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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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소설이 다 그렇지만, 시작은 늘 뜬금없다.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쓸 수 없는 장르이기도 하지만, '과학'이라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읽다보면 대강의 얼개가 대충 감이 잡히기 마련이다. 물론 읽는 분들의 '과학지식'에 따라 느낌은 달라지기 마련이겠지만, 나름 공학도인 나에게는 식상한 범주임에 틀림없다. 그런 까닭에 나는 'SF소설'을 윤리도덕적인 관점에서 읽곤 한다. 첨단과학이 등장하게 되면 어김없이 '과학자의 윤리의식'과 '윤리도덕적으로 올바른 과학인가'에 대한 물음이 뒤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인간을 복제해도 괜찮은가? 라는 물음에 답을 하기 힘든 까닭은 '의학기술'의 발달로 불치병을 고치고, 난치병을 줄이며,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게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새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는 장점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러한 첨단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나타나게 될 새로운 문젯거리는 정말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골치가 아파오기 때문이다. 또한, 그 문젯거리라는 것이 '생명윤리문제'와 '종교문제' 등 첨예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 십상이고, 나와 똑같은 복제인간이 '동시간대'에 둘 이상 존재할 경우, '같은 사람'으로 보아야 할지, '다른 사람'으로 인식해야 할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어려운 문제를 속속 끄집어내기에 결코 쉽게 다룰 문제는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SF소설'에서는 이런 골치아픈 문제를 잠시 뒤로 미루고 재미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언제일 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어떤 문젯거리를 언급하고 있을까? 바로 '불멸의 삶'을 사는 익스펜더블(소모용 작업자)을 등장시켰다. 가까운 미래에 핵전쟁,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갖춘 '반물질 폭탄(버블)'으로 버블전쟁을 일으킨 인류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서 거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테라포밍(미개척 행성을 지구환경처럼 바꾸는 일)'을 통해서 외계행성에서도 인류가 거주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선발대를 모아 개척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아시다시피 '거친 환경'에서 개척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고, 그런 위험한 작업인데도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까닭에 먼 미래에서도 당연히 '인공지능 로봇'보다는 '우주복을 입은 사람'을 작업자로 삼아 일을 부려먹었다는 설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위험한 일이다보니 종종 '작업자의 목숨'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렇다고 외계행성을 테라포밍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작업자를 탑승시킬 우주선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왜냐면 우주선에 실어나를 '무게'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를 '적정수준'에서 감당하기 위해선 '복제인간 기술'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죽어도' 다시 살려내서 일을 시킬 수 있는 '소모용 작업자'를 우주선에 탑승시킨 것이다. 애초에 '소모용 작업자', 다시 말해 '익스펜더블'로 선발된 작업자의 '기억'을 백업시켜놓고,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을 경우, '다량의 단백질과 칼슘, 그밖의 필수적인 소량의 원소'를 배양액에 넣고, 복제인간을 탄생시킨 다음에 백업한 기억을 다시 주입하면, 죽었던 작업자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침대에서 일어나게 된다. 물론, 다시 깨어난 순간에는 지독한 숙취와 며칠은 굶은 것 같은 배고픔을 느끼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잠을 자다 깬 것 같은 몽롱한 느낌이 전부인 셈이다.

 

  하지만 분명 예전과 달라졌다. 처음으로 '익스펜더블'로 선발되었을 때는 '미키1'이라고 불렸지만, 죽음을 거듭하면 할수록 '숫자'는 점점 커지게 되고, 이 책의 이야기가 시작하는 첫머리에서는 '미키7'이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벌써 여섯 번의 죽음을 경험했고, 이제 일곱 번째 죽을 차례인 것이다. 하지만 '미키7'을 구해줘야 마땅할 친구조차 미키를 그냥 죽도록 내비두고 만다. 구출작업을 하다가 목숨이 '하나' 뿐인 사람이 덩달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미키를 죽게 내버려두고 귀환을 해버린 것이다. 왜냐면 미키는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키8'으로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야기는 그대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미키7'은 용케 죽지 않고 살아서 기지로 귀환하게 된다. 그리고 되돌아온 기지에서 이제 갓 태어난(!) '미키8'과 '미키7'은 조우하게 된다. 둘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똑같지'는 않았다. 갓 깨어난 미키8은 처음 '복제'했던 그 모습 그대로 건강한 모습이지만, 구사일생으로 되돌아온 미키7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던 것이다. 거기다 미키7이 저장하지 않았던 '지난 6주간의 기억'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시켜주었다. 과연,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빠밤~ 이 정도만 소개하여도 이 책의 흥미로움은 보장되었을 것이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으로 물망에 올렸다는 소문은 덤일 뿐이고 말이다.

