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톡 2 삼국지톡 2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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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2>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0)

[My Review MMCCXVIII / 문학동네 3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마흔일곱 번째 리뷰는 무적핑크 <삼국지톡 2>다. 솔직히 1권은 별로였다. 무적핑크만의 독특함은 살아있었는데 재미는 그닥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권을 읽으니 <삼국지톡>만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디테일'이었다. 나처럼 웬만큼 <삼국지> 스토리를 줄줄 꿰는 독자라면 '기본 서사'만으로는 감흥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만화'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대부분의 '만화 삼국지'는 기본 서사에 충실하기보다는 '과감한 건너뛰기'로 핵심포인트를 잡고 줄거리를 이어가면서도 오묘한 '함축적 효과'를 선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본 서사'만 보여주는데도 '만화 컷'을 다 잡아먹기 때문에 엄청난 분량 폭발로 '종이책 10권' 분량이 '만화책 60권'으로 불어나는 것은 누워서 떡 먹을 정도로 식은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국지톡>은 그런 함축적 효과를 내세우기보다는 '기존의 서사'에 부족한 디테일을 더욱 꼼꼼하게 채우며 이야기의 '빈틈'을 꽉꽉 메우면서 '개연성'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기존의 <삼국지>를 읽으면서 의아했던 부분이 속시원히 이해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애초에 소설 <삼국지연의>는 빈틈이 너무 많고 억지로 지어낸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앞뒤 맥락이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여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정사 삼국지>로 비교하면서 읽어야 그 빈틈을 메울 수 있고, 이야기의 '개연성'을 살릴 수 있는데, <삼국지톡>은 그럴 부담을 확 줄이고 오직 이 책 <삼국지톡>만 읽어도 '정사'와 '연의'를 한꺼번에 읽는 효과를 맛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이야기'를 읽는 맛이 훨씬 살아났다. 그래서 재미도 있었고 말이다.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삼국지톡 2> 관점 포인트 : 2권의 줄거리는 유비군이 황건적의 잔당을 물리치고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권세를 잡고서 국정을 농단하고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백성의 고혈을 쫍쫍 빨아잡수시던 '십상시'를 처단하기 위한 명분을 쌓던 원소의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삼국지> 좀 읽으신 분들이라면 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대충 알아들으실 것이다. 그렇다고 <삼국지> 초보 독자여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만화책'이니 그냥 스토리를 따라만 가도 충분히 재미를 느끼며,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과 긴장감이 폭발하여서 읽는 재미를 더 할테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 <삼국지톡>의 주인공은 유관장 삼형제로만 잡은 것이 아닌 듯 싶다. 물론 유비, 관우, 장비가 주인공으로 스토트라이트를 잡을 땐 확실히 살려낼 것이지만, 아시다시피 이야기 초반에는 '유관장 삼형제'는 그야말로 흙수저인 탓에 아무 곳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비실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나마 스토리 극초반에는 '반동탁연합'에서 화웅과 여포와의 대결에서 반짝 빛을 보일 뿐이라서 진정한 주인공으로 등장하려면 아직도 먼 셈이다. 제갈량을 만나 '적벽대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형주라는 영지를 얻어야만 비로소 유비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럼 2권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다름 아닌 '원소'다. 그리고 조연은 '조조'이고 말이다. 후한의 수도 낙양의 주인은 '영제'다. 영제는 무능한 임금이었고, 그로 인해 환관의 무리가 권세를 잡고서 '황제의 이름'을 앞세워 자기들만의 이익을 챙기며 나라를 망치고 있었다. 황건적이 등장한 계기도 바로 '무능한 황제(영제)'와 '무도한 환관 무리(십상시)' 때문에 백성들이 살기 힘들어서 차라리 도적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황건적의 난이 얼추 정리가 될즈음, 영제가 흥청망청 놀아나다가 그만 체력이 다해서 죽고 만다. 새로 황제가 될 사람은 영제의 자식인 '유변(소제)'과 '유협(훗날 헌제) 두 아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유협의 어머니 후궁 왕씨는 이미 불귀의 객이 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영제의 어머니였던 '동태후'가 죽은 후궁 왕씨를 대신해서 '유협'을 돌봐왔는데, 영제가 불현듯 훙하고 말자 영제의 아내였던 '하태후의 아들, 유변'이 새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그렇게 대장군 하진이 여동생인 하태후와 소제의 뒷배를 받아 '병권(군사력)'을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권력은 '십상시'들에게 있었다. 이에 대장군 하진은 십상시들을 몰살시켜버리려 한다. 여론이 워낙 좋지 않았기에 '명분'은 충분했다. 백성들은 황건적이 들끓게 된 까닭으로 무능한 임금 탓을 하기 보다 무능한 임금이라도 제대로 보필하지 않아 더욱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원흉 '십상시'를 미워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장군 하진은 낙양의 군사를 움직여 '십상시'를 처단하려 들었다. 그러나 십상시들이라도 가만 있을 턱이 없다. 더구나 황궁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미 '십상시들의 눈과 귀'로 활약하던 이들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해 눈치 빠른 십상시들은 재빨리 '하태후의 치맛속'으로 들어가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그렇지만 십상시들이 이런 굴욕을 참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은 목숨을 구걸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본색을 드러내고 '하씨 남매'를 죽이고 새 황제 '소제'를 헛바지 사장으로 앞세우고 또다시 저들만의 세상에서 군림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장군 하진은 죽게 되지만, 2권에서는 아직 목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원소와 조조'는 어떻게 등장하고, 무슨 작당을 했을까? 사실 원소와 조조는 모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삼국지연의>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아서 초반 스토리에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이 참 많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정사 삼국지>를 읽으면 되지만,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정사 삼국지>까지 비교하면서 읽는 독자가 얼마나 되겠느냔 말이다. 암튼 원소와 조조의 컴플렉스는 무엇일까? 원소는 원씨 집안의 정실부인에게서 난 자식이 아니라 몸종에게서 난 자식이라 '서자'보다 못한 '얼자' 출신인 것이 콤플렉스였다. 대대손손 정승을 하던 '원씨 가문'이라 원소도 왕자 못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이는 남들이 보기에만 그랬던 것이다. 원씨 집안 안에서는 '천한 핏줄'을 타고났다며 다른 형제들(특히, 원술)에게 심한 따돌림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조조도 원래 성씨는 '하후 씨'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그 당시 잘 나가던 환관 '조등'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조조의 성씨가 '조 씨'가 된 것이란다. 그런데 때가 어느 때이던가? 십상시 덕분에 '환관 출신'이라면 욕이란 욕은 다 처먹던 시절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환관 출신'이기 때문에 십상시가 권세를 잡고 있던 시절에 '조조'는 출세길이 활짝 열려 있을 정도였단다.

