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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2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2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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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XLIII / 넥서스Friends 2번째 리뷰] 이 책은 <전천당>으로 유명한 히로시마 레이코의 어린이 소설이다. <전천당>에서도 기발한 에피소드를 펼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선보였는데, 이 책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에서도 그 기발함과 흥미로움은 난형난제라 할 것이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인간의 아이 '야스케'가 요괴의 아이를 돌보는 요괴인 '우부메의 집'을 망가뜨린 죄로 우부메를 대신해서 '요괴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큰 줄거리 속에 요괴의 특징이 드러나는 '자잘한 에피소드'를 펼쳐내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형태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전형적인 '시리즈물' 구성이지만 전혀 식상하지 않은 것이 '레이코 소설'의 장점일 것이다. 이번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요괴 아이의 혼'을 빨아들이고 '인간의 시체'를 잡아먹는 포식자 요괴와 살아있는 인간과 꼭 닮은 인형을 만드는 재주를 가진 '인형술사'가 메인 스토리다. 언뜻 연결이 되지 않는 두 등장인물이지만, '생명연장'이라는 인간의 탐욕과 결합하면 이 둘의 조합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쳐서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죽는다. 이는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사랑하는 존재'가 영원히 나와 함께 하길 바란다. 그것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모습' 그대로, 오래도록 시들지 않는 꽃처럼 싱싱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길 바란다. 그런데 여기 '인형술사'가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꼭 닮은 인형을 만들어내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형술사 말이다. 그런데 인형술사는 자신의 인형에 만족을 하지 못한다. 모습만 꼭 닮아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서 '포식자 요괴'에게 먹이로 넘겨주고, 그 대가로 받은 '무엇'을 이용해서 자신이 만든 인형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주문'이 넘쳐난다. 다 죽어가는 사람이 다시 살아난 듯 싶고, 이미 죽은 사람이라도 다시 살려내는 듯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거래를 한 '인형'이 망가져도 다시 새것처럼 '고치면' 그뿐이다. 이렇게 죽은 사람도 되살려내는 '인형술사'의 꿈은 자기 자신을 '완벽한 인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인형술사는 '요괴의 아이'와 '죽은 시체'를 포식자 요괴에게 먹잇감으로 넘겨주고, 그 대가로 '인형술사'는 살아 움직이는 인형을 만드는 유용한 재료를 챙긴다. 그렇게해서 근래에 행방불명된 요괴의 아이와 분명히 죽었는데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요괴 돌보미 야스케는 이 사건들을 어떻게 해쳐나갈까?

  신기하고 흥미로운 요괴이야기를 읽다가 이런 '철학적인 문제'를 만나면 즐겁기 그지 없다. 우선, "생명연장이 가능하다면 당신은 생명을 연장하겠습니까?"라는 질문부터 던져보자. 인간이 영생, 즉 '영원한 삶'을 꿈꾼 것은 아주 오래 되었다.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탐했다는 것은 너무 유명한 이야기고, 이집트의 미라도 '부활'을 꿈꾸며 육신이 썩지 않게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킨 결과다. 현대의 기술발달은 '냉동인간'도 가능케 했고,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간복제'도 가능케 했으며, 뇌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뇌'를 대신할 기기만 있다면 '뇌를 담을 그릇'인 몸은 무엇으로든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전한다. 물론, 아직까진 '실용화 단계'까지 성공한 생명연장 방법은 없지만 말이다. 요점은 '생명연장'이 어렵지 않게 가능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생명연장'에 오케이하겠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이 그닥 높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까닭으로는 '인간답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나도 동의한다. 과거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에서도 철이는 '기계인간'이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는 그 꿈을 포기하고 만다. 애초에 자신이 생각했던 삶과는 아주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생명연장'은 어떤 방법이어야 하는가? 그건 바로 '젊음의 유지'다. 스물다섯 살의 모습 그대로 늙지도 아프지도 않고 오래도록 유지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는데,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젊음의 유지는커녕 건강 유지조차 힘겨운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이 책의 '인형술사'처럼 삐뚫어진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탐욕으로 그릇된 행동을 일삼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망가지기 마련이다. 단 한 사람이라의 탐욕이라도 말이다. 