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특권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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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특권>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 문학세계사 (2009) [원제: Le Fait du Prince(2008)]

[My Review MMCXCV / 문학세계사 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네 번째 리뷰는 벨기에 국적이지만 '프랑스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프랑스 문학'으로 취급 받는 아멜리 노통브의 열일곱 번째(공식발표상) 소설인 <왕자의 특권>이다. 그동안 내가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한 십여 권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 아닌가 싶다. 왜냐면 그녀의 소설이 특징인 '적(敵)'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막무가내로 미워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답답하고 갑갑스러기만 한 '억지'도 없었다. 그저 두 남녀가 등장했고 아주 비싼 '샴페인'을 홀짝이며 마시며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전개시킬 뿐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아멜리 팬들은 '그녀만의 맛'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그저 밋밋한 소설이라는 평도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좋았다.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기까지한 '저속한 표현'이 거의 없기에 '로맨스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감미로운 감상에 젖어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로맨스 소설'도 퍽 좋아하는 편이다. 언젠가 꼭 시간을 할애해서 <로맨스 소설>(특집)을 다뤄야겠다. 조만간 찾아갈 것이다.

<왕자의 특권> 관점 포인트 : 아무리 로맨스 소설 같은 감미로운 느낌을 선사하더라도 아멜리 노통브는 어딜 가지 않는다. 첫 소절부터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왕자의 특권>에서는 '자기 집에 방문한 사람이 심장마비 따위로 갑자기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자신은 곧바로 택시를 불러 '시체'를 싣고 병원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한다. 느닷없는 이런 질문에 왜 '경찰'이나 '119 구급대'를 부르지 않느냐고 반문을 던지니,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무죄가 밝혀지기 전까지 '경찰'이 신고한 사람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구금을 하거나 수사를 핑계로 '현장'을 통제할 것이고, '용의자'로 지목된 당신은 수사를 빌미로 시달림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렇기에 가장 깔끔한 방법은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사망'했다는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며칠 뒤, 이 집 앞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며 전화 한 통화만 할 수 있게 부탁드린다고 방문한 사람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전화를 걸고 "여보세요"를 말하는 순간 그 자리에 쓰러져 죽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주인공인 밥티스트는 깜짝 놀랐지만, 곧 침착하게 쓰러진 남자를 흔들면서 깨우려 시도했다. 하지만 죽은 것이 분명했다. 심장이 멎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밥티스트는 침착하게 며칠 전에 한 대화를 떠올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 '택시'를 부르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쓰러진 남자의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을 확인한다. 올라프 질더. 그 사람의 이름이었다. 국적은 스웨덴. 그런데 묘하게도 그의 나이와 밥티스트의 나이가 똑같았다. 그러고보니 눈 색깔도, 머리카락 색깔도, 그리고 키도 똑같았다. 다른 것이라곤 '덩치(체격)'뿐이었다. 올라프가 밥티스트보다 더 뚱뚱하고 건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갑에 1000유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주소는 베르사유...이런 걸 확인하다가 그만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밥티스트는 뒤늦게나마 '경찰'에 신고하고, '119 구급대'를 부를까 하다가 자신이 너무 늦장을 부린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기에도 적절한 타이밍은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신분'을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은 자의 신분'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산 자의 신분'은 이렇게 쓰러져 죽은 이에게 주고서 서로의 삶을 맞바꾸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집에서 썩어버린 시체가 발견된다면 '밥티스트'가 자연스럽게 죽은 것으로 될테니 덩치가 좀 차이가 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고장난 차'가 있다는 곳으로 나가보니 차도 고급 차량이었다. '재규어' 말이다. 밥티스트..아니, 올라프는 그 차를 타고서 '자기 집'인 베르사유로 떠났다.

그러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올라프가 자신의 집 초인종을 누른 이유가 다름 아닌 '자동차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고장난 차를 자신이 직접 몰고 있다. 하지만 고장난 차치고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만 달렸다. 뭔가 찜찜했지만, 베르사유에 도착해서 올라프의 집을 확인하니 그런 찜찜함도 단박에 사라졌다. 집이 '호텔 별장'만큼이나 호화로웠기 때문이다. 밥티스트..아니 '올라프'는 자신의 집에 당당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집주인답게 주방 식탁에 차려져 있던 음식을 자연스럽게 주워 먹기 시작했다. 한참을 맛나게 먹고 있는데 주방에 아름다운 금발 미녀가 들어왔다. 올라프는 깜짝 놀랐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음식을 씹었다. 금발 미녀는 그런 올라프를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샴페인'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다보니, 그 금발 미녀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였던 것이다. 정확히는 '올라프의 아내'였지만 말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으리으리한 집안에서 단 둘만이 거주를 하게 된다. 과연 신분을 바꿔치기한 것은 '신의 한 수'였을까?

