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 - 일본 서브컬처 캐릭터로 나만의 페르소나 챗봇 만들기
김유영 지음 / 브라운출판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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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 : 일본 서브컬처 캐릭터로 나만의 페르소나 챗봇 만들기> 김유영 / 브라운출판사 (2026)

[My Review MMCCCLXII / 브라운출판사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아흔한 번째 리뷰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기적을 구현할 수 있는 <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AI 제작만을 위한 책이라고 보면 아쉽다. 왜냐면 'AI 시대의 인문학적 교양'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인문학자를 위한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적인 내용도 다루고 있지만, 그저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긴 하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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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 관점 포인트 :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은 '복불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대로 고른 책도 있지만, 기대하지도 않았던 엉뚱한 내용 때문에 깜짝 놀라고 실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내게 그런 경우인데, 오로지 '인문학'이라는 세 글자만 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그럼 지금부터 AI로 챗봇 만들기 실습을 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급당황했다. 내겐 코딩을 다루는 지식도 없고, 컴퓨터공학은 말할 것도 없고, 전자공학적 수식을 다루는 능력은 더더군다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명령어'가 튀어나오고 '파이썬 코드' 같은 것들이 지면을 장식하면서 AI 실습을 하겠다고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 책에 대한 실망을 할 즈음에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적 감성'이 담긴 교양지식이 흘러나오면서 당황함을 반가움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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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에서 'AI 실습'하는 과정은 두 눈을 뜨고 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문학과 역사, 철학, 언어학, 문화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만족할 정도의 고급진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더구나 지은이가 '일어일문학과'를 전공하고 오사카대학에서 문학 석/박사 학위까지 땄으며, 현재는 동덕여대에서 일본어학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며, 뒤침(번역)과 문화평론까지 두루 섭렵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실력자였기에 그 내용이 수준급이었다. 이런 프로필도 모른채 책을 읽을 때에는 한국사람이 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챗봇을 만들려고 그러나? 한국 애니메이션도 현재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적인 캐릭터로 AI 챗봇 실습을 해도 충분할텐데? 라면서 비꼬면서 읽어나갔는데, 나중에 확인하고서야 그랬구나 싶었다. 암튼, 기대하지 않았고 당황했는데도 다 읽고 나니 뿌듯한 경험을 선사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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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핵심 내용은 '좋아하는 캐릭터와 실제 대화를 할 수 있는 AI 튜터를 만드는 것'이다. 상상을 해보라.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내 손으로 만들어서 매일 대화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에스파의 카리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캐릭터가 '내 컴퓨터', '내 스마트폰', '내 워치' 등에서 실제로 프라이빗한 대화를 실제로 나눌 수 있다는 상상 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것이 상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AI 챗봇'으로 실제 구현이 가능하다면 어떻겠는가? 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지 않겠는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왜일까? 하나의 캐릭터를 내가 좋아하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 더듬어 보면 알기 쉽다. 그 캐릭터가 만들어진 '배경'부터 시작해서 '성격', '인성', '교양', '취향', '말투' 등등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냥 '겉모습'만 카리나라고 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를 AI 챗봇으로 구현하려고 하면 거의 완벽한 '인문학적인 정보'를 다 때려넣어야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실제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방대한 정보를 담을 그릇(하드디스크, 저장장치)은 또 얼마나 커야 할 것이며, 그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다루기 위한 메모리칩은 또 얼마나 성능이 좋아야 하는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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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여기서는 이런 구현이 실제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실패'를 밑바탕에 깔고서 효율적인 '실습'을 해보자는 것이다. 만에 하나 성공하면 대박인 것이고, 실패해도 실망하지 말고 성공할 때까지 한 번 해보자는 '도전정신'과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충분한 '소스'가 제공되어 있다고 보면 좋겠다. 적어도 이 책을 따라하다보면 분명히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 AI에게는 '똑같은 질문'을 던져도 항상 '같은 대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변수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적 교양'을 더욱 풍부하게 제공하고, 감안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럼 성공한다는 가능성을 믿고 이 책에 나온 설명에 따라 실행해보면 될 것이다. 언젠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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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처음에 읽을 때에, 기왕 AI 실습을 하기 위함이라면, 굳이 '일본어'로 실습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실패한 데이터라도 '한국어'로 실습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일텐데 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은이가 '일본문화' 전공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그랬구나 싶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이니 '그런 예시'를 들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실습은 '일본어'로 구현했지만, 능숙해지면 언제든 '자신만의 취향'에 따라 적용시키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소견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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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아무리 AI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는 한 인문학적 교양을 갖춰야 한다'는 언급이었다. 아무리 인공지능 AI가 똑똑해지고 '간단한 명령어'만으로도 모든 것을 쉽게 해결해 주는 시대가 되었더라도 '주어진 정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AI의 정보처리가 서툴 수밖에 없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치고 수정하는 작업을 '인간'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디테일한 작업을 인간이 꼼꼼하게 해주는 것은 지금의 AI기술 수준이 미미하기 때문이고, 다가올 미래에는 이런 힘든 작업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똑똑한 AI'가 등장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세상이 도래하면 결국 인간은 쓸모 없어져서 도태 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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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시무시하고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인간만이 가진 재능이다. 