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9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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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9>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LI / 문학동네 4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여든 번째 리뷰는 어느덧 종반부로 치닫고 우리에게 익숙한 주인공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는 <고우영 삼국지 9>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의도치 않게 1부와 2부로 구분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제갈량의 등장과 관우의 퇴장'으로 바로 '주인공의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고우영 삼국지>는 총 10권 가운데 이 경계가 꽤나 후반부에 진행되어 '주인공이 교체됨'과 동시에 이야기가 빠르게 마무리로 치닫게 된다. 이는 대부분의 삼국지가 그런 경향을 띠곤 하지만, 여타의 삼국지가 이 '교체 시점'이 대부분 5~6권에서 시도되어 2부에 새로 등장한 주인공들도 꽤 활약할 '시공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지만, <고우영 삼국지>는 1부에 꽤 치중하는 플롯을 구성하였다. 그럼 이게 장점일까, 단점일까? 책속에 풍덩 빠져서 확인해보자.

<고우영 삼국지 9> 관점 포인트 : 삼국지에서 '관우의 죽음'은 남다르다. 일찍이 동탁, 여포, 원소, 손견, 손책, 주유 등 걸출한 인물들의 죽음도 다루고 있지만 '관우의 죽음'은 꽤나 특별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한낱 '장수'에 불과했지만 사후에 '왕의 죽음'에 걸맞는 파격적 대우를 받았으며, 심지어 관우의 죽음과 연관된 이들까지 연달아 비명횡사하면서 더욱 특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사'에서도 관우의 죽음은 특별하게 다뤘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저 '평범한 장수'의 죽음과 그닥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촉 진영에서는 크게 다룰 수밖에 없었고, 위 진영에서는 조조가 흠모했던 장수였던만큼 '딱 그만큼'만 다뤘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관중은 부풀려서 '관우의 죽음'을 다뤘다. 왜 그랬을까? 그건 나관중이 조조가 아닌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결정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도원결의'에서부터 시작했고, 결국 '관우의 죽음'으로 확언을 받은 셈이다.

애초에 '정사 삼국지'에서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의 후손인 '사마염'이다. 사마염이 세운 '진(晉)나라'가 정통성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조조의 아들 조비가 세운 '위(魏)나라'를 추켜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러기 위해서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한(漢)나라가 망해갈 때부터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다는 정통성을 부여한 것이다. 허나 시대가 흘러 한족이 아닌 '이민족의 왕조들'이 이어지면서 중국의 역사는 누더기가 되었고, 남북조를 통일했던 '송(宋)나라'조차 거란(遼), 여진(金), 몽골(元)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주원장에 의해 다시금 한족의 나라인 명(明)나라가 건국되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한족의 정체성을 다시 끌어모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애써 모으려는 것이 '조조의 실리'였다면, 이는 한족만의 정체성을 내세우기 곤란했을 것이다. 왜냐면 '실리'는 이민족들도 곧잘 내세우던 논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명백한 명분을 쌓고자 더 먼 '한고조 유방'때까지 거슬러 오를 수밖에 없었고, 유방의 후손임을 내세운 '전한 경제의 아들 중산정왕의 먼 후손'인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삼국지'를 펼쳐내기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유비는 조조가 인정한 영웅이었다고 전한다. 허나 이조차 근거는 미약하다. 비록 유비가 '촉한의 황제'까지 오른 인물이긴 하지만 짚신을 신고 돗자리를 만들어 팔던 떠돌이 무사 나부랭이를 상대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랬던 유비가 '제갈량'을 얻고 날개를 단듯 서쪽으로 날아가 '천하'를 나눠가질 정도로 성장했다. 조조의 처지에서는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가치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할 때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때를 놓치지 저렇게 커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조조측은 이런 방심한 것을 솔직히(?) 서술하기보다는 차라리 유비를 영웅처럼 대접하고, 그런 영웅이었기에 '위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겨룰 만한 상대였다고 '정신승리(?)'를 거뒀을지도 모른다.

암튼, 이렇게 유비는 거물로 성장한 불세출의 영웅임이 틀림없었고, 그 유비와 '의형제'를 맺은 두 장수가 있었으니, 바로 관우와 장비라는 서사를 나관중은 꾸며서 대활약을 하게끔 만든 것이다. 이것이 나관중의 <삼국지>에 내세운 새로운 세계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유관장 삼형제가 대활약을 하던 시기를 '1부'로 삼고 종횡무진 누비게 만들었다. 그런데 책 제목처럼 '위촉오 삼국'이 형성되고 천하를 두고 한 판 승부가 제대로 펼쳐질 찰나에 느닷없이 '유관장 삼형제'가 차례대로 죽고 만다. 졸지에 주인공을 잃은 이야기가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 더구나 천하를 통일한 위나라가 등장하기까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이는 '주인공' 없이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말과 다름 없다. 그래서 2부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주인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갈량의 등장'이다. 그리고 제갈량이 1부의 주인공이 남긴 한 황실의 정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유지'를 받들어 무려 5차례의 출사표를 들이대며 끝없는 출정이 이어진다.

