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재 삼국지 7 - 서촉을 정벌하라 이희재 삼국지 7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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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7 : 서촉을 정벌하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III / 휴머니스트 5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일곱 번째 리뷰는 유비가 방통의 도움을 받아 입촉에 성공하는 <이희재 삼국지 7>이다. 주유의 죽음에 이어, 이번에는 '방통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주유가 제갈량을 시기하다가 죽음을 재촉했다면 방통은 제갈량을 질투하다가 죽음을 앞당겼다고 소설 <삼국지>에서는 전하고 있다. 바로 방통이 입촉을 하는 와중에 '유비가 타던 말(적로)'로 바꿔 타는 바람에 유장군의 매복 작전 때 방통이 유비 대신 '저격'을 받아 죽었고, 마침맞게 그 장소가 '낙봉파'였던 탓에 봉추(봉황의 새끼)라 불리던 방통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이번에 해보려 한다. 자, '책사편' 방통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희재 삼국지 7> 관점 포인트 : 7권의 시작은 조조 vs 마초의 전투로 시작한다.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던 마초와 한수가 조조를 장안까지 밀어붙이지만, 아직 조조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초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초반에 조조군은 당황하지만, 흙담에 물을 부어 '얼음 성벽'을 하룻밤만에 쌓아올리며 마초의 기병을 막아낼 수 있는 '방어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조조는 '가후의 꾀'를 수락하며 마초와 한수를 '이간질' 시키는 계략을 꾸미게 된다. 천하무적의 기량을 뽐내던 마초였지만 아직 젊고 혈기만 넘쳤던 탓에 '한수와의 동맹'을 헌신짝처럼 갖다 버리고 끝내 조조의 반격을 받고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가후는 책사 가운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계략에 정말 능통했다.

한편 조조가 서량까지 세력을 넓히니 '한중'에 머물고 있던 장로는 언제 조조가 공격해올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렇다고 조조에게 순순히 항복할 수는 없어 스스로 '한녕왕'을 자처하며 서촉의 유장을 공격해서 영토 확장을 꾀한다. 이 소식을 접한 유장은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하려 했고 '장송'을 보내 장로를 제압해줄 것을 부탁하려 했다. 허나 장송은 유장이 너무 무능한 탓에 서촉의 백성들이 한낱 장로 따위에게 벌벌 떨면서 살고 있다고 한탄하며, 이 참에 '나라의 주인'을 바꾸려는 마음을 품었다. 허나 장송은 못 생겼고 말투도 싸가지가 없다며 조조에게 냉대를 받고 몽둥이 찜질까지 당하고 쫓겨난다. 그렇게 쫓겨난 장송은 유비에게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고서 유비에게 '서촉땅'을 갖다 바치려 한다.

어릴 적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장송이란 인물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나라가 약소국이고, 주인이 무능하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다른이에게 홀랑 넘겨버리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 온당치 못한 짓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매국노'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유장과 유비가 '한 집안'이고, 조조와도 '한족'으로 동포라 할지라도 엄연히 '나라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다. 장송의 공식 직함조차 '유장의 신하'가 아니겠는가. 물론 유장이 '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장송이 충성을 받치던 '주인'이었고, 주인이 싫었으면 장송이 배반을 하고 떠나면 그뿐이지, '서촉의 백성'을 위해서 유장을 내쫓고 다른 지배자에게 영토를 내어주려 한다는 것은 쉬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송이 맨 처음 찾아간 이는 '조조'였다. 조조에게 서촉을 넘겼더라면 그야말로 '역적'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격이었다. 그런데도 나관중은 이를 그대로 소설 <삼국지>에 차용했다. 나중에는 '정통' 유비에게 넘겨준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어릴 적에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터라 '장송'이 더욱 밉보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장송은 달가운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사 <삼국지>에서조차 장송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유비에게 호의적이었다가 유장에게 들통이 나자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사실을 두고 안타까워할 정도다. 아무리 유장이 무능했다지만 이런 평가가 온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도 5, 60년대 진짜 못 살던 시절에 '대통령이 무능한 탓'을 들어 이웃나라 지도자에게 나라를 홀랑 넘겨 버리는 꼴을 보고도 괜찮다고 평가할 것인가? 그런 식이라면 이완용도 '매국노'가 아니게 될 것이다.

암튼 이런 논란조차 '유비의 입촉'을 열망하는 독자팬들에게는 그닥 무의미할 것이다. 이때 유비의 책사로 활약한 인물이 바로 봉추 방통이다. 일찍이 수경선생 사마휘가 유비에게 "복룡과 봉추 가운데 한 명만 곁에 둘 수 있다면 천하를 경영할 수 있다"고 얘기한 바로 그 봉추란 말이다. 한 명만으로도 천하를 얻을 지경인데, 유비는 복룡과 봉추 둘을 모두 얻었다. 그런데도 왜 유비는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을까?

나가는 글 : 솔직히 제갈량도 그렇지만 방통도 너무 후한 평가를 받은 편이다. 천하를 경영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인재라는 평가에는 제갈량과 방통이 아직 '20대 젊은이'였기 때문에 미래에 펼치게 될 역량까지 미리 끌어다 평가를 한 경향이 강하다. 두 사람이 유비의 품에서 내놓은 계책이란 것이 고작해서 '천하삼분지계'라는 아직 이루지 못한 청사진 한 장이었고, 적벽대전에서 주유의 계책을 돕는 '연환계'를 내놓고 유비에게 형주를 차지할 수 있는 유리한 판을 짠 것이 실적의 전부였다. 학창시절에 아무리 '영재''천재'니 소리를 들으며 우수한 학업성적을 달성했더라도 어쩔 수 없이 '실전경험 미숙한 학생'일 뿐이다. 냉험한 프로의 세계에서는 '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방통은 이제 막 유비의 '부군사' 직책을 받았기에 실적을 올리려고 부던히도 애를 쓰던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유비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제갈량'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방통으로 하여금 '고용불안정'을 실감하게 했을 것이다. 속된 말로 "너, 실적도 없고, 실력도 없으면 짜를 거야!"라는 말을 듣는 처지였단 말이다.

