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삼국지 12 - 남양의 공방전
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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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12 : 남양의 공방전>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

[My Review MMCCCLXXIX / 대현출판사 1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두온여덟 번째 리뷰는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 <전략 삼국지 12>다. 11권 마무리에서 유비가 '조조의 품'으로 가 버린 뒤였는데, 12권 마무리에서는 유비가 다시 소패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 사이에 원술이 황제를 칭하자 조조는 원술 토벌의 기치를 내걸고 손책을 앞세워서 여포와 유비까지 대동하고 '남양 공략'을 시작한다. 그런데 '소설 삼국지'와는 사뭇 다른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통에 살짝 헷갈릴 정도였다. 만화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과감한 '건너뛰기'를 하나보다 싶었는데, 다시 이야기를 거슬러서 전후맥락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말았다. 아마도 '연재 당시'에 작가가 아차 싶었나보다. 뭐 어쨌든 <전략 삼국지>가 확실한 고증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따질 게재는 아니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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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12> 관점 포인트 : 앞서도 언급했지만 <전략 삼국지>는 '일본색'이 너무 강렬하다는 지적을 했다. 그 가운데 '무사도 정신'을 앞세워서 중국 한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도, 그림에 나온 배경이나 전투 방식, 무구 장비 따위에 고증은 전혀 근거가 없다. 그래서 마치 일본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화를 보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 일으킬 정도다. 그리고 문제 삼을 것은 '폭력성'이 너무 짙다는 것이다. 하릴 없이 '전투 장면'만을 부각하고 전투 장면이 아니더라도 '살해 또는 학살 장면'만 포커스를 두어 그려내고 있다. 이 때문에 <전략 삼국지>가 비록 '만화 형식'으로 그려졌지만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들에게 장려하기 곤란하다는 지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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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일본의 만화로 그려진 덕분에 <전략 삼국지>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한 점이다. 과연 '애니메이션 왕국'이기에 가능했던 점이다. 그러나 그 애니메이션도 꽤나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와서 수많은 비난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래저래 수작이라 할 수 있고, 의미도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대놓고 일독이나 시청을 권장하기에는 곤란한 작품인 것도 맞다. 그저 <삼국지연의>를 만화책으로 60권(애초에는 30권)으로 출간한 것은 한중일을 통틀어서 이 책이 유일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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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에서 주목할 점은 조조가 장수의 항복을 받고 완성을 수월하게 점령했다가 장수의 형수인 '장제의 처 추씨'를 조조가 희롱한 덕분에 가가스로 죽음을 면했고, 그 때문에 호위무사였던 전위와 첫째 아들 조앙이 조조 대신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조앙의 죽음'을 다루지 않았다. '전위의 죽음'만 장렬하게 묘사하는데 그쳤다. 한편 장수 토벌에 실패한 조조는 여포 휘하에 있는 '진규 진등 부자'의 계략에 의해 필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원술은 '가짜 황제' 행세를 한 죄목으로 조조와 손책, 여포, 유비까지 합세한 총공격을 받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다. 한편, 조조는 남양 공략 당시에 자연재해로 진퇴양난에 빠지고 급기야 '병량부족 사태'까지 맞게 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병량담당자의 목을 대신 베어버리고 가까스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진땀승을 기록한다. 이로써 원술은 세력이 크게 위축이 되고 달아나버리는 꼴이 되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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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이 대목에서 '진규 진등 부자'의 활약이 소설보다 더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어서 나름 좋았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여포에 의해 서주성을 빼앗긴 유비를 돕기 위해 '진규 진등 부자'가 대활약을 펼치지만 끝내 서주가 조조에게 함락이 되자 '진규 진등 부자'는 마음은 유비에게 가 있지만, 몸은 조조에 속하는 상황에서 확실히 '조조의 편'을 드는 이랬다 저랬다 헷갈린 행보를 보여주는데, <전략 삼국지>에서는 애초부터 조조에게 귀의하는 형식으로 그려내니 훨씬 더 명확해지고, '진규 진등 부자'의 말과 행동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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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진규 진등 부자는 누구 편을 들었던 것일까? 여포에게 이익을 챙겨주기는 하지만 여포의 편을 든 적은 없다. 오직 여포의 손아귀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계책을 부린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최종적으로 조조에게 붙었으니 조조의 편이라 보면 좋을까? 그것도 아니다. 진규 진등 부자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조조에게 납작 엎드린 자세를 취하긴 하지만 조조를 맘속 깊이 우러 나온 충성을 바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유비의 편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진규 진등 부자'의 마음은 유비에게 기울어진 것이 옳다. 허나 유비는 서주를 스스로 지켜낼 힘이 부족했다. 그래서 진규와 진등이 계책을 써 여포를 배신하고 유비에게 서주를 되돌려주려 애썼지만, 결국 대세는 조조에게 있었기에 진규 진등 부자는 '조조의 품'에서 목숨을 부지하려 했다. 그럼 누구의 편이란 말인가? 오직 하나 '황제의 편'이었다. 왜냐면 그들 부자는 '한나라의 녹을 받는 충직한 신하'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조조에게 납작 엎드렸지만, 실제로는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기 우ㅣ해서 조조를 기만한 셈이다. 그럼 진규 진등 부자는 어찌하여 '유비의 편'을 들려 부단하게 애를 썼을까? 