나가는 글 : 이야기 설정 자체는 말도 안 된다. '사망사건'이 발생했는데, 경찰이 '신원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을 턱이 없고, 자신의 집안에 '낯선 사람'이 들어와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동거 생활'이 시작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억지로 껴맞춰 넣은 것이 '올라프'가 스파이나 국정원, 또는 범죄조직의 보스급 인물일 거라는 설정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집단들의 특징이 바로 '엄청난 정보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밥티스트'가 '올라프'로 바꿔치기를 했는데, 그냥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이 자연스럽게 며칠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아멜리 노통브가 '범죄스릴러' 같은 장르의 소설을 써보지 못한 탓에 '치밀함'을 갖추지 못하고 어설프게 흉내만 낸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이런 덜 치밀한 설정이 오히려 나는 좋았다. 아니 어찌 되었든 아리따운 '금발 미녀'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는 것 아닌가. 이보다 더 훌륭한 '로맨스 소설'이 어딨단 말인가? 더구나 올라프는 엄청난 부자였던듯 돈을 쓰고 또 써도 '화수분'마냥 돈이 펑펑 나왔다. 이런 행운이 가득한 곳에서 '밥티스트'와 '지그리드'..금발 미녀의 이름이다..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이어진다. 하지만 불안한 점이 없지 않다. 지그리드는 왜 '낯선 남자'인 자신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자신의 집'에 거주하게 허락하는가 말이다. 거기다 올라프가 죽기 직전에 걸었던 전화가 마음에 걸렸다. 분명 전화기 저 편에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올라프가 스파이나 국정원, 또는 범죄집단의 보스라면 '전화기 속 상대'가 자신을 죽이러 쫓아다니는 것은 아닐지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다. 소설은 급작스럽게 '로맨스'에서 '첩보물'로 바뀌며 이야기가 쏜살같이 전개된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낸 '전화기 저 편의 목소리'의 주인공과 통화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올라프..아니, 밥티스트에게 '죽지 않게 조심하라'고 경고를 한다. 가짜 올라프의 정체가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과연 밥티스트는 올라프의 아내 지그리드와 로맨스를 완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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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교수의 세상만사 유럽만사 - <먼나라 이웃나라> 유럽 완결 편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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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교수의 세상만사 유럽만사 : <먼나라 이웃나라> 유럽 완결 편> 이원복 / 김영사 (2010)

[My Review MMCXCIV / 김영사 3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세 번째 리뷰는 <먼나라 이웃나라>로 유명한 만화가 이원복 교수의 <세상만사 유럽만사>라는 책이다. 이 책은 2000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짐작하셨듯이 '유럽연합(EU) 출범'에 맞춰서 유럽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출간한 책이다. 부제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이 책의 상당 부분은 <먼나라 이웃나라 : 유럽 여러 나라 편>의 내용을 발췌했다. 그런 의미에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여러 번 읽으신 독자분들은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일 수도 있지만, 딴에는 여러 편의 책 내용이 '한 권'에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봤더라도 '또 보면' 좋을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의미 말고도 이 책이 볼만한 까닭은 또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네덜란드', '프랑스', '도이칠란드', '이탈리아', '영국', '스위스', '스페인', '러시아' 등 비교적 유럽 강대국 위주로 자세히 다루고 있는 반면에 이 책은 비록 다루는 분량은 적지만 '북유럽', '동유럽', '남유럽', 그리고 '미니 국가들'까지도 촘촘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즐겨 읽으셨던 분들이라도 새롭게 알게 되는 지식들이 상당할 것이다. 나도 '오스트리아'와 '발트 3국', '폴란드',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그리스' 등등 처음 접하는 유럽의 역사에 신기함을 느낄 정도의 신선한 낯섦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80년대 어릴 적에 어렴풋이 늬우스에서 들어봤을 법한 토막지식들이 불쑥불쑥 떠올라서 더욱 집중하며 읽게 되었다.

더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냉전시대'가 저물자 초강대국 미국을 맞설 상대로 '유럽연합'을 꼽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미국의 상대로는 중국이 새로 부상을 했고, 유럽연합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대한민국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낙후'된 유럽의 현주소를 재조명할 지경에 이르렀고, 경제, 정치, 외교, 군사,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유럽의 각국이 '대한민국'에 의지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마디로 '한국이 없으면 유럽은 안 된다'는 식으로 완전히 역전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현재에도 유럽 각지에서는 '극우 정권'에 의한 혼란한 정국으로 인해 존립 자체에 위기감이 형성되고 있고, 수많은 청년들은 '일자리'와 '복지혜택'을 달라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나마 평화로운 시위도 아니어서 폭력과 방화, 강도 따위의 '2차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 극심한 사회혼란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한때 우리가 배우고 따라하고 싶었던 '모범국가'였던 유럽을 다시금 되짚어보고, 그래도 배울 점이 있으면 배우고,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 있다면 낱낱이 밝혀서 뽕을 뽑아내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출간 목적일 것이다. 비록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책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이 유럽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그럼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원복 교수의 세상만사 유럽만사> 관점 포인트 : 1차와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장터였던 '유럽'은 1945년을 기점으로 새롭게 발돋움하게 된다. 이전부터 강대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러시아 같은 나라들은 아픔과 상처를 빠르게 회복하고 정치와 경제적 안정을 통해서 탄탄하게 성장하였다. 그밖에도 베네룩스 3국이라든지,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같은 나라들도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밖의 유럽 국가들은 전장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승전국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거나, '패전의 아픔'에다가 '극심한 빈곤'까지 겹치면서 오래도록 성장은커녕 '안정'을 되찾지도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서슬퍼런 '냉전'이 휘몰아치자 유럽의 약소국들은 '두 개의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길 강요당했고, 자발적으로 선택했더라도 '미국이나 소련의 위성국가' 신세를 면치 못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똑같이 유럽 국가라고해서 모든 유럽 국가가 번영을 구가하고 부러움을 사는 '모범국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2000년 이후 새로 출범한 '유럽연합(EU)'에 여러 유럽국가들이 가입을 하면서 비록 '가상 국가'이고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강압적으로 뭉친 점이 없지 않지만, 연방국가인 '미국'과 더불어서 엄청난 '경제력'을 가진 새 국가가 등장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다. 그리고 2026년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유럽연합(EU)'는 우리가 따르고 싶고 부러워하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대한민국'을 따르고 부러워하는 나라로 인식하게 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잘 했고, 유럽은 뭘 잘못했기에 그런 것인지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유럽은 다양한 '민족' 국가다. 유럽연합이 아무리 강력하고 엄청난 경제적 파급력을 갖춘 연합체일지라도 그들은 애초에 똘똘 뭉치기에 너무 힘들고 어려운 '고유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민족끼리 '유럽'이란 대륙 안에서 수천 년 동안 지지고 볶고 싸우며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벌여왔기 때문에 이들 나라가 '하나'로 뭉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민족간의 갈등이 번져 '인종청소'로까지 확대되어 엄청난 인명살상이 일어난 것이다. 세르비아인이 알바니아인의 독립요구를 묵살하고, 이에 저항하는 알바니아인을 상대로 대학살을 자행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수백 년 간 다른 강대국들의 압제속에서 함께 저항하며 어렵사리 쟁취한 독립이었는데, 그렇게 한 나라가 된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들이 서로 융합하지 못하고, 그들끼리 전쟁을 벌일 정도로 '민족 간의 이질감'이 너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 바로 '유럽'인 것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해서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세르비아 청년도 바로 자신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굴종을 요구했기에 암살 사건을 벌인 것이다.

