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자신이 장애가 있다고 하며 "장애 등록을 하고 학교에 보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형편이 아닙니다." 라며 무안할 정도로 단칼에 거절했다. 담임 교사는 더 이상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했고 내 의사를 물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학교를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훗날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아버지는 "너도 학교 안 다니겠다고 하지 않았냐."며 내게 책임을 돌렸다. - P23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미친 듯이 깡소주를 마셨다. 취하기는커녕 더 또렷해지는 내 감정들을 버리고 바다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내 삶이 원망스럽고, 아픈 내 마음을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외로움이 싫었다. 술집 여자로 늙어가는 내 모습이 저주스러웠다. 이대로 바다로 뛰어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바위 위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시커먼 바다로 차마 몸을 던지지 못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없이 울었다. 죽을 용기도 없는 자신을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 그날 그 조용한 바다는 나의 슬픔으로 물들어 있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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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3-26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는 케이크와 맥주 다 읽으면 이거 읽으려고요.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책인 것 같아서,,, 그런가요??

햇살과함께 2022-03-27 09:2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더 충격적이네요 그래도 알아야죠!
 

책의 초반부가 13년부터 17년에 신문에 기고한 글 모음이라, 세월호, 역사 교과서, 위안부 합의 등 박근혜 정권 당시의 이슈가 많이 나와서, 앞으로 재현될(?) 일들을 보는 것 같아 잠시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도, 촛불정권과 선거에 대한 글을 읽으며 선생님이 지금 살아계셨다면, 이 상황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하는 상상도.


꼰대스럽지 않은 선생님의 글들은 읽을수록 점점 좋아졌다. 후반부는 영화와 시집을 포함한 책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역시 시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게 아직 어렵다. 소개해 준 책 중에서 김개미의 시집과 조선희의 소설 '세여자'에 흥미가 간다. 김개미의 동시집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다.


어린왕자에 대한 글도 2편이 있는데, 딱! 내가 궁금하던 부분이 설명되어 있어 어찌나 기뻤던지(이것이 바로 연계독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에도 어린왕자 얘기 나와서 좋았는데^^). 어린왕자가 노을을 44번 봤는지, 43번 봤는지에 대한 부분.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영문판 버전이 초기의 원고본인지, 후에 생텍쥐페리가 일부 수정한 타자본인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 의문이 풀렸다. 하지만 왜 이팝 출판사는 경상도 버전과 전라북도 버전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선생님이 번역하신 어린왕자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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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25 17: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현산선생님 에세이 좋아해요. 잔잔하고 배울 것 많고 생각 반듯하신 ㅎㅎ 전라도버젼은 못 봤어요 ~ 이러다 강원도 버젼 충청도 버젼. 다 나오는거 아닐까요 ~

햇살과함께 2022-03-25 19:59   좋아요 2 | URL
황현산 선생님 책 처음 읽었는데 책에서 반듯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팔도 버전 기대합니다~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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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꿈의 지도에서 출발하는, 칼 세이건이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지구 생명과 우주를 존중하는 마음, 무지와 겸손을 바탕에 둔 과학적 태도, 새로운 발견에 기여한 여러 과학자들의 사연이 무척 흥미롭다. 내년에는 두 코스모스를 재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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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4-01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햇살님, 다큐 추천 합니다

앤드루얀 멋지게 늙어 가는 모습이 알흠 ^ㅅ^

햇살과함께 2022-04-01 23:33   좋아요 1 | URL
다큐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앤 드루얀은 칼 세이건과 다른 매력이 있어요.
말씀대로 멋지게 나이드는 모습^^

scott 2022-04-01 23:40   좋아요 1 | URL
선덴스 상 받은 보이저 추천합니다
앤 드루얀 과학 다큐 명프로듀서😎
 

나는 왜 말하는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지만, 시작부터 가슴이 답답해지고 울화통이 터진다.

