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치함의 심리학 - 무가치하다는 감정과 싸우는 이들을 위한 심리 처방전
네모토 기쓰오 지음, 최주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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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치함의 심리학 : 무가치하다는 감정과 싸우는 이들을 위한 심리 처방전> 네모토 기쓰오 / 최주연 / 문예춘추사 (2026)

[My Review MMCCLXIX / 문예춘추사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여덟 번째 리뷰는 너무 겸손해야 한다는 강박을 떨쳐내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담긴 <무가치함의 심리학>이다. 제목만 봤을 땐 AI 인공지능이 너무 발달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조차 AI에게 다 맡겨버린 가까운 미래를 대비해서 '인간소외 현상'이 심화될 수 있으니, 설령 그런 참담한 일을 당한다하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꿋꿋하게 '자기 가치를 증명하라'는 내용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자신감을 잃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쓴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 나라보다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심리학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왜냐면 일본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상당히 많이 위축되어 있고, 그로 인해서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는 일본인은 스스로 판단하기에 자신이 '가치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전체를 100%로 보았을 때, [남자 50 / 여자 60]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해서 미국, 중국 등에서는 남녀 모두 10~20% 사이에 불과했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무가치함의 심리학> 관점 포인트 : 이 책에서 말하는 '무가치함'이라는 뜻은 '가치가 없다'는 의미로 읽어도 되지만 '자기존중을 하지 않는다'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굳이 명사형으로 꼽는다면 '좌절감'으로 해석해도 의미가 상통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자신의 가치를 한껏 낮추어 잡고 스스로를 비관하며 살아갈까? 언뜻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고, 있다하더라도 그냥 찌질한 사람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면 한국인들은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기세등등한 편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절대적으로 기가 죽으면 안 된다는 국룰(?)이 있을 정도다. 이를 테면, "아니, 왜 우리 애를 기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틀렸어도 혼내지 마세요! 무조건 칭찬만 하란 말예요!! 선생이고, 뭐고, 우리 애 기죽이면 내가 가만 안 둘거야. 당신 각오해요!!!" 이런 억지를 부리는 것이 일상일 정도니, 우리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웃 나라인 일본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폐(弊)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 강압적으로 가르치려다보니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너무 강해 '경각심'마저 들 정도인 것이 오히려 폐단이 된 듯 싶다. 살다보면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끼리 서로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신세를 끼칠 수도 있는데, 일본은 이를 극도로 싫어하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탓이 단단히 한 몫 한 듯 싶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을 '온전치 못한 사람', '자기 몫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 따위로 취급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에도 그런 일본 문화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에게 폐나 끼치는 모자란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경향이 강한 사회에서 남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아니 '비교 당하는' 일이 너무 많다보니 스스로 '무가치하다'는 생각까지 하는 이들이 높은 비율로 존재하는 듯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일본인들의 병폐 현상을 해소하고 건강한 심리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 써낸 책이 <무가치함의 심리학>이 아닌가 짐작해봤다. 애초에 AI시대에 도래할 위험요소인 '인간 불필요'가 실현될 때를 대비한 책이 아니었기에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들어서 요런 죠런 생각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 결과는 한국 사회에서도 병폐현상으로 등장한 '청소년 자살'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뉴스를 떠올리게 했다. 이들이 왜 젊은 나이에 끔찍한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건 한국사회가 대단히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 심하고, 조금이라도 흠이 잡힐까봐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불안요소가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을 바에야 '살 가치가 없다'는 섣부른 결론에 다다랐고, 그 결과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 책이 조금 쓸모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에서도 일본 가정에서 벌어지는 '완벽함을 요구하는 부모'가 자기존중을 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엄격한 양육 환경 속에서 숨쉴 여유도 없이 자녀를 다그치고 닥달하게 되면 자녀의 자존감이 오히려 위축되면서 스스로 자신을 평가절하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은둔하게 만들어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이는 비단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잘못된 양육으로 소중한 자녀가 스스로 비관하게 만드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서구사회처럼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특히나 동양의 사고가치관으로는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키우겠다는데 누가 상관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너무 팽배하기 때문이다. 너무 강한 잘못된 신념이 자녀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부모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누구도 섣불리 간섭할 수 없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여기거나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이 든다면, 이런 '열등감'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말고 스스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자기 긍정마인드'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실현가능성도 굉장히 높다고 글쓴이도 여러 임상과 관련 기사를 들어서 주장하고 있다. 그럼 스스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 둘째는 스스로 무력해지려는 마음과 작별해야 한다. 셋째는 일상에서 보람을 느끼도록 인생 설계를 해보는 것이다. 넷째는 성실하고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자아실현을 성취해보는 것이다. 다섯째는 나를 사랑하듯 남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여섯째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쾌락을 즐길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일곱째는 지금까지 앞서 해온 자신을 무한 신뢰하는 것이다. 어떤가? 해볼만 한가? 사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막 어려워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나가는 글 : 속된 말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 멋'에 취해서 살아간다. 저 잘난 맛을 즐길 줄 알아야 진짜 즐거운 인생이란 뜻이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가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런 즐거운 인생을 맛보지도 못하고 저승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으려 애쓰는 셈이다. 인생는 '게임'이 아니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시작'하거나, 함부로 '끌' 수도 없다. 잘나든 못나든 그냥 사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왕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좀 멋지게 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멋지게 사는 인생일까?

