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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온도 첫 여름 서재 2
한정민 외 지음, 김은영 그림 / 리아앤제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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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온도> 한정민, 임나헌, 전현진, 김동찬 / 리아앤제시 (2026)

[My Review MMCCCXL / 리아앤제시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아홉 번째 리뷰는 흔들리는 열다섯 청춘들의 솔직담백한 고백이 담겨 있는 <열다섯의 온도>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쉬운 청소년들을 표현할 때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 같다. 뭉뚱그려서 MZ세대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정확히 말해서 '밀레니엄 세대'도 아니고 'Z세대'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과거의 어른들은 자신과 너무 다른 청소년을 '신세대'라고 갈라치기하면서 애써 '다른점'을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X세대, Y세대 따위로 '시기별'로 구분을 짓더니 급기야 '신인류'라는 명칭까지 쓰면서 아예 '종의 분류'를 달리 해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이는 명백한 '기성세대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잘못된 표현이다. 그러니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들으면 기분만 나빠지니 말이다. 그런데 더 먼 옛날 독일에서는 청소년 시기의 혈기왕성함을 '질풍노도'라고 단정 지어버리며 청소년들의 정체성조차 저들끼리 섣부르게 단정 지어버렸다. 정말 이것으로 우리 청소년들을 '묶음'으로 만들어버려도 괜찮은 것인가?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열다섯의 온도> 관점 포인트 :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훌쩍 커버렸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미숙한 점이 눈에 띄는 시기를 우리는 뭉뚱그려서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그들에게 크게 실례되는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청소년을 이르는 또 다른 표현인 '미성년'이라는 표현에 이르면 살짝 기분 나빠진다. 성년이 이르지 않았다는 표현일 뿐이지만, 여기에는 아직 성숙한 '인간 대접' 받기에는 부족한 것이 있다. 아주 많다는 뜻도 내포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들도 딱히 성숙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일삼고, 미성숙하고 교양 없는 미숙한 짓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바둑에서 결코 죽지 않는 돌이라는 뜻으로 쓰는 '완생'의 반대말로 완벽하게 살아남지 못할 돌이라는 뜻의 '미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가 말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쓰여서 널리 알려진 표현이기도 한데, 암튼 어른들조차 '완생'이 아닌 '미생'으로 살면서 청소년은 미생보다 못한 '착수', 또는 '포석'에 쓰이는 돌처럼 미약하다고만 하느냔 말이다.

의외로 청소년들도 어른들 못지 않은 '깊은 고민'에 빠져 답을 찾으려 애를 쓰고,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색다르고 더 날카로울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어른이라면 청소년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탓하기 이전에 먼저 곰곰이 헤아려보아야 '성숙한 어른', 다시 말해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어른들도 모두 '청소년 시기'를 거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 시절에 어른들을 향해 얼마나 많은 푸념과 질타를 날렸던가? 그러다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당시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십분 이해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럼 왜 청소년들의 고민과 복잡한 감정을 이해해주지 않으려 하는가?

이 책 <열다섯의 온도>에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꿈이 담겨 있는 짧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시시한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큰 감동도 없고 교훈도 찾을 수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울림'을 전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울림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야기는 <사과 노을빛>, <수취인 불명 묵호로부터>, <절대 공 맞지 않는 애.mp4>, 그리고 마지막은 <AI 메모> 순서다. 먼저 <사과 노을빛>은 어른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거짓말'을 정작 어린 친구들에겐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하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들어서 딱 거짓말인 것을 눈치 챌 수 있는데도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어른들을 '추적'하는 주인공과 친구들은 어른들의 거짓말에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거짓말을 했다고 앞뒤 사정도 살펴보지 않고 잡도리를 하려 든 '미성숙한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열다섯 주인공을 마주하게 된다. 한편, <수취인 불명 묵호로부터>에서는 엄마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묵호'로 둘만의 여행에 들뜬 열다섯 주인공이었지만, 그 '묵호'가 사실은 엄마에게 단순한 관광지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아픈 추억이 가득한 곳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열다섯이던 그 시절의 아픔을 열다섯 딸이 그 시절의 엄마가 되어 '공감'을 해보려 애쓴다.

세 번째 이야기 <절대 공 맞지 않는 애.mp4>는 열다섯 주인공의 '꿈'에 관련된 이야기다. 피구 경기에서 공을 한 번도 맞지 않고 승리를 거둔 날렵한 몸놀림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속상함을 '춤'이라고 하는 선망의 대상으로 바꿔버리는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뚱뚱한 몸매인데도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을 '영상'만 보고 댄스동아리에 초대하며 친구로 사귀게 되지만, 정작 '꿈'을 찾아준 그 친구는 아이돌 연습생이 되어 맹연습을 하는 와중에 불운한 사고를 당해 온몸을 가누지 못하는 치명상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꿈이 없던 아이'는 꿈을 갖게 되고, '꿈을 펼치려' 날개를 단 친구는 의도치 않은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났을까? 마지막 <AI 메모>는 SF 판타지의 면모를 보여준다. 기억하고 싶은 않은 과거를 '잊게' 해준다는 AI 메모를 '접속'해서 손쉽게 지우고 싶은 기억을 '삭제'하길 바랐지만, 사실은 '삭제'가 아닌 '이전'에 불과했다는 충격적 사실을 밝혀내게 된다. 그렇게 '이전'된 기억들은 다른 누군가의 '꿈' 속에서 재현되며 고통을 안겨주게 되는데, 과연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수도 있는 SF판타지의 결말은 어떻게 이어질까?