그건 다름 아니라 유비가 다스리던 서주가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비는 황제의 숙부라는 명분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규 진등 부자는 유비에게 충성과 정성을 다 쏟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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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조가 군량이 부족했을 때 썼던 계책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내리는 것이 좋을까? 30만 병사의 사기를 우선해야 할까? 군량담당자 단 한 명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까? 결론적으로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라면 군량담당자 한 명을 희생해서라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이는 매우 타당한 결정이었으며, 위급한 순간에 '딱 한 번'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기에 적절한 순간에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센스는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조조라는 인물이 '정말 비정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목숨을 빼앗는 방법을 조조라는 인물이 '높은 지략'을 소유하고 있다는 에피소드 정도로 소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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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로써 나관중은 조조를 악역으로 만드는데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를 두고 지략이 높다느니, 실력이 좋다느니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이 합당하냐는 것이다. 매우 부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이지 않은가 말이다. <삼국지>에 이런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에 어린 독자들이 읽기에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여기에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폭력성'이 가미가 되니 더욱 극명하게 조조의 비정한 면모가 더욱 잘 드러나게 되었다. 거의 '여백사 살해 장면'과 맞먹을 정도의 비호감을 준단 말이다. 이렇게 조조를 악당으로 만드는 것이 정녕 옳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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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11 - 손책의 쾌진격
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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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11 : 손책의 쾌진격>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

[My Review MMCCCLXXVIII / 대현출판사 1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두온일곱 번째 리뷰는 손책의 대활약과 유비가 조조의 품으로 숨어버리는 <전략 삼국지 11>이다. 유비의 시작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의병을 이끌고 패전을 모르고 대활약을 펼쳤지만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십상시들에게 뇌물을 건내지 않은 까닭에 쥐꼬리만한 '현위(현 지방파출소 소장쯤)직'을 받았으나, 그마저도 독우가 미처 받지 못한 뇌물을 챙기겠다며 찾아와 야료를 부리자 유비는 현위직을 내던지고 독우를 작살낸 뒤에 떠난다. 독우가 유비에게 현상수배를 걸자 유비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공손찬의 그늘'에 숨었다가 십상시의 난 이후에 다시 날뛰는 황건적 잔당들을 소탕하는 공을 세워 과거의 죄를 씻고 '평원 현령'을 지내게 된다. 이제 겨우 송곳만큼 세력을 키울 근거지를 갖게 된 것이다. 허나 세력을 키울 새도 없이 '반동탁연합군'이 일어나자 유비는 독자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연의>에서는 공손찬과 합류한 것으로 나오지만 '정사'에는 공손찬은 연합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암튼 사수관과 호뢰관에서 연이은 대활약으로 유비삼형제는 널리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허나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를 하는 바람에 유비는 얻은 공도 없이 다시 평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 조조의 아버지가 도겸의 휘하 장수에게 참살을 당한 뒤에 조조가 대학살을 하며 서주공략을 할 때 유비가 도겸의 편을 들어 조조의 공격을 중단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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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여포가 빈집털이를 하면서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를 차지하게 되고 조조는 부랴부랴 퇴각한 뒤에 여포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결과는 일진일퇴 무승부라고 할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허나 여포는 지구전에 약했다. 조조가 계략으로 여포를 압도하니 여포는 또다시 유랑길을 떠나야 했고, 그 사이 서주 태수가 된 유비의 품으로 들어가 소패성에 머물게 된다. 그럼 유비는 서주성을 차지하고 세력을 기를 수 있었을까? 아쉽게도 그럴 틈이 없었다. 조조가 천자를 허도로 데리고 오면서, 승상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조조는 황제의 명을 빌어서 주변 제후들에게 감놔라 배놔라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유명한 이호경식, 구호탄랑 계책으로 유비는 여포와 이간질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꾀가 부족한 여포는 이를 덥썩 물어버리고 유비가 원술을 공격하러 빈틈을 보인 틈을 노려 서주성을 빼앗아버린다. 그렇게 유비는 애써 안희에서 평원으로, 평원에서 서주로, 점점 세를 불려가는 듯 싶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여포에 이어 원술까지 유비를 공격하자 유비는 어쩔 수 없이 '조조의 품'으로 들어가고 만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길 바란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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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11> 관점 포인트 : 손책은 아버지가 남긴 유물인 '전국옥새'를 원술에게 쥐어주고 약간의 병사를 빌려 '강동 평정'에 나선다. 손책은 파죽지세로 강동의 땅을 평정해나갔고, 유요에 이어, 엄백호, 그리고 왕랑까지 토벌하는데 성공하면서 강동 일대의 땅 전부를 손책이 차지하고 다스리게 된다. 이로써 그 옛날 패왕이라 불리던 항우에 필적하는 업적이라면서 손책을 '소패왕'으로 불리게 된다. 손색 없는 별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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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옥새를 쥔 원술은 황제에 걸맞는 지위를 얻기 위해서 주변을 평정하여 위엄을 널리 알리려 했는데, 마침맞게 손책이 빌려간 병사를 10배로 갚을테니 맡겨둔 '전국옥새'를 돌려달라는 전갈을 보낸다. 원술은 이 소식을 묵살하고 '정복야욕'을 드러낸다. 그래서 손책에게 공격을 지시했지만 주변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선다. 