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16 - 삼국간섭과 갑오개혁 본격 한중일 세계사 16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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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III / 위즈덤하우스 32번째 리뷰] 청일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조선에선 '동학도'들의 막바지 항거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일본군에 의해 '경복궁'이 점령 당한 뒤라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도리어 일본군의 뒷배를 믿고 '동학도'들을 토벌하러 내려오는 '경군(조선군)'은 막강한 화력으로 쓸어버리고 만다. 이렇게나 막강한(?) 화력으로 애초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경군'을 보내 해산을 시켰더라면 일본군에 의해 그리 전쟁에 휘말리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고종은 '경군'을 보내지 않고 '청나라 원병'을 요청해서 이 사달을 만들었던 것일까? 그건 바로 '흥선대원군'이 호시탐탐 경복궁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종으로서는 '임오군란'의 참담함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흥선대원군'이 정말로 실력행사를 할 정도로 힘을 갖췄을까?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흥선군의 적손자인 '이용준'이 있었기에 고종으로서는 '경복궁 수비'를 비워둘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동학도 토벌을 위해 경군을 내려보냈다면 흥선군은 보란듯이 '쿠데타'를 일으켜 경복궁을 포위했을 것이고, 고종의 반대세력(개화파)과 연합한 흥선군은 또다시 고종을 괴롭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흥선군은 '동학도'들과도 접선을 하며 고종을 압박하고 있었다는 증거도 있었단다. 그렇기에 고종의 '청병 요청'은 피치 못할 호구지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멍청함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외세의 힘'을 빌리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간단한 이치도 예측하지 못하고, 그저 '왕권'을 빼앗기지 않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이는 향후 '고종의 행보'를 보아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고종은 일본군에 의해 경복궁이 점령당하는 시점에서도 일본군에 순순히 붙잡히는 쪽을 '선택'했고, '삼국간섭'으로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화'하려는 시도가 무산될 때에도 자신의 왕권이 보장만 된다면 '러시아의 간섭'조차 큰 문제가 없다고 본 듯 싶다. 어디 이뿐인가. 대한제국 시절 '만민공동회'에서 입헌군주국 논의가 공공연하게 진행되자 '보부상'에 힘을 실어줘서 집회방해를 일삼았고, 끝내 '독립협회'까지 해산시켜 버리고 말았다. 이렇듯 나라가 안팎으로 혼란을 겪고 난리블루스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오직 '왕권 욕심'에만 매몰되어 다른 사안은 등한시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전제군주국가였다고 하더라도 '나라의 운명'을 자기 스스로 파멸시키는 짓도 서슴지 않았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상황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구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그저 '외세의 힘'에 의지해서 권력의 끈을 놓치 않으려는 모습만 보여주었으니 실망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왕실의 무능'을 지켜보았던 덕분일까? 3·1만세혁명이 일어난 이후에 대한사람들은 '왕정복귀'가 아니라 '공화국 건설'로 마음을 모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암튼, 청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일단락이 되고, 청나라는 패전국이 되어 치욕적인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으러 일본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돌발상황이 펼쳐진다. 패전으로 엄청난 '배상금'과 '영토할양'을 청나라에 요구하는 일본군부를 향해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이다. 청일전쟁을 '종전'시키지 말고 이참에 청나라 패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이다. 3차례의 전쟁양상에서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맛본 일본국민들은 아주 그냥 제대로 취한 것이다. 그래서 '만주'를 넘어 '요동' 찍고, '대만'까지 후루룩 말아잡숩고서 '북경'까지 진격을 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숙원이었던 대륙정벌도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겨우 조약으로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시도를 원천차단 시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렬한 응원까지 보태게 된 것이다. 청일전쟁 직전까지 일본국민들은 '일본정부'나 '군부'에 대해 마뜩찮게 보고 무슨 일이든 반대입장을 표명했던 것에 비하면 놀랄 정도로 전환된 것이다. 그만큼 '청일전쟁'의 승리가 일본인들에게 크나큰 자부심으로 작용했고, 이는 '문명국 일본'이 '야만국 지나(중국을 낮잡아 이르는 명칭)'를 상대로 단단히 혼쭐 내주었다는 뿌듯함까지 엿볼 수 있다.

  그런데 패전회담을 마치고 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하러 온 이홍장을 향해 한 일본청년이 총탄 저격을 한 것이다. 다행히(?) 이홍장은 총알을 비껴 맞았고,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문명국'이라 자랑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야만스런 짓을 하고 말았으니, 조약은 애초에 일본에 유리하게 작성되어야 했으나, 이로 인해 청나라가 '패전 조약'에 서명하길 거부하고 장기전에 돌입할 경우, 일본이 이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지 '난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 된다면 일본측에 유리하게 끝맺음을 할 수 있었던 조약조차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게 되고, 청나라의 결사항전에 대해 더 많은 전쟁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일본의 처지에서도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님을 직감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이홍장'에게 심심한 위로와 함께 쾌유를 비는 일본국민들의 염원까지 선보여야 했다. 그렇게 이홍장은 죽지 않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성사시키고 귀국했다. 이렇게 '청일전쟁'은 일본측이 엄청난 배상금과 영토할양(요동과 대만)을 받는 선에서 일단락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일본은 예상치 못했던 일을 경험하게 된다.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삼으려던 계획이 차츰차츰 틀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서 이홍장이 '시모노세키'로 떠나기 전에 러시아측 대표와 밀약을 주고 받았는데, 일본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는 '요동반도'를 일본이 뱉어내게 만드는 묘수였던 것이다. 이른바 '삼국간섭(러시아, 프랑스, 독일)'이다. 러시아는 연해주까지 영토를 넓히고서 '시베리아 철도'를 준공하며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요충지로 '요동의 뤼순'을 눈독 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청일전쟁으로 일본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청나라를 돕는 척하면서 '요동'을 러시아가 차지하는 것으로 계획을 진행 시킨 것이다. 어차피 청나라로서는 일본에 내어주나, 러시아에 내어주나 피해를 보는 것을 매한가지지만, 이를 통해 '이이제이', 즉, '러시아'로 하여금 '일본'과 갈등관계를 일으켜 '어부지리'라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자 한 셈이다. 물론 이러한 청나라의 속셈은 애초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한편,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차지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요동 뤼순까지 손에 넣었다. 그러나 이 두 곳도 '일년 내내' 드나들 수 있는 항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반도'는 러시아가 놓칠 수 없는 이익이었다. 만약 조선 남쪽에 위치한 '거제도'에 러시아 해군기지를 설치할 수만 있다면 일본을 견제하는 것을 넘어 태평양까지 언제라도 넘나들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선점하게 되니, 러시아로서는 조선이 우호적인 것이 한없이 반갑기만 한 것이었다.

