씬 더 잘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유럽'을 통해서 배울 점이 있을까? 요즘처럼 전세계에서 진정한 선진국이자 강대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정말이지 얼떨떨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게 다 우리가 70~80년대부터 유럽을 '모범답안'으로 삼고 부단히 쫓아가려 노력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프랑스처럼 '문화대국'이 되고 싶었고, 독일처럼 '과학기술의 정점'을 찍고 싶었으며, 영국처럼 '전세계를 통솔하는' 위치에 올라서고 싶어했다. 그런 부단한 노력의 결과 현재의 대한민국이 된 듯 싶다. 한류열풍을 넘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발돋움을 했고, 독일보다 앞선 '과학기술력'을 발달시켜서 전세계 1위 제품을 당당히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수출'만이 살 길이다. 한편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도국가'로 발돋움 했다. 과거 유럽의 열강들이 '제국주의'를 앞세워서 약소국들을 식민지로 삼고, 그들을 강제로 엎드려 꿇린 다음에 질질 끌고 나갔지만, 대한민국은 약소국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강대국들조차 '동등한 위치'에서 대등한 무역상대국으로 삼아 전세계를 향해 '수출길'을 여는 기염을 토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우리는 수출하기 위해 여러 나라들에 굴욕적인 '매달리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다른 나라들이 오히려 대한민국과 원활한 교역을 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위엄(?)이 천년 만년 이어질 것인가? 우리도 유럽이 고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민족 문제', '종교 문제', '사상 문제', '영토 문제'를 원만하게 갈등의 폭을 줄이고 해결해나가지 못한다면 '현재의 유럽'처럼 폭망할 수도 있다. 우리는 '분단국가'로서 한 민족끼리 어마어마한 살상을 하는 처절한 전쟁 경험을 갖고 있다. 또한 첨예한 '사상' 간의 갈등으로 남북으로 분단 되어 있고, 남남끼리는 '보수 vs 진보'의 논리로 서로 양보 없는 전쟁을 일삼고 있다. 그리고 '독도'를 둘러싼 영토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인제 이웃나라인 일본은 독도를 '영토분쟁화'시켜서 호시탐탐 빼앗으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일교와 신천지, 그리고 일부 개신교 따위의 세력이 '정교 유착'의 고리를 맺고 불법적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영구 집권'을 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종교단체들이 일으킨 문제인데, 유럽의 사례를 보아도 '종교 문제'만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문제다.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방법을 터득하고, 이 모든 문제를 좌지우지할 '원천적인 힘'을 갖추게 되면 아무 탈도 없이 쑥쑥 성장할 일만 남았다. 허나 만에 하나라도 이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미래를 장담하지 못할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모쪼록 유럽의 문제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나라에서는 절대로 읽어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앙테크리스타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 백선희 / 문학세계사 (2022) [원제 : Ante`christa]

[My Review MMCXCIII / 문학세계사 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두 번째 리뷰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앙테크리스타>다. 먼저 '표지그림'을 보고 살짝 실망을 했다. 원래 예전의 표지에는 아멜리 노통브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는데 말이다. 새로 '개정판'의 표지는 완전 내 취향이 아니어서 많이 실망을 했다. 애초에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의 등장인물은 대개 성격은 둘째치고서라도 '외모'만큼은 절세미인으로 그려놓았으니 책표지도 그에 걸맞게 매혹적으로 그려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등장인물의 나이가 '미성년'에 해당하는 열여섯 소녀들일지라도 '매혹적인 외모'로 그렸어야 했는데 아쉽다는 말을 먼저 꺼낸다. 뭐, 취향에 해당하는 부분이니 '개정판의 표지'가 훨씬 더 마음에 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 다짜고짜 책 내용으로 풍덩 빠져들어 보자.