이렇게 천대 받는 핏줄로 인한 심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두 사람은 우습게도 어릴 적 친구로 지낸다. 물론 나이는 원소가 더 많다. 하지만 원소는 귀공자처럼 자랐고, 조조는 천하의 망나니로 온갖 개구쟁이 짓은 다 하고 다녔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중앙정계에 나아가 '국록'을 받는 처지가 되자 십상시로 인해 한나라가 망할 것 같은 위기감에 휩싸이자 원소와 조조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십상시'를 처단하고 새 세상을 밝히려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대장군 하진에 의해 '십상시 처단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고, 작전 개시 직전에 어처구니 없이 죽임을 당한 하진의 대신해서 '처절한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원소가 앞장 서게 된다.

나가는 글 : 그런데 여기서 동탁이 등장해서 '황제(유변)와 황자(유협)'를 볼모로 삼아 권력을 찬탈 당하게 되고, 원소와 조조는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격이 되는데, 여기서 대부분의 <삼국지연의>는 원소는 고향땅 기주로 되돌아가고 조조는 동탁의 심복이 되어 호위장교가 되는데, 별다른 보충설명이 없어서 의아했다. 그런데 <삼국지톡>은 이 부분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그 자세한 내막은 3권에서 설명이 되고, 2권에서는 그 전초전의 배경을 묘사하며 바탕을 다져놓았다.

그런 까닭으로 이야기가 꽤 탄탄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식이면 이야기 진도가 꽤나 느려질 것이다. <삼국지톡>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인물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위촉오 삼국 정립'이 된 뒤에는 위나라 이야기, 촉나라 이야기, 오나라 이야기를 따로따로 해야만 할 것이고, 그나마 '앞뒤 시간과 맥락'을 맞추기 위해서 엄청나게 시공간을 오고가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그것을 감당하며 스토리라인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재미와 흥미를 보장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왜냐면 '만화지면'이 비약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00권이라도 상관없이 '디테일'하게 서술해 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렇다면 <삼국지톡>은 정말로 수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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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 삼국지톡 1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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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 > 무적핑크 / 와이렙(YLAB) / 문학동네 (2020)

[My Review MMCCXVII / 문학동네 2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마흔여섯 번째 리뷰는 고전물과 현대물을 정말 탁월하게 퓨전하는 무적핑크와 캐릭터의 '근육'을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그려내는 이리가 콜라보한 웹툰만화 <삼국지톡 1>이다. 현재 <고우영 만화삼국지>, <이희재 만화삼국지>를 동시에 읽고 있는데, 또 욕심을 부려서 <삼국지톡>까지 섭렵하려 한다. 물론 <삼국지톡>은 아직 완간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적핑크 작가가 지금까지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삼국지'를 펼쳐놓고 역작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삼국지톡 1>이 2020년에 첫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는데, 2026년 1월에 <삼국지톡 12>이 출간되었을 뿐이다. 줄거리상으로 겨우 '관도대전'의 결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삼국지 3대 대전으로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을 꼽고 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 대전이 12권까지였으니, 대략적으로 1/3 정도의 분량이라고 본다면, 향후 36권 이상 연재될 것으로 짐작하는 바다. 만화삼국지로 유명한 요코야마 미츠테루 <만화 전략삼국지>가 총 60권이니 무적핑크 <삼국지톡>도 그 정도의 분량이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삼국지톡 1>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삼국지톡 1> 관점 포인트 : 사실 요즘에는 <삼국지>가 아무리 필독서라고 하더라도 잘 읽지 않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옛말에 '삼국지를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상종도 하지 말고,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있었던 말은 아니고 <삼국지연의>를 지은 나관중이 명나라 때 사람이니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명청시대'(600년 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삼국지>를 살면서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지혜가 부족하니 가까이 지내서 좋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은 온갖 지혜를 통달했으니 함부로 인생을 논하다간 큰 코를 다칠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그만큼 <삼국지>는 지혜의 보고이니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임에 틀림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삼국지>를 읽지 않는다. 아주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10권 분량에, 등장인물도 수천 명이 나오는 옛이야기를 꾸역꾸역 시간과 공을 들여 읽으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요즘에는 시험문제로도 <삼국지>와 관련된 문제가 출제된 적도 없다. 그러니 관심을 가질 턱이 없는 것이다.