강동을 평정하는데 힘을 쏟았다가 도리어 여포에 의해서 '빈집'을 털릴 우려가 더 크다는 것이다. 여포의 빈집털이는 어느덧 유명세를 떨쳤던 것이다. 조조의 연주을 털더니, 유비의 서주를 털었고, 이제 원술 차례가 될 수도 있다는 꽤 합리적인 이유를 들으면서 원술은 그럼 누굴 쳐야 좋은지 되물었다. 그러자 유비를 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여포가 유비를 도울 수도 있으니 지난 번에 약조한 '보상'을 챙겨보내주면서 유비를 치러가는데 길을 빌려달라 말하면 재물에 욕심이 많은 여포라면 반드시 유비 공략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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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여포를 너무 만만히 보았다. 여포도 그 정도 계책쯤은 파악할 수 잇ㅇㅆ다. 아니 도리어 여포에 의해서 유비군과 원술군은 싸움 직전에 화해를 하게끔 기지를 발휘한다. 자신의 창을 100보 뒤에 꽂아두고 활을 당겨 맞추면 '하늘의 뜻'이니 전쟁을 멈추고 각 진영으로 군대를 되돌리는 것이 낫겠다고 다짐(?)을 받고 활을 쏘니 화살은 힘차게 날아가 여포의 창에 꽂혀 버린 것이다. 그렇게 여포가 유비를 도와 원술군을 물러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으나, 장비가 여포의 말을 훔치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이 겹쳐서 으르렁 데다가 유비는 여포에게 쫓겨 어쩔 수 없이 '조조의 품'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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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손책도 그렇고, 여포도 그렇고, 정말 이들은 세력을 파죽지세처럼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다. 지략이 높고 낮은 차이점을 빼놓고 비교한다면, 손책과 여포는 매우 닮았다. 저돌적인 공격을 즐겨 사용하며 전투를 벌일 때에도 가장 앞선 자리에 가장 엄청난 공을 세우며 자신의 군대를 사납게 조련하는 방식 또한 그렇다. 그런 둘이기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것까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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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둘이 일찍 죽지 않고 유비나 조조만큼 오래오래 살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동오는 손권에 의해서 오래도록 지켜낸 강국이었다. 그런데 손권이 아닌 손책이었다면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조조보다 앞서서 장강 이남을 다 평정하고 오히려 조조의 뒤를 쳤을 것이다. 그래서 적벽대전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장강이 아니라 황하가 주무대로 장식되었을 것이다. 한편 여포가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일단 관도대전의 주인공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여포가 오래 살려면 우선 '책사'가 절실했다. 만약 제갈량 같은 책사가 여포 곁에 있었다면 여포가 하북의 주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싸움터에 나서면 '천하무적'으로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과감한 저돌적 맹공이 주특기인 손책과 여포의 무력 앞에서 다른 제후들은 벌벌 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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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 ㅣ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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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 히로시마 레이코 / 김지영 / 넥서스Friends (2026)

[My Review MMCCCLXXVII / 넥서스Friends 1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두온여섯 번째 리뷰는 일본 작가가 쓴 판타지소설인데 대한민국 판타지 1위를 차지한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이다. 뭐, 일본 오리콘 차트에 한국의 K-pop 가수가 1위도 하는 세상인데 그럴 수도 있지 싶으면서도, 우리 나라가 '판타지소설 분야'에서 우리 것으로 순위를 석권한 대표작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떠오르게 했다. 하긴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 지소설도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롤링의 <해리포터>이니 우리 나라 판타지소설은 아니다. 아, 이우혁의 <퇴마록>을 판타지소설로 본다면 정말 세계적인 대표작이 될 만한데, <퇴마록>은 '호러·공포소설'로 분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긴 <퇴마록>을 좋아하는 나였기 때문에 '요괴'가 등장하는 레이코의 <요괴의 아이> 시리즈를 즐겨 읽었던 모양이다. 암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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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 관점 포인트 : 요괴와 인간 간의 대전쟁을 끝낸 뒤의 이야기의 흐름은 '인간의 아이'가 좀 더 많은 비중으로 등장하는 느낌을 준다. 그것도 '버려진 아이'의 이야기가 말이다. 사실 애초에 요괴 아이 돌보미를 맡고 있는 야스케도 '버려진 아이'였다. 그렇게 겨울 산속에 버려진 야스케를 구하고 살린 것은 센야라 불리는 대요괴 바쿠란이었고 말이다. 그 둘은 강한 끌림으로 서로를 끌어당겼고, 그렇게 맺은 인연은 끊질기게도 지금의 어른이 된 야스케와 다시 아이가 되어버린 센키치로 만나 함께 지내게 되었다. 어릴 적 야스케가 센야에게 응석을 피우던 것처럼, 이번에는 센키치가 야스케에게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하는 응석쟁이로 등장하면서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라는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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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내용은 대부분은 '요괴'가 등장하는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대전쟁'까지 벌어지는 판국에 다다르게 되자 '빌런'이라 부를 수 있는 '악당캐릭터'가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악당캐릭터는 대단히 비이성적이고 부도덕하며 결정적으로 '비인간적인 면모'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한껏 욕심을 부리는 캐릭터로 등장하곤 한다. 심지어 비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이들이 '인간캐릭터'라는 사실이 거의 충격적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래서 책 내용을 읽다 보면 '인간이 요괴 같고, 오히려 요괴가 인간 같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도 악당이 악당짓을 하게 된 이유까지 밝혀지고 나면 악당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밝혀지면, 이게 또 악당이라고 막 미워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나 처지에 놓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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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걸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것 가운데 하나가 '남탓'이고 '환경탓'이다. 