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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10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10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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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X / 넥서스Friends 10번째 리뷰] 석가모니는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말을 남겼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말이다. 즉,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더 슬퍼했을 것이. 그러자 석가모니는 뒷말을 덧붙인다. '거자필반(去者必返)'. 다시 말해,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말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비로소 스승을 떠나보낸다. 죽음 뒤를 기약하고 다시 돌아올 것을 믿는 '윤회사상'이란 불가의 가르침을 석가모니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명강의를 한 셈이다. 히로시마 레이코는 이런 불가의 '윤회사상'을 이 책에 담뿍 담고 싶었던 것일까?

자꾸만 옛 기억을 잃어가는 것 때문에 걱정이 많은 센야는 자신이 사랑으로 키운 야스케와의 추억만 콕 집어서 잊혀져가는 간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앞서 야스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얼음감옥에서 탈주한 고주'와 한 판 대결을 하기 위해 우부메에게 주었던 '바쿠란의 눈'을 되찾았는데, 그것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왜냐면 요괴의 세계에서 '한 번 맹세한 것'을 어기게 되면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악랄한 요괴라하더라도 '자신이 한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요괴세계의 규칙인 셈이다. 그런데 센야가 '그것'을 어기고 말았다. 물론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럼에도 규칙을 어긴 것은 마찬가지고, 그로 인한 저주는 물론,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힘을 잃어버린 센야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 아이, 야스케'다. 그렇게 센야는 야스케와 함께 겪었던 기억들을 하나씩하나씩 잊어버리게 된다. 끝내 '야스케'라는 이름마저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렸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면 '잊어버렸다'는 기억조차 잊어버려야 하는데, '야스케에 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서는 '무언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기억'만큼은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한 센야는 '영원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우부메가 이야기했던 '무서운 저주'의 진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서운 저주에 걸린 센야는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도 경고했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힘을 되찾지 않으면 당장 '야스케의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었기에, 센야는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센야는 야스케의 곁을 서둘러 떠난다. 왜냐면 '야스케'라는 이름마저 잊어버리게 되었을 때, 센야는 '요괴의 본능'만 남아서 자신도 모르는 새, 야스케를 공격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야스케를 모르는 요괴처럼 죽여버리고도 스스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아픔만 간직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센야를 더욱 공포로 몰아넣었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없애버리고도 '그 자체'를 잊어버리고, 평생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잊고 살아간다'라는 기억만 간직한 채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저주에 빠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센야는 야스케를 떠나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린다.

하지만 센야는 안다. 자신이 가장 소망하는 것이 '야스케와 함께 사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분명한 사실이 센야를 더욱더 괴롭게 만든다. 그래서 스스로 감옥 같은 곳에 자신을 가두고 '야스케'를 헤치지 않게 만들고서는 오직 '유일한 한 사람'만이 그곳을 열 수 있게 만들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라면 너무도 잘 아는 바로 그 느낌이다. 사랑에 실패했음을 직감했을 때,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는 곳에 스스로를 '유폐'시켜놓고서, 유일한 탈출구이자 비상구인 '문'을 만들고서, 자기가 사랑했던 이가 다시 찾아와주길 바라는 그 심정 말이다. 센야는 바로 그런 '감옥'을 찾아냈고, 그 감옥에서 '야스케'를 기다렸다. 마치 죽음과도 같은 상태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야스케'는 그곳을 찾을 수 있었을까? 센야와 야스케는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회자정리 거자필반'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사말이다. 흔히 '종업식'이나 '졸업식' 때 자주 쓰이던 말이었는데, 시대가 변하니 이젠 잘 쓰이지 않는 말이 되었다. 왜 그럴까? 아마도 너무도 발달한 '통신기기' 덕분일 것이다. 옛날에는 '서신왕래'를 하면서 며칠이나 몇 달에 한 번씩 '서로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탓에 편지 한 통 받고 나면 그렇게 반갑고 기뻤다. 그러다 전화기가 대중화 되자 더 빠르고 편하게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연락이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더 '연락'을 뜸하게 할 뿐이었다. '삐삐'가 등장했을 땐, 반짝이나마 소통이 활발해졌다. 소식을 전하는 '메시지'가 한정되어 있었던 탓이다. 그때문에 '한정된 메시지'에 어떻게 더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더 자주 연락하게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핸드폰'이 등장하자 연락은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주 연락하는 대상과는 더 자주, 뜸하게 연락하는 대상과는 더욱 뜸하게 연락을 취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젠 SNS로 전세계 불특정다수와도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자 '이별'을 슬퍼하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검색기능'으로 편리하게 찾을 수 있는 세상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헤어짐이 아쉽지 않은데, 굳이 다시 만난다는 것이 무에 기쁠쏜가?