  또다시 한편, 조선에서는 청일전쟁 이후 '군국기무처'를 통해서 강제로 개혁조치가 선행되었고, 이를 통해 '갑오개혁'과 '제1차 김홍집내각(갑오파)'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더욱더 자신들의 입김이 통하길 원했기에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박영효(철종의 사위, 갑신파)를 내세워 견제와 간섭을 동시에 시전하였다. 이렇게 조선 최초의 근대화 정책이었던 '갑오경장'은 일본의 영향력을 크게 받으면서 '강제'로 간섭받기 시작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당연히 '고종'이다. 이에 고종은 자신들의 측근을 내세워 '왕권회복'을 꾀했으니, 이들이 바로 '정동파'다. 특히, 친러파와 친미파로 구성된 '정동파'는 러시아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며 점점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때마침 '삼국간섭'으로 일본조차 러시아의 힘에 밀려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새를 보자, 고종과 민왕후(훗날 명성황후)는 러시아공사관의 '손탁 부인'과 날마다 회동을 하며 일본의 앞잡이들을 러시아의 힘으로 밀어내는 일에 착수하고, 성공하게 된다.

  이에 당황한 일본군부는 '경복궁'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이 있었음에도 '러시아의 간섭'을 두려워(?)하여 고종과 민왕후의 '행동'에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못하고 수수방관만 하게 되었다. 이로써 조선은 친러관계를 내세워 '자주국'임을 내세우려 했으나, 열강들이 순순히 약소국의 이익을 챙겨줄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왜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일본이 애초부터 '보호국'으로 삼으려 할 정도로 야심이 컸는데,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턱이 없다는 사실도 왜 깨닫지 못했을까? 일본은 조선을 마음대로 후릴 새로운 인물을 내세웠으니, 그가 바로 '미우라 고로'다. 본격적인 '여우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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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 3 - 항룡십팔장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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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II / 김영사 25번째 리뷰] 2권에 이어지는 줄거리는, 금나라 여섯번째 황자 완안홍렬의 궁궐에 초빙된 무림고수들과 곽정, 황용 사이의 대결이 펼쳐진다. 완안홍렬은 남송을 일거에 물리칠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 무림고수들을 섭외한 뒤에 악비가 숨겨둔 '무목유서'라는 비급을 찾아달라고 요청을 한다. 이를 우연히 들은 곽정과 황용은 금나라의 음모를 저지하려 들지만 중과부적으로 인해 여러 고수들에게 도리어 포위되고 만다. 이렇게 곽정과 황용의 탈출기가 그려지면서 완안강(훗날 양강)의 스승인 매초풍이 등장하고, 장춘자 구처기, 그리고 곽정의 사부들인 강남육괴까지 마침맞게 등장해서 곽정과 황용이 무사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사이 양철심과 포석약도 궁궐에서 도망을 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잡히게 되고, 자신들 때문에 곽정과 황용을 비롯한 구처기와 왕처일, 그리고 강남육괴까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하자 스스로 자결을 하여 위기를 일단락 시킨다. 그렇게 두 부부의 사후에 곽정과 양강은 의형제로 맺어지게 되고 자신들의 부모를 죽인 원수 완안홍렬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을 하며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그뒤에 곽정과 황용은 홍칠공이란 거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 그가 바로 화산논검대결에서 '다섯 명의 무림고수' 가운데 한 명인 '북개'다. 그는 거지들의 모임인 '개방'의 방주이고, '항룡십팔장'과 '타구봉법' 등 외가무공의 달인이다. 이 만남을 통해 곽정은 홍칠공에게서 '항룡십팔장'을 전수받게 된다. 항룡이란 이름에 걸맞게 '용이 내린듯'한 강력한 외공을 다루며 주로 손바닥으로 치고 때리고 막는 '공격 겸 방어술'의 최고 무술이다. 십팔장이란 동서남북을 쪼개 주위 십육방위와 함께 머리 위와 다리 아래까지 모두 '십팔방위'를 철통같이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공의 기초가 탄탄한 곽정이 홍칠공의 '항룡십팔장'까지 더하게 되니 곽정의 무술실력은 한층 업그레이드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홍칠공은 아직까지 정식으로 '제자'를 받아들인 적이 없기 때문에 곽정과 황용에게 무술(황용에겐 '소요유' 등)을 전수했지만 '사제지간의 예'를 올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곽정에게도 '항룡십오장'만을 전수하며 진짜 제자가 되지는 못했다.

  한편, 홍칠공과 헤어진 곽정과 황용은 태호의 주인인 '육승풍'과 만나 기이한 인연을 맺는다. 육승풍은 동사 황약사의 제자로 진현풍, 매초풍이 사부님을 배반하고 '구음진경'을 훔쳐 도화도에서 달아나자 분노한 황약사에 의해 다리가 절단나서 무공을 모르는 '앉은뱅이' 선비로 신분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집에 황약사의 딸인 황용이 찾아들었으니 묘한 인연이 시작된 셈이다. 황용은 그녀 나름대로 도화도의 '기문둔갑술'과 흡사한 풍경에 놀라움을 감추고 육승풍을 몰래 관찰한다. 그러는 사이에 매초풍이 완안강을 구하기 위해 육승풍의 집으로 들이닥친다.