내가 나쁜짓을 하긴 했지만 '원래부터' 나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저놈이 날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된 것이니 '내탓'이 아니라면서 '남탓'을 하곤 한다. 또한 나는 선량한 사람이었는데 불우한 환경 때문에, 또는 상황이 너무 절박해서 어쩔 수 없이 나쁜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탓'이 아니라 '환경탓'이 더 크다. 듣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말이다. 착한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두고 '남탓'을 하지 않고 '자기탓'을 먼저 한다. 진짜 선량한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큰 잘못을 '자기가 부족한 탓'이라고 하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거나 '불우한 환경 탓'으로 떠넘기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 멋진 사람은 그렇게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모든 것을 다 극복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일제시대 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하거나 매국에 앞장 섰다고 변명하는 사람도 있고, 그 시절이 너무 엄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얘기하며 선처를 바라는 뻔뻔한 사람도 있지만, 그 똑같은 처지와 상황에서도 목숨을 내놓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독립운동가도 있었다. 적어도 선처를 바라는 뻔뻔한 자들이 독립운동가를 모욕하거나 욕보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잘못을 저지른 악당을 선처하는 것은 둘째 문제고, 가장 처음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아무리 어려운 처지나 상황에 놓였더라도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지 않고 정의와 사랑의 이름으로 부끄럽지 않은 일을 했는지 여부다. 도덕과 윤리, 정의와 사랑은 어떠한 처지와 상황 속에서도 '절대불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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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이 책의 내용이 때로는 섬뜻하고 참혹할 정도로 불건전한 설정(특히, 어린 아이를 유기하거나 납치하는 대목따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즐겨 읽는 까닭은 바로 그런 처참한 이야기 속에서도 도덕과 윤리, 정의와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 '절대불변의 것'을 신념으로 삼고 온갖 부도덕하고 악의와 미움 따위를 처참하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어주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아름다운 마음을 갖도록 무던히도 애를 쓰는 모습이 예뻐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괴 돌보미' 일을 하는 야스케의 모습이 더 없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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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변덕스럽고 종 잡을 수 없는 '요괴들'이 펼치는 이야기라 지은 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형벌'로 단죄하기도 해서 경각심을 갖게 된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은 소중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어도 강한 힘으로 파괴하고 처단하며, 심지어 복수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려서 난도질을 하는 것에는 결사반대다. 그런데 이 책에는 종종 그런 장면들이 아무런 여과도 없이 그대로 연출되곤 한다. 아무리 악당이 나쁘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한 '설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어린 독자들이 읽을 책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표현할 일이 있겠냐는 것이다. 더구나 선처나 용서도 없이 처벌만이 능사라는 식은 좀 자제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것이 아닐 대요괴의 분노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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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서사는 일본 에도시대라는 '신분(계급)사회'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신분제가 엄격히 적용되었던 '시대극'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묘사한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 '그 시절의 독자'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독자는 '현대인'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시대극의 고증도 중요하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기에 불편함을 끼쳐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육아'라는 글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니 등장인물이 대부분 나이 어린 인물로 등장하는데, 10살 이하의 어린 인물이 세상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깊고 깊은 원한을 품고 있으니 아무리 대요괴의 힘을 빌리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설정'은 좀 과했다고 본다. 어린이 독자들이 읽어서 탈이 날 것 같은 끔찍함은 배제했어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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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에서 '말도 안 되는 부탁'과 '야만바의 아이'는 그 정도를 넘어선 듯 싶어서 좀 꺼려지는 내용이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부당한 권력의 힘을 사용해서 야스케의 모든 것을 앗아버리고 센키치는 '양아들'이란 허울 좋은 이름 아래 '노리개'감으로 삼으려 한 이야기나,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자신을 버리도록 만든 마을 사람들 전부와 친엄마와 친누이까지 모두 죽이고 마을까지 파괴해버리려는 복수심에 불타는 아이를 등장시키는 것도 많이 깨름직했다. 그렇게 끔찍한 이야기를 전개시켜놓고 엔딩은 '해피'하게 끝맺었다. '인과응보'와 '반면교사'라는 교훈적인 내용을 포함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런 교훈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토록 '폭력적인 방법'을 썼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주인공 야스케의 목숨까지 왔다갔다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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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현재까지 나온 시리즈는 모두 리뷰를 했다. 작가가 1년에 한 권 꼴로 출간을 하는 것으로 보아 내년 2027년에 7권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10권까지 출간할 것이고 말이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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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에세이 #요괴의아이를키우고있습니다 #히로시마레이코 #판타지소설 #요괴 #폭력적 #철학적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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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 ㅣ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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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 히로시마 레이코 / 김지영 / 넥서스Friends (2025)