사람마다 멋지다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자기 존중'만큼은 꼭 필요할 것이다. 이 세상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은 없다. 평범한 사람보다 '더 잘난 것'이 많아서 인기인이 되고 탑스타가 되어 호의호식을 누리는 특별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 자기만의 멋을 부리며' 살아간다. 이런 멋만큼은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아니 감히 건드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바로 '자존감'이다. 반대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마음에 상처를 내거나 아프게 하면 '좌절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해서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남이 함부로 내릴 수도 없다. 만약 그 누가 당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폄하한다면, 결코 참아선 안 된다. 만약 상대가 너무 강하고 무서워서 당장 치고 받고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 시간이 걸리는 방법이지만, 3~40년간 오래 참다보면 결국 그 상대가 늙고 병들거나 이미 죽게 된다. 그때 분연히 일어나서 '자존감'을 드높이면 된다. 그러니 결코 자신이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말고, 자신만의 가치를 내세울 만큼 강심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신을 그럴 가치가 충분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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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책담 청소년 문학
최이랑 지음 / 책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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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 책담 청소년 문학> 최이랑 / 책담 (2026)

[My Review MMCCLXVIII / 책담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일곱 번째 리뷰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회초년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인트로>다. 고등학교 청소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있으면 어른이 된다는 설렘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두근거림은 느낄까? 아니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어른이 되는 것이 싫다고 떼를 쓰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설렘은 상상도 하지 못한 범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꼰대 같은 어른들은 섣부른 지레짐작으로 '청소년들의 고민'을 제멋대로 결정하고 판단을 내리며 가르치려 든다. 정작 그들이 가진 고민이 '무엇' 때문이고, '왜' 그런 고민을 하는지 이해도 하려 들지 않으면서 말이다. 흔히 말하는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산전수준 다 겪은 듯한 경험담을 늘어놓지만, 세월도 흘렀고 시대도 바뀌었으니 제발 그런 헛소리는 집어 넣고 꺼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럼 이쯤으로 각설하고,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인트로> 관점 포인트 : 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고등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가서 겪을 수 있는 고충을 하소연 하는 구나 싶었다. 그래서 어줍잖은 푸념 나부랭이나 늘어놓을 심산이면 그냥 '수능대비' 공부모드로 전환해서 명문대는 아니더라도 '4년제 대학 졸업장'이라도 따놓고 사회경험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을 품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왜냐면 우리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이 '취업 문제'인데, 그걸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번듯한 '대학졸업장'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대학졸업장'이라도 따놓으면 '입사 때' 서류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록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고, 대학 학자금 갚아나가면서 차곡차곡 밑천을 모아다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인생을 거는 모험을 하는 것이 정석코스 중의 정석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곤 한다.

그런데 '나도 다 경험해 봤다'는 식의 그런 '꼰대 같은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으레 첫 취직을 하면 '중요 업무'에서 배제되고, '잔심부름'이나 '사무실청소', '식사셋팅' 등 자기가 맡은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허드렛일만 하다가 하루 일과가 끝나곤 하니까 말이다. 아무리 학교에서 '현장실습'을 나간 실습생일지라도, 학교에서 역할분담을 한 것처럼 '실제 업무'를 배당받아 주요업무나 중요 프로젝트에 바로 참석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일을 한 결과, 기대한 '성과'를 내는 그런 꿈 같은 직장생활은 감히 꿈꿀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정규직 사원으로 입사한 뛰어난 인재라고 하더라도, 어디까지 '사회초년생'이고, '회사 말단 신입사원'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회사에서 '신입사원'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실무를 던져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고작 '현장실습' 나간 고3 학생에게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바로 적용해서 '실습'해볼 기회를 주는 그런 회사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회사분위기가 어색하고, 때론 억울하다고 하더라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여 '성실함'을 인정 받게 되면 자연스레 '간단한 업무'부터 시작해서 회사일을 배우게 될 거라고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후반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아차 싶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구나 싶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라고 부른다. 회사는 이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일한 대가로 '임금'을 지불하며, 노동자가 열심힌 일한 결과로 '영업이익'을 낸 뒤에, 그 차액을 '회사수익'을 챙기게 된다. 이게 보통이다. 그런데 모든 회사가 '영업이익'을 많이 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회사수익이 '마이너스'가 되어서 적자를 보고, 영업손해를 보게 되면 회사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하지만 이 때에도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노동한 대가로 '임금'을 정상적으로 지불해야 한다. 회사가 손해본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노동자가 '노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나쁜 회사들이 있다. 회사가 수익을 낼 때에는 '경영진'이 잘 나서 수익이 난 것이고, 손실을 낼 때에는 '노동자'가 게으름을 펴서 회사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를 꺼내면서 '노동자 해고' 운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에는 그럴 경우에도 함부로 '노동자 해고'를 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다.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고용 보장'을 해줘야할 의무가 정부나 회사에 다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인권'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런 노동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세 가지나 나타났다. 하나는 미아의 아버지가 3일 연속 '장거리 운전'을 하는 바람에 졸음운전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미아의 삼촌이 '호텔 주방장'으로 취직해서 열심히 일 했는데, 호텔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경영진'이 바뀌는 일이 발생했고, 그 때문에 호텔측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를 우선적으로 해고하는 부당한 일이 발생했고, 미아의 삼촌은 이에 불복하며 '부당해고 철회'를 호텔측에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미아의 절친인 '서수지'가 현장실습을 나간 곳에서 '실습'과는 무관한 허드렛일만 시키면서, 그것 또한 '사회생활을 배우는 일'이라면서 강요했고, 사무실 청소, 커피 심부름, 식당 예약 등 허드렛일이라도 묵묵히 참고 견뎌내면 '좋은 점수'를 받아서 취업할 수도 있다면서, 정작 '현장실습'을 증빙할 실습보고서에 적어놓을 수도 없는 잔업만 잔뜩 시키며, '업무시간 초과'는 부지기수고, '주말 근무'는 당연한 거라는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해대는 일이었다. 여기에 하일라이트는 '실습생'의 허리를 감싸며 '성희롱'을 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회사측에서는 '증거'도 없으면서 억지를 부리면 학생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거라면서, 오히려 피해자인 학생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일이 발생해버린 것이다. 자, 당신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가는 글 : 노동자는 자기 몸과 영혼을 갈아넣어서 회사일을 하며 '임금'을 받는다. 그저 단순히 '돈벌이'만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업무에 '보람'을 느끼길 바라며, 자기가 한 일이 보람찬 것을 넘어 '사회공헌'까지 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돈', '보람', '공헌'이라는 세 가지가 바로 '노동의 3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노동자는 자신의 몸과 영혼을 아낌없이 쏟아붓곤 한다. 그래서 노동자는 일을 하면서도 '건강'을 챙겨야 한다. 육체적인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까지 말이다. 그런데 미아의 아버지는 '육체적인 건강'을 챙길 수 없는 업무환경을 만들어 놓았기에 열심히 일하다가 돌아가셨다. 이건 노동자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욕심을 부린 것이라 보아선 절대 안 된다. 설령 노동자가 그런 욕심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회사측에서 말려야할 의무가 있다. 거대한 컨테이너 상자를 움직이는 트럭 운전은 고된 일이다. 대부분 고속도로를 고속으로 운전하는 일이고,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면 중간에 쉬지도 못하고 하루 8~10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꼬박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그런 '장거리 운전'을 3일 연속으로 한다는데도 회사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분명 책임을 져야만 한다.