나가는 글 : 이렇게 '제갈량의 등장과 관우의 죽음'은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대전환점을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호불호가 갈린다. 솔직히 유관장 삼형제가 다 빠지고 난 뒤에는 몰입도가 확 빠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비'라는 걸출한 영웅의 뒤를 이은 후세가 '유선'이라는 바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설화가 전해진다. 애초부터 바보는 아니었는데 조자룡이 구사일생으로 구해낸 아두(유선의 아명)를 유비가 내동댕이 치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멍청해졌다는 논리다. 그런데 갓난아기의 지능지수를 측정할 객관적 자료는 없기에 신빙성은 떨어진다. 오히려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졌다는 측은지심이 발동해서 유선을 어릴적부터 '응석받이'로 키운 탓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정도다. 암튼 유선은 '영웅의 그릇'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유선에게서 아무런 동정심을 발휘할 수 없었고, 이는 손견의 아들인 손책과 손권으로 이어지는 것과도, 조조의 아들인 조비로 권력의 향배가 이어지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함이었다.

그래서 유비는 '이릉대전'에서 패배한 뒤에 제갈량에게 황제의 자리를 이어받도록 유언을 남길 정도였다. 허나 이는 불가했다. 황제의 자리는 '절대적인 충성'을 받아야 할 존엄한 자리다. 그런데 그걸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황제의 혈통'이거나 절대적인 힘을 가진 '패왕'이어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제갈량에게는 두 가지 가운데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막 촉나라를 세웠는데, 이를 공고히 할 유능한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터라 '제갈량' 스스로 황제에 자리에 오르고 나면 실제로 총괄하고 활약할 '적임자'가 없었던 탓이다. 실제로 제갈량의 후사를 위임할 정도로 유능했던 젊은이는 고작해야 '마속'과 '강유' 뿐이었고, 그런 마속조차 가정공방전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책을 함으로써 대패를 한 책임을 물어 죽일 정도의 얕은 그릇이었고, 강유는 너무 늦게 만났다. 그러니 제갈량이 구중궁궐에 틀어밖혀 호사를 누린들 장밋빛 미래가 보였을까? 차라리 '2인자의 길'을 걷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제갈량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도 '관우의 죽음'은 촉나라의 기둥이 뽑혀나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관우의 뒤를 이어 장비와 유비까지 차례대로 죽어 나갔고, 그 빈 자리를 채울 만한 새로운 인재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제갈량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제갈량을 '출사표'까니 내밀며 자신의 생명을 독촉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죽음에 이를 데까지 몰아붙인 강행군으로 끝내 제갈량은 결코 많지 않은 나이(181~234)에 죽고 만다. 다음 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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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8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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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8>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L / 문학동네 3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아홉 번째 리뷰는 1978년 연재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완전판으로 복간된 <고우영 삼국지 8>이다. 엄혹했던 박정희 유신정권을 이어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정권이 뒤를 잇는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을 '만화'를 도구 삼아 사회 비판에 앞장섰던 것이 <고우영 삼국지>의 참뜻일 것이다. 물론 대놓고 비난을 일삼지는 못했다. 건전한 비판일지라도 그것이 '부정한 권력'이라고 날선 것을 트집 삼아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으로, '삼청'으로 끌고 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몸 성히 지낸다해도 온갖 검열과 탄압이 뒤를 이었기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셈이었다. 그런 시절을 동경하고 전두환을 가장 존경할 만한 지도자로 추켜세웠던 윤석열에게 지지를 보내는 극우세력이 잔존하는 작금의 세태가 한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들이 그토록 목놓아 부르짓는 '자유'를 윤석열이 비상계엄으로 짓밟으려 했는데도 그걸 깨닫지 못하다니 정말 무지몽매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고우영 삼국지 8> 관점 포인트 : 8권의 핵심은 드디어 이룬 '천하삼분지계'다. 지난 7권에서 방통을 잃은 유비가 비보를 듣고 한 달음에 달려온 제갈량과 장비의 구원을 받아 유장을 궁지로 몰아 '익주의 직인'을 건내받게 된다. 이로써 천하는 조조, 손권, 그리고 유비 세 나라가 힘을 겨루는 형세를 띠게 되었다. 이제 삼국은 요충지인 '형주'를 두고 공방전을 펼친다. 조조가 손권을 칠 때도 '형주 세력'이 뒤통수를 노리고 있기에 힘을 쏟을 수 없게 되고, 조조가 유비를 칠 때도 '형주'가 수도 허도를 깊숙이 찌르는 형국이라 맘 놓고 전력을 다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제갈량은 그 중요한 요충지에 '관우'를 남겨 두고 굳건히 지키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관우는 이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적임자'는 아니었다는 것이 <삼국지>를 분석한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결과적으로 관우가 지키던 형주를 어이없게 잃어버린 탓이다. 이를 위태롭게 짐작한 제갈량은 '조조에겐 강경하게, 손권에겐 유연하게' 용맹과 지혜를 함께 발휘하라 관우에게 당부하지만, 관우는 어찌 된 일인지 조조와 손권을 모두 강경하게 대할 뿐이었다. 아니 너무 얕잡아 보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뒷이야기는 9권에서 이어지니 다음으로 미루겠다.