그로 인해 '무고한 희생'은 줄을 지어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탐욕'을 경계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병들어 가는 시점에서 인간이 너무 많이 살고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량학살'을 계획중이라면 어떻겠는가? 대찬성인가? 물론 지구를 사랑하는 관점에서 대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지구가 병들어가는 것과 '인구 증가'와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지구환경파괴는 '인구증가' 때문이 아니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자연환경파괴가 심각해진 탓이고, 다른 생명체들이 살아갈 터전인 숲마저 '인간을 위한다'는 논리로 파괴하고 도시나 농경지, 또는 공장지대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연 생태계는 파괴되어 제 기능을 잃어버렸고, 인간을 보호하던 자연이 도리어 인간을 해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 증거가 바로 '지구온난화', '해수면상승', '기후변화' 등이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도 덩달아서 전세계적인 대유행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괴의 생명'도 소중할 수밖에 없다. 비록 요괴는 '상상의 산물'일 뿐이지만, 요괴 하나하나가 '만물'에서 비롯되었다는 '애니미즘 사상'을 확대하면 요괴의 생명은 곧바로 '자연의 생명력'과 일대일 대응을 시킬 수 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요괴들도 '자연적으로 발생'하거나 '인위적인 방식으로 탄생'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괴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야스케의 마음은 그대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또한, 인간이 만든 물건일망정 그 재료는 '자연'에서 얻은 것이기에 소중히 다루어야 마땅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어떤가? 어린이책으로 철학을 하는 것도 재미나지 않은가.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당연한 진리로부터 시작된 물음에서 '지나친 욕심(탐욕)'은 도리어 화를 부른다는 결론과 인간이 아닌 생명도 소중히 다뤄야 마땅하는 결론까지 내릴 수 있었다. 물론 '정답'은 없다. 탐욕은 나쁘지만 욕심이 없는 세상도 활기를 잃어버린 삭막한 세상이 될 우려도 있으며,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지만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해충과 병균'마저 사랑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더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은 혼자 읽고 말 것이 아니라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어야 더욱 지혜로운 법이다. 또래와도 생각을 나누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면 더할나위가 없다. 그래서 '좋은책'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읽은 책' 모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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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1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 1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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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넥서스Friends 1번째 리뷰] 히로시마 레이코 작가는 <전천당> 이후 두 번째 소설로 접하게 됐다. 이 소설도 <전천당>과 비슷한 느낌이다. 일본의 전통양식을 바탕으로 '현대의 사상'을 담아 연출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배경은 좀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에도 시대'를 펼쳐 냈다. 17세기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 가문이 권세를 누리던 '에도 막부시대'라고 해야 하겠으나,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칼잡이(무사)'의 활극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적한 시골마을의 공동주택에서 벌어지는 요괴 대소동인 까닭에 '막부'라고 하는 거창한 시대극(사극)은 아니다. 제목 그대로 '인간의 아이'가 '요괴'를 돌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잔잔하게 펼쳐지는 '주니어소설'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애초부터 '주니어소설'로 쓰여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레이코 작가가 스스로 밝히길 이 책은 '성인소설'로 집필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쓰던 당시에 <귀멸의 칼날>이 방영하던 시기였던 탓에 좀 더 '호러물'에 가깝고 피와 시체가 나뒹구는 잔혹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반려하면서 "아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다시 써주셨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고 새로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분량도 줄어들고 에피소드도 덜어내야만 했단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는 어린이도 읽고 즐길 수 있는 책이 되었다. 하지만 애초의 '스토리'는 유지한 탓에 책내용이 담고 있는 주제가 '성인용(?)'이라는 느낌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런 탓에 논술쌤의 관점에서 이 책을 '초등학생'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귀멸의 칼날>도 '19세 미만 관람불가'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완전 성인용도 아니기 때문에...애매한 책이다.