이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 탓일까? 10권의 '시즌1'을 마감하는 대목에서 야스케와 센야가 다시 '만남'을 갖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옛날이었다면 '시즌1'의 결말은 '헤어지는 대목'에서 멈추고, 독자들의 애간장을 다 녹이고 난 뒤에야 느긋하게 '시즌2'의 서두를 '둘의 재회'로 거창하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별이 아쉽지 않은 시절'이다보니, 급기야 '만남(재회)'으로 결말을 내려버렸다. 그리고 그 둘의 '새로운 이야기'로 시즌2를 장식할 것을 예고하며 막을 내렸다. 이걸 참신하다고 해야할까? 솔직히 맥이 쭉 빠지는 결말이었지만, 이야기는 재밌었으므로 '시즌2'에서 다시 리뷰를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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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 인생사 덧없다 역사로 통하는 고전문학 9
이영민 지음, 김도연 그림, 황인원 정보글 / 휴이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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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VIII / 휴이넘 1번째 리뷰] 서포 김만중의 한글소설 <구운몽>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필독서로 지정되었고,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소설이라 '수능'에서 다루지 않은 지 오래 되었더라도 '내신'과 '수행'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할 작품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시험에서 나올 법한 내용부터 정리해보자. 크게는 세 가지다.

하나는 <구운몽>은 사대부 양반인 김만중이 손수 지은 '순한글문학'이라는 점이다. 조선 숙종 때 여러 차례의 환국과 붕당정치로 인해 수많은 관료들이 유배를 가곤 했는데, 그 무리 중에는 서포 김만중도 포함되어 있다. 무려 6차례나 유배를 갔다고 한다. 그렇게 유배를 가니, 홀로 남겨진 어머님께 위로를 드릴 겸 편지와 글을 써서 보냈는데, <구운몽>도 바로 그런 효심에서 비롯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운몽>을 '유배문학'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이 소설이 '몽자류 소설'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 '꿈속'으로, 다시 '꿈속'에서 '현실'로 되돌아오는 '몽유계 소설'인데, 현실을 묘사한 대목에서도 '주제'가 담겨 있고, 꿈속을 그린 대목에서도 '주제'를 읽을 수 있기에 '몽자류 소설'이라 부른다. 한편, 몽유계 소설에는 '몽유록 소설'도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현실-꿈속-현실'의 구성을 보여주지만, '현실'을 다룬 부분에서는 주제를 찾을 수 없고, 오직 '꿈속' 이야기에서만 주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몽자류 소설'과 구분이 된다.

또 하나는 <구운몽>이 불교적 색채가 강한 소설이지만,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유교적인 양상'을 강하게 띠고, 소설 전반적으로는 신선이나 용왕, 도술, 그리고 상서로운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도교적인 표현'도 아주 잘 드러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을 '유불선 사상'이 합일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내용들이 주로 시험에서 다루는 부분이기에 정리해두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교과서적인 해석'만이 <구운몽>의 전부는 아니다. 현실세계의 '성진'이 얻는 깨달음이 불가에서 말하는 '인생무상(인생사 덧없음)'이고, 꿈속세계에서 '양소유'가 누린 삶의 즐거움이 유가에서 중시하는 '입신양명(출세하여 명성을 널리 알림)'이며, 작품 전반적으로 흐르는 도가적인 분위기에서 '신비함과 신묘함'으로 재미를 증폭시키는 것으로 <구운몽>을 모두 읽었다고 말한다면, 이 소설을 '필독서'라고 지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 '모범답안'이 나와 있는데, 뭘 더 읽으라는 말인가. 그저 '요점정리'한 내용을 달달 외워서 '시험성적'만 높이면 그뿐일텐데 말이다.

