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벌거벗은 세계사 4 -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역사의 만남 ㅣ 벌거벗은 세계사 4
최호정 그림, 이현희 글, 김헌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3년 3월
평점 :
<그리스로마 신화>는 방대한 내용만큼이나 수많은 신과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 사이에 얽혀있는 이야기도 아주 복잡하게 엮여있기 때문에 단숨에 읽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만화형식'으로도 재밌게 나와있는만큼 더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어렵게 읽을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읽어야 할 분량이 녹록치 않기 때문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대강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요약과 축약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세 가지 열쇠말(키워드)로 소개하자면, [티타노마키아(티탄족과 벌인 전쟁)], [기간토마키아(기간테스와 벌인 전쟁)], 그리고 [트로이아 전쟁(그리스연합 vs 트로이아연맹)]이다.
'티타노마키마'는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이었다. 태초의 신 가운데 하나인 '가이아(대지)'가 낳은 자식 중에 '우라노스(하늘)'를 남편으로 삼아 또 다른 신들을 낳았는데, 그 신들이 바로 '티탄족(타이탄) 12신'이다. 그리고 또 신들을 낳았는데 이번엔 생김새가 너무나도 기괴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우라노스가 강제로 가이아의 품속(땅속, 타르타노스)으로 감금하고 말았다. 가이아는 그래도 우라노스, 당신의 자식이니 인정해달라고 호소하지만, 그 못생긴 키클롭스(외눈박이) 삼형제, 헤카톤게이르(얼굴 반백 개, 손 백 개인) 삼형제 등을 절대 꺼내지 못하게 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가이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용기 있는 '티탄'에게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아마다스'라는 금속으로 만든 낫을 선사한다. 그 낫을 든 이가 바로 '크로노스(시간)'다. 크로노스는 아버지가 잠든 틈을 타 거시기를 거세해버리고 그것을 바다로 던져 버리고 만다. 그 거시기가 바다로 날아가면서 뚝뚝 흘린 피가 어머니(대지의 신, 가이아)에게 튀고 난 뒤에 생겨난 거대한 신이 바로 '기간테스(자이언트의 어원)'이고, 바다로 풍덩 빠져서 생겨난 신이 '아프로디테(미의 여신)'다.
암튼,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새로운 신들의 왕이 된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와 '똑같은 운명'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자기가 가진 권력을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빼앗길 거라는 운명 말이다. 크로노스가 어쩌다 이런 운명을 맞게 되었냐하면, 바로 가이아가 원하는 요구를 우라노스와 마찬가지로 크로노스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타르타노스'에 갇힌 또 다른 자식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라노스와 마찬가지로 크로노스도 그 흉칙하고 힘만 쎈 괴물들이 자신이 다스리는 세상에 나다니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로노스도 그의 자식들에게 권좌를 빼앗길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자리'를 거저 내줄 멍청이는 없었기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그게 바로 '티타노마키아'다. 바로 '티탄족 12신'과 훗날 '올림포스 신'이 되는 제우스와 남매 신들, 그밖에 티탄족을 배신한 메티스, 프로메테우스, 니케 등등의 티탄족과 타르타노스에 감금되었던 힘쎈돌이 삼형제들이 합세하면서 끝내 제우스 쪽이 승리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렇게 '티타노마키아'에서 승리를 거둔 신들은 세상을 마음껏 다스리게 되었고, 그중 제우스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신 중의 최고신'에 등극하면서 올림포스산을 자신의 거처로 삼고 나머지 신들도 함께 올라 '권력'을 분배하게 되니, 이가 바로 '올림포스 12신'이다. 제우스는 왜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와는 달리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게 되었을까? 그건 바로 제우스도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 권좌를 빼앗길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고, 그의 아버지도 그랬으니, 제우스도 끝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그 운명을 조금이나마 늦출 방법을 모색하다 '권력분배'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은 '운명'만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던 '기간테스'가 태어나자 무섭게 무럭무럭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라다 기간테스의 키가 대지에서부터 올림포스 산꼭대기까지 자라자, 드디어 때가 되었고 기간테스는 올림포스 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제우스도 신탁을 듣게 된다. 