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진실과 허구 - 삼국 시대 인물들의 진짜 인생 엿보기
구청푸.성쉰창 지음, 하진이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 : 삼국 시대 인물들의 진짜 인생 엿보기> 구청푸, 성쉰창 / 하진이 / 시그마북스 (2012)

[My Review MMCCCXLI / 시그마북스 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일흔 번째 리뷰는 소설 삼국지와 정사 삼국지 사이를 오가며 삼국지의 참모습을 살펴보려 시도하는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다. 한중일 가운데 '팩트체크'에 진심인 나라는 한국 뿐이다. 특히 역사에서는 유별날 정도다. 일본은 '왜곡'을 일삼고 중국은 '공정'을 획책하는 마당에 왜 한국은 '진실'만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는 오직 '진실'만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오랜 경험에서 축적된 지혜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한국의 위치는 대륙의 수혜를 받아 해양으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한국은 상상 이상으로 막강했던 까닭에 대륙도 함부로 넘보지 못하고 해양은 감히 얼씬 거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 이런 '역사적 지위'가 뒤바뀌는 경험을 했다. 거대한 대륙이 서구열강에 짓밟히고 해양세력이 득세하면서 열도를 넘어 반도를 거쳐 대륙까지 집어 삼키는 파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경험을 당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밑바닥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위업을 보여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업을 보여줄 근본적인 원동력은 오직 하나 '진실'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드디어 '진실'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고만장했던 일본은 추락 직전으로 내몰렸고, 어마어마한 덩치로 위용을 뽐내던 중국도 비실비실 휘청거리고 있다. 물론 아직 일본과 중국은 건재함을 자랑하고 '과거의 영광'을 뽐내려 든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 관점 포인트 : 삼국지 책을 이야기하면서 '진실' 어쩌구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든 것이 의아할 것이다. 차근차근 그 속내를 밝힐테니 따라오길 바란다. 이 책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는 소설 삼국지에 담겨 있는 '허구성'을 찾아내 '역사적 진실'과 대조하고, 저자인 나관중이 그렇게 진실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서 되짚어 볼 수 있는 책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설'은 역사가 아닌 까닭에 모든 내용을 '진실'로 담아야만 할 필요는 없다. 독자가 재미를 느끼고 '역사'에 흥미를 가질 의도로 '허구성'을 가미할 필요성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관중이 살던 시기는 '원말명초' 였기 때문에 오랜 오랑캐의 지배에서 벗어나 '한족의 자긍심'을 살리고 '민족의 위대함'을 돋울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이는 이민족에게 핍박을 받고 살았던 세대에게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일 것이다. 우리도 일제의 폭력과 약탈에 신음할 적에 우리 '한민족의 자긍심'을 되찾고 '조국의 위대함'을 돋울 수 있는 민족 정신을 찾으려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암튼 나관중은 그런 목표를 삼고 한족의 뿌리를 찾았고, 그 결과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고자 수많은 군웅들이 할거하던 '삼국시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모았던 것이다. 그 시대가 3세기였는데 원나라가 망한 14세기에 집필했으니 무려 1000년 전의 역사를 이야기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촉한 출신의 진수가 진(晉)나라 때 쓴 <삼국지>라는 정사가 있었기에 이야기를 쓰는 것은 큰 무리가 없었다. 허나 진수가 쓴 <삼국지>는 문장이 너무 간결하다는 흠이 있었다. 그 때문에 역사서에서 꼭 필요한 '객관성'을 높일 수 있었으나, 이야기를 쓰기에는 오히려 주관적일 망정 '장황한 서사'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송나라 때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석을 붙인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 덕분에 나관중은 '소설 삼국지'를 집필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톡톡히 살려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니 '역사소설'을 쓰다 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이 너무 '진실'을 추구하다보면 발목이 붙잡혀서 '허구성'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너무 딱딱하고 재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7할의 진실에 3학의 허구성이 가미한 셈이다. 이로써 '역사소설'의 지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재미와 흥미'를 한껏 돋울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를 더 해결해야 했다. 바로 '한족의 자긍심'을 되찾을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 '한족 영웅'를 내세워야 했다. 역사상 삼국을 통일한 것은 '위나라의 기틀' 위에 '진나라의 결정적 한 방'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조를 뒤이어 사마의가 매듭을 짓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조조와 사마의는 '실리'를 챙기는데에는 충실했지만, 흩어지고 무너진 '한족의 자긍심'을 되찾기에는 적절치 못한 인물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임자가 바로 '유비'였다. 전한 경제의 후예인 '중산정왕의 후손'인 유비를 정통으로 내세운 '촉한정통론'이 대두된 것이다.