모름지기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은 아주 우수한 작품이란 증거다. 우수한 작품으로 실린 까닭은 '딱 한 번만 읽으면 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두고 두고 읽어도 좋고, 읽으면 읽을수록 읽는 맛이 우러나는 훌륭한 작품'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운몽>도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맛을 어디서 찾으면 좋을까? 나는 '양소유의 삶'에서 그 재미를 찾으려 한다. 왜냐면 양소유의 이름부터 '양기가 철철 넘치도록 이 세상 한껏 즐기며 노닐다'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양소유의 곁에는 '팔선녀'가 함께 한다. 성진스님과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위부인을 모시는 아름다운 시녀들이 바로 '팔선녀'의 정체인데, 이들이 모두 꿈속에서 '인간세상'으로 다시 태어나니 진채봉, 계섬월, 정경채, 가춘운, 난양공주(이소화), 적경홍, 심요연, 백능파가 그녀들이다.

그런데 <구운몽>을 색다른 재미로 읽는 방법으로 '팔선녀'를 현생의 아이돌로 대체해도 좋단 말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핑클'과 '베이비복스' 멤버로 팔선녀를 구성했다. 30대에는 '소녀시대' 멤버로 꾸미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4세대 아이돌' 멤버들을 골라서 장원영, 안유진, 카리나, 윈터, 엔믹스 설윤, 해원, 뉴진스 민지, 하니 등등으로 꾸며서 읽어도 색다른 맛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아 참..이번에도 '카라'는 빼먹었네. 어차피 일장춘몽에 불과한 인생사이고, 덧없는 하룻밤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무슨 상상인들 하지 못하겠느냔 말이다. 할 수 있다면 '돈 잘 버는 여성', '요리 잘 하는 여성', '노래 잘 부르는 여성', '권력을 쥐고 있는 여성', '천재적 지능을 가진 여성', '애교가 철철 넘치는 여성',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 그리고 '가정적인 여성'이 남편을 한결 같이 존경하고, 부인들끼리 서로 우애가 넘치도록 한 집에서 시부모님께 효도하며 살아가는 상상을 하면서 읽어도 좋단 말이다.

그렇다면 남성독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 그럼 여성독자들은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좋을까? 남성독자들에게 '팔선녀'라면, 여성독자들에겐 '팔선남', 아니 '팔꽃남'으로 각색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함께 논술수업을 진행한 여학생은 국적불문하고 '휴 잭맨'을 으뜸으로 꼽고서는 '아스트로 차은우', '공유', '현빈', '강동원', 'BTS 진', '이동욱',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선택했다. 뭐, 여성독자라면 차고 넘치는 '잘난 남자들'을 다 선택해서 읽어도 즐겁지 않겠는가? 돈도 많고, 잘 생기고, 몸매 좋고, 성격 좋고, 사회적 지위까지 누릴 거 다 누리며 사는 남자들을 자신은 '공주'가 되어 곁을 지키는 호위무사로 삼아도 좋고 말이다.

나는 이렇게 <구운몽>을 읽을 때마다 수없이 많은 버전으로 읽으며 '인생의 낙'을 즐기고 또 즐긴다. 그러나 그러한 꿈 같은 일이 결국엔 '다 부질 없다'는 주제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성진의 깨달음을 일깨워주기 위한 '육관 대사'의 의도가 바로 이것이니 말이다. 누릴 수 있을만큼 원 없이 다 누려본 뒤에 비로소 그런 것들이 모두 다 '부질 없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보라는 것이다. 호사도 누려보아야 '별것 아니다'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어설프게 누려보거나 아예 누려보지 못하면 '평생의 한'으로 남아,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초능력을 갖고 싶어요', '초절정 미남/미녀가 되게 해주세요' 따위의 소원을 가없이 빌기 마련이다. 그런데 <구운몽>을 완독하고 나면 비록 '꿈속일망정' 원 없이 다 누린 '양소유의 삶'이 사실은 인생의 진정한 바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인간이 죽을 때가 되니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저 세상'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꾸로 생각을 해도 마찬가지다. 불로장생약이 있어서 '천수(千壽)'를 누린다해도 인생의 낙을 그리 오래 누리지 못하고, 금세 질려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이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재밌는 게임도 100년동안 하라면 못할 것이며, 즐거운 파티도 100년을 계속하면 지루해질 것이다. 그럼 10년동안은 재밌고 즐거울까? 우리네 인간의 청춘(젊음)이 20살부터 39살까지 대략 20년 가량이라는 것이 참 신묘할 지경이다. 40대, 50대가 되면 늙어서 체력이 떨어져서 못 노는 것이 아니라 '노는 것'이 슬슬 지겨워져서 더는 놀고 싶어지지 않게 된다. 내 나이가 50대로 접어들어서 <구운몽>을 다시 읽으니, 육관 대사가 성진스님에게 깨우치게 하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또 하나'를 깨우치게 되었다.

