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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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4)

[My Review MMCLXVIII / 인물과사상사 27번째 리뷰] 얼마 전 너튜브 채널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설문 조사'를 했는데, 한국 전쟁의 발발 날짜는 많이 알고 있는 편인데, 정전일(휴전) 날짜는 잘 모르고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면서 우리 나라 MZ세대의 '역사 관심도'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는 걱정을 했더랬다. 하지만 이는 꼭 MZ세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도 한국 전쟁이 북한 인민군의 남침으로 시작되었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라는 것은 숱하게 들어서 알고 있지만, 휴전 날짜는 1953년이라고 년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휴전 날짜'를 명확히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고, '휴전'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분위기였고, 오직 '북진통일'만이 옳은 일이라고 세뇌(?) 당했기 때문이다. 나이 50살이 넘은 나도 이럴진데 요즘 MZ세대의 '무관심'을 탓할 수 있겠는가? 참고로 한국전쟁 휴전 날짜는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9분이라고 한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요즘에야 '검색'을 하거나 '챗GPT'에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새로 알게 된 것은 한국전쟁에도 '핵무기 사용'이 될 뻔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내용도 얼핏 알고는 있었는데, 핵무기 사용을 강하게 주장한 사람이 '더글러스 맥아더'였고, 이에 핵무기 사용을 불허한 이가 '트루먼 미 대통령'이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는 너무 단편적인 내용이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애초에 맥아더는 전쟁의 승기를 확고히 하기 위해 '핵무기 26발'을 중국의 주요 거점에 촘촘히 투하하려고 계획했었단다. 중공의 주은래(저우언라이)가 인천상륙작전 이후에 "한국군만 38선을 넘는다면 중국군은 관망하겠지만, 미군(유엔군)이 넘어온다면 우리도 참전하겠다"고 공언을 하고 있었기에 맥아더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뒤바뀌지 않게 하기 위해 '핵무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트루먼은 핵무기 사용이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을 불러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영국(처칠)의 경고를 받아 들여 맥아더의 승인 요청을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에는 오직 미국만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결정적 한 방이 될 것은 자명했다. 허나 이는 자칫 중공의 참전을 잠시 뒤로 미루는 것에 그칠 우려가 있었고, 아직 참전의사를 확실히 밝히지 않은 소련의 참전을 부를 수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 소련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는 '미 항공전단 기지'가 영국에 있었던 탓에 소련이 영국내에 있는 '미군'을 공격할 위기를 불러 올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이 발빠르게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소련의 영국 타격은 곧 유럽 전체로 확전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핵무기 사용'은 쉽게 꺼낼 수 없는 카드였던 것이다. 우리로서는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1·4 후퇴 이후 치열한 '톱질 전쟁' 양상으로 전황이 흐르자 미군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단다. 한국전쟁 참전 이전까지 미군은 언제나 승리만 했었는데, 북한군과 중공군을 상대로 미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고, 확고한 승리를 예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타격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미공군이었다. 그래서 낮에는 북한 전역을 뒤덮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B-29폭격기를 띄웠고, 네이팜탄과 소이탄을 비롯해서 수많은 폭탄을 투하해 모조리 파괴를 일삼았다. 하지만 밤이 되면 '시야확보'를 할 수 없어 출격하지 못했고, 해가 지면 북녘에서는 땅속에서 난쟁이가 기어나오듯 꿈틀거렸다고 목격담이 전해지곤 했다. 암튼 미공군의 활약으로 북한군과 중공군은 엄청난 피해를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밤만 되면 인민군과 중공군의 꽹과리 소리와 피리 소리로 혼비백산한 '육군'들이 애써 차지한 진지를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낮에는 '대한민국', 밤이면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단다. 그로 인해 미군이 보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고 말이다.

그러자 미군은 다시 '핵무기 카드'를 꺼내 들었단다. 애초에 핵무기를 사용하자는 맥아더는 이미 사라졌는데 말이다. 그럼 누가 꺼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트루먼 미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일찍이 일본의 항복을 끌어냈던 두 방의 핵폭탄처럼 한국전쟁도 그렇게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까? 허나 한국전쟁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이대로 핵무기 사용은 절대 쓰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또 꺼낸 이가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트루먼'이 끝내지 못한 한국전쟁을 자신이 확실히 끝내겠다면서 말이다. 비록 '휴전'일지언정 더는 미군의 피해를 감당할 수 없었고, 미국내 여론도 '한국전쟁'에 대해서 그리 곱지는 않았다고 한다. 결국 전쟁은 '피와 돈'을 펑펑 쓰는 소모전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미국은 돈을 펑펑 써도 될 정도로 엄청난 부자 나라였다. 당시 미 함정에서 쏘는 함대지 함포 1발의 가격이 약 1만 달러였다고 한다. 이 값이면 미국에서 '캐딜락 1대' 값과 맞먹었기 때문에 함정에서 함포를 발사할 때 수병들에게 "캐딜락 1대 날아간다"를 외치게 했을 정도란다. 이렇게 값비싼 무기를 미국인의 세금을 들여 '한국전쟁'에 쏟아 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군이 3년간 한국전쟁에서 쏜 포탄의 가격만 따지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쐈던 포탄 가격과 맞먹을 정도고, 휴전을 일주일 남기고 미군이 평양에 쏟아부은 포탄과 폭탄의 수량이 '태평양 전쟁' 때 미군이 쐈던 수량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은 이런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르며 '한국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을 대신해서 미국이 싸워준 것만 같아 고마워 해야 할 것만 같다. 실제로 이승만 시절부터 '친미'를 넘어 '숭미'를 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전국민이 이런 생각을 갖게끔 강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게 많은 무기를 퍼부으면서 '인명살상'을 비롯해서 '전국토를 유린한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조금이라도 없었을까? 만약 '한반도'가 아니라 '자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었더라도 이런 무차별적이고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을까? 미국이 이런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 눈에는 '아시아인'은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핵무기 카드'를 그렇게 쉽게 입에 오르내리며, 저들이 궁지에 몰릴 때면 만지작거렸던 것이다. 무려 26발이 넘는 핵무기를 말이다.

