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15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15
한종천 그림, 최윤정 글, 손영운 기획,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 채우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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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My Review MDCCLXIII / 채우리 17번째 리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큼 읽기 힘든 책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읽기 힘든 책이라고해서 '완독'했을 때의 기쁨이 생각만큼 크지 않은 책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유명'하게 만드는데 한몫 단단히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른바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는 [신심리주의 소설]들이 대개 그런 유의 책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았다면, 이런 '재미없는 책들을 피해서 골라 읽는 재능'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유의 책들이 [서울대 선정 필독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것일까? 얼마전에는 <민음사>에서 13권의 책으로 '분권'해서 출간되기도 했다. 보통 6~7권의 책으로 출간되곤 하는데, 아예 '한 권의 분량'마저 둘로 쪼개서 '읽는 부담'은 낮추고, '구매 부담'은 대폭 올리는 마케팅 전략을 썼으니 참으로 영특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이렇게나 재미없는 책인데도 막상 '완독'하고 나면 뭔가 '긴 여운'이 남는 책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주제의식'은 스노비즘이다. '스노비즘'은 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 즉 '속물주의'를 말하는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출신'이나 '학벌'로 평가하고, 또 그런 평가를 공개적으로 떠벌리는 것을 즐기는 일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허세' 가득한 사람들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살롱 세계'속에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알게 모르게 이러한 '스노비즘'에 물들어 있고, 작가인 프루스트는 이러한 사람들을 은근 슬쩍 비판을 하고 있기에, 소설 속 주인공인 '마르셀'의 고뇌가 이러한 '스노비즘'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면서도 정작 마르셀 자신도 '게르망트 집안 사람(프랑스 귀족의 거물, 황족과 혈연관계에 있기 때문에)'과 어울리길 바라는 '속물적인 근성'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제는 '동성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당수가 바로 '동성애'에 빠져 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고백을 하기에도 망설이고, 고백을 받은 뒤에도 갈등하는 까닭이 바로 '밝히기 힘든(커밍아웃) 까닭' 때문에 오랜 번민에 빠져들곤 한다. 사실 '동성애'를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비난'을 하고픈 마음은 없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동성애는 '비정상'이고, 이성애는 '정상'이라는 편견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일방적인 짝사랑을 하면서 '원치 않는 상대'를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소유'하려든다면, 그건 '나쁜짓'을 넘어 '범죄'다. 이 소설에서 마르셀이 침대에 누워 있는 알베르틴에게 사랑한다면서 덮치는(?) 장면이 바로 그렇다. 아무리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으로 저지른 일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거부하는데도 그래선 안 된다. 이를 테면, 담배를 피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인지라 누가 피우든 말든 가타부타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상대가 '담배 연기'나 '담배 냄새'가 싫다는데도 담배를 강요하거나 담배연기를 내뿜고 담배냄새를 풀풀 풍기고 다닌다면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성애자'인 마르셀이 '동성애자'인 알베르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하자고 강압하는 것은 19세기 시대에는 '사랑의 표현'일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철컹철컹 해야 한다.

  암튼, 이런 '스노비즘'과 '동성애 코드'를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진정한 주제인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의 첫 부분에 마르셀의 꿈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마르셀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되는데, 장장 7권의 분량이 모두 '마르셀의 회상'이라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때문에 읽다가 지루해서 책을 집어던지는 독자들도 꽤나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꾹 참고 읽어나가면 끄트머리에 가서 '마르셀'이 소설을 선뜻 집필하지 못하는 까닭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바로 '부담감' 때문이었다. 마치 '완벽주의자'처럼 완성된 문장으로 능숙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필력을 안타까워만 한 까닭에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콩쿠르 형제'의 소설을 접하고서, 필요 이상으로 '부담감'을 느낄 까닭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드디어 자신이 바라던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미 자신은 '나이' 들어버렸고, '천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었으며, 마르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둘러 쓰여지는 '손 안의 펜'을 빠르게 놀리며 불안해 한다. 그동안 헛되이 써서 '잃어버린 시간'들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말이다.

  우리에게 '잃어버린 시간'은 무얼 뜻할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시기'라는 격언도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며 살아간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허송세월하기도 하며, 부지런히 재능을 갈고 닦아야 할 '학창시절'에도 열심히 공부하기는커녕 '게임과 릴스'로 시간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고서는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모자란 시간'을 탓하며 허겁지겁 대충 벼락치기로 인생의 중대사들을 대충 떼우고 말았으면서도 '좋은 결과'만을 바라는 일을 늘 되풀이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 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하릴없이 '심각'하게 생각하며 늘 긴장된 상태로 '스트레스'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렇게 자신을 혹사시키지 못해 늘 죄인처럼 살아간단 말이다. 그렇게나 큰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가 말이다.

