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웅의 AI 강의 2026 - 인공지능 진화의 가속화부터 AI 기본사회와 일자리의 미래까지 멈추지 않고 인간 세계를 압도하는 새로운 지능의 모든 것
박태웅 지음 / 한빛비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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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웅의 AI 강의 2026 : 인공지능 진화의 가속화부터 AI 기본사회와 일자리의 미래까지 멈추지 않고 인간 세계를 압도하는 새로운 지능의 모든 것> 박태웅 / 한빛비즈 (2026)

[My Review MMCCXXXIX / 한빛비즈 17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예순여덟 번째 리뷰는 인공지능의 모든 것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박태웅의 AI 강의 2026>이다. 이 책은 2023년부터 벌써 3번째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고 있다. 그만큼 인공지능의 개발과 발달 속도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첫 번째 책이 나온 지 2년만에 두 번째 책이 나왔는데, 이제는 그 절반인 1년만에 또 나왔다. 만약 4번째 책이 출간된다면 아마도 반년 뒤가 아닐지 아주 유력하게 전망해볼 수 있을 지경이다. 정말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앞서기는커녕 쫓아가기도 벅차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 긴 말 할 것 없이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박태웅의 AI 강의 2026> 관점 포인트 : 사실 아무리 공학계열 출신인 나지만 'AI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에는 거의 문외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의 '컴맹'에 가까울 정도로 전자공학에 대한 기초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새로운 전자제품이 나올 때마다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했다. 새로운 문물이 나올 때마다 '공부해야 할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곤 해서 나중에는 '메뉴얼'도 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기능에 익숙해질 즈음에 '또 다른 신제품'이 출시되었고, 신기한 마음에 신제품을 사고 나면 '달라진 UI' 때문에라도 또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신제품을 사기를 두려워했고, 남들 다 스마트폰을 쓸 때도 구경만 하다가 2012년에 느즈막히 구입해서 또다시 한 5년쯤 뒤에나 새 폰을 사는 등 게으르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았더랬다.

이런 상황이니 AI는 아직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니, 당당히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 듯 싶다. 왜냐면 AI 발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AI 기술은 현재에도 충분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발이 되어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AI 기능이 탑재된 전자제품을 쓰고 있으며 우리 일상에서도 AI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인간'이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라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발전하고, 조금 더 일상생활에 'AI 의존도'가 늘어나게 되면 완전 달라지게 될 것이다. '완전자율주행 자동차'가 도심을 활보하고, '가사도우미 AI로봇'이 등장하게 되는 것만 상상해봐도 그렇다. '다크 팩토리'로 불리는 AI로봇이 노동자를 대신해서 일을 하는 공장은 내부를 환히 밝힐 전등이 필요없게 되는 것이다. 100% 로봇이 공정에 투입되어 생산품을 만들어내는데 전등이 왜 필요하겠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분명 편리해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인간은 '할 일'이 없게 된다. '할 일'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할까? 기본소득 200만 원으로 넷플릭스나 유튜브 시청만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될지도 모른다. 꼴랑 200만 원으로 '사람'과 만남을 유지하며 살기에는 너무 빡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더욱더 외톨이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젊은 세대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어릴 적부터 AI에 길들여진 세대라서 어른이 되어서 '일자리'를 가질 수도 없고, '꿈'도 꿀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똑똑해진 AI에게 순한 양처럼 사육된 인간들만 양산(?)되다가 결국엔 인간이 불필요하다고 느낀 '슈퍼 인공지능'에 의해 인류말살 프로그램이 가동될지 누가 알겠느냔 말이다. 그런 생각에 AI 사용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이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이제 AI 패권시대에도 슬슬 종지부를 찍을 기세다. 현재 AI 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마저도 미국과 중국이 거의 독점하고,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대한민국이 '3강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게 2025년 초의 상황이었다. 그러다 상황이 급반전하면서 미국 트럼프 관세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메모리 반도체 공급'에 큰 변화가 있었고, 이른바 '깐부회동'으로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우리 나라에 직접 와서 '고대역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우선 공급 받기로 하면서 상황이 완전 달라졌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컨트롤'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엔비디아의 고성능 AI칩에 대한민국의 '반도체'가 장착이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격차는 현저히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들리는 소문에는 전세계 AI 체제에 변화의 기조가 포착되었단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2강 체제'를 구축하고 격렬하게 경쟁을 하고 있는 와중이지만, 중국은 시진핑의 독재가 가능한 '공산국가'이고, 미국은 트럼프가 '미란 전쟁'을 벌이는 등 비이성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어서 '불확실성'만 가득한 와중에 AI의 판도를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 나라가 석권하도록 두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단다. 그럼 AI 패권을 누가 쥐는 것이 가장 안전할까? 바로 새롭게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꼽고 있단다. 더구나 역사상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고, 현재에도 전세계에 적을 두거나 척을 지는 일이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인데다, 정치적으로도 거의 완벽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나라인 까닭에, 안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무엇 하나 빼어나지 않은 것이 없는데, 마침맞게 '제조업 분야'까지 활발하게 가동할 수 있기에 새로운 AI 패권 국가로 낙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아직 AI 기술에서 미중에게 현저히 뒤쳐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기에 낙관할 수는 없는 전망이지만, 세계 각국의 분위기가 그런 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라서 우리에게 호재로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란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우리는 강대국의 지위를 한껏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외교력'을 발휘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세 가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란다. 하나는 '돈'이고, 또 하나는 '사람'이고, 나머지 하나는 '데이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단다. 이것이 AI 사회로 전환하는데 있어서 매우 큰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단다. 이런 크나큰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막상 세계적으로 막중한 임무가 대한민국에게 부여된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국제적 표준'을 제시하며 리드해 나갈 수 있을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불확실한 것이다. 아무리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신뢰하고 믿고 의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통제하고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바지 사장'을 면치 못하고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내세운 초강대국들에게 휘둘릴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나가는 글 :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급하더라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없는 돈이 갑자기 생긴다한들 감당하지 못하면 큰돈은 없느니만 못한 상황이 되고, 인재나 데이타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질리도 없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끌어온 '인재와 데이타'가 순전히 우리를 위해서 작동할리 만무하고 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직접 갈고 닦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물론 지난 과거처럼 '선진국 따라하기'와 '선진국 따라잡기'라는 꼼수를 부릴 수도 없는 처지다.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이 바로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 길뿐이다. 우리는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세상을 '개척'해 나아가야만 한다. 그래도 부족한 것이 많으니 차근차근 착실하고 빈틈 없이 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가 불확실하고 암울한 것이 뻔한 미치광이 미국과 또라이 중국의 발밑에서 신음하며 힘겹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AI 기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한민국이 선점하고 선도해야만 한다. 적어도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을 가지고 다투지 못하게 확고한 위치(제3의 강국)를 차지해야 하고, 더 좋은 방법은 전세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 AI 패권을 차지하고 전 인류의 공영과 발전을 위해 앞장 설 수 있는 방향(비전)을 제시하고 공감과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그 중차대하고 막중한 임무를 그 어느 나라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오직 대한민국이 아니면 그 어느 나라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현재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가 AI 강의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국민 모두에게 AI 관련 서적을 보급해서라도 AI가 가져올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가늠이라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 문제다. 무엇보다 지금은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일찍이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다. AI 기술이 아무리 빨리 바뀌고 진화한다고 해도 상관 없다. 바뀌면 바뀌는대로 계속 알아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답이 없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AI가 등장하는 것은 이제 막을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그걸 다른 나라의 손에 쥐어주고 우리 나라가, 우리 국민이 그들에게 통제받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선점하고, 우리가 선도해야만 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이 선점했을 때의 이익은 온 세계가 다 알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선점'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위상은 높아졌다. 이제 그 높아진 위상만큼 우리가 '실력행사'를 하고, 그 믿음에 보답해줄 때가 왔다. AI 기술패권을 우리 손아귀에 잡는 날까지 AI에 관한 관심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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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 이야기 - 생명의 잉태와 탄생에 이르는 81가지 신비로움
안나 블릭스 지음, 황덕령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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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 이야기 : 생명의 잉태와 탄생에 이르는 81가지 신비로운> 안나 블릭스 / 황덕령 / 미래의창 (2026) [원제 : 40 Weeks]