유비가 유장의 세력이었던 '익주'를 차지할 때, 조조는 승상의 지위를 넘어 '왕'을 스스로 자처할 지경에 이른다. 천자인 헌제를 압박해서 '위왕'에 봉하도록 한 것이다. 왕위에 오른 조조는 더욱더 권력을 함부로 휘둘렀고, 이를 탐탁스럽지 못하게 여긴 한나라의 충신들은 '역적 조조'라는 기치를 내걸고 속속 역모를 꾀한다. 조조가 한나라의 주인도 아닌데 '역모'라 운운하는 것이 우습지만, 그만큼 조조의 위세가 황제 못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조조의 권세가 아무리 끝을 모를 정도로 하늘을 찌른다하더라도 그것은 '정당성'이 없는 것이다. 이를 정확히 찔린 조조는 더욱더 검열을 강화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에게 폭력과 탄압을 그칠 줄 모르게 된다. 급기야 '황후'까지 자신을 암살하려 배후를 조작했다는 증거를 몰아 죽이려 들자 '화흠'이란 자가 앞장 서서 복황후를 때려 죽인다. 신하란 자가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일신의 영욕을 위해서 끔찍한 짓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댄 것이다.

이리 막나가는 조조의 최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자가 맞이할 마지막 모습은 어때야 하는가? 요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면서 '수양대군'과 '세조'에 대한 평가가 다시 입에 오르고 있다. 수양대군은 '야심가'다. 그래서 왕위에 정당한 방법으로 오를 수 없자 '계유정난'이란 반정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다. 하지만 비록 찬탈이라는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세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후한 편이다.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조의 업적이 빛나더라도 수양대군이 벌인 끔찍한 살육과 폭력으로 저지른 악행마저 지울 수는 없는 셈이다. 그렇기에 세조가 되어서 수양대군 때 저지른 일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이 뒤따라야 했던 것이다. 왕조시대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왕'처럼 군림하려 들면 어쩔 것인가?

나가는 글 :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고우영 삼국지>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가 바로 '역적 조조'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사실 <정사 삼국지>에서 조조는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 영웅이다. 망국의 길로 들어선 한 나라의 충신으로 남고자 했으나 역부족을 느꼈기에 혼란한 세상을 평안하게 하고자 '군벌세력'을 독자적으로 키웠고, 그 힘을 바탕으로 스스로 '패왕'이 되어 태평한 천하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새로운 왕국을 세운 위인이 많았으니 조조만을 딱 꼬집어서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유독 <삼국지> 속의 조조는 이토록 인기가 없는 것일까? 그건 다름 아닌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비'라는 또 다른 영웅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비록 역사적으로 유비는 망국을 되살리거나, 새 왕조를 개창하는 위업을 달성하지 못한 비운의 영웅이었으나, 그가 살아생전에 보인 행적은 여러 모로 귀감이 되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의와 도덕의 방식으로 망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 무던히도 불의와 싸웠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조조와는 '다른 방식의 야심'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이런 유비의 야심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논해 보도록 하자.

암튼, 8권에서는 '역적 조조'를 벌하려는 우국지사들이 우르르 등장한다. 복황후가 그랬고, 도술가 좌자가 그랬으며, 아직 조조에게 굴하지 않고 '정당한 권력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올바른 신하들'이 속속 조조의 빈틈을 노리고 반기를 드는 장면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이들은 '힘의 격차'도 모르고 '자신의 그릇'도 파악하지 못한 바보들이라 그런 것일까? 속된 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서'도 계란이 깨어지지 않고 바위가 쩍하고 갈라질 망상에 사로잡힌 멍충이들이었단 말인가?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비록 처참히 깨어지는 쪽은 당연히 '계란'인 것을 불을 보듯 뻔히 알지만, 깨어진 계란에 의해 더럽혀진 바위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기 위해서 제 한 몸을 희생한 것이다. 이래 깨어지나 저래 깨어지나 깨어지긴 마찬가지라면 산산히 부수어진 제 몸으로 위용을 자랑하는 바위를 더럽히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한순간이나마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서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위는 제 몸을 더럽히고 고얀 냄새를 풍기던 것들을 치우며 '새단장'을 하고 다시 위용을 뽐내겠지만, 수많은 달걀들이 깨어지고 바위가 더럽혀지는 장면을 지켜본 눈들마저 씻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의 자리에 오른 이가 겪을 최후의 모습이다.