  '좋음'과 '나쁨'은 둘 이상을 견주어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빗대어 말하자면, '악당'이 있어야 '정의의 영웅'이 돋보이는 법이다. 만약 '악당'만 있는 세상에선 그들의 행동이 '나쁜짓'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크고 작게 '나쁜짓'을 하며 살아가는 세상인데 그게 왜 '나쁜짓'이며, '나쁜짓'인줄 어떻게 알겠느냔 말이다.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악당'이 하는 짓이 나빠보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서도 '시간낭비' 좀 해봐야 '시간'이 소중하단 걸 깨닫게 된다. '시간낭비'를 해본 적도 없고, '시간'을 허투루 써본 적도 없으면서 어찌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워커홀릭(일중독자)'은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시간을 알뜰하게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무엇'이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때문에 지쳐 쓰러지기 전까지 아무 생각도 없이 일만 할 따름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허송세월 좀 해본 사람만이 '시간'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마르셀이 뒤늦게나마 '집필'에 열정을 쏟으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장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가인 프루스트는 이 책을 써서 '진정한 자아'를 찾길 바랐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찾아야 할 것은 꼭 '그것'이 아니어도 좋다. 마르셀은 '마들렌 한 조각'에서 유년의 추억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통해 '집필(마르셀의 꿈)의 원동력'을 찾아냈지만, 모든 독자들이 '집필'이 최종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회상'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족할 것이다. 아니면 '영감'을 떠올리던지 말이다. 작가 프루스트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외부 세계'가 아닌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내면 세계'에 있다고 귀띔해준다. 우리의 미래가 저 먼 '바깥'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가까운 '속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반드시 무엇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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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원전 완역판 8 : 도남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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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I / 코너스톤 9번째 리뷰] 유비는 형주를 얻고 촉나라를 취하기 위해 '입촉'을 서둘렀다. 마침맞게 장송이 찾아와 손수 만든 '촉 지역의 지도'를 유비에게 건내주었고, 방통까지 합류하게 된 유비일행은 드디어 '천하삼분지계'를 완성하러 유장이 다스리는 촉으로 진군하였다. 이때 유비의 나이가 쉰이 넘었다. 조조는 그보다 나이가 더 많았으나 일찌감치 천자를 끼고 승상의 지위를 누리며 성공을 누렸고, 손권은 풍요로운 강동의 이로움을 바탕으로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이 일군 나라를 비교적 어린 나이에 다스리며 군주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허나 유비는 나이 오십을 넘기고서 겨우 자신의 영지를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로마의 종신독재관(사실상 황제) 자리에 오른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도 마흔이 되어서야 관직에 오를 수 있었고, 쉰이 넘어서야 '일인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으니, 유비가 못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비가 좀더 야심차게 욕심을 부렸다면 유표가 죽고 난 뒤에 '형주 일대'를 물려받아 조조의 남하를 양양성이라는 굳건한 성벽에 기대어 '적벽대전'을 치루고 난 뒤에 보다 안정적으로 촉 지역을 취하면서 '천하삼분지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엎어치나 메치나 유비가 '형주'를 취하고, '촉'을 꿀꺽한 것은 매한가지였을 테지만, 적벽대전 당시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오나라에 '형주'를 빌리는 형식을 취한 것이 끝내 유관장 삼형제가 줄줄이 죽임을 당하는 불우한 일을 치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역사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로서는 유비가 좀더 야욕을 부리며 '명분'보다 '실리'를 챙기는 현명함을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심정인 것이다. 허나 만약 그랬다면 <삼국지연의>의 독자들은 유비에게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촉한정통론'이라는 것도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저 혼란스런 시대를 살아가며 '평범한 야심가들'에 의해 천하가 어지러웠을 뿐이라고 이 시대를 평가하고 말았을 것이다. 독자들이 유비에게 이토록 애착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유비에게 '덕치'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나 손권은 엄연히 '한나라의 신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스스로 '왕'이나 '황제'를 칭하는 것은 찬탈이자 역모다. 그러나 '한 황실의 종친'이었던 유비(물론 신빙성이 낮긴 하지만)는 '한나라를 정상을 되돌릴' 의무이자 권리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유비는 자신의 영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야심'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느림보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또 그것이 '유비'에게 딱 어울리는 방식이었고 말이다.