이렇게 유비를 주인공으로 낙점한 뒤에 주인공을 돕는 조연도 필요했다. 관우와 장비가 있었기에 이들을 한데 엮어 '도원결의'라는 아름다운 미담으로 의형제로 삼았다. 완전 거짓은 아니다. 유비는 측근의 사람들과 '형제'처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관우, 장비를 콕 집어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나관중은 그리 정했다. 그렇게 '복숭아 밭에서 형제를 맺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형제의 의리로 끈끈하게 맺어진 관우, 장비다 보니 자연스레 '오관육참장'이란 고사도 만들게 되었다. 옛 주군을 찾아 떠난 급박한 길임에도 대단히 구불구불하다. 분명 유비가 있다는 원소의 진영은 북쪽인데, 관우는 두 분 형수님을 모시고 조조의 배웅까지 받으며 서쪽으로 향했다가 살짝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강을 따라 동쪽으로 간 뒤에 강을 건넜다가, 형님이 이미 남쪽으로 몸을 피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강을 건너 남쪽으로 향한다는 줄거리인데, 사실 헤어졌던 관우와 유비가 다시 만난 장소는 어처구니 없게도 조조의 진영 동남쪽인 여남땅이었다. 그러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애초에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달리면 될 일인데, 그러면 이야기가 밋밋해지니 일단 때려부술 수 있는 관문이란 관문을 다 조지고 형제끼리 애뜻한 상봉을 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역사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까닭을 이해했다면, '진실'을 밝히고 '허구의 의미'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공정'이나 '왜곡'과는 다른 일이다. 나관중이 허구성을 가미한 목적이 역사의 진실을 감추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모두 '역사의 진실'을 감추고 자국의 역사를 '미화'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역사가 부끄럽기 때문에 '거짓 날조'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런 거짓 날조는 '재미'도 없다. 위안부가 사실은 '자발적 매춘'을 하고, 김치의 원조가 '파오차이(채소절임)'였다는 것에서 무슨 재미가 느껴지느냔 말이다. 감동적이기라도 한가? 그런 거 없다. 하지만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는 재미라도 있다. 그리고 역사적 흥미를 느끼고 역사의 진면목을 찾아보려는 노력까지 기울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촉한정통론'은 거짓이지만 오늘날에도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재미와 역사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장치로 옳게 작용한다.

나가는 글 : 그럼에도 독자들은 '촉한정통론'에 만족하지 못하고 '역사적 진실'을 찾으려 노력한다. 기왕에 '역사적 흥미'를 유발시켰으니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역사를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역사적 진실을 오늘날의 사람들도 흥미를 느끼고 찾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정과 왜곡한 역사에 누가 관심을 갖고 있는가? 의외로 관심을 별로 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애써 공정을 하고 왜곡을 한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상당수다. 더구나 그런 허튼 노력이 '들통'이 나면서 쪽팔림까지 당하기 일쑤다. 그리고 그런 쪽팔림은 자신들의 '강한 국력'으로 무마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정작 속아넘어가야할 '피해자(한국)'이 호락호락하고 만만한 나라가 아니며 점점 더 강한 국력을 갖게 되니, 속된 말로 '똥줄이 타들어갈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에 애초부터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고 찾고 증명하려 애썼기에 한국은 오히려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더구나 한류열풍을 넘어 'K-컬처의 붐'을 맞이하며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편'을 들고, '한국의 매력'에 푹 빠져 있으니, 도리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이 역풍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 이 책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한족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저자 나관중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민족의 정체성''조국의 위대함'을 되새길 수 있는 초석이 되는 '역사적 진실'을 되찾을 수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이게 뭔소리냐면, 중국 오천년 역사 가운데 '위촉오 삼국시대'만큼 빠삭하게 알고 있는 역사가 있느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 삼국지'가 가진 위대한 힘이다. 전세계인이 중국사는 몰라도 '삼국지'는 알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수천이 넘는 군웅들의 이름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우리가 주목할 대목이다. 최근 들어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사'에 관심을 쏟게 된 까닭이 무엇이냔 말이다. 다름 아닌 'K-드라마', 'K-영화' 덕분이다. 지금도 드라마 <대장금>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끝없이 시청되고 있단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런 역사드라마와 역사영화를 본 관객들은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 방문을 하려 한다. 만약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만들었다면 '흥행'에도 실패하고, '관심' 유발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답고 재밌게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소설 삼국지'의 인기에 힘 입어서 이 책과 같은 '진실과 허구'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관중이 소설의 재미를 추구하고 적절히 '허구'를 가미한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재미를 추구하려고 '거짓 날조'를 방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애초에 관심조차 끌어낼 수 없다. 더구나 진실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역사'는 더욱더 그렇다. 한껏 흥미를 끌어올리는데 성공한 '역사'라 하더라도 '진실이 없는 거짓'을 바탕으로 한 것이 밝혀지면 가차없이 외면 받는 것이 또한 '역사'다. 그래서 '진실은 언제나 승리한다'는 말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소설 삼국지'조차 진실로 마주하고 싶어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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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온도 첫 여름 서재 2
한정민 외 지음, 김은영 그림 / 리아앤제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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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온도> 한정민, 임나헌, 전현진, 김동찬 / 리아앤제시 (2026)