[My Review MMCCCLXXVI / 넥서스Friends 1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두온다섯 번째 리뷰는 대요괴들의 맹활약과 거대한 분노가 서린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다. 히로시마 레이코의 작품 가운데 이렇게 대규모 전투씬(?)이 등장하는 것은 처음인 듯 싶다. 흡사 <반지의 제왕>에서 '종족간 전투'가 벌어지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물론 이런 대규모 전쟁이 벌어진 까닭은 앞선 이야기에서 '쓰쿠모가미' 요괴와 그 요괴가 깃든 물건을 소중히 다뤄줄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중매쟁이 주로'가 요괴들을 배신한 탓 때문이었다. 과연 주로는 왜 요괴들을 배신하고 '인간의 편'에 서게 되었나?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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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 관점 포인트 : 이번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 vs 요괴의 전쟁'이다. 히메가미라는 무녀 출신의 인간 아이가 '요괴'를 도구로 삼아 '식신'이라는 꼭두각시 악귀로 만든 다음에 요괴들을 무차별적으로 보이는 족족 죽여버리려 했다. 그 까닭은 요괴 때문에 인간들이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요괴를 박멸해야만 한다고 사람들에게 '세뇌'를 시켰고, 그 세뇌에 빠져든 사람들은 히메가미가 준 '식신'을 이용해서 힘이 약한 요괴는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 소멸시켰고, 요괴에 친하게 지내는 인간은 히메가미가 직접 나서서 '세뇌작업'을 한 뒤에 요괴를 죽이는 일에 앞장 서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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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줄거리를 읽다 보면 '힘 없는 요괴'나 '힘 약한 인간' 들을 납치해서 소멸시키거나 잡아다 자신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감금시키고 '세뇌'시켜서 자기 편으로 만든 뒤에 요괴를 이용해서 만든 '식신'을 무기로 삼아 또 다시 요괴들을 잡아다 죽이려는 내용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히메가미라는 인간 아이는 왜 요괴를 그토록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건 자신이 인간이었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던 무녀의 삶 때문이었다. 히메가미의 원래 이름은 '리쿠'였다. 리쿠는 어린 나이에 무녀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 막 세상사람들을 알기 시작했을 여섯 살이란 어린 나이에 고독하고 정갈하게 살아가는 것을 강요 받는 무녀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마을에 재난이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아직 어린 무녀의 신통함이 무뎌진 탓이라며 핍박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것이 "다 네 탓이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리쿠는 그런 사람들의 핍박과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작은 몸짓'을 오해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 시체마저 절벽 아래로 던져지고 말았단다. 그 뒤에 마을은 더 큰 재앙이 찾아와 산사태가 일어났고 온통 흙더미에 묻혀 마을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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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죽임을 당한 리쿠는 자신이 죽은 것조차 '인간' 때문이 아닌 '요괴'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세상의 모든 요괴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히메가미'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다시 살아나게 만들어 자신의 부하로 삼고 요괴 퇴치에 나섰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요괴는 나쁘다는 '잘못된 신념'을 자신의 무리의 모토로 삼고 말이다. 그 뒤로 인간 마을에서 사라지는 요괴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앞선 마키의 요괴 엄마도 바로 이 무리의 꼬드김에 넘어가 '사악한 주술'로 포박 당한 뒤,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었다. 그럼 주로는 왜 배신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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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는 원래 인간이었다. 허나 인간으로서의 삶보다 요괴로서의 삶이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 기꺼이 요괴가 된 경우였다. 그렇기에 이런 주로가 요괴의 삶을 경멸하고 인간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배신'을 했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힘들다.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을 것이다. 주로는 원래 '중매쟁이 요괴'였다. 인간들이 즐겨 쓰고 애정을 담아 소중히 다룬 '물건'이 쓰쿠모가미라는 요괴가 되는 것을 도와주는 요괴이며, 그렇게 쓰쿠모가미가 된 요괴에게 새로운 주인을 찾아 '인연'을 맺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중매쟁이 주로'가 하는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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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30년 전 주로가 처음으로 쓰쿠모가미 요괴를 만난 일이 이 대전쟁의 시작이었다. 바로 주머니칼 '키초'라는 쓰쿠모가미였다. 