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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통 만화 삼국지 10 - 천하통일
나관중 원작, 천웨이동.량샤오롱 글.그림 / WISDOM(위즈덤) / 2016년 8월
평점 :
[My Review MCMXCV / 위즈덤(WISDOM) 10번째 리뷰] 또 하나의 <삼국지>를 마무리 한다. 이번엔 '천하통일'이란 제목으로 마무리하련다. 중국사에서 '위진남북조 시대'다. 후한의 헌제는 조조의 아들 조비 때에 이르러 황제의 자리를 선위하는 형식으로 평민으로 강등되고 죽임을 당한다. 이로써 명실공히 '한나라'는 멸망하고 새롭게 '위나라'가 세워진 것이다. 허나 위나라도 오래가지 못했다. 사마중달(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에 의해서 위나라를 멸하고 진(晉)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진나라'가 촉과 오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제패하며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우리가 즐겨 읽는 <삼국지연의>의 마무리는 '제갈공명'이 오장원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끝을 맺는 것이 대부분인데, 실제 역사는 공명의 사후에도 지난하게 이어졌으며, '위촉오' 세 나라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며 각 나라마다 '내부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부던히도 애를 쓰지만, 결국엔 가장 막강했던 '위나라'가 가장 먼저 내부 문제(사마염의 황위찬탈)를 수습하면서, 유약한 모습을 보이던 촉나라부터 정벌하고, 손권의 죽음으로 국력이 많이 약해진 오나라도 끝내 멸망하여 '중원'은 다시금 통일국가를 형성하고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이렇게 분열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통일이 되는데 꼬박 100여년이 걸렸다(대략 180~280). 후한 때 '황건적의 난'과 '십상시의 난'으로 무너질대로 무너진 한황실을 수습하고자 수많은 군웅들이 할거하고서 서로 간 힘겨루기를 통해 쟁패의 세월을 보내고서 위의 조조, 촉의 유비, 그리고 오의 손권으로 천하가 셋으로 정립되었다가 다시금 '진나라'로 천하통일을 하기까지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진 이야기가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라는 소설에 오롯이 남겨진 것이다.
그럼 우리가 <삼국지>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때는 <삼국지>를 읽지 말자는 주장도 있었다. 천하가 혼란에 빠졌을 때 오직 '힘의 논리'로 영웅을 평가하고, '전쟁의 승패'로 정의를 가르는 '부정적인 영향'을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끼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솔직히 나도 이런 주장에 '동의'했었다. 전세계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외치던 21세기 초엽이었기에 <삼국지>는 낡은 이념에 갇힌 나쁜책으로 오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책이 '중국의 고전'이라는 점이었다. 세계적인 고전소설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우리의 고전'을 읽힐 것이지 왜 남의 것부터 읽히려고 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주장이었다. 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수긍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주장들이 쏙 들어갔다. 여전히 <삼국지>는 청소년 필독서이고, 성인들도 수 차례 읽고 또 읽는 책 가운데 으뜸이었다. 왜냐면 <삼국지>만큼 고전이 담고 있는 지혜를 방대하게 포함하고 있는 고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살면서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삼국지>에는 등장인물만 천 명이 훌쩍 넘어가고, 그들의 삶 하나하나에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 개가 넘는 교훈'이 담긴 책인데 읽지 않으면 손해인 셈이다.
일례를 들면서, '제갈량과 사마의의 대결'속에서 교훈을 찾아보자. 10권의 주된 내용은 제갈량의 출사표(다섯 차례의 북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이 부분만 따로 분류해도 '책 2권 분량'이기 때문에 정녕 어마어마한 부분이지만, 만화책의 형식상 아주 간략하고 속도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 <중국정통 삼국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핵심파악'을 전혀 놓치지 않고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다. 오히려 '동양화 속 여백의 미'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방대한 역사의 사건 가운데 '딱 하나의 점'을 찍듯 표현했지만, 그 점만으로도 모든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허나 이렇게 '띄엄띄엄' 서술하는 방식이 <삼국지> 초보나 입문자에겐 그닥 좋은 방식일리는 없다. 적어도 <삼국지> 중급 이상의 독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색다른 묘미를 맛보며 <삼국지>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차 옆길로 샜다.
다시, '제갈량 vs 사마의'의 내용을 돌아가자. <삼국지> 후반부는 거의 대부분 위나라와 촉나라의 대결이 주를 이룬다. 오나라에 대한 분량은 유비가 손권을 쳐들어갔던 '이릉대전' 이후부터는 급속히 줄어들어서,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다. 제갈량은 촉오동맹을 맺고서 함께 위나라를 압박하자고 오나라에게 요구하지만, 오나라는 '어부지리'를 얻을 속셈이었는지, 위촉간의 전쟁만 관망할 뿐, 좀처럼 '협공'에 나서지는 않는다. 물론 이는 제갈량도 마찬가지였다. 막상 오나라가 '장료'를 죽이고 위나라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 때, 제갈량은 '또다시 북벌'에 나서기 위해서 재정비를 할 시간을 벌려고만 했을 뿐, 오나라의 승전보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촉오동맹의 틈바구니에서 사마의는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고 있었다. 조비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나마 스승인 사마의에게 '군권'을 맡기며 위나라의 국운을 모두 맡을 정도로 큰 활약을 했지만, 조비가 죽을 때 유언으로 남긴 것이 '사마의에게 군권을 맡기지 마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사마의는 엄청난 실력을 감추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위나라조차 꿀꺽할 만한 위인이라고 낙인이 찍힌 셈이었다. 그래서 조비 사후부터 사마의는 변방의 관직으로 내쳐질 정도로 힘을 잃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갈량의 총공세' 덕분에 사마의는 다시금 모든 권력을 다시 되찾게 된다. 제갈량의 공세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이 '사마중달' 밖에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사마의도 몇 차례 제갈공명을 죽일 기회를 얻었지만 살려보내주는(?) 계책을 쓸 정도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제갈량 vs 사마의'의 승패는 단연코 사마의의 승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삼국지>에서는 이 둘의 대결이 그야말로 엎치락뒤치락 팽팽한 대결양상으로 펼쳐진다. 그것도 '뛰어난 장수'를 앞세워서 토벌하는 방식의 결전이 아니라 '지략 vs 지략'의 대결양상을 보여주며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만다. 심지어 '패배'를 하면서도 상대에게 결정타를 날리는 제갈량의 지혜는 참으로 통쾌하면서 배울 점이 참 많다. 반면에 사마의는 '결전의 순간'까지 참고 또 참았다가 '단 한 번의 기회'를 승기로 잡아서 끝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을 배울 수 있겠다.