나가는 글 : 사실 청소년들이 어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완벽한 모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반성'하는 모습을 몸소 실천해달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불행도 겪으면서 '극복'하고 한층 성장하길 바라며 청소년들에게 가르치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신들의 '실수'는 감추고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어린 청소년들에게만 '실수'를 용납치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어른이 되면 옛날 어른들처럼 '똑같이' 실수를 부정하고 변명만 늘어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성숙은커녕 발전도 없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는 방법 뿐이다.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들도 그랬지 않은가 말이다.

거짓말은 나쁘니까 하면 안 될 일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피치 못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거짓말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선의의 거짓말'을 우리는 남을 속이는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거짓말은 거짓말이다'면서 박박 우기는 덜 성숙한 인간들이 있다. 반면에 '함부로 남을 의심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며 진짜 선행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는 진정한 참어른도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 딱 봐도 안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어줍잖게 거짓말하는 모습을 목격했더라도 '스스로 잘못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어른들이 베푸는 아량을 몸소 실천해주길 바란다. 요즘 '촉법소년 문제'가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지만, 이는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어른 친구들의 문제이기에 앞서 '그들의 부모'가 정말 나쁜 사람이었음을 우리 사회가 각성해야 한다. 나쁜 짓을 저지르면 혼나는 것이 당연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에 대한 벌을 달게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을 가르쳤어야 마땅한 '부모들'이 이 책임을 망각하고 제 자식이 볼 피해를 감싸고 도는 나쁜 짓을 원천적으로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런 악영향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잘못에 처절하게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어른이 정말 많아져야 한다.

한편, 청소년 시기에는 '꿈'이 많다. 비록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달라질지라도 소중한 꿈임에는 틀림 없다.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하나의 꿈에 올인하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 것처럼 너무 꿈이 많고 자주 바뀌는 것도 단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어른들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기 일쑤인데, 청소년 시기에 꿈이 너무 많고 너무 자주 바뀐다고 탓만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청소년인데도 '꿈이 없다'는 친구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면 더욱 다양한 꿈을 어른들이 청소년 눈높이로 보여줄 '의무'가 있다. 과거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해서 청소년 돌봄이 미흡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명실상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므로 청소년이 충분한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시기에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다. 그래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아침과 저녁에 기분이 상이하게 달라질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고 연약해 빠졌으며, 변덕이 죽 끓듯이 쉬이 변한다고 탓하면 되겠는가? 어른들의 감수성이 무딘 까닭은 너무 많은 '경험'을 겪어봤기 때문에 충분히 단련되고 무뎌졌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이 되어서도 변덕을 부리면 '어른답지 못하다'며 놀림을 받기에 애써 감수성을 감추는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에게 '어른답지 못하다'며 놀림을 줄 셈인가?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세상을 예민한 감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꼭 필요한 감각이냔 말이다. 이를 통해 어른들은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할 판이다. "얘들아, 너희들이 느끼기에 현재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어떤 느낌이니? 어른들이 잘 하고 있다고 느껴지니?"라고 수시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소통 부족'이 큰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부족하기만 하다면 다행일 정도로 '소통 부재' 현상이 극심한 지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배려심'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개인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할 뿐인데 말이다. 이런 모든 문제의 근원적 해결 방법은 바로 '청소년 문제'를 얼마나 제대로 분별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당장 '열다섯 청소년'이 주변에 있다면 그들의 솔직한 감정을 묻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행히 초기 증상은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울 것이다. 이때 너무 쉽다고 방치하거나 놀리지 말고 소통의 폭을 더욱 넓히고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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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백설 공주 The 그림책 1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지음, 김시아 옮김 / 한솔수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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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백설공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 김시아 / 한솔수북 (2024)

[My Review MMCCCXXXI / 한솔수북 2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 번째 리뷰는 그림형제의 원작동화를 넘어 그 속내까지 파헤친 <아듀, 백설공주>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면 책등이 없는 '누드 사철'과 상상 이상의 '크기'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인 놀람은 아름답기 그지 없는 '백설공주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고 그림부터 기괴하고 등장인물들의 속내는 추악한 동화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백설처럼 희고 하얀 아리따운 공주가 등장하지 않는 그림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아듀, 백설공주> 관점 포인트 :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은 예술을 감상하는데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이는 '기존의 예술'을 뛰어 넘어 '새로운 예술'로 다가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방법이라도 기존에 '아름답게' 보던 것을 굳이 '추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아주 좋은 그림책이 바로 <아듀, 백설공주>다.

우리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통해서 아름다움에 대한 꿈과 환상을 키워 왔다. 어릴 적에 누구나 읽어보거나 들어본 이야기에서 백설공주는 눈처럼 하얗고 고운 피부를 가진 여자아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처럼 아리따운 공주에게 시련이 찾아왔으니 친엄마의 사랑을 받지도 못한 채 '못된 계모'에게 시기와 질투, 미움을 받으며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지만 끝내 계모의 차갑고 어두운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이웃나라 왕자에게 '키스'를 받고 되살아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그냥 들으면 '예쁜 여자아이가 고생 끝에 행복을 찾았다'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일 뿐이다. 그런데 곰곰이 이야기를 따져보면 정말 무시무시한 속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계모가 의붓딸을 살해하는 이야기이고, 늙은 여자가 어린 여자의 미모를 샘내는 이야기며, 예쁜 여자는 착하지만 멍청하거나 더 예쁜 여자를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린아이가 읽는 '동화책'인데 말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부도덕한 이야기를 우리의 사랑스런 어린이들에게 읽혀줘도 괜찮은 것일까?