  이런 유비의 '느린 행보'가 오히려 백성들에겐 환영받을 일이었다. 나라가 아무리 부강하더라도 하루가 멀다하고 '전장터'로 끌려갈까 두려움에 떨고, '전쟁물자'를 대기위해 그간 모아놓은 재산을 빼앗길까 불안해하는 조조와 손권쪽 백성들은 삶이 고달펐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땅한 영지도 없는 '유비의 편'을 드는 백성들이라고 두려움과 불안함이 없을 순 없었다. 하지만 똑같이 빼앗긴다 하더라도 신분이 천한 자신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려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는 유비에게 빼앗기는 편이 덜 억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조조와 손권과 맞서 싸워준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승리하고 성공한 사람'에게나 내어줄 수 있는 호평이다. 덕치를 하며 선정을 베풀다가 '야만인'들에게 짓밟히고 패망한 다음에 '착한 사람이었어'라는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유비는 당시에는 별볼 일 없는 사람으로 평가 받다가 '명나라, 나관중'이라는 '시대와 사람'을 만난 뒤에야 겨우 호평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야기로 되돌아와서, 유비에게 제갈량과 방통이라는 두 날개가 생겼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은 유비를 위해 손권에게 달려가 '주유'를 도발시켜 조조와 싸우도록 부추겼고, 방통은 유비를 위해 조조에게 달려가 '연환계'를 써서 효과적으로 패배할 수 있도록 부추겼다. 그리고 와룡과 봉추는 유비의 품에 들어왔다. 만약 유비가 좀더 현명한 군주였고,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촉을 취하고 난 뒤에도 제갈량과 방통을 적절히 써먹으며 '형주와 한중'이라는 두 요충지를 효율적으로 다스리며 조조를 톡톡히 괴롭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비는 '입촉 과정'에서 방통을 잃고 만다. 유비는 이미 실력이 '증명'된 제갈량을 우대하고, 아직 실력을 '검증'하지 못한 방통에게는 소홀히 했던 것이다. 굉장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아직 '입지'를 굳히지 못한 군주라면 사람을 그렇게 다루면 안 되었다. 유비는 방통을 군사로 쓰면서도 끝없이 '제갈량의 지혜'를 끌어다 쓰길 좋아했고, 이것이 뛰어난 실력을 갖춘 방통으로 하여금 '초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달리 말해, '고용불안'에 시달렸던 셈이다. 이렇게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면 뛰어난 능력자라 하더라도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해지고, '대박'을 치기 위해 섣부른 모험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 금물이다. 유비는 뛰어난 능력자에게 '고용불안감'을 심어주어 큰 거 한 방을 노리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한 쪽 날개'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가뜩이나 인재가 부족한 유비에게 아주 큰 실책을 안겨준 셈이다.

  그로 인해 형주를 지키던 제갈량이 부랴부랴 '성도(촉지역 수도) 공략'을 위해 유비에게 달려갔고, 패배한 유비를 지키기 위해 장비와 조운까지 대동해서 입촉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만 보아도 '방통'이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 인재인지 알 수 있다. 방통은 장비와 조운이 없이도 '입촉'할 수 있던 군사였고, 제갈량은 장비와 조운까지 대동해야 '입촉'할 수 있는 군사였던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적으론 방통은 '실패한 책략가'였지만 말이다. 암튼 이제 형주를 지키는 것은 '관우'뿐이었다. 힘과 지혜를 갖춘 용장임에 틀림없지만, 애초에 갖고 있는 지혜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공격'에는 능한 장수지만 '수비'에는 그닥 효용을 발휘하지 못하는 장수가 유비의 목숨줄과도 같은 '형주땅'을 맡게 되었다. 그래서 제갈량은 관우에게 '지혜'를 빌려주며, 조조와는 맞서 싸우고, 손권과는 화친하라 일러주었건만 끝내 일을 그르치고 만다.

  유비와 합류한 제갈량은 기이한 '용병술'을 쓴다. 이전에도 곧잘 쓰던 방식이었지만, '황충'이라는 장수를 얻고 난 뒤에 아주 노골적으로 써먹기 시작한다. 바로 '충분히 승산있는 싸움'인데도 '승률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배수진'을 쳐버리는 용병술이었다. '배수진'이란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만들어 죽을 힘을 다하게 만드는 진법인데, 늙은 황충에게 "당신은 늙었으니 전투에서 빠지라"고 말한 뒤에, 황충으로 하여금 "늙었음에도 젊은 장수들보다 더 실력이 뛰어남을 증명해보이겠소"라면서 "만약 지고 돌아온다면 목을 치시오"라는 필승의 각오를 확답으로 받고 난 뒤에 전장으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제갈량은 장수를 아끼는 마음을 내보이면서 장수로 하여금 '죽을 각오'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열의를 보이게 만든 뒤에 승리를 거두는 지혜를 써먹은 셈이지만, 매번 이런 식이라서 문제였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유비쪽에 인재'가 부족했던 탓이다. 형주 일대와 촉 지역을 차지하면서 '사람'을 많이 얻기도 했지만, 정작 '쓸만한 인재'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물론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인재가 부족해도 걱정할 일이 없었겠지만, 상대적으로 일찌감치 터를 잡고 자신의 영지를 안정시키려 여러 방면에서 인재를 등용해 부렸던 조조와 손권에 비해서 '뒤늦게 터를 잡은' 유비에겐 그렇게 안정을 시킬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부리고, 사람을 써야 할 때마다 '적절한 인재'를 찾지 못해 애를 먹던 제갈량은 궁여지책으로 '부족한 인재들'로 애써 돌려막기를 했던 셈이다. 그래서 촉나라는 유관장 삼형제가 죽고 난 뒤에 그렇게 허망하게 패망하고 만 것이다. 물론 '유비의 아들(유선)'이 무능한 탓이 더욱 큰 원인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유비는 '입촉'에 성공하고, 새로 얻은 황충, 위연, 마초, 법정 등을 활용해서 '한중 공략'에 성공하고, 관우가 '형주 방어'에 성공하면서 탄탄하게 나라를 다지는 듯 싶었다. 한편, 위왕에 오른 조조는 '한중 방어'에 실패하면서 손권과 손을 잡고 '형주'를 취하고자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장료의 활약'이 돋보이게 된다. 일찍이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뒤에 '강동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장료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장료는 손권의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고 버텼을 뿐만 아니라 '강동 공략'에 선봉을 서며 손권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다. 