그런데 방통은 제갈량과 달리 '유비와 궁합'이 너무 맞지 않았다. 제갈량도 삼고초려 끝에 유비를 모시는 신하가 되었지만, 초기엔 뭐 하나 제갈량 '뜻대로' 유비가 따르는 것이 없었다. 천하삼분지계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방책을 눈 앞에 두고도 마다하는 유비를 제갈량은 답답해 했다. 그럼에도 제갈량은 '또 다른 방책'을 내어 유비의 취향에 딱 맞는 방책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비는 이게 맘에 들었던 것이다. 헌데 방통은 자신의 '뜻대로' 따르지 않고 미적거리는 유비를 한심해 했다. 왜 쉬운 길을 두고 어렵고 험한 길을 가려고 하느냐면서 말이다. 그래서 유비가 고를 수 있게 '상책, 중책, 하책'을 내놓고 유비에게 선택하도록 했다. 제갈량하고는 다른 방식이었다. 제갈량은 자신의 실력을 굳이 뽐내지 않고, 이 방법은 어떠냐? 저 방법은 어떠냐? 그런 요런 방법도 있다면서 유비의 마음에 흡족할 때까지 방법을 무한정(?) 제시하다가도 정말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에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유비로 하여금 "무조건 이 방법대로 따르십시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라며 밀어붙이는 강단도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방통은 자기 실력을 뽐내는데 주력을 하면서 먼저 "방통이 추려낸 방책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 주공께선 고르기만 하십쇼"라면서 유비에게 다른 방법은 없으니 셋 중 하나를 고르라는 '강요'를 했던 것이다. 물론 방통이 선보인 방법들은 하나 같이 명쾌하고, 어느 방법을 골라도 반드시 '결과'를 낼 수 있는 훌륭한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방통의 재주가 굉장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재확인 시켜주었다. 하지만 이 방법들이 뛰어난 것은 알지만 '유비의 마음'에 흡족한 것이 하나도 없을 때가 문제였던 것이다. 유비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까지 완벽한 방법을 선호하는 욕심쟁이(?)였는데, 방통은 이런 난세에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까지 완벽해야 하는 욕심을 부리다니 과욕이 너무 심하다며 간접적이나마 유비에게 핀잔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비는 유비는 유장과 전쟁을 치뤄야 하는 상황에서 '난감한 상황'에 빠질 때마다 방통이 옆에 있는데도 제갈량을 찾곤 했다.

방통은 이런 유비에게 '고용불안정'을 느끼고 조급하게 성도의 관문인 '낙성 공략'을 밀어붙인다. 그러다 끝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1년 동안 길어진 낙성 공략 도중 '빗나간 화살'에 맞고 죽고 만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낙봉파'에서 장임의 기습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나오지만 방통이 죽은 곳은 낙봉파가 아니었다. 방통은 가진 실력에 채 펴보기도 전에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만약 방통의 목숨이 더 길어 '형주'는 제갈량이 막고, '서촉'은 방통이 경영했더라면, 조조는 한중을 넘지 못했을 것이고, 손권은 형주를 영원히 갖지 못해 '천하삼분지계'는 더욱 완벽하게 자리 매김 했을 것이고, 비교적 젊은 무장이었던 장비와 조운, 그리고 마초, 위연 등이 강한 군사를 키워내서 조조와 손권의 영토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방식을 썼더라면 '촉한'에게도 천하통일의 기회는 충분히 주어줬을 것이니 어찌 '방통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지 않겠는가.

결국 촉한이 빨리 망한 까닭은 '인재 부족' 때문이었다. 서촉이 험준한 지형으로 '방어'에는 유리했지만, 교류나 교역에 있어서 매우 불리한 '지리 조건'을 갖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보니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결과를 낳았고, '형주'처럼 뛰어난 인재가 많이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형주라고 '중원'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제갈량이나 방통, 서서 같은 인물이 형주에 몰려 있었던 까닭은 하북지역에 '서주대학살', '관도대전' 등 전쟁같은 나날이 연이어 벌어져서 수많은 인재들이 난리통에서 벗어나 비교적 평안한 형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조가 최종 승자가 되어 '중원 일대'가 평온해지니 형주조차 인재가 모여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유비는 서촉을 차지했지만, '방통의 죽음'으로 인재 부족을 느꼈고, 유장의 신하들 가운데 법정, 맹달 등 쓸만한 인재를 몇몇 챙기고 나니 더는 인재가 모여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사망하고, 복수를 다짐한 장비와 유비도 뒤를 이어 사라지고, 늙은 장수들이었던 황충과 엄안마저 차례차례 사망하고, 제갈량조차 '출사표'를 던지고 1차 북벌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마속의 결정적 실수로 인해 가정을 배앗기고 북벌에 실패하고 만다. 결국 다시 힘을 모아 북벌을 도모하지만, 조운과 마초마저 하나둘 운명을 달리하니, 촉한에는 '구인난'에 시달리다 명장을 다 잃고 끝내 '강유'만 남아 싸우다 멸망하고 만 셈이다. 만약 방통이 죽지 않고 '입촉'에 성공했다면, 유비의 대성공 소식을 듣고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방통의 죽음 이후에 제갈량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다 '과로사'를 하고 말았고, 유비마저 죽고 나니 아무리 위기 상황에 처해도 좀처럼 '배신자'가 없이 탄탄하던 유비진영이었는데, 곳곳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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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6 - 적벽대전, 전략 대 계략 이희재 삼국지 6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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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6>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II / 휴머니스트 5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여섯 번째 리뷰는 적벽대전의 승리와 맞바꾼 주유의 운명을 담은 <이희재 삼국지 6>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은 '제갈량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 전투는 '조조군 vs 손권군'이 거의 다한다. 그런데도 적벽대전이 조조의 대참패로 끝나고 난 뒤에 기억에 남는 것은 딱 하나 뿐이다. '제갈량의 동남풍'이다. 사실상 조조의 100만 대군을 손권의 10만 군사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전략은 '화공'인 것이 맞지만, 그 화공으로 조조군을 궤멸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동남풍'이었다는 걸 너무나도 강조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손권군을 이끄는 대도독 주유는 입만 열면 "제갈량을 죽여야 한다"고 되뇌인다. 같은 편인데도 그런 까닭은 너무나도 똑똑하고, 기상이변(?)까지 마음대로 만들 재주를 가진 자가 '내 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너무나도 치졸하고 유치찬란하다. 어린아이의 투정 같지 않느냔 말이다. 천하의 주유를 이런 식으로 묘사한 까닭은 앞서 장비와 마찬가지로 '촉한정통론' 탓이 크다. 오직 유비를 정통으로 꿰어 맞추려다보니 상대적으로 손권측의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깍아내린 것이다. 그럼 좀 더 주유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보자.