그것도 안전하게(?) 암울한 미래를 말이다. 만약 AI가 실제로 그런 어두운 미래를 구현하게 되면, AI는 가차없이 인간부터 제거하려 들 것이다. 물론 그런 미래가 도래하도록 냅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실제로 AI가 그럴 가능성이 많지 않은 까닭은 인간은 할 수 있는데, AI는 할 수 없는 것이 딱 한가지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창조하는 능력'이다. 이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능력을 AI가 구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AI의 작동방식이 '주어진 정보'에서 인간이 풀기 힘든 난제를 쉽게 푸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반론을 던지는 과학자들은 '초지능'을 갖춘 AI는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에 더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나갈 것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까지 AI는 서슴 없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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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까지 여러 제약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초지능'을 갖춘 AI를 그냥 방치하게 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끝장이 날 것이기 때문에 감히 그 마지막 단계를 넘어서지 않으려 하고, 막으려는 노력도 병행할 것이다. 마치 '핵폭탄'을 만들었지만, 감히 '함부로' 쓰지 않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더 끔찍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초지능 AI'가 그런 제약까지 훌쩍 넘어버리고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하지만...당분간은 그런 상상을 발휘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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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내 최애 캐ㅣ릭터'와 실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AI 챗봇을 구현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방대한 '세계관'을 주입해야 하고, '언어학'적으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깨알같이 '알고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캐릭터를 구현하고 실제 대화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는 인간이 일일이 '조작'해줘야 제대로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할 소양이 바로 '인문학적 교양'인 것이다. 간단한 질문으로 방대한 지식정보를 AI가 쉽게 찾아주는 세상인데도 인간이 '방대한 인문학적 교양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게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단순히 AI에게 "~을 만들어줘"라는 질문으로 뚝딱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이 일본 서브컬처 캐릭터가 한 대사의 일부로 유명하다는 것 같긴 한데, 내가 그쪽으로 아는 것이 많지 않아 생소하지만, 틀림 없이 그런 느낌으로 써놓은 제목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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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 - 월가의 정보를 수익으로 바꾸는
박종훈 지음 / 한빛비즈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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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 : 월가의 정보를 수익으로 바꾸는> 박종훈 / 한빛비즈 (2026)

[My Review MMCCCLXI / 한빛비즈 18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아흔 번째 리뷰는 서학개미들의 주식투자 일타 강사 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노하우가 담겨 있는 <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다. 평생을 절약과 저축만 하고 살았던 나에게 '주식투자'는 너무도 어렵고 넘기 힘든 벽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코스피가 4천, 5천, 6천, 7천을 넘어 9천까지 치솟자 '나도 함 해볼까?' 싶어서 소심하게 ETF 상품에 뭉칫돈을 넣었다가 현재 6천선에서 '박스권'이 형성되어 오도가도 못하고 상황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다행히 대출이나 융자를 받아서 주식투자를 한 것은 아니기에 그냥 내돈 손해만 보고 있기는 한데, 수년 동안 아끼고 안 쓰고 모은 돈이 불리지도 못하고 깎아먹고 있는 상황이라 그냥 피눈물 쬐끔 흘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주린이'인 나도 주식투자를 제대로 배워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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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 관점 포인트 : 솔직히 주식관련 책을 여러 권 읽기는 했다. 하지만 주식투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않고 있다. 왜냐면 내 투자성향이 '주식'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기투자' 말이다. 나는 '적금'이나 '예금' 같은 작지만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는 투자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맞다. 나는 '안정형 투자성향'을 갖고 있는 편이다. 그냥 묻어두고 신경도 쓰지 않다가 필요할 때 꺼내쓰는 걸 좋아한다. 물론 '공격형 투자'를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넣다 뺐다를 반복하며 '차익'으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는 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길래 그렇게 확신에 찬 투자를 하고 엄청난 수익을 챙기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즐겨보는 동영상은 무엇인지, 주식관련 뉴스는 어디를 보는지도 궁금해했다. 그래서 직접 챙겨 보기도 했지만, '원론적인 이야기'를 빼놓고는 들어도 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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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편으론 생각도 해봤다. 누구나 보고 접할 수 있는 '뉴스정보'를 가지고 투자를 하면 이미 '레드오션'이라 수익이 나더라도 조금 날 뿐이며, 끝물이라 손실을 볼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그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고급 뉴스'를 챙겨봐야 '블루오션'에 들어갈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엄청난 수익을 챙길 수 있을텐데, 그런 고급 정보는 어디서 얻을 수 있는 거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도 좋은 주식투자 방법은 아니었다. 왜냐면 나 같은 '주린이'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인데, 시장에 민감한 '투자현실'에서 통할 방법이 아니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출처도 불분명한 뉴스를 통해서 콕콕 집어주는 '종목'에 투자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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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에 이 책 <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를 읽으니, 내 짐작이 대부분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제대로 된 주식투자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박종훈이 말하는 방법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돈으로 내 이익을 챙기는 것이니 '자기만의 방식'으로 투자를 해야 손해를 봐도 아깝지 않고, 좋은 공부를 했으니 '수업료'를 톡톡히 치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투자를 하면 그냥 '도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운빨에 맞기면 그건 '돈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뉴스'를 읽으라는 말이다. 투자의 거장 '워렌 버핏'도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첫 번째 일이 바로 '뉴스 챙기기'란다. 모름지기 투자자라면 '뉴스'는 날마다 챙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날마다 '뉴스'를 보면 투자에 도움이 되는 '시그널'과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노이즈'로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고 한다. 