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5 - 악비의 유서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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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VIII / 김영사 27번째 리뷰] 5권 줄거리의 핵심은 남송의 명장 악비가 남겼다는 '무목유서'의 행방이다. 이 '무목유서'는 김용 무협 3부작인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 그리고 <의천도룡기>까지 모든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에 알아두면 유용하다. 허나 '무목유서'는 실존하는 책은 아니다. '정충보국(精忠報國 : 사사로운 감정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의 은혜를 갚다)'는 글자를 등에 새기고 전투에 임했다는 '무목 악비'라면 아마도 그런 책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어 글쓴이가 '가상'으로 만든 아이템이다.


  거두절미하고, 결국 '무목유서'는 곽정이 갖게 된다. 그리고 금나라에 맞서 싸운다. 이는 <신조협려>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의천도룡기>에서는 남송도, 금나라도 멸망했기 때문에 원나라에 의해 멸시 당하는 한인들이 훗날 명나라를 세운다는 '역사적 흐름'에 발맞춰 '무목유서'가 유용하게 쓰여진다. 그렇다면 '무목유서의 등장'은 바로 한인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일테다. 아무리 '절대고수'라 하더라도 '군대'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남송'이 멸망할 때까지 송나라 군대를 이끌고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은 '악비'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사조영웅전>에서도 무림고수를 등장시켜 '금나라'를 무던히도 괴롭히지만, 결국 금나라가 망한 것은 '몽골부족'을 통일한 테무친, 즉 '칭기즈칸'에 의해서다. 남송은 칭기즈칸에게 숟가락만 얻어서 '금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일조하지만, 결국 칭기즈칸에 의해 남송도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다 <신조협려>에서 쿠빌라이칸에게 남송이 멸망하게 되는데...그건 나중의 이야기다.

  4권에서 곽정과 황용은 혼약을 하게 되지만, 주백통 때문에 산통이 깨지고 만다. 딸의 혼약이 이루어지며 우여곡절 끝에 곽정을 사위로 맞아들였지만, 곽정의 의형이 된 주백통이 자신도 모르게 '구음진경'을 익혀버린 탓에 천하오절보다 더 강한 '절대고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황약사도 어쩔 수 없이 주백통을 도화도에 더 묶어두지 못하고 풀어주게 되는데, 하필 '황약사의 호의'를 주백통이 무시(?)하고 '꽃배'를 선택하고 만 것이다. 이 '꽃배'는 겉모습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사실은 배바닥을 허술하게 만들어서 바다에 몰고 나가면 반드시 침몰하고마는 '죽음의 배'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배를 주백통이 '도화도 탈출용'으로 선택하고 말았으니,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을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 셈이다. 그런데 황약사도 순순히 이실직고를 하며 그 '꽃배'에 타지 못하게 했으면 좋았으련만, 그 배가 '자신의 처(황용의 어머니)'와 관련된 사연이 있는 배였던지라 차마 그 속내를 주절주절 이야기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꽃배'애 주백통과 홍칠공, 곽정까지 모두 태워 내보냈는데, 그만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5권은 시작부터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무림고수들'이 등장한다. 어찌어찌 먼저 도화도를 떠난 '구양봉의 배'에 의해 세 사람은 구조되지만, 뱃전에 오르자마자 티격태격 싸움을 벌이더니 '곽정 일행'과 '구양봉 일행' 모두 바다에 빠져버리게 되고, 마침맞게 곽정을 구하기 위해 배를 몰고 왔던 '황용'도 그 싸움에 휘말려서 일행들은 모두 '외딴섬'에 표류하고 만다. 주백통만 빼고 말이다. 그렇게 '섬 생활'을 함께 하던 와중에 홍칠공과 곽정, 그리고 황용은 '구음진경'을 연마해서 무공이 상당히 높아졌고, 이를 탐한 '구양봉'은 세 사람을 계속 괴롭히게 된다. 이미 바다에 빠진 곽정 일행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구음진경'을 탈취한 구양봉은 아직 자신조차 수련하지 못했지만, 날로 무공이 높아지는 세 사람을 보고서 죽일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까닭인 즉슨, '구음진경'을 외우고 있는 곽정과 이를 익힌 황용과 홍칠공을 죽이기만 한다면 '구음진경 필사본'을 갖고 있는 자신만이 '구음진경'의 무공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쁜 맘을 먹은 탓에 구양봉의 조카인 '구양극'은 커다란 바윗돌에 두 다리가 깔려서 망가져버리는 불우한 일을 당하고 만다. 사실 조카라고 알려져 있지만 몰래 형수와 사통해서 낳은 '친아들'이었다. 어찌어찌 뗏목을 만들어서 섬을 탈출하지만, 홍칠공은 구양봉의 독수에 의해 '독사의 독'에 중독되었고,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끝내 무공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다행히 '구음진경' 속에 치료법이 있었으나 너무 늦게 알아내었기에 홍칠공은 무공을 되살리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자신의 뒤를 이어 황용에게 '타구봉법'을 전수해주며 '개방의 방주'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한편, 자신의 딸이 곽정을 구하러 도화도를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황약사는 딸을 찾기 위해 배를 몰고 나갔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다 바다 위에서 우연히 만난 '완안홍열 일행'과 마주치며 '황용'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사실 이는 '거짓말'이었지만 처음 만난 이들에게서 '거짓말'을 듣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황약사는 딸의 죽음이 '곽정' 탓이라는 억지를 부리게 되었고, 곽정이 이미 죽었다(거짓말)니 그의 스승인 '강남육괴'를 죽여서 분풀이라도 해야 겠다며 떠나버린다. 이 사실을 모르는 곽정 일행은 홍칠공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황궁'으로 숨어들어간다. 