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문구점 초등 읽기대장
이상걸.곽유진.정명섭 지음, 주성희 그림 / 한솔수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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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수북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기묘한 문구점> 이상걸, 곽유진, 정명섭 / 한솔수북 (2026)

[My Review MMCCLXXIII / 한솔수북 1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두 번째 리뷰는 문구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세 가지 기묘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기묘한 문구점>이다. 책속의 이야기는 순서대로 <깨비 문구사>(이상걸 저), <어디에나 문구점>(곽유진 저), <영혼을 찍는 문방구>(정명섭 저) 담겨 있다. 작가가 세 명이기에 등장하는 '문구점'도 한 곳이 아니라 각각 별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독특한 '문구점'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책을 펼쳐서 읽게 되면, 독자들은 이야기가 전해주는 줄거리의 독특함보다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순서대로 '가짜 뉴스''인간형 로봇', 그리고 '촉법소년'을 다룬 이야기를 접하면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기묘한 문구점> 관점 포인트 : 책을 읽다보면 '줄거리'보다 '주제'가 더 깊숙이 다가오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보통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을 해보고 '불편함'을 느꼈을 때 많이 그런다. 비록 소설이라는 '허구적 사실'을 접한 것일 뿐이지만, 읽고 나면 결코 '남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내게 이 책이 그랬다.

먼저, <깨비 문구사>에서는 아이들이 '만우절'을 맞이해서 그럴 듯한 거짓말로 시작되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가짜 뉴스'로 일파만파 퍼져나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 문제'까지 거론했다. 오늘 자 뉴스에 수많은 누리꾼들이 '스벅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보이콧 운동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있다. 스타벅스에서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텀블러를 제작해서 판매를 개시했는데, 그 광고문에 '책상에 탁', '탱크 데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세트 주문시 21% OFF'와 텀블러의 용량 표기에 '503ml'이라는 두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두고도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21% OFF에는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을 가장 많이 학살한 날짜가 5월 21일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503이라는 숫자는 대통령에서 탄핵된 박근혜 씨의 수형번호가 503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이유로는 평소 '일베(일간베스트의 준말) 누리꾼'들이 5·18 희생자를 조롱할 때 많이 쓰던 문구였고, 그 수법도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벅스를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 대표 정용진 사장도 평소 '극우'임을 스스로 밝히곤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신세계 측에서는 이번 이벤트를 기획한 '스타벅스 관계자'를 해임하고 '사과문'을 공식적으로 올리는 것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이미 마음의 상처를 받은 희생자들의 아픔을 달래주기에는 뒤늦은 행동이었다.

우리가 '혐오와 차별'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재미 삼아 장난으로 퍼뜨린 '가짜 뉴스'로 인해서 아픈 상처를 해집고 슬픔에 빠뜨린 뒤에 아무리 위로하고 보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 하며, 자기 잘못을 반성하는 이들은 '정상 참작'이라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나쁜 놈들은 반성은커녕 저들이 한 짓이 무슨 잘못인 줄도 알지 못하는 모지리들이다. 이 모지리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저질스런 뒷담화를 하고, 약자에게 폭력을 서슴지 않는 비인간적인 행태를 멈출 줄 모른다. 그래서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끝없는 고통을 안겨주는 악질인 것이다.

이들이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이유는 별 것 없다. '나와 다르다'는 것으로 트집을 잡고, '나'는 옳은 편이니 '나와 다른 너'는 옳지 못하다는 흑백논리를 주무기로 삼아 '옳지 않은 무리'를 처단하는 것은 '잘하는 짓'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논리를 펴며 악의적인 행위를 끝없이 펼쳐낸다. 한 번 이들에게 '희생양'으로 표적이 되면 죽은 뒤에도 막말을 퍼붓는 악마 같은 짓거리를 해대곤 한다. 고 노무현대통령, 세월호 희생자들, 이태원 참사...등등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다. 더구나 이들의 악의적인 행태가 더욱 폭발적이고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대상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패미니스트, 장애인, 노인, 불우이웃 등등 사회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관심과 도움이 더욱 필요한 이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이를 자랑하는 인간 이하의 행태를 저지르고, 이를 자랑으로 삼는 인간말종들이 '일베'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신봉하는 것이 '혐오와 차별'이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로도 남에게 상처를 준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혐오와 차별'을 받아 마땅한 인간이 있다면 '혐오와 차별'을 서슴지 않는 인간말종 뿐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부류가 우리 사회에 발도 딛지 못할 정도로 발본색원해내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이 퍼뜨린 '가짜 뉴스'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인간말종들은 또다시 '혐오와 차별'을 해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번 당한 아픔과 상처는 절대 지워지지 않고,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혐오와 차별'을 근절시키기 위해서 엄벌이 필요하다면 '사형'도 너무 가볍다. 평생을 감옥에 살면서 자기 잘못을 반성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무기징역'이 적당할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어디에나 문구점>이다. 이 소설은 시대적 배경이 '가까운 미래'인 듯 하다.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인간들이 결국 극지방의 빙하를 모두 녹이고야 말았고, 그 덕분에 해수면이 상승해서 15층 아파트가 5층 연립주택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집밖으로 외출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나가야 할 정도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철학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온 문제이기도 한데, '사물의 변화'와 그 '정체성의 지속'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간단하다. 영웅 테세우스가 황금양털을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여정을 떠났는데, 중간에 타고 있던 배에 고장이 생겨 부품 하나씩 하나씩 계속 고쳐나가면서 여정을 계속 이어갔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문제다. 배의 부품이 전체 10000개라고 가정하고, 부품 하나를 고쳤을 때 원래 타던 배인가? 아니면 '다른 배'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배'라고 부르기를 꺼릴 것이다. 여정은 계속 된다. 거친 물살을 헤치고 나간 배는 험난한 고비를 여러 차례 맞으며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고장난 부품을 떼어내고 새 부품으로 갈아끼웠다. 물론 새 부품일지라도 여정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완전 새것일 수는 없었다. 멀고 먼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황금양털을 구한 테세우스는 다시 배를 타고 귀환을 했지만, 자신이 타고 있는 배가 원래의 배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배라고 느끼게 되었다. 왜냐면 처음 타고 왔던 배의 부품이 모두 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체는 원래 그대로였고, 부품이 모두 바뀌긴 했지만, 자신이 타고 온 배가 맞았다. 그런데도 테세우스는 단 한 번도 배를 갈아탄 적이 없는데도, 완전 '다른 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과연 이게 맞는 말일까?