오늘날 '올바른 여성상'을 따져가며 <백설공주>를 읽으면 더욱 기괴하다. 훌륭한 여성상이 되려면 '모성애'가 가득해야 하고, 더 나아가 만물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미모'로 세상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먼저 돕고 나서서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기꺼이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텐데,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계모는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젤 예쁘니?"라고 묻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거울이 답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은 왕비님이십니다"라고 답하면 온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감을 만끽하는 낙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왕도 죽고 백설공주만 남게 되자 왕국을 차지한 새왕비는 왕국을 잘 다스린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거울에게 묻고 '정해진 답'을 듣는 낙으로만 살아간다. 그러다 백설공주가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하게 되자 새왕비에게는 둘도 없는 '경쟁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새왕비가 '경쟁'에서 패배를 선언받자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자신의 미모를 뛰어넘은 '경쟁자'를 제거하려 든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다. 처음엔 사냥꾼, 다음엔 허리띠, 머리빗, 그리고 마지막에는 '독사과'를 사용해서 죽여버린다.

예쁜 공주가 받게 되는 '살해 시도'는 일곱난쟁이들과 이웃나라 왕자에 의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백설공주는 시련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아름다운 결말로 끝을 맺지만, 이게 정말 '해피엔딩'이 맞을까? 여기에 불편한 진실이 또 하나 감춰져 있다. 백설공주는 예쁘기만 할 뿐, 정말 '멍청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아름다운 여자는 똑똑하면 안 된다'는 사회통념이 팽배했었다. '백치미'라는 말이 예쁜 여자에게 듣기 좋은 말로 꼽힐 정도였단 말이다. 반대로 예쁜 여자가 '박사 학위'를 따고,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출세'하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끼리도 그런 편견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정말이지 '백설공주'는 여러 공주들 가운데서도 가장 멍청한 공주였다. 이런 문제의식이 가득한 '백설공주'인데도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백설공주처럼 아름답다"는 말은 욕이 아니라 칭찬으로 널리 인용되고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

나가는 글 : 이 책의 저자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백설공주> 이야기는 끔찍한 동화책이라고 문제의식을 최고조로 까발렸다. 그런 의미로 작가는 <아듀, 백설공주>를 그렸다. 읽어보면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이 책 속에서 아름다운 '새왕비'도 찾아볼 수 없고, 아리따운 '백설공주'도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추악한 속내'가 그대로 외모에 투영된 새왕비가 등장하고, 자신을 쫓아다니는 '문제의식'을 전혀 깨닫지 못한 백설공주 또한 곱게 그려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백설공주>를 읽고 '잘못된 꿈''왜곡된 환상'을 애초부터 갖지 못하게 작가의 의도를 고스란히 담아 놓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비록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로 읽히지만, 작가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여기에 아름다운 여성을 더는 '멍청하고', '수동적'이며, '순종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바다. 더불어서 아름답지만 '자기 욕망'에만 충실하고 '능동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주지 못한 새왕비에게도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그리고 그 끔찍한 처형식을 백설공주에게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여성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이 무엇이고, 반대로 '해야만 할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런 의도가 작품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비록 기괴하고 어둡고 추한 그림으로 가득한 그림책이지만,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렇게 좋은 의도를 굳이 '그로테스크(기괴한) 기법'으로 전해야만 했을까? 정말 아름답고 화려한 이미지로 가득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추악한 속내'가 밝혀진 새왕비를 참혹한 형벌로 처형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도 같은 의도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른바 '충격 요법'이라면 시종일관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보다는 처음엔 아름답다가 끝에는 참혹한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극적 효과'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씨~게 맞은 것처럼 말이다. 물론 백설공주도 아름다움 속에 '멍청하게 휘둘리기만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아놓으면 더욱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물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완성도'는 걸작 수준이다. 예술성에서도 '수준급'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를 '몇 살의 여자아이'에게 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독서교육이 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하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19금 딱지'를 붙여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폭력성'이 너무 강렬하다. 절대 10대 이하의 여자어린이에게 보여주면 안 될 그림책 같기도 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소녀에게도 조금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독서교육 필독서로 사용할 경우라면 '능력 있는 독서지도사'의 교수법을 거쳐서 '성숙한 양성평등 의식을 갖자' 등등의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아무 생각 없는 '사춘기 소년'을 대상으로 충격 요법에 가까운 '성평등 수업'을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고 말이다. 여러 모로 '초등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해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들이 '바라는 여성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리뷰 #에세이 #아듀백설공주 #베아트리체알레마냐 #한솔수북 #바람직한여성상 #양성평등 #진정한아름다움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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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책담 청소년 문학
최이랑 지음 / 책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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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 책담 청소년 문학> 최이랑 / 책담 (2026)