키초는 고귀한 아가씨를 위해 만들어진 호신용 칼이었는데, 그 아가씨가 그만 너무 일찍 죽고 만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키초는 '자신의 소임'인 아가씨를 지키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끄러움 때문에 아가씨의 무덤을 지키고 있다가 주로를 만나 새주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러다 주로가 리쿠를 만났을 때 외롭게 홀로 지내는 아이에게 딱 어울릴 만한 쓰쿠모가미라는 생각에 키초를 건내주었고, 리쿠와 키초는 첫 만남부터 서로를 향해 강한 끌림을 느꼈고 함께 있어서 행복했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마을에 재난이 찾아왔고 이를 항의하러 온 마을 사람들에 의해 모진 일을 당하던 와중에 리쿠는 자신의 몸을 지키겠다는 생각에 '키초'를 손에 들었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협한다는 오해를 하고서는 키초를 빼앗아 그대로 리쿠의 가슴에 꽂아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리쿠는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고, 키초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다른 사람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지만 새주인인 리쿠의 가슴을 찌는 것은 키초 자신이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고, 죽는 순간까지 함께였다. 그 뒤에 리쿠와 키초는 서로 '한몸'이 되어 히메가미가 되었고,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인간에 대한 원한보다 '요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갖고 이런 엄청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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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우리는 쉽게 '남탓'으로 돌리는 나쁜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곤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대개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드는 '자기 이익'만 충족시키려는 헛된 욕심 때문에 그런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그래서 자신이 벌인 잘못인데도 '남탓'을 하면서 자기 책임을 회피하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당장의 괴로움에서 쉽게 벗어나는 어리석은 짓을 벌이곤 한다. 이건 정말 비겁한 짓이다. 작게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짓이면서,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이면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불신'에 빠져들게 만들고, '혼란'을 부추기며, 공동체 전체에 엄청난 '위기'를 몰고 오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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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책임하고 자기 편한대로만 사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한 사람이 속한 집단과 단체, 그리고 사회나 국가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겁한 짓을 경멸하고, 때로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왜냐면 고작 한 사람의 욕심에서 시작한 '거짓'으로 인해서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무고하고 힘 없는 사람부터 엄청난 피해를 보고 심지어 애꿎은 목숨을 잃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못을 저질렀다면 작은 일일 때 스스로 책임을 지고 그에 걸맞는 벌을 받고 잘못을 뉘우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 작은 책임과 벌, 그리고 망신을 당하기 싫어서 '무책임하게 행동'한 뒤에 뒤수습마저 남에게 떠넘기는 짓을 하게 되면 결국 그 책임은 '다른 사람'이 대신 져야 하고, 그로 인해 '억울한 사람'도 발생하며,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대신 '희생' 당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는 일이 벌어질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정말이지 이런데도 '남탓'을 하며 자기가 한 행동에 '반성'과 '책임'을 회피하고 말 것인가? 그런 무책임한 행동을 일삼는다면 정말 구제불능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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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이야기에서 주로가 한 '배신'은 실로 엄청난 죄였다. 단순히 연인이었던 아세미에게 상처를 주고 실연의 아픔을 주거나, 대요괴들의 힘이 담긴 결정을 빼돌려서 달아난 죄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로가 애초에 '중매'를 잘못 서는 바람에 리쿠와 키초는 애꿎은 요괴들에게 '원한'을 갖게 만들었다는 점이 '원죄'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 죄책감을 해소하고자 다시 한 번 '배신'을 한 행위로 인해서 '인간의 도구'로 악용되는 요괴들이 희생 당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그로 인해서 '인간 vs 요괴' 사이에 대전쟁이 벌어져서 수많은 희생자와 살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렇게나 큰 죄를 지은 장본인이 바로 '주로'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렇게나 큰 죄를 지은 '죄인'에게 내려진 형벌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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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또 어처구니 없는 것이 그렇게나 큰 전쟁이 벌어졌는데, 다친 사람과 요괴 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죽은 사람과 요괴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고, 납치되어 사라진 요괴들도 히메가미가 소멸함에 따라 주술이 풀려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죄에 비해 미약한 처벌을 내렸던 것이다. 오히려 주로가 배신과 범죄를 저지를만한 '사연'이 정상참작 된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야스케는 히메가미에게 '세뇌'를 당해 가장 사랑하는 센키치의 목을 조르며 죽이려 했다는 '기억'도 삭제해버렸기 때문에 더는 슬플 일이 없다. 그러니 주로에게 벌을 내려야 할 죄가 이미 사라졌으니 미약한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일단락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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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주로가 배신을 해서 '심리적 상처'를 받았던 수많은 요괴들은 어짜 할 것인가? 이들의 마음에 뻥 뚫린 상처를 남긴 것은 '죄목'에 없는 것인가? 또한, 주로는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 무리'에 잠입을 하려 했고, 그 때문에 '대요괴의 결정'을 담보로 넘겼으며, 그 엄청난 힘으로 인해 수많은 요괴들이 나쁜 인간의 '도구'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자신의 배신을 믿게 만들기 위해서 몇몇 '쓰쿠모가미'는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일도 발생했고 말이다. 