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통 만화 삼국지 9 - 영웅의 최후
나관중 원작, 천웨이동.량샤오롱 글.그림 / WISDOM(위즈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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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C / 위즈덤(WISDOM) 9번째 리뷰] 9권에서는 '삼국지의 영웅들'이 하나둘 죽음을 맞이한다. 이미 수많은 군웅들이 죽었지만, 관우, 장비, 유비, 그리고 조조의 죽음은 무게감이 다르다. <삼국지연의>를 초반부터 이끌던 진정한 주인공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국지'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팬들조차 유비가 입촉 이후 사망한 이후부터는 관심도가 시들해져서, '그 뒤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누가 등장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다. 그럼 이 네 명의 영웅들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살펴보자.

유비가 '서천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떠나고 '형주땅'을 지키고 있던 장수는 관우다. 방통이 갑자기 죽자 제갈량은 서둘러 유비의 곁으로 가면서 관우에게 형주를 맡기고는 다짐을 받아두는데, '조조와는 서로 맞서고, 손권과는 손을 잡아라'는 내용이었다. 까닭이 무엇일까? 제갈량이 주장했던대로 '천하삼분지계'에 따라서 북위, 동오, 그리고 서촉으로 형세가 갈라지게 되면, '형주'의 중요성은 반반으로 갈라진다. 물론 형주는 매우 중요한 요충지인 것에는 틀림없다. 물자가 풍부하고, 인재가 많으며, 교통이 수월한 곳이라서 이곳을 차지하고 있는 이점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유비가 '서촉'을 차지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천땅은 '천혜의 요새'와 같은 지형적 유리함과 동시에 '풍요로운 자원'으로 축복을 받은 곳이다. 그러니 서촉은 수비는 한결 쉬워지고 물자는 풍족하니, 굳이 '형주'가 없어져도 큰 문제가 없는 곳이 되었다. 다만, 수비가 쉽다는 것은 나아가 진출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니 '중원'으로 나아가는 길목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형주'를 차지하고 있다면 여전히 유용하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형주땅'을 손권이 유난히 탐을 내고 있다는 것에서 이해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서촉과 동오는 북위라는 어마어마한 '공동의 적'을 마주하고 있는 형국이니, 서로 긴밀하게 손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손을 잡고서 '적벽대전'이라는 달콤한 승리를 맛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달콤한 가운데 대부분을 유비가 차지하고 말았다. 이는 제갈량의 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비는 더 큰 땅을 차지할 한 밑천 단단히 잡음과 동시에 손권에게 담보를 맡기고 이윤을 챙길 수 있는 '형주땅'을 아주 잘 이용해 먹었다. 그리고서 형주보다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서촉'을 차지했으니, 그만 돌려주어도 전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관우'에게 형주를 맡겨 놓고 있었으니 끝내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관우의 책임'이 크다. 그리고 '제갈량의 방조'도 한몫 단단히 했다. 먼저 '관우의 책임'부터 따져보자. 결과적으로 형주를 지키다 관우는 목숨을 잃는다. 무인으로서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겠지만, 문제는 자신의 죽음으로 일단락된 것이 하나도 없이 더 큰일을 연쇄적으로 발생시키고 말았다는 점이다. 장비의 죽음과 유비의 죽음에 '관우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었을까? 만약 관우가 전장에서 죽지 않고,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면, 장비와 유비도 그렇게 비명횡사하듯 서둘러 죽음을 재촉하지 않았을 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관우는 왜 죽었나? 그건 하릴없이 부린 '고집'과 쓸데없이 벌인 '만용' 때문이었다. 일찍이 관우가 제갈량의 조언대로 '손권이 내민 손'을 꼿꼿하게 거절하지 않고 유연하게 잡았더라면, 유비가 이제 막 얻은 서촉땅을 탄탄하게 자리매김한 뒤에 당당히 중원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관우가 쓸데없이 '형주'를 지키고야 말겠다는 일념만으로, 또한 자신이 최고의 무장이라는 자만으로 인해서 결국 '맥성'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야 만다. 죽는 것보다 더 치욕스런 '포로'로 잡혀서 손권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했고, 손권은 그 책임을 조조에게 떠넘기기 위해서 '관우의 머리'를 조조측으로 보내버린다. 만약 여기서 관우가 손권에게 잠시 몸을 의탁하고 있다가 훗날을 도모하는 여유(?)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비록 형주땅을 손권에게 빼앗겼지만, 관우를 무사히 되돌려 받고서,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고, 또는 더욱 굳센 '촉오동맹'을 맺어 북위와 맞서 싸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관우의 만용으로 인해 그러한 모든 변수를 일거에 불식시켜버리고 말았다.