 

  그보다는 이 책의 최고 흥밋거리는 다름 아닌 '철학의 문제'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것이 먼 옛날에 있었는데, 이 배가 오랜 여정을 거치면서 여기저기 고장나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이렇게 고장이 날 때마다 '부품'을 하나씩 하나씩 새것처럼 고쳐나가다가, 이 배의 부품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다면, 이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 말이다. 생각을 달리 해서, 테세우스의 배가 고장 났을 때, 하나씩 부품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배를 만들었다면, 처음 배와 나중 배는 '같은 배'인가? 이렇게 물었다면 '두 배'는 서로 다른 배라고 대답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고장난 '부품 하나'만 교체했을 경우에는 '처음 배'와 '나중 배'를 '같은 배'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하나씩 교체를 하더라도 '같은 배'라고 얘기할 것이 분명한데, 교체를 하나보니 '예전 부품'은 하나도 없고 몽땅 '교체된 부품'으로 바꿔졌다면 어떻겠느냔 말이다. 여전히 '같은 배'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배'를 '사람'으로 바꾸어보자. 손가락이 부러져서 '새 손가락'으로 교체했다고 한들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도 여전히 '본인'이라고 말할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여러 번 사고를 당하다보니 몸의 70%를 '새 부품'으로 교체하게 되고, 80%, 90%, 99%를 '새 부품'으로 바꿨다고 가정해보자. 여전히 '본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본인의 자아의식은 아무리 새 부품으로 교체했다고 하더라도 '나'라고 여기지, '또 다른 나'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과거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고, 하나씩 새롭게 교체된 몸이라는 것도 알지만, 여전히 '내몸'이라고 인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엄청난 사고를 당한 뒤에 단 한 번에 99% '새 부품'으로 완전 교체를 할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때에도 '본인'이라고 인식하게 될까? 사고 당사자는 굉장히 수용하기 힘들겠지만 '과거의 기억'을 모두 온전히 갖고 있다면 '자신'이라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다른 무엇이 다 바뀌더라도 '예전의 기억'만 떠올릴 수 있다면, '자기자신'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불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인간의 기억을 온전히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인간의 몸'이 무엇으로 대체된다고 한들 '죽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불멸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고,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쌩뚱맞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과학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럼 묻겠다. 당신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연적인 죽음으로 '소멸'될 수도 있겠지만, 생전의 기억을 '저장'하여 불멸의 삶을 살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 물음에는 쉽게 답할 수 있겠는가?

 

  '내 선택'을 말하자면, 조건이 필요한 불멸을 선택할 것이다. 현재의 '생체조직'과 똑같은 '감각'을 유지하면서, 살아생전의 '겉모습'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면 '불멸'을 선택하겠다고 말이다. 나에게 이 두가지는 '필수조건'이다. '나의 감각과 겉모습'을 유지하지 않은 나는 이전과 다른 '또 다른 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나에겐 '똑같은 삶'이 아니니 자연적인 죽음을 선택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지금보다 훨씬 젊고 잘생기게 태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런 삶은 '예전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린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것 또한 '내'가 아니기에 만족스럽지 않다.

 

  나에게 'SF소설'은 이런 식의 철학적 문제를 접근하게 해주고,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던져주기에 늘 만족스럽다. 다음에는 어떤 소설을 만나고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 여러분은 즐겁지 않으신가요?

 

 

  참,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이야기라 고민고민했는데, 제발 '책표지'에서 반짝이 좀 묻어나지 않게 제작하면 안 될까요? 미래를 다룬 책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SF장르의 책'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재질로 제작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을 손에 들고 읽을 때면 어김없이 손에 반짝이가 묻어나고, 책의 겉표지는 닳아서 번쩍임이 없게 변하고 맙니다. 이럴 거면 애초에 '무광'으로 만들면 되지 왜 빛바랜 책으로 만들어버리냔 말입니다. 더구나 손에 뭐를 묻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책은 굉장히 기피하게 됩니다. 소장용으로 책을 구매했는데 빛바래서 낡은 책이 되고마는 이런 '반짝이 겉표지', 제발 만들지 말아주세요.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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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7-21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악! 리뷰만 읽었는데 왜 이리 재밌게 잘쓰신 거예욧! 전 문과라 이런 이과적 관점의 글은 절대 못쓰겠지만 철학과 맞닿은 문제라는것이 생길 수 있다는 것엔 공감합니다.
근데 전 저의 기억을 가진, 생체조직과 감각, 같은 겉모습이라해도... 홀로 불멸을 살고 싶지 않을 거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異之我_또다른나 2023-07-21 23:40   좋아요 1 | URL
후훗~ 재밌게 읽으셨다니 참으로 고맙고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문과를 선택하셨군요. 저는 이과의 삶을 살다보니, 제 적성이 실은 ‘문과‘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답니다.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해서 ‘책‘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 하필 돌고 돌아 ‘이과와 문과‘를 두루 접하는 삶을 살게 되었답니다. 현재는 논술쌤이에요ㅋㅋ

저도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싶을 뿐입니다. 아직까지 불멸을 실현시킬 방법은 없답니다. 과학자들과 공학자들, 그리고 생명유전학자들이 연구하고 있긴 하지만 훗날에나 가능할 지도 모르는 방법일 뿐이죠. 현재까진 ‘냉동인간‘이 진행중이긴 하지만 되살아날 수나 있을런지 미지수랍니다. 불멸을 ‘과학적 실험‘으로 성공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난관이 너무 많아요ㅎㅎ

하지만 상상은 늘 즐겁죠. 그것이 ‘진리의 빛‘인 철학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더욱 뜻깊을테고요. 저는 이런 철학적 공상을 즐긴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