<앙테크리스타> 관점 포인트 : 주인공은 열여섯 살 대학생 소녀로 이름은 '블랑슈'다. 열여섯 살에 벌써 대학생이라니 대단히 공부를 잘한 모양이다. 공간적 배경이 '벨기에'이므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학점이수제' 같은 방식으로 조기 대학입학이 가능한 모양이다. 암튼 열여섯 살에 대학입학이 그리 드문 편은 아닌 모양이다. 주인공인 블랑슈 말고도 '크리스타'라는 열여섯 살 소녀도 같은 학교에서 같은 강의를 듣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소설의 시작은 두 학생의 첫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악연'이었다. 크리스타가 블랑슈에게 들러붙더니 끝내 블랑슈네 집에 얹혀 살게 되면서 '블랑슈의 모든 것'을 잠식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타겟이 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블랑슈의 부모님'이었다. 크리스타는 매혹적인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여느 부모님이라면 듣기에 너무 달콤한 말들을 선사하며 '블랑슈 부모님의 마음'을 매혹시켰고, 더 나아가서 친딸인 블랑슈의 '진실된 말'보다 크리스타의 '거짓된 말'을 더 믿고 신뢰할 지경에 이르렀다. 블랑슈도 그제서야 자신이 지독한 '함정'에 빠졌고, 크나큰 '실수'를 했으며,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크리스타에게 '헌납'하듯 빼앗겨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그 둘의 기묘하고 거북한 동거가 시작한다. 아참, 크리스타의 집이 학교에서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이를 불쌍히 여긴 블랑슈가 '인생 첫 친구'를 사귀게 된다는 기쁨에 들떠서 부모님을 설득해서 크리스타와 함께 살고 싶다고 부탁을 했고, 크리스타와 첫 만남 이후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진 블랑슈의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동거를 하게 되면서 블랑슈는 점점 '불편한 일'만 겪게 된다. 애초에는 '처음 사귀게 된 친구'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어서 한껏 들뜬 마음이었지만, 블랑슈는 크리스타의 말과 행동 때문에 자기 부모님에게 '못난 딸'로 전락했고, 자기 방에 있던 '침대'마저 빼앗겨 '간이침대'로 쫓겨났고, 학교에서는 '크리스타의 단짝'이라는 소개만 받았을 뿐, 제대로 사귈 수 있도록 도와주지도 않고 뻘쭘하게 크리스타와 그녀의 친구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블랑슈는 여전히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신세였던 셈이다. 애초부터 크리스타는 블랑슈를 '이용'해 먹을 생각뿐이었지. 블랑슈의 찐친이 되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편한 일상이 학교에서만 일어났다면 블랑슈도 그저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더욱 불편하게 만든 것은 블랑슈의 집에서조차 '크리스타'가 블랑슈가 당연히 받아 마땅한 사랑과 인정조차 다 앗아가버리고 블랑슈를 내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면, 크리스타가 블랑슈의 부모님과 마주 할 때마다 '점수'를 따내고, 블랑슈를 그야말로 '찐따'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더 속상한 것은 블랑슈의 부모님조차 그런 크리스타의 '계략(?)'에 넘어가서 크리스타를 친딸처럼 살갑게 대하고, 블랑슈를 어디서 데리고 온 보릿자루 마냥 푸대접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푸념까지 늘어놓기 일쑤라는 점이다. 이쯤되면 독자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불쌍해서 도와주려 했는데 그런 '좋은 마음'을 악용(!)해서 저 혼자만 '점수'를 따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철저한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멜리 노통브 소설의 '전형적인 패턴 전개 방식'이다. 이런 식의 전개방식을 하도 읽어재끼다보니 이젠 식상할 정도가 되었다.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을 때만해도 '천재적'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후 네 시>를 읽으면서 그 지독한 답답함에 몸서리를 칠 정도였다. 물론 이때까지만해도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어서 읽게 된 <로베르 인명사전>, <사랑의 파괴>,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적의 화장법>까지 읽어내려가니 뭔가 진부함을 느꼈다. 미치도록 답답했고 정의는 언제쯤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 점점 분노게이지를 차오르게 만들었다. 왜 이 작가는 이토록 '적'을 만드는데 고심을 하고 애꿎은 '희생자'를 만들어 괴롭히는 것일까 하고 의문이 들 정도였다.