또, 미아 삼촌의 경우도 '부당 해고'가 확실하다. 호텔 경영진이 바뀐 사정은 '노동자 책임'이 아니다. 영업 이익이 나지 않아서 호텔 경영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면 사측은 노동자와 '협의'를 통해서, '임금동결', '인원감축' 등을 신중히 결정하고, 사측과 노동자측 모두에게 큰 피해가 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호텔 경영난을 이유로 '인원감축'을 강행했고, 해고된 노동자가 '노조가입자'가 대부분이었다면, 이는 명백한 고의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법원에서는 1심 판결을 '경영진'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내렸고, 호텔측에 경영난이 있었기에 '부당 해고'가 아니다라는 호텔 경영진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를 근거로 노조가입자들이 대거 해고되었고, 노동자측의 권리를 주장할 '노동조합'이 와해되어 정상적인 '노조활동'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면 법원도 이를 참고해서 판결을 뒤집을 수도 있고, 그럼 해고되었던 노동자들도 '복직'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법정다툼'에서 승소할 수 있게 도와줄 '법조인'과 그에 따른 '소송비'를 충당할 여력이 노동자측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이다. 이게 현실적으로 힘 없는 사람들을 더욱 억울하게 만드는 원인인 셈이다.

이처럼 미아의 아버지와 삼촌은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려는 미아의 친구, 서수지에게 크나큰 시련을 마주하게 되었다. 학업성적이 우수해서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판타스틱 에이전시'라는 회사에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수지를 부러워했는데, 막상 '현장실습'을 나간 수지는 기대이하도 아닌 '절망'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이 마주할 냉혹한 현실세계일 수도 있으니, 어떤 어려움과 시련도 묵묵히 참고 이겨내면 된다는 충고와 조언이 뒤따를 법도 하지만, 그런 어려움도 '일을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참을 수 있는 것인데, 판타스틱 에이전시라는 회사는 애초에 '현장실습'을 온 학생을 최소한의 기준이나 예의조차 차리지 않고 '노예'처럼 부려먹기만 했던 것이라 아주 큰 문제였던 것이다. 계약된 3개월동안 실습하는 것이 고작 '커피 사오기', '사무실 청소', '식당 예약', '손님 접대' 뿐이라면 애당초 '현장실습'을 왜 받았느냔 말이다. 더구나 '손님 접대'를 하면서 고객이랍시고 찾아온 사람이 "실습생이야? 어리네."라는 말을 하면서 허리를 감싸는 '성희롱'을 당했다면, 무례하고 막돼먹은 손님에게 확실히 따지고, 사과를 하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되려 성희롱을 당한 학생에게 '사과'를 강요하고, 그동안 실습한 것도 없던 일로 하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왜 어린 학생에게 이런 시련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렇게 세 가지 부당한 일이 발생했는데, 미아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사회초년생들이 으레 겪는 불운이니 다 잊고 애초에 없었던 일인 것 마냥 그냥 넘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더러운 세상에서 살기 싫다며 한강 다리 같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인생의 마지막 점프를 하는 것이 좋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노동자가 당연히 누릴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머리띠를 질끈 묶고 시위를 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것 하나 쉬운 결정이 없다. 엄청나게 힘겨운 일이며, 고통스럽고, 앞길이 깝깝한 심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비극인 것이다. 그렇다면 힘 없는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애초에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죄를 짊어진 '노동자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쓰디 쓴 인내를 운명처럼 씹어야만 하는 걸까?

애초에 힘이 약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있다. 바로 '연대'다. 함께 할 때 큰 힘을 낼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참지 말고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노동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하디 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한 목소리를 내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그럼 부당하고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사회초년생들이라면 더욱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옳지 못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미아의 선택'이 큰 참고가 될 것이다. 사회초년생들이라면 심금을 울림과 동시에 현실직시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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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매니악 1
이우혁 지음 / 반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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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매니악 1> 이우혁 / 반타 (2026)

[My Review MMCCLXVII / 반타 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여섯 번째 리뷰는 정확하게는 27년 만에 새롭게 돌아온 <파이로매니악 1>이다. '미컴' 출판사에서 98년에 1권이 나오고 99년에 3권까지 출간되었다가 연재 중단이 된 <파이로매니악>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이다. 그나마 나는 작년에 '구판'으로 나온 <파이로매니악>을 읽고 리뷰까지 작성했기에 기억이라도 생생하지, 전작을 읽고 감동했다가 27년 만에 다시 만난 오랜 팬들은 정말이지 기억조차 가물가물 할 지경일 것이다. 암튼 '이우혁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만족할 따름이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본 뒤에 다루도록 한다.

