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힘든 말
마스다 미리 지음, 이영미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하기 힘든 말>  마스다 미리 / 이영미 / 애니북스 (2015) [원제 : 言えないコトバ]

[My Review MMXXXVII / 애니북스 6번째 리뷰] 에세이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마스다 미리' 덕분에 줄기차게 읽게 생겼다. 애초에 그녀의 '만화(단행본)'를 읽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왕 읽기 시작한 것이니 끝장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수필리뷰] 시리즈도 새로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어디 한 번 줄기차게 읽고 써보련다.

그렇다고 해서 '마스다 미리'의 수필책을 좋아해서 읽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쉽게도 내가 마스다 미리 책들에 내어준 '별점'은 별다섯부터 별둘까지 다채로웠기 때문이다.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공감'할 수 있는 책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별셋'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별둘'이다. 왜냐면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일본인도) 하기 힘든 (일본)말'을 굳이 뒤쳐내어(번역해)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한 것인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굳이 소개해봐야 '한국 독자들'이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일본에서는 '백화점'을 '데빠토(デパート)'라고 부른다. 영어의 'department'를 줄여서 부르는 명칭인데, 마스다 미리는 옛날 사람(?)이라서 '백화점'이라 부르는 것이 익숙한데, 젊은 사람들은 '데빠토'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이 '백화점'이라고 한국식으로 발음할 리가 없다. 백화점(ひゃっかてん)의 일본식 발음은 '햣카뎅'으로 할 것이다. 정리하면 일본에서는 80년대에는 '햣카뎅'이라고 주로 발음하며 '백화점'을 일컬었는데, 90년대 이후부터는 '데빠토'라고 대다수가 발음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에 가까운(?) 글쓴이는 어릴 적에 '햣카뎅'이라고 발음하던 추억이 있어 최근(2012)에도 '햣카뎅'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하도 '데빠토'라고 하니 왠지 조금 서글퍼진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걸 '한국 독자들'이 얼마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까? 차라리 '광화문연가'라는 노래를 '이문세 목소리'으로 기억하는지, '이수영 목소리'로 떠올리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공감 가지 않겠는가? 한국 독자들에게는 '백화점'은 백화점일 뿐이고, '쇼핑 몰(mall)'이나 '아울렛', '마트'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말이다. 딱히 '상관' 없는 일이기도 하다. 햣카뎅이라고 부르든, 데빠토라고 부르든, 그게 그렇게 크게 신경 쓸 일일까? 의미만 전달된다면 별로 문제될 것도 없고, 마스다 미리, 본인만 크게 걸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물론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에는 십분 공감을 한다. 나도 '어감'을 많이 따지는 편이고, '낯설다'는 느낌이 들면 <사전>을 뒤져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적확한 단어/어휘'를 시간과 장소에 걸맞게 바르게 쓰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편이기에 마스다 미리의 고민(?)이 남 일처럼 멀게 느껴지지 않고, 마스다 미리가 느꼈을 기분 나쁨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다. 그거 대단히 피곤한 일이다. 그저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칠 경우엔 혼자서 피식 웃고 말거나 홀로 심각해지는 것으로 끝날 상황이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부터 '피곤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딱 좋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일을 참 많이 겪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 혼자만 끙끙거릴지언정 그런 '고민'이나 '상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편이다. 그걸 말해봐야 십중팔구는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고민을 '글'이나 '만화'로 써내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 왜냐면 그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 실린 내용 가운데 몇몇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예를 들면, 사람을 면전에 두고서 '쓸모 있다/쓸모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삼가야할 '언어예절'이고, 그걸 아무런 의식도 없이 습관처럼 내뱉는 사람이라면 정말이지 '몰상식'한 사람으로 치부해도 괜찮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에피소드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일본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뒤치지(번역하지)' 않고 본연의 일본말 그대로 옮겨 놓았다면, 일본어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책일 수 있을 것이다. 언어공부란 '문화습득'의 또 다른 방법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서'를 읽는 것으로 일본어의 시대변천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특색이 '뒤쳐지는(번역된) 과정'을 통하면서 대부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서 '우리말'로 풀어놓고 보니 도리어 어색한 점이 더 많이 눈에 띄고 말았다.

물론 한국 독자들에게도 '인가 작가'인 마스다 미리의 책이니 우선적으로 읽고 싶은 분들이 있어서 출간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마스다 미리 작가의 '섬세함'에 놀라고, '디테일'한 설명에 반해서 그녀의 책이라면 두말 하지 않고 읽는 열성팬들도 꽤나 많을 것이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내 평점은 '별둘'이다. 더 깎을 순 있어도 더 높여줄 순 없다. 그나마 별하나가 아니라 별둘인 까닭은 몇몇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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