[My Review MMCCLXVIII / 책담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일곱 번째 리뷰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회초년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인트로>다. 고등학교 청소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있으면 어른이 된다는 설렘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두근거림은 느낄까? 아니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어른이 되는 것이 싫다고 떼를 쓰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설렘은 상상도 하지 못한 범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꼰대 같은 어른들은 섣부른 지레짐작으로 '청소년들의 고민'을 제멋대로 결정하고 판단을 내리며 가르치려 든다. 정작 그들이 가진 고민이 '무엇' 때문이고, '왜' 그런 고민을 하는지 이해도 하려 들지 않으면서 말이다. 흔히 말하는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산전수준 다 겪은 듯한 경험담을 늘어놓지만, 세월도 흘렀고 시대도 바뀌었으니 제발 그런 헛소리는 집어 넣고 꺼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럼 이쯤으로 각설하고,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인트로> 관점 포인트 : 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고등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가서 겪을 수 있는 고충을 하소연 하는 구나 싶었다. 그래서 어줍잖은 푸념 나부랭이나 늘어놓을 심산이면 그냥 '수능대비' 공부모드로 전환해서 명문대는 아니더라도 '4년제 대학 졸업장'이라도 따놓고 사회경험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을 품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왜냐면 우리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이 '취업 문제'인데, 그걸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번듯한 '대학졸업장'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대학졸업장'이라도 따놓으면 '입사 때' 서류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록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고, 대학 학자금 갚아나가면서 차곡차곡 밑천을 모아다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인생을 거는 모험을 하는 것이 정석코스 중의 정석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곤 한다.

그런데 '나도 다 경험해 봤다'는 식의 그런 '꼰대 같은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으레 첫 취직을 하면 '중요 업무'에서 배제되고, '잔심부름'이나 '사무실청소', '식사셋팅' 등 자기가 맡은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허드렛일만 하다가 하루 일과가 끝나곤 하니까 말이다. 아무리 학교에서 '현장실습'을 나간 실습생일지라도, 학교에서 역할분담을 한 것처럼 '실제 업무'를 배당받아 주요업무나 중요 프로젝트에 바로 참석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일을 한 결과, 기대한 '성과'를 내는 그런 꿈 같은 직장생활은 감히 꿈꿀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정규직 사원으로 입사한 뛰어난 인재라고 하더라도, 어디까지 '사회초년생'이고, '회사 말단 신입사원'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회사에서 '신입사원'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실무를 던져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고작 '현장실습' 나간 고3 학생에게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바로 적용해서 '실습'해볼 기회를 주는 그런 회사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회사분위기가 어색하고, 때론 억울하다고 하더라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여 '성실함'을 인정 받게 되면 자연스레 '간단한 업무'부터 시작해서 회사일을 배우게 될 거라고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후반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아차 싶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구나 싶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라고 부른다. 회사는 이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일한 대가로 '임금'을 지불하며, 노동자가 열심힌 일한 결과로 '영업이익'을 낸 뒤에, 그 차액을 '회사수익'을 챙기게 된다. 이게 보통이다. 그런데 모든 회사가 '영업이익'을 많이 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회사수익이 '마이너스'가 되어서 적자를 보고, 영업손해를 보게 되면 회사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하지만 이 때에도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노동한 대가로 '임금'을 정상적으로 지불해야 한다. 회사가 손해본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노동자가 '노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나쁜 회사들이 있다. 회사가 수익을 낼 때에는 '경영진'이 잘 나서 수익이 난 것이고, 손실을 낼 때에는 '노동자'가 게으름을 펴서 회사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를 꺼내면서 '노동자 해고' 운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에는 그럴 경우에도 함부로 '노동자 해고'를 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다.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고용 보장'을 해줘야할 의무가 정부나 회사에 다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인권'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런 노동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세 가지나 나타났다. 하나는 미아의 아버지가 3일 연속 '장거리 운전'을 하는 바람에 졸음운전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미아의 삼촌이 '호텔 주방장'으로 취직해서 열심히 일 했는데, 호텔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경영진'이 바뀌는 일이 발생했고, 그 때문에 호텔측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를 우선적으로 해고하는 부당한 일이 발생했고, 미아의 삼촌은 이에 불복하며 '부당해고 철회'를 호텔측에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미아의 절친인 '서수지'가 현장실습을 나간 곳에서 '실습'과는 무관한 허드렛일만 시키면서, 그것 또한 '사회생활을 배우는 일'이라면서 강요했고, 사무실 청소, 커피 심부름, 식당 예약 등 허드렛일이라도 묵묵히 참고 견뎌내면 '좋은 점수'를 받아서 취업할 수도 있다면서, 정작 '현장실습'을 증빙할 실습보고서에 적어놓을 수도 없는 잔업만 잔뜩 시키며, '업무시간 초과'는 부지기수고, '주말 근무'는 당연한 거라는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해대는 일이었다. 여기에 하일라이트는 '실습생'의 허리를 감싸며 '성희롱'을 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회사측에서는 '증거'도 없으면서 억지를 부리면 학생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거라면서, 오히려 피해자인 학생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일이 발생해버린 것이다. 자, 당신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가는 글 : 노동자는 자기 몸과 영혼을 갈아넣어서 회사일을 하며 '임금'을 받는다. 그저 단순히 '돈벌이'만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업무에 '보람'을 느끼길 바라며, 자기가 한 일이 보람찬 것을 넘어 '사회공헌'까지 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돈', '보람', '공헌'이라는 세 가지가 바로 '노동의 3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노동자는 자신의 몸과 영혼을 아낌없이 쏟아붓곤 한다. 그래서 노동자는 일을 하면서도 '건강'을 챙겨야 한다. 육체적인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까지 말이다. 그런데 미아의 아버지는 '육체적인 건강'을 챙길 수 없는 업무환경을 만들어 놓았기에 열심히 일하다가 돌아가셨다. 이건 노동자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욕심을 부린 것이라 보아선 절대 안 된다. 설령 노동자가 그런 욕심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회사측에서 말려야할 의무가 있다. 거대한 컨테이너 상자를 움직이는 트럭 운전은 고된 일이다. 대부분 고속도로를 고속으로 운전하는 일이고,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면 중간에 쉬지도 못하고 하루 8~10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꼬박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그런 '장거리 운전'을 3일 연속으로 한다는데도 회사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분명 책임을 져야만 한다.