  완안강이 육승풍의 집에 잡혀오게 된 까닭은 친부친모의 죽음에도 '부유한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완안홍렬의 아들로 남았고, 이번 남송정벌을 위해서 '남송과 몽골'이 서로 연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출병을 했던 것이다. 이를 육승풍의 아들이 강남 태호 근방의 영웅들을 모아서 '금군의 야욕'을 기습했고, 그 결과 완안강이 사로잡혀 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완안강이 잡혀오자 그를 사랑하는 목염자가 몰래 찾아와 완안강을 구해주겠다고 약조를 했고, 그 약조로 완안간의 사부인 '매초풍'에게도 연락이 닿아 육승풍의 집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그런데 매초풍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눈먼 매초풍의 뒤를 따라 '청의서생'이 함께 따라왔는데, 그가 바로 '동사 황약사'였던 것이다.

  황약사의 이야기를 먼저 하기에 앞서 '철장수상표 구천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화산논검' 당시에 초청을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였고, 호남의 '철장방' 방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송나라 사람이면서도 '금나라'에 포섭되어 한족을 배신하게 된다. 그래서 육승풍의 집에 귀한 손님으로 모셔져서 대접을 받으면서 육승풍과 곽정, 황용, 그리고 강남육괴까지 모두 '곧 멸망한 송을 배신하고 금을 받들 것'을 요구한다. 이에 엄청난 무공의 소유자인 구천인과 목숨을 건 대결을 펼쳐지게 되는데, 웬걸! 구천인의 무공이 곽정 한 사람만 못할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더니, 엄청난 내공을 지닌 것처럼 보여주었던 것이 사실은 모두 '눈속임'에 불과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게 된다. 그가 정말 '철장수상표 구천인'이 맞는 걸까?

  한편, 황약사의 등장으로 황용은 도화도로 되돌아가게 되고 곽정을 비롯해서 여러 고수들이 도화도로 가게 된다. 그 뒤의 이야기는 4권에 이어진다. 드디어 '절대무림고수'들이 등장했다. 바로 '동사서독 북개남제 중신통'이라는 다섯 명과 함께, 이들과 대결을 할 뻔했던 '철장수상표 구천인'까지 등장했다. 아직 '서독'과 '남제', 그리고 명운을 다한 '중신통'은 이야기에 본격 등장하진 않았지만, 곧이어 등장할 것이 분명하고, 이미 죽은 '중신통'을 대신해서 그의 의동생으로 등장하는 '노완동 주백통'이 곽정과 의형제를 맺으며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질 터이니 기대하셔도 좋다.

  <사조영웅전>은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3권까지는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본격적인 '무협지'의 성격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스토리가 전개되어 장황한 느낌이 들어 살짝 지루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간중간이나마 '곽정과 황용의 만남'을 다루면서 기대를 불어넣어두고 있기에 그닥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참에 '중국사'에 대해 잠깐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남송시대'다. 여진족이 발흥하여 송나라를 괴롭한 결과 '북송'에 해당하는 강남 이북 지역(장강 이북)은 모두 '금나라의 영역'이 되었다. 이렇게 금나라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남송'을 압박하고, 몽골을 비롯해서 주변 국가들과 대치된 상황이 전개된다. 하지만 현대의 중국사의 관점은 이들 모두를 '중국사'로 끌어안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소수민족'에게까지 '한족정통론'에 입각한 중국사를 강요하며, 거대한 용광로처럼 모두를 한데 뭉뚱그리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민족차별'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어찌보면 '소수민족 차별'을 하면서 '한족 우대'를 강화하고 있으니, 그들이 말하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갈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보여지는 '한족, 여진족, 몽골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그들의 후손에 해당하는 '현대의 중국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자못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조영웅전>의 주제는 '영웅이란 무엇인가?'다. 그러면서 '영웅의 조건'으로 애국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애국의 주체'는 한족이다. 아무리 '여진족'과 '몽골족' 가운데서 영웅적 위상을 타고난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들을 '영웅'이라 단정짓기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는 말이다. 왜냐면 여진과 몽골의 영웅이 '애국'을 위하면 자연스레 '송나라'에 위해를 가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한족'을 괴롭히는 영웅은 영웅이라 칭할 수 없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깔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곽정이 칭기즈칸의 부마이고, 곽정이 칭기즈칸 덕분에 '살길'이 열렸던 은덕이 있더라도, 곽정은 '한족'이 까닭에 민족을 배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몽골이 송나라를 도와(?) 금나라와 함께 싸울 때에는 '우방'이었기에 문제가 없었던 일도, 금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배은망덕하게 남송을 공격한 몽골이 '적대국'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해버린다. 이런 이야기를 읽은 현대 중국의 '내몽골족'과 '만주족'은 어떤 기분이 들겠느냔 말이다. 그들도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통크고 대범하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다르다'라고 '하나의 중국'에 동조할 수 있을까?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인들은 대국(大國)적인 관용정신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하나의 중국'을 내세울 것 같으면, '소수민족차별'과 같은 억압적인 정책을 버리고 '소수민족과 한족'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각각의 고유문화를 포용하는 정책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 중국의 정책은 '공정(工程, 역사왜곡)'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역사왜곡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하나의 중국'으로 아우르는 역사연구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온갖 폐해를 일삼고 있는 점이다. 이로 인해 티베트인, 신장 위그루인, 내몽골인, 그리고 연변조선인 들의 '고유한 문화'를 말살하고, 중국의 문화(한족중심)와 사상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는 '소수민족'을 한족으로 동화시킨 뒤에 오직 '한족만을 위한 애국정신'을 강조할 속셈이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일까? 한족도 '청나라'때 변발을 강요 당하면서도 스스로 '한족'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면서 말이다.