그럼 '시그널'과 '노이즈'의 구분법이 궁금해진다. 그 구분은 바로 '시장의 흐름'을 바꾸면 시그널, 바꾸지 못하면 노이즈로 판단할 수 있단다. 물론 백발백중은 아니지만 대체로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으면 투자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 가운데 박종훈은 '시그널'을 감지할 수 있는 단서, 다시 말해,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단서로 '금리 정책'과 '경제지표', 그리고 '실적발표와 가이던스(기업의 실적전망)'을 꼽았다. 여기에 하나 더 '오피니언 리더'를 꼽았다. 말 한마디로 주가를 크게 요동치게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이를 테면,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의 돌출행동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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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투자의 기본'이니 너무 당연한 얘기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주식투자도 기본에 기본을 충실히 따를 것이 가장 현명한 투자방법이다. 더구나 미국주식투자는 전세계 경제인들이 모이는 거대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겠느냔 말이다. '불확실성'에 투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거대한 시장일수록 투자자들의 성향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뿐이다. 돌발변수가 생기면 증시가 출렁거리고, 그러면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큰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그러니 거대시장일수록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 또 조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제교과서'처럼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가가 예측하는대로 따라서 움직이는 시장이 바로 '미국주식'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도 기본에 기본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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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뉴스 속에 숨은 신호를 읽어라. 레거시 미디어를 즐겨찾기 하라. 뉴스는 단순 정보전달이 아닌 해석과 전망을 중점으로 읽어야 한다. 레딧이나 X 계정 활용법. 꼭 확인해야 할 월가의 경제지표들. 연준과 정부와의 관계에 집중하라. 트렌드가 시장을 장악한다. 그런데 시장을 읽고 싶다면 '월가의 포지션'을 먼저 보라. 다시 말해, 월가가 베팅하는 곳을 주목하라. 등등등 이런 깨알 꿀팁 같은 정보도 이 책에 가득하다. 모두 '기본'에 해당하고 투자전문가들이 매일 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문제는 이런 투자의 기본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 중에도 수익을 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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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그에 대한 답을 말하기 전에, '바빌론의 부자들'이 돈을 모으는 방법부터 짚어보자. 이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쓰는 돈'을 '버는 돈'보다 적게 하면 반드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급 100만원을 버는데 한달에 90만원을 쓰면 부자가 될 수 있고, 월 10억을 벌어도 한달에 12억을 쓰면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근데 이를 실제로 실천하게 되면 돈이 차곡차곡 모이게 된다. 내가 그랬다. 나는 한 달 수입으로 300만원을 넘겨본 적이 없다. 첫 월급은 67만원이었고 그 뒤로는 150만원 정도를 벌었고, 현재는 200만원 안팎을 벌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현재 서울 인근에 30평짜리 아파트를 내집으로 장만했고, 통장잔고도 쓸만큼은 있다. 물론 빚은 한푼도 없고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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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이 내 투자성향은 '안정형'이다. 그래서 은행에 적금이나 예금을 드는 방법을 주로 했다. 월급이 적은 시절에는 '푼돈'을 모았다. 하루에 1000원씩 출근할 때마다 가까운 은행에 가서 날마다 입금하고 또 입금했다. 그렇게 한 달을 모았더니 2만원이 되었고, 일 년을 모으니 24만원이 되었다. 이자가 붙어서 24만 몇 천원이 되었고 말이다. 그걸 예금으로 묶어 놓고 또다시 '푼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월급이 조금 올라 넉넉해지니 1000원을 2000원으로, 5000원으로 늘려 나갔다. 그러다 지금은 한 달에 10만원씩 '적금'을 붙는다. 그렇게 1년을 모으면 또다시 '예금'으로 묶어 놓고 적금을 2개, 3개, 거의 매달 만기가 찾아오는 '적금'을 붙고 있다. 그러니 한 달에 120만원 상당은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적금'으로 나가게 된다. 하지만 '예금'은 계속 불어난다. 120만원씩 묶어 놓고 또 묶으며 10년, 20년이 지나면 상당한 목돈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아파트를 구입할 때 대출을 받았다. 그 대출금도 그런 식으로 모은 돈으로 메꿀 때도 있지만, 매달 여유가 생기면 꼬박꼬박 저축액을 불려가며 대출금 상환을 앞당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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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본'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안정적으로 돈을 불려 나가는 방법의 기본은 이렇게 아끼고 안 쓰고 모아서 불려나가는 방식으로 하는 거란 말이다. 만약 내가 일찍부터 '주식투자'에 눈을 떠서 이렇게 푼돈을 모아 '삼성전자'에 꼬박꼬박 투자했다면 지금은 이재용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늦게 나마 차곡차곡 주식투자금을 늘려나가며 안정적인 '우상향 성장주'에 적으나마 투자금을 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주식이 폭락해서 '마이너스' 신세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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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식투자는 이런 기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더 다양한 투자방법이 있고, 시장을 읽어내는 기본기만 닦으면 그 방법에 눈을 뜰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실전경험'이 없다는 것일뿐,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더욱 확신이 선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공격형 투자형'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확실한 투자성공을 배우려 노력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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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삼국지 - 최태성의 삼국지 고전 특강 ㅣ 최소한의 교양 수업
최태성 지음, 이성원 감수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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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삼국지 : 최태성의 삼국지 고전 특강> 최태성 / 프런트페이지 (2025)

[My Review MMCCCLX / 프런트페이지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아홉 번째 리뷰는 '소설 삼국지'를 읽는 가장 쉬운 공식을 일러주는 <최소한의 삼국지>다. 최태성의 한국사 특강을 듣고 본 수강생만 무려 7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일타 강사'라고 소개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런 최태성이 이번에는 '소설 삼국지'를 꺼내 들었다. 일단 최태성이라는 '네임벨류'만으로도 기대치가 샘 솟는다. 허나 너무 쉬운 강의가 독이 되었을까나? 대한민국에 '삼국지 매니아'가 너무 많은 탓에, 이 책이 고수들에게는 그닥 와닿지 않는, 너무 '기초'적인 설명이라 아쉬움도 컸다. 허나 제목에도 적혀 있다. <최소한의 삼국지>라고 말이다. 그럼 '소설 삼국지'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공식을 살펴보러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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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삼국지> 관점 포인트 :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적 기초 교양은 <삼국지>로 통한다. 그만큼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가 조선 중기 16세기에 소개되었다고 하니 무려 400여 년간 인기몰이를 해온 것이다. 