[My Review MMCCXXXVI / 미래의창 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예순다섯 번째 리뷰는 생명의 신비를 파헤치는 생물학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40주 이야기>다. 46억 지구 역사에서 '생명의 탄생'은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다. 광활한 우주에 '지구를 닮은 행성'은 분명히 있겠지만, 아직까지 지구밖에서 생명의 신호를 알려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단 한 곳 '지구'에서만 생명이 탄생을 하고 이제껏 진화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생명 경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토록 소중한 생명인데, 그 생명의 하나뿐인 목숨을 앗아가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멸종'을 입에 올리면서도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전쟁'을 일삼으며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각박한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 책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40주 이야기>에는 '생명의 잉태와 탄생에 이르는'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걸 읽고 생명의 소중함을 모른다면...각자가 알아서 판단하길 바란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40주 이야기> 관점 포인트 : 처음에 '40주'는 생소했다. 일주일이 7일이니 40주를 곱하면 280일이 된다. 그래도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한 달이 4주니까 40주에 4로 나누니 '10달'. 맞다. 인간의 임신 기간이 바로 '40주'였던 것이다. 이걸 이렇게 어렵게 계산을 하고 난 뒤에야 깨달은 까닭은 이 글을 쓰는 내가 '독신남'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모태솔로'라고 부른다('')외로워요~ 그래서 <40주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이 임신한 여성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한 여성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기까지의 긴 여정을 이야기한 것은 맞는데, 각 주마다 '그 주기'에 맞는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복잡하고 다채로운 심경 변화까지 자세하게 설명함과 동시에 '그 주에' 일어날 수 있는 지구 생명체들의 '생물학적 서사'가 소개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마디로 '생물학' 책이었던 것이다. 온갖 생명들의 소중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이야기가 이 책 한 권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각 쳅터를 읽을 때마다 정말 신기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성행위'를 한다는 쾌락적 결과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무릇 모든 생물의 '성행위'에는 한 생명이 잉태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할 뿐이고, 진짜로 중요한 것은 '성행위, 그 후에 벌어질 막중한 책임감'에 대해 과학적 다큐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특히 여성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변화 뿐만 아니라 한낱 미물에 불과한 미생물과 박테리아까지도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고, '종족 번식'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기도 하며, 종족의 번영을 위해서 '개체수'를 늘릴 방안을 각각의 종족마다 얼마나 다양하게 보여주는지 새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덮는 순간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모든 생명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얼마 전에 여동생이 아기를 낳았다. 몇 번의 유산을 겪고 임신을 하기 위해 온갖 아픔을 겪고 정성을 들인 것을 지켜봤기에 더욱 짠했던 것 같다. 여자라면 당연히 임신을 하고, 자연히 출산으로 하고, 저절로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로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정말이지 각성하길 바란다. 내 여동생은 난임 판정을 받았음에도 수 차례 '인공수정'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서 갖은 고생을 다했다. 수백에서 수천 만원이 드는 고액의 비용도 아끼지 않고 시도를 한 끝에 임신에 성공했을 때의 기쁨도 잠시였다. 한 달이 조금 지나서부터 시작한 '입덧'으로 출산을 한 지금까지 '먹토'를 반복하고 있다. 임산부가 먹지를 못하면 뱃속의 아기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의 얘기에 먹히지도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었지만, 먹는 족족 토를 하는 일을 9달 동안이나 계속했던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다. 산모가 입덧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내 여동생의 경험을 직접 보니 그건 다 뻥이었다. 물론 입덧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산모도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소중한 생명을 뱃속에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히 경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정말 실감했다.