이런 무책임한 관우의 죽음인데도, 관우는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의(義)'를 높이 사서 곳곳에 '관우의 사당'이 지어졌고, 심지어 민간신앙에서는 '신'으로 추대를 받아 국난극복과 같은 큰 어려움을 맞이했을 때 간절히 소원을 비는 구심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관우의 묘(동묘)'가 있을 정도로 동북아시아에서 '관우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봤을 땐, 이런 관우가 숭상되는 모습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엄청난 실책으로 서촉을 빠르게 망국의 길로 가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준 '의리'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와 동시에 그가 보여준 '똥고집'은 절대 본받을 만한 것이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역사서에서 '장비'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관우를 능가하는 면이 없지 않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그가 머리(지혜)는 없고, 오로지 힘(무력)만 가진 괴력의 장수로 묘사되지만, 소설속에서도 간간히 등장하는 '장비'가 무력이 아닌 지략으로 거둔 승전보는 그가 애초부터 단순무식한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가 '의형(역사서에는 '도원결의' 장면도 없다. 그러니 유관장 삼형제라는 것은 나관중의 픽션의 소산으로 볼 수도 있다)의 죽음'에 분노하다 과음으로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이에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실제 역사서에서도 이 장면은 자세히 나오지 않기에, 그저 허구일 뿐이라고 짐작하지만, 장달과 범강이 장비의 목을 가지고 동오의 손권에게 투항한 사실만큼은 진실이니, 이를 통해서 분석해보자.

관우의 죽음으로 유비는 동오를 곧바로 치고자 하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직 나라를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했고 '복수전'을 벌인다해도 대군을 준비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정황은 급박하게 돌아가 '조조'가 위왕에 등극한 것으로도 모자라, 조조의 사후에 조비가 '헌제'에게서 선위를 받아 황제에 등극하게 되니, 바야흐로 '한나라'는 끝내 망하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분개한 유비는 대소신료의 청으로 '황제'로 등극하길 거부하고 '한중왕'에 올랐다. 조비가 선위를 빙자한 찬탈을 한 것을 확인하고서, 한의 정통을 이어받아 '촉한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서 첫 번째 명령이 바로 '동오 토벌'이었다. 손권을 향한 복수전을 치르겠다는 결심이었다. 이에 제갈량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이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만류하지만, 장비가 울면서 유비를 찾아오자 유비는 결심을 철회하지 않게 된다. 이에 들뜬 장비는 속히 '복수전'을 감행하려 부하들에게 독촉을 하던 와중에 그만 죽고 만다. 그에게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짐작컨대 '성급하고 불같은 성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술'을 좋아해서 끝내 비명횡사한 것이라고 호사가들은 말하지만, 술 좋아한다고 다 장비처럼 비극을 맞이하지는 않기에 '성급한 일반화'라는 오류는 말아야 한다. 한 번 결심하면 물불 안 가리고 '직진'하는 성격은 때론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태반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성격이니 고쳐야 할 성격일 것이다. 더구나 쳐부수어야 할 대상은 '손권측 사람들'이지 '자기편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왜 불같은 화를 낼 때 '자기 사람'을 다치게 해야만 했는가 말이다. 참고 참았다가 '적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폭발시켰어야 옳은 방법이었다. 애먼 사람에게 화를 내면 장비처럼 개죽음 당하기 십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편, 유비의 죽음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한 날 한 시에 죽기를 맹세한다는 '형제의 맹약'을 지키는 군주를 매력적으로 보아야 할까? 국가의 지도자가 '사적인 일'로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날 '두 번째 현직대통령 파면'을 마주한 대한민국의 위기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최순실 국정농단'을 감추려다 박근혜는 파면 되었고, '명태균 게이트'를 덮으려다 윤석열도 파면 되었다. 이게 모두 다 '제 식구 감싸기'를 하려다 국가를 파탄낸 일이다. 유비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면 결국 '파면 대상'일 뿐이다. '제 식구(관우의 죽음) 감싸기'를 하다가 모든 군대를 총동원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온 국민을 전쟁으로 내몰 위인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비가 불세출의 영웅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국가의 위급 상황(황건적의 난, 십상시의 난) 때, 의로운 군대를 이끌고서 난세를 평정하는데 일조하고, 동탁과 조조라는 '황제'를 위협하는 역적들을 처단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세력을 규합해서 당당히 맞서 싸운 영웅을 깎아내릴 까닭은 전혀 없다. 그런데 그런 모든 위업들이 '복수전' 한 방으로 송두리채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전쟁(이릉대전)도 지고 말았다. 그로 인한 국가의 손실은 막대하고, 장비와 황충, 유봉, 맹달 등등 아까운 인재들을 숱하게 잃어버리고, 수많은 병력과 영토까지 빼앗겨 잃어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자기자신의 목숨조차 보존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으니, 촉한의 미래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처지로 전락하고 만 셈이다. 그나마 마지막 유언으로 '제 아들(유선)이 차기 황제로 부족하니, 제갈량에게 촉한을 차지하라'고 남긴 것만은 영웅다운 마지막이었으나, 제갈량은 이 유언을 따르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 책에서는 제갈량이 유비의 성품을 닮아서 그랬다는 해석을 따랐다. 유비도 도겸의 땅, 유표의 땅, 유장의 땅을 함부로 낼름하지 않은 것처럼 제갈량도 촉한의 땅을 함부로 낼름하기보다는 '충(忠)의 길'을 따르는 것으로 족했다는 해석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조조의 죽음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의 관상평은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고 했단다. 이래저래 조조의 평가는 '대단한 능력자'일 수밖에 없는 평가인데, 실제의 삶도 과연 그랬다. 그는 영웅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고, 심지어 '호색(好色)'까지 갖춰서 그야말로 완벽한 영웅(?)이었다. 그런 그도 끝내는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황위 찬탈'까지는 하지 않고, '위왕 등극'으로 만족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았다는 첫째 조비는 아비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헌제'를 핍박해서 강제로 선양하게 만들고서 세 번의 거절 끝에 '선위'라는 방법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이로써 '한나라'는 망하고 '위나라'가 새로 시작하며, 조조는 죽고 난 뒤에야 '선황'의 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차지한다.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 더할나위 없는 멋진 인생 아니었나? 그는 '역사의 승리자'였다. 그런데도 뭔가 찜찜하다. 왜 그의 아들은 제 아비의 무덤을 72개나 만들었을까? '가짜 묘'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의 죽음이 떳떳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완벽하고 멋진 인생이 왜 끝이 허무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일까? 그건 그가 '실리'만 추구하고, '의리'는 그때 그때 다르게 처리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주 야박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실리를 추구하고, 이득을 쟁취하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단지, 이득을 많이 챙긴 '부자'를 존경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현 대통령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그의 소신을 탓하지는 않지만, 그 소신을 따르기 위해서 취한 정책이 엉터리라서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것이 싫어서 비판하는게 아니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그동안 숱한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었던 명분(법치주의, 민주주의, 자유평등, 상호호혜 등등)을 스스로 걷어차고 '깡패짓'보다 못한 짓거리를 하며 전세계를 상대로 삥뜯고 있는 모습이 기가 차서 그런 것이다. 물론 미국이 옛날부터 했던 짓을 트럼프도 하고 있을 뿐이긴 하지만, 그나마 옛날에는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이라도 내세웠지만, 지금은 우격다짐(아메리카 퍼스트)일 뿐이지 않은가 말이다. 결국 조조의 평가는 대단한 능력자이긴 하지만, 전혀 존경받을만한 대상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자, 이제 숱한 영웅들의 죽음을 뒤로 하고, '사마의 vs 제갈량'의 대결이 벌어지는 대격전이 벌어질 차례다. 남은 분량으로 짐작컨대 '오장원에서 지는 별'로 이 책도 마무리 될 것 같다. 즉, '제갈량의 죽음'으로 북위의 승리와 사마의의 아들들이 찬탈을 해서 세운 '진나라'를 끝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또 한 편의 <삼국지>'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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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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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XIX / 이봄 13번째 리뷰] 작가의 '한결같음'은 매력일까? 권태일까? 딱히 '전작(全作)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작가에 꽂히면 그의 저작물을 닥치는대로 읽고, 사 모으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오랜만에 '마스다 미리'가 걸려들었는데, 이 작가는 좀 한결같다. 그래서 좀 지루한 감이 있기도 하다. 그 까닭은 '3, 40대 독신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벌써 마스다 미리 작가의 13번째 리뷰인데 조심스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 예전 리뷰에서 썼던 내용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하면서 리뷰를 쓸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지루하면 더는 읽지 않을텐데, 꾸준히 읽는 것을 보면 단순한 권태는 아닌 모양이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긴 한데, 그게 뭔지 딱 와닿지 않은 것 같다.