[My Review MMCCCXL / 리아앤제시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아홉 번째 리뷰는 흔들리는 열다섯 청춘들의 솔직담백한 고백이 담겨 있는 <열다섯의 온도>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쉬운 청소년들을 표현할 때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 같다. 뭉뚱그려서 MZ세대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정확히 말해서 '밀레니엄 세대'도 아니고 'Z세대'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과거의 어른들은 자신과 너무 다른 청소년을 '신세대'라고 갈라치기하면서 애써 '다른점'을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X세대, Y세대 따위로 '시기별'로 구분을 짓더니 급기야 '신인류'라는 명칭까지 쓰면서 아예 '종의 분류'를 달리 해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이는 명백한 '기성세대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잘못된 표현이다. 그러니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들으면 기분만 나빠지니 말이다. 그런데 더 먼 옛날 독일에서는 청소년 시기의 혈기왕성함을 '질풍노도'라고 단정 지어버리며 청소년들의 정체성조차 저들끼리 섣부르게 단정 지어버렸다. 정말 이것으로 우리 청소년들을 '묶음'으로 만들어버려도 괜찮은 것인가?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열다섯의 온도> 관점 포인트 :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훌쩍 커버렸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미숙한 점이 눈에 띄는 시기를 우리는 뭉뚱그려서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그들에게 크게 실례되는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청소년을 이르는 또 다른 표현인 '미성년'이라는 표현에 이르면 살짝 기분 나빠진다. 성년이 이르지 않았다는 표현일 뿐이지만, 여기에는 아직 성숙한 '인간 대접' 받기에는 부족한 것이 있다. 아주 많다는 뜻도 내포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들도 딱히 성숙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일삼고, 미성숙하고 교양 없는 미숙한 짓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바둑에서 결코 죽지 않는 돌이라는 뜻으로 쓰는 '완생'의 반대말로 완벽하게 살아남지 못할 돌이라는 뜻의 '미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가 말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쓰여서 널리 알려진 표현이기도 한데, 암튼 어른들조차 '완생'이 아닌 '미생'으로 살면서 청소년은 미생보다 못한 '착수', 또는 '포석'에 쓰이는 돌처럼 미약하다고만 하느냔 말이다.

의외로 청소년들도 어른들 못지 않은 '깊은 고민'에 빠져 답을 찾으려 애를 쓰고,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색다르고 더 날카로울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어른이라면 청소년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탓하기 이전에 먼저 곰곰이 헤아려보아야 '성숙한 어른', 다시 말해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어른들도 모두 '청소년 시기'를 거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 시절에 어른들을 향해 얼마나 많은 푸념과 질타를 날렸던가? 그러다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당시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십분 이해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럼 왜 청소년들의 고민과 복잡한 감정을 이해해주지 않으려 하는가?

이 책 <열다섯의 온도>에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꿈이 담겨 있는 짧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시시한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큰 감동도 없고 교훈도 찾을 수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울림'을 전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울림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야기는 <사과 노을빛>, <수취인 불명 묵호로부터>, <절대 공 맞지 않는 애.mp4>, 그리고 마지막은 <AI 메모> 순서다. 먼저 <사과 노을빛>은 어른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거짓말'을 정작 어린 친구들에겐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하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들어서 딱 거짓말인 것을 눈치 챌 수 있는데도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어른들을 '추적'하는 주인공과 친구들은 어른들의 거짓말에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거짓말을 했다고 앞뒤 사정도 살펴보지 않고 잡도리를 하려 든 '미성숙한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열다섯 주인공을 마주하게 된다. 한편, <수취인 불명 묵호로부터>에서는 엄마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묵호'로 둘만의 여행에 들뜬 열다섯 주인공이었지만, 그 '묵호'가 사실은 엄마에게 단순한 관광지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아픈 추억이 가득한 곳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열다섯이던 그 시절의 아픔을 열다섯 딸이 그 시절의 엄마가 되어 '공감'을 해보려 애쓴다.

세 번째 이야기 <절대 공 맞지 않는 애.mp4>는 열다섯 주인공의 '꿈'에 관련된 이야기다. 피구 경기에서 공을 한 번도 맞지 않고 승리를 거둔 날렵한 몸놀림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속상함을 '춤'이라고 하는 선망의 대상으로 바꿔버리는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뚱뚱한 몸매인데도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을 '영상'만 보고 댄스동아리에 초대하며 친구로 사귀게 되지만, 정작 '꿈'을 찾아준 그 친구는 아이돌 연습생이 되어 맹연습을 하는 와중에 불운한 사고를 당해 온몸을 가누지 못하는 치명상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꿈이 없던 아이'는 꿈을 갖게 되고, '꿈을 펼치려' 날개를 단 친구는 의도치 않은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났을까? 마지막 <AI 메모>는 SF 판타지의 면모를 보여준다. 기억하고 싶은 않은 과거를 '잊게' 해준다는 AI 메모를 '접속'해서 손쉽게 지우고 싶은 기억을 '삭제'하길 바랐지만, 사실은 '삭제'가 아닌 '이전'에 불과했다는 충격적 사실을 밝혀내게 된다. 그렇게 '이전'된 기억들은 다른 누군가의 '꿈' 속에서 재현되며 고통을 안겨주게 되는데, 과연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수도 있는 SF판타지의 결말은 어떻게 이어질까?

나가는 글 : 사실 청소년들이 어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완벽한 모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반성'하는 모습을 몸소 실천해달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불행도 겪으면서 '극복'하고 한층 성장하길 바라며 청소년들에게 가르치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신들의 '실수'는 감추고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어린 청소년들에게만 '실수'를 용납치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어른이 되면 옛날 어른들처럼 '똑같이' 실수를 부정하고 변명만 늘어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성숙은커녕 발전도 없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는 방법 뿐이다.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들도 그랬지 않은가 말이다.