황궁주방에서만 만든다는 '음식(원앙오진회)'을 훔쳐먹기 위해선데, 마침맞게 '무목유서'를 찾으러 황궁에 몰래 숨어든 완안홍열 일행과 마주치며 싸움을 벌이게 되었고, 곽정 혼자서 악전고투를 벌이다가 '완안강(양강)'의 배신으로 곽정은 옆구리에 비수가 꽂힌 채 큰 부상을 입고 만다. 그리고 곽정을 살리기 위해서 또다시 '구음진경'에 수록된 '치료법'을 시행하다가 황약사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김용의 소설 가운데 <사조영웅전>이 제법 등장인물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줄거리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자주 전개되면서 약간의 식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어릴 적에 읽을 때에도 <사조영웅전>은 다른 소설에 비해서 손이 덜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곽정과 황용'이라는 두 캐릭터의 매력이 담뿍 들어 있기 때문에 <사조영웅전>을 읽지 않고서 김용의 다른 작품을 논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너무 많은 등장인물 때문에 눈이 돌아갈 수도 있으니, '떼거리'로 묶어서 이해를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곽정'을 주축으로 한 '강남칠괴', '전진칠자와 그 제자들과 주백통'으로 묶을 수 있고, '황용'을 주축으로 한 '도화도 문파(황약사, 진현풍, 매초풍, 육승풍, 곡영풍)와 자식들'을 묶을 수 있으며, '완안홍열과 그 떨거지들(구양극, 사통천, 후통해, 양자옹, 평련호, 영지상인, 그리고 완안강)'로 묶어버리며, '천하오절'에 속하는 동사 황약사, 서독 구양봉, 북개 홍칠공, 그리고 이미 죽은 중신통과 아직 등장 못한 남제를 한데 묶어버리고서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이런 '묶음들'이 세트로 함께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고 보면 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사조영웅전>의 초반과 후반에만 등장하는 '칭기즈칸과 몽골친구들'이 등장할 텐데, 이들은 '곽정'과 늘 함께 등장하니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 이야기가 전개되면 '십여 명'이 함께 등장해서 줄거리를 이어나가기 일쑤라서 여전히 혼란스럽기 그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땐 어김없이 '곽정과 황용'이 주축이 되어 있으니 너무 이야기가 번잡스러워진다 싶으면 '곽 앤 황'에게만 집중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두세 번 탐독하다보면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묶음세트'도 하나씩 풀어헤치며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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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12가지 원칙 - 불안한 영혼을 위한 랄프 왈도 에머슨의 내면 수업
마크 마토우세크 지음, 이지예 옮김, 랄프 왈도 에머슨 원전 / 한빛비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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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VII / 한빛비즈 144번째 리뷰] 19세기 초 미국 독립사상가이자 '개척정신의 선구자'인 애머슨은 니체가 말한 '초인(위버맨쉬)'의 원형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고, 소로가 쓴 <월든>의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랄프 왈도 애머슨은 낯설기만 하다. 그가 썼다는 <자기신뢰>라는 책이 미국과는 달리 우리에게 그닥 익숙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책을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의 한 학파인 '스토아 철학'에서 유래되었다고 이야기한다면 달라질 것이다. 스토아의 정신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덕', '의무', '공동선'을 강조하였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애머슨의 12가지 원칙'도 어렵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스토아 학파는 헬레니즘 시대에 '제논'에 의해서 창시되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를 떠올리게 하는 '역설'의 입담꾼 '제논'과는 이름만 같을 뿐이다. 제논이 만든 스토아 철학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윤리적인 물음으로 시작한다. 이 물음은 자연스레 '믿고 의지할' 무엇이 사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드넓은 땅을 정복하며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건설하며 '그리스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렸으나, 그가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그가 만든 제국은 곧바로 분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사람들의 '세계관(코스모폴리탄: 세계시민)'도 덩달아 허물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혼란스런 시대에는 '진리탐구' 대신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디오게네스의 '견유학파'가 유행할 즈음에 제논의 '스토아 학파'도 탄생하게 되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심취하며, 올바른 도덕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가 가르친 장소가 '긴 복도를 따라 기둥이 늘어선 회랑(스토아 포이킬레)'이었기 때문에 '스토아 학파'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그리고 믿고 의지할 것 없는 혼란한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덕'이라고 보았고, 그 '덕'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삶(섭리)'이었다. 제논은 만물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원천을 '불'이라 설명하면서(유물론), 이것이 우주와 세계에 '조화'와 '법칙'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힘이라 믿었단다.