대개의 <삼국지>가 이런 역적 조조에 대한 묘사를 늘어놓았지만, <고우영 삼국지>만큼 탁월하게 그려낸 수작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삼국지>를 꾸준히 읽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무엇이고, 오늘날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를 통해 '단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비록 역사는 '승자의 입맛'대로 써내려갈지라도 역사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포인트는 따로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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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를 이기는 글쓰기 - 마케터, 크리에이터, 에디터, 그리고 콘텐츠를 만드는 모두를 위한
신익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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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를 이기는 글쓰기 : 마케터, 크리에이터, 에디터, 그리고 콘텐츠를 만드는 모두를 위한> 신익수 / 매일경제신문사 (2026)

[My Review MMCCXLIX / 매일경제신문사 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여덟 번째 리뷰는 전작 <100만 클릭 터지는 독한 필살기>의 저자 신익수가 새로 펴낸 <챗GPT를 이기는 글쓰기>다. 이 책은 '전작'의 내용을 '재탕'하거나 '편집'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100만 클릭을 부른다'는 핵심 골자는 뼈대로 삼고, 그 든든한 뼈대에 '챗GPT'라고 하는 새로운 질서에 절대로 지지 않는 저자만의 노하우가 새롭게 담겨 있기에, 좋게 말해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 담긴 '글쓰기 노하우'를 그대로 따라하기만 한다면, 독자들이 원하는 '100만 클릭을 부르는 글쓰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아닌 독자의 관점에서 '호언장담'까지는 할수야 없겠지만, '100만 클릭'은커녕 100 클릭도 달성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분명 '배울 점'이 무척 많았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담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챗GPT를 이기는 글쓰기> 관점 포인트 : 스포 문제도 있고, 나름 '글쓰기 비법'이 담긴 책내용이니만큼 신익수 저자가 내세우는 '글쓰기 비법' 또는 '공식'에 대한 일일이 언급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글쓰기 비법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바탕'에 대한 분석이나 클릭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글쓰기 공식의 논리적 타당성과 이 이면에 대해서만 논하도록 하겠다. 비법이라고 하지만 이미 책으로 출간이 되었고, 상당히 널리 알려진 공식이기도 해서 굳이 밝히지 못할 이유도 없겠으나, 그럼에도 '책 내용'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끌어들여서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논술글쓰기'를 가르치는 독서논술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처음 들었던 솔직한 느낌은 '이렇게 글쓰기를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비판적으로 말이다. 왜냐면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동기는 '개인블로그'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조회수(클릭수)'를 늘리고, 내 블로그에 올리는 콘텐츠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읽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 콘텐츠의 기본이 '학생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리뷰'인데, 본질적으로 '대입논술 글쓰기'를 신익수 저자처럼 썼다가는 폭망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수 단단히 배우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했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 한 가득이었던지라 실망을 금치 못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저자의 전작으로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하고 있던 <100만 클릭 터지는 독한 필살기>도 함께 읽었더랬다.

책 두 권을 읽었더니 저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글을 잘 쓰는 것'과 '클릭을 부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사안이라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였다. 전자는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노력과는 별개로 일종의 '꼼수'가 작동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꼼수'를 나쁘게만 볼 것이 전혀 아니었다. 왜냐면 '노력'으로 10000 뷰를 달성하는 것과 '꼼수'로 10000 뷰를 달성하는 결과가 같다면 당신은 '어떤 것'에 치중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저자의 호언장담처럼 '꼼수'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물론 '꼼수'보다 '노력'이 더 대단한 것이라는 점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플랫폼'은 노력과 꼼수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숫자'로만 결과를 내놓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랫폼에서 승자가 되고 싶다면 '노력'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꼼수'를 써서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는데 좀더 힘을 쓴다면 누구라도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말 솔깃했다.

그럼 그 솔깃한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 과연 '꼼수'란 무엇인가? 먼저 플랫폼의 생리현상(?)부터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 순서란다. 손자병법에 이르길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너무 당연하다. 플랫폼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플랫폼이 돌아가는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그게 뭔지는 책속에 자세히 적혀 있으니 궁금하시면 직접 읽고 보시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맥락만 이해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 원리는 바로 '클릭'이다. 플랫폼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클릭하고 싶게 만들어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많은 '클릭수'를 자랑할 수 있으면 플랫폼에서는 그 무엇보다 '강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바로 '클릭수'를 늘릴 수 있는 비법과 공식으로 가득하다. 다른 거 없다.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그럼 '클릭수'를 어떻게 늘릴 수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것도 책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직접 보시길 바란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너무 많아서 일일이 옮기기에 부적합하다. 그렇다고 일부분만 '보여주기'에도 감질난다. 하나를 터득하면 고구마줄기를 먼저 걷어내고 난 뒤에 엉금엉금 빠른 호미질로 '고구마'를 캐내는 방식으로 따라하면 줄줄이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니 너무 어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클릭수'를 늘릴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 다름 아닌 '자극적'이고, '낚아채는' 방식이며, 본질은 나중 문제이고 일단 '속여서'라고 꼬여내는 것이 장땡이라는 식이었다. 물론 저자가 '비도덕적인 비법이나 공식'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님은 확실하다. 결국 저자도 '낚시성 유혹'으로 클릭수를 늘리는데 방점을 찍었지만, 그렇게 꼬여낸 뒤에는 반드시 '진심'을 담고, '진실'만을 이야기하여,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두 번은 속일 수 있어도 '가치 없다'고 판명된 콘텐츠는 반드시 외면 당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작인 <100만 클릭...>에서 더 진화한 <챘GPT를 이기는...>에서는 '인간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인공지능'의 등장에 쫄지(?) 않고 당당하게 '클릭수'를 부르는 '인간다운 글쓰기 비법'을 공개했다. 역시 신익수 저라라고 할만한 기똥찬 글쓰기 공식이었다. 역시나 책을 읽으면 저절로 터득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 가운데 핵심 키워드는 다름 아닌 '도파민'이었다. 전작에 비해서 '더 자극적'인 강조를 한 셈이다. 감히 챗GPT는 따라할 수 없는 '인간만의 강점'에 도파민이라고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할 정도로 더 자극적인 글쓰기 공식을 선보인 것이다. 이것의 핵심은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도 절대로 따라할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인간만의, 인간다운 글쓰기' 공식이다.