흔히들 <어린 왕자>같은 명작 소설을 '10대에 느낀 감동', '20대에 느낀 감동'이 사뭇 다르다고 말한다. 그렇게 30대, 40대, 50대를 지내며 주기적으로 되새기며 읽은 책들의 재미도 사뭇 달라지기 마련이다. <구운몽>도 그렇다. 10대에는 '팔선녀의 외모'에 주목해서 멤버만 바꿔도 희희낙락하며 즐거웠는데, 20대가 되니 '입신양명'이 간절했고, 30대가 되니 '팔선녀의 외모'보다는 '팔선녀의 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40대가 되니 '입신양명'을 넘어 '안락한 노후마련'을 위해서라도 출세가 간절했으며, 50대가 되니 비로소 '인생무상'이란 말의 참뜻을 깨우치게 되었다. 60대가 되면 <구운몽>을 또 어떻게 이해하게 될지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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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9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9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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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VII / 넥서스Friends 9번째 리뷰] 4권에서 '사랑'에 빠지고, 5권에서 '결혼'에 골인한 인간 규조와 화사족 요괴 하쓰네가 9권에서 '쌍둥이 자매'를 출산하게 된다. 이렇게 길고도 긴 러브스토리가 이어지는 건가 싶지만, 그 사이 6권부터 8권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뒤죽박죽 이어나가며 가히 '방대한 세계관'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중세인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간들은 모르는 요괴들의 기묘한 이야기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9권이 끝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직 10권이 남았고, 24년에 발간한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라는 '시즌2'에 해당하는 소설이 이미 네 권이나 출간한 상태다. 이미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도 '시즌2'에 돌입한 상태이니, 레이코가 그려놓은 '그녀만의 판타지 세계관'은 뚜렷한 족적을 남긴 셈이다. 비록 '일본소설'이 내 취향이 아니고, '전천당'에선 큰 실망을 한 나였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해보고 '히로시마 레이코의 판타지 세계관'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일단, '요괴'부터 정리해야 할 것이다. 요괴란 '요사스럽고 괴이한 귀신'의 총칭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언행이 방정맞고 경솔하고(요망하다),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고 별나다(괴이하다)'에 어울리는 모든 귀신을 '요괴'라고 퉁쳐서 부르는 것 같다. 요괴의 정체를 정확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까닭은 누구도 그 실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괴'에 관한 이야기는 전설이나 민담, 신화속에서 상당히 많이 전래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요괴', '일본요괴', '중국요괴', 그밖의 동양요괴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요괴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것은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산해경>, <봉신연의> 등 온갖 귀신과 요괴가 등장하는 이러한 책들에서 '원형'을 찾아볼 수 있고, 여기에 각 나라의 '지리적 특성'에 따른 지역문화와 사람들의 정서, 그리고 무속신앙이나 불교, 도교 사상과도 결부되면서 다양한 '요괴'가 등장하고, 새롭게 탄생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히로시마 레이코가 그려낸 '일본 중세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요괴 판타지'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낸 것이 그리 새로운 시도는 아니고, 아주 오래전부터 오래된 소설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져왔던 것이라는 '익숙한 사실'을 접할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히로시마 레이코의 '요괴 세계관'이 기존의 세계관을 베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선 작품인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이나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에서 보여주는 판타지는 '히로시마 레이코'의 새로운 판타지인 것은 분명하다. 단지 그녀가 완전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 아닌 그 '원형'이 존재했으며, 그녀만의 방식으로 '변형'을 가했다는 것을 설명한 것 뿐이다. 여기서 관건은 그 '변형'이 21세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느냐는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증거로 <전천당>과 <요괴돌보미> 시리즈가 '시즌2'에 돌입한 것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흡입력'이 대단하기 때문에 한 번 그녀의 판타지를 읽기 시작한 독자들은 좀처럼 손에서 놓기 힘들고, 읽었다면 '끝장'을 보아야 속이 시원할 것이라는 점을 장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일본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까닭이 히로시마 레이코의 소설에서도 발견되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대단한 흡입력으로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데, 그 몰입에 따른 '감동'이랄까..이런 '여운'이 길게 가지 못하고 뚝 끊어져 버린다는 점이 이 책을 '두 번' 다시 읽히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소설'은 대부분 가볍다. 그 때문에 좋아하는 독자분들도 많겠지만, 나는 그런 점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게 작용한다. 그리고 그런 '가벼움'은 초반에 대단한 흥미로운 전개로 기대감을 최고조를 끌어올린 다음에 중반쯤 넘어가면 이미 '결말'이 예상되고, 종반으로 치달으면 '뻔한 결말'이거나 '의문(?)의 반전'으로 대단원을 내려버려서 초반의 흥미가 크면 클수록 실망감도 크게 작용하기에 점점 '일본소설'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었다. 이런 흥미와 대실망의 전형적인 케이스가 바로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결말 부분일 것이다. '거대 로봇'이 등장하고, '종말론'적인 시공간적 배경이 전반적으로 흐르면서 '인류의 구원'이란 막중한 책임을 진 '소년(신지)'이 등장해서 '사도'라 불리는 악마와 싸워나가는 초슈퍼하이퍼울트라특급 서스펜트로 매회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애니메이션이 '최종화'에 접어들어서는 "오메데토(축하해) 신지짱~"이라면서 '순정만화 엔딩'으로 끝내버리는...암튼, 나는 이런 방식의 '일본소설'을 꽤나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레이코의 <전천당>도 싫어하게 된 것이다. 두서 없는 뒤죽박죽 '기묘한 이야기'의 어린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을 둘러싼 스토리는 매우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1권, 2권, 3권...