또, 미아 삼촌의 경우도 '부당 해고'가 확실하다. 호텔 경영진이 바뀐 사정은 '노동자 책임'이 아니다. 영업 이익이 나지 않아서 호텔 경영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면 사측은 노동자와 '협의'를 통해서, '임금동결', '인원감축' 등을 신중히 결정하고, 사측과 노동자측 모두에게 큰 피해가 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호텔 경영난을 이유로 '인원감축'을 강행했고, 해고된 노동자가 '노조가입자'가 대부분이었다면, 이는 명백한 고의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법원에서는 1심 판결을 '경영진'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내렸고, 호텔측에 경영난이 있었기에 '부당 해고'가 아니다라는 호텔 경영진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를 근거로 노조가입자들이 대거 해고되었고, 노동자측의 권리를 주장할 '노동조합'이 와해되어 정상적인 '노조활동'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면 법원도 이를 참고해서 판결을 뒤집을 수도 있고, 그럼 해고되었던 노동자들도 '복직'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법정다툼'에서 승소할 수 있게 도와줄 '법조인'과 그에 따른 '소송비'를 충당할 여력이 노동자측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이다. 이게 현실적으로 힘 없는 사람들을 더욱 억울하게 만드는 원인인 셈이다.

이처럼 미아의 아버지와 삼촌은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려는 미아의 친구, 서수지에게 크나큰 시련을 마주하게 되었다. 학업성적이 우수해서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판타스틱 에이전시'라는 회사에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수지를 부러워했는데, 막상 '현장실습'을 나간 수지는 기대이하도 아닌 '절망'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이 마주할 냉혹한 현실세계일 수도 있으니, 어떤 어려움과 시련도 묵묵히 참고 이겨내면 된다는 충고와 조언이 뒤따를 법도 하지만, 그런 어려움도 '일을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참을 수 있는 것인데, 판타스틱 에이전시라는 회사는 애초에 '현장실습'을 온 학생을 최소한의 기준이나 예의조차 차리지 않고 '노예'처럼 부려먹기만 했던 것이라 아주 큰 문제였던 것이다. 계약된 3개월동안 실습하는 것이 고작 '커피 사오기', '사무실 청소', '식당 예약', '손님 접대' 뿐이라면 애당초 '현장실습'을 왜 받았느냔 말이다. 더구나 '손님 접대'를 하면서 고객이랍시고 찾아온 사람이 "실습생이야? 어리네."라는 말을 하면서 허리를 감싸는 '성희롱'을 당했다면, 무례하고 막돼먹은 손님에게 확실히 따지고, 사과를 하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되려 성희롱을 당한 학생에게 '사과'를 강요하고, 그동안 실습한 것도 없던 일로 하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왜 어린 학생에게 이런 시련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렇게 세 가지 부당한 일이 발생했는데, 미아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사회초년생들이 으레 겪는 불운이니 다 잊고 애초에 없었던 일인 것 마냥 그냥 넘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더러운 세상에서 살기 싫다며 한강 다리 같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인생의 마지막 점프를 하는 것이 좋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노동자가 당연히 누릴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머리띠를 질끈 묶고 시위를 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것 하나 쉬운 결정이 없다. 엄청나게 힘겨운 일이며, 고통스럽고, 앞길이 깝깝한 심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비극인 것이다. 그렇다면 힘 없는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애초에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죄를 짊어진 '노동자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쓰디 쓴 인내를 운명처럼 씹어야만 하는 걸까?

애초에 힘이 약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있다. 바로 '연대'다. 함께 할 때 큰 힘을 낼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참지 말고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노동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하디 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한 목소리를 내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그럼 부당하고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사회초년생들이라면 더욱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옳지 못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미아의 선택'이 큰 참고가 될 것이다. 사회초년생들이라면 심금을 울림과 동시에 현실직시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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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실
연소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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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실> 연소민 / 자이언트북스 (2026)