거짓말은 나쁘니까 하면 안 될 일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피치 못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거짓말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선의의 거짓말'을 우리는 남을 속이는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거짓말은 거짓말이다'면서 박박 우기는 덜 성숙한 인간들이 있다. 반면에 '함부로 남을 의심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며 진짜 선행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는 진정한 참어른도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 딱 봐도 안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어줍잖게 거짓말하는 모습을 목격했더라도 '스스로 잘못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어른들이 베푸는 아량을 몸소 실천해주길 바란다. 요즘 '촉법소년 문제'가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지만, 이는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어른 친구들의 문제이기에 앞서 '그들의 부모'가 정말 나쁜 사람이었음을 우리 사회가 각성해야 한다. 나쁜 짓을 저지르면 혼나는 것이 당연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에 대한 벌을 달게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을 가르쳤어야 마땅한 '부모들'이 이 책임을 망각하고 제 자식이 볼 피해를 감싸고 도는 나쁜 짓을 원천적으로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런 악영향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잘못에 처절하게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어른이 정말 많아져야 한다.

한편, 청소년 시기에는 '꿈'이 많다. 비록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달라질지라도 소중한 꿈임에는 틀림 없다.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하나의 꿈에 올인하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 것처럼 너무 꿈이 많고 자주 바뀌는 것도 단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어른들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기 일쑤인데, 청소년 시기에 꿈이 너무 많고 너무 자주 바뀐다고 탓만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청소년인데도 '꿈이 없다'는 친구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면 더욱 다양한 꿈을 어른들이 청소년 눈높이로 보여줄 '의무'가 있다. 과거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해서 청소년 돌봄이 미흡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명실상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므로 청소년이 충분한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시기에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다. 그래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아침과 저녁에 기분이 상이하게 달라질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고 연약해 빠졌으며, 변덕이 죽 끓듯이 쉬이 변한다고 탓하면 되겠는가? 어른들의 감수성이 무딘 까닭은 너무 많은 '경험'을 겪어봤기 때문에 충분히 단련되고 무뎌졌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이 되어서도 변덕을 부리면 '어른답지 못하다'며 놀림을 받기에 애써 감수성을 감추는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에게 '어른답지 못하다'며 놀림을 줄 셈인가?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세상을 예민한 감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꼭 필요한 감각이냔 말이다. 이를 통해 어른들은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할 판이다. "얘들아, 너희들이 느끼기에 현재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어떤 느낌이니? 어른들이 잘 하고 있다고 느껴지니?"라고 수시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소통 부족'이 큰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부족하기만 하다면 다행일 정도로 '소통 부재' 현상이 극심한 지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배려심'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개인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할 뿐인데 말이다. 이런 모든 문제의 근원적 해결 방법은 바로 '청소년 문제'를 얼마나 제대로 분별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당장 '열다섯 청소년'이 주변에 있다면 그들의 솔직한 감정을 묻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행히 초기 증상은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울 것이다. 이때 너무 쉽다고 방치하거나 놀리지 말고 소통의 폭을 더욱 넓히고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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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 - 만화
JIN(REDICE STUDIO) 그림, 다울 원작, 당도(REDICE STUDIO) 각색 / 디앤씨웹툰비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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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 다울 원작 / Jin(Redice Studio) / 당도(Redice Studio) / 디앤씨웹툰비즈 (2026)

[My Review MMCCCXXXIX / 디앤씨웹툰비즈 1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여덟 번째 리뷰는 복용하기만 하면 C급 이하의 헌터가 한 등급씩 능력치가 향상하는 '별가루'의 정체가 밝혀지는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이다. 윤회의 잔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광휘의 파편들(지배자)'을 도와 군주들을 홀로 제거하고 세상을 구하게 된 성진우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지구로 되돌아와 평범한 인간처럼 살았다. 그리고 차해인과 결혼을 하고 아들 성수호를 낳고 단란하게 살았는데, 수호가 진우의 '한계가 없는 레벨업의 능력'을 물러받았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 수호가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컨트롤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진우는 수호의 능력을 '봉인'하고 있었는데, 이세계 저편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평행우주의 관점에서 '다른 우주의 창조주들'이 창조주가 사라진 이쪽 세계의 우주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야욕을 품기 시작했던 것이다. 허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차원'을 넘기란 너무 많은 세월이 걸렸던 것이 문제가 되어 '추종자(이타림)'으로 하여금 창조주가 없는 세계를 정복하려 들었다. 이세계의 지배자들만으로 다른 세계의 창조주가 만든 추종자들을 상대하기가 버거웠던 탓에 성진우가 직접 이들을 처치하려 '차원 저편'으로 나가 있던 사이에 이타림들이 무방비 상태에 놓인 지구를 '빈집털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지구에도 이타림의 출현으로 인한 변화가 생겼다. 마력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헌터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를 '대격변'이라 부른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 관점 포인트 : '대격변'으로 시작한 '라그나로크' 시리즈는 좀 뜬금 없었다. 성수호의 레벨업을 위해서 '헌터들'이 다시 등장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그것만으로 이유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쪽이 강해진만큼 저쪽도 강한 존재가 등장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따라 성수호의 레벨업에 걸맞는 새로운 적들이 등장해야 할텐데, 그들의 존재가 1, 2권에서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뜬금없이 등장한 '별가루의 정체'도 궁금증을 유발했다. 진우가 윤회의 잔으로 되돌리기 전의 세상에서는 없었던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별가루를 만드는 방법이 꽤나 끔찍했고 더러워서 불쾌감이 샘 솟았다. 그래서 '라그나로크' 읽기를 멈출까 싶었는데, 다행히 3권에서 바로 '별가루의 정체'가 밝혀져서 기분을 풀 수 있었다.

