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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ㅣ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4
베르길리우스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17년 9월
평점 :
<아이네이스>의 줄거리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뒤를 이어 트로이의 후예인 '아이네이아스'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3부작'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그리스인인 호메로스에 의해 기원전 8세기에 쓰인 작품이며, <아이네이스>는 로마인인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기원전 1세기에 쓰인 작품으로 엄연히 말하면 전혀 다른 작품이다. 그런데도 세 작품은 교묘하게 줄거리가 이어진다. 그 까닭은 바로 <아이네이스>를 쓴 목적이 '로마의 건국 이야기'에 신묘한 힘을 덧붙이기 위한 '밑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로마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베르길리우스에게 '건국신화'를 한 편 쓰라고 했고, 베르길리우스는 이를 위해 마지막 필력을 다하다 병에 걸려 '미완성'인채로 전해졌다. 일설에 따르면 베르길리우스는 죽기 직전에 '미완의 원고'를 불태워 달라고 유언을 남겼으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불에 태우지 말고 발표하라 명령을 내린 덕분(?)에 오늘날까지 '전 12권' 모두가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베르길리우스는 평생 호메로스를 흠모했기에 그의 작품을 본따서 <아이네이스>를 쓰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며, 이 <아이네이스>가 로마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에 그때까지도 덜 알려졌던 '호메로스'도 덩달아서 널리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베르길리우스가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르네상스의 선구자였던 알리기에리 단테의 <신곡>에서 서술자 단테를 지옥으로 데리고 안내를 맡은 이가 베르길리우스였다는 사실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단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막바지에 거의 모든 영웅들이 죽어가는 전투에서 가족과 함께 떠나라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충고를 받고 온가족과 그를 따르는 '트로이인 생존자들'과 함께 정처없는 항해를 떠난다. 이렇게 아이네이아스가 떠나는 긴 항해는 오디세우스가 귀향길에 올랐던 이야기 <오디세이아>와 정말 많이 닮았고, 아이네이아스가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라틴인들의 땅(이탈리아)'에 도착하고부터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던 <일리아스>와 꼭 닮았다. 하지만 완전 판박이로 베낀 것은 절대 아니다. 왜냐면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리아스>의 주제는 '분노와 복수'다. 그런데 <아이네이스>의 주제는 '로마 건국'이다. <오디세이아>의 주제는 '생존과 귀향'이다. 물론 <아이네이스>의 주제도 '생존'이긴 하지만, 그 생존 목적이 바로 '로마 건국'에 있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애초에 베르길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령에 의해 <아이네이스>를 썼기 때문에 '로마 건국'을 주제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초의 황제가 등장할 자신의 조국이 고작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들'에서 유래되었다는 볼품 없는 건국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그보다 훨씬 더 신비하고, 신묘한 이야기를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아름다운 여신의 아들'이 로마 건국의 시조라는 썰을 풀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란 다름 아닌 '아프로디테(로마명 '베누스')'다. 또한 베르길리우스는 아프로디테의 탄생을 우라노스의 '거시기'가 아닌 '제우스의 딸'로 못을 박았다. 이로 인해 로마 건국의 시조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이지만, 그 로물루스의 조상이 트로이인의 후예인 '아이네이아스'이며, 아이네이아스의 엄마는 여신 '아프로디테'이고, 그 여신의 아버지가 바로 '제우스'라는 점을 밝힌 셈이다. 다시 말해, 로마제국은 '제우스의 후손'이 건국을 했다는 이야기가 바로 <아이네이스>의 골자 되겠다. 어쩌면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 현지 답사까지 하면서 '제우스의 후손'인 점을 더 명확하게 꾸미려 했으나, 여행중에 걸린 병이 악화되는 바람이 그 뜻을 실현시키지 못했고, 그렇게 '미완'으로 남긴 <아이네이스>를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미완의 유작으로도 로마제국이 여신 아프로디테의 후예가 세웠다는 정설(?)을 만들어냈으니 그 목적은 '완성'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아이네이스>는 '여신들의 전쟁'이라 불려야 마땅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온갖 모험과 전쟁은 '인간의 몫'이었지만,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목숨을 잃은 것은 바로 '여신들의 끝없는 다툼'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여신이 바로 '헤라'와 '아프로디테'였다. 그리고 두 여신이 다투게 된 까닭은 바로 '파리스의 심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말이다. 불화의 여신이 결혼식장에 던져두고 간 '황금사과'의 주인을 가리기 위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세 명의 여신 앞에서 누구에게 황금사과를 줄 것인지 고민에 빠져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헤라를 뽑으면 '최고의 왕'이 될 수 있었고, 아테나를 뽑으면 '최고의 영웅'이 될 수 있었으며, 아프로디테를 뽑으면 '최고의 미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리스는 '최고의 미녀'를 선택했다. 이로 인해 헤라와 아테나는 아프로디테와 '미모대결'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되었고, 이를 빌미로 '아프로디테'가 하는 일마다 딴죽을 걸기 일쑤였다. 그렇게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그 전쟁의 패배로 '트로이'는 멸망하게 되었고, 그후 '트로이인들'은 거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트로이인에 대한 아프로디테의 사랑은 끝이 없어서 '그의 아들'인 아이네이아스는 <일리아스>의 격렬한 전투속에서도 여신의 도움으로 번번히 살아남게 되었고, '트로이 목마'로 인해 끝내 멸망에 이른 트로이 성에서도 무사히 탈출에 성공해 '로마건국'이라는 운명을 실현시키기 위해 갖은 모험을 마다하지 않게 된다.