까지 읽다보니 매번 반복적이고 '복불복의 과자, 또는 아이템'이 등장해서 독자들에게 '교훈적 이야기'서부터 '이상한 이야기', '끔찍한 이야기'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방식이었는데, 읽다보니 결말이 벌써 예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똑같은 패턴'으로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네버엔딩 스토리'에 금세 지쳐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는 달랐다. 에도시대 요괴들의 이야기라는 방식이 '오컬트 장르'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저격함과 동시에 '요괴돌보미'라는 완전 새로운 에피소드 전개가 내 흥미를 폭발시켰기 때문이다. 거기에 나름의 '교훈'을 담고, '재미'에 충실하면서도 각각의 에피소드가 주는 '감동'까지 전해주었다. 그리고 앞에 짜여진 에피소드가 뒤에 나올 에피소드와 착착 결합하면서 탄탄히 정립되어가는 '요괴돌보미 세계관'이 나름 색다른 맛을 전개해주었기에 아주 흡족했다. 이를 테면, '인간의 그릇된 욕망'에 빌붙은 나쁜 요괴들을 퇴치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본능'에 충실하면 같은 요괴라도 처벌을 면치 못한다는 '요괴 봉행소'의 심판관이 등장하여, 인간 못지 않게...어쩌면 인간보다 더 나은...나름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세계관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간간히 등장하는 '스펙타클한 대결 장면'이나 '범죄 추리'를 연상케하는 미스테리한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하고, 인간과 요괴의 선을 넘는 사랑이야기까지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의 세계관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사랑스런 어린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컨셉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무릇 '아기'는 사람 뿐만 아니라 짐승의 아기도 귀엽고, 요괴의 아기는 더 귀엽다(?)는 컨셉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아무리 요괴일지라도 '생명'을 가볍게 다루는 듯한 뉘앙스는 많이 아쉽다. 아무리 '엑스트라'에 불과한 캐릭터일지라도 '개연성'과 무관하게 특정 캐릭터의 힘이나 능력을 대단하다고 느껴지게 만들기 위해서 불필요한 희생을 강조하거나, 잔인하다 못해 끔찍하고 잔혹하게 '학살'을 묘사하는 부분은 이 소설을 '어린이용'으로 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의 분류를 '어린이책'으로 하고 있는 것에 반해서 '나의 기준'으로는 절대 '어린이책'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리뷰도 '성인버전'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히로시마 레이코의 판타지 세계관은 매우 매력적이며, '감동적'으로 비춰보인다는 점은 인정이다. 가끔씩 등장하는 '잔혹함'만 살짝 수위조절을 한다면 어린이책으로도 훌륭할 것 같고, 아예 '성인버전'으로 더 잔혹하고 끔찍하고 요염하게 그려졌더라도 아주 매력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이 '성인버전'으로 그려졌다면 또다시 '용두사미'격으로 흐지부지되는 뻔한 결말이 걸림돌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다는 결론이다. 앞으로도 '요괴돌보미'의 시즌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하는 독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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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8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8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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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VI / 넥서스Friends 8번째 리뷰] 얼음 감옥에서 탈출한 최악의 요괴, 고주는 자기의 사랑과 청혼을 거절하는 스쿠요를 향해 엄청난 복수를 행한다. 하지만 그 복수의 목적은 '스쿠요'가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고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복수를 한다면서, 정작 '고주' 자신은 여전히 쓰쿠요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렇다. 고주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포장하고서 '쓰쿠요'를 향해 온갖 해코지를 하면서도 쓰쿠요를 위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한마디로 '삐뚫어진 사랑'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주의 '삐뚫어진 사랑'은 실로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고주는 쓰쿠요(봉행소의 수장을 맞기 전에는 '유키야'로 불렸다)를 처음 본 순간부터 반하고 말았다. 비록 자신보다 2살이나 어렸지만, 요괴에게 나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더구나 '하급요괴'도 아닌 '상급요괴'에게 수명은 너무나도 길기 때문에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어쨌든 고주는 자신이 첫 눈에 반한 상대를 '갖기' 위해서 청혼을 한다. 하지만 유키야는 고주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유키야의 관심은 온통 '누나'에게 쏠려 있었으며, 너무나 마음이 잘 맞는 절친 '바쿠란'이라는 요괴뿐이다. 그래서 고주는 유키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차례차례 '유키야가 사랑하는 이들'을 처단하려 들었다. 그렇게 다 사라지고 나면 유키야는 고주,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주의 삐뚫어진 생각을 미처 실행하기도 전에 유키야의 누나는 '쓰유미'를 낳다가 죽고 만다. 또 절친이었던 바쿠란도 어쩐 일(?)인지 유키야에게 큰 상처를 주고서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유키야의 '주변(!)'이 정리되자 고주는 일말의 기대를 걸었지만, 유키야는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키야의 부모님에게 결혼허락을 구했다. 지금 누나와 절친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유키야'에게는 돌보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건 청혼을 한 고주,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는 꽤나 근사한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유키야의 부모님은 고주의 청혼을 받아주지 않았다. 물론 아름다운 고주가 유키야의 짝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이 깊고 고집스러운 유키야가 '고주와의 결혼'을 원치 않을 거라는 명백한 사실을 잘 알기에 섣불리 '유키야의 결혼'을 서두를 수 없다는 명백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고주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유키야의 부모를 처단했다. 주위의 비명소리를 듣고 유키야도 부모님의 거처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너무나도 요염한 자세로 앉아 있는 고주를 바라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에 부모님의 피에 흠뻑 물들어버린 주변과 눈부시도록 새하얀 미소를 함박 짓고 있는 고주는 정말이지 참혹한 장면이었다.