이 때문에 오나라에서는 "장료가 온다(료~ 라이!)"라는 말이 두려움의 대명사였다고 한다. 우는 아이도 "료~라이"라는 말을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손권이 다스리는 오나라는 '장강'을 넘지 못하고 조조와도, 관우와도 '화친'과 '적대'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뜸만 들이다 '노숙'이 죽고 만다. 유비와 손권이 서로 '화친'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죽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한편, 위왕에 오른 조조는 슬슬 후계자를 골라야 할 처지가 되었다. 첫째 '조비'와 셋째 '조식'이었다. 조조 마음에 쏙 드는 자식은 셋째였지만, 가후에게 후계구도를 묻자, 가후는 "원소와 유표를 떠올리십시오"라는 말로 조언을 대신했고, 조조도 그 말을 듣고 첫째 조비에게 왕세자의 자리를 물려준다. 그리고 드디어 '사마의'가 등장한다. 이제 한중을 놓고 제갈량과 한판 대결을 벌일 바로 그 사마의가 말이다. 이제 천하는 새롭게 짜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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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멈춘 순간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 - 플라톤부터 BTS까지, 음악 이면에 담긴 철학 세계 서가명강 시리즈 19
오희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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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IX / 21세기북스 23번째 리뷰] 나는 예술을 쥐뿔도 모른다. 마치 입에 달아야 삼키고 쓰면 뱉는 것처럼 '내 눈'에 아름다워야 아름답게 보이고, '내 귀'가 즐거워야 좋은 음악이라고 평하는 아마추어 중에 쌩~아마추어다. 그런 내가 '음악철학'에 관한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미학]이란 이런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반에 반쯤 이해할까 말까 그랬다. 그런데 음악이 멈춰야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는 제목을 완독한 뒤에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학창시절에는 따분하기만 한 '교과서'가 왜 좋은 줄 몰랐다가,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 보니 '교과서'만큼 좋은 책이 없다는 느낌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처럼 '좋은 음악'일수록 피날레를 장식한 뒤에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 갈채가 쏟아지고, 그 환호와 갈채도 잦아들고 텅빈 객석에 앉아 홀로 남겨지고 나서야 '긴 여운'으로 감동이 밀려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음악철학'은 들리지 않는 음악을 들으며 머리로 생각하는 '음악적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하는 학문이란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럼 '음악철학'이란 무엇일까?

  무술에 '음공(音功)이란 것이 있다. 영화 <쿵푸허슬>에서 장님악사가 반가부좌를 하고서 내공을 모아 거문고를 튕기니 소리가 창칼이 되어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 치명상을 입히는 무서운 무공이었다. 이때 '무형'의 음공에 맞서 '유형'의 무기를 든 무술고수는 하나같이 목숨을 잃고 말았는데, '무형'의 음공에 맞서 '무형'의 사자후를 토해내니 '내공의 차이'만큼 혼쭐이 나고선 부리나케 도망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무형'의 것을 '유형'의 무엇으로 표현해서 '무형의 가치'를 새롭게 창출해내는 것이 '음악철학'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아닌 게 아니라, 좋은 음악은 들은 뒤에 '무언가'를 분명히 느낀다. 그것을 무어라 콕 집어서 표현할 깜냥이 부족하기에 이렇게 표현해보았다. 사실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대위법'으로 음악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음악의 천재 베토벤이 '불멸의 교향곡'을 만들어내며 음악의 정점을 찍었다는 식의 설명은 들어도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을 들으면 '감정'이 느껴진다는 이 책의 첫 소절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음악의 이 소절에서는 '기쁨'이 느껴지고, 저 소절에서는 '설렘'이 느껴지며,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는 '환희'가 느껴지면서, 음악의 전체적인 주제는 '첫사랑'이었다는 식으로 이해를 하려니 음악이 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음악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사로잡기 시작한 음악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음의 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는 점도 신기했다. 마침맞게 하지은의 소설 <얼음나무 숲>에서 음악 신동 아나토제 바엘이 자신이 켜는 바이올린으로 청중들과 '음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소재를 접했기에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음의 대화'를 시도한들 '인간의 언어'처럼 명확하고 객관적인 전달은 할 수가 없었단다. 왜냐면 '소리'는 듣는 사람의 '경험'과 '사상(생각)'에 따라 주관적인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처럼 단편적인 의미(감정)은 전달할 수 있을지언정 '분에 넘치는 기쁨'이나 '달콤한 슬픔' 같은 복잡한 언어의 기능을 단지 '음악'으로만 표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사실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표제음악'으로 점참 발달했단다. 다름 아니라 '제목'이 없던 악보에 '제목'을 붙여서 음악의 전체적인 주제가 잘 드러나게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적 변화'를 보다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청중들이 '제목'을 먼저 들었기에 더욱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고, 미처 '제목'을 알지 못했더라도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낙엽이 지며, 여름에 활기찬 기운과 겨울에 쓸씀한 감정을 어렴풋이 느꼈다가 '제목'을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치며 옳다고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슈베르트의 <송어>도 물고기가 헤엄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소리'로 표현해내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음악에서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음악은 우리의 삶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진리를 탐구하듯 세상의 본질을 '음악적으로 구현'하려드는 경향을 선보이게 되었고, 더 나아가 '진보적인 음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그려나가는 등 음악이 표현하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다양하게 연주되기 시작했단다. 