먼저 별가루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존재가 마력이 높지는 않지만 '신앙심'은 강한 '미스트 번'이란 재료였다. 여기서 신앙심이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종교의 신이 아니라 '창조주'가 뜻하는 대로 절대복종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세계의 '광휘의 파편들'은 창조주를 파괴했었다. 왜냐면 창조주가 영겁의 세월을 살면서 '유흥'을 돋우기 위해서 지배자와 군주 들을 창조한 뒤에 서로 죽고 죽이는 끝없는 전쟁을 하도록 안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지배자들 가운데 이런 무의미한 싸움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고 창조주에게 군주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창조주는 그 지배자가 원하는 응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때서야 지배자는 자신이 결국 '체스판의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의미한 전쟁을 멈추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창조주를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하게 봤지만, 군주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던 터라 지배자들과 군주들은 다시 전쟁을 치루게 되었다. 그 전쟁에서 '그림자 군주'는 지배자들을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를 앞두고 있었는데, 다른 군주들이 너무 강해진 그림자 군주를 배신하고, 그림자 군주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림자 군주는 완전 소멸하기 전에 자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찾길 원했고, 시스템의 도움으로 '성진우'를 찾게 된다. 여기까지가 1편 <나 혼자만 레벨업>의 이야기인데, 2편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에서는 '또 다른 창조주들'이 이세계를 탐하는 것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렇게 새롭게 시작된 '차원간 전쟁'이 시작되는데, 저차원의 적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성진우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차원을 넘어가려는 '힘(마력)의 양'에 반비례하는 '이동속도'를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과거에 성진우도 오며가며 27년의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그러니 성수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성진우는 지구로 되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예상밖으로 저차원의 세계에서 지구로 단숨에 건너온 '추종자(이타림)'들이 생겼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온전한 힘으로 차원을 건너려면 세월이 너무 많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힘을 '여러 개'로 쪼갠 뒤에 각각의 힘을 나눠서 보내는 방법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지구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타림(여러 개의 조각 중 하나)은 E급 헌터보다 약한 '약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신길드 부마스터 이민성을 이용해서 지구에 새로운 창조주를 받들어 '유흥거리'로 삼을 추종자를 만들고자 '별가루 제조법'을 이민성에게 알려 준다.

이민성은 윤회의 잔을 사용하기 이전에도 A급 헌터로 각성했기에 '대격변' 후에도 A급 헌터로 각성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난 이민성도 인성은 쓰레기였던 것이다. 유명 연예인이었던 이민성은 자신의 차를 몰던 운전사(임태규)가 S급 헌터로 각성하자 졸지에 입장이 뒤바뀌게 된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맞게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채워줄 '이타림(아직 약체)'이 등장해서 '별가루 제조법'을 알려주며 새로운 사업(?)을 키우고 사신길드를 장악할 수 있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정작 '별가루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지구인의 입장에서는 별가루는 별다른 '부작용'도 없고 하급 헌터의 능력을 대폭 올려주는 신기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고급 마수를 잡으면 큰 돈을 벌 수 있었기에 '별가루'를 원하는 헌터들은 많았다. 이렇게 수요가 폭발하니 공급량을 늘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

그런데 별가루 제조법이 상당히 끔찍했다. 하급 헌터로 각성했으면서 손쉽게 능력치를 올리고 싶은 욕망을 '악용'하여 꼬드긴 다음 별가루 제조에 필요한 '신앙심'을 발휘하기 위해서 인간을 '미스트 번'이란 마수로 변환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불쏘시개 삼아서 온몸을 불살라 '신앙심'을 증명하게 만들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인간장작'으로 써먹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납치해서 노예로 만들어 죽을 때까지 고된 노동을 시키다 쓸모가 없어지면 그냥 버리는 몸쓸 짓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별가루'를 비싼 값에 유통시키고, 더 많은 수요를 채우기 위해서 '합법적인 헌터 길드'를 만들어서 헌터들을 유인한 다음에 평범한 인간까지 납치해다가 '인간장작'으로 삼았던 것이다. 여기에 이민성이 관여했던 것이고, 이타림은 자신의 온전한 힘을 되찾을 때까지 철저히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나가는 글 : 그럼 '별가루의 정체'란 무엇인가? 아무런 부작용도 없는 능력 향상제가 아니었던 것인가? 놀랍게도 부작용이 있었다. 그건 단 한 번이라도 별가루를 복용한 헌터라면 '이타림'에 의해 '추종자'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없어진 '창조주'를 대신해서 다른 차원의 창조주를 섬기고 복종할 '추종자'로 각성하게 만들려는 것이 '이타림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지구에 도착한 이타림은 의문이 생겼다. 어차피 헌터란 창조주의 유흥을 위해서 생겨난 존재들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구인 헌터는 창조주만이 갖고 있어야 할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 헌터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이타림도 '욕망'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이타림보다 비교할 수조차 없이 약한 존재인 인간에게 어째서 복종하지 않고 저항할 수 있는 '욕망'이란 것이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한편, 성수호도 슬슬 이타림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러나 아빠인 성진우가 싸우고 있는 차원에서 지구로 되돌아오기까지는 너무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기에 지구를 지킬 수 있는 헌터는 '수호' 자신 뿐임을 깨닫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빠처럼 '레벨업'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대격변 이후 헌터로 각성한 수호의 등급은 'E급'이다. 게다가 아빠처럼 '그림자 병사'를 무한히 생성할 수도 없을 뿐더러 가장 중요한 '저장 기능'이 없어서 한 번 소환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아빠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 다양한 스킬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림자 군주였던 아빠의 '후예'인 수호에게 동료란 그림자 군주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군주'였다. 그런데 그 군주들은 아빠가 모두 소멸시켜 버렸었다. 그럼 누가 동료란 말인가?