더구나 매혹적인 적이 등장해서 선량한 희생자를 괴롭히는 장면을 몰아부치는 대목을 읽을 때면 매우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적이 없는 삶은 허무와 권태의 구렁텅이, 가혹한 시련이 아니겠는가? 그런 고로 적이야말로 구세주다'라는 변명을 했다. 한마디로 궤변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적이란 분명 지옥 같은 고난을 안겨주는 존재지만, 고난이야말로 희생자에게 새로운 탄생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생의 패러독스 아니겠는가'라면서 사이코패스적인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이런 '도그사운드'를 듣기 위해서 그녀의 소설을 읽어갈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나가는 글 :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궤변'이 먹혀들어가는 점이 없지 않다. 그건 바로 '재밌다'는 것이다. 무슨 변태가학적인 헛소리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랬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재밌는 편이다. 단지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불쌍한 '희생자'가 겪고 있는 불행을 엿보고 싶지 않다는 일말의 '죄책감(?)' 같은 것이 들 뿐이다. 어차피 허구의 세계를 그린 소설일 뿐이니 얼마든지 즐길 수 있고, 재미를 느낀다면 무슨 짓인들 못할 것이 없고, 꺼릴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 양심이 이런 '악질적인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는 등장인물(악당, 또는 적)을 가만 두고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궤변도 궤변 나름이고, 악행도 악행 나름이다. 적어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거나,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지른 당사자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 정의가 구현되거나, 그런 정의의 심판조차 교묘히 빠져나갈 정도로 악질적인 등장인물이라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천벌'이라도 당연한 듯 받아야 속이라도 시원할텐데, 아멜리 노통브 소설에서는 그런 '정의감'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솔직히 큰 실망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더는 '재미'라는 것을 느끼면 안 되겠다는 반성까지 해야 마땅한 것이라 '정색'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이 소설의 제목이 <앙테크리스타>다. 프랑스어라서 '뜻'이 잘 전달이 안 되겠지만 영어로 표현하면 '안티 크리스트'가 될 것이고, 우리 말로 풀어 쓰면 '적 그리스도'다. 사탄보다 더 무섭다는 '거짓 예언자'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적' 크리스타가 바로 '거짓'에 능통한 인물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 소설이 '종교적 박해'를 주장하는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거짓'을 일삼는 생을 살아가는 소녀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그리스도'라는 뜻의 '크리스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굳이 종교적 해석을 가미할 필요는 없겠지만, 제목에서 전체 줄거리가 어떤 전개를 거칠 것인지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울 수는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크리스타의 거짓이 너무 불편했다. 자신의 거짓으로 너희들에게 '이득'이 되었다면 거짓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설령, 그런 행위로 인해 크리스타가 '개인적인 이득'을 챙겼더라도 그건 오로지 널 위해서였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장면이 되풀이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화딱지가 날 정도다. 말은 청산유수처럼 잘도 갖다붙이지만 결국 '자기 이익'을 위해서 철저히 이용했다는 사실이 끝내 밝혀지게 된다. 그런데도 반성과 사과는커녕 도리어 순순히 '이용' 당하지 않았다고 되려 발끈하고 성질을 내는 꼬락서니까지 지켜볼즈음에는 열불이 터지고 말았다.