유키야..아니 쓰쿠요는 봉행의 자격으로 고주를 체포하고, '얼음감옥'에 잡아넣었다. 살인죄를 지은 현행범이니 '즉각사형'으로 처형해도 누구도 반박할 수 없으련만, 쓰쿠요는 고주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얼음속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 '처형'을 당하는 것보다 더 오래 고통스러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꽁꽁 얼어붙어 영원히 고통받는 형벌인 '얼음감옥'에 가두어 고주를 천천히 말려 죽일 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판결이 떨어졌는데도 '고주'는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심지어 얼려지는 순간에도 그 미소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그 탓에 얼음감옥을 지키는 옥지기가 그 미소에 홀려서 '그녀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고주의 탈옥을 돕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옥지기는 탈옥 후, 고주가 회복되자마자 살해당했고, 고주는 그 옥지기의 '껍데기'로 위장을 하고 쓰쿠요의 주변에서 알짱거리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던 것이다.

이렇게나 처절하고 질긴 '복수의 서막'이 올랐고, 고주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인물은 쓰쿠요의 조카, 쓰유미가 되어야 옳겠지만, 고주의 첫 번째 복수는 엉뚱하게도 '요괴돌보미, 야스케'였다. 심지어 요괴도 아니고 인간이 첫 번째 복수대상이 된 까닭은 무엇인가? 그건 야스케의 양아버지 '센야' 때문이었다. 센야는 지금 '대요괴의 힘'을 잃고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원래의 모습은 '바쿠란'이었기 때문이다. 바쿠란의 힘은 '눈'과 '머리카락'에서 나왔는데, 쓰쿠요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패배하면서 '눈'을 뽑혀 버렸고, '머리카락'도 요술로 더는 자라지 않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쓰쿠요는 이번에도 바쿠란을 죽이지 않았다. 그 사연은 이미 앞서 밝혀졌지만, 얼음감옥에 갇혀 있었던 '고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고주의 기억속에는 바쿠란은 쓰쿠요의 절친이었고, 쓰쿠요의 가장 아름다운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던 유일한 요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주는 쓰쿠요보다 바쿠란이 더 미웠다.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질 수 있던 것에 심한 질투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쿠요보다 바쿠란에게 먼저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복수는 바쿠란의 마음을 찢어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의 '생명'을 앗아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야스케를 가장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것이 고주가 바라는 가장 으뜸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8권에서는 야스케는 고주의 끔찍한 계획을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고주가 마련한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어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게 된다. 해독을 하기 위해선 '고주의 숨통'을 끊어놔야만 한다. 하지만 동시에 고주가 이용한 '독극물의 특이함' 때문에 쓰쿠요의 목숨도 함께 거둬내야만 한다. 왜냐면 쓰쿠요가 야스케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결계'를 쳐놨고, 그 결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고주는 '스쿠요, 자신'을 독극물이 작용하게 만드는 열쇠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야스케가 독물에 중독되어 고통스러워할 때, 쓰쿠요가 고통을 덜어주려 야스케에게 요력을 주입하는 순간, '치명적인 독'이 더욱더 야스케를 옭아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쓰쿠요가 아니라 센야..아니 '바쿠란'이었다. 센야는 하나뿐인 양아들, 야스케를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자세를 갖춘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단추인 '쓰쿠요'부터 죽여버릴 각오를 한다. 야스케를 해독시키기 위해선 독극물을 시연한 '당사자'와 '개방자' 둘의 목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조차 '고주가 짜놓은 덫'이었던 것이다. 가장 친했던 절친이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우게 만드는 것 말이다.