<이희재 삼국지 6> 관점 포인트 :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의 갭은 1000년이 훌쩍 넘는다. 후한 말의 역사를 진나라의 진수가 저술하고, 송나라의 배송지가 주석을 달고, 명나라 초기에 나관중이 소설로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관중이 참고한 것은 단순히 정사 <삼국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소설 속의 인물은 '캐릭터'가 생생해야 했기 때문에 선악의 구도를 극명하게 구성해야 했고, 오랑캐에게 오랫동안 핍박을 받은 '한족의 설움'을 달래고 '한족의 위대함'을 재정립하기 위해 '한족의 영웅'을 되살려야 했고, 그렇게 영웅으로 되살아난 인물이 바로 '한고조 유방'이었다. 그렇게 유방을 꼭 빼닮은 '유비'를 정통으로 삼고 영웅으로 만들 필요가 생기니 자연스레 '조조'는 악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조조도 '한족'이며 역사속에선 '진짜 승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소설속에서도 조조가 기틀을 마련한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위상을 드러낸다. 하지만 조씨 황제가 무너뜨린 것은 '촉한'뿐이었고, '동오'에는 여전히 손씨 황제가 건재했다. 결국 동오를 멸망시킨 것은 사마씨가 세운 '진나라'였다. 그만큼 동오도 강력한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었고, 솔직히 촉한보다는 훨씬 강했다. 그런데 유비를 정통으로 세운 '촉한정통론'을 강조하려다보니 '악인 조조' 일당이 천하통일을 빙자해서 온갖 역적질을 다해야 했고, '무능 손권' 일당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도 없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조조 vs 손권의 대결은 팽팽하게 묘사된다. 그게 '역사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촉한과 싸울 때만 이상하리만치 '너프(성능 하향)'를 당하게 된다. 이게 소설 <삼국지>가 감추고 있는 진실이자, '촉한정통론의 실체'다.

주유는 '정사'의 기록에도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야사'에는 "하늘은 주유를 낳고 어찌하여 또 공명을 낳았는가"라는 한탄을 남기고 35세의 젋은 나이에 비명횡사했다고 전해진다. 주유의 집안은 원술의 휘하에서 직책을 얻어 지냈는데, 손견이 원술 밑에서 활약을 하자 손견의 아들 손책과 주유가 '같은 나이'라 두 집안이 뜻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손견이 죽고 손책이 원술 밑에서 개고생을 하다 '전국옥새'를 담보로 강동땅을 휘젓고 다닐 때 손책군에 합류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손책이 '소패왕'으로 불리며 강하지역 여강땅을 점령할 때에 주유도 함께 했는데, 이때 대교, 소교와 인연을 맺어 함께 혼인을 하며 '주랑'이라 불렸다고 한다. 손책이 일찍 죽고 손권이 새로운 주군이 되자 주유는 충성을 맹세하는데, 손권은 그런 주유를 형님으로 깎듯이 모셨다고 한다. 그 뒤에 '적벽대전'이 발발하자 주유는 대도독에 임명되어 유비군과 동맹을 맺고 조조의 100만 대군과 맞짱을 뜨게 된다.

사실 적벽대전에서 유비군의 활약은 거의 없다. 실제 전투도 조조군과 손권군이 도맡아서 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사에 유비의 군사도 주유와 힘을 합쳐 조조군을 무찌르는데 한 몫 했다고 적혀 있지만, 뚜렷한 전공은 없고, 다만 주유가 3만 군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유비가 "너무 적다"며 핀잔을 주자 주유는 "잘 보기나 하라"며 조조의 수군과 맞서 싸워 크게 승리하는 대목이 전할 뿐이다. 결국 유비손권연합군은 그냥 '손권군'이라고 불러도 틀릴 것이 없을 정도로 유비군의 형세가 미약할 뿐이다. 더구나 결정타를 먹인 '화공 작전'도 황개가 짠 것이며, 때마침 '동남풍'이 휘몰아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다고 전하지만, 실상 전투에서 조조군이 패배한 결정타는 '전염병(풍토병)'이 돌아 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사 기록에도 '조조군 진영에 전염병이 돌았다'라고 분명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자, 이렇게 보면 유비군은 전염병과 화공에 크게 일격을 당하고 패퇴하는 조조군의 뒤를 쫓은 것이 전부다. 제갈량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시피 할 정도다. 그런데도 소설 <삼국지>는 노숙의 초청을 받아 제갈량이 '조조의 100만 대군'에 쫄아서 항복을 하려는 손권과 오나라 신하들에게 부끄럼을 주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을 지경으로 '쪽팔리게' 만들고, 손권조차 미적지근하게 전쟁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제갈량의 '따끔한 훈계' 한 방으로 오나라는 조조와 맞서 싸우게 만들었다고 서술했다. 여기서 제갈량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수많은 닭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 화려하게 돋보이는 '고고한 두루미'였다. 제갈량의 트레이드 마크가 '순백의 학창의'였던 것이 역사적 고증이었을까? 아니다. 소설 <삼국지>가 창조해낸 '캐릭터'가 십중팔구 틀림 없을 것이다. 더구나 '10만 개의 화살'을 하루아침에 만드는 것이나 '주유의 속사정'을 일일이 간파하고 꿰뚫어보는 대목들, 그리고 대망의 하일라이트는 '동남풍'을 불게 만드는 명장면 등등 모두 소설 속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갈량이 아무 재주도 없는 인물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가 쓴 '출사표'가 제갈량의 시작이자 끝일 정도로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인치고 '출사표'를 읽고, 그의 우국충정을 의심하지 않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섯 차례의 원정은 모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함이었다. 그런데도 제갈량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적벽대전'이라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나가는 글 : 주유가 미치고 팔짝 뛸 내용은 적벽대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난 뒤에 벌어진 '남군(강릉) 공방전'이다. 여기서 주유는 '형주땅'을 하나도 얻지 못하고, 모조리 유비에게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주유는 유비와 함께 조조군의 잔당(조인)을 물리치고 형주땅을 사이좋게(?) 노나 먹는다. 근데 유비측이 손권에게 부탁을 해서 '4개의 군'을 마저 빌리고 그대로 눌러 앉아버렸기 때문이다. 되돌려줄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이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유비가 형주 빌리듯 하다'라는 말이다. 돌려 줄 듯 하지만 끝내 돌려 받지 못할 때 쓰는 말이지만, 애초에 '갚을 생각도 하지 않는 못된 놈'에게 더 많이 쓰이는 말이다. 유비가 딱 그랬다. 이런 괘씸한(?) 유비를 혼쭐 내려 주유는 군사까지 동원하기도 하고, 동오로 꼬여와서 달아나지 못하게 만들려 획책까지 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 주유가 연이은 실수를 한 것 가운데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휘하에 머물던 '방통'을 유비에게 내어준 것이다. 이는 유비에게 서촉땅을 갖게 해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만 늘어놓지만, 이보다 앞서서 주유의 '천하이분지계'가 있었다. 주유만의 독창적인 '청사진'은 아니었고, 노숙도 이와 같은 제안을 손권에게 내놓고, 손권이 승낙한 바 있다. 암튼 주유도 '형주땅'을 발판 삼아 조조가 차지한 '장강 이북'은 내어주고 '장강 이남'과 더불어서 천혜의 자연방어벽과 풍족한 곡창지대를 품고 있는 '서촉땅'을 복속하여 천하를 조조와 둘로 나눠 갖고 용쟁호투의 대결을 벌이자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래서 주유는 '형주 공방전'을 고집하며 유비를 압박했건만 끝내 목표달성을 하지 못하고 요절하고 만 것이다. 이걸 달성하지 못한 이유도 '방통'을 품지 못한 주유의 고집불통이 단단히 한 몫 한 셈이고 말이다. 방통을 끝내 내친 까닭도 '못생겼다'는 이유 뿐이었다. 물론 방통도 오나라 땅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터라 내심 유비에게 가려고 작정한 탓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래저래 아쉬운 것은 주유 뿐이다. 하지만 주유가 말했다는 "하늘은 주유를 낳고 어찌하여 또 공명을 낳았는가"라는 말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유가 감히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주유와 공명은 '지혜 대결'을 나눌 만한 일면식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형주 공방전'에서 '책사 대결'을 벌이긴 했지만, 겨우 한 번 진 것 때문에 이렇게 통탄스런 말을 늘어놓을 까닭이 있었을까? 이런 말을 늘어놓을 정도면 평생을 두고 경쟁을 한 '라이벌' 사이에서만 어울리는 말이고,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분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패배로 이런 말을 할 징도면 대단히 억울한 상황이었어야 할테고 말이다. 이래저래 주유는 대단한 실력은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주유가 정말 실력이 없었을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주랑이 젊었을 때 보여준 활약이 너무 크다. 35세에 사망했기 때문에 평생을 젊은이로 살았지만, 적어도 '적벽대전'까지는 주유는 대활약을 한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인 주유의 활약상은 좀 치졸해 보인다. '천하이분지계'라는 거창한 국가비젼까지 보여준 것에 비하면 실제로 벌인 작전이 큰 그릇에 걸맞지 않은 '속임수'로 점철되었고,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해서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것 같은 쓸쓸한 뒤안길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주유는 운발을 초년에 다 썼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희재 삼국지> 후반은 '책사편'으로 리뷰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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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5 - 세 번 찾아 공명을 얻다 이희재 삼국지 5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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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5 : 세 번 찾아 공명을 얻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I / 휴머니스트 5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다섯 번째 리뷰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기만 하다 드디어 날개를 달고 훨훨 날게 된 유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희재 삼국지 5>다. 조조와 원소의 대격돌, 관도대전이 한창일 때 유비는 흩어졌던 관우, 장비와 해후한 뒤에 '여남'을 중심으로 주변 세력을 규합하게 된다. 조자룡을 비롯해서 주창, 관평, 그리고 유벽 등이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의 뒤통수(허도)를 공격한다. 하지만 조조는 이마저도 단단히 대비를 해놓았고, 명장 조인의 공격에 유벽은 죽고, 유비는 겨우 살아남아 다시 도망길에 오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유표의 영지인 '형주'다. 과연 형주에서 유비는 어떤 일과 조우하게 될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5> 관점 포인트 : 소설의 주인공은 '유비'지만, 역사의 주인공은 '조조'다. 그런 까닭에 소설 <삼국지>의 줄거리는 '조조의 관점'에서 큰 줄기가 흐르고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유비가 형주에 막 도착했을 때에는 '관도대전'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승부도 어느 쪽으로 판가름이 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누가 승자가 되든, 하북을 다 먹은 승자의 다음 목표는 손권이 다스리는 동오다. 그런데 하북에서 강동까지 곧바로 내려오기에는 버겁다. 더구나 100만 대군을 이끌고 내려갈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육로'보다 수월한 '수로'를 택하는 것이 정석이다. 당시에는 황하와 장강을 잇는 '대운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는 전쟁을 마치고 정비하는 시간 동안에 '형주 공략'에 나섰던 것이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조조의 정비 시간'에 형주에 머물고 있던 유비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비는 가는 곳마다 '원래의 주인'을 파멸시키거나 '한 주인'을 오래 섬긴 적도 없었기에 유표의 아내 채륵과 처남 채모는 유비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반대가 심했고, 심지어 여차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내면서 실제로 죽이려는 모의 또한 수차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심 받고 있는 처지에서 유비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저 허송세월 놀고 먹는 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비육지탄'이 아니겠는가?