왜 '인간다움'을 강조했냐면 불과 3년이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플랫폼 생태환경'이 확 바뀐 탓이 크다. 과거에는 '인간이 제작한 콘텐츠만' 업로드 되었다면, 지금에 와서는 '챗GPT'가 제작한 콘텐츠가 플랫폼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것보다 더 훌륭한 콘텐츠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게 경악스러운 것이다. 인간이 무던히도 애써서 하루에 1개의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챗GPT는 프롬프트에 간단히 몇 자 입력만 하면 '인간이 손수 만든 콘텐츠'보다 훨씬 더 좋은 양질의 콘텐츠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플랫폼에서 '인간 vs 인공지능'의 대결이 알게 모르게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과연 인간이 이길 수 있을까?

나가는 글 : 다행히 아직은 '인공지능'이 완벽하지는 않다. 세심하게 눈여겨 보지 않아도 '인간이 손수 제작한 콘텐츠'와 '챗GPT가 양산한 콘텐츠'를 구별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클릭수 경쟁'에서 인간이 유리한 면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다움'으로 승부수를 꺼내면 이 책의 제목처럼 '챗GPT를 이기는'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좀더 강한 '도파민'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챗GPT가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논술글쓰기 선생'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비법과 공식을 '그대로' 차용해서 쓰기에는 부적합한 면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학생들도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지지 않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 책에서 배운 점이 솔직히 많았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으로 AI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 vs 인공지능'의 대결구도가 펼쳐지면 안 된다. 만약 이런 구도가 펼쳐진다면 '인간의 필패'는 당연하기 때문이다.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왜냐면 애초에 '승부'를 펼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유용한 도구'일 뿐이니, 인간이 그 편리한 도구를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처럼 '챗GPT'를 이기는 글쓰기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더 편리하고, 더 쉽게 콘텐츠 제작에 열성을 보이면 될 것이다. 그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결코 '따라할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인간만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내서 '클릭수'를 늘리는 비법을 활용하면 될 것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용 그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마지막 '화룡점정'은 인간이 손수 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여기에 인간만의, 인간다움을 오롯이 담아내면 된다. 그 '인간다움의 요건'이 이 책에 아주 잘 담겨 있다.

끝으로, 아쉽게도 '내 콘텐츠'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비법을 대부분 차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지금 쓰고 있는 '리뷰'도 챗GPT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며, 야하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떡밥'을 뿌려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직 솔직하고 책에 대한 느낌을 진심을 담아 소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학생들에게 가르칠 '글쓰기 비법'으로도 쓰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논술답안에 '도파민'이 터지고, 채점관을 홀리고 낚을 자극적인 제목과 문장에 고득점을 보장해주면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배운 점은 '콘텐츠 제작'을 하는데 있어서 '자기 만족'에 그치지 말고 '콘텐츠 소비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클릭수'를 부를 수 있다는 깨우침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만 즐거우면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콘텐츠 제작'을 즐기면서 꾸준히 제작하되, '내가 보고 싶은 것' 위주가 아닌 '클릭을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아보려 무던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도전해 보련다. 당장 '클릭수'를 늘리기보다는 '한 명의 구독자'라도 더 늘리는 목표를 세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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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 - 2032~2033 AI가 채점하는 서·논술형 입시가 온다
오주연.김지예.김현아 지음 / 한빛비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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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 : 2032~2033 AI가 채점하는 서·논술형 입시가 온다> 오주연, 김현아, 김지예 / 한빛비즈 (2026)