둘째, 유럽은 '종교'간의 갈등이 심하다. 우리나라는 종교전쟁으로까지 번진 역사가 없기 때문에 유럽에서 벌어지는 '종교 갈등'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유럽만큼 '종교'로 인해 전쟁까지 불사한 역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먼 옛날에는 '다신교'를 믿었지만,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며 박해를 받던 '유대민족'의 종교인 '유대교'에서 일신교 사상이 퍼져나가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고, 로마제국이 동서로 갈라지면서 서로마에는 '가톨릭'이, 동로마에는 '그리스 정교'가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가톨릭이 우세하던 지역에서는 '신교(프로테스탄트)'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구교 vs 신교'로 나뉘어 본격적인 종교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이 전쟁은 '30년 전쟁'의 결말인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서 각각의 믿음을 서로 존중하기로 합의를 보고 일단락이 되었지만 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구교를 믿는 나라안에서도, 신교를 믿는 나라안에서도 '저마다의 사연'을 들면서 '종교 갈등'이 벌어졌고, 내전이 벌어지거나 믿음의 자유를 위해서 새로운 곳으로 대규모 이주를 하는 등 종교전쟁의 여파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서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더구나 '십자군 전쟁' 이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사이에는 씻을 수 없는 갈등의 골이 생겼고, 이 둘 사이에서는 오직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정의'이고, 다른 믿음은 '이교도'에 불가하니 살상을 해도 무방하다는 식으로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지면서 역시 지금까지도 툭하면 전쟁도 불사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여기에 '유대인 배척'은 유럽인들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뿌리 깊고, 갈등해소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것은 여전하다. 이런 갈등과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오직 '힘의 논리'밖에 남지 않았기에 유대교의 본산인 '이스라엘'은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꼭두각시처럼 부려먹고 있고, 유럽을 찍소리 못하게 내리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유럽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은 '힘 쎈 밉상'으로 찍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틈만 보이면 유대인들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 날 정도로 갈등은 심각하다.

셋째, 유럽은 여러 가지 잡다한 '이데올로기(사상)'의 대립으로 인해 쌓인 갈등과 반목으로 온전히 치유되기 힘들다. 한때는 '똘레랑스(관용)'를 내세우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던 유럽이었지만, 각자의 삶이 피폐해지자 다시금 '야만의 본성(?)'을 드러내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배척'하고 '살상'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대표적인 '자본주의 vs 공산주의'의 대립은 이제는 사그라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곳곳에 남아 있다. '파시즘'과 '나치즘'의 망령은 첨예한 사회갈등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스물스물 되살아나 저들이 강성했던 역사의 한 대목을 목청껏 외치며 자기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향해 '폭력행사'를 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을 전파하려던 나폴레옹도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독재자'로 탈바꿈하며 폭력을 일삼았지 않은가 말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왕의 목을 자른 '급진 공화파'들은 왕정복고를 외치는 '왕당파'와 반목하며 서로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싸움을 일삼았다.