이토록 불편함 심정이라면 더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읽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전부'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다른 뭔가가 있을 것이란 '직감'이 들었단 말이다. 그래서 기왕 읽기 시작했으니 '전작주의'까지는 아닐지라도 남은 소설들을 다 까발려주겠다는 심정으로 읽어보려 한다. 최근에 <리틀 아멜리>(원작소설 :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도 개봉했다지 않은가? 분명 내가 보지 못한 '재미'가 남겨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찾아보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 기묘한 여름 방학 - 중학교 수학 1-2 개념이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권혁진 지음, 신지혜 그림, 김애희 감수 / 유아이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 기묘한 여름 방학> 권혁진 / 김애희 / 유아이북스 (2020)

[My Review MMCXCII / 유아이북스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한 번째 리뷰는 중등수학의 개념을 재밌는 소설로 다잡을 수 있는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다. '툴리아 1'에서는 중등수학 1학년 1학기에 배울 내용을 탐구했다면, 이번 '툴리아 2'에서는 2학기에 배울 내용이 간추려져 있다. 사실 초등수학에서 중등수학으로 넘어오면서 유념해야 할 것은 '탄탄한 개념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공부가 '탄탄한 기초'가 필요한 법이지만, 수학에서 말하는 기초는 두 말하면 입 아플 지경일 것이다. 이런 조언은 이미 초등시절에도 많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등수학을 잘못 학습한 학생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중등수학은 개념도 잡아보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까닭으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제대로 수학공부를 시작도 하기 전에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가 되고 만다. 그럼 '수포자'가 왜 중등 1학년 때 많이 발생하는지부터 살펴보자.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관점 포인트 : 수포자가 된 학생들도 초등시절에는 수학 성적이 우수했던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째서 중등수학을 공부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성적이 곤두박질 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잘못된 방식'으로 수학공부를 해왔기 때문이다. 초등시절에 '영수 학원'을 다니거나 '보습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심지어 집에서는 '방문학습'까지 하며 '문제집'도 십수 권을 풀고 또 푸는 수학공부를 해왔을 것이다. 이유는 뻔하다. 수학이 그만큼 중요한 과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초등시절을 보내고 나면 중등수학을 굉장히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발생하고 만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초등수학 만점의 비결 때문이다. 사실 초등학교 수학시험의 출제난이도는 '교사 재량'이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을 누굴 만났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초등생들은 대부분 '사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 초등수학 성적은 거의 '만점'을 받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수학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중등수학'을 만나면 딱 절반으로 나뉘게 된다. 고득점 학생과 문제에 손도 대지 못하고 찍는 학생으로 말이다. 그리고 찍어서 시험을 망친 학생들은 부랴부랴 '수학학원'을 뺑뺑이 돌지만 영 신통치 않은 성적을 받으며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왜일까?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하나다. 잘못된 방법으로 수학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기초를 탄탄히 하지 않고 '족보(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은행)'에 의지해서 '시험에 나올 문제 유형'만 주야장천 풀고 또 풀어서 '만점'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초등수학 시험문제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초등생일지라도 맘만 먹으면 그 모든 분량을 다 풀어재끼고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수학성적을 유지한 학생들은 그야말로 '문제를 풀고 또 풀어재끼는 공부'만 해왔다. 이런 방식으로도 초등수학은 고득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등수학에서도 이 방법이 통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먼저 문제의 총량이 너무 많다. 그리고 같은 문제유형이라도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모든 유형을 다 마스터할 수는 없다. 그 까닭을 말하자면, 일단 초등교과서는 '딱 1종'으로 전국 공통이지만 중등부터는 여러 종류의 교과서 가운데 하나를 학교재량으로 지정해서 교과서로 삼는다. 이게 뭘 의미할까? 공부해야 할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초등시절부터 수학문제집 십수 권 분량의 문제를 풀이했을 것이다. 그러니 중등때에도 십수 권 분량의 문제풀이에 지칠 리는 없다. 그런데 왜 수학성적이 향상되지 않을까? '기초 개념'만 확실히 깨우쳤다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 '기초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문제 유형'만 익혀서 정답을 외우는 방식으로 초등수학 성적을 높였던 학생들이 바로 '수포자의 주인공'인 셈이다. 