그러던 유비에게 '수경선생'이라 불리는 사마휘와 우연히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수경선생에게서 유비에겐 든든한 팔다리가 되어줄 인재는 많지만, '머리'가 되어줄 책사가 부족하다며 '복룡''봉추' 가운데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가질 수 있다는 조언을 듣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조조와 여러 번 싸우면서 느끼는 점이었지만 관우, 장비 같은 '만인지적'의 장수를 두고도 전략에서 밀리고 계략에 빠져서 이렇다할 성과도 얻지 못하고 패배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유비는 그 날 이후로 복룡과 봉추를 만나는 기대를 품고 부푼 꿈을 꾸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인연이 바로 '서서'다. 비록 그 인연은 짧았지만 유비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조조에겐 곽가와 순욱, 원소에겐 전풍과 저수, 손권에겐 주유와 노숙 등의 책사가 있어 일찍부터 세력을 확장하고 전략과 내정을 두루 살피는 인재를 활용해서 단단히 득을 보았다. 심지어 동탁에겐 이유, 여포에겐 진궁이 있어 화려한 전공을 거두고 일시적이나마 '든든한 뒷배'가 되어 동탁과 여포가 화려한 비상을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런데 유비에겐 이제서야 '서서'라는 날개를 얻고 활기차게 날아오르려 했다. 유비의 기분이 얼마나 째졌을까? 허나 조조의 책사 정욱 때문에 서서는 사기를 당하고 유비의 품을 떠나 조조의 새장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유비의 상심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그 유명한 '삼고초려' 고사가 등장한다. 정사 <삼국지>에는 고작 딱 한 줄,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갔다'는 기록이 전부이지만, 나관중은 딱 이 한 문장을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고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유비는 제갈량에게서 '천하삼분지계'라는 지혜를 얻게 된다. 조조가 북쪽을, 손권이 남쪽을, 그리고 유비가 서쪽을 차지하고 '정족지세'를 유지하는 것이 현재 유비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유비는 부풀어오르는 야심을 시작도 하지 못하고 눈물부터 쏟아낸다. 제갈량의 지혜에서 나온 계책이, 유비에게는 형주의 '유표'와 익주의 '유장'이라는 황실사람으로부터 땅을 빼앗으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런 유비의 눈물에도 제갈량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천문지리를 살펴보니 유표의 목숨은 그리 길지 않고, 유장은 백성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 유비가 굳이 빼앗지 않아도 그 땅이 유비에게 저절로 굴러들어올 것이라며 안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삼고초려' 직후에 유표의 건강 악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유표는 유비에게 '형주'를 맡아달라 부탁하지만 유비는 감히 받을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한다. 유표에겐 두 아들이 있고, 유표의 유지는 당연히 두 아들 가운데 한 명이 이어받아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러자 유표는 두 아들 가운데 누굴 '후계자'로 삼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이 역시 장남 유기여야 한다고 단칼에 답한다. 허나 이 얘기를 유표의 아내가 들었고, 처남이 채모가 누이가 낳은 아들인 '유종'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유기'를 죽이려 든다. 이에 유기는 유비를 찾고 제갈량에게 지혜를 얻어 '강하'로 몸을 피신하지만, 때마침 조조가 '정비 시간'을 마치고 형주를 집어 삼키기 위해 병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약 유비가 유표의 유지를 이어받아 '형주'를 받아 직접 다스렸다면 어땠을까? 물론 유비 홀로 조조의 100만 대군을 상대할 수는 없었겠지만, 제갈량은 손권에게 동맹을 요구하며 함께 싸워 승리했을 것이다. 제갈량의 머릿속에는 이미 조조군을 상대할 대비책이 다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신야와 번성 등이 있는 '장강 이북'은 조조의 수중에 들어갔겠지만, '장강 이남'에 있는 양양과 강릉, 그리고 강하를 거점으로 '수전'에 약한 조조를 충분히 괴롭히며 조조의 100만 대군을 야금야금 깎아먹으며 조조가 제풀에 지치게 만드는 방법을 써서 승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손권도 주유와 황개 등을 앞세워서 남양과 수춘을 공략하며 조조를 충분히 괴롭히고 더 나아가 서주땅까지 빼앗게 된다면 절대 손해보는 일은 없었기에 유비와 동맹을 맺고 열심히 싸웠을 것이다. 그 뒤에 유비는 세력을 정비하고 서쪽의 익주를 다스리는 유장을 대신하여 파촉과 한중까지 아우르게 된다면 '천하삼분지계'는 완성이 되고, 완벽한 '정족지세'를 이루어 한 황실의 부활과 부흥을 장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비가 '형주'를 마다하는 바람에 일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비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애초에 가진 것이 없었기에 빈털털이 유비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 '도덕적 우월감' 말이다. 유비는 하는 일마다 '인의'를 앞세웠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옹고집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런 유비의 장점은 백성들에게 잘 먹혔다. 그래서 유비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살기 좋은 세상이 왔다며 좋아했고, 유비를 '성군'으로 높여 부르길 그치질 않았다. 그래서 조조가 유비가 있는 '신야'로 쳐들어왔을 때 신야의 백성들은 조조가 아닌 유비를 따르기로 작정하고, 조조군의 칼날을 피해 신야를 버리고 번성으로 집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조조가 도겸에게 복수한다며 '서주대학살'을 벌인 전례가 있었기에 더 확신에 찬 백성들의 행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번성에서 잠시 목숨을 부지한 백성들은 이번에 조조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또다시 유비를 따라 양양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대로라면 유비는 조조의 공세를 피할 길이 없고, 유비의 적은 병력으로는 따르는 백성을 모두 살릴 방법도 없다. 그래서 제갈량도 여러 차례 '따르는 백성'을 내버리고 속히 양양으로 가서 '유종'으로부터 양양을 빼앗아 조조의 대군을 상대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런 와중에도 유비는 백성을 버리지 않았고, 유종에게서 양양을 빼앗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다 했다. 왜냐면 이것이 유비에게 유일한 장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묘하게도 먹히는 방법이었다. 단, 목숨이 붙어있으면 말이다.