허나 '실제 역사'에는 사마의의 일방적인 승리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특히, 사마의가 호로곡의 함정에 빠져 죽다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애초에 없는 내용이며,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기다'라는 일화도 뻥이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사마의는 조심, 또 조심하며 병력을 진군시켰고, 제갈량이 수많은 계책을 내놓아도 사마의는 공명의 계략을 하나하나 파헤쳐서 끝내 승리를 거뒀다. 거기다 애초에 촉나라의 군사력은 위나라의 군사력에 비해 1/10 수준이었기에 싸워서 질 까닭이 없었다. 더구나 촉나라는 변변한 장수조차 없어서 '반골 기질'이 다분한 위연조차 내치지 못하고 궁디팡팡 다독이면서 전쟁에 임했을까? <삼국지>에서는 관흥, 장포, 조통 등 영웅들의 아들이 제갈량과 함께 싸웠다고 화려하게 수놓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영웅들의 아들들'은 별다른 활약을 하지도 못했는지 기록조차 거의 없다. 게다가 제 아버지들처럼 오래 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이런 판국에 제갈량은 '마속'을 울면서 참하고, '강유'같은 인재를 구하려 전쟁통에서도 고군분투를 한다. 그만큼 제갈량은 참으로 처절하게 싸운 것이다. 반면에 사마의는 물론 내부적인 문제로 '권력'을 제대로 쥐지는 못했지만, 제갈량의 활약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권력'을 차지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삼국지>는 이야기할 거리가 넘쳐나서 문제다. 그렇다고 일일이 거론을 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띄엄띄엄 소개를 하자니 '하나의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삼국지>를 제대로 읽고 나면 '해박한 통찰력'을 갖출 수밖에 없다.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인생역정을 엿보았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삼국지>가 비록 '실제 역사'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때로는 '거짓 날조된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른바 '촉한정통론'(송나라 주희가 처음 주장)의 논점에서처럼 천하를 거머쥘 위대한 영웅서사에는 '부도덕한 점'을 용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제 역사'를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유용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단다.
물론, 오늘날에는 '난세의 간웅'인 조조의 삶을 조명한 책들도 많이 나왔다. 이른바 '조조의 실용적인 면모'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관점이다. 뭐니뭐니해도 조조가 승자이고, 실리도 가장 많이 챙겼으니, 오늘날의 '자본주의 시장체제'에서 유비처럼 사업을 하면 망하기 딱 좋지만, 조조처럼 사업을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조조를 옹호하는 관점이 있기도 하다. 허나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실리적인 것'만 추구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진리를 통해서 '촉한정통론'은 일종의 권위를 얻게 된다. 이른바 '유비의 리더십'이 여러 모로 보아서 매우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유비는 돗자리와 짚신을 삼아서 생계를 꾸리던 '하층민'이었다. 그런 그가 국가적인 위기 때, 분연히 일어서서 여러 군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자그마한 현령 자리를 차지하며 '지도자의 길'을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관우, 장비, 간옹, 손건, 미축, 조운 등 단 한 번도 배반하지 않은 충성스런 신하들과 '대의'를 논하며, 천하제패를 꿈꾼다. 그러다 '제갈공명'이라는 날개를 달고서 촉한의 황제까지 올라서서 '한황실의 부흥'을 위해서 죽는 날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정녕 모범적인 위인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런 유비 세력에 '정통성'을 부여한 <삼국지>는 비로소 '고전소설의 귀감'으로 받들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반면에 '역사의 승자'로 기록된 조조와 사마의는 어땠는가? 그들이 세운 나라는 '천하통일'이라는 위엄을 완수한 것치고 너무도 빠르게 멸망하였고, 천하는 다시 '분열의 시대'를 맞이했다. 실제 역사상의 위업을 차지한 그들이지만, 그들에게서 본받고 감명받을 점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소설은 '승자의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운 패배'를 오롯히 살려내어 안타까움을 표하곤 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이들이 '승자'가 되었더라면 이 세상은 좀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을 노래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군중들은 조조가 아닌 '유비'가 최종적인 승자가 되었으면 더 좋았겠다고 상상하길 즐긴다.
물론 '희망'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무도회에서 아름다운 춤을 추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으로 서둘러 끝맺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 뒷이야기까지 설명하기 시작하면 희망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게 되어 해피엔딩은 물 건너가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삼국지>는 '촉한정통론'까지만이다. 그렇다고 '실제 역사'를 부정하고, <삼국지>를 '정사'로 편입하려는 의도는 온당치 못한 일이다. 어디까지나 '삶의 지혜'를 얻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그렇기에 <삼국지>가 '실제 역사'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해서 실망하거나 거짓이라고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소설의 허구성'에 분노하지 않는 것처럼 <삼국지>를 읽으면서도 '긍정적인 교훈'을 뽑아내어 읽으면 그만이다. 나의 <삼국지> 읽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