  이렇듯 '소수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현대 중국의 '하나의 중국' 프로젝트는 이웃나라를 넘어 전세계를 '중국'의 발 아래 놓겠다는 야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종이의 원조가 한나라 때 '채륜'이 만든 것이 최초라면서 '페이퍼'의 어원으로 불리는 '파피루스'조차 부정하기에 이르렀고, 전세계 무술은 모두 '중국무술의 아류'라고 폄훼할 뿐만 아니라, 한류열풍을 틈타 '한국 고유의 문화'까지 모조리 '중국의 것을 베낀 수준'이라고 폄훼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얼탱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 까닭에 나는 '중국'을 '中國'라고 불리는 까닭을 大國이라고 불리기엔 속갈딱지가 벤댕이보다 작고, 小國이라고 불리기엔 땅덩어리가 너무 크니 그 '중간격'인 중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딱 적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국은 대국다워야 대국인 것이다. 이 책이 쓰인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2차 국공내전' 이후 모택동은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으로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후 등소평이 '일국양제'의 지혜로 홍콩문제를 돌파해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의 부흥'을 이끌기도 했다. 이 소설도 그 부흥의 흐름에서 탄생한 소설이고 말이다. 그래서 <사조영웅전> 속의 내용이 현대 중국의 기조와 잘 들어맞지 않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중국이 '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도 이 책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보다 더 큰 포용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할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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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5 -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본격 한중일 세계사 15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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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I / 위즈덤하우스 31번째 리뷰] 오랜만에 다시 <본격 한중일 세계사>다. 이번에는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이다. 한국 근대사를 공부하면서 이 부분이 가장 빡친다. 왕실의 무능과 탐관오리의 학정을 바로 잡고자 '민초'가 직접 나선 대혁명을 일으켰는데도 나라가 바뀌기는커녕 나라가 폭망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물론 '서구문명'을 받아들인 적도 없고,  적극적인 '민주주의'를 해본 적도 없는 '민중들'이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들고 있어났으니 난리가 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건만, 임금이라는 사람이 앞뒤 분간도 하지 못하고 '외세(청군)'를 끌여들여 쉽게 일을 해결해보려다가, 침략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기회를 엿보던 '또 다른 외세(일본군)'까지 끌여들이는 꼴이 되었고, 철저히 준비한 탓에 일사분란하게 '경복궁'을 점령한 뒤에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간섭'을 확고부동하게 확약까지 받아내는 신속하고 철두철미함에 조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라기는 청나라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맹주라고 자부하던 청나라였는데, '청일전쟁'의 승패가 이토록 빨리 날 줄 누가 알았겠느냔 말이다. 그것도 청나라의 '완패'로 말이다. 이로써 청나라는 '양무운동'이 실패했음을 만천하에 알려지는 꼴이 되었고, 일본제국은 당당히 '제국주의 열강대열'에 발을 내딛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직까지는 '동양 챔피언' 정도일 뿐이지만, 얼마 뒤에 벌어질 '러일전쟁'까지 승리(?)를 거두고 난 뒤에는 확고부동하게 '열강대열'에 낑길 수 있게 되고 만다. 도대체 일본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인가?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의 완패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는 국운이 기울게 되었고, '태평천국운동'이 벌어지자 사실상 청나라는 폭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태평천국'의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면서 이홍장은 빠르게 '양무운동'을 펼치며 뒤늦게 '서구식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으나, 서태후를 비롯한 내정의 문란함에, 서구열강들의 침탈까지 청나라는 '내우외환'이 겹치면서 제대로 된 근대화를 할 물적/인적 자원이 모두 고갈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어찌어찌 '서구식 근대화' 흉내까지는 내어서 거대한 함정을 구축하고 신식군대로 편제를 짜는 등 나름 '근대화의 성과'가 나는 듯 싶었으나, 겉만 번지르르할따름이었고 실상은 '제대로 된 훈련'조차 하지 못한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엄청난 인구수로 땜질을 한 덕분에 '위용'만큼은 거대하게 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신식군대와 구식군대의 편제가 여전히 섞여 있고, 이들을 훈련시킬 장수(장교)들조차 통합된 지휘체계를 갖추지 못한 탓에 '청일전쟁'에서 일본군대에게 말 그대로 발려버리고 만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메이지이신(명치유신)' 이후로 서구열강에게 '당한만큼' 철저히 배웠다. 그리고 그 비열한 수업을 마스터하고서 '플러스알파'를 더해 더욱더 악랄하게 동양을 침탈한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물론 청일전쟁 직전까지도 일본은 '내부적 혼란'이 매우 심각했더랬다. 그때까지도 유효했던 '서양과의 불평등조약'으로 일본국민들의 '메이지정부' 불신이 높았고, '메이지정부'가 정권을 잡고서 '헌법'의 기초를 잡고, 서양식 의회주의를 본떴으나, 사실상 '천황제 아래' 헌법은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했고, 의회가 있었음에도 '군부'가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모두 내릴 수 있는 '무늬만 민주주의'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제국은 '천황을 받들어 모시는 군사독재국가'에 불과했다. 그런데 아직 '군부'가 내세울만 한 성과가 없었기에 여러모로 '준비중'인 상태였고, 그런 상황에 처했던 일본은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에도 약조했던 '군사지원'을 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급진개화파였던 김옥균이 무리하게 정변을 일으켰던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었으나, 일본의 군사지원이 가능했었다면, 조선의 근대화는 '갑신정변'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양상을 띠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주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김옥균을 비롯한 당시의 '개화파 지식인'들은 '저들만의 쿠데타'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 철썩같이 믿었겠지만, 백성들의 근대화가 뒷받침 되지 않고서 어찌 '성공적'인 개혁을 이루었겠느냔 말이다. 그런 까닭에 당시 '급진개화파'였던 인물들은 훗날 거진 다 '매국노'가 되었고, '온건개화파'였던 작자들도 훗날 거진 다 '친일파'가 되어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당시엔 '일본제국'이 이웃나라를 침탈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친일'을 하자는 것이 '근대화'를 하자는 뜻으로 통했으니 마구잡이로 매도할 수는 없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고종은 왜 '외세의 힘'을 불러들이려 했을까? 성난 민심을 다스릴 대비가 전혀 없었던 고종은 도성을 지키는 '경군(서울군대)'을 농민군 진압에 내보낼 수가 없었다. 왜냐면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서 풀려나 서울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도성을 지키던 군대를 내보내 '농민군'을 진압하는데 성공한다하더라도 그 틈을 노리고 '대원군'이 고종의 뒷통수를 치기라도 한다면 과거 '임오군란' 때처럼 왕권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전히 도성에서 '대원군'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살아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임금이라면 당연히 '농민군의 대표(전봉준)', '동학도의 대표(최시형)'과 만나 대화로 풀어나갈 생각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고종은 그런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감히 지엄한 임금이 하찮은 백성과 독대를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고루한 '전제국가의 왕'이었을 뿐이다. 이런 고종이었으니 '개화파'들과도 대화는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왕권'에만 집착하는 못난 임금이었을 따름이다. 그 못난 임금이 해결책으로 선택한 것이 '청나라 군대 지원요청'이었다. 결코 하지 말았어야 할 결심이었다.