그걸 찾게 해주는 것이 수호에게 뜨는 '시스템창'이었다. 그리고 사라지고 없어진 군주를 대신해서 '군주의 후예'가 성수호의 새로운 동료가 되었는데,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군주였고, 그마저도 그림자군주인 수호의 아빠가 다 해치우고 난 뒤였다. 과연 성수호는 무사히 '군주들의 후예'를 동료로 맞이하고 아빠를 대신해서 이타림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리뷰 #에세이 #나혼자만레벨업 #라그나로크 #성수호 #이타림 #별가루 #미스터번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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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5 - 노무현 시대의 명암 한국 현대사 산책 2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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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5 : 노무현 시대의 명암>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11)

[My Review MMCCCXXXVIII / 인물과사상사 4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일곱 번째 리뷰는 2008년 이명박 시대의 개막과 2009년 노무현의 부활을 재조명한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5>다. 강준만은 우리 정치를 '밥그릇 싸움''승자 독식주의'라고 정의 내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당시 국회의원 입에서 "대한민국은 '대의정치'라고 헌법에 적혀 있기 때문에 '국민참여정치'는 위헌이다"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자기 밥그릇 지키기'는 여느 시고르자브종보다 고귀한 혈통을 가진냥 '정치'는 자신들의 고유권한이라고 믿을 정도로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그런 까닭으로 '밥그릇 싸움(권력쟁탈전)'은 정말 유치찬란했다. 오죽 했으면 그 당시 우리 국회를 '동물 국회'라고까지 비하했을까. 이런 치열한 싸움의 전리품으로 얻은 권력이니 정말 마음껏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승자 독식주의'라는 표현이 딱 맞다. 그러나 권력 싸움에도 지켜야 할 '품위'가 있고, 승자 독식체제라 하더라도 '견제'가 가능해야 진짜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권력의 승부처인 '선거철'만 되면 그렇게 굽신거리던 정치인이 '선거결과'와 동시에 뻣뻣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 국민의 '민도'가 저급하기 때문에 '그저그런' 정치인 밖에 뽑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책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5> 관점 포인트 : 이명박 시대는 시작부터 떠들썩했다. 어륀지 파동부터 나훈아 기자회견,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강부자(강남땅부자 출신)·S라인(서울시장재직당시 출신) 내각 인사파동, 숭례문 화재 사건,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과 촛불집회 등등 굵직한 사건만 추려도 이 정도다. 정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온나라가 어수선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슈를 잠잠하게 만들기 위해 '더 큰 이슈'로 덮어버리려 했던 것이 이명박 정권의 결정적 패착이었다. '노무현 형(노건평)의 비리 사건'과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 신드롬', 그리고 '용산 철거민 참사' 등 연일 뉴스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과거 노무현 시대의 뉴스와는 결이 다르지 않은가? 노무현 시대에는 대통령이 '내놓은 정책'에 문제가 많다면서 이대로는 나라가 망한다, 경제가 폭망한다, 어그로를 끌더니, 자칭 경제 대토령을 자처하던 이명박 시대에는 '경제뉴스'는 온데간데 없고 연일 터지는 '사건사고'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서 대국민담화에 나와서는 대한민국 경제가 너무 잘 돌아가서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사건사고'에만 주목한다는 식으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 결과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에게 사기친 죄를 물어 감옥에 수감되었지 않은가. 그리고 노무현의 진심 따위는 관심도 두지 않고 '무리한 검찰 수사'로 전 정부 권력에 오명과 모욕만 주려다 대통령이 '서거'를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그때 노무현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는 정치인이 몇 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민주당 사람들은 노무현을 '버린 카드' 취급했다. 과거 독재시절의 전 대통령들에게는 그렇게 굽신거리며 아양을 떨던 정치인들이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등을 돌려버렸다. 얼마나 모욕감과 배신감이 들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무심하게 돌아갔고, 과거의 나쁜 정치스타일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유행처럼 돌고 돌았다. 정치인들의 '연예계 성 상납''박연차 게이트'가 터졌던 것이다. 보수 정권이 가장 잘 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라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경제 대통령 이명박이 하는 일은 뭐든 빵빵 터진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정말 뻥뻥 '비리'가 잘 터졌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대통령이 약속한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그런 비리조차 눈 감아주었다. 부자들이 먼저 잘 살아야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다는 '낙수효과'가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것을 국민들이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그렇게 속고도 다음 정권의 주인공으로 또 박근혜를 찍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국민들 삶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에 이은 미국발 경제위기가 한국도 예외 없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위기감이 해소되지도 않았는데, 2009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은 상승세를 탔다. 우리 나라 족벌신문과 대기업 들의 숨통을 트여줄 '미디어 선진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종편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희소식이 수많은 투자자와 국민들을 혹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경제적으로 활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저소득 서민들의 삶까지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차가운 현실을 인식하기까지 얼마 걸리지는 않았다.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팍팍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가는 글 : 그러자 야당을 중심으로 '노무현이 옳았다'는 식의 논평을 내놓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야 '노무현 정신 계승'을 외치며 다시 민주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이 심어놓은 환상의 거품이 사그라들자 노무현 시대의 정책들이 다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보수정권'에 넘어간 뒤였고, 이들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며 어렵게 다시 잡은 정권을 내려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좋다. 안간힘을 쓴 것까지는 인지상정이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국민의 혈세를 '부자와 대구경북 출신'에게만 몰빵하는 비리는 저지르지 말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사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들은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치며 아무리 똥볼을 차도 실책을 묻지도 않고 찍어주고 또 찍어주는 '보수지지자들의 몫'까지 가로채며 도둑질을 해왔다. 그 결과는 대구경제 폭망으로 현실화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마저 서거하자 민주당 계열은 그야말로 똘똘 뭉쳐야 산다는 모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진즉에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냔 말이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해야 할 민주당이 '차기 대권'을 꿈꾸며 당권을 두고 싸움에만 혈안이 되어 당장 내란세력 척결과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해 '해야할 일'을 망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노무현 대통령 당시 열린우리당의 내분을 보는 것 같다. 이대로 이재명 정부가 실패하고 난 뒤에 후회를 한들 늦을 거라는 걸 정녕 모른단 말인가?