기간테스가 공격해오면 '불멸의 존재'들은 결코 이길 수 없지만 '필멸의 도움'을 얻으면 이길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열심히 '필멸의 존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필멸의 존재란 바로 '인간'을 말하고, 거대한 기간테스와 맞서기 위해선 평범한 인간은 싸울 수 없을 테니, '인간 영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여신은 말할 것도 없이, 요정들과 여자들과 끊임없이 불륜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녀들(?)이 낳은 자식들이 모두 한가닥 하는 꽃미남, 꽃미녀로 자라나는데, 그 가운데 으뜸은 다름 아닌 '헤라클레스(헤라의 영광)'이다. 비록 헤라가 낳은 아들이 아닌데도 그녀의 영광을 빛낸다고 이름지어진 까닭은 '필멸의 존재(영웅)'을 '불사의 존재(헤라의 젖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함)'로 만들어 기간토마키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여자가 낳은 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인 남편이 이뻐 보일리 없다. 그래서 헤라는 헤라클레스에게 '열두 가지 고난'을 겪게 한다. 헤라클레스는 이 고난들을 모두 성공하고 이름을 더욱 빛내고 만다.
어쨌든, '기간토마키아'는 벌어졌고 예언대로 제우스를 비롯한 '불멸의 존재들'은 기간테스들에게 초주검이 되고 만다. 올림포스 신들이 모두 죽게 될 즈음 헤라클레스가 등장하며 상황은 역전이 된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기간테스와 맞서 싸울 헤라클레스에게 자신들의 무기와 갑옷을 빌려주며 기간테스와 당당히 맞설 수 있게 해주는데, 헤라클레스도 기대에 부족함 없이 기간테스를 번쩍 들어올려 허공으로 내던지고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을 명중시켜 기간테스를 말라죽게 만들었다. 이로써 '기간토마키아'도 제우스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정리하면, '티타노마키아'는 신들끼리 벌인 전쟁이었고 '기간토마키아'는 신과 인간이 힘을 모아서 승리를 거둔 전쟁이었다. 이는 '신화'가 허무맹랑한 상상의 산물이 아닌 인류의 지혜가 담긴 보고라는 증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속 이야기(티타노마키아)'가 '역사속 이야기(기간토마키아)'로 끌려들어오고 있는 것을 보는 셈이다. 이제 신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신과 인간이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신화는 자연스럽게 역사의 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이젠 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공인 전쟁인 '트로이아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스연합과 트로이아연맹이 싸움을 벌이는데, 양쪽의 편을 드는 신들도 참전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연의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전쟁의 주연은 '양쪽의 인간 영웅들'이 처절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렇게 '신화'는 허무맹랑한 상상의 결과가 아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역사'이며,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트로이 유적'이 발굴되면서 역사적 사실로 증명이 되기도 하였다. 그저 신화로만 알려졌던 내용을 '진실'로 믿은 결과였다. 이는 우리의 '단군신화'도 역사기록만이 아니라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과 유적으로 어딘가 묻혀 있을 거란 믿음이 그저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닐 거라는 희망을 선사하는 바다. 비록 현재는 우리가 발굴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곳이 아닌 북한과 중국에 '고조선의 유적과 유물'이 잠자고 있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 어린이들이 <그리스로마 신화>를 공부해야 하는 까닭은 '서양문화의 원류'이고 '서양문화'를 이해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지만, 신화가 곧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크기가 훨씬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세상을 크게 바라볼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상상력'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까지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로 신화를 이용한 이유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과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한 방법이다. 왜냐면 아직도 '과학'이 해결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조차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과학원리'를 깨닫기 위해서 상상력을 마구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한다. 오늘의 어린이들이 펼칠 상상력은 고대인들이 펼쳐낸 상상력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