[My Review MMCCXLVII / 한빛비즈 18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여섯 번째 리뷰는 AI 시대 초중고 입시교육대비가 궁금한 모든 이들을 위한 <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이다. 책제목에 '엄마'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학부모가 읽어도 좋을 책이고, 선생님은 물론이고 학생들도 AI 시대에 걸맞는 '자기주도학습'을 위해서 읽어도 좋을 책이다. 각설하고, 대한민국 교육트랜드는 뭐니뭐니해도 '대학입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훌륭한 학생이고,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야 훌륭한 학교, 훌륭한 학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도 이런 대한민국 교육트랜드는 계속 유지될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럴 것 같다. 적어도 AI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진입 초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분명 달라질 거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지만,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예측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대학입시제도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은 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 관점 포인트 : 먼저 가장 확실한 것은 '객관식 평가의 종말'이다. AI 시대가 되면 '정답'을 맞추는 공부는 전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유능한 도구인 AI를 누구나 간단히 쓸 수 있게 될텐데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정답맞추기 학습을 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된다. 그래서 '있다/없다', '맞다/틀리다'와 같은 단순지식을 외우는 학습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서술/논술형 평가'가 다시 주목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실시하고 있는 평가방식이지만, 조금 달라지는 것이 있다. 바로 'AI 채점의 도입'이 확실시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술/논술형 평가에서 골머리를 썩히던 것이 '평가의 공정성'이었다. 운동경기에서도 '심판의 판정 시비'가 많아지면서 'AI 판정'이 일부 도입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학교현장에서도 이를 적극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써 '평가의 공정성 시비'에서 작게 나마 벗어날 수 있고, '교사의 평가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빠르게 도입/확대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그럼에도 문제는 있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AI가 평가한 점수를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또는 AI의 채점결과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는가? AI가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활용하기 때문에 채점을 하는데 있어서 '공정성'을 높아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성이 높아졌다고 해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100% 완벽하지 않은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그 유명한 '세종대왕 맥북 던짐 사건'은 AI가 얼마나 거짓말에 능숙한지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현재도 많이 개선되었고, 앞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인간의 지능을 초월한 AI가 감쪽같이 인간을 속이지 않고 항상 '참'말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AI 채점을 도입했을 때, 아이들은 '어떤 방식의 학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채점'만 AI가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습을 할 때에도 AI를 '학습도구'로 활용해서 학습을 할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수행평가의 경우에 아이들이 AI에게 '문제'를 묻고 AI가 풀어낸 '답변'을 정리해서 내놓은 '과제'를 선생님은 거둬서 AI에게 '채점'을 의뢰하고, AI는 'AI가 푼 과제'를 채점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뭔가 괴리가 생기고 만다. AI 시대에 AI는 유용한 '학습도구'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숙제와 과제 뿐만 아니라 시험을 치룰 때에도 학생들은 AI를 유용하게 '학습도구'로 사용해서 제출하고, 평가를 위한 답안도 제출하게 될 것이다. 그걸 AI에게 다시 채점을 받는 것이 과연 학습에 도움이 될 것인가 말이다.

분명 초기에는 이런 문제점들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학생들이 학습방법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능한 학습도구인 AI를 아주 잘 사용하는 학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AI 시대 대입수능은 어떻게 정착될 것이냐로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객관식 평가'는 무의미해지게 되고,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보다 정확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논술형 평가'가 정착하게 될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도 '즉문즉답 형식'으로 바로 묻고 바로 답하는 평가를 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즉문즉답의 평가'의 끝판왕은 다름 아닌 '면담/토론하기'가 될 것이고 말이다. 과연 우리 학생들이 이런 평가 방식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학습을 해야 할까?

그 해답은 바로 '문해력 학습법'이다. 문해력은 말 그대로 '글을 이해하는 힘'이다. 물론 글 뿐만 아니라 '그림', '도표', '사진', '영상' 등이 주어져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문해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독서'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배경지식'을 풍성하게 해야 문해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배경지식을 넓고 깊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도 다름 아닌 '독서'고 말이다. 이래저래 독서 열풍이 다시 불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단순히 '다독'만이 정답은 아니다. 많이 읽는다고 문해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읽기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깊이 읽기'를 해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배경지식도 넓히고 자기 주장도 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읽고 '다른 생각'도 곰곰이 따져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사고력이 확장되어 여러 가지 생각을 요모조모 따져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토론하기'까지 활동이 이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점이 생긴다. 현행 우리 나라 교육현장에서 '독서교육'과 '토론수업'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각 학교와 학급을 맡은 선생님들이 이런 방식의 학습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져 있으며, 대한민국 교육당국이 '독서교육'과 '토론수업'을 실시하고 공정한 평가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는 '지침'을 내릴 만한 로드맵이 있느냐는 것이다. 2032년이면 불과 6년 뒤다. 현재 초등학생들은 이미 이런 학습을 시행하고 있어야 '달라진 대학입시'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래 저래 AI 시대를 맞이할 대비가 시급하기도 하고 철저해야 하는 어려움이 산적해 있는 현실이다.

나가는 글 :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말한 '대안'으로 나온 '밥상머리토론', 'NIE글쓰기', '역지사지토론', '대입논술글쓰기' 등을 이미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실행해보았기에 더 크게 공감했다. 매우 효과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가장 좋은 학습법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조차 이런 수업을 다양한 학생들에게 적용하여 효율적인 학습을 시키기 위해서 지난 20여 년간 '다독'을 몸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재교육의 시작도 다름 아닌 '독서'였다. 평소 독서습관이 몸에 밴 아이들만이 '영재반'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며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왔다. 이는 AI 시대가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국제 바칼로레아(IB)' 학습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에도 오래 전부터 찬성하는 쪽이었다. 서술과 논술을 기본으로 올바른 독서습관을 길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밑바탕이 될 수 있게 해주는 '뿌리깊은 학습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IB 학습법이 그렇게나 많은 '로열티'를 내야하는 것인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학습법이라도 '국부'가 줄줄 새는 방식이라면 당연히 바꿔야 한다. 애초에 대한민국 교육부가 능력이 없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늘 그랬듯이 '차고 넘치는 실력'을 갖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형 바칼로레아(KB)' 학습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오히려 전세계에 'K-논술프로그램'을 선택하게 만들면 될 것이다. 늘 그렇듯이 말이다.