  이러한 '조화와 법칙'으로 만물을 설명하려는 스토아 학파를 미국적인 것(개척정신)과 절충하여 쓴 저서가 바로 <자기신뢰>라는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의 영향을 받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을 써서 '자연속에 순응하며 사는 삶'의 고귀함을 선보였고, 부당한 것에 마땅히 '저항'하는 도덕으로 올바른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다. 한편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초인(위버맨쉬)'의 영감을 얻었고,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스토아 학파'는 유물론적인 사상이었기 때문에 중세시대처럼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신'은 필요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보다는 '도덕정신'에 입각한 올곧은 신념(?)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빛내줄 것이라며, 그러한 신념을 가진 '초인'은 어디에서 찾아와 혼란한 시대에 좌절과 절망에 빠진 당신을 구원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초인이 되어 '스스로'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이 책 <인생의 12가지 원칙>도 그런 '애머슨의 정신'에 입각해서 쓰여진 책이다. 마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처럼 자기 내면에서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위대한 정신'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선보여주었다. 가장 핵심적인 사상은 바로 '덕의 깨달음'이다. 당신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는 '거인'을 꺼낼 수만 있다면,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 '거인'이 늘 당신과 함께 한다는 사실만 깨닫게 된다면, 당신은 뭐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명료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거인은 '착하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 무한한 이익을 선사할 정도로 '순수한 덕'이 그 거인의 핵심이다. 그러면 나머지 '원칙'들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고 저절로 통하게 될 것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대단히 '혼란스런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는 갈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경제는 세계 어디에서든 '불안정'하며, 이렇게 혼란스런 상황에서 우리는 진정 '믿고 의지할' 무엇이 무엇인지 몰라 헤매고 있을 따름이다. 이럴 때 '절대 신'과 같이 맹목적으로 믿고 따를 만한 대상이 등장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지 모르겠으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중세시대'처럼 맹목적인 믿음으로 위기를 타파해나갈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게 믿을만 한 신이 없다면 우리가 그간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도덕적 올바름'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조차 희생할 수 있는 '옳음' 말이다. 물론 한사람 한사람의 믿음은 큰 힘을 발휘할 턱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방패(능력)를 내 옆사람을 지켜주는데 쓰고서, 나 자신의 몸을 지키는 방패는 '내 옆사람'을 믿음으로서 빌릴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쬐끔 더 '감동적'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신뢰)을 바탕으로 더 나은 '올바름'을 추구하게 된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믿고 의지할 수 있을' 무엇을 갖추게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자기신뢰'는 기본이다. 나를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으로 만든 다음, 그 믿음을 주위에 퍼뜨리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신뢰'를 쌓아나가게 만든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반드시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자기신뢰'로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자기인생'을 개척해나가면 '더 많은 인생'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아주 '긍정적인 힘'으로 말이다. 이 책 <인생의 12가지 원칙>은 그런 애머슨의 '믿음'을 쉽게 풀어서 쓴 책이기도 하다. 이제 당신의 인생을 빛나게 해줄 차례다. 선한 영향력으로 온 세상을 밝게 물들이길 바란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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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세계사 - 고대 로마부터 21세기 실리콘밸리까지 인류사를 결정지은 기업의 탄생과 진화
윌리엄 매그너슨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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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VI / 한빛비즈 143번째 리뷰] 기업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이윤추구'라고 답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기업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쉽게 말해 '열심히 일해서' 남 좋은 일하고, '뼈 빠지게 일해서' 남에게 다 퍼주는 기업은 오래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해 자본주의체제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명언으로 삼아 무한대로 잡았고, 공산주의체제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들이밀며 굶어죽지 않을 만큼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세계시장에서 공산주의는 패배했다. 그리고 당연히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전혀 해결되지 못했다. 마르크스가 그렇게나 '경고'하고 '경계'했는데도 그 문제점은 제동장치를 잃어버린 것처럼 '돌진'을 했고, 그로 인해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폐해를 선보이며 스스로 문제점을 만들어내며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기업의 원초적인 목적인 '이윤추구'에 제동을 걸 무엇이 필요하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된 셈이다.