  청나라도 '조선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칫 '일본군'을 조선에 끌어들이는 빌미를 내어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텐진조약' 말이다. 갑신정변으로 두 나라는 조선에서 충돌할 위기를 맞았으나, 다행히(?) 양측 모두 철군을 결정하였고, 유사시 조선에 군대를 보내게 된다면 서로 통보하기로 약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나라는 일본에 '출병'을 알릴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조선과 청 사이에는 전통적인 '속국'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이 군대를 요청했고, 청나라는 늘 있었던 '관례'처럼 출병 사실을 일본에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의 첩보활동으로 출병사실은 빠르게 알려졌고, 일본도 '내부문제'를 '조선출병'으로 해결하는 관례(?)대로 출병준비를 서둘렀고, 그 사이 김옥균이 상하이에 가서 조선인에 의해 '암살' 당하고, 그 시체를 조선에 '인도'한 중국의 비인도적인 문제를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중국과 조선이 '친일지식인'을 무참히 죽이는 야만스런 행동을 일삼았다면서 '문명국 일본'이 야만스런 중국과 미개한 조선을 개화시켜야 한다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정한론'을 앞세워 언론이 선동질을 하고, 일본정부가 못 이기는 척 '출병'을 결정하니, 동학농민군은 청군과 일본군을 끌어들인 대역죄를 저지를 순 없다면서 스스로 해산을 결정하고, '폐정개혁안'을 제안하며 관군과 '전주화약'을 서둘러 맺어버린다. 그러면서 농민군은 '반외세의 기치'를 올리게 된다.

  이에 청군은 애초의 목적이었던 '동학농민군'이 해산되었으므로 '철군'을 주장하지만, 일본군은 애초의 목적이 '전쟁'이었기 때문에 청나라를 향해 '선빵'을 날릴 준비를 한다. 그에 앞서 일본군은 서둘러 '경복궁 점령'을 시도한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조청간 '속국문제'를 해결하고, 조선침탈을 본격화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종'을 인질(?)로 삼는 것이 관건이었다. 어디까지나 일본군의 출병은 '조선이 원한 것'이어야 했고,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에서 벗어나 '자주국가'임을 내세워 일본의 간섭과 침탈이 수월하게 되게 하기 위해서 '고종'은 소중한 인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고종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싶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벗어나는 해결책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임진왜란 당시의 '선조'처럼 재빠른 도망이었다. 그런데 고종은 일본군이 '경복궁'으로 들어왔을 때에도 얌전히 잡히고 만다. 충분히 경복궁 북쪽에 난 문을 통해서 달아날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왜 그랬을까? 역시나 '대원군'이 고종이 궁을 비운 사이에 권력을 차지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성탈출도 포기하고 일본군에 대한 방비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순순히(?) 일본군에게 잡히고 만다. 그렇게 세워진 '군국기무처'에서 일사천리로 국권이 피탈되는 양상으로 흘러가게 된다.

  어쨌든 '청일전쟁'은 일본군의 선빵(?)으로 시작된다. 아산만에서 벌어진 '풍도해전'에서 청의 함대는 개박살이 나고, 이어서 벌어진 지상전에서도 청군은 일본군에게 개박살이 난다. 겨우 살아남은 병력은 압록강을 넘어 평양에 집결중인 후속군과 합류하기 위해 한양에서 벗어난 산악길로 빙돌아서 겨우겨우 합류하게 된다. 그렇게 벌어진 '평양선 전투'는 청나라의 어이없는 항복으로 인해 총알 다 떨어진 일본군의 대승으로 끝맺는다. 그리고 뒤이어 벌어진 '황해해전'에서 일본해군의 압도적인 승리가 벌어진다. 전력면에서 청나라가 훨씬 우세하였으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청나라 해군은 제대로 된 포격훈련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해군의 '전술적/전략적 사격술'에 여지 없이 당하고 만다. 마치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의 학익진에 의한 집중포격에 일본함선의 돌격전법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처럼 말이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가 지닌 매력은 쉬이 놓치기 쉬운 '역사의 빈틈'을 확실히 메꿔 주는데 있다. 역사를 배우는데 '원인과 결과'를 확연하게 알려주는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빼놓아선 안 된다. 그런데 그 인과관계의 '증거'를 수많은 사료들 속에서 찾아내기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그 방대한 사료의 틈바구니에서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인과관계'를 너무도 쉽게 이해시켜준다. 더구나 한중일 세 나라를 중심으로 놓고 '세계사의 관점'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풀어내주니 한 눈에 쏙쏙 들어온다. 바로 이런 '역사 쏙쏙'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제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도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국권이 피탈되는 '일제의 강제병탄'이 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시리즈가 '현재진행형'으로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자면 이 책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게 될 우려가 크다. 그래서 '해방이후의 한중일 세계사'는 본격적으로 다루기 어려울 것이고, '일제강점기와 국공내전, 그리고 태평양전쟁'까지는 다뤄졌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그렇게 50권으로 마무리...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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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 그들이 살아가는 법 퇴마록 외전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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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 / 엘릭시르 6번째 리뷰] <외전>은 '디테일'이 중요하다. '국내편'과 '세계편'으로 숨가쁘게 이어지는 퇴마사들의 활동 사이사이를 꼼꼼하게 메꾸어줄 '또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마사들이 악령을 물리치고 원혼을 달래주는 활동 이외에 '어디에 모여 사는지' 궁금했고,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닐 나이 어린 준후는 '학교'에 왜 안 다니는지, 비교적 젊은 두 남녀인 현암과 승희는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인지, 그리고 박신부와 장준후, 이현암, 현승희, 네 명의 퇴마사 이외에 다른 등장인물은 '무얼'하며 지내는지 등등 말이다.