<파이로매니악 1> 관점 포인트 :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구판'의 내용과 '개정판'의 내용이 완전 딴판이라 놀라는 팬들도 많을 것 같다. 구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동훈과 영, 희수가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을 '폭탄 한 발당 나쁜놈 한 개씩' 처단하는 방식으로 진행시켰는데, 개정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시작부터 '원샷 원킬'을 하면서 속도감이 엄청 빨라졌다. 그래서 전체적인 줄거리 진행까지 덩달아 빨라져서 짜릿함이 미친듯이 상승했다. 사실 <파이로매니악>의 매력 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엄청난 폭발감이다. 화약이 빵빵 터지는 장면이니 폭발 장면이 당연한 것이지만, 단순히 폭발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딱 원하는 곳에, 딱 알맞게 빵빵 터지기 때문에 더욱 짜릿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집 한 채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시원한 폭발감이 아니라 집 안에서도 '안방', 안방 중에서도 '침대밑', 침대밑에서도 '남편이 잠자는 쪽, 남편이 잠자는 쪽에서도 '허리'가 놓인 곳만 딱 골라서, 그곳만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한 남자의 허리'가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상반신과 하반신은 멀쩡한 상태 그대로 남겨 둘 수 있고, 같이 잠이 든 여자는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멀쩡할 수 있도록 아주 정밀하게 폭발을 시키는 방식으로 깔끔한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복수'다. <파이로매니악>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다름 아닌 '복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죽여서 공포심을 자아내는 '테러'와는 다르다. 아주 치밀하고 정밀한 '살인' 수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절한 복수를 명분으로 삼은 살인자들이 주인공인 탓에 독자들은 살인범인 주인공들에게 동정을 하고, 그들이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 비극을 겪었기에 공감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파이로매니악>의 매력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끔찍한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사사로운 복수'가 허용되는 사회를 사는 것이 너무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공권력'을 국가에게 맡기고, 국가는 사법부에 죄를 지은 사람을 벌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고, 죄인에게 벌을 줄 수 있는 근거인 '법'에 따라 만인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판결을 받게 한 것이다. 그렇게 판사, 검사, 경찰에게 죄인을 벌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피해자가 억울한 일이 없게끔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법이 '가해자'에게 유리한 것일까? '피해자'에게 유리한 것일까? 범죄자의 인권은 그토록 꼼꼼하게 지켜보려 애쓰면서, 범죄자에게 피해를 본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배상'은커녕, 피해를 받은 만큼의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히려 죄 지은 '가해자'가 떵떵거리고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남에게 피해를 줄 생각도 하지 않던 '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가해자'가 감옥에 수감되면 '피해자'는 배상을 포기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가해자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 '보상'을 하면 가해자는 감옥에 가지 않고 풀려나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버젓이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부유한 가해자는 죄를 지어도 돈으로 풀려나고 가난한 피해자는 그렇게 풀려난 가해자가 두려워서 일상을 포기하고 숨어 지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 과연 '사법정의'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이 땅에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는 떵떵거리고 플렉스하며 잘 사는데 반해서,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내놓고 지키는데 앞장선 '애국자'는 팔다리 잃고 병신으로 살거나, 가진 재산 다 빼앗기고 거지로 살아야 한다. 더 기가 차는 일은 '매국노의 후손'은 나라 팔아먹은 돈으로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다가 명문가도 거듭나서 '사회지도자'를 배출하는 상류사회를 살아가는 반면에, '애국자의 후손'은 부모가 병신이고 거지가 되는 바람에 덩달아서 굶주리며 살며 '기초수급자'가 되어 사회 밑바닥을 기어다니며 살아가게 된다. 대한민국이 먹고 살기 급급하던 시절에는 이런 '애국자의 후손'들에게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못해 더욱더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생을 포기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과연 대한민국 '사회정의'는 살아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구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그런 '매국노 같은 새끼'들만 골라서 처단을 일삼는 동훈, 영, 희수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갔던 것이다. 때는 90년대 후반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동안 억눌려 왔던 매국노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군사독재시절의 참고 견뎌야 했던 울분을 막 토해낼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파이로매니악>을 읽는 독자들은 간접적이나마 소설을 읽으며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3권을 끝으로 세 명의 주인공들이 '윤영대 검사'의 수사망이 좁혀오는 와중에 연재가 중단되어서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뒷이야기도 궁금했지만, 사무쳤던 원한을 풀지 못하고 '원귀'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개정판'이 나왔으니 그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나가는 글 : 개정판 <파이로매니악>은 구판에서 멈춘 이야기가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다. 비슷한 설정이라고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내용을 새로 펴냈다. 이는 대한민국의 90년대와 26년인 오늘날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우혁 작가도 변을 늘어놓았지만, 그 시절에는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던 시절이라 단독으로 몰래 움직이는 범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거리거리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고, 한밤중에도 대낮만큼 환하게 밝은 곳 투성이라 과거와 같은 방식의 범행은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화약기술'도 첨단화가 진척되어서 그 당시에는 최고의 전문기술자만이 겨우 만들 수 있던 폭탄도, 오늘날에는 웬만한 기술자도 레시피만 있다면 척척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기에 <파이로매니악>에도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야기 진행 속도가 구판에서는 너무 느렸다. 개인적인 서사는 둘째치고 '매국노 처단'을 하기까지 다짐하고 결심하고 결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지루할 정도로 장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국노를 한놈 한놈 처단할 때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보다는 '연민'이 앞서곤 했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캐릭터라면 그냥 '살인마'를 내세운 스릴러 소설에 불과했을 테지만, 매국노와 악질중대범죄자를 처단하는 '영웅들'인데 그토록 괴로워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판'에서는 그런 고민을 싹 날려버린 듯 싶다. 죽이는 게 더 낫다 싶을 정도로 악질들은 폭탄 한 방으로 시원하게 날려버려 영원한 '격리조치'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빠르게 해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감 쩔어서 읽는 맛이 아주 좋을 정도였다.