책의 내용이 '걸음마'를 시작한 뒤에 곧바로 '하늘을 나는 듯'한 심한 비약을 담고 있다고 오해할 정도로 '축약'해버리고 말았지만, 내 음악적 소양이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해 더는 표현할 길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주었으면 좋겠다. 쉽게 말해보자면,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며, 그렇기에 '사회비판적인 메시지'조차 음악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니체나 쇼펜하우어처럼 음악을 철학적으로 승화시켰고, BTS는 <봄날>을 발표하며 '세월호'에 대한 마음을 리얼리즘 예술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80년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발표한 <사계>처럼 당시의 사회상을 음악이 얼마든지 반영할 수 있고,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가사처럼 엄혹한 사회속에서 민중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는지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의 마무리는 'AI 작곡'과 '크로스오버(이질적인 장르가 서로 합해져서 만들어진 음악)'으로 주제를 열어내며 '음악적 표현에 한계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 만든 음악보다 더 훌륭한 음악을 만든 '인공지능(AI)'의 등장은 향후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아니 그 음악을 '창작'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라는 원론적인 비판부터, AI가 만든 음악이 너무 듣기 좋은데도 절대로 들으면 안 되는 것인가? 만약 들어도 된다면, '음원 수익'은 누가 가져야 하는가? 그렇게 '3분 창작'으로 수익을 내는 시장이 형성된다면, 과연 누가 힘들게 '고된 창작 예술'에 뛰어들겠는가? 그렇다면 '모방'밖에 할 줄 모르는 AI 작곡 때문에 음악은 쇠퇴하게 될 것이라는 끔찍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한편, 대표적 '크로스오버'의 예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선보였다. 동양과 서양을 한데 어우어지게 만든 <범 내려온다>는 요즘 말로 너무나도 '힙하다'. 이른바 전통 판소리에 팝음악을 접목시켜, 앰비규어스댄스 팀의 파격적인 춤까지 합치게 되니,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났다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가 한데 어울어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서, 이른바 'K-흥'이 전세계적으로 통한다는 것도 실감하였다. 이는 전통이라는 '익숙함'에 현대가 주목하는 '신선함'을 접목한 순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익숙한데 새로운 것'은 앞으로 음악이 나아갈 길이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였다.

  예술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조금이라도 낡은 것은 쉬이 도태되고, 대중을 사로잡지 못한 진부함은 외면받기 일쑤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말이다. 그런 예술에 '철학'까지 담으려한 이 책이 주는 신선함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물론 '음악철학(미학)'이 새로운 장르는 아니란다. 서양음악 쪽에선 아주 오래전서부터 시도되었고, 한국 음악계에서는 19세기 말 서양음악을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시작된 셈이다. 한국 음악이 '동양적 철학사상'에 '서양적 철학사상'까지 합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지금, 전세계는 'BTS'와 '이날치' 등 한국음악에 심취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한국음악'이 서양음악계에 '크로스오버' 되면서 더욱 다양한 시도를 선보일 것이 틀림없다. 학문이 이렇듯 '쉼'없이 새로움을 추구한다니, 익히 알고 있었으나 새삼 '음악, 또한 그렇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살짝 심취할 수 있었다. 물론 내 귀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음악이 멈춘 다음 '글'로써나마 음악철학의 지평을 넓혀 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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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세계사 - 고대 로마부터 21세기 실리콘밸리까지 인류사를 결정지은 기업의 탄생과 진화
윌리엄 매그너슨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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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VI / 한빛비즈 143번째 리뷰] 기업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이윤추구'라고 답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기업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쉽게 말해 '열심히 일해서' 남 좋은 일하고, '뼈 빠지게 일해서' 남에게 다 퍼주는 기업은 오래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해 자본주의체제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명언으로 삼아 무한대로 잡았고, 공산주의체제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들이밀며 굶어죽지 않을 만큼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세계시장에서 공산주의는 패배했다. 그리고 당연히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전혀 해결되지 못했다. 마르크스가 그렇게나 '경고'하고 '경계'했는데도 그 문제점은 제동장치를 잃어버린 것처럼 '돌진'을 했고, 그로 인해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폐해를 선보이며 스스로 문제점을 만들어내며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기업의 원초적인 목적인 '이윤추구'에 제동을 걸 무엇이 필요하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된 셈이다.