나가는 글 : 제갈량은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주군으로 모신 유비에게 '천하'를 안겨드리겠다는데도, 유비는 이 방법도 싫다, 저 방법도 싫다며 '퇴짜'만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제갈량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지금까지 유비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만큼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도덕적 우월감'이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도 유비를 따르겠다고 결심한 대목이 바로 유비가 내세운 진심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그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워서 천하를 다스리도록 작전을 변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조의 파상 공격에 겨우 몸만 살아남은 유비 세력은 '조조의 다음 목표'인 동오를 구하기 위해서 '동맹 결성'에 올인하게 된다. 제갈량은 '동맹'이란 이름을 빌어서 조조와 손권을 서로 싸우게 만들고, 그 틈을 타서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고, 이를 밑천으로 파촉땅까지 접수한 뒤에 천하대권을 차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그 첫걸음은 바로 '적벽대전'이다.

일명 조조와 손권의 힘을 서로 빼고 빼앗기게 만들고 유비는 '어부지리'로 형주도 먹고, 익주도 먹겠다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이 적벽대전도 정사 <삼국지>에는 간략하게 적혀 있다. 조조의 대군이 '풍토병'에 시달리다 손권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후퇴했다고 말이다. 그 어디에도 '동남풍'이 불고 '화공'으로 수많은 배들이 장강의 물속으로 가라앉고 수십 만의 병사들이 물고기 밥이 되었다는 기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모두 나관중의 수려한 묘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팩트가 아니라고 '적벽대전'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은 제갈량과 주유의 지략 싸움에 흥미를 느끼며 '전쟁'이라는 참극 속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흥미진진한 대결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두고 '중국인들의 허언증'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비판을 넘어 비난거리를 제공하는 면도 없지 않지만,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서 이 대목이 재미없고, 내용과 결말이 뻔해서 진부하다는 독자는 찾기 힘들다. 심지어 소설 <삼국지>를 읽고 난 뒤에 정사 <삼국지>를 읽으면 머릿속에서 다채롭고 수려한 서사가 펼쳐지기 때문에 그 힘든 '완독'을 해내는 원동력을 얻기도 한다. 이게 소설이 가진 진정한 힘이기도 하다. 허구로 쓰여진 글에 불과하지만 '상상력'에 날개를 달게 해주고, '지혜'를 외우는 것이 아닌 깨달아서 써먹을 수 있게 해주는 등 온갖 '마법'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21세기에도 '고전소설'을 읽고, 감동을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다음에 계속.