정답을 맞추기 전에 한 번 생각해보자.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는 새로운 변화 맞이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인간이 '영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학기술이 발달함과 동시에 '인공장기'를 비롯해서 각종 기계장치를 인간의 몸을 대신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다리를 불행한 사고로 다치게 되면 '기계 팔다리'를 인간의 몸에 이식해서 '원래 그대로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심장, 콩팥, 간, 췌장 등 노화로 인해 '교체'가 필요해지면 '인공장기'를 대신 이식해서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죽으려야 죽을 수가 없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기계'와 '인간'을 합성하면 '사이보그'라고 불렀지만, 요즘에는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한 로봇을 통틀어서 '안드로이드'라고 부르곤 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과 로봇이 전혀 구분이 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성형'이나 '건강'을 목적으로 기계부품 몇 개쯤은 쉽게 바꾼 인간도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계부품을 몇 %까지 바꿔야 인간으로 인정할 수 있고, 안드로이드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이게 진짜 문제다.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기술과학이 발달하게 되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문제이고, '인간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나아가서 '안드로이드형 로봇'이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인간의 마음'까지 품을 수 있게 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으로 봐야 할까? 마음까지 흉내낼 수 있다면 그냥 '인간'으로 봐야 할까? 과연 인간과 로봇이 사랑을 나눌 수도 있을까? 가족으로 인정하고 평생을 함께 살아갈 수도 있을까? 반려견이나 반려묘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안드로이드'는 불가능할까? <어디에나 문구점>은 이런 질문들이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험을 선사할 소설이었다.

나가는 글 : 마지막 <영혼을 찍는 문방구>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촉법소년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결론만 말해서 아주 통쾌했다. 법을 악용해서 '합법적인 폭력'을 자행하는 철없는 무리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서 '촉법소년'은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범죄자에 대해서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범죄를 저질렀다고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고,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범행을 저지른 '촉법소년' 당사자에게 죄를 묻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생긴 피해나 배상책임은 그 부모에게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촉법소년'에 해당한다고해서 모든 죄에 대해서 보호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몇몇 몰지각한 '촉법소년'들이 가벼운(?) 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은 '촉법소년'이라며 어쩔 거냐는 듯이 어른을 놀리는 행태를 일삼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이런 '촉법소년'들의 부모들 가운데 일부는 '상류계층'에 속할 정도로 부와 지위를 쌓고 있어서 '촉법소년'들 못지 않게 몰지각한 행태를 자행하고, 또한 방조하고 있다고도 한다. 과연 이런 '무법자'들을 그대로 방치해도 되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자는 주장이 최근 들어서 탄력을 받고 있다. 현행 만 14에서 만 12세로 낮추자는 주장인데, 솔직히 '촉법소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본다. 왜냐면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겐 '갱생과 교화의 기회'를 보장해주면서, 정작 저런 나쁜 놈들에게 피해를 당한 '선량한 사람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왜 보장해주지 않느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국민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범죄자 인권은 물샐 틈 없이 보장해주면서, 왜 피해자에게는 세금 한 푼 쓰지 않고 '피해를 감수'하라고만 하느냔 말이다. 오히려 정반대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했다. 촉법소년을 악용해서 잘못을 저지르던 애들이 만 14세만 넘으면 '성인군자'라도 될 것 같은가? 그렇게 싹수가 노란 애들은 더욱더 교묘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사회를 혼란스럽고 무법천지로 만들 '새싹'으로 보고, '싹'을 잘라 제거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애들을 '교화시키고 갱생시킬 돈'이 있으면, 법 없이도 살 착한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피해보상금'으로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또한, 촉법소년들이 저지른 죄를 엄벌한다는 의미에서 철저하게 '배상금'을 책정해서 다시는 철없는 행동으로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말아먹는 짓을 하지 않도록 엄혹한 처벌을 내려야 마땅하다고 본다.

조금 흥분해서 하는 말인 것을 인정한다. 처벌만이 유일한 해법이고, 단죄만이 능사는 아닐 문제다. 애초에 도덕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회환경을 만든 우리 모두의 책임문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인권 향상의 일환으로, '체벌 금지', '두발 자유화' 등 어린이청소년 인권 문제에 우리 사회가 굉장히 많은 관심을 보이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도덕 교육이 물색 없어지고, 교권마저 무너져서, 학생들이 무서워서 선생님이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초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업중에 학부모가 교실로 쳐들어가서 다짜고짜 선생님의 따귀를 때리고 멱살을 잡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고 한다. 이유는 더 가관이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꾸중을 해서 '항의차원'에서 그랬다는 학부모들의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이 '대서특필'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말이다. 도덕이고 나발이고 '돈과 권력'만 있으면 못할 짓이 없다는 것만 배우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있는 집' 자식들이 더 활개를 치며 '촉법소년'의 테두리 안에서 못할 짓, 해서는 안될 짓, 심지어 끔찍한 범죄까지 저지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까지다. 할 말은 더 많지만 최대한 줄여보았다. 민감한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로 읽어주면 더욱 빛이 날 것 같다. <기묘한 문구점>은 재미와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심화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해보기에도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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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주스 가게 - 제2회 한솔수북 선생님 동화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초등 읽기대장
박은아 지음, 김수빈 그림 / 한솔수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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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주스 가게 : 제2회 한솔수북 선생님 동화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박은아 / 한솔수북 (2025)