끝으로 공감하는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문과형 영재 프로그램'을 확충해서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는 '인문학 붐'을 되살리고, 전세계에서 '한글공부 열풍'에 발맞춰서 '한국어로 풀어낸 인문학'도 영재교육 지원을 늘려나가 더욱 번창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데 크게 공감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세계가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시대적 조류에 흐름을 타야하는 것이 백 번 옳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이 해마다 엄청난 자원을 뿌려가며(?) 중국어와 일본어를 전세계에 알리려 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한국어 지원에 상대적으로 인색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전세계인들이 아무런 지원도 없는데, 그저 좋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어 공부'를 선택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옛말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이 있다. '문과형 영재'를 길러내는 프로그램을 AI 시대에 발맞춰서 확충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이 AI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순간, 전세계인들이 '한국어와 한글'로 된 빅데이터를 알아서 제공하는 덤까지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서 후회하면 정말 안 될 일이다.

이제 AI 시대로 접어드는 것은 '기정 사실'이 되었다. 그 끝이 '어떤 모습'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그 시작만큼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I 시대로 변모할 준비를 하는 나라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반드시 AI 강국으로 발돋움 할 것이다. 그 시대에 걸맞게 어릴 적부터 독서습관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른 인재를 만드는 것, 그것이 새로운 K-컬쳐로 전세계의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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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7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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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7>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XLV / 문학동네 3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네 번째 리뷰는 읽어도 읽어도 재미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고우영 삼국지 7>이다. <삼국지> 초반에는 용맹한 장수들이 등장해서 신나게 한 판 승부를 벌이지만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날고 기는 용맹한 장수들 위에 '지략'을 뽐내는 책사들의 한 판 승부가 펼쳐지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게 된다. 특히 제갈량이 등장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귀신 같은 솜씨로 적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장면이 펼쳐지면서 <삼국지>를 읽는 재미를 더하게 된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 vs 주유'가 그런 재미를 주었다면, 적벽대전 이후 바야흐로 '천하삼분지계'가 완성되기 직전에 방통이 대활약하는 장면이 펼쳐지게 된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고우영 삼국지 7> 관점 포인트 : 적벽대전에서 제갈량과 주유가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면, 그 준비에 걸맞게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게 해준 결정적 조력자를 꼽으라면 단연 '방통의 연환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황개가 용맹하게 화공작전을 펼치고,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어재꼈다고 하더라도, 조조의 대선단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꽁꽁 묶어두는 계략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결코 대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방통의 활약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을 손쉽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방통이 일찌감치 조조의 책사가 되길 거부했고, 손권의 책사도 거절했다. 그리고 남은 한 세력, 유비와 손을 잡고자 한다. 일찍이 유비가 유표의 품에서 '책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낮출 시기에 양양 일대의 현자 사마휘가 일러준 말이 있다. "복룡과 봉추 가운데 하나만 얻을 수 있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복룡은 공명 제갈량을 이르는 말이었고, 봉추는 사원 방통을 이르는 말이었다. 엎드린 용을 '복룡'이라 부르고 어린 새끼 봉(수컷이 봉, 암컷이 황, 합쳐서 봉황)을 '봉추'라 불렀던 것이다. 책사들 가운데에도 젊은 축에 들었기에 그런 별명이 붙었으나 아직 정식 '출사'를 하지 않은 인재이기에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런 용과 봉이 한꺼번에 유비세려게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유비는 천하를 얻게 되는 것일까?

초기에는 순탄하게 진행이 된다. 유기 공자의 사후에도 유비는 계속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형주 땅'에 머물러 있었고, 유비만의 영지를 마련하면 기꺼이 형주 땅을 손권에게 건내주겠다는 약조까지 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유비는 제갈량의 권유대로 '형주의 남쪽 지역'을 차지하러 원정을 떠난다. 궁극적으로 익주를 다스리는 유장에게서 파촉 땅을 얻어야 비로소 '천하삼분'이 이루어지게 되는 셈이다. 그 밑천으로 삼기 위해 형주의 나머지 지역을 공략에 나서게 되는데, 유비는 이곳에서 황충과 위연, 마량과 공지 등 여러 인재를 얻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서촉을 향해 진출을 노린다.