  이 책 <퇴마록 외전 : 그들이 살아가는 법>에선 그러한 궁금증들을 모두 풀 수 있다. 첫 화인 <그들이 살아가는 법>에서는 '해동밀교 본산'이 송두리채 날아가버리고 박신부와 이현암, 그리고 장준후가 '퇴마사'로 합류하면서 박신부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담담, 그 자체'로 보여준다. 서로 '다른 길'을 걷던 세 명이 함께 한 집에서 잘 어울어져 살았을 것 같았지만,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달라서 한 자리에 함께 식사를 하는 것조차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가톨릭의 신부는 교리상 '속세'에서 벗어난 삶을 살지만 가려야 할 음식이 그닥 없는 편이다. 그래서 힘겨운 퇴마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싱싱한 회'를 곁들여 푸짐한 몸매에 맞게 푸짐한 상을 차려 먹곤 했는데, 현암과 준후는 각각 '도가 계열'과 '밀교(불교와 무속) 계열'인지라 '육식'을 비롯한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있었기에 '밥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처음 함께 모인 자리인지라 그것조차 준비가 미흡해서 '라면'으로 떼우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것조차 '스프'를 거의 넣지 않은 심심한 라면을 말이다.

  두 번째 편인 <보이지 않는 적>에서는 '증오'라는 악령과 한바탕 싸움을 펼친다. '미워하는 마음'인 증오는 아무런 이유도 까닭도 없이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도 나타나기에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진 퇴마사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제압'할 수 없는 악령이었다. 거대한 악과 싸울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사악한 무리와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사소한 악과 싸울 때는 그럴 수 없어 더욱 힘들기만 했다. 물론 '증오심'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 때엔 그리 큰 위협을 주지도 않지만 잡기는 더욱더 힘들어지고, 증오하는 마음이 '집단화'가 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에 퇴마사들의 능력으로도 제압할 수 없는 큰 일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런 증오심이란 '평범한 사람'에게서도 나타나고, 금새 또 자취를 감춰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갈 수도 있는 탓에 애꿎은 희생자를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퇴마사 일행'들은 사소하디 사소한 증오라는 악령 때문에 곤혹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퇴마사들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악의 무리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맞서 싸우지만 '죄 없는 사람'에게는 결코 주술을 쓰거나 공력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사악한 영'에 빙의가 된 사람을 퇴마사들을 죽이려고 달려들지만, 퇴마사들은 결코 '인간'에게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오직 '사악한 영'에게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퇴마행을 할 뿐이다. 그로 인해 퇴마사들은 '죽을 고비'를 숱하게 겪게 된다.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범죄자들 중에도 '주범'이 있는 반면에 그를 돕는 '공범'도 있어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무원들이 '주범'을 잡는데 방해를 하는 '공범'에게는 '공무집행방해'를 죄목으로 삼아 체포하고 벌을 내리곤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사악한 영혼에 홀딱 넘어가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도 혼내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저 사악한 영에 의해 '의식'과 '의지'를 잃고서 악행을 저지를 뿐이라면서 저들의 목숨조차 돌보지 않고 '뜻하지 않은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한다. 그냥 단박에 일을 해결하고 '더 큰 희생을 치룰 수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에는 '희생을 감수하고' 퇴마행을 하면 좋으련만 결코 그러지를 않는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 까닭을 세 번째 이야기인 <준후의 학교 기행>에서 찾아보자. 대한민국 초등3학년 나이인 '장준후'는 매우 영특한 아이다. 그 어려운 주술을 손쉽게 시연해낼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자기 또래와 함께 학교에 다니면 준후도 '평범한 일상'도 겪으며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갈 수 있겠다는 마음에 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부모님이 없는 관계로 누군가가 '부모역할'을 해야 했는데, 박신부는 '종교에 귀의한 몸'이었고, 이현암은 '초등3학년 아이'의 아빠라기엔 너무 젊었다. 그리고 영특한 아이라고는 하지만 유치원을 다닌 적도 없고 학교도 처음 가는 것이니 '학교수업내용'을 알 턱이 없다. 근데 더 큰 문제는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다'는 점이 준후가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한복'을 즐겨(?) 입는 준후에게 반팔과 반바지처럼 노출(?)이 심한 옷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 밀교 본산에서 사부님들에게 혹독한 수련을 받아낸 준후에게 '현대식 교육스타일'이 낯설기 그지 없을 수밖에...더구나 여선생님에게는 준후의 몸에 배어 있는 '하늘 같은 사부님의 가르침'을 받듯 깎듯한 예법이 도리어 '반항심'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또래 친구들도 아무리 똑똑하다한들 준후의 '낯선 행동'을 이해해줄 방법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주술력을 가지고 있으니 소위 껄렁거리는 친구들의 협박(?)이 우습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의 욕설조차 준후는 '처음 듣는 말'이라서 뜻을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준후의 등교 첫날은 '반나절의 헤프닝'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등굣날이 자툇날이 되었으니 말이다.

  네 번째 이야기인 <짐 들어 주는 일>은 젊은 청춘 남녀인 현암과 승희가 '썸(?)'을 타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무술을 수련하는 도사님(?)과 다를 바가 없는 현암에게 '젊은 여자의 대쉬(?)'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퇴마행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사이가 되어 버린 승희는 현암에게 한없이 끌리기만 했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투시력'을 갖고 있는 승희의 처지에 '다른 남자'와 평범한 연애를 꿈꿀 수 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런 특별한 승희를 '있는 그대로' 아끼고 사랑해줄 남자는 '현암'밖에 없는 셈인데, 문제는 이 유일한(?) 남자가 무뚝뚝해도 너무 무뚝뚝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연인사이가 될 수는 없어도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낼 수만 있어도 원이 없겠구만, 이 남자 '철벽'도 이런 철벽이 없다. 더구나 현암의 왼팔에는 언제나 '월향'이라는 여자(?)가 찰싹 붙어 있다. 그리고 틈만 나면 꺼내 들고 정성들이고 소중히 여기는 품을 볼 때마다 웬지 모를 '질투심'마저 샘솟고 만다. 그래서 승희는 아주 작정을 하고서 '현암과 데이트'를 성사시키려 갖은 애를 쓰게 된다. 그렇게 둘은 '억지 춘향격'으로 백화점 쇼핑을 나서게 되는데...