  이 책의 맺음말에는 자본주의체제의 기업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8가지가 제시되었다. 하나는 '국가를 위태롭게 하지 마라', 둘은 '장기적으로 생각하라', 셋은 '주주와 공유하자', 넷은 '경쟁하라, 공정하게', 다섯은 '직원들을 제대로 대우하라', 여섯은 '환경을 파괴하지 마라', 일곱은 '모든 파이를 혼자 다 가지려 하지 마라', 마지막은 '너무 빨리 움직이지 말고 너무 많은 틀을 깨지 마라'다. 제시된 제목만 보이도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은가? 그렇다. 오늘날의 기업이 너무나도 '이윤추구'에 매몰된 바람에 '비도덕적/비윤리적인 기업'이 양산되었고, 그로 인해 작게는 한 나라의 경제가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으며, 크게는 지구 전체가 '기업'에 의해 황폐해져 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거기다 기업의 경제활동으로 인해 '한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묵살되는 현장을 우리는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도 '바른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기업에 '생계'를 맡겨 놓은 처지라서, 차마 기업의 나쁜 행태에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기업에 종속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곤 한다. '다음 차례'는 자신이 아니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기업은 '사회악'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기업,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기업을 운영하는 '나쁜 경영자'가 진짜 원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에서 일을 하는 '종사자'들은 착한 경영자보다 나쁜 경영자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면 나쁜 경영자가 '더 많은 이익(성과)'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쁜 경영자를 핑계(?) 삼아 자신들의 소소한 이익추구를 정당화시킨다. 최소한 자신들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면서 말이다. 또한 기업(주식회사)에 자금을 지원한 '투자자'들도 자신들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나쁜 경영진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왜냐면 자신들은 기업의 '주인(주주)'이면서도 경영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더 큰 이익'을 선사하는 경영진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그런 기업의 행태로 인해 한 사회와 국가, 그리고 지구 전체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업의 '이윤추구'에 적절한 제동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제동장치보다 더 필요한 것이 바로 '기업 윤리'다. 이는 비단 '기업가'에게만 요구하는 자질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한 '도덕'과 '윤리'적 규범이 있어야 하고, 이것에 하등 상관치 않는 '짐승'같은 인간들에 대해 적절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선량한 인간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량한 인간들이 무리 지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도 망가지고, 든든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국가시스템도 허물어지게 되며,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지구환경까지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윤추구'를 하는 기업에 적절한 '윤리도덕'이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러나 기업의 이윤추구에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윤택한 삶을 가져다주는 '경제적 풍요로움'에 한 번 맛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최대한의 이윤추구'에 정당성을 부과하려 들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 그 자체로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주는 '은행업(메디치 은행)'과 '주식회사(동인도회사)'를 보라.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만 취한 것이 아니라 '주거래자'에게까지 거대 자본의 편리함과 윤택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기업의 오너'가 한순간에 타락하게 되자 메디치 가의 몰락과 함께 국가(피렌체)의 운명까지 멸망에 이르게 하였고, 동인도회사의 타락과 함께 인도제국은 단박에 '식민지노예'가 되어 버렸고, 이를 수수방관한 대영제국은 '전범국가(?)'와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최대의 이윤'을 얻기 위해서 가장 악랄한 수단까지도 허용해 버렸는데, 바로 '독점기업(유니언 퍼시픽 철도회사)'의 등장이고, '대량생산체제(포드 자동차회사)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각각 시장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왔으며, 동시에 끔찍한 '악영향'을 가져왔다. 독점은 경쟁상대가 없는 상태이니 '무한이익'을 취할 수 있었고, 대량생산으로 '단가'를 낮춰 다른 경쟁사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왔지만, 그로 인한 '근무환경'은 저질적이고 열악하게 바뀌며 인간을 '컨베이어밸트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어디 이뿐인가? 하나의 국가보다 더 큰 '다국적 기업(액슨)'이 만들어지자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관계자조차 '기업 오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까 노심초사하게 만들었고, '기업사냥꾼(KKR)'들의 등장으로 거대한 기업조차 '상품'으로 전락해버려 사고 팔아 넘길 수 있게 되자,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줄 마땅한 것이 무엇인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모두 '기업의 이윤추구'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피해 사례'다.

  과연 자본주의는 이러한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거대 기업은 '최대한의 이윤추구'를 통해서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아직까지는 없는 듯 싶다.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된 이들에겐 '게으름(나태)'이라는 낙인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비난을 퍼붓곤 한다. "그러길래 부지런히 일해서 풍요롭게 살아야지. 왜 '게으름'을 피워서 가난해졌느냐?"말이다. 거기까지만 해도 비참할 지경인데, "가난은 나랏님(엄청난 부자)도 고치지 못하는 '망국의 병'이니, '각자도생'은 기본옵션인 거 알고 있지?"라며 비아냥거리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자본주의'를 찬양하고, 복지정책 같은 것은 하등 불필요한 것이라고 망발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어차피 '개돼지'들에게 희망 따위는 사치라면서 말이다.