이런 까닭에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을 '반공(反共) 전쟁'이 아니라 '반한(反韓) 전쟁'이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포가튼 워)'이라고 부른단다. 미국이 어마무시한 비용과 군사의 손실을 본 전쟁인데도, 승리하지 못했기에 기억하지 않고 싶어하는 전쟁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어떤 전쟁인가? 우리는 '한국전쟁'을 잘 기억하고 잘 알고 있는가? 솔직히 나도 잘 몰랐다. 그러나 이제라도 제대로 알고자 한다. 정말이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너무 많고 너무 비참해서 미처 리뷰에 담지 못한 내용이 너무 많다.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감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이야기로 정리해낼 거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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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4)

[My Review MMCLXVII / 인물과사상사 26번째 리뷰] 웬만하면 <한국 근대사 산책>을 마무리하고 <한국 현대사 산책>을 리뷰하려 했는데, 중간에 일이 꼬이는 바람에 왔다갔다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단 '한국전쟁'이 몹시 궁금해졌기에 순서를 무시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리뷰할 예정이다. 혹시라도 '나의 역사리뷰'에 기대를 품으신 분이 계셨다면, 얼른 큰 기대를 하지 마시길 간절히 앙망한다. 암튼 이전에도 밝혔지만, 한국의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진 외국인들이 점차 늘고 있는 시점에 '한국사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역사리뷰를 구상했더랬다. 그래서 그 첫 번째로 '강준만의 역사 산책' 시리즈를 선택했는데, 주욱 훑어보다 내가 '한국전쟁'에 대해서 기본 상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닌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반공교육'은 기본이었다. 그리고 '현대사'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역사적 의식이 있으신 선생님들 덕분에 뭔가 깨어있고, 남다른 역사수업을 듣긴 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런 '수업 밖의 이야기'를 들었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제대로 간파할 수 있는 '역사적 이해'가 태부족했던 탓에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야 과거 독재시절의 무도한 정치세력에 대한 진실을 들춰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시절에도 그저 막연한 정의감에 들떴었을 뿐,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 없었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러다 나름대로의 역사인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에 '3당 합당'을 지켜보고, '5공 청문회'로 전두환과 노태우가 사형 판결을 받는 것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저들이 우리 나라의 대통령씩이나 했음에도 '사형 판결'을 받게 된 것은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후로도 오랫동안 '대한민국 민주제'는 몸살을 앓았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부터 6월 항쟁까지 대략적인 흐름을 살펴볼 기회가 생겼지만, 내 또래 세대에게는 이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내가 93학번에, 이듬해 '군입대'를 하고, 제대한 뒤에 졸업을 하니 세상은 'IMF 시대'를 맞이했더랬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했다. 어찌어찌 취직을 하긴 했지만 '비정규직'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한 번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이 되기 힘들어 자금 밑천을 모아서 '자영업자의 길'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돈 버는 재주는 없었던 관계로 큰 돈을 벌지도 못하고 그저 입에 풀칠만 하며 살면서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내게 '역사'는 아이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심어주는 근본으로 다가왔다. 헌데 그게 쉽지 않았다. 막상 독서논술로 '역사'를 가르치다보니 대한민국 역사에 자긍심을 심어줄 것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거대한 영토'를 정복한 적도 없고, '강력한 힘'을 만방에 떨쳐본 적도 없으며, 수천 번이 넘는 '외세의 침략'을 당하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엄청난 침략에도 꿋꿋하게 지켜낸 우리 조상들의 숭고한 업적에 자긍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근현대사 부분에만 들어가면 아이들의 눈빛이 빛을 잃어갔기 때문이다. 바로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으로 처참할 지경으로 전락해버린 한국사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 어릴 적에는 이 부분을 공부할 때 '공산당 때려 잡자'는 프로파간다(?)를 강요받으며 초등학생에게 맹목적으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이승복 어린이를 본받자는 것으로 모든 근현대사를 퉁쳐버리곤 했다. 그리고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은 각각 '한국의 독립'과 '구국의 영웅'으로 세뇌(!)를 당하며 일본놈과 북한괴뢰는 무조건 나쁘다는 교육을 받을 뿐이었다. 우리 역사의 자긍심을 가르치기보다는 '적개심'을 강조하며, 우리가 못 살고 힘 없는 까닭은 다 '일본과 북한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가르칠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못하겠더란 말이다. 그게 '사실'일지언정 우리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이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일본이 무슨 나쁜짓을 했고, 북한을 왜 미워해야 하는지 이유라도 정확히 가르쳐야 될 것이 아니냔 말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 그런 '위기와 고난'조차 잘 극복해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자랑 삼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외국인들도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고 말이다.

자, 각설하고, 한국의 1950년대를 살펴보자. 해방이 되고 미군정 시절을 지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이루어졌다. 50년 당시에는 초대대통령 이승만이 집권하고 있었고 말이다. 그러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했다. 이승만은 뭘하고 있었을까? 전쟁이 개시하기 직전까지 '북진통일론'을 부르짓으며 공갈(!)을 치고 있었단다. 우리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으로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를 빼버린 것을 지목하면서 미국의 실책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보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왜 한반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면서 변변한 무기조차 남기지 않고 싹 가져가버렸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미국의 안보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시켜 버렸던 것일까? 그건 이승만이 공공연하게 '북진통일론'을 내세우며 전쟁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주장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왜? 미국은 이승만에게 '미국의 무기'를 제공하거나, 전쟁 발발시 '미국의 자동 참전'이 확정된다면 한반도는 곧바로 전쟁이 발발할 거라고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소간의 냉전이 시작되던 시기였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다. 더구나 미국은 중국의 장개석을 팍팍 지원했다가 중공의 모택동에게 허무하게 패배하는 일까지 당했더랬다. 그랬기에 미국은 '소련과의 전면전'이 발생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소련의 스탈린도 마찬가지였다.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아직 회복을 장담하기엔 이른 시기였다. 더구나 적대국이었던 미국은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었기에 전면전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미소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 뻔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미국이 '남한의 공산화'를 방관할 수는 없었다. 당시 미국에는 '메카시 광풍'이 불 정도로 반공 정서가 대단했기에 대놓고 순순히 한반도가 완전한 공산화가 되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전쟁은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승만은 연일 '북진통일'을 외치며 전쟁이 벌어지길 원했고, 승리에 자신감이 넘쳤으며, 전쟁만 벌어진다면 '통일'은 식은 죽 먹기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럼 이승만이 전쟁 준비를 철저히 했을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변변한 무기도 없어서 북한의 남침 개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만 것을 다 알지 않느냔 말이다. 그럼 이승만은 왜 전쟁 운운했던 것일까? 오로지 '미국 참전'만을 염두에 두고서 공갈을 서슴지 않았었다고 낱낱이 밝혀졌다. 정말이지 무능력한 지도자였다. 망하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로 말이다.