  이번 외전의 마지막 이야기는 '주기선생 박상준'의 활약이다. 퇴마사들이 블랙서클을 쫓아 영국으로 떠나자 국내에서는 백호를 도와 '골치아픈 일(?)'을 해결해줄 능력자가 마땅히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분신술'처럼 서로 다른 두 곳의 장소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생령술'을 쓰는 최교주라는 살인자를 기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려 '주기선생'의 힘을 빌리려 한 것이다. 이는 백호에게 '어벤져스' 같은 특수요원들을 모으는 계기로 될 수도 있는 일이라 최대한 '주기선생'을 정중하게 모셔온 셈이다. 그런데 박상준은 능력에 비해 퇴마사들처럼 '헌신'하려는 마음이 태부족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돈'부터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5천만 원을 말이다. 그래도 퇴마사들이 자리를 비운 시점에 딱히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는 백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조하고서 '최교주의 범행'을 밝혀내고, '최교주 생포'까지 부탁을 했더랬다. 그런데 주기선생은 단순히 돈만 밝히는 도사는 아니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으로 나름 '선행'을 하였기 때문이다. 도가 계열의 도사 체면에 자신의 능력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천박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퇴마사들과는 사뭇 다른 '퇴마행'을 보여 주었다. 자신의 능력을 뽐내길 좋아하고, 그렇게 뽐낼 바에야 좀 대단한 실력이면 좋으련만, 상대를 압도할 정도로 대단함도 보여주질 못하고, '일처리' 또한 철두철미하지 못해 좀 과격하고 매우 엉뚱한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며 '뒷수습'을 하는 백호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를 안겨줄 뿐이었다. 결국 '최교주 사건'을 해결하긴 하는데, 더 많은 퇴마사들을 모으려는 백호의 꿈은 지울 수밖에 없게 되고 만다.

  <퇴마록>은 십수 번 읽고 또 읽었지만, <외전>은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그동안 벼르고 별렀지만 '본편'에 비해 너무나도 늦게 출간(?)했기에 진즉에 구매를 하고서도 선뜻 읽기를 망설여지다가 겨우 읽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 큰 감흥이 오르지는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외전'이 출간되었었다고 일찌감치 이야기를 들었는데, 왜 '외전'을 구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그 시절에 읽었더라면 이 책도 '추억'의 일부로 남았을텐데, 지금도 내 추억속에서 멋진 활약을 펼치는 '본편'과는 달리 이번 '외전'은 살짝 외따로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어서 '외전'도 내 추억속에 젖어들게 만들어야겠다. 그래야 퇴마사들의 '디테일'이 함께 어울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다음엔 '또 하나의 외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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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2 : 세계편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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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XLIX / 엘릭시르 5번째 리뷰] 이제 퇴마사들이 활동무대를 '국내'를 넘어 '세계'로 옮기게 된다. 그 처음은 영국이다. 세계편 1권에서 좀비를 다루던 호웅간과 유체와 염체를 자유자제로 다루던 이름을 알 수 없는 닳아빠진 구리 십자가의 주인과 케인, 세크메트의 분노를 대한민국에 '대신' 뿌리려던 가짜 커크 교수 등이 '블랙서클'이라는 복수의 단체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마사 일행은 블랙서클의 '마스터'라는 사람을 찾기 위해 세계를 누빌 계획이었다. 세계편 2권에서는 영국부터 시작해서 독일과 프랑스까지 스토리가 이어진다.

  퇴마사들의 역할은 '악령퇴치(엑소시즘)'가 아니다. 제때 풀지 못한 원한을 품은채 구천을 떠도는 불쌍한 영혼들을 구하고, 그로 인해 애꿎게 희생당하는 인간들을 돕기 위해 자신들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나 훌륭하고 위대한 일을 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싸우고 있는 이들 퇴마사의 모습이 쌩뚱맞기 그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권 속 <아라크노이드>에서 퇴마사들의 활약을 간단히 요약하면, 컴퓨터 바이러스에 '원혼'이 깃들어 암병동센터의 메인컴퓨터를 망가뜨려서 '원한을 품은 환자'를 살해하려는 '거미 바이러스 악령'을 찾아나섰더랬다. 그런데 컴퓨터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선 '백신 프로그램'을 플로피디스켓에 담아 컴퓨터디스크에 꽂고 '실행'시켜야 한다. 그런데 원한령이 깃들어 있는 바이러스인 까닭에 암병원내 '메인 서버'에 침투해서 환자의 정보를 싸그리 지워서 의료진이 환자의 데이터를 몰라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게 만들려는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그 메인서버실로 들이닥친 퇴마사들이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주저 앉아 눈을 감지를 않나, 십자가를 들고 오라를 펼치질 않나, 성수를 컴퓨터에 뿌리며, 불이 붙은 부적을 허공에 날리고, 월향검에 검기를 담아 서버 메인전력선을 잘라내고, 그마저도 급박한 나머지 오른주먹에 공력을 잔뜩 집어 넣어 커다란 메인컴퓨터를 한 방에 작살을 내는 아수라장을 만들고서야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겠느냔 말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야 이번에도 퇴마사들이 멋지게 한 건 해결했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겠지만, 이를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CG' 없이 그대로 연출한다면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사람이 서버실에 난입해서 물장난, 불장난, 번개 지지직에, 귀곡성이 울려퍼지는 난리 부르스를 연출하고서 마지막에는 한 주먹으로 컴퓨터를 때려부수는 장면만을 보여줄 뿐일 것이다. 그야말로 '쌩쇼'였을 것이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세계'와 싸우는 일이 생각보다 거룩하거나 위대해 보일 턱이 없다는 얘기다. '보이는 세상'에서만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말이다. 그래서 <퇴마록>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는 그리 큰 이슈를 끌지 못한 듯 싶다. 더 큰 문제는 '등장인물'을 독자들의 상상에 미치지 못하는 허섭한 쓰레기로 등장시킬 공산이 크다. 그러니 <퇴마록>은 책으로 즐기시길 바란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오컬트 무비'밖에 되지 못할 끔찍한 영상속에서 착하디 착한 퇴마사들이 악전고투를 하는 모습이 '영상미'를 연출하지 못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착한 마음'을 연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