그리고 끝으로 유럽 각국은 '영토확장'을 꾀하는 정복욕을 버리지 못해서 유럽대륙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약소국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강대국의 야욕을 막아내지 못하고 수백 년 동안 압제와 핍박을 당하다 비교적 최근에야 독립을 하고, 현재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는 바람에 갈등의 골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기감이 산재해 있다. 유럽 각국은 이런저런 핑계를 내세워서 '자국의 영토'를 조금이라도 넓히려고 해왔기 때문에, 현재에는 '국경분쟁'이 없는 유럽국가가 없을 정도다. 이에 따른 '피지배 민족'이 끝없이 저항하며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 현재까지도 벌어지고 있단다. 믿기 힘들지만 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흑해'를 둘러싼 '크림반도 소유권'이 대화로 해결되지 않자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휴전'이나 '종전'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한 세월동안 서로 뺏고 빼앗은 '영토문제'로 인해서 유럽은 지금도 '화약고'로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글 : 이 책의 내용은 '각 나라마다' 한 꼭지씩 자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나열되어 있지만, 위의 네 가지 요소로 '큰 그림'을 그리며 읽다보면 유럽 각국의 역사가 왜 그렇게 진행되어 왔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유럽의 역사를 공부할 때에는 그 나라의 '민족구성원'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파악하면 이해하기 쉽고, 그 나라 구성원들이 믿고 있는 '종교'를 파악하면 갈등의 양상이 어떻게 벌어지고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 나라의 '이데올로기' 성향이 어떤지 파악하게 되면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한 방에 정리되고, 끝으로 역사상 높으신 양반들이 벌인 '전쟁의 결과'로, 또는 '혼인'의 결과'로 '영토의 소유권'이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어느 나라에서 어떤 나라로 넘어갔는지 살펴보면, 유럽 각국이 왜 그리 싸우는 것인지 한 방에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위의 네 가지 요소가 아주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었기 때문에 한 번만 읽어도 '유럽의 모든 것'을 마스터한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즐겨 읽으시는 독자라면 '민족', '종교', '사상', '영토' '네 가지 요소'로 정리하면서 읽으면 훨씬 더 잘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유럽'을 통해서 배울 점이 있을까? 요즘처럼 전세계에서 진정한 선진국이자 강대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정말이지 얼떨떨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게 다 우리가 70~80년대부터 유럽을 '모범답안'으로 삼고 부단히 쫓아가려 노력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프랑스처럼 '문화대국'이 되고 싶었고, 독일처럼 '과학기술의 정점'을 찍고 싶었으며, 영국처럼 '전세계를 통솔하는' 위치에 올라서고 싶어했다. 그런 부단한 노력의 결과 현재의 대한민국이 된 듯 싶다. 한류열풍을 넘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발돋움을 했고, 독일보다 앞선 '과학기술력'을 발달시켜서 전세계 1위 제품을 당당히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수출'만이 살 길이다. 한편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도국가'로 발돋움 했다. 과거 유럽의 열강들이 '제국주의'를 앞세워서 약소국들을 식민지로 삼고, 그들을 강제로 엎드려 꿇린 다음에 질질 끌고 나갔지만, 대한민국은 약소국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강대국들조차 '동등한 위치'에서 대등한 무역상대국으로 삼아 전세계를 향해 '수출길'을 여는 기염을 토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우리는 수출하기 위해 여러 나라들에 굴욕적인 '매달리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다른 나라들이 오히려 대한민국과 원활한 교역을 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위엄(?)이 천년 만년 이어질 것인가? 우리도 유럽이 고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민족 문제', '종교 문제', '사상 문제', '영토 문제'를 원만하게 갈등의 폭을 줄이고 해결해나가지 못한다면 '현재의 유럽'처럼 폭망할 수도 있다. 우리는 '분단국가'로서 한 민족끼리 어마어마한 살상을 하는 처절한 전쟁 경험을 갖고 있다. 또한 첨예한 '사상' 간의 갈등으로 남북으로 분단 되어 있고, 남남끼리는 '보수 vs 진보'의 논리로 서로 양보 없는 전쟁을 일삼고 있다. 그리고 '독도'를 둘러싼 영토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인제 이웃나라인 일본은 독도를 '영토분쟁화'시켜서 호시탐탐 빼앗으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일교와 신천지, 그리고 일부 개신교 따위의 세력이 '정교 유착'의 고리를 맺고 불법적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영구 집권'을 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종교단체들이 일으킨 문제인데, 유럽의 사례를 보아도 '종교 문제'만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문제다.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방법을 터득하고, 이 모든 문제를 좌지우지할 '원천적인 힘'을 갖추게 되면 아무 탈도 없이 쑥쑥 성장할 일만 남았다. 허나 만에 하나라도 이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미래를 장담하지 못할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모쪼록 유럽의 문제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나라에서는 절대로 읽어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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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테크리스타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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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 백선희 / 문학세계사 (2022) [원제 : Ante`christa]

[My Review MMCXCIII / 문학세계사 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두 번째 리뷰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앙테크리스타>다. 먼저 '표지그림'을 보고 살짝 실망을 했다. 원래 예전의 표지에는 아멜리 노통브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는데 말이다. 새로 '개정판'의 표지는 완전 내 취향이 아니어서 많이 실망을 했다. 애초에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의 등장인물은 대개 성격은 둘째치고서라도 '외모'만큼은 절세미인으로 그려놓았으니 책표지도 그에 걸맞게 매혹적으로 그려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등장인물의 나이가 '미성년'에 해당하는 열여섯 소녀들일지라도 '매혹적인 외모'로 그렸어야 했는데 아쉽다는 말을 먼저 꺼낸다. 뭐, 취향에 해당하는 부분이니 '개정판의 표지'가 훨씬 더 마음에 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 다짜고짜 책 내용으로 풍덩 빠져들어 보자.