그럼 다른 동물들도 다 이럴까? 각각의 생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종족번식'을 하고 있으니 느낌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대부분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를 해서 한 생명이 잉태되곤 하지만, '자웅동체'라서 별도의 짝짓기를 하지 않는 종도 있었고, '자가분열'을 하는 방식으로, '알'을 낳고 '정액'을 뿌리는 방식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미성체' 상태로 어미 뱃속에서 나와서 어미가 혀로 닦고 고른 길을 이동해서 어미의 젖꼭지에 안착해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방식 등 정말 다채로웠다. 하지만 방식의 차이를 있을지언정 '한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은 정말이지 신비, 그 자체였다.

다시 인간 여성의 임신을 살펴보면, 여성의 몸의 변화는 '생리'라고 부르는 현상으로 인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여성은 생리를 통해서 '난소'에서 하나의 난자가 배출되어 '난관'을 통해 '자궁내벽'에 착상할 즈음에 '질벽'을 지나 '자궁'안으로 헤엄쳐온 정자를 만나지 못하면 '착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자궁내벽이 허물어지며 질을 통해 배출하게 되는데, 이를 '생리혈'이라고 한다. 여성은 매달 이런 생리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때 여성의 몸과 마음의 상태는 천차만별이지만 '임신'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공통된 것이다. 이것이 임신을 원치 않는 여성에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임신을 엄청 하고 싶은 여성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과 아픔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생리는 '임신이 아닌 경우'를 뜻하지만, 종종 '유산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자궁내 착상'에 성공하지 못한 난자는 정자와 만나 수정이 되었더라도 '자궁내막'이 임신에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고 자궁내막을 부풀어서 허물어지게 만드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자연유산'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임신을 하는 일이 그리 만만하거나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란 얘기다.

한편, 임신에 성공해서 제대로 자궁내막에 '착상'을 했더라도 문제는 발생한다. 여성의 뱃속에 잉태한 엄청 숭고하고 경이로운 일대 사건인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한 여성의 몸속에 '전혀 다른 생명체'가 여성의 몸속에 '기생'을 하고, 여성의 몸속에서 '생명의 원천'을 갉아먹기 시작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이제 막 잉태한 작은 생명은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빼앗을 기세'로 덤비고 있고, 작은 생명을 품게 된 여성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줄 자세'로 자기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 것, 이것이 '임신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이 작디 작은 생명체는 '여성의 유전자'를 일부 받았긴 했지만, 엄연히 '다른 생명체'다. 우리 몸은 '면역체계'라는 것이 있어서 자신과 다른 유전자를 가진 이질적인 생명체가 몸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작디 작은 생명체라도 가차없이 박멸해버리는 '방어기제'를 갖고 있지만, 여성은 이런 '방어기제'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억제를 하며 자신의 몸을 오히려 약화시켜버린 상태를 계속 유지시키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여성을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바로 '엄마'라고 말이다.

나가는 글 : 모든 생물들은 이런 신비한 과정을 겪으며 새끼를 낳고 기르며 종족을 번식시키며 살아간다. 인간도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아름답고 때론 기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런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일까? 지금도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은 인간들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불타고 있다. 그 빽빽한 밀림속에서 살고 있는 생명들이 얼마나 터전을 잃고 절멸해 갔을 것이냔 말이다. 몇 년 전에 호주에 대형산불이 일어났을 때에도 코알라와 캥거루 등이 화마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불타 죽는 것을 봤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재앙이었고, 그 기후위기를 불러온 것이 바로 인간의 욕심 때문 아니었냐는 말이다. 하물며 특정한 생물은 숙주로 삼고 살아가던 '바이러스'가 그 생물이 속절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 처하자 끝내 '인간의 몸'까지 숙주로 삼고자 침투했다가 지구상의 인간을 한순간에 대멸종시킬 뻔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은 어땠는가 말이다. 야생동물이 살아갈 터전마저 남겨두질 않고, 굳이 잡아먹지 않아도 될 야생동물까지 먹어버리는 만행이 결국 '인수공통감염'이라는 죽음의 고리를 연결시켜버렸고, 그로 인해 전세계가 한동안 공포속에서 살아갔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생명을 경시하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은 하찮게 보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은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만약 인류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습속을 버리지 못한다면 결국 '여섯 번째 대멸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생명 탄생의 신비와 경이로운 잉태의 과정을 지켜본다면 이런 나쁜 습속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인류의 번성을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는 '여성'과 '임신, 출산, 육아'라는 카테고리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 생명을 품고 '엄마'로 변해가는 여성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살만한 사회로 변해갈 것이다. '여성도 살기 좋은 사회', '여성까지 살기 좋은 사회', '여성도 살기 좋은 사회'가 진정 살기 좋은 사회이며,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여성과 남성이 노력과 서로를 향한 배려가 넘친다면 분명히 '우리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여성이 절멸한 사회', '여성이 외면한 사회'는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는 너무 뻔한 진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 모든 '만병통치약' 같은 일이 이 책 <40주 이야기> 한 권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즈음에는 그 믿음이 생길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게 될 것이다. 왜냐면 '생명의 가치'가 다르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느낌이 그렇다. 모든 생명은 다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신도 분명히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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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10권 - 창씨개명에서 8.15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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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10권 : 창씨개명에서 8·15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CXXXI / 인물과사상사 3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예순 번째 리뷰는 <한국 근대사 산책 10>이다. 1940년대 일제가 조선을 '병참기지화'시키고 전쟁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전쟁터와는 살짝 거리가 있던 한반도내에서는 그야말로 생난리가 벌어졌다.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수탈과 약탈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고, '물자'를 빼가는 것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코너에 몰리자 이제는 '사람'을 짐짝 취급하며 빼돌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징용, 징병, 성노예로 불리는 것들이다. 생계를 위해서 '일자리'를 찾던 조선의 젊은이들을 돈 한 푼도 주지 않고 부려먹는 '강제징용'이 시작되었고, 어른 학생들까지 전장터의 총알받이로 써먹으려 '학도병'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으며, 어린 소녀부터 젊은 아낙네까지 일제에 충성을 다하는 짐승들의 '성욕'을 처리할 용도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치욕을 보이며 인간이라면 저지를 수 없을 법한 만행을...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과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우리 민족의 '젊은이'들에게 감내하게 만들었다. 이런 것들을 아울러서 '민족말살'이라 부른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근대사 산책 10> 관점 포인트 : 일제는 중일전쟁이 뜻하지 않게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각종 만행도 일삼기 시작했다. 일본군이 점령한 곳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깔끔하게 항복할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했으나 일본군이 점령하는 곳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병력'은 점점 분산되고 '물자'는 점점 고갈되어 갔다. 그러자 일제는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점령지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게 되는데, 이런 소식이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지자 서구열강들조차 일제의 만행을 지탄하며 만류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일제가 만행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자 미국이 앞장서서 '실력행사'에 나서는데, 일본으로 수출하는 물자들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일제는 다급해졌다.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석유 공급'이 가장 절실한데, 그 석유의 대부분을 미국을 통해서 수입해왔던 터라 미국의 석유수출 금지조치는 일제로서는 뼈아픈 곳을 건드린 셈이다.