우리 민중들이 즐겨 듣던 '판소리 열두 마당'에도 '적벽가'가 널리 불렸을 정도로 그 인기는 꾸준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다시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대신 '소설'보다는 '유튜브' 등에 짧은 쇼츠를 통해서 다채로운 '삼국지 강의'가 선보이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쇼츠를 비롯한 동영상 강의만 보다보면 '깊이'가 부족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10권짜리 장편대하소설을 읽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고 말이다. 그래서 출판계가 꺼내든 것이 다름 아닌 '한 권짜리' <삼국지>다. 이 책 <최소한의 삼국지>도 그 일환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무려 '최태성'이다. 이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무한히 높아질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 부문 '일타 강사'로 소문난 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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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책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소설 삼국지'에 빠삭한 독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본 공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삼국지 3대 대전'으로 초집중 요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이 그것이다. 왜 이 세 차례의 전쟁이 '소설 삼국지'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공식일까? 물론 엄청 큰 규모로 벌어진 전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소설 삼국지'는 그냥 허구적인 내용으로 창작한 소설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이해가 쉬운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중점적으로 봐야할 대목이 무엇일까? 바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해야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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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 좀 해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을 아무리 외워봐야 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관 관계'부터 사건의 앞과 뒤에 벌어진 '인과 관계'와 '결말 연계'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역사공부가 즐거워지고 성적도 쑥쑥 오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일타 강사'들은 그저 달달 외우는 공식만 알려주지 않는다. 그 공식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주면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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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최소한의 삼국지>를 다시 보자. 왜 '관도대전'이 중요할까? 단순히 조조와 원소가 싸워서 조조가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7만 조조군 vs 70만 원소군'이라고 보면 조금 이해가 쉬워진다. 그리고 조조가 '어떻게' 10배 차이를 극복하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는지 이해하면 '소설 삼국지' 초반에 벌어지는 여러 군웅들의 치열한 싸움이 이해되고, 관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조조가 어떤 결과와 이득을 챙겼는지 분석 가능하면 '인문학적 교양'이 쌓인 것이고, 일상 대화에서도 '관도대전'과 비슷한 국제뉴스가 나오면 국제정세의 판도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진짜 교양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애초에 조조가 원소를 승리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냐면 객관적인 전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수 vs 다수'의 싸움에서 소수가 대승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관도대전'은 그 유명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승리의 비결이 같기 때문이다. 작은 소년이 거인을 상대로 승리한 비결은 '힘의 대결'이 아니라 '지략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슬링어(돌팔매)'라는 무기로 거인을 제압했던 것이다. 단순히 돌을 잘 던졌다가 아니라 '적재적소'에 급소를 찌르고 아군의 빈틈을 솔직히 '인정'하고 적군의 빈틈을 전력을 다해 몰아부친 결과 70만이었던 원소군은 고작 7만에 불과한 조조군에 완패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군은 원소군의 숨통을 조여 완전히 전멸시키고 '하북의 진정한 주인'으로 일어섰다. 그 결과 조조는 '중원'의 참주인이 되었고, 명실상부한 황제보다 더 황제 같은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관도대전의 승자'가 된 조조는 더는 자신의 암살시도 같은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황제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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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적벽대전'을 살펴보자. 황제처럼 군림하게 된 조조가 남쪽을 정벌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래서 강동의 손권을 치기 위해 먼저 '강동의 길목'에 해당하는 형주땅을 차지하려 들었다. 그런데 마침맞게 그곳에 '유비'가 있었다. 그래서 첫 시작을 유비가 지키고 있는 '신야'부터 조지고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웬걸 유비가 달라졌다. 조인을 상대로 가뿐히 승리해버린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유비에게 '책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서서' 말이다. 그간 유비에게는 변변한 책사가 없어서 서주나 여남 등 '거점'이 생겨도 지켜내지 못해 지리멸렬 했었는데, 서서라는 책사가 생기자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유비에게 책사를 빼앗으려 했다. 그렇게 서서를 잃은 유비는 망연자실 했지만, 삼고초려를 통해서 '제갈량'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천하삼분지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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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하삼분지계'가 '적벽대전'의 앞과 뒤를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촉오 삼국이 형성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적벽대전'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적벽대전 직전과 직후를 살펴보면, 유비에겐 여전히 '거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대전 이후에 '형주땅'을 차지하고, 나아가 '익주땅'까지 꿀꺽하여 촉한의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그게 바로 '천하삼분지계'의 묘미였고, '제갈량의 대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하나의 묘미는 '적벽대전'에서 실제로 전투를 벌인 것은 '100만 조조군 vs 10만 손권군'이란 사실이다. 유비는 직접적인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고서 '유기의 영지'였던 강하에 틀어박혀 있다가 조조군이 적벽에서 대패를 하고 퇴각하는 길목인 '화용도'에서 조조군을 뒤쫓아 전리품을 챙겨 이득을 보았던 것이다. 그 뒤에 찾아온 주유를 속여서 '남군성'을 차지하고, 강릉과 양양까지 유비의 영지로 차지한 뒤에 영릉, 장사, 계양, 무릉까지 확장시켜 '형주땅'의 주인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이렇게 싸움은 조조와 손권이 하고, 이득은 유비가 차지하는 것이 '적벽대전'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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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릉대전'은 왜 일어났을까? 적벽대전에서 유비가 모든 것을 날로 먹은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손유동맹'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관우의 실책'이 한 몫했고, 포로로 붙잡힌 관우를 손권이 '죽임'으로써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그래서 조조와 맞서기 위해서 동맹을 맺은 유비와 손권은 자중지란을 일으켰고, 그대로 '이릉대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1년이 지나도록 싸움은 장기전으로 들어갔는데, 초반에는 유비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유비의 분노가 컸던 덕분이고 손권쪽에 주유와 여몽 사망 이후에 변변한 인재가 없었던 탓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다 '육손'이란 약관의 총대장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수세에 몰리던 손권군이 패배하지 않고 '수성'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활발했던 초반의 승리와 달리 전투도 없이 서로 대치하는 상태로 오랜 시일이 지나자 먼저 지친 쪽은 대군을 거느린 유비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순간의 실책으로 유비군은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숲속으로 '영채'를 옮기고 일자로 길다란 '장사진'을 펼치자 육손은 드디어 때가 왔다며 '화공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장사진을 펼친 유비군의 측면을 노려 '소수 병력'으로 '대병력'을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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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최소한의 삼국지>는 이렇게 '3대 대전'의 맥락을 한 눈에 파악하게 해줌으로써 방대하고 길고 긴 '소설 삼국지'를 독파하는데 든든한 '지렛대'가 될 수 있는 만능열쇠를 쥐어 준다. 