<앙테크리스타> 관점 포인트 : 주인공은 열여섯 살 대학생 소녀로 이름은 '블랑슈'다. 열여섯 살에 벌써 대학생이라니 대단히 공부를 잘한 모양이다. 공간적 배경이 '벨기에'이므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학점이수제' 같은 방식으로 조기 대학입학이 가능한 모양이다. 암튼 열여섯 살에 대학입학이 그리 드문 편은 아닌 모양이다. 주인공인 블랑슈 말고도 '크리스타'라는 열여섯 살 소녀도 같은 학교에서 같은 강의를 듣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소설의 시작은 두 학생의 첫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악연'이었다. 크리스타가 블랑슈에게 들러붙더니 끝내 블랑슈네 집에 얹혀 살게 되면서 '블랑슈의 모든 것'을 잠식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타겟이 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블랑슈의 부모님'이었다. 크리스타는 매혹적인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여느 부모님이라면 듣기에 너무 달콤한 말들을 선사하며 '블랑슈 부모님의 마음'을 매혹시켰고, 더 나아가서 친딸인 블랑슈의 '진실된 말'보다 크리스타의 '거짓된 말'을 더 믿고 신뢰할 지경에 이르렀다. 블랑슈도 그제서야 자신이 지독한 '함정'에 빠졌고, 크나큰 '실수'를 했으며,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크리스타에게 '헌납'하듯 빼앗겨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그 둘의 기묘하고 거북한 동거가 시작한다. 아참, 크리스타의 집이 학교에서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이를 불쌍히 여긴 블랑슈가 '인생 첫 친구'를 사귀게 된다는 기쁨에 들떠서 부모님을 설득해서 크리스타와 함께 살고 싶다고 부탁을 했고, 크리스타와 첫 만남 이후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진 블랑슈의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동거를 하게 되면서 블랑슈는 점점 '불편한 일'만 겪게 된다. 애초에는 '처음 사귀게 된 친구'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어서 한껏 들뜬 마음이었지만, 블랑슈는 크리스타의 말과 행동 때문에 자기 부모님에게 '못난 딸'로 전락했고, 자기 방에 있던 '침대'마저 빼앗겨 '간이침대'로 쫓겨났고, 학교에서는 '크리스타의 단짝'이라는 소개만 받았을 뿐, 제대로 사귈 수 있도록 도와주지도 않고 뻘쭘하게 크리스타와 그녀의 친구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블랑슈는 여전히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신세였던 셈이다. 애초부터 크리스타는 블랑슈를 '이용'해 먹을 생각뿐이었지. 블랑슈의 찐친이 되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편한 일상이 학교에서만 일어났다면 블랑슈도 그저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더욱 불편하게 만든 것은 블랑슈의 집에서조차 '크리스타'가 블랑슈가 당연히 받아 마땅한 사랑과 인정조차 다 앗아가버리고 블랑슈를 내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면, 크리스타가 블랑슈의 부모님과 마주 할 때마다 '점수'를 따내고, 블랑슈를 그야말로 '찐따'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더 속상한 것은 블랑슈의 부모님조차 그런 크리스타의 '계략(?)'에 넘어가서 크리스타를 친딸처럼 살갑게 대하고, 블랑슈를 어디서 데리고 온 보릿자루 마냥 푸대접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푸념까지 늘어놓기 일쑤라는 점이다. 이쯤되면 독자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불쌍해서 도와주려 했는데 그런 '좋은 마음'을 악용(!)해서 저 혼자만 '점수'를 따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철저한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멜리 노통브 소설의 '전형적인 패턴 전개 방식'이다. 이런 식의 전개방식을 하도 읽어재끼다보니 이젠 식상할 정도가 되었다.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을 때만해도 '천재적'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후 네 시>를 읽으면서 그 지독한 답답함에 몸서리를 칠 정도였다. 물론 이때까지만해도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어서 읽게 된 <로베르 인명사전>, <사랑의 파괴>,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적의 화장법>까지 읽어내려가니 뭔가 진부함을 느꼈다. 미치도록 답답했고 정의는 언제쯤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 점점 분노게이지를 차오르게 만들었다. 왜 이 작가는 이토록 '적'을 만드는데 고심을 하고 애꿎은 '희생자'를 만들어 괴롭히는 것일까 하고 의문이 들 정도였다.

더구나 매혹적인 적이 등장해서 선량한 희생자를 괴롭히는 장면을 몰아부치는 대목을 읽을 때면 매우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적이 없는 삶은 허무와 권태의 구렁텅이, 가혹한 시련이 아니겠는가? 그런 고로 적이야말로 구세주다'라는 변명을 했다. 한마디로 궤변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적이란 분명 지옥 같은 고난을 안겨주는 존재지만, 고난이야말로 희생자에게 새로운 탄생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생의 패러독스 아니겠는가'라면서 사이코패스적인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이런 '도그사운드'를 듣기 위해서 그녀의 소설을 읽어갈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나가는 글 :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궤변'이 먹혀들어가는 점이 없지 않다. 그건 바로 '재밌다'는 것이다. 무슨 변태가학적인 헛소리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랬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재밌는 편이다. 단지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불쌍한 '희생자'가 겪고 있는 불행을 엿보고 싶지 않다는 일말의 '죄책감(?)' 같은 것이 들 뿐이다. 어차피 허구의 세계를 그린 소설일 뿐이니 얼마든지 즐길 수 있고, 재미를 느낀다면 무슨 짓인들 못할 것이 없고, 꺼릴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 양심이 이런 '악질적인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는 등장인물(악당, 또는 적)을 가만 두고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궤변도 궤변 나름이고, 악행도 악행 나름이다. 적어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거나,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지른 당사자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 정의가 구현되거나, 그런 정의의 심판조차 교묘히 빠져나갈 정도로 악질적인 등장인물이라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천벌'이라도 당연한 듯 받아야 속이라도 시원할텐데, 아멜리 노통브 소설에서는 그런 '정의감'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솔직히 큰 실망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더는 '재미'라는 것을 느끼면 안 되겠다는 반성까지 해야 마땅한 것이라 '정색'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이 소설의 제목이 <앙테크리스타>다. 프랑스어라서 '뜻'이 잘 전달이 안 되겠지만 영어로 표현하면 '안티 크리스트'가 될 것이고, 우리 말로 풀어 쓰면 '적 그리스도'다. 사탄보다 더 무섭다는 '거짓 예언자'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적' 크리스타가 바로 '거짓'에 능통한 인물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 소설이 '종교적 박해'를 주장하는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거짓'을 일삼는 생을 살아가는 소녀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그리스도'라는 뜻의 '크리스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굳이 종교적 해석을 가미할 필요는 없겠지만, 제목에서 전체 줄거리가 어떤 전개를 거칠 것인지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울 수는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크리스타의 거짓이 너무 불편했다. 자신의 거짓으로 너희들에게 '이득'이 되었다면 거짓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설령, 그런 행위로 인해 크리스타가 '개인적인 이득'을 챙겼더라도 그건 오로지 널 위해서였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장면이 되풀이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화딱지가 날 정도다. 말은 청산유수처럼 잘도 갖다붙이지만 결국 '자기 이익'을 위해서 철저히 이용했다는 사실이 끝내 밝혀지게 된다. 그런데도 반성과 사과는커녕 도리어 순순히 '이용' 당하지 않았다고 되려 발끈하고 성질을 내는 꼬락서니까지 지켜볼즈음에는 열불이 터지고 말았다.