부랴부랴 일제는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를 침공했고, 다른 부족한 물자도 확보하기 위해서 남태평양섬들까지 점령해나가는데, 결정적으로 '석유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가 최악의 결정을 내린 것이 바로 '진주만 기습', 즉 '태평양전쟁의 시작'이었다. 일제는 이 전쟁의 승부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데이터 상으로만 봐도 미국 전력을 압도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단지 '해군 전력'에서 일제가 약간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전쟁이 본격화되면 미국의 생산량이 일제의 생산량을 추월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압도적인 전력차이를 극복할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진주만 기습'따위는 절대로 감행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런데 일제는 저질러 버렸다. 왜? 그동안 강대국이라 여겼던 '청나라'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했고,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까지는 아니어도 패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전쟁을 저질러도 대일본제국이라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단단히 빠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제가 여지껏 패배하지 않았던 단 하나의 방법을 '태평양전쟁'에서도 바로 써먹었다. 다름 아닌 '선제공격 후 선전포고'다. 그래서 일제는 미태평양함대가 머물고 있는 진주만을 기습하였다. 그리고 기습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미 해군전력이 궤멸수준으로 파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일제의 실패 원인이었다. 미국의 '회복속도'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1차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무기 생산공장'을 가동해본 경험이 있다. 더구나 미국 본토가 타격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생산공장을 가동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전쟁처럼 철저히 '소모전'을 펼쳤을 때 소모하고 보충하는 '회복속도'가 일제에 비해서 미국이 열 배 이상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제는 '미국의 석유자원'을 공급받아야 전쟁을 치룰 수 있는데,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자원소모'에 있어서도 일제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해버린 셈이었다.

그럼에도 일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며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자국민과 식민지인들을 모두 속였다. 그리고 '결사항전'만을 부르짖으며 부숴질 때까지 싸우라는 '옥쇄'를 외칠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헛소리가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할 수 있었을까? 미국이 송출하던 단파방송 '미국의 소리(VOA)'를 통해서 전쟁상황과 일제의 패망을 알리는 소식을 우리 국민들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방송에서 활약했는데, 이승만도 '한국어 방송'을 통해 전황 소식을 전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것이다.

일제는 정말 '최후의 발악'을 했다. 윤동주와 이육사를 감옥에서 죽게 만든 것이 바로 이 때이며, 오키나와 주민들이 스스로 자살하도록 강요하게 만든 것도 이때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장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벌어지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다. 패망이 짙어지면 항복을 하고 뒷일을 수습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일제는 그마저도 거부하다가 정말 끝장을 볼때까지 가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무조건 항복을 하고, 우리는 뜻밖으로 '해방'을 맞이했다. 하지만 아직 일제의 행운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 민족의 행운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일제가 물러난 자리에 미제가 대신 들어와 차지했기 때문이다.

나가는 글 : 하나의 나라가 망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정말 지난한 세월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으로 조선의 국력이 날로 기울어가는 것을 눈치챘을 때에는 이미 망해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세계 정세는 갈수록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로 해결이 되었고, 조선의 앞날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하던 마지막 숨결조차 일제가 훅하고 불어서 꺼뜨린 것이 1910년이었다. 그로부터 1945년까지 우리 민족은 그야말로 생지옥을 경험하고 온갖 치욕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해방이 모든 것을 한 방에 해결해주지도 못했다. 일제가 물러가자 미제가 들어와 우리 민족을 또다시 생지옥과 치욕의 구렁텅이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그 뒤에 벌어진 사건들은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자.