다시 말해, 수학공부를 잘못된 방식으로 배웠기 때문에 '중등수학의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무작정 문제풀이부터 하려 들고, '수학공식'만 달달 외워서 답만 맞추려 드는 습관만 있기 때문에, 결국 중등수학 정도의 난이도조차 풀지 못하는 학생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고액의 '종합학원'을 보내서 밤10시까지 옴쭉달싹하지 못하게 공부를 시킨다고 수학성적이 만족할 만큼 향상될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차리리 이 책 <신비한 수학의 땅 1, 2>을 읽히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왜냐고? 재미난 이야기를 읽었을 뿐인데 '중등수학의 개념'이 저절로 잡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가장 좋은 공부는 '재밌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해'하기도 쉽고, 굳이 '암기'하려 들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질테니 말이다. 그리고 '반복학습'이 필요할수록 재미난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학습부담도 덜고 하고 또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 다음에 본격적인 '문제풀이'에 들어가고 '시험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초 개념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을테니 여러 가지 '문제유형'을 만나도 알맞은 '키워드'를 찾아내서 쉽게 풀 수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공부란 모름지기 그렇게 해야 한다. 명강으로 유명한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어보라.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쉽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정말 재미나게 강의하지 않느냔 말이다. 공부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네 초등수학교실은 그렇지 못하다. 목표한 점수에 도달할 때까지 풀고 또 풀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 더럽게 재미없게 가르친다. 물론 사교육선생들도 풀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억지로 앉혀 놓고 학부모들이 만족할 때까지 풀고 또 풀려야 하기 때문에 곤혹을 치루고 있다. 이분들이 괜히 재미없게 공부시키는게 아니다. 그렇게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면 아예 문제풀이를 하려 들지 않고, 공부하기를 즐기려 들지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가는 글 : 중등 1학년 2학기가 되면 '기하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도형' 파트를 배운다. 이것을 쉽게 배우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에 나처럼 어렵게 배우는 학생들도 분명히 있다. 나도 이공계로 진학해서 각종 '역학'을 전공했지만, 유독 '도형 파트'는 힘들어 했다. 특히, 원과 접선 문제 유형만 나오면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기하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초등시절의 '도형'을 제대로 배운 경험이 없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도형문제를 풀 때에도 '숫자'만 보고서 들입다 '연산'을 해내서 풀어대는 잘못된 습관으로 학습을 한 탓에 중등수학부터 '기하학 문제'는 거의 손도 대지 못하고 엉망진창으로 풀이하던 기억만 떠오른다. 당시에는 한 반에 60명이 넘었고, 과외교육도 금지되었기에 누구에게 체계적으로 배울 경황이 없었다. 어찌어찌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수학의 정석>으로 학원강의를 듣곤 했지만, 여전히 도형문제만 나오면 헤매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 책 '툴리아 2권'이 더욱 반가웠다. 읽기만 해도 저절로 이해가 되는 쉬운 설명을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인지 참 속상할 따름이다.

참고로 초등수학에서 배우는 5가지 개념은 '수와 연산', '도형', '측정', '표와 그래프', '확률과 통계'다. 이건 중등수학에도 그대로 연계된 학습을 진행하며 중등 1학년 1학기에는 '수와 연산'에 이은 '대수학의 기초'를 학습했다면, 2학기에 접어들면 '도형', '측정'이 심화된 '기하학의 기초'를 배우고, '히스토그램'과 '도수분포표' 같은 단원을 공부하게 된다. 그러니 초등수학의 기초에 충실히 개념 파악했다면 중등수학에서도 그닥 어렵지 않게 '개념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러니 무턱대고 겁부터 먹을 까닭이 전혀 없다.

더구나 '문제풀이'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초등수학보다 중등수학이 훨씬 더 간결하기 때문에 초등수학 성적이 좀 떨어진 학생이라도 중등수학부터 반전을 보이며 높은 성적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학생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보통 성인이 되어서도 '초등수학 방식'으로 문제풀이를 하기보다는 '중등수학 방식'으로 연산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중등수학도 개념만 잘 잡아주면 초등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학습성과를 올리는 학생들이 참 많다.

그러므로 중등수학을 공부하겠다고 '고액과외'만 알아보기 전에 '재미난 소설책'부터 권해주는 것도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공부 좀 해본 학생들도 억지로 꾸역꾸역 한 공부는 힘들어 하지만, 재밌고 즐거운 공부는 하지 말라고 해도 찾아서 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기 마련이다. 지루하고 따분한 수학공부를 하다가 잠깐 짬을 내서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심지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에는 '딴짓'을 하고 있는데도 '수학공부', 그것도 아주 중요한 '중등수학의 기초 개념'을 탄탄하게 만들어주지 않는가 말이다. 그야말로 마당 쓸고 돈 줍는 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