[My Review MMCCXV / 자이언트북스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마흔네 번째 리뷰는 화려한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는 청소년 소설 <설탕 실>이다. 작가는 연소민으로 <공방의 계절>, <고양이를 산책시키던 날> 등을 써서 나름 유명한 작가인 듯 한데, 아쉽게도 나는 처음 접한 작가였다. 내가 좀 늙긴 했다. 특히 <공방의 계절>은 영미권을 비롯해서 30여 개국에 판권을 판매한 실적을 가지고 있단다. 기회가 되면 읽어보련다. 아직 직접 접해 보지 못한 작가라서 이책 저책을 검색해보니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거나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을 주로 썼던 모양이다. 이 책 <설탕 실>도 딱 그랬다. 주인공으로 중2가 등장해서 혈기 넘치는 청춘스토리가 펼쳐지거나 '중2병' 제대로 걸린 말괄량이가 등장하는 줄 짐작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있잖아요. 선생님! 비밀이에요> '하이틴 소설'을 떠올리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 나이가 탄로나는 것 같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설탕 실> 관점 포인트 : 여러분들은 열다섯 살에 어떤 삶을 꿈꾸었나? 요즘 학생들은 풋풋한 맛이 전혀 나지 않아서 '아파트 건물주'가 되어서 임대료나 월세를 따박따박 받으며 띵까띵까하면서 살고 싶다는 속물이 많은데, 실상은 '아무 꿈'이 없어서 그런 막연한 부러움을 꿈이랍시고 입에 올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시절이기도 하다. 아이돌, 연예인, 프로게이머 등등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정한 친구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성적'에 맞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꿈을 꾸곤 한다. 그나마 성적이 상위권인 친구들의 이야기고, 중하위권 학생들은 이런 꿈마저 포기하고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 <설탕 실>에 등장한 '미도'와 '가호'는 꿈을 꾸려 한다. 아직 명확한 꿈은 없다. 열다섯 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도 있는 희망 가득한 나이인데, 미도와 가호에게는 나름의 상처가 있어서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 마냥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뭐 큰 문제는 아니다. 미도는 평범한 성적과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고, 가호는 학교에 장기무단결석중이다.

제목이 <설탕 실>인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털실아이'라는 간판을 단 실뜨개공방이다. 그리고 그 공방 앞에 위치한 '마카롱전문점' 니농마카롱이 새로 오픈했다. '털실아이'는 미오의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이고, '니농마카롱'은 가호의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인데, 가호가 제과기능 실력을 갖고 있어서 엄마를 도와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미오와 가호, 두 사람의 만남은 바로 이 가게들 앞에서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니농마카롱이 오픈했을 무렵부터 문을 꼭 닫고 있던 털실아이였지만, 미오가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다친 엄마의 병문안을 갈 때마다 니농마카롱 가게에서 마카롱을 사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미오는 가호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고, 자기 또래인줄 알았지만 '이름'을 몰랐고, 장기결석중인 것을 알았지만 '그 이유'는 모르는 등 이래저래 궁금증이 일어서 습관적(?)으로 마카롱 가게를 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호는 미오를 보고도 아는 체는 잘 하지 않았다. 말 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미오가 키우는 강아지 '윤희'를 안고서 마카롱를 사러 갔다가 목줄을 놓치는 사고가 발생해서 강아지가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그때 전광석화처럼 강아지를 잡으러 뛰쳐나간 가호와 깜짝 놀라서 더욱 멀리 달아나버린 윤희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그렇게 헐레벌떡 한바탕 동네 한 바퀴를 돌고나서야 겨우 윤희를 따라잡을 수 있었고, 미오와 가호는 놀이터 그네에 나란히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 '말문'을 트기 시작했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같은 학년의 또래라는 것도 말을 주고 받게 되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보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새삼스럽게 통성명을 한 두 사람은 계속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설탕 실>은 청춘연애담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중2가 꿈을 마음껏 꿀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오에겐 '가족 문제'였다. 실은 '재혼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미오의 친엄마는 미오가 갓난아기였을 때 아빠와 이혼을 했고, 미오와 언니인 미주는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단다. 그리고 아빠는 재혼을 하는데, 친엄마의 기억이 거의 없는 미오는 새엄마를 친엄마처럼 따랐지만, 친엄마의 추억을 간직한 언니 미주는 새엄마를 '혜지 씨'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새엄마'의 엄마도 실은 '친엄마'가 아니었단다. 그러니 미오가 '외할머니'라고 부르는 이순 할머니의 언니가 낳은 딸이 '혜지 씨'였던 것이다. 혜지 씨의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자 동생인 이순 할머니가 '동생의 딸'을 자신의 딸로 키웠던 것이다.

한편, 가호에겐 '학폭 문제'가 있었다. 가호가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벌어진 일인데, 가호의 엄마가 '아이스크림 와플'을 만들어 파는 가게에 학교친구들이 찾아왔다가 가호의 엄마가 만든 와플이 형편 없이 맛없고 불량식품을 판매한다며 '악담'을 소문 낸 것이다. 그 일로 가호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급기야 '폭력'까지 당했다. 그러다 학폭을 일삼던 무리 가운데 한 명이 가호 엄마네 가게에 '병든 강아지'를 버리고 갔는데, 가호는 그 강아지를 애정으로 키우며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호의 강아지가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고, 가호는 강아지를 백방으로 찾아나섰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저멀리 옆동네 동물병원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강아지를 치료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가호와 엄마는 택시를 타고 달려갔지만, 가는 도중에 다시 전화로 연락이 왔고, 이미 사망했다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가호는 그 뒤로 전학을 갔고, 비록 새학교지만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워 장기결석중이었던 것이다.

나가는 글 : 한창 꿈을 꾸고 희망을 품어야 할 열다섯 소년소녀는 나름의 상처와 사정을 안고서 방황하고 있다. '재혼 가정'과 '학교 폭력' 그 자체는 아이들의 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허나 직접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마음껏 펼쳐야 할 나래를 펴지 못하게 발목 붙잡힌 상태던 것이다. 다 지난 일이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면 그뿐일텐데, 그게 참 묘하게 힘든 상황이다.