자, 과연 야스케의 목숨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고주를 벌 줄 것이냐? 그도 아니면 쓰쿠요와 바쿠란의 목숨을 건 결투가 벌이지게 될 것인가? 만약 둘의 대결이 성사된다면, 승자는 누구일까? 누가 이기든 마지막 고주와의 대결에서 유리한 것이 없다. 고주는 둘이 싸우다 지쳐버리면 아주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쓰쿠요와 바쿠란이 힘을 합쳐 고주를 상대한다해도 '고주의 죽음'만으로는 야스케가 해독될 수 없었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의 양난이 벌어졌다. 과연 어떤 결말이 열릴까?

하지만 내가 궁금했던 것은 결말이 아니었다. '삐뚫어진 마음'을 가진 고주의 최후가 어떤 것일지가 더 궁금했다. 누구 잘 되는 꼴을 볼 수 없고,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처단해버리는 누군가가 지니고 있을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 결과가 몹시 궁금했더랬다. 뭐, 결말은 뻔한 것이었지만 그 결말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마음이 삐뚫어졌는데 힘은 최강이라서, 그 삐뚫어진 마음을 바로잡기도 곤란하고, 힘으로 제압할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명쾌하게 처벌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이번 편에서 밝혀졌다. 개인적으론 꽤 흡족한 방법이었고, 처벌 과정이었다. 그래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야. 내 예상범위 안에 있던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그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도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하긴 요괴마을에는 '민주주의'가 없으니, 더 나은 방법은 실현할 수 없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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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7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7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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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7>  히로시마 레이코 / 김지영 / 넥서스Friends (2021)