[My Review MMCCLXXII / 한솔수북 1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한 번째 리뷰는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는 맛있는 주스를 마셔보고 싶은 <별별 주스 가게>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는 정말 오랜 옛이야기 때부터 인기가 많았다. '아라비안 나이트'로도 불리는 <천일야화>에서도 '알라딘의 요술램프'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에는 일본 작가인 히로시마 레이코가 쓴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이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소원을 들어주는 가게 시리즈'가 크게 유행하는 듯 싶다. 하지만 '형식적인 면'만 비슷해 보일 뿐, 내용을 들여다보면 완전 다르다. 일본 작가가 쓴 동화는 '기묘한 이야기'나 '괴담' 형식인 것에 비해서 한국 작가가 쓴 동화는 '교훈'과 '감동'에 초점을 맞춰서 읽기가 더 좋았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지만 독서논술쌤으로도 '전천당'은 논술 수업책으로 쓰기에는 부적합한 내용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재미는 있었지만 말이다. 암튼 <별별 주스 가게>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별별 주스 가게> 관점 포인트 : 지윤이는 고민이 생겼다. 학교에서 인기 많은 친구가 되고 싶지만, 실제로는 짝꿍에게 간단한 말도 건내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윤이는 뭐 하나 잘하는 것도 없었다. 공부를 잘하면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고, 운동이나 노래를 잘하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저절로 친구가 많아질 것 같은데, 지윤이는 뭐 하나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는 평범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외모라도 예쁘게 생겼다면 친구들이 알아서 알은 채라도 할텐데, 지윤이는 그저 평범하게 생긴 아이였기 때문인지 친구들은 평소에도 지윤이에게 알은 채를 하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가득 안고서 학교로 가는 길에 우연히 '별별 주스 가게'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가게에서 주스를 마시면서 소원을 빌게 되는데, 지윤이가 간절히 빈 소원은 '친구가 많아지게 해 주세요!'였다.

지윤이가 빌 수 있는 소원은 모두 세 가지였다. 그렇게 차례대로 소원을 성취하며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고, 그 덕분에 친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는 있었다. 그런데 소원대로 얻은 특별한 능력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서 문제였다. 별별 주스 가게에서 얻은 주스를 마시면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주스 덕분에 얻은 능력인지라 소변을 보고 나면 능력이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윤이의 소원대로 '특별한 능력' 덕분에 친구가 많아지는 것에는 성공한 듯 싶었다. 일단 '잘하는 것'이 생겼기 때문에 주변의 친구들이 알아서 다가와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지윤이에게 다가온 친구들이 '진정한 친구'였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갑작스레 지윤이가 발휘하는 능력 덕분에 '호기심'이 생기고 '관심'을 보인 것 뿐이지 진정으로 지윤이와 친구가 되자고 다가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윤이도 느닷없이 생긴 능력에 놀라워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원을 빌면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점차 소원을 능숙하게(?) 빌기 시작했지만, 애초에 그 능력은 '지윤이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능력을 잘 다룰 수는 없었고, 그 능력에 호기심과 관심을 보인 친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믿음을 줄 수는 더욱더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지윤이에게 보낸 호기심과 관심은 썰물처럼 빠르게 사라지고 만 것이다. 오히려 친구들이 지윤이를 오해하게 만들었다. 지윤이는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면 친구들이 좋아할 거라고 굳게 믿었지만, 친구들이 좋아하기는커녕 지윤이가 갑자기 특별한 능력을 보이며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오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윤이의 능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심은 그게 아니었지만, 친구들은 그게 지윤이의 솔직한 마음이고, 원래 그런 성격인데 그동안 감추고 있었던 것이라고 오해를 한 것이었다. 애초에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동안 숨긴 것도 쉬이 오해하도록 만들기에 딱이었다.