2026년 대한민국을 살면서 왜 100여 년전에 벌어졌던 암울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들춰봐야 하는 걸까?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에 랭크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자 강대국 반열에 올랐으니 어두운 과거는 그냥 묻어두고 휘황찬란한 장밋빛 미래만 그리고 누리면서 살면 되지 않은가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살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현재 선진국이자 강대국이라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지만,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면 아직까지도 '남북간 대치국면'은 달라진 것이 없으며,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들이 내노라하는 선진국이자 강대국들이기 때문이다. 북쪽으로 러시아, 서쪽으로 중국, 남쪽으로 일본, 그리고 동쪽바다 저 멀리 미국이 도사리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국력으로 대한민국은 분명 10위권의 상위권을 자리잡고 있는 강대국이 맞지만,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에 비하면 아직도 '새 발의 피'처럼 조그마한 힘을 가진 약소국의 설움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기고만장하고 한국을 보기에 우습게 보던 강대국들이 슬슬 한국의 눈치를 살피며 설설 기는 모습까지..쿨럭쿨럭..암튼 그렇다는 얘기다. 당장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정상 들이 한국의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알랑방구를 까고 있는 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무엇보다 '한국의 협력'이 없으면 아쉬운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 나이 50살이 넘어서 이런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확실히 달라진 것이다.

내가 학창시절에 역사를 배울 땐 '약소국의 관점'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르게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희망은 '인적자원'을 충실히 활용해서 인재를 양성한 뒤에 '기술강국'이 되어 전세계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이 전부였었다. 그게 대한민국의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백범 김구께서 우리의 얼과 문화를 계승발전시켜서 '문화강국'이 되는 비젼을 보여주셨지만, 그게 어디 우리만의 발버둥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겠는가. 전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고 '환영' 받을 수 있고, 화룡점정으로 '환장'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걸 대한민국이 해냈다. 전세계인들이 '한국의 멋'에 환장해서 미친듯이 '한국 따라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한국사'였다. 이전까지 우리가 바라본 우리 역사는 '약소국의 관점'에서 풀어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풀어냈고,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타자의 목소리'에 크게 영향을 받는 소극적인 역사였다. 과연 이런 역사관을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의 역사관으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까?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역사 재조명이라는 관점에서 리뷰를 쓰는 와중에도 댓글에 태글을 거는 이들이 많았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일본보다 아래'인 것이 사실이니 일본에게 깝치다가 된통 당한다는 둥, 이승만, 박정희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발전할 수 있었으니 비난하기에 앞서서 존중하는 자세부터 바로 잡으라는 둥, 일제시대는 객관적인 사료로 입증할 수 있을만큼 서양의 식민통치보다 더 훌륭한 통치가 이루어진 시대였으니 비난을 하기에 앞서서 공부 좀 하고 제대로 비판을 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댓글도 받아봤다. 뭐, 해석에 연연하는 '역사학도'가 아닌 나이기에 나와 다른 해석을 늘어놓았다고 화를 내거나 열받을 일도 없지만, 이건 뭐 '상식'적으로 대응할 가치가 없을 정도니 대꾸를 할 가치도 못 느끼는 바다.