  이 책의 맺음말에는 자본주의체제의 기업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8가지가 제시되었다. 하나는 '국가를 위태롭게 하지 마라', 둘은 '장기적으로 생각하라', 셋은 '주주와 공유하자', 넷은 '경쟁하라, 공정하게', 다섯은 '직원들을 제대로 대우하라', 여섯은 '환경을 파괴하지 마라', 일곱은 '모든 파이를 혼자 다 가지려 하지 마라', 마지막은 '너무 빨리 움직이지 말고 너무 많은 틀을 깨지 마라'다. 제시된 제목만 보이도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은가? 그렇다. 오늘날의 기업이 너무나도 '이윤추구'에 매몰된 바람에 '비도덕적/비윤리적인 기업'이 양산되었고, 그로 인해 작게는 한 나라의 경제가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으며, 크게는 지구 전체가 '기업'에 의해 황폐해져 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거기다 기업의 경제활동으로 인해 '한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묵살되는 현장을 우리는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도 '바른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기업에 '생계'를 맡겨 놓은 처지라서, 차마 기업의 나쁜 행태에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기업에 종속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곤 한다. '다음 차례'는 자신이 아니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기업은 '사회악'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기업,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기업을 운영하는 '나쁜 경영자'가 진짜 원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에서 일을 하는 '종사자'들은 착한 경영자보다 나쁜 경영자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면 나쁜 경영자가 '더 많은 이익(성과)'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쁜 경영자를 핑계(?) 삼아 자신들의 소소한 이익추구를 정당화시킨다. 최소한 자신들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면서 말이다. 또한 기업(주식회사)에 자금을 지원한 '투자자'들도 자신들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나쁜 경영진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왜냐면 자신들은 기업의 '주인(주주)'이면서도 경영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더 큰 이익'을 선사하는 경영진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그런 기업의 행태로 인해 한 사회와 국가, 그리고 지구 전체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업의 '이윤추구'에 적절한 제동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제동장치보다 더 필요한 것이 바로 '기업 윤리'다. 이는 비단 '기업가'에게만 요구하는 자질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한 '도덕'과 '윤리'적 규범이 있어야 하고, 이것에 하등 상관치 않는 '짐승'같은 인간들에 대해 적절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선량한 인간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량한 인간들이 무리 지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도 망가지고, 든든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국가시스템도 허물어지게 되며,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지구환경까지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윤추구'를 하는 기업에 적절한 '윤리도덕'이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러나 기업의 이윤추구에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윤택한 삶을 가져다주는 '경제적 풍요로움'에 한 번 맛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최대한의 이윤추구'에 정당성을 부과하려 들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 그 자체로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주는 '은행업(메디치 은행)'과 '주식회사(동인도회사)'를 보라.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만 취한 것이 아니라 '주거래자'에게까지 거대 자본의 편리함과 윤택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기업의 오너'가 한순간에 타락하게 되자 메디치 가의 몰락과 함께 국가(피렌체)의 운명까지 멸망에 이르게 하였고, 동인도회사의 타락과 함께 인도제국은 단박에 '식민지노예'가 되어 버렸고, 이를 수수방관한 대영제국은 '전범국가(?)'와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최대의 이윤'을 얻기 위해서 가장 악랄한 수단까지도 허용해 버렸는데, 바로 '독점기업(유니언 퍼시픽 철도회사)'의 등장이고, '대량생산체제(포드 자동차회사)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각각 시장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왔으며, 동시에 끔찍한 '악영향'을 가져왔다. 독점은 경쟁상대가 없는 상태이니 '무한이익'을 취할 수 있었고, 대량생산으로 '단가'를 낮춰 다른 경쟁사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왔지만, 그로 인한 '근무환경'은 저질적이고 열악하게 바뀌며 인간을 '컨베이어밸트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어디 이뿐인가? 하나의 국가보다 더 큰 '다국적 기업(액슨)'이 만들어지자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관계자조차 '기업 오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까 노심초사하게 만들었고, '기업사냥꾼(KKR)'들의 등장으로 거대한 기업조차 '상품'으로 전락해버려 사고 팔아 넘길 수 있게 되자,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줄 마땅한 것이 무엇인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모두 '기업의 이윤추구'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피해 사례'다.