이순신 장군의 말마따나 '천운'이었다. 북한이 남침을 한 지 불과 한 달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오자 미국은 부랴부랴 '유엔안전보장 이사회'를 열었고, 한국전쟁 참전 결의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였던 '소련의 불참'이 없었더라면 유엔의 참전은 속단할 수 없었다. 그럴 경우 오직 미국의 '단독 참전'이 있었을 순 있겠지만, 미국 혼자만의 '독박'을 뒤집어 써야 했기 때문에 남한에 전폭적인 군사지원, 물량지원, 원조보급 등등에 '한계'가 분명했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16개국 유엔참전국' 가운데 90% 이상을 미국이 비용을 대는 것에는 기정사실이었다. 당시 자유진영 가운데 경제적으로 윤택했던 나라는 오직 미국 뿐이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9월 28일 서울수복을 하였고, 부산에 집결해 있던 미군 병력은 38선 이남까지 빠르게 북상할 수 있었다. 그 이후의 전개는 '한국군'의 북진을 시작으로 '미군'도 38선을 넘어 평양과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가는 것까지는 성공하게 된다.

그런데 7월, 8월, 9월, 석 달 동안 북한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에 남아..아니, 남을 수밖에 없었던 남한 주민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이승만은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 '한강다리 폭파'를 지시하고, 자신은 빠르게 대구까지 도망을 간다. 아직 서울시민들이 피란을 가지도 못한 상황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서울을 벗어나 대구까지 도망간 상황에서 '자신의 육성'이 담긴 녹음방송을 하면서 서울을 지켜낼 거라고 '공갈'을 쳤고, 남한 주민들에겐 '생업 종사'에 매진하며 '안심'하라고 말했다. 이 방송을 할 때가 이승만이 '대전'에 잠시 머물 때라고 한다. 대구까지 도망갔다가 "각하, 너무 멀리 가셨습니다"라는 조언 한마디에 어찌어찌 대전까지 올라가 방송을 했지만, 그 방송을 한 뒤에 곧바로 또 도주를 했고, 그렇게 남한 전역을 하룻밤이 멀다하고 분주하게 도망(?)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도 9월에 서울 수복을 한 뒤에 '공산 치하'에 살아남아 국군과 미군을 열렬히 환영하던 서울시민들에게 '사상검증'을 하며 '부역자 검거'에 열을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억울할 일인데 이승만을 쫓아 일찌감치 '한강'을 넘어 도망갔던 이들은 '애국자' 대접을 하면서, 이승만의 육성 방송을 믿고 북한인민군의 무도한 폭력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남은 '잔류파'에 대해서는 사상검증을 들이대며 '사형판결'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모욕적인 처사에 불만을 표출이라도 할라치면 '빨갱이 낙인'을 찍고 또 죽여버리니, 이승만을 믿고 따르는 사람일지라도 그 참상과 염치 없음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도 외신들은 '한국의 교육열'이 매우 높다고 추켜세우는 일도 있었다. 전시인데도 부산, 대구, 광주 등등 지붕도 없는 곳에 '흑판(칠판)' 하나 덜렁 걸어놓고 맨 바닥에 앉아 선생님의 가르침에 집중하는 모습이 외국기자들의 눈에는 신기했던 모양이다. 교과서도 몇 권 없어서 1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고작 몇 권의 책을 함께 보면서 수업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도 이 내용은 '진학시험'에 꼭 나오는 내용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했다고 한다. 부모들도 아무리 굶어죽을 판이어도 자식들을 학교에는 꼭 보냈다고 한다. 이들 아이들 가운데 '이북 출신'들도 많았는데, 이들을 '삼팔따라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놀음에서 유래한 명칭인데, 이들이 월남을 할 때 가지고 내려온 것이 오직 '맨몸'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3+8=한끗'에 불과한 처지와 다를 바가 없었기에 그리 불렸다고 한다. 전쟁통에 이리저리 피란하다 보면 몸에 지닌 것이 전부인데, 그마저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다 팔고 나면 남은 것이라고는 '머릿속에 든 지식'밖에 없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을까? 남다른 교육열의 진실은 바로 '이승만의 무능'이 단단히 한 몫 했을 거라는 역사학자들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 왜냐면 이승만을 따라 도망갔던 이들이 대부분 '가진 것 많은 부자들'이고, '권력을 지닌 자들'이었으며, 군대나 경찰 등 '관리직에 몸담고 있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쟁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들의 자식들은 징집 대상에서 제외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시에도 대학은 열었고, 졸업생을 배출할 정도였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진실은 '대학생 신분'이 확인이 되면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국군과 미군은 '중공군 참전'과 함께 여지없이 밀려버렸다. 장진호 전투에서 큰 패배를 당한 미군은 '흥남 철수'를 지시했고, 궤멸당한 북한군을 대신해서 중공군의 노련한 유격전술에 의해 미군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연이은 패배를 했던 것이다. 물론 중공군의 전략전술(심리전)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전혀 예상 못한 '동장군' 때문이었다고 한다. 미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시기가 7월, 8월의 '삼복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남쪽 지역이었다. 그런데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을 때가 11월이었고, 맥아더를 비롯해서 거의 대부분의 유엔군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 전쟁은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이렇게 빠른 진격에 의해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고, 대다수의 참전 유엔군(대다수 미군)은 '월동장비'도 없이 홑겹의 얇은 군복을 걸치고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맹추위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공군의 요란한 꽹과리와 피리 소리도 사방팔방에서 밀고 들어오는 '심리전술'에 휘말려서 다들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그렇게 1월에는 서울까지 다시 내주게 된다. 이른바 1·4 후퇴다. 이렇게 대전까지 밀렸다가 다시 전황을 회복하고 밀고 올라가는 전형적인 '톱질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런 밀고 밀리는 '톱질 전쟁'에서 쉽게 벌어지는 양상이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런 전황에 북한의 김일성, 중공의 모택동, 그리고 미국의 트루먼은 '정전'을 떠올리고 '휴전'을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련의 스탈린, 미군의 맥아더, 그리고 이승만은 '휴전'에 반대하며 끝장을 보려고 했단다. 이런 와중에 죽어나가는 것은 참전했던 '병사'들이다. 이런 병사들이 '톱질 전쟁'으로 인해 갈려서 사라지듯 죽어나간 것이다. 돈 많은 부자들, 권력자들, 관리직에 올라 한 자리씩 해먹던 자칭 '애국자'들의 자식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전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무능한 이승만은 힘 없고 '빽' 없는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의 자식들을 전장의 소모품으로 써먹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한국군은 죽을 때 "어머니"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빽"이라고 외치고 죽는다는 얘기가 떠돌았을까? 뒷배를 봐줄 변변한 빽도 없는 설움에 하나 뿐인 목숨을 잃게 된 것이라며 그런다는 웃지 못할 우스개소리가 나돌고 있던 시절에 '뜨거운 교육열'의 원인을 무엇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할까?