이들도 요괴임에 분명하며, 이로 인해 '소멸' 당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애초에 '생명이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소멸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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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린이책에 나온 이야기를 '법정드라마'라도 보는 것처럼 시시콜콜 따지면서 볼 것은 없겠지만서도 엄청난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마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이야기일수록 '결말'만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또한 아름다워야 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기상천외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마무리만 아름답게 포장한 듯 싶어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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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4 ㅣ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4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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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4> 히로시마 레이코 / 김지영 / 넥서스Friends (2024)

[My Review MMCCCLXXV / 넥서스Friends 1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두온네 번째 리뷰는 요괴에게도 '모성애'가 있는 것인지 호기심을 자아내는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4>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자기가 낳은 새끼를 옹야옹야하는 '모성애'가 있다는 뜻인데, 그럼 '요괴'에게도 모성애는 있는 것일까? 일단 요괴도 어미의 몸속에서 태어난 존재이므로 인간 못지 않게 '모성애'가 있다는 바탕 위에 이야기를 써갔다. 하긴 지난 3권에서는 '사랑'도 하고, 이미 전작인 <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에서 인간인 규조와 화사족 요괴 하쓰네가 서로 사랑의 결실을 맺어 혼인도 하고 아마네와 긴네 딸 쌍둥이도 낳아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와중이니 요괴와 인간의 차이는 일단 없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요괴의 모성애를 악용하여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는 악당이 등장했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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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4> 관점 포인트 : 지난 3권부터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권에 여러 에피소드를 담고, 각각의 주제를 펼쳐보이는 방식으로 책을 써가고 있어서 리뷰도 어느 하나만 골라서 쓰기가 곤란해졌다. 그렇다고 리뷰를 책 한 권 분량으로 쓸 수는 없기에 그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집중적으로 쓰려 한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을 읽는 느낌도 살짝 나기 시작했다. 그 시리즈에서도 전편에 흐르는 이야기 흐름에 '별개의 에피소드'를 속속 담아 놓은 것처럼 이야기를 끌어가더니 이 책도 그런 식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에 리뷰 쓰는 걸 달가워하지 않기에 살짝 삐쳤다. 어차피 '전천당'도 리뷰를 쓸 계획이기 때문에 워밍업 삼아 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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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야기는 '두 남녀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 태어난 축복, 아이'에 대한 것으로 시작했다. 천하의 바람둥이 구로모리가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해 와서 야스케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했는데, 구로모리의 아내인 하지카미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두 요괴가 대판 싸울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서가 아니라 구로모리가 그동안 바람을 피웠던 까닭이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아내를 대신해서 '아이'를 낳아줄 대상을 찾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구로모리가 바람을 피운 것은 사실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남겼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로모리가 납치(?)한 여자아이 '히루'가 문제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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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루는 어느 마을에 버려진 아이였는데, 마을 사람들은 히루를 죽지 않게 돌봐주면서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구박하고 쫓아내고 죽을 정도로 방치해 버린다. 그러다가도 히루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마을 사람 중 하나가 나서서 데리고 와 밥 먹이고 씻기고 편안한 잠자리까지 제공해주지만, 다시 몸이 회복되는 또 다시 구박이 시작되고 돌보던 집에서도 내쫓아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까닭인 즉슨, 마을에 가뭄이 들면 수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비가 오곤 했는데, 그때 제물로 바치던 것이 다름 아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산 사람'을 말이다. 어쩌다 그런 풍습이 생긴 것인지는 몰라도 버려진 우물에 '산 사람'을 던져서 죽이면 아무리 가물었다가도 비가 흠뻑 내리길 반복하니 마을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노인이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약한 사람'을 산 제물로 삼아 가차 없이 우물에 내던졌던 것이다. 다음 '산 제물'이 바로 히루였던 것이고, 그래서 히루를 죽지 않을 정도로만 데리고 있었고 도망가지 못하게 마을사람들이 감시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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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알아챈 히루는 스스로 제물이 되어 우물로 뛰어들었고, 수신에 버금가는 요괴였던 구로모리는 그런 히루를 불쌍히(?) 여겨서 구해내고 돌봐주려 한 것으로 모자라 자신과 아내의 딸로 키우려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간 우물에 버려졌던 사람들도 사실은 구로모리가 안전하게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누가 인간이고 누가 요괴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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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에서는 규조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마키'가 찾아온 이야기다. 마키의 엄마는 게이샤(기생) 아예였는데, 야에가 마키에게 말하길, 마키의 아빠는 규조라는 훌륭한 분이라고 얘기해왔기 때문에 자신은 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밝혔다. 