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만과 편견 ㅣ 세계문학의 숲 16
제인 오스틴 지음, 고정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평점 :
[My Review MDCCCLXXI / 시공사 17번째 리뷰]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단연 '셰익스피어'일테지만, 2위로 꼽은 작가가 '제인 오스틴'이라는 사실은 의외로 여겨질 법도 하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바라본 <오만과 편견>은 '오만한 남자와 편견 가득한 여자'가 사랑을 하고 결혼에 골인한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뻔한 줄거리를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너무 뻔해서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 책의 어디가 영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된 이유인지 파헤쳐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18세기 영국사회는 여성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 없이 딸만 넷을 둔 '베넷 가문의 상속권'은 엉뚱하게도 다른 남성인 사촌 콜린스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베넷 씨의 네 딸 가운데 한 명이 '사촌 콜린스'와 결혼을 한다면 아버지(베넷)의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되고,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도 콜린스의 아내로서 정당하게 '재산권'을 보호하고, 다른 세 딸과 어머니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이는 영국 이외의 다른 이웃나라에서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기에 이 책 <오만과 편견>에서 등장하는 영국사회의 여성들은 '결혼'이 유일한 생계수단인 셈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린 나이(십대)에 이미 결혼 적령기를 맞이하고, 이십대 초반이라도 '노처녀' 취급을 당하는 <오만과 편견>의 줄거리가 상당히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과 달리 '여성의 경제활동'이 변변찮던 18세기 영국에서는 여성이 무도회장에 나가 남성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 거의 유일한 '경제활동'이었다고 봐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 <오만과 편견>의 깊은 주제를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결혼에 목메는 여성들의 '로맨스(칙릿)소설'로 오해하게 될 것이다.
그럼 <오만과 편견>의 진짜 주제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가장 이상적인 결혼이다. 당시 결혼은 오직 남성에게만 자유로운 '선택권'이 주어졌고, 여성은 남성의 프로포즈를 받고 난 뒤에야 비로소 '수락/거절'이란 단 한 번의 찬스(기회)만 주어졌을 뿐이다. 이때 여성이 꼽은 이상적인 남성은 '부와 지위'를 얼마나 소유했느냐 뿐이었다. 왜냐면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철저히 억제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 많은 남성'과 결혼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도 가정교사를 하거나, 삯바느질을 하는 등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액수가 여성이 '홀로서기'하기에는 너무도 적었던 탓에 여성이 '사치'라도 부릴라치면 '아버지의 도움', '남편의 도움', 그리고 '아들의 도움'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기다 애초에 '상속'이 불가하니 여성은 부모가 살아있을 때 넘겨준 재산으로만 넉넉한 부를 쌓을 수 있었고, 그나마 여성의 부는 미혼 뿐만 아니라 기혼 남성의 '먹잇감'으로 노려지기 마련이라 아버지나 전 남편이 넘겨준 '돈 많은 과부'는 당시 남성들의 신붓감 1순위였다.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여성은 사회활동의 '주체'로 당당해질 수 없었다. 경제적 자립이 힘들었던 여성들은 오직 남성들의 부에 따라 팔자(?)가 바뀌는 '뒤웅박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교모임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아야만 했고, 남성들의 취향에 따라 '본성'을 감추고 살아야만 했다. 이런 사회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에서 당당한 여성인 '엘리자베스'를 등장시켰던 것이다. 물론 엘리자베스도 어쩔 수 없이 18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단 한가지 '남성의 선택'에 몸둘 바를 두지 못하는 평범한 여성이 아닌 당당히 '스스로의 선택'을 강하게 어필하며 남성들로 하여금 '당당한 여성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만드는 모습을 펼쳐 보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만과 편견>을 통해서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당찬 모습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는 너무도 당연한 가치라서 그리 놀라울 것도 없지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7~80년대 대한민국 여성들이 어릴 적에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이 <오만과 편견>이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가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만과 편견>을 단순한 '로맨스소설'로 읽으면 아쉽다. 베넷 가문의 딸들, 제인, 엘리자베스, 막내 리디아,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샬럿까지 이들이 남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가장 이상적인 커플이 누구인지도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먼저 제인과 빙리는 가장 평범한 커플이다. 돈 많고 착한 남편과 가정적이고 순종적인 착한 아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커플은 굉장히 안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교과서적인 커플'은 실제로 맺어지기 굉장히 힘든 타입이기도 하다. 선남선녀에 착한 남녀는 서로에게 연애조차 '소극적'인 까닭에 주변의 격렬한(?) 도움이 없으면 만남조차 힘든 커플이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만나기만 한다면 더할나위 없는 커플이긴 한데 말이다. 그래서 착한 남자는 불같은 여자에게 휘둘리다 홀랑 벗겨 먹히기 딱 좋고, 착한 여자는 바람둥이 남자에게 상처만 받고 청순을 가장한 청승만 떨다가 좋은 시절을 망쳐버리고 마는 안타까운 사연도 꽤나 많다.