현재 전세계는 K-열풍이 불고 있다. 과거 우리가 동경했던 미국과 유럽, 일본마저 '대한민국'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대한민국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딱 하나 '정치'에서만큼은 전세계가 우려를 보이고 있다. 비상계엄이라는 어려움마저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욱 발전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교과서'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인데 우리 나라 정치인은 부끄러워서 내놓지를 못할 정도로 후지다는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전세계가 정치 분야에서 엉망진창인 상황이라 티가 별로 안나고 있는데, 언제까지 미국이 트럼프를, 중국이 시진핑을, 러시아가 푸틴을, 일본이 다카이치를, 이스라엘이 네타냐후를 수장으로 삼고 똥볼을 찰지 알 수 없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 대한민국이 성큼 발돋움해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이재명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장동혁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한동훈을 믿을 수 있겠는가? 김민석, 정청래도 도찐개찐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아직 정치적 성숙도에 '신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밥그릇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을 차지하고 연장하기 위해서 경쟁상대를 네거티브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정책''비전'으로 국민의 선택을 묻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더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개헌도 해야 한다. 87년 체제에서 아직까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 시절의 대한민국과 2026년의 대한민국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87년 당시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개헌하는 것에 온 국민의 의견을 다시 모으자. 그런 국민들의 의견에 경청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주목'하라. 그리고 국민들의 염원을 '실행'하는데 망설임이 없는 정치인이 있다면 '지지'하라. 똑똑하고 말 잘하고 돈 많은 정치인은 '아웃'이다. 그런 부류가 대한민국 정치를 망치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서민의 어려움을 몸소 겪어보고, 서민들이 겪고 있는 서러움을 이해하고,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은 '정치인'을 지지하라. 안철수와 조국 같이 '부족함'을 모르던 이가 정치에 뛰어들어 얼마나 못하는지 보지 못했는가? 김상욱처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정치인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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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4 - 노무현 시대의 명암 한국 현대사 산책 2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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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4 : 노무현 시대의 명암>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11)

[My Review MMCCCXXXVII / 인물과사상사 4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여섯 번째 리뷰는 2006년 열린우리당의 몰락에서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까지 풀어놓은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4>다. 노무현 정부의 몰락은 열린우리당 몰락에서부터 그 조짐이 확연해졌다. 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뭘 잘못했던가? 그렇게 물으면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개혁한 죄'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허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당시 대한민국에 '개혁'이 절실했는지 의문스러웠다. 다 지나고 난 지금에서야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개혁'을 시작한 것은 절묘한 한 수였고, 그때 여러 분야에서 개혁이 성공적으로 첫 삽을 떴더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엄청난 성과를 더 빨리 피부로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회고하지만, 그 당시에는 '개혁'의 절실함보다 '군사독재 청산'을 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한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만족스럽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국민들의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개혁'에만 박차를 가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국민들은 점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선택한 것이 '한나라당'이었다. 그 선택이 또다시 대한민국을 발목 잡게 만든 것인줄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4> 관점 포인트 :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은 정말 혼란의 도가니였다. 나라꼴이 엉망이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나라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끄럽게 떠들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에게 되묻기도 할 정도였다. "내가 임기 중에 뭘 잘못했는지 꼽아보라"고 말이다. 솔직히 지적할 것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과거 독재정부가 한 짓에 비해서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론은 달랐다. 연일 보수언론을 시발점으로 '노무현 정권의 오만함'을 지적하며 깎아내리기 바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국민들도 그것이 '언론플레이'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딱히 노무현 대통령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은 높아진 눈높이에 걸맞는 '경제성장'만을 더 바라고, 그로 인해 '경제적 풍요'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 국민적 열망이 엉뚱하게 '영어교육 열풍'으로 나타났다. 영어교육에 대한 열풍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래왔지만 이젠 열풍을 넘어 '미친 바람'인 광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영어 사교육시장은 호황을 맞이하고, 그 호황은 '영어유치원 과열경쟁'까지 불어닥쳤다. 거기에 '미드 열풍'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며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발음하는 것에 집착하는 묘한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훗날 이명박 정권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영어공용어 논란', '어륀지 사태' 등 이 미친 바람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이제 국민들은 모두가 '뉴욕 라이프 스타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나라가 살만해지자 다들 제정신을 못 차리는 수준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런 혼란 때문이었을까? 노무현 대통령도 정신 못 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열린우리당이 침몰하고 있는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까지 밀어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들도 개헌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국회의원 4년 임기와 대통령 선거가 딱 맞물리는 최적의 시기라는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연일 몰락하고 있는 '진보 정권'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시키고 싶었던 '보수 정당'은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 아니 하더라도 '보수 정권'에서 하겠다는 야심까지 내비췄다. 그러자 '보수언론'도 이에 발맞춰서 개헌의 취지에 어깃장을 놓으며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니 그러든가 말든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무관심'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차피 진보든 보수든 어느 정권이 권력을 잡더라도 대한민국은 '정상'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이 성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성장한 시민의식만큼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과 사명감이 뒤따르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나중에 엉망이 되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으니 문제였던 것이다.