각설하고, 이제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관점으로 써내려 가야 한다. 그런데 '팩트'랍시고 우리의 역사를 우리 손으로 직접 먹칠을 하는 것에 열을 올리는 부류가 있어서 답답하다. 설령 그런 '역사적 진실'이 있다면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걸 애써 강조하며 '우리 역사' 전체를 끌어내려 부끄럽게 만드는 까닭이 무엇이냔 말이다. 흔히 말하는 '식민사관', '자학사관' 따위인데, 역사적 진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은 '부끄러운 역사'일지언정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다시는 그런 부끄러움을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한 반성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부끄러운 식민통치의 역사를 가졌으니 영원히 일본에 '굴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둥, 미국의 원조가 없었으면 굶어죽었을 것이니 영원히 미국의 노예로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한다는 둥, 사대주의도 이런 사대주의가 없을 정도로 떠들어댈 것이 대관절 무엇이냔 말이다. 이제는 이런 역사 교육은 탈피해야 한다. 그런 역사를 굳이 강조하면서 '일제에 굴종하고, 미국에 굴욕을 당해도 괜찮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개무시해도 된다는 말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전세계를 선도하는 역할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역사 교육을 준비해야 할 때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기에 굳이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정복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전세계는 대한민국이 아무리 '방산기술'을 고도화해도 이를 저지하고 막을 까닭이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함부로 공격한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참지 않았으며 아무리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도 호락호락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수 있다. 이 역시 역사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잘 살아도 우리 혼자 잘 살지 않으며 못 살아도 우리보다 못 사는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준 이에 대해서는 아무리 오래 지났다하더라도 그보다 더한 은혜로 보답하는데 아끼지 않는다는 '인류 공영'을 실천하는 역사가 있음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우리 역사를 통해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역사관을 가질 때가 되었다.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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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9권 - 연애열풍에서 입시지옥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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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9권 : 연애열풍에서 입시지옥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CXXX / 인물과사상사 3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쉰아홉 번째 리뷰는 <한국 근대사 산책 9>이다. 일제시대 36년간 거시적인 관점에서 '망국의 한'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라 잃은 슬픔이 이토록 사무치고 기댈 곳 없는 설움이 그토록 서러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민족은 그 슬픔과 설움의 현장에서 살을 에이는 고통을 견디며 삶을 이어갔다. 그 어둠속에서도 빛을 내는 존재도 있었다. 천지가 개벽하는 시대를 겪으며 그간 주목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일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고 손기정 선수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제시대를 큰 그림에서 처절하고 불우한 시절이었다고 평가내릴 수 있겠으나, 세세한 부분 부분들을 살펴보면서 낱낱이 평가해볼 필요는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일제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운 인생을 찾았다고 '일제시대 전체'를 백점 만점 주는 어리석은 짓은 제발 안 했으면 싶다. 손기정 선수가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른 뒤에 왜 고개를 푹 숙이고 승리를 만끽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건 '개인의 영광'은 더할나위 없이 기뻤겠지만 '나라 잃은 슬픔'과 함께 기뻐해줄 동포의 아픔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가 망하거나 말거나 개인적인 성취에 들떠서 환희를 만끽하고, 제 동포가 죽거나 다친 건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직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민족의 배반자들'은 일제시대가 아주 좋아 죽을 것처럼 좋았을 것이다. 천지개벽하여 새세상이 열린 것만 좋아라 하고 세상이 뒤집혀져서 피해를 보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로해줄 줄 모르는 철면피들에게 더 바랄 것도 없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근대사 산책 9> 관점 포인트 : 9권에서는 특히 1930년대 풍속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책내용을 처음 접하다보면 '신세계'가 펼쳐진 듯 싶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일제시대의 암울한 정서와는 사뭇 다르게 1930년대 조선인들은 생동감 넘치게 각 분야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선을 멀리하고 바라보면 조선인들의 활기찬 모습은 사라지고 암울한 이미지만 가득하다. 이런 기현상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허나 분명한 것은 일제의 철저한 억압과 수탈, 그리고 차별은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조선인을 위한 식민통치'는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일제는 아주 교묘하게 방향을 틀어서 조선인들이 가지게 될 불만을 '다른 곳'으로 풀어내도록 유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 어리숙한 군중들은 일제가 '허용'한 것들에 취해서 제 몸과 정신이 다 망가지고 생채기가 나는 줄도 모르고 활기 넘쳤고, 결국 진이 다 빠진 뒤에 제 손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허무함에 빠지게 되었다. 일제의 교묘한 방법이란 그런 허무감조차 '일제의 탓'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저 못난 것'만 탓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조선놈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근거불명의 명제를 들이밀면서 일단 불평불만이 많은 조선인(불령선인)들은 때리고 보는 식이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일제시대에 강요된 근대화를 겪으며 '자의식'을 키웠다. 이는 일본인들과 명백히 다른 점이다. 일본인들은 '저항'을 할 줄 모른다. 아무리 불평불만이 생겨도 '위에서 억누르면' 곧 잠잠해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문화는 '칼(사무라이)의 문화'라면서 명령에 불복하면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는 경험에서 체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 한국인들은 극렬한 저항을 한다. 부당한 것에 참지 않고 공정하지 못한 것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짓밟히면 더욱더 일어나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제뜻을 관철하려 든다. 이런 우리 민족의 드센 성정을 총칼로 다스리려 했으니 '무단통치'시기에 결국 사단이 나고 끝내 1919년 3·1운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뒤에 일제는 겉으로 '문화통치'를 내세우면서 한편으론 달래고, 다른 편으로는 얼르며 우리 민족을 '이간질'시키려 들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 내부의 문제'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으며 독립운동에도 난항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부분열과 갈등도 뚜렷한 '자의식'이 없다면 아예 발생하지도 않는다. 갈등의 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상'과 '신념'은 굳건해지기 마련인데, 이때 일제를 통하거나 국외유학을 경험하고 돌아온 이들이 전파한 '서양사상'과 '서양문화'는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신문물을 수용함에 있어서 한 가지 기준점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 좋은 것들을 자유로운 조국에서 아무런 간섭과 차별을 받지 않은 독립된 나라에서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준 말이다. 일제는 앞선 신문물을 조선의 청년들에게 선보이면서 '이것이 압도적인 일본의 문명이다. 그러니 저항하지 말고 누리고 즐겨라. 2등 국민으로 만족하면서 말이다. 이런 의도로 자랑을 했겠지만, '자의식'을 깨우친 조선인들에게 그런 헛소리는 먹혀들지 않았다. 차라리 조선인 차별을 하지 않고 그들의 말대로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대우하고, 출세의 기회도 똑같이 마련해줬다면 저들의 의도대로 일제에 순응하는 '착한 조선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차별이란 차별은 다하고, 수탈할 것도 몽땅 다하고서 굶주려 죽게 만들고서는 저런 헛소리를 늘어놓았으니 전혀 먹혀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1930년대 '여성문화', '대중문화', '소비문화', '생활문화' '중독문화' 등등 다양한 문화를 선보이며 눈이 팽팽 돌아가게 만들었지만, 일제의 속임수에 속아넘어가는 이들이 많을지언정 그렇게 속아서 산 세월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부당했는지는 경험해보면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문화적인 것들조차 조선인은 일본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꾀했으며, 조선인들이 일본인보다 잘나면 잘났지 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나 능력에서조차 뒤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를 테면 '자유연애'가 소개되자 '맹목적 연애'가 진짜 연애라면서 연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정도로 심취해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전통적인 '정조'를 우위에 놓던 것을 하루 아침에 추락시켜버리고 '연애'가 주는 낭만에 푹 빠져서 불륜조차 당당하게(?) 하며 수많은 대중들이 이를 유행처럼 따라하는 일이 벌어졌단다. 심지어 조강지처가 있는데도 바람 피운 것이 들통나자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 '저승'에서 이루겠다며 내연녀가 투신 자살을 하자 불륜남도 똑같은 자리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것이 신문에 대서특필 될 정도였다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라디오에 심취해서 라디오 청취를 넘어 '참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커피 '소비'는 마약에 중독된 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사교댄스에 빠져서 '춤바람'을 일으켰다. 거기에 전화, 기차, 자동차, 심지어 기독교라는 종교까지 빠져들고, 마음껏 휘저으며, 결국 '우리식'으로 풀어내고 우리만의 문화로 거듭냈다. 일제시대의 모습들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지 않았는가. 현재 전세계에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이 우연은 아닌 셈이다. 서양의 것, 일제의 것일지라도 일단 우리 민족의 손과 얼을 거치고 나면 결국 '한국문화'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 '우리 것'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우리 것을 다시 역수출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열광한다. 낯설지 않은데 무척 낯설게 만들어 버리는 '한국만의 흥 문화'가 오롯이 담긴 덕분이다.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일제시대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흥'으로 최악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 것'으로 재포장해서 다른 나라를 감동하게 만드는 저력이 말이다.