  암튼, 영국에 도착한 퇴마사 일행은 '아더왕'을 만났고, '고려청자'에 푸른 하늘을 되찾아주었으며, 독일로 가서 '늑대인간'들의 공격을 막아냈고, 프랑스를 경유해 '거미 바이러스'에 맺힌 복수의 일념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였다. 이제 3권에서는 '뱀파이어의 고향'인 왈라키아(루마니아)로 가서 '블랙서클 일당들'과 대결을 펼칠 것이다. 그리고 최종 보스에 해당하는 '마스터'를 만날 것인데, '개정판'을 내면서 이 3권에 해당하는 스토리를 다시 쓰겠다고 했으니 기대가 크다. 세계편 1, 2권까지는 큰 변화는 없었기에 더욱 그렇다.

  의아스러운 것은 '블랙서클'에 속한 악당들이 하나같이 뼛속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속셈이 전세계를 파괴하고도 남을 '악 중의 최악'이지만, 애초의 동기는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했다는 나름의 핑곗거리가 있더라는 말이다. 물론 그 내용은 3권에서 최종적으로 밝혀지겠지만, 경악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짓을 저지른 악당들마저 '속여버린' 최고의 악마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세상에 어찌 이런 끔찍한 '악'이 나타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엄연히 이쪽과 저쪽에 '구분'이 있고, 서로 간섭할 수 없는 '불문율'이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짐작컨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으로 가득하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올 수 없는' 불문율이 깨지지 않았다면, 이쪽에서 그쪽을 '불러들인' 악마가 있다는 얘기다.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에 머물고 있는 '악마'가 말이다. 그리고 그 '악마'가 한을 품고 억울한 영혼들을 부추겨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온통 악으로 물들게 만들어 버린다는 시나리오가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악마는 과연 누구인가? 평화를 깨뜨리고 공포에 떨고 불안을 부추기는 '악의 세력'이 과연 무엇이란 말이냐? 그것의 존재를 밝혀내는 것이 '세계편'을 비롯해서 이어지는 '혼세편'과 '말세편'에서 계속 물음을 던지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악의 세력'이 무엇인지 밝혀지면서, 세상을 어둠에서 밝음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함께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 방법 가운데 일부를 '퇴마사들의 선한 의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선한 의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밀으라'는 결코 실행으로 옮기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이런 문구로 어떤 해비메탈 그룹은 예수를 '마조키스트(매 맞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의 원조라고 노래로 읊기도 했는데, 이를 '선한 목적'으로 풀이를 하자면, 상대의 왼쪽 뺨을 때리기 위해선 자신의 '오른손'을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때려야 한다. 그런데 오른쪽 뺨을 내밀라는 예수의 말에서 '큰뜻'을 이해하려면, 상대의 왼쪽 뺨을 때린 오른손으로 '상대의 오른쪽 뺨'을 때리기 위해선 '오른손'을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때려야만 한다. 이렇게 '오른손으로 때리는 뱡향'이 달라짐을 주목하면. 자신의 오른손으로 '오왼 방향'으로 때리는 것은 '올바른 일을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게 되면 '옳지 못한 일을 했다'는 뜻이란 말이다. 즉, 자신의 오른손으로 '왼오 방향'으로 때렸으니, 자신이 방금 한 일을 '부정'하며 스스로 '잘못한 짓'임을 인정하게 된다는 뜻이란다. 감히 '예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뜻깊은(?) 일일 것이다.

  이토록 뜻깊고 성스러운 일을 퇴마사들은 '선한 의지'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악령'과 맞서 싸우면서도 오직 사악한 악령에게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뿐, 그 악령에 깃들여져서 '꼭두각시'에 불과한 인간들을 향해선 결코 '능력'을 퍼지 않는단 말이다. 설령 퇴마사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결단코 쓰지 않는다. 여타의 '오컬트 장르'에선 볼 수 없는 성스러움이다. 악과 싸우다보면 '최소한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데도, 퇴마사들은 그것조차 용납치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단지 자신들의 능력이 모자라 애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만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래서 더욱더 부지런히 '퇴마의 길'을 걷고자 할 뿐이다. 그로 인해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어떠한 '대가'도 받으려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끔찍하고 참혹한 전쟁에서도 이러한 '선한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쟁으로 해결될 일이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부터 '선한 의지'로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그들의 논리로는 오직 '파괴'만 남을 뿐이니, '평화'와 '공존'의 아름다움으로 설득할 때까지 '선한 의지'를 꺽지 않는 것이다. 또한 상대의 무차별 공격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비폭력저항'으로 맞이한다면 '한쪽의 일방적인 학살'일 뿐일 것이다. 이런 학살이 자행되는 것을 보고도 '국제사회'가 선한 쪽으로 움직이길 포기한다면 그런 국제사회가 바로 '악의 근원'인 셈이다. 강대국은 약소국을 공격해도 '정의'롭고, 약소국은 강대국에 저항을 하면 '불의'에 대한 정의의 심판을 가해도 된다는 논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그런 논리가 '악마의 심보'인 셈이다. 저쪽에서 건너온 악마가 아니라 이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악마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런 악마와 당당히 맞설 '선한 의지'를 가진 현실판 퇴마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선한 의지를 믿어 의심치 않는 여러분들이 바로 '퇴마사'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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