  1권의 내용은 주인공인 '야스케'란 소년이 길가에 있는 '하얀 돌'을 우연히 발견하고서는 실수로 떨어뜨려 깨뜨리고 만다. 그저 돌멩이를 깼을 뿐이니 별일 아닌 듯 싶었지만, 사실 그 돌에는 '요괴의 아이'를 돌봐주는 요괴 '우부메의 집'이었던 것이다. 돌이 깨짐과 동시에 우부메도 떠나버렸고, 요괴의 아이를 돌볼 요괴가 사라지자 '요괴 봉행소(재판을 담당하던 에도시대 관청 이름)'가 요란스러워졌고, 결국 돌을 깨뜨린 범인 야스케가 요괴에게 잡혀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되었는데, 그 벌이 바로 인간의 몸으로 '요괴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대신 맡게 된 것이다. 우부메가 다시 돌아와 요괴의 아이를 돌봐줄 때까지 말이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뒤에 이어질 내용이 얼마나 기괴하고 음산한 요괴들이 등장할지 자못 궁금해질 테지만, 막상 뒷이야기를 읽어 보면, 살짝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특히 '호러 마니아'라면 말이다. 왜냐면 인간의 아이, 야스케가 처음으로 돌보게 된 요괴 아이가 바로 '매실절임(일본 장아찌)'이기 때문이다. 정말 귀염뽀짝이다. 어린이를 위한 소설로 개작했다는 느낌을 확연하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괴는 요괴다. 인간을 해치는 '포식자 요괴'는 아니지만, 요괴이니만큼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전천당>의 느낌이 물씬 났다. 특정 년도가 적힌 동전에 해당하는 물건만이 가진 독특하고 신비한 능력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가득했던 것처럼,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에서도 요괴마다 독특한 특징과 사건이 벌어지며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하지만 시대배경이 옛날이고, 요괴가 등장하는 몽환적인 배경이 자못 '이국적인 느낌'마저 든다. 일본에는 특히나 '요괴'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에서 비롯되었는데, 일본의 애니미즘은 좀 더 유별 날 정도로 많은 요괴가 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요괴들은 '장난꾸러기 님프'나 '괴팍한 고블린'처럼 사람에게 크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일본의 전설에는 섬뜩한 요괴들도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고, 이런 요괴들은 종종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살육을 즐기는 끔찍한 괴물로 등장하곤 한다. 한국형 귀신은 '원한'을 품은 경우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일본형 요괴는 원한의 유무와 상관없이 사람의 피와 살을 탐하고, 살육을 거듭하며 능력을 키우는 요상한 취향까지 거침없이 드러내는 경우가 흔하다. 유독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의 특성을 닮은 듯도 싶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는데 무슨 원한을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막 싹쓸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요괴들의 성격도 그런 모양인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 책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에는 그런 끔찍한 요괴는 등장하지 않을 것 같다.

  왜냐면 시대배경은 '과거'의 것이지만,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은 '현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의 전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겠지만, 그 이야기의 중심 사고방식은 분명 요즘 것이다. 바로 '인간의 권리'를 담은 인권사상이 엿보인다. 물론 등장인물 태반이 '요괴'인 탓에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동물의 모습이긴 하다. 그치만 그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주제의식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이 책을 '성인호러물'이 아니라 '어린이용'으로 출간해보라고 했던 모양이다. 단순히 피와 살이 튀기는 끔찍함이 아닌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고귀한 생각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요괴는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다. 인간이 아닐 뿐더러 '살아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천 년을 훌쩍 넘겨서 살아가는 요괴들의 삶에 고귀함 따윈 애초부터 없다. 백 년을 살아도 지겨운 것이 '인생'인데, 천 년을 살면 지겹다 못해 '무의미한 삶'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잃고 심심풀이로 인간을 잡아 먹는 요괴들의 삶을 그려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레이코 작가가 그린 '요괴'는 좀 달랐다. 그들의 수명이 언제까지인지 가늠할 수는 없으나 '요괴일망정' 유년 시절이 있고, 그 시절의 유약함을 지키고 보살펴 주려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딴에는 일본도 '초고령화 사회'가 된 지 오래되었기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도 꽤나 많을 것이다. 심지어 현재 일본사회는 '고독사(홀로 늙어 돌봐줄 사람도 없이 죽어서도 주검마저 거두어줄 사람 없이 그대로 방치된 죽음)'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기에, 이야기 속에서나마 어린아이를 돌보는 풍경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이야기를 좀 더 읽어본 뒤에 꺼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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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꿈이 사라진 날 초등 읽기대장
고정욱 지음, 임광희 그림 / 한솔수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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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솔수북 7번째 리뷰] 어린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권장해야만 하는 걸까? 물론 어린이들 스스로 꿈을 키워나가고 어른들이 그 꿈을 이루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어린이들에게 마음껏 꿈을 가지라고 말해줄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들에게 '꿈'을 빙자해서 '장래의 직업선택'에 관한 암묵적인 강요를 하고, 자유를 박탈하고, 무한 간섭을 할 요량이라면 '꿈' 이야기조차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어린이들에게 '직업'을 강제하느냔 말이다. 그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니 그냥 냅두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고 싶다.