제목에서 '반려견'을 다루고 있지만, '치비(히토미가 어릴 적에 붙여진 반려견의 이름)'를 그리 많이 다루진 않았다. 그보다는 '사와무라 씨 댁, 세 식구'에 관한 일상이야기가 주를 이룰 뿐이다. 그리고 무려 결혼한 지 40여 년 간의 일상을 불쑥불쑥 꺼내들 뿐이다. 그런데도 비슷비슷한 '일화'들이 주를 이룬다. 참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 식구들이다. 오죽했으면 1편에서는 '오랜만에 여행을 가다'가 제목이었겠는가. 그런데 뜬금없이 2편에선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궁금하겠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사와무라 씨 댁'의 가족들의 평균 연령이 60세인 탓이 가장 크다. 그렇다. 반려견보다 먼저 죽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개의 평균수명은 견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작은 견종은 10~15년, 큰 견종은 20~30년을 산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제 고희(70세)를 맞이한 사와무라 씨에게는 "내가 돌볼테니 개를 키웁시다"라는 말을 내뱉기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일본인들은 가족끼리도 '폐'를 끼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하니,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피곤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마음씀씀이'다. 불편해도 가족이니 괜찮겠거니 마구 일을 벌이는 것도 실례지만, 가족끼린데도 불편을 꺼리고 눈치를 보면서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사는 것도 예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라고 보인다.

암튼, 이 책의 주된 주제는 '노년의 삶'이다. 초고령화 사회로 돌입한 것 때문인지 한국과 일본은 연일 '저출생 문제'를 들이대고 '인구감소'를 크나큰 재난마냥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그나마 일본의 인구가 한국보다 2배 많은 것이 현재라서 조금 덜 심각하게 여기고 있긴 하지만, 우리보다 더 심각한 '경제문제(잃어버린 30년)'를 안고 있어서 '노후대책'에 대한 관심이 꽤나 높아진 것은 사실인 듯 싶다. 거기에 '고독사', '1인 가정',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노인' 등등의 문제가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종종 마주할 수 있는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노인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문제가 되기 '전'에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기에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을 정도로 '지루'하지만 계속 읽게 되는 것 같다. 딴에는 언제까지 '한결같을 것'인지 오기로 읽고 있는 느낌도 있고 말이다.