#리뷰 #에세이 #이희재삼국지 #휴머니스트 #삼고초려 #적벽대전 #제갈량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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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4 - 관도에서 갈린 운명 이희재 삼국지 4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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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4 : 관도에서 갈린 운명>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 / 휴머니스트 5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네 번째 리뷰는 조조와 원소가 운명의 대결을 벌이는 가운데 유비 삼형제는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하며 떠돌이 생활을 면치 못하는 <이희재 삼국지 4>다. 진수의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비교하며 읽으며 '팩트 체크'를 하는 것은 이제 한물 갔다. 소설 <삼국지>를 읽으며 역사 공부가 가능한지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AI 인공지능으로 언제든 '검색'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는데, 누가 그 방대한 분량을 일일이 따지며 읽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이젠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별개의 감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소설을 읽고 '역사'에 관심을 높이고, 역사를 읽으며 '소설'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삼국지>를 헤아릴 수 없이 읽은 나이가 되자 둘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더 무의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4> 관점 포인트 : 조조의 품에서 벗어난 간신히 벗어난 유비는 서주에서 세력을 정비하며 '원술의 북상'을 기다렸다 끝장을 낸다. 그렇게 원술은 한껏 욕심을 부려 '황제'가 되었지만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렇게 여포에 이어 또 한 명의 영웅이 사그라들며 서서히 '관도대전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서주에서 모처럼 '재기'를 도모하던 유비가 조조군에 괴멸 당하며 삼형제가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었다. 조조 입장에서 유비가 원소와 손을 잡고 양방향에서 협공을 당하는 것이 가장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조는 여포 토벌 당시에 서주의 백성들이 유비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렇기에 유비가 서주에 뿌리를 탄탄하게 내리고 세력을 강하게 키우기 전에 짓밟아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그런 까닭에 유비가 재정비를 하기도 전에 조조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유비를 공략하기 바빴다. 조조로서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려 원정을 나섰을 때 '본진'에 해당하는 허도를 원소가 찌르기라도 하면 조조는 꼼짝없이 대군을 회군해서 허도를 지키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비도 이를 간파하고 원소에게 동맹을 제안하고, 조조가 서주 공략에 나서면 허도를 공격해주십사 요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소는 그릇이 작은 인물이었다. 천기를 읽어내는 재주가 없어서 고작 '귀염둥이 셋째 원상이 고뿔에 걸렸다'는 이유를 대며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만다. 유비가 조조의 대군을 서주에 묶어둔 사이에 원소가 70만 대군을 이끌고 허도를 공략해서 헌제를 가로챌 수만 있었다면, 천하를 차지한 것은 조조가 아니라 원소였을텐데 말이다. 암튼 원소는 그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고 만다.

덕분에 유비는 죽을 맛이다. 조조는 인재가 많고 유비는 동원할 수 있는 군사 수가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장비는 단 한 번의 기습공격 실패로 '피트 아웃' 당하고, 유비는 원소 진영으로 '피트 인' 했으며, 관우는 유비의 처와 식솔을 데리고 '하비성'에서 옴싹달짝할 수 없는 곤궁한 처지에 몰리고 만다. 여기서 조조는 '인재 욕심'을 부려서 관우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관우는 다시 '유비의 품'으로 가버리고 만다. 소설에서는 이 대목에서 '오관육참장'이니 '단기천리'니 하면서 관우의 명성을 드높이지만 '정사'에는 없는 '허구적 묘사'에 불과하다. 관우가 안량과 문추를 단 칼에 죽였다는 내용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문추를 죽인 기록은 있지만, 안량과 맞대결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관중은 왜 이렇게 관우를 띄워 주었는가? 이유는 딱 하나다.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유비를 낙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비와 의형제를 맺은 관우와 장비의 '분량'을 늘일 수밖에 없었고, 기왕 늘이는 것이라면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띵호와~ 아니겠는가. 그래서 호뢰관에서 화웅과 대결할 때에도 관우는 조조가 권하는 술 한 잔조차 "이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가져오겠다"는 명대사를 남긴 것이다. 이 역시 '정사'에는 없는 기록이다. 애초에 반동탁연합군에 '공손찬'이 참가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그러니 아무런 지위가 없던 유비가 '공손찬 소속의 별군'으로 참가했다는 묘사조차 믿기 힘든 대목이다. 그래서 반동탁연합군이 동탁군과 싸워서 빛나는 전공을 세운 군웅은 '손견'이 유일하다. 그러니 여포를 상대로 유비 삼형제가 나서서 대등하게 싸웠다는 내용조차 '사실'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소설 <삼국지>는 '그 자체'로 즐기면 될 뿐이다. 기왕 유비가 주인공이니 악당 조조가 천하를 차지하고 온갖 패악질을 다할 때, 착한 영웅 유비가 나서서 조조를 혼쭐 내줬다는 내용에 심취해서 읽으면 그 뿐이다. 왜냐면 고전소설 나름의 '주제''교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조와 원소의 운명을 가르는 '관도대전' 와중에도 유비와 관우, 장비, 심지어 조자룡까지 등장하여 이야기를 맛깔나게 진행시키는 것이다. 이런 맛깔난 '진행'이 아니라면 아무리 '관도대전'이라고 할지라도 지나치게 진지하고 지루할 따름이다. 진수의 <삼국지>가 그렇다.

한편, 손책은 장강 일대를 평정하고 '소패왕'이라는 별명답게 엄청난 활약을 한다. 하지만 조조와 원소가 한창 싸우고 있는 '관도대전'의 판세에 캐스팅보트를 선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기에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기는 노련함까지 보여줬지만, 과도한 욕심을 부리다 조조와 척을 지게 되고, 그로 인해 '사소한 원한'을 쌓은 것이 화근이 되어 자객의 습격을 받아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우길'이라는 도사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다가 끝내 자신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동오에는 손견, 손책에 이어 손권이 등장하게 된다.

나가는 글 : 결국 '관도대전'의 승패는 조조의 완승으로 끝맺게 된다. 원소는 70만 대군과 수많은 인재를 거느리고도 10만도 채 되지 않는 조조에게 패배하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후계자를 둘러싼 내홍을 겪으며 '원씨 가문'은 아예 멸족이 되다시피 역사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제 조조는 명실공히 '하북의 패자'가 되어 중원을 독차지하게 된다. 이제 남은 군웅이라고는 동오의 손권과 형주의 유표, 익주의 유장, 한중의 장로, 서량의 마등과 한수 뿐이다. 그리고 아직도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유비가 남았다.

시리즈 4권이 지나도록 유비는 '근거지'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가진 것 없는 유비의 곁에 관우와 장비, 미축, 손건, 간옹, 그리고 새로 합류한 조운, 관평, 주창 등등 점점 세를 불려나간다. 이런 유비의 행보를 보면서 '끈끈한 유대감' 밖에 남지 않은 무리라면서 '조폭 집단' 같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많다. 뭐, 나중 일이긴 하지만 관우와 장비의 죽음 때문에 유비는 '사사로운 정'을 내세워 국가간의 전쟁을 선포하는 군주답지 못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결정적 증거'라면서 '빼박 조폭'이라고 주장한다. 딴에는 그렇다. 한 나라의 수장이 '동생의 죽음'을 이유로 국가대전을 벌이며 온 국민들을 전장터로 내몰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냔 말이다. 이런 유비의 모습을 보고 '의리의 사나이' 정도면 모를까? '착한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도 유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나관중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악당으로 자리매김한 조조에 비해서도 유비의 역량은 한참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비가 세운 촉한은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망하지 않느냔 말이다. 조조, 손권, 유비 중에서도 '유비'가 가장 먼저 죽는다. 가장 일찍 죽는 '주인공'도 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관중이 살던 시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원말명초의 시기 말이다.