나가는 글 : 딴에는 무척 기묘하다. 이 책이 출간된 2008년에는 이런 감흥으로 이 책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차별받고 핍박받은 어두운 그늘속을 걷는 것처럼 침울하게, 때론 씁쓸하게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2026년이 된 오늘 다시 읽으니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는 100년 전의 우리 조상님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일제의 강요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근대화를 이끌었다면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정말로 만약이지만,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것'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낼 수만 있었더라면, 저들의 제국주의적 야만조차 자중하고 길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양은 저들의 힘에 도취되고 한껏 부풀어서 저 잘난 맛에 전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 '쟁탈전'을 벌였지만, 그 가운데 우뚝 선 나라 하나가 있어서 저들의 앞선 문물을 보여줬음에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저들의 것보다 훨씬 더 좋게 만들어내는 나라의 존재 앞에서 어찌 함부로 경거망동했겠냐는 말이다. 더구나 그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저들의 문물을 '재생산'해서 '역수출' 당하는 모습에 기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이 너무 과하다고? 현재의 대한민국의 위상 앞에서 쩔쩔매는 저들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라. 현재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우리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전세계 10위권 안에서 놀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통적인 강대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보면 정말 대단한 위엄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런 강대국들이 '제국주의'를 앞세워서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떨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자 '가해 당사국'이었던 것에 반해서,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송두리채 빼앗겨버린 '피해국'이었는데 불과 100년만에 그 위상이 뒤바뀐 것이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았을지언정 침략을 한 적이 거의 없는 나라인데, 현재는 '군사대국'으로 성장해서 그 어떤 나라도 함부로 건들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 흔한(?) 핵무기가 없는데도 말이다. 재래식 무기만으로 주변국을 넘어 전세계에 압도적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한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한류열풍을 넘어 '한국문화', '한국제품'은 일단 믿고 본다는 인식이 세계인들에게 각인되어 버린 현재다. 도대체 이런 신뢰를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준 국가나 문화가 역사상 몇 개나 있었을까? 이게 가장 놀라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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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8권 -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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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8권 :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CXXIX / 인물과사상사 3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쉰여덟 번째 리뷰는 <한국 근대사 산책 8>이다. 강준만 교수의 역사책을 읽으면서 '우리 역사'를 재조명해보려 다시 읽기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이승만', '박정희' 때가 좋았다는 타령을 하고, 심지어 '일제시대'가 100점 만점이라는 역사평가를 댓글로 다는 분들이 계시다. 뭐, 그럴 수 있다. 각자의 역사관으로 사료를 분석하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는데, 뭐라 하겠는가. 이제는 화를 내기에도, 일일이 반박하기에도, 귀찮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도 100점 만점을 줄까 말까인데, 이승만 100점, 박정희 100점, 일제시대 100점을 주겠다는 사람을 어찌 할 수 있을까? 그냥 냅두는 것이 정답이다. 세상에 '나만 옳고, 남은 틀리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알만 해지면 정신을 차릴 테니 말이다. 지금 윤석열이 그러고 있지 않은가. 저만 옳아서 '비상계엄'을 했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니 정당하다고 주장한다면, 고대로 돌려주면 된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얼마든지 '비상계엄'을 내릴 수 있고, 그것이 '계몽령'이라고 정당화 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찌 됐든 현직 대통령인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그럴 권한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정상'으로 말이다. '절대 권력'을 그런 식으로 쓰는 것을 '계몽령'이란 허울로 포장하는 꼼수는 도대체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 뭐, 그게 누구인지는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수 있지만 말이다.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근대사 산책 8> 관점 포인트 :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의 지위를 차지한 일제는 내친김에 중국 침략을 본격화 한다. 대만을 찝쩍거리고서는 자신감을 얻은 일제는 '조선'을 손아귀에 넣었고, 식민경영을 발판 삼아 '만주와 몽골'을 영향권 아래 놓더니, 이제 중국 본토를 장악하기 위해 첫발을 내딛으려 한다. 그 시작이 바로 '만주사변'이다. 얼토당토 않은 '모략질'로 침략을 시작한 일제는 삽시간에 '중일전쟁'으로 치달았고, 너무 욕심을 부려 중국을 한 입에 베어 먹으려 드는 바람에 결국 오래 가지 않아 역풍을 맞게 된다. 천하의 나폴레옹도 러시아를 공략하다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일제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런데도 일제는 무대포로 밀어붙이다 '패망의 길'을 앞당겼을 뿐이다. 하지만 1930년대에는 아직 일제의 운이 다하지 않은 모양이다.

일제가 중국본토 침략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920년대까지 줄기차게 '독립전쟁'을 이어오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30년대 들어서 대단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일제는 교묘하게 '문화통치'를 하면서 우리 민족을 '갈라치기'하려 들었고, 실제로 이 방식은 잘 먹혀 들었다. 무단통치 시기에는 무도할 정도로 '무단통치'를 하며 차별이 심했지만, 문화통치 시기에 접어들자 조선인들에게 표면적으로나마 '교육의 기회'도 제공하고, '취업의 길'도 열어주었으며, '성공을 꿈꿀 수 있는 희망'까지 심어주었다. 허나 이런 것들이 일종의 '기만행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일제는 '조선인 차별'을 결코 멈춘 적이 없으며 날이 갈수록 더 심화시켰고, 표면적으로는 지식인들을 '우대'하는 척하며 회유했고, 결과적으로 회유 당하든, 저항을 하든, 공평하게 '차별'을 당연하게 행했다.