어쩌면 작가는 '늙음에 대한 평범한 고찰'을 시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늙게 되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발상의 전환'같은 고도의 전략적인 '일상 탈출'을 계획하지 않게 된다. 그저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느낄 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도 아주 장점이 없지는 않다. 아주 작은 변화도 금방 '눈치' 챌 수 있게 되고, 아주 사소한 즐거움도 놓치지 않게 된다. 젊어서나 어려서는 전혀 알아챌 수 없었던 '작은 변화'조차 늙은이의 삶에 포착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탓에 노인들은 재빠르게 움직이는 '동물'보다 느려서 움직임조자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식물'에 관심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계절의 변화도 '꽃'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잎사귀' 하나, '벌레' 한 마리, '바람'에서 느껴지는 냄새 하나하나에서 모두 '기운'을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인의 초능력'인 셈이다. 우리는 이를 흔히 '노련함'이라고 뭉뚱그려서 표현하지만 말이다.

나도 나이가 50살이 넘어가니 슬슬 그 초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 언제까지 그 초능력을 사용하며 살아갈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 내리는 봄비가 그치고 나면 좀 따스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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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의 질문 - AI와 우리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 13
미리엄 메켈.레아 슈타이나커 지음, 강민경 옮김 / 한빛비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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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XVIII / 한빛비즈 167번째 리뷰] 질문이 필요하다. 먼저, 우리는 AI 시대를 살아가는가? 이미 '살아가고' 있다. 아직 우리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미 상당한 기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 귀에 벌써 익숙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AI 시대'속에서 잘 살아갈 것 같은가? 대답하기 곤란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흔히 말하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공존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AI 기술의 발달 '속도'를 지켜본다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AI는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의 일상을 점거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을 점거한 AI 기술이 우리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런 결론조차 '50 : 50'으로 갈리는 편이다. 이런 결론이 우리에게 결코 좋은 결론이 아니다. 왜냐면 어떤 기술력이 등장했을 때 기대감의 좋고 나쁨에 따라 그에 따른 '보완점'을 내놓으면서 '대책'이나 '대안'을 마련하기 마련인데, 좋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쁘기도 하다면 어느 쪽에 맞추어서 '장단'을 맞춰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까지 가장 좋은 대안은 '인간과 AI가 서로 공존하는 쪽'으로 방향을 맞춰야 하는 결론밖에 내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공존'은 정말 좋은 결론인가? 공존도 두 가지 '방법론'으로 나뉜다. 하나는 '켄타우로스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이보그 방식'이다. 켄타우로스 방식은 '반인반마'의 특성처럼 인간과 AI의 장점을 살려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고, 사이보그 방식은 인간과 AI의 '완벽한 융합'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런 분류법은 오직 '생산성'만을 따졌을 때 내릴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공존은 '윤리적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예컨대, 소설이나 음악, 미술과 같은 분야에서 '창작자의 독창성'을 인정하고 '저작권의 문제'를 고려한다면, 원작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소설가가 'AI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대략적인 '밑그림'을 짜놓은 소설에 작가 본연의 문체와 구성력으로 직접 손봐서 내놓은 결과물을 과연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만약 이게 '창작의 영역'으로 인정이 된다면,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데이터'로 삼은 AI 작가가 내놓은 '2차 창작물'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10초만에 뚝딱 만들어진 창작물의 소위 '대박행진'을 해서 엄청난 수익을 냈다면, 그 수익은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할 것인가? 당연히 'AI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출판사의 것'인가? 만약, 켄타우로스 방식으로 '중간개입자'가 있어서 그의 의도가 조금이라도 반영되었다면, 그의 '창작물'로 인정해야 옳은 것인가? 아니면 사이보그 방식으로 AI 칩셋을 '이식'한 사람이 매 10초마다 내놓은 창작물의 소유주로 인정받아야 마땅한가? 결국엔 '기준점'이 모호해서 그 어느 쪽으로도 인정하지 못하고, 어느 쪽으로 인정을 해도 여전히 문제의 소지는 남게 된다.

물론, 이런 모든 논란은 AI가 '완벽하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AI는 '거짓말'도 능숙하게 한다. 이를 '할루시네이션'이라고 하는데,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확률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명백한 사실'조차 부정하고, '허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새로운 거짓말'을 계속에서 늘어놓는 AI의 답변을 마주할 때마다 절망하게 된다. 과연 이 도구를 계속 신뢰하면서 쓸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이 부쩍 늘어나게 된다. 더구나 AI에게 입력한 '데이터의 신뢰성'에도 문제가 있다. 인류의 지식을 총망라했다고 자부한 AI들이 내린 '인간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라는 데에도 놀라움을 넘어 끔찍할 지경이다. 대다수의 결론이 부정적이었으며, 그 부정적인 평가의 대다수도 '인류는 멸종시켜야 한다'였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가? 이는 인류가 남긴 '기록'이 인류에게 마냥 우호적이지 않다는 경향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AI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매우 '유용한 도구'라는 점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수행하는데에 AI의 기술은 매우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었고, 그 결과 또한 놀라울 정도다. 그러니 사람이 일일이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작업은 '고귀할' 수는 있으나, '생산성'은 꽝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유용한 도구를 반드시 써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조심히 다뤄야 한다. 왜냐면 AI는 우리에게 마냥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AI 스스로는 '선악의 기준'을 모른다. 그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추려내고 '확률적'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보이는 데이터를 모아다가 '우리가 제시한 틀'에 맞추어 내놓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작업했다면 절대로 실수하지 않았을 '팔이 세 개인 사람'을 천연덕스럽게 내놓는 것이 바로 AI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 결과물을 내놓았다고해서 AI를 그냥 폐기하지도 못한다. 왜냐면 사람이 직접 그렸다면 아무리 빨라도 3~4시간이 걸렸을 작업이라도, AI는 불과 10초 이내에 뚝딱 해치웠기 때문이다. 사람의 속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셈이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AI 기술을 포기하지 못하고, 기술력을 보완, 발전시켰을 때의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지만, 딱히 문제점을 개선할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왜냐면 인간은 AI의 결론을 볼 수 있지만, AI가 그런 결론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AI는 '인간의 언어'를 해독해냈지만, 인간은 'AI의 언어'나 AI의 언어구사 방법' 등의 일련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걸 살펴보려면 또다시 'AI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AI의 도움을 구해봐야 그 또한 'AI의 언어'이기에 인간은 도저히 'AI의 마음속(?)'을 알 도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저 AI가 내놓은 달콤한 결과물에만 취할 뿐이다.