[My Review MCMXV / 넥서스Friends 7번째 리뷰] 7권의 이야기는 '이야기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대서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먼 옛날 센야가 '바쿠란'이라고 불리고 쓰쿠요가 봉행소의 주인이 되기 훨씬 전에 있었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쓰쿠요와 혼인할 뻔했던 '고주'라는 요괴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깊어만 간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의 복수'가 이루어져야 이 이야기는 끝을 맺을 수 있지는 않을까? 물론 '자신만을 사랑해주길 바라서' 쓰쿠요의 부모님도 살해한 고주와 쓰쿠요와의 사랑이 완성되길 기대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느닺없이 소설의 내용을 스포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겠지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쓰인 것을 '액자식 구성'이라고 한다. 액자 속에는 '그림'이 펼쳐지고, 액자 밖에서는 '감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방식인데, 잘만 꾸며 놓으면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이 되어 굉장히 몰입도가 높아지는 효과를 내게 된다. 이를 테면, 독자가 주목하는 'A'라는 이야기를 읽다가 갑자기 'B'라는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A'의 이야기 스케일을 더욱 크게 확장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MCU)'의 세계관이 바로 이런 스타일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왔고, 지난 20여 년간 우리는 '마블 영화'를 즐겨 왔던 것이다. <아이언맨>으로 시작해서 <헐크>, <토르>, <캡틴아메리카>를 이야기하더니 느닺없이 <어벤져스>로 모든 캐릭터가 총출동하여 등장하여 영화관람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그 뒤에도 <앤트맨>, <블랙팬서>, <닥터스트레인지>를 등장시켜 놓고 <어벤져스 시리즈>를 흥행시키더니 빌런 '타노스'가 등장하면서 <엔드게임>으로 대서사의 마침표를 찍는 거창한 스토리를 전개시켰다.

그럼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도 이런 구성이 가능할까? 물론 주인공은 '요괴 돌보미'가 된 야스케이고, 주요 배경은 '다이코 공동주택'에서 벌어지는 육아전쟁(?)이다. 그런데 매번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 '야스케'만 등장하지 않는다. 야스케를 둘러싼 '서브 캐릭터'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다시 원래의 '야스케의 육아전쟁'으로 이야기의 초점이 되돌아오길 반복해왔었다. 그러다 7권에 이르러서는 '봉행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다가 급기야 '쓰쿠요가 결혼할 뻔 했었던 사연'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그 결혼당사자가 그리 달가워하는 '여성'도 아니었고, 심지어 결혼을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쓰쿠요의 부모님'을 살해한 범죄자이기도 했단다. 그래서 그녀에게 벌을 주기 위해 '봉행소의 얼음감옥'에 가둬두었는데, 이번에 봉행소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 덕분에 탈옥할 수 있었고, 자신의 사랑을 거부하고 감옥에 잡아넣은 것에 대한 복수로 '쓰쿠요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이'를 죽여버리겠다고 선언까지 해버렸다. 그런데 그 복수의 대상자가 의외로 '요괴돌보미, 야스케'로 지목된 상황이다. 왜지? 야스케는 '쓰쿠요'가 가장 사랑하는 이도 아니고, 소중하게 여길 리 만무한 '인간'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의외의 대상 지목'이 독자의 관점에서는 신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왜냐면 '그 까닭'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엉뚱하면 엉뚱할수록 궁금증이 더 커지는 것을 감안한 '작가의 센스'라고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의외의 대상 선정 방식'까지는 흥미롭게 진행되는데 반해, '그 감춰진 사연'이 다 밝혀지고나면 그리 깊이 몰입을 했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매우 간결하게' 일단락이 되는 것이 매우 아쉽다. 일단 얼음감옥에서 탈옥한 요괴 '고주'의 복수는 8권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복수를 하게 이른 '원인'이 그리 심각하게 화를 낼 일인가 싶어서 아쉽다. 이렇게 싱거운 '복수의 이유'를 근거로 삼은 까닭은 애초에 작가가 '성인소설'로 구상했던 이 책이 출판사의 의견을 반영해서 '어린이소설'로 둔갑을 하면서 많이 싱거워진 것 같다. 만약 애초의 구상대로 '성인용'으로 만들어졌다면 더욱더 잔혹하고 섹시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을 것 같아서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어차피 '피가 철철 넘치는 묘사'로 가득한 소설인데, 굳이 '어린이용'으로 컨셉을 잡은 까닭이 뭔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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