1980년대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서 엄청난 판매부수를 자랑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도 그만큼 많이 읽었던 까닭이 '학력고사 만점자'가 언론사에 인터뷰를 하면서 "제가 만점을 받은 비결은 <삼국지>를 10번 읽었기 때문이다"라고 발언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신빙성은 없다. 당시에는 대입합격자들 가운데 최고점수를 받거나, 서울대 합격자를 상대로 짧게 인터뷰하는 내용을 TV와 신문에 싣는 것이 관례(?)였는데, 대개는 "저는 학원은 절대 다니지 않았고 국영수 중심으로 교과서를 충실히 학습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누가 들어도 거짓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그런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신박한 인터뷰가 나왔는데, 그게 바로 '이문열 삼국지'를 10번 넘게 정독한 것이 고득점 비결이었다는 허풍(?)이었다. 그 덕분에 <삼국지>는 학창시절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마침맞게 출간된 '이문열 삼국지'가 대박을 쳤던 것이다.

그런데 '이문열 삼국지'를 비롯해서 여타의 다른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생각만큼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왜냐면 현대적인 감각이 실종된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정사 삼국지'는커녕 '소설 삼국지'도 잘 읽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으로 <삼국지>를 접한 이들이 상당수이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로 <삼국지>를 대신 읽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래도 솔직히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젊은 사람들의 솔직한 변일 것이다.

그래서 무적핑크 스타일의 <삼국지톡>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고전물에 과감히 현대적 스타일을 접목한 이야기를 잘 꾸며내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조선왕조실톡>과 <세계사톡>은 그런 의미에서 지루하고 따분한 '역사책'과는 색다른 재미를 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삼국지톡>도 그런 재미를 통해 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진입방어벽(?)'을 낮추고 <삼국지>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나가는 글 :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재미'가 있나 싶다. 그 까닭은 내가 50대로 늙은 편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새로운 형식의 '색다른 맛'보다는 고전미가 물씬 나는 '추억의 맛'에 철저히 길들여진 탓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도 생소한 등장인물 설정으로 인해서 낯가리는 것일까? 이건 좀 더 시리즈를 읽어나가면서 고심해봐야 할 내용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도원결의를 '맥주가게'에서 후다딱 해치우고 마는 장면이랄지, 유비의 옛 스승 노식과 만나는 장면이 터무니 없이 파격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긴 2000년 전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까톡과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면서 스토리도 꽤 '현대적 감각'으로 진행시키고 있으니, 그밖의 것들은 당혹스러울 것도 전혀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에서 '재미'를 딱히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신선하고 신박한 재미는 실종되었지만, 오히려 '고증'은 정말 세심할 정도로 날카롭게 정리해놓았다. 유비가 출세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하지만, '가난뱅이'는 아무리 황족 출신일지라도 결코 '출세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나, 장비가 도원결의할 당시의 나이가 고작해야 16~19세에 불과한 고딩이라는 점을 소상히 밝히는 것만 보아도 무적핑크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사료검증'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작가의 식견'이 정말로 탁월하다. 그런 점을 봐서라도 <삼국지톡>은 꽤나 수준급이라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왜 '재미'가 신박하게 다가오지 않는건가?

한편, 책속 등장인물을 평가하자면, 유비는 가진 것은 없지만 의기만은 충만한 백수건달이고, 조조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죽일놈 죽였을 뿐이니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뻔뻔스러운 인물로 등장했다. 으레 <삼국지 1권>에 나오는 등장인물 소개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보이지만, <삼국지톡> 속의 유비는 훨씬 더 찌질한 쬬다스럽게 등장했고, 조조는 악독하다못해 '잔학무도'한 스타일은 초반부터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삼국지톡>은 주요 등장인물의 특성을 부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매우 '극단적인 면모'를 보여주려 끝자락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라 보일 정도다.