단, 범죄는 명백하기 때문에 '공권력'이 발동되면 우리의 주인공들의 활동에는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다. 구판에서는 '윤영대 검사'가 등장했는데, 철두철미한 성격에 냉혈한 기질까지 보이며 주인공들을 점차 궁지로 몰아가는 수사를 보여줬지만, 개정판에 등장하는 '구일문 검사'는 꼼꼼하고 냉철한 기질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인간미'가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앞으로 2권, 3권에서 어떤 모습과 활약을 보일지 살펴봐야겠지만, '파이로매니악(일명 '피엠')'을 뒤쫓는 모습은 확연히 달라 보였다.

이는 '사적인 복수'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인식 변화에서 비롯된 것 같다. 과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준수해야 하고,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야 하며, 법 집행에 있어서 사사로운 감정은 불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오늘날에는 '사법부의 무능'을 넘어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조차 없는 불공정한 권력의 산실로 인식하고 있음을 감안한 듯 싶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사법부가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바로 설 길은 오직 '사법부 개혁'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혁의 핵심은 '인사개편'이다. 썩은 부위는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힘겹겠지만 '사법부의 정상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공정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란범들이 내란을 저지르고도 최대 '사형', 최소 '무기'를 판결받지 아니하고 '20년형 이상'도 아닌 '5년형 이하'를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암담할 따름이다. 누구 말마따나 "내란을 저질러도 꼴랑 5년만 깜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되니, 저지를만 하구나! 내란에 성공하면 영웅으로 둔갑해서 평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 꼴랑 5년형이 무서워서 내란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겁쟁이가 따로 없는 셈일테니 말이다" 이런 걸 '사법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개정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거대한 범죄브로커가 '내부자'와 손을 잡고 '대한민국 방산업체'에서 기밀을 빼돌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군용 시제품'이나 '현물'까지 빼돌려서 엄청난 이익을 차지하려고 한다. 동훈과 영, 토끼928(희수)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이 사건에 '이용' 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세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말이다. 그러다 모종의 '루트'를 통해서 되살아나 '파이로매니악'으로 변신한 이들이 앞선 범죄브로커와 연관된 일당들을 하나하나 처단해 나가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그러면서 항변한다. "착한 네가 참아"라고 말하는 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이다. 착하면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고, 착하면 '피해'를 당해도 꾹 참아야 하는 법이라도 있는가? 다행히 대한민국 법에는 그런 조항이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착한 '파이로매니악'이 결의를 하고 '사적 복수'를 감행하게 되었다. 나쁜 놈들을 벌주러 말이다. 다행히 대한민국 법에는 나쁜 놈들 벌주라고 적혀 있다. 물론 '공적인 판결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단서조항을 달아놓긴 했지만, 마침맞게 사법정의가 무너졌으니 '사적 정의'를 빵빵 불태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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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1 삼국지톡 11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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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1>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5)