  과연 자본주의는 이러한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거대 기업은 '최대한의 이윤추구'를 통해서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아직까지는 없는 듯 싶다.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된 이들에겐 '게으름(나태)'이라는 낙인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비난을 퍼붓곤 한다. "그러길래 부지런히 일해서 풍요롭게 살아야지. 왜 '게으름'을 피워서 가난해졌느냐?"말이다. 거기까지만 해도 비참할 지경인데, "가난은 나랏님(엄청난 부자)도 고치지 못하는 '망국의 병'이니, '각자도생'은 기본옵션인 거 알고 있지?"라며 비아냥거리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자본주의'를 찬양하고, 복지정책 같은 것은 하등 불필요한 것이라고 망발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어차피 '개돼지'들에게 희망 따위는 사치라면서 말이다.

  이러한 비도덕적인 '기업윤리'와 부도덕한 마인드를 지닌 '기업오너'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할까? 그래서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재미없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기업이 타락하지 않도록 '소비자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결국 거대 기업도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판매'를 해야 이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대 기업이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짓을 한다면 과감한 '실력행사'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 개개인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거대하게 '뭉친' 소비자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즉,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불매운동' 같은 것이 있다. 비윤리적인 '기업제품(갑양유업)'에, 부도덕한 '기업오너(대한항콩)'에 소비자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이런 실력행사가 '기업오너'에게 타격을 주어야지 '그 밑선'에 폐해를 끼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면, 결국 '없는 자들끼리의 다툼'이 되고 마니까 말이다. 그리고 정작 '기업오너'들은 오만하게도 '찻잔속의 폭풍'으로 취급하며 호로록 해버리고 말 것이 틀림없다. 이를 위해 '범국가적인 실력행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전세계에 걸쳐 있는 '다국적 기업' 같은 경우에 한 국가에서 제재를 가해봐야 그냥 '철수'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 나라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도, 정작 '다국적 기업'에는 흠집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럴 때도 전세계적인 '올곧은 소비자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다시 말해, '소비자 연대'가 필요하단 말이다. 다국적 기업이 특정 국가에서 '횡포'를 부린다는 소식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기업의 이윤추구가 지구마저 파괴하는 '무분별함'을 보여주는 마당에 가만 냅둘 수가 있느냔 말이다. 그래서 '착한 기업'을 찾아내는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지구를 지키고, 국가를 안정시키며,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는 '착한 기업'을 발굴해내 돈쭐내줘야 한다. 이런 긍정적인 사례가 쌓이고 또 쌓여서 모든 기업이 착해지기 위해 저마다 노력하는 '기업생태'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는 가장 살기 좋은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그런 시대가 없었다. 왜냐면 소비자가 '연대할 수 있는 마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전달할 메신저가 없던 시대에는 기업들의 횡포가 극에 달해도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타락한 기업 때문에 '국가'조차 망해서 없어질지경에 이르러도 어디 하소연할 구석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중계'처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생긴 것이다. '페이스북'이 그렇다. 물론 이것이 '언론'도 아니고, '사회고발' 기능이 탑재된 것도 아니다. 그저 '메신저'일 뿐이다. 전세계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는 메신저가 '소비자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짜뉴스'를 선별해낼 수 있는 현명함도 갖춰야 한다. 뭐, 거대 기업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역량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 <기업의 세계사>는 거대한 역사적 변화속에서 익히 알려졌거나, 혹은 감춰졌던 '기업의 진실'이 담겨 있다. 건실한 기업이 타락하는 순간 역사는 소용돌이 치기 시작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세계사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경제사'였음을 잊지 않았다면, '경제 주체'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기업의 세계사'에도 큰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한 기업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면, '경제 주체'의 또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는 개개인의 '가계'가 해야 할 역할에도 눈을 뜨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이 바로 당신에게 그 안목을 선사할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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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 한빛비즈 교양툰 32