물론, 그로 인해서 <삼국지톡>의 등장인물은 더욱더 명징한 스타일로 소개될 것으로 예상한다. 아무리 의협심이 충만하고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가난뱅이'라면 세상에 나아가 제 능력을 보여줄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유비'를 통해서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조조는 여러 고사에서 '통행금지' 시간을 넘겨 술취해 성문을 열고 들어온 환관을 '법적 처벌'을 준답시고 딱 죽을만큼 매질을 해서 실신하고 불구가 되도록 만드는 '정신이상자'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낱낱이 파헤쳤다. 그뿐 아니라 황건적 토벌에 나섰을 때에도 사로잡거나 항복한 '적장의 군사들'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살육을 저지르고도 '겉모습'은 어디 한 군데 흠 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십만 명의 황건적을 눈 깜짝할 사이에 도륙하고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저지르는 냉혈한으로 그렸다.

원래 '웹툰만화'로 그려낸 작품이라 등장인물의 묘사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가난뱅이' 유비 현덕은 후한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평화롭게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불철주야 힘을 쓴다. 허나 가난 덕분에 유비는 한황실에서 근무하는 직책 하나 받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반면 조조는 어릴 적부터 부와 권세를 가진 집안 덕분에 부족한 것 없이 잘 지낸다. 가장 중요한 '싸가지'가 현저히 부족한 것이 탈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주인공의 인물묘사가 얼추 다 진행되었다 싶으면 나머지 조연급 인물들은 나중으로 미룰 것도 없이 그냥 허섭스레기마냥 얼버무리고 만다. 하지만 무적핑크는 결코 '인물소개'를 대충하지 않는다.

그래서 걱정이다. 너무 많은 인물을 세세히 설명하다가 벌이는 모든 일이 낱낱이 써내려가니, 시리즈의 '진도'가 나아갈 턱이 없다. <삼국지톡>은 몇 권으로 마무리를 할 것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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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그런 사랑
이레 지음 / 웨잇포잇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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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쯤은, 그런 사랑> 이레 / 웨잇포잇 (2026)

[My Review MMCCXVI / 웨잇포잇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마흔다섯 번째 리뷰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인스타그래머 이레의 수필책 <한 번 쯤은, 그런 사랑>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하는 일이 바로 '자기가 쓴 글을 책으로 출간하는 일'일 것이다. 나도 그런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살짝 전형을 해서 온라인 월간 잡지를 편찬하는 것으로 그 꿈을 대신하고 있지만, 죽기 전까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내가 쓰고, 내 이름 석자를 박아 넣은 '종이책'을 출간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책이 가득한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는 이레 작가를 응원하고 싶다. 내가 쓰고 있는 <책이 있는 구석방>이란 이름의 뜻과도 일맥상통하니 말이다. 그럼 <한 번 쯤은, 그런 사랑>에 풍덩 빠져보자.

<한 번 쯤은, 그런 사랑> 관점 포인트 : 에세이가 대부분 그렇지만 상당 부분 '개인적인 경험'이 담겨 있다. 특히나 '사랑'이란 주제라면 그렇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물론 짐작이지만 이 책의 상당 부분도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으리라. 그것도 찐한 사랑을 말이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이 찐하면 찐할수록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 사랑만큼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사랑 한 번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정말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은 현실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것은 동화속이나 영화, 드라마 속에서 '한정된 등장인물' 사이에서나 가능할 법하지, 현실에서는 그런 '운명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제목처럼 <한 번 쯤은...> 누구나 '그런 사랑'을 해봤을 거라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읽다 보면 '다 식은 사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이미 지나고 끝나버린 '옛 추억'속에서나 머릿속에 떠오를 듯한 그런 다 지나버린 과거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격정적이고 앗! 뜨거운 사랑이야기는 아니다. 그럼 그런 다 식은 사랑이야기를 뭔 재미로 읽을까? 그런데 그런 얘기에 솔깃해하는 게 사람의 심리다. 여고생들이 '첫 사랑 이야기'에 솔깃해하는 까닭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정작 당사자는 '진행형'인 사랑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진행형인 사랑에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에 한창 빠졌을 때에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눈에 뵈는 것도 없을 텐데 이야기할 꺼리도 찾지 못할 것이고,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 콩닥콩닥 뛸 텐데 어떻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결국 세상 모든 사랑이야기는 다 '지나버린 옛 추억'일 수밖에 없다. 그게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말이다.

사실 우리는 '해피엔딩'을 바란다. 가슴 절절했고 뜨거웠던 '그 순간'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 결실로 이루어진 사랑이 여기 지금 존재하고 있는 '연인'이길 누가 바라마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랑노래가 히트를 하려면 '실패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공식처럼 세상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대박을 치려면 결국 '다 이뤄진 사랑이야기'는 안 된다. 세상이 다 무너지고, 다 부수고 싶고, 다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여야 귀에 솔깃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 책 <한 번 쯤은, 그런 사랑>에는 그런 실패한 '사랑공식'조차 없어 보인다. 가슴 절절한 이별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이별 이야기만 담담히 이어질 뿐이다. 웬만큼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 쯤 겪어보았을 그런 아픔 말이다. 한편으론 쿨하지 못한 사랑에 미안해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쿨한 사랑'은 또 뭐란 말인가? 매순간 솔직하고 투명한 사랑이 '순수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사랑에 대해 잘 모를 때 '순수하다'고 말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순수한 사랑'을 할 때에 상대의 마음을 가장 많이 후벼파고 아프게 만든다. 그러다 사랑에 '능숙해졌을 즈음'에는 이미 사랑이 저 멀리 떠나가고 식었음을 느끼곤 한다. 그렇게 '익숙한 사랑'에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사랑'에 가슴 설레는 게 일상적이다.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잘 들어맞지 않는다.