규조는 그런 마키의 이야기를 듣고 입이 쩍 벌어졌지만 야스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식으로 규조를 탓하며, 마키와 함께 아빠를 찾았던 아마네와 긴네는 아빠의 표정을 보고 놀랐지만, 더 놀란 사실은 그 뒤에 이어진 마키의 행동이었다. 자신이 당신의 딸이 확실하니 아마네와 긴네를 내쳐버리고 자신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규조는 그런 마키의 말을 듣고 단칼에 거절하며 널 내 딸로 인정할 수도 없고 너와 함께 사는 것은 더욱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마키의 등을 떠밀어 내보내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안 하쓰네는 규조를 탓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 사실을 탓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딸, 마키'를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게 쫓아낼 수 있느냐면서 무정한 규조와 함께 살 수는 없으니 자신은 당분간 친정에 가 있겠다며 아마네와 긴네까지 데리고 떠나버리고 만다. 규조는 졸지에 홀아비 신세가 되어 야스케 집에 얹혀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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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도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 사실 마키는 자신의 친엄마를 죽게 만들고, 요괴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요괴 엄마에게 부탁(?)을 해서 다 갖게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짓을 벌이는 나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조에게 쫓겨난 마키는 '요괴 엄마'에게 부탁을 하며 아마네와 긴네를 죽여 달라고 한다. 그래야 자신이 규조의 유일한 딸이 될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럼 요괴 엄마는 나쁜 요괴일까? 그건 아니었다. 요괴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잃고 엄청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인간이 찾아와 아이를 잃어버린 요괴에게 주술을 걸어 '아이를 되찾아주겠다'면서 그 대가로 '눈'을 영원히 가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서는 그 주술을 건 인간이 '딸'이라면서 요괴 엄마에게 붙여주었는데, 그 딸이 바로 '마키'였다. 그리고 마키는 요괴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제 욕심껏 '부탁'을 했는데, 요괴 엄마는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곤 했다. 심지어 사람을 죽이면서 말이다. 이게 바로 '주술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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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주술의 정체는 '요괴'를 노예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사악한 주술이었던 것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에 빠진 요괴의 마음을 파고들어서 '음흉한 거래'를 하게 만들고, 그 거래에 응답한 요괴는 '노예'처럼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함부러 부려지다가 생명이 다하면 버려지게 되는 나쁜 주문이었다. 그리고 인간 소녀였던 마키는 그런 나쁜 주술을 건 인간의 꼭두각시가 되어 '요괴 엄마'를 이용해서 제 욕심을 채우는 나쁜 짓을 일삼았고 말이다. 마키는 자신의 엄마마저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말이지 구제받지 못한 아이였다. 이런 아이였기에 사악한 주술을 걸어 '요괴의 힘'을 악용하는 음흉한 주술사에게 철저히 이용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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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그러나저러나 큰일이 난 것은 규조를 비롯해서 '힘이 약한 요괴들'이었다. 음흉한 주술사에 의해 '노예'가 되어버리면 죽을 때까지 이용만 당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그냥 버려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스케도 돌보미 일을 잠시 멈출 정도가 되었다. 행여나 그 주술사가 변장을 하고 야스케의 집을 찾아온다면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요괴 가운데 강력한 힘을 가진 '대요괴'가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의 힘이 담긴 '부적'을 만들어서 요괴들이 가지고 다니면 아무리 사악한 주술이라하더라도 막아낼 수 있겠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장장이 요괴 아세비에게 부탁해서 '대요괴의 힘'이 담긴 정수를 이용해서 부적을 만들게 했고, 아세비는 그 일에 열심이었는데, 그녀의 연인 '주로'가 대요괴의 힘이 가득 담긴 '정수'를 빼앗아 달아가게 되는데... 어째 이야기가 점점 더 스케일이 커져간다. 전작에서도 이러다가 급격하게 마무리가 되어 버렸는데 말이다. 아직 4권에 불과한데 벌써 엔딩이라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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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이번에 이야기해 볼 주제는 '모성애'다. 사실 과학적으로는 '모성애는 없다'는 결론이 나긴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따뜻한 감성을 부정하며 살아가면 얼마나 삭막해지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모성애의 존재여부를 '과학' 따위에 의지하고 맹신해서 실망부터 하지는 말자. 나를 낳고 길러준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모성애'는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뜨겁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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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에서 요괴 엄마에게도 '모성애'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신선했다. 더구나 인간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밥맛'으로 등장하니, 차라리 '요괴 엄마의 모성애'가 더욱더 절절하고 뭉클해졌다. 한편 인간 캐릭터는 비정하고 매정하게 매번 등장을 하니 요괴들이 주인공이면 악역은 인간이 도맡게 되는 것은 당연한 전개인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참주제는 '인간과 요괴의 대결'이 아닌 '둘 모두의 공존'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어차피 요괴라는 것도 '인간의 마음'속에서 투영되어 만들어진 존재인 까닭에 비록 '다르게' 표현되었을지라도 '인간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존재임을 잊어선 안 된다. 인간끼리도 서로 '차별'하면 안 되는 것을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해서 차별이 당연하다는 것은 절대 성립할 수 있는 논리다. 이 책이 이렇게 훌륭한 주제를 품고 있는데, 이야기 속에서는 너무 잔혹하고 처절한 '설정'을 전제로 깔고 있어서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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