그래서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그 '달콤함'이 인간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놓은 대안이 'AI의 생성수단'을 양껏 이용하되, 최종적으로 '인간이 검수하고,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겠는가..라는 소극적인 결론만을 내놓을 뿐이다. 결국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AI 기술을 적극 도입해서 '생산성'을 최대로 높이되, 그 결과물에 대해서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개입해서 해가 되는 것은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존에도 문제는 또 있다. 바로 '평균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이조차 버거울 것이라는 점이다. '평균 이상의 사람들'은 이런 공존방식으로 크나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들은 '주15시간'만 노동을 하고도 엄청난 부와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능력'조차 버거운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가장 손쉬운 방법은 '평균 이하의 사람들'은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그럼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우리가 풍요를 누리고 살기 위해선 우리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누군가에게 팔아서 남은 이득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풍요를 누리며 사는 '완벽하게 공평한 나라'는 일찍이 마르크스가 꿈꿨지만, 현실에선 여지없이 실패하고 말았지 않은가. 부의 불균형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경제가 '정상작동'하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계속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극심하게 '양극화'가 되어서도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는다. 바로 '평균 이상 vs 평균 이하'의 대립구도가 그럴 것이다. AI라는 유용한 도구를 잘 활용하는 사람들에겐 마르지 않는 샘처럼 부를 창출해낼 수 있겠지만, 그 도구가 아무리 유용해도 '그림의 떡'처럼 이용할 수 없는 사람에겐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둘의 차이'가 너무 극심하다는 것이다. 뭐,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금'을 활용해서 '연금' 형식으로 부의 균형적 분배 장치를 만들자고 하지마, AI가 없던 시절에도 해내지 못한 숙제 아니던가?

그리고 문제는 또 있다. AI가 내놓은 엄청난 생산력도 그동안 만들어놓은 '인류의 창작물(데이터)' 수천 년간 쌓여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데이터도 고작 2026년이면 모든 데이터를 다 써버리고 마는 '고갈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럼 인간의 독창적인 창작물을 'AI의 처리속도'에 맞춰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게 불가능하니,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2차, 3차 가공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심지어 'AI와 AI'가 협업(?)을 해서 내놓은 생성물이 넘쳐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완벽한 자율시스템이니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고 AI가 선사한 생성물의 풍요로움을 그저 만끽하기만 하면 된다는 낙관주의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근친교배'로 인해서 인류가 번성하길 포기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AI끼리의 근친교배(?)로 인한 생성물도 위험하기 짝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거짓말 잘하는 AI'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주 '그럴 듯한' 정보를 가지고 엄청난 생산량을 자랑한들, '불량품'을 양산한 꼴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의 검수, 선택'이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좋은 기대를 하긴 힘들다. 왜냐면 이미 지금까지의 '인공지능 데이터'를 검수하고 선택하는데에도 '케냐의 일꾼'을 고용해서 시간당 2달러(한화 약 3000원)라는 값싼 비용을 제공하고서 쌓은 업적이기 때문이다. 미래라고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다가올 AI 시대의 본격화를 막을 도리는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인간이 살 수 있는 시대를 만들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조금이라도 게으르다면 결국 인간은 유용한 '도구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AI를 도구로 이용해서 부를 거머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AI의 도구로 전락해서 영화 <모던타임즈>의 명장면처럼 살아갈 것인가? 그건 당신의 '선택'이 아니다. 이 책 <AI 시대, 우리의 질문>을 읽으면 느낄 것이다. 이미 '결정'되어 있다. 당신이 이미 살아온 방식, '선택'한 습관에 따라 결정지어졌기 때문이다. 어떠한 결정이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여기 한 어린이의 불평을 잘 듣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숙제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왜 이걸 다 해야 해요? 이딴 걸 배워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AI가 나보다 더 글을 잘 쓰고, 계산도 잘 하고, 조사도 잘 해요. 그런데 왜 이걸 제가 해야 해요?" 틀린 말인가? 어차피 AI가 더 나은 결과물을 내는데, 왜 사람이 직접 해야 할까? 이 질문에 핵심이 있다. 당신이 '도구'를 쓰는 삶이 될지, 아니면 '도구의 도구'로 살아가게 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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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통 만화 삼국지 8 - 천하삼분(天下三分)
나관중 원작, 천웨이동.량샤오롱 글.그림 / WISDOM(위즈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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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XVII / 위즈덤(WISDOM) 8번째 리뷰] 결국 유비가 서촉땅을 얻었다. 유비가 삼고초려를 하고 제갈량이 내놓은 계책이 '천하삼분지계'였는데, 드디어 천하를 셋으로 쪼개는 형세를 갖춘 것이다. 조조의 북위, 손권의 동오, 그리고 유비의 서촉, 이렇게 천하는 셋이 되었다. 허나 갈 길이 멀다. 이제 막 '한 황실의 복위'를 위해서 주축이 될 거점을 마련했을 뿐, 여전히 '헌제'는 승상 조조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으며, 손권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이다. 유비가 나아갈 길은 이토록 험난한데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 정도라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유비에게 든든한 기둥 같은 존재는 바로 '제갈량의 존재'다. 유비가 화려한 비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와룡선생'이라 불리던 제갈량과 함께 하면서부터였다. 공명이 있었기에 유비는 '적벽대전'에서 형주를 빌릴(?) 수 있었고, 형주를 발판 삼아 '서천땅'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천연요새와 다를 바 없는 '서촉'을 기반으로 방어를 굳건히 하고, 천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물자를 바탕으로 힘을 기를 것이다. 이제 유비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힘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유비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유비는 유장에게서 서천땅을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냥 얻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뺏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유비가 유장의 영내로 '군대'를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동천땅(한중)'의 주인, 장로 때문이었다. 장로가 유장을 공격했기에 홀로 막아낼 수 없었던 유장은 '유비군'을 구원군으로 요청한 것이다. 유장의 신하들 중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유비는 세상이 다 아는 효웅인데, 늑대(장로)를 몰아내고자 호랑이(유비)를 끌어들이는 격이라며 성문 앞에서 목을 메어 자살하면서까지 유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충신들도 있었을 정도다. 그러나 유장은 '그릇'이 작았다. 그에게 너무도 과분한 충신들의 간언이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유비는 방통과 함께 서천땅으로 들어왔고, 유장을 대신해서 장로와 싸우러 갔다.