나가는 글 : 사랑은 어렵다. 그렇기에 완벽한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지지고 볶고 쓰라리고 시린 감정의 연속이고 지속이기도 하다.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와 온갖 풍파를 다 견디고 나서야 찐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말이다. 이 책 <한 번 쯤은, 그런 사랑>은 그 수많은 엔딩들 사이에 어디쯤에 있는 '그런 이야기'다. 누군가는 세련된 이야기가 아니라서 실망할 수도 있고, 취향에 맞지 않아서 별로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이 책은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너무 평범하고 그저 그런 느낌이 날 수도 있지만, 때론 그 평범함 속에서 찐 사랑을, 때론 아픔을 맛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에 익숙해져서 가슴 웅장한 그런 사랑이야기에 목말라 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 사랑은 많이 다르다. 때론 쪽팔리고, 때론 찌질한 사랑에 낯뜨거워지는 순간도 있다. 아니면 너무나도 평범해서 너무 밋밋하다 못해 밍밍한 사랑에 허탈해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사랑이었음을 다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그게 내가 해봤던 사랑이었음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너도?", "나도!"를 속삭일 수 있는 그런 에세이다. 과거에는 정말 보고 싶던 사랑이었지만, 그런 사랑일수록 절대 뜯어 보면 안 되는 '판도라 상자'속에 감금된 옛 추억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가슴 설레며 활짝 열지는 말자. 아무도 없을 때 혼자서만 몰래 슬쩍 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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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실
연소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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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실> 연소민 / 자이언트북스 (2026)

[My Review MMCCXV / 자이언트북스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마흔네 번째 리뷰는 화려한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는 청소년 소설 <설탕 실>이다. 작가는 연소민으로 <공방의 계절>, <고양이를 산책시키던 날> 등을 써서 나름 유명한 작가인 듯 한데, 아쉽게도 나는 처음 접한 작가였다. 내가 좀 늙긴 했다. 특히 <공방의 계절>은 영미권을 비롯해서 30여 개국에 판권을 판매한 실적을 가지고 있단다. 기회가 되면 읽어보련다. 아직 직접 접해 보지 못한 작가라서 이책 저책을 검색해보니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거나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을 주로 썼던 모양이다. 이 책 <설탕 실>도 딱 그랬다. 주인공으로 중2가 등장해서 혈기 넘치는 청춘스토리가 펼쳐지거나 '중2병' 제대로 걸린 말괄량이가 등장하는 줄 짐작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있잖아요. 선생님! 비밀이에요> '하이틴 소설'을 떠올리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 나이가 탄로나는 것 같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설탕 실> 관점 포인트 : 여러분들은 열다섯 살에 어떤 삶을 꿈꾸었나? 요즘 학생들은 풋풋한 맛이 전혀 나지 않아서 '아파트 건물주'가 되어서 임대료나 월세를 따박따박 받으며 띵까띵까하면서 살고 싶다는 속물이 많은데, 실상은 '아무 꿈'이 없어서 그런 막연한 부러움을 꿈이랍시고 입에 올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시절이기도 하다. 아이돌, 연예인, 프로게이머 등등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정한 친구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성적'에 맞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꿈을 꾸곤 한다. 그나마 성적이 상위권인 친구들의 이야기고, 중하위권 학생들은 이런 꿈마저 포기하고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 <설탕 실>에 등장한 '미도'와 '가호'는 꿈을 꾸려 한다. 아직 명확한 꿈은 없다. 열다섯 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도 있는 희망 가득한 나이인데, 미도와 가호에게는 나름의 상처가 있어서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 마냥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뭐 큰 문제는 아니다. 미도는 평범한 성적과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고, 가호는 학교에 장기무단결석중이다.