봉닭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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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V / 한빛비즈 142번째 리뷰] 몽골역사는 우리에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왜냐면 '기록(역사사료)'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는데도 현재의 우리에게 거의 잊혀버린 '비운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려 무신정권과 조선건국 사이에 '고려 원간섭기'가 존재했던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면도 없지 않다. 우리가 전통혼례 때 신부가 입는 '활옷'과 머리에 쓰는 '족두리', 그리고 얼굴에 찍어바르던 '연지곤지'는 모두 몽골의 풍습에서 비롯되었고, 조선 군대의 행진 때 요란하게 들리는 '태평소'도 원래는 몽골의 군대에서 쓰던 악기였다. 원나라의 다루가치였던 '이성계의 군대'에도 자신의 참전을 알릴 때 바로 '태평소'를 울려퍼지게 했는데, 원나라 군대든, 명나라 군대든 이 '태평소' 소리를 들으면 기겁을 하고 싸우기도 전에 도망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벼슬아치', '양아치'라는 말도 원나라의 관직 '다루가치'의 '치' 또는 '아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알게 모르게 우리는 몽골에서 유래된 것을 '전통'으로 삼고 있을 정도다. 참, '소주'를 빼먹었는데, 유통기한이 짧은 '막걸리'를 증류시켜서 '도수'도 확 높이고, 보존기간도 대폭적으로 늘릴 수 있었던 '소주'는 고려뿐만 아니라 조선사람들의 입맛도 사로잡아 오늘날까지도 한국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술로 인기를 끌고 있다. 소주를 만들 때 '소줏고리' 윗부분에 '이슬'이 맺히기 때문에 소주를 '이슬'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암튼, 우리는 이렇게나 '몽골'에 영향을 받았는데도 정작 우리의 '몽골제국'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중국인들이 몽골사람들을 낮잡아 부를 때 쓰는 '몽고'라는 단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쓰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어리석을 蒙'에 '낡고 고루할 古'를 써서 '비천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일본인을 부를 때 '쪽발이'라고 부르는 격이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지금도 한국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꺼우리(고려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본인이 한국사람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뜻이다. 이들은 모두 '고려사람'과 '조선사람'을 '이름, 그 자체'로 욕지거리로 만든 아주 야비한 짓이다. 요즘 말로 젊잖게 복수(?)를 하자면 "중국이 또 중국했네", "일본이 하는 짓이 늘 그렇지. 뭐!"라고 대꾸해주고 싶다. 그러니 우리 나라 사람들 만이라도 '몽고'라고 쓰지 말고, '몽골'이라고 제대로 불러줬으면 좋겠다. 몽골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를 '솔롱고스'라고 부른단다. 몽골어로 '무지개가 뜨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몽골제국'은 얼마나 큰 나라였을까?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넓은 영토'를 자랑하지만, 중국제국의 일부라고 우기고(?) 있는 '원나라'는 사실 '몽골제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영역이었다. 그리고 원나라 역시 '몽골제국의 지도자' 카안(대칸)이 지배하던 지역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 영토는 '몽골제국'의 초원지대 상단부만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몽골제국'은 거대한 '유라시아 지역' 거의 대부분을 차지해서, 몽골제국이 아니었던 곳을 표시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다. 서쪽으로 '헝가리', 남쪽으로 '중동', 동쪽으로 '만주'까지 지금의 중동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인도'를 제외한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거의 전역을 몽골이 차지했었고, 인도의 '무굴제국', 고려도 사실상 '몽골제국'의 영향하에 있었으므로 '유라시아 대륙' 전부가 몽골제국의 영역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처럼 광대한 지역을 단 한 사람의 통치자(카안)이 다스리던 나라가 바로 '몽골제국'이었다. 12세기에서 14세기까지 말이다. 이렇게나 강력했던 '몽골제국'이 불과 200여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페스트'라는 질병이 엄청난 양의 사람과 가축이 '이동'을 하게 되니, 지역풍토병이었던 '페스트'가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산하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를 증명할 '확실한 증거'는 지금 찾는중이라고 한다. 워낙 사료가 태부족한 관계로 이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학술적 증거가 아직 부족한 셈인데, 현재의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나니, '몽골제국의 흥망사'가 한 눈에 들어오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게 된 것이다. 유럽이 페스트로 인해 전체 인구의 3/4이 줄어든 것처럼 '몽골제국'도 절반 이하로 줄었들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추정한단다. 