휴전 회담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전쟁은 계속 되었다. 미군은 회담에서 유리한 조항을 얻기 위해 북한 전역을 '공습'으로 파괴했고, 북한에는 남아 있는 건물이 없을 지경이었고, 낮에는 '움직이는 모든 것'이 표적이었고, 네이팜탄, 소이탄, 고폭탄을 가리지 않고 아낌없이 투하했다고 한다. 회담 초기에는 '개성'에 회담장을 열어서 유엔측 대표가 '백기'를 차량에 걸었기에 북한은 이를 '선전용'으로 이용하며 "저들이 항복을 하러 우리측을 찾아왔다"는 소문을 퍼뜨려 이득을 챙겼다고 한다. 허나 곧이어 미 공군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인해 압록강의 '수풍댐'까지 파괴가 되는 지경에 이르자 김일성조차 '휴전'을 서둘러 진행하고자 했다고 한다. 한편 남한에서는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험준한 지리산을 대대적으로 수색했는데도 일거에 소통할 수 없게 되자 인근 주민들을 '빨갱이 부역자'로 몰아서 모조리 학살을 자행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고 한다. 전쟁통에 건장한 남자들은 죄다 전선에 끌려가고, 빨치산에게 협조하지 않아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남은 주민이라고는 노인과 여자, 그리고 어린이 뿐이었는데도, '빨치산 토벌'을 지시한 군경의 고위부가 하달한 '목표달성'을 위해 무자비하게 학살을 자행하고, 심지어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시체를 쌓아두고 불을 지르거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서 '빨치산의 소행'이라고 허위보고를 일삼았다고 한다. 심지어 사살한 주민들이 너무 많아 '대통령 재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축소 보고'를 했는데, 그렇게 수백 명이 넘는 무고한 주민을 학살하고도 흉흉한 소문이 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런 만행을 접한 남한 사람들의 반응은 '이승만 독재'에 아주 잘 활용 당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이승만에 '반(反)'하는 행위를 하면 곧바로 '빨갱이'로 찍히고 결국은 죽게 된다는 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시에 무슨 짓을 당한들 어디에 항변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힘 없고 빽도 없는 이들이 말이다.

이런 정황은 '야당 의원들'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했고, 이승만의 무능과 무도함을 지적하며 이승만의 '재선'을 막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모든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국회의원들에게 인기가 추락하자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를 하기 위해 개헌을 시도했고, 이를 결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야당 의원들과 의식 있는 여당 의원들을 협박과 회유를 하며 '개헌'에 성공했다. 심지어 '이승만 암살미수 사건'까지 벌어졌다. 의열단 출신 유시태가 독립운동가 출신 국회의원 김시태의 암살 모의에 가담해서 '권총'을 준비했고, 이승만의 등뒤에서 격발을 했지만, '불발탄'이어서 총알이 발사가 되지 않아 현장에서 검거가 되어 사형선고를 받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거제도에서는 '포로수용소'가 있었는데, 무려 360만 평이나 되었다고 한다. 전체 포로 수는 17만6000명으로 '전쟁포로' 뿐만 아니라 '민간인 억류자 5만 명', '중국군 2만 명', '여자 포로 3000명'이 포함된 숫자라고 한다. 근데 엄청난 숫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제대로 분류'하지 못하고 '정규 인민군 출신', '비공산주의자로 동원된 인민군 출신', '남한 출신 공산주의자 의용군'과 '비공산주의자 의용군', '중국군 포로', '피난민 포로', '민간인 억류자' 등등이 한데 섞여서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제대로 분류되지 않아 '서로' 싸우는 일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포로수용소를 관리하는 주체인 '미군'에 의한 폭력과 학살이 더 큰 문제였다. 왜냐면 휴전회담이 마지막 사항이 바로 '포로석방'이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론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포로들은 '자동석방' 되어야 한다. 그런데 미군은 '도덕적 우위'를 내세우기 위해서 '반공 포로'의 경우에는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남한에 잔류시키겠다고 '자원 석방'을 제시하고, 이를 고집한 것이다. 어쩌면 미국으로서는 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해서 '공산주의'보다 '자유주의'를 선택하는 포로들이 더 많음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도덕적 우위'를 얻기 위해서 자행한 일이 포로들에게 '반공교육'을 강요하고, 전향을 하지 않은 포로들에게 린치를 가하며, 저항하는 포로들은 폭력으로 진압하거나 심하면 학살시켜 버리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수차례  지휘관이 바뀌었지만, 포로들을 향한 만행은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외신은 열악한 환경(한반도 전역이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기 때문에) 속에 취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도 51년에 '한국의 내정'을 취재하고 간 외국 기자들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격"이라고 혹평을 했단다. 이 말은 영국 런던 <타임스>가 51년 10월 1일자 사설에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는데, 52년 휴전 회담 말미에 벌어진 '거제도 포로 학살'을 자행한 미군을 보았을 땐 어떤 기사를 쏟아냈을지 궁금하다. 암튼 한국전쟁은 안팎에서 자행된 만행과 학살 때문에 더욱 비참한 일만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랬던 대한민국이 70년 뒤에는 '민주주의의 교과서'라는 극찬을 받고 있으니 역사의 평가를 어찌 내려야 할까? 기적일까? 필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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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마 1 - 이스트랜드의 위기
이우혁 지음 / 비룡소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고타마 1 : 이스트랜의 위기>  이우혁 / 비룡소 (2012)