그러면서 그런 '차별'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폈는데, 그것이 당시 유행하던 '우생학'과 만나면서 더욱 노골적이 되었다. 우생학은 애초에 '우열의 차이'가 결정되어 있으니, 우등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회진화론'을 앞세워 그럴 듯한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일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조선민중들을 상대로 '박람회' 같은 것을 구경시키면서 관람료를 강제로 수탈하는 교묘한 방식으로 세뇌시켰다. 이를 두고 '식민지사학'이니 '황국신민화운동'이니 말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에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 정말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해방된 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왜곡된 사관'에 빠져들어서 헤어나질 못하고, 그런 못된 짓을 배워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대로 갈라치기하려 드는 정치집단이 여전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생각에 빠져든 이들은 저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로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애꿎은 민주시민들을 해코지하고, 민주주의 근간을 뿌리째 뽑아들려고 무던한 행동들을 일삼고 있다. 정말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그럼 1930년대 우리 민족은 어떤 일을 했는가? 한인애국단인 이봉창과 윤봉길이 '폭탄 의거'를 행하며 우리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떨쳤고, 일제의 철저한 감시속에서 활동이 위축된 독립운동가들은 '좌우합작'을 하며 수단과 방법의 차이는 차치하고, 우선 '독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신간회'를 조작해서 거대한 단결을 보여주려 했었다. 허나 어처구니 없게도 일제는 '묻지마 감금'이라는 방법으로 아무 근거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조선인'을 구속하고 감금하고 고문과 심문을 하는 과정에서 '신간회의 존재'를 밝혀내고 만다. 이른바 '105인 사건'을 시작으로 비밀조직이었던 '신간회'가 들통이 났고, 일제의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에 의해 '신간회'는 결국 해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신간회'의 한쪽 날개를 맡았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세력들이 '우리의 독립 의지와 열망'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소련의 '코민테른'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어리석음을 보여줌으로서 끝내 '신간회'가 해체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조선인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들을 멍청하다고 매도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과 '공산주의 국가 건설'이 너무도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마르크스 사상에 입각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소련의 위업을 누가 쉽게 흠을 잡을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그런 성공한 세력이 주축이 된 '코민테른'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어련히 알아서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철썩 같이 믿었던 조선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들을 순진하다고 매도하기에는 '시대적 상황'이 너무 그쪽 편이었다. 어쨌든 '소련의 지시'를 받는 코민테른의 명령은 당시 일제치하에 놓여 있던 '조선 독립운동가'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었고, 이를 '이상적인 방법'으로 오판한 사회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신간회 활동'보다 '코민테른의 지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 지나고 나니 '코민테른의 지시'가 허울만 좋은 이상이었을 뿐, 현실의 녹록치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간파하지 못했었다고 알 수 있지, 당시를 살던 사람들은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가는 글 : 그렇다면 '신간회'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비록 신간회 활동은 독립이라는 결실도 얻지 못하고, 우리 민족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일제의 철저하고 교묘한 방해공작 속에서도 우리 스스로 힘을 모으고 독립을 하겠다는 단단한 의지를 보여주었기에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사상적으로 '다른 조직'이 '한 몸'으로 행동하기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종파'가 다른 종교인들을 한데 묶어놓고 '한 목소리'를 내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신간회'는 좌우합작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그리고 실패하긴 했지만, 그건 우리 내부의 분열 때문이 아니었다. 일제의 감시망조차 피해 활발히 활동했었는데, 정말 운이 지지리도 없었던 것이다.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는 격이었고,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친 어망에 잠수함이 걸린 꼴이 었다.

그럼, 만약 '신간회'가 발각되지 않고 애초에 계획했던대로 활동을 이어나갔다면 우리 민족의 역량만으로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을까? 아쉽지만 그건 아니다. 그건 앞서 언급한 '소련 코민테른의 무지' 때문이었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들에게 '코민테른의 결정'은 지상명령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당시 소련은 일제를 지지했고, 조선의 독립에는 관심이 없었다는데 아주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의 '외교역량'이 제대로 발휘되는 상황이었다면 진행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빼앗긴 채 망해버린 나라이기에 다른 강대국의 관심도, 지지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다. 이봉창은 비록 실패했지만, 폭탄을 일왕을 향해 던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인들을 기겁하게 만들었고, 윤봉길은 상해에서 거사를 성공시킴으로써 중국의 장개석을 '우리 편'으로 돌리게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외교적 역량이 발휘되면서 '조선의 독립'을 전세계에 천명하고,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독립시키자는 카이로회담과 얄타회담의 결실을 갖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독립운동가'들이 중국군에 편입이 되어 일제와 싸울 수 있었고, 비록 '조선독립군'이란 명칭으로 당당히 일제와 전쟁을 벌일 수는 없었지만, 일제와 싸울 수만 있다면 '중국군'이든 '소련군'이든 가리지 않고 참전하여 실력행사를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일제에 의해 '식민지인'이 되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조선인은 중국에서도, 소련에서도 결코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려인 강제이주'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비극이었다. 그리고 일제는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수탈과 차별을 심화했고, 급기야 '병참기지화'와 '민족말살'이라는 끔찍한 만행을 우리 민족에게 가했다. 심지어 친일을 행하던 민족배신자들도 일제에 차별받고 고통받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런데도 벨도 없이 일제시대를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현존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게 그저 '해석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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