오늘날의 '고기후 데이터'로 14세기 무렵의 기후를 추정해보니, 농사를 짓기에 적당한 기후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른바 '소빙하기'라고 불리는 '이상기온'이 당시의 농업인구를 굶주리게 만들었고, 소와 말 등에게 먹일 '대초원의 풀'도 덩달아서 줄어들게 되니 '몽골제국의 경제'가 휘청거리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정치'도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카안의 수명'이 줄어든 것을 들고 있다. 쿠빌라이 칸의 후예들의 평균수명이 10세~30세였다고 하니, 이는 몽골제국 내에 '질병확산'과 '경제악화'가 전반적으로 폭넓게 퍼졌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황실의 건강상태가 이 모양이니, 몽골제국 내 백성들의 삶도 상상이상으로 열악했을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 좋은 상황은 제국 안에서 벌어지는 '내전'이 확전되는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을 것이다. 흔히 'ㅇㅇ한국(칸의 나라)'이라 불리던 '울루스' 사이에 갈등이 높아지면서 황실 간 갈등은 높아져만 갔고, 이런 내부의 갈등은 '외부의 침략'으로 제국은 갈갈이 찢기게 되었다. 이때 훗날 명나라 황제가 되는 홍건적의 우두머리 주원장이 등장하는데, 장강 이남의 강남 출신이었던 주원장이 '원나라의 남쪽'을 차지하고 지금의 북경(원나라의 대도)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원나라는 '북원'으로 밀려나고, 홍건적 떼거리의 일부가 고려 국경을 넘어 난리부르스를 치게 된다. 침략 이유는 다름 아닌 '원나라 사람들'이 대거 고려로 넘어왔기 때문이란다. 이들 '홍건적의 잔당'을 물리친 고려의 영웅이 바로 최영과 젊은 이성계였다. 그래서 최영은 깝죽거리는 명나라 군대를 만만히 보았던 것이고, 이성계도 조선 건국 이후 명나라 주원장이 깝죽거리면 "내가 직접 조선군을 이끌고 명을 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고려 말 '요동정벌'이 결코 불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몽골'과 관련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아쉬운 것은 이를 증빙할 사료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집대성'한 역사서가 우리에게 너무 낯설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이 책 <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몽골제국사>도 읽다가 의아한 대목이 많은 편이다. 아니 '몰랐었다'는 표현이 더 솔직할 것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와 비교하면서 읽어나간다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띄엄띄엄' 어색했던 역사적 흐름이 한층 자연스러워지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몽골제국사'를 쉽게 풀어준 글쓴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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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 4 - 구음진경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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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IV / 김영사 26번째 리뷰] <사조영웅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이 등장한다. 바로 '곽정과 황용의 약혼'이다. 이야기 초반에는 '완안강과 목염자의 비무초친(무예로 베필을 구한다)'가 나왔다면, <사조영웅전>의 진정한 주인공인 곽정과 황용이 '운명적인 만남'에 이어 장인어른(동사 황약사)께 두 사람의 혼례를 약조 받게 되는 극적인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그것도 [구음진경]이란 절세무공비급이 동시에 등장하며 이야기를 한층 더 고조시켰다. [구음진경]은 곽정이 여섯 살 무렵에 이미 등장했었다. 진현풍과 매초풍이 '구음백골조'와 '최심장'이라는 악랄한 무공을 선보이며 이미 한 차례 등장했었는데, 이번에 그 [구음진경]의 전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무공을 '곽정'이 완벽하게 익히게 된다. 이로써 곽정은 '동사서독 북개남제 중신통'이라는 무림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무공실력이 크게 증진되었다. 그리하여 '또 하나의 영웅 후보'가 성립된 셈이다.

  이제 본격적인 '무림고수'가 등장한다. 바로 '동사서독 북개남제 중신통'이라 불리는 다섯 명이다. '천하오절'이라고도 불린다. 각각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의 '방위'에 다섯 명의 무림고수를 나열한 이름인데, 그 이름에서 그 인물의 성격까지 알 수 있다. 먼저 '동사 황약사'는 도화도의 주인으로 성격이 괴팍하고 종잡을 수 없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가 창안한 탄지신통, 낙영신검장, 난화불혈수, 옥소검법 등의 무공은 변화무쌍함과 동시에 초식 하나하나가 절정에 다달았다. 이런 절정의 무공뿐 아니라 머리도 똑똑하여 다양한 학문의 조예가 깊다. '서독 구양봉'은 서역 백타산의 주인이다. 이름 그대로 '독'을 다루는 능력이 타고나서 엄청난 수의 뱀을 다루며 음험한 기운을 내뿜어 <사조영웅전>의 '악역'을 자처한다. 그의 무공 중에 '합마공'은 몸을 움추렸다 한 방향으로 일격을 내뿜는 단순한 무공이지만, 그 내공의 응집력은 어마무시한 까닭에 '절대무림고수'조차 합마공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이겨내지 못할 정도다. 다음으로 '북개 홍칠공'은 이미 등장해서 곽정과 황용의 사부가 되었지만, 다시 소개하자면, 거지들의 우두머리로 '개방의 18대 방주'를 맡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무공은 '힘' 위주의 외가무공인 '항룡십팔장'이고 '곽정'이 물려받았으며, '대나무 막대기'를 무기로 삼은 '타구봉법'은 신묘한 기술로 개를 때려잡는 무공인데, 훗날 황용이 개방 방주를 맡게 되면서 홍칠공에게 전수를 받는다. 아직 '남제'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대리국의 황제'이며, '일양지'라고 하는 절세무공으로 천하를 들었다놨다하는 불세출의 무림고수이다. 마지막으로 '중신통 왕중양'은 전진교의 창시자다. 그에 대해선 잠시 소개를 미루고, '천하오절'에 대해 마무리하련다.