  더 큰 문제는 채 '스무살'도 안 된 나이에 '인생의 갈림길' 앞에 서게 만드는 대한민국 사회다. 그 어린 나이에 '평생직업'이 될지도 모르는 선택을 강요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어쩌면 가장 중요한 '선택'을 강제하느냔 말이다. 그렇게 무한경쟁으로 내몰면서 무슨 '꿈타령'을 하느냔 말이다. 그냥 솔직하게 "네 인생은 '인 서울'에 달렸으니, '인 서울'이라도 해서 정규직의 발끝이라도 잡고 싶으면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만 하고, 공부로 성공할 것 같지 않으면 '재능'이라도 살려서 돈벌이에라도 일찍 뛰어 들고, 이도 저도 안 되면 결국 비참한 '비정규직의 삶'을 살 수밖에 없을 테니, 한 번 사는 인생 개고생하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살아봐. 그게 싫으면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햇!!!"라고 '현실'을 말해 주길 바란다. 괜한 '장래의 꿈 이야기'를 꺼내서 돌려까기 하지 말고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어른들도 어릴 적에 꿈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어릴 땐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데, 살아보니 '그 말씀'이 맞더라는 생각뿐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어릴 적 꿈'은 매우 소중하다는 것에 부정하는 어른들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만큼 꿈은 소중한 것이다. 아무리 대한민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만연하다고 하더라도 '꿈'만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책 <꿈이 사라진 날>은 의미가 깊다. 또다시 '외계인'이 등장해서 이야기의 본질을 흐려놓는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 소중한 꿈을 지키고 이루겠다는 어린이들의 마음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두 말 하면 입 아플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엉뚱하다고 느껴지는 점은 지구인에게서 '꿈'을 사라지게 만들어서 외계인의 노예로 만드는 것까지는 참 좋았는데, 그 외계인들의 침공에 차질을 주어 지구인에게 꿈을 되찾아주는 영웅들에게는 정작 '꿈이 없었다'는 설정이 어리둥절했다. 꿈을 갖고 열심히 잘 살던 '모범 지구인'들은 외계인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꿈을 갖는 걸 귀찮게 여긴 '불량(?) 지구어린이'가 영웅으로 설정된 것이 의아스러웠다. 이런 구성을 읽은 '초등저학년 독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외계인이 침공할 걱정(?)에 꿈을 갖지 않노라고 핑계를 대지는 않을까?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초등생은 없을 테니 걱정을 붙들어 매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놓고 싶은 심정이다.

  어린이들은 '모방심리'가 꽤나 발달했다. 그래서 '좋은 말과 행동'을 들려주고 보여주면 '좋은 말과 행동'을 따라하고, 그 반대의 상황도 똑같은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그래서 '애들 앞에서 냉수도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교육에 앞서서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고, 심지어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를 위해서도 '태교'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왜 동화책의 줄거리는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읽고, 더 나아가 전세계 어린이들이 읽을 텐데, 함부로 쓰느냔 말이다. 아무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딴에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교훈적인 내용'만을 강조하다보면 <어린이책>이 갖춰야 할 '재미'라는 가장 중요한 특장점을 놓쳐서 훌륭하지만 지루한 책이 되어 어린 독자들이 외면하는 책이 되면 안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줄거리'를 살짝 바꾸는 것은 어떨까? 꿈 많은 '모범 지구인'이 외계인의 침공에 더 취약해서 꿈도 없는 '불량 지구인'조차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데, '모범 지구인' 가운데 외계인들의 침공 방식에 '특별한 면역력'을 가지 어린이가 있어서, 외계인의 야욕을 물리칠 방법을 찾아내고 '불량 지구인'과 함께 힘을 합쳐 외계인을 소탕한 뒤에, 꿈의 소중함을 인식한 '불량 지구인'들이 각성해서 온세계 지구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부풀게 만드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면 말이다. 교훈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격이 되지 않았을까.