이럴 때 어른들은 '뭐라도' 하면서 극복하고 돌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허나 이제 열다섯 살이 된 '중2'들에겐 그런 경험이 없다. 이제 막 처음 시도하고 체험했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겠는가? 이럴 때 부모라도 아무 문제가 없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였다면 좋았을 텐데, 대한민국 중산층이 무너진 지 언젠데 그런 낭만을 꿈꾸는 청춘들이 있겠느냔 말이다. 더구나 미오와 가호 두 사람의 '엄마 가게들'은 곧 폐업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절망적인 순간에 미오와 가호는 결국 '뭔가'를 시도해보려 한다. 막연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살려서 해보려 든다. 아주 좋은 시도다. 비록 그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연소민의 소설은 이렇게 등장인물과 인물 사이에 '갈등요소'를 부각시키기보다 '정경'을 돋보이게 한다. 정경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와 경치'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처한 모습이나 형편'이다. 재혼 가정과 학폭에서 우러나오는 '갈등'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형편'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와 처한 모습을 따뜻한 감성으로 수채화를 그린 듯한 풍경을 연상케 한다. 왜 연소민 소설의 감상평으로 '소소한 행복'을 꼽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까닭에 전체적인 소설의 분위기는 '밍밍하다'. 톡쏘는 청량감이라고는 1도 없이 그렇게 미오와 가호의 '중2 겨울방학'을,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데이를 그렇게 소소하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만다. 분명 두 사람은 '썸'을 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걸 표현하지 않고 있는 '절제미(?)'를 감상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를 딱히 하나만 꼽을 필요는 없겠다. 잔잔한 소설인데 반해서 '소설속'에서 펼쳐낸 문제거리는 격정을 뿜어내듯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청소년의 방황에 '핑곗거리'를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문제쯤은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것 아니겠냐는 듯이 태평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주제를 하나로 '통일' 시키기보다 각각의 등장인물속에 '주제 '하나씩을 넣어두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묘하게 다채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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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 기묘한 여름 방학 - 중학교 수학 1-2 개념이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권혁진 지음, 신지혜 그림, 김애희 감수 / 유아이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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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 기묘한 여름 방학> 권혁진 / 김애희 / 유아이북스 (2020)