[My Review MMCLXVI / 비룡소 7번째 리뷰] 이우혁 작가의 소설을 어린이책 전문출판사인 '비룡소'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비룡소에서도 '세계문학전집' 같은 것을 선보였고, 어린 독자들만 읽기 좋은 '축약본'이 아닌 전체 내용을 다 실은 '완역본'을 출간하는 출판사이기에 '한국형 판타지 소설'을 써낸 이우혁 작가와 아주 어울리지 않는 출판사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비룡소는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성장 소설'을 주로 펴낸 출판사이기에 <퇴마록>으로 유명한 이우혁 작가가 '성장 소설'을 쓴 것을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이런 의아함을 갖고 책을 펼쳐 들었는데 나름 '성장 소설의 기본 골격'을 갖춘 판타지 소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 <고타마>를 '어린이책'으로 분류하지 못했다. 분명 '성장'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긴 하는데, 주인공이 성장하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책의 주인공 '듀란 왕자'는 이미 완성형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비록 '듀란 왕자'는 초기에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능력'도 성장하고, '자기정체성'도 갖춰나가며, 무엇보다 자기만의 가치관을 형성하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사명'에 눈을 떠서 온 세상을 폭력과 혼돈으로부터 구해내는 막중한 임무를 달성하지만, 가장 중요한 '난이도 조절'에서 실패를 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이 읽고 꿈과 희망을 키우기에는 너무 고난도의 지식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수준 높은 지혜를 발휘해야만 '고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고타마]라는 존재의 역할이 상당히 부담스럽게 다가온 탓이 가장 크다. 그리고 심지어 제목조차 <고타마>인데, '고타마'라는 존재가 등장하기까지 서론이 너무 길다. 1권의 중반을 넘어서야 겨우 등장을 하고, 또 '고타마'를 설명하는데 나머지 절반의 분량을 몽땅 할애하고 있다. 물론 2권이 있다지만, 이런 식이라면 2권에 넘어가서도 재미와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고타마의 제한된 능력'을 풀어낼 고난이도의 지식같은 수수께끼부터 풀어야 할 판이다.

과연 그 수수께끼같은 '제한 조건'이 무엇인가? 첫째,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힘만 원할 수 있다. 둘째, (첫째 조건에 위반되지 않는 한) 스스로가 확실히 깨닫고 아는 힘만 원할 수 있다. 셋째, (첫째와 둘째 조건에 위반되지 않은 한) 이전에 사용했던 힘보다 더욱 강한 힘만 원할 수 있다. 이렇게 3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면 횟수나 능력에 아무런 제한이 없이 쓸 수 있는 능력이다. 요술 램프의 정령이 들어주는 '소원'을 비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3가지 소원'만 들어준다고 제한을 했는데, 원래의 <아라비안 나이트> 원작 속에선 '횟수 제한'은 없었다. 다만, 살인을 하거나 '로크'라고 불리는 커다란 새(램프의 정령 지니의 천적)와 관련된 소원은 들어줄 수 없다는 제약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제약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타마의 능력'은 사실 너무 쓰기 힘들고 어렵다. 뭐, 1번째 소원(?)은 사실상 아무런 제약이 없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이전에 사용했던 힘보다 더 센 힘을 원할 수 있다는 조건에 위배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구체적으로 알고 확실히 이해한 힘'만 원한다면 어떤 힘이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우혁 판타지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악당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너무 쎄다는 것이 문제다. <고타마>에서는 '크롬 대륙'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설정되어 있는데, 이 대륙에 존재하는 5개의 왕국이 있다. 동쪽의 '이스트랜드', 서쪽의 '엘란 왕국', 중앙의 '나이엔 왕국', 남쪽의 '우스갈타 왕국' 그리고 북쪽의 '콜드스틸 왕국' 말이다. 그런데 '크롬웰'이라는 악당이 등장해서 삽시간에 '콜드스틸 왕국'을 점령하더니, 이 왕국에서 엄청난 괴물과 마물을 앞세워서 '나이엔 왕국'을 멸망시켜버리고, 곧이어 콜드스틸의 괴물 군대를 토벌하고 엘란 왕국을 위기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스트랜드 왕국'의 울프블러드 왕족의 왕과 왕비, 그리고 제1 왕자까지 총동원해서 출정했는데, 전투다운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몽땅 포로로 잡혀버리고, 엘란 왕국과 우스갈타 왕국을 파멸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괴물 군대가 '이스트랜드 왕국'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력 군대가 모조리 궤멸된 상태에서 거의 무방비에 가까운 '왕궁 수비'를 해낼 수가 있었을까? 이런 일촉즉발, 풍전등화 같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발휘된 '고타마의 첫 번째 능력'이 무엇이었을까? 두 말 할 것도 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자, 첫 번째 '힘'을 괴물 같은 적의 군대를 한순간에 섬멸 시켜버리는 능력으로 써버렸다. 그럼 두 번째 '힘'을 쓰기 위해서 어떤 제약 조건이 발생하게 된 것일까? 일단 '엄청난 힘'보다 더욱 강력한 '더 엄청난 힘'을 상상해내야 한다. 그런데 두 번째 조건 때문에 무턱대고 '알지도 못하는 상상'을 발휘해서는 고타마의 힘을 발동시킬 수가 없다. 분명히 깨닫고 이해한 힘만 상상해야 한다. 더구나 세 번째 조건 때문에 처음에 '물리적인 힘'을 썼다면 앞으론 '물리적인 타격'을 하는 능력은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를 테면, '닿기만 해도 부숴버리는 검이면서 스스로 알아서 싸울 수 있는 검'이란 능력을 처음에 발휘했다면, 다음에는 '물리적이면서 자율적으로 발휘되는 힘'은 두 번 다시 쓸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처음에 단단한 바위 같은 골렘을 단숨에 가루로 만드는 힘을 발휘했으니, 다음엔 '이보다 더 강한 힘'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려야 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제약을 초월하는 힘을 '몇 번'이나 발휘할 수 있을까?