그런데 여기서 사달이 났다. 장로의 공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선봉으로 나선 마초의 공격은 장비의 용맹과 공명의 지혜로 '우리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한중땅이 워낙 험준한 지형이었기에 수비에 치중하는 장로군을 서둘러 공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비는 유장에게 '병사와 병량미'를 요구했으나, 유장은 자신들도 가진 게 없다며 '늙은 병사와 쌀 약간'을 보내왔을 뿐이다. 이에 불같이 화를 내는 유비는 장로군을 뒤로 하고 유장을 치러 군사를 되돌렸다. 이런 대접을 받으며 더 싸우다가는 '병량'이 떨어져서 진퇴양란에 빠져 자멸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유장이 틀어박혀 있는 '성도(서촉의 수도)'로 쳐들어가 유장을 잡고, 서촉을 차지했다.

애초에 이렇게 했으면 되었을텐데 왜 유비는 방통을 잃어가면서까지 뜸을 들였던 것일까? 어차피 유장을 공격(!)해서 서촉을 빼앗을 거였으면서 말이다. 그간 유비는 도겸에게서 '서주'를 얻을 때도, 유표에게서 '신야'를 얻을 때에도 도덕군자처럼 굴었다. 거듭 사양하고, 또 사양하는 행동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심지어 애써 얻은 '서주'를 여포에게 거저(?) 내어주고 자신은 더 작은 '소패'로 옮겨가기까지 했을 정도다. 더구나 노숙이 찾아와 빌려간(?) 형주를 되돌려 달라고 했을 때에도 '서촉'을 차지하면 당연히 돌려줄 것인데, 서촉의 주인이 자신과 '친족'이라서 쉽사리 빼앗을 수 없어서 그런다고 할 정도로 유비는 인의를 중시했다. 그런데 유장을 구원하러 왔다가 결국은 '서촉'을 차지하고 말았다. 이런 180도 다른 행보는 과연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여기에는 '도리'를 지키지 않은 유장의 태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는 과거에도 조조에게 사로잡힌 여포를 죽이라고 조언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여포와 손을 잡고 함께 조조와 싸우기도 했었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조조에게 빌붙어서 유비는 여포를 죽이라고 했을까? 그건 여포가 먼저 유비를 '배신'하고 위기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서주땅까지 주며 함께 조조와 맞서자고 했건만, 여포는 끝내 유비를 배신하고 조조의 공격에서 유비를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유비는 끝내 여포를 죽이라 했다. 아무리 '인의도덕'을 중시하는 여린 공자처럼 굴더라도 유비는 '인의'를 저버린 사람에게까지 한없이 아량을 베푸는 멍청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유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비군이 왜 장로군과 싸우고 있었던가? 유장 홀로 장로와 맞서 싸울 수 없었기에 대신 싸워주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도와주워 온 유비를 돕지 않고, 뒤에서 '장난질'만 치고 있다면 불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즉, 유장이 먼저 '인의'를 무시하고 배신했으니 유비로서는 결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명분을 찾게 되자, 드디어 유비는 '결전'을 시행하고 서천땅을 차지한 것이다.