반면에 리디아와 위컴은 '사랑의 도피'까지 불사하는 불같은 사랑을 한다. 물론 사랑이 뜨겁다고해서 늘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더구나 리디아는 철부지에 위컴은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사기꾼이다. 이런 사기꾼과 철부지 커플은 서로 죽이 잘 맞으면 '부부 사기단'으로 꿍짝을 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패턴'을 보여주며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런데도 둘의 사랑은 서로 불타올라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 먹으면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해결되면 다시 달라붙어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분노유발 커플'이다. 될 수 있으면 멀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음은 엘리자베스의 절친이었던 샬럿과 콜린스 커플이다. 애초에 콜린스는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했지만 거절 당했고, 이후로 키티와 리디아까지 찝쩍거리다가 경제적으로 궁핍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샬럿과 결혼을 하고 만다. 이를 두고 엘리자베스는 친구인 샬럿을 안쓰럽게 여기지만, 주위의 평판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엘리자베스가 넝쿨째 굴러들어온 행운을 어리석게도 뻥 차버렸다면서 위로를 해줄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비록 콜린스가 못 생기고 무례하며, 무엇보다도 여성을 '상식 이하'로 낮게 폄하하면서 오직 '순종적인 아내'로만 있기를 바라는 덜 떨어진 구시대적 남편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못난 남성인데도 콜린스는 '가진 재산'이 많았다. 더구나 직업은 '목사'이고 베넷 씨가 죽고 나면 엘리자베스의 집과 재산마저 모두 콜린스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여러 모로 콜린스와 엘리자베스가 결혼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결혼(?)이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엘리자베스는 무례한 콜린스의 청혼을 거절했고, 그 틈을 타서 친구인 샬럿은 콜린스의 아내 자리(?)를 낚아챘던 것이다. 비록 돈에 팔려가듯 성급하게 결정한 결혼이었지만 주위에서는 오히려 샬럿의 결혼을 부러워한다.
그렇다면 샬럿의 결혼이 가장 이상적인 결혼이었을까? 작가인 제인 오스틴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콜린스의 재산'보다 훨씬 더 많고, 젊은 나이에 잘 생겼으며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품위까지 갖춘 다씨라는 남성과 엘리자베스가 결혼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엘리자베스가 다씨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까닭이 자신의 의견을 똑부러지게 말하다 못해 '편견' 가득한 고집불통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영국사회에 어디 엘리자베스 같은 여성이 결혼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남자의 청혼을 제 맘에 들지 않는다고 '거절'까지 했는데 말이다. 이런 여성은 평생 혼자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제인 오스틴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실제 성격이 엘리자베스와 같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엘리자베스와 다씨의 커플을 가장 이상적인 결혼으로 본을 삼았다. 무릇 멋진 남성은 멋진 여성을 알아보는 법이라듯이 말이다. 그래서 '다 갖춘' 다씨는 '완벽한' 엘리자베스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에 푹 빠져서 헤어나질 못하는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짰다.
자, 이렇게 <오만과 편견>을 마무리하면 좋을까? 아니다. 오늘날에는 '결혼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결혼을 하기까지 '두 사람 사이의 사랑'도 중요하고, '집안끼리의 화목'도 중요하지만, 요즘 '비혼'이 너무 확산된 까닭이 바로 젊은 세대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 문제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사회에는 여성이 스스로 '경제독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는 젊은 세대가 스스로 '경제독립'을 할 수 없기에 결혼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저출생 문제'와 '인구 감소 문제'로 이어져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오히려 <오만과 편견>에서 말하고 있는 '여성 인권'을 올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는데, '경제 문제'가 도리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결혼이야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장식한 이 책을 읽을 '가치'를 좀처럼 찾기 힘들어진다. 다시 말해, 이 책 <오만과 편견>에서는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경제적인 것들'을 남성들이 알아서 해결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지 않으면, 요즘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 것이다.
오늘날의 '결혼'은 돈 문제는 남자가 해결하고 여성은 '예쁜 미모와 착한 마음씨'만 갖추면 모든 것이 충족되고 해결되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 양쪽 모두가 여유 있게 돈을 버는 상황이 아니면 애초에 결혼을 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 <오만과 편견>을 '오만한 남자'와 '편견(선입견) 가득한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러브 스토리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선남선녀가 결혼을 전제로 한 '경제적인 고민'을 이야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에 '경제적 고민'이 생겼을 때, 어느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또한 그런 일방적인 부담을 '사랑의 척도'로 가늠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값비싼 선물을 주어야만 뜨거워지는 사랑이라면, 그것이 진짜 '사랑'인지 고민해봄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