그러면서 최태성은 하나 더 던져준다. '소설 삼국지'를 읽는 키워드로 '절제'를 꼽은 것이다. 한마디로 '참고 견디는 자가 끝내 승리를 거둔다'는 진리를 풀어준 것이다. 3대 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군을 몰고온 관도대전의 원소군, 적벽대전의 조조군, 이릉대전의 유비군은 결국 패배했다. 그리고 반대로 소수였던 조조군, 손권군(주유), 손권군(육손)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만약 소수의 열세인데도 참지 못하고 맞붙었다면 결국 패배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잘 참고, 잘 버티고, 잘 극복해준 덕분에 끝끝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고, 이후에 벌어진 '판도'에서 유리한 이점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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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를 읽다 보면, 3대 대전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비도 어려움과 고난을 잘 버티고 극복한 결과 '촉한의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지 않은가. 그래서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가 생기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한 눈에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을 논하지 말라"다. 이는 단순한 횟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포인트'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소설 삼국지'를 열 번 읽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줄거리만 달달 외울 뿐, 사건와 인물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읽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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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소설 삼국지'를 몰라도 상관이 없다. 보통 10권의 분량이고, 한 권에 300쪽이면 무려 3000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하루에 한 권씩 읽어도 열흘이나 걸리고, 사흘에 한 권씩 읽어도 한 달 내내 읽어야 한다. 뭐, 재미가 있으니 그렇게 읽어내는 분들도 많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걸 세 번이나 읽으라면 석 달 내내 '소설 삼국지'만 들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충 100일 동안 읽게 될텐데 할 수 있겠는가? 웅녀도 삼칠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이 되었으니 굳은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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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무려 2000년 전에 벌어진 이야기를 왜 현재의 우리가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답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소설 삼국지'에 엄청 많은 지혜가 담겨 있다하더라도 해묵은 정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소설 삼국지'는 여성을 폄하하고 남성들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등 오늘날의 올바른 젠더 가치관에도 어긋나는 불편한(?) 내용이 가득하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수천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하는 일이라고는 '전쟁'과 '사기' 등 남의 등을 치는 등 '속임수'가 판을 치고, 서로 뺏고 뺏기는 '도덕불감증'이 여실한 내용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부정적인 내용이 가득한 책인데도 '필독서'라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고 또 읽어야 할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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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맞는 말이다. '소설 삼국지'는 요즘의 정서와 가치관이 추구하는 '올바름'과는 거리가 먼 축에 끼인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는다. 부정적인 내용일망정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의 국제정세를 보면 정말이지 '혼돈, 그 자체'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팍스 아메리카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마치 후한말 황제가 무능해서 환관들이 국정농단을 벌여 세상이 문란해지고 백성들의 삶이 고달퍼지자 여기저기 난이 일어나고,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해서 천하가 뒤바뀌는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의 실수'는 계속 똑같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힘에 의한 평화는 힘이 부재하는 순간 깨어지기 마련이다. 황제의 권한이 강하면 국가는 안정되겠지만 반대가 되면 국가는 어지러워지기 마련이다. 오늘날에도 미국이 강했기에 평화가 지속될 수 있었는데, 그 반대가 되니 평화가 깨어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무능한 지도자'가 똥뽈을 차는 순간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과연 이런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영웅의 등장'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영웅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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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설 삼국지'가 예언서는 아니기에 일대일 대응하듯 매칭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속고 속이는 계책과 뺏고 뺏기는 전쟁이 한가득 펼쳐지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지혜와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필독서'로서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방대한 소설이라 읽기를 망설이고 있다면, 이 책 <최소한의 삼국지>가 대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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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 1910 망국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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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 1910 망국> 굽시니스트 / 위즈덤하우스 (2025)