지윤이는 울면서 다시 '별별 주스 가게'를 찾았다. 하지만 또 다른 능력을 갖게 만드는 주스를 마시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다시 원래대로. 친구들의 오해를 풀 수 있다면, 다시 아무런 능력도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한 번 엎지른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이 지윤이가 이미 저지른 행동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책임져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별별 주스 가게 주인인 예쁜 언니가 지윤이에게 특별 주스를 마셔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하지만 지윤이는 세 가지 소원을 모두 빌었기 때문에 더는 지불할 것이 없다고 말했고, 예쁜 언니는 이 주스는 '서비스'라고 말했다. 지윤이는 마지막 주스를 마시고 학교를 향했는데...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특별한 주스의 능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가는 글 : 우리는 종종 창피한 일을 당하거나 어처구니 없게 미움 받을 짓을 하고 난 뒤에 엄청나게 후회를 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아예 없었던 곳으로 도망을 가거나, 그 망신스런 일을 아무도 모르는 사람과 새로운 시작을 하고픈 마음을 가진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럴 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일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현명한 방법은 '솔직'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에 대해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고, 철저히 '반성'하면서 두 번 다시 그런 잘못과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노라고 솔직해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저지른 뒤에도 솔직하지 못하게 '변명'과 '핑계'를 일삼으며 잘못을 뉘우치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일은 점점 더 커지게 되고, 나중에는 정말로 감당할 수 없어서 '책임'을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애초에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은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 또한 '책임'이란 자기가 스스로 해결하면 정말 쉬운데 반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 들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면, 그런 방법으론 책임을 질 수 없고, 해결도 안 되며, 자칫 '책임회피'라는 오해까지 사게 되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막나가게 된다.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남들을 속상하게 만들 권리가 부여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지윤이에게 잠깐이지만 '별별 주스'를 마시고 특별한 능력을 가졌을 때 여러 차례 친구들을 속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지윤이가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진짜 주제는 바로 '친구 관계 맺기'다. 서로의 마음까지 딱 맞는 친구를 찾기는 정말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정말 많다. 그래서 '친구 찾기'는 끝이 없는 미션처럼 느껴질 때가 많고, 겉으로는 친구가 많은 것처럼 보여도 정작 어려울 때에는 단 한 명도 도움을 받지 못해 속상한 경험도 겪게 될 수 있다. 그럴 때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또 다른 친구를 찾으면 되니까 그런 것은 아니다. 가뜩이나 찾기 힘든 친구인데, 이 친구가 내 맘에 쏙 들지 않는다고 저 친구를 사귀면 해결될 일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원하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그건 바로 내가 먼저 '원하는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친구의 모습처럼 '나 자신'을 그런 친구의 모습처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런 진심을 가지고 '친구 관계'를 맺고자 노력한다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결국 그런 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별별 주스 가게>에서도 지윤이가 친구 사귀기에 성공한 비결이 바로 '솔직함'이었듯이 말이다.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셈이다. 물론 '모습'보다 더 좋은 방법도 있다. 바로 '솔직한 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어려운 방법이다. 왜냐면 '모습'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진심을 담아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려 노력해도 보여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솔한 행동에 솔직한 마음을 담아서 '눈에 확 띠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윤이가 부족했던 것은 '솔직한 마음'이 아니라 '진솔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도 지윤이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쭈볏거리는 모습만 하고 있으면 결국 아무도 다가와 줄 리가 없다. 재밌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재밌는 행동'으로 사귀고 싶은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고, 다정한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다정한 행동'으로 여러 친구들에게 다정함을 먼저 보여주면 그런 친구를 사귈 확률이 확 올라가게 된다. 물론 쑥쓰럽고 어색한 분위기라서 먼저 손을 내밀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럴 때 먼저 '용기'를 내어보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그러다 어렵게 용기를 먼저 내었는데 다른 친구가 받아주질 않는다면 살짝 '기다리는 센스'도 발휘해볼 필요가 있다. 그랬는데도 친구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도리어 나를 낮잡아보고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런 친구는 나쁜 친구니까 앞으로도 전혀 사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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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
송라음 지음, 서수인 그림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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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 송라음 / 서수인 / 창비 (2026)

[My Review MMCCLXXI / 창비 1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 번째 리뷰는 어린이들의 무한 상상력을 즐겁고 재미나게 풀어낸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이다. 어린이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많아서 무엇 하나 콕 집어내기 망설여지겠지만 '미래의 주역이 될 주인공'이기 때문에 꿈을 꾸는 것을 가장 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에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어른이 되면 무한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강제하고 억압하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자유는 고사하고 강제하고 억압하는 것들이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우치고 나서 엄청 좌절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현실을 반영한 일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어른들이 정작 어린이들에겐 마음껏 꿈을 꾸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른들은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면서 왜 어린이들에게는 '꿈을 꿀 자유'를 허용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어린이들이 꾸는 꿈만큼 '그 나라의 국력'이 커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록 어른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실현불가능하다는 절망에 쉽게 굴복하고 좌절하지만, 어릴 적 꿈꾸던 시절에는 '현실의 벽'을 유유히 통과하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그런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최소한 '딱 그만큼'은 실현가능했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의 윗세대는 불가능했던 일이 우리세대에는 가능해지고, 우리세대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일들을 우리의 후세가 믿을 수 없을만큼 눈부시게 가능케하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어린이들에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무한한 꿈을 꾸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럼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에서는 어떤 상상이 펼쳐졌을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 관점 포인트 : 책을 펼치면 처음 등장하는 배경은 엄숙하고 조용한 '도서관'이다. 엄청나게 큰 도서관에서 우리의 주인공 새하는 길다란 사다리를 타고서 책꽂이 맨 윗칸에 꽂혀 있던 낡고 먼지가 켜켜이 쌓인 '백과사전' 하나를 꺼내들고 대출하기 위해서 사서선생님께 다가간다. 하지만 새하는 사서선생님께 매몰찬 이야기만 전달 받는다. "그 책은 대출 금지야"라고 말이다. 새하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까닭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원래 '사전'은 어느 도서관에서나 대출 금지"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새하는 사서선생님이 하는 말씀의 뒷내용에 더 솔깃해한다. "이 사전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고, 누가 빌려가서 함부로 내용을 바꾸기라고 하면 큰일난다고..."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니, 책을 못 빌려줄 까닭이 '책의 내용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암튼, 사서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시면 책을 원래 자리에 꽂아놓으라고 당부했지만, 호기심 많은 새하는 사서선생님이 한 눈을 파는 사이에 '무인대출기'로 백과사전을 올려놓고 대출을 시도했다. 무인대출기에서는 "대출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말이 들렸고, 새하는 무사히(?) 무거운 책을 들고 도서관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새하는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백과사전답게 책은 'ㄱ'부터 가나다 순서로 내용이 적혀 있었으며, 순서대로 주르륵 읽어가다가 '공룡'이라는 낱말에서 눈길이 멈춰섰고, 자세하게 읽기 시작했다. 왜냐면 새하는 공룡을 무척 사랑하는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공룡들에 대한 이야기를 쭈욱 읽어나가다가 '세상에 없던 공룡'을 상상하기에 이른다. 공룡답게 날카로운 이빨과 길다란 발톱을 가졌으면서도, 익룡처럼 날개를 가져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데, 꼬리에는 곤봉 같은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상상속의 공룡'을 머릿속에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새하는 그 상상속의 공룡을 아른 공룡과 함께 어울려 다니는 꿈을 꾸며 "그렇다니까"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리고는 새하는 상상속에서 새하가 만들어낸 공룡과 함께 마음껏 노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등교한 새하는 친구들과 공룡이야기를 나누다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새하가 친구들이 좋아하는 공룡이야기를 하는 틈에 자신이 상상했던 공룡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친구들 중에 '공룡박사'로 통하는 친구가 "그런 공룡은 세상에 없어. 거짓말쟁이야"라고 험한 말을 하자 새하도 지지 않고 "내가 본 백과사전에는 분명히 있었어"라고 맞붙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느 새 '진실공방'으로 논쟁이 벌어지면 '증거'를 내놓으라며 새하를 윽박지르자 새하는 억울하다면서 도서관에서 몰래 빌려온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을 꺼내 들었고,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새하가 말한 공룡을 찾으러 백과사전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새하였다. 말다툼에서 지고 싶지 않아 어젯밤에 상상했던 '공룡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런 공룡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이 새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새하기 빌려온 '백과사전'에 달려들어서 뒤적거리기 시작하자 마음속으로 뜨끔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하가 한 거짓말이 금세 들통이 날 것 같아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찾았다"라는 듣고, 어리둥절한 것은 도리어 새하가 되었다. 아니, 놀라운 일이 새하의 눈앞에서 펼쳐졌던 것이다. 새하가 상상했던 공룡이 '백과사전'에 떡하니 적혀 있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백과사전을 보던 아이들이 모두 '백과사전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처럼 주변 환경이 바뀌더니 상상속의 공룡과 새하의 친구들이 즐겁고 재미난 듯이 함께 어울려 한바탕 신나게 놀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동안 즐기던 아이들은 어느덧 잠에서 깨어난 듯 교실안으로 되돌아왔고, 친구들은 자신들이 한 경험이 정말 생생했다면서 놀라워했기 때문이다. 바로 새하가 빌려온 '백과사전'이 부린 마법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사실'이 백과사전에 정확하게 적혀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원래부터' 그런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바로 '상상'이 '상식'이 되는 순간이었다.