이런 '고타마의 힘'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말았다. 그래서 중점적인 이야기 전개는 '악당의 등장'으로 인한 크롬대륙 왕국의 존폐 위기가 발생했고, 이를 막기 위해 출정한 최정예 군대가 단 한 번의 전투로 궤멸되고 포로로 잡혀 괴물들의 노예로 전락한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 괴물 군대가 우리의 주인공 '이스트랜드의 울프블러드 왕족의 제2왕자, 듀란'이 머물고 있는 왕국으로 삽시간에 쳐들어오게 된다. 수많은 골렘 군대에 속수무책으로 파괴되는 이스트랜드의 왕궁. 그리고 아무런 능력도 없어서 도망가는 '듀란 왕자'. 그런데 우연한 만남(?)으로 듀란 왕자는 '고타마의 힘'을 발휘하는 존재와 마주하게 되고, '고타마의 힘'으로 골렘 군대를 물리치게 된다. 여기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역시나 '고타마의 힘(?)'을 발휘해서 해결하고, 이런 괴물들을 군대로 써먹는 원흉인 '크롬웰'을 물리치기 위해 '콜드스틸'로 원정을 나서게 되는 것으로 1권의 내용이 마무리 된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공격 당하고 반격하는 것으로 줄거리가 끝났다. 그리고 나머지 분량은 '고타마의 힘'을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고민하는 내용으로 꽉 채웠다. 이런 식이라면 2권에서도 그리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어떤 괴물 같은 적과 마주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적들이 결코 많이 등장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고타마의 힘'이 발휘되기 위한 조건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타마의 힘'이 몇 번 발휘되지 않을 것이며, 그리고 그 힘이 발휘되기까지의 부연설명이 뒤따를 것이 분명하다. 내가 이우혁 스타일 너무 잘 알지 않은가. 이 작가님은 그야말로 TMI(too much information)다. 뭐, 그 '디테일'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과연 2권에서 '그 매력'이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을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기대가 크면 뒤따를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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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최강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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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 최강혁 / 한겨레출판 (2025)