[My Review MMCCCLV / 위즈덤하우스 4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네 번째 리뷰는 그동안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 치우친 세계사에서 벗어나 대한민국과 그 주변국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풀어낸 <본격 한중일 세계사 20>이다. 무려 8년 동안의 대장정이었다. 1839년 아편전쟁부터 1910년 한일강제병합까지 70여 년간의 한중일 동아시아사를 중심으로 동시대 서구열강의 속내까지 모두 20권에 오롯이 담았다. 솔직히 이 책으로 '동아시아사'만 따로 빼내어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가깝고 먼 주변국들의 역사를 바라본 관점은 참으로 신선했다. 그래서 모두 30만 원이 넘는 작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시리즈가 출간할 때마다 매 번 구매를 해서 이처럼 완독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앞부분의 내용은 읽고 또 읽기도 했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완간'하기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만큼 '읽는 맛'이 최고인 역사만화였다. 그래서 굽시니스트를 '검색'하고 다른 작품도 병행해서 읽기도 했지만 이 책을 제외하고는 죄다 '병맛'이라...쿨럭쿨럭. 암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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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관점 포인트 : 20권의 시작은 러일전쟁의 중반을 넘어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일전쟁이 종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일제의 만행과 고종의 무능력함, 그리고 나라를 팔아먹는 길을 '애국'이라, 아니 '시대조류'라 철떡같이 믿은 친일파와 그런 세력을 처단하고 나라 잃은 망국의 설움을 '결기'로 보여준 의병의 활약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역사만화는 언제나 '한정된 분량'이라는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하기에 어떡해서든지 20권으로 마무리하려는 '억지'가 보여 아쉽긴 하지만, 1권 더 추가해서 '구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적당히 마무리해주셔서 작가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 까닭은 어찌 되었든 '망국'이라는 새드엔딩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새드엔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방을 넘어, 전쟁을 넘어, 독재를 넘어, 그리고 외환위기와 월드컵4강신화, 세 번의 대통령탄핵이라는 큰 산봉우리를 넘어 지금의 미란전쟁까지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선진국과 강대국을 넘어 진정한 선도국가가 되기까지 지난한 현대사를 모두 설파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21권이 아니라 100권이라는 '역사만화의 금자탑'을 새로 쓰게 되었을 것이다. 20권 쓰는데 8년이 걸렸으니 100권을 넘기려면 40년을 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굽시니스트라는 작가가 죽기에 앞서 독자인 내가 먼저...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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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권의 내용은 역사를 조금 공부한 이들이라면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라 특별할 것은 없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피의 일요일'을 기점으로 점차 나락행 열차를 탄 것도 너무 유명한 일화이고, 일본군은 되도 않는 작전으로 만주벌판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을 쌩으로 갈아버린 것도 너무 잘 알려진 뻘짓이었으며, 미국의 중재로 가까스로 러일전쟁을 마무리한 일본이 '포츠머스 조약'에서 얻은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일본 국민들의 여론이 추락하고, 이를 기점으로 일본제국은 '조선침탈'을 본격화하고 그 결과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드는 결말로 종결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듯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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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궁금한 것은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 되었고, 서구열강 각국이 조선을 도와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종'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인지다. 물론 '헤이그 특사 파견'을 하긴 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외교권'을 일제에 빼앗긴 상황에서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갔다고 한들 달라질 것이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차라리 그럴 힘이 남았다면 군대가 해산되고, 경찰이 해산되기에 앞서서 조금이라도 '저항'이라는 것을 해보던가. '의병'과 손을 잡고 망국의 길로 순순히 따라가는 길만큼은 막으려 했어야 하지 않은가 싶다. 그런데 고종은 애써 한 것이라고는 '을사늑약'이라는 종이쪼가리에 옥쇄를 날인하지 않은 공로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종이쪼가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나라는 빼앗길지언정 조선황실의 안녕을 보존해주겠다는 대목에서 '진정성'이 의심이 들기도 한다. 과연 헤이그특사를 보내서 일제의 만행을 만국에 알리고, '을사늑약'의 원천무효를 주장함이 통했을 거라고 보는 것인가? 아무리 좋게 본다고 한들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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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계란으로 바위치기'도 약자가 강자에게 개망신을 주고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기에 좋은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도덕과 윤리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국내상황'에서나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냉험한 기류가 대세로 작동하는 '국제관계'에서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이 망국을 코 앞에 맞이한 군주가 할 일인가 말이다. 또한, 고종이 꿈틀해서 온 백성에게 몸이 부서질지언정 일제와 맞서싸우라고 명을 내려 일제와 전쟁을 독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이미 동학농민전쟁 때 '우금치 전투'에서 일제의 압도적인 무기 앞에서 산산조각이 난 적이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고종의 무력함을 변호할 수도 있겠다. 실력차이를 인정하고 쿨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스스로 '망국의 군주'가 된다한들 백성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에서 '애민정신'...쿨럭쿨럭..을 찾을 수 있겠냔 말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기한'이라도 정하고 그 기한내에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기를 방법을 제시하든가. 자신을 '구국의 구심점'이 되어 고종 자신부터 온 백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했다면, 그에 대한 평가가 어렵고 복잡하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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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어쨌든 우리 민족은 고종의 무력함을 넘어 새 나라를 건설한다면 '민주공화국'을 세우겠다는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중에는 '근왕병'을 이끌고 일제와 맞서 싸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공화국'의 새 나라를 꿈꾸며 스러진 왕조를 되살리는 것이 아닌 온 백성이 '주인'되는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된다. 그 계기가 1919년 3월 1일 고종황제의 인산일 이틀 전이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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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는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황태자와 사랑을 꽃 피우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지금도 입헌군주국을 표방하는 나라들이 엄청난 세금을 낭비하며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보면 대한제국이 '고종의 무력함'으로 역사속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물론 딱 한가지 '사상적 분열'로 인해 해방 이후 남북이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끝내 분열되고 만 안타까운 현대사를 '황제'라는 구심점으로 냉혹한 냉전도 극복하고 남북갈등을 사그라들게 만들고 '통일한국'으로 해방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분단이란 아픔을 겪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의 나래는 펼쳐본다. 하지만 그런 상상조차 '세종대왕'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으로 충만한 임금일 때라야 가능했을 것이다. 또는 '정조대왕'처럼 과거의 아픔은 묻어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탕평책'을 실현시키는 진취적인 군주였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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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지난 역사에 태클을 거는 것은 별로 소득이 없는 뻘짓일 것이다. 