새하의 상상은 계속 된다. 'ㄴ'에서는 '세상에 없던 상상의 나라'를 떠올렸고, 'ㄷ'에서는 '상상속에서 꾸며낸 돈'을 쓰면서 경제의 원리를 깨달아갔다. 1권의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2권에서는 또 어떤 상상이 실제 현실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게 될까? 어린이들의 머릿속에서는 하루 종일 '상상'이 펼쳐진다. 비단 상상은 어린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상상을 곧잘 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상상은 어린이들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사실 어른들이 하는 상상은 곧잘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사라져버리기 십상이라서 그런다. 어른들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기도 전에 '실패했던 경험'과 '야박한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애써 상상했던 것을 쓱쓱 지우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철없는 공상'이나 하는 것을 스스로 한심하게 여긴 탓이 가장 크다. 그 결과 어른들은 상상을 통해서 멋진 미래를 꿈꾸기보다 냉혹한 현실과 마주한 끝에 '현실, 그 자체'에 안주해버리는 일이 더없이 편하고 쉽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다. 그래서 애써 상상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힘든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한다. 마치 '높다란 벽'을 만나면 부수어 꿰뚫어버리고 나아가거나, 훌쩍 뛰어넘어 더 높이 날아오르는 '가능성'을 믿고 부단히 노력하기보다 두꺼운 벽을 뚫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높다란 벽을 올라 넘어가는 일이 정말 힘겹다는 '변명'만 늘어놓기 일쑤란 말이다. 이런 어른과 상상하길 멈추지 않는 새하를 비교해보면 답은 뻔하다. 상상하는 힘은 당연히 어린이가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말이다.

나가는 글 : 이처럼 단순한 '상상'과 그것을 실현하는 힘인 '상상력'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개념이다. 상상은 애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상상력'을, 다시 말해 '상상하는 힘'을 실제로 발휘하는 데에는 어른이 어린이를 따라올 수 없다. 그리고 어른들은 어린이의 상상을 낮잡아 보고 삐뚫어진 마음을 가진 것마냥 퉁명스럽게 말하기 일쑤인데, 결코 그래선 안 된다. 비록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상상일지라도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대단히 높이 평가해야 하고, 후한 점수를 주며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무한한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쥘 베른의 소설 '경이의 여행(Voyages extraordinaires)' 시리즈를 보면 19세기에는 없던 잠수함과 우주선 따위가 등장한다. 더구나 쥘 베른은 실제로 여행을 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엄격한 가정교육을 중시하던 고모 슬하에서 컸던 탓에 집밖 외출조차 마음껏 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쥘 베른이 선택한 것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하늘 여행을 '열기구'를 타고서, 바닷속 여행을 '잠수함'을 타고서, 우주 여행을 '우주선'을 타고서, 마치 실제 경험한 것마냥 경이로운 여행기를 써내려갔다. 그 결과 20세기가 되어서 어떻게 되었는가? 19세기 소설가의 '상상'에 불과했던 일이 20세기 이후 '상상력'을 발휘하자, 실제로 '비행기'로 하늘을 날아 여행을 하고, 바닷속으로 '잠수함'이 떠다니며, 우주속으로 '우주선'이 날아오르고 있다. 만약 '상상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일이 일어나기나 했을까?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껏 무한 상상하는 사람들을 '공상가'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먼 미래에 당연한 일을 시간을 거슬러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미래의 '상식'을 현재의 '상상'으로 풀어낸 '마법사'로 존중해야 할 일이다. 물론 이것 저것 값싼 '물질'을 섞어서 값비싼 '금'을 만들려던 '연금술사' 같은 허튼 망상꾼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마법사의 돌'이니 '현자의 돌'과 같은 실현불가능한 마법도구를 얻기 위해 불가능을 꿈꾸는 사람들을 '연금술사'로 부르면서 놀림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허나 현대에 와서는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화학제품들이 과거 '연금술사'들이 수없이 실패했던 경험을 토대로 발전한 '화학'이 없었다면 우리는 현재 비누와 화장품 등처럼 없어서는 안 될 일상용품들을 편리하게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비누나 손소독제 없는 일상에 얼마나 큰 혼란과 공포를 가져다줄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연금술사'처럼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조차 없었으면 큰일이 났을 요즘이다.