  딴 이야기이긴 하지만...출판시장을 주욱 살펴보면, '외국작가'들의 책시리즈는 수십 편이 넘는 반면에 '국내작가'들의 책시리즈는 열 편을 넘기기도 힘든 모양이다. 물론 공전의 히트를 한 <마법천자문>을 비롯한 '교양학습만화'는 꽤 성공적인 양상으로 안착을 하며 계속 펴내고 있지만, 유독 <동화책>만큼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해리포터>나 <전천당> 등의 사례를 보아도 잘 만든 세계관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지 않느냔 말이다. 기왕에 '사라진 날' 시리즈를 만들었으면, 지구어린이와 외계인 침공이라는 '세계관'을 구축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작가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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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돈이 사라진 날 저학년 읽기대장
고정욱 지음, 김다정 그림 / 한솔수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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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솔수북 6번째 리뷰] 고정욱 작가의 '사라진 날'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이번에는 '돈'이 사라졌고, 역시 나쁜 '외계인 침공'이 원인이었고, 마무리는 착한 '외계인의 도움'으로 지구가 구원되는 전개였다. 물론 초등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니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서 외계인이 등장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에 매달리지 않고 단번에 해결하는 구성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더구나 조기 '경제교육'의 필요성에 늘 찬성하는 쪽이었기에 이른 나이의 독자들에게 '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교훈적인 이야기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그런데도 완독한 뒤에 영 개운치가 않다. 뭔가 껄끄럽기까지 하다. 앞선 책들에서 '책'이 사라지고, '학교'가 사라지고, '엄마'가 사라지는 내용과는 달리 '돈'이 사라지는 배경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먼저 통용되던 '화폐'가 사라져서 원시경제인 '물물교환'이 다시 등장한 것은 자연스런 과정이다. 그리고 '물물교환'이 꽤나 불편해서 새로운 '통화'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바코드(인식표)'인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렇게 '화폐'를 대신한 새로운 통화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전에 '외계인'이 등장해서 지구정복을 위해서 돈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점부터 껄끄럽기 시작했다. 그러다 외계인의 지구정복 야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상화폐'로 대응하며 지구인들의 독립의지를 표출하고, 외계인들의 정복욕을 무너뜨린 것까진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외계인들이 물러난 뒤에 '가상화폐' 사용으로 인해서 투명한 쓰임새로 인해서 '부정부패'가 싹 사라져버렸다는 설정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과연 '가상화폐'만이 투명한 돈 씀씀이를 보장하는 것일까? '가상화폐'로 발생할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 문제점은 없을까? 그리고 '가상화폐'의 사용으로 정말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을까? 이런 '팩트체크' 없이 <어린이책>에 가상화폐의 순기능만 선보이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어린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걸까? 라는 의문에 빠져들자 고민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이책>이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수많은 '동화책의 결말'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맺음을 하니 말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왕자와 공주의 결혼을 '행복공식'으로 삼고, 바람직한 가족구성을 '권선징악'의 일부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식의 결말을 마냥 '좋다'라고만 평가하지 않는다. 왕자와 공주의 결혼이 무조건 '행복한 결말'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현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종이봉지 공주>처럼 왕자가 공주를 구하지 않고 '역발상'으로 용감하고 씩씩한 공주가 사악한 용에게 잡혀간 왕자를 구해주지만, 왕자는 용과의 결투 도중에 옷이 불타버리고 초라한 '종이봉지'로 몸을 가린 허름한 공주의 모습에 실망하고 투정하는 왕자와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간다는 결말을 시도한 동화책도 등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 <돈이 사라진 날>의 주제와 목적이 '어린이들에게 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저축의 필요성과 합리적인 소비를 가르치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통화인 '인식표'와 '가상화폐'의 등장이 적절한 대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용하던 통화가 사라져서 '불편한 물물교환'을 보여주고, '아나바다 운동(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운동)'까지만 보여줬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중한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꼭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쓰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더 뿌듯한 결말이지 않았을까 싶다. 