한족에게는 치욕스런 시대였을 것이다. 오랑캐라 불리던 '몽골족'에게 나라를 송두리채 빼앗기고 온갖 차별정책으로 유린 당했던 한이 서려있던 시절이었다. 나관중은 이런 시대를 살며 '한족 동포'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줄 필요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 한족 최고의 전성기는 언제이고, 최고의 영웅은 누구였을까? 강력한 제국으로는 당나라 태종을 꼽을 수 있겠지만, 당은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정책을 내세웠다. 물론 '한족' 중심이었기에 최강국이었다는 명분은 세울 수 있었지만, 오랑캐를 혼쭐(?) 내줄 수 있는 영웅으로는 마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족 최고'이자, '한족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한나라 유방'이 적임이었다. 그래서 유비의 외모마저 바꿔 버렸다. 유방이 귀가 컸다는 기록이 있었기에 유비의 귀도 어깨까지 내려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이 정해졌다. 한고조 유방을 꼭 닮은 '유비'로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천하 통일의 주역은 단연 '조조'였기 때문이다. 유비의 촉한은 별다른 역량도 뽐내지 못하고 제풀에 망해버렸다. 이래서는 주인공답지 못하다. 그럼 주인공이 죽고 나라가 멸망한 다음에도 길이길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정통성'이다. 비록 살아생전에 이루지는 못했지만 죽고 망한 뒤에도 오롯이 살아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정통성'을 세워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촉한정통론'이다. 비록 천하 통일한 것은 조조가 세운 '위나라'지만, 1000년 뒤 오랑캐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한족'이 되살려내야 할 나라는 '한족의 뿌리'인 한나라이고, 후한이 멸망한 뒤에는 '촉한'으로 이어지고, 그 뒤를 '송''명'이 이어간다는 정통론을 다시 세운 셈이다.

그런 남은 것은 '촉한정통론'이 옳다는 그럴 듯한 이야기가 마련되어야 했다. 역사사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으니 '소설의 허구성'을 빌어서 바꾸면 된다. 허구적 사실에 기대어 '유비 정통'을 세워려니 자연스레 '조조 역적'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날조(?)한 이야기가 바로 '여백사 사건'이다. 조조를 동탁을 암살하려 했던 의인이자 영웅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살리려고 아버지뻘 되는 사람조차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버리는 냉혈한이자 '간웅'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희생자가 생겼다. 유비를 영웅답게 만들기 위해 관우를 너무 띄워주다보니 상대적으로 '장비'는 술주정뱅이에 사고뭉치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오로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말이다. 아무리 영웅이라도 '빈틈'이 있어야 인간미가 보이는 법인데 '정통성'을 세울 인물에게 빈틈을 보이게 할 수는 없으니, '주변 인물' 가운데 한 명을 모지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게 바로 '장비'였던 것이다. 그러면 장비는 모지리가 되어도 충분(?)할 인물이었는가? 도원결의 당시에 장비는 15살로 중2병이 한창일 나이였단다. 하지만 공부도 착실하게 잘 했고, 무예도 출중했고, 계책도 잘 쓰는 팔방미인이었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술'을 마셨다는 기록 자체가 아예 없었단다. 그러니 소설 속에서 장비가 술을 마시고 실수를 저지른 기록은 전부 뻥이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뛰어나게 성공한 계략은 장비의 본래 실력이고 말이다. 그리고 장비가 한 실수로 묘사된 것들은 대부분 '유비''관우'가 했을 거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유비를 위한, 유비에 의한 '촉한정통론'을 소설 속에서 어떤 의도 썼는지 살펴보면서 읽어나가는 맛도 <삼국지>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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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3 - 천하를 쥐려는 손 이희재 삼국지 3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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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3 : 천하를 쥐려는 손>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IV / 휴머니스트 5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세 번째 리뷰는 고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1컷의 만화로 절묘하게 요약하는 <이희재 삼국지 3>이다. 이희재 화백의 만화는 믿고 보아도 좋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한 컷'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내는 마술사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큰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요약본 <사기>도 읽고, 청소년을 위한 <사기>도 읽었지만 꽉 막혀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용이 이희재 화백의 <사기>를 읽으니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희재 삼국지>를 읽으면 웬만한 소설 <삼국지>를 읽다가 헷갈렸던 대목이 단박에 이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믿어도 좋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3> 관점 포인트 : <삼국지>의 핵심 인물은 어차피 조조, 유비, 손권이다. 이 세 인물이 '위촉오' 세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주역이며, '천하삼분'을 이룩한 진정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삼국지>는 이 세 인물 이외에도 수많은 군웅을 등장시키는 대목부터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것도 10권짜리 분량이라면 절반이 넘는 5~6권까지 말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나관중이 천부적인 이야기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상 주인공은 단연 '조조'이지만, 그의 일대기를 보여주면서도 쓱 앞으로 내민 소설상 주인공은 '유비'를 내세웠다. 그리고 도원결의부터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일사천리로 유비의 고군분투를 하나하나 일일이 열거한다. 독자들은 유비의 성장에만 집중시킨 결과 '다른 영웅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언제 유비가 등장하는지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유비는 이렇다할 '근거지'도 마련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지낸다. 훗날 제갈량을 만나 형주와 익주를 얻기 전까지 말이다. 이 책 <이희재 삼국지 3>의 시작은 헌제가 곽사와 이각에게서 탈출하여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는 대목부터 시작하여 유비가 조조의 품에서 극적으로 탈출해서 다시 서주로 향하는 대목으로 마무리하였다. 여기서도 유비는 도겸에게 서주를 양도 받지만 굴러들어온 여포에게 서주를 내어준다. 조조가 언제 쳐들어올 지 모르니 '여포의 힘'을 빌어서 조조를 막아보겠다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허나 조조의 책사 순욱의 꾀에 빠져 유비는 '황제의 명'을 받아 원술을 치러 간 사이에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고 만다. 그러자 유비는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그렇게 유비를 예주에 묶어놓은 사이에 조조는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먼저 조조는 장수를 토벌한다. 허나 눈치 빠른 가후는 장수에게 항복을 권유했고, 조조는 손쉽게 장수의 세력을 손에 넣은 듯 싶었다. 허나 조조가 승리에 취해서 장수의 형수인 '추씨(죽은 장제의 처)'를 탐하다 전위도 잃고, 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까지 죽임을 당하며 조조는 구사일생으로 목숨만 건져 도망치고 만다. 한편 서주를 차지한 유비를 내쫓은 여포는 그 사이 원술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서주의 유지였던 진규, 진등 부자가 여포의 사신을 자처하여 조조를 찾아온다. 그리고 조조에게 여포를 공격해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조조는 여포와 원술을 모두 토벌할 계책을 세운다.