이처럼 '상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크나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한시라도 '상상'을 멈춰선 안 된다. 그럼에도 상상할 꺼리를 찾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을 펼쳐 들어라. 그리고 '상상하는 힘'을 깨우치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 힘을 응축해서 세상을 바꿀 '상상력'으로 발휘하는 놀라운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2권에서 계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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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금지! - 2026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라가치상 CrossMedia 스페셜 멘션 수상 함께 그린 책
이경국 지음, 이경국과 아이들 그림 / 로이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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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금지! : 2026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라가치상 CrossMedia 스페셜 멘션 수상> 이경국 / 로이북스 (2025)

[My Review MMCCXLVI / 로이북스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다섯 번째 리뷰는 그림책 작가와 아이들이 함께 그려 국제도서전에서 수상을 한 그림책 <상상 금지!>다. '스페셜 멘션'의 뜻을 몰라 검색을 좀 해봤다. 정식 수상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작품에 대해 '특별 언급'을 한다는 의미에서 수여하는 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특별상'인 셈이다. 거기에 '크로스미디어'라는 것도 함께 검색을 해보니, 다양한 매체를 결합한다는 의미로, 이 그림책에서는 한 명의 작가와 600명의 어린이가 힘을 합쳐서 그려냈다고 한다. 그 아이디어가 참신해서 특별상을 수상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상상 금지!> 관점 포인트 : 아이들의 상상력이 무한하다는 것은 너무 잘 압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의 상상력을 꺼내려 들면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아이들은 '표현력'이 상상하는 것만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켜서 표현을 잘 할 수 있게 교육을 시키고 나면 어떨까? 그때는 '상상력'이 능숙한 표현력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게 된다.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릴 적에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때, 그 상상력이 위축되지 않도록 어른들이 잘 이끌어줘야 한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어떤가요? 아이들이 상상력을 무한하게 발휘할 때 어떤 말과 행동을 했나요? 예의범절에 어긋나니 그런 상상은 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수 있는 상상도 해서는 안 된다. 그건 너무 이기적인 상상이니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인위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아이들을 훈육시키기에도 벅차서 아이들이 상상을 하는데 '제약'을 주곤 한다. 물론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예절이고 도덕이고 규율이니 반드시 '훈육'해야 할 내용이긴 하다. 그런데 아이가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는 묻질 않는다. 그저 '어른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아이들의 기준'은 무시한 채 그저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 이게 바로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되바라진 말과 행동을 해도 냅두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방치'하라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왜 그런 상상을 했느냐고 말이다. 어른들이 보고 듣기에 썩 바람직하지 않은 '상상력'을 아이가 발휘한 것 같다면 차분하고 궁금하다는 말투로 아이에게 되물어 보라. 그러면 아이들은 '나름의 표현력'으로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그걸 충분히 들은 뒤에 혼낼 일이면 혼내도 늦지 않고, 가르칠 일이면 옳게 가르쳐도 절대 늦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표현력'이 함께 발휘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 어릴 적에는 자녀가 조금만 잘못을 해도 윽박을 지르고 큰소리로 꾸중부터 하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세 살'이 될 때까지 그 흔한 "엄마"라는 옹알이도 하지 않아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신의 엄격한 잣대는 아무런 부작용도 없는 것으로 철떡같이 믿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세 살'이 넘자 옹알이 수준을 바로 뛰어넘어 입에서 봇물 터지듯이 '문장'을 쏟아내자 한 시름 덜었다고 말씀하셨단다. 그래도 일곱 살까지는 철딱서니 없이 굴어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는데, 일곱 살에 크게 혼난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때부터 입을 닫고 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에 심한 '말더듬이'가 되었고, 50살이 넘은 지금도 살짝 그런 증세가 남아 있을 정도다.

이런 내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할 적에 되도록 차분한 분위기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려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남자선생님'이라는 제약 때문에 아이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뭐, 나중에는 '종이호랑이 선생'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머리꼭대기에 기어올라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건 나중 문제다. 암튼,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걸 아무런 부담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회와 가정 환경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 <상상 금지!>를 읽고 있으니 흐믓했다. 처음에는 '한 작가의 그림'치고 너무 이상야릇한 그림들이 등장을 해서 의아해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이상야릇한 그림들의 정체가 순수한 아이들이 직접 그린 작품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이들의 '표현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무려 600명의 어린이가 함께 참가해서 이경국 작가와 협업을 해서 펴낸 그림책이었던 것이다.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텐데 대단하다.