  '천하오절'은 앞서 말한 다섯 명의 무림고수를 일컫는 말인데, '화산논검대회'에서 무공의 우열을 가린 뒤에 불린 이름이다. 명색이 '대회'란 이름이 붙었는데, 마땅히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목적은 다름 아닌, [구음진경]의 소유를 정하려 했던 것이다. 대회는 7일 낮밤 동안 쭉 이어졌고, 다섯 명 가운데 '왕중양'이 가장 강했고, 나머지 네 사람은 서로 '무승부'로 끝맺었다. 그래서 [구음진경]은 왕중양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해적판'에서는 [구음진경]의 유래에 대해서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었는데,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이 책에서는 그 유래를 밝혔다. 바로 '황상'이라는 도사가 5000권이 넘는 '도교'에서 유래한 경전을 집대성한 뒤에 저절로 엄청난 무공을 쌓게 되었는데, 그 무공과 맞대응할 수 있는 무림고수는 '명교(나중에 <의천도룡기>에 등장하는 서역의 종파)의 사대천왕' 뿐이었는데, 황상은 혼자의 몸으로 중과부적이었으나 용케 살아남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다시금 경전속의 무공들을 하나하나 되새겼는데, 그 수련기간이 무려 40년이 흘러버린 것이다. 그런데 정통한 '내공수련'을 겸한 탓에 황상은 오히려 늙지 않고 건강해진 반면에 황상보다 무공이 높았던 적수들은 이미 늙어 죽은 지 오래 되었던 터라 복수는커녕 허탈감만 느끼게 되었단다. 그렇게 '인생무상'을 느끼고 나서 자신이 쌓은 절세무공을 한 권의 책으로 써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구음진경]이었단다. 천하오절은 바로 그 무공비급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자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화산논검대회'를 열었던 것이다.

  왕중양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자면, 그는 천하오절 가운데 유일한 '실존인물'이다. 그는 '전진교'를 창시하였는데, '전진교'는 12세기 중국 도교 종파의 하나로, '금련정종'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왕중양의 제자에 해당하는 '전진칠자'도 모두 실존인물이다. 순서대로 '단양자 마옥', '장진자 담처단', '장생자 유처현', '장춘자 구처기', '옥양자 왕처일', '광녕자 학대통', '청정산인 손불이'다. 전진파의 도사들은 도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교, 불교, 도교'의 일치를 주장하며 교세를 확장했더랬다. 그중 옥양자 왕처일은 금나라 세종에게, 장춘자 구처기는 몽골 칭기즈 칸에게 초빙을 받아 '불로장생의 비법'을 강의하는 등 '남송시대'에 대대적인 유명세를 이끈 교파였다. 이후 윤지평, 이지상이 물려받은 교단은 원나라 헌종 때까지 흥하다가 '몽골제국'이 확장하면서 불교가 크게 흥했고, 불교의 위세에 위축되며 명맥이 끊기게 되었다. 저자 김용은 이들 실존인물을 소설속 '정중앙'에 배치시켜 놓고 '구음진경'이라는 무공비급을 곁들여서 실제 역사와도 같은 '흐름'을 전개시키며 독자들에게 유쾌한 몰입감을 선사하였다. 이렇게 '실제 역사'와 '허구 소설'을 이어주는 역할을 '가상 인물'들로 연결시킨 것이다. 바로 왕중양에게 의형제 '노완동 주백통'이 있었다는 설정이다. 비록 왕중양은 오래 살지 못했지만, [구음진경]을 차지한 뒤에 그 무공을 취하지 않았다. 그가 [구음진경]을 차지한 까닭은 너무 강력한 무공이 세상에 퍼졌을 때, 부도덕한 인물들이 힘만 믿고 악행을 저지를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중양은 자신은 물론, 자신들의 제자에게도 '그 무공'을 배우고 익히지 못하게 유언을 남겼다. 그런데 왕중양의 유지를 받아 [구음진경]을 갖게 된 주백통의 실수로 세상에 유포되었고, 그 무공이 세상을 할딱 뒤집어 놓게 되었다는 스토리를 전개시킨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구음진경]의 무공을 최초로 전수받게 된 인물이 너무 착해서 탈인 '곽정'이라는 점이다. 물론 곽정에게 '구음진경의 무공'을 가르치다 본의 아니게(?) 무공을 익혀버리고 만 '주백통'도 엄청난 무공실력을 갖게 되어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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