제목이 <설탕 실>인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털실아이'라는 간판을 단 실뜨개공방이다. 그리고 그 공방 앞에 위치한 '마카롱전문점' 니농마카롱이 새로 오픈했다. '털실아이'는 미오의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이고, '니농마카롱'은 가호의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인데, 가호가 제과기능 실력을 갖고 있어서 엄마를 도와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미오와 가호, 두 사람의 만남은 바로 이 가게들 앞에서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니농마카롱이 오픈했을 무렵부터 문을 꼭 닫고 있던 털실아이였지만, 미오가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다친 엄마의 병문안을 갈 때마다 니농마카롱 가게에서 마카롱을 사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미오는 가호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고, 자기 또래인줄 알았지만 '이름'을 몰랐고, 장기결석중인 것을 알았지만 '그 이유'는 모르는 등 이래저래 궁금증이 일어서 습관적(?)으로 마카롱 가게를 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호는 미오를 보고도 아는 체는 잘 하지 않았다. 말 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미오가 키우는 강아지 '윤희'를 안고서 마카롱를 사러 갔다가 목줄을 놓치는 사고가 발생해서 강아지가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그때 전광석화처럼 강아지를 잡으러 뛰쳐나간 가호와 깜짝 놀라서 더욱 멀리 달아나버린 윤희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그렇게 헐레벌떡 한바탕 동네 한 바퀴를 돌고나서야 겨우 윤희를 따라잡을 수 있었고, 미오와 가호는 놀이터 그네에 나란히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 '말문'을 트기 시작했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같은 학년의 또래라는 것도 말을 주고 받게 되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보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새삼스럽게 통성명을 한 두 사람은 계속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설탕 실>은 청춘연애담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중2가 꿈을 마음껏 꿀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오에겐 '가족 문제'였다. 실은 '재혼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미오의 친엄마는 미오가 갓난아기였을 때 아빠와 이혼을 했고, 미오와 언니인 미주는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단다. 그리고 아빠는 재혼을 하는데, 친엄마의 기억이 거의 없는 미오는 새엄마를 친엄마처럼 따랐지만, 친엄마의 추억을 간직한 언니 미주는 새엄마를 '혜지 씨'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새엄마'의 엄마도 실은 '친엄마'가 아니었단다. 그러니 미오가 '외할머니'라고 부르는 이순 할머니의 언니가 낳은 딸이 '혜지 씨'였던 것이다. 혜지 씨의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자 동생인 이순 할머니가 '동생의 딸'을 자신의 딸로 키웠던 것이다.

한편, 가호에겐 '학폭 문제'가 있었다. 가호가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벌어진 일인데, 가호의 엄마가 '아이스크림 와플'을 만들어 파는 가게에 학교친구들이 찾아왔다가 가호의 엄마가 만든 와플이 형편 없이 맛없고 불량식품을 판매한다며 '악담'을 소문 낸 것이다. 그 일로 가호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급기야 '폭력'까지 당했다. 그러다 학폭을 일삼던 무리 가운데 한 명이 가호 엄마네 가게에 '병든 강아지'를 버리고 갔는데, 가호는 그 강아지를 애정으로 키우며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호의 강아지가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고, 가호는 강아지를 백방으로 찾아나섰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저멀리 옆동네 동물병원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강아지를 치료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가호와 엄마는 택시를 타고 달려갔지만, 가는 도중에 다시 전화로 연락이 왔고, 이미 사망했다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가호는 그 뒤로 전학을 갔고, 비록 새학교지만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워 장기결석중이었던 것이다.

나가는 글 : 한창 꿈을 꾸고 희망을 품어야 할 열다섯 소년소녀는 나름의 상처와 사정을 안고서 방황하고 있다. '재혼 가정'과 '학교 폭력' 그 자체는 아이들의 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허나 직접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마음껏 펼쳐야 할 나래를 펴지 못하게 발목 붙잡힌 상태던 것이다. 다 지난 일이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면 그뿐일텐데, 그게 참 묘하게 힘든 상황이다.

이럴 때 어른들은 '뭐라도' 하면서 극복하고 돌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허나 이제 열다섯 살이 된 '중2'들에겐 그런 경험이 없다. 이제 막 처음 시도하고 체험했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겠는가? 이럴 때 부모라도 아무 문제가 없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였다면 좋았을 텐데, 대한민국 중산층이 무너진 지 언젠데 그런 낭만을 꿈꾸는 청춘들이 있겠느냔 말이다. 더구나 미오와 가호 두 사람의 '엄마 가게들'은 곧 폐업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절망적인 순간에 미오와 가호는 결국 '뭔가'를 시도해보려 한다. 막연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살려서 해보려 든다. 아주 좋은 시도다. 비록 그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연소민의 소설은 이렇게 등장인물과 인물 사이에 '갈등요소'를 부각시키기보다 '정경'을 돋보이게 한다. 정경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와 경치'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처한 모습이나 형편'이다. 재혼 가정과 학폭에서 우러나오는 '갈등'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형편'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와 처한 모습을 따뜻한 감성으로 수채화를 그린 듯한 풍경을 연상케 한다. 왜 연소민 소설의 감상평으로 '소소한 행복'을 꼽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까닭에 전체적인 소설의 분위기는 '밍밍하다'. 톡쏘는 청량감이라고는 1도 없이 그렇게 미오와 가호의 '중2 겨울방학'을,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데이를 그렇게 소소하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만다. 분명 두 사람은 '썸'을 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걸 표현하지 않고 있는 '절제미(?)'를 감상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를 딱히 하나만 꼽을 필요는 없겠다. 잔잔한 소설인데 반해서 '소설속'에서 펼쳐낸 문제거리는 격정을 뿜어내듯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청소년의 방황에 '핑곗거리'를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문제쯤은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것 아니겠냐는 듯이 태평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주제를 하나로 '통일' 시키기보다 각각의 등장인물속에 '주제 '하나씩을 넣어두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묘하게 다채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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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1 - 형제의 의를 맺다 이희재 삼국지 1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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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1 : 형제의 의를 맺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XIV / 휴머니스트 5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마흔세 번째 리뷰는 탄탄한 스토리라인이 인상 깊은 <이희재 삼국지 1>이다. 올해는 '만화 삼국지'를 섭렵할 모양이다. 20여 년만에 <고우영 삼국지>를 읽다보니 그간 '만화'로 쓰인 <삼국지>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친 김에 손에 잡히는대로 리뷰를 할 예정이다. 만화가 이희재가 그린 <삼국지>는 고우영 화백이 지은 <삼국지>와 '또 다른 맛'이 난다. 고우영 화백이 '재미'를 추구하는 편이라면 이희재 만화가는 '정통'을 추구하는 편이다. 그래서 만화를 읽지만 '한 편의 대하소설'을 읽은 듯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만큼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깊고 진한 여운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이희재 삼국지>가 '저본'으로 삼은 텍스트가 다름 아닌 <이문열 삼국지>라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이문열 삼국지>의 내용을 오롯이 담아 놓은 듯한 인상을 느낄 수 있다. 암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 <삼국지>가 다름 아닌 '이문열의 것'이었으니 어쩌면 이는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럼 그 선택이 탁월했는지 책속으로 풍덩해보자.