나가는 글 : 아이들의 상상에 '어른들의 잣대'를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기준'으로 상상을 하기 때문에 섣불리 '그 기준'에 인위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아이들의 상상력에서 '독창성'은 단번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에덴 동산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세상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고 부끄러움을 배우고 누리던 자유를 누리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난 뒤에 '자기만의 기준'이 세상의 잣대에 비해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우고 난 뒤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만, 그런 '자아정체성'이 완성되기도 전에 어른들의 개입과 강압이 작용하면, 상상력은 '표현력'이란 날개를 달기도 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보여준 아이들의 상상력을 감상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순수하고 연약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의 잣대로 보면 아이들의 그림이 매우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좀더 예쁘게 그렸으면 좋겠고, 좀더 구도와 비율이 맞게 그리면 좋겠고, 알록달록한 강렬한 색감보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감으로 표현했으면 더욱 생동감과 사실감이 살아나서 '실재'와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그림을 그렸을 거라는 '욕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들이 그런 어른들의 욕심을 완벽하게 살려냈다면 이 책 <상상 금지!>가 수상작이 되었을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들고 하얀 도화지에 자신만의 그림을 표현한 노력에 어른들은 먼저 감동해야 한다. 그리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라. 아이가 그린 그림이 '무엇'을 그린 그림이고, '무슨 상상'으로,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아이들의 목소리(표현력)에 귀를 기울여보아야 한다. 처음에는 옹알이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앞서 말한 상상력에 미치지 못한 표현력 부족 때문이다. 아쉬워 할 것은 전혀 없다. 적당한 '표현방법'을 부모님이 가르치면 되기 때문이다. "이건 아빠가 보기에 호랑이 무늬처럼 보이는구나. 그런데 잠자리 날개가 달렸네. 그럼 하늘을 나는 호랑이구나. 맞니? 그럼 이름은 뭘로 지으면 좋을까? 호랑이와 잠자리니까 '호랑잠자리'라고 지어볼까? 아니면 호랑이는 영어로 '타이거', 잠자리는 '드래곤플라이'니까 '타이곤플라이'라고 지어볼까?" 아이의 상상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어른들도 이해할 수 있는 '표현력'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그 나름의 방식과 기준으로 '표현력'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다음에 상상했을 때에는 '아이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상상을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림책은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아주 훌륭한 교재다. 그러니 많이 읽히고 스스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늘 가까이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교육법이다. 엄마아빠가 먼저 읽고 '좋은 그림책'이라 생각되면 자녀에게 '권해줘도' 좋고 말이다. <상상 금지!>는 어떻게 읽혀주는 것이 좋은지도 한 번 고민해보는 것도 독서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이라면 꼭 해봐야 할 도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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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소녀 유채화 - 제3회 한솔수북 선생님 동화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초등 읽기대장
송광용 지음, 무디 그림 / 한솔수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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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소녀 유채화 : 제3회 한솔수북 선생님 동화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송광용 / 한솔수북 (2026)

[My Review MMCCXLII / 한솔수북 13번째 리뷰] 고품격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한 번째 리뷰는 한솔수북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체육소녀 유채화>다. 한솔수북 출판사의 브랜드지수는 '애니메이션'과 '그림책' 부분에서 돋보인다. 아무래도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이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에서 모두 큰 인기를 얻은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한솔수북은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을 넘어 '동화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구름빵>에서 보였던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선정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이 책 <체육소녀 유채화>는 초등학생 주인공의 꿈과 열정을 응원하는 한편,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했을 때 진정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고, 그 결과의 차이도 명백하게 느낄 수 있다는 교훈을 더불어 전달해준다. 그렇다고 동화책이 '교훈 전달'에만 치우친다면 정작 동화책을 읽어야 할 어린이들에게 외면받기 십상일 것이다. 그럼 이 책이 얼마큼 재미있는지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체육소녀 유채화> 관점 포인트 : 우리 학부모들은 '체육'에 소질을 갖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기뻐할까? 운동선수로 대한민국 원탑이 된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안정환, 김연아, 박태환, 이상화, 이대호, 손흥민, 안세영 등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에 비해서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은 뼈를 깎고 살이 애이는 고통스런 훈련만 하다가 몸이 상하고 그에 맞는 보상도 받지 못한채 스러져가는 대한민국 체육계의 현실에 비춰 자신의 소중한 자녀는 '그런 험한 길'을 제발 걷지 않길 바랄 것이다. 그래서 운동을 배운다면 겨우 '키 성장'이나 '몸매관리' 정도로 만족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조리 '국영수 성적'에 올인하는 안정적(?)인 길을 바랄 것이다. 더구나 올림픽 정식 종목도 아닌 '피구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열을 올리는 자녀를 본다면 응원해주기는커녕 그 시간에 다른 학원이나 가라며 뜯어 말릴 것이 틀림 없다.

그런데도 자녀가 운동에 '소질'을 보이고 제대로 된 체육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다고 말을 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렇다면 달갑지는 않지만 자녀가 '좋아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할 것이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니까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유채화'가 그런 캐ㅣ릭터다. 스케이팅 선수였던 아버지를 닮아 어릴 적부터 각종 운동에 소질을 보여줬고, 채화도 가장 잘하는 과목이 '체육'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아주 '잘하기'까지 한다. 어떤 종목의 운동이든 여 보라는 듯이 소질을 뽐냈고, 자신의 장기를 최고로 선보이며 엄청난 활약을 한다. 그런 유채화였기에 채화는 여자 아이들 뿐아니라 남자 아이들과 곧잘 어울리며 각종 체육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마디로 '운동천재'였다.

이런 유채화가 어느날 '배드민턴'에 꽂혀서 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채화가 '잘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내주어도 좋다고 생각해 찬성했지만, 정작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아빠는 채화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래서 채화는 학교 체육시간에 하는 운동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채화는 분명히 '잘 할 수 있을 자신'도 있었는데 아빠가 반대하는 것에 놀랐던 것이다. 도대체 왜 반대하신 걸까?