예를 들어, 민지가 200만 원을 스스로 모아서 '아프리카에 학교를 짓는 꿈'을 실현시키는 결말로 말이다. 굳이 '외계인의 지구정복'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틀어서 괜한 '충격요법'을 써서 '돈의 소중함'을 강요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은 것이다. 내가 완독 후에 껄끄럽게 생각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한편, 시리즈의 '일관성'을 갖추려는 작가의 고민은 이해하는 바다. 하지만 조금 더 고민을 한 뒤에 '결과'를 내놓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이번 책은 좀 뭔가에 쫓기듯이 급하게 썼다는 느낌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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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라진 날 저학년 읽기대장
고정욱 지음, 이예숙 그림 / 한솔수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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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없으면 아이가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 큰 어른일지라도 살기 힘들어진다. 어디 그뿐일까. 핵가족화된 현대인들은 '엄마'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사회가 존속할 수 없게 되고 국가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전세계를 다스리는 건 '남성 지도자들'이 대다수이지만, 그들도 '엄마'가 사라진다면 국가를 운영할 수 없게 될 것이 틀림없다. 왜냐면 '엄마'가 사라지면 한 가정이 황폐해지고, 가정이 황폐해지면, 사회가 위태롭게 되고, 사회가 위태로우면 국가는 결코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엄마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국가가 존속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엄마의 잔소리'는 듣기 싫다.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할 '엄마의 잔소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날마다 새로운 잔소리를 한다면 들어줄 법도 한데, 그러면 애초부터 '잔소리'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은 날이면 날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또 들어야만 한다. 그래서 하루라도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푸념이 들릴 만도 하다. 실제로 '엄마가 외출'이라도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물론 외출에서 돌아와서는 '폭풍 잔소리'가 시작될 게 뻔하지만, 아이도, 아빠도, 잠시잠깐이나마 엄마가 사라지는 것을 그렇게 반길 수가 없다.

  그런데 간절한 소원대로 엄마가 사라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 재미난 상상을 한 책이 있다. <엄마가 사라진 날>이라는 이야기책이다. 이 책에선 전세계의 엄마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아니 , 정확히 말하자면 '웃음 바이러스'라는 병에 걸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던 것처럼 '바이러스에 감염된 엄마들'을 격리병동이나 요양원에 가둬버리고 국가의 철저한 감독 아래 갇혀 지내게 된다. 당연히 '가족면회'도 금지 당했다. 일단은 '아이를 낳은 여성(엄마)'만이 세계적인 감염이 된다고 알려졌지만, 언제 어느 순간에 모든 사람에게 폭발적인 감염을 일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도 '웃음 바이러스'의 감염원인을 찾으러 백방으로 연구하고 있지만, 증세가 더욱 심해지기만 할 뿐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엄마가 없는 집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된다. 청소며, 빨래며, 식사까지 엄마의 손길이 사라진 집구석은 점점 엉망이 되어 간다. 아빠는 '회삿일'도 바쁜데 '집안일'에 '아이돌봄'까지 하느라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아직 아이가 어린 남편들은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아이를 안고 업고 '출근'을 하기에 이른다. 전국 곳곳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원장과 보모들의 태반이 '병원'에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여성인력'을 많이 쓰는 직장이나 가게는 속속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일손이 부족해진 공장도 가동을 멈추고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이젠 '국가시스템'까지 망가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물론 이야기는 기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엄마'가 되돌아왔다. 그런데 엄마가 없는 '빈자리'가 이렇게나 크다는 것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그간 엄마들은 스스로를 '헌신'하고 '희생'했으면서 왜 아무런 생색도 내지 않았던 걸까? 아니다. 엄마들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알고도 '모른체' 했고, 듣고도 '못들은체' 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잔소리'를 더 크게, 더 자주 했었는지도 모른다. 해도해도 고쳐지질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제라도 '엄마의 잔소리'를 달콤한 초콜릿처럼 들어야겠다. 엄마가 '잔소리'를 하기에 앞서 '알아서' 척척 해야 겠다. 그래도 엄마는 잔소리를 멈추지 않을 거다. 엄마가 '하는 일'은 너무 많고 너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해도해도 끝이 나지 않는 것이 전세계 엄마들이 해온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면 온세계가 아프게 된다. 제발 엄마가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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