<이희재 삼국지 1> 관점 포인트 : 스토리라인은 정통 <삼국지>의 내용 그대로다. 애초에 <이문열 삼국지>가 정통을 저본으로 삼고 이야기를 풀어갔으니 <이희재 삼국지>도 그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답습한 셈이다. 하지만 '만화형식'인 까닭에 과감한 생략과 함축을 통해 군더더기를 잘라내야만 했다. 그런데도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부족한 대사와 묘사는 '한컷 한컷'에 담긴 등장인물의 행동과 표정에 다 담고 이야기를 속도감 넘치게 이끌어 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문열 삼국지>를 완독하기 힘든 분들이라면 <이희재 삼국지>로 갈음해도 좋다고 추천드리는 바다.

1권의 전체 줄거리는 황건의 난이 일어나자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도원결의를 맺고 의병을 모아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한편, 또 다른 영웅 조조도 온몸에 붉은 갑주를 두르고 토벌에 나선 뒤, 유비군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천하를 다툴 영웅지재가 있음'을 직감하고 서로의 존재를 각인하게 된다. 유비군은 30여 차례나 토벌에 성공하며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정작 조정은 부패한 환관들이 장악하고 있었기에 유비는 고작 현위직(오늘날의 구청장 정도의 직위)을 제수하고 촌구석으로 부임하러 간다. 하지만 부패한 조정은 매관매직을 한 뒤에 뽕을 뽑으러 유비를 찾아오고 순순히 뇌물을 바치지 않자 협박과 모함까지 한다. 이에 불같은 성미의 장비가 유비를 감찰하러 온 독우를 나무에 매달아 매질을 하며 혼쭐을 내주지만, 그로 인해 유비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유주자사 유우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때, '황건적의 잔당'이 다시 일어나자 유비군은 또다시 의병을 모아 황건적을 토벌한다. 이렇게 공을 세워 지난 죄값을 치루고 나니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한편, 궁궐 안에서는 환관들이 꿍꿍이를 벌이고 있다. 영제가 노환으로 죽게 되자 후임으로 하진의 여동생 하태후의 소생 변과, 후궁 왕씨의 소생 협 가운데 나이가 더 어린 '협'을 등극시킨다. 이가 바로 '소제'다. 이렇게 어린 황제가 등극하자 정국은 다시 환관들에게 권력이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소제'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 '변'을 제거하려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태후부터 죽여야 했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대장군 하진은 군대를 이끌고 환관들을 제거하려 들었다. 이에 환관들은 재빨리 하태후의 치맛속으로 파고들며 목숨만 살려달라 구걸한다. 애초에 백정 출신으로 생각이 짧았던 하태후는 자신들에게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해준 옛 정을 생각해서 애걸복걸하는 환관들의 구명줄을 잡아주지만, 죽다 살아난 환관들은 그럼에도 하진을 없애려 든다. 권력은 이토록 비정한 것이다. 결국 대장군 하진은 환관들의 꾐에 빠져들어 죽임을 당하자 환관들을 제거하려 불러들였던 여러 군웅들이 일거에 궁궐로 들어가 환관들을 모조리 다 잡아 죽이고 만다. 이를 '십상시의 난'이라 부르고, 주축은 바로 '원소'였다.