망상에서 얻을 것은 '시간낭비'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지난 역사에 태클을 거는 것은 하릴 없을지 몰라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전세계를 보면 답은 명확하다. '역사교육의 부재'가 지금처럼 전세계가 '극우세력'에게 정권을 내주고 나라가 폭망하는 꼴을 보여주고 있으며, '역사왜곡'의 결말은 현재의 중국과 일본처럼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결말을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역사는 '바로 보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자국에게 부끄러운 역사라고 감추고 조금만 바꾸면 멋져 보일 거라고 왜곡을 일삼으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균형 있는 감각으로 당당히 마주 설 수 있을때 비로소 올바른 역사교육의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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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배운 서양인들이 처한 꼬락서니를 보란 말이다. 그들이 지금 열광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중심에 선 진실된 역사'다. 인류역사 반만년 동안 제대로 된 '정복의 역사'를 가져본 적이 없는 한국이지만, 숱한 침략을 받고도 막아내고 견디고 지켜낸 '불굴의 역사'를 보여줬고, 약소국을 침략해서 식민지 경영을 하지 않았는데도, 좁은 국토에 변변한 지하자원도 갖고 있지 않은데도 '기술강국'으로 발돋움하여, 마침내 전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지금 전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앞으로 인류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답도 바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찾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속의 한국사'에서 '한국 중심의 세계사'로 관점을 전환해서 역사공부를 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전 인류의 미래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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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에세이 #본격한중일세계사 #굽시니스트 #위즈덤하우스 #한국사 #근현대사 #세계사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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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가르칩니다 - 한국어 선생님이 말하는 K라는 멋진 신세계
서민선 지음 / 헤르츠나인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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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츠나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K를 가르칩니다 : 한국어 선생님이 말하는 k라는 멋진 신세계> 서민선 / 헤르츠나인 (2026)

[My Review MMCCCLII / 헤르츠나인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한 번째 리뷰는 전세계인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한국어, 그리고 그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의 속사정이 담긴 <K를 가르칩니다>다. 요즘 대한민국은 정말 강대국이 되었다. 딴에는 우리가 일취월장해서 강대국이 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강대국들이 쪼그라들어서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이 강대국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진단하는 의견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 있다. 왜 하필 이때에 '한글'에 유독 관심이 많고, '한국어'만을 배우려 하는가 말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려 안달이 난 까닭은 '미국'이란 나라가 우리를 구해줬던 인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미국이란 나라가 '초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전세계인이 강요도 하지 않았고 배우고 숙달시킨다고 딱히 매리트도 없는 상황인데도 '한국문화'에 푹 빠져서 한국어를 배우려 열정을 뿜어내고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바로 대한민국이 진짜 강대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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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가르칩니다> 관점 포인트 : 이 책은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서민선 작가가 썼다. 서민선 작가의 꿈은 '나이가 들어도 읽고 쓰는 노인이 되는 것'이란다. 정말 대단한 꿈이다. 이게 왜 대단한 꿈이냐면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기 때문이다. 나도 젊었을 땐 '늙는다'는 것이 이토록 불편한 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젊어서 쉽게 하던 '동작'이 늙으니 결코 쉬운 동작이 아니었고, 젊어서는 하나도 힘이 들지 않던 '일'이 늙으니 쉬운 일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나이가 벌써 쉰 살이 넘은 50대가 되니 늙는다는 것이 이토록 '불편'한 것인줄 처음 알았던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불편한 것은 바로 '시력 감퇴'다. 어릴 적엔 맨 눈으로 별을 관측하고 동 틀 때에는 '인공위성'도 찾아내던 나다. 그래서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어도 불편함이 없었고 마흔 살이 넘어서도 늘 그러고 지냈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점점 시력이 감퇴 되기 시작하더니 이젠 '작은 글자'로 인쇄된 책은 돋보기의 도움이 없으면 읽기가 불편해졌다. 그렇게 종이책에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해서 '전자책'을 즐겨 읽었는데, 전자책이라 '글자크기'를 맘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편하기는 했는데, 온종일 전자책만 보고 있으려니 시력은 더욱 감퇴 되어서 이젠 정말 안경을 써야겠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불편해지고 말았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도 읽고 쓰는 노인'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냔 말인가.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오니 책읽기도 시들해지고 글쓰기는 더욱 감감 무소식이 되고 말았는데 말이다. 암튼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 책 <K를 가르칩니다>는 한국어교육을 하는 선생님의 희노애락애오욕이 다 담겨 있는 수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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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한국어 수강생'들이 정말 많아졌다고 한다. 오직 '한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서 한국을 찾는 학생과 젊은이들이 많아졌고, 언어와 더불어서 '한국문화'까지 마스터하려는 열정을 가득 품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아오길 갈망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관광'까지 겸사겸사 계획을 짜고 도장깨기하듯 실천에 옮기다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코스로 방문을 했다가 결국 수 년째 눌러 앉아버린 외국의 젊은이들도 꽤나 많다고 한다. 이러다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로 선정 되는 날도 머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진다. 실제로 그런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단다. 영어를 잘 할 줄 모르는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소통'을 위해서 한국어로 대화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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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저러나 25년, 26년에 이런 '한국어 열풍'이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이유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애니메이션 <K-POP 데몬헌터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이 애니가 넷플릭스를 통해서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수많은 사람들이 'K-POP'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했던 캐릭터나 소품, 배경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게 되면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궁금증으로 폭발적인 영향력을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증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열풍' 아닐까 한다. 