[My Review MMCLXV / 한겨레출판 11번째 리뷰] 제목만 놓고 본다면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보수의 최고 가치는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로움을 추구하고 더 많은 이로움을 얻어내기 위해서 전통적, 수구적인 스탠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보의 최고 가치는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것들 가운데 부족한 점이 많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다 솎아내고 새것으로 갈아 넣어 더 나은 것으로, 더 좋은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의로움'이다. 기왕 좋은 것으로 바꾸자는데 한 치의 의혹을 남기거나 부정을 눈 감아주는 일 따위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수는 이로운 것이고, 진보는 의로운 것이라는 '기본 공식'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대한민국 보수'와 '대한민국 진보'가 정녕 기본 공식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대 보수가 이로운 짓을 했던가 싶을 정도로 온통 독재와 부패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한민국 역대 진보는 의로운 짓을 했는가 싶을 정도로 언론은 뭇매를 때렸고, 여론은 곱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총체적으로 난망하기 그지 없고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윤석열을 탄핵시킨 상황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은 코 앞에 닥친 위기를 나름 잘 선방했다. 물론 이제 '임기 1년차'인 새 정부에게 종합적인 평가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앞선 정부에 비해서 임기 초 '국정 드라이브'를 잘 이끌고 있다고 칭찬하고 싶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주길 바라마지 않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는 '진보'일까? 그래서 '의로움'을 추구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왜냐면 이재명 정부만큼 '이로움'을 추구하는 대통령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교적 성과에서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은가 말이다. 실질적 이익을 확실히 챙겼고, 미국 · 중국 · 일본 등과 같은 강대국이자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굽히거나 꺾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위상을 더욱 높이는 자세로 대한민국이라는 가치를 제대로 지켜냈기 때문이다. 이건 이 책에서 말하는 '이로운 보수'의 모습과 일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 모로 이재명 정부는 '보수'로 봐야만 할 것이다. 그럼 전통적(?)으로 보수라고 자칭하던 '국민의힘'은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그 집단을 '보수'라고 부르기에는 대한민국 정당으로서 '이로움'을 전혀 추구하지 않고, 오직 '(저들 집단만의) 이익'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자기 이익'만을 위해 기득권 정치를 하는 집단을 전세계적으로 '극우'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제 '보수 여당'과 '극우 야당'이 대한민국 정치판을 흔드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아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대다수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새는 '좌우' 날개로 '균형'을 맞춰 날아간다는 표현처럼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가 서로 건전한 견제를 하며 균형을 잘 잡아야 제대로 된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급한 문제다. 당장 '오른쪽 날개'를 맡은 여당은 건재하지만, '더 오른쪽으로' 치우친 날개는 하루빨리 부러뜨리고 '왼쪽 날개'를 맡을 새로운 정당이 새로 구축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보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마땅한 정당이 눈에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그간 진보 정당을 도맡았던 '정의당'이 와해된 지금은 '조국혁신당'이나 '개혁신당'이 왼쪽 날개를 맡아야 할텐데, 이들 정당의 정체성은 여전히 '더불어민주당 2중대', '국민의힘 들러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진보에 걸맞는 '의로움'을 갖추지 못한 점이다. 물론 내년에 치뤄질 '지방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의 약진이 기대가 되긴 하지만, 선거 결과는 여전히 한 치 앞도 전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내란 정국 수습'이다. 비상계엄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났고,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지 반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주요 가담자'에 대한 1차 재판 선고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년 1월중으로 선고를 내리겠다고 사법부가 밝혔지만, 너무 느리다. 다행히 '사형'이나 '무기징역'으로 정국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는 '확신'을 준다면 다행이지만, 특검까지 마무리된 시점에서 어처구니 없게도 '구속 취소'라는 면죄부를 주거나 '15년 이하의 형'으로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면 정국은 빠르게 경색될 것이고, 국민여론은 분노로 들끓게 될 것이다. 아직도 계엄을 '계몽'이라고 부르짓고, 야당의 국회점거, 입법독주를 막기 위한 '정당한 대통령 권한 행사'라고 망발을 내뱉은 행태를 자중할 줄 모르는 내란 세력들에게 '무죄 방면'과 다를 바 없는 낮은 형량을 재판부가 선고를 한다면, 국정은 빠르게 냉각할 것이고, 대한민국은 침몰을 할 정도로 대혼란에 빠져들게 뻔하다. 만에 하나 그런 위기를 모면한다고 할지라도 '비상계엄'이나 '내란', '외환'을 일으켜도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자에게는 '손해' 볼 일이 없는 장사라는 시그널을 주게 되는 아주 잘못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을 것이며, 극우 집단에 의해 벌어질 난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어 대한민국은 결국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정세가 위태로운데, 간신히 '정상 운행'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흔들리게 되면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등 전통적인 강대국들이 제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저들 멋대로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릴 것이 틀림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윤석열 탄핵과 이재명 정부의 등장은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건 다 헷갈릴 수 있어도 '대한민국의 이로움'을 챙기는 보수 정당이 굳건해야 하는 것에는 우리 국민 모두가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빠르게 수습하고 구축해야 할 것은 '왼쪽 날개'를 맡아줄 의로운 진보 정당이다. 늘 좋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한 치의 부끄럼이 없는 '의로운 진보 정당'이 하루 빨리 출현하길 고대할 것이다. 그래야 가장 중요한 '균형 잡힌 국정 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훌륭한 보수 정치인과 진보 정당이 출현하기까지 마냥 기다리면 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훌륭한 정치인은 결코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직 모든 국민들의 철저한 감시 하에서만 훌륭한 척을 할 뿐이다. 조금이라도 감시를 소홀히 했다가는 사기를 일삼는 '정치꾼'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또한 의로운 진보 정당이 출현하는 것도 '의로운 국민들'이 다수 형성되고 많이 요구될 때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다. 이로움도 좋지만 정치인이라면 모름지기 '의로움'에 있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마음으로 정치질을 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있어야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 '진보 정당'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까닭도 많은 국민들이 '도덕이 밥 먹여 주냐?' 차라리 조금 더러울지언정 '이로움'을 챙겨주는 정치인을 찍어 주었기 때문에 진보 정당은 발을 붙이지 못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이로움'보다 '의로움'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기는 국민적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런 국민의 목소리에 응답이라도 하듯 진보 정당은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이로움과 의로움이라는 '좌우 날개'로 대한민국은 푸른 창공을 훨훨 날게 될 것이다.

정치에 많은 관심 없더라도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나의 정치 스타일이 '보수'쪽인지, '진보'쪽인지 궁금했다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판가름'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또한, 확고한 정치 스타일을 이미 갖추고 있다면 '이 책'은 우리 나라의 고질적 정치 문제를 심도 깊게 읽어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허나 이런 '판가름'이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쪽 스타일'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내가 보수라면 진보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내가 진보라면 보수의 주장에 대한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적어도 그들이 '수구꼴통'인 것만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해줄 것이다.

대한민국은 1919년 3·1 운동을 기점으로 이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하였고, 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오늘날 대한민국사는 106년을 맞이했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나라이지만,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민주정을 이끌어 온 지 고작 100여 년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러움을 받는 '선진국'이며, 수많은 나라를 이끌어 가는 '선도국가'다. 이젠 초강대국으로 불리던 미국조차, 문화강국으로 불리는 유럽과 중국조차, 경제대국으로 불리던 일본조차 '대한민국'이란 이름 앞에서 자랑질을 하지 못하는 수준급 나라로 거듭났다. 이런 대한민국이 훨훨 날아갈 수 있게 '좌우 균형'이 절실한 때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지하고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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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에메랄드 2 - 바다 요정을 만나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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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에메랄드 2 : 바다 요정을 만나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4) [원제 : Emerald and The Sea Sprites (2023)]