이 와중에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경선'이 진행되었는데, 열린우리당 경선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반면에 한나라당 경선은 이명박과 박근혜로 후보가 좁혀지면서 흥행가도를 걷기 시작한다. 급기야 열린우리당 '탈당 사태'가 이러나면서 끝내 정당이 와해되고,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진보적 인사들을 다시 헤쳐 모이게 했지만 과도한 견제와 네거티브 전략으로 인해 흥행에는 참패를 하고 말았다. 결국 양당 간 후보는 정동영과 이명박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BBK 주가조작 의혹이 불거지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이와 관련된 사안을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부정했지만, 의혹은 점점 커져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동영 후보가 다음 대선에서 무난하게 '대통령 당선'하는 것이 아닌가 점쳐졌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의 '말실수' 하나로 모든 것은 뒤집어졌다. 유세 도중에 '노인들은 투표를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한 것이 대대적으로 보도가 된 것이다. 정동영 후보는 부랴부랴 해명을 내놓으며 노인들이 걱정할 일 없게 평안한 정치를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미로 한 발언이 언론사들이 앞뒤 맥락은 다 자르고 '의도적인 왜곡'을 하고 있다고 역공까지 나섰지만, 한 번 돌아선 민심은 다시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대선 결과에 그대로 반영되어 득표율 20% 이상의 차이로 이명박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나가는 글 :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노무현 대통령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김구 주석이 독립된 조국이 세계적인 '문화강국'이 될 깜냥을 갖췄다며 예견한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도 대한민국을 진정한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것을 이제야 알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아니 반문하고 싶다. 그 당시 노무현 정부를 비난만 하던 '보수언론'의 지적대로 정책의 방향을 바꿨더니 나라꼴이 어떻게 되었냐고 말이다. 그렇게 찬양하던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만행은 대한민국의 흑역사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우려되는 것은 지금 이재명 정부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어깃장을 놓기만 하는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그때와 다를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개혁정책은 지금 다시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4년 연임 카드까지 판박이처럼 행보를 이어가지 않은가.

그래서 우려스러운 것은 정당한 비판이 아닌 '이유도 빈약한 비난 일색'을 쏟아내는 무리들이다. 이런 비난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맹공을 퍼붓는다. 그때도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는 폭망한다고 떠들었다. 그러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자 '눈물쇼'를 벌이더니, 이제와 또 이재명 정부의 폭망을 떠벌리고 있다. 당시에는 운동권 출신의 '정치 초보'라는 변명이라도 먹혀서 유시민의 격하고 날선 비난을 나름의 '스타일'로, 또 '멋'으로 포장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유시민이 하는 행보는 그저 '폭력, 그 자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치에도 욕심이 없다는 양반이 무슨 속셈으로 그러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그냥 '책장사'에만 충실했으면 싶다. 더 날뛰면 책도 보기 싫어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민주당도 정신 차려야 한다. 윤석열과 내란세력이 어떻게 망해갔는지 잘 보았으면서 내란세력에 빌붙어 '빨대'를 꽂은 놈들과 손을 잡고 알량한 '정치권력'을 차지해보겠다는 심산을 갖고 있느냔 말이다. 정치화한 '종교집단'과는 일절 선을 그러야 한다. 미친또라이 '극우집단'과도 타협은 있을 수 없다. 이는 '극좌집단'도 마찬가지다. 종북과 친중 세력과 '연정'을 꿈꾸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중국 시진핑과 북한 김정은과의 '대화채널'을 열어둘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국익'을 손해보는 일이 있어선 절대 안 된다. 이제는 '미국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는 똘아이 트럼프와 '대화'에 목을 메고 측근이니 로비세력이니 '연줄'을 대고, 그들에게 '신세'를 지는 순간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손해를 감수하는 불리한 처지에 놓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명실상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자 강대국이다. 그리고 세계를 이끄는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의 실책을 '반면교사' 삼아 실리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대한민국은 잘 할 수밖에 없다. 나라를 빼앗겨 본 '경험'에서, 그로 인해 온갖 설움을 당해본 '경험'까지 고루 갖춘 선진국은 역사상 오직 대한민국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다. 특히 근현대사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르게 역사 정립을 해나갈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기조 위에 세운 첨탑처럼 우뚝 서 위용을 자랑할 것이다. 나는 그리 믿는 걸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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