이때 원술이 스스로 황제를 자처했다. 그리고 여포가 차지하고 있던 서주를 탐낸다. 애초에 여포를 서주에서 몰아내려고 작심한 진등은 여포를 부추겨서 원술과 다투게 만들었고, 조조는 여포를 돕는 척 하면서 원술을 몰아부치게 한다. 이에 원술은 수춘에서 오래 버티지만, 끝내 함락 되었고 원술은 회수를 건너 도망가고 만다. 이에 조조는 원술의 뒤를 쫓아 끝장을 내려 하지만 '군량'이 모자라 추격할 여력을 얻지 못한다. 조조는 늘 '군량'이 부족했다. 왜냐면 언제나 10만 이상의 대군을 이끌고 나아가는 모양새였지만, '곡창지대'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황제를 볼모로 잡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비용을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기의 조조 세력은 막강했지만 사방에 적을 둔 형국이었다. 그렇지만 이는 조조에게 위기가 아니라 훌륭한 인재를 활용해 묘책을 활용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래서 조조는 '한 뼘의 땅'보다 '한 명의 인재'를 더욱 탐냈고, 그렇게 얻은 인재는 반드시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알았다. 이는 조조가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조조가 원술에게 승리를 하고도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장수가 유표와 손을 잡고 조조를 위협했다. 조조는 여포는 서주로 보내고, 유비는 소패로 보내면서, 은근히 유비에게 여포를 견제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 사이 조조는 군사를 돌려 장수와 유표의 연합공격을 막아내며 후퇴하는데 성공한다. 조조가 서둘러 후퇴한 까닭은 허도를 비운 사이에 원소가 공격해온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조는 원소에게 '대장군'이라는 직위를 보내면서, 원소가 공격해야 할 상대는 조조가 아니라 공손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그렇게 북방의 위협을 막은 조조는 다시 서주 공략에 나선다. 이번에야말로 '여포'를 몰아내고 '서주'를 차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가는 글 : 조조는 그야말로 '사방이 적'이다. 더구나 조조가 차지한 '연주' 지역은 원소가 차지한 '기주'나 원술이 차지한 '수춘'에 비하면 곡창지대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래서 조조는 대군을 이끌면서도 늘 '병참 문제'에 시달렸다. 그래서 조조는 '둔전제'를 적극 활용하면서 군사들이 접경지역에 머물면서 '농사일'도 하면서 '국방'도 지키는 전략을 잘 써먹었다. 한마디로 '현지조달'로 병참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조조는 승세를 유지하면서도 '병참 문제'로 곤혹을 치루고 때로는 병사들이 굶주려서 다 이기고도 패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조조의 이야기 대목에 '군령'을 엄히 다루면서 굶주리는 병사를 기발한 방법으로 독려하고, 자치 패배할 위기를 역전시켜 승리를 거두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 책에도 원술토벌대가 수춘성을 공략할 때 시일이 지체되자 군량이 떨어졌고, 조조는 '군량담당관'에게 식량배급하는 됫박을 작은 것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가 굶주린 병사들이 불만을 터뜨리자 '군량담당관'이 작은 됫박으로 장난을 친 것이라며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굶주린 병사들에게 3일 안에 수춘성을 함락시키라는 명을 내리고, 조조가 성벽을 메우고 오를 푸대자루를 손수 나르는 모습을 보이며 독려하자 병사들이 감격하며 사기를 진작시켰고 결국 수춘성을 함락했다는 일화를 전한다. 또한 행군하다 목이 마른 병사들에게 '저 산 너머에 석류가 있다'는 거짓말로 위기를 극복하는 등 조조의 지혜가 돋보이는 일화가 참 많다.

그렇기에 <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유비가 아닌 조조일 수밖에 없다. 그럼 조조를 제하면 유비가 주인공일까?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다. 강동의 호랑이로 불리던 '손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동탁연합이 실패한 직후 유표의 부하였던 황조에게 기습 공격을 당해 일찍 죽었지만, 손견의 아들인 '손책'이 뒤를 이으며 장강 동쪽의 '강동 지역'을 석권하며 오나라를 세우는 기틀을 마련한다. 이렇게 손견과 손책의 활약이 유비보다 돋보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방이 적인 조조보다는 수월한 편이었으나 손책 또한 '기반'이 빈약한 편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원술의 뒤치닥거리만 하는 처지였다. 그러다 아버지 손견이 입수했던 '전국옥새'를 원술에게 빌려주고(?) 지원 받은 소수의 군사와 아버지를 따르던 장수(황개, 정보 등)가 손책의 뒤를 따르고, 손책과 의형제였던 주유까지 합류하면서 손책은 진정한 강자로 자리잡게 되었고, 강동땅을 차례차례 점령하며 '소패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이렇게 조조와 손책이 나름의 근거지와 기반을 마련하는 동안 유비는 어떤 처지였을까? 서주에 웅크리고 있는 여포 토벌에 성공한 뒤에 조조의 소개로 '헌제 알현'을 한 뒤, '유황숙'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한 황실의 부흥을 믿고 의지했던 조조가 충직한 신하가 아니라 황제의 자리를 넘보는 '역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헌제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세력으로 '유비'를 꼽은 것이다. 그리고 '조조 암살'을 적은 혈서를 받고 동승을 주축으로 여러 충신들이 돌린 연판장에 유비도 이름을 적었지만, 유비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날개 꺾인 새'였고, 조조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처량한 신세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유비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하루는 조조가 유비를 초대해서 술자리를 마련했는데, 대화를 나누던 중 조조는 "천하의 영웅은 조조와 유비, 둘 뿐이다"라는 말을 던졌고, 때마침 천둥번개가 치자 유비는 그 소리에 놀라 들고 있던 술잔을 쏟고 엉엉 눈물을 쏟는 연기를 한다. 때마침 만총이 원소와 공손찬이 싸워 원소가 승리하고 공손찬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 소식을 접한 원술이 전국옥새를 원소에게 바치겠다고 북상하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이 말을 들은 유비는 또다시 엉엉 울며 눈물을 쏟으며 "공손찬 형님의 복수도 하고, 원술이 원소와 합류하지 못하도록 자신이 막겠다며 군사를 빌려 달라"고 조조에게 청한다. 조조는 이런 울보가 자신과 천하를 놓고 겨룰 영웅일리 없다며 '방심'을 하고, 유비에게 군사를 내어주고 원술 토벌을 명한다.

이렇게 조조의 감시에서 벗어난 유비는 곧장 관우와 장비, 그리고 처와 식솔들을 모두 데리고 서주로 달아나버린다. 이제 유비는 다시 영웅의 기개를 활짝 펴고 제대로 보여줄 것인가? 다음에 계속.

#리뷰 #에세이 #이희재삼국지 #휴머니스트 #조조 #손책 #유비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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