허나 아이네이아스의 고난은 곧 '여신들의 전쟁'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헤라는 아이네이아스를 죽이고 싶었고, 죽이지 못한다면 생고생을 시켜야 속이 풀렸으며, 위기나 고난에서 벗어나는 꼴을 보기만해도 화가 치밀어서 '또 다른 저주'를 퍼부으며 아이네이아스와 그 일행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맞보게 한다. 허나 그럴 때마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고, 심지어 제우스에게도 찾아가서 자기 아들 살려달라고 확답을 받아냈고, 남편인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가 최강의 무구를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심지어 포세이돈과 하데스에게까지 달려가 '아들의 안위'를 봐달라고 통사정을 할 정도였다. 어렵사리 이탈리아에 도착하고서 주변 국가들과 전쟁이 벌어질 때에도 어김없이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안배하며 '로마건국'이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쉼없는 사랑을 퍼부어 준다. 물론, 전쟁의 막바지에는 제우스의 명령으로 모든 신들의 영향력을 배제한 채, 오직 아이네이아스만의 힘으로 적들을 제거하고 '건국'을 완성하지만, 그 전에 이미 '아프로디테'가 거의 모든 것을 다 안배한 뒤에 벌어진 일이었을 뿐일 정도였다. 그만큼 여신들의 영향력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여신들의 전쟁'을 슬며시 벗겨내고 읽으면 '한 편의 역사서'를 읽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아이네이스>는 로마 건국의 과정이 세세하게 나타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네이스>는 당시 로마인들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신들에 의해 운명적으로 '건국'될 수밖에 없었던 조국 로마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아이네이스>를 로마 건국의 '당위성'이란 주제로 읽어야만 하는가? 독자는 나는 '로마인'도 아닌데 말이다. 더구나 '만들어진 역사'라는 것을 뻔히 아는 정황에서 '승자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비법(?)을 배우기 위해서 읽어야만 할까? 이래저래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 책 <아이네이스>를 오늘날의 독자들은 어떻게 읽어야만 할까? 애초에 '이야기'는 만들어질 뿐이다. 바로 '목적'에 의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목적이 '순수'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건국의 시조를 '트로이'에서 찾았다. 로마는 '신화'조차 그리스에서 빌려왔다. 그러니 '시조'를 빌려오는 것도 그리 어색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신들이 사랑했던 '그리스'와 '트로이'에서 각각 '신화'와 '신조'를 빌려와서 '균형(?)'을 맞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들의 조상을 '트로이'에서 왔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트로이인'이라 부르지 않는 걸까? 그것이 '로마인'이 갖춘 포용력(?), 관대함(?)의 표상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로마인들은 스스로의 장점을 부각하지 않고, 배울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자신'의 것으로 포용하는 관대함으로 일관하였더랬다. 그리고 그런 장점을 '로마'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나타냈다. 그렇게 로마인들은 순수한 목적으로 '배타성'을 배제하고 배울 것을 확실히 배우며, 그 모든 것을 '수용하는 미덕'을 갖춰나갔다. 그런 로마인들의 장점이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이를 잘 알았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 책을 널리 반포하라 명령했던 것이고 말이다. 물론, 로마는 '황제정'으로 바뀐 뒤에 서서히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모든 것을 포용할 줄 알았던 '순수함'을 잃고, 스스로 최고라는 생각에 너무 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들더니 끝내 '배타성'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타성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 때문이다. 그렇게 로마는 <아이네이스>로 정점을 찍고 서서히 쇠망해갔다. 그 정점을 이룬 '책'을 읽으며 무슨 교훈을 얻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