이토록 불편함 심정이라면 더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읽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전부'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다른 뭔가가 있을 것이란 '직감'이 들었단 말이다. 그래서 기왕 읽기 시작했으니 '전작주의'까지는 아닐지라도 남은 소설들을 다 까발려주겠다는 심정으로 읽어보려 한다. 최근에 <리틀 아멜리>(원작소설 :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도 개봉했다지 않은가? 분명 내가 보지 못한 '재미'가 남겨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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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 기묘한 여름 방학 - 중학교 수학 1-2 개념이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권혁진 지음, 신지혜 그림, 김애희 감수 / 유아이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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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 기묘한 여름 방학> 권혁진 / 김애희 / 유아이북스 (2020)

[My Review MMCXCII / 유아이북스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한 번째 리뷰는 중등수학의 개념을 재밌는 소설로 다잡을 수 있는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다. '툴리아 1'에서는 중등수학 1학년 1학기에 배울 내용을 탐구했다면, 이번 '툴리아 2'에서는 2학기에 배울 내용이 간추려져 있다. 사실 초등수학에서 중등수학으로 넘어오면서 유념해야 할 것은 '탄탄한 개념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공부가 '탄탄한 기초'가 필요한 법이지만, 수학에서 말하는 기초는 두 말하면 입 아플 지경일 것이다. 이런 조언은 이미 초등시절에도 많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등수학을 잘못 학습한 학생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중등수학은 개념도 잡아보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까닭으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제대로 수학공부를 시작도 하기 전에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가 되고 만다. 그럼 '수포자'가 왜 중등 1학년 때 많이 발생하는지부터 살펴보자.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2> 관점 포인트 : 수포자가 된 학생들도 초등시절에는 수학 성적이 우수했던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째서 중등수학을 공부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성적이 곤두박질 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잘못된 방식'으로 수학공부를 해왔기 때문이다. 초등시절에 '영수 학원'을 다니거나 '보습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심지어 집에서는 '방문학습'까지 하며 '문제집'도 십수 권을 풀고 또 푸는 수학공부를 해왔을 것이다. 이유는 뻔하다. 수학이 그만큼 중요한 과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초등시절을 보내고 나면 중등수학을 굉장히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발생하고 만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초등수학 만점의 비결 때문이다. 사실 초등학교 수학시험의 출제난이도는 '교사 재량'이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을 누굴 만났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초등생들은 대부분 '사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 초등수학 성적은 거의 '만점'을 받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수학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중등수학'을 만나면 딱 절반으로 나뉘게 된다. 고득점 학생과 문제에 손도 대지 못하고 찍는 학생으로 말이다. 그리고 찍어서 시험을 망친 학생들은 부랴부랴 '수학학원'을 뺑뺑이 돌지만 영 신통치 않은 성적을 받으며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왜일까?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하나다. 잘못된 방법으로 수학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기초를 탄탄히 하지 않고 '족보(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은행)'에 의지해서 '시험에 나올 문제 유형'만 주야장천 풀고 또 풀어서 '만점'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초등수학 시험문제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초등생일지라도 맘만 먹으면 그 모든 분량을 다 풀어재끼고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수학성적을 유지한 학생들은 그야말로 '문제를 풀고 또 풀어재끼는 공부'만 해왔다. 이런 방식으로도 초등수학은 고득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등수학에서도 이 방법이 통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먼저 문제의 총량이 너무 많다. 그리고 같은 문제유형이라도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모든 유형을 다 마스터할 수는 없다. 그 까닭을 말하자면, 일단 초등교과서는 '딱 1종'으로 전국 공통이지만 중등부터는 여러 종류의 교과서 가운데 하나를 학교재량으로 지정해서 교과서로 삼는다. 이게 뭘 의미할까? 공부해야 할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초등시절부터 수학문제집 십수 권 분량의 문제를 풀이했을 것이다. 그러니 중등때에도 십수 권 분량의 문제풀이에 지칠 리는 없다. 그런데 왜 수학성적이 향상되지 않을까? '기초 개념'만 확실히 깨우쳤다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 '기초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문제 유형'만 익혀서 정답을 외우는 방식으로 초등수학 성적을 높였던 학생들이 바로 '수포자의 주인공'인 셈이다. 다시 말해, 수학공부를 잘못된 방식으로 배웠기 때문에 '중등수학의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무작정 문제풀이부터 하려 들고, '수학공식'만 달달 외워서 답만 맞추려 드는 습관만 있기 때문에, 결국 중등수학 정도의 난이도조차 풀지 못하는 학생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고액의 '종합학원'을 보내서 밤10시까지 옴쭉달싹하지 못하게 공부를 시킨다고 수학성적이 만족할 만큼 향상될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차리리 이 책 <신비한 수학의 땅 1, 2>을 읽히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왜냐고? 재미난 이야기를 읽었을 뿐인데 '중등수학의 개념'이 저절로 잡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가장 좋은 공부는 '재밌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해'하기도 쉽고, 굳이 '암기'하려 들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질테니 말이다. 그리고 '반복학습'이 필요할수록 재미난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학습부담도 덜고 하고 또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 다음에 본격적인 '문제풀이'에 들어가고 '시험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초 개념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을테니 여러 가지 '문제유형'을 만나도 알맞은 '키워드'를 찾아내서 쉽게 풀 수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공부란 모름지기 그렇게 해야 한다. 명강으로 유명한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어보라.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쉽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정말 재미나게 강의하지 않느냔 말이다. 공부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네 초등수학교실은 그렇지 못하다. 목표한 점수에 도달할 때까지 풀고 또 풀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 더럽게 재미없게 가르친다. 물론 사교육선생들도 풀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억지로 앉혀 놓고 학부모들이 만족할 때까지 풀고 또 풀려야 하기 때문에 곤혹을 치루고 있다. 이분들이 괜히 재미없게 공부시키는게 아니다. 그렇게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면 아예 문제풀이를 하려 들지 않고, 공부하기를 즐기려 들지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가는 글 : 중등 1학년 2학기가 되면 '기하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도형' 파트를 배운다. 이것을 쉽게 배우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에 나처럼 어렵게 배우는 학생들도 분명히 있다. 나도 이공계로 진학해서 각종 '역학'을 전공했지만, 유독 '도형 파트'는 힘들어 했다. 특히, 원과 접선 문제 유형만 나오면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기하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초등시절의 '도형'을 제대로 배운 경험이 없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도형문제를 풀 때에도 '숫자'만 보고서 들입다 '연산'을 해내서 풀어대는 잘못된 습관으로 학습을 한 탓에 중등수학부터 '기하학 문제'는 거의 손도 대지 못하고 엉망진창으로 풀이하던 기억만 떠오른다. 당시에는 한 반에 60명이 넘었고, 과외교육도 금지되었기에 누구에게 체계적으로 배울 경황이 없었다. 어찌어찌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수학의 정석>으로 학원강의를 듣곤 했지만, 여전히 도형문제만 나오면 헤매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 책 '툴리아 2권'이 더욱 반가웠다. 읽기만 해도 저절로 이해가 되는 쉬운 설명을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인지 참 속상할 따름이다.