[My Review MMCLXIV / 을파소 22번째 리뷰] 아무리 내가 실력 좋은 독서논술쌤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소녀 감성'이 물씬 나는 그런 어린이 동화책이다. 물론 나도 어릴 적에 '문학의 밤'에 흠뻑 취하기도 하고, '순정소설' 좀 섭렵하던 '문학소년'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자는 남자다. 이런 나를 당혹스럽게 한 어린이책이 바로 <이사도라 문>이었다. 도무지 '갈등'이라고는 없고, 매번 사건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등장하긴 했지만, 어린 소녀가 겪는 갈등이라고는 친한 친구하고 '사소한 말다툼'을 한 것이 전부이고, 어린 소녀가 저지른 말썽이라고는 '예쁜 물건'을 다루다 실수로 망가뜨린 것이 고작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렇게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이 책에서 무슨 '주제'를 고를 수 있고, 무엇으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을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아무런 소득도 없이 '또 한 권의 책'을 읽었구나 싶을 때, 이 책을 읽고 있는 어린 소녀 독자들의 표정을 보고서야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얼굴에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갈등도 없고, 사건사고도 없고, 그저 하염없이 사랑스럽기만 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간에 펼쳐지는 꽁냥꽁냥한 이야기가 소녀들의 감성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남자인 내 가슴에는 그런 '불꽃 감성'이 타오르지 않는다. 그저 밋밋한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소녀 독자들에겐 '아름다운 감성' 한 스푼이 보충된 듯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재밌다고 재잘거린다. 그래서 문득 '그래, 그거면 충분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무슨 큰 영광을 누리겠다고 '보물찾기'하듯 주제를 찾아 눈을 부라릴 것이냔 말이다. 하릴없는 일이다.

이 책 <프린세스 에메랄드 2>에는 에메랄드와 델피나 공주가 '가리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호초 숲'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산호초에 '신비롭고 귀여운 바다 요정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책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명의 공주들은 '바다 요정'을 찾아 저멀리 모험을 결심한 것이다. 아빠와 엄마도 모르게 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름답고 신비한 모험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지만, 사실 '두 페이지' 분량이 지나기도 전에 모험은 끝나고 '바다 요정'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험은 끝이 난다. 아까부터 밋밋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 모험을 떠나는 도중에 '깊은 바다'를 지나야 했기 때문에 햇빛이 잘 들어서 늘 환한 '가리비 도시'와는 달리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바다를 지나야 한다는 이야기 한 줄로 모험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산호초 숲'에서 발견한 바다 요정과 만나서 재미나고 신 나게 놀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서둘러 귀가를 하려 한다. 이때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에메랄드와 델피나와 어울려 놀던 바다 요정 세 마리가 졸졸 뒤따라왔던 것이다. 깊은 바다를 지날 때에는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고, 그래서 바다 요정이 쫄쫄쫄 따라오는 것도 몰랐다가 환한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소녀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동네 약수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만난 '야생 동물'이 너무 귀여워서 신 나게 놀다가 그 야생 동물이 소녀들을 쫄래쫄래 뒤따라 온 것을 상상하고 있었을 테다. 그런데 델피나는 '바다 요정'을 자신들의 왕국에 초대하자고 말한다. 얼마나 소녀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을까? 귀여운 '야생 동물'을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신 났었는데, '바다 요정'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초대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맞게 에메랄드는 아주 커다랗고 아름다운 '인형의 집'을 갖고 있었다. 그곳을 '바다 요정'이 머물 곳으로 정하고, 두 공주님은 '바다 요정'을 정성껏 손님 대접을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소녀 독자들은 '길고양이'를 우연히 만났는데, 자꾸 뒤를 쫓아오길래 아예 지신의 방으로 초대를 해서 재밌고 낭만적으로 놀이를 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처음엔 에메랄드의 '인형의 집'에서 재미나고 신 나게 놀던 '바다 요정'이 점점 생기를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요정은 아주 작은 생물이기 때문에 짧은 모험이었는데도 아주 '긴 여정'이었고, 그 덕분에 바다 요정은 기진맥진한 상태다. 그래서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거니 했지만, '바다 요정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하긴 '야생 동물'도 무리하게 집에서 길들이려 하다간 '소중한 생명' 하나를 무고하게 죽게 만드는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야생 동물'이 우연히 집으로 들어와서 함께 살아가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곧바로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만약 그 '야생 동물'이 알고 보니 '천연기념물'일 경우에는 고액의 벌금과 실형까지 살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야생 동물은 사람이 쉽게 길들일 수 없다. 그리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 접중'도 단기간에 여러 차례 맞춰야 하는데, 동물병원에서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이 들 수도 있다. 그러니 '길고양이'나 '야생 새' 등과 같은 동물이 살갑게 굴더라도 절대 집에서 기르겠다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야생의 꽃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원래 있던 자리'에 살아 숨쉬며 향기를 뿜어내고 자태를 뽐낼 때 그렇다. 야생 동물도 그렇다. 암튼 생기를 잃어가는 '바다 요정'을 살리려면 서둘러서 바다 요정이 원래 살던 '산호초 숲'으로 되돌려 보내는 수밖에 없다. 에메랄드와 델피나 공주가 바다 요정을 살릴 수 있게 될까?

여기까지만 보면 '야생 동물'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책의 주제인 듯 싶다. 하지만 <이사도라 문>도 그렇고, <프린세스 에메랄드>에서도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엔딩'을 마무리하고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은 나조차 '감동스럽긴' 마찬가지다. 나 어릴 적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부부싸움'을 하셨기 때문에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화목하고 다정하게' 저녁 식사를 해본 적이 없다. 살림이 넉넉치 못해서 '맞벌이'를 하셨는데,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다 같이 모인 식사시간에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그래서 동화책 속에서나마 이런 '화목한 장면'이 연출되면 몹시 부러워했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읽을 때는 나도 살짝 '감동'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 문득 '재혼가정'도 이렇게 아름답고 화목하게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자 생각이 많아졌다. 기존의 '서양 동화책'에서는 재혼을 한 엄마 아빠 때문에 남겨진 자녀가 모진 고생을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 책은 완전 달라서 온통 '긍정적 이야기'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주 큰 차이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재혼가정'인데도 '긍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마냥 좋다고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 또한 이 책을 흐믓하게 읽고 있는 소녀 독자들의 미소를 보면서 의심을 지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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