  이러한 비도덕적인 '기업윤리'와 부도덕한 마인드를 지닌 '기업오너'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할까? 그래서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재미없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기업이 타락하지 않도록 '소비자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결국 거대 기업도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판매'를 해야 이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대 기업이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짓을 한다면 과감한 '실력행사'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 개개인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거대하게 '뭉친' 소비자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즉,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불매운동' 같은 것이 있다. 비윤리적인 '기업제품(갑양유업)'에, 부도덕한 '기업오너(대한항콩)'에 소비자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이런 실력행사가 '기업오너'에게 타격을 주어야지 '그 밑선'에 폐해를 끼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면, 결국 '없는 자들끼리의 다툼'이 되고 마니까 말이다. 그리고 정작 '기업오너'들은 오만하게도 '찻잔속의 폭풍'으로 취급하며 호로록 해버리고 말 것이 틀림없다. 이를 위해 '범국가적인 실력행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전세계에 걸쳐 있는 '다국적 기업' 같은 경우에 한 국가에서 제재를 가해봐야 그냥 '철수'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 나라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도, 정작 '다국적 기업'에는 흠집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럴 때도 전세계적인 '올곧은 소비자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다시 말해, '소비자 연대'가 필요하단 말이다. 다국적 기업이 특정 국가에서 '횡포'를 부린다는 소식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기업의 이윤추구가 지구마저 파괴하는 '무분별함'을 보여주는 마당에 가만 냅둘 수가 있느냔 말이다. 그래서 '착한 기업'을 찾아내는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지구를 지키고, 국가를 안정시키며,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는 '착한 기업'을 발굴해내 돈쭐내줘야 한다. 이런 긍정적인 사례가 쌓이고 또 쌓여서 모든 기업이 착해지기 위해 저마다 노력하는 '기업생태'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는 가장 살기 좋은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그런 시대가 없었다. 왜냐면 소비자가 '연대할 수 있는 마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전달할 메신저가 없던 시대에는 기업들의 횡포가 극에 달해도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타락한 기업 때문에 '국가'조차 망해서 없어질지경에 이르러도 어디 하소연할 구석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중계'처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생긴 것이다. '페이스북'이 그렇다. 물론 이것이 '언론'도 아니고, '사회고발' 기능이 탑재된 것도 아니다. 그저 '메신저'일 뿐이다. 전세계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는 메신저가 '소비자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짜뉴스'를 선별해낼 수 있는 현명함도 갖춰야 한다. 뭐, 거대 기업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역량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 <기업의 세계사>는 거대한 역사적 변화속에서 익히 알려졌거나, 혹은 감춰졌던 '기업의 진실'이 담겨 있다. 건실한 기업이 타락하는 순간 역사는 소용돌이 치기 시작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세계사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경제사'였음을 잊지 않았다면, '경제 주체'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기업의 세계사'에도 큰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한 기업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면, '경제 주체'의 또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는 개개인의 '가계'가 해야 할 역할에도 눈을 뜨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이 바로 당신에게 그 안목을 선사할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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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 한빛비즈 교양툰 32
봉닭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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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V / 한빛비즈 142번째 리뷰] 몽골역사는 우리에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왜냐면 '기록(역사사료)'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는데도 현재의 우리에게 거의 잊혀버린 '비운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려 무신정권과 조선건국 사이에 '고려 원간섭기'가 존재했던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면도 없지 않다. 우리가 전통혼례 때 신부가 입는 '활옷'과 머리에 쓰는 '족두리', 그리고 얼굴에 찍어바르던 '연지곤지'는 모두 몽골의 풍습에서 비롯되었고, 조선 군대의 행진 때 요란하게 들리는 '태평소'도 원래는 몽골의 군대에서 쓰던 악기였다. 원나라의 다루가치였던 '이성계의 군대'에도 자신의 참전을 알릴 때 바로 '태평소'를 울려퍼지게 했는데, 원나라 군대든, 명나라 군대든 이 '태평소' 소리를 들으면 기겁을 하고 싸우기도 전에 도망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벼슬아치', '양아치'라는 말도 원나라의 관직 '다루가치'의 '치' 또는 '아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알게 모르게 우리는 몽골에서 유래된 것을 '전통'으로 삼고 있을 정도다. 참, '소주'를 빼먹었는데, 유통기한이 짧은 '막걸리'를 증류시켜서 '도수'도 확 높이고, 보존기간도 대폭적으로 늘릴 수 있었던 '소주'는 고려뿐만 아니라 조선사람들의 입맛도 사로잡아 오늘날까지도 한국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술로 인기를 끌고 있다. 