참고로 초등수학에서 배우는 5가지 개념은 '수와 연산', '도형', '측정', '표와 그래프', '확률과 통계'다. 이건 중등수학에도 그대로 연계된 학습을 진행하며 중등 1학년 1학기에는 '수와 연산'에 이은 '대수학의 기초'를 학습했다면, 2학기에 접어들면 '도형', '측정'이 심화된 '기하학의 기초'를 배우고, '히스토그램'과 '도수분포표' 같은 단원을 공부하게 된다. 그러니 초등수학의 기초에 충실히 개념 파악했다면 중등수학에서도 그닥 어렵지 않게 '개념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러니 무턱대고 겁부터 먹을 까닭이 전혀 없다.

더구나 '문제풀이'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초등수학보다 중등수학이 훨씬 더 간결하기 때문에 초등수학 성적이 좀 떨어진 학생이라도 중등수학부터 반전을 보이며 높은 성적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학생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보통 성인이 되어서도 '초등수학 방식'으로 문제풀이를 하기보다는 '중등수학 방식'으로 연산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중등수학도 개념만 잘 잡아주면 초등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학습성과를 올리는 학생들이 참 많다.

그러므로 중등수학을 공부하겠다고 '고액과외'만 알아보기 전에 '재미난 소설책'부터 권해주는 것도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공부 좀 해본 학생들도 억지로 꾸역꾸역 한 공부는 힘들어 하지만, 재밌고 즐거운 공부는 하지 말라고 해도 찾아서 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기 마련이다. 지루하고 따분한 수학공부를 하다가 잠깐 짬을 내서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심지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에는 '딴짓'을 하고 있는데도 '수학공부', 그것도 아주 중요한 '중등수학의 기초 개념'을 탄탄하게 만들어주지 않는가 말이다. 그야말로 마당 쓸고 돈 줍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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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독서평설 2026.1 독서평설 2026년 1월호
지학사 편집부 지음 / 지학사(잡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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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독서평설 2026년 1월호> 지학사 편집부 / 지학사 (2025)

[My Review MMCXCI / 지학사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무 번째 리뷰는 '고교 독서평설 2026년 1월호'다. 워낙 유명한 잡지이니 다른 소개는 하지 않겠다. 수많은 잡지들 가운데 대한민국 학생들이 꼭 하나만 읽으면 좋을 잡지를 꼽자면 바로 '독서평설'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개를 할 수 있는 까닭은 내가 바로 '독서논술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잡지를 통해서 '최신정보'도 얻고 '신간도서'도 소개 받고, '최근이슈'와 함께 '깊이읽기'를 할 수 있는 유용한 잡지이라서 그렇다. 그런 까닭에 많은 '독서논술쌤'이 이 잡지를 '교재' 삼아서 논술수업을 하기도 한다. 나도 올해는 이 잡지로 고교생 수업을 진행할 계획을 잡았다. 그럼 '독서평설'의 진면목을 살펴보자.

<고교 독서평설 2026년 1월호> 관점 포인트 : <독서평설>로 '논술지도'를 받든, 개인적인 '독학'으로 읽든, 가장 중요한 학습 포인트는 '하루 10분, 독서 플래너'를 꼭 활용하라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짜여 있는 '독서 플래너'를 참고하면 한 달치 학습 분량이 저절로 짜여지게 된다. 요즘 학생들 스케쥴이 좀 바쁜가. 학교를 파하고 나면 학원에 가야 하고, 학원을 마치고 나면 집에 가서 그날 숙제와 공부를 하면서 마무리해야 한다. 특히 '고교생' 같은 경우에는 밤늦게 학원을 마치고 나면 집에서 그저 늘어져 쉬고만 싶은 것이 굴뚝일 것이다. 거기다 침대에 누워서 너튜브와 숏츠를 넘기면서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눈을 감고 다시 뜨면 아침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바쁜 나날들을 보내다보면 '하루 10분'을 투자해서 <독서평설>의 한 꼭지를 읽을 시간도 없기 마련이다.