줄여서 '국중박'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대표 박물관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것도,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부는 것도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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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궁금증이 일지 않는가? '한국어 교육원'에서 외국인 학생들(교사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많다고 한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배우고 있는지 말이다. 이 책에는 바로 그런 풍경과 일상이 활짝 펼쳐져 있다. 일단 기본적인 교육 코스는 '급수'를 따면 윗 단계로 오르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단다. 초급인 1급부터 고급인 6급까지 '6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한 학기는 3개월 코스이며, 1년에 4학기를 운영하고 있단다. 윗 단계로 급수를 올리기 위해선 '자격 시험'에 통과해야 하며, 우수한 성적을 따지 못하면 '유급 판정'을 받고 재수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인(네이티브 스피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의사소통도 가능한 6단계까지 통과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물론 요즘에는 수강생이 많이 늘었다고 하니 최종 졸업까지 성공한 학생 수도 더 늘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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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배우러 '교육원'이나 '어학당'을 찾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국에서 고등교육을 마치고 온 '대학생 이상의 나이'인 탓에 대부분 성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들도 미성년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반말'로 가르칠 수는 없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배운다고 한다. 더구나 한국어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확연하기 때문에 선생님으로서는 다 큰 성인이기도 하고 품위 있는 한국어를 '기본'으로 삼아 가르치려고 노력하는데, 간혹 아주 초보가 아니라 어느 정도 '한국말'을 배워서 찾아온 학생들도 있는데, 하필 '반말'로 배워서 선생님에게조차 "응", "알겠어" 등으로 대답을 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더 힘들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암튼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읽고 있으면 재밌는 사연도 많고, 가슴 따뜻해지기도 하고, 때론 미어지도록 가슴 아픈 사연이 소개될 때는 함께 눈물 흘리는 대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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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하게 느꼈던 점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이었다. 흔히 말하는 '국뽕'은 아니지만, '국뽕'이라고 불러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그런 느낌이 강렬하게 밀려들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이웃나라들인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언어'를 전세계에 보급하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였냔 말이다. 심지어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에서 '중국어'와 '일본어'를 전공하면 중국과 일본에서 장학금을 전액 지원해주는 곳도 많고, '어학연수'를 위해서 지원금을 보조해주는 것에서부터 '취업 알선(?)'까지 풀코스로 해주고 있단다. 그런데도 그 오랜 세월동안 '중국어'와 '일본어'를 전공하는 학생의 숫자는 적정 수준 그 이상을 넘어선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무런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역대 정부에서 지원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지원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대학에서 강의를 개설하지 못해 청원과 항의까지 봇물이 터진 상황이란다. 급기야 각 대학에서 한국에 '한국어 강사'를 초빙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어찌 '국뽕'으로 보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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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이 자조적인 논조로 '자국의 문화'가 한국에 비해 뒤쳐졌고, '한국의 문화'를 알면 알수록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좀 얼떨떨할 정도다. 미국의 어느 중년은 '한국 문화'가 미국 사회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면서 걱정을 늘어놓기도 했는데, 그 중년의 마지막 멘트가 히트였다. "그래도 '한식'은 너무 맛있어서 끊을 수가 없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식은 너무 '건강식'이라면서 한식을 모르고 살 때에 자신은 '쓰레기(정크푸드)'를 사랑하며 즐겨 먹었다는 사실에 너무 부끄러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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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럽의 젊은이들은 '아침 식사 풍경'이 빵과 수프에서 밥과 국으로 바뀌었다면서 이젠 아침을 '(한식으로)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하루를 버틸 수가 없다며 '한식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식후에 디저트조차 '붕어싸만코', '메로나', '월드콘'이 아니면 먹은 것 같지 않다면서 비싼 가격은 둘째치고 '마트 매대'에 재고가 쌓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동이 나는 일상이 반복되어, 이젠 '한 사람당 몇 개'만 살 수 있게 정책을 바꿀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마트에는 '한식'이 들어오는 시간에 자동적으로 긴 줄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는 유럽 사람들의 자존심을 와장창 무너뜨리게 만든 것이란다. 그들은 명품 매장 앞에서 '동양인'들이 루비비통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을 혐오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자긍심 쩌는 유럽인들이 '한식 코너'와 '한식당' 앞에서 자신들이 긴 줄을 만들어 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든 분들은 긴 줄을 서면서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면서 일장 훈계를 하면서도 자기 차례가 되어 '김밥'이 든 포장을 소중히 들고서 계산대로 빠르게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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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더 깊숙이 이해하고 젖어들고 싶어서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한다. 처음에 '한글'을 배울 땐 쉽지만 '한국어'를 익힐 땐 멘탈이 붕괴되는 일을 겪으면서 말이다. 이쯤 되면 '한국어 공부'를 포기할 만도 한데, 그 어려움이 또 묘한 승부욕을 불러 일으켜서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고, 그렇게 열심히 배운 '한국어'로 더 깊고 넓은 '한국 문화'를 탐구하다보니 이토록 찬란하고 숭고하며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도 없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 100여 년간 나라가 망하고 제국열강에게 식민지를 경험하고 전쟁으로 온 국토가 황폐했던 바로 그 나라가 해방한 지 80년이 지나서 세계 10위 권으로 우뚝 서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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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미국과 유럽은 자신들이 식민경영을 해본 경험이 있는데, '식민지'였던 한국은 여느 식민지 국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언어'를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문화'를 빼앗기지도 않았고,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남김 없이 빼앗긴 '무'의 상태에서 '기술 강국'으로 '유'를 창조한 유일한 나라였던 것이다. 더 기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 대한민국의 '언어'를 배우러 전세계 사람들이 몰려들고, 대한민국의 '문화'를 만끽하며 감탄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기술'이 없으면 세계가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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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교육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의 풍경과 일상을 읽으면서 '국뽕'에 빠져 있었다. 언젠가 '한국어'로 세계가 소통하는 그 날을 꿈꾸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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