[My Review MMCXCII / 유아이북스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한 번째 리뷰는 중등수학의 개념을 재밌는 소설로 다잡을 수 있는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다. '툴리아 1'에서는 중등수학 1학년 1학기에 배울 내용을 탐구했다면, 이번 '툴리아 2'에서는 2학기에 배울 내용이 간추려져 있다. 사실 초등수학에서 중등수학으로 넘어오면서 유념해야 할 것은 '탄탄한 개념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공부가 '탄탄한 기초'가 필요한 법이지만, 수학에서 말하는 기초는 두 말하면 입 아플 지경일 것이다. 이런 조언은 이미 초등시절에도 많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등수학을 잘못 학습한 학생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중등수학은 개념도 잡아보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까닭으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제대로 수학공부를 시작도 하기 전에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가 되고 만다. 그럼 '수포자'가 왜 중등 1학년 때 많이 발생하는지부터 살펴보자.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관점 포인트 : 수포자가 된 학생들도 초등시절에는 수학 성적이 우수했던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째서 중등수학을 공부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성적이 곤두박질 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잘못된 방식'으로 수학공부를 해왔기 때문이다. 초등시절에 '영수 학원'을 다니거나 '보습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심지어 집에서는 '방문학습'까지 하며 '문제집'도 십수 권을 풀고 또 푸는 수학공부를 해왔을 것이다. 이유는 뻔하다. 수학이 그만큼 중요한 과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초등시절을 보내고 나면 중등수학을 굉장히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발생하고 만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초등수학 만점의 비결 때문이다. 사실 초등학교 수학시험의 출제난이도는 '교사 재량'이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을 누굴 만났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초등생들은 대부분 '사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 초등수학 성적은 거의 '만점'을 받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수학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중등수학'을 만나면 딱 절반으로 나뉘게 된다. 고득점 학생과 문제에 손도 대지 못하고 찍는 학생으로 말이다. 그리고 찍어서 시험을 망친 학생들은 부랴부랴 '수학학원'을 뺑뺑이 돌지만 영 신통치 않은 성적을 받으며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왜일까?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하나다. 잘못된 방법으로 수학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기초를 탄탄히 하지 않고 '족보(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은행)'에 의지해서 '시험에 나올 문제 유형'만 주야장천 풀고 또 풀어서 '만점'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초등수학 시험문제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초등생일지라도 맘만 먹으면 그 모든 분량을 다 풀어재끼고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수학성적을 유지한 학생들은 그야말로 '문제를 풀고 또 풀어재끼는 공부'만 해왔다. 이런 방식으로도 초등수학은 고득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등수학에서도 이 방법이 통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먼저 문제의 총량이 너무 많다. 그리고 같은 문제유형이라도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모든 유형을 다 마스터할 수는 없다. 그 까닭을 말하자면, 일단 초등교과서는 '딱 1종'으로 전국 공통이지만 중등부터는 여러 종류의 교과서 가운데 하나를 학교재량으로 지정해서 교과서로 삼는다. 이게 뭘 의미할까? 공부해야 할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초등시절부터 수학문제집 십수 권 분량의 문제를 풀이했을 것이다. 그러니 중등때에도 십수 권 분량의 문제풀이에 지칠 리는 없다. 그런데 왜 수학성적이 향상되지 않을까? '기초 개념'만 확실히 깨우쳤다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 '기초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문제 유형'만 익혀서 정답을 외우는 방식으로 초등수학 성적을 높였던 학생들이 바로 '수포자의 주인공'인 셈이다. 다시 말해, 수학공부를 잘못된 방식으로 배웠기 때문에 '중등수학의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무작정 문제풀이부터 하려 들고, '수학공식'만 달달 외워서 답만 맞추려 드는 습관만 있기 때문에, 결국 중등수학 정도의 난이도조차 풀지 못하는 학생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고액의 '종합학원'을 보내서 밤10시까지 옴쭉달싹하지 못하게 공부를 시킨다고 수학성적이 만족할 만큼 향상될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차리리 이 책 <신비한 수학의 땅 1, 2>을 읽히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왜냐고? 재미난 이야기를 읽었을 뿐인데 '중등수학의 개념'이 저절로 잡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가장 좋은 공부는 '재밌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해'하기도 쉽고, 굳이 '암기'하려 들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질테니 말이다. 그리고 '반복학습'이 필요할수록 재미난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학습부담도 덜고 하고 또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 다음에 본격적인 '문제풀이'에 들어가고 '시험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초 개념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을테니 여러 가지 '문제유형'을 만나도 알맞은 '키워드'를 찾아내서 쉽게 풀 수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공부란 모름지기 그렇게 해야 한다. 명강으로 유명한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어보라.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쉽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정말 재미나게 강의하지 않느냔 말이다. 공부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네 초등수학교실은 그렇지 못하다. 목표한 점수에 도달할 때까지 풀고 또 풀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 더럽게 재미없게 가르친다. 물론 사교육선생들도 풀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억지로 앉혀 놓고 학부모들이 만족할 때까지 풀고 또 풀려야 하기 때문에 곤혹을 치루고 있다. 이분들이 괜히 재미없게 공부시키는게 아니다. 그렇게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면 아예 문제풀이를 하려 들지 않고, 공부하기를 즐기려 들지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가는 글 : 중등 1학년 2학기가 되면 '기하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도형' 파트를 배운다. 이것을 쉽게 배우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에 나처럼 어렵게 배우는 학생들도 분명히 있다. 나도 이공계로 진학해서 각종 '역학'을 전공했지만, 유독 '도형 파트'는 힘들어 했다. 특히, 원과 접선 문제 유형만 나오면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기하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초등시절의 '도형'을 제대로 배운 경험이 없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도형문제를 풀 때에도 '숫자'만 보고서 들입다 '연산'을 해내서 풀어대는 잘못된 습관으로 학습을 한 탓에 중등수학부터 '기하학 문제'는 거의 손도 대지 못하고 엉망진창으로 풀이하던 기억만 떠오른다. 당시에는 한 반에 60명이 넘었고, 과외교육도 금지되었기에 누구에게 체계적으로 배울 경황이 없었다. 어찌어찌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수학의 정석>으로 학원강의를 듣곤 했지만, 여전히 도형문제만 나오면 헤매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 책 '툴리아 2권'이 더욱 반가웠다. 읽기만 해도 저절로 이해가 되는 쉬운 설명을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인지 참 속상할 따름이다.

참고로 초등수학에서 배우는 5가지 개념은 '수와 연산', '도형', '측정', '표와 그래프', '확률과 통계'다. 이건 중등수학에도 그대로 연계된 학습을 진행하며 중등 1학년 1학기에는 '수와 연산'에 이은 '대수학의 기초'를 학습했다면, 2학기에 접어들면 '도형', '측정'이 심화된 '기하학의 기초'를 배우고, '히스토그램'과 '도수분포표' 같은 단원을 공부하게 된다. 그러니 초등수학의 기초에 충실히 개념 파악했다면 중등수학에서도 그닥 어렵지 않게 '개념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러니 무턱대고 겁부터 먹을 까닭이 전혀 없다.

더구나 '문제풀이'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초등수학보다 중등수학이 훨씬 더 간결하기 때문에 초등수학 성적이 좀 떨어진 학생이라도 중등수학부터 반전을 보이며 높은 성적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학생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보통 성인이 되어서도 '초등수학 방식'으로 문제풀이를 하기보다는 '중등수학 방식'으로 연산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중등수학도 개념만 잘 잡아주면 초등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학습성과를 올리는 학생들이 참 많다.

그러므로 중등수학을 공부하겠다고 '고액과외'만 알아보기 전에 '재미난 소설책'부터 권해주는 것도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공부 좀 해본 학생들도 억지로 꾸역꾸역 한 공부는 힘들어 하지만, 재밌고 즐거운 공부는 하지 말라고 해도 찾아서 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기 마련이다. 지루하고 따분한 수학공부를 하다가 잠깐 짬을 내서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심지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에는 '딴짓'을 하고 있는데도 '수학공부', 그것도 아주 중요한 '중등수학의 기초 개념'을 탄탄하게 만들어주지 않는가 말이다. 그야말로 마당 쓸고 돈 줍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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