그러는 한편, 운동 학원에 다니지 못한 채화는 체육시간에 '반 대항 피구경기'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선전'에서 번번히 패배하고 말았다. 경기 때마다 늘 참여 선수가 상대편보다 적었기 때문에 불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상대편보다 참여 선수가 적은 까닭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경기에 늘 빠지는 세 명의 친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얄미운 변명을 늘어놓는 '주동자'가 바로 차현욱이란 학생이었다. 채화는 '숫자만' 채우면 절대로 질리가 없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현욱이에게 '피구 경기 참여'를 부탁했지만, 현욱이와 쌍둥이 친구들은 여전히 아프다는 변명만 늘어놓으며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채화는 더욱더 속상했다. 운동천재인 자신이 아무리 잘 한다고 하더라도 '피구 경기'는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편의 평범한 공격도 피하지 못하고 아웃 당하고 마는 선수들을 더욱 닥달하며 '잘 하자!'고 응원을 보냈고, 때론 어이없는 상황에서 아웃 당하는 선수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신경질도 내곤 했다. 채화네 반은 이렇게 '반 대항 피구 경기'에서 예선 탈락하고 마는 것일까?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동네의 외진 공터를 지나고 있을 때 차현욱과 쌍둥이 친구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피구 경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늘 아프다는 핑계를 대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즐거운 표정이었다. 더구나 경기 실력도 상당했다. 도대체 왜? 이런 실력을 감추고 학교에서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열외'를 자처했을까? 채화는 의문투성이였다. 그런데 차현욱과 즐겁게 피구 경기를 하던 친구들 뒤로 덩치가 더 큰 학생들이 둘러싸더니 서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까닭인 즉슨, 하나 뿐인 공터를 두고 서로 '피구 경기'를 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리고 그 우선권 결정권을 두고 '한 판 승부'를 약속했던 모양이다. 그 승부에서 진 팀이 공터를 떠날 것을 약속하면서 말이다. 현욱이는 분한 표정이었다. 분명히 이 공터에서 먼저 피구를 시작한 쪽은 '현욱이네 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덩치와 힘에서 밀리는 상황이라 어쩌지 못하고 '저쪽이 정한 룰'을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더욱 그런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체육소녀 유채화'가 등장할 적당한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현욱이도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운동실력이 남다른 채화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아주 작기는 하지만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욱이는 채화의 참여를 망설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피구'를 운동실력이 좋고 심지어 피구 경기를 '잘하기'까지 하는 채화의 참여를 망설인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지만 현욱이와 채화는 결국 '한 팀'이 되어 공터의 진정한 주인을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이기로 한다. 그리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피구 경기'를 준비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피구를 그렇게나 좋아했던 현욱이가 학교 예선전에는 왜 참가하지 않았던 걸까? 이런 채화의 의문들까지 모두 파헤칠 수 있을까?

나가는 글 :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하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말이다. 이 말에 담겨 있는 뜻은 제 실력 좋은 것만 믿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하는 '노력형'에게 결국 뒤쳐질 수밖에 없고, 아무리 노력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들 좋아하는 것을 넘어 미친듯이 '즐기는 사람'에게는 끝내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하면 '미쳐야 미친다'는 말로 줄일 수 있고,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것을 넘어 정신줄을 잃은 상태(다시 말해, 본능적으로)에서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경지에 다다라야 비로소 완벽해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를 전문용어로 '천재'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을 때 채화의 아빠가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려는 채화에게 '반대'하던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분명 자신을 닮아 운동에 소질을 보이고 있고, 시키면 분명 '잘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상황에서도 반대를 하셨다. 왜 그랬을까? 당신께서 미리 '경험'을 했고, 운동이란 '소질'과 '재능'만으로 크게 빛을 볼 수 있는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잘 하는 것'을 불의의 사고로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된다면 '천재'라 불리는 이들에게 더 큰 실망과 좌절을 안겨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운동 말고 '다른 것'에도 더 많은 경험을 쌓아보라는 아빠의 현명한 조언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아무리 천재라도 결국은 사람이기 때문에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우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진리는 아무리 훌륭한 교육자라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협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것 반', '네것 반'이 모여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1+1=2가 되는 것으로 '협력'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서 '1+1=무한대'가 되지 않고서야 '협력의 필요성'을 깨닫지도 못하고, '협력의 중요성'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1+1=2'가 될 것이라면 그냥 각자 잘 하면 되지 굳이 '한 팀'이 되려고 불편을 감수하고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1+1=3' 정도만 되어도 남는 장사가 아니겠느냐 싶지만, 그럴 바에 각자 조금 더 분발해서 '1.5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훨씬 더 쉽지, 굳이 남에게 비위를 맞춰가며 '0.5의 보너스'를 받으려 애쓸 까닭이 있겠냔 말이다. 그러니 '협력'이란 무한대의 성과를 낼 수 없다면 애초에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협력을 어떻게 하면 잘 이끌 수 있을까? 사람마다 경우가 다를 수 있겠지만, 먼저 '잘 하는 수준'을 넘어 '즐기는 수준'이 노멀(평범)이 되어야 한다. 거기에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협력할 마음이 된다. 여기에 '자신의 이익'을 철저히 내려놓아야 한다. 이기적인 마음을 비우고 이타적인 마음을 채우지 않으면 '협력'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상대를 나 자신보다 먼저 위하는 마음이 노멀이 되어야 비로소 '협력의 성과'가 무한대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피구 경기'로 돌아가보자. 여럿이 함께 호흡을 맞춰야 '작전'도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무작정 공을 던지면서 '개인적인 기량'으로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하는 것으로 승패의 결과를 맡기면 승률이 높아질 턱이 없다. 그건 그냥 '개인 경기'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 경기'에서는 철저히 자신을 내려 놓고 '팀 승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그에 맞는 '작전'을 짤 수 있고, 그 작전의 효과도 더욱더 올라갈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현욱이와 채화가 함께 참여한 피구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진면목이다.

그리고 이런 완벽히 협력이 이루어지는 경기를 치루고 난 뒤에는 '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겼다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고, 반대로 졌다고 해도 '멋진 한 판'을 치룰 수 있었다는 즐거움에 '다음 경기'를 더 잘하겠다는 다짐으로 힘든 훈련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운동경기에서만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모든 '인간관계'에서 협력을 잘 이끌어내는 리더의 역할이 빛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잘 하는 것'과 '즐기는 것'의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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