[My Review MMCCLXVI / 문학동네 4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다섯 번째 리뷰는 흩어졌던 유비 삼형제가 다시 만나는 극적인 이야기가 감동을 수놓는 <삼국지톡 11>이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의 떠돌이 생활은 현재 중국 대륙의 하북성(허베이성)에서 시작해서 '공손찬', '도겸', '여포', '조조', '원소', '유벽', '유표', '손권'을 거쳐 '유장'이 머물던 익주(오늘날의 사천성(쓰촨성) 일대)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대유람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위촉오' 삼국이 존재한 진정한 <삼국지>는 유비가 촉나라 황제에 오르고 동오의 손권이 황제를 표방한 시기부터라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인정하는 <삼국지>는 유비가 떠돌이하던 시절을 포함하지 않으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할 정도다. 허나 유비의 떠돌이 생활은 정말이지 너무 오래 걸렸다. 그 가운데 <삼국지톡 11>에는 하일라이트가 전개되는데, 헌제의 혈서를 받잡고 난 뒤의 유비가 원술 토벌을 빌미로 '조조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시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조조에게 발각되어 유비 삼형제는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데, 여기서 관우의 진면목이 등장하게 된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톡 11> 관점 포인트 : 이 책이 흥미로운 까닭을 먼저 말하자면, 기존의 <삼국지연의>와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공유하면서도 '컨셉'과 '사건전개'는 완전히 새로 구성한 듯한 신선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풀어내는 색다름만이 전부가 아니다. 다시 말해, 여포가 반바지에 하와이안 남방을 입고 풍선껌을 불면서 방천화극을 휘두르고, 명마로 유명한 '적토'가 자동차 브랜드 가운에 '말'이 등장하는 페라리를 새빨강으로 칠해놓았기 때문에 신선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이 장면, 장면마다 깊이 고뇌하고 골머리를 쥐어짜며 생사를 거는 한판 승부를 벌이며 온갖 지략 대결과 근육 대결이 끊이지 않으며 불꽃 튀기며 빠르게 전개되어 독자들에게 아드레날린을 뿜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분명 이 장면에서 등장할 인물과 사건이 뻔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내 예상과 짐작을 넘어선 기상천외한 '액션'이 화려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게 만드는 점은 바로 '주요 등장인물 간의 대화'다. 이 대화에서 터지는 '촌철살인'이 아주 압권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 '헌제의 혈서 사건'이 들통이 나면서 의원 길평이 조조의 고문 끝에 죽어나가고, 동승의 일가족도 무려 700명 넘게 끔살을 벌이면서 조조가 일갈하는 대목이다. "나, 조조가 아니었으면 어찌 황제의 안위를 알뜰살뜰이 보살필 수 있었겠소. 그런데 어찌 고새를 못 참고, 이 조조를 죽이려 드는 것이오."라고 화를 내자, 헌제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하..참으로 슬픈 거짓말이 아니오이까. 조조, 그대 같은 욕심쟁이가 하늘을 꿈꾸지 않을리가 있겠소."라고 말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대목에 이런 대사는 없다. 이런 뉘앙스만 풍길 뿐, 애초에 조조와 헌제는 서로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힘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에, 그저 '충의지사' 들이 자발적으로 역적 조조를 암살하려는 시도만 거듭할 뿐, 그마저도 '귀비'나 '황후'의 친척들이 주도를 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던 충신들이 조조 암살에 가담했다가 의도치 않은 '밀고사건'으로 인해 매번 사전에 발각되어 끔살을 당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헌제의 역할은 대부분 '수동적인 역할'밖에 없었다. 그나마 첫 암살시도였던 '옥대에 혈서를 담은 사건'만이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었으나, 이조차 조조측에 발각이 되자 발뺌하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하는데 급급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토록 대담한 '헌제의 대사'라니 놀랍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깜놀했다. 어디 이뿐인가? 관도대전이 한창 벌어지는 찰나 드러나는 '원소세력의 실체'로 인해서, 왜 조조보다 10배나 많은 병력을 갖고도 처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납득이 갈 만큼 생생하게 묘사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원소가 반드시 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다름 아닌 '프린스 원소'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결정적 한 방으로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대세'를 만들어내는 힘은 강력했으나, 지저분하게 치고 빠지며 진흙탕 싸움, 또는 개 싸움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탓이다. 왜냐면 '프린스 원소'는 이기더라도 깔끔하고 우아하게 이겨야지, 더럽고 지저분하게 이기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조조가 '기만 작전'을 펼치고, '매복'과 '기습'을 하면 원소군은 제대로 상대도 하지 않고 지리멸렬하게 우왕좌왕하다가 퇴각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도대전' 초반에 원소군은 조조군에게 호되게 당하고 만다. 차라리 그냥 압도적인 군세로 조조의 근거지인 '허도'로 물 밀듯이 밀어붙였으면 조조는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한 전쟁이었기에 버티지 못하고 그냥 패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조의 적'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서량의 마등, 한수, 강동의 손책, 그리고 형주의 유표만이 원소를 도와 앞뒤로 협공을 했어도 그야말로 필패였을 것이다. 거기다 '황건적 잔당의 반란(유벽 등)'도 관대대전이 한창일 때 심심찮게 일어났기 때문에 조조는 그야말로 사방팔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셈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원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들이 바로 '원소의 책사들'이었다. 전풍, 저수, 순심, 곽도, 심배, 허유 등 내노라하는 일류 책사들이 우글우글 했는데, 이들은 '일치단결'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 아니 적어도 '합심'이라는 말만 알았더라도 막강한 원소세력을 앞세워서 어떤 적이라도 압도할 수 있었을텐데, 만만치 않은 적 '조조'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전풍과 저수의 '전쟁 불가론'이었고, 이에 맞서 곽도와 심배는 '전쟁 필승론'을 내놓으며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극심한 논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들 앞에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모습'만 보이던 원소가 지리멸렬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삼국지톡>에서 원소는 '프린스 원소'라는 별명답게 무섭도록 냉철하고 깔끔한 명령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 카리스마의 결정체가 바로 '제 발로 굴러들어온 유비'였다는 것이 원소의 패착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실 '관도대전'에서 원소는 조조를 상대로 10배 이상의 세력 차이를 보여줬기 때문에 그냥 아무렇게나 싸워도 이길 수밖에 없는 승부였다. 그런데 원소를 유비를 이용해서 조조를 '황제를 볼모로 삼은 역적 이미지'를 내세웠고, 이를 명분 삼아 대군을 남하하여 조조를 토벌하고자 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좋았는데, 이때 조조군에 유비의 둘째 동생이었던 '관우'가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 원소의 패착 원인이었다. 바로 원소가 아끼던 두 장수 '안량'과 '문추'가 관우에 의해서 한순간에 모가지가 날라가는 참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초전은 조조군의 사기만 북돋아주는 격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이 일로 유비는 '조조군의 첩자'로 오해를 받고 죽임을 당할 위기에 봉착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원소군 내부의 분란으로 인해 유비는 살궁리를 끝마쳤고, 원소와 조조가 대결을 이어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유표'를 원소의 동맹군으로 삼고자 약조를 받겠다며 '원소의 품'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

나가는 글 : 이렇게 유비는 또다시 '원소의 품'에서 벗어나 유표를 향해서 간다. 이에 관우도 '형님'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조조의 품'에서 두 형수님을 모시고 떠나려 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오관육참'의 고사가 펼쳐진다. 비록 조조는 관우를 환송하며 쿨하게 보내줬지만, 조조의 부하들은 관우를 곱게 보내주려 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관우는 부득이 '청룡언월도'를 높이 들고 자신이 가는 앞길을 막는 이들을 하나하나 격파하며 나아갔는데, 그렇게 다섯 개의 관문을 넘어 여섯 명의 장수의 목을 베어나가는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던 것이다. 한날 한시에 죽기로 맹세했던 '도원결의'를 지키고자 한 사람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강행군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홀몸도 아니고 두 분 형수님까지 대동하고서 나아가는 '남자의 모습'에서 어찌 짜릿함과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그렇게 '오관육참'을 강행하고 황하 이북으로 뱃머리를 돌려 어렵사리 원소군 진영에 닿아 유비 형님을 찾았지만, 그 사이 유비도 '원소의 품'을 떠나 조조세력의 심장부인 '허도 부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관우가 두 분 형수님을 모시고 '오관육참'을 떠난 장소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관우는 다시 강을 건너 유비 형님을 만나러 남으로, 남으로 행군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맞닥뜨린 인물이 있었으니, 항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괴생명체'였다. 과연 괴생명체의 정체는?