여기서 유비는 빈약한 세력이나마 둘로 나누게 된다. 제갈량과 관우, 장비가 형주에 남고, 방통과 조운, 황충 등이 서촉으로 원정을 떠나게 된다. 유비는 새로 얻은 인재들을 이끌고 '자기만의 영지'를 얻으러 떠난 것이다. 하지만 일이 순탄지 못했다. 출정 직전에 손권은 유비에게서 손상향을 데리고 옴과 동시에 유비의 하나 뿐인 아들인 '아두(훗날 유선)'를 꾀어내 납치하여 형주 땅을 뺏으려 들었고, 빈약한 원정대를 이끌던 부군사 방통은 위업을 서두르려다 그만 '낙봉파'에서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비는 '천하삼분'의 한 축으로 홀로서기를 하려 했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나가는 글 : 그럼 방통은 왜 조조나 손권이 아닌 유비를 택했던 것일까? 능력면에서 본다면 '제갈량'보다 못하지 않은 실력자였으니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실력을 뽐내며 출세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연의'에서 그 이유를 찾자면 방통이 엄청난 '추남'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못 생겨서 실력을 뽐내기도 전에 퇴자를 맞았던 것이다. 영화 <관상>을 봐도 얼굴 생김새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던 듯 싶다. 간추리면 '잘 생겨야' 출세에도 유리했고, '잘 생겨야' 실력을 뽐낼 기회를 주었던 모양이다. 오늘날에도 그런 면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옛날에는 오죽했을까?

더구나 조조는 못난 유장을 대신해서 서촉을 갖다 바치려 찾아간 '장송'을 방자한 행동거지 탓을 하며 쫓아내지만, 결국엔 '못 생겨서' 푸대접을 하였다. 그러나 추남이었던 방통도 일찌감치 그런 푸대접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손권도 적벽대전에서 큰 공을 세운 방통에게 후한 대접을 해줘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왠일인지 손권은 방통을 마뜩찮아 했다고 한다. '겉모습'만 보고서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핑계를 댔다는데, 암튼 방통은 이래저래 추한 외모 때문에 서러움을 당한다. 그렇다고 유비도 방통을 제대로 대접한 것은 아니었다. 손권에게 퇴자를 맞았을 때 노숙이 이를 안타까워하며 방통에게 유비에게 가보라며 '소개장'을 써주었고, 제갈량도 적벽대전 이후 순시를 떠나기 전에 방통을 만나 '추천서'를 건내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방통이 첫 대면에서 유비에게 그것들을 보여주었다면 서운한 대접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방통은 그것을 내놓지 않고서 유비를 시험에 들게 했다.

유비는 방통을 아주 내치지는 않았지만 아주 작은 고을(계양군 뇌양현)의 현령으로 삼았다. 방통도 서운했을 법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현령으로 부임을 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의 친구(?)인 제갈량에 못지 않은 실력을 뽐내고 싶었던 것 같다. 명성이야 이미 날릴 정도였고, 적벽대전에서는 이미 그 실력을 보여줬지만, 유비와는 첫 대면이었기 때문에 유비도 내심 '외모' 때문에 놀란 듯 싶다. 그래서 마뜩찮지만 명성이 높으니 '실력 검증'에 나선 것일테다. 방통은 실망을 감추고 유비에게 본때를 보여주게 된다. 작은 고을에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치가 한정되었겠지만, 아주 깜짝 놀라게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유비는 그런 방통의 실력을 보고 제갈량과 '동급 대우'를 약속하며 서촉 정벌에 함께 나선 것이다.

헌데 삼고초려까지 하면서 모셔온 제갈량과 실력 검증을 마치고 발탁한 방통은 '유비가 지닌 신뢰도' 면에서 차원을 달리하게 되었다. 유비와 방통이 사사건건 의견이 맞지 않은 것이다. 유비가 서촉에 도착해서 곧바로 유장을 밀어내고 서촉을 차지하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은 것에 방통은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유비는 서주를 얻을 때도, 형주를 얻을 때도, 도덕을 따지고 명분을 내세우며 극구 사양하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갈량은 이런 유비를 답답하게 여겼지만 그런 주군의 방식에 따라서 '그에 걸맞는 계책'을 내어 유비와 타협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방통은 제갈량보다 불같은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달리 말하자면 화끈한 성격이었다. 목적이 분명하면 달성을 위한 지름길을 찾아내고도 질주를 하는 급한 성격처럼 말이다. 그 때문에 못난 유장의 곁을 맴돌면서 느긋하게 '서촉을 공략하는 유비'를 답답하게 여긴다.

딴에는 제갈량과 '동급 대우'를 해준 주군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성과를 서둘렀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조조에게도, 손권에게도 내쳐지고 출세길이 꽉 막힌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만 보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고마움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공을 세우길 서둘렀던 것이다. 그 탓에 '완벽한 계책'을 내어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방법이 아니라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더 큰 이익'을 내어 손실을 만회하는 모험적인 방법을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런 작은 욕심이 방통의 명을 재촉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만일, 서촉 공략에서 유비가 방통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제갈량은 형주에서 손권을 상대하고, 방통은 한중에서 조조를 상대하며 '양동작전'도 써가면서 천하통일을 노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방통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하는 불운 때문에 형주를 지키던 관우를 어이없게 잃어버리고, 곧이어 장비도 따라가고, 유비마저 명을 재촉하는 불운이 잇따른 탓에 '천하삼분지계'는 실속 없는 빈 강정마냥 스러지고 말았다. 천하를 도모하기에는 인재와 물자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매번 읽을 때마다 안타까운 까닭이 바로 이 대목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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