소주를 만들 때 '소줏고리' 윗부분에 '이슬'이 맺히기 때문에 소주를 '이슬'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암튼, 우리는 이렇게나 '몽골'에 영향을 받았는데도 정작 우리의 '몽골제국'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중국인들이 몽골사람들을 낮잡아 부를 때 쓰는 '몽고'라는 단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쓰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어리석을 蒙'에 '낡고 고루할 古'를 써서 '비천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일본인을 부를 때 '쪽발이'라고 부르는 격이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지금도 한국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꺼우리(고려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본인이 한국사람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뜻이다. 이들은 모두 '고려사람'과 '조선사람'을 '이름, 그 자체'로 욕지거리로 만든 아주 야비한 짓이다. 요즘 말로 젊잖게 복수(?)를 하자면 "중국이 또 중국했네", "일본이 하는 짓이 늘 그렇지. 뭐!"라고 대꾸해주고 싶다. 그러니 우리 나라 사람들 만이라도 '몽고'라고 쓰지 말고, '몽골'이라고 제대로 불러줬으면 좋겠다. 몽골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를 '솔롱고스'라고 부른단다. 몽골어로 '무지개가 뜨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몽골제국'은 얼마나 큰 나라였을까?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넓은 영토'를 자랑하지만, 중국제국의 일부라고 우기고(?) 있는 '원나라'는 사실 '몽골제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영역이었다. 그리고 원나라 역시 '몽골제국의 지도자' 카안(대칸)이 지배하던 지역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 영토는 '몽골제국'의 초원지대 상단부만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몽골제국'은 거대한 '유라시아 지역' 거의 대부분을 차지해서, 몽골제국이 아니었던 곳을 표시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다. 서쪽으로 '헝가리', 남쪽으로 '중동', 동쪽으로 '만주'까지 지금의 중동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인도'를 제외한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거의 전역을 몽골이 차지했었고, 인도의 '무굴제국', 고려도 사실상 '몽골제국'의 영향하에 있었으므로 '유라시아 대륙' 전부가 몽골제국의 영역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처럼 광대한 지역을 단 한 사람의 통치자(카안)이 다스리던 나라가 바로 '몽골제국'이었다. 12세기에서 14세기까지 말이다. 이렇게나 강력했던 '몽골제국'이 불과 200여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페스트'라는 질병이 엄청난 양의 사람과 가축이 '이동'을 하게 되니, 지역풍토병이었던 '페스트'가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산하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를 증명할 '확실한 증거'는 지금 찾는중이라고 한다. 워낙 사료가 태부족한 관계로 이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학술적 증거가 아직 부족한 셈인데, 현재의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나니, '몽골제국의 흥망사'가 한 눈에 들어오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게 된 것이다. 유럽이 페스트로 인해 전체 인구의 3/4이 줄어든 것처럼 '몽골제국'도 절반 이하로 줄었들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추정한단다. 오늘날의 '고기후 데이터'로 14세기 무렵의 기후를 추정해보니, 농사를 짓기에 적당한 기후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른바 '소빙하기'라고 불리는 '이상기온'이 당시의 농업인구를 굶주리게 만들었고, 소와 말 등에게 먹일 '대초원의 풀'도 덩달아서 줄어들게 되니 '몽골제국의 경제'가 휘청거리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정치'도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카안의 수명'이 줄어든 것을 들고 있다. 쿠빌라이 칸의 후예들의 평균수명이 10세~30세였다고 하니, 이는 몽골제국 내에 '질병확산'과 '경제악화'가 전반적으로 폭넓게 퍼졌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황실의 건강상태가 이 모양이니, 몽골제국 내 백성들의 삶도 상상이상으로 열악했을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 좋은 상황은 제국 안에서 벌어지는 '내전'이 확전되는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을 것이다. 흔히 'ㅇㅇ한국(칸의 나라)'이라 불리던 '울루스' 사이에 갈등이 높아지면서 황실 간 갈등은 높아져만 갔고, 이런 내부의 갈등은 '외부의 침략'으로 제국은 갈갈이 찢기게 되었다. 이때 훗날 명나라 황제가 되는 홍건적의 우두머리 주원장이 등장하는데, 장강 이남의 강남 출신이었던 주원장이 '원나라의 남쪽'을 차지하고 지금의 북경(원나라의 대도)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원나라는 '북원'으로 밀려나고, 홍건적 떼거리의 일부가 고려 국경을 넘어 난리부르스를 치게 된다. 침략 이유는 다름 아닌 '원나라 사람들'이 대거 고려로 넘어왔기 때문이란다. 이들 '홍건적의 잔당'을 물리친 고려의 영웅이 바로 최영과 젊은 이성계였다. 그래서 최영은 깝죽거리는 명나라 군대를 만만히 보았던 것이고, 이성계도 조선 건국 이후 명나라 주원장이 깝죽거리면 "내가 직접 조선군을 이끌고 명을 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고려 말 '요동정벌'이 결코 불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몽골'과 관련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아쉬운 것은 이를 증빙할 사료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집대성'한 역사서가 우리에게 너무 낯설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이 책 <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도 읽다가 의아한 대목이 많은 편이다. 아니 '몰랐었다'는 표현이 더 솔직할 것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와 비교하면서 읽어나간다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띄엄띄엄' 어색했던 역사적 흐름이 한층 자연스러워지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몽골제국사'를 쉽게 풀어준 글쓴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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