허나 이런 혼란한 틈을 뚫고 환관 몇몇은 '소제(협)'와 '진류왕(변)'을 납치해서 궁궐밖으로 달아나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붙잡혀 죽임을 당하고, 어린 황제(소제)와 왕(진류왕)은 원소 등의 호위를 받으며 환궁하게 되지만, '십상시의 난'이 났음에도 관망만하며 궁궐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량태수 동탁이 대군을 이끌고 나타나 어린 황제와 왕을 낚아채려 한다. 이때 용감하게 나서서 황족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준 이가 바로 '진류왕(변)'이다. 동탁은 이런 당당한 진류왕의 모습에 반해서 멀지 않은 훗날에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변)'를 옹립하는데 앞장 서게 되는데, 무슨 까닭이었을까?

사실 허수아비 임금을 내세워야 신하된 처지에서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무소불위 권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렇기에 황제답지 못한 '소제'를 그대로 황위에 두고 동탁이 권력을 쥐고 흔들면 그뿐이었을텐데, 동탁은 이상하게도 '똑똑하고 당당한 황제의 위엄을 갖춘' 진류왕을 다응 황제로 손꼽고, 실제로도 '헌제'로 등극하게 만든다. 그것은 헌제가 후궁 왕씨 소생이긴 하지만, 일찍 어미를 여의고 '동태후'라는 할미 품에서 자랐던 탓이 크다. 동태후와 동탁, '같은 성씨'이지 않은가. 그래서 동탁은 자신이 헌제의 외척세력이 되어 끝내 '황위 찬탈'까지 꿈꿨던 속셈이었던 것이다.

암튼, 동탁은 헌제를 옹립하고 권력을 자기 멋대로 휘두르기 시작한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죽여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인걸이 참 많았다. 처음엔 '여포'가 등장해서 동탁의 걸림돌이 되자, 동탁은 '적토마'로 여포를 꼬셔서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고, 사도 왕윤은 조조에게 '칠성검'이란 보검까지 헌납하며 동탁 암살을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달아난 사예교위 조조는 암살 실패한 직후 고향으로 낙향해서 '반동탁연합'을 획책하게 된다. 1권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나가는 글 : <삼국지>의 줄거리는 너무 유명한 탓에 모두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희재 삼국지>는 무슨 주제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이어나가고 있을까? 다름 아닌 '성공'이란 두 글자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을 평정하고 세상을 평안하게 만들 수많은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런 수많은 인물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것은 다름 아닌 '성공'인 것이다. 이는 <이희재 삼국지>가 <이문열 삼국지>를 저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문열은 스스로도 '보수 성향'이라고 밝혔고, 대한민국의 보수가 주장하는 것도 다름 아닌 '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럼 반대진영의 진보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분배'다.

이는 달리 말하면, 보수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실력에 따라, 능력에 따라' 가질 수 있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니 더 많은 이득을 얻고 싶다면 '성공'을 한 뒤에 승자가 독식하는 세상을 꿈꾸라는 말이기도 하다. 반대로 진보적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공평하게, 불만이 있으면 원만히 해결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성장을 위한 경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도덕'을 강조하고, 그로 인해 선한 마음가짐을 갖고 모두가 불평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란 말이다. 보수의 관점에 걸맞게 쓰여진 것이 <이문열 삼국지>라면, 진보의 관점에 맞춰서 쓰여진 것이 <황석영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독자마다 자신의 성향에 맞게 읽으면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희재 삼국지>도 '성장 위주의 보수적 관점'에서 읽으면 제맛일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정답이 아님을 밝히는 바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분석일 뿐이다. 하지만 굳이 추천을 한다면 '분배 중심'의 서사를 하는 <삼국지>를 읽기를 권한다. '성장 중심의 서사'를 읽다보면 '성공'을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고 최소한의 도덕관념 또한 전혀 고려치 않는 '인간말종'의 모습을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삼국지>를 읽으면 난세의 간웅이라 불리는 조조를 욕할 수 없게 된다. 조조란 영웅이 '성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무엇을 기준으로 욕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오히려 이런 구도에서는 유비가 답답하게만 보일 뿐이다. 온갖 인의도덕을 앞세우며 점잔은 있는대로 다 빼면서 '실속'을 챙기지 못하는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후한 말의 혼란이 무엇 때문에 일어난 것이냔 말이다. 바로 '도덕'이 무너지고 '질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냔 말이다. 그래서 유비는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도덕'을 앞세웠고, 속된 야망조차 겉으로는 내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유비는 가진 것도 없이 만천하를 움켜지는 기재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런 유비의 출세 과정을 '성공 기준'으로 삼아 바라보게 되면, 무능의 극치를 보여줄 뿐이었다. 나중에 '제갈량'을 얻고 난 뒤에야 겨우 나라다운 나라꼴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쪽으로 <삼국지>를 읽든 둘 다 교훈과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권력을 차지하고 성공을 이룩하기 위해 여러 군웅들이 각자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대활약을 보여주고 있고, 어느 쪽으로 공연(?)을 하든 '꿈보다 해몽'이라는 심정으로 <삼국지>속 이야기를 풀어내면 모두에게 알맞은 재미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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