자, 이렇게 서천땅을 찾았으니, 동천땅(한중, 장로)도 찾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먼저 선수를 친 건 조조였다. 조조는 대병력을 이끌고 '한중'을 차지하러 왔던 것이다. 이때 방덕이 힘을 내어 막았으나 '양송'이란 간신배(특히, 뇌물을 유독 좋아함)에 의해 방덕의 목숨이 위급하자 조조에 투항을 해버리고 만다. 방덕이 투항을 하니 장로군도 더는 막을 수 없었고, 양송의 배신으로 인해 장로는 조조에게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조조는 오히려 장로가 그간 '한중'을 잘 보살펴왔다면서 상을 내린 반면에 양송의 도움으로 한중을 차지했는데도 조조는 양송을 '배신자의 표본'이라면서 가차없이 죽여버린다. 이렇게 한중을 차지하여 위세가 등등해진 조조군의 신하들은 내친김에 서촉까지 공략하여 유비를 단숨에 제압해버리자고 조언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조조는 군사를 물려버린다. 너무 욕심을 부리다 탈이 날 수도 있고, 오랜 전쟁으로 군사들도 기진맥진해 있으니 쉬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원소를 상대로 대승을 거둘 때의 장면과는 사뭇 다르다. 그 당시 곽가도 '속전속결'을 주장했고, 조조는 그에 따라서 원소의 아들들을 끝까지 쫓아서 전멸시켰었다. 그런데 왜 조조는 느긋하고 무뎌진 것일까?

그건 아마도 '적벽대전의 패배' 때문일 것이다. 조조는 적벽대전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그 전까지는 100만 대군을 움직일 때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를 거두며 가는 곳마다 기염을 토할 정도였다. 그런데 대패를 경험한 이후에는 행보가 매우 신중해졌다. 그리고 '의심'도 많아졌다. 그래서 공명도 조조의 '의심병(?)'을 이용해서 다음 번의 '한중공략'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조의 용병술도 상당히 둔해졌다. 예전 같으면, 서촉과 동오의 '양동작전'이 벌어졌다면, 대군을 반으로 쪼개서 신속하게 진퇴를 결정하며 적들을 능수능란하게 물리치는 용병의 귀재로서 손색이 없도록 화려한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조가 많이 무뎌졌다. 한중을 차지하고서 굳이 대군을 되돌려서 '합비'를 치러 갔다. 공명이 형주의 일부를 손권에게 돌려주면서 '합비공략'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조조도 동오를 정벌하기 위해서 군대를 보낼 작정이었기에, 장료에게 군대를 맡겨 합비를 공격하러 보냈으나, 손권이 먼저 선수를 쳐서 '합비'를 거의 함락직전까지 몰고 갔던 것이다. 그런데 '장료의 군대'가 합류하고, '악진'이 기를 쓰고 지켜내니, 도리어 손권이 섣불리 깊숙이 공격해 들어갔다고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때 '감녕'이 목숨을 걸고 지켜주지 않았다면 손권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렇게 손권군은 퇴각을 했고, 이때부터 '료라이~(장료가 온다)'라는 소리만 들으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손권이 동쪽에서 공격해 들어가자 공명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중공략'에 들어갔다. 애초에는 '촉오동맹'에 따라서 유비군이 위기에 처한 손권을 구하러 가야했지만, 공명이 그런 허튼짓을 할 까닭이 없다. 공명은 '한중'도 차지하고, 한중을 지키러 군대를 되돌릴 수밖에 없는 조조의 처지를 생각해서, 동맹국에게 도움도 주는 절묘한 방식으로 동맹의 의리를 지킨 셈이다. 자, 이때에는 '황충과 엄안'이 대활약을 펼친다. 칠순이 넘은 노익장을 제대로 보여준 것인데, '천탕산 전투'에서는 적장 하후연까지 두동강을 낼 정도였다. 그렇게 조조의 원군이 오기도 전에 황충과 엄안은 '정군산'까지 점령을 하면서 북위를 공략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한중'을 완벽하게 점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어쩌랴. 공명이 한중을 차지한 것도 잠시 '형주'에서 위기를 맞게 된다. 한중을 빼앗긴 조조는 '사마의'에게 점점 더 힘을 실어주고, 한편으로 동오의 손권을 자극해서 '형주'를 완전히 빼앗아 유비의 숨통을 조이도록 만들었다. 과연 유비는 '형주'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당시 형주를 지키고 있던 인물의 운명은 어떠했을까? 다음 권에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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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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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XVI / 21세기북스 37번째 리뷰] 이 책을 읽다보니, 시인은 어두운 시대의 저항정신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전부다. 수능세대로 아니고 마지막 학력고사세대에게 너무 깊은 '학문적 깊이'를 강요하면 솔직히 힘들다. 더구나 '공대출신'에게 코칭해주는 스승도 없이 '문학적 사유'에 뛰어드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것인지 정녕 몰랐다. 그냥 물가에서 물장구 치는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는 '깊이'와 '너비'가 아니라는 아찔한 생각만 들 뿐이다. 이런 '문학'에 관한 문외한 수준인데 감히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니...덜컥 책 구매부터 하기에 앞서 '제목' 아래 달려 있는 '부제'를 먼저 읽어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굴뚝이었지만, 어쩌랴, 부제를 보았더라도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구매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스페인어로 'no lo se(놀로세)'는 우리 말로 '나는 모른다'는 뜻이란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대부분 '스페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이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가 '원주민의 정체성'을 버리거나 잃어버리고, '유럽계통 백인의 혈통'임을 인정받고자 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유럽(스페인) 사람들에게 '백인 혈통'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내쳐졌다. 그리고서는 오랜 독립투쟁을 거쳐 어렵사리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오랫동안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유럽 강대국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간섭을 받았고, 지금도 그런 경향은 여전하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내부 문제로 불안정한 일이 불거질 때마다 그들 스스로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빈번하 일어났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1521년 '코르테스'라는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백인화 된 것'에 대해서 승리라고 말하지도, 끝까지 저항했으나 끝내는 절멸 당한 '선주민의 피'가 함께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패배했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애매한 처지에 놓이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모른다'는 말을 언제 어떻게 쓰면 좋은 것일까? 단지 '객관적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뜻할까? 아니면 '주관적인 해석'을 어찌 내려야 좋을지 모를 때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뜻할까? 결국 어느 한 쪽이든 결론을 내렸을 때도, 그 결과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뜻할 때 써야 옳은 표현일까? 참으로 애매하다. 그러나 '시인'이라면 그냥 모른다라고 쓸 것이다. 모르니까 모른다고 쓰는 게 맞다고, 또는 옳다고 하면서 아무 거리낌없이 썼다고 할테지만, '독자'들은 그 '모른다(놀로세)'는 한마디에서 수많은 영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처한 현실을 감안해서 '놀로세'라는 한마디가 뜻하는 바가 얼마나 위대한 표현인지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몰랐던 상황'에서 깨닫게 된 처지가 되었을 때의 반향은 어떠했을까? 침략자 코르테스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핏줄'을 더럽힌 뒤에 '혼혈'이 되었지만, 자신들은 '백인'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정복자들처럼 피부색이 하얗고, 정복자의 언어인 '스페인어'를 쓰고 있으며, 정복자의 문화와 신앙까지 무엇 하나 '백인'이라 하지 않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메스티소)은 몰랐다. 자신들이 태어난 곳이 바다 건너 '백인들의 땅'이 아니라 백인들이 정복한 '원주민들의 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문화는 '이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본래 땅주인의 것'이 훨씬 더 우세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의 '핏줄'이 아무리 정복자의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들은 '원주민의 땅'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정복자의 영광'까지 이어받을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결국 메스티소는 멸망한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자의 핏줄로 다시 재건해야만 했다.