<삼국지톡 11>은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 '관도대전'도 막바지에 다달았고, 유비 삼형제는 재회를 한 뒤에 조자룡이 합류하고, '유표의 품'에서 또다시 기약없이 세월을 낚으며 지내게 된다. 하지만 관도대전에서 뜻밖에도 조조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비는 수경선생에게 '복룡봉추' 이야기를 들으며, 드디어 유비와 서서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적벽대전의 시작'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바로 '유표'와 '손책' 이야기다. 이제 겨우 맛보기 정도의 짤막한 이야기만 나와 있지만, 유표의 '카리스마'가 아주 장난 아니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젠틀맨'이라고 별명을 붙이긴 했으나 굉장히 야심차고 강단 있으며, 특히나 스스로 황제라고 뻥(?)을 칠 정도로 욕망이 가득한 인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늙고 병들기 시작하면서 그 욕망의 이빨이 후드득 다 빠져버리는 모습으로 비춰질게 뻔하지만 말이다. 반면에 손책은 아직 젊었다. 그리고 여전히 '인재모집'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그 가운데 가장 눈독 들인 인물이 바로 '감녕(감흥패)'이다. 해적 출신의 능력자인데 '유표'에게 한껏 이용만 당하고 팽 당한 위인인데, 손책군에 합류하면서 크게 활약할 인물이다. 그런데 유표에게 이용 당할 적에 손책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그때 그만 '능조(능통의 아빠)'를 전사하게 만든 장본인이었기에 훗날 '능통'과 불구대천 원수사이가 되고 만다.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도 빼놓지 않고 서사에 넣어놨기 때문에 나중에 전개될 이야기를 짐작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해줘서 심심치 않았다. 앞으로 유표와 손책 세력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다 '적벽대전'에 포함될 것이니 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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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0 삼국지톡 10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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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0>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5)

[My Review MMCCLXV / 문학동네 4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네 번째 리뷰는 글로만 접했던 교국로의 두 딸 대교와 소교의 미모를 확인하고 수경선생 사마휘 휘하에서 학문을 연마하던 서서와 방통, 그리고 제갈량을 만날 수 있는 <삼국지톡 10>이다. 손책과 주유가 각각 대교와 소교 자매의 짝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만났는지, 얼마나 미인인지 <삼국지연의>에서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랬다니까 그런갑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만화 삼국지'를 뒤져봐도 대교와 소교를 그린 화백이 거의 없다. 왜냐면 그녀들의 활약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손책의 아내, 주유의 아내 정도로만 묘사할 뿐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삼국지톡>에서는 이런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원소, 공손찬, 조조, 유비, 손견 등등의 안주인들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끌어왔는데, 손견의 아내 '오국태(본명은 모름)'마저 중요 등장인물로 소개한 마당에 그녀의 아들인 손책과 손책의 절친인 주유의 아내가 되는 '대교와 소교'가 등장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등장시키니...웃겨 죽겠다. 직접 책으로 확인해보시길. 한편, 조조의 품에서 달아난 유비가 '관도대전' 이후에 만나게 될 책사들의 '어린 시절'이 펼쳐진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톡 10> 관점 포인트 : 원술이 드디어 황제에 오르고 '중(仲)나라'를 건국하니 조조는 원술을 토벌하기 위해 손책에게 직책을 하사하고, 강동땅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도록 한다. 그리고 그 댓가로 원술을 공격하라 하는데, '소패왕'이란 별명에 어울리게 연전연승을 하며 원술에게 우호적인 세력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낸다. 그러다 만난 인연이 바로 '교국로의 딸'인 대교와 소교였다. 적진 한복판에서 만난 인연치고는 엄청난 우연이었고 손책으로서는 '혼인'을 통해서 자기 세력을 넓혀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었기에 교국로를 혼인으로 '자기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대교와 소교는 훗날 오나라 명문가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강동을 석권하는데 큰 힘을 보탠 것으로 정리가 된다.

이런 결혼정책은 오랜 옛날부터 유용하게 써먹던 방법이다. 신석기시대 한 곳에 정착한 씨족사회가 부족사회로 세력을 키울 때부터 써먹었던 정책이니 정말 오래되었고, 오늘날까지 '두 집안'이 '한 가족'으로 묶이게 되는 유용함을 잘 이용해서 재벌가문끼리 서로의 재산을 불리고 늘리는데 아주 잘 써먹는다. 우리 나라도 고려 태조 왕건이 여러 호족의 딸과 혼인을 거듭하면서 싸우지 않고 통일하는 방법을 써먹을 정도로 오래되고 즐겨(?) 쓰던 방식이었다. <삼국지>에서도 손책만 써먹던 독특한 방식은 아니었으며, 유비도 서주를 얻게 되면서 '미축의 여동생'과 혼인을 하며 서주의 대명문가와 인연을 맺고, 서주 최고 부자의 덕을 톡톡히 보았던 셈이다. 이 때문에 혼인은 '인륜지대사'라고 불리며 두 가문의 결속을 다지고 재산과 세력을 늘리는 유용한 점을 적극 활용했던 것이다. 그러니 원소와 공손찬처럼 어머니쪽이 '천한 신분'이었던 것이 얼마나 불리하게 작용했고, 그 때문에 어린 시절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위험과 고난을 감수해야 했었느냔 말이다. 이는 한미한 가문이었던 '손책'도 마찬가지였다. 소패왕으로 실력은 검증 받았으나 전쟁을 거듭할수록 딸리는 것은 '군자금'과 징병과 물자를 원활히 보충할 수 있는 '명분(고귀한 신분)'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손책이 비록 적국이지만 대명문가 교국로의 딸과 혼인한 것은 단순히 '미모에 반했기' 때문만은 아닌 셈이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영토를 넓히고 군자금 융통까지 원활히 하기 위한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한편, 조조는 헌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황제랍시고 조조가 명하는 것에만 순순히 따를 수는 없었는지, 조조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은 까맣게 잊고서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조조를 '역적'으로 몰아서 내치고자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조조의 관점'이다. 왕조 국가에서 천하만물의 주인은 오직 황제 한 명 뿐이다. 그러나 한나라 황제인 헌제가 '주인행세'를 해야 마땅한데, 조조가 승상의 자리에 올라서 모든 일을 황제를 대신해서 처리하고, 황제마저 '허수아비'처럼 세워놓기만 하고 조조의 뜻에 거역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일삼고 있으니, 조조는 만고의 역적이 분명했다. 더구나 사냥대회에 나가서 감히 황제의 활을 빼앗아 대신 사슴을 잡으며 신하들의 만세소리를 자신이 대신 받는 것만으로도 '역적'으로 몰아 죽여버린다해도 누구 하나 문제삼지 않을 죄인인 셈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 그런 천인공노할 대역죄에도 끽소리를 못한다. 딱 하나 유비의 둘째 아우 '관우'만 빼고 말이다. 관우는 황제 앞에서 오만불손한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해버리는 조조를 들고 있던 언월도로 단박에 썰어버리려 했다. 허나 조조의 호위무사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천하의 관우라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비는 급히 관우의 행동을 저지하고 조조에게 엎드려 사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 때문에 조조는 관우를 더욱 주시했던 것일까? 더구나 관우는 <춘추>에서 '신하의 도리'를 주워섬기며 조조를 준엄하게 꾸짓는데 조조 또한 '먹물' 좀 많이 먹은 탓에 이러한 관우에게 더욱 호감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를 훈장선생으로 묘사하고, 장비를 돼지고기 장수쯤으로 묘사하곤 하지만, 실제로 공부는 장비가 더 잘했다고 한다. 관우가 줄줄 외고 있는 것은 <춘추>가 유일했다고. 암튼 조조는 묘하게도 관우에게 호감을 보이며 자기 부하로 삼으려 무던히도 애를 쓴다. 물론 그건 나중 일이지만 말이다.