가난이라는 무게 때문에 짊어져야 했던 폭력이 성추행으로, 미성년자 강간으로, 사랑을 빙자한 데이트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폭력의 완성은 성매매였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주된 이유는 빈곤하고 자원이 없는 여성인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폭력이 가해졌는지, 그 폭력이 어떻게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 폭력이 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에 관해서도, 그리고 성매매의 굴레를 마침내 떨쳐버리기 위해 살아온 그 이후의 삶도 풀어보았습니다. - P7

커갈수록 아버지의 폭력은 더욱 심해졌다. 그 폭력에는 정말이지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네 아버지같이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너를 때린다는 것은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야." 라고 말했다. 맞는 것도 억울한데 내 잘못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밖에선 법 없이도 산다는 아버지는 집에서는 절대 권력의 폭군이었다. 내가 안 맞으면 엄마를 때리는 나쁜 아버지라고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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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는 죽이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주권자의 생사여탈권에 기초한 전통적 권력이 생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권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양적인 증감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출생률, 이병률, 수명, 생식력, 건강 상태와 같은 고유한 변수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기 시작한 ‘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의 출현에 주목한 바 있다. - P171

총독부 관리들이나 일본인 학자들은 조선인 절대 다수가 계몽되지 못해 미신과 관습에 사로잡힌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미 성숙한 근대인인 일본인과는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아시스난디는 피식민지인을 아동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이러한 인식이 근대 식민지 체제들 안에서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적절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성숙과 성장을 해야 하는 ‘아동’의 존재와 이들을 돕는 책임을 가진 주체로서의 ‘성인‘으로 상징되는 성장과 발전의 테마는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에 손쉽게 유비되었다. 식민지인의 차이는 야만의 상징인 동시에 아동의 미성숙함에 대한 대응물로 간주되곤 했다. - P182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모종의 인식론적 전환, 즉 성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접근에서 의학적·생리적 접근으로의 전환과 같은 이분법을 통해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에도 여전히 비의료인 지식인들은 ‘성교육‘에 대해 발언권을 가졌으며,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의학적 전거를 동원했다. ‘불순혈설‘을 둘러싼 논쟁은 지식인 그룹 내부에서의 담론의 혼재를 잘 보여준다. ‘불순혈설‘은 여성이 한 명 이상의 남성과 성관계를 하면 혈액 중에 이미 성관계를 한 남성의 혈액이 남아 ‘순혈한 혈통‘의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이론으로 1920년대 조선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 P185

여성성과 남성성은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신체적으로 양성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새로운 사유의 발전에 있어 1920~30년대 내분비학의 발전은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모든 인간이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과학자들은 이것을 모든 여성들이 남성의 요소를 가지며 모든 남성들이 여성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성전환수술‘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이 ‘양성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내분비학 학자 오이겐 슈타이나흐를 비롯해 인간과 동물을 대상으로 한 성전환 실험/수술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이러한 작업을 ‘창조‘라고 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수술은 호르몬을 사용해 지배적인 성별의 신체적 특징과 성행동을 억제하고 잠재된 반대 성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남성과 여성이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 있는 존재이며, 호르몬을 통해 신체를 한 방향이나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 속에서 성별이란 내분비물의 추가나 감량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양적인 차이로 이해되었다. - P214

식민지 당국은 조선인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특유의 제국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본국‘ 일본에 비해 더욱 가부장적으로 조선인의 성을 통제했다. 이것은 공공의 의제로서 성담론이 논의되는 지형을 매우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성은 192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는 상업화와 의료화를 매개로 사적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진 주제가 되었다. 성이 개인화되고 내밀화되는 경향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자발적으로 관리하는 ‘자기관리‘의 주체이자, 끊임없이 자신의 성생활과 남성/여성 정체성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잠재적 환자로서 이러한 담론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 P218

20세기 초는 세계 각지에서 근대적 여성 고등교육기관과 기숙학교가 등장한 시기로, 동시대적으로 많은 국가들에서 매우 유사한 형태의 로맨틱한 관계들이 출현했다. 선배와 후배 여학생들 사이에서 혹은 여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었던 이 로맨틱한 열정은 미국에서는 스매싱smashing 혹은 크러쉬crash(현대의 ‘걸크러쉬‘의 어원)로, 영국에서는 레이브raves로, 남아프리카 레소토에서는 마미 momm와 베이비baby로, 그리고 일본과 조선에서는 ‘S‘로 불렸다. "여류명사의 동성연애기"는 기사기획에 맞추어 일관되게 ‘동성연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당시의 여학생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명칭은 ‘S’(S언니/S동생)였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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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3-24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재밌게 읽었는데...

햇살과함께 2022-03-25 20:01   좋아요 0 | URL
이상하고 엽기적인 나라를 보는 듯요 ㅎㅎ 신문은 그때도 참 낚시질을 많이 했구나 생각도 ㅎㅎ