그런데 또 이걸 몰랐다. 자신들이 '백인'이라 철떡같이 믿고 있었던 탓에 자신들이 멸망시킨 '아스테카 문명'의 진면목을 깡그리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원주민의 말도 잊어버렸고, 원주민의 문화도 잃어버렸으며, 원주민의 신앙도 깨끗하게 버려벌였다. 유럽 본토인들에게 까이고 잃어버린 자존심을 다시 재건해야 하는데, 재건할 방도를 몰랐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다시 '본토인의 문명'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라틴아메리카 땅에서 '유럽의 문명'을 다시 세우는 것 말이다. 그것이 또 그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그들에게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유럽의 것'하고는 다른 '새로운 것'이라는 생각만 굳건히 했을 뿐이다. 이게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저항정신'이었던 것이다. 별다를 것이 없어 존심을 상하지만, 그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다짐 말이다.

그렇게 라틴아메리카의 자존심을 세운 것이 바로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백년 동안의 고독>(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마술적 사실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며 한 번 손에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다는 마력을 지닌 소설이라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10쪽을 다 읽지 못하고 놓아버렸다. 뭐가 마술인지 마력인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다. 놀로세~ 그런데 이게 라틴아메리카 문학으로서는 '자기 정체성'을 발견한 결정적 순간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고유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고 있고, 전근대와 탈근대가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일상적 삶에서 확인되는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적 현실이라는 믿음에서 '문학이해의 시작'을 할 수 있다는데, 이게 탈중심적인 새로운 세계 인식의 방법이라는 소개만 이해할 뿐, '사실주의'의 기존 인식 방법과 새로운 인식 방법의 차이점을 구별해주는 스승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암튼,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쾌거라는 사실만 이해했다.

그렇게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주춧돌을 놓은 루벤 다리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영광과 승리를 대변하는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나카노르 파라 등 네 명의 시인을 대표로 삼아 그들의 시에 담긴 '저항정신'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난 그 시에 담긴 '의식의 정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말이다. 이렇게나 '모르는 것' 투성이인 채로 책을 덮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그래도 그동안 수없이 리뷰를 써오면서 깨닫게 된 것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모르면 모르는 채로 솔직히 쓰는 것'이다. 이마저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게 된다'는 사실만은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난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젊은 시절에는 '기록'도 남기지 않고 '기억'에 의지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보니 '아는 것'은 기억이 나는데, '모르는 것'은 기억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정말 당연한 이치지만, 그렇게 '몰랐던 것'을 다시 배우려 덤비니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법'밖에는 아무런 도리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모르면 모르는대로 '기록'을 남겨놔야, '그 시점'부터 다시 시작해서 좀더 수월하게 '앎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셈이다. 이 책도 그럴 것이다. 심오한 '시의 세계'를 파고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물가에서 물장구치는 수준을 넘어서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까지는 올라갈 생각이다. 적어도 '해설'을 이해할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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