암튼, 유비는 이런저런 일을 핑계로 황제 알현도 하지 않고 일체의 정사에도 관여하지 않으면서 '농사일'에만 집중하고 두문불출하며 몸을 낮춘다. 그런 유비를 끌어들여서 '조조 처단'에 이용하려 드는 헌제와 행여라도 유비가 '조조 암살'에 가담할지 불안에 떠는 조조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도, 유비는 태연자약하게 농사일에만 전념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농사를 짓고 있는 유비를 초대해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영웅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이름하야 '논영회'라고 붙였는데, 그 자리에서 조조는 온 세상에 영웅은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이 자리에 조조와 유비, 딱 두 사람 뿐이라고 단언을 한다. 이 역시 조조는 유비를 떠보려는 속셈일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속마음을 감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 조조'를 죽이고 영웅이 되고 싶은 거 맞잖아. 그러니 죽이고 싶으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라면서 유혹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유비는 자중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벼락과 천둥이 치고 유비는 깜짝 놀라 탁자 밑으로 몸을 숨기며 벌벌 떨며 겁쟁이처럼 행동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장면이 전혀 없다. 그 대신 장면이 전환되면서 헌제가 동승에게 '옥대'를 건내주며 '조조를 죽이라는 혈서'를 동봉해서 건내준다. 그리고 다시 장면전환이 되면서 유비가 조조에게서 멀리 달아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끝나게 되는데...

나가는 글 : 유비가 조조의 품에서 벗어나 서주로 달아났지만, 서주에서 재기를 노린 것이 애써 헛수고로 끝나고 오히려 유비 삼형제만 뿔뿔이 흩어져서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하비성을 지키던 관우가 두 분 형수를 지키기 위해서 조조에게 항복을 하면서 일단락이 되고, 본격적인 관도대전이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11권의 핵심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톡>은 늘 예측불가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때문에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궁금하다.

한편, 관도대전 이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제갈량'은 형주 양양에서 수경선생 사마휘 휘하에서 한창 공부중이다. 허나 천재 중의 천재로 이미 사마휘의 인정을 받은 상태였기에 '엎드린 용'이라는 뜻의 '복룡'이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허나 우리에게 더 익숙한 별명은 '와룡'일 것이다. 복룡이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서 엎드린 용'이라면 와룡은 무슨 뜻일까? 제갈량은 소싯적에 선생을 골려주고 놀려먹는 것을 즐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종종 선생들이 그를 '발라당 까진 방자한 녀석'이란 뜻으로 '배를 훤하게 드러내고 발라당 드러누운 용'이라는 와룡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복룡이란 별명 대신 와룡이란 별명으로 그간 불러왔던 걸까? 사실 '엎드린 용'과 '누운 용'의 차이는 그닥 없다. 당시 선비들은 베개를 높이 베고서 모로 누워 있는 자세를 즐겼고, 불상 가운데 누워있는 부처이라는 뜻으로 '와불'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대부분 '모로 누운 자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엎드린 용이나 누운 용이나 아직 하늘로 승천할 때를 만나지 못해서 '잠을 자고 있는 용'이란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서로 같은 뜻이었던 것이다. 헌데 이 책에서는 제갈량의 어린 시절을 똑똑하다 못해 버르장머리 없는 뜻으로 '발라당 까진 놈'으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제갈량의 '천재성'을 은유적으로 빗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제갈량은 그리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범한 재주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삼국지연의>에서처럼 '신출귀몰'한 재주를 발휘하는 신통방통한 능력자는 아니었고, 제갈량이 내놓은 계책이라고 했던 것들은 사실 '다른 인물들'이 먼저 했거나 '다른 인물들'이 한 일을 제갈량이 한 것 마냥 바꿔치기 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나마도 대부분 '과장'된 점이 없지 않아서 <삼국지연의>만 보고 제갈량을 천재라고 인지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역사가들이 많다. 그렇지만 제갈량을 만나고 난 뒤에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고 '익주'까지 세력에 포함시킨 것은 사실이기에 유비로서는 날개를 단 것일테다. 앞으로 <삼국지톡>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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