그럴 때 '짜투리 독서'를 하면서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독서평설>을 읽는 것을 실천하면 좋겠다. 잡지 한 권을 온전히 들고다니는 것이 힘들다면 '하루 분량의 꼭지'를 몇 장 뜯어서 쉬는 시간이나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짬에 틈틈히 펼쳐서 읽고 밑줄을 그어가며 '요약'하면서 읽어도 무방하다. 애초에 '잡지'라는 것이 천년만년 소장할 것도 아니고 많은 독자분들이 '화장실'에 응가를 누면서 보는 용도로 쓰기도 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잡지를 소중히 여기는 애독자가 아니라면 바쁜 일상을 살면서 자켓이나 청바지 '주머니'에 쏙 넣고 있다가 틈날 때 읽을 수 있을 분량만 들고 다니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독서평설>의 글 내용은 수준 높고 교양 갖춘 '좋은글'이 가득하다. 더구나 학생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배경지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26년 1월호에서 눈여겨 볼만한 주제도 참 많다. 가장 먼저 '입시정보'로는 경희대학교 미래정보디스플레이학부가 소개되어 있다. 올해 새로 개정된 내용으로는 앞서 입시정보를 담아 놓은 '입시력' 코너가 있고, '문화력', '독서력', '문학력' 코너가 차례대로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맨 앞에는 '특집' 코너로 '한국 핵잠수함 보유'로 자주국방의 시대를 맞았다는 최신 이슈로 글을 열고 있다.

이런 다양한 '글'을 가지고 논술수업을 진행하게 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우리 나라 '정시'와 '수시' 논술은 지문제시형 논술을 진행한다. 대개 1000자 분량의 글쓰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각각 서론-본론-결론에 해당하는 분량을 따로 요구하기도 하지만, 결국 전체적으로 논술시험을 보는 학생들에게 주어진 지문을 참고해서 '논제'로 주어진 내용에 걸맞는 글을 '1000자 내외'로 찬성이나 반대로 결론을 정리해서 서술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평가하곤 한다. 그때 어떤 요령이 필요할까? 먼저, 지문분석에 철저해야 한다. 왜냐면 지문분석을 통해서 결론에 딱맞는 정확한 근거를 찾아내야 '주어진 분량'에 맞게 서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지문 분석에 실패하면 분량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1000자의 분량은 보통 서론 1문단, 본론 3문단, 결론 1문단으로 나누어 쓰길 요구하며, 각 문단의 분량은 약 200자(원고지 1매 분량) 정도를 서술하면 좋다. 이때 하나의 문단에는 '중심 문장 1문장'과 '뒷받침 문장 2~3 문장'을 서술하면 된다. 그럼 모두 5문단이므로 5개의 중심 문장만 잘 나열해도 한 눈에 딱 보기 좋은 '모범답안'을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독서평설>로 연습을 해보자. 독서평설의 글들을 잘 살펴보면, '서론'에 해당하는 문단과 '본론'과 '결론'에 해당하는 문단을 찾을 수 있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겠지만, '한 문단마다 하나의 중심 문장'이 들어 있다는 것을 간파한다면 어렵지 않게 각 문단의 중심 문장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 그 중심 문장에 '형광펜' 같은 것으로 눈에 확 들어오게 밑줄을 그어보자. 그럼 자연스럽게 '중심 문장'과 그 문장을 보충 설명하는 '뒷받침 문장'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각 문단의 중심 문장만 따로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본문 요약'도 가능해진다. 그 문장을 '개요짜기' 삼아서 자신만의 요약글로 새로 쓸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요령으로 '글쓰기 훈련'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제별 논술쓰기' 연습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직접 쓴 글들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틈날 때마다 '읽어보면서 퇴고 작업'을 실시하면 점점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방법은 혼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므로 <독서평설>을 활용해서 논술대비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가는 글 : 좋은 글을 쓰기까지의 관건은 꾸준함이다. 고등학생 논술 과외비는 상당히 쎈 편이다. 그런데 그 비싼 돈을 들여서 고교 3년 내내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췄으면 모를까 왠지 '낭비'한다는 느낌이 강할 것이다. 실제로 논술과외는 '입시 1달 전'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싼 과외비를 내면서도 논술수업의 내용은 거의 '첨삭'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짧고 강렬한 '고액과외'이다보니 학부모들은 과외 선생의 '학벌'을 따지고, '경력'을 따지며 나름 꼼꼼하다고 자부하는 분들도 계신데, 가장 좋은 논술선생은 학생의 성향에 따라서 '원포인트'로 콕 짚어서 글쓰기 요령을 지도하는 분이 최고다. 뭐, 논술입시 최신정보를 원한다면 '대형논술학원'에 등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만, 논술글쓰기의 기본을 다지는데에는 고액과외보다 '꾸준한 글쓰기 연습'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면 좋겠다. 그러기에 딱 좋은 교재도 바로 <독서평설> 같은 좋은 글과 최신 정보가 알차게 담겨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좋고 말이다.

기왕이면 초등시절부터 꾸준히 글쓰기 연습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아무리 AI시대가 되어 '직접 쓰기'보다 '검색'이 훨씬 더 편하고 정확한 시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직접 글을 쓰는 학습'은 필수적인 학습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야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좋은 결과물'인지 '나쁜 결과물'인지 최종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인재만이 AI시대에서도 재능을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평생 'AI가 떠먹여주는